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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수회담 성급하게 추진 안할것/趙世衡 대행의 정국 구상

    ◎야,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면 정계개편 불필요/선거법 여야간 합의된 사항만 우선 처리 희망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이 모처럼 자신의 정국구상을 털어놓았다.앞뒤가 꽉 막힌 ‘경색정국’의 돌파해법은 물론 정가의 화두가 되버린 ‘정계개편’에 대한 생각을 전달했다.15일 청와대 주례회동을 전후로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趙대행으로서 통합선거법 합의 무산에 대해 강경한 톤으로 한나라당을 비판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정당간 연합공천 금지 명문화와 기초단체장 임명제전환 문제 등을 거론하며 “지방자치제의 전면전 후퇴를 가져오는 사안이기 때문에 협상의 대상이 될수가 없다”고 일축했다.이어 “국민여망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개혁입법을 수포로 돌린다면 국민적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발끈했다. 趙대행은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선거법 협상의 돌파구로서 ‘분리처리’방안을 제시했다.“우리의 모든 개혁구상이 반영되는 것이 좋겠지만 안되면 여야가 합의한 사안만이라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한다”는 입장이다.이날청와대 주례회동에서 金大中 대통령도 趙대행의 분리처리 해법을 수용했다.‘최선이 안되면 차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 정치인의 모습이다. 정가의 화두가 되버린 ‘정계개편’에 대해선 “야당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면 정계개편의 필요성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며 우회적 수사를 이용했다.역으로 풀이한다면 이런 상태에서는 정계개편의 시기가 상당히 앞당겨질수도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여야 영수회담에 대해선 ‘당분간 불가’를 재확인했다.趙대행은이날 청와대 보고를 마치고 “金대통령은 국회 사태를 전제로 성급하게 영수회담을 열 뜻은 없다”고 전했다.“선거법 문제를 마무리한 뒤 정상적인 정국상황을 놓고 대화를 해야 할 것”며 영수회담의 방향을 제시했다. 지방선거의 공명선거 실천 의지도 피력했다.이날 趙대행은 주례회동에서 권력 중립과 흑색선전,지역감정 선동의 엄단을 건의했고 金대통령도 “지방선거에서 공명선거를 훼손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다.
  • 유전성 작은키/陳東奎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교수(전문의 건강칼럼)

    키가 어느 정도까지 부모의 영향을 받는지 명확한 답은 없다.일반적으로 부모 키의 중간 정도에,남녀에 따라 일부 가감함으로써 예상되는 최종 성인키를 나타낼 수도 있다.골연령(뼈의 나이) 그리고 다른 내분비 호르몬의 조절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을 포함시키기도 한다.어쨌든 부모의 키는 아이의 키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최근 IMF한파로 자녀의 키가 작다고 해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일부 줄어들기는 했으나 10여년전에 비하면 아주 많아졌다. 같은 또래의 옆집 아이는 키가 쑥쑥 크고 자기 집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차이가 난다 싶으면 부모로선 한 번쯤 병원을 찾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더욱이 시대가 변해서 미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담하고 예쁘장한 여인에서 점차 키가 큰 여성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특히 키가 작은 여아들은 본인이 졸라 병원을 찾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저신장 혹은 성장부전이란 증상은 같은 또래 같은 성별의 키를 기준으로 할 때 100명중 3번째 이하로 키가 작고 연간 성장속도가 4㎝이하인 것을말한다.부모의 영향이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이 키가 작거나 체질적으로 늦게 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러나 약 20% 정도는 만성질환이나 내분비적인 문제,염색체 이상 등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키가 아주 작아질 수도 있으므로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소아 내분비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의 주임무인 셈이다. 만일 특별한 이유 없이 키가 작은 아이로 진단되면 무엇보다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굳이 나폴레옹을 들지 않더라도 진정한 위인은 정신세계의 ‘키’가 큰 사람이다.작은키 때문에 열등감을 가질 게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 장점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키우도록 격려해 주는 부모와 의료진의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 약한 자들에 대한 모성적 연민/안일순씨 단편소설집 ‘과천미인’

    ◎리얼리즘 문학 가능성 보여준 13편 수록 기지촌 매매춘의 실태를 고발한 현장소설 ‘뺏벌’로 화제를 모았던 중견작가 안일순씨(43)가 단편소설집 ‘과천미인’(초당)을 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데 남다른 관심을 쏟아온 그의 소설은 늘 ‘진짜인간’의 생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번 작품집에서도 그는 풍부한 이야기성을 바탕으로 어떠한 기교나 미학적 장치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 있는 인간의 참모습을 찾는 데 몰두한다. 수록작품은 약한 것들에 대한 모성적 연민과 육친적 동질성을 그린 ‘과천미인’을 비롯,지난 시대 군사문화의 폭압성을 고발한 ‘광담패설(狂談悖說)’,반공 이데올로기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삶을 턱이 없는 이매탈에 비유한 ‘이매’,제도교육의 허상을 지적한 ‘개장수’,현대사의 사각지대에 머물러온 빨치산에 대한 자리매김을 시도한‘소설속의 그 여자,김춘희’ 등 13편. 작가는 개인의 가족사에서부터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 이르기까지 잔뿌리를 내리고 있는 억압적 현실의 면면을 남김없이 포착해낸다.그만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다가서려는 작가의 노력은 정직하다. 의미없는 자기해체와 정체성의 위기에 처한 오늘의 우리 문단풍토에서 그의 작품은 새로운 리얼리즘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작가적 자의식 또한 신선한 데가 있다.
  • 태권도 IMF 격파 나섰다/‘종주국 한국 순례’ 관광상품 개발

    ◎유럽·미주지역 400여명 예약 마쳐/해외 사범들은 외화송금운동 동참 태권도가 경제를 살린다.‘IMF(국제통화기금)시대’를 맞아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태권도 사범들이 태권도 관광상품의 세일즈에 나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관광객 송출에 앞장, 외화벌이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특히 이들 해외 지도사범들은 국내의 어려운 외환사정을 감안,국내로 외화송금운동을 벌여 따뜻한 조국애를 발휘하고 있는것.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프랑크푸르트 지사와 다린여행사와 공동으로 ‘태권도의 발상지를 찾아서’라는 관광상품을 개발했다.12박13일 일정의 이 상품은 세계 태권도의 총본산인 ‘국기원’을 방문,태권도 품세 및 대련 등을 익히고 용인 한국민속촌,경주 등 관광지를 견학하는 것으로 1천998마르크(한화 1백80여만원)에 판매되고 있다.현재까지의 모객 상황에 따르면 다음달 2일 베를린 장두환 사범이 20명을 이끌고 서울로 들어오는 것을 비롯 모두 9개팀 200여명이 오는 9월까지 태권도 종주국 순례에 나선다. 관광공사 상품개발처 申相龍 과장은 “태권도 방한상품이 태권도 견학과 한국 전통관광이 연계돼 현지인들의 관심이 높다”며 “특히 원화가 절하된데다 여행경비를 저렴하게 하기 위해 현지 태권도 사범이 직접 상품홍보 및 모객에 나선 탓인지 구미인들도 극동관광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申과장은 “앞으로 뉴욕,시카고,LA,토론토 등 미주지사를 통해서도 판촉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라며 “올 여름 미주지역에서는 200여명의 태권도 성지순례단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관광공사는 다음달 독일 태권도장을 순회,한국관광설명회를 실시하고 관광공사 사장배 독일 태권도 대회(8월중),영국 여행사 대상 태권도 상품 개발설명회(5월)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판촉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한편 25일 세계태권도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세계태권도가족 외화송금운동을 실시한 이후 현재까지 ‘세계 태권도 가족’예금계좌에는 36만여달러가 입금됐다.
  • 부드러움의 묘미/김형근 판화전

    사랑과 이상을 주된 이미지로 택해 서정적인 작업에 치중해오고 있는 서양화가 김형근 초대전이 청작화랑(25일∼4월4일)과 코아트갤러리(24일∼4월30일)에서 열린다. 이번 초대전은 김화백 특유의 부드러운 색채와 선의 묘미가 판화로 살아나는 근작들을 모아 보여주는 자리.청작화랑에서는 동판·석판화 20점을 보여주고 코아트갤러리에서는 비슷한 분위기의 판화작품 13점과 유화 4점을 소개한다. 종전 유화에서 흔히 등장한 미인상을 비롯해 동자·꽃·봉황·백마·해와달 등 설화적인 분위기의 작품에 나타나는 소재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들이다.판화의 세밀한 기술적인 묘미를 살리면서 수채화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기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 임오군란/풍악 탐닉 왕비… 배곯은 오영군 궐기(비록 남가몽:3)

    ◎배우­기생들 매일 궁중에 불러 가무/하늘도 노하여 가뭄에 화적떼 들끓어/백성들은 곤궁하고 국고는 탕진되니/녹봉 밀린 5천여 구식군은 마침내… 고종과 대원군,그리고 민비(뒤의 명성황후).이 세 사람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한국 근대사의 주제는 망국이다.아무리 그 과정이 좋았다 하더라도결과가 망국이었다면 그 역사는 망국사가 되는 것이다.따라서 이 세인물이 얼마나 나라 망치는데 기여하였느냐 하는 혹독한 역사의 책임문제가 당연히 뒤따르게 된다.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게 되겠지만 역사의 책임이란 것은 한 두 사람이 질 문제가 아니다.그렇다고 당대의 모든 국민이 질 문제도 아니다.따라서 특정 다수인이 책임자로 비판받고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다. 민비는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처가 쪽에서 조심스럽게 며느리감으로 고른 규수였으나 불과 7년만에 이 규수에게 시아버지가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으니 두고 두고 후세의 교훈이 되고 있다. ○16세때 왕비 간택돼 입궐 민비는 고종보다 한 살 연상인 1851년생이다.나이는 비록 한 살 위였지만 그 머리와 책략은 10년쯤 위였다.민비의 외모에 대해서는 미인이다,아니다 하는 양론이 있지만 아직 확인할 길은 없다.민비가 왕비로 간택되어 입궐한 것이 1866년 나이 16세때 일이었는데,원자를 낳는데 무려 8년이나 걸렸다.1874년에 가서 겨우 순종을 낳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그때 빈궁 이씨가 먼저 낳은 왕자가 이미 일곱살이나 되었으니 민비로서는 얼마나 조마조마하였는지 일각이 여삼추였다. 그러나 민비에게 있어 원자의 탄생보다 더한 일은 1874년(갑술) 거의 때를 같이하여 대원군을 대궐에서 몰아낸 일이었다.권불십년이라 했듯이 흥선대원군은 집권한지 꼭 10년만에 하야했고 그 뒤에는 민비가 대원군을 대신하여 근대사의 가장 중요한 20년간의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민비에 대해서는 허다한 일화가 남아 있으나 풍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남가몽’ 이외에 그리 많지 않다.요즘말로 민비는 노래방을 좋아했던 것이다. “상감(고종)이 갑자년(1864)에 즉위한 뒤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까지 19년동안곤궁(민비)은 음악을 지나치게 좋아하시어 배우들을 궁중에 데려다가 노래 부르게 하고 기생들로 하여금 묘기를 부리게 하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그러니 그 상으로 하사한 금품이 수를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이 때문에 백성은 극도로 곤궁해지고 국고는 탕진되어 바닥이 드러났다.그러나 배우들은 배가 불러 죽을 지경이었고 군인들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궁중에서는 비록 태평세월이라 할 수 있었겠으나 민간은 만신창이가 된 빈사의 세상이었다.이 때를 당하여 ‘하늘의 경고(천경)’가 여러번 나타나고 인심이 흩어졌으니 무슨 변란인들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에는 몹시 가물어 논의 벼가 말라죽고 고을마다 화적떼가 들끓었다.그래서 이것을 천경,즉 하늘의 경고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하루는 고삐 풀린 말이 궁궐 안에 뛰어드는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하필이면 이런 때 섣부른 군제개혁을 단행하여 신식군대를 창설하고,구식군대는 5영에서 2영으로 감축하였으니 정리해고당한 구식군대는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더욱이 봉급을 여덟달치나 지급하지 않았으니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그것도 모르고 민비는 배우와 가수들을 궁중에 불러들여 연일 풍악을 즐기고 있었다. ○고삐 풀린 말이 궁궐로 “한 마리 개가 짖으면 두 마리 개가 따라 짖는 법이고 일시에 짖어대면 천백마리가 떼를 지어 짖어대는 법이다.한 사람의 군졸이 주동하여 일어나면 두 사람의 군졸이 제창하여 일어나고 일시에 제창하고 일어나면 5천명의 군졸이 호응하여 일어나게 된다.원래 5영의 군인수는 5천772명이었다.이와 같은 다수의 군중이 들고 일어나면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군료를 여러달 지급받지 못한 군사들의 분통과 원망이 쌓여 동심동력으로 일시에 들고 일어나니 고함지르는 소리와 하나로 합친 형세가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과 같고 비가 거꾸로 쏟아 퍼부어지는 듯했으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지는 것과도 같았다.” 민비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매천야록’에도 약간 언급되어 나오니 사실인 것 같고 군인들이 궁궐을 향해 돌진하면서 곤궁을 내놓으라고 소리질렀으니 임오군란의 책임 소재가 민비와 민씨 일족에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그러니 임오군란이 일어난 원인중의 하나로 민비의 유흥 취미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병사들이 먼저 선혜청에 들어가 불을 지르니 이때 선혜청의 당상관인 김보현은 당번을 서다가 변을 당했다.탄환이 비오듯 쏟아져서 불길이 하늘을 찌르는데,가련한 김보현은 별안간 이 급작스런 난을 당하여 달아날 곳을 알지 못하고 동분서주,정신을 잃더니 마침내 화염 속에서 타죽었다.아! 슬프도다.어찌 일찍이 기미를 알아차려 퇴청하지 않았는가.이 또한 그칠 곳을 알지 못하여 최선을 다하다가 그런 것이라 하겠다.병사들은 또한 성 안과 밖을 막론하고 권세있는 집이라면 누구할 것 없이 불지르고 총을 쏘았다.그러면서 궁궐 안을 향해 달려들었으니 천지가 솥끓듯 하고 강산이 우뢰소리로 진동하였다.” ○8척 장신 등에 업혀 탈출 사실 김보현의 죽음은 이보다 더 비참하였다.김보현이 병사에게 잡혀 계단 아래 넘어졌을 때,병사들이 창으로 김보현의 입을 찔렀다.그러자 김보현은 이를악물고 창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병사는 당초 죽일 생각이 없었으므로 창을 빼려 했는데 김보현이 끝까지 창끝을 문채 놓아주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찔러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곤궁께서는 크게 놀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어찌해야 할지 알지를 못했다.드디어 옷을 갈아입고 대궐을 빠져나와 어두컴컴한 마을로 달아났다.나라의 운명이 어지러워 어찌할 수 없는 이 때에 어디선지 8척 장신의 사나이가 홀연 나타나더니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위험이 눈앞에 닥쳐왔사오니 황송하오나 빨리 저의 등에 업히소서’ 하고 두번 세번 독촉하였다.경황이 없는지라 누구인지도 모르고 곤궁이 사나이의 등에 업혀 수구문 밖으로 나갔다.이때는 아직 날이 밝지 않았었다.가까스로 가마 한 대를 불러와서 타고 숭례문을 빠져나가 곧바로 남태령 고개를 향해 한강가로 나갔다.” 이 사건은 민비가 첫번째 당하는 변란이었고 그 뒤 10여년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 토종 피아노교본 나왔다/‘개인 및 그룹지도를 위한 피아노 입문’

    ◎테크닉 위주 탈피 우리 전통가락도 실어 피아노 학원 문턱을 넘자마자 처음 배우는 것이 ‘바이엘’첫째줄의 ‘도레도레도’.그날부터 아이들은 피아노가 무슨 재미인지도 모른채 악보 틀리지 않고 읽기에만 눈을 부릅뜬다.그렇게 너나없이 ‘피아노 타이피스트’로 굳어간다. 이화여대 음악연구소가 개원1주년을 맞아 내놓은 ‘개인 및 그룹 지도를 위한 피아노 입문’(도서출판 금호문화 간)은 이렇게 빼앗긴 ‘피아노 치는 재미’를 돌려주기 위한 책.음악학자,음악교육학자,피아니스트 등 30여명이 달라붙어 만들어낸 초급용 대안교재다.음악대학 비전공자들 피아노수업용으로 개발했지만 바이엘 3분의 1쯤 친 초심자 교육용으로도 그만.‘토종’ 피아노 교본이 나온 것은 거의 유례없는 일이다. “베스틴,알프렛도 등 외국 대안교재들은 로열티가 비싸 책값 부담이 만만치 않지요.선율도 켄터키 옛집 등 서구색 일색이고.그래서 ‘옹헤야’ 등 우리 전통 가락을 많이 실어 한국적 정서를 담는데 주력했어요.바이엘,체르니같은 테크닉 위주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피아노에 흥미를 갖게하고 창의력,응용력을 키워주는 ‘즐거운 피아노레슨’이 되도록 꾸몄지요” 12장으로 된 책은 피아노 건반,장조·단조 음계,딸림음과 버금딸림음,3화음과 자리바꿈 순으로 차근차근 전개된다.검은음반부터 가르쳐 조성 변화에 두려움을 없앴고 화성 위주로 접근,반주 및 즉흥연주 응용력을 높였으며 선생님,친구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협주의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합주곡을 많이 실었다.책을 사서 일주일 한시간씩만 차근차근 연습하고 나면 웬만한 반주쯤은 어렵지않게 붙일수 있다고 한다. 음악연구소 팀은 앞으로 초등학교 모든 동요에 붙이는 피아노반주,토종 유아용 초급교재 등도 개발해 나갈 예정.‘…피아노 입문’은 전국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고 음악연구소를 통해 출판사쪽으로 단체구입하면 20% 할인 해준다.문의 02)758­1202.
  • 해외 유출 중국 명화 총 2만3천점/청나라 말기 강대국 약탈

    ◎미국·유럽·일본 등에 집중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찬란한 역사를 지닌 중국의 역대 명화가운데 어떤 것들이 해외로 유실됐을까. 최근 중국정부가 조사한 ‘해외에 수장된 중국 역대 명화’자료에 따르면 현재 외국으로 유실된 중국의 역대 명화는 원시사회에서 청대에 걸쳐 모두 2만3천점에 이른다.이 가운데 중국인들이 아까워 하는 작품은 청나라 말 영국 프랑스 등 8국 연합군이 원명원을 침략,약탈해 간 동진때 고개지의 여사전도.이 그림은 세계미술계에서 공인하는 중국의 특급 국보로 현재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고개지의 또다른 한폭의 명작 낙신부도의 최초 모사본은 미국 워싱턴의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유명한 실크로드에 위치한 돈황 장경동의 약 5만점에 이르는 사경수견화 및 각종 문물이 제국주의 시절 영국·프랑스에 의해 해외로 유실됐다.돈황 장경동 한 곳의 중국 국보만 세계 11개국에 흩어져 있을 정도로 약탈국가들이 많았다. 유실된 중국명화는 지역적으로 볼 때 미주(주로 미국·캐나다)와 일본,유럽에 각각 3분의 1씩 보관돼 있다.이 가운데 유럽에서는 주로 독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 등 국가에 산재돼 있다.그 대부분은 돈황 장경동에서 빼앗아 갔고,다른 것은 20세기 들어 항일전쟁 전후와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와의 ‘해방전쟁’ 후 국가문화재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 외국인들이 사가거나 중국인들이 해외로 빼돌린 것들이다. 해외로 유실된 명화중 또 다른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있는 동녀해상(전국시대의 유물로 1928년 출토)과 당나라에서 전해진 염립본의 작품 역대제왕도중의 진무제 사마염상,당나라 장훤의 도련도가 있다.미국 뉴욕에 있는 북송 때 무종원의 작품 조원선장도와 마원의 한강독조도,미국 프린스턴 미술관에 있는 청대 연화도,러시아 동방박물관에 있는 남송 때의 사미인도 등이 유명하다. 해외로 흘러나간 이러한 명화들은 상당히 높은 예술 및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이 가운데 원시사회의 채도회화,하·상·주 시대의 청동기와 옥기·동기,중국 호남성에서 출토된 초증서화와 초백화,전국시대부터 양한,위진남북조 시대까지의 각 왕조시대의 명화 등이 포함돼 있다.이 그림들은 중국예술의 휘황찬란한 성과와 당시 사회의 경제상을 충분히 반영하고,상당히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그래서 중국정부는 최종 자료정리가 끝나는 대로 해당국가에 반환을 청구하는 문제를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군정 폐지와 행정권 인수(대한민국 50년:7)

    ◎정부수립후 3개월 지나서야 ‘정권’ 확보/한·미대표단,군­경찰 지휘권 놓고 첨예 대립/하지­이승만 직접담판 통해 ‘점진 이양’ 합의 1948년 9월4일 열린 제헌국회 제57차 회의에서 이범석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정부와 미군정 사이에서 진행되는 행정권이양 회담에 관해 중간보고를 했다.이총리의 보고는,국회가 9일전 긴급결의해 국회의장 명의로 서한을 보낸데 따라 갖게 됐다.이총리는 회담에서 한국측 수석대표였다. 이총리는 먼저 “한미 양국간에 이견이 있어 회담에 매달리다 보니 경과보고가 늦어졌다”고 사과한 뒤 “행정권을 완전히 이양받은 다음에야 인적·물적 토대에 근거하여 시정방침(국정지표)을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이날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20일째인데도 정부가 아직 행정권을 인수하지 못해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사실을 국무총리가 공개시인하고 양해를 구한 것이다. ○재산권처리 협상도 난제 2년 11개월에 걸친 미군정은 형식상 48년 8월16일 0시를 기해 폐지됐다.16일 아침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령 제1호를 발표,미군정청 과도정부로부터 이관되는 행정업무를 11부4처별로 정리했다.이에 따라 17일부터 신생정부 각부처의 장은 과도정부의 미국인 고문들과 구체적인 인수절차 협의에 들어갔다.19일에는 대통령 담화를 통해 과도정부에 소속된 한국인 관리의 직책을 새정부에서도 보장했다. 이처럼 한국정부가 발빠르게 인수절차를 밟았다고 해서 행정권이 쉽게 넘어온 것은 아니었다.양쪽은 인계인수할 행정권의 범주를 결정하는 큰 테두리에서 상당한 견해차를 보였다. 한국정부와 미군정 간의 행정권이양 회담은 16일 하오2시 중앙청내 미군정 민사처 사무실 200호실에서 처음 열렸다.양쪽 대표는 한국에서 이총리와 윤치영 내무부장관·장택상 외무부장관,미군정측의 무초 주한미국대사·헬믹미군정 민사처장(소장)·드럼라이트 미군정 정치고문 참사관 등 6명이었다.무초대사는 그달 23일에야 부임하는 바람에 첫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회의는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첨예하게 대립한 부분은 ▲군(당시의 조선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과경찰에 대한 지휘권 문제 ▲한미간 재정 및 재산권처리에 관한 협정 등이었다.군정측은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는 한 군과 경찰에 대한 지휘권을 미군사령부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정부로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재정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측이 미군정이 보유한 물적 재산을 최대한 넘겨받기를 원했고,더불어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도 요구했다.회의에 진전이 없자 양쪽은 하루에 상하오 두차례로 회동을 늘리기로 합의,이를 한국정부 김동성 공보처장이 정식 공표하기도 했다. 당시 회담에 임한 미군정측은 “이범석 총리를 비롯한 한국측 대표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손아귀에 쥐어 있기 때문에 논의과정에서 권위를 갖지 못한다”는 시각을 가져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가 출국을 사흘 앞둔 8월24일 이대통령을 방문,직접 담판을 짓고서야 ‘군경에 관한 통수권’문제가 해결됐다.26일 조인한 ‘군사통수권 이양에 관한 협정’내용은 ▲군경에의 통수권은 가급적 점진적으로 이양하되 ▲미국이 국방경비대·해안경비대 장비를 원조하며 ▲미군이 주둔하는 한 이 문제를 계속 협의한다는 것이었다. ○9월30일에 시정연설 이 합의에 따라 경찰지휘권이 대한민국의 내무부장관에게 정식으로 넘어간 것은 9월3일 정오를 기해서였다.내무부는 곧바로 경찰조직 9국실 가운데 감찰실·총감부·수사국·교육국·공보실 등 5개국을 없애고 공안국·통신국·총무국·여자경찰국 등 4국실만 남기는 개혁을 단행했다.지방경찰 직제는 그대로 유지했는데 막상 지방 경찰력을 인수할 때는 미군정청과 가까운 일부인사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물자 현금 인사 및 정부직권의 이양’협정은 9월11일 타결됐다.이승만 대통령은 9월30일 국정지표를 제시하는 시정방침 연설을 할 수 있었다.미군정 과도정부의 중앙 각부처가 인원·재산 등을 한국정부에 이관하는 작업이끝난 날은 11월 18일이었고 지방 행정기구까지 완전히 신생정부가 인수한 때는 11월 20일이었다.정부수립 석달여가 지나서야 대한민국의 행정권이 비로소 확립된 것이다. 미군정청(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USAMGIK)은 1945년 9월9일 서울 중앙청(옛 총독부)에 설치됐다.행정실무를 책임질 첫 군정장관으로는 아놀드 소장이 임명됐다.미군정은 초기부터 ‘영어를 알고 행정겸험이 있는’한국인을 활용한 고문제도를 시행했다.45년 12월에는 한 직위에 미군과 한국인을 한사람씩 두는 ‘한인·미인 양국장’제도로 바꾸었다.이때 참여한 인사가 광공국장 대리 오정수,학무국장 유억겸,농상국장 이훈구,경무국장 조병옥 등이다. ○행정훈련서 친미 양성 해방된지 1년쯤 지났을 때는 모든 부처의 장에 한국인이 진출,한인관료 체계가 자리잡았다.47년 2월12일 안재홍을 민정장관에 임명했고,그해 6월3일에는 미군정청 한국인기구를 ‘남조선 과도정부’라 개칭했다.이어 47년 9월12일에는 행정권을 남조선과도정부에 넘겨 새정부에의 이양에 대비했다. 이같은 미군정청의 정책에 대해서는 두가지 엇갈린 평가가 존재한다.하나는 미군정이 나름대로 일정표를 갖고 한국인들에게 행정훈련을 시켰다는 것이며,다른 하나는 신생국가에 친미파를 조직적으로 양성했다는 시각이다. 미군정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토대를 마련한 공이 적지 않은 반면에,일제의 한인 관료군대부분에게 재생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일제청산에 큰 걸림돌을 남기기도 했다. 미군정이 이땅에 시행한 법령은 태평양 미육군 총사령부 포고 4건,남조선과도정부법령 14건,미군정법령 219건,행정명령 24건,부령 및 지령 115건,조선과도정부입법결의안 4건,미군정청포고 7건,기타 11건 등 모두 398건에 이른다. ◎미,한국협상대표단 불신/본사 특별취재반,‘제이콥스 보고서’ 입수 확인/“이범석 권한 없고 이승만이 모두 결정” 미국이 한미 행정권 이양회담에 임하면서 이범석총리를 비롯한 한국측 대표단에 불신을 가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입수한 ‘제이콥스 보고서’는 당시 회담 분위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J K 제이콥스는 주한 미24군 정치고문으로 회담경과를 정기적으로 미 국무부에 보고했다.이번 자료는 1948년 8월22일 작성했으며 그가 보낸 5번째 보고서이다. 제이콥스는 8월20일 상오10시와 하오2시 7∼8차 회의가 잇따라 열렸으며,7차 회의에서 이총리가 “자신에게는 권한이 없고 결정권은 아직도 이승만 대통령 수중에 있다”고 실토했음을 보고했다.이어 미군정측의 헬믹소장이 구체적인 항목들을 나열하며 의견을 물었지만 이총리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한국측 태도에 자극받았음인지 하지사령관은 8월24일 이승만을 만나 ‘군사통수권 이양 협정’을 직접 협상했다.미 본국 정부도 우회전술로 한국정부를 압박했다. 트루만 미국대통령은 8월27일 ‘한국경제원조 계획’을 미군정에서 다루지 말고 국무부 경제협력국에서 수립할 것을 지시했고,마샬 국무장관은 9월1일 기자회견 석상에서 “미국은 국제연합 한국위원단(UNTCOK)의 보고가 있을때까지 행정권 이양에 관한 최종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다”고 공언했다. 이후 한미행정권 이양에는 가속도가 붙었다.이승만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기 보다는,회담에서 상대가 내민 카드를 서로 탐색하다가 결국 수뇌부에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특별취재반 ▲이경위 부국장겸 정치부장 ▲이용원 문화부 차장 ▲김경웅 정치부기자 ▲최병렬 문화부 기자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정치부 기자 ▲서정아 정치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입춘… 마음속 잔설은 차갑지만(박갑천 칼럼)

    가벼운/기침에도/허리가 울리더니/엊그제/마파람엔/능금도 바람이 들겠다/저/노곤한 햇볕에/등이 근지러울 곤충처럼/나도/맨발로 토방 아랠/살그머니 내려가고 싶다/“남풍이 ×m의 속도로 불고/곳에 따라서는 한때 눈 또는 비가 내리겠습니다” (노장)가 생각했던 ‘근원으로의 회귀’가 그의 시정신이었다는(평론가 김우정) 신석정 시인의 ‘입춘’전문이다.유난히도 많은 눈을 흩뿌린 올 겨울이었지만 “겨울이오면 봄은 멀지않아”(셸리의‘서풍에 부치는 노래’)다가와버린 입춘.설사 눈발이 날린다해도 “맨발로 토방아래를 살그머니 내려가고 싶어질”만큼 계절은 봄을 가까이 불러들였다.땅속움들도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것이리라.그같은 꿈틀거림을 보게 된다는데서 ‘보다’(현)의 이름꼴(명사형)‘봄’이 ‘봄’(춘)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최창렬) 매화향기 속에 햇살은 달착지근해진 듯하나 마음속 응달 잔설위로부는 된바람끝은 차갑다.이른바 IMF한파라는것 때문인가.이런걸 이르면서 춘래불사춘­봄은 왔으되 봄같지 않다고 했던 모양이다.이글귀는 왕소군을 두고 지은 시속에 나온다.왕소군은 전한 원제때 궁녀로 절세의 미인이었는데 흉노와의 화친정책에 따라 흉노왕에게 시집가게 되자 뜻있는 이가 그불운을 노래했던것.“그 오랑캐땅엔 풀과꽃이 없으니/봄이와도 봄같지 않다”면서.오늘의 우리들 마음속 입춘도 “남풍이 ×m속도로 불지”않아 싱겅싱겅하다. 어느봄날 영의정 채제공이 말을 타고가다가 어떤집 대문에 쓰인 ‘입춘대길’ 춘련을 보고 발길을 멈춘다.그는 그집으로 들어갔다.집주인인 참판 김로경은 잠시 우두망찰한다.아무 기별도 없이 정승이 찾아들었기 때문이다.더구나 당색도 달랐던 터.채정승은 글씨에 끌렸던 것이다.그춘련을 쓴사람은 나중에 천하명필로 되는 그집아들 추사 김정희.그때 일곱살이었다.채정승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지금은 거의 볼수없게 됐지만 지난날엔 그와같이 입춘이면 춘련을 써붙였다.복은 들고 액은 나가란 뜻을 담고서.여러 글귀가 있지만 올해는 다음과 같은 대련을 썼으면싶다.‘소지황김출 개문백복래’(뜰을쓰니 황금이나오고 문을여니 백복이 오는도다)
  • 김홍도 ‘미인화장’의 여인(한국인의 얼굴)

    ◎경대 앞에서 화장하는 여인 그려/엉거주춤 자세 기묘한 행동 묘사 조선시대 풍속화 미인도 가운데 단원 김홍도의 것으로 보이는 작품도 전해오고 있다. 서울대박물관 소장한 이 미인도는 경대 앞에서 화장을 하는 여인을 묘사한 그림이다.왼쪽 윗모서리에 ‘단원이라는 사인글씨가 들어갔으나,도장은 찍지 않았다.그래서 먼저 전자를 앞 세우고 화제를 김홍도 ‘미인화장’으로 달아놓았다. 여인은 다소곳하기 보다는 좀 번잡스럽다.가채머리가 유난히 큰 여인은 숫제좋게 가랑이를 벌리고 앉았다.혼자만의 방이기는 하다.그러나 엉거주춤하고 가랑이 진 앉음새가 사번해 보이거니와,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그 자세로 얼굴을 거울속에 집어넣느라 상체가 왼쪽으로 기우뚱 휘었다.그리고 왼팔을 굽혀 소담한 가채를 떠받들 듯 매만진다.들어 올린 오른팔 역시 한껏 굽혀 손으로 가채끝을 잡았다. 얼굴 화장이 요란하다.호분을 짙게 칠한 여인의 눈초리는 온통 거울에 쏠렸다.얼굴이 본래 곱살했을 여인인데,호분을 두껍게 올리고 나서 눈썹을 갈매기 모양으로그렸다.붉은 입술을 너무 오므라뜨려 토라져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그러나 화장한 얼굴이 마음에 들어 안도하는 표정이다.이미 예고한 방문객의 인기척이 나면 용수철처럼 튀어나갈 채비는 다 차렸다.화장한 사연을 알만하다. 장안의 내노라 꼬리를 치는 기녀이거나 어느 한량의 작은집 소첩일 것이다.속곳 가랑이 한쪽을 드러낸 앉음새하고는 본데가 별로 없는 여인이기는 하나 얼굴이 그만큼 반반하면 남정네들 속깨나 태울만도 하다.오므라뜨린 작은입이나 너무 자그마하게 그려놓은 버선발을 보노라면 여인과 인연을 맺은 한량이 마음을 둔 데를 읽을 수 있다.거드름을 피우고 찾아와서는 막상 체면쯤은 접어 둘 한량은 여인을 또 품을 것이다. 앳되게 보이려고 그랬는지,주홍색 깃과 자죽색 끝동을 단 반회장 노랑색저고리를 입었다.갓 시집 온 각시들이 즐기는 노랑저고리를 입기는 했어도 치마를 추스린 품은 그렇지 않다.치마를 끌어올려 호리춤을 찔끈 동여맨 것이나,왼쪽 치마단을 걷어 올린 것은 여염집 규수의 꼴은 아닌 것이다.그래서 남에게 함부로 보이지 않던 여인들 속살격의 속치마와 단속곳까지 드러냈다. 그렇다고 단속곳이 속옷의 마지막이 아니였던 터라 여인은 방심했는지도 모른다.당시 조선의 여인들이 격식을 갖춘다면 8∼10가지의 속옷을 입었다고 한다. 가장 깊속한 속옷을 다리속곳이다.그리고 속속곳과 바지,고쟁이와 어른바지,단속솟과 속치마를 차례로 입었다.
  • 서양화가 서양순(이세기의 인물탐구:159)

    ◎화폭마다 혼담긴 ‘꽃과 여인’의 화가/초창기 ‘발레리나’ 시리즈로 국전 3회 입선/한국여류화가회장으로 작품활동도 활발 서양순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여인’의 이미지를 과시하면서 밀턴의 ‘꽃피는 시트론의 숲’을 향유하는 시기다. 최근의 그의 회화세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유랑의 필치’로 포비즘의 요소를 포함시키는 새로운 조형방법에 접근하고 있다. 이른바 색채의 의장을 중시하는 큐비즘과 구상을 지우는 특유의 기법으로 ‘꽃이 여인이며 여인이 꽃’인 팬태스틱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파스텔조의 꽃의 향연은 캔버스의 한정된 공간이 아닌 드넓은 벌판에 마음껏 펼쳐진채 바람에 흩날리듯 꽃향기 퍼트릴 듯 송이송이마다가 싱싱하게 살아숨쉰다. 그래서 일찍이 그의 스승인 박득순은 ‘서양순의 그림은 삶에 대한 힘찬 도약과 환희의 축제’라고 표현했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모르면 아름다움을 그릴수 없듯이’ 그의 눈부신 인물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가를 한눈에 알게 된다’는 것이다. ○‘환희의 축제’로 표현 그의 꽃들도 동양적 정서와는 거리가 먼 목련과 장미, 국화와 해바라기,튤립과 서양란같은 화판이 확실하고 탐스러운 꽃중의 꽃들로 화면을 채운다. 언제나 꽃과 여인이 공존하는 가운데 여인의 눈동자는 신비와 미지의 소망이 반짝이고 목걸이와 팔찌 등 서구적 연출은 때때로 베르사유의 앙트와네트, 정열의 카르멘, 르누아르의 청신한 이렌느와 어느때는 마농레스코같은 퇴폐적인 쓸쓸함과 메마른 사색을 풍겨낸다. 이른바 밀집한 꽃의 형상과 풍부한 무희들이 제시하는 회화세계는 그것이 ‘미술’이기 때문에 철두철미 ‘아름답다’는 것을 지키면서도 해맑은 아름다움의 이면속에 엄격한 결벽증이 도사리는 것이 이채롭다. 서양순은 그의 그림이 설명하는 것처럼 내면으로부터의 열망과 열정이 끓어넘치는 화가다. 타고날 때부터 솔직하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무슨 일에든지 쉽게 좌절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단지 가파르지 않은 후덕한 인간성을 지녔으나 남에게 폐끼치기를 싫어하고 만사에 빈틈없는 완벽주의로 대인관계에서의 신의를 중시한다. 그러한 성격형성은 그가 성장한 철없던 어린시절과 다양한 예술적 체험들이 정신적 성장을 준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릴때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의사’가 될것을 꿈꾸었으나 화가가 된 지금 심신장애자를 위한 국제 시비탄클럽의 멤버가 되어 그들을 돕고 있다. 전북 정읍에서 과수전지를 지도하던 서갑준씨와 이말예 여사의 3남3녀중 막내, 넉넉한 집안의 막내답게 부족함없는 환경에서 그림도 잘그리고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정읍여고시절 전라북도 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 정물화로 도지사상을 수상하자 당시의 교장과 담임이 권유하여 의대가 아닌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심신장애자 돕기도 대학졸업후 박득순 스승의 명동 화실에 나가 학생지도를 보조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드가의 ‘발레리나’시리즈에 심취해 있었고 발레리나의 율동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속도감에 매혹되어 한 시기에는 오로지 발레리나만을 그린 적도 있다. 이른바 ‘한줄기 빛이 물체에 닿는 순간, 그 빛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것’이라는 르누아르의 말대로 공간이동을 시키듯이 대상을 생명감 자체로 화면에 옮기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의 ‘무희’나 꽃들은 마치 토슈를 신고 필루에트를 추는 발레리나의 움직임을 알레그로 콘브리오의 리듬감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낸다.박득순외에도 변종하 최덕휴 김창락 김원등 기라성같은 스승들을 사사.그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변종하씨는 서양순을 향해 ‘장래를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화가’로 손꼽았고 그때부터 자신감을 갖고 ‘인물에서의 최고봉’이 되기 위한 야망을 불태웠다. 65년부터 국전에 ‘발레리나’를 출품해서 3회 연속입선, 특선을 향한 집념을 불태우던 무렵에 박득순 화실에서 만난 서양화가 강길원씨(공주대 교수)와 결혼, 77년 부군이 제주대에 근무하던 제주시절에는 섬만의 독특한 풍광과 제주여인을 그리면서 초기의 화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중간톤을 창출할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언제부턴가 남청 담청 군청과 감청속에서 선록)과 선홍이 흘러나오고 전에는 점하나를 찍는데도 구도를 계산했으나 그림에서의 형상과 색깔은 오랜 관념과 관습에 불과할뿐 ‘어떤 위대한 예술도 죽음이나 삶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삶의 욕망 화폭에 점화 지난 91년 일곱번째로 가진 개인전에서도 ‘선명한 터치와 화면마다 생동하는 생명감’으로 다시 한번 화단의 호평을 모았고 그의 그림을 아끼는 사람들은 최근의 ‘꽃과 여인’을 향해 ‘검은 비로드에 싸인 한아름의 금강석’, ‘허화가 없는 사치의 극치’로 찬사하기도 한다. 그는 항상 아름다움만을 추구할뿐 ‘문학성’과 ‘작품성’이 의식된 어질러진 도시의 뒷골목이나 초라한 낭인의 모습은 체질에 맞아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의 화제는 화려한 ‘꽃’들과 눈이 크고 서구적인 ‘여인’이 될것이다.지난해엔 한국여류화가회 회장에 선임, 결코 쉽지않은 승부였으나 평소의 스케일과 덕량이 주변을 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전혀 연고지가 아닌 강남구 신사동에 정착한지 20년. 화단의 중진인 부군과의 사이에 딸(보나양)하나가 있다. 낯설고 새로운 수많은 미학적 체험과 깊은 모색의 과정을 지나 그는정미를 끌어내기 위해 생의 욕망을 화폭에 점화하려는 시기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선보이려는 100종의 꽃과 100인의 미인은 지나온 족적을 되돌아보는 화가 자신의 심상의 그림자에 틀림없다. 긴 휴식과 사색을 끝내고 그의 여인은 탐색직전의, 비상직전의 긴장속에서 간결·절제의 수직구도로 만개의 향기를 미래를 향해 내뿜고 있다. □연보 ▲1940년 전북 정읍출생 ▲1961년 세종대 미술과졸업 ▲1965­67년 국전 서양화입선 ▲1966년 제1회 개인전(정읍) ▲1969­72년 신기회회원전 출품 ▲1972­현재 한국미술협회회원전 ▲1973년 한국여류화가회 창립전 ▲1978년 개인전(제주 한라미술관) 1981년 프랑스 아카데미 드 라 그랑 쇼미에르수학, 스페인국제미술제 특별상수상 ▲1982년 서울 개인전, 도쿄 아시아현대미술전및 한·불여류작가전(파리) ▲1983년 뉴욕및 상파울루 개인전 ▲1986년 현대작가 100인전 ▲1990­현재 한국구상작가 회화제 ▲1991년 제7회 개인전(현대미술관) ▲1992년 동북아 여성문화교류전 ▲1995년 북방8개국 우수작가초대전, 한국현대미술 뉴욕초대전, BESETO미술제 서울전, 광주비엔날레기념 한국여류화가회 광주전, 인도풍물 스케치전,목우회전 ▲1997년 썬화랑개관 20주년기념전, 한·중수교5주년기념전 ▲1998년 관훈미술클럽창립전, 한국여류화가회전(2월10일부터 서울갤러리) ◇현재:한국여류화가회회장, 군자회자문위원, 회화제운영위원
  • 신윤복 ‘미인도’의 여인(한국인의 얼굴:126)

    ◎넓은 이마·초롱초롱한 눈망울/옷고름 매만지는 자태 선정적 조선시대 미인도는 풍속화속에 자리잡았다. 조선 후기의 여인들 얼굴을 빌려 완성한 미인도는 물론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그린 그림이다.사녀도따위의 여인 그림도 넓은 의미로보면 미인도에 속한다. 그러나 18세기에 활약한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과 같은 풍속화가들의 그림이 미인도로 자리매김 되었다. 미인도는 신비롭고도 고상한 운치를 말하는 신운이 풍겨야 제격이다.그리고 내면세계가 우러나는 내태와 미모에서 오는 외태도 미인도가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그러니까 얼굴이 곱고 예쁘다고만 해서 다 미인으로 보지는 않았다.누구인가를 무척이나 그리는 정감어린 속내가 어려야 미인이라는 논리가 미인도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혜원 신윤복은 ‘미인도’를 그려놓고 ‘가슴속에 감춘 온갖 봄 기운을 붓끝으로 전신했다’는 글귀를 붙였다.봄은 정을 쏟아붓고 싶은 여인네 속마음이다.그 발정까지 끄집어내 그렸다고해서 혜원은 전신이라는 말을 썼다.그는 비록 그림이라할지라도 화폭에 가만히 들어앉은 여인을 그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그래서 와락 끌어안으면 품속을 파고 들 그런 동적인 미인을 육감적으로 그려냈다. 혜원 그림의 미인은 깔끔하게 빗은 머리를 땋아서 틀어올린 트레머리 가채를 썼다.트레머리끝에 매달린 자주색 댕기와 귀밑 살적머리가 애교스러운 여인은 목이 길다.그 길다란 목뒤로 돋아난 실머리가 감칠맛나게 휘어서 흘려내렸다.애초부터 팔등신미인을 그리고자 했던터라 혜원은 얼굴과 목을 조화롭게 인배했다.그래서 고고한 미인으로 묘사되었다. 미인 이마는 넓다.그 아래로 초생달같은 가는 실눈썹이 깨끗한데,크지 않은 눈에 총명한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골똘한 마음이 어렸다.화장은 엷으나 볼에 탄력이 붙어 빈약하지 않은 얼굴에 동그스레한 콧방울이 피어올랐다.그 아래 작은 입술이 야무지다.귀를 보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미인은 일편단심 한 남정네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삼회장 저고리를 입은 미인의 가슴은 그리 풍만한 편은 못 되어 저고리섭이얌전하다.그럼에도 옷고름을 다 매듭짓지 않은채 한 쪽 고름을 왼손 엄지에 끼어 자긋이 눌렀다.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해서 일까….오른손으로는 가슴에 달아맨 삼작노리개를 매만지고 있다.왼쪽 겨드랑이로 삐죽 늘어진 붉은색 띠가 왼쪽 치마 단 밑으로 고개를 내민 버선발과 더불어 선정적이다.시체말로 섹시해 보인다.
  • 까레스키 식품의 확산(중앙아시아를 가다:12)

    ◎유목민족의 식탁 점령한 김치/“입맛을 산뜻하게 하는 별미”/양고기·양젖 위주 식사에 적합/신강성­카즈흐­티베트까지 ‘침투’/우루무치 교포 절반이 김치장수 그 끝 없이 멀고 먼 서역에도,어디를 가나 우리 교포들이 살고 있다.그들은 한국의 음식을 먹고 전통식생활에서도 전통을 지킨다.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온 카자흐스탄 학생이 밥을 물말아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던 기억이 생생하다.그 학생은 고려인인 자기 할머니도 늘 그렇게 잡수신다고 했다.그들의 식생활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 김치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도시 큰 바자에 가면 의례히 고려인 까레스키 여인들이 김치와 고사리를 비롯한 각종 나물과 샐러드를 판다.이들은 본래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브스크 지역의 원동에 살던 사람들이다.그러다 1937년 스탈린이 강제로 이주시켜 중앙아시아 곳곳에 고루 퍼져 살게 되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에서 김치는 까레스키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공산권에 여행이 가능해지던 80년대 말부터 이러한 소식을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터이다. ○88년 봉급자의 20배 수입 그런데 이번에 신강성의 수도인 우루무치에 가서 김치가 지닌 경제적 잠재력에 크게 놀랐다.1986년 중국에서 자영업을 허용하기 전까지 우루무치의 조선족은 불과 20호 정도밖에 없었다고 한다.우루무치의 조선족은 자영업을 허용한 이후 늘어났다.심양에서 처음으로 김치장사에 나섰던 한 아주머니가 하루아침에 큰 거부가 되었다는 소문이 나고 부터다.중국의 동북삼성에 사는 조선족들은 우리의 전통식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김치장사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자영업이다.그런 점을 고려한 조선족들이 김치장수로 나서 옛날 서역이라 불렀던 신강성까지 왔다. 제일 먼저 우루무치에 온 사람들은 88년과 89년경에는 하루 중국돈으로 약 200원 이상을 벌었다.월수입도 6천원정도나 되었다. 월봉급이 많아야 500원이었던 시절 당시의 수익은 월급의 10내지 20배에 달하는 거금이었다.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90년에는 약 100세대의 김치장수가 우루무치로 몰려들어 조선족이 모두 120세대로 늘어났다.그러나 100여 세대 김치장수가 우루무치시에 있는 네개의 바자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각 세대의 수입이 급속히 줄었다.그래서 그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전업을 하든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지금도 100세대 가운데 약 50여 세대가 김치장사를 하고 있다.월 1천여원 이상의 수익을 쉽게 올린다.이 정도면 중국에서 괜찮은 수입인데도 그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우루무치를 떠나 세계의 지붕 티베트 라사까지 진출했다.조선족 김치장수들의 생활태도는 참으로 놀랍도록 도전적이다.지금도 김치가 지닌 확실한 상품성을 딛고 일어서서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신강성에 우리민족이 처음으로 들어간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19세기 중엽 이전에 중국에 이주한 한국인들은 거의 중국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오늘의 조선족들은 그 이후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또는 일제의 수탈에 못 이겨 떠난 사람들의 후예다.그 가운데는 1959년 신강성 해방군 자격으로 현지에 주둔하다가 제대하고 주저앉은 사람도 있다.1960년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파견되어 의사와 병원장으로 근무하다가 몇년 전에 정년퇴직한 원로 의사 한분도 신강성에 자리잡았다. 조선족 의사는 처음으로 우루무치에 올 때,난주에서 트럭을 타고 왔는데,17일이나 걸렸다고 한다.그 때 나이 21세의 총각이었다.우루무치 초행길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물었더니 “다시는 못 돌아갈 것같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그 길에는 김치장사를 하기 위하여 멀리 만주에서 온 조선족 네명이 동행했다는 것이다.어떤 이는 이런 말을 되뇌었다.“집 떠난 사람들이니까 선생님의 그 말을 알지,집 떠나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라고…,모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입에 밴 음식 기름기 제거 신강성에는 위글족 이외에 몽골과 카자흐족 등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모두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낭이라 불리우는 빵을 먹는 민족이다.이러한 식생활은 신강성을 포함한 전 스텝 지역,다시 말해서 투르크와 몽골의 모든 지역이 같다.스텝의 유목민족들은 말이나 양젖으로 치즈와 요구르트는 물론이고,술까지 빚어서 먹는다.이런 점은 곤륜산맥과 에베레스트 산맥으로 연결되는 고원 티베트에서도 마찬가지다.한마디로,유목민들은 양고기와 우유만을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유목민족들이 왜 김치를 사먹느냐고 물어보았다.우루무치의 조선족들은 “김치가 산뜻하기 때문”이라고 하나같이 자랑스럽게 말한다.고기와 우유,그리고 치즈만을 먹고 사는 유목민들이 순식물성 발효식품이기도 한 산뜻하고 시원한 김치맛을 한번 보고나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치즈나 마유주도 발효식품이다.하지만 이들 낙농식품은 우유기름 맛을 그대로 담아 입에 밴 육식의 기름끼를 가셔주지는 못한다.그러나 무배추와 파마늘과 고추가루와 생강 등 온갖 양념을 고루 삭혀 발효한 김치는 입맛을 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시원한 맛은 정신까지 맑게 해준다.김치에는 고추 매운 맛의 톡 쏘는 자극과 파마늘의 짜릿하고 알딸한 뒷맛,무배추의 살에 양념들이 배여서 숙성될 때 나오는 산뜻한 신맛이 모두 어울렸다. ○개방정책 타고 번져 김치는 어느 육류와도 잘 들어맞는다.미국 카우보이들이 즐기던티본 스테이크와 가장 갈 어울리는 식품은 뭐니 뭐니 해도 김치다.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미국인들의 주장이 그러하다.다만 김치는 가벼운 음식에는 그 양념 맛이 너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육식만 하는 유목민족에게는 안성마춤의 별미인 것이다. 세계의 오지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베트 고원지대에까지 밀어닥친 개방정책은 시장경제를 열었다.김치도 그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김치는 오래지 않아 유목민들 식생활의 총아가 될 수 있다.김치 없이는 못사는 한국교포들이 도전적으로 김치를 팔고 있는 한은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 신윤복 ‘월하정인’의 남녀(한국인의 얼굴:125)

    ◎떳떳하지 못한 남정네­여인/한밤중 만남 음흉하게 묘사 혜원 신윤복은 그림 뿐 아니라 글씨와 시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모양이다.그가 그림에 써넣은 글발인 제사나 글씨를 보면 제법 매끄럽다.그림의 내용과 주제를 설명한 사제는 그림 이미지를 한껏 살렸다.간송미술관 소장의 속화 ‘월하정인’도 그림과 사제가 썩 잘 어울린다. 이 속화는 떳떳하지 못한 남정네와 여인의 내밀한 만남이 묘사되었다.가는 길이 뻔한 은근짜 한쌍의 수작이 역력한 이 그림에는 6·3·4자씩의 삼행시가 들어있다.‘밤은 깊어 삼경인데,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아네(월심심 야삼경·양인심사양인지)’라는 내용의 시다.삼경은 하오11시쯤에서 다음날 상오 1시쯤에 이르는 한밤중이다. 그 야심한 삼경에 남정네를 따라 나선 여인은 필경 여염집 규수는 아닐 것이다.길을 나서기전에 의기가 투합했을 터이나,어느집 담모퉁이에 이르러 여인은 짐짓 새치를 부리는 눈치다.몸이 단 것은 남정네다.그래서 왼손을 마고자속에 집어넣고 무엇을 꺼내 여인을 달랠 눈치다.남정네 얼굴에는 약간 낭패스러운 표정이 어렸다.그러나 호롱불빛을 받은 여인네 얼굴은 벌써 발그레 상기 되었다. 여인네는 쓰개치마인 처네를 머리에 썼다.처네말기로 이마와 왼쪽 눈과 눈썹을 약간 가렸으나,혜원이 즐겨 그리는 미인형얼굴이다.눈과 눈썹이 약간치켜 올라갔다.앵두 한 알을 겨우 물을 수 있을 만큼 입은 작지만 코는 오뚝하다.그런데 한 번쯤 내숭을 떠느라 새침떼기가 되었다.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남정네를 뿌리칠 자세는 아니다.몸은 비틀어 남정네를 외면은 했으나,오이씨같은 버선발에 신은 신발코 끝을 남정네 쪽에 두었다. 어자피 따라나선 참이라 끝장을 보기는 볼 참이다.치마통을 올려 허리에 매달 듯 묶어 놓아 여인네 흰 속곳자락이 다 들어났다.여인네를 곁눈질 하는 남정네 눈길이 음흉해질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남정네는 어느 양반집 자제인 듯 하나 체면쯤은 일찍 접어두었다.그저 여인이 살랑살랑 따라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급할 뿐이다. 이 그림에는 여색을 내세워 에로티즘을 강조한 혜원의 필치가 그대로발산하고 있다.그는 남녀의 질퍽한 놀이나 은밀한 밀회는 물론 심지어는 성희나 정사까지 농도 짙게 표현했다.성애를 위한 유혹의한 순간을 포착한 ‘소년전홍’이나 일하고 돌아오는 하녀를 붙들어 보는 주인양반을 묘사한 ‘춘색만원이 그런 그림이다.
  • 자격증 시대/이세기 논설위원(외언내언)

    미국정부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는 대략 2만3천60여가지의 직업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직업은 ‘매트리스 워커’와 ‘수염닦기’다.‘매트리스 워커’는 침대요의 부드러움을 조사하기 위해 매일 8시간씩 맨발로 요위를 밟는 일이고 ‘수염닦기’는 지하철 광고판 미인화에다 장난삼아 그린 수염을 돌아다니면서 지우는 일이다. 또 비행장에 착륙하는 비행기들의 눈부신 라이트 사이에 서서 자기의 그림자를 비춰주는 ‘투영계’라는 직업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직업의 분업은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성할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별로 환영받지 못하던 아파트경비원이나 파출부 가정부가 거의 전문직으로 격상되고 허드렛일로 취급받던 공사장인부 주차관리원 주유소주유원에서 심부름과 빈집돌보기 애보기까지도 일정한 봉급을 받을수만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게 됐다. 그러나 어느일자리나 쉽지않고 어느 일자리나 불안한 것이 요즘 세태다. IMF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이 초긴축 감량경영으로 감원을 단행하면서 ‘자격증’을 따려는 직장인과 주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제 쫓겨날지모르는 불안한 직장보다는 자격증을 따서 취업과 연결하거나 자신이 직접 창업을 할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40대전후의 남성들이 고시학원 어학원에 넘쳐나고 주부들도 더이상 남편만을 믿고 대책없이 시간을 보내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이 아직 직장에 버티고 있더라도 ‘만약’에 대비해서 요리나미용 도배와 보석감정등 각종 자격증획득이 가능한 학원이나 강좌에 몰려든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집계한 ‘97년도 자격증 수검인원 현황’에 보면 한식조리사의 경우 96년 6천380여명에서 지난해말 10만5천여명, 건축기사도 2만7천500여명에서 5만80여명등 각분야별로 2,3배이상 증가하고 있다. 현재조리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30여만명에 이른다. 자격증을 가졌다고해서 누구나 취업이나 창업을 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불확실성 시대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실력뿐이다. 사회가 풍성해져서 세분업이 가능해질때까지 자격증은 찬바람과 경제전쟁을 이겨나갈 든든한 ‘무기’가 될 것이다.
  • 섣달 그믐… 빛나는 새 햇살을 기리며(박갑천 칼럼)

    섣달그믐날 아침에 뜨는 해와 정월초하룻날 아침에 뜨는 해가 다른건 아니다. 똑같이 동해를 빨갛게 물들이며 솟아오른다. 하건만 뜻은 다르다. 하나는 끝이요 하나는 시작이라는 점에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유시유종)고 했다. [대학]등에 나와 있는 말이다. 새해라는 시작이 있었으니 섣달그믐이라는 끝도 있게 돼있는 것이 세상사. 그것은 또 달리 생각하자면 시작이 곧 끝이요 끝이곧 시작이라 할수도 있다. 섣달그믐이 끝나면서 새해는 꼬리를 이어 시작되는게 아닌가. 그래서 마해송도 이렇게 말한다. “그날이 그날,그날이 그날,무엇하나 다를것이 없건만 하루는 섣달그믐이라 하고 다음하루는 정월초하루라고 이름지어서 어린사람은 즐겁게 해주고 나이먹은 사람은 속상하게 해주는 것도 생각하자면 인생의 묘미인것 같다”(수필“세월의 흐름을 그저 바라보며”) 사람은 이 세월의 흐름 앞에서,특히 한해를 보내면서는 더더욱 허우룩해진다. 52살 되던해(1957년)의 마해송이 젊은날을 되돌이키면서 쓴 수필 “해마다 설”에도 그런 마음이 어린다. “열아홉에서 스무살이 되는해의 그믐날 몇친구와 술 한병에 게통조림을 앞에 놓고 앉아서 밤을 새웠다. 까닭모를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눈물로 맞이한 설은 그해뿐이었다.…어른이 된다는 생각에서 흐르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이라는 것에 눈을 뜨는 감상의 눈물 아니었던지 모르겠다. 설사 눈물까지 흘리지않는다 해도 무심할수는 없는게 사람마음. 쌓은것 없이 ‘인생의 벼랑’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회한에 젖어들면서다. 어떤 시심을 들여다보자. “섣달그믐날 살을 에는 강풍을 무릅쓰고/내 여기 인천연안부둣가에 홀로 서있음은/저물어가는 한해의 유언을 듣기위함인가…”(박희진“섣달그믐날 살을 에는…”1련). 그렇다. 섣달 그믐날밤은 한해의 숨을 거두면서 사람사람의 귓전에 나름대로의 유언을 속삭여 주는 것이리라. 그소리를 안쫑잡으면서 새해의 밑거름으로 삼을줄 알아야 겠다. 올해의 섣달그믐은 유난히 차갑다. IMF한랭전선이 마음속으로 파고듦에 따라 옴씰해지면서 새해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마다에 불을 지피자. 새돛과 새깃발을단 새배(정부)도 닻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주저앉지 않는 자에게 빛은 찾아온다고 했거니. 호랑이의 용왕매진을 다짐해야 할 그믐날이다.
  • 고교동아리 ‘겨레지킴이’ 회장 조용호군

    ◎“외제 학용품 안쓰기 청소년들이 해낼겁니다”/미제 가방·일제 볼펜 등 추방 외화 절약 앞장 “우리 청소년들도 외제 학용품 안쓰기 운동을 통해 IMF의 경제신탁통치 극복에 앞장서겠습니다” 서울 문일고 3년 조용호군(17)은 고등학생 연합 동아리인 ‘청소년 겨레지킴이’의 회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외제 학용품 안쓰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조군은 최근 불어 닥친 IMF의 한파로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가운데 ‘외제 학용품 안쓰기 운동’을 통해 ‘경제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조군은 “청소년 겨레지킴이는 무차별적인 외국의 경제·문화적 침탈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키자는 고등학생들의 모임”이라며 “청소년들 사이에 만연된 외제품이나 외국문화 선호사상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고 이를 뿌리뽑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조군은 이어 “현재 겨레지킴이는 일제 볼펜과 필통,그리고 미제 가방 등에 점령당한 학용품을 국산품으로 바꾸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면서 “청소년들이 작은 실천을 벌인다면 엄청난 외화를 절약할수 있다”고 말했다. ‘겨레지킴이’는 지난 3월 서울 문일고와 송파고,가락고 등 서울시내 25개 고등학교 학생들로 결성돼 현재 5백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각 학교별로 ‘외제 학용품 안쓰기 운동’을 벌여 외제 볼펜과 필통,건전지 등 1천여점을 수거하기도 했다. ‘겨레지킴이’의 활동을 돕고 있는 청소년 열린학교 부회장 연미인씨(21)는 “이들은 외제 학용품 안쓰기 운동 뿐 아니라 북한 동포돕기 모금운동과 정신대 할머니 돕기 활동,그리고 일본의 독도문제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군은 겨레지킴이 회원 50여명과 함께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과소비 추방 캠페인’을 벌여 IMF 시대에도 과소비를 일삼는 어른들에게 국산품 사용을 호소하기도 했다.
  • 김대중시대­김 대통령과의 관계(DJ­도전 21세기:2)

    ◎“정권인수 협력” 동반자로 새출발/첫 회동서 전·노씨 사면·복권 보조맞춰/경제위기·조각권 이양 관련 묘한 여운 애증의 30년 정치사를 이어온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의 향후 관계설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때론 끈끈한 동지로서,때론정치생명을 걸고 건곤일척을 겨뤘던 두사람?이제 대통령 취임식까지 ‘청와대’의 양도자와 인수자의 미묘한 출발선에 서게됐다. ○정국안정 공동노력 그러나 20일 청와대 회동에서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대체적인 윤곽을 드러낸 것 같다. 우선 이날 결정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복권은 김대통령의 제의와 김당선자의 동의라는 형식을 밟았다.“두 사람이 적극 협력,정국안정과 국정수행에 추호의 차질이 없도록 공동 노력하겠다”는 합의사항도 도출했다. 적어도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당선자의 의중을 적절히 조화시키겠다는 의지 표현인 듯하다.당의 한 관계자도 “승리자로서의 샴페인을 터트리는 오만한 이미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김당선자의 의중”이라며 “정권 초기부터독선적 형태로일관했던 YS(김대통령)의 실패를 밟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밝혔다. 김대통령도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정권을 원만하게 양도,떳떳하게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생각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국민적 통합 우선 고려 하지만 양자의 관계복원은 무엇보다 김당선자의 향후 정국구상과 무관치않은 듯하다. 김당선자는 대통령 취임일까지 원만한 정권인수를 최대 목표로 잡고있다. 선거결과에 따른 국론분열도 고려하고 있다. 김당선자는 전체 유효득표의 40.3%의 지지를 받았고 이는 반대로 59.7%라는 국민이 김당선자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국민적 통합을 위해선 ‘YS 끌어안기’가 필요한 대목인 것이다. 한 측근 은YS의 협력을 전제로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의 북한특사와 같은 역할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YS에 대한 입장정리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김당선자의 생각은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 같다. 향후 김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이에 따른 책임소재도 걸려있다. 김당선자가 19일 내외신기자회견을 통해 경제청문회 개최를 분명하게 못을박았다. 적어도 경제파탄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그 위에서 김대중 정권의 앞날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과거 전·노대통령의 구속과 같은 과격한 수단은 현재로서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IMF 위기탈출이라는 절대절명의 목표를 위해선 국민적 화합이 제1의 수순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김 당선자 의중 관건 이런 의미에서 당초 마찰이 예상됐던 조각권의 조기이양 문제도 쉽게 매듭을 지었다. 이종찬 부총재는 “김당선자는 헌법을 준수하기를 원한다”며 “사고라도 발생하면 책임소재가 문제가 된다”고 밝혀 조각권 이양 요구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반면 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청와대 회동에서 양측 동수의 12인 경제위원회 설치에 합의했다. 정동영 대변인은 “새정부가 안정속에 출발할수 있도록 경제가 나쁜 쪽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IMF시대 극복 급선무 12인 경제위기원회의 당선자측 대표는 박태준 자민련총재가 내정됐다. 국민회의 쪽에서는 김원길 정책위의장의 참여가 확정됐으며 나머지 4명은 장재식 정세균(국민회의),이태섭 허남훈 의원(자민련)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정부측에서는 임창렬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고위경제관료가 위원이 될 전망이다. 김당선자는 이와 함께 빠르면 24일 정권인수위를 설치한다. 정권인수위원장에는 이종찬 부총재가 유력하다.
  • 검소한 성탄맞이 추세… 대표적 행사 소개

    ◎성탄절 놀이공원 이벤트도 조촐/에버랜드­제트스키 타고온 미녀 산타 볼만/서울랜드­‘세계의 광장’서 환상의 레이저쇼/롯데월드­25일까지 화려한 산타 퍼레이드 ‘1주일 뒤면 즐거운 성탄절’달러폭등,감원 등 IMF한파로 어수선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어른들의 마음은 여유가 없지만 자녀들은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성탄절을 맞아 놀이공원들이 마련한 행사를 소개한다. ◎롯데월드/톱가수 캐롤송 콘서트/야간 할인티켓제 실시/댄싱경연 최종결승전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과 올해 마지막날인 31일에는 영업시간이 밤11시에서 자정까지 1시간 연장된다.하오 5시부터는 야간할인 티켓이 발매돼 낮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24일 밤 10시∼12시까지 가든스테이지에서는 댄싱경연대회 최종결선이 벌어지며 이어 인기가수들이 나와 캐롤송을 들려준다. 25일 하오 4시에는 같은 곳에서 가수 김원준의 캐롤송 콘서트가 마련된다. 31일 밤 10시부터 가든스테이지에서는 필리핀출신의 8인조 혼성밴드가 공연을 펼친다. 또 25일까지 하루 2∼3차례 어드벤쳐 등에서 산타퍼레이드,캐릭터 뮤지컬쇼,밴드 콘서트 등이 벌어진다. 이와 함께 22일까지 어드벤쳐 정문에서는 야간입장객 200명에게 다이어리를 선물한다. ◎에버랜드/24일엔 자정까지 개장/야외무대 톱가수 공연/유료 직행버스도 운행 24일에는 자정까지,25일에는 하오 9시까지 문을 연다.평일에는 밤 7시까지,주말에는 밤 9시까지 개장한다.24일 하오 5시 포시즌스 가든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펼쳐진다.다양한 색상의 전구들과 방울등으로 장식된 20여개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50여개의 화로가 일제히 불을 밝힌다.또 이날 하오 8시부터 10시까지 야외무대에서는 인기가수 김원준,지누션 등이 출연하는 라디오 공개방송이 개최된다.성탄절 고객을 위해 신촌,종로,수원역에서는 하오6시부터 직행버스가 운행된다.(1인 왕복권 1만원) 이와 함께 페스티벌월드 등에서는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마칭밴드의 캐롤송 행진등의 행사가 하루 한차례 열린다.불꽃놀이,하와이 전통불춤공연도 펼쳐지며 오뎅,군고구마 등을 즐길수 있도록 무교동 먹자거리도 마련돼 있다. 21일부터 27일까지 물놀이 공간인 캐리비안 베이에서는 제트스키를 타고온 수영복 차림의 산타클로스 미인들이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서울랜드/산타 카페레이드 실시/노래자랑 입상자 수상/무용단 뮤지컬 공연도 24일에는 밤 12시까지,25일에는 밤 9시까지 문을 연다. 24일과 25일 밤 8시 세계의 광장에서는 레이져 쇼가 펼쳐져 성탄절 밤하늘을 수놓는다.또 일요일과 공휴일 하오 3시에는 산타클로스,루돌프 등이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눈썰매장에서는 무용단들이 성탄 음악에 맞춰 공연을 펼친다.삐에로의 집에서는 평일에는 하오 4시30분부터,주말에는 하오 2시30분부터 노래자랑이 열려 열심히 부른 사람에게는 상품도 준다. 분수무대에서는 토요일 하오 5시,일요일 하오 4시 서울랜드 캐릭터와 무용단이 뮤지컬공연을 펼쳐 음악과 율동을 감상할 수 있다. ◎대구 우방타워랜드/25일 밤 10시까지 개장/댄스뮤직 대축제 개최/청소년 그룹댄스 대회 24일에는 밤 12시까지,25일에는 밤 10시까지 개장한다.24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영타운 스테이지에서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댄스 뮤직페스티벌이 펼쳐진다.25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하오 5시부터 청소년그룹댄스 결선대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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