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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리트형 상가 상승세... ‘대전의 홍대’에 新 랜드마크 관심

    스트리트형 상가 상승세... ‘대전의 홍대’에 新 랜드마크 관심

    최근 국내 상가시장에서 스트리트형 상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쇼핑 동선도 편리하고 문화 및 휴식공간이 어우러진 스트리트형 상가는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아 투자자와 임차인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분양시장 분위기 속에 ‘대전의 홍대’로 불리는 유성 봉명동 신상권에도 대형 복합상가 매드블럭이 들어선다. 이 상가가 들어선 봉명동 상권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는 지역으로, 최근 도시형 생활주택이 늘어나면서 유동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매드블럭은 공원과 상가가 연계된 스트리트몰로 쇼핑부터 클럽, 락볼링장, 멤버십 클럽이 모두 존재하는 특별한 MD구성을 통해 대전을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지상 3층까지 에스컬레이터와 상가 내부 오픈형 계단을 설치해 상가 2, 3층의 접근성을 높였다. 이 상가는 둔산, 유성, 세종 상권축의 중심에 위치하며 반경 5km내 7개 대학이 있어 주중과 주말, 주간과 야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스트리트형 상가의 1~2층은 라이프 플레이스로 패션부터 뷰티, 식음료, 미용실 등 다양하게 채워지고, 3층은 대학생은 물론 가족 단위 고객까지 사로잡는 패밀리 플레이스로 구성된다. 이와 더불어 4층은 액티브 플레이스인 락볼링장, 5층은 펍과 라운지가, 6층은 최고의 고객을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이빗한 클럽 공간인 멤버십 플레이스로 구성된다. 매드블럭의 외부 공간에는 녹지공원이 조성돼 만남의 장소, 이벤트 등의 활용도 높은 공간으로 지역 내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분양 관계자는 24일 “인기를 얻고 있는 스트리트형 상가가 대전의 신상권인 신로데오거리에 들어옴은 인근 주민이나 소비자들은 물론, 투자를 염두에 두고있는 투자자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드블럭은 분양홍보관은 유성구 봉명동에 위치해 있으며 140실의 공급점포로 분양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문은 잊지 않았다 5년 전 너의 도둑질

    지문은 잊지 않았다 5년 전 너의 도둑질

    2011년 5월 경남 김해의 한 목욕탕에 든 도둑이 금고에 있던 현금 10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경찰은 현장에서 도둑의 지문을 찾았지만 경찰청 지문검색시스템엔 동일한 지문이 없었다. 해당 사건은 미제사건이 됐다. 하지만 5년 뒤인 올해 초 경찰은 피의자 김모(22)씨를 검거했다. 당시 채취했던 지문을 다시 검색했고, 동일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범행 당시에는 17살이었지만 이듬해 주민등록증을 만들면서 지문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는 바람에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미제사건의 범죄자 지문을 지문검색시스템으로 재검색해서 해결한 미제 사건이 500건을 넘어섰다. 시작한 지 7년도 안 된 신생 수사기법이지만 완전범죄는 없다는 것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 경찰 내부의 평가다.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7월까지 ‘미제사건 현장지문 재검색 사업’으로 미제사건 528건이 해결됐다. 총 4285건의 미제사건 범죄자 지문을 재검색해 1861명의 신원을 확인했고, 이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한 결과다. 범죄자를 잡은 미제사건 중 절도가 318건(60.2%)으로 가장 많았고 성폭력 135건(25.6%), 강도 69건(13.1%), 살인 6건(1.1%) 순이었다. 올해에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베테랑 지문 감정관 5명이 투입됐다. 지문 재검색으로 검거한 범죄자들은 대부분 미성년자나 외국인이다. 범죄 당시에는 미성년자였지만 주민등록증을 만들면서 열 손가락의 지문을 모두 등록하게 된다. 2011년 9월 경남 창원의 한 미용실에서 절도를 저지른 조모(당시 14세)씨도 지문 재검색으로 지난 5월 검거됐다. 외국인의 경우, 단기체류자는 지문을 등록하지 않지만, 장기 체류자(3개월 이상)는 열 손가락의 지문을 등록한다. 2010년 11월 서울 구로의 한 편의점에서 칼을 들고 종업원을 위협한 중국 동포 장모(37)씨의 경우 한국과 중국을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 지문을 등록하게 됐고, 지난 3월 검거됐다. 사실 지문검색시스템이 자동으로 완벽하게 같은 지문을 찾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퍼즐 맞추기’에 가깝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특히 지문의 일부만 발견된 ‘부분 지문’(쪽지문)의 경우 지문의 흐름, 각도 등 특이점을 찾아낸 다음 여러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좌표값을 찾아야 한다. 이후 지문의 전체 그림을 유추한 뒤 후보군과 일일이 대조한다. 장철환 현장지문감식팀장은 “과학기술도 필요하지만 그림(지문)을 해석하는 능력이나 영감을 동원해 보이지 않는 부분을 추정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완전범죄는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19년만에 짜장면 처음 맛 본 ‘축사노예’ “세상 최고 음식”

    19년만에 짜장면 처음 맛 본 ‘축사노예’ “세상 최고 음식”

    악취가 진동하는 축사에 딸린 쪽방에서 생활하며 19년동안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지적장애인 고모(47)씨가 꿈에 그리던 어머니, 누나와 극적으로 재회한 지 꼭 한 달이 됐다. 극적으로 가족의 품에 안긴 고씨에게 지난 한 달의 ‘바깥 세상’은 꿈만 같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그는 가혹행위를 당하며 강제노역에 내몰렸던 축사 생활의 악몽을 뇌리에서 지워가며 점차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세상을 향해 꼭꼭 닫아걸었던 마음의 문도 서서히 열어가고 있다. 지난 한달 고씨는 분주하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고, 음식점에서 외식을 했으며, 장날 전통시장을 구경했고, 선풍기 바람을 쐬며 TV를 시청했다. 이 모든 것이 19년 만에 누리는 ‘호사’다. ‘축사 노예’ 시절에는 감히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일이다. 일반인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6.6㎡ 쪽방 생활을 하며 철저히 바깥세상과 단절됐던 고씨에게는 남달랐다. 고씨는 얼마전 고종사촌 김모(63)씨와 함께 세종시 조치원읍 시장을 구경했다. 조치원은 고씨가 사는 청주 오송에서 차량으로 20분이면 넉넉하게 갈 수 있는 곳이다. 고씨는 시장에 나온 떡, 통닭 등 푸짐한 음식과 다양한 공산품을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장은 인파로 북적였지만, 고씨는 낯선 사람을 보고 더는 달아나지 않았다. 지난달 오창읍 축사에서 발견됐을 당시만 해도 극심한 불안감과 대인 기피 증세를 보였던 그였다. 김씨는 이날 고씨를 미용실에 데려갔다. 깔끔하게 이발을 마친 후에는 중국 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19년 만에 짜장면을 처음 맛봤다는 고씨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며 순식간에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지난달 28일에는 고씨 혼자 버스를 타고 조치원에 가 약국에서 종합 감기약을 지어 오기도 했다. 이른 아침 갑자기 사라진 고씨를 찾느라 마을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지만, 감기약을 사서 아무렇지 않은 듯 집으로 돌아온 그를 본 주민들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반겼다. 귀향 한 달의 심경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가자 고씨는 안방에서 TV를 시청하다가 수줍게 웃으며 취재진을 맞았다. 고씨의 어머니(77)와 누나(51)도 밝은 표정이었다.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던 고씨는 방에서도 양말까지 챙겨 신은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볼썽사나운 몰골을 하고 있던 축사에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누나는 “동생이 마을 슈퍼마켓에서 담배를 많이 사다 피운다”며 고씨를 걱정했다. 말수가 거의 없는 고씨였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 행복하다는 감정 표현만은 분명히 했다. 감자탕, 오리백숙 등 한 달 동안 먹었던 음식을 열거한 그는 “어머니에게 짜장면을 사주고 싶다”고 말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고씨가 인사성이 밝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김모(80·여)씨는 “동네 산책을 자주 하고, 마을회관에도 가끔 찾아와 어르신들과 어울려 복숭아를 맛있게 먹고 가곤 한다”고 전했다. 고씨 가족을 돌보고 있는 고종사촌 김씨는 “육체적, 심리적 상태 모두 한 달 동안 몰라보게 좋아졌다”면서도 “실종됐던 19년동안 가족의 보살핌을 받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인지능력이 좋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난 1997년 여름 천안 양돈농장에서 일하다 행방불명된 고씨는 소 중개인에 의해 청주시 오창읍 김모(68)씨 축사로 와 강제 노역했다. 고씨는 지난달 12일 축사를 뛰쳐나왔다가 경찰에 발견돼 김씨의 축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찰의 도움으로 지난달 14일 19년간 생이별한 칠순 노모, 누나와 극적인 상봉을 했다. 경찰은 지난 8일 고씨를 강제노역시킨 혐의(중감금) 등으로 김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부인 오모(62·여)씨는 구속했다. 연합뉴스
  • [월드피플+] 일란성 세쌍둥이 모델’똑같지만 더 똑같게’

    [월드피플+] 일란성 세쌍둥이 모델’똑같지만 더 똑같게’

    로라 크리민스, 니콜라 크리민스, 그리고 앨리슨 크리민스는 일란성 세 쌍둥이다. 일란성 세 쌍둥이는 백만분의 1 확률로 나올까말까 할 만큼 그 자체로 희귀한 출생 배경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것도 모자라는지 사소한 부분까지 더욱 똑같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10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모델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세 쌍둥이의 특별한 삶과 사연을 소개했다. 28인치의 허리 사이즈, 34인치 가슴 사이즈, 54kg의 몸무게, 165cm의 키 등 몸매의 똑같음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같은 손톱 관리를 받는다. 같은 화장품, 같은 피부관리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몸속 내부까지 같아지도록 하기 위해 세 샤람은 아예 늘 같은 음식을 먹는다. 로라는 "우리는 서로 더욱 닮아지기 위해 상대방의 생활습관까지 유심히 관찰하고 아침, 점심, 저녁 메뉴까지 같은 걸로 먹고 있다"면서 "충분히 만족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앨리슨 역시 "쌍둥이 모델로 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모만 비슷함을 뛰어넘어 많은 것을 똑같도록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엄격한 식단을 꾸리며 먹다가 하루 마음놓고 먹는 날을 정하면 세 사람이 똑같이 피자를 먹는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세 쌍둥이 모델 일을 시작한 것은 16살 때였다. 10살 때부터 여러 모델에이전시에서 러브콜을 보냈을 정도로 일찌감치 주목받아왔다. 6년 동안 꾹 참고 기다렸다가 16살이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패션쇼 등의 모델은 물론, 각종 기업 광고모델, 복권 홍보대사 등으로 활발히 TV와 언론매체 등에 나오며 주목받고 있다. 그 결과 세 쌍둥이는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자매' 리스트에 늘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수천 명의 팬들까지 거느리고 있다. 니콜라는 "세 자매가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도 좋고 늘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혼술·혼밥족’ 늘며 편의점·패스트푸드↑…술집은 폐점 속출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이른바 ‘혼술족·혼밥족’이 늘면서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 술집은 줄어드는 등 생활밀접업종의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11일 국세청의 사업자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30개 생활밀접업종에 종사하는 사업자 수는 약 146만6천921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2.1% 늘었다. 증가 폭이 가장 큰 업종은 편의점이다. 편의점 사업자 수는 3만2천96명으로 작년보다 11.6% 늘어났다. 패스트푸드점 사업자 수도 3만2천225명으로 3만명을 돌파하며 지난해 5월보다 7.5% 증가했다. 이는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술족과 혼밥족이 증가함에 따라 해당 업종의 관련 매출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편의점의 저녁 시간대 매출이 맥주·소주 등 주류와 라면, 도시락, 간편식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또 요식업종에서 결제할 때 나 홀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수년째 크게 상승하고 있다. 세종시는 편의점(34.5%)과 패스트푸드점(36.7%) 사업자 증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정부청사 이전에 따라 공무원 등 1인 가구 유입이 컸던 영향으로 보인다. 이렇듯 혼자서 끼니와 음주를 해결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는 가운데 지난해 5월 6만1천243명에 달하던 일반주점 사업자 수는 올해 5월 5만8천149명으로 1년 새 5.1% 줄었다. 일반주점 사업자 수의 감소세는 인천(-8.0%), 경기(-7.6%), 서울(-7.3%) 등 수도권에서 두드러졌다. 혼술족들은 식당이나 술집보다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5월에는 부동산중개업소(8.4%)도 크게 늘었다. 작년 아파트 등 주택시장 활황으로 부동산 거래가 늘어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이 밖에 실내장식가게(9.3%), 제과점(5.0%), 과일가게(4.9%), 미용실(4.8%) 등 의 업종 사업자 수가 늘었다. PC방(-6.1%), 식료품가게(-4.7%), 문구점(-3.8%) 등은 감소했다. 연합뉴스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고갯마루 정감 품은 벽돌 외벽…고급진 연희동 닮은 연보랏빛…골목길 동선에 맞춘 지그재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고갯마루 정감 품은 벽돌 외벽…고급진 연희동 닮은 연보랏빛…골목길 동선에 맞춘 지그재그

    한국 아파트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 관점 중 하나는 거리형과 단지형 간의 대립과 복합이라는 구도다. 이것은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가 주변 지역, 특히 거리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배경으로 한다. 상가 아파트는 거리형 아파트의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길에 면한 건물의 저층에 주거 보다는 상가를 넣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저층부 거주 환경이 더 좋은 단지형에서 상가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 상가동을 따로 두는 방식으로 해결하지만 예외가 있다. 즉 거리형과 단지형이 복합된 경우다. 대표적으로는 이미 소개했던 반포 주공 1단지(1974)나 앞으로 소개할 동부 이촌동 한양맨션(1971) 등이 그렇다. 둘 다 대규모 단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단지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고은 아파트, 연화 아파트, 그리고 홍파 아파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 모래내로 고개에 이름도 예쁜 고은 아파트 무악재를 따라 놓인 통일로는 홍제동을 둘로 나눈다. 지난번에 소개한 유진 상가, 원일 아파트, 안산 맨숀은 모두 통일로 북동쪽, 즉 인왕산 쪽의 홍제동에 있다. ‘고은 아파트’가 있는 곳은 통일로 너머 반대쪽, 즉 안산 쪽 홍제동이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과 무악재역 사이에 있는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모래내로에서 답사가 시작된다. 안산 중턱을 가파르게 경사져 오르다가 다시 홍제천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그 고갯마루에 이름도 예쁜 고은 아파트가 있다. 외벽이 벽돌로 된 정감 있는 건물이다. 1975년 6월 17일에 사용승인을 받았고 2개 동 139가구의 오붓한 단지형 아파트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가동과 나동의 2개 동 중 상가가 있는 것은 가동이다. 전면 도로를 따라 건물이 ‘ㄴ자’로 꺾여 있는데 그 부분에 상가가 있다. 상가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세탁소, 실버용품 상점, 염색 전문점, 신발 가게, 전자제품 상점 등 일상적인 삶을 위한 가게들이다. 마침 그 앞은 버스 정류장이다. 아파트단지 주민뿐 아니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쉽게 상가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인접한 광산 아파트가 역시 소규모 단지형 아파트이면서도 가로에 일체의 상가가 없는 것과는 대조된다. 벽에는 ‘고은 아파트’라고, 관리실에는 ‘고은 맨숀’이라고 씌어 있어서 이 당시 두 단어가 서로 약간의 긴장감을 이루며 함께 사용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일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모래내로라는 정식 도로명 대신에 화장터길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찾아보니 고은 아파트 고갯마루 바로 아래에 홍제동 화장장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세워졌으나 점차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1970년 9월 1일 경기도 벽제로 이전한 ‘시립장제장’이 바로 그것이다. 화장장이 있던 시절에는 인근 안산의 나뭇잎에서 그을음이 묻어났었다고 하니 인근에 공동 주거가 들어서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고은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1975년으로 이미 화장터가 옮겨간 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새로운 지역에 일어나는 변화 뒤에는 항상 이렇게 사연이 있다. # 네 그루의 가로수가 리듬 맞춘 연화아파트 상가아파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종종 이런저런 제보를 받는다. ‘연화 아파트’도 그런 경우였다. ‘1970년대 지어졌고 이전에는 고급이었던 상가아파트가 연희 삼거리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고은 아파트에서 모래내로를 타고 오면 자동차로는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다. 연희동의 중심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연희로와 증가로인데 이 두 길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연희 삼거리다. 연화 아파트가 이 삼거리 북쪽 증가로 변에 들어선 것은 1975년 12월 6일이었다. 안산 너머의 고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난 지 약 반년 후의 일이었다. 연희동은 원래 조선 시대 이궁의 하나였던 연희궁이 있던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연가구학교 자리로 전해진다. 궁은 사라졌지만 그 존재는 거기서 다소 떨어진 궁동산(宮洞山)이라는 이름에 아직 남아 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수복하는 과정에서 치른 저 유명한 연희 104고지 전투가 벌어진 바로 그 산이다. 연가구학교 신촌 캠퍼스가 있어 이전부터 학생 인구가 많았고 또한 한국한성 화교중학교의 존재로 짐작할 수 있듯이 화교 인구도 상당하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교수, 외국인 등을 위한 고급 주택지가 많은 것도 연희동의 큰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서울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약간의 이국적 분위기가 감도는 고급 동네, 이것이 연희동의 일반적인 이미지다. 그러면서 상업과 주거가 적절하게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맛집 거리, 사러가 쇼핑 등의 존재가 이를 입증한다. 연화 아파트는 이러한 연희동의 다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의식하고 자리잡은 것 같은 모습이다. 비록 세월의 무게가 다소 내려앉았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가로의 스케일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 적절한 높이와 폭, 보행자의 접근을 최대로 배려한 1층 상가, 정갈하고 차분한 외관. 특히 일반적으로 건물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저 연보라색이 주는 독특한 느낌까지. 한마디로 참 깔끔한 아파트가 아닐 수 없다. 의도인지 모르지만 증가로변 정면의 가로수 네 그루는 마치 건물과 함께 리듬을 맞추는 것 같다. 정면에서 보면 그냥 단독 건물처럼 보이지만 연화 아파트도 엄연히 배치상으로는 단지형이다. 다만 한 동이 ‘ㄱ자’로 구부러지면서 마당을 품고 있는 형태다. 마당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포니 1이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린 것이 바로 다음해 초인 1976년 1월 26일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계획을 한 셈이다. 총 38가구의 매우 아담한 연화 아파트는 지상 5층, 지하 1층 건물이다. 현재 가로에 면한 지하실은 미용실로 사용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방공대피시설 안내판이 아직 붙어 있다. 평수 16평, 수용인원 96명, 심지어 관리 책임자의 이름도 보인다. 이런 안보 관련 시설들을 둔감한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많으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남침 땅굴 발견,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들이 이 무렵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시설의 필요성은 당시로서는 현실이었다. 민간의 공동 주거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 태권도장? 주차장? 홍파아파트 지하 정체는 이 연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거리형 상가아파트는 특정 지역 몇 군데에 몰려 있다. 충정로를 포함한 서대문 일대가 그렇고 홍제동이 또한 그렇다. 나중에 소개할 용산 지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물론 사대문 안에도 여러 개가 존재한다. 반면 이 패턴에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동대문에서 한참을 더 간 제기동 길가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홍파 아파트’가 그런 경우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파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제기로를 따라 고려대 쪽에서 접근하면서 보면 홍파 아파트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면이 강조된 디자인이지만 한쪽 면이 좀처럼 보기 드문 ‘지그재그’ 형이다. 꺾이는 곳마다 창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형과 실내 공간 계획을 정확히 일치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건물 주변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홍파 아파트의 정면은 제기로라는 넓은 도로지만 그 측면은 좁은 골목길이다. 서쪽 골목길은 제기로 13길로 불리는데 이 길은 45도 방향으로 비스듬히 나 있다. 이 골목길에 아파트의 배치를 맞추다 보니 지그재그형의 특이한 조형이 나온 것이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파트가 주변 지역, 특히 좁은 도로와의 관계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몸을 만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면뿐 아니라 골목길에도 1층에 상가를 넣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지만 아마도 좁은 골목길에는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담장을 쳐서 골목과 단절해 놓은 것은 다소 아쉽다. 다만 저층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골목길을 따라 나름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놓여 있는 모습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다. 주 출입구는 오른쪽 골목으로 형성된 마당 겸 주차장 쪽으로 나 있다. 즉 상가와 주거의 입구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가능하다면 이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지만, 정면에만 도로가 있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홍파 아파트는 대지의 깊이 덕분에 뒤에 마당을 만들 수 있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홍파 아파트는 폭 대 높이의 비가 거의 1대1로 상당히 홀쭉한 비례다. 그 덕분에 실제보다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제기로 남쪽 일대는 홍파초등학교, 경동시장 등 기본적으로 낮은 건물들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6층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역의 망루 같은 존재감을 갖는다. 입면을 보면 창호와 벽체 그리고 발코니가 이루는 독특한 리듬감이 있다. 6개 모듈로 좌우 대칭 구성을 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재미있다. 내부 평형과 측면 가구의 구성을 위한 고민의 결과다. 홍파 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6층이다. 48가구가 입주해 있으니 작은 규모의 아파트다. 특이한 것은 지하층의 용도다. 겉보기에는 주차장이고 실제로 차량이 들고 날 수 있는 램프가 두 군데나 있지만 건축물관리대장 상에는 주민운동시설인 태권도장으로 되어 있다. 공부상의 용도와 실제 용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흔하지만 홍파 아파트의 경우 이미 건립 당시부터 지하층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더구나 이 아파트의 사용승인일이 1971년 10월 7일로 앞서 소개한 고은 아파트나 연화 아파트보다도 시기적으로 몇 년 앞선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하 공간은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만들어 놓으면 시대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데 홍파 아파트도 그런 경우의 하나인 것이다. 홍파 아파트는 장흥식이라는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회사가 아닌 개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거대 자본이 아닌 개인 자본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당시 아파트들의 규모가 지금보다 작고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는 것은 동원된 자본의 규모와 성격과도 관계가 깊다. 일부러 다양한 디자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에 다양성이 있었던 것이다. 거대 자본에 의한 거대 단지로 공동 주거를 공급해 온 그간의 상황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 현아, 미용실 알바생 찾아간 이유는?

    현아, 미용실 알바생 찾아간 이유는?

    “도도하게만 보였던 현아 언니가 마치 친언니처럼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줘서 큰 위로가 됐다”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이보윤(21)씨는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현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충남 보령이 고향인 이씨는 서울에 올라와 주중에는 학업을, 주말에는 하루 12시간씩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온종일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어리고 경험이 없다고 대놓고 무시하는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맏이로서의 책임감과 장차 헤어 디자이너가 되어 자신의 가게를 차리겠다는 꿈을 위해 꿋꿋이 버티고 있다. 손님들이 모두 떠난 저녁 시간, 가수 현아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손님인 척 보윤씨를 찾아갔다. 현아는 보윤씨를 도와 가게를 정리하고 그녀의 고민을 들었다. 꿈을 향한 열정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현아는 보윤씨에게 연습용 미용 가위도 선물했다. 이는 한 취업사이트가 진행하고 있는 ‘천국의 우체통’ 프로젝트로, 열심히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된 사회공헌 활동이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들이 아르바이트생들을 응원하는 일일 도우미를 자청하고 있다. 현아 편은 ‘천국의 우체통’ 실제 사연 당첨자를 연예인이 찾아간 첫 번째 사례다. 보윤씨는 “주변에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알바생들이 잠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현아는 지난 1일 솔로앨범 ‘어썸’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이후 1년여만이다. 또한 지난 6월 걸그룹 포미닛 해체 이후 첫 컴백 활동이기도 하다. 사진 영상=알바천국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펑펑 운 ‘48kg 작은 거인’… “유도할 때만 눈물 많아요”

    펑펑 운 ‘48kg 작은 거인’… “유도할 때만 눈물 많아요”

    귀중한 은메달을 따냈지만 여자 유도 48㎏급의 정보경(25·안산시청)은 경기장을 내려오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곁에 있던 이원희(35) 코치가 ‘잘했다’며 다독여줬지만 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 언론 인터뷰를 앞두고도 눈물이 멈추지 않자 경기장에 와 있던 정몽규(54) 한국 선수단장이 정보경을 토닥이며 잠시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줬어야 할 정도였다. 금메달만 바라보며 4년을 달렸지만 눈앞에서 아깝게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의 눈물’이기도 했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유도를 해오며 힘들었던 기억들을 보상받는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다. ●“출국 전엔 호랑이 꿈 꿨어요” 정보경은 6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에서 열린 여자 48㎏급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뒤 “금메달을 목표로 달려왔는데 은메달을 따게 돼서 너무 아쉽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경기여서 후회는 남지 않는다”며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이날 금메달을 딴) 파울라 파레토(30·아르헨티나)에게 이기고 있다가 졌다. 그때처럼 방심을 하지 않았나 싶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어 “지금까지 운동을 해온 것에 비해서는 조금 못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아쉬운 것이 크지만 속이 후련하기도 하다”며 “메달을 딴 뒤 함께 올림픽을 준비했던 동료들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선수촌으로 돌아가면 다 같이 한바탕 울음바다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내 “이번 대회 한국의 첫 메달리스트라는 것은 기분이 좋다”며 눈물을 거뒀다. 정보경은 “브라질로 오기 일주일 전쯤에 김성연(26·70㎏급)과 함께 청담동 미용실에서 금메달을 기원하는 염색을 했다”며 “원래는 초록색이었는데 색이 빠지면서 금빛이 났다. 메달을 따겠다는 계시를 받았나 보다”고 말했다. 이어 “출국 2~3주 전에는 꿈에서 호랑이 다섯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차를 타고 그 속을 지나갔다. 그때도 메달을 따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이틀 전에는 친구가 전화를 해 좋은 꿈꿨으니 잘할 거라고 말해줬다”며 웃어 보였다. ●파트너 선수로 출발… 인생 역전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서도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정보경은 “대학교 2학년 때 파트너 선수로 대표팀에 들어온 뒤 2012 런던올림픽이 끝나고서야 대표팀 1진이 됐다”며 “파트너 선수를 하며 (1진과의 대우가 달라) 서러웠던 때가 많아서 정말 나도 꼭 1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메달 후보로 주목을 못 받은 것에 대해서는 “시합이 끝날 때마다 다른 선수를 비추는 카메라를 보며 ‘저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올림픽 준비도 열심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2020 도쿄 올림픽에 안 뛰려고 이번에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됐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의 성격에 대해 감정이 메말랐지만 유도를 할 때만 눈물이 많다고 설명하는 정보경이 도쿄에서는 ‘기쁨의 눈물’만 흘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리우데자네이루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묘한 사다리꼴, 중정·잘 짜인 디자인, 정면·도심 공중 텃밭, 옥상…세 번 놀랐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묘한 사다리꼴, 중정·잘 짜인 디자인, 정면·도심 공중 텃밭, 옥상…세 번 놀랐다

    독립문에서 통일로를 따라 무악재를 넘어 홍제천 쪽으로 가다 보면 길 오른쪽, 즉 인왕산 쪽으로 단정한 외관의 아파트가 하나 있다. 통일로에서 한 켜 안쪽에 있기 때문에 전면 건물에 가려 일부분만 보인다. 콘크리트로 된 수평 띠 사이마다 창문과 회색 벽돌을 교대로 채워 넣어 입면을 만든 솜씨가 눈길을 끈다. 전형적인 근대주의적 디자인으로서 언뜻 보면 공동 주거가 아니라 사무실 같기도 하다. 이 건물이 바로 안산 맨숀이다. 아파트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예인 아파트’로 불릴 만큼 한때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그 당시 아파트치고 그렇지 않은 예가 별로 없다. 일부 시민 아파트를 제외하면 당시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고급 주거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그 시절만큼의 영화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는 점 또한 이 시대 아파트들의 공통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름이다. 인왕산 기슭인 이 일대에는 ‘인왕’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들이 유독 많다. 그런데 이 건물만 길 건너편 안산의 이름을 따왔다. 바로 인접한 ‘인왕 아파트’나 ‘인왕궁 아파트’ 사이에서 홀로 돋보이는 이름이다. 어떤 오기 같은 것이 느껴져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위치보다는 경관을 염두에 둔 이름이 아닌가 싶다. 도시에서 경관의 중요성을 인식한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시대를 앞선 생각이라고 하겠다. 인왕산 기슭에 놓여 있으나 안산을 바라보고 있는 건물인 셈이다. # 엄격한 근대건축의 외관에 아기자기한 중정 이 건물에 가서 보고 세 번 놀랐다. 그 처음은 위에서 적은 것처럼 아주 잘 짜인 정면의 구성 때문이었다. 지금 건물이 오래되어서 그렇지 아마도 건립 당시에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을 정도로 수준 높은 디자인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건축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충분히 좋아하는가는 좀 다른 문제다. 이런 종류의 미감을 받아들이려면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다소 엘리트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것이다. 건축가의 이름은 알 길이 없으나 참으로 궁금하다. 두 번째는 이 건물이 중정식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사전 조사에서 알게 된 사실이기는 했다. 그런데 미리 알고 봐도 여전히 신선하고 놀라웠다. 저런 엄격한 정면을 가진 건물이 그 안에 아기자기한 중정을 품고 있다니. 비밀은 대지의 형상에 있다. 안산 맨숀의 대지는 사다리꼴이다. 대지 경계선을 따라 건물이 배치돼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쪽에 남는 공간이 생겼고 그것이 그대로 중정이 됐다. 대지가 네모반듯하지 않아서 중정도 사다리꼴이다. 그런데 이것이 묘한 안정감과 생동감을 동시에 준다. 천창이 없는 개방형 중정이라 외기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비와 눈을 그대로 맞는다. 세 번째 놀라움은 옥상 때‘문이었다. 무지개떡 건축론에 따르면 도시 건축에서 옥상을 잘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옥상이 생활공간과 연계되면 이를 한옥의 ‘마당’에 비유할 수 있다. 이렇게 외기에 면하고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외부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복잡한 도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굳이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에서 소개하는 대부분의 상가 아파트들은 평지붕 건물로서 당연히 옥상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그냥 텅 비어 있거나 심지어 물건을 쌓아 놓는 용도로 쓰고 있다. 생활공간과 인접한 마당으로 계획되거나 활용되고 있는 경우는 단 한 경우도 없다. 안산 맨숀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내용은 항공사진으로도 확인이 어렵고 직접 가 봐야만 알 수 있다. 그런데 안산 맨숀은 옥상 전체가 경작지나 다름없었다. 한쪽은 인왕산, 또 다른 한쪽은 안산으로 둘러싸인 공중 정원, 아니 공중 텃밭이 거기 있었다. 아마도 안산 맨숀 주민들은 서울에서 가장 멋진 경작지를 가진 것인지도 모른다. 텃밭을 가꾸려고 주말마다 교외를 오가며 길바닥에서 시간을 다 보내는 것에 비하면 이 얼마나 도시적이고 친환경적인 해결인가. 여기에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동 쉼터나 독서실 같은 실내 공간이 인접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미 근사하다. 실로 예기치 못했던 발견이었다. # 상가 아파트로 변신… ‘맨숀 아파트’의 자부심 통일로에서 걸어 들어가 본다. 안산 맨숀의 정면을 보면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또 다른 아파트가 나온다. 다름 아닌 인왕 아파트다. 단지형 아파트이기도 하고 상가가 거의 없이 건물 대부분이 공동 주거이기 때문에 이 연재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용 승인일이 1968년 11월 11일로 역사가 상당히 오래됐고, 제법 사람들 입에도 오르내리는 편이다. 같은 길로 계속 들어가면 또 다른 단지형 아파트인 인왕궁 아파트의 입구가 나온다. 안산 맨숀에 대한 자료를 보면 이 건물도 원래 순수한 주거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층에 상가가 들어가서 지금과 같은 상가 아파트가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물 2층에 중정이 있는 현재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정 바닥을 한 층 올리는 대대적인 공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원래 1층에 있던 주거는 환경이 별로 좋지 않았을 것이다. 정밀한 실측 조사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문제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따르면 안산 맨숀은 1972년 2월 18일에 사용 승인을 받았다. 그러니 다른 상가 아파트들에 비하면 다소 건립 연대가 늦은 셈이다. 지하층이 ‘아파트’로 돼 있는데 사람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을 위한 창고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기록상 1층에 아파트와 제1, 2종 근린생활시설이 혼재돼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변동 내용란을 보면 2005년 이후 1층의 아파트가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된 내력이 단계별로 나와 있다. 원래 주거전용 건물이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현재 1층에는 복덕방, 목욕탕, 미용실, 식당 등 주민들을 위한 일상적인 기능들과 장애인 보장구 수리센터 같은 다소 특수한 기능이 입주해 있다. 특이하게도 작은 유료 주차장이 있는데 건축물 관리대장에 나와 있지는 않다. 건물 북서쪽 코너의 좁은 벽면에 ‘안산 맨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안산 맨션’이겠지만 당시 시대상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 글에서는 원 이름을 그대로 쓴다. 그런데 거리에서 공동 주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안산 맨숀 아파트’라는 좀 다른 이름의 간판이 달려 있다. 맨숀, 혹은 맨션과 아파트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규모가 크면 아파트, 상대적으로 작으면 맨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 여러 자료를 보면 그 차이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같은 홍제동의 ‘유진 맨숀’과 ‘원일 아파트’의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유진 맨숀이 오히려 훨씬 더 큰 건물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추정은 맨숀이 아파트보다 뭔가 더 근사해 보이는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산 맨숀 아파트’라는 이름은 ‘아파트는 아파트인데 보통 아파트가 아니라 근사한 맨숀 아파트’라는 의미일 것이다. 자부심이 배어 있는 이름이다. 지금도 그런 현상은 계속된다. 다세대, 다가구, 연립주택, 아파트라는 이름보다는 빌라, 하이츠, 맨션, 테라스 같은 욕망 투사형 이름이 널리 쓰인다. 앞의 이름들은 엄연히 법적 용어지만 뒤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 심지어 캐슬(성), 팰리스(궁) 같은 봉건적인 이름까지 등장했다. 민주공화국에 사는 시민들이 죄 귀족이나 왕족이라도 된 것인가. 반면 서구에서 저층 주거 단지에 흔하게 사용되는 ‘코트’(court)는 한국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가든’(garden)은 각종 고깃집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듯하다. 일부 단지형 아파트에는 어느 때부턴가 ‘마을’이라는 한국어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느낌이다. # 옥상서 딴 푸성귀를 밥상에… ‘부엌 정원’ 현실로 건물 북서쪽 코너에 계단이 있다. 역시 당시 유행했던 테라조, 즉 ‘도끼다시’ 마감이다. 거리에서 입구에 들어서면 경비실, 우편함 등이 보이고 여기서 한 층을 오르면 중정이다. 중정 반대편에는 또 다른 외부 계단이 있어서 비상시의 대피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중정은 그야말로 안산 맨숀이라는, 48가구가 사는 하나의 마을, 혹은 동네의 중심이라는 느낌을 준다. 화분과 장독이 많이 놓여 있고 심지어 수돗가도 보인다. 높이에 비해서 폭이 좀 좁은 것 같지만 햇살과 바람이 충분히 들어온다. 눈을 들어 위를 보니 그날따라 유달리 화사한 초여름 늦은 오후의 하늘이 흘러가고 있었다. 중정에서 5개 층을 더 오르면 옥상이다. 지상 6개 층의 건물이지만 역시 엘리베이터는 없다. 중정이 이미 2층에 있고 계단실이 답답하지 않아서 그런지 옥상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노약자는 불편할 수 있는 구조이므로 만약 리모델링을 하게 되면 작은 엘리베이터를 하나 설치하면 좋을 것이다. 솜씨 있는 건축가의 손을 빌리면 건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엘리베이터가 옥상까지 연결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옥상에 오르니 늦은 오후의 햇살 속에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은 인왕산, 반대쪽은 안산이지만 주변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서 썩 잘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 이 건물이 세워졌을 때는 주변이 훨씬 더 열려 있었을 것이다. 텃밭을 가꾸고 있는 주민들은 완연한 도시 농부의 모습이었다. 마침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라 다들 한 바구니씩 푸성귀를 따서 계단실 아래로 내려갔다. 바로 이런 것이 많은 사람이 꿈꾸는 부엌 정원이 아닌가. 이렇게 자기가 사는 곳의 옥상을 잘 활용하면 될 것을 굳이 마당 있는 집을 찾아 교외로 나갈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엄청난 출퇴근 시간을 감수하면서? 안산 맨숀의 옥상을 바라보면서 옥상은 교외의 대안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바람직한 무지개떡 건축은 한 개의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수직으로 재구성한 마을, 혹은 동네와도 같은 것이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이 있어야 하고 제한적이지만 자연을 접하는 곳도 있어야 한다. 전형적인 근대건축의 엄격한 외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중정과 활발하게 사용되는 옥상 텃밭 등 수직 마을의 가능성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곳이 바로 무악재 너머 홍제동의 안산 맨숀이다.
  • [세법개정안 발표] 미용실·커피숍도 신규채용 세제 지원

    [세법개정안 발표] 미용실·커피숍도 신규채용 세제 지원

    술집만 아니라면 일자리를 늘리는 모든 중소·중견기업에 세제 지원이 이뤄진다. 기업이 벌어들인 소득이 주주보다 사원들에게 더 흘러갈 수 있도록 기업소득 환류 세제도 손본다. 정부는 세제 지원 대상이 되는 서비스업의 업종 범위를 크게 확대하기로 했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제조업의 2배인 서비스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고용 세제 지원 대상을 기존 전체 서비스 업종 582개 중 362개(62%)에서 유흥주점업을 뺀 모든 서비스업(99%)으로 확대했다. 일자리를 늘려도 세제 지원을 받지 못했던 ▲수영·스키장 등 스포츠 서비스업 ▲이·미용 등 개인 서비스업 ▲커피숍 등 비알코올음료점업 ▲부동산 중개업, 컴퓨터·사무기기 수리업 등이 새롭게 세액 공제를 받는다. 중소기업의 고용창출 투자세액공제도 확대된다. 추가 공제 한도액을 고용 인원이 1명씩 증가할 때마다 500만원씩 늘려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마이스터고 졸업자를 고용하면 세액공제 금액이 기존 2000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증가한다. 청년·장애인·60세 이상 근로자를 채용하면 2000만원, 일반 상시근로자를 뽑으면 1500만원까지 내야 할 세금에서 빼준다. 기업이 보유한 여유자금이 배당보다 가계로 잘 흘러갈 수 있도록 기업소득 환류세제도 개선한다.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기업이 일정 금액을 투자나 임금 인상, 배당 등에 쓰지 않으면 10%의 세율을 적용해 추가로 과세하는 제도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4월까지 신고 실적을 집계해 보니 2845개 법인의 환류금액은 139조 5000억원인데 그중 ‘투자’가 100조 8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배당’이 33조 8000억원, ‘임금 증가분’은 가장 적은 4조 8000억원에 불과했다. 정부는 임금 증가의 가중치를 기존의 1.5배로 늘리고, 배당은 0.8배로 축소해 기업이 임금 인상에 나서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촌티 작렬’ 도널드 트럼프 헤어스타일의 비밀

    ‘촌티 작렬’ 도널드 트럼프 헤어스타일의 비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의 행보가 연일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트럼프의 전 스타일리스트가 그의 헤어스타일과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의 헤어스타일은 그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되기 전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알려져 왔다. 젊은 시절부터 귀를 약간 덮는 기장 등 한결같은 스타일을 고수해온 터라 일각에서는 그가 가발을 쓰고 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항간에서는 그의 독설이 길게 길러 빗어넘긴 금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냐며 풍자 섞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그의 헤어스타일리스트였던 에이미 래시(52)는 “트럼프의 금발은 100% 그의 모발”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하루도 빠짐없이 지나치게 많은 젤을 머리에 바르는 바람에 빗질이 매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는 매우 오랫동안 전문적인 미용실을 다니지 않았다. 대신 그의 가족이 대신 커트를 해주거나 염색을 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런 사실은 그의 헤어스타일을 정면이 아닌 뒤에서 바라봤을 때 확실히 알게 됐다. 뒷 헤어라인을 직선으로 잘라놓은 것을 확인하고는 매우 놀랐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트럼프가 주기적으로 염색을 하고 있긴 하나 ‘비전문가’에게 맡긴 탓에 모발 색이 고르지 않다고 전했다. 보이는 겉면에만 염색제가 닿았을 뿐, 안쪽 모발에는 염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 래시는 “커트와 염색 등은 그의 아내 또는 딸의 역할이며, 나는 대중 앞에 서기 전 그의 머리를 빗어 넘기고 헤어스타일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면서 “그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헤어스타일을 전혀 바꾸지 않았으며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사진=AP·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전 스타일리스트가 밝힌, ‘촌티 작렬’ 트럼프 머리의 ‘비밀’

    전 스타일리스트가 밝힌, ‘촌티 작렬’ 트럼프 머리의 ‘비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의 행보가 연일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트럼프의 전 스타일리스트가 그의 헤어스타일과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의 헤어스타일은 그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되기 전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알려져 왔다. 젊은 시절부터 귀를 약간 덮는 기장 등 한결같은 스타일을 고수해온 터라 일각에서는 그가 가발을 쓰고 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항간에서는 그의 독설이 길게 길러 빗어넘긴 금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냐며 풍자 섞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그의 헤어스타일리스트였던 에이미 래시(52)는 “트럼프의 금발은 100% 그의 모발”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하루도 빠짐없이 지나치게 많은 젤을 머리에 바르는 바람에 빗질이 매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는 매우 오랫동안 전문적인 미용실을 다니지 않았다. 대신 그의 가족이 대신 커트를 해주거나 염색을 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런 사실은 그의 헤어스타일을 정면이 아닌 뒤에서 바라봤을 때 확실히 알게 됐다. 뒷 헤어라인을 직선으로 잘라놓은 것을 확인하고는 매우 놀랐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트럼프가 주기적으로 염색을 하고 있긴 하나 ‘비전문가’에게 맡긴 탓에 모발 색이 고르지 않다고 전했다. 보이는 겉면에만 염색제가 닿았을 뿐, 안쪽 모발에는 염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 래시는 “커트와 염색 등은 그의 아내 또는 딸의 역할이며, 나는 대중 앞에 서기 전 그의 머리를 빗어 넘기고 헤어스타일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면서 “그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헤어스타일을 전혀 바꾸지 않았으며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사진=AP·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마트 몽골 1호점… 28일 울란바토르에 개장

    이마트 몽골 1호점… 28일 울란바토르에 개장

    이마트가 중국, 베트남에 이어 몽골에 간다. 이마트는 오는 28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이마트 몽골 1호점을 연다고 14일 밝혔다. 이마트 몽골점은 프랜차이즈 형태로 이마트 브랜드를 포함해 점포 운영 및 상품 운영 방법, 상품 등을 수출하는 방식이다. 중국과 베트남에 직접 진출했던 방식과 다르다. 이를 위해 이마트는 2013년 몽골의 대표적인 유통기업인 알타이그룹과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로열티로 받는 협약을 맺었다. 울란바토르 중심지에 있는 이마트 몽골점은 영업면적 7600㎡ 규모로 몽골에서 가장 큰 규모의 쇼핑 공간이다. 여기에 은행, 카센터, 미용실 등 다양한 업종을 입주시켰다. 전기전자제품 체험 매장인 일렉트로마트의 축소판인 디지털 체험 공간, 이마트 자체 브랜드인 러빙홈의 생활용품 통합 매장도 들어 있다. 이마트는 몽골점을 몽골 수출의 전진 기지로 삼고 몽골에 대한 수출을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4억 5000만원에 그쳤던 수출은 올 상반기 27억원으로 늘어났고 올 한 해는 45억원가량으로 예상된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미용실도 카톡!

    미용실도 카톡!

    카카오가 택시와 대리운전에 이어 5조원 규모의 헤어미용 시장으로 O2O(온·오프라인 연계) 생태계를 넓힌다. 카카오는 모바일 미용실 예약 서비스 ‘카카오헤어샵’을 12일 출시했다. 출시 시점에는 전국 1500여개 미용실로 시작해 연내 4000여개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별도의 앱이 아닌 카카오톡 앱에 메뉴를 추가해 제공한다. 카카오헤어샵은 고객이 미용실 정보를 인터넷으로 일일이 찾고 전화로 예약하는 불편함에 착안해 개발됐다. 카카오헤어샵에서는 지역별로 미용실을 검색하고 디자이너와 시술 스타일, 가격대와 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또 디자이너별로 예약 가능한 시간대를 찾아 예약과 선결제까지 할 수 있다. 카카오 측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이용자들은 합리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미용실은 신규 고객 유치와 안정적인 예약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헤어샵의 전망에 대한 업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미용업계 관계자는 “강남이나 이대 등 대형 상권이 아닌 미용실들은 동네의 단골 고객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고객 관리의 필요성이 높지 않다”면서 “미용업계에 어느 정도의 파급력이 있을지 지켜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또 카카오가 미용실로부터 얻는 수익도 입점비 5만원과 월 이용료 2만원, 시술 비용의 5% 등으로 10~20%의 수수료를 거두는 미국과 중국 등의 동종 서비스에 비해 저렴해 당장의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카카오톡을 통한 예약과 선결제 시스템을 통해 미용업계의 고질적인 ‘노쇼’(예약부도) 문제를 해결하고, 미용업계에 저렴한 비용의 마케팅 통로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新전원일기] 하늘과의 동업 농사는 기다림…바보처럼 지킨 못난이 토마토

    [新전원일기] 하늘과의 동업 농사는 기다림…바보처럼 지킨 못난이 토마토

    소 한 마리로 시작한 낙농업 10년… 우유 판로 막히면서 하우스 농사로… 병충해 시달리면서도 유기농법 25년 안전 먹거리·윤리적 농법 의식 확산… 못난이 토마토 이젠 없어서 못 팔아… 착즙 개발해 年 수익 1억 5000만원 남편은 뒤늦게 방송대서 농학 공부… 아내는 최근 식품가공기능사 합격… 변화 꿈꾸는 부부는 또 새로운 ‘시작’ 어린 시절 더운 여름날,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가 미리 설탕에 재워 차갑게 식혀 둔 토마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과육을 포크로 찍어 흘릴세라 접시에 대고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남은 과즙을 서로 들이마시겠다고 동생과 머리를 맞대고 실랑이하던 기억. 거꾸로 읽어도 토마토, 바로 읽어도 토마토. 껍질도 과육도, 안팎이 똑같이 빨간 토마토는 추억이다. # 꿈이 농부였던 남자 충남 아산시에서 유기농 토마토와 아로니아를 재배하는 ‘달기 농장’의 조재호(59)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농업인이었다. 면 단위 중학교를 나와 평택까지 통학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예비고사를 보러 가는 길에 결국 옆길로 샜다. 어차피 농사를 지을 건데 대학에는 가서 무엇하느냐는 그의 고집을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에 예산 산다는 박응서(58)씨를 중매로 만났다. 당시 그녀는 그보다 한 살 어린 스물다섯. 그 시절 생면부지의 나이 어린 청춘들이 마주 앉아 나눌 법한 이야기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꿈은 농사를 계속 짓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박씨는 그렇게나 좋았더란다. 그러나 박씨는 농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시집와 처음으로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 들로 나갔다. 농약 치는 기계를 보고만 있으면 된다 해서 따라나섰던 길인데, 아버님이 둘둘 말린 호스를 계속 풀고 감으라 하신다. 논은 저 멀리 들판 너머에 있고, 논두렁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기계를 실은 경운기는 길가에 서 있다. 그 길이 까마득히 멀어 무거운 호스를 풀고 당기고 또 풀고 당겨주어야 하는데, 한 뼘 그늘도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그 일이 너무나도 힘에 부치더란다. “제발 그것만은 좀 안 시켰음 싶은데, 농사 짓는 집에 시집와서 못 한다고 할 수도 없고, 나중에는 약 치러 가자 하시면 정말 경기를 일으키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약 치는 일은 힘든 일, 안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그날의 들판 위로 부는 바람과 햇살, 땀방울이 다시금 생각나는지, 부부는 서로 시선을 맞추고 웃음을 터뜨린다. 오래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아온 부부의 마주치는 눈빛이 깊다. 들판 너머로 힘들어하는 어린 신부를 바라만 봐야 했던 어린 신랑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이었을까. #패물과 돌 반지 팔아 시작한 낙농업 10년 두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 신랑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좀더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아내의 패물과 아이들 돌 반지를 팔아 소 세 마리를 들였다. 시골에서 몇 마리의 소만 먹여도 부자 행세를 하던 시절이었다. 바람대로 소는 금방 네 마리가 되고 다섯 마리가 되었다. 젖을 짜기 시작하며 돈도 돌기 시작했다. 스물대여섯 마리까지 늘어나며 해마다 주변의 땅도 조금씩 사들였다. 하지만 워낙 낙후된 지역이었다. 땅이 질척거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동네였다. 목장 앞까지 집유차가 들어올 수 없어서 우유 통을 경운기에 실어 큰 길까지 내가곤 했는데, 이제 더이상 그렇게는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였다. 한때 육우로 돌려보기도 했지만 결국 시작한 지 10년 만에 목장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마침 따로 지었던 애호박 농사로 재미를 보았던 터라, 소를 판 돈으로 목장을 밀고 다져 하우스를 세웠다. “그런데 그게 또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란 말이지요. 애호박으로 시작해서 부추, 깻잎 등 하우스 작물들을 심었는데….” 처음에는 바람에 하우스가 파이프째 날아가 버렸다. 낙하산처럼 날아올랐다가 이리저리 나부끼는 것을 붙들면 사람까지 딸려 날아갈 지경이라 속수무책 바라만 봐야 했다. 바람이 잦아진 뒤에야 들판에 널려 있는 파이프를 주워 와 다시 펴고 땜질해 설치하면 또 날아가고, 다시 설치하면 또 날아갔다. 하우스 시설에 대한 이해와 경험 부족 탓이었다. “나중에는 그냥 같이 날아가 버리고 싶더라고요.”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억양을 담아 그가 농담처럼 말하고, 아내가 또 그 말을 웃음으로 받는다. #어찌 됐든 농업은 하나님과의 동업 본격적으로 유기농법을 시작한 지는 25년, 토마토로는 19년째다. 당시 한 산림조합 관계자의 설득으로 시작하게 됐는데, 조 대표도 돈이 덜 되더라도 꼭 가야 할 길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 역시 해마다 실패하고 말았다. 병충해가 돌고 벌레가 생겨 작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어쩌다 작황이 좋아도 판로가 마땅치 않았다. 유기농이라는 말 자체가 없을 때였다. ‘무공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알고 찾는 소비자가 많지 않았다. 돈이 덜 되는 정도가 아니라 소 판 돈을 모두 잃고 농사짓던 땅마저 야금야금 팔아야 했다. “후원을 받아 단체로 일본이나 유럽 쪽으로 벤치마킹을 다니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벌레 먹고 못생긴 것들을 안전하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잘 사먹는데, 우리는 여전히 번드르르한 것만 찾는 현실이 답답하더라고요.” 차츰 미생물을 배양해 농약 대신 뿌리고 천적을 이용해 방제할 수 있는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었다. 작황이 좋아지고 가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며 소비자들에게도 안전한 먹을거리와 자연을 윤리적으로 이용하는 농법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도 한 10년 전부터는 ‘못난이 토마토’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생김새나 크기 때문에 등급을 받지 못했을 뿐 맛이나 효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거든요. 그런 것들을 ‘못난이’라고 이름 붙여 싸게 팔았더니, 정품보다 더 잘 팔리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농사는 하나님과 동업하는 일, 작황은 기후에 따라 유동적이고 토마토는 저장성이 좋지 않다. 때로는 트럭에 싣고 서울로 올라가 지인들의 사무실을 돌며 팔기도 하고,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직접 목청껏 소리쳐 팔기도 했다. #차별화된 착즙 개발과 기다림의 시간 그래도 고향이다 보니 이웃은 물론이고 시청 등에도 지인이 많았다. 관련 공무원들과 농업 현실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수 있었다. 짧은 유통 기간에 대한 타개책의 하나로 2009년 지원금 3500만원을 받아 조립식으로 가공 공장을 짓고 중탕기와 포장 기계를 들였다. 따로 벤치마킹을 할 곳을 찾지 못해 주변의 건강원 등을 찾아다녔다. 토마토는 익혀 먹으면 그 맛과 효능이 배가 된다. 특히나 항산화 물질인 라이코펜 성분은 가열 때 4배 이상의 효과를 낸다. 무수한 실험과 연구 끝에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홈페이지(www.dargi.co.kr)도 개설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알고 오겠어요. 처음에는 주위에 다 나눠줬죠. 아는 고깃집이나 미용실에 맡겨두기도 하고, 어쩌다 전자상거래 유통업체에서 연락이 오면 어떤 조건이든 그냥 다 줬어요. 어디서든 하나라도 팔면 광고가 되고, 누구든 먹어보면 그 맛과 효능을 인정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입소문으로 전해지며 차츰 판매량이 늘어갔다. 단골도 늘어 2014년 2월에는 급기야 만들어 놓은 제품이 다음 시즌이 되기도 전에 완판됐다. 계속 드시던 고객들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귀한 생물로 제품을 만들어 공지를 띄우면 몇 시간 만에 품절되기 일쑤였다. 가공 시설을 갖추고 홈페이지를 개설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농사는 기다림이거든요. 봄이 오길 기다리고, 싹이 나길 기다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길 기다리고, 그 열매가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장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죠.” 부부는 현재 2800평 규모의 토마토 하우스와 50평 남짓의 가공 공장, 노지 1500평의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융복합 산업 농장으로 선정돼 가공 시설과 체험 시설 등의 증축과 확장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은 연간 1억 5000만원가량의 수익을 내고 있지만, 그동안의 투자액을 생각하면 다른 산업에 비해 수익률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고 한다. 조 대표는 자신을 자꾸만 바보라고 표현한다. 일반 농사도, 낙농도, 하우스도, 유기농도, 토마토도 그 실상을 알고 숫자에 밝아 셈을 할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런데 농사는 돈의 논리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나도 그렇고 우리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도 그렇고,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잖아요. 공적 산업이랄까, 뭐 그런 사명감을 갖고 어느 정도는 자신을 내려놓고 비워야 해요.” 조 대표는 뒤늦게 방송통신대에서 농학을 공부했다. 여러 단체에서 벤치마킹을 오기도 하고, 귀농인들의 멘토가 돼 농장은 종종 교육장으로 변신한다. 대형 물류 창고를 닮은 선별장은 프로젝트와 스크린까지 갖춘 교실이 된다. 오랜 세월 속에서 터득한 자신만의 노하우는 적당히 감출 법도 한데, 조 대표는 절대 그러는 법이 없단다. “시골 사람들은 자랑할 게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뭐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 신이 나서는 그냥 다 알려주는 거죠.” 조 대표가 또 충청도 특유의 억양을 담아 여유롭게 농담을 하고, 아내가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면서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도 지난달 국가고시인 식품가공기능사 시험을 봤단다. 엊그제 합격 통보를 받았다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한다.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는지 몰라요. 내후년이면 예순인데,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가서는 글자가 어디 눈에 들어와야지요. 그래도 자꾸 찾아서 배우려 해요. 전자상거래도 그렇고, 자격증도 그렇고. 사실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관공서 양식에 맞춰 사업계획서를 쓰고, 서류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조금씩이나마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었으면 해요. 세상이 변하는데, 농민도 농사도 옛 방식 그대로일 수는 없지요.” 그녀가 운영하는 블러그(http://blog.naver.com/pes6538)에서 읽은 마크 트웨인의 ‘앞서 가는 방법의 비밀은 시작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오랜 세월 한길을 걸어오면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온 이 부부의 ‘시작’은 현재진행형이다. 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제2회 EBS 문학상 우수상 수상. 소설 ‘붉은 나무젓가락’, 그림동화 ‘옥상에 텃밭이 생겼어요’, 옴니버스 에세이집 ‘가족이 힘이다’, ‘수업’,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등.
  • [길섶에서] 이발사/박홍기 논설위원

    동네 이발소를 이사한 뒤 새로 찾았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발사가 가위질을 멈추며 맞았다. 손놀림이 정성스럽다. 이곳에서만 30년째란다. 젊었을 때 시골에서 올라와 이발소에서 보조를 시작했다. 허드렛일부터 머리 감기기, 면도, 머리 깎기의 단계를 밟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직업이 벌써 50년을 넘어섰단다. 손님들은 처음 오는 이들보다 대체로 단골들이다. 동네에는 이발소가 별로 없다. 남자들도 미용실을 자주 이용하는 까닭에 이발소가 사라지고 있다. 다만 이발소는 찾을라치면 멀리서도 가능하다. 이발소를 상징하는 빨강·파랑·하양의 삼색 원통이 돌고 있어서다. 동네 이발소에는 옛 정취가 있다. 전에 다니던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앞에 있던 이발소는 특히 그랬다. 1960년대 배경의 영화 ‘효자동 이발사’ 포스터를 찍었을 정도였다. 당시 이발사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집을 방문해 머리를 깎아 드렸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만큼 연세가 지긋했다. 어쩐 일인지 몇 해 전 이 이발소는 없어졌다. 처음 만난 이발사는 일 자체가 좋고 즐겁다고 했다. 15년 전 값을 받는 이유란다. 세상에 이보다 건강한 삶이 있을까 싶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대입시험 전쟁’ 마친 중국, 이제는 ‘성형수술 전쟁’

    ‘대입시험 전쟁’ 마친 중국, 이제는 ‘성형수술 전쟁’

    중국 사람들은 흔히 '만만디'(천천히)라는 말로 표현되는, 느긋하면서도 낙천적 성격을 자랑한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최근 20~30년으로 들어오면 말이 달라진다. 경쟁과 효율 등 자본주의의 가치가 급격히 자리잡았고, 교육과 외모 등 개인 자체를 자본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개개인 삶의 과정 자체가 늘 전쟁이다. 중국에서는 매년 까오카오(高考·중국의 대학입시)가 끝나는 시기면 ‘성형외과’가 최대 성수기를 맞는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많은 학생들이 더욱 아름다운 얼굴로 변신을 꾀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학부모들도 장래 취업기회를 위한 투자로 여겨 자녀들의 손을 잡고 병원을 찾는다. 학력자본을 위한 다툼에 이어, 외모 자본을 위한 전쟁이 벌어지는 셈이다. 베이징천바오(北京晨报)는 28일 대입 시험을 마친 중국 수험생들이 앞다투어 성형외과로 향하는 실태를 보도했다. 최근 베이징의 모 성형외과 리웨이웨이(李薇薇) 주임은 꽉 찬 수술 일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녀의 환자들은 대부분 17,18세의 대입고시를 마친 학생들이다. 그녀는 “최근 성형술은 저연령화가 뚜렷해 지고 있으며,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술은 쌍꺼풀 수술로 전체의 70% 가량을 차지한다. 이어서 코높임, 실리콘 삽입이 20~30%를 차지한다. 한편 대학생들은 표시가 안나는 ‘쁘띠성형’이나 미백주사, 필러주입 등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성형술 비용은 다른 나라보다 저렴해 해외 유학생들도 방학을 이용해 중국에 와서 성형술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때 한국으로의 원정성형술이 큰 인기였지만, 에이전트의 과대광고, 지나치게 높은 수술비, 부족한 의료진 등의 문제로 차츰 중국에서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리 주임은 “최근 한 여학생은 한국의 아이돌그룹 EXO의 멤버인 박찬열의 사진을 들고와 ‘찬열의 눈’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좋아하는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들고와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에는 남학생 사이에서도 성형술이 큰 인기다. 남학생들은 종종 단체로 와서 한 사람이 먼저 수술을 받고, 효과가 좋으면 모두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성형수술을 받았다가 수술실패로 좌절에 빠진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샤오저우(小周·18)는 입시를 마치고 동네 미용실에서 여드름 제거 시술을 받았다가 화농성 감염으로 얼굴이 온통 붉은 자국으로 뒤덮였다. 또 다른 한 여성은 비용을 아끼려 인터넷 사이트에서 500위안(한화 8만6000원)에 주사용 필러를 구입해 동영상을 보고 코와 턱에 필러를 주입했다가 피부괴사를 일으켰다. 중국의 청춘남녀도 '미모는 경쟁력'이라는 말을 꽤나 신봉하는 분위기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중국, 대입시험 끝나자 10대 성형수술 러쉬

    중국, 대입시험 끝나자 10대 성형수술 러쉬

    중국에서는 매년 까오카오(高考·중국의 대학입시)가 끝나는 시기면 ‘성형외과’가 최대 성수기를 맞는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많은 학생들이 더욱 아름다운 얼굴로 변신을 꾀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학부모들도 장래 취업기회를 위한 투자로 여겨 자녀들의 손을 잡고 병원을 찾는다. 베이징천바오(北京晨报)는 28일 대입 시험을 마친 중국 수험생들이 앞다투어 성형외과로 향하는 실태를 보도했다. 최근 베이징의 모 성형외과 리웨이웨이(李薇薇) 주임은 꽉 찬 수술 일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녀의 환자들은 대부분 17,18세의 대입고시를 마친 학생들이다. 그녀는 “최근 성형술은 저연령화가 뚜렷해 지고 있으며,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술은 쌍꺼풀 수술로 전체의 70% 가량을 차지한다. 이어서 코높임, 실리콘 삽입이 20~30%를 차지한다. 한편 대학생들은 표시가 안나는 ‘쁘띠성형’이나 미백주사, 필러주입 등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성형술 비용은 다른 나라보다 저렴해 해외 유학생들도 방학을 이용해 중국에 와서 성형술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때 한국으로의 원정성형술이 큰 인기였지만, 에이전트의 과대광고, 지나치게 높은 수술비, 부족한 의료진 등의 문제로 차츰 중국에서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리 주임은 “최근 한 여학생은 한국의 아이돌그룹 EXO의 멤버인 박찬열의 사진을 들고와 ‘찬열의 눈’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좋아하는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들고와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에는 남학생 사이에서도 성형술이 큰 인기다. 남학생들은 종종 단체로 와서 한 사람이 먼저 수술을 받고, 효과가 좋으면 모두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성형수술을 받았다가 수술실패로 좌절에 빠진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샤오저우(小周·18)는 입시를 마치고 동네 미용실에서 여드름 제거 시술을 받았다가 화농성 감염으로 얼굴이 온통 붉은 자국으로 뒤덮였다. 또 다른 한 여성은 비용을 아끼려 인터넷 사이트에서 500위안(한화 8만6000원)에 주사용 필러를 구입해 동영상을 보고 코와 턱에 필러를 주입했다가 피부괴사를 일으켰다. 중국의 청춘남녀도 '미모는 경쟁력'이라는 말을 꽤나 신봉하는 분위기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장애인 요금폭탄 미용실 원장, 황당한 바가지 상술에 마약까지

    장애인 요금폭탄 미용실 원장, 황당한 바가지 상술에 마약까지

    장애인과 새터민 등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부당요금을 받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된 충북 충주시 A미용실 원장의 황당한 영업수법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한 경찰조사 과정에서 미용실 원장의 마약 투약 사실까지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30일 충주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구속된 A미용실 원장 안모(49·여)씨는 경찰조사에서 비싼 약품을 썼다고 주장했지만 동네 미용실에서 많이 쓰는 보통제품인데다 유통기한이 1년이 지난 모발영양제도 있었다. 안씨는 전날 커트나 염색을 하고 간 손님 2명을 모발클리닉을 무료로 해 줄 것처럼 속여 불러낸 뒤 17만원과 20만원을 각각 받아낸 적도 있다. 손님들은 원장이 서비스 차원에서 머리를 관리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바가지요금 피해를 봤다. 외상값이 30만원이 있다며 거짓말을 해 손님에게 돈을 더 받아낸 사례도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일부 피해자들에게는 20년 동안 연구해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게 하는 약을 개발했다고 속여 바가지요금을 받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조사 도중 미용실 가격표를 자신의 주장에 맞게 고쳐놓는 등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며 “피해요금이 많지는 않지만 죄질이 나빠 구속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총 8명에 230여만원 정도다. 경찰은 10만원대의 염색을 하고 52만원을 지불한 한 장애인의 고소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안씨의 마약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안씨의 전 남편이 지난 4월 마약혐의로 구속된 데다 안씨가 경찰조사에서 횡설수설하는 것을 주목했다. 이에 소변과 모발 검사를 실시하려하자 안씨가 지난해 11∼12월 지인의 집에서 필로폰을 복용하는 등 4차례 마약을 투약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안씨와 함께 투약한 공범의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마약운반책과 공급책 검거에 나섰다. 현재 안씨의 전과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충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장애인 요금폭탄 미용실 원장 구속 “죄질이 나빠”

    장애인 요금폭탄 미용실 원장 구속 “죄질이 나빠”

    장애인과 새터민 등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부당 요금을 받아온 미용실 주인이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충북 충주경찰서는 29일 충주시 연수동의 A미용실 업주 안모(49·여)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이날 청주지법 충주지원 강진우 영장전담 판사는 “죄질이 나쁘고 사회에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하면 구속수사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안씨는 지난달 26일 10만원대의 머리염색을 주문한 뇌병변장애인 이모(35·여)씨에게서 52만원을 받는 등 지난해 8월부터 손님 8명에게 총 11차례에 걸쳐 230여만원의 부당요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은 장애인과 새터민, 농민 등 미용실 인근에 사는 서민과 소외계층들이다. 이들 가운데 3명은 두 차례나 부당요금 피해를 봤다. 안씨는 손님들이 요금을 묻거나 특정 가격대 시술을 요구하면 대답을 하지 않다가 시술이 끝난 뒤 일방적으로 고액의 요금을 청구하는 수법을 썼다. 안씨는 경찰조사에서 “자기만의 염색약 배합 등 특수한 기술로 시술을 했다”며 정당한 요금을 주장했지만 경찰이 지역 미용실 6곳과 비교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안씨가 주장하는 특수한 기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수준으로 밝혀졌다”며 “장사가 되지 않자 부당요금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부당이득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죄질이 나쁘다며 지난 27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수사는 이씨의 고소로 시작됐다. 충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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