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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신용등급 강등] “美 펀더멘털 문제 아닌 재정위기 대처 못한 정치권에 경고”

    [美 신용등급 강등] “美 펀더멘털 문제 아닌 재정위기 대처 못한 정치권에 경고”

    “미국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펀더멘털보다는 재정위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미국 정치권에 대한 경고로 봐야 합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미국국가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 이튿날인 7일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서울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하락시켜서 세계경제가 출렁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부채 문제를 반영해 신용등급을 하락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등급의 하락보다는 미국 경제가 실제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지느냐가 관건이라는 의미다. 그는 “미국 경제의 여건상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는 더블딥까지 가는 것은 힘들 것”이라면서 “오히려 신용등급 하락이 미국 정치권에 재정적자 축소 의지를 높이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P의 미국국가 신용등급 하락이 세계경제에 거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사실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하락시켜서 세계경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미국에 문제가 있으니 신용등급 하락으로 경고한 것이다. S&P는 미국 정치 지도자들이 재정위기를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그간 구두경고를 하다가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신용등급 하락이 미국 경제가 기울어져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향후 미국 정치권에서 S&P의 경고를 받아들여 재정적자를 줄이고 펀더멘털을 더 공고히 구축하는 노력을 한다면 신용등급 하락이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더블딥까지 가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더블딥의 의미가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볼 때, 중요한 것은 고용 및 주택 지표다. 지난 7월 고용지표는 실업률도 떨어지고 당초 예상보다 좋은 상태이며 주택 위기도 마무리 국면이라는 예상이 많다. 미국 경제성장률도 상반기에는 나빠졌지만 하반기에는 다소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블딥까지 가기는 힘들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 S&P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예의 주시할 변수도 생겼다. 만일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주면 소비지출이 줄고 이는 경기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주가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많이 빠졌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그간 세계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미국 주가의 고점을 1만 5000 정도라고 보는데 실제 주가는 1만 1000선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2100을 넘어서면서 역사상 고점 근처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많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국내외 금융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사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달러화 가치의 하락과 직결되지만 이번 강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확대될 경우 안전자산 선호 심리 재부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일 수도 있다. 원·달러 환율은 이번 충격이 완화되기 전까지 당분간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해외여론은 이번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아시아 주식시장에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했다. 주말에 미국의 고용지표가 호전됐고, 유럽중앙은행이 이탈리아 국채매입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 역시 외국인의 매도세가 중장기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신용등급이 하락했는데 미국 국채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겠나. -사실 해외 여론은 미국채 외에 대안이 없어 미국 국채 금리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신용등급 강등으로 미국 국채의 수요가 줄어든다면 그간 유럽 재정위기의 수혜를 받아 미국이 낮은 금리로 적자를 보전하고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었던 장점이 다소 줄어들 수 있다. 모기지 금리부터 미국 국채금리까지 전반적인 미국의 금리부담이 높아질 경우 경기회복의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9)송나라 대문장가 소식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9)송나라 대문장가 소식

    우리에게 소식(蘇軾·1036~1101)은 대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문장가일 뿐만 아니라 정치가이자 화가, 시인, 서예가였다. 심지어 그는 요리에도 조예가 있는 팔방미인이었다. 다방면에 걸친 그의 재능은 자신의 문장을 자평할 때 말한 것처럼, “만 섬이나 되는 샘의 원천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용솟음쳐 나올” 정도였다. “평지에서는 도도하게 콸콸 흘러 하루에 천리를 가기에도 어렵지 않다. 그것은 산의 돌멩이들과 어울려 꾸불꾸불 흐를 때에 사물에 따라 모양을 바꿔 나간다.”(‘자평문’) 자신의 문장에 대한 드높은 자부심과 거침없는 기개야말로 소식이라는 인간 그 자체이자 그의 문장의 특징이다. ●21살에 과거 급제… 정치 행보는 부침 거듭 21살, 소식은 과거에 급제했다. 당시 최고 문장가였던 구양수는 소식의 과거 시험지를 보고, “이 늙은이는 이제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소.”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구양수의 예언대로 소식은 3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를 대신해서 문단의 맹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소식의 이름이 문장으로 널리 알려지는 것과는 달리 정치적 행보는 부침을 거듭했다. 신법당과 구법당의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소식은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며, 두 차례나 유배를 당했다. 1069년, 신종은 왕안석의 신법을 채택하여 정치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신법은 대지주와 호족들의 토지 겸병을 막고, 관료체제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한 부국강병책이었다. 대지주와 호족지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법당은 시행과정 상의 예상 문제점들을 들어 신법을 반대했다. 구법당은 사마광, 정이의 낙파(洛派)와 소씨 삼부자(소순, 소식, 소철)의 촉파(蜀派)로 나뉘어 서로 신법에 맞섰다. 북송 ‘신고문운동’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소식과 왕안석은 한데 묶일 수 있지만, 정치적인 견해에서는 서로 달랐다. 또한 신법에 대한 정견이 일치했을지는 모르나 유가의 도를 종주(宗主)로 삼는 낙파와 달리, 소식은 노장과 불교를 모두 포괄한 유학자였다. 소식은 신법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세 차례나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일로 신법당의 미움을 사 한미한 관직으로 지방을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그의 문학적 활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시, 사(詞), 기(記) 등 호방하고도 개성 넘치는 문체를 형성하게 된다. 소식을 좌천과 유배로 몬 것도 그의 문장이요, 자신에게 닥친 정치적 불운과 험난한 인생을 치고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준 것도 그의 문장이었던 것이다. ●“생각이 충만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 소식은 “마음속 생각이 충만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고 봤다. “옛날에 글을 짓는 사람은 글에 능한 것을 ‘좋은 글’로 여긴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 쓴 글을 ‘좋은 글’로 생각했다. 산천의 구름과 안개, 초목의 꽃과 열매도 충만하고 울창하게 되어야 밖으로 드러나듯이.”(‘南行前集敍’) 작가가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 얻은 충실한 사상, 내용을 갖고 있으면 예술적 형식은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이 문장론은 ‘흉유성죽론’(胸有成竹論)이라는 예술론으로 더 잘 알려졌다. 문인화론의 확립자로 알려진 소식은 사군자, 특히 문동의 대나무 그림에 주목했다. “대나무를 그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하고 나서 붓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아야지 그리고자 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때 급히 서둘러 붓을 휘두른다.”(’文與可畵篔簹谷偃竹記’) ‘마음속의 대나무’를 들어 소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술과 인격의 관계였다. 일체의 객관 사물이란 모두 작가의 주관적인 색채로 그려지고, 이렇게 함으로써 의경(意境)이 조화를 이뤄 감상자에게 생동감을 줄 수 있다. 문동이 즐겨 그렸다는 ‘누워서 쳐다 본 대나무‘는 단지 몇 마디의 대나무를 그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만 자가 넘는 화가의 기세가 담겨 있다.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으며, 자신의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문인의 기세. 요컨대 대나무라는 대상을 얼마만큼 잘 모사했느냐가 아니라, 대상을 통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화가의 고유한 감정과 정신세계를 얼마나 잘 드러냈느냐가 핵심이다. 이 같은 문인의 자부심이야말로 좌천과 유배와 같은 정치적 불운에도 굴하지 않게 만든 ’소식의 힘‘이었다. ●자신의 인연 받아들이고 ‘거사’ 자처 1079년(44세), 신법당과의 악연은 마침내 필화사건으로 터졌다.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소식이 썼던 시들에 임금과 정부를 모욕, 비방하는 내용이 있다는 신법당의 참소로 일어났다. 136일 동안 어둡고 좁은 감옥 안에서 그는 언제 사형 명령이 떨어질지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했지만, 황주(호북성) 유배령이 떨어졌다. “본성이 말을 삼갈 줄 몰라서 남들과 친하건 친하지 않건 가릴 바 없이 마음속의 생각을 다 털어놓아야지 못다한 말이 있으면 마치 목구멍에 음식이 걸린 것 같아서 반드시 토해 내고야 마는” 소식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소철은 유배길을 떠나는 형에게 신신당부했다.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글과 말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호방한 성격의 소식이었지만 충정심이 나라에 죄를 얻은 상황이라, 폄적(貶謫·벼슬자리에서 내치고 귀양 보내다) 초기에 그는 글을 한 줄도 지을 수 없었다. 그는 “문을 닫고 외부와의 출입을 끊은 채 놀란 혼백을 가다듬고 물러나 엎드려 있었다.” 붓을 놓은 일은 외부와의 완전한 관계 단절을 의미했고, 또한 자기 존재의 의의까지 회의하게 만든 일이었다. 폄적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가족을 부양하는 경제력의 원천인 관직을 잃자 소식의 가족들은 갑작스레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고, 설상가상으로 동생·친척과의 이산 및 지인의 죽음은 인생무상으로 엄습했다. 폄적은 소식으로 하여금 다른 경계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어떤 문턱에 서게 만든 경험이었다. 소식은 불교 서적을 읽고, 근처 절을 찾아가 향을 피우고 고요히 앉아 묵상에 잠겼다. “깊이 성찰하여, 대상과 자아를 잊고 몸과 마음이 모두 텅 비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또 소식은 지인의 도움으로 황주성 동쪽 산비탈의 황무지를 사서, 그곳을 ‘동파’(東坡)라 이름하고, 자신을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이름보다 더 유명한 ‘동파’라는 호가 탄생한 시점이다. 이 시기 소식의 두 벗은 ‘도연명집’(陶淵明集)과 ‘유종원집’(柳宗元集)이었고, 그는 스스로를 도연명에 비유하며 세속적인 욕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저절로 흘러넘쳐 글이 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황주성 밖의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지은 ‘적벽부’(赤壁賦)다. “손님도 저 강물과 달을 아는가?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이 쉼 없이 흘러가나 아주 가버려 없어진 적은 없고, 달도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 저와 같으나 결국 줄거나 늘어나지는 않았네. 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천지도 일순간을 멈추어 있지 못하지만, 불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하다네. 그러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는가? (중략) 또한 천지간에는 만물에 각기 주인이 있어 만일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가져선 안 될 것이나,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만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보면 경치를 이루어 이를 가져도 막는 이 없고 써도 다 없어지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무한한 보배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겨야 할 것이라네.” 스무 살 무렵부터 ‘장자’를 애독하며 “이 책을 보고 마음을 얻었다.”던 그는, 이제 어떤 외물(外物)에도 얽매이지 않는 ‘거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사물을 사물로 대하고 사물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사물의 바깥에서 노닌다.”고 말하며,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적벽부’에서도 보이듯, 말년의 소식은 변화와 불변의 경계조차 자유로이 가로지르면서 초월적 경지조차도 초월한 듯이 보인다. 그는 이제 억지로 세간과 출세간을 분별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인연의 오고 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편안히 내맡길 따름이었다. ‘궁이후공’(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표현대로, 소식의 문장은 궁함을 통해 하나의 궁극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정옥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세계 美제전 40돌… 한국 빛낼 미인은 누구?

    세계 美제전 40돌… 한국 빛낼 미인은 누구?

    세계 5대 미인대회 가운데 하나인 ‘미스 인터콘티넨털’에 출전할 한국대표 선발대회가 서울신문 STV와 ㈜엠프레전트 등의 공동 주최로 오는 28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W호텔에서 열린다. ●5대 미인대회… 80개국서 참가 독일 WBO(World Beauty Organization)가 지난 1971년 베네수엘라 아루바 섬에서 미스 인터콘티넨털을 처음 개최한 이래 올해 40회를 맞는다. 2009년에는 벨라루스, 지난해에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렸다. 해마다 세계 80여개국에서 참가한 미녀들이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07년 미스코리아 서울 미 출신의 유한나(29)씨가 출전해 2위를 차지했다. ●올해부터 국내1위가 세계대회 본선 출전 지난해까지는 미스코리아 본선 진출자가 세계대회에 참가했으나, 올해부터는 한국대회의 1위 수상자가 세계대회 본선 무대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5월 18일 서울지역 예선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에서의 지역예선, 9일 열리는 파이널 예선대회를 통해 모두 32명이 선발된다. 지역 예선 1위는 서울 양예승(26·이화여대 대학원), 대구 이선민(21·대경대), 부산 정해리(25·캐나다 센테니얼대)씨 등이다. 이들은 오는 17일부터 4박 5일간 실시되는 중국 상하이의 합숙 전지훈련을 거친 뒤 28일 한국대표 선발대회에 참가한다. 특히 이번 대회는 중국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한국대회 상위권 입상자는 중국 후저우TV에서 제작하는 중국판 ‘엽기적인 그녀’로 알려진 드라마 ‘야만여우외전’에 주연급으로 출연하게 된다고 대회 관계자가 전했다. ●최종우승자 10월 스페인 본선 진출 이번 대회 최종 우승자는 상금 5000만원과 함께 10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세계 본선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영예를 안게 된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길섶에서] 미스 코리아/이도운 논설위원

    언제부터인가 나의 기억 속에서 잊혀 왔던 행사다. 바빠서,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의 눈치도 보여서. 안티 미스 코리아 페스티벌의 박옥희 추진위원장은 주례선생님인 이경형 선배의 부인이다. 올해는 달랐다. 꼭 관심을 가져야 할 두명의 후보가 참가했다. 지난해 정치부장 시절 인턴을 했던 L.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녀는 국회도 나가고, 검찰도 나가며 열심히 배웠다. 얼마 전 두 가지 기쁜 소식을 전했다. 하버드대학원에 합격했고, 미스 워싱턴 진으로 미스 코리아 대회에도 나간다는 것. 또 다른 후보는 정치부에 함께 근무했던 선배의 딸 Y이다. 어릴 때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미인인 엄마와 롱다리인 아빠를 닮았다. 이후 공직자가 된 아버지를 따라 해외를 많이 다녔는데 미스 남가주 선으로 뽑혀 대회에 참가했다. 오랫동안 미스 코리아들은 박제품 같았다. 부스스한 사자머리, 떡칠한 화장, 어색한 웃음, ‘초딩’ 말투… 이젠 달라졌다. 가장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딸들의 모습을 미스 코리아 대회에서도 보게 된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5집 앨범 낸 슈퍼주니어 “유럽·남미는 물론 평양서도 공연하고 싶어”

    5집 앨범 낸 슈퍼주니어 “유럽·남미는 물론 평양서도 공연하고 싶어”

    유럽, 남미, 미국은 물론 평양에서도 공연하고 싶어요. 전 세계가 ‘펄 사파이어 블루’로 덮이는 그날까지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룹 슈퍼주니어(슈주)는 4일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5집 발매 기자회견을 갖고 포부를 밝혔다. 펄 사파이어 블루는 슈주 상징 색이다. 한류 스타 인기를 입증하듯 회견장에는 AP, 로이터, 신화통신, 산케이스포츠 등 해외 30여개 매체 70여명이 몰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한 해외 팬들의 질문도 눈길을 끌었다. 멤버들은 지난해 발표한 4집 타이틀곡 ‘미인아’가 타이완 사이트 KKBOX의 ‘한국 음악 톱 100’에서 61주간 1위를 차지하는 등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은 결과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어 5집 타이틀곡 ‘미스터 심플’(Mr. Simple)도 해외에서 히트한 ‘쏘리, 쏘리’ ‘미인아’ 등의 연장선에 있다고 소개했다. 이특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희망과 에너지를 주는 노랫말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은혁은 “‘미스터 심플’이 ‘미인아’의 61주 1위 기록을 바꾸길 기대한다.”며 웃었다. 슈주 멤버들은 “히딩크 감독이 ‘아직 배고프다’고 했듯이 우리도 배가 고프다.”면서 “아직 이룰 게 많이 남았다.”고 입을 모았다. 5집 활동이 끝나면 이특과 희철 등 일부 멤버는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금감원 뒤에 숨은 금융위도 정책실패 책임져야”

    “금감원 뒤에 숨은 금융위도 정책실패 책임져야”

    “금융위는 뭇매 맞는 금감원처럼 정책 실패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민관 합동 금융감독혁신 태스크포스(TF) 민간위원직을 맡다가 정부 측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도중에 탈퇴한 김홍범(55)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금융감독원이 뭇매를 맞는 것은 당연하지만 금융위원회가 그 뒤에 숨어 정책실패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위가 저축은행의 적기 시정조치를 유예하는 권한을 과다하게 사용한 부분에 대해 예금보험공사(예보)의 사전 서면동의를 받는 등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말에 탈퇴했는데 자세한 논의 사항을 알고 있나. -오늘 국무총리실에서 발표한 ‘금융감독 혁신방안’에 내 이름이 민간위원으로 들어 있던데 사퇴한 사람을 넣은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6월 28일 8차 회의까지 참석했고, 6월 29일 마지막 회의는 TF의 논의 결과를 보고서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실무 논의엔 다 참석한 셈이다.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대책을 보고 느낀 점은. -금융위의 저축은행 정책 실패 책임이 온데간데없다. 금감원이야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하지만 금융위는 오히려 제재심의 권한을 환수해 장기적으로 권한과 조직을 강화하게 됐다. 금융위는 금감원을 지도 감독하는 것이 임무인데 감독 실패는 물론 적기시정조치 유예를 남발했다는 평가도 있다.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할 때 예보에서 사전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회의에서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대책은 상당히 약하다. →제재심의 권한을 금융위로 이관하는 것에 합의하지 않았다는 의미인가. -적어도 사퇴 전까지는 그랬다. 특히 제재심의 권한을 옮기거나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독립 기구로 두는 것은 중장기 과제다. TF는 단기적인 금융감독 혁신방안만 낼 뿐 장기적 비전은 도출하지 않기로 했었다. 하지만 제재심의위를 금융위로 옮기는 것을 정부위원들이 강력히 요구했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어디에 만들 것이냐라는 것은 전체적인 금융감독 체계를 논할 때 결정해야 할 문제다. →금감원의 관련 업무 종사 금지 기한을 5년으로 늘렸다. -취업제한대상을 2급에서 4급으로 확대하고 업무관련 업종 취업제한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것은 금감원 내부의 쇄신안이었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입사하지 않거나 이직이 심해질 우려도 있다. 금감원에서 5~6년만 종사하면 4급이 되기 때문이다.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논의 대상으로 나왔지만 금융당국의 독립성이 중요한 시점에서 공공기관 지정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칡 없는 칡냉면’ 식당·제조업체 무더기 적발

    ‘칡 없는 칡냉면’ 식당·제조업체 무더기 적발

    여름철 별미인 ‘칡냉면’에 칡을 전혀 넣지 않거나 함량을 속여 판 식당과 제조업체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광주지방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일 칡 함량을 속인 칡냉면 판매 식당 1곳과 제조업체 7곳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광주 서구의 ‘한천칡냉면’ 식당은 칡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업소 간판과 메뉴판에 칡냉면이라고 쓴 뒤 지난 2월부터 2개월 동안 2500그릇, 1500여만원 상당의 음식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충남 예산의 식품제조업체 ‘태성종합식품’은 칡을 전혀 넣지 않거나 2.79%만 사용하고도 칡냉면 제품에 ‘칡 5%’로 허위 표시해 2009년 4월부터 지난 7월까지 3만 1970봉지, 1억 2637만원어치를 팔았다. 이들은 칡과 같은 검은 색깔을 내기 위해 메밀이나 코코아가루를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청 측은 “칡가루는 찰기가 없어 1% 이상 넣으면 면이 끊어지기 쉬운데도 이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함량을 높게 표시한 식당과 이 식당에 납품한 제조업체를 집중 단속해 위반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4) 피살 20대 얼짱女,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4) 피살 20대 얼짱女,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2008년 11월 경기 화성시 송산면 우음도 갈대밭 옆 고속도로 공사장. 불도저로 갈대숲을 밀어내던 장모씨가 바닥에서 하얀 물체를 발견했다. 사람의 뼈였다. “여기는 원래 개펄이던 곳을 막아 생긴 땅인데…내가 남의 묏자리를 잘못 건드렸을 리는 없지. 그렇다면 누군가가 갖다 버린 시신이 백골로 변한 것인가?”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는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일명 ‘강호순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때. 연쇄살인의 네번째 희생자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흘러나왔다. 현장 수사팀에 경찰 최고위층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감식반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이미 백골이 돼 버린 시신 1구와 그가 입었던 속옷, 회색 윗도리에 운동복 바지, 수건 조각 2장이 전부였다. 시신을 옮기는 데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대형 가방도 눈에 띄었지만 단서는 되지 못했다. ● 뼈 추스려 162~170㎝ 여성 추정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일단 뼈의 크기와 모양을 보고 희생자를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추정했다. 키는 162~170㎝ 정도로 어림됐다. 여기서 잠깐. 사람의 뼈 중 외관만 보고 남녀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두개골과 엉덩뼈가 대표적이다. 남성의 두개골은 요철(凹凸)이 심하고 크고 길며 두껍다. 남성의 뼈가 전체적으로 여성보다 크고 단단하지만 두개골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러나 여성에게도 남성보다 강한 뼈가 하나 있다. 엉덩뼈다. 분만이라는 자연의 섭리 때문에 여성의 골반은 남성에 비해 튼튼하고 폭이 넓다. 사람의 나이는 아래턱의 각(角)과 위팔뼈, 넓적다리 관절 등을 보고 알 수 있다. 아래턱의 각은 귀 옆으로 볼 때 아래턱이 꺾이는 부분을 말한다. 보통 둔각(100~180도)을 이룬다. 흥미로운 점은 각도가 나이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는 각이 작아졌다가 노화를 거치며 다시 커진다. 갓 태어난 아이의 아래턱 각은 통상 170도이지만 배냇니가 빠질 때쯤 150도가 되고 영구치가 완성될 때면 100도까지 줄어든다. 이후에는 다시 커져 35세 110도, 55세 120도, 70세 130도를 평균적으로 기록한다. 키는 팔과 다리뼈 길이에 부위별로 상관계수를 곱해 산출한다.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대퇴골의 크기는 43.6㎝였다. 여기에 상관계수 3.9를 곱해 계산한 여성의 키는 약 170㎝(43.6㎝×3.9)였다. 그러나 요골, 척골, 비골, 경골 등을 통해 추론한 키는 이보다 작아 162~170㎝의 넓은 범위의 추정밖에 불가능했다. 이래 가지고는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가 아닌가. ● 강남 성형외과 572곳 뒤져 암담해하던 수사팀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부검의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수사에 얼마나 도움될지는 모르겠는데, 피해자의 광대뼈가 갈라져 있는 걸 보니 광대뼈 축소술을 받은 것 같아요.” 경찰은 서울 강남지역의 성형외과 572곳을 수소문했다. 어차피 전국의 모든 성형외과를 다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적중확률’이 높은 강남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병원들마다 ‘환자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아우성을 해댔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이후 광대뼈 축소수술을 받은 여성 1949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경찰은 2000명에 가까운 이들 모두에게 전화를 돌렸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 중에 백골의 주인이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웬걸. 연락 불통인 사람이 650여명에 달했다. 3명 중 1명꼴. 남 모르게 수술 받으려고 많은 사람이 가명을 쓴 탓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신과 신체적 특징이 비슷한 사람의 가족을 일일이 수소문해 DNA 일치 여부를 확인했다. 그렇게 꼬박 2개월이 흘렀다. 국과수에서 연락이 왔다. “DNA가 일치하는 가족이 나왔습니다.” 가족들은 이미 5년 전부터 죽은 여인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그래서 가출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백골의 주인은 유흥업소 종사자 A(당시 30)씨였다. 2006년 3월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병원에서 광대뼈 축소술을 받았다. 경찰은 A씨의 과거 동거남 고모(당시 33)씨를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렸다. A씨가 나가던 유흥업소의 단골손님이었던 고씨는 2006년 12월부터 살림을 같이 차린 것으로 파악됐다. 행적을 추적하던 경찰은 고씨가 중고차 매매상을 통해 그랜저XG 승용차를 팔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렵게 그랜저XG를 찾아 샅샅이 훑어냈지만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범행의 흔적을 지우려고 수십번을 닦았을 트렁크에 핏자국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마지막 희망은 시간이 지난 혈흔에 강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는 ‘루미놀’(luminol) 시험. 시약을 뿌리자 잠시후 기역(ㄱ)자 모양으로 발광현상이 나타났다. 시신을 담았던 가방에서 스며나온 피의 흔적이었다. DNA 감식 결과 A씨의 혈액으로 판명됐다. ● 미인에 대한 남자의 소유욕이 불러온 비극 고씨는 “우발적이었다.”면서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손님과 종업원으로 만났을 때 고씨는 A씨에게 팁을 아끼지 않았다. 한달 술값으로 무려 1억원을 쓰기도 했다. 아름답고 성격 좋은 A씨에게 잘 보이고 싶은 허세였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논현동 A씨의 원룸에 한 살림을 차렸다. A씨는 업소 생활을 접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A씨가 확인한 남자의 현실은 악몽이었다. 술집에 뿌렸던 돈은 사업투자를 빌미로 후배에게서 꾼 돈이었다. 극심한 채무변제 독촉과 협박이 이어졌다. 사랑이 파국으로 결딴난 것은 2007년 5월 어느날이었다. 생활비 문제로 시작한 다툼이 시작됐고 얼마 후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거칠게 밀쳐진 A씨는 머리를 벽에 부딪혀 많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고 고씨는 이런 그녀의 목을 졸랐다. 숨을 쉬지 않자 겁이 난 고씨는 시신을 가방에 넣어 무작정 화성 우음도로 차를 몰았다. 두 사람이 데이트 장소로 자주 찾던 곳이었다. 그렇게 남자는 사랑을 속삭이던 곳에 그의 사랑을 버렸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지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 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러운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벨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 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은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 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 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힌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러운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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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는 흔적을...(14)] 백골의 성형수술 자국이 살해된 여성의 한을 풀다

    2008년 11월 경기 화성시 송산면 우음도 갈대밭 옆 고속도로 공사장. 불도저로 갈대숲을 밀어내던 장모씨가 바닥에서 하얀 물체를 발견했다. 사람의 뼈였다. “여기는 원래 개펄이던 곳을 막아 생긴 땅인데?내가 남의 묏자리를 잘못 건드렸을 리는 없지. 그렇다면 누군가가 갖다 버린 시신이 백골로 변한 것인가?”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는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일명 ‘강호순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때. 연쇄살인의 네번째 희생자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흘러나왔다. 현장 수사팀에 경찰 최고위층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 백골이 일러준 작은 힌트 감식반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이미 백골이 돼 버린 시신 1구와 그가 입었던 속옷, 회색 윗도리에 운동복 바지, 수건 조각 2장이 전부였다. 시신을 옮기는 데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대형 가방도 눈에 띄었지만 단서는 되지 못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일단 뼈의 크기와 모양을 보고 희생자를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추정했다. 키는 162~170㎝ 정도로 어림됐다. 여기서 잠깐. 사람의 뼈 중 외관만 보고 남녀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두개골과 엉덩뼈가 대표적이다. 남성의 두개골은 요철(凹凸)이 심하고 크고 길며 두껍다. 남성의 뼈가 전체적으로 여성보다 크고 단단하지만 두개골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러나 여성에게도 남성보다 강한 뼈가 하나 있다. 엉덩뼈다. 분만이라는 자연의 섭리 때문에 여성의 골반은 남성에 비해 튼튼하고 폭이 넓다. 사람의 나이는 아래턱의 각(角)과 위팔뼈, 넓적다리 관절 등을 보고 알 수 있다. 아래턱의 각은 귀 옆으로 볼 때 아래턱이 꺾이는 부분을 말한다. 보통 둔각(100~180도)을 이룬다. 흥미로운 점은 각도가 나이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는 각이 작아졌다가 노화를 거치며 다시 커진다. 갓 태어난 아이의 아래턱 각은 통상 170도이지만 배냇니가 빠질 때쯤 150도가 되고 영구치가 완성될 때면 100도까지 줄어든다. 이후에는 다시 커져 35세 110도, 55세 120도, 70세 130도를 평균적으로 기록한다. 키는 팔과 다리뼈 길이에 부위별로 상관계수를 곱해 산출한다.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대퇴골의 크기는 43.6㎝였다. 여기에 상관계수 3.9를 곱해 계산한 여성의 키는 약 170㎝(43.6㎝×3.9)였다. 그러나 요골, 척골, 비골, 경골 등을 통해 추론한 키는 이보다 작아 162~170㎝의 넓은 범위의 추정밖에 불가능했다. 이래 가지고는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가 아닌가.   ▣ 광대뼈 수술한 20~30대 여성 찾기 암담해하던 수사팀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부검의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수사에 얼마나 도움될지는 모르겠는데, 피해자의 광대뼈가 갈라져 있는 걸 보니 광대뼈 축소술을 받은 것 같아요.” 경찰은 서울 강남지역의 성형외과 572곳을 수소문했다. 어차피 전국의 모든 성형외과를 다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적중확률’이 높은 강남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병원들마다 ‘환자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아우성을 해댔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이후 광대뼈 축소수술을 받은 여성 1949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경찰은 2000명에 가까운 이들 모두에게 전화를 돌렸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 중에 백골의 주인이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웬걸. 연락 불통인 사람이 650여명에 달했다. 3명 중 1명꼴. 남 모르게 수술 받으려고 많은 사람이 가명을 쓴 탓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신과 신체적 특징이 비슷한 사람의 가족을 일일이 수소문해 DNA 일치 여부를 확인했다. 그렇게 꼬박 2개월이 흘렀다. 국과수에서 연락이 왔다. “DNA가 일치하는 가족이 나왔습니다.” 가족들은 이미 5년 전부터 죽은 여인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그래서 가출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백골의 주인은 유흥업소 종사자 A(당시 30)씨였다. 2006년 3월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병원에서 광대뼈 축소술을 받았다. 경찰은 A씨의 과거 동거남 고모(당시 33)씨를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렸다. A씨가 나가던 유흥업소의 단골손님이었던 고씨는 2006년 12월부터 살림을 같이 차린 것으로 파악됐다. 행적을 추적하던 경찰은 고씨가 중고차 매매상을 통해 그랜저XG 승용차를 팔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렵게 그랜저XG를 찾아 샅샅이 훑어냈지만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범행의 흔적을 지우려고 수십번을 닦았을 트렁크에 핏자국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마지막 희망은 시간이 지난 혈흔에 강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는 ‘루미놀’(luminol) 시험. 시약을 뿌리자 잠시후 기역(ㄱ)자 모양으로 발광현상이 나타났다. 시신을 담았던 가방에서 스며나온 피의 흔적이었다. DNA 감식 결과 A씨의 혈액으로 판명됐다.   ▣ 미인에 대한 남자의 소유욕이 불러온 비극 고씨는 “우발적이었다.”면서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손님과 종업원으로 만났을 때 고씨는 A씨에게 팁을 아끼지 않았다. 한달 술값으로 무려 1억원을 쓰기도 했다. 아름답고 성격 좋은 A씨에게 잘 보이고 싶은 허세였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논현동 A씨의 원룸에 한 살림을 차렸다. A씨는 업소 생활을 접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A씨가 확인한 남자의 현실은 악몽이었다. 술집에 뿌렸던 돈은 사업투자를 빌미로 후배에게서 꾼 돈이었다. 극심한 채무변제 독촉과 협박이 이어졌다. 사랑이 파국으로 결딴난 것은 2007년 5월 어느날이었다. 생활비 문제로 시작한 다툼이 시작됐고 얼마 후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거칠게 밀쳐진 A씨는 머리를 벽에 부딪혀 많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고 고씨는 이런 그녀의 목을 졸랐다. 숨을 쉬지 않자 겁이 난 고씨는 시신을 가방에 넣어 무작정 화성 우음도로 차를 몰았다. 두 사람이 데이트 장소로 자주 찾던 곳이었다. 그렇게 남자는 사랑을 속삭이던 곳에 그의 사랑을 버렸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제이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런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밸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이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 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혀진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런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 무려 300회 미인대회 우승한 6살 소녀 화제

    무려 300회나 각종 미인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쥔 소녀가 화제에 올랐다.   소녀의 이름은 올해 6살의 에덴 우드. 에덴은 최근 미국의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토들러 앤 티아라’에 출연하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에덴은 엄마의 권유로 어릴 때부터 각종 미인대회에 참가해 상을 휩쓸며 300개의 타이틀을 얻었으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미인대회 은퇴의사를 밝혀 또다시 화제가 됐다. 에덴이 미인대회 같은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바로 엄마의 야심찬 계획 때문. 에덴의 매니저 역할도 겸하고 있는 엄마 미키 우드는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에덴을 음악, 상품, 캐릭터 인형 등으로 상품화 하는 ‘에덴 제국’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에덴이 단순히 미인대회 스타가 아닌 오프라 윈프리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엄마의 계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마디로 아이를 이용해 장사를 한다는 것. 현지언론은 “에덴은 어릴때 부터 각종 외모 지상주의 대회에 힐을 신고 화장하고 참여했다.” 며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건강한 여성으로 잘 클 수 있을 지 걱정된다.” 고 비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Q&A] “정치권에 오니 진보가 되더라”

    Q 누구를 통해 정치에 입문했나. A 손학규 대표가 통합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왔을 때 선배가 전북 지역 조직을 맡았다. 나에게 도와 달라며 손 대표의 책을 두고 갔다. 학생운동을 하다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붙잡혔다는 내용이 들어 있더라. 진정성 있는 사람 같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Q 손 대표의 측근으로 불리는데 부담감은 없나. A 난 손 대표와 가까운 국회의원, 참모들과 개인적 인연이 없다. 세력화가 아닌 개인적으로 교감을 나눈다. 측근이란 표현은 좋다. 그 사람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교감하는 것도 상당하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나은 방향으로 갈 것이란 확신도 있다. 나의 행보에 손해가 있다고 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Q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 어떤가. A 정치인들은 진정성이 없다. 매번 사람들의 어려움을 얘기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게 본인에게 유리한가를 판단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Q 본인은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A 공감하는 정치를 해야 살아남는다고 본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 특정 정당에 휩쓸리는 것, 개인 정치를 하는 것에 문제를 느끼는 내 또래들이 정치 주류를 이룬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Q 이념적 성향은 어떤가. A 정치를 하기 전에는 한번도 내가 진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치권에 오니 진보가 되더라. 대한민국 정치는 매우 보수화돼 있다. 민주당이 가장 애매하다. 더 진보로 가는 게 옳다. Q 대변인을 지냈다. 어떤 원칙으로 논평했나. A 적정 수준의 비판과 자기 주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적 성찰 없이 상대를 비방하고 폄하하는 건 당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공멸하는 것이다. Q 매형이 진보정당 연구소장, 형이 시민운동가라 야권 통합에 대한 느낌이 남다를 듯하다. A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 통합으로 가야겠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건 문제가 있다. 시점을 정해 2~3개월 야권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불가능하면 규정을 만들어 야권연대, 정책연합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가상 정당은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 Q 지난 4월 국회 사법제도개선특위에서 중도 하차한 이유는. A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검찰개혁소위에 있었는데 검찰의 권력을 견제할 공직수사비리처 신설 카드를 너무 쉽게 양보했다. 검경 수사권 개시는 국민 삶과 아무 관계가 없다. 기관 간 권리 다툼으로 허우적대는 사개특위는 본질이 왜곡됐다. Q 트위터에 ‘미래를 만드는 정치인’이라고 썼더라. 무슨 의미인가. A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기보다는 10년 뒤 비전을 내다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이춘석 의원은 ▲1963년 전북 익산 출생 ▲전북 남성고·한양대 법학과 ▲사법고시 30회 ▲군법무관 ▲원광대 법학대학원 석·박사 ▲취미:영화감상 ▲롤모델 정치인: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이념정체성은 진보이나 좌우 포용해 생활정치를 함) ▲좌우명:타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원칙은 타협하지 않는다. ▲혈액형:B형 ▲가장 자랑스러운 스펙: 익산 무변촌 1호 변호사 무료법률상담 ▲최근 읽은 책: 위험한 경제학(선대인 저, 외형적 성장의 위험)
  • 강원도 철원 폭포기행

    강원도 철원 폭포기행

    두 동강 난 이 땅의 과거를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강원도 철원입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긴장감이 흐르는 ‘접적지역’이었지요. 그러나 철원에 ‘분단’이란 무거운 주제만 있지는 않습니다. 특히 용암이 흘러가며 만들어 놓은 한탄강 주변 풍경은 정말 빼어납니다. 고석정이 맨 앞줄에 서고, 주상절리 위로 한탄강이 넘실대는 직탕폭포며, 추가령 구조곡의 백미인 순담계곡 등이 숨가쁘게 뒤를 잇습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어여쁜 매월대폭포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매월대폭포는 으뜸을 다투기보다 둘째의 온화한 이미지를 가졌습니다. 폭포를 품은 계곡을 오르다 보면 거창한 상차림보다, 작은 술병에 안주 두엇 올린 소반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걸 단박에 알게 됩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보다, 나만 품고 조금씩 꺼내 보고 싶은, 그런 곳인 게지요. ●철원엔 철원이 세 개다? 철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늘 헷갈린다. 철원의 정확한 위치가 도대체 어디인지 불분명해서다. 지명은 있되, 실체는 불분명하다. 거기엔 까닭이 있다. 철원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북녘땅을 연결하는 강원 북부의 교통 중심지였다. 그러다 휴전선이 그어지며 철원시가지도 남북으로 갈라졌고, 남측의 철원 땅 또한 민간인통제선 안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동송읍과 갈말읍에 각각 새 시가지가 세워졌다. 한 발짝이라도 더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었던 군청 등 관공서들은 갈말읍에 터를 잡아 ‘신철원’을 이뤘다. 행정의 중심지다. 옛 철원 땅과 가까웠던 동송읍은 ‘구철원’이 됐다. 민통선 이북, 보다 정확히는 북녘에 자기 땅이 있는 ‘철원 주민’들이 주로 모여 산다. 지역 경제의 중심지이자 사실상의 ‘철원’이다. 김미숙 철원군청 문화관광해설사는 “공무원 등 외지인들이 많이 사는 신철원에 견줘 엇비슷한 심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 TV 프로그램에 빗댄다면 ‘나는 철원사람이다.’쯤의 심정이겠다. ‘원철원’은 동송에서 북쪽으로 더 들어간, 민통선 너머의 땅을 이른다. 철원이 내주는 풍경엔 특징이 있다. 계곡이 평지에, 즉 발 아래 있다는 것이다. 들판 한가운데를 칼로 파낸 듯, 땅에서 푹 꺼져 높이 20~30m의 협곡을 이루고 있다.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평지를 파고 흐르며 주상절리로 가득찬 계곡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로 산사면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형성되는 여느 계곡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 덕에 자신이 딛고 선 발 아래로 거대한 계곡이 흐르는 묘한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용암이 흐른 흔적 가운데 첫손 꼽히는 경승지는 고석정이다. 고석정은 계곡 한쪽의 정자만 일컫는 표현이 아니다. 신라시대 진평왕이 “누각과 순담계곡 등 주변 계곡을 묶어 고석정이라 부르라.”는 ‘영’을 내린 이래 여태 그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고석정 앞의 물빛은 한 해에 네 번 바뀐다고 한다. 물 빛깔만이 아니다. 강변 풍경도 어제가 다르고, 내일이 또 다르다. 한탄강이 쉼 없이 지형을 깎아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철원은 한국전쟁을 통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모두 경험했다. 그 역사의 산증거가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승일교다. 길이는 120m. 김 해설사는 “1948년 북한에서 공사가 시작됐으나 절반가량 짓다 한국전쟁으로 중단됐고, 전후 땅 주인이 바뀌면서 1958년 나머지 절반가량이 한국 정부에 의해 완성됐다.”고 전했다.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남과 북이 함께 만든 다리인 셈이다. ●화산이 빚고 시간이 조탁한 풍경 승일교는 최근 조성된 트레킹로 ‘한여울길’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직탕폭포까지 4.88㎞ 구간을 돌아본다. 주상절리 등 용암이 흐른 흔적을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고석정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 주기도 한다. 직탕폭포는 ‘한국의 나이아가라’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 별명에서 얼마간의 조롱과 자조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여행객 가운데 열에 여덟아홉은 ‘한국의 나이아가라’를 본 뒤 ‘애걔’ 또는 ‘그럼 그렇지.’라며 실망감을 표시한다. 규모로 풍경의 깊이를 가늠하려 하기 때문이다. 직탕폭포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폭포의 자태와 만나는 곳이 아니다. 용암이 만든 주상절리가 그대로 폭포가 된 지형을 봐야 한다. 강물이 육각형의 주상절리 위를 넘실대며 넘어간다. 강변을 이루고 있는 돌들도 여느 곳과는 달리 거개가 주상절리들이다. 화산이 빚고, 시간이 조탁한 풍경이다. 철원의 관광지 가운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매월대폭포다. 근남면 잠곡리 복계산 자락에 있는 전형적인 계곡형 폭포다. 매월대는 복계산 정상의 40m짜리 층암절벽을 일컫는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비통해하며 전국을 떠돌았던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매월대와 사선으로 마주한 매월대폭포는 등산로 입구에서 500m쯤 떨어져 있다. 천천히 걸어도 30~40분이면 넉넉히 닿는다. 폭포로 난 계곡은 작고 소담하다. 고만고만한 돌들 위로 초록 이끼가 내려앉았고, 그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또르륵’ 굴러간다. 개다리소반에 맑은 약주 한 잔이 어울릴, 그런 풍경이다. 계곡에 들면 진한 초목의 향기가 풍겨 나온다. 이런 향기라면 세상 그 어느 유명 향수와도 바꾸지 않겠다. 폭포는 계곡을 닮았다. 작고 소담하다. 이리저리 물줄기를 휘돌리는 모양새가 앙증맞다. 폭포 앞 너럭바위는 앉아 쉬며 주변 풍경을 눈에 담기 맞춤한 곳이다. 머리 위 진초록 나뭇잎 사이로 암봉 하나가 옹골찬 자태를 드러낸다. 좀처럼 보이지 않던 매월대다. 뒤집어 보면 매월대에 서야 폭포 전경이 한층 또렷하게 보인다는 뜻일 터. 폭포와 암봉은 그렇게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글 사진 철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43번 국도→신철원사거리→고석정 순으로 간다. 차량 정체를 피하려면 파주와 전곡으로 우회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매월대폭포는 서면에서 신술터널을 지나 사곡리 쪽으로 가다가 오른편에 있다. 철원군청 관광문화과 (033)450-5365. ▲주변 볼거리 철원엔 평화전망대와 승리전망대 등 두 곳의 전망대가 있다. 남측 휴전선을 따라 만들어진 참호와 초소들이 만리장성처럼 능선을 넘는다. 월정리역과 제2땅굴, 노동당사 등 남북 대치의 상흔도 만나보는 게 좋겠다. 월정리역사 옆으로는 저 유명한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주인공이 서 있다.
  • 동안 피부엔 ‘고등어조림’…농식품부, 수산물 미인밥상 발간

    “예뻐지고 늘씬해지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수산물을 드세요.” 수산물을 이용한 건강요리 레시피를 담은 책자가 나왔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2일 20~35세의 여성을 위해 몸속까지 아름다워지는 똑똑한 뷰티 플래너인 ‘수산물 미인밥상’을 발간했다. 이 책은 ‘수산물 똑똑밥상’, ‘수산물 영재밥상’, ‘수산물 수능밥상’에 이어 우리 수산물로 만든 전문가 레시피를 담은 네번째 책자다. 농식품부는 “젊은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지나친 다이어트로 건강을 해치는 일이 많아 몸속부터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똑똑한 식생활을 제시하기 위해 이 책자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먼저 매끈하고 맑은 피부를 원한다면 구운 생선, 날치알 오이 초밥이나 생새우 된장찌개를, 피부트러블을 막으려면 땅콩드레싱 꽁치구이나 해산물 크럼블파이를 이용하라고 책자는 권장한다. 주름을 없애려면 황태양념비빔국수나 새우잡곡죽을, 동안 피부를 가지려면 고등어조림이나 직화생선샐러드를 자주 먹을 것을 조언한다. 탄력 있고 맑으며 투명한 피부를 가진 피부미인이 되기 위해서는 미네랄과 비타민 등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⑥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 ‘사랑의 전화’

    [독거노인 사랑잇기]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⑥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 ‘사랑의 전화’

    “비름나물 무칠 때는 초고추장 넣고, 설탕 대신 꿀을 조금만 넣으면 감칠맛이 나. 너무 많이 쓰면 굳으니까 적당히 넣어야 해.”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 콜센터 상담 직원인 정재은(41) 대리는 하루 업무를 홀로 사는 노인들과의 전화 통화로 시작한다. 결혼 10년 차 주부이지만 요리에는 도통 자신이 없었던 정 대리는 솜씨 좋은 조모(78) 할머니에게 콩나물밥, 된장찌개 등 요리법을 배우고 있다. “자원 봉사로 시작했는데 오히려 제가 얻는 게 많아요. 경험과 연륜이 풍부한 어르신들에게 삶의 지혜를 듣다 보면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싹 가십니다.” 전화 상담업무는 ‘감정 노동’이라고 한다. 불만이 많은 고객을 친절히 응대해야 하다 보니 힘들 때가 많은데 독거노인들과 수다를 떨면서 마음의 안식도 얻고 보람도 느낀다고 정 대리는 말했다. 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은 지난 1월부터 보건복지부의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경기 지역 독거노인 100명에게 일주일에 2번 정도 전화를 걸어 말벗을 해 드리는 자원봉사 활동이다. 정 대리는 6명의 노인들과 통화하고 있다. 다른 직원들이 보통 1~2명과 연락하는 것에 비해 많은 편이다. 처음에는 2명을 배정 받았지만 육아 휴직을 내거나 퇴사한 동료들이 전화 드리던 노인들까지 맡게 되면서 인원이 늘었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이에게 살갑게 전화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정 대리는 말했다. 매일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것이 직업인데도 두려웠다고 한다. 노인들의 반응도 차가웠다. 전화 금융사기(보이스피싱) 전화가 아니냐며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고, 전화 친구 해주는 대신 돈으로 도와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 2~3개월 정도 꾸준히 전화를 드렸더니 어르신들이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어요. 보통 3~5분 정도 통화하는데 한 할머니께서 ‘나한테 진심으로 말을 걸어주지 않는 것 같다.’며 섭섭해하셔서 마음을 터놓고 30분 넘게 통화한 적도 있습니다.”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려준다. 말벗 도우미인 콜센터 직원들은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서 매주 주는 참고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이 자료에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쌀을 판매하는 제도를 이용하는 법, 전기요금 지원 안내, 여름철 건강관리 요령, 녹내장·백내장 예방수칙 등 독거노인들이 스스로 챙기기 어려운 정보가 담겨 있다. 정 대리는 가끔 통화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어르신들은 팔, 다리, 허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세요. 그럴 때 진료비가 저렴한 동네 의원을 소개해 드리는데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 찾아가기 어렵다고 하실 때가 있어요. 제가 직접 모시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독거노인들의 궁핍한 생활도 걱정스럽다고 정 대리는 말했다. 대부분 기초생활 수급자인 독거노인들은 정부 보조금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탓에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재활용 폐품을 주우러 다니는 경우가 많다. “하루 종일 종이를 주워봤자 겨우 3000원을 번다고 해요. 어르신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정 대리가 연락하는 노인 한 명은 통화할 때마다 “내가 빨리 죽어야지.”라고 말한다고 한다. 젊은 세대에 짐만 된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것을 보고 젊은 청년이 안 좋게 이야기를 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것 같아요.” 정 대리는 “어르신이 1960~70년대 경제 발전을 위해 일하신 덕분에 오늘 우리가 잘살 게 된 거니 그런 생각 마시고 편히 계시라.”며 달랬다고 전했다. 우리은행 콜센터 직원들은 2003년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돕는 자체 자원봉사 조직인 ‘다사랑회’를 만들었다. 스스로 기부금을 모아서 지체장애아 보호시설인 맑음터에 정기 후원을 하고, 매년 서울 가양5동 복지관에서 김장을 담근 뒤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에게 직접 김치를 전달해 왔다. 이런 활동으로 지난해 우리금융지주 자원봉사부문 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거노인 사랑잇기에도 점차 많은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전체 직원 500명 중 100여명이 말벗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전용 시스템을 구축하면 올해 안에 모든 직원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은행 측의 설명이다. 콜센터 직원들은 자원 봉사이지만 오히려 노인들에게 배우는 점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인생 선배로서 현명한 충고를 해주고, 결혼 안 한 직원들에게는 외모보다는 됨됨이가 괜찮은 사람을 사귀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사이로 발전하다 보니 직원들에게도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정 대리는 20~30대 청년들이 독거노인 사랑잇기에 동참해서 이들의 고독과 아픔을 이해할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자기 자신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적인 문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르신들을 돕다 보면 세대차이도 줄어들고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봉소아(bonsoir) 마담(1)…「집시」의 김영희(金英姬·가명) 마담

    봉소아(bonsoir) 마담(1)…「집시」의 김영희(金英姬·가명) 마담

     「로코코」「갈릴레오」등「스탠드 바」시대가 가고「발렌타인」「가스라이트」등 「살롱」시대가 다시 한발 물러서듯 마담들의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이른바「칵테일 하우스」또는「스카치 코너」가 판을 치는 서울거리, 그만큼 새 얼굴들이 서울 밤을 빛내고 있다. 새술 새부대에 새마담의 얼굴을 찾아가 보자.  한국은행 뒤 조폐공사 골목을 따라 조선호텔 앞으로 빠지느라면 중간 지점쯤에「집시」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20단이 채 못되는 지하에로의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온통 백색의 벽과 천장이 우선 산뜻하다.  바닥에는 붉은 주단-. 아직 때가 배지 않아 한결 더 정갈하고 호화롭다.  작년 12월 1일 문을 열었다니까 이제 겨우 8개월째.「집시」의 주인은 김영희(金英姬·가명·28).  눈매가 아름답고, 입가에 맴도는 미소가 좀체로 사라질 줄 모른다. 누가 보아도 90점 이상을 거뜬히 줄 수 있는 수준급 미인임에 틀림없다.  『경험도 없이 시작했는데, 아직은 자신이 없어요』  커다란 에머럴드 반지가 반짝이는 손가락으로 흰 이(齒)를 살짝 가린다.  고향은 충남(忠南) 부여(扶餘). 그러나 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나왔기 때문에 고향의 추억은 남은 것보다 잊은 것이 더 많다고.  『여자란 으례(으레) 그렇지 않아요, 좀 이해해 주세요』  아름답든 아름답지 못하든 여자의 과거는 밝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김(金) 마담은 그 상식을 어기고 스스로 자기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스메타나」의「몰다우」강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김(金)마담은 쟁쟁한 사업가의 1남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대학을 음악과 3학년까지 다녔던 자기의 지난 날을 차근차근히 얘기했다.  『학교 다닐 때는 팝송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방송국에 나가 한때는 노래를 부른 적도 있어요』  모 라디오와 TV 방송국에서 잠시나마 연예활동을 했지만 그것은 수입 때문이 아니고 순수한 자기의 취미 때문이었다는 것.  김(金) 마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망설인다. 무엇 때문일까. 말 못할 과거의 어떤 대목이 부딪친 때문인가.  그 예측은 맞았다.  『대학교 3학년 될 때 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 두고 들어앉았어요···』  다시 말이 중단됐다. 음악도 동시에 멈추어졌다. 마담이라기에는 너무도 앳된 얼굴에 수줍음이 가득한 마담 초년병-.  『이혼을 했어요. 5년만이었어요』  역시 그랬었다.  미모-결혼-파탄-술집 마담. 그런 공식이 김(金) 마담에게도 적용되고 말았던 것이다.  결혼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영업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에는 오히려 담담하다.  『여자 나이 스물여덟에 아직 결혼을 안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이 기회에 툭 털어놓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한강에 있는「리버뷰」맨션에서 5살짜리 아들과 3살짜리 딸 남매를 데리고 세식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식들의 나이는 어리지만 가장(家長)의 어깨는 역시 무겁다.  이혼한 뒤 1년 동안 마음의 갈피를 못잡던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하며 유람과 낭만의 상징인「짚시」라는 간판을 달았을 때 그는 비로소 정착자의 안도감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실내장치는 모두 김(金)마담이 직접 했다. 4인용 테이블 6개, 6·7명용 별실이 3개, 카운터에는 둥근 의자가 10개, 벽에는「실비아」인가 하는 프랑스 샹송 가수의 사진과 이른바 예술사진이라는 어느 누드 모델의 멋진 폼이 도사리고 있다.  『손님들은 대개 먼 곳에서 오는 분들이 많아요』  먼 곳이란 서울 중구 소공동(小公洞) 이외의 지역을 말한다.  무역회사 증권회사 은행 등 각종 기업체 사무실이 즐비하게 들어선 소공동(小公洞), 그 한복판에 자리잡은 스카치 코너「집시」에는 웬일인지 소공동(小公洞) 손님보다는 다른 곳 손님들이 많이 온다는 것.  아침 9시에 문을 열면 우선 찾아드는 것은 코피 손님들, 이 때는 소공동(小公洞) 손님들이 대부분 자리를 메운다.  11시부터 3시까지는 경양식 시간.  젊은 아베크족들이 시원한 에어컨디션 바람과 라틴 뮤직을 찾아 몰려든다.   저녁 6시부터「집시」는 본격적인 자기 기능을 나타내는 게 된다.  김(金)마담의 지휘로 움직이는 종업원은 남자 6명, 여자 5명, 여자는 모두가 웨이트리스, 일반 살롱의 호스테스와는 그 기능이 조금 다르다.  『그렇지만 서비스만은 아주 친절해요』  역시 장사 때문인가. 김(金) 마담은 자기 집 웨이트리스들의 미모와 재치와 친절을 무척 내세우고 있다.  술값은 보통 3백원에서 5백원정도(스카치 1잔).물론 나폴레옹 꼬냑 같은 것은 1잔에 1천3백원까지 받기도 한다.  『대개는 스카치 3,4잔 마시고 가요』  1인당 1천5백원에서 2천원 정도 마시고 자리를 뜨는 손님이 대부분. 그러나 개중에는 처음부터 병으로 시켜 놓고 3,4만원의 매상을 올려 주는 손님도 있다고.  「집시」에서의 김(金) 마담의 역할은 다양하다. 주방 감독에서 술값 계산, 주문과 안내, 그리고 서비스, 그 가운데 주 업무는 역시 서비스다.  주인 마담이자 유일한 호스테스이기도 한 그는 싫고 좋은 감정을 덮어둔채 어느 손님 테이블에든 한번씩은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  여러 층의 손님들에게 한결 같이 웃음으로 대해야 하는「집시」의 얼굴 김(金) 마담은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소공동(小公洞) 의 한 모퉁이를 지키고 있다.  <宰> [선데이서울 73년 7월22일 제6권 29호 통권 제249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장미인애 비키니 시스루…”군살없는 몸매는 살짝”

    장미인애 비키니 시스루…”군살없는 몸매는 살짝”

    장미인애 비키니 몸매가 공개돼 화제다. 배우 장미인애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수영복 패션을 공개한 것. 장미인애는 최근 자신의 미니홈피에 핑크빛 비키니와 화이트 시스루 비치웨어를 입은 사진을 선보였다. 흰 깃털을 모아 붙인 듯한 시스루 비치웨어는 깃털 사이사이로 장미인애의 군살없는 S라인 몸매가 비틴다. 해수욕장에서 바람 부는 강도에 따라 살짝 열렸다 닫혔다 하기 때문에 더욱 섹시함을 드러낼 수 있을 듯. 장미인애는 연예활동 외에 쇼핑몰 ‘러브제이’를 운영하고 있어 직접 비키니 수영복 모델로 나섰다. 이번에 선보인 비치웨어 ‘india cover’는 시스루 스타일의 니트 비치웨어로 비키니만으로는 부담스러운 여성들을 겨냥한 상품이다. 장미인애 비키니 몸매에 네티즌들은 ‘숨겨도 명품몸매 역시 장미인애’, ‘단단해 보이는 하체 부럽다’, ‘그래도 비키니가 좋아’ 등 뜨거운 반응을 나타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테마로 보노 공직사회] 퇴직 공무원 3인의 인생2막 “난, 이렇게 휴먼캐피털 됐어요”

    [테마로 보노 공직사회] 퇴직 공무원 3인의 인생2막 “난, 이렇게 휴먼캐피털 됐어요”

    “5~6살짜리 어린아이들도 1년만 열심히 가르치면 한자능력검정시험 8급에 거뜬히 붙습니다. 얼마나 쏠쏠한 재미인지 몰라요.” 전직 국어 교사였던 정광조(67)씨는 동네인 경기 고양시 삼송동 노인정에서 1주일에 1시간씩 유치원생들에게 한문과 생활예절을 가르친다. 2006년 은퇴한 후 벌써 3년째다. 매주 수요일엔 초등학교 1~2학년이 대상이다. 공무원연금공단과 퇴직교원단체가 병행 지원하는 저소득층 자녀 학습지원 프로그램이다. 이와 별도로 1주일에 2번씩 서울 청운양로원에서 한글과 한문, 교양강의를 나간다. 이렇게 교사 경험을 활용해 봉사 겸 소일거리를 하면서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활동비조로 매달 10만원씩 받는다. 정씨는 “일을 그만두고 마냥 노는 게 아니라 맹자의 삼락(三)처럼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법원 공무원 출신인 류인형(64)씨는 2007년 퇴직한 뒤 개인 법무사 사무실을 냈다. 지난해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대전지부에서 ‘퇴직 공무원들을 위해 법무 상담 좀 해 달라.’는 추천을 받고선 흔쾌히 승낙했다. 한 달에 1~2번 대전지부 사무실로 직접 발걸음을 하거나 전화상담도 받는다. 부동산 등기부터 상속, 경매 등 물어오는 분야도 다양하다. 류씨는 “내가 아는 한도껏 도와주면 다음 상담 때 또 오는 사람들도 많다. 무료 법률상담을 해 주는 기관은 꽤 있지만 퇴직 공무원이 상담자로 나서는 곳은 별로 없다.”면서 “내 전문경험을 활용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사회적인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전했다. 2005년 춘천 우체국에서 3급으로 퇴임한 박상운(63)씨는 5년째 춘천 호스피스 시설인 기쁨의 집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말기 암 환자들이 모인 이곳에서 그는 우편 업무와 전혀 관련없는 봉사를 제2의 인생으로 택했다. 20대 때 십이지장궤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을 계기로 긴 시간 찬찬히 ‘퇴직 이후’를 준비했다. 박씨는 “공무원 생활 38년이 나와 가족, 나라를 위해 일한 시간이라면 은퇴 후는 내 곁의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시간은 정규직과 비슷하지만 차량운행비 같은 실비만 받는다. 38년간 공직에서 봉사한 덕분에 받는 200만원대 후반의 연금이 든든한 후원자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사회참여를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었일까. 3명 모두 “공무원 때와는 어떻게 다르게 가치 있게 살지 미리부터 모색해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적어도 퇴직 5년 전부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연금 이외 경제적인 부족분은 어떻게 메울지 꼼꼼히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반면 퇴직을 2~3년 앞둔 50대 초반 실장급 공무원은 “우리 세대는 은퇴 이후를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하진 않았다. 전관예우에 기대 쉽게 재취업할 수 있었던 측면도 크다.”고 전한다. 그러나 호시절은 가고 앞으로 전관예우 관행이 엄격히 다뤄질 만큼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될 시점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내가 보톡스를?” 메간 폭스 ‘NO 성형’ 인증

    “내가 보톡스를?” 메간 폭스 ‘NO 성형’ 인증

    메간폭스 인증샷이 화제다. 데뷔 직후부터 성형설에 시달려온 섹시 스타 메간 폭스(25)가 ‘인증 사진’으로 루머를 반박했다. 영화 ‘트랜스포머’ 1, 2편으로 스타덤에 오른 폭스는 7일 페이스북에 직접 촬영한 자신의 사진 4장을 올려 일각에서 제기한 성형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에서 폭스는 이마를 잔뜩 찌푸려 주름을 한가득 만들기도 했으며,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손으로 입술을 가리키며 보톡스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을 부정했다. 사진과 함께 그녀는 “보톡스를 맞았다면 이렇게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폭스는 완벽한 S라인과 매력 넘치는 미모로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배우’로 거듭났지만, 덕분에 성형미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폭스는 지난해 패션매거진 ‘알루어’와 한 인터뷰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적이 절대 없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성형수술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미리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며 성형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할리우드에서 인증으로 성형 루머를 직접 반박한 건 폭스가 처음이 아니다.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여주인공 테리 해처 역시 필러주사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자 2010년 8년 직접 사진을 올려 자연미인임을 ‘인증’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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