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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화하는 인권 변호사] 시민단체 법률상담등 ‘공익전담’ 로펌 속속 등장

    인권변호사들은 역할과 영역을 빠르게 넓혀 왔다.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부업이 아닌 본업으로 공익활동을 펴는 인권변호사들이 등장했다. 노동·환경 분야 사건만 전문적으로 맡는 법무법인도 등장했다.1988년 설립돼 인권변호사들의 본산 역할을 해온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약간의 정체성 혼돈을 겪으며 활동방향을 잡는 데 주춤하는 동안 생긴 현상이다. 인권변호사 내부의 ‘파워이동’이 생긴 셈이다. ●“민변은 구조조정중” 민변 사무차장인 송호창 변호사는 “지난 5월 출범한 백승헌 체제의 민변은 지금 내부정비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문어발식으로 여러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민변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신규가입 회원이 12명으로 사상 최소였다는 점과 내부 회원들로부터 “민변이 무기력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시위문화를 낯설어하는 90년대 학번 변호사들의 탈(脫)정치성도 민변의 변화를 재촉한다. 민변은 최근 조직에 대해 외부 컨설팅을 받았다. 현안이 생길 때마다 늘어난 위원회의 역할을 조정하고, 신규 회원들에 맞는 세미나와 활동 영역을 개발하는 게 과제로 떠올랐다. 송 변호사는 “로펌에 들어간 젊은 변호사들은 민변 활동을 하기에는 사무실 업무가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다.10년차 이하 변호사를 유인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과 활동의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화모델 ‘노총 법률원’&대안모델 ‘공익로펌’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시민사회가 급속도로 바뀌면서 인권변호사의 활동 방식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은 여러 차례 지적됐다. 일단 시국사건 자체가 줄어든 상태에서 공안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신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변호사들이 프로젝트식으로 모여 변론을 대리할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변화가 불가피했지만, 참여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민변이라는 조직은 결국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무기력증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새 활동 영역을 찾는 인권변호사의 실험은 계속돼 왔다.2002년 2월 민변이 담당하던 역할 가운데 노동 관련 사건 송무 분야를 민주노총에 소속된 법률원이 맡아 전문성을 길러온 게 대표적이다. 이 법률원 소속 변호사 4명은 연간 200여건의 노동사건을 맡는다. 대리인은 민노총 조합원일 수도 있고, 일반 노동자일 수도 있다. 수임료는 시중의 절반가량이지만, 의뢰인이 못낼 때는 우선 로펌에서 낸다. 노총 산하지만, 정식 로펌이기 때문에 소속 변호사들은 ‘전일제’로 근무한다. 민변이 사람 중심 조직이라면, 민주노총 법률원은 일 중심 조직이다. 금속연맹 법률원과 환경운동연합 산하 환경법률센터 등도 같은 유형에 속한다. 개별사건을 맡다가 입법·정책적 문제점이 발견되면, 변호사들은 노총 또는 시민단체 등과 협의해 대안을 마련한다. 매년 노조나 시민단체 간부를 위한 법률교육도 한다. 판례 대로라면 패소가 예상되지만 구조적 문제점을 밝히기 위한 공익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비영리재단 ‘공감’…인권변호 영역 선점 민변과 민주노총 법률원이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면,2003년 12월 탄생한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은 여태껏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이 곳은 시민단체처럼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따로 사건별 수임료를 받지 않는다. 이곳 변호사들도 전일제로 일을 한다. 인권변호사라는 말 대신 공익변호사를 쓰는 이유를 묻자 전영주 기획홍보실장은 “공익변호사가 인권변호사에 포함되는 개념이겠지만, 인권변호사라는 말에는 정치색이 약간 들어간 것 같아 꺼리게 된다.”고 털어놨다. 정 실장은 이어 “공감은 ‘자유권’ 보다는 ‘사회권’을 지키는 데 주력한다고 보면 된다.”고 정리했다. 3~4년차인 공감 변호사 5명은 연계된 37개 시민단체에서 파견 변호사로 일한다. 직접 또는 시민단체 간부들을 통해 각 단체 법률상담을 해주고, 단체를 통해 사건을 수임한다. 미얀마인 난민인정불허처분 취소소송이나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국가 상대 배상소송, 학대받는 이주 여성들의 이혼 소송을 대리했다. 필요하면 정책보고서도 만들고, 국가인권위원회와 손잡고 실태조사에 나선다. 변호사들이 1인시위에 나설 정도로 현장밀착 형으로 유명하다. 공감은 변호사의 공익사업을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올해에는 매년 공감이 맡는 공익소송 10건을 법무법인 충정에서 대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충정은 지금까지 2건의 사건을 맡았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인권변호사들의 어제와 오늘 현재 활동중인 인권변호사들은 자신들을 3세대 또는 4세대로 분류한다. 일제시대부터 70년대 초까지 활동하던 인권변호사를 1세대로, 긴급조치 시대인 70년대 말부터 활동한 세대를 2세대로,88년 창립한 민변을 중심으로 활동한 세대를 3세대로 구분했을 때의 얘기다. 민변 회원들 대부분은 자신들을 3세대로 느끼는 반면, 공익활동에 관심이 많은 젊은 변호사들은 자신들을 4세대로 규정했다. 일제시대 허헌·김병로·이인 변호사는 형사변호공동연구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가와 사회운동가를 변론했다. 인권변호사 1세대인 이들을 민족변호사 또는 사상변호사라고 불렀다. 유신시대에 접어들며 시국사건 변호를 주로 하는 2세대 인권변호사들이 나타났다.‘인권 4인방’으로 불린 이돈명·황인철·홍성우·조준희 변호사와 한승헌·고영구 변호사가 그들이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인권위원을 맡은 박세경 변호사, 재일교포 간첩사건을 맡았던 태윤기 변호사, 광주의 홍남순 변호사도 이 시절에 활동했던 거물들이다. 이들은 86년부터 88년까지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정법회 주요 구성원으로 강신옥·박원순·이돈명·이돈희·이상수·조영래·최병모·최영도·하경철·황인철 변호사 등이 있다. 정법회 후신으로 탄생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88년 51명이 모여 출발했다. 창립 멤버로는 천정배, 김갑배, 백승헌, 김선수, 이석태 변호사 등을 들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때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정·관계 인권변호사들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대통령부터 저 모양인데요…. 그 쪽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현장의 인권변호사에게 정치권으로 간 선배들의 활동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 참여정부의 인맥풀 역할을 해온 민변은 이 정부 들어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성명이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문재인·전해철 전·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이석태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이용철 전 방위사업청 차장, 박주현 전 청와대 국민참여 수석, 김선수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 김준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조정2비서관, 박범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최은순 전 청와대 참여혁신수석실 민원제안비서관, 조준희 전 대법원 사법개혁위원장, 박원순 전 사법개혁위원, 고영구 전 국정원장, 강금실 전 법무장관, 최영도·김창국 전 국가인권위원장 등이 민변 출신이다. 열린우리당에는 김종률·문병호·송영길·유선호·이상경·이원영·이종걸·임종인·정성호·조성래·천정배·최재천 의원 등 12명이 있다. 한나라당 박승환 의원도 민변 출신이다. 사법부 쪽에서도 한승헌 변호사가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개혁을 주도했다. 이들은 대부분 민변 시절 활동에서 크게 벗어난 입장을 보이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최재천 의원은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를 주도했다. 문병호 의원은 과거사기본법과 군의문사법 입안을 이끌었다. 정성호 의원은 국민소환제 도입을 추진했다. 천정배 전 장관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지휘를 내렸다. 하지만 민변계 변호사들은 참여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 입장을 공표하고 있다. 정치적인 입지가 단순하지 않다는 말이다. 한 변호사는 “정치권으로 간 인사들의 생각이 변했을 수도 있고, 원래 민변에 있을 때부터 서로 생각이 달랐던 사람들도 있다.”며 민변과 정부내 민변 출신들과의 시각차를 인정했다. 정치권 선배들이 아마추어리즘과 무능력 때문에 비난받는 모습을 본 이들에겐 선배들의 행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현실도 숨길 수 없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인권변호사는 ‘변신중’

    인권변호사는 ‘변신중’

    지난 13일 아침 8시, 법무법인 ‘공감’ 소속 황필규(38) 변호사는 오후에 있을 ‘난민법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앞두고 자료를 한번 더 꼼꼼히 챙겼다. 만반의 준비를 위해서였다. 순간,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자신이 대리한 미얀마인 8명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난민지위 불허처분을 취소하라.”는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것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항소심 소장을 작성한 지도 꽤 됐으니,2심 판결이 어떻게 날지 긴장된다. 그런 생각도 잠시, 국회 공청회 활동을 하면서 안면을 터놓았던 사람들을 오후 토론회에서 다시 만난다는 생각이 미치자 웃음이 절로 난다. 그날 토론회는 예상대로 길어졌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했다. 곧바로 난민법 재개정안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새벽 1시 전에 자야만 내일 예정된 난민단체 법률상담을 할 수 있을 텐데”라며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한때 인권변호사들에게 따라붙었던 ‘시국사건 전담 변호사’란 별명이 이제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 시국사건에서 노동·환경·복지·장애인 등 공익성이 강한 분야로 확대하면서 이들의 역할과 위상도 날로 높아가고 있다. 재판부 왼편 피고인 대리석에 앉아 법정이 떠나갈 듯 한 기백으로 변론을 하고 끝내 패소 판결을 감내해야 했던 선배 인권변호사들의 모습은 후배들에겐 낯선 풍경이 됐다. 젊은 후배들은 이제 재판부의 왼쪽이 아닌 오른쪽, 즉 재판을 청구하는 원고 자리에 앉는 예가 많다. 노동사건만 맡는 민주노총 법률원도 형사사건을 포함, 피고를 대리하는 사건은 3분의 2정도에 불과하다. 항상 ‘지는’ 변호사라는 꼬리표도 이들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사건의 80∼90%는 공감측에 일부 승소라도 내려진다.”고 자신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대법원 판례를 깨고 우리 법률원 의뢰인에게 유리한 하급심 판결도 종종 나온다.”고 귀띔했다. 반면 시국사건 변론은 이들의 업무에서 아주 적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변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더구나 시대적 흐름이 노동 환경 등 공익소송분야의 수요가 더 늘고 있다는 점도 변신을 서두르게 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변 사무차장 송호창 변호사는 “민변 전체 활동에서 시국사건 관련 송무는 10%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민변은 간첩 사건인 일심회 사건 변호인단을 구성할 때 민변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회원 변호사들 가운데 자원자를 모으는 방식을 택했다. 송 변호사는 “소속 변호사들의 스펙트럼이 다양해, 앞으로 민변 이름으로 시국사건 대리를 하는 일은 보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권변호사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국가 등으로부터 침해당한 개인의 ‘자유권’을 지키는 입장에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권리인 ‘사회권’을 요구하고 지키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한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인권변호사들의 관심은 소수자 문제로 바뀌고 있다. 민변은 미군과 통일위원회 외에 여성·복지, 환경, 노동, 언론, 사법, 과거사청산, 민생경제, 공익소송 위원회 등을 두고 있다. 올해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와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활동에 주력했다. 공감은 장애인과 여성, 노숙인, 이주여성·노동자, 난민 관련 활동을 한다. 인권변호사 모임인 민변의 회원수는 현재 546명이다. 여기다 지방의 법무법인 등에 소속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700∼800여명에 이른다. 민주노총 법률원과 공감 등 전일제로 공익변론 활동을 하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민변 소속이다. 이 가운데 10% 정도인 50여명이 시민단체에 소속되거나 연계해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 민주노동당과 연계해 서민파산 등에 대해 법률상담을 해주는 변호사단도 시대에 적응한 인권변호사로서 활동중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난민의 날 특집] 난민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난민의 날 특집] 난민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한국에서의 난민 보호는 어쩌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심각한 상황에 견줘 다루기 쉬운 편이라 할 수 있다. 보호 신청자 증가세가 가파른 편이고, 처리되지 않은 신청서가 계속 쌓이고 있으며, 체류 난민들의 현지 적응 문제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심각한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훨씬 많은 수의 난민 보호 신청자와 난민들을 수용하는 국가들과 유엔난민기구는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난민 관련 상황 가운데 특히 더 어렵고 이 시점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사안들을 살펴본다. ●수단 다르푸르 사태 동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선 종교·인종적 갈등과 주권, 토지 다툼에서 비롯해 2003년부터 고향을 등지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170만명은 국내 유민이 되고 있고,20만명은 국경너머 차드의 난민캠프에 수용돼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들에게 신변 보호와 물, 피난처, 식량, 옷, 의약품 등 생활하는 데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캠프 안팎에서 계속되는 공격으로 이 지역에서 우리의 활동은 지장을 받아왔다. 또한 무장세력들은 난민과 실향민 캠프에서 병사들을 징용함으로써 평화롭고 인도주의적인 캠프의 성격을 훼손하고 있다. ●네팔에 체류하는 부탄 난민 약 10만명의 부탄 난민이 네팔 캠프에 14년간 피난해 있으며 이들의 고난에는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부탄에 귀환하거나, 네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거나 혹은 이들을 받아줄 용의가 있는 제3국에 재정착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가운데 어느 방법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난민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동티모르 최근 뉴스에서 계속되는 폭력으로 인해 10만명 이상의 실향민이 발생한 동티모르를 접할 수 있었다. 유엔난민기구에서는 동티모르로 즉각 긴급 구호품을 수송하였으며, 현지 상황을 완화하려는 유엔의 인도주의적 구호 노력의 일환으로 구호팀을 긴급 파견했다.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에는 이른 시일 안에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이 거의 사라진 2만여 미얀마인들이 위험하고 힘든 캠프 생활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있다. 과거 몇년간 캠프에서 구타와 살인, 다른 잔학 행위들이 보고됐다. ●파키스탄 300만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20년 이상을 피난처로 삼아온 파키스탄을 떠나 집으로 귀환했지만 아직도 260만명 정도가 본국의 불안한 치안 때문에 귀환을 결심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사실 유엔난민기구는 한국 정부의 선의와 물적·인적 자원에 있어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어 정부가 비호 신청 처리 과정을 더 갖추고 난민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아시아에서 모범적인 난민 보호 국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적절한 계획과 전략적으로 사용된 충분한 자원들을 통해 한국의 잠재력은 2년 안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제니스 린 마셜 객원편집인 <유엔난민기구 한국사무소 대표 unhcr@unhcr.or.kr> ■ 변화를 원하시는 분은… 역사적으로 모든 나라가 난민 문제를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도 한국전쟁으로 대규모 유민 사태를 경험한 바 있고 탈북 사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가슴 아픈 경험 때문에라도 우리 사회는 난민이 사회의 부담을 주거나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일시적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이해하고 부축해야 한다. 아인슈타인 등도 한때 난민이었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사회에 큰 공헌을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그만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www.unhcr.or.kr,02-773-7012)를 두드리면 된다. 유혜정 객원편집인 (UNHCR 한국사무소 행정팀장 unhcr@unhcr.or.kr> ■ 기획부터 만들어지기까지 객원편집인이 직접 지면을 기획하고 취재와 기사 작성까지 맡는, 다소 파격적인 지면이 오늘 게재되기까지 적지 않은 산고(産苦)를 치러야 했다. 본지 편집국 자체 작업이라면 사나흘 걸릴 일을, 한 달 이상 공을 들여야 했다. 이 기획을 처음 구상하고 착수한 것은 지난달 9일쯤의 일이다. 세계 난민의 날 특집을 준비하다 난민 문제에 가장 정통하고 경험이 있는 전문가 집단에 지면을 통째로 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후 여러 단체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한 결과, 아름다운재단 소속 공익변호사 그룹인 ‘공감’과 유엔난민기구가 적격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본지는 광고 5단을 제외하고 10단짜리 2개 지면을 할애하기로 하고 두 단체와 접촉, 취지를 설명한 뒤 매주 한번씩 이들 기관의 사무실에서 만나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이 기획을 구상할 때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가급적 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판단을 존중하고 본지 편집국은 이를 보완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본지 편집국은 기술적인 문제에 관한 조언에 치중하고 기획의 핵심은 이들 두 기관이 스스로 방향을 잡아가도록 했다. 사진 촬영과 그래픽 작업, 제목 작성 등은 편집국 기자들 손에 맡겨졌다. 또 점검 회의에서 정부의 난민 보호 담당자들과 난민 보호를 위해 앞장서 일해온 여러 단체 활동가들의 좌담을 마련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이 기획이 나간 뒤 적정한 시점에 좌담을 갖기로 하고 이를 추진 중이다. 본지 편집국은 객원편집인 기획을 앞으로도 늘려가려 한다. 기자 집단의 한계를 벗어나 정부나 시민사회 대표자들이 직접 지면을 꾸려보고 시민을 상대로 대화하게 함으로써 활동의 외연(外延)을 넓혀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맞혀보세요 다음 10명의 유명인 가운데 한때 난민으로 지낸 적이 있는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자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마들렌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나디아 코마네치 체조선수 조지 웨아 축구선수 김대중 전 대통령 마를렌 디트리히 가수 겸 배우 게오르규 솔티 지휘자 루돌프 누레예프 발레리노 답은 10명 모두
  • “강제송환땐 정치적 탄압 가능성”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안철상)는 3일 미얀마인 마웅마웅소(32) 등 9명이 법무부를 상대로 낸 난민인정 불허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8명에 대한 불허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마웅마웅저(30)의 청구는 기각했다. 법무부가 내린 난민인정 불허 처분을 법원이 뒤집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이 미얀마 군사정부의 박해를 피해 입국한 것은 아니지만, 입국 뒤 미얀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미얀마 군사정부의 정치적 탄압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반정부 활동를 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조국으로 강제소환되면 정치적 탄압을 당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난민협약에서 규정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있는 공포’를 갖고 있으므로 난민인정 불허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마웅마웅저에 대해서는 “활동 기간이 짧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충분치 않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1994∼1997년 입국한 뒤 2000년 난민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2005년 7월 소송을 냈다. 법무부 관계자는 “판결 내용 등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인정받지 못한 난민] “민주화 이룬 한국… 난민문제엔 후진국”

    [인정받지 못한 난민] “민주화 이룬 한국… 난민문제엔 후진국”

    “한국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고 굳게 믿었는데 난민 문제에 있어서는 후진국인 것 같습니다.” 휴일인 지난 24일 오후 서울 대학로.20여명의 미얀마인들이 사진과 그들의 주장이 담긴 게시판을 걸어놓고 고국의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등에서 활동하는 ‘정치적 난민’들이다. 이들은 “과거 한국처럼 군사독재에 허덕이는 미얀마의 민주화 쟁취를 위해 한국에 망명해 싸우는 우리들의 신분을 인정해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에 ‘정치적 난민’ 지위를 신청한 미얀마인 9명이 우리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 불허와 함께 강제 출국을 통보받은 것은 지난 3월 말. 이들은 강제 출국되면 미얀마에 입국하자마자 군사정권의 비밀경찰에 붙잡힌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들은 정치적 난민이라기보다 한국 내 장기체류를 원하는 불법 입국자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한국정부 “민주화운동 경력 증명하라.” 미얀마인 마웅저(37)는 2000년 5월 난민 지위를 신청한 뒤 5년 동안 한국 정부의 허락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그는 법무부로부터 “난민협약 제1조(정치적 이유로 자국에서 ‘충분하고 근거있는 공포’를 당하는 경우)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난민 인정 불허 통지를 받았다. 마웅저는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7월이면 당장 한국 땅을 떠나야 한다. 미얀마는 아직 군사정권 치하에 놓여 있다.1990년 아웅산 수치 여사의 NLD가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군부는 정권을 이양하지 않았다. 마웅저는 고등학생이던 88년 미얀마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을 때 ‘전국학생연맹’이라는 지하 학생운동단체에서 일했다. 그는 동료들이 하나 둘 비밀경찰에 붙잡혀가던 94년 10월 한국으로 도망쳐 왔다. 그는 미얀마에 NGO(비정부기구)를 만들어 민주화운동을 이끌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마웅저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모든 과정을 설명했지만 ‘당신의 민주화운동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미얀마와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 운동을 겪었던 한국의 경험을 배우려고 이곳에 왔지만 기대와 달리 난민 인정이 너무 까다롭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모아(31)는 미얀마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투사’였다고 한다. 민주화 항쟁을 탄압하는 군사정권을 피해 94년 8월 브로커를 통해 한국 산업연수생 자격을 얻었다. 모아 역시 “군사독재를 무너뜨린 민주화 경험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99년 NLD 한국지부를 만들어 현재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모아도 지난 3월 ‘정치적 박해의 사유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난민 자격을 얻지 못해 7월 마웅저와 함께 추방될 처지에 놓여 있다. 모아는 “미얀마로 쫓겨나면 공항에 대기하고 있는 비밀경찰에 곧바로 붙들려갈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난민 신청자 급증… 인정요건 애매모호 국내 난민 신청자는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1994∼2002년 9년간 166명이었던 난민 신청자가 2003년 83명, 지난해 145명으로 늘었고 올들어서는 넉달도 안돼 100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난민 인정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선정 요건도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미얀마 난민 신청자들은 지난 5년간 심사과정에서 단 한번도 적절한 통역을 제공받은 적이 없다. 또 직책의 유무를 중시하는 등 적용기준도 들쭉날쭉이다. 마웅저, 모아와 함께 난민 신청을 했던 19명의 미얀마인들 중 NLD 한국지부 간부 3명만 ‘투쟁 주도자’라는 이유로 2003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한국에 망명한 ‘줌마족’ 12명이 한꺼번에 난민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해 10월 발간한 국내 외국인 난민 인권실태 조사보고서에서 “법무부가 독립적인 난민인정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즉흥적인 심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난민 신청자들을 위해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 황필규 변호사는 “미얀마인들의 난민 지위 인정기준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법무부에 면담 내용 열람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국가안전보장 등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법무부 “무조건 인정해주긴 어렵다.” 하지만 정부는 망명 근거가 부족한 외국인의 난민 신청을 무조건 인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출입국관리소 난민실 이인숙 주사는 “이번에 허가받지 못한 미얀마인들은 불법체류 상태로 오랫동안 머무르다 뒤늦게 난민 지위를 신청한 것”이라면서 “이들은 불법체류자로 강제출국될 것이 두려워 난민 자격을 신청했을 뿐 정치적 난민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정부가 난민 제도를 악용하는 외국인들까지 보호할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장기체류 수단으로 악용 우려” “난민 지위를 악용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난민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법무부는 국제 난민협약에 기초해 선의의 난민 신청자는 보호해야 하지만 협약을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온정을 베풀 수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 출국관리과 김판준(49) 사무관은 “우리나라 난민 지위 인정은 난민협약 제1조에 명시돼 있는 ‘인종·국적·종교·정치적 견해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을 경우’라는 기준에 따라 적용되고 있다.”면서 “단 국내 장기체류의 방편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가려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무관은 미얀마인 9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들은 난민협약의 다섯가지 박해 사유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으며, 대개 한국에 몇년 동안 머물렀던 사람들이라 장기 체류의 수단으로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3년 난민지위가 인정된 NLD 한국지부 간부 3명과 이들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집회나 시위에서도 전체 참여자가 아니라 주동자 일부만 처벌하는 것처럼 한국지부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들과 단순 구성원과는 분명 차이가 있지 않으냐.”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법무부도 올해 난민 신청자가 급증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반응이다. 법무부는 지난 2월부터 난민법 제·개정 연구위원회를 구성, 향후 방향을 모색 중이다. 김 사무관은 “인권단체 등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독립적인 난민 지위 인정기구에 대해 법무부도 나름대로 위원회를 만들어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달라.”고 덧붙였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색안경 벗고 우리 처지 이해를” “직책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간부들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것 같아 함께 투쟁해온 동료들에게 미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아웅 미엔트 스웨(42) 회장은 “함께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동료들이 결국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강제로 출국당하게 돼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애석해했다. 그는 2003년 부회장, 총무 등 2명의 한국지부 간부들과 함께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면 회장이라는 직책은 늘 바늘방석이었다. 스웨는 “2000년 5월 난민 지위를 신청한 21명의 동료들은 모두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쳤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직책의 유무로 민주화 운동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웨는 한국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나서야 난민 지위를 신청한 이유를 묻자 “입국 초기에는 다들 미얀마의 민주화에만 주목했지 각자의 신분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못했다.”면서 “1999년 한국지부의 한 간부가 불법체류자로 몰려 강제출국당하고 나서야 신분 확보가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 동료들이 미얀마에서의 박해 사유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한국정부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5년간 우리 동료들이 자기 처지를 설명할 수 있었던 기회는 겨우 15∼20분에 걸친 4∼5차례의 면담밖에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스웨는 “미얀마가 민주화되면 우리는 반드시 한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한국인들도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한 만큼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고 우리의 절박한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화물선 침몰 한국인9명 실종

    8일 중국 황해에서 한국 국적 화물선이 마샬군도 선적 선박과 충돌해 침몰했다고 AFP통신이 중국 해상구조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사고로 화물선에 타고 있던 한국인 선원 9명과 미얀마인 선원 2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원 1명의 시신이 발견됐지만 신원은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새벽 4시쯤 중국 장쑤성(江蘇省) 북동부 롄윈강(連雲港)으로부터 130㎞가량 떨어진 황해 해상에서 한국 국적의 화물선 ‘선크로스(Sun Cross)’호가 마샬군도 선적 선박과 충돌해 침몰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산업연수생 신종착취에 운다

    산업연수생 신종착취에 운다

    “신분이 탄로날까봐 공장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합니다.” 경기 수원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네팔인 우메스(35)는 지난 3년 동안 고국의 가족들에게 국제전화를 걸 때를 빼곤 본명을 써본 적이 없다. 우메스는 위조여권으로 한국에 온 ‘가짜’ 산업연수생이기 때문이다. ●가짜신분 탄로 날까봐 본명 못써 그는 1998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뒤 서울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체류기간 3년이 끝난 2001년 고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웃돈만 주면 다시 한국에 가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인력송출업체 L사의 말에 솔깃, 석달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한 차례 산업연수생으로 다녀가면 연수생 신분으로는 다시 입국할 수 없다. 한국행을 원하는 현지인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현지인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인력송출업체는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우메스는 업체가 법정 송출비용 130만원의 4배가 넘는 570만원을 요구하는데도 ‘한국행’을 선뜻 포기하지 못했다. 결국 급한 마음에 거금을 주고 왔지만, 가짜라는 사실이 탄로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송출업체 불법착취 비일비재 1993년 11월 도입된 산업연수생 제도가 송출 에이전트의 불법 착취로 얼룩져가고 있다. 웃돈까지 얹은 송출비를 요구하는 것은 기본이고 국내에서 3년기간이 끝난 뒤에도 여권을 위조, 다른 사람으로 신분을 속이고 다시 입국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는 고용허가제와는 달리 퇴직금이나 연월차, 잔업수당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들은 1년의 연수과정을 거치면 연수취업자 자격으로 2년 동안 더 머무를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값싸게 외국 인력을 쓸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선호한다. 하지만 고용허가제가 출범한 지난 8월 이후 산업연수생에 대한 당국의 관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 미얀마인 퓨퓨(20)는 지난 10월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광주의 스펀지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산업연수생 송출업체인 S사에 법정 비용인 130만원에 웃돈을 얹어 400여만원을 냈다. 게다가 가족의 전 재산인 850만원 짜리 고향 집의 주택계약서까지 S사에 담보로 맡겼다. 그가 산업현장을 이탈하면 회사의 연수생 할당량이 줄어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 담보를 요구하는 이유였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그는 숙박비 등을 이유로 첫달치 월급은 받지 못했다. ●네팔 등 15개국 50개 송출업체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13일 우메스 등 네팔 산업연수생들을 불법입국시키거나 과다한 비용을 받은 인력송출업체 L사 국내지사장 전모(47)씨 등 3명을 배임수재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2000년 1월부터 네팔인을 산업연수생으로 선발해 주는 조건으로 법정 비용 130만원에 120만원씩을 더 받아 2800여명으로부터 33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네팔인 산업연수생을 이름만 바꿔 재입국시키는 수법으로 2002년부터 260여명에게 130여만원씩을 받아 3억 5000여만원을 챙겼다. 남대문서 송용욱 수사과장은 “대다수 피해자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진술을 꺼리기 때문에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에 산업연수생을 보내고 있는 나라는 네팔과 미얀마 등 15개국에 현지 송출업체는 50개에 이른다.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 한명실 간사는 “산업연수생에 대한 당국의 관리와 관심이 멀어지면서 송출업체들이 온갖 새로운 방법으로 연수생을 착취하며 이윤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지학순평화상에 미얀마 ‘영치우 노동자연합’

    들빛회-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사장 윤공희 대주교)은 제8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미얀마의 ‘영치우 노동자연합’을 24일 선정했다. 영치우 노동자연합은 미얀마의 박해를 피해 태국의 메솟 지역에서 사는 미얀마인의 자치단체. 주로 아시아 의류기업에 고용돼 태국인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과 폭력·살해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시상식은 새달 10일 오후 6시30분 한국일보 13층 송현클럽에서 있다.(02)2266-7001.
  • “이웃사랑에 국경이 따로 있나요”미얀마인20명 겨울나기 돕는 김규환씨

    “올해 성탄절은 미얀마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축구 시합도 하면서 따뜻하게 보내겠습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자 성공회대 입학관리과 직원 김규환(金圭煥·30·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씨는 한층 바빠졌다. 한국 정부로부터 공식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미얀마인 20여명의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부천의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사무실을 찾는 발길이 잦아졌기 때문이다.또 지난 여름 휴가 대신 농활을 다녀온 베트남 현지 주민과도 내년 봉사활동 일정을 짜느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특히 김씨는 3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샤린(30) 등 미얀마 친구들이 매달 셋째주 서울 한남동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할 때마다 경찰에 집회 신고를 대신해 주는 등 잔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미얀마 문제를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cafe.daum.neturma)’에서 140여명의 회원을 상대로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미얀마인 르윈(36)의 병원비 모금운동도 벌이고 있다. 지난 99년 이 대학 신학과를 졸업한 뒤 모교에 둥지를 튼 김씨는 “재학시절 사회봉사 과목을 수강하면서 ‘열림’과 ‘나눔’,‘섬김’을 생활화하는 마음자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지난 여름엔 후배 대학생 3명과 함께 베트남을 찾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손자를 잃고 얼굴에 심한 총상을 입은 할머니에게 벽돌집을 지어주기도 했다.한국군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교 후배들에게 남몰래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해온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김씨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학점만을 채우려고 형식적으로 봉사활동을하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
  • 난민지원 법률센터 설립 추진

    지난 2월 법무부가 아프리카 반체제인사를 처음으로 ‘난민’으로 인정한 뒤 난민문제를 전담할 난민법률지원센터가 생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4일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난민관련 학자,자원봉사자 등으로 ‘난민법률지원센터’를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또 “난민법률지원센터를 통해 난민심사수속과 통역 지원은 물론,난민인정이 거부됐을 때 이의신청과 소송까지 지원해줄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참여연대 등 15개 시민단체들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적 탄압을 피해 입국,지난해 5월 난민신청을 한 미얀마인 19명에 대해 조속히 난민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 28명탄 화물선 日서 실종

    한국인 6명과 미얀마인 22명 등 28명의 선원이 탄 한국 화물선이 일본해상에서 항해도중 실종돼 일본해상보안청 등에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남 자시신 1구와 실종된 선박의 이름이 적힌 구명보트,유출기 름이 잇따라 발견된 점으로 볼 때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해양수산부와 부산해경에 따르면 지난 7일 바닷모래 3만 2,000t을 싣고 인천항을 출항한 부산선적 화물선 홍해 산요호(2만2,725t)가 10일 오전 5시쯤 ‘정상운항중’이라 는 전문을 보내온 뒤 지금까지 연락이 두절되고 있다는 것 이다. 홍해산요호는 당초 인천항을 출항해 동중국해와 일본 규 슈·시코쿠를 거쳐 10일 오후 6시 효고현 이에시마에 도착 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오후 8시가 넘도록 선박이 도착하지 않아 일본측 선박대리점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에 수색을 의 뢰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11일 오전 6시 30분쯤 시코쿠 고치(高 知)현 아즈리미사키 20마일 앞바다에서 기름띠와 화물선 이름이 표시된 무인 구명보트 1척을 발견한데 이어 이날 오후 구명복을 입은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시신 1구,고 무보트 3대,구명튜브 1점등 유류품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 러나 정확한 사고 경위와 선체 및 나머지 실종 선원들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성수·부산 이기철기자 sskim@
  • 10회 서울인형극제 28일 개막

    세계인형극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서울인형극제가 10돌을 맞아 오는 28일∼30일 서울 문예회관 등 소극장 6곳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이 잔치는 전세계 10개국의 전문 인형극단이 참가해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보여준다. 우리 나라 인형극의 ‘산증인’인 안정의 서울인형극회대표는 “어린이문화를 홀대하는 한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의 감수성도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서 “인형극은 단순히 어린이만을 위한 ‘하찮은 공연’이 아니라 가족간의 대화를 유도하고 상상력을 키우는 좋은 씨알”이라고 의미를부여했다. 이번 대회에는 국제적 감각을 자랑하는 뉴질랜드의 ‘아웃 오브 핸드 프로덕션’을 비롯 모두 16개팀이 참가한다.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의 화려한 인형극과 미주 지역의 세련되고 감성적인 작품들,아시아 각국의 민속인형극들이 동심을 기다리고 있다. 이중 뉴질랜드팀은 코미디와 서커스 요소를 대폭 도입한 색다른 공연으로많은 웃음을 줄 것으로 보인다.마술 쇼,손으로 보여주는 동물 그림자극,피에로의 코미디쇼등으로 유럽에서 각광받고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대만 스페인 핀란드 미얀마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중국 인형극의 전통을 잇고 있는 대만의 소서원(小西園)은 30여차례 해외공연을 통해 ‘대만의 문화대사’역할을 하고 있는 유명한 극단이다.핀란드의헤보젠켄카 극단은 인형과 사람이 함께 무대에 서는 복합공연의 흐름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미얀마인형극단은 전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줄인형을 선보인다.미얀마 공연단체로서는 국내 무대에 처음 선다. 하영훈집행위원장은 “이제까지 보여주는 차원에 머물렀다면 올해부터는 ‘엑스포’의 개념을 도입,상품성을 높이고자 한다”면서 “해외 인지도가 높아져 자비로 참가하는 팀도 3팀이나 된다”고 소개했다.(02)723-8930이종수기자 vielee@
  • 얌체 불법체류 외국인‘50원으로 국제통화’

    불법체류 외국인들 사이에 공중전화기의 카드 감지기를 교란시켜 국제통화를 거는 방법이 악용되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공중전화를 운용하는한국공중전화와 모회사인 한국통신도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서울 동부경찰서는 1일 미얀마인 불법체류자 우네린(26) 등 4명을 편의시설 부정이용 혐의로 구속했다. 우네린 등은 지난달 30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공중전화기에 카드를 넣은뒤 후크를 빨리 두드려 감지기를 교란시키는 수법으로 9분 동안 본국에 전화를 거는 등 올해 초부터 21차례에 걸쳐 국제통화를 국내 전화요금으로 건 혐의를 받고 있다. 우네린은 “평소 알고 지내는 파키스탄인으로부터 50원으로 국제통화를 거는 방법을 배웠다”며 “불법체류 외국인들 상당수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연간 피해액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면서 “보완장치를 개발해도 새로운 수법이 또 생겨 공중전화기를 공짜로 사용하는문제는 세계적인 골칫거리”라고 밝혔다. 한국통신은 지난해 공중전화기를 통한 공짜 국제통화 사용을 막기 위해 보완장치를 개발,설치했다.
  • 항고기추락 사고현장 주변

    60여명의 중경상자를 낸 대한항공 1533편 여객기는 15일 오후 늦게까지 허리가 두동강이 난 채 언덕에 걸쳐 있는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방호벽에 부딪치면서 조종실과 날개,꼬리부분 등 3분의 1 가량이 크게 파손돼 당시의아찔한 순간을 짐작케 했다. ▒20분 가량 늦게 출동하기는 했지만 사고 현장에는 소방차와 앰뷸런스 30여대가 출동해 부상자를 차례로 포항시내로 실어날랐으며 펌프차 7대와 화학차 6대,탱크차 2대 등이 동원돼 활주로와 기체 주변에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했다.군경은 한 때 기체의 폭발 가능성 때문에 긴장했으나 조종실 주변 등을점검한 결과,폭발 위험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자 안도하기도 했다. ▒부상한 승객 李용성씨는 “여객기가 착륙했는데도 감속능력을 잃고 질주하는 것을 보고 사고를 직감했다”면서 “착륙하기 전에 창밖을 보니 사람이흔들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승객 鄭종락씨(64·포항시 남구 오천읍)는 “사고직후 6개의 비상구가 열리자 승객들이 처음에는 모두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등한 때 큰 소동을빚기도 했으나 곧 안정을 되찾고 차례로 비상구를 통해 내렸다”면서 “1차착륙직전 기장이 ‘곧 착륙하니 안전띠를 매라’고 기내방송을 해 모두 안전띠를 맨 상태여서 큰 부상자가 없었던 것 같다”고 안도했다. ▒한편 李龜澤 포항제철 사장이 사고비행기에 탔다가 가벼운 찰과상을 입고포항 성모병원에서 간단한 진료를 받은 뒤 오후 3시쯤 귀가했다.사고여객기에 탑승한 미국인 1명,중국인 4명,일본인 1명,미얀마인 2명 등 외국인 8명은모두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인 승선 화물선 실종 3개월만에 중국서 발견

    실종된 텐유(TENYU)호 사건을 수사중인 중국 공안당국은 텐유호를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산에이1호에 탑승했던 미얀마인 선원 2명이 텐유호를 탈취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이들의 신원파악에 주력하 고 있다. 29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중국 공안당국은 현재 장쑤(江蘇)성 장지야항에 억류돼 있는 산에이1호의 인도네시아 선원 16명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이들이 배에 처음 승선할 당시 미얀마인 선원 2명이 타고 있었으나 선박인계 후 곧 바로 하선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또 매매자와 매입경로 등을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산에이1호의 실소유주가 지난 21일 잠적함에 따라 소재 파악에 나섰다. 한편 텐유호 선주인 일본의 (주)텐유해운은 지난 23일 일본 선박보험사를 통해 중국 해사법원에 산에이1호에 대한 압류 및 동일선박 확인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중국 교통부 해상수색본부는 텐유호 실종 3개월만인 지난 21일 산에이1호 가 장지야항에 입항하자 실종된 텐유호와 비슷하다고 판단,수색 결과 엔진번 호(9152)가 텐유호와 같고 등록번호도 허위인 것을 밝혀냈다. ▒인천 l 金學準 hjkim@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일본 해상서 화물선 침몰/한국인 1명 등 4명 사망

    [도쿄 연합] 5일 새벽 0시10분께 일본 아이치현 이라고곶 동남쪽 47㎞ 해상에서 한국인 3명과 미얀마인 5명을 태운 온두라스선적의 화물선 ‘안티로프’호(1천165t)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국인 선장 손정환(57)씨와 미얀마인 3명 등 4명이 숨졌다. 8명의 선원중 일등항해사 곽태경(37),기관장 김왕주씨(51) 등 한국인 2명과 미얀마인 1명은 해상표류중 일본해상보안청 순시선 등에 의해 구조됐다.또다른 미얀마인 1명은 행방불명됐다.
  • 유조선 한밤 화재/인명피해는 없어

    19일 하오 8시12분쯤 울산시 동구 방어동 화암추 남동방 0.5마일 앞바다에서 정박중이던 파나마선적 1천385t급 유조선 준유1호(선장 백홍기·54)에서 화재가 발생,기관실과 조타실을 태운 뒤 하오11시쯤 불길이 잡혔다. 불은 다행히 기름탱크에는 옮겨붙지 않아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배에 승선한 14명 가운데 백씨와 기관장 박형근씨(43) 등 2명은 상륙해 있었고 배에 있던 미얀마인 선원 12명도 해경에 모두 구조됐다.
  • 군산앞바다 “오염비상”/화물선­유조선 충돌 휘발유 420㎘ 유출

    ◎화물선 침몰… 4명 사상 【군산=조승진 기자】 1일 상오 5시30분쯤 전북 군산시 어청도앞 남서방 15마일 해상에서 부산 포천사소속 2천5백t급 유조선 제8한창호(선장 오승근·51)와 중남미 벨리즈선적 9백93t급 화물선 골든유나이트호(선장 김두석·56)가 충돌,화물선이 침몰했다. 이 사고로 화물선에 타고 있던 3등기관사 흘라윈씨(45·미얀마인)가 익사했으며 1등기관사 킨쏘씨(44·〃) 등 선원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또 유조선의 좌측 4번째 유류탱크가 부서져 적재된 휘발유 4백20㎘(2천1백드럼분)가 유출돼 상당한 해양오염이 우려된다. 사고가 나자 해경과 해군은 함정 2척과 경비정 9척을 사고해역에 급파,긴급방제작업에 나섰으나 사고해역에 초속 12∼14m의 강한 바람이 불고 안개가 짙어 사고발생 10시간이 지난 이날 하오 3시반 현재까지 오일펜스 약 50m가량과 흡착포 3백40㎏과 유화제 2천5백38를 뿌리는데 그쳤다. 이처럼 방제작업이 늦어지자 사고해역에는 폭 20m,길이 5백m가량의 기름띠가 형성돼 바람을 따라 해상을 떠다니고 있다. 해양오염사고 전문가인 인하대 해양학과 박용철 교수(44)는 『휘발유의 경우 휘발성이 강해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증발하게 되나 이번 사고의 경우 유출된 휘발유의 양이 워낙 많은데다 증발해도 기름찌꺼기인 유분이 바다에 남게 돼 일정 정도의 해양오염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해경은 사고가 시계가 0.7마일에 불과할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 상황에서 두 선박이 무리하게 항해를 계속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수지 피선거권 박탈 추진/새헌법에 규제조항 추가/미얀마군정

    ◎정치참여 봉쇄 의도 【방콕 연합】 미얀마군사정부는 외국인과 결혼한 내국인에게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 있는 조항을 새로 제정중인 헌법에 삽입함으로써 영국인 남편을 두고 있는 민주화운동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51)의 정치참여를 제도적으로 봉쇄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주도로 새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구성된 국민회의라는 이름의 거수기 제헌국회는 최근 미얀마인임에도 불구,외국인과 결혼함으로써 외국인으로서의 권리를 향유하고 있는 자는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하는 헌법조항을 승인했다고 양곤의 정통한 서방 외교소식통들이 28일 전했다.
  • 실크로드 문명기행/허세욱 지음(화제의 책)

    ◎낙양∼파미르고원 실크로드 4천㎞ 답사기 2천2백년 전부터 1천여년동안 동서 문화교류의 통로 구실을 한 실크로드(비단길)를 직접 밟고 쓴 문화답사기.실크로드는 세 갈래가 있는데 이 가운데 중국 낙양에서 섬서·감숙성∼타림분지∼파미르고원∼중앙아시아 경로를 대표적으로 꼽는다.지은이도 이 경로를 따라 낙양∼파미르고원 사이 4천㎞를 답파했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비단길만은 아니었다.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중국의 원시인인 남전인·반파인의 석기시대 흔적을 만나고,중국의 전설적인 시조 황제·염제와 마주친다.황하문명의 발상지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불교·이슬람교가 들어오고 번창하면서 남긴 위대한 예술작품,몽골인·아랍인·이란인·미얀마인·카자흐인등 다양한 민족의 문화와도 맞대하게 된다. 고려대 중문과 교수인 지은이는 여행길에서 때로는 냉철한 눈으로 분석하고,때로는 한없는 감상에 젖으며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 94∼95년 서울신문에 「서역 문화기행」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내용을 비롯,일간지·잡지들에 실은 것들을 모아 새로 정리했다.원색사진·그림을많이 넣어 시원스레 편집했다. 대한교과서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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