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미일 합의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마스가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도보여행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스타벅스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수질오염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51
  • 한·소 제주정상회담 막전막후/기자방담

    ◎“일본은 자린고비”… 소측인사들 불만 토로/우호조약 이름 싸고 우리 당국자들 혼선/고르비 일정 변경잦아 아무도 예측 못해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인 가운데 열렸던 한소 제주정상회담이 20일 1박2일의 일정을 끝내고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숱한 화제를 뿌렸던 이번 회담의 막전막후를 특별취재반의 방담으로 알아본다. ­이번 회담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지만 잦은 일정변경 등으로 인해 의전관계자는 물론 7백여 명의 취재진도 긴장의 연속이었죠. ○의전관계자 긴장연속 당초 4시간 정도의 제주체류로 합의된 것으로 보였던 고르바초프의 일정은 도착 당일인 19일 새벽 4시쯤 1박2일로 연장됐고 양국 정상간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이 열린 20일의 일정도 방일 여정의 피로와 전날 만찬행사가 새벽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축소 조정됐죠. ­국가정상의 방문국 체류일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착 당일 전격적으로 바뀌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데 이번에 소련측 일정은 너무 자주 변경됐어요.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급작스런 일정변경은 소련 외교의 「관행」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병기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은 이를 두고 『소련 대통령의 일정은 마지막 5분 전까지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라고 밝힐 정도였죠. ­1박2일로 체류일정을 늘리자고 한 것은 사실 우리측이 정상회담 준비단계부터 강력하게 요청해온 것이지요. 그러나 소련측은 바쁜 방일일정과 산적한 자국내 문제 등을 이유로 계속 난색을 표시,도착 하루 전까지도 거의 가망성이 없는 것으로 우리측은 판단했던 거죠. ­일부에서는 소련측이 처음부터 우리측 요구대로 1박2일의 일정을 생각해놓고도 생색을 내기 위해 막판에 전격 수용,극적 효과를 노렸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방일 성과가 미흡한 데 대한 고르바초프의 강한 불만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어요. 소련 국가원수로서는 첫 방일인데도 일본측은 북방 4개 도서 반환에만 신경을 썼지 정작 소련이 제시한 경협이나 동북아 집단안보체제 등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한소 우호협력조약」 문제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요. 당초 양국 외무부관계자들간에 사전 조정된 대화내용 초안엔 이것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단독회담 때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전격 제의하자 노 대통령이 원칙적으로 수락하면서 앞으로 양국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협의해나가도록 하자고 대답했습니다. ○“언론 앞서간다” 불평도 ­청와대측이 미리 준비한 발표문에는 『두 분 대통령은 모스크바선언과 양국간에 체결된 각종 관련 협정에 따라 양국 관계를 더욱 역동적이고 본격적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을 다짐했으며…』라고 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단독회담의 결과에 따라 「다짐했으며」 다음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번 발전을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한소 양국 우호협력조약의 체결을 제의했으며 노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고 앞으로 양국 외무장관을 통해 협의해나가기로 했다』는 구절을 삽입했습니다. ­그러나 조간신문 등 언론들이 「한소우호협력조약」 체결합의라고 헤드라인을 붙이고 나가자 외무부 등에서는 『아직 「합의」를 한 것은 아니다. 양국 외무장관간에 협의를 해봐야 한다』면서 『언론이 너무 앞질러 보도한다』고 불평을 했지요. ­이 조약의 이름을 놓고 이수정 청와대대변인과 김종휘 외교안보보좌관간에 잠시 혼선을 빚기도 했지요. 김 보좌관은 정상회담 브리핑을 통해 「우호협력」에다 「선린」이란 표현을 추가시켰지요. 그런데 「선린」이라는 문구는 완전한 우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칠 공산이 커 미일 등 우방의 강력한 이의제기를 의식한 이 대변인은 김 보좌관의 발표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곧바로 보도진들에게 「선린」표현의 삭제와 함께 「양국 외무장관간에 추후 논의키로 했다」는 사실을 강조,톤 다운시켰죠. ○“일본선 너무 피곤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 대통령과 환담,단독회담,산책,작별인사 등 비교적 은밀한 대화시간에 얘기할 때 『일본에 있다가 이곳에 오니까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더욱 인간적인 친근미를 느낀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더군요. ­고르비는 일본의 3박4일간의일정이 매우 피곤했다는 말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고 해요. 일본에서 가이후 총리와 6차례 일소정상회담을 한 것으로 발표됐지만 사실은 8차례나 회담을 했다고 해요. 고르비는 가이후 총리를 두고 하는 얘기같은데… 『하나도 제대로 결정을 못 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마 북방 4개섬 반환과 일본의 대소 경협규모를 두고 어지간히 실랑이를 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나온 것이 아닐까요.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우리는 결코 원칙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구걸」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로써 영토반환과 원조를 흥정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는 후문입니다. ­소련측 인사들 가운데는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면서 『한국의 30억달러는 GNP를 감안할 때 일본의 4백50억달러에 해당한다』면서 「자린고비 일본」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두 정상 사진찍기 수월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수뇌의 만남은 상당히 수월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정상이 이제 완전한 친구처럼 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나 공식대화에서는 물론 산책대화 때도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방문 수행취재 때에는 양 수뇌의 만남이 다소 어색하고 서먹서먹해 앵글 맞추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모든 행사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진행돼 양 수뇌의 친숙도가 한층 두터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련 기자들은 대부분 자체풀(POOL)기사에 의존하는 듯 독자적인 취재열의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프레스센터에도 잘 들어오지 않고 주로 자기들끼리 커피숍 같은 데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지요. 글라스노스트정책에도 불구하고 아직 경쟁을 생명으로 하는 우리 언론의 생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일본언론을 비롯해,로이터 AFP 등 세계적인 통신사와 뉴욕타임스지 등 외신기자들을 프레스센터 앞쪽에 자리를 잡고 열띤 취재경쟁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주시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제주도가 뛰어난 세계적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며 희색이 만면입니다만 뭐니뭐니해도 회담덕을 가장 많이 본 곳은 제주 신라호텔입니다. 호텔측은 회담 자체로는 6천만원의 적자를 보았지만 홍보효과를 감안하면 약 30억원을 투자한 것과 맞먹는다고 밝혔습니다. ○신라호텔 1백억 번 셈 게다가 오래전에 교통부에 신청했음에도 꿩 구워먹는 소식이던 「특1급호텔지정」 통보가 회담 직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텔 주변에선 이번 회담으로 제주 신라호텔은 1백억원 이상 번 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외신 기자들이 사용하는 프레스센터에는 현대전자가 관계당국의 승낙 아래 대형 멀티비전을 무료로 설치,현대선전효과를 노렸는 데 삼성그룹 산하인 호텔측이 뒤늦게 이를 알고 『남의 안방에 현대가 웬말이냐』며 철거를 요구하기는 했어요. 그러나 현대측이 이를 거부하자 호텔측은 단전으로 맞섰는데 결국 설치경비 2천만원을 호텔측이 부담하는 대신 현대측은 회사간판을 떼내렸다고 하더군요.
  • 일·소 관계를 보는 우리의 시각(사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이번 일본 방문과 일소정상회담은 동북아의 냉전질서 종식을 촉진시킬 수 있는 전후 최초의 중요하고도 구체적인 시도요 외교행사였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만한 것이었다. 결과여하에 따라선 남북분단의 한반도 상황은 물론 우리 주변환경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에게도 비상한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8일 발표된 공동성명으로 드러난 결과는 특히 일소 관계의 경우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 정상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일소 관계의 개선과 발전은 한반도를 포함하는 동북아의 탈냉전과 평화 및 안정에 필요한 중요조건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것을 막고 있는 최대의 장애요인은 2차대전 이후 소련이 점령해온 일본 북방 4개 도서의 반환문제였다. 쌍방의 필요와 열의로 미루어 모종의 만족할 만한 타협책이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없지 않았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4개섬의 반환이든가 56년에 합의한 2개섬 반환에 나머지 2개섬에 대한 일본주권 인정등이 일본의 요구였으나 소련은 그것을 거부하고 4개섬을 앞으로의 교섭대상으로 삼는 데 동의하는 최소한의 양보에 그쳤다. 60년 미일 안보조약 이후 일소간의 영토문제 존재 자체를 부정해온 소련의 입장에선 이 정도로 31년 만의 큰 벼화요 양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결과를 보는 일본조야의 시각은 냉담한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이 고르바초프가 필요로 하는 본격적인 대소 경제협력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선 그 정도의 양보가 한계였을지 모른다. 국내 정치기반이 약화될 대로 약화된 그가 이번 방일을 통해 일본의 요구를 수용했다면 『영토를 팔아먹었다』는 국내비판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일본도 불만이나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장의 타결은 일본 자신도 기대하지 않았던만큼 새로운 문제접근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4개섬 반환을 전제로 하는 대소 지원·관계개선이 아니라 4개섬 반환협상과 대소 지원 및 관계개선의 병행도 있을 수 있는 문제인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일본과 소련은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곧이어 가이후 총리의 방소계획도 추진되고 협상은 시작이라는 주장도 있는만큼 모종의 비밀양해도 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동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 밖에 이번 고르바초프 방일과 정상회담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고르바초프의 중의원 연설과 공동성명의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대한 관심표명이다. 소련의 아시아·태평양 집단안보구상은 일본은 물론 우리도 당연히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건이 다르고 저의가 딴 곳에 있다 하더라도 종래와 같은 즉석의 정면거부보다는 간접거부와 긍정적 측면의 평가와 같은 새로운 자세가 이제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한반도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남북총리회담 계속을 지지하며 남한의 핵사찰수용을 촉구한 공동성명의 한반도 대목은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하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할 뿐이다. 우리는 일소 관계가 발전하고 그것이 동북아는 물론 한반도의평화와 안정,그리고 통일에도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 한ㆍ미 “미래지향”선언속 「빈손협력」

    ◎일,「과거청산」에 매달려 실질보장 “어물어물”/무역역조 시정등 처방없이 원론서 맴돌아/「아태신질서」 동반관계 조율은 성과/두차례 정상회담 뭘 남겼나 한일양국은 1박2일간에 걸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의 방한을 통해 「알맹이」보다는 「분위기」조성의 불확실한 성과를 얻었다. 물론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가 두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불행했던 과거를 덮어두고 밝은 미래를 지향한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한일양국은 새로운 우호선린관계의 길을 열어 놓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 가이후총리의 방한은 처음부터 「가이후카드」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우리측 입장에서 풍성한 수확을 얻어내기는 어려웠다. 일본은 이번 가이후방한에서 『이제 과거는 그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했고 동아시아에서 급속히 형성되고 있는 새질서에 대응,일본의 위상을 추구하는 시발점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다. 이에대해 한국은 과거사는 종결짓되 확실한 보증을 요구했고 동북아시아에서 한일양국이 발을 맞추려면 일ㆍ북한관계 개선문제에 우선 보폭을 일치시켜야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두차례의 한일정상회담은 3가지의 「불확실한 성과」를 가져왔다. 첫째는 일단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의 설정에 합의한 점이다. 이에대한 가시적인 문건은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및 처우에 관한 각서」와 「한일우호협력3원칙」이다. 지문날인제 철폐,국공립초중고교 재일한국인교사채용기회 확대 등으로 상징되는 이 「과거사 청산각서」는 일부 내용의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한일양국은 『이제부터 미래얘기를 하자』는 징표로 해석되고 있다. 「아태지역의 평화와 화해,그리고 번영과 개방을 위한 공헌강화」 등 3개항의 우호협력원칙은 일견 「공자말씀」인 면도 없지않지만 미래지향문제와 관련한 양국의 「헌장」으로 이해된다. 또한 가이후총리가 10일 일제식민치하의 3ㆍ1독립운동의 진원지인 파고다공원을 일본총리로서는 최초로 방문,3ㆍ1운동기념비에 헌화하고 묵념한 것은 과거사 종결선언의 정치적 행동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미래지향」 표명이 그 지긋지긋한 과거의망령으로부터 탈출하자는 데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동반자관계로 나가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인지 하는 점이다. 이에대한 판단은 앞으로의 일본의 태도를 봐야한다는 점에서 유보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미래지향의 선언도 불확실한 성과라고 평가된다. 둘째는 일ㆍ북한수교 교섭과 한소관계 진전문제에 대한 양국의 상호협력에 인식을 같이한 점이다. 일본측은 그동안 한국이 강력히 요청한 일ㆍ북한수교에 따른 5개원칙을 전폭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한걸음 더 나아가 이달말께 평양에서 있을 일ㆍ북한수교 교섭 1차본회담에서는 「5개원칙」의 하나인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겠다는 적극성을 보였다. 일본은 대북수교교섭에서 한국과의 사전 충분한 협의,남북대화와 교류에 있어 의미있는 진전 등을 항상 유념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가이후총리는 『한소관계진전에 대해 한국으로부터 충분한 협의를 얻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일ㆍ북한수교와 한소관계진전은 일종의 「맞보기」임을 지적했다. 일ㆍ북한수교는 한국이 폐쇄노선의 한계점에 이른 북한을 어떻게 해서든 개방으로 몰고 나오려는 시점에 일본이 북한에 「경협 및 보상」이라는 구원의 밧줄을 던져주는 형국이다. 이에반해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대소경협 등 한소관계진전은 일본이 경협을 미끼로 대소 북방 4개도서문제를 해결하려는 판에 매우 껄끄러운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다. 이같은 한일양국의 입장은 서로 이해가 엇갈리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간의 「외교언사」로만 극복되기는 어렵다. 다만 일본이 한국과의 진정한 동반자로서 「북방도서」보다 「분단의 고통」에 얼마나 더 비중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자국이기주의를 절제할 가능성은 있다. 셋째,산업기술협력ㆍ60억달러의 무역역조 등 현안에 관해 기본적인 문제점을 함께 인식한 점이다. 그러나 이들 현안과 관련,분명한 처방없이 원론만 되풀이 한 것은 앞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올 상반기중 한일산업기술 협력위원회를 열어 기술이전 문제를 본격 검토키로 한 것이나 가이후총리가 한국건설업체가 일본에서 차별없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하면 특례조치로 사안별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소 진전된 것이다. 양국정상은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의 기초작업으로 청소년ㆍ학술ㆍ문화교류를 대폭 증진키로 합의했으나 일본문화의 침투 등 이 과정에서 제기될 부작용에 대한 완충장치는 계속 숙제로 남아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오는 2월의 미소정상회담,3월의 미일ㆍ한미정상회담 그리고 4월의 일소정상회담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에 따른 한소정상회담 등 한반도주변 국가 정상들간의 연쇄회담의 시발점이 된다는 면에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재편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한일양국이 동북아에서의 새로운 국제적 기류에 공등대응하고 이 지역 협력문제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은 양국의 위상제고에 일단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가이후총리의 방한은 올봄으로 예상되는 일왕의 한국방문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일왕의 방한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이는 미래지향을 선언한 한일양국 관계를 보는국민들의 「체감온도」를 반영해 주고 있다.
  • 한·미 통상마찰… 워싱턴의 입장

    ◎미,「과소비억제」를 「개방장벽」으로 인식/민간차원 운동 “정부서 배후조정” 판단/한국 UR협상 비협조에도 불만 높아 『한국의 금융자유화 지연과 외국 금융기관 규제는 미국의 보복조치를 촉발할 수 있다』­이것은 미 재무부의 찰스 달라라 국제담당 차관보가 얼마전 서울에서 열린 한미 금융정책회의를 마친 후 『서울의 반응에 실망했다』며 내던진 위협발언이다. 그는 『워싱턴의 불만이 아주 크다』고 역설하며 『한국측이(미측 주장을) 좀 더 수용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미 행정부 주요인사들은 대한 통상문제에 한결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5월 슈퍼301조 타결이후 긍정적으로 발전돼 오던 한미 통상관계가 어느 새 악화국면으로 반전된 느낌이다. 워싱턴의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한국의 통상정책 「변화」와 한미협정 「불이행」에 대한 불만이다. 한국이 무역적자등을 해소하기 위해 수출촉진 정책을 추진하고 사치품 수입을 억제하는 것을 미국은 시장개방에 역행하는 정책기조의 변화로 인식하고 있다. 또 한국이 관세인하 5개년계획(1989∼93)의 시행을 1년간 연기하는 한편 한미협정상 25%로 돼있는 와인 쿨러의 관세를 30%로 인상하고 쇠고기 동시입찰 제도를 미 업계와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시행한 처사를 기존협정의 불이행으로 보고 있다. 둘째,미국이 통상문제중 최우선 순위에 놓고 연내타결을 서두르는 UR(우루과이라운드)등 다자간 협상에서 한국이 비협조자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UR협상에서 한국은 개도국중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협조하는 국가로 지칭됐었다. 그러나 최근 농산물협상에서 한국이 쌀·쇠고기 등 15개 NTC(농업의 비교역적 기능) 품목은 자유화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입장을 공식화,전면 개방을 주장하는 미국을 괴롭게 만들고 교착상태에 빠진 반덤핑 및 섬유분야에서도 미국에 반대되는 의견을 많이 내자 미 일각에선 한국에 대해 「방해자」라는 시각까지 보이고 있다. 셋째,지난 6월30일 미일 구조조정협상(SII)이 타결된 후 지금까지 일본에 집중되던 미국의 통상시각이 한국등으로 다원화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 통상정책의 최대장애로 지목됐던 브라질의 경우 보호무역주의를 철폐하는 경제개혁 조치를 대내적으로 시행한데다 UR농산물 협상에서 미측 입장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지금은 미국의 동반자로 변했다. 넷째,페르시아만 사태 후 미국의 무역적자 및 경기침체 현상이 가중되자 워싱턴이 경제운용의 좌절감을 대외로 폭발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9월말 현재 7백34억달러로서 연말까지 작년 수준(1천94억달러)을 상회할 전망이며 경제성장률은 3·4분기중 1.8%에 그친데 이어 4·4분기중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견돼 미국인들 사이에 위기감이 증대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4월 시작된 한국의 사치품 소비억제운동은 미국의 대한 통상마찰을 증폭시킨 기폭제였다. 당시 미 언론들은 「한국에 보호주의 부활되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수입품 배격운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하며 이를 눈에 보이지 않는 불공정 무역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어 미 상무부의 웨인 버민 고문변호사가 방한,서울의 백화점·시장 등을 돌며 수입규제 부활여부를 직접 조사하고 온 후 로버트 모스 베커 상무장관 등은 이를 정부관여에 의한 조치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 무역대표부의 칼라 힐스 대표는 박동진 주미 한국대사를 불러 한국의 외제 사치품 배격운동과 이에 따른 수입상품 판매부진이 한국정부의 수입규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노골적으로 표명했다. 힐스 대표는 한국내 수입상품 판매부진에 대해 미국정부는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한국의 수입개방정책이 후퇴 역행하는 일이 없도록 한국정부가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후 한국정부의 관세율 인하조치와 서울의 미 쇠고기 세미나 폭력저지사건,그리고 암참(American Chamber of Commerce in Korea:한국주재 미 상공회의소)이 미 요로에 돌린 한국 통상정책 비난책자 등으로 미국의 대한 불신은 더욱 심화됐다. 우리 농협중앙회가 지난달 전국의 국민학생에게 배포한 교육용 만화 「달리의 방학기행」도 새로운 통상마찰의 불씨로 번지고 있다. 미 경제전문지 저널 오브 컴머스는 21일『수입품을 사먹지 말자』『미국 농산물엔 알라가 들어 있다』는 내용이 담긴 이 만화를 「한국의 조직적인 수입억제운동의 일환」이라고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하면서 힐스 대표가 곧 한국에 항의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의 한미 통상마찰과 관련하여 현안별로 미국 입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사치성 소비재 수입 자제운동=민간차원의 과소비 추방운동이라는 우리측 해명에도 불구하고 미측은 한국정부가 배후에 있다는 심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미 언론은 노태우 대통령을 이 운동의 배후로 관련시켜 주목되고 있다. 최근 미측은 정부 개입여부에 대한 시비는 적게 하면서 백화점내 외제품 코너 부활 등 원상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외제차 소유자에 대한 세무조사와 재산세 중과등은 사회부조리 시정 및 국민위화감 해소 차원에서 취한 조치라는 우리측 설명에 대해 미측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지적소유권 보호=최근 한국이 리복(Reebok)운동화 모조품제조자 등 69명을 구속하고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미 입장을 적극 지지한 것 등과 관련,한국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무단복제 교과서 및 이태원 가짜 외제품 시장 등의 단속에 미온적이라는 불만을 아직 갖고 있다. ▲세제=우리의 관세율 인하계획 연기를 처음엔 한미 합의사항 불이행의 모델 케이스로 인식했었으나 방위세 폐지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이며 오히려 수입업자에겐 이득이라는 우리측 설명으로 불만의 강도가 다소 낮아진 상태다. 와인 쿨러 주세율 인상에 대해서는 합의문 위반은 아니더라도 합의정신의 일탈로 보고 있다. ▲수입담배 유통판매=일부 지방자치단체 및 담배인삼공사의 판촉 방해 등을 협정의 교묘한 일탈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내고장 담배 피우기」운동이 지방자치제 시행 전초과정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설명은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다. ▲농산물=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한국의 15개 NTC품목 제시등과 관련,한국을 비협조 국가의 선두로 인식하고 있으며 쇠고기 동시입찰 제도의 경우 한국측이 MOU(양해각서) 정신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쇠고기 세미나장폭력사태는 한국경찰의 방관과 언론의 보도기피 등을 들어 한국 정부의 개입가능성을 의심했었다.
  • “한반도 교차승인 필요/남북한 견해차 극복 가능”

    ◎소 프라우다지 논평 【내외】 소련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는 26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남북한간의 관계개선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소,북한과 미일간의 교차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모스크바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프라우다지는 이날 남북대화와 관련한 정치평론가 세올로드 옵치니코프의 글을 통해 한소 수교(9ㆍ30) 및 한중간의 무역대표부 교환설치 합의를 비롯해 △일본ㆍ북한간의 관계정상화 움직임 △미ㆍ북한간의 접촉 등을 지적,그같이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이어 남북대화에 언급,최근 두 차례의 총리급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던 것을 비판하는 여론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남북간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과 그 회담이 계속될 것이라는 합의가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12월 서울에서 있을 3차회담에서는 양측이 『남북관계를 조절시킬 첫 입헌적 문헌으로 될 공동선언을 교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이 신문은 남북한이 각각 「화해」와 「불가침」이라는 용어를 고집하고 있고 선 경제협조 및 문화교류와 선군사적 긴장완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쌍방 제안들이 많은 면에서 유사하므로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제3차 고위급회담에서는 지난 2차회담시 남북한이 제안한 「화해ㆍ협력에 관한 공동선언」과 「상호불가침선언」의 합의점을 도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이 신문은 남북통일은 당사자들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반도 긴장완화가 아ㆍ태지역 안정의 「관건적 요소」중의 하나라고 지적하고 이를 위해 소련은 중ㆍ미ㆍ일과 「신중한 대화」를 할 예정이며 여기에 남북한이 합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가운데 지난해 캐나다에서 제기한 남북한을 포함,미ㆍ소ㆍ일ㆍ중ㆍ가 등이 참여하는 「아ㆍ태지역 안전 및 협조기구」 발족에 지지를 표시하기도 했다.
  • 한ㆍ소 학자,LA타임스에 공동기고(해외논단)

    ◎“「통일한국」,동북아 새질서 이끈다”/“「분단의 인고」 겪어 분쟁조정에 적합/미ㆍ중ㆍ소ㆍ일 제치고 「다자간 협상」 주도” 냉전의 종식과 함께 동아시아의 신질서가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는 최근호에서 이에 관한 분석을 싣고 있다. 노경수 스탠퍼드대 교수와 세르게이 곤차로프 소련 극동문제연구소 중소관계책임연구원이 공동집필한 「새로운 동아시아시대의 개막」이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통일된 남북한이 이 지역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냉전은 소련의 군사ㆍ정치동맹체제의 해체와 함께 끝이 났다. 이에 따라 전세계 미국의 동맹체제도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냉전의 종식이 환영을 받고 있지만 아직 냉전이후 시기가 완전하게 시작되지는 않았다. 헬싱키 선언에 기초를 둔 새로운 안보구조가 구축된 유럽에도 신질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에 관한 우려가 남아 있다. 정세안정에 관한 의문이 유럽에 여전히 남아 있다면 이러한 의문은 냉전으로부터의 탈출을 겪을 다음번 지역인 동아시아에 보다 폭넓게 적용될 것이다. 사실 동아시아에서의 미소대결이 이미 상당한 정도로 줄어든 결과 필연적으로 이 지역의 근본적인 재편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이미 과거 이 지역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미소의 관계개선으로 이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소련은 한국ㆍ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했으며 조만간 일본과도 관계를 정상화하게 될 것이다. 미국도 베트남과의 대화를 시작했으며 캄보디아분쟁이 해결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미소는 또한 이 지역에서 동맹관계를 재정의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소련은 베트남주둔군을 감축했으며 지금은 북한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리해야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미국도 한국ㆍ일본ㆍ필리핀과 같은 이 지역동맹국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숙고해야만 한다. 대체로 동아시아의 역동성은 유익하다. 그러나 현재 이 지역의 많은 국가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새로운 체제에 대한 대안은 없다. 이러한 대안이 없이 현 체제가 계속 허물어진다면 새로운 긴장이 조성될 수도 있다. 가령 일본이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북방 4개섬(쿠릴열도)에 대해 일본과 소련이 합의점에 도달하게 된다면 주일미군에 대한 근거는 상실되어 전후 미일관계가 이뤄진 중심추 가운데 하나가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미일관계의 다른 부문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북한간의 회담이 원만하게 진행될 경우 주한미군에 대한 철수 주장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주도의 동맹체제가 영향을 받는 것에서 파생되는 불확실성은 소련의 포괄적인 지역정책 변화로 생기는 예측불가능한 것과 비교할 경우 높지않다. 예를 들어 줄어든 소련의 지지는 북한이 개혁정책을 추구하도록 이끌 수도 있지만 북한을 극도로 좌절시켜 복수적 파괴적인 행동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미국과 소련이 동아시아국가들과 관계를 맺도록 한 전후군사동맹체제가 계속 적절치 않게 된다면,우리들은 이 지역의 결속과 계속적인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냉전 이후 질서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사라진뒤의 질서를 형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있을 것인가. 지역안보 및 협력에 관한 다자간 협정은 실현가능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냉전의 긴장이 존속하는 한 어떠한 합의도 강대국사이에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나온 것이다. 게다가 이런 대결구도에서는 어떤 국가도 다자간협정을 이끌 조치를 주도할 수 있는 정통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동아시아지역의 미래구조와 어떤 국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지에 관해 문제가 남아있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높은 영향력을 계속 보유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도적인 위치에 남기위해 지불해야하는 비용에 관해 점점 꺼리는 경향이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현재의 위치를 유지할 수는 없다. 일본은 이 지역의 주도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 충분한 경제력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지역의 일부 국가들만이 이미 경제면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이 정치면에서도 세력이 확장되기를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소련이나 중국도 분명히 이 지역에서 역할을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미국과 일본이 이 지역에서 정치ㆍ경제역할을 각각 강화하는 미 일 역할분담론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몹시 불완전하다. 소련과 중국은 이 제안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 지역의 다른 국가들도 미일 역할분담안을 완전히 환영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또한 이러한 아이디어는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이 필요한 현지점에서 볼때 현상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고려하여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강한 통일된 남북한의 국제적인 역할을 생각해 보자. 이 「새로운 국가」가 냉전후 다자간 협정을 창조하는 조치를 주도하는데 필요한 정통성을 갖고 있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남북한은 이 지역의 강대국과 비교해서 다른 국가를 침략한 적도 없으며 간섭한 적도 없다. 통일된 남북한은 아시아 지배를 추구할 위치에 있지 않다. 또한 남북한은 초강대국의 책동으로 야기된 분단을 오랫동안 견디어 왔으며 이 지역의 소국뿐 아니라 대국의 이익을 균형있게 할 수 있는 안정된 협정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통일된 남북한은 이 지역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가질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중요하지 않은 지역세력으로 되지도 않을 것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6천4백만의 인구,강화된 정치ㆍ경제력 그리고 문화적 유사성을 가져올 것이며 발언권은 높이 평가될 것이지만 다른 국가들의 우려를 야기시키지는 않게 될 것이다. 주요 강대국 사이의 대결 결과 분단된 남북한은 상호 협력이 없으면 통일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이 기세는 동아시아의 지역,다자간구조의 형성을 향한 폭넓은 노력을 이끌 수 있다. 그러나 미래는 가능하지만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몇가지 요인들이 이것을 약화시킬 수 있다. 남북한간에 적대적인 분쟁이 재개되면 통일에 대한 전망은 끝장날 것이다. 다른 부정적인 것은 단기적인 이득을 위해 통일과정을 이용하려는 초강대국인 미ㆍ소의 시도로부터 파생될 수 있다. 가령 소련이 남북한을 일본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이용하거나 미국이 이 지역에 군사력 주둔을 유지하기 위해 분단을 연장하려 한다면 남북한의 통일이나 이 지역의 새로운 구조도 일어날 것같지 않다. 최소한 주요 강대국들은 한반도에 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주요 강대국들이 세계의 많은 화약고 가운데 한곳을 단순히 제거하는 것으로 한반도 분단의 종식을 인식해서는 안된다. 강대국들은 남북한의 통일을 동아시아지역에서 신질서를 창조하는 길을 여는 주요 계기로 보아야 한다.
  • 소,“「한반도 2개 국가」인정해야”/북한의 한ㆍ소수교 비난에 반박

    ◎남북한 교차승인 필요성 역설/모스크바방송 【내외】 소련 관영 모스크바방송은 5일 소련이 한국과의 수교로 한반도 분단을 영구화하고 있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문제는 상호 비난하거나 꾸지람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모스크바방송은 한소 수교와 관련한 논평원의 글을 통해 그같이 반박하고 최근 일본의 자민ㆍ사회당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일ㆍ북한간 수교를 위한 회담을 조속한 시일내에 개최할 것을 합의한 점을 상기,『평양은 도쿄가 서울에 아주 가까운 동맹국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한국과 우방인 일본에 관계개선 손짓을 보내는 북한의 양면성을 꼬집었다. 이 방송은 이어 한소간의 국교수립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강조하면서 그 이유로 ▲한국이 극동지방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된 나라에 속한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 ▲지난 2년간 활발해진 한소간의 경협 발전이 수교를 필요로 했다는 점을 들고 이번 양국간의 수교가 『모스크바에도 서울에도유익하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방송은 최근 남북한간 고위급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거론,이것이 「대결에서 대화에로 넘어서는 주요 진일보」라고 논평하는 가운데 남북한간의 건설적 대화를 위해서는 쌍방간의 지혜와 인내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협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교량은 하나의 강 위에만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구상이 모스크바와 베이징ㆍ서울,그리고 워싱턴ㆍ도쿄ㆍ평양이라는 상호승인의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강조,미일과 중소의 남북한 교차승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한ㆍ소 새 출발:3ㆍ끝)

    ◎「하나의 조선」 빗장 풀릴 날 멀지 않다/남방외교 펴려면 「교조」굴레 벗어야/냉각기간 거친 후 대화활성화 예상 한소 수교는 필연적으로 남북 관계개선 및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의 질서를 평화와 안정구도로 재편하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 같다. 그만큼 한소 수교는 「하나의 조선」 논리를 체제근간으로 하고 있는 북한에게는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소 수교는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확실한 계기가 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은 북한의 심각한 「외교적 고립감」으로 연결된다. 더욱이 자신들의 영원한 이념적 맹방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믿었던 중국마저도 이미 영사기능이 부여된 무역사무소를 교환설치하는 데 합의하는 등 빠른 속도로 대한 관계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북한의 이같은 위기감은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 생존시키기 위해서는 냉엄한 국제현실을 직시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찾는 길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및 일본을 비롯한 대서방 진영과의 관계개선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게 남북 문제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일본과의 관계개선 조짐은 11월중에 일ㆍ북한간 수교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하는 등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소 수교는 그러나 단기적으로 남북 관계개선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정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북한으로서는 한소 양국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체제유지 차원에서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측면은 최근의 북한 관영 언론매체의 보도동향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5일자 노동신문에서 「달러로 팔고 사는 외교관계」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한소 수교를 배신이라는 말 이외에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라며 강한 분노감을 표시하면서 『조선의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행동』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소련도 타스통신 등 언론매체를 통해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타스통신은『북한이 지난달 초 사상 최초의 남북총리회담이 열린 이후에도 한반도내 또다른 국가의 존재를 계속 무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 북한외교의 유치성을 통렬히 비판했으며 정치주간지 노보에 브레미야(신시대)는 『대북 우호관계와 김일성 정권 지원은 명확히 구별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소ㆍ북한 관계는 당분간 급속 냉각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더라도 북한은 경제ㆍ군사적으로 대소 의존도가 크다는 점에서 양국간 외교관계를 대사대리급으로 격하시키는 등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오는 16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얻는 것은 기대난이란 지적이 많다. 그러나 한소 수교가 장기적으로 남북 관계개선에 긍정적인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란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북한도 대세를 인정하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 앞에 체제개방과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호의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바탕에서 북한의 대미ㆍ일 접근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남한의 북방외교 결실을 상쇄하고 자신들이 처한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남북 관계는 이같은 동인에 힘입어 남북한 당국간의 직접대화가 실질적으로 진전되는 등 호전될 것으로 판단된다. 미일이 대북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하나같이 남북 대화진전을 요구하고 있는 사실적 측면과 함께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북한측의 발상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남북 관계개선 수준에 발맞춰 북한도 유엔 가입문제에 상당한 가닥을 잡아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의석 공동가입안에 대한 국제적인 냉대 속에 대외적으로는 유연한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아직까지 대남전략에 있어서는 불변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지만 남한의 유엔 가입 분위기가 계속 고양된다면 어쩔 수 없이 유엔 동시가입방안의 합리성을 수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북한은 이같은 현실론을 수용하면서그동안 철옹성의 논리로 지켜왔던 「하나의 조선」정책을 전면 폐기하는 운명을 맞을 것 같다. 이와 관련,지난 85년 취임 이후 한번도 북한에 가지 않았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내년 3,4월쯤 방한하게 될 경우 이는 남북 관계개선의 행보를 보다 빠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남한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이 있고 김일성의 80회 생일과 제8차 노동당전당대회의 개최가 예상되는 오는 92년이 남북 관계개선의 획기적인 분수령이 될 것으로 관측하는 전문가가 많다. 결국 한소 수교는 남북 관계의 실질적인 진전과 한반도 긴장완화 및 평화구도 정착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되며 나아가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인 미ㆍ일ㆍ중ㆍ소에 의한 남북한 교차승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수교 이후 양국 관계 전망(한·소 새 출발:1)

    ◎서울­모스크바 아태 시대의 파트너로/「45년 적대 해소」의 법적 절차 마무리/4강 역학 변화… 동북아 안정에 기여 한소 양국은 「수교 고속도로」를 따라 쾌속 주행하게 됐다. 1일 새벽 유엔본부에서 양국 외무장관이 수교합의 공동코뮈니케에 서명하고 이날부터 즉시 발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전후 45년동안 국제정치적으로나 이념면에서나 적대관계에 있던 한국과 소련은 이날부터 우방으로서 선린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 것이다. 앞으로 한소 관계는 수교라는 기폭제로 인해 정치외교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급진전될 것으로 보이며 점차 가속력을 더해갈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정치외교적으로는 이달중 서울과 모스크바에 대사관을 교환설치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가 11월중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10월 대사관 상호개설→11월 노 대통령의 방소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뒤 이어 내년 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한소 관계는 질주할 것으로 보인다.노 대통령의 방소 정지작업을 위해 최호중 외무장관이 이달 말이나 11월초 모스크바 방문을 고려하고 있으며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앞서 연말이나 내년초 서울을 방문,양국 우호분위기를 더욱 성숙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협력면에서는 이달 26일로 예정된 한소 정부대표단의 2차 서울회담에서 그 대강이 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양국간의 최대 관심사항이었던 경협규모 확정을 비롯,경제교류·협력의 제도적 장치인 투자보장,2중과세방지협정도 체결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수교 발효시기가 당초 소련이 복안으로 가져왔던 「내년 1월1일부터」에서 「코뮈니케 서명 동시 발효」라는 우리의 희망에 부응하게 됨으로써 우리의 대소 경협도 자질구레한 유보없이 우리 능력범위안에서 깨끗하게 타결지을 것 같다. 따라서 한소 양국은 새로운 동반자관계를 구축,한국의 대소 투자·진출,자원공동개발,소비재를 중심으로 한 상품차관,연불수출 등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한소 수교를 양국 관계로서만파악해서는 동북아의 새 질서재편이라는 차원에서 조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갖고 있는 국제정치 역학적 측면을 간과하기 쉽다. 이런 의미에서 한소 수교는 첫째 동북아의 국제정치 구조를 진영체제에서 세력균형체제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는 전후 북한­중국­소련 대 한·미·일이라는 냉전구조 아래의 진영체제를 허물어뜨리는 한편 소련의 남북한 균형정책 구사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동시에 최근 일·북한 관계급진전과 관련시켜 볼 때 이같은 세력균형체제로의 전환은 더욱 뚜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둘째 남북한 관계에 있어 소련은 「각자의 제3국 관계에 결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공동코뮈니케)이라고 명시되어 있듯이 북한과의 기존동맹 관계는 계속 유지하면서도 한국과는 경제협력의 파트너로서의 관계에 중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이 우리와 수교함으로써 소·북한 관계는 내면적으로 상당히 냉각될 것이고 특히 북한의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남북대화에 있어 신경질적인 거부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물론 이는 단기적인 현상일 것으로 생각되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소 수교는 북한에 「두개의 조선」 반대라는 분단고착화 논리의 전면수정을 강요케 할 것이며 또한 남북대화에 진지하게 임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남북한 긴장완화,북한의 개방에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셋째 한중 관계개선과 관련,중국이 북한의 집요한 견제를 한소 수교의 현실화를 빌미로 상당수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대중국 관계개선의 행보가 상당히 빨라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났지만 북한은 한국의 대소 수교라는 북방정책의 최대결실을 상쇄시키기 위해 대일 관계개선을 매우 서둘러 진행시킬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한소 수교는 한반도주변 4강간의 새로운 역학관계 모색의 시발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세력의 일원으로 화려하게 등장하려고 하는 소련으로서는 한소 수교를 징검다리로 해서 내년엔 일본과 북방 영토문제를 타결,아태지역에서의 지분을 확실히 담보해 두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소 수교는 양국 협력관계 기밀화에서부터 동북아의 질서재편 한반도주변국간의 균형모색 등 많은 변화의 요소를 몰고 올 것이 틀림없다. 우리의 북방외교의 궁극목표가 북한의 개방,한반도 평화정착 및 통일조국의 달성에 있다고 할 때 한소 수교가 여기에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주도면밀한 후속조치는 물론 미일 등 기존 우방국과의 관계도 더욱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이경형 기자〉
  • 「하나의 조선」·「배상」등 북한·일 선언 중시

    ◎정부,일에 공식해명 요구/「두개의 조선 반대」 북한 변화여부 주목/유엔 가입·남북대화에 활용/“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선언” 일,비공식통보 정부는 북한·일본간의 조기수교 등 「8개항 공동선언」과 관련,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설명을 듣고 북한의 반응 등을 종합분석한 뒤 필요할 경우 대북·대일·대유엔 정책을 수정,보완키로 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일·북한 접근을 대북 개방 및 남북 관계개선에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관련기사 3면〉 정부는 이에 따라 우선 북한 노동당과 일본의 자민·사회당 등 3당이 합의,발표한 8개항의 공동선언문이 「조선은 하나」 「대북사죄」 「대북배상」 등 3개 부분에 있어 한일간의 사전합의사항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음을 중시,일본 정부에 공식해명을 요구하고 만약 일본정부의 일방적인 대한반도정책 변경으로 판명되면 중대한 외교적 조치를 포함한 대일정책을 수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일본측이 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방북기간중 합의한 공동선언문의 구체적인 사항은 일본정부와 사전에 의견이 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며 조속한 시일내에 북한과 수교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수교 이전에 북한에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것임을 외교채널을 통해 분명히 통보해옴에 따라 성급한 대북배상은 남북대화 활성화 등에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환기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와 함께 북한이 일본과 수교를 제의하는 과정에서 『대일수교 제의는 「두개의 조선반대」라는 기존정책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밝혔다는 일본 당국의 전언에 따라 오는 10월5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유엔가입 문제와 관련한 고위급회담 실무접촉에서 이를 확인,남북한 유엔동시가입 또는 남한 단독가입을 북한이 반대할 이유나 명분이 없음을 분명히할 방침이다. 외무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29일 일본정부의 이같은 북한 입장변화전달과 관련,『5일의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북의 태도를 보면 북한이 실제로 정책을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오는 10월10일의 「조선 노동당 창건 45주년」 기념식에서 북의 성명을 보면 북의 변화여부는 더욱 확연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10월16일 평양에서 열릴 남북고위급 2차 본회담 등에서도 이같은 점을 적시,북한이 두개의 「조선」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기본전제 위에서 남북간 교류와 협력에 적극 호응할 것을 촉구할 방침이다.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일·북한 관계개선이 중장기적으로는 남북한 교차승인,남북 관계개선,북한의 개방에 기여할 것으로 보나 현시점에서의 관계개선 방향이나 속도는 한일간,한미,미일간 긴밀한 사전협의아래 ▲남북대화 촉진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 ▲테러 및 대남적화의사 포기 등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조절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공동선언문」에서 「조선은 하나」라고 표명하면서도 일본과의 조속한 수교를 합의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유엔동시가입 반대,한반도에서의 두개의 실체 불인정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두개의 조선반대」를 포기하는 등 자체모순과 혼란을 빚고 있다고 말하고 5일의 판문점 실무접촉 반응과 10일의 노동당 창당 45주년 기념식상에서의 대외노선전환 여부 등을 지켜본 뒤 남북고위급 평양 2차 본회담에 임하는 우리의 대응전략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이원경 주일 대사로 하여금 10월1일 일본정부 고위인사와 만나 「8개항 공동선언」에 대한 해명을 요구토록 훈령을 내렸다.
  • 북한 외교정책 중대변화의 신호/대일 연락사무소 합의의 저변

    ◎고립ㆍ경제난 탈피 겨냥,「제한공존」모색/“두개의 한국 반대” 기본정책은 그대로/개방폭이 관심사로… 「당대 당」교류 시각도 일본과 북한간에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가 내정됐다는 보도는 북한의 대남 및 외교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일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2개의 한국」을 고정화시킨다는 명분아래 미일과의 외교관계수립을 반대해 왔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대북한 관계개선의 신호를 자주 보냈으나 일ㆍ북한 관계개선이 교차승인으로 연결되는 것을 우려,북한은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던 것이다. 다시 말해 소련과 중국이 한국을 승인하고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승인하는 교차승인이 이뤄지면 남북분단을 영구화시킨다는 논리를 펴왔다. 북한이 이같은 「2개의 한국」반대정책을 수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남북고위급(총리)회담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북한의 총리가 서울을 방문,한국의 총리 및 노태우 대통령과 자리를 같이한 것은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북한 총리가 「총리」라는 공식직함 사용을 극구회피함으로써 아직도 「2개의 한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억지를 부리긴 했으나 그의 서울방문 자체가 한국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하는게 세계의 일치된 분석이다. 북한이 이처럼 「2개의 한국」반대정책을 수정하려는 것은 주변의 정세변화를 더 이상 거역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나온 것 같다. 지난해부터 동구국가들 대부분이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한소수교가 임박했는가 하면 한중관계도 북경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크게 진전될 전망이다. 이같은 사태진전을 저지할만한 힘이 북한에는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더이상 외교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나는게 바람직스럽다는 생각에서 평양과 도쿄내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를 검토하기에 이른 것 같다. 이같은 외교적 고립감 탈출외에도 그들의 경제난 타개를 위해서도 일본과의 관계수립이 절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경제적 격차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다 그들의 가장 믿을만한 무역파트너였던 소련이 지금까지의 바터무역을 지양,석유공급대금 등 무역거래에서 경화지불을 요구하고 있다. 소련마저 이제 북한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수립 대가로 과거 한일 국교수립때의 청구권자금과 같은 원조와 경제협력을 기대하고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북한은 이미 통신위성 사용과 평양직행 전세기 운항,일본인 여권에 명기된 「북한제외」문구 삭제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측 입장에서도 북한문제는 전후 일본 외교의 마지막장으로 남아 있는 부문이다. 북한과의 관계수립은 일본의 전방위외교를 사실상 완성시키는 셈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이번 기회에 지난 7년동안 끌어온 현안문제인 후지산호 선원 석방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이밖에도 일본은 과거 대 중국 관계개선에서 미국에 뒤져 큰 충격을 받았던 사실에 비추어 미국 등 서방제국에 한발앞서 제한적이나마 접촉창구를 마련함으로써 대 북한외교의 이니셔티브를 잡고 싶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일본을 비롯한 서방국들에 어느 정도의 폭으로 문호를 개방할 것이냐는 점이다. 연락사무소 설치문제만 해도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북한을 공식 방문하는 가네마루 신(금환신) 전부총리가 처음으로 거론하고 나섰으나 북한측은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으며 가네마루의 방북에 앞서 사전절충을 위해 지난 4일 방북하고 돌아온 이시이 하지메(석정일) 자민당 외교조사회장도 이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었다. 이같은 상황으로 미루어 북한은 현재로선 일본을 포함한 서방국들과 「제한적인 공존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총리를 서울에 파견했으나 한국총리를 총리라고 부르기를 꺼렸던 점이나 최근 평양을 방문한 일본 학자들에게 북한의 노동당 간부가 『우리들은 아시아의 일원으로 지역국가들과의 관계를 앞으로 중시해 나가고 싶다』고 밝힌점 등에 비추어 서방측과 관계는 개선하되 「두개의 한국」반대정책을 근본적으로 뒤엎지는 않는 범위내에서 제한적인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간 연락사무소가 아닌 일 민자당과 북한 노동당간의 연락사무소와 같은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보다 확실한 윤곽은 가네마루씨의 방북 결과를 지켜봐야할 것 같다.
  • 일본 대표단의 북한방문(사설)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부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자민·사회 양당의 일본 대표단이 24일부터 닷새동안 평양을 방문,북한·일본간의 관계개선을 모색한다. 북한이 일본 대표단의 입국을 허락한 것은 한반도분단이래 사실상 단절상태를 지속해온 대일관계가 정상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사태진전을 예의 주시코자 한다. 일본 대표단의 방북은 최근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일본에 대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강력 촉구했고 소련 또한 27일 뉴욕에서 수교를 위해 한소 외무장관회담을 열기로 한 동시성을 감안할 때 관심의 도를 더욱 깊게 하는 것이다. 일본정부와의 접촉을 거부해온 북한이 집권당의 실력자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북한의 태도변화를 읽게 하는 것이다. 더욱이 가네마루 전부총리는 과거 식민지배를 사죄하는 가이후(해부준수)총리의 친서를 김일성주석에게 전달할 방침으로 있어 이번 방문단의 무게를 점치게 하고 있다. 북한의 일본방문단 허용은 국제적인 고립과 국내경제악화로부터의 탈출구를 일본에서찾아보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은 한국과 동유럽제국의 국교수립,한소접근 등에 따라 정권수립이후 최대의 국제적 궁지에 몰려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강화,미일과의 관계개선,한국과의 정부수준대화 등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일,대미교섭은 자신이 반대해온 「교체접촉(승인)」에 어긋난다는 딜레마를 던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자기모순에서 헤어나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다. 미국은 핵개발 의혹,테러행위 중지 보장을 앞세워 대북한 접촉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소련은 한국과의 수교방침을 통고하는등 북한으로서는 일본을 우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여기에다 경제가 심각하리 만큼 악화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대표단은 북한방문중 최대현안인 「후지산호」 처리문제를 비롯해 집권당인 자민당과 로동당간의 공식접촉을 통해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표명과 이를 계기로 관계개선을 위한 정부간 협의 개시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려 할 것이 예상된다. 북한의 지적대로 쌍방간에는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일본 여권의 「북한제외조항삭제」,대일 채무처리 등 해결을 필요로 하는 난제가 수두룩하다. 가네마루씨의 북한방문을 앞두고 일본 외무성의 고위당국자는 『일본대표단의 북한 공식방문계획은 한국정부의 양해를 얻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일본의 대북한접근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한반도에 긴장완화를 가져올 수 있는 국제정세변화의 일환으로 보고 이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 북한의 접촉이 우리 정부와 소련,한국과 중국간의 접근에 균형을 맞추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본의 자칫 아시아권의 강대국으로서 이 지역에서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쥐어야겠다는 지나친 욕구로 북한과의 관계설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한일간의 기존관계에 해를 끼쳐서는 결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북한은 대일접근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는 한편 남북한관계에도보다 적극성을 띠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 「무차별 개방」압력… 「우루과이 라운드」 파장

    ◎연내 타결될 「UR협상」의 영향 점검/2중곡가제ㆍ영농자금 지원 철폐 불가피/금융ㆍ건설ㆍ서비스업 선진국에 넘어갈 판/섬유부문 잘 활용하면 수출촉진 기폭제 될수도 국내시장이 무차별개방의 위기에 직면했다. 새로운 국제무역 헌법이 될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타결시한이 올 연말까지 불과 5개월 앞으로 성큼 다가옴에 따라 이 협상결과가 우리나라에 미칠 대내외적인 파장이 심히 우려되고 있다. 현 추세대로 UR협상이 타결될 경우 개방원칙에 따라 농산물수입에 비관세장벽등 아무런 규제방법을 쓸 수 없게 되며 쌀ㆍ보리의 2중곡가제같은 농가지원정책이 폐지된다. 백화점에는 수입농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농민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할지 모른다. 또 은행 증권 항공 법무 보건 엔지니어링 관광 정보 통신 회계 세무 광고 해운 건설 등 아직 자생력이 취약한 국내 서비스시장의 대폭적인 개방도 불가피 하다. ○다각적 대비책 절실 예를들면 내년부터 국내 석유시장이 개방될 경우 중동산유국과 석유메이저들이 국내시장에 대거 들어와 주유소를 외국인들이 경영하거나 은행ㆍ증권ㆍ보험 등 모든 금융시장에서도 압도적인 경쟁력우위에 서 있는 미국과 유럽은행들이 국내은행들을 제치고 국내 금융계를 지배할 것이 분명하다. 이밖에 우편배달을 외국인 회사가 대행하거나 심지어는 외국인의사의 개업까지 보장해줘야 하는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정부가 18일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주재로 이승윤부총리를 비롯한 경제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례적으로 UR협상대책회의를 열고 15개 협상분야별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은 UR협상 타결시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이 이처럼 엄청나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응방안은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 대한 국내경제정책의 재조정과 선진국에 대한 건설진출 활성화 등 수출증진에 모아지고 있다. 각 분야의 시장개방으로 일부 국내 산업분야에 타격이 예상되고 있는 반면 협상결과가 국가간 통상마찰을 완화하는 유리한 측면도 크기 때문에 UR협상타결에 따른 긍정ㆍ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다각적인 대처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협상이 끝날 경우 한국은 국제무역에서 일단선진국 대우를받게 됨으로써 이제까지 개도국으로서 누려온 온갖 혜택이 사라지며 무역장벽의 철폐를 통해 재화 및 서비스시장의 대폭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특히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만반의 대비가 요구되고 있다. UR통상협상은 올들어 미국ㆍEC(유럽공동체) 등 선진국들의 주도로 급진전,이들의 공세적입장이 한국등 개도국들의 수세적인 입장과 맞물려 현재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확실 올연말까지 새로운 무역규범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국제무역질서가 혼란에 빠진다는 선진국들의 강박관념이 7월말까지 15개 분야별 협정초안을 만들어 내고 12월초 예정인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각료회의까지 최종합의를 끝낸다는 스케줄에 따라 막바지 의견조정에 각국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아직 국가간의 이해차이로 연내 일괄타결 가능성은 미지수이나 고삐를 쥔 선진국들의 대응태도로 보아 15개 전체분야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이 타결되고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각 분야별로 협상진전상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이 보다 확실해진다. 농산물협상은 거의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다. ○농산물 생산 치명타 농산물교역자유화,국내보조금감축 등 미국의 주장을 전폭 수용한 드류농산물그룹의장의 합의초안이 채택될 경우 ▲쌀ㆍ보리의 2중가격제,영농자금지원,양념류수매비축제 등 기존 농업지원대책의 철폐가 불가피하고 ▲농어촌 발전종합을 수입해야 하는등 국내 농산물 생산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대책을 축소ㆍ조정해야 하며 ▲현재 수입되지 않고 있는 품목도 일정량 서비스부문의 금융분야는 선진국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분야이다. 선진금융기법을 갖고 있는 미국ㆍ유럽은행들로서는 국내은행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면 뛰어난 경영기법으로 국내금융시장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분야는 도로ㆍ교량ㆍ건축물 등 일반토목공사는 국내업체들이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개방해도 크게 문제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고속전철ㆍ해저터널 등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등은 국내기술수준이 떨어져 미일등 선진업체들의 시장독점이 예상된다. ○건설분야 문제없어 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호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섬유부문은 잘만 활용하면 수입증가 이상의 수출증대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무역질서도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이다. UR협상자체가 상품부문에서 경쟁력을 잃은 미국등 선진국들이 자신들이 우위에 있는 서비스시장의 개방을 강요하면서 시작됐으나 우리나라는 정부나 업계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나 협상력이 미흡,UR협상에 대해 소극적 대응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국제교역규모 12위의 국가로서 UR협상을 피할 수 없으며 UR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늦게나마 변화하는 교역환경에의 순발력이 요구된다. ◎분야별 대응방안/쌀ㆍ콩 등 개방대상서 빠지게 주력 농산물/경쟁력 높일 산업구조 조정 추진 섬유/외국기관 국내진출 단계적 허용 금융/시장개방 촉진,수출 활성화 부축 건설/첨단기술 제품 개발,수출에 역점 통신 ▷농산물◁ 정부는 수입개방에 따른 보완대책에 보다 철저를 기하고 개별품목에 대한 가격안정대 유지 등 보조정책보다 농촌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복지정책에 우선을 두기로 했다. 이에 따라 농어민 연금제를 도입하고 생계비 및 학비지원을 확대하며 정주생활권 개발 등에 주력하기로 했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오는 97년까지의 수입개방 유예기간안에 농업구조 개선대책을 1차적으로 완결할 방침이다. 또 농산물 수입급증에 따른 국내 농업보호를 겨냥,산업피해 구제제도를 보다 활용하고 관세율 체계를 개편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농산물 수입자유화에 대비해 대국민 홍보도 강화하기로 했다. 한편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농업개발도상국으로서 구조조정에 필요한 장기유예기간의 확보와 농업보조정책의 범위를 확대하는데 힘을 쏟기로 했다. 또 쌀ㆍ콩 등 주요 농산물을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농산물 수입국들과 공동노력을 펼 계획이다. ▷섬유◁ 앞으로 협상결과,개발도상국이 주장하는 섬유협정의 점진적인 철폐안과 미국의 총량쿼타제도중 어느 것이 채택되더라도 세계 섬유교역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국내 산업구조 조정을 조속히 추진키로 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섬유수출국이며 섬유의 지난해 수출실적이 1백51억달러로 전체수출의 28%을 차지하는 주요 수출산업인 까닭에 섬유산업구조개선 7개년 계획 등을 착실히 추진키로 했다. 더욱이 우리 섬유수출은 후발개발도상국의 추격으로 타격이 심해질 것으로 전망,생산기술의 혁신과 디자인ㆍ패션의 향상 등으로 제품을 고급화시켜 국제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금융◁ 취약한 개발도상국입장이 협정내용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른 개도국들과 공동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앞으로 구체적인 자유화계획의 협상에는 그동안 추진해온 쌍무협상의 경험을 살려 우리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외국금융기관의 국내진출ㆍ국내영업규제의 완화 등을 단계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추진키로 했다. 이와 함께 이미 발표한 자본시장자유화계획을 예정대로 차질없이 추진하되 국내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ㆍ연구기관ㆍ학계가 공동으로 금융산업별 실무대책반을 구성,운영하고 금년말까지 장단기대책을 수립할 방침이다. ▷건설◁ 국내건설산업을 보호ㆍ육성하고 대외적으로 외화 가득원으로서의 건설수출산업을 활성화한다는 기본전략아래 건설분야에 대한 시장개방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일본ㆍ미국 등 선진국시장에 진출할 경우 장애요소인 기능인력의 이동제한과 외국업체를 배제시키는 관행을 제거,건설수출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또 국내시장의 개방에 따른 외국시공업체와 선진기술용역이 국내에 진출할 것에 대비,건설업체 참가자격기준을 강화하고 종합건설업면허제도ㆍ기술경쟁제도ㆍ기술보상제도 등을 도입키로 했다. ▷통신◁ 개방원칙에는 적극적 자세를 견지하되 시행은 점진적으로 하는 중도적 입장에서 협상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미국ㆍECㆍ일본 등 이해관계국들과 사전협의와 이견조정을 통해 이 협상과 한미 통신협안을 해결할 계획이다. 국내산업을 보호ㆍ육성키 위해서는 통신산업을 구조조정을 통해 고도화하고 전자교환기등 국제경쟁력이 있는 통신기기 및 서비스의 대개도국 수출을 추진키로 했다. ◎우루과이 라운드/내년부터 적용될 새 세계무역규범 우루과이라운드(Uruguay Round)란 세계무역에 있어서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규범을 새로운 무역환경의 변화에 알맞도록 개정하기 위해 GATT회원국들이 벌이고 있는 다자간 무역협상을 말한다. 지난 86년 남미 우루과이의 푼타델에스테시에서 열렸던 각료회의에서 협상시작이 공식 선언됐기 때문에 우루과이라운드라는 명칭이 붙었다. 우루과이라운드는 지난 79년 동경라운드를 대신해 앞으로 90년대 및 2천년대에 적용될 세계무역규범이 된다. 우루과이라운드는 GATT체제아래서 자유경제원칙에 입각,유지해 온 세계무역질서가 80년대에 들어와 각국간 무역불균형의 심화로 신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하는등 GATT의 분쟁조정능력이 약화되고,국제무역에서 서비스ㆍ지적 소유권 등 새로운 분야가 크게 부각돼 다자간 무역협상을 통해 새로운 국제무역질서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추진됐다. 이에 따라GATT회원국들은 올 연말까지 최종합의에 도달,내년 1월부터는 우루과이라운드를 정식 출범시킨다는 계획아래 상품교역에 관한 14개의 의제와 서비스교역 등 총15개의 협상의제를 놓고 협상을 진행중이다.
  • 미­일 「구조조정」 통상질서의 변화 부른다

    ◎양국 합의이후 대한파장 점검/일 시장 넓어져 무역역조 개선 기대/미의 시장개방 압력 가중될 우려도 일본의 무역흑자를 둘러싸고 미일간의 최대경제 현안이었던 경제구조조정협상이 타결됨으로써 국제적인 통상질서에 새로운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80년대들어 대미흑자를 누려온 우리나라로서는 당장은 아니지만 현재의 흑자기조가 계속될 경우 미국으로부터 일본에 이어 구조조정협상 대상국이 될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미일구조조정 결과는 미묘한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미일 구조조정협상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일 경상수지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추진되어 왔다. 일본의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은 사상 유례없이 일본경제 내부의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빼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공공투자를 대폭 확대키로 한 이번 협상결과를 통해 미국은 일단 일본의 콧대를 꺾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대해 일본내에서는 『미국이 다른 나라에 공공투자를 어느정도로 하라고 하는 등 예산편성권에까지 관여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며 내심 불만을 나타내고 있어 앞으로 양국간 합의사항의 준수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선진7개국(G7) 정상회담에서 미일 구조조정협의를 갖기로 합의한 이래 도쿄와 워싱턴을 번갈아가며 지난달 28일까지 1년동안 계속된 협상에서 미일양국은 일본측이 앞으로 10년동안 공공사업부문에 4백30조엔(약 2조8천억달러)을 투자하는 한편 특허심사기간도 5년안에 24개월(현행 평균 37개월)로 단축키로 합의했다. 양국은 또 ▲총리직속의 수입협의회 창설 ▲수입수속기간을 원칙적으로 24시간 이내로 단축 ▲독점금지법 운용가이드 라인작성 ▲대일투자촉진을 위한 규제완화 등에 합의했다. 이밖에 미일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위해 일본측이 「경상수지흑자를 줄이기 위해 더한층 노력한다」는 내용을 최종보고서에 명시했다. 일본측으로서는 자국의 예산투입비율을 통상문제와 결부시켜 결정한 만큼 이를 치욕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나 미국측은 아직 승리를 선언할 때가 아니라며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미국측은 이번 합의로 양국간 무역불균형 문제가 즉각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일본이 구조적인 흑자체질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수출치중」에서 「내수진작」쪽으로 일본경제의 기조를 바꾸기로 약속했으나 좀더 지켜봐야 된다는게 미국측의 분위기다. 일본측은 공공투자액을 4백30조엔으로 할 경우 2000년에는 지금보다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2백억∼3백억달러정도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엔고를 경쟁력향상과 내수시장 활성화로 극복한 일본이 앞으로 공공투자증대를 오히려 경쟁력기반을 확대하는 쪽으로 연결시킨다면 무역불균형문제는 쉽게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느 관측도 많다. 더욱이 공공투자외의 합의사항은 대부분 일본사회 고유의 전통과 관행에 관한 것이어서 문서상의 합의에도 불구,단기간내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번 미일 구조조정협상 결과는 통상면에서 이들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 명암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대일무역 역조가 날로 심화되고 있는 한국은 일본이 공공투자를 확대하면 그만큼 대일시장 진출기회가 넓어진다. 국제정부조달협정에 이미 가입한 일본은 공공투자 확대때 자동적으로일정비율 이상의 투자를 외국기업에 맡겨야 하므로 건설업체를 비롯한 한국기업들이 일본에 진출할 수 있는 문호가 크게 열릴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대일 수입감소와 함께 상당부분의 대일 무역적자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미국이 일본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구조조정협의를 요구해올 경우 우리나라는 큰 곤경에 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대미무역 흑자폭이 점차 줄어들어 무역적자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최근 소비재수입규제를 둘러싼 한미간의 논란,지적 소유권 보호법령의 정비문제 같은 한미간의 통상과제를 염두에 둘때 미국측 시각에서는 이것이 구조적인 쟁점으로 비화될 여지가 전혀 없지않다. 경제규모나 대외적 영향력에 있어 한국은 아직 일본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의 입장은 못된다. 때문에 한미간 통상마찰이 조만간 양국의 구조조정 협의차원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별로 없으나 이제 세계적인 무역관행이 남의 나라의 예산편성에까지 관여하는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미일구조조정 협상 결과는 통상당국이 타산지석으로 인식해야 할것이다.
  • 미ㆍ일 무역협상 타결/일,공공부문 4백30조엔 투자키로

    【도쿄 교도 AP 로이터 연합】 난항을 거듭하며 지난 1년여를 끌어온 미일 무역구조(SII)협상이 28일 도쿄에서 속개된 제5차협상 4일째 회동에서 일측이 향후 10년동안 공공사업부문에 4백30조엔을 투자키로 하는등 극적양보를 보임으로써 막바지 단계에서 힘겹게 타결됐다. 최종합의내용은 아직 공표되지 않고 있으나 협상 참석자들은 양측이 특허문제를 포함,경상수지불균형을 시정키 위한 세부적인 부문까지 완전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회의 소식통들은 당초 예정된 일정을 이틀이나 넘기면서 진행된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향후 10년간 공공사업투자규모를 5백조엔으로 늘릴 것을 요구,4백15조엔선을 제시한 일측과 대립했으나 27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일본총리가 4백30조엔으로 양보함으로써 타결의 실마리가 잡혔다고 말했다.
  • 전쟁의 발발과 전개(새 실록 6ㆍ25 김학준:중)

    ◎“북한 남침은 소의 적화음모”… 미,1주만에 파병/중국,유엔군 38선 넘자 16개사단 급파/소선 항공ㆍ기갑사단 만주에 전진배치/7월에 대전서 새 한ㆍ미협정… 군지휘권 유엔군에 넘겨(서울신문 6.25 40주 특집) 한국전쟁은 전쟁의 국면의 전개양상에 따라 5개의 기간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제1기는 50년 6월25일부터 50년 9월 중순까지의 시기로,남침을 개시한 북한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대구와 부산 일대를 제외한 남한 전역을 석권했던 시기이다. 제2기는 50년 9월 중순부터 50년 10월 하순까지의 시기로,국제연합군의 인천 상륙작전의 극적인 성공을 계기로 국련군이 반격을 계속해 한ㆍ만 국경으로까지 접근함으로써 북한정권이 붕괴 직전까지 이르렀던 시기이다. 제3기는 50년 10월 하순으로부터 51년 4월 초순까지로,중공군이 개입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국련군이 다시 후퇴하던 시기이다. 제4기는 51년 4월 초순부터 51년 6월 중순까지로,국련군이 「대량보복」을 통해 전투의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여 군사적 균형을 이룬시기이다. 제5기는 51년 6월 중순부터 53년 7월27일까지의 시기로,전쟁과 함께 휴전회담이 진행된 화전양상의 시기이다. 이번의 제2회에서는 제1기부터 제3기까지를 다룬다. ○3일만에 서울점령 ▷제1기◁ 50년 1∼2월 이후 38도선 주변에서 소규모의 군사력 충돌을 계속 일으켜오던 북한은 6월25일 새벽 드디어 전면남침을 개시했다. 북한의 공격은 빨라 6월27일 서울의 외곽인 창동과 미아리에 방어선을 설정한 한국군을 붕괴시켰다. 이에 따라 이 날짜로 육군본부는 수원으로 후퇴했고 정부는 대전으로 천도했다. 6월28일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했다. 그런데 북한군은 서울 점령 3일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데,이 3일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남한을 살려 준 귀중한 시간이었다. 북한군이 남침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한 여세로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남한으로서는 최악의 상태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북한군의 기습에 대한 놀라움 속에서도 트루먼 미국대통령은 즉각적인 응전을 결심했다. 북한의 남침을 소련의 세계적화 시도의 일환으로 보았으며,직접적으로는 미일 군사안보체제에의 대항조치로 인식하여 한반도가 공산화하는 경우 그것이 일본의 국내정치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곧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해 긴급회의의 소집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6월25일 일요일 하오 3시에 열린 안보리에서 미국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 「무력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하고 그 「무력공격」은 「평화파괴행위」라고 비난한 다음 북한군이 즉각적으로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군사력을 38도선 이북으로 철퇴시킬 것을 요청했다. 미국의 제안은 9대0으로 가결됐다. 때마침 소련 대표는 장기결석중이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안보리의 결의는 북한의 군사행동을 정지시킴에 있어 아무런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하여 6월27일 안보리는 『군사공격을 격퇴하고 그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제공할 것』을 결의했다. 이와 더불어 트루먼은 도쿄의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해ㆍ공군의 지원을 개시하라고 명령하고,미 제7함대로 하여금 중공군이 대만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동시에 대만의 장개석정부가 중국 본토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조처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6월30일 트루먼은 맥아더 총사령관에게 ①해ㆍ공군뿐만 아니라 지상군을 투입할 권한과 ②군사상 필요한 경우에는 38도선 이북의 군사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튿날 주일 미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가 부산에 상륙함으로써 미 지상군의 개입이 시작됐다. 바로 이날 안보리는 국제연합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국제연합 회원국들의 무력원조를 미국의 단일지휘 아래 둔다는 내용의 공동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노르웨이 출신의 국제연합 사무총장 트리그브리는 국제연합기를 미국에 전달했으며 트루먼은 즉시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를 국련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미국의 단호하고 신속한 결정은 대한민국을 크게 고무시켰다. 비록 남침에 쫓겨 피난길에 들어선 형편이지만 국련군의 반격으로 오히려 통일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6월29일 맥아더가한강전선을 시찰하고 곧바로 수원에 내려왔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협력을 약속했다. 실제로 7월14일 대전에서 맺은 협정을 통해 이대통령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위임했다. 이어 7월19일 이대통령은 『국련군의 작전목표가 전전원상의 회복,즉 38도선에서의 진격정지에 그쳐서는 안되며 북진통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트루먼에게 전달했다. 한미간의 이러한 협력속에서도 전세는 계속 불리해 후퇴에 후퇴를 거듭 했다. 그리하여 맥아더는 한때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손을 떼고 한국정부를 괌이나 하와이로 후퇴시킨다는 계획마저 세웠다. 이대통령은 분노속에 강경하게 거절했다. 마침 9월5일부터 13일까지 경주와 영천일대의 사활을 건 전투에서 국련군은 북한군 제15사단을 궤멸시켰다. 국련군의 반격이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이 비로소 형성된 것이다. ○소대사가 대화 제의 ▷제2기◁ 국련군 반격의 결정적 계기는 확실히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었다. 9월12일 극비리에 부산을 출발한 2백61척의 대수송선단은 9월15일 인천항에서의 작전개시와 동시에 곧바로 인천시 남부에 상륙했다. 북한군은 2개 사단병력으로 서울방위사령부를 편성했으나 한국군의 해병대가 9월27일에,이어 국련군이 9월28일에 서울을 완전히 수복했다. 이에 따라 9월29일 이대통령은 맥아더와 함께 공로로 서울에 도착하여 서울을 대한민국정부의 관할아래 넘기는 수도 탈환식에 참석했다. 국련군의 성공적인 반격이 확고해지면서 서방진영 및 중립국가들의 일각에서는 전전원상의 회복이라는 조건아래 즉 북한군을 38도선 이북으로 철퇴시키는 조건아래 국제연합군의 진격을 멈추게 하고 이 테두리 안에서 한국전쟁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제기됐다. 8월1일 안보리의 의장이 되는 것을 계기로 삼아 안보리에 복귀한 소련대사 말리크도 남북한 대표를 국제연합에 동시 초청하여 한반도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의했다. ○북한에 “항복”요구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확고하여 북한정권의 완전한 붕괴,즉 대한민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만이 국련군의 목표임을 선언했다. 대한민국 정부도 『38도선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선언하면서 국련군의 북진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강조했다. 이때 서방 7개국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공동결의안을 제출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무력을 써서라도 국련군의 주도 아래 한반도를 통일시킨다는 태도를 밝혔다. 그러나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해도 좋다는 최종적인 결정은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10월1일 우선 한국군은 드디어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했다. 이튿날 맥아더는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어서도 좋다는 미국정부의 최종결정을 한국정부에 알리면서 북한정권의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국련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해도 좋다는 서방의 공동결의안이 아직 국련을 통과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국련군의 38도선 북상을 막으려는 공산진영 외교적 노력이 시도됐다. ○주은래 “방관 않겠다” 우선 중국 총리겸 외무장관 주은래는 10월2일 깊은 밤에 주중 인도대사 파니카르를 외무부로 불러 『만일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는 경우 중국은 조선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그러나 한국군만이 38도선을 넘는 경우 중국은 그러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니카르대사는 주의 발언을 본국정부에 즉시 알렸으며,인도정부는 그대로 미국정부에 알렸다. 트루먼은 주의 발언이 국련군 북상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련을 협박하려는 「대담한 시도」로 판단하여 그것을 무시했다. 이에 따라 국련은 10월7일 국련군의 38도선 북상을 허용하는 서방쪽의 공동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여기에 근거해 국련군은 7∼8일 드디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기 시작했다. 이제 중국이 주사위를 던질 차례가 되었다. 10월10일 주은래는 『조선전쟁은 처음부터 중국의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다』고 규정하고 이 전쟁에서 『중국인민은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주의 이 선언은 중국의 모든 유력지들에 보도되었는데 그것은 중국의 참전에 대비하여 중국인민들을 동원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되었다. 이처럼 중국의 참전 가능성이 커지자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트루먼은 10월5일 태평양의 웨이크도로 맥아더를 불렀다. 회담에서 맥아더는 중국의 참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 이 무렵 국련군의 북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북한군이 곳곳에서 무너지자 김일성은 10월12일 스탈린에게 소련의 지원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 그러나 소련은 미국과의 직접적 대결을 피하려는 자세만 보일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김일성은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던 10월16일 새벽 2시 소련제 고급승용차 볼가를 타고 평양을 빠져 나가 10월26일 만주와의 접경지대인 평양북도 강계군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이날 이대통령은 원산시에 그 모습을 나타내 열광적인 원산시민들을 격려했다. 이어 10월30일 평양을 방문하고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공산당을 몰아내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고 호소했다. ○스탈린,중국에 찬사 ▷제3기◁ 이 무렵 중국의 군사적 개입이 극비리에 시작되고 있었다. 국련군의 38도선 북상을 허용한 서방결의안이 10월7일 국련총회를 통과하자 모택동 중국공산당 주석은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팽덕회을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마침 북한으로부터 파병을 요청하는 밀사들이 와 있었으며 그리하여 팽은 10월13일 북한으로 들어가 김일성을 만난 뒤 전투에 참가하여 전황을 살핀다음 그 결과를 모에게 보고했다. 그때로부터 엿새뒤 중국군은 마침내 은밀하게 압록강을 건넜다. 중국이 참전을 최종 결정하던 어느 시점에 스탈린은 『김일성동지는 장래 중국 국경 안에 망명정부를 세울 것』이라고 모에게 알리면서 이처럼 위급한 상태에 빠진 북한정권을 구출하려던 중국이 적어도 6개 사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중국은 일단 행동을 개시한 뒤 16개 사단을 출동시켰다. 중국쪽 설명에 따르면 중국의 이러한 결정을 보고 『처음에는 우리들을 민족주의자가 아닌가 의심했던 스탈린은 눈물을 흘리며 우리들이 가장 좋은 동지임을 인정했다』 중국군의 개입을 전혀 모르는 채 한국군은 10월25일 마침내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했고 미 제24사단은 북한의 임시수도 신의주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은눈앞에 닥쳐온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날에 있었던 한국군과 중국군의 첫 교전은 상황을 완전히 바꾸었다. 맥아더는 11월5일 중국군의 참전을 국련에 보고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중국군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한국전쟁은 국련군 총사령관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 국련과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정치수뇌급에서 해결책이 제시돼야 할 전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중국 외무부도 11월11일 중국군의 참전을 공개적으로 처음 시인했다. 이와 더불어 중국군은 대대적인 공격을 취하면서 계속 남쪽으로 쳐내려 왔다. 이때로부터 약 2개월 동안 미군은 미군의 역사상 가장 장기의 후퇴를 경험하게 되었다. ○영서 종전모색 제의 그 결과 중국군은 12월26일 38도선을 넘고 12월말까지 38도선 이북의 북한 전역을 점령하고 51년 1월4일에는 서울을 점령했다. 이에 따라 국련군은 평양철수(12월4일 완료)와 흥남철수(12월24일 완료) 및 서울철수(1ㆍ4후퇴)를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만주에 소련의 1개 항공사단이 배치되어 북한군과 중국군의 배후를 지원했고,전투상황의 악화에 대비하여 5개 기갑사단을 북한에 파견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군이 개입하면서 서방세계의 일각에서는 휴전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미 중국을 승인한 영국은 국련 대표권을 대만에 줄 것이 아니라 중국에 준뒤 중국과 종전을 모색하자고 제의했으며,애틀리 총리는 12월4일 워싱턴에서 트루먼과 회담한 뒤 『두나라는 협상을 통해 종전을 추구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여기에 발맞춰 아시아ㆍ아랍권 13개국도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국련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미국 안의 반공분위기는 매우 높아 하원과 상원은 각각 51년 1월19일과 1월23일 국련이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련의 휴전 분위기에 실망하던 한국 정부는 다시한번 무력통일에 대한 기대를 걸게 됐다. 북한은 북한대로 다시 한번 적화통일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출된 김일성은 12월4일 강계군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회의를 열고 「미제의 완전한 축출」을 다짐했다. 이와 동시에 무정을 비롯한 주요한 도전자들을 숙청했다.
  • 강총리 국정보고

    ◎범죄예방 대책등 마련,민생치안 확립/수출 증가세… 하반기 흑자전환 예상/미ㆍ일등과 통상협력에 외교노력 강화 탈이념과 민주화의 세기적 변혁의 물결을 멀지않아 한반도 북녘땅에도 밀려올 것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지난 6월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나아가 조국의 통일을 한걸음 더 앞당기는 실로 소중한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같은 외교적 성과는 제6공화국 출범과 더불어 추진해온 북방정책과 자주외교가 거둔 최대의 결실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한소 양국의 정상은 한반도의 안정을 이루기 휘한 북한개방에 관한 노력,그리고 경제협력 및 교류확대 등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었다. 정부는 조속한 시일안에 후속조치를 마련해 나가는 한편 한소간의 관계개선이 한반도 통일여건을 조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외교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인적ㆍ물적 교류가 증대되고 있는 중국과도 관계개선을 적극 도모하는 등북방외교를 폭넓게 추진해 나갈 것이다. 정부는 소련등 북방제국과의 관계개선이 결코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북한이 개방사회로 나와 통일이 될때까지 우리와 함께 번영을 추구하는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금 이시각까지 남북간의 공존공영과 상호신뢰 구축을 위한 실제적이며 생산적인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방제국과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기존 우방과의 우호협력 증진은 한반도의 평화정착뿐 아니라 우리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주한미군문제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제를 위한 방위전력에 큰 변동이 없는 범위안에서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변화에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고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과거사문제를 마무리짓고 이를 양국간에 새로운 선린우호시대를 열어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 정부는 앞으로 미일등 기존 우방과의 진정한 동반협력관계를 가일층심화시켜 나가는 한편 통상협력ㆍ기술이전등 주요현안의 타결을 위해서도 최대한의 외교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우리 스스로 개척한 국운용성의 호기를 살려 21세기의 국가번영과 민족통일로 연결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공적인 외교와 발전하는 내치를 연계,조화시키고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국정운영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 정부는 앞으로 획기적인 민생치안력 제고를 위해 92년까지 모두 2만여명의 경찰관을 증원하여 인력과 장비를 일선지ㆍ파출소 중심으로 배치하고 주민방범신고망을 확대하는 등 총체적 방법활동을 전개해 민생침해사범을 집중 단속해 나가는 한편 범죄의 예방과 억제에도 최선을 다해나갈 것이다. 특히 폭력과 방화로 인명을 위협하고 시설을 파괴할 우려가 있는 노사분규와 학원시위에 대해서는 적기에 공권력을 투입할 것이며 화염병 사용 등 폭력시위자는 끝까지 추적,검거해 나갈 것이다. 우리 경제는 1ㆍ4분기중 산업생산과 투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제성장률이 두자리 숫자를 나타내고 산업현장과 학원가가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으며 이같은 조짐들은 북방외교의 커다란 성과와 함께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한층 밝게 해주고 있다. 수출은 4월부터 증가세를 보이고,수입도 5월현재 지난해 증가속도보다 다소 둔화됨에 따라 무역수지적자는 1ㆍ4분기중 월평균 3억2천말달러 수준에서 4월에는 9천말달러 선으로 축소됐으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경우 하반기부터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가격도 최근 거래가 거의 없는 가운데 안정추세를 보이고 있다. 자금흐름도 건전한 방향으로 정상화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경제는 하반기이후부터는 다시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6월들어서도 물가불안이 지속되고 있어 정부는 앞으로 경제운용의 최우선순위를 물가안정에 두고 안정기조를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고자 한다. 6공출범이후 정부는 자율과 책임이 조화되는 민주주의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법제개선 노력을 계속해 2백24건의 법률개선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신장과 공정한 선거제도 확립,언론자유창달과 사법부의 독립,건전한 노조활동보장등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법제도의 공간을 마련한 바 있다. 이와관련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지방의회의원 선거법개정안」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안」 「남북교류에 관한 특별법안」 「국가보안법개정안」 등 주요 법안들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되기를 희망한다.
  • 북한이 도발 포기땐 대미접촉 지원 용의/최외무 밝혀

    최호중외무부장관은 15일 『정부는 오는 9월 북경아시안게임이 한중 관계개선의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히고 『정부는 이를위해 현재 중국측과 다각적인 접촉을 계속하고 있으나 영사기능을 갖는 무역사무소 교환개설등과 같은 구체적인 방안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장관은 『정부는 한반도 긴장완화및 남북통일여건조성을 위해 북한과 미일 등 우리 우방국간의 관계개선을 적극지원할 용의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북한측이 대남무력 적화통일 노선의 명시적 포기등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불변된 입장』이라고 밝혀 북한측의 대남무력 적화통일 노선포기및 핵안전조치협정 가입등이 남북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임을 명백히했다.
  • 한ㆍ소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역학」진단(전문가 좌담)

    ◎“한반도 긴장완화의 「지렛대」본격 작동”/크렘린,「두개의 코리아」사실상 인정한 셈/중국도 장기적으로 북한개방 유도할 듯/평양,대소의존 높아 「단절」어려울 듯/미군철수 겨냥… 전략차원서 대미접근 가능성/한ㆍ소발전은 서울ㆍ북경 개선의 촉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통해 수교원칙이 합의됨에 따라 양국관계는 급격히 개선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도 큰 변화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특히 한소정상회담을 격렬히 비난해온 북한이 이같은 사태변화에 어떻게 대처해 갈지,과연 북한도 개혁ㆍ개방정책을 추진해 갈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으며 북한­중국­소련의 북방3각관계가 어떻게 변모해갈지도 궁금하다. 이같은 문제들을 풀어보기 위해 신승권(한양대ㆍ소련정치) 박두복(외교안보연구원ㆍ중국정치) 윤병익교수(통일연수원ㆍ북한정치)의 좌담을 마련했다. □참석자 신승권교수 박두복교수 윤병익교수 ▲신승권교수=한소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관계의 급진전과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한국과의 수교원칙에 합의한 소련측의 결정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금년 3월 이전까지는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한미군사동맹 관계를 인정하면서 한반도에서의 1코리아(1Korea) 정책을 고수한다는 것이 소련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소간의 정치ㆍ경제ㆍ문화교류를 발전시킬 뿐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대남관계를 개선토록 하고 개방과 개혁의 방향으로 압력을 가하는 2코리아(2Korea) 정책을 펴나갈 것이다. 한국과 관계개선은 하되 국교정상화까지는 가지 않겠다고 북한측에 다짐했던 소련이 금년들어 학자와 언론인 등을 통해 김일성체제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근본적인 정책변화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박두복교수=한소관계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한중관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중소분쟁 완화이후 한소ㆍ한중관계는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 상승적인 작용을 해왔다.우리 정부의 북방정책도 이런 대전제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체제유지에 한계성 ▲윤병익교수=북한도 소련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입장을 표시할 수는 있지만 구조적으로 군사ㆍ경제면에서 대소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소련의 정책을 인정 내지 묵인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북한과 소련관계가 단절되면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무기공급이나 수리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고 한소수교와 국제화해 및 한반도 정세변화 상황을 나름대로 대남정책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2코리아 정책으로 입장을 바꾼다면 북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조선정권과 대한민국자체를 부인하는 등의 대남전략 기본속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한반도의 평화정착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등의 군사문제 타개책을 내세울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군축과 신뢰회복,외국군의 단계적 철수를 들고 나온 것은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여러면에서 체제유지에 한계가 있다. ▲박교수=중국은 대북한관계에 있어서 소련보다는 많은 제한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련은 분단극복과제를 안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정책을 펴나가는데 있어서 자유롭고 고르바초프 등 지도자들이 2차대전 당시 징집연령에 이르지 않았던 혁명 3세대로 실용주의적 가치체계를 갖고 있으며 군사ㆍ경제적으로 북한에 대해 확고한 제재수단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대만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중국」 (1 China)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에 한반도정책에 있어서도 행동반경이 좁고 등소평을 비롯한 실세지도층이 혁명 1세대들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한국을 인정하게 되면 결국 2코리아 정책을 받아들이는 꼴이 돼 1차이나원칙과 배치되는 모순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의 북방정책방향도 중국보다 행동반경이 넓은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함으로써 한중 관계발전의 자극요인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교수=소련은 정치개혁면에서는 중국에 앞서 있지만 경제개혁면에서는 훨씬 뒤져있다. 중국은 실용주의 경제노선에 착수한지 오래고 소련은 이제서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소간의 경제발전 경쟁과 협력이 이뤄져 북한에 개혁개방압력을 가하면 북한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73년이란 가장 오래된 공산주의국가 소련에서 경제가 엉망이 됐고 동구권이 붕괴한 것을 보고도 북한이 계속 통제경제를 추진하는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선택놓고 고심예상 ▲윤교수=올가을 북경 아시안게임에 노대통령이 방문하는등 중국과 접촉할 경우 한중 관계개선을 통해 중국의 1코리아정책에 중대한 변화합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도 결국 남북한 평화공존모델로 갈 수 밖에 없는데 1코리아정책에서 2코리아정책으로 전환해야 하는 정책선택의 어려운 단계에 와 있다. ▲박교수=천안문사태와 동구민주개혁이후 중국의 정치상황은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다. 이같은 급진적 변화가 중국공산당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정책결정과정에서 이데올로기요인이 부각되고 현실주의적 목소리가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체제에 대한 인식도 이데올로기 요인에포함된다. 그러나 이는 외적변화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다. 중국도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체제변화와 개혁을 유도하는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한소관계가 한중관계발전으로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리한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 중국사람들을 만나보면 한중관계는 한소관계진전보다 반발짝 늦게 따라간다고 얘기한다. ▲신교수=중국과 소련이 라이벌입장이긴 하지만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한반도긴장완화와 군축문제에 있어서 한소관계가 정상화돼야 한중관계도 이를 구실삼아 북한의 비판을 받지않고 부드럽게 정상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견해를 같이 할 것이다. 중소관계도 냉각관계를 뛰어넘어 뭔가 진전을 봐야할 것이며 작년 중소정상회담에서 뭔가 합의를 보지 않았겠는가. ▲윤교수=중국은 천안문사태이전까지는 정경분리원칙에 입각,2코리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위에서나마 한국과 상당한 경제접근이 있었다. 그러나 천안문사태 이후 상황이 달라져 북한과 밀착되는 징후를 보였다. 그에 비해 소련은 86년 블라디보스토크선언을 통해 아시아국의 일원임을 자처한 이래 88올림픽직전 글라스노야르스크선언에서 남북한을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는 등 사실상 2코리아정책으로 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소련매스컴이 김일성을 소련군대위출신으로 소규모 빨치산을 이끈데 지나지 않으며 6ㆍ25가 남침전쟁이라고 폭로한 것은 김일성위상격하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소국교수립상태까지 가면 평화공존은 「2개의 조선」을 조작하려는 책동이라는 입장의 북한의 1코리아정책은 수정될 수 밖에 없고 이같은 기본논리의 와해는 북한체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박교수=북한의 1코리아정책은 유한성을 띤 시간문제다. 1코리아정책은 국제사회의 대결논리시대의 산물로서 이제 국제적인 데탕트의 물결이 한반도에까지 투영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남북교류가 불가피하고 서로 정치실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은 진실성을 갖고 군축문제에 임해야 하며 1코리아 정책으로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대남강경노선을 평화공존노선으로 전환하기 위해 체제변화가 불가피하다. 북한이 단기적으로는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은 동구의 변혁이 김일성체제를 위협,오히려 더욱 경직화되고 이념을 강조하겠지만 이는 외부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일 뿐이다. 김일성이 거의 80세가 다된 만큼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정치ㆍ경제개방을 촉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교수=김일성 사망이후 획기적인 계기가 있을 수 있고 김정일집권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경제개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낙관할 수 있다. 북한이 석유ㆍ원자력 등 자원면에서 소련에 의존하고 있고 전력ㆍ식량난 등 경제사정이 워낙 어렵다. 소련은 지난 84년 체르넨코서기장시절 김일성의 소련방문 당시 원자력발전소 설치를 약속했지만 체르노빌 사건이후 소극적으로 변해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건립자체를 주저하고 있다. ○소련ㆍ북한 갈등 예상 ▲박교수=소련이 탈스탈린화 하는데 북한이 스탈린주의를 고수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소련과 북한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겠지만 북한의 경제ㆍ군사 구조상 지탱하는데 한계가 있다. 중국도 소련보다 먼저 탈스탈린화에 나섰기 때문에 중소가 동시에 변혁을 추진하고 이 변혁이 상호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도 천안문사태 이전에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중국이 현재는 위축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의 개방정책으로 인한 빈부계층과 지역갈등의 해결을 통한 국민일치감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합리화보다 정치개혁이 더 쉬운 방법이다. 중국이 난국을 슬기롭게 해결,개혁과 개방정책으로 회귀하지 못한다면 한소관계발전은 오히려 중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교수=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중국에서 배운 것이다. 만일 페레스트로이카가 없었다면 중소분쟁이 심화됐을 것이나 양국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소관계도 진전될 것이다. 박교수는 중국이 사회혼란 극복문제때문에 잠정적으로 위축돼 있다고 했는데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중단할 수 없는 단계에와있다. ▲박교수=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중국의 개혁ㆍ개방정책이 2단계로 접어든다면 중소 관계발전은 북한체제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교수=현재 소련만이 북한에 개방압력을 가해도 시간문제인데 중국까지 압력에 가세한다면 북한은 그야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중국과 소련처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부개혁 서둘러야 ▲윤교수=모든 문제는 결국 북한의 변화가능성문제로 귀착된다. 대외개방정책면에서 북한은 중국처럼 대외개방경제를 추진하되 주체사상논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조총련계기업을 받아들이는 등 변명을 추진하려할 것이다. 김일성이 지난 84년 소련과 동구를 돌아보고 이들의 경제발전상에 쇼크를 받은뒤 중국을 본받아 합영법을 실시했으나 서방자본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 중국이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시장경제를 부분 도입한데 반해 북한은 시장경제도입을 꺼리기 때문에 국내경제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은 대내적개방의 바탕위에서 대외개방을 추진,조화를 이룰 수 있으나 북한은 국내변화는 도외시한 채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라는 식의 교조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박교수=유물변증론에서 봐도 외적요인은 내적요인과 연관지어서만 움직일 뿐이다. 북한에서도 국가최우선 목표를 계급투쟁에서 생산력발전으로 전환시키는 내적변화가 있어야 진정한 군축과 평화공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사상과 현대화개념이 대립됐었으나 모사망후 현대화론 노선화가 이뤄졌다. 북한에도 김일성사망후 주체사상수정을 통해 78년이후의 중국이 치른 과정이 있어야 한다. ▲윤교수=현재로서는 북한의 대외경제개혁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개혁은 물론 정치개혁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원민주체제가 일반적 추세인데도 북한은 김부자세습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1당독재체제의 변형인 주체사상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대내개혁이 안되기 때문에 대남정책의 변혁도 어려운 것이다.최근까지 몇차례 남북대화를 했지만 북한의 남조선해방인민민주주의 통일전선전략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기 때문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신교수=소련이 지금까지는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을 주저해 왔다. 북한이 내부개혁을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국과 함께 설득하는 색다른 방법을 들고 나올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철두철미한 통제사회라 해도 차우셰스쿠정권처럼 밑으로 부터 붕괴되지 않으려면 정권유지차원에서라도 지금같은 스탈린체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소련이 김일성사망후 차기정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겠지만 소련이 루마니아처럼 북한에도 개입할지는 알 수 없다. 소련이 전세계 천연가스생산량의 40%,석유 20%,목재 40% 등 엄청난 자원을 갖고 있는데도 미일학자들이 고르바초프가 곧 쓰러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는 공산주의가 망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85년에 비해 요즘은 모든 물건이 비싸며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일을 잘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의욕고취요인이 없기 때문에 서방세계에서 1시간이면 할 일을 3∼4시간 동안 하고 시설마저 낙후돼 있어 근본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은 프로레타리아 룸펜기질이 몸에 배 있는 것이다. 소련도 그런 상황인데 석유한방울 안나는 북한에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폐쇄경제」날로 악화 ▲윤교수=북한은 주체적방식에 의해 자립적 사회주의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물질대신 정신적인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있다. 요즘은 잘 안되니까 물질인센티브를 병행하고 있지만. 북한이 자립경제를 한다고 나서는데 대해 소련의 타스통신은 북한기간산업 70여개가 소련에 의해 건설됐고 기술자도 소련에서 배워간 것 아니냐고 폭로하기도 했다. 북한경제의 특징은 군인력을 포함한 노동력동원을 통한 경제건설이다. 경제가 어려운데도 정치선전목적을 위한 전시효과를 노려 1백5층짜리 유경호텔까지 짓고 경영능력이 없어 싱가포르인에게 운영을 맡기기도 했다. 북한에서 4년간 농업지도를 하다 얼마전 일본으로 돌아온 조총련계농업전문가에 따르면 심각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일성의 발상으로 경사도45도까지의 산을 소위 다락밭으로 만들어 옥수수를 심도록 했는데 산을 전부 깎고나니 여름에 홍수가 지고 산사태가 나 논에까지 토사가 쌓이는 바람에 대부분의 논까지 버렸다고 한다. 세계농업기술 수준에서 인정받지 못할 비과학적인 방법을 주체적발상이란 미명아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비능률성에다 주체적발상까지 겹쳐 북한경제의 한계를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박교수=한소관계 발전이 북한을 고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리더십의 특성상 중국과 북한이 관계를 강화할 수 밖에 없으며 고립화 방향이 아닐 경우 북한이 미일등 서방과 관계개선하는 방향으로 진전돼 한소관계 발전이 한중관계,나아가서는 남북한관계에 유리한 여건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윤교수=한소수교때문에 북한이 미일과 접근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 북한이 미군유해송환등 화해제스처를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의 목표는 미국과 수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ㆍ미국간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대남전략차원에서의 대미접근일 뿐이다. 한소수교원칙합의를 계기로 대남전략에 변화를 보인다면 한국정부를 승인하고 대화하며 동서독식 평화공존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통일을 원하는 대내외적 갈망분위기를 활용,군사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선전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인 전망이고 장기적으로는 여러가지 변화요인에 의해 압박을 받게돼 결국 우리의 정책노선에 응해올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된다.
  • 「신 데탕트의 축」 유럽서 동북아로/한­소 정상회담 결산

    ◎한반도 대결구조 청산의 새 이정표 세워/민관협의체 통한 경제교류 급진전 예상 한반도 탈냉전의 기폭제가 터졌다. 동구와 유럽을 풍미해온 화해와 협력의 기류가 드디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은 양국 수교합의에는 물론 동북아와 한반도에서의 냉전체제의 대결종식,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공동 노력키로 합의한 것이다. 한소 정상회담의 성과는 크게 보아 ▲한소수교 및 양국정상의 상호교환방문 합의 ▲동북아 평화구도구축 공동노력 ▲남북한 관계개선 협력 ▲양국 경제협력가속화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우선 전후 45년간 한반도 분단과 6·25의 북한측 후견자로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어온 소련의 정상과 한국대통령의 만남자체가 이미 관계정상화를 기정사실화한 것이지만 이날 두 대통령이 마주 앉아 『멀지않는 장래에 완전한 수교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함으로써 양국 수교문제는 이제 초읽기에 돌입한 것으로 생각된다.노·고르비회담이 양국수교의 구체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양국정부대표단이 곧 실무협의를 갖도록 합의한 이상 빠르면 7월중에라도 양국 외무장관간의 회담이 모스크바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교절차협의가 가속화된다면 오는 가을에는 한소 두나라가 대사급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양국정상이 「상호 적절한 시기에 때가 되면」 서울과 모스크바를 방문키로 다짐함에 따라 가을 수교→노대통령의 연말 방소→고르바초프대통령의 내년 상반기 방한이라는 관계당국자의 예상일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두 대통령이 『개방과 화해의 물결이 이제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미쳐야 한다』는 인식아래 냉전종식,평화정착에 공동노력키로 한 것은 양국 정상회담이 단순히 양자 관계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뉴 데탕트의 축을 유럽에서 이제는 동북아로 옮겨 놓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과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이번 한소 정상회담이 미소 정상회담에 뒤이어 태평양연안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고 다시 한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는 3각 연쇄회담인 점을 상기해 본다면 그 의미는 대단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또 동북아 냉전구조의 핵심이 바로 북한의 폐쇄주의에 기인하고 있는 현실과 소련정상의 이같은 공동노력을 교차시켜 보면 한반도및 동북아에 있어 앞으로 전개될 기류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노대통령에게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해 소련이 어떤 기여를 해야하느냐』고 스스로 물은 대목은 바로 북한의 개방을 위해 소련이 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의지의 우회적인 표현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물음에 거침없이 남북정상회담수락종용,북한의 개혁·개방지원,무력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남북간에 평화정착이 이뤄지도록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소련은 북한에 대해 많은 「지렛대」를 갖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항공기 등 고도정밀무기체제가 모두 소련에 의존하고 있고,석유의 대부분을 역시 소련측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대외교역량,외채의 80%가 소련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의 대북설득은 북한수뇌부가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소 정상회담 직전 평양측이 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남북한 군축안을 제의한 것은 바로 북한이 얼마나 소련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가하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노대통령이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북한의 고립화를 원치 않고 소·북한협력관계발전을 기대하며 남북한이 협력의 동반자가 돼야한다고 밝힌 것은 바로 「대 평양메시지」로서 소련이 자신의 동맹국인 북한에 대해 노대통령과 한국정부의 솔직하고 진지한 입장을 가식없이 전달토록한 것이다. 서울­평양의 직선통행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서울­모스크바­평양이라는 우회통행을 통해서라도 냉전의 대결을 종식시켜야한다는 우리 북방정책의 목표가 이번에 극명하게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소 양국의 경제협력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급진전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지금까지 민간차원에서 운영되어왔던 양국경제협의체를 양국정부및 경제계로 혼합구성되는 민관경제협의체로 끌어올리기로 함에 따라 경제교류는 가속력이 붙게 될것이다. 이날 회담에서 「지리적 근접성과 상호의존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경제협력증진을 강조한 것은 시베리아 공동개발이라든가 한국의 소비제품공급·생산기술과 소련의 우주·항공등 첨단과학기술및 기초과학의 상호협력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양국경제협력을 사실상 정부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은 한국의 대소경협촉진에 장애가 되어오던 투지보장협정,2중과세방지협정등 제도적 장치의 미비가 수교와 함께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30억∼40억달러 규모의 대소경협문제는 이번에 직접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양국 경제협력의 심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협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정상의 첫 대좌는 동북아 냉전구조의 핵심고리인 한반도의 탈냉전은 물론 한·중국관계의 개선,미일의 대북한 관계진전의 물꼬를 트게할 것이라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정착선언으로 평가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