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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양권 프리미엄 강남권이 주도

    아파트 분양권 프리미엄은 서울 강남 아파트가 주도하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 동시분양 아파트 가운데 가장 높은 프리미엄을 기록한 아파트는3차에 나왔던 서초동 동원아파트로 평균 4,590만원의 웃돈이 붙었다.특히 43평형의 프리미엄은 무려 6,600만원이나됐다. 다음으로는 청담동 한신 오페라하우스(4,468만원),문정동 삼성 래미안(4,286만원),방배동 ESA 3차(4,000만원),서초동 아이파크(3,704만원) 등이 높은 프리미엄을 기록했다. 강북에서는 성수동 롯데 캐슬파크가 3,400만원의 웃돈이붙었다.대방동 대림 e-편한세상 아파트는 3,000만원,양재동 신영 체르니 분양권은 2,704만원 올랐다. 닥터아파트는 프리미엄이 많이 형성된 아파트는 대부분인기지역에 분양됐고 브랜드 선호도가 높은 아파트라고 밝혔다. 또 분양가가 비싸더라도 실용적이고 고급스런 아파트 등이 웃돈이 많이 붙었다고 덧붙였다. 류찬희기자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9)월북작가 김남천

    편지를 잡문 차원에서 본격적인 문학 토론의 마당으로 격조있게 끌어올린 사람은 김남천(金南天,본명 孝植·1911∼?)이다.평남 성천군청에 근무했던 아버지나,일본 유학중 결혼하게 된 첫 번째 부인의 아버지가 성천 군수였다는 사실은 김남천의 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육중한 몸매에 미남이기도 했던 그는 일본 호세이(法政)대 시절부터 좌익운동에 투신,당대 운동권의 주역 임화,최승희의 남편 안막 등과 도쿄에서 카프 활동을 전개하면서 일약 지도적 인물로 부상한다. 이후 그의 이름은 언제나 임화와 나란히 붙어 다니면서 카프 후반기를 제압하는 주역으로,비단 문학활동만이 아니라 평양고무공장 파업(1930년)에 참여하는 등 현장성 강한 운동으로 제1차 카프 검거(1931년 8월)때 2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1933년초 병보석으로 출옥하나 두 딸을 남겨둔 채 아내가죽어 조신하던 터라 이듬해 카프 제2차 검거 때는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1935년 평양에서 상경한 그는 임화,김기진과함께 경기도 경무부에 카프 해산계를 제출하여,10년에 걸친한국문학사에서 카프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이 사실 때문에 이들 셋은 두고두고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여운형이 발행인이었던 조선중앙일보(1933년 2월 창간)에입사했던 그는 근대 민족언론사의 획을 그었던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의 간접적인 피해자가 된다.베를린 올림픽(1936년 8월1일)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사진을 국내에 처음소개한 것은 8월 25일자 동아일보였고,이 사건으로 사회부장이었던 작가 현진건이 언론계를 떠난 이야기는 다 아는 사실이다.신문사 끼리의 경쟁심리 때문에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 가슴에 새겨져 있는 일장기를 없애고는 그 위에다 희미한태극까지 부각시켜 자진 휴간(9월5일)을 거쳐 아예 폐간되었다.바로 김남천의 실직 사연인즉슨 이러하다.이즈음 그는 창작과 비평의 양수잡이로 맹활약하면서 문단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이런 내막이 담겨있다. 그는 최정희의 소설 ‘흉가’에 대하여 월평 ‘여류작가의난관과 ‘흉가’ 검토의 중점’(조선일보 1937년 4월8일)에서 기대와 비판을 동시에 가하고 있다.당시 김남천의 태도에 대해서는 출옥후 이미 전향했다는 관점과,탄압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고수했다는 주장이 다 있는데,이 편지로 미뤄볼 때 후자 쪽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문학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글이다.김남천의 비평활동에 불만을 품은 작가들은 많았는데,편지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그를 비난한 건 극작가 김진수(金鎭壽.1909∼1966년)였다.평남 중화군 출신인 그는 릿교(立敎)대학 졸업 후 만주국 간도성 연길현(延吉縣) 용정가(龍井街) 은진(恩眞)국민고등학교에근무(1938∼45년)했다.1920년 캐나다인 부두일(富斗一)이 창립한 이 학교는 송몽규 문익환 윤동주가 다녔던,민족의식이강한 명문교인데 1946년 ‘룡정중학’으로 병합되어 오늘날중국 동북지역의 관광명소로 남아있다. 그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지는 바로 이 학교 공문서 서식용지이며,내용은 김남천의 평문 ‘동시대인의 거리감-9월 창작평’을 화두로 삼는다.최정희의 ‘지맥(地脈)’을 언급한이 평문이 김진수에게는 무척 못 마땅했었던 것으로 썼지만속내는자신의 분풀이가 더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글을 쓴 날자가 9월28일,책방에서 ‘문장’지를 샀다면서 그는 김남천을 한껏 물어뜯는다.누가 읽어도 편견과 속좁음이 느껴지는 이 글을 왜 썼을까.김진수는 일본 유학시절부터 황순원등과 학생예술좌를 창립(1935년),연극활동을 했는데,문단활동은 극예술연구회(1931년 김진섭 유치진 이헌구 등이 창립) 공모에서 장막극 ‘길’이 당선(1936년)되고서였다.그가 단막극 ‘향연’을 ‘조광’에 발표한 것은 1938년 11월호였는데,김남천은 발 빠르게 조선일보 창작평 ‘미성년의 문학-김진수와 권명수’(1938년 11월11일)에서 “극연(劇硏) 당선작가(불행히 나는 당선작을 읽지 못했다)김진수씨의 희곡 ‘향연’을 읽고 나서 나는 이 분이 미혼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는 서두로 시작하여 그리 탐탁찮은 평을 가해댔다. 김남천에 대한 유감은 아마 이때부터 똬리를 튼 것 같다. 불만은 또 있다.김진수는 애시당초 문학에서 사회니,민족이니 하는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그러나 김진수의 울분 속에는 나름대로의 심미안이 탄탄하게 드러난다.작가 최명익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바로 김진수의 미학적 체질을 엿볼 수있는 대목이다.친일작가 장혁주와 최대의 친일평론가 김문집은 긍정하면서 김남천에 대해서는 못마땅하게 비꼰 김진수가 8·15 후에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는 물으나마나다.“유치진과 더불어 해방 이후부터 50년대 희곡계의 주도적 세력이었던 보수주의적 극작가들의 보편적인 유형”(박명진 ‘한국희곡 이데올로기’)이었다는 게 정평이다. 김진수에게 그렇게도 못 마땅했던 김남천은 8·15 후 임화와 함께 화려하게 재기,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다가 월북,남로계의 몰락으로 남북한 문학사의 지평으로부터 사라져버린 별이 되었다.통일은 아마 이들의 복권과 더불어 다가 올것이다.역사는 어떤 탄압으로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니혼(日本)대학을 중퇴한 정비석(1911∼1991년)이 ‘성황당’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1937년)되어 상경을 꿈꾸다가 매일신보 기자가 된 것이 1941년 10월이니,그가 최정희의 소설 ‘인맥’(1940년 4월)을읽고 감동하여 보낸 편지는 이즈음의 것이다.그가 상경 직전 있었던 곳은 평북 용천군.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백천(白川)온천을경영하며 많은 문인들에게 휴식을 제공했던 장만영(1914∼1975년)은 뭔가 최정희와 토라짐 같은 게 내비치는 사연을 담고 있다.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시라. 이렇게 한쪽에서는 싸우며 고뇌하는 다른 한쪽에서는 그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또 어느 다른 곳에서는 친일에 열을 올려 그 대가로 호사를 누리는가 하면 어느 곳에서는 유유자적 즐기고 있는 속에서 역사는 흐른다.이럴 때대체 남도출신 문학인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지냈을까.김동리(金東里,본명 始鍾·1913∼1995년)는 이 무렵 참담한 심경으로 경신학교에다 휴학계를 내고 형 범부(凡父,1897∼1966년)가 살던 부산으로 내려갔다.동양사상의 대가인 이 당대의 수재이자 기인인 범부가 어렵사리 꾸려가는 살림살이에 얹히게 된 동리는 영도다리에 떨어져 죽어 버릴까도 생각했으나,어찌 연이 닿아 형이 은신처로 삼았던 경남 사천군 다솔사(多率寺)로 거처를옮긴 게 1935년이었다.신춘문예 당선상금을 밑천 삼아 창작에 몰두하겠다는 결의였다. 김종직(金宗直)의 17대손인 이들 형제의 성공담에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없지 않다.무오사화에 얽혀 부관참시형을 당한점필재 김종직의 후손들은 그 화를 피하여 월성군 서면 계림골로 숨어들어 정쟁을 피하곤 했다.이런 문중일수록 풍수지리에 밝아 김동리의 할아버지도 선산을 보유했는데,한 권세가가 그 터에다 묘를 쓰자 그는 겁도 없이 그걸 파헤쳐 버렸다고 전한다.권세가는 할아버지를 귀양보냈는데 돌아와서는또 그 권세가의 무덤을 파헤쳐 다시 귀양,또 귀향하여 파헤치기를 세 번 되풀이하자 세도가의 기가 꺾여 포기했다는 전설 아닌 사실이 전한다.그 할아버지의 본댁은 이 와중에서자살해 버렸고 재혼하여 얻은 아들이 김동리의 아버지 김임수(壬守)이다.권력의 피해를 입으면 이를 피하거나 동경하거나 혹은 도전한다.아니면 이 세가지를 다 겸하기도 한다.김동리 일가가 지녔던 이런 가풍은 그의 문학과 무관하지 않다.샤머니즘적 인습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로 입문한 것은 어머니였고,그녀의 영향으로 동리는 경주 제일교회 부속학교를나와 대구 계성학교에 다니다가 서울의 경신으로 전학했지만 중퇴했다. 다솔사에서 이내 해인사로 거처를 옮긴 김동리는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약간은 들떠서 상경하나 이 시골뜨기 신인에게 인정을 베풀기에는 당시 경성(京城,현 서울)문단은 너무 재재다사(才才多士)에다 각박했다.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동료인 서정주와 어울리면서 울분을달래던 그는 이듬해에 다솔사가 세운 광명학원 교사로 내려가게 된다.처음에는 다솔사에 기거하며 광명학원까지 걸어다니던 김동리는 그 지방의 몰락 토호집에 하숙하다가 그 집 딸 김월계와 결혼(1938년),학교 부근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이때 그는 쇠약과 우울증으로 수필 한 편도 쓸 수 없었던 지경인데도 선비의 후예다운 기개를 보여준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큰 불평이 있더라도 내 자신의 신념이,일테면 천지의 정기(正氣)와 통하는 것이라고 철칙같이 믿고 있으니까,그른 것은 현실의 그것이요,그 그른 현실은 천지의약속에 따라 시정될 것이라고,이건 ‘만만디’식이라고 웃으실는지 모르지만 여기엔 조곰도 독기(毒氣)가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그러니까 말하자면 결코 염세자(厭世者)도 아니겠습니다.”이 편지들은 대략 1940년부터 1943년 그가 징용을 피해 사천읍에서 양곡조합 촉탁이 되기 이전에 보낸 것들인데,입장이달랐던 선배에게 꺼내기 어려운 화두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이만큼한 절조 위에서라야 순수문학은 제 자리를 찾을 수있을 터이다.그의 발신지 주소는 정확히 ‘사천군 곤명(昆明)면 원전(院田)' 이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李총리 ‘갈등의 하루’

    총리직 잔류냐,자민련 복귀냐를 놓고 이한동(李漢東)총리가 5일 밤늦게까지 가족 및 참모회의를 여는 등 고심을 거듭했다.5일 하루 이 총리의 행보를 시간대별로 정리한다. ■오전 7시: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는 신당동 자택에서 이총리를 만난 뒤 “새 총리가 각료를 제청하기 어려운 만큼절차상 남아있는 뒷처리를 잘하고 돌아오라고 했고 이총리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오전 9시: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총리를 만난 한광옥(韓光玉) 청와대 비서실장은 “인사문제니 두고 보자”고 여운을 남겼다. ■오전 10시:중앙청사에서 열린 목가공품 전시회 개막식에서 기자들이 당에 돌아가느냐고 묻자 “당에 갈 이유가 뭐가 있어”,“대답할 게 없어”라며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오전 11시: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제17회 전국장애인 부모대회에 참석,방명록을 작성하면서 “이것이 총리로서 마지막 사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2시30분:이총리와 면담한 김용채(金鎔采) 건설교통부장관은 “이 총리가 JP의 뜻을 따르겠다고 명쾌하게 이야기 했다”고 전했다. ■오후 5시 30분: 6일 오전 10시 원자력안전의 날 기념식에과기부장관을 대신 참석시킨다고 발표했다. ■오후 6시30분:이 총리는 한갑수(韓甲洙)농림부장관,조부영(趙富英)부총재 등 자민련 관계자들과 면담 직후 기자들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 미안하다”고 밝혔다.김영진 실장은 “이 총리가 언제 자민련에 안간다고 한 적이 있느냐. 확답을 피한 것이 혼선으로 비쳐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후 9시:이후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이 총리측은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가족회의와 측근회의를 잇따라갖고 거취문제를 숙의했다. 측근들은 대부분 ‘총리직 잔류’를 건의했고,가족중 일부는 ‘정치도의’를 이유로 ‘자민련 복귀’를 주장했다고한 참석자가 전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임동원 표결 정국/ 신당동 표정

    ***JP “오후까지 기다려보자” . 김종필(金鍾泌·JP) 자민련 명예총재의 서울 신당동 자택은 2일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하루앞으로 다가온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해임안 표결 문제로 인한 고뇌의 밤을 보냈기 때문이다. 김 명예총재는 이날 오후 당사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가진뒤 서울 신촌 한 음식점에서 의원들과 식사를 함께하면서‘위하여’를 연발, 결속을 다졌다. 만찬이 끝난뒤 민주당입당파인 배기선(裵基善) 의원은 “눈물로 호소했으나 명예총재께서 ‘내일 표결에서 그대로 갈 수 밖에 없어 민주당에서 온 4명의 의원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 명예총재는 이어 신당동 자택에서 입장 철회를 호소하던 이적파인 장재식(張在植)·배기선 의원과 한갑수(韓甲洙) 농림부장관 등 3명과 함께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장·배 의원과 한 장관은 그러나 오후 10시반쯤 별 소득없이 김 명예총재의 자택을 나섰다.배 의원은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면서 “(JP의 입장엔)아직 변함이 없다”고전했다.배 의원은 “명예총재께서도 ‘대통령의 공조에 대한 깊은 마음과 햇볕정책를 지지하는 기본 입장에 조금도변함이 없다’고 말씀했다”면서 “내일 오후까지 시간이있으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보자는 말씀도 있었다”고 말했다.그는 특히 “명예총재가 어르신(대통령)에 대한마음의 변화가 없다는 말도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명예총재는 세사람이 집을 나간 뒤 곧바로 2층 서재로올라가 독서를 하면서 3일 표결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으며,이후 방문객들은 만나지 않았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8) 궁핍했던 시인 이용악

    “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다시 풀릴 때/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절창 이용악(李庸岳·1914∼1971)의 시 ‘북쪽’이다.같은 고향을 노래하는 데도 곰살스럽지 않게 식민지의 비애가 묻어나면서도 기개와 투지가 넘친다.민족정서를 노래한 시인 중 드물게 건장한 구리빛 얼굴의 농투사니 심경에 바탕한 남성적 세계를 형상화한 이용악은 여성적인 김소월과 대조를 이뤄 오히려 이 시인이야말로 우리의 민족시인이라는 주장이 확산되어갈 지경이다.그가 노래한 ‘북쪽’은 바로 함경북도 경성(鏡城),파인 김동환과 같은 곳이다.지연만으로도 이용악은 충분히 삼천리사와 가까울 수 있는 처지인데 거기에다 그 특유의 마당발식 사람됨까지 겹쳐 북도 출신 문학인의 재경(在京) 친목회장 격이었다. 누구나 서울 오면 그를 앞세워 고향 선배에게 찾아 다녔음이 여러 편지에서 드러난다.꼿꼿하기로 소문난 황순원조차도 평양에서 상경하면 최정희를 직접 만나지 않고 “이용악형과 함께 찾아 뵈올까 했으나 그날 사와 댁에 계실 것같지 않다는 이형의 개의(改意)”로 만나기를 포기하고 하향했다고 전한다. 황순원의 발신지는 평양시 무림리 156-6.숭덕학교 교사로3.1운동에 관련되어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아버지의 기개를 이은 듯한 고결한 시인이자 작가였던 황순원은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평양에 머물다가 1943년고향인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로 낙향하여 학대받던 한글로창작에 전념하며 상처 없이 8·15를 맞은 깨끗한 문사였다. 평양에서 낙향 직전에 보낸 이 편지로 이용악은 최정희의일정을 꿰고 있다는 것과 황순원을 비롯한 서도(평안도)와북도 문인들을 연계지어 주는 중개역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도 잡지사와 작가를 연계시켜 주는 단순한 뚜쟁이가 아니라 집필 상담도 해주는 자문역을 수행하고 있다. 장사꾼이었던 아버지가 객사한 뒤 어머니의 국수 떡 계란을 팔아 연명했다니 이용악 집안의 어려움은 알만하다.일본 유학시절에는 온갖 품팔이를 다 해본 이 시인은 가난의무서움을 알기에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에 민망할만큼 애절하게 취업을 청탁하고 있다.“매신(每日新報) 건(件) 지금으로부터 잘 운동하면 될 것 같은데 김선생(파인)께서힘써 주셨으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아무튼 수일 내로이력서 다시 써서 김선생께로 보내 볼 작정이 올시다”고이용악은 숫제 사정조다. 다른 한 편지에서는 “김동진(金東進)씨”를 언급하면서 “김선생께선 그후 만나실 기회가있으셨는지” 구체적으로 묻는데, 김은 바로 평양출신 언론인으로 1940년 11월부터 매일신보 상무로 있었던 인물이다.입사하기만 하면 친일파로 낙인찍혔던 매일신보에 그렇게 기를 쓰고 들어가려 했던 이용악의 소망은 좌절당했는데,대체 그가 얼마나 호구지책이 어려웠기에 이 지경이었을까.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1939)한 이용악은 물 불 가릴 틈새 없이 생활난에 허덕이며 ‘인문평론’같은 별로 평판이좋지 않던 잡지에 몸담았다가 서울 생활이 어려워져 귀향한 것이 1942년이었고,그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다 이때 쓴 것들이다. 바로 이 해에 최정희 주변에는 어떤 일이있었던가. 편지에 보면 우선 김동환과 신원혜 부부의 장남영사(英士·1926년생)가 죽었는데,파인은 매우 침통해 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용악은 최정희에게 “최선생 조차곁에 없다면 김선생께선 도저히 이번 슬픔에서 헤어나지못할 것입니다.잘 위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했는데,신원혜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은 천진스런 시인의 눈치가 엿보인다. 이용악 서간문의 발신지는 청진시 신암동이나,잠시 “극히가난한 월급 봉투를 받고 있던” 청진일보사였다. 그러나이 시인이 아이를 가지고도 “내지인(일본인)이 아니면 배급도 주지 않는다”는 가난 속에서 “입고 있던 와이셔츠등속이랑 뜯어서 기저귀를 만들었답니다.그러나 댁(최정희)에서 애기 낳을 때 쯤에는 혹은 얻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란 구절은 너무 서럽다. 콩트처럼 이런 가난한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어 단 한 컬레뿐인 ‘백화(白靴)를 훔쳐 가버렸는데,“용악이 보다도더 비참한 사람이겠습니다.덕분에 며칠이고 들어앉아 독서나 해야 밑지지 않겠습니다.취직되면 구두 한 켤레야 사겠죠”란 구절에 이르면 이용악의 인간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판세에 최정희에게 아기(지원)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의 설래발은 여전히 널리 펼쳐져 있었던 것 같다. 이 각박한 시대에 우리의 민족시인이용악이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채근담(菜根譚)’과 헤세의 ‘데미안’을 탐독했었다는 삽화는 그의 문학론 이해에 새 조명을 쏘게 해준다. 이 고난의 시기에 이용악이 쓴 시 ‘길’(‘국민문학’ 1942.3)은 자칫하면 “싱가포르 함락이라는 ‘지극히 복된기별’을 듣고 별을 우러러 ‘즐거운 백성’된 것을 노래함으로써 일제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했다는 엉뚱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은 “고통스런 시대를 살아가는 식민지 지식인의 부끄러운 자기 확인의 사회적 의미”(윤영천,‘이용악론;민족시의 전진과 좌절’)로 보기도 한다.사족이지만 이용악은 이 혹독한 가난의 체험 때문에 8.15직후상경하여 ‘조선총독부 도서관(국립도서관의 전신)’ 일본인 관장 관저가 적산가옥으로 접수된 걸 불하받는 민첩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조선문학가동맹에 적극 가담,활동했으나,정부수립 전후해서는 정인택(鄭人澤) 등과 정릉 이웃에 살다가 6.25 직전에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전쟁중 현덕·설정식 등과 월북한 그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관계는 얽히고 설키기 마련이어서 이용악이 그토록 들어가고자 했던 매일신보사의 ‘사진순보(寫眞旬報)’에 근무했던 작가 정인택은 직장 관계로 꽤나 친일작품을 지저분하게 남긴 심리주의적 경향의 작가로 이상·안회남(安懷南) 등 서울내기 중 몰락한 집안 출신들과 가까웠다.안회남은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외아들로 우국지사인 아버지 때문에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고독한 작가로 술을 즐겼다.진도로 유배당한 안국선이 현지 처녀와 결혼,방면 후 서울에서 얻은 아들이 바로 회남이다.지사 기질을이어받은 회남에게 식민지 교육은 배포가 안 맞아 아버지의 타계와 비슷한 시기인 고교 4학년 때 등록금을 유용한채 자퇴,문학과 술과 연애라는 일제 통치 아래서의 전형적인 절망의 문학병에 빠져들었다. 최정희에게 언제나 술타령 구절이 들어있는 편지를 보냈던곳은 종로구 체부동 시절로 안회남이 1940년대 초반 충남연기군 전의면으로 낙향하기 직전에 쓴 글들이다. 편지에는 친하게 지냈던 작가 현덕(玄德),이석훈(李石薰)이 등장하고,원고료를 받으면 “아내가 월여를 두고 조르던 전기다리미를 하나 사고는 최정희에게 점심을 사겠다”는데 그메뉴가 “정식을 취하시든지 또는 50전 영화 구경 50전 맥주 50전 런치를 취하시든지”하라는 제안은 당시 문인들의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엽서는 오히려 노골적인 사과내용을 담아낸다. “저녁에 댁에 간 것은 저의 잘못이올시다.용서해 주시옵소서.술이 대취했습니다”고 정중히 사과하는 안회남의 자세는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지사형 작가로서의 풍모가 드러나 있다. 이용악을 중심축에 둘 때 그 양쪽에 배치되어야 할 인물은당연히 같은 고향인 재주꾼 김종한과 문단에 별 기반을 못잡은 박찬모(朴贊謨)일 것이다. 원산 북선매일신보를 발신지로 한 박찬모의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연 ‘용악형’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현덕인데,작품 경향으로 볼때 용악과 현덕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통한다.“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이번 삼독째 덤벼 중권을 읽는 참에 독소전단(獨蘇戰端)의 보(報)를 받았다는 것이 요즈음 마치 살아나게 되는 것 같은 자극입니다”는 구절은 이 젊은 작가가시골에 몸은 두고서도 세계정세를 정확히 독파하고 있구나싶은 대목이다.세계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독일의패배는 예견된 필연이었다. “딱 엎드려 동면을 하고 싶은가 하면 느닷없이 어디 부딪쳐 보고 싶어 못 견디겠고”라고 이어지는 구절은 심상찮은 암시다. 아들 자랑과 가정을들먹이는 대목은 역사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자괴감을 달래려는 속내를 드러낸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5)여인의 우정

    사랑이 시대와 사회와 민족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스탕달의 ‘연애론’ 제2부에 나오는 유명한 화두다.식민지 시대의 연애는 어땠을까.한국 문단사에 등장하는 1920년대의연애는 기생과 문사의 사랑이었고,1930년대로 접어들면서민중운동성 연애가,그리고 일제 탄압이 강화되면서 보다 비극적인,그러나 다분히 불륜적인 연애의 유형이 등장한다.최정희를 둘러싼 세 여성,모윤숙과 노천명은 바로 이런 일제탄압기의 연애 유형을 실천한 여인상으로 부각된다.셋 다유부남과의 관계 때문에 고뇌하면서 문학과 인간과 사랑을함께 헤쳐나간 평생 동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그녀들의 애인은 셋 다 공교롭게도 납(월)북됐고,그 사실 때문에 우정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셋은 최정희를 가운데 두고 서로 여성적 독점욕의 질투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큰 문제는 안되었다.1911년 9월 1일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난 노천명(盧天命·1911∼1957)의 아명은 기선(基善)이었으나 여섯 살 때 홍역을 너무 심하게 앓아 죽는 줄 알았다가 살아나자 하늘이 내린 명이란 뜻으로 오히려 시인에 더욱 걸맞는멋진 이름을 얻었다.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1934)한 깡마르고 고적해 보이는 그녀가 일약 문단의 목이 긴 사슴으로 명성을 얻은 건 첫 시집 ‘산호림’을 내고 꽤나 호사스런 경성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고서였다. 1938년 1월이었는데,이 해가 그녀에게는 길운이었다.조선일보 출판부 발행 ‘여성’지 기자로 취직이 된데다,극예술연구회에 가입,체호프 원작 ‘앵화원’의 여주인공인 라프네스카야(모윤숙扮)의 귀여운 딸 아냐로 출연했다. 보성전문 김광진(金洸鎭)교수는 무대 위의 노천명에 매료되었고,그들은 이내 깊고 심각한 관계로 빠져 들었다.유진오가 소설 ‘이혼’(‘문장’ 1939.3.창간호)에서 이들의연애사건을 다뤄 장안의 화제가 되어버린 건 문단 가십의하나다. 소설은 홍윤희란 여학교 교사인 영문학 전공의 27세 노처녀(당시로서는 이 정도가 노처녀였다)여주인공과,조혼으로 아내를 외면한 채 여급,유한마담 등과 빈번한 관계를 가진 상사회사 회계주임인 38세의 박재신이 열애에 빠진 사건을 다뤘는데,참고로 말하면 유진오는 김광진과 같은 보성전문(고려대 전신) 교수(1936∼1945.3월 폐교 때까지)였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나이나 성격 등이 비슷하여 입방아에 올랐는데,남주인공은 아내에게 논 열마지기를 떼어주고 서류상으로는 이혼했으나 언제든지 시댁에 와도 좋다는,한번시집간 여인은 영원히 그 댁의 귀신이라는 철칙은 지키는기묘한 형태의 헤어짐을 강박했다. 사실 신여성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혼서류였으며,남자는 이걸 위해 고향에 장기 체류했다가 상경했는데,여주인공은 그새 삐쳐서 싸우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이 딱히 실제와는 다를지라도 노천명과 김광진의애정행로에 가로놓인 난관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데이트 중 여인은 주로 로렌스의 ‘차탈레이 부인의사랑’이 어떻고 계속 이야길 하지만 남자는 시큰둥하고,남자는 해군비행기가 중경(重慶)을 폭격했다는 등의 다분히 시사적인 화두를 끄집어 내는데,이에 대한 여인의 반응은 냉담 정도가 아니라 대륙의 지리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하여 놀랄 지경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사실 노천명이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런 둘 사이의 여러 갈등을 하소연하고 있는데,이 소설이 좋은 참고가 됨직하다. 물론 소설대로 믿기어려운 대목도 있다.남자에게 춤을 가르쳐달라고 여자 쪽에서 먼저 접근해 간 것으로 묘사한 건 아마도 작가가 동료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사건을 접근한 탓으로 보인다. 1902년 평남에서 태어난 김광진은 동경(東京)상대 졸업 후 보성전문에서 경제사를 강의했던 마르크시스트였는데,해방 직후부터 건준(建準) 평남지부의 무임소 위원이 되는 등이내 월북하여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노천명에게 더욱 큰 상처가 된 것은 김광진이 유명한 기생 왕수복과 관계를 맺어버렸다는 사실로,결혼까지도 고려했던 남성으로부터의 배신은 이 섬세한 여성시인에게 실의를 안겨 주었다.북한에서도 경제학 관계 연구활동을 계속했던 그는 1981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임대식 편 ‘식민지시대 한국사회와 운동’).편지도 일기장처럼 가장 고통스러울 때 길고 아름다워진다.워낙 고독한 노천명은 유부남과의 사랑의 아픔을최정희에게 서리서리 펴놓는다. 조선일보 근무 시절(1942년 사직)에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낸 것으로 봐서 연애의 초기가 가장 괴로움과 기쁨이 충만했던 것 같다.아마 노천명이 최정희에게 보낸 첫 편지는 “웬 일이겠수.며칠 전부터 당신에게 괜히 자꾸만 긴 편지를보내고 싶어 겉봉을 써 가지고는 호주머니 속에다 이렇게넣고 다니는데 당신에게서 우연히 글이 왔구려”라는 것인듯하다.‘친전’이란 걸로 봐서 직접 전해줬는데,이건 그만큼 은밀한 사연을 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당신은 내 맘에 맞는 이--고운 여인이오.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얘기를 하므로써 내가 자랑을삼”는다는 말처럼 노천명에게 최정희는 마력처럼 다가섰다.이 편지는 시집 ‘산호림’이 출간되기 불과 며칠 전이니까 아직은 천진스런 처녀 시인의 감상적인 일면이 그대로드러나 있다.즉 김광진을 알기 직전이었다. 다음 편지의 “문외한 김선생이 ‘거울’을 몹씨 칭찬하는구려”에 등장하는 ‘김선생’은 김광진으로 초기 데이트단계로 보인다.“정희!”라고 시작하는 편지에 이르면 김광진과 사랑이 깊어져 환희와 고뇌가 공존하는 모습을 엿볼수있다.“내 마음은 옛날을 더듬어 오직 아픈 것을 어찌 하겠소.허나 이런 말을 해 무엇하오.그는 진실하고 유망한 청년이었소.언제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훌륭한 청년이었소. 그가 행복하기만 몰래 빌고 있을 뿐이오”란 대목은 종잡을 수 없는 열정의 회오리 속에서 방황하는 자세가 나타난다. 이 기간에 아마 노천명은 구미포,진주,합천 해인사,백천(白川)온천 등지를 여행하며 최정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대개가 사랑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호소한다. 자신의 사랑 이야기만 하기가 미안했던 그녀는 “당신은이제서야 안전한 배에 가 탔소.김선생(김동환)은 반드시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오.그는 죽도록 연애감정을 가질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았소.…해당화 같은 당신이 또 그분을 행복케 하고 남음이 있을 것을 내가 믿소.어서 잔치를 하자구나.내가 국수랑 말구 떡이랑 담으마.나는 아무 짓을 그날 해도 좋을것만 같다.어서 기쁜 날을 가져와다우 친구야”라는 편지에 이르러서야 파인과 최정희는 공개된 동거관계로 들어간 것 같다.그 뒤 파인과 최정희의 덕소 집 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되는 편지와,출산,모윤숙의 모종의 험담으로 신문사를 그만 둬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 이어진다.그리곤 매일신보(노천명은 1943년 매일신보에 입사) 잡지부에앉아 ‘여류작가’들에게 “병정 얘기”,즉 “군국물(軍國物)”을 청탁하는 편지가 식민지 시기에 보낸 아름답지 못한 마지막 편지로 남는다. 광복후 노천명은 서울신문 문화부에 근무했다.이미 김광진은 월북해 버려 그녀에게는 친일행위와 함께 식민지 시기의 아픔은 이중의 상처로 저며왔다.종로구 동숭동에 최정희가 기거했던 시기는 1949년 1월부터 1957년까지 매우 긴 기간이었다. “언제 이 땅 그 남자들의 품격이 우리 여인들과 동등이 될는지 너무 한심한 상태요”란 구절은 문단 모임에 나갔다가 당한 모욕감에 대한 화풀이리라.노천명은 1946년 서울신문을 사직하고 엉뚱하게도 유학을 빙자하여 일본 밀항을 감행했는데(1947),가족들의 맹렬한 반대로 이듬해 귀국했다. 아무려면 김광진이 그리워 취했던 해프닝은 아닐 테지만 노천명답지 않은 돌출이었는데,그 상상 밖의 행위가 바로 6.25 때도 반복되었다.인민군 점령하의 서울에서 그녀는 문학가동맹에 가입,‘반동 문학인’ 체포에 협조한 혐의로 서울 수복 직후 체포돼 20년형을 선고받고 부산에서 복역했다. 이헌구.김광섭.모윤숙 등 문인들의 석방운동으로 1951년 4월 출옥한 그녀는 부산에서 최정희에게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편지를 보냈다.공군 종군작가단(1951년 1.4후퇴 직후)과 육군 종군작가단(1951.5.26)은 다 대구에서결성되었는데,최정희는 공군종군 작가단 소속으로 대구에서 지내고 있었다.이 무렵 노천명의 편지에 언급된 문인들은다 여기 소속이었다. 석방후 부산 중앙성당에서 가톨릭에 입교,베로니카란 세례명을 얻은 그녀는 공보실 중앙방송국에 근무하는 등 안정을 되찾았으나 이미 목이 긴 사슴으로서의 센티멘탈한 여성시인은 아니었다.그녀의 시에는 잡식성이 침윤되어 청순 단아하던 세계는시들어 버렸다.친일,친공,반공 행위를 두루 거친 이 목이긴 외로운 사슴 시인은 1957년 6월 16일,누하동자택에서 세상을 등졌는데,최정희는 문인장으로 치러진 그녀의 장례식에서 울먹이며 약력을 낭독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웃음제조기’ 70년대 명랑 만화

    지난 주말에 있었던 체험담 하나.‘주말 아빠’가 미안해 만화책 몇권을 갖다 주었는데 정작 애들은 잠깐 보다 멀뚱거리고 있다.한참 지난 뒤 낄낄거리는 소리가 나 쳐다보니 아내였다.어깨 너머 보던 남편까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어른들에게 웃음을 안긴 건 바다출판사의 ‘어린이 만화’ 시리즈였다. 비록 작은 일화지만 “그 동안 나온 한국 만화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대표 작품들을 골라 독자 연령을 고려해 시리즈로 내겠다”는 출판사의 전략은 적중한 듯 싶다.아니 어린이를 겨냥한 만화가 30여년 전 똑같은 시절을 보낸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한 걸 보면 그 효과는 더 커질 법하다. 1차분으로 내놓은 5종 9권은 70년대를 수놓은 명랑만화들이다.웃음타를 터뜨리는 선두타자는 기계충 파먹은 머리의 ‘꺼벙이’(길창덕화백)다.공부하라는 아버지의 훈계는아랑곳 없이 늘 장난과 놀 생각으로 가득찬 ‘꺼벙이’는30∼40대 어른들의 자화상이어서 자연스레 추억에 잠기게한다. 쓰기만 하면 투명인간이 돼 악당들을 괴롭히던,‘도깨비감투’(신문수화백)도 만만치 않은 스마일포를 자랑한다. ‘내가 투명인간이라면’이라는 가정법은,볼 것 드물던 그때 그 시절 ‘상상력의 보고’가 아니었던가.여기에 윤승운 화백의 ‘두심이’와 박수동 화백의 ‘5학년 5반 삼총사’,이정문 화백의 ‘철인 캉타우’등이 가세했다. 바다출판사는 올해 안에 다른 추억 보따리도 펼칠 계획이다.이희재의 ‘악동이’,김동화의 ‘요정 핑크’,이진주의‘달려라 하니’ 등이 튀어나와 웃기고 울릴 것이다. 또다른 관전 포인트는 요즘의 어린이들에게 이런 ‘촌스런 웃음’이 먹힐지 여부다. 이어 어른들을 위해 박기정의 ‘도전자’,이두호의 ‘객주’,백성민의 ‘상자하자’,김형배의 ‘황색 탄환’,이상무의 ‘포장마차’ 등 ‘한국만화 대표선’도 얼굴을 내밀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
  • [대한포럼] ‘작은 정부’ 의 부작용 논란

    공무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공무원이란 직업은 생각보다인기직종이 아닌 것같다.어느 나라 정부나 ‘작은 정부’의 깃발을 드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여기에 깔려있는 인식은이렇다.“공무원들은 쓸데없는 규제로 국민을 불편하게 한다.따라서 공무원을 줄이고 규제를 없애자” 그런데 최근 이런 통념과 정반대로 ‘작은 정부’와 지나친 규제 완화가 문제라는 역설적인 주장이 나왔다.미국 연방항공청이 우리나라를 2등급인 ‘항공안전위험국’으로 판정한 원인과 관련해서다.즉 3년전 정부 조직개편때 건설교통부 항공국의 전문인력을 18명에서 6명으로 축소하고 규제완화차원에서 ‘정비규정심사지침’등 8개 항공안전 지침을 폐지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공무원이 줄어들다보니 ‘시급한 현안’이 아닌 안전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고 안전지침마저 없어져 미국의 항공안전 감독 기준에 미달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한국 정부를 망신시킨 당사자는 주무부서인 건설교통부 당국자들이다.‘작은 정부’와 규제완화 문제가 자칫 당국자들의 면피용으로 악용돼서는 안된다.다만 항공안전 위험국이 된 것은 근본적으로 정부 탓이란 점에서 ‘작은 정부’방침과 규제완화 정책의 문제점을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작은 정부’방침이 아이러니컬한 것은 거의 모든 정권이 이를 지향했지만 성과는 ‘별로’였다는 점이다.6공과 문민정부 모두 정부조직 축소와 공무원 감원을 시도했다.그러나 조직축소는 부분에 그치고 공무원은 20%나 급증했다.현정부는 지방공무원 20%선,국가공무원 2.8%를 각각 줄여 주로 하위직과 지방직 공무원만 잘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처 분할로 장관급 등 고위직 자리는 오히려 늘었다는 평가다. ‘작은 정부’정책이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행정학 이론대로 ‘늘 불필요한 일을 만들어내는 공무원의 속성과 반항’때문인지,아니면 정부개혁의추진력 약화 때문인지는 명확치 않다.일을 실질적으로 줄여주지는 않고 공무원과 정부 조직을 줄이려는 명분에만 집착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되짚어 볼 대목이다.실제로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걸핏하면 정부 관리가 통계자료를 요구하는바람에 시간을 빼앗긴다고 불평했다. 정부가 스스로 처리할 일을 산하 단체,기업 또는 금융감독원 등 반(半)공조직에 맡기는 경우는 흔하다.공무원들은 일손이 달릴 경우 자신의 업무를 하부 기관에 떠맡기든가,당장 급하지 않은 일을 미루거나 소홀히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불필요한 잡무와 규제·관리를 철폐·축소하거나아니면 공무원 증원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우리나라 공무원 숫자가 외국보다 적다고 하지만 공공연한 증원은 사회분위기상 어려워 슬그머니 사람을 늘리는 변칙이 그래서 나온다.잡무축소는 절실한데도 아주 미진한 분야다.수개월전기획예산처 전 차관은 공무원들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결재단계도 불필요하게 많다고 지적했다.여기에다 청와대,국회 등 상급기관에 설명하고 형식적인 회의에 참석하느라 시간을 뺏긴다.‘작은 정부’는 외형적인 조직과 공무원 감원만이 아니라 고위층부터 전시성 행사와 회의를 줄여야 달성 가능하다.공무원이 너무 바쁘면 항공안전같이 당장 급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이 밀려날 가능성이높아진다. 규제 완화가 능사는 아니며 선별하는 것이 필요하다.3년전 소형주택 건축 의무비율을 폐지해 소형주택 공급난을 빚었고 항공안전지침 폐지가 초래한 부작용을 요즘 겪고 있지않은가. 적어도 국민의 복지와 안전 및 경쟁촉진 등과 관련된 규제는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그런 원칙이 서지 않으니 섣부른 규제완화의 부작용으로 시달리는 것이다.그렇지 않아도 최근 경기침체를 ‘규제’탓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이런 주장에 말려 이것저것 다 풀어주다나중에 감당못할 일을 당할까 우려된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KBS2 ‘도전! 골든벨’ 100회

    ‘청소년들의 과거시험’인 KBS2 ‘도전! 골든벨’(금 오후6시30분)이 100회를 맞았다. 지난 99년 KBS1의 ‘접속! 신세대’의 한 코너로 시작했다 폭발적 인기를 끌자 같은해 9월 ‘도전! 골든벨’이란 프로그램이 탄생했다.제작진이 전국의 고등학교를 방문,각 학교의 학생 100명이 바닥에 앉아 하얀색 작은 칠판에 정답을 쓰는 퀴즈 프로그램이다.50번째 마지막 문제를 풀면 골든벨을 울릴 수 있으며 그동안 총 20번 골든벨이 울렸다.바닥에 앉아 문제를 푸는 골든벨의 형식은 우리의 옛 과거시험을 본딴 것이다.99년 학부모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상,2000년 방송프로그램21상을 받은 데다 지난해에 이어올해에도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예선전을 뚫고 에미상 본선 청소년 부문에 진출했다. 노윤구 CP는 “100회 가운데 3분의 1은 지방 고등학교를찾아가 찍었다”면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보다 장기가 많은 ‘명물’들을 출연시키려 한다”고 말했다.하지만 각 학교의 명예가 걸린 만큼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방송에 내보내려 애쓴다.실제로 38번째 문제에서 모든 학생들이 탈락하자 한 교장선생님은 제발 다시 찍자고 제작진에게 애원하기도 했다. ‘도전! 골든벨’의 또 다른 인기 요인은 출전하는 청소년들의 당당함이다.정답이 ‘패럴림픽’인 국제장애인올림픽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IDO(International Disabled Olympic)라는 그럴듯한 오답을 내놓고 당당히 정답이라고 우기는학생,‘모르겠다’고 적어놓고 응원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학생,칠판에 외국에 계신 아버지 사진을 끼우고나와 아버지께 하고싶은 말을 하는 학생 등 요즘 고등학생들의 진솔한 모습이 그대로 방송된다. 한번 녹화를 하면 7∼8시간씩 촬영하는 바람에 1대 MC인 김홍성 아나운서는 병가로 물러나기도 했다.처음 사회를 맡은 김홍성,손미나 콤비는 골든벨 출전 학생들에게 최고 인기다.현재는 윤인구,최원정 아나운서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있다. 골든벨의 문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4명의 작가가 출제한다.가끔 인터넷에 잘못된 정보가 올라 있어 제작진이 정확한 문제 출제에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골든벨을 울리지 못한 최후의 1인,골든벨을 울리고 이제대학생이 된 출전자 등 110여명이 모여서 겨룬 100회 특집방송은 31일 오후6시30분에 방송된다. 윤창수기자 geo@
  • 방북파문 정부 시각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 공동의 8·15 통일대축전 행사가 일부 남측 인사들의 잇따른 돌출행동으로 적지 않은후유증이 우려된다. 20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면담이 변수로 남았으나 일단 이들의 돌출행동은 우리사회의 비난 여론을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운신을제약하는 자승자박의 결과로 이어질 전망이다.이들의 방북을 승인한 정부도 새로운 부담을 안게 됐다. ▲남측 대표단 150명의 3대 헌장탑 개막식 참석(15일) ▲남측 대표단 80명의 3대 헌장탑 폐막식야회 참석(16일) ▲남측 대표단 일부의 만경대 방명록 사건(17일) 등 3건이 대표적 파문으로 꼽힌다. 방명록 사건은 남측 대표단이 김일성(金日成) 주석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통일연대 일원으로 참여한 K씨가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민족통일 이룩하자’는 글귀를 방명록에 적어넣으면서 빚어졌다.북측 취재진들이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남측 보도진들이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글귀가 알려지게 됐다. 평양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12㎞ 떨어진 지점에 있는 만경대는 지난 47년 혁명사적지로 지정돼 북한이 ‘혁명의 요람’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이 글귀가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에 위반되느냐 여부다.당사자인 K씨는 19일 김창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정책실장에게 전달한 해명자료를 통해“만경대에서 방명록을 썼기 때문에 만경대와 통일의 필요성을 관련지어 쓴 것으로,이렇게까지 파문을 일으킬 줄 몰랐다”며 “누를 끼쳐 미안하고 서울에 가서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일정이나 방북단 규모로 볼 때 이는 소수의 돌출행동에 불과하지만 파장은 적지 않다.사안의 민감성을 반영하듯 남측 언론들은 연일 이들 파문을 주요기사로 다루고 있고,이에 맞춰 남측 대표단 내부에서도보수진영의 민화협·7개 종단과 진보성향의 통일연대측이격론을 벌이며 심각한 내분양상을 빚고 있다. 18일만 해도 통일연대측은 전날 3대 헌장탑 행사 참석과관련해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측이 발표한 대국민 사과성명에 대해 “일방적 발표”라며 행사참석을 정당화하는성명을 따로 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21일 이들이 귀환한 뒤 통일연대측이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에서 이탈하지 않겠느냐는관측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파문으로 남북관계나 남북간 민간교류가 차질을 빚어서는안된다는 판단이다.물의를 빚은 돌출행동에 대해서도 일부인사들의 개별적 행동이지 결코 남측 대표단 전체의 잘못으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시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19일“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사법당국이 엄정히 처리하겠지만이런 일이 전체 남북간 교류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부는 나아가 이번 파문이 향후 남북간 민간교류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보다 성숙한 남북간 교류로 이끄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이 당국자는 “이번 일은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 속에서도 조화를 이뤄 나가는 남한 사회의 장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도 내심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평양 공동취재단 진경호 기자 jade@
  • 남북 민간교류 지속 추진

    정부는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8·15 통일대축전 행사의잇따른 파문과 관련,위법사항은 엄정히 조치하되 민간차원의 남북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대북정책 기조는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19일 “행사기간 몇가지 불미스런 일들이 벌어졌으나 이 때문에 남북관계나 남북간 민간교류가악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면서 “특히 이번 일로 남북간민간교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밝혔다. 이 당국자는 “방문기간 빚어진 돌출행동은 남측 대표단이 돌아오는 대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거쳐 적절히 처리될것”이라며 “정부는 이번 사건들을 교훈삼아 앞으로 민간단체들과의 협의를 강화,보다 성숙하고 안정된 남북 민간교류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0일 열릴 예정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이번 평양 행사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일부 참석자들의 돌출행동에 대한 처리방향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7일 고 김일성(金日成) 주석 생가인 만경대에서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민족통일 이룩하자’는 글귀를방명록에 남겨 파문을 일으킨 통일연대 소속의 K씨는 이날“만경대와 통일의 필요성을 연관해 방명록을 남긴 것으로,파문을 일으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평양 공동취재단 진경호 기자 jade@
  • 8·15특집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주요쟁점들

    ■멀어지는 이웃 쌓이는 ‘惡材’. 한·일관계는 65년 12월 국교가 정상화된 뒤에도 ‘어긋나고 뒤틀린’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이는일본이 한국과 중국 등 주변 피해국들에게 진정한 과거 청산의 의지와 성의를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98년 일부 반대여론을 무릅쓰고일본을 방문,‘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다.그러나 21세기 한일 양국의 첫 페이지는 일본의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과 꽁치분쟁,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 등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한국은 ‘20세기의 일은 20세기 내에 청산하자’면서 미래지향적 관계개선을 기대했으나,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과 신사참배 강행 등에서 드러나듯 여전히 군국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65년 한·일기본조약의 발효에 따른 표면적인관계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군대위안부 및 교과서왜곡 문제 등 쟁점 처리과정에서 아시아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신뢰감을 주지 않고있다고 꼬집는다. 이는 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형성된 탈아론(脫亞論)이 일본인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인것으로 풀이된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포로를 학대한 것은 미안하다면서도,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저지른 가혹행위에 대해선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데서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한다’는일본식 셈법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대위안부 문제를 보는 일본 정부의 시각이다.일본은 97년 1월 군대위안부 위로기금의 형식으로한국인 피해자 7명에게 모두 500만엔을 전달하는 것으로사태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시도했다. 이에 한국은 즉각 한·일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일시금 지급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정부간 협의에 의한 실질적 해결방안을 찾도록 촉구했다. 한국내 민간단체와 피해자들도 일본정부와 국회 차원의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며,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를 비판하고나섰다. 하지만 올들어 군대위안부 관련 기술을 누락한 역사교과서가 당당하게 정부의 검정절차를 통과했다. 게다가 51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총리의 재일 한국인 격하발언 이후 일본정부 인사나 정치인의 ‘과거사 부정’망언이 한 세기를 넘어 계속되고 있다.한·일관계의 진정한 정상화를 위한 선결과제가 무엇인지를 곰곰히 되씹어보게하는 대목이다. 박찬구기자 ckpark@
  • 여직원 옷차림 상사 맘대로?

    회사원 Y씨(25·여)는 월요일 아침부터 기분이 확 상했다. 통이 넓은 면바지를 입고 회사에 출근했다가 상사에게 ‘한소리’ 들었기 때문이다. Y씨는 “여직원은 무조건 치마 정장을 입어야한다는 고루한 생각을 갖고 있는 직장상사 탓에 생활이 피곤하다”면서“일하기에 편안한 옷을 입으면 되지 왜 상사의 기분에 맞는 옷을 입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비교적 복장이 자유로운 광고회사에 다니는 A씨(28·여)는옷차림을 간섭하는 팀장때문에 부서를 옮기기도 했다. A씨는 “남자직원들은 수염도 안 깎고 출근하는 날이 많은데도 유독 여직원들에게만 깔끔하게 입으라는 상사가 너무 싫었다”면서 “상사에 따라 여직원들의 차림이 좌지우지된다”고 말했다. 반면 회사원 L씨(27·여)는 분홍색 꽃무늬 옷을 입고 갔다가 심적인 갈등을 겪었다.상사가 “예쁜 옷을 입고 와서 분위기를 살린다”면서 다른 여직원들에게 본 받으라고 했지만 동료 여직원들의 눈치를 보니 표정이 좋지 않아 미안한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름을 맞아 ‘노출의 계절’ 또는 ‘화려한 원색의 패션’이니 하지만 직장 여성들의 패션은 주로 직장분위기와 상사에 의해 좌지우지되곤 한다.직장 상사나 동료가 ‘색깔이너무 튀는 거 아냐?’‘노출병에 걸린 여자들 이해가 안돼’하는 소리를 하면 옷 살때 움츠러들게 된다. 유니폼을 입는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K씨는 “유니폼회사에서 만든 3,4개의 샘플 중에서 투표를해서 새 유니폼을 결정하지만 디자인 단계에서 여직원들의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서 “디자인할 때 입는 사람보다 고용주의 취향이 더 많이 반영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직장 상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유니폼이나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복장 스타일에 대해 직장 여성들의 불만이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입는 사람이나 직장을 찾는 고객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단지 상사의 취향에 따라 여직원들의 옷입는 스타일이 결정되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라면서 “이같이 잘못된 관행은 하루 속히 고쳐져야 한다”고입을 모았다. 서울여성노조의 권혜경씨는 “직장내에서 여성의 복장을지나치게 단속하는 것에는 남성들의 권력 의식이 숨겨져 있다”면서 “여성들을 통제해야된다는 사고나 ‘직장의 꽃’이라는 생각이 복장단속을 통해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이송하기자 songha@
  • ‘한국산 냉장고 쓰레기’발언 뉴질랜드 에너지장관 사과

    [웰링턴 DPA 연합] 피트 호지슨 뉴질랜드 에너지장관이 한국산 냉장고를 ‘쓰레기(junk)’라고 부른 데 대해 사과했다고 웰링턴 도미니언지가 7일 보도했다. 호지슨 장관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수입산 전자제품이뉴질랜드산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진다면서 한국산 냉장고를 ‘쓰레기’라고 불렀다.이에 대해 문봉주 웰링턴 주재 한국 대사가 반발,항의 공문을 통해 한국산 냉장고가 뉴질랜드산 냉장고보다 에너지 소비율이 별 차이가 없거나 적다는 수치를 제시했다. 문 대사는 항의 공문에서 “당신과 같은 존경받는 당국자가 쏟아내는 경박하고,잘못된 발언이 한국 전자제품시장에매우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하고 “특히 뉴질랜드 정부가 최근 한국산 전자제품에 반덤핑 판결을 내린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고 우려했다. 앞서 뉴질랜드 정부는 한국에서 수입된 냉장고와 세탁기가 한국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면서 두 제품에 대해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문 대사의 항의에 호지슨 장관은 “실수였다.미안하다”고 사과했다.그는 또 “뉴질랜드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한국산 전자제품중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지는 제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한화 김종희 창업회장 추모식

    한화는 23일 오전 서울 정동 성공회 대성당 본당에서 김승연(金昇淵)회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81년 타계한 현암(玄岩) 김종희(金鍾喜) 그룹 창업회장의 20주기 추모식을 가졌다.행사에는 미망인 강태영(姜泰泳)여사 등 가족과 민관식(閔寬植)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유양수(柳陽洙) 한미안보연구회 회장,리처드 워커 전 주한미대사,그룹 퇴직 임직원 모임인 한화회 회원 등이 참석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현대건설 직원 명퇴동료에 위로금

    현대건설 임직원들이 지난달말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동료들의 퇴직위로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여금의 일부를반납한다. 노사합의로 모든 임직원이 오는 21일 지급되는 상여금 100%(기본급 기준) 가운데 5%(세전)를 뗀다. 오는 9월과 11월에 나오는 상여금에서도 5%씩 떼 15억원가량을 모으고 회사에서 5억원을 내 위로금 규모는 20억원에 이른다. 지난 달 30일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임직원은 모두 381명.이 가운데 150여명은 퇴직금 정산이 마무리됐고 나머지 명예퇴직자에게도 이달 말까지 퇴직금이 모두 지급될예정이다. 이들에게는 월정 기본급 4∼6개월치의 명예퇴직금과 별도로 소정의 ‘위로금’이 전달된다.직급별로 다르지만 1인당 평균 500만원이 조금 넘는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같이 고생했던 동료들이 떠나게 된데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마련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명예퇴직자들에게 남아있는 우리의 동료애가 조금이나마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창조적 상상력’ 키우기

    일요일 아침 팩스 한 장이 날아왔다. ‘삐∼이∼삐∼이익’ 직원들이 휴일에도 쉬지 않고 근무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팩스에는 다름아닌 ‘우리나라 학생들이 세계의 생물·화학올림피아드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며칠 전 수학올림피아드에서 4위를 해서 아쉬웠는데…. 어린 학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시험지를 받아들고 문제를푸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는 모습도 떠올랐다.그 아이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어찌 우리의 자랑이 아니겠는가.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열두번이나 기능 올림피아드에 나가 우승했다.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평가한 수학·과학 습득능력 또한 513점으로 OECD 국가중 제일이다. 최근 유엔개발계획(UNDP)은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발전 속도에서 세계 5위라는 평가를 내렸다.이 나라 안에 인터넷 인구가 크게 늘고 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것과 무관하지않을 것이다.공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창의적인 지식교육이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말하지만곳곳에서는 이처럼 희망적인 소식이 들린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열한번째 경제대국이 된 요인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한다.1999년한해만 해도 375억달러를 에너지 수입에 쓰고,약 20억달러를 식량 수입에,15조원 이상의 예산을 국방을 위해 쓰면서도말이다. 그것은 근면성과 세계 제일의 기능 때문이 아닐까? 평소 나는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상상력이 풍부하며,창조적인 국민을 어떻게 많이 키워 내느냐에 나라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확신한다. 지나칠 정도의 교육열,세계에서 제일 낮은 문맹률,길거리에 나앉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인 민족성,근면하면서도 섬세한 세계 최고의 손과 우수한 머리,자주적인 문화 창조력,세계 최고의 정보화 적응능력….이런 국민으로 지식정보사회에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과거에 생각하지 못했던 정보기술(IT)·생명공학(BT)·나노기술(NT)·문화기술(CT) 등 신기술의 시대를 맞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가운데서도 우리는 지난 3년동안 1만여개의벤처기업을 창업했고 지금도 한달에 500여개의 벤처기업이만들어지고 있다.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가! 우리는 이제 자신감을 가질 때가 됐다. 국제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해내는 이 나라의 노동자와 청소년 앞에서 걸핏하면 ‘경제파탄이니 위기’를 말하는 내가부끄러웠다. 희망찬 미래를 약속해 주는 그들과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 김영환 과기부장관
  • “참 아름다운 동료애”

    충북 보은군 건설과 직원들이 지난 12일 첫 지급된 성과상여금 전액을 암 투병 중인 동료직원의 치료비로 선뜻 기탁해 화제다. 이들은 17일 서울 중앙병원을 찾아 식도암으로 힘겹게 투병 중인 박자현(52·토목 5급) 전 과장에게 900여 만원의거금(?)을 전달했다.이 돈은 직원 31명이 난생 처음으로 지급받은 성과 상여금을 한 푼도 빠짐없이 모은 것으로 박 전 과장의 수술비로 쓰이게 된다. 직원들은 상여금이 지급된 지난 12일 자체 회의를 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 전 과장 수술비로 쓰자는 데 뜻을모았다. 평소 큰 형님같이 다정다감하던 박 전 과장이 암 진단을받고 수술비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차등 지급된 성과금이 자칫 직원 간의 화합을 해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푼 덜 받는다는 생각으로 개별 계좌로 입금된 상여금을 고스란히 반납한 직원들은 첫 성과금을 기다리던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이 돈이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박 전 과장이 건강을 되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조항신(47) 건설과장 직무대리는 “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동료들이 누구는 100%의 상여금을 받고 누구는 한 푼도못 받는 것 자체가 불합리해 상여금 전액을 박 전 과장의치료비로 기탁키로 뜻을 모았다”며 “상여금이 지급된 후분위기가 서먹서먹해진 다른 사무실과 달리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은 김동진기자 kdj@
  • [CULTURE & JOB] ‘컴퓨터그래픽’ 디지털 아티스트

    “디지털 아티스트라는 말은 미술가라는 말처럼 애매모호한 개념입니다. 미술의 장르가 여러가지인 것처럼 디지털아티스트의 분야도 다양합니다.” ‘디지털 드림 스튜디오’의 박흥민씨(31)는 우리나라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미래전사 럼딤’(MBC 금요일 오후 5시 20분)을 선보인 디지털 아티스트 1세대이다. 그의 분야를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컴퓨터 그래픽(CG) 애니메이션’이다. 박씨는 팔팔한 30대 초반이지만 영상제작부 차장이다.CG애니메이션 분야의 인재층이 척박하기 때문이다. 대형 모니터와 컴퓨터가 수십대 질서정연하게 놓여진 100여평의 사무실은 아주 ‘기계’적이다.여느 예술가와 달리책상도 무척이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21세기 예술가에겐 다분히 수학적인 냄새가 난다. “중학교 때부터 애니매이션이 무척 좋았어요.일본의 애니매이션 ‘천공의 라퓨타’를 가장 감명깊게 봤지요.일본만화를 구하기 힘든 때 명동 등지를 ?f으며 불법 비디오를구했어요.가끔 한국어로 더빙된 것도 찾을 수 있었지요.” 그는 무작정 좋은 애니매이션?? 제작하기 위해 수원대 미대에 진학한 뒤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기라서 배우기는 힘들지만 적은 노력으로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기때문이다.요즘은 3D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 모델링,움직임,질감과 빛처리, 결과물 합성, 표정 등이 모두따로따로 처리된다.개척자였던 그는 한번에 여러 분야에서일해야했다.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하청 위주의 한국 애니메이션을 제작위주로 바꿨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출퇴근이 부정확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여느 회사와 다름없이 9시에 출근,7시 퇴근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3D 애니매이션은 상당한 조직력을 기본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 개념이 필수이다. “입사할 때는 학력이나 경력 등이 고려되지만 막상 입사한 뒤에는 완전 무한 경쟁제도입니다.월급도 연봉제이기때문에 서로 철저하게 비밀입니다”이어 “현재 디지털 아티스트의 수요는 많은데 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어서일손이 항상 부족해요. CG기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적고 학원비도 무척 비쌉니다”라고 덧붙였다. ?岷쓴? “기술적인 일로 보이겠지만 확실히 예술 분야입니다.노력보다 타고난 감각과 예술적 심미안이 더 큰 영향을 끼칩니다.다른 예술 분야처럼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디지털드림 스튜디오’는 처음 게임분야로 시작했다.‘버츄얼 코리아,‘타이거우즈의 PGA투어’등의 게임을 제작했다. 디지털 애니매이션은 일본 시장을 겨냥해 만든 애니매이션 ‘런딤’을 시작으로 SF 판타지인 ‘아크’와 ‘난자 거북이’ 등을 제작할 예정이다. 이송하기자 songha@. ■컴퓨터그래픽 어디까지. 나날이 발전하는 인간의 기술이 결국 세상까지 창조할 것인가? 지난 98년 복제양 돌리가 등장했을 때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에 대한 경고로 세상은 시끄러웠다. 그러나 요즘 ‘창조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생명공학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이다.윤리적인 문제를 살짝 피해가면서 현실보다 더욱 현실같은 세상을 느끼게 하고 있다. ‘파이널 판타지’,‘슈렉’,‘쥬라기 공원’,‘미이라2’,‘툼레이더’,‘진주만’…. 올 여름 화제의 영화들은 모두 CG로 처리됐다.이들은 특수효과처럼 요란스럽지 않다.최대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보이는 것이 주된 목표이기 때문이다. 100% 3D 애니매이션인 ‘슈렉’에서 사용된 ‘안면근육애니매이션시스템’은 표정을 지을때 근육과 피부,두개골의반응을 서로 연계해 나타냈다.여기에 입체감 있는 그림자표현인 ‘쉐이더’,생동감있는 액체를 표현하는 ‘액체애니매이션시스템’,동작을 변형시키는‘디포메이션’등을이용,고도의 정교함을 추구했다. 우리가 보기에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영화라도 사실은 CG가 삽입됐다는 것을 눈치채기는 쉽지않다. ‘미이라2’에서 이집트 왕의 딸인 레이첼과 애첩 아낙수나문의 현란한 대결,쥬라기 공원의 공룡,‘진주만’에서일본군 공격에 침몰당하는 군함은 결코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CG 기술은 지난 91년 ‘터미네이터2’의 성공과 함께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이어 ‘트위스터’에서 엄청난 회오리 바람, ‘단테스 피크’에서 화산폭발 등으로 20세기 말CG는 재난 영화의 중심을 차지했다.디지털의 완벽한 현실 베끼기는 영화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의학계에서는 디지털로 만든 가상현실을 통해서 인간을치료하게 된다.사람들은 누워서 남태평양의 해변으로 피서를 가고 점심식사 뒤에는 가상현실 속의 공원을 걷는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진짜 ‘나’는 허리에 대롱이꽂힌채 누워있고 가상의 세상속에서 허우적 거릴 날도 상상만은 아니다. 이송하기자
  • [현장] 보험사기 一家 결말은 ‘병자가족’

    “쉽게 돈을 벌겠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가족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습니다.” 13일 오전 서울 남부경찰서 강력반. 일가족들을 동원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뒤 거액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37·택시기사)가 후회의 눈물을 쏟으며 조사를 받고 있었다. 김씨는 임신한 아내(42)와 어린 딸(10),아들(8)까지 차에태워 13차례나 고의 교통사고를 내는 수법으로 보험금을 타냈다.그동안 받은 보험금은 1억7,800여만원에 이른다. 김씨 가족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모두 35개나 되는 보험에 들었다.김씨는 운전자·종합건강보험 등 7개,아내는 가족상해보험 등 12개,아들과 딸은 어린이상해보험 등 16개 보험상품에 가입해 있었다.보험회사에 내는 한달 보험료도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인 120만원이나 됐다.김씨가 택시운전으로매월 버는 80만원이 모자라 맞벌이 아내가 버는 돈도 쏟아부었다. 의도적으로 보험에 가입해 놓고는 김씨 가족은 ‘교통사고자작극’을 벌이기 시작했다.올 1월1일 동료 택시기사인 정모씨(44·입건)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인천시 가좌동 앞길을 지나가다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동료 기사인 박모씨(46·구속)가 택시로 뒤에서 들이받도록 하는 사고를 꾸며 치료비 등으로 보험금을 타냈다. 김씨는 지난 99년 아내가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보험사기에 나섰다.어린 자식들은 교통사고가 진짜 사고인 줄로 알았다. 보험금을 받아내는 대가로 가족들은 ‘골병’이 들었다.김씨는 목과 허리의 통증으로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 못했다.아내는 디스크 증세로,딸은 어깨 통증으로,아들은 다리 통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대졸에 학원강사로도 일했고 올해 자신이 근무하는 택시회사인 J사의 노조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한 김씨는 무엇보다 가족들을 ‘범죄’에 끌어들인 점을 미안해했다.특히 아들,딸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겨 준 점을 후회했다. 김씨는 “돈에 눈이 어두워 가족들에게까지 몹쓸 짓을 했다”며 고개를 떨궜지만 때늦은 속죄였다. 안동환 사회팀기자 sun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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