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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플러스] 남양주 별내지구 ‘한화꿈에그린 아파트 상가’

    남양주 별내지구 ‘한화꿈에그린 아파트 상가’ 한화건설이 시공한 경기 남양주 별내지구 ‘한화꿈에그린 아파트 상가’가 분양 중이다. 상가 전체가 1층으로만 구성돼 있다. 상가 뒤쪽이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바로 연결돼 거주자는 물론 일반 유동인구의 접근성이 좋도록 설계됐다. 특히 별내지구 초입에 있어 유동 인구가 많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반경 1㎞ 내 삼육대학교가 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500m 거리에 있다. 입점은 다음 달 중순이며 분양가는 3.3㎡당 평균 3000만원 선이다. (031)575-4007. 인천 ‘래미안 부평’ 114㎡형 할인 혜택 삼성물산은 인천 부평5구역 재개발 단지인 ‘래미안 부평’을 분양 중이다. 래미안 부평은 지난 27일 개통된 지하철 7호선 연장선의 수혜단지로 114㎡형은 할인 분양 혜택도 주어진다. 1381가구의 대단지로 7호선 부평구청역을 이용하면 강남까지 40여분 만에 도달 가능하다. 인천지하철 1호선과 경인선 지하철 1호선도 이용할 수 있다. 분양가는 3.3㎡당 1060만원 선이고 입주는 2014년 9월 예정이다. (032)505-5640. 마포 ‘신공덕 아이파크 상가’ 교통입지 탁월 현대산업개발은 서울 마포구 ‘신공덕 아이파크 단지 내 상가’를 분양한다. 신공덕 아이파크 단지 내 상가는 지하철 5·6·공항철도·경의선 등 4개 노선이 지나는 교통 요지인 마포구 공덕오거리 인근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나다. 또 상가가 단지 전면에 배치돼 주변 유동인구도 풍부하다. 신공덕 아이파크는 195가구로 2013년 3월 입주할 예정이다. 분양은 내정가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된다. (02)3273-0427.
  • ‘대세남’ 송중기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대세남’ 송중기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청춘 스타 송중기(27)가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접수’할 태세다. 데뷔 4년 만에 얼굴만 매끈한 꽃미남 스타에서 연기까지 되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것. KBS 수목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이하 ‘착한 남자’)에서 선악을 오가는 복잡한 캐릭터 강마루 역으로 열연하고 있는 그는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늑대소년’에서는 인간의 모습과 야생의 본능이 공존하는 늑대 인간을 실감나게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2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요즘 ‘대세’라는 송중기를 만났다.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꽃선비 구용하 역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송중기. 그는 그동안 드라마 1편과 영화 1편을 거쳤을 뿐인데 상당히 성장해 있었다. 이날 오전 8시까지 드라마를 찍고 왔다는 그는 전날 방송분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면서 수목 드라마 1위를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아침에 촬영 끝나고 시청률을 확인했는데 졸리고 피곤해도 기분은 좋네요. 지난주부터 생방송 촬영에 들어가서 좀 정신이 없기도 한데 이제야 드라마를 찍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경쟁 드라마들이 워낙 대작이라 기대는 많이 하지 않았는데 1회에서 10%를 넘기면서 기대를 하게 됐죠. 그런데 제 성격 아시잖아요. 솔직히 아직도 배고파요.(웃음)” 여느 20대처럼 솔직하고 욕심도 많다. 잘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서 인기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겠다는 그는 “인기에 신경은 쓰지만 거기에 취하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고 잘라 말했다. “‘성균관 스캔들’ 때도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지만 인기에 취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혹시 착각하고 살까 봐요. 부모님이 부쩍 사인 부탁을 많이 하시거나 매니저에게 광고가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을 때 ‘요즘 반응이 좋긴 한가 보다’ 하고 생각을 하게 되죠. 저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을 많이 다잡는 편이에요.”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모습과 당찬 말투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착한 남자’에서 그가 연기하는 강마루는 사랑했던 재희(박시연)에게 배신당한 뒤 복수를 하기 위해 은기(문채원)에게 접근하지만 점차 은기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인물이다. 선하고 부드러운 면과 강렬하고 집요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마초남’을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가 처음에 마루의 복수극으로 홍보가 많이 됐는데 솔직히 좀 불만입니다. 여자한테 차였다고 복수하는 남자는 진짜 멋없지 않나요. 마루는 욕망으로 인해 변해버린 재희가 행복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이죠. 그런 자극적인 내용은 밑밥이고 이제부터 진짜 멜로가 나오기 시작해요.” 만일 자신에게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속은 무척 상하겠지만 ‘잘 살라’고 욕 한번 해주고 돌아설 것 같다고 했다. ‘착한 남자’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죽일 놈의 사랑’ ‘고맙습니다’ 등의 이경희 작가가 송중기를 주인공으로 놓고 쓴 작품이다. 송중기는 2009년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 출연하면서 이 작가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 작가가 시놉시스를 줬을 때 좀 의아했어요. 원빈, 소지섭, 장혁 선배 등 이 작가의 전작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의 이미지가 좀 센 편이잖아요. 그래서 한번도 드라마 주연을 한 적도 없고 선한 이미지인 저를 왜 쓰려고 하는지 궁금했죠. 그런데 양면적인 캐릭터 때문에 저를 캐스팅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 내공으로는 드라마에서 세네번씩 바뀌는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좀 힘드네요.” 엄살은 부렸지만 데뷔 전에 연기아카데미를 잠시 다닌 것이 전부인 그가 최근 연기력이 부쩍 는 비결은 일단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배우자는 철학을 갖고 연기에 임하기 때문이다. 촬영장에서 감독에게 욕도 먹고 긴장도 하면서 경험을 쌓자는 전략이 통했던 것. 대사 한마디 없이 눈빛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늑대소년’도 그런 경험의 연장선상이었다. “일단 하겠다고는 했는데 후회와 걱정이 밀려왔어요. 대사가 없고 리액션(반응) 위주라서 존재감도 덜하고 제가 돋보이는 영화가 아니라면서 주변에서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보니 분명 피드백이 있는 역할이었고 제가 워낙 늑대인간이나 흡혈귀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도전했어요. 이때가 아니면 제가 언제 늑대인간 역할을 해보겠어요.(웃음)” 한국판 ‘트와일라잇’으로 불리는 ‘늑대소년’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위험한 존재인 늑대소년과 세상에 마음을 닫고 사는 외로운 소녀의 아련한 사랑을 담은 영화다. 이 작품에서 송중기는 사람의 언어와 행동을 습득하지 못한 늑대소년 역을 맡아 동물원에서 늑대를 관찰하고 마임을 배우는 등 철저히 연구한 끝에 한국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동물들은 먹을 것을 보면 눈빛이 변하고 입에 넣기 바쁜데 그 부분을 똑같이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동물들은 겁이 많아서 먼저 경계를 하는 동작을 취한 뒤 다음 행동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제 평소 습관을 버리고 분절된 행동을 표현하려고 했죠. ‘늑대소년’은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지만 화려한 판타지 영화인 ‘트와일라잇’과 달리 시대 배경이나 정서가 토속적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거의 비주얼을 포기한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더니 “비호감만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겉모습이 좀 지저분해서 그렇지 순수한 소년의 모습은 기존의 내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진지한 답이 돌아왔다.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해 대학(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대학 생활이 허무해 진짜 하고 싶은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송중기. 좋은 시나리오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작품만 보고 ‘뿌리 깊은 나무’에 세종의 아역으로 출연할 정도로 영리한 배우다. 자신의 그릇을 잘 알고 있고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그는 선배들에게서 배우로서의 자세를 배운다고 말했다. “20대의 나이에 인기를 얻은 것은 분명 신 나는 일이지만 더 올라가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공을 쌓고 싶어요. 정상에 올라가면 그만큼 또 내려와야 하니까요. 드라마 ‘추격자’를 보고 팬이 된 손현주 선배를 만난 적이 있는데 좋아서 시작한 배우 일이라면 며칠밤을 새우더라도 짜증내지 말고 웃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 윤여정 선배님이 한 인터뷰에서 인성이 안 된 사람은 좋은 배우가 되기 어렵다고 한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카메라 안이나 밖이나 늘 똑같고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서울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도 ‘꿈틀’

    서울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도 ‘꿈틀’

    소형 아파트 전세 가뭄이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28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전반적으로는 전셋값 상승세가 둔화됐다. 그러나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되레 강세를 띠고 있다. 소형 아파트 전세가 일찌감치 소진되자 수요자들이 중대형 아파트라도 잡아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월세 전환율이 높아진 것도 중대형 아파트 전세 수요와 전셋값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소형 아파트 재건축 이주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 눈에 띈다. 서울지역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 추이에 따르면 소형은 8월 0.27%, 9월 0.33%, 10월 0.36%로 상승세가 둔화됐다. 같은 기간 전체 아파트 평균 전셋값 상승률도 8월 0.10%, 9월 0.30%, 10월 0.30% 등으로 상승폭이 완만해졌다. 반면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8월 0.06%, 9월 0.14%, 10월 0.23%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8월과 9월에는 전체 평균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10월 들어 4분의3 수준까지 올라간 셈이다. 수도권 전체의 아파트 전셋값 추이도 비슷하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8월 0.20%, 9월 0.28% 각각 상승했는데 대형 아파트는 8월 0.09%, 9월 0.13% 각각 오르는 데 그쳐 그 증가 폭이 전체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10월 수도권 전체 아파트 전세가격이 0.18% 상승하며 8월과 9월보다 오름세가 주춤해진 반면 대형 아파트는 0.14% 뛰어오르며 상승 폭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 서초·송파구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이 두드러졌다. 서초구 잠원동 한신1차·대림아파트 재건축 이주가 곧 시작될 예정이고, 송파구 가락시영 아파트는 이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와 방배동 방배래미안타워 중대형도 한 주 만에 1000만~2000만원 상승했다.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전용면적 122㎡짜리 아파트 전셋값은 한 달 만에 5억 8000만원(13층)에서 6억 2000만원(15층)으로 올랐다. 임병철 부동산114 팀장은 “전체 수도권 전세시장은 10월 중순 이후 안정세로 돌아섰지만 재건축 이주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서는 소형 아파트 전세물건이 부족해 중대형 아파트 전셋값 오름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고교토론 판2(OBS 일요일 오전 9시 55분) 청소년 토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고교토론 판’이 김현욱 아나운서와 함께 시즌2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에는 한국 사회현안 가운데 고등학생들의 삶, 그들이 꿈꾸는 세상과 관련이 있으면서 동시에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첫 회로는 ‘대한민국은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주제로 치열한 토론전쟁을 벌인다. ●내 딸 서영이(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응급실에서 깨어난 삼재는 도망치듯 병원을 떠난다. 사라진 은인의 행방을 추적하던 우재는 어렵게 삼재의 동네를 찾아간다. 호정은 상우에게서 여자친구가 있다는 얘길 듣고 좌절한다. 한편 우재는 삼재의 생일 날, 우연히 서영의 핸드폰에 기록된 아버지라는 일정을 보게 된다. ●아들 녀석들(MBC 토요일 밤 8시 40분) 인옥은 현기와 미묘한 감정들을 정리하려 하고, 현기 또한 자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병국과 정숙은 인옥과 현기의 모습에 서로 마음이 복잡하고, 정숙은 세라와 결혼을 추진한다. 민기는 신영을 향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작업을 핑계로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민기 소설의 팬인 유리를 만난다. ●지구 4만㎞의 소원(OBS 토요일 밤 9시 15분) 인도양에 놓인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는 세계 최대의 차 생산지로 일 년 내내 재배가 가능한 푸른 차밭이 펼쳐져있다. 그곳에는 차밭을 맨발로 누비고 다니는 12살 소녀 다르시니가 산다. 다르시니는 차밭에서 혼자 일하며 고생하는 엄마를 돕기 위해 마을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나눔0700(EBS 토요일 오후 3시 50분) 전남 영암의 한 시골 마을에 이미경씨는 오늘도 아픈 몸을 이끌고 소일거리를 시작한다. 한편 올해 열아홉 살의 민선군은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 미경씨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프로그램에서는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KBS 스페셜(KBS1 일요일 밤 8시) 미국 미주리주 케이시빌시에 살고 있는 제리 블레이락은 하루 종일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고 산다. 폐의 기능이 80%가량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합성 버터밀크향(디아세틸) 때문이다. 그는 향료회사에서 버터밀크향을 팝콘에 배합하는 일을 하다가 그 향의 독성으로 폐가 망가져 버렸다. ●TV 동물농장(SBS 일요일 오전 9시 25분) 강원도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만난 이봉숙 할머니는 반려견 흰둥이를 다시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가족들은 한번도 흰둥이를 병원에 데리고 오지 않았던 걸까. 사연인 즉, 입양 간 흰둥이가 할머니를 잊지 못하고 그곳을 뛰쳐나와 할머니 집 주변을 맴도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는 것인데….
  • 뇌성마비인 50년 대모 “애들 일자리 좀…”

    뇌성마비인 50년 대모 “애들 일자리 좀…”

    “내 자식인 근영이에겐 내가 뭘 잘못해 줬나 싶어 늘 미안해요.” 50여년간 중증 뇌성마비 아들을 품어 기른 지봉이(75) 할머니는 뇌병변장애 1급인 막내아들 박근영(49)씨를 보면 지금도 미안함이 앞선다고 했다. 빠듯한 살림에 오남매를 기르면서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혹시 소홀했던 점이 있었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지 할머니는 일생을 오롯이 아들에게 헌신했다. 자신의 아들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 있는 뇌성마비인에게도 후원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뇌성마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지 할머니를 ‘뇌성마비인의 대모’라고 입을 모은다. 23일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주최하는 제30회 오뚝이 축제에서 지 할머니는 한국뇌성마비복지회장상을 받는다. 오뚝이 축제는 뇌성마비인들의 연례 행사로 어려워도 다시 일어날 것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 할머니는 수상소감을 묻자 손사래부터 쳤다. “부모가 자기 자식 뒷바라지하는 게 뭐 칭찬받을 일이라고….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그나저나 비가 오면 어쩌죠. 우리 애(뇌성마비인)들은 비가 오면 이동하기가 쉽지 않아요.” 지 할머니는 2008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 570여권의 도서를 기증해 뇌성마비인을 위한 북카페 조성에 힘을 보탰다. 쌈짓돈을 모아 조금씩 시작한 기부금은 현재 260여만원이 됐다. 기부금은 좀 더 어려운 뇌성마비인들을 위해 쓰였다. 지 할머니는 2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도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뇌성마비인 기업 ‘꿈을 일구는 마을’ 부모회에 매일 참석한다. ‘꿈을 일구는 마을’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뇌성마비인 직업 재활을 위해 시립뇌성마비 복지관이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아들 박씨도 ‘꿈을 일구는 마을’에서 일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손과 발이 모두 자유롭지 않은 박씨는 발가락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그려내는 칠보공예 작가가 됐다. 지금은 박씨와 같은 뇌성마비인 10명이 꿈을 일구는 마을에 모여 공예품을 만들어 낸다. 지 할머니는 뇌성마비인들이 한땀 한땀 만들어낸 공예품을 가져다 외부에서 판다. 작품 전시일도 할머니의 몫이다. 복지회 관계자는 “지 할머니가 워낙 자주 얼굴을 비추다 보니 아들뿐만 아니라 아들의 동료들도 지 할머니를 따른다.”고 입을 모은다. 지 할머니는 이제 가는귀가 먹었다. 오랜 세월 아들을 부축해 왔던 오른쪽 팔 인대가 파열돼 최근 봉합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병원에 한번을 안 왔냐.”고 핀잔을 줬다고 한다. 그래도 지 할머니는 남은 시간 동안 뇌성마비인들의 직업 찾기를 돕는 데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뇌성마비 장애인이 직업을 갖기가 가장 어렵잖아요. 우리 애들이 직업을 갖고 당당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 사진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씨줄날줄] 도므어이/이도운 논설위원

    1996년 7월 29일 오전 9시 30분, 베트남 하노이의 대통령궁(Presidential Palace)에 도착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축한 노란색 궁전에 새로 장식한 붉은 별들이 강렬해 보였다. 이날 10시부터 공로명 당시 외무부장관이 도므어이 공산당 서기장을 예방하는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먼저 도착한 한국 기자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잡담을 나눴다. 10분쯤 뒤에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왔지만,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노인과 함께 들어온 여성이 기자들에게 시원한 생수를 한 통씩 나눠주기에 의례적으로 ‘생큐’라는 인사만 했다. 공 장관이 도착하고 행사가 시작됐을 때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하얀 옷의 노인이 바로 도 서기장이었던 것이다. 생수를 나눠준 여성은 통역을 맡은 외교관이었다. 공 장관 면담을 마친 도 서기장은 잠시 한국 기자들과 환담하며, 사진 촬영에도 응했다. 반식민 혁명투사였던 도므어이는 개방적인 리더십을 과시한 셈이다. 올해 95세가 된 그의 신병을 한국 의료진이 치료해준 사실이 최근에 공개되면서, 그가 추진했던 ‘도이머이(개혁·개방)’와 한·베트남 관계 개선 노력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베트남 지도자들의 열린 모습을 도므어이에게서만 본 것은 아니다. 1995년 4월 13일, 방한 중이던 응우옌마인껌 베트남 외교부장관이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우리 정부가 마련한, 100석이 넘는 회견장에 도착해 보니 기자는 네 명뿐. 우리 외교부 관계자들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회견장으로 들어오던 응우옌 장관도 잠시 당황한 표정을 보이더니, “여기 계신 분들이 다냐?”고 물었다.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하자 그는 빙긋 웃으며 “그렇다면, 내가 연단에 오를 필요가 없을 테니, 우리 여기 둘러앉아 함께 얘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응우옌 장관과 네 명의 기자는 양국 관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입장을 묻자 “과거를 잊을 수는 없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라고 말했다. 우리 외교장관이 베트남에서 같은 상황을 맞았으면 어떤 식으로 처신했을까? 우리에게 소중하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베트남은 유난히 우리와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고, 남북이 분단돼 싸우기도 했다.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닮았다. 그래서 두 나라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유신 선포일에 ‘김대중 토론회’ 달려간 대선후보 3인… 호남 민심잡기 ‘舌戰’

    유신 선포일에 ‘김대중 토론회’ 달려간 대선후보 3인… 호남 민심잡기 ‘舌戰’

    박근혜 새누리당·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17일 ‘김대중 기념사업회’(명예 이사장 이희호·이사장 권노갑)가 연 토론회에 참석해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잇겠다.”며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안 후보와 단일화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충북지역 행사에 참석하느라 축하 동영상 메시지로 대신했다. ●安, 朴 면전에서 네거티브 공세 비난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여야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은 호남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호남 민심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의전 등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져 주최 측이 홍역을 치렀다. 자리 배치나 축사 순서 등을 둘러싼 신경전 끝에 안 후보가 이 여사 옆자리에 앉고, 박 후보는 그 옆자리에 앉았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최근 박 후보 캠프에 합류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이 박 후보를 수행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당초 참석하기로 했으나 일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호남 민심 잡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문 후보는 전날에야 행사 개최 소식을 전달받고 밤늦게 메시지를 작성, 이날 아침 영상 메지시를 만들어 김한정 수행단장을 통해 전달했다. 주최 측과 후보 측에 따르면 문 후보는 후보 일정관리팀과 민주당 대표 비서실 등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불참하게 됐다. 먼저 축사에 나선 박 후보는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 전 대통령을 방문했던 때를 회고하며 “김 전 대통령은 ‘동서화합이 중요하고 여기서 실패하면 다른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박 대표가 하라. 미안하지만 수고해 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제가 그 말에 보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김 전 대통령이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발휘한 지도력을 평가하면서 “지금도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기다리는 지도자도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 국정운영 능력과 식견을 갖춘 사람이 아닌가 한다.”면서 “국민통합의 리더십으로 이겨냈듯 저도 국민대통합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행사 참여 못한 文, 영상메시지로 대체 안 후보는 “1997년 우리 국민이 김 전 대통령을 선택했던 이유는 바로 변화였다. 50년 만의 여야 간 정권교체로 우리는 낡은 과거의 유산을 딛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꽃피는 그 시기에 저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정부가 IT 벤처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했기에 가능했다.”고 김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특히 안 후보는 박 후보의 면전에서 자신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펴는 새누리당을 ‘저들’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굴하지 않겠다. 받은 만큼 갚아 준다는 식으로 저들과 똑같아지지는 않겠다.”면서 “낡은 체제를 극복, 새 미래를 열겠다.”며 박 후보와 각을 세웠다. 앞서 안 후보는 긴장한 탓인지 방명록에 ‘정권교체와 정치혁신 반드시 이루겠습니다’라고 쓰면서 정권교체의 ‘체’를 ‘채’로 잘못 적다 고쳐쓰기도 했다. 문 후보는 짧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내 몸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사실은 김 대통령이야말로 노 대통령의 절반이었다. 이 자리의 모든 분들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절반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절반이었다.”고 회고했다. 문 후보는 이어 “김대중은 횃불이었다. ‘행동하는 양심’인 그분의 궤적을 돌이켜 보면, 그 분은 늘 앞 발자국이었다.”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발자국, 제가 따라 밟으려 한다. 그분이 흩트리지 않고 걸어 갔던 길, 제가 또박또박 앞만 보고 따라 걸으려 한다.”고 말했다. ●安, 이해찬 대표와 인사 안 나눠 한편 이날 안 후보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처럼 비쳐졌다. 두 사람은 두세 번 인사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 대표는 안 후보에게 인사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었다. 이 대표는 최근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해 안 후보 측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소지섭 “언제까지 ‘소간지’일수는 없잖아요?”

    소지섭 “언제까지 ‘소간지’일수는 없잖아요?”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찬 눈빛은 시린 가을의 느낌과 닮아 있다. 올해로 배우 데뷔 16년차. 이제는 뻔뻔해질 때도 됐건만 여전히 내성적인 성격의 배우는 연기가 마음대로 안 될 때 어디론가 숨고 싶다고 말했다. 새 영화 ‘회사원’으로 돌아온 소지섭(35) 이야기다. 그는 배우들 중에서도 유독 말수가 적기로 유명하다. 4년 전 ‘영화는 영화다’로 인터뷰를 했을 때 과묵한 그의 성격 때문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소지섭은 예전에 비해서는 말주변도 늘었고 훨씬 솔직해졌다. “어느 순간 제 성격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조금씩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연예인이 적성에 잘 맞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왜 잘 보여야 하는지도 몰랐죠. 지금도 속마음은 그대로예요. 낯가림도 있고 평소엔 말을 많이 하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고요.” 패션 모델 출신으로 빼어난 옷 맵시로 ‘소간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소지섭. 그가 정장을 차려입고 멋진 액션을 하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을 해볼 만하다.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11일 개봉한 영화는 4일 만에 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면서 흥행에 청신호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금속 제조회사로 가장한 살인청부회사에 다니는 지형도 역을 맡았다. “영화 설정이 독특하고 재밌어서 출연을 하게 됐어요. 회사원이라는 제목이 주는 어감이 왠지 모르게 무겁고 슬펐어요. 회사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영화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어둠에서 활동하는 멋있는 집단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점이 매력적이더라고요.” 영화 속 형도는 냉정함과 차분함으로 회사 내에서 인정받는 사원이다. 하지만 10년 동안 회사를 집이자 학교로 여기고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닮은 아르바이트생 훈(김동준)을 만나 회사의 뜻을 거스른 뒤 회의를 느껴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니지만 그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유로운 연예인으로 살아온 그가 회사원의 비애를 공감할 수 있었을까. “어렸을 때 수영 선수로서 12년 동안 단체생활을 하면서 조직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더 큰 의미의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일반 직장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하고 무언의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엄청나게 많고요.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달려 나오는 순간부터 신경 쓰이는 게 많아졌죠.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스캔들이나 가십 기사가 나면 안 된다고 배워서 덜 자유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속 소지섭은 ‘살인이 곧 실적’인 회사에서 살인도 지극히 사무적으로 처리한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무표정하게 절도 있고 고난도의 액션 연기를 펼치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남자 배우 원톱 주연에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는 점 때문에 원빈의 ‘아저씨’와 종종 비교되기도 하지만, 소지섭은 절대 멋있어 보이려고 애쓴 작품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실 옷도 화려하지 않은 단벌이고, 자세히 보면 멋스러운 양복이 아니라 약간 펑퍼짐하고 헐렁한 느낌으로 지친 회사원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액션은 감정이 별로 없고 간결하고 묵직하게 그리고자 했죠. 영화를 보신 분들은 분명 ‘아저씨’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소지섭이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 고독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그에게 매번 비슷한 연기를 한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잘된 작품이 없어서 기억을 못하실 뿐이지 데뷔 이후 아침 드라마 빼고 시트콤은 물론 전 장르의 드라마에서 별의별 역할을 다 해 봤어요. 많은 분들이 연기 변신을 안 하느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캐릭터에 확 빠지기보다는 역할을 제 스타일화해서 연기하는 편이거든요. 작품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면서 나중엔 처음과 다른 표정이 나오도록 애씁니다.” 특히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가수였지만 작은 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는 훈이 엄마 유미연(이미연)과 아련하고 설레는 멜로 연기를 선보였다. “형도가 미연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일 수도 있지만 팬심, 연민, 안타까움 등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인 것 같아요. 함께 연기한 이미연 선배님은 정말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느껴졌어요. 기존에 해 왔던 것들을 포기하고 이번 영화를 선택하기 힘들었을 텐데 내려놓으려고 애를 많이 쓰셨죠. 후배들에게도 많이 주려고 한 점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소지섭이 데뷔 초부터 승승장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배우 생활이 처음부터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으로 ‘소간지’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9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듬해 군 입대를 하면서 배우 생활에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요즘은 2~3년 안에 승부가 나는데, 배우가 9년이나 걸려서 빛을 봤으니 오래 걸린 편이죠. 그 사이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지기도 하고, 일이 없어 수입도 적다 보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잘 버틴 편이죠. ‘소간지’라는 별명이 붙고 나서 한편으로는 고민이 되기도 해요. 비주얼만 보이는 것은 아닌지, 연기도 나쁜 것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하고요. 연기 못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듣기 싫거든요” 가장이었던 관계로 돈 때문에 시작한 배우 생활이지만 지금은 연기의 묘한 매력에 빠져 있다는 소지섭. 그는 “요즘엔 배우라는 직업이 연기 하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범적이어야 하고 비즈니스도 잘해야 합니다. 솔직히 연기자는 범죄 빼고 뭐든지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약이 많은 편”이라는 고민도 털어놨다. 영화 속 형도는 자신이 번 전 재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만큼 순정적이고 헌신적이다. “저 역시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돈이든 마음이든 올인하는 스타일입니다. 저는 남녀 관계에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밀고 당기기를 하는 편도 아니죠. 이상형은 저의 직업을 이해해 주는 사람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름답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희생과 배려인 것 같아요.” 당분간 박스오피스에서 이병헌·장동건 등 대선배들과 경쟁을 펼쳐야 하는 그는 자신도 그 결과가 궁금하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항상 목표를 손익분기점으로 삼고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소지섭은 의외로 빨리 40대가 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세월이 주는 느낌은 절대로 연기로 커버가 안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큰 스크린에서는 배우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아우라가 풍겨야 되거든요. 영화 데뷔작 ‘도둑맞곤 못 살아’ 이후 한동안 영화를 하지 않았던 것도 너무 빈틈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언제까지나 ‘간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외적인 것들이 다 버려진 뒤의 제 모습이 궁금해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프로야구 준PO] 패장 김진욱 감독 “5차전 생각한 방심이 패착”

    8회 3-0으로 앞섰을 때 5차전을 생각하고 방심한 것이 패착이었다. 5차전 선발로 노경은을 쓸 것을 염두에 두고 니퍼트를 중간에 사용할 생각으로 점검차 넣었는데 동점을 허용한 것이 뼈아팠다. 홍상삼은 구위가 나쁘지 않았고 예전에도 더 어려운 순간을 막아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큰 경기라 압박감이 컸을 텐데 개인적으로 미안하다. 그런 과정들이 나빴고 판단 미스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선수들은 굉장한 투혼을 발휘했지만 감독의 잘못이 있었다. 변진수, 김창훈, 윤석민 등 포스트시즌을 처음 해보는 선수들이 얻은 경험을 높게 평가한다.
  • 방은진 감독 “배우는 한마디 칭찬에 날개 다는 사람들 배우 출신 장점 최대한 살려야죠”

    방은진 감독 “배우는 한마디 칭찬에 날개 다는 사람들 배우 출신 장점 최대한 살려야죠”

    20대에도 그는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비련의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냘픈 체구에서 나온 울림 있는 목소리에는 강단과 카리스마가 묻어났다. 남다른 삶의 궤적에서 비롯됐을 터다. 여고 시절 그는 연극배우를 동경했다. 어린 마음에도 연극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울 것 같아 대학은 의상학과를 다녔다. 졸업하고 직장 생활도 했지만 사표를 던지고 민중극단을 찾아갔다. 스물네 살 되던 해 ‘처제의 사생활’(1989)로 데뷔했다. 연극영화과 출신은 아니었지만 금방 주목받았다. 하지만 “연극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태백산맥’(1994)을 통해 충무로로 움직였다. 이듬해 박철수 감독의 ‘301·302’로 웬만한 여우주연상은 모두 휩쓸었다. “그때 상업 영화 출연 제안이 쏟아졌는데 마다했다. 외려 ‘지하철 1호선’ ‘햄릿’ ‘리어왕’ 등의 연극을 병행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대중의 사랑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고단한 길을 택했다. IMF 외환 위기가 오면서 출연하려던 몇몇 작품이 엎어졌다. 그사이 나이가 들었고 대단히 예쁘지도 않은 내가 여주인공을 하기에는 애매했다. 배우로서의 포지션이 흔들렸다.” 그는 다른 생각을 품었다. 낯선 영화 연기를 잘하고 싶어 카메라와 렌즈를 가까이 하다 보니 연출이 눈에 들어왔다. 1999년 김진한 감독의 단편영화 ‘장롱’에서 주연은 물론 조연출을 맡아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깊이 빠져들었다. 박철수 감독이 조경란의 소설 ‘식빵 굽는 시간’을 건네며 각색과 연출을 권유한 것도 그 무렵이다. 또 다른 작품의 각색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상업 영화의 장벽이 이렇게 높은 건가. 의심과 후회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출사표를 던졌는데 물러설 순 없었다. 원칙주의자라 자신과 타협을 못 한다. 한 작품이라도 완성해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정신적 지주인 이창동 감독이 “각색 말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써 보라.”고 권유했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감수해 주며 “급하게 생각하지 마. 넌 마흔이지만 난 마흔셋에 데뷔했다.”고 다독였다. 고진감래라고 2005년 영화 ‘오로라공주’를 내놓았다. 감독을 준비한 지 꼭 6년 만, 불혹의 나이에 바라던 입봉을 했다.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출력은 평단의 지지를 끌어냈다. 또 94만여명의 관객을 모았을 만큼 대중 반응도 괜찮았다. 방은진(47) 감독 얘기다. 그가 7년 만에 ‘용의자X’(오는 18일 개봉)를 들고 관객들과 만난다. ‘용의자X’는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용의자 X의 헌신’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100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수학 천재였지만 평범한 고교 수학 교사로 사는 석고(류승범)는 이웃집 여자 화선(이요원)을 마음에 품는다. 어느 날 밤, 화선이 자신을 괴롭히던 전 남편을 우발적으로 죽인다. 석고는 화선을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다. 빈틈없는 알리바이 때문에 고민하던 담당 형사 민범(조진웅)은 자신의 고교 동창 석고가 화선의 옆집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범의 후각이 발동하면서 영화는 놀라운 결말로 치닫는다. 방 감독은 원작 소설의 팬이었다. “이 소설 죽인다. 누나가 했으면 좋겠다.”는 ‘오로라공주’의 최영환 촬영감독 말을 듣고 책장을 펼친 뒤 단박에 반했다. 얼마 뒤 일본에서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시나리오로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명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준비하던 영화가 두 편쯤 투자 단계에서 엎어져 좌절하던 방 감독에게 지난해 봄 CJ엔터테인먼트가 연출을 제안한 것이다. 방 감독과 CJ의 기획1팀은 일본판 영화 ‘용의자X의 헌신’과 차별화하기 위해 원작 소설에 메스를 들이댔다.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석고)와 물리학자 유카와의 두뇌 싸움에 초점을 맞춘 원작과 달리 방 감독은 석고의 화선에 대한 헌신적 사랑에 포커스를 맞췄다. 7년 만에 두 번째 작품을 출산했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영화 초중반 템포가 떨어진다거나 세 인물의 심리와 감정에 너무 깊이 빠져 정적으로 흘렀다는 지적도 알고 있다. ‘오로라공주’ 때와는 또 다른 완급 조절의 아쉬움이 있다. 처음 크랭크업 했을 때만 해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관객 반응이 두렵다. 후후후.” 배우 출신, 게다가 손꼽히는 연기파였던 만큼 배우들은 방 감독과 작업하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 “좀 다른 거 없을까.”, “한번 더 가볼까.”란 뜬구름식 주문이 아니라 딱 꼬집어 지시하기 때문이다. 조진웅은 제작 보고회에서 “선배라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단점은 너무 긁어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에 대해 방 감독은 “배우들과 충분한 대화와 리허설을 하고 나서 촬영에 들어가면 순간에 나오는 감정을 담으려고 한다. 테이크를 더할수록 감정이 익어버려 기계적으로 나오기 쉽다.”고 설명했다. 배우 출신이라는 점은 양날의 칼이다. “‘오로라공주’ 때는 딱 보면 배우가 얼마큼 더 끄집어낼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테이크(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연속 화면)를 더 안 가고 끝내 버렸다. 그땐 연기자 출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감독은 배우들의 최대치 이상을 끌어내야 한다. 당장은 징글징글해도 그래야 배우가 또 작업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 출신이란 꼬리표는 어떻게 해도 뗄 수가 없다. 연출만 했던 사람들의 막연한 디렉션에 비해 디렉션이 구체적이라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역으로 배우의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많이 배우들에게 물어봤다. ‘난 지금 컷이 괜찮은데 어때?’, ‘그럼 오케이한다’라고 배우를 신뢰한다는 걸 끊임없이 보여줬다. 경험상 배우들은 한마디 칭찬에 날개를 달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 출신이란 걸 최대한 장점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활짝 웃었다. 충무로에서 입봉은 하늘에 별따기다. 더 어려운 건 두 번째 영화를 찍는 일이다. 하늘에 별 딴 사람끼리 경쟁하기 때문이다. 통상 감독들의 10~15%만 행운을 쥘 수 있다. 첫 영화까지 6년, 두 번째 영화까지 7년이 걸린 방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은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싸이 행사장 찾아간 김장훈…눈물로, 소주로 불화 씻었다

    싸이 행사장 찾아간 김장훈…눈물로, 소주로 불화 씻었다

    불화설에 휩싸였던 김장훈과 싸이가 10일 전격 화해했다. 김장훈은 이날 저녁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싸이의 한 외제차 행사장에 예고 없이 참석했다. 김장훈은 싸이가 ‘낙원’을 부르는 무대에 갑자기 올라 함께 노래를 부른 뒤 “속 좁았던 형을 용서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갈등이 연일 외신에 오르내리기까지 해 형으로서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다. 내 속이 좁은 탓에 국제적으로 커 가는 싸이의 앞길을 막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며 “난 절대 주최 측의 초대를 받고 온 것이 아니다. 이렇게 직접 공연장을 찾아서라도 사과하고 화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싸이는 이에 “난 상관없으니 형 건강이 우선”이라며 함께 눈물을 쏟았다. 둘은 이어 김장훈이 준비해 온 소주로 ‘러브 샷’을 했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장훈은 이날 무대를 내려온 뒤 심경 변화의 배경을 밝혔다. 그는 “(지난 5일) 싸이가 (병원에) 다녀간 후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만 해도 싸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계속 마음이 아팠다.”며 “오늘 외신에 우리 둘의 불화설에 대한 기사가 나기 시작하는 걸 봤다. 한국에서 전대미문의 가수가 나왔는데 형인 내가 축하해 주진 못할망정 그걸 막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SNS를 통해 밝힌 대로 내년에 한국을 떠나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여기野] 공수 펄펄 용덕한, 친정팀 두산에 비수

    양팀이 1-1로 팽팽하게 맞선 9회초. 두산 마운드는 여전히 홍상삼이 지키고 있었다. 선발 노경은에게 7회초 1사 만루 위기에서 마운드를 이어받은 뒤 2이닝째였다. “오늘은 어떤 투수가 되든 짧게짧게 한 타자씩 상대하겠다.”던 김진욱 감독의 경기 전 발언과는 조금 양상이 달랐다. 전날 1차전에서 박준서에게 홈런을 얻어맞긴 했지만 여전히 두산 불펜의 필승카드는 홍상삼이란 뜻이었다. 선두타자 황재균을 파울플라이로 잘 잡아냈다. 다음 타석에 들어선 것은 용덕한. 지난 6월 17일 투수 김명성과 맞트레이드돼 롯데로 옮기기 전까지 홍상삼과 한 팀에서 배터리로 호흡을 맞추던 사이다. 그만큼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도 하다. 둘 다 물러설 수 없는 승부였다. 누가 더 간절한지의 싸움에서 이긴 것은 용덕한이었다. 용덕한은 홍상삼의 4구째 146㎞짜리 직구를 받아쳐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팀의 2-1 승리를 견인한 짜릿한 홈런이자 그간의 설움을 한 방에 날려버린 홈런이기도 했다. 1차전에서 왼쪽 눈에 타구를 맞은 주전포수 강민호를 대신해 이날 롯데의 안방을 책임진 용덕한은 ‘타선에서 강민호만큼 해줄까’ 하는 주변의 우려를 깨끗이 씻었다. 상대가 2004년 입단해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친정팀인지라 의미가 더욱 컸다. 용덕한은 “홈런타자가 아니어서 홈런을 칠 줄 몰랐다. 빠른 포크볼을 노렸지만 직구가 가운데로 몰려 나도 모르게 방망이가 나간 것이 타이밍이 좋았다. 기분은 좋지만 상대가 두산이라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며 웃었다. 2경기 연속 뼈아픈 피홈런을 허용한 홍상삼은 이 홈런으로 준PO에서 피홈런 4개를 기록, 역대 통산 최다 피홈런 타이 기록이라는 불명예도 썼다. 종전 기록은 한용덕 한화 코치가 갖고 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범 필리핀 유치장서 목매 자살

    국내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했던 40대 남성이 현지에서 붙잡히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청은 2007년 7월 경기 안양 비산동의 환전소에서 공범 2명과 함께 여직원을 흉기로 살해한 뒤 현금 1억원을 빼앗아 달아난 김모(43)씨가 살인 등의 혐의로 필리핀 비콜 항구에서 체포됐으나 8일 새벽 현지 유치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공범 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현장에 남겼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씨 일당은 필리핀으로 도주한 뒤에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필리핀 여행을 하려는 한국인들에게 가이드를 해 주겠다며 접근해 납치한 뒤 한국의 가족으로부터 몸값을 받아내는 등 현지에서 13차례 이상 납치·강도 등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등은 또 지난해 11월 필리핀 여행 중 실종된 관광객 홍모(32)씨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의 행방을 알려주겠다.”며 금품을 요구한 적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홍씨는 지난해 9월 부모에게 전화해 급한 돈이 필요하다며 1000만원을 송금받은 뒤 지금까지 실종 상태로 경찰은 김씨 일당이 납치·살해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서울·김포·용인 중소형 중심 계약 증가세

    서울·김포·용인 중소형 중심 계약 증가세

    지난달 26일 취득·양도세 감면 혜택이 확정된 이후 미분양 주택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미분양 주택에 대한 양도세 100% 감면제도가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서울과 김포, 용인 등지에서 중소형을 중심으로 계약이 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의 ‘가재울 래미안 e편한세상’은 26일 이전 70~80건 남아 있던 미분양이 5일 현재 20건 정도만 남아있다. 분양 관계자는 “할인분양과 양도세 감면이 맞물리면서 추석 연휴 기간에 평균 10건의 계약이 성사됐다.”고 전했다. 김포한강신도시도 계약건수가 평소 하루 1~2건에서 최근 3~6건으로 늘고 있다. 당초 6월 분양 당시 순위 내 마감을 했지만 실제 계약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한강신도시 롯데캐슬’은 이달 들어서만 10가구가 팔려나갔다. ‘래미안 한강신도시 2차’도 평소보다 계약이 2배 가까이 늘었다. ‘미분양 창고’라고 불리는 용인지역도 차츰 계약이 늘고 있다. ‘기흥역 롯데캐슬’은 세제 혜택이 확정된 후 모델하우스 방문객이 30% 정도 늘고 하루 1~2건에 불과하던 계약도 추석 연휴 동안 매일 3~4건 정도 이뤄졌다. 부동산 관계자는 “분양가 할인으로 가격이 예전보다 낮아진 데다 장기적으로는 주택시장이 살아나지 않겠냐는 심리가 미분양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쌓여 있는 미분양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 계약이 늘고 있는 단지 대부분이 입지가 좋은 지역의 중소형이기 때문이다. 가재울 래미안 e편한세상의 남은 미분양 물량도 185㎡ 등 대형 평형이다. 분양업체 관계자는 “중소형은 수요가 몰리지만 대형은 모델하우스 구경만 하고 간다.”고 전했다. 대림산업의 ‘의왕내손e편한세상’ 등의 경우 미분양 물량을 찾는 발길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9·10대책 효과도 결국 입지와 가격, 평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김장훈·싸이 불화… 공연 기법·스태프 빼가기 탓?

    김장훈·싸이 불화… 공연 기법·스태프 빼가기 탓?

    가요계의 ‘절친’으로 소문난 가수 김장훈과 싸이의 불화설이 연예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둘의 갈등은 김장훈이 지난 6일 돌연 “사랑하는 내 나라를 몇 년간 떠나겠다.”고 밝히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둘의 불화설은 김장훈이 지난해를 끝으로 더 이상 합동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흘러나왔다. 불화설의 핵심은 김장훈이 싸이가 자신의 공연 아이디어를 모방하고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공연 스태프들을 빼간 것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데 있다. 이들이 처음 공연 호흡을 맞춘 것은 2003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김장훈이 싸이의 단독 콘서트 연출을 맡으면서부터다. 하지만 이들은 2004~2006년 각자 연말 공연을 열면서 경쟁자 관계로 변했고 잠시 ‘냉전’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다 싸이가 군 재입대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 김장훈이 자주 면회를 가 힘을 실어줬고 그 기간 동안 싸이의 회사 식구들을 거둬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싸이는 자작곡 ‘소나기’를 김장훈에게 선물했고 제대 이후 함께 공연 기획사를 설립해 ‘완타치’라는 합동 공연에 나서 연 매출 100억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합동 공연 중단을 선언한 후 둘은 지난 5월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해 신경전을 벌였다. 당시 김장훈이 싸이가 자신의 공연 연출 기법을 응용한 것을 지적하자 싸이가 “후배가 선배한테 배우는 것이 무슨 문제냐.”며 맞섰던 것이다. 김장훈은 지난 9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예전에 이승환씨가 자신의 공연을 도용당했다고 불만을 토로한 입장이 이해가 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싸이를 겨냥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김장훈은 지난 4일 “믿는 이들의 배신에 더는 못 견디는 바보입니다. 미안해요.”라며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이어 5일 밤 싸이가 병원에 입원 중인 김장훈을 방문해 8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고 두 사람이 화해했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김장훈이 6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11일 앨범 발매일까지 미루고 당분간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데 왜 자꾸 상황을 언론 플레이로 몰고 갑니까. 이러려고 6개월 만에 찾아와 밀고 들어왔나. 결국 진흙탕이 되나.”라면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둘의 불화설이 알려지자 가요계 관계자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싸이의 소속사 관계자는 “문제가 된 공연 스태프들은 외주 업체 직원들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상황인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도 7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장훈이 형 병동에 와서 아침도 잘 먹었다. 점차 안정을 찾는 것 같아 다행”이라며 “(김)장훈이 형과 싸이 사이에 좀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잘 이겨내리라 생각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많은 네티즌들도 “사비까지 털어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광고를 해 온 김장훈을 섣불리 비난해서는 안 된다.”거나 “김씨가 그동안 훌륭한 활동을 한 것은 맞지만 공인이 SNS에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남겨 온갖 추측과 의혹이 난무하게 만든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니다.”라는 등의 엇갈린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이은주·유대근기자 eri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소리인생 75년…‘배뱅이굿’ 무형문화재 이은관 옹

    [김문이 만난사람] 소리인생 75년…‘배뱅이굿’ 무형문화재 이은관 옹

    거침이 없다. 결코 쉬는 일도 없다. 남성의 바리톤 같은 저음에서 여성의 소프라노 목소리까지 시공을 뛰어넘으며 우리 가락을 잘도 버무려 낸다. 때로는 웃음과 슬픔, 때로는 깊은 곳에 묻혀진 회한을 꺼내 달래고 어루만진다. 희로애락, 그 가슴을 후벼파고 쥐어짜기도 한다. 95살, 5년 후에는 100살이 된다. 서도소리 명인 이은관(중요무형문화재 29호)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배뱅이굿’을 가장 잘 부른다. 현재까지 ‘배뱅이굿’에 관한 한 그를 따를 자가 없는 명창이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제자를 가르치고 매달 4~5회씩 공연을 하는 등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 주변에 위치한 ‘이은관 민요교실’을 찾았다. 이 선생은 제자 전옥희(배뱅이굿 이수자)씨와 함께 앉아 다음 공연에 대해 얘기하다가 “내가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일어서지 못해 미안하다.”며 앉은 채로 반긴다. 빨간 티셔츠에 짙은 회색 상의 차림이어서 그런지 한복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 “오늘은 한복을 집에 두고 왔으니 뭐 어때. 이런 모습도 좋지 않아요?”라며 사진 촬영에 응했다. 대신 장구를 잡더니 공연 때 하는 것처럼 배뱅이굿 중 한토막을 즉석에서 흥겹게 읊어댄다. “옛날 서울 장안에 이 정승 김 정승 최 정승 삼 정승이 재산은 많으나 아들 딸이 없어서 명산 대찰에 불공을 드려서 아들 딸 좀 낳아 보겠다고 삼 부인 삼 정승이 명산 대찰을 찾아가는데 삼 부인이 그냥 매일같이 아들 딸 낳게 해 달라고 빌고 정성을 드렸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삼 부인이 아마 그달부터 뱃속에 뭐 하나씩 생겼던가 봐요. 하루는 말이요. 삼 부인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꿈 야기판이 벌어졌어요. 제일 먼저 이 정승 부인께서 한마디 해보이는데 아이고 난 저번에 꿈을 꾸었는데 그저 꿈에 하얀 백발 노인이 머리달비 한쌍을 주길래 그 달비 받아서 치마폭에다 배배 틀어연 꿈을 꾸었는데 어찌 그런지 요즘은 그저 머리가 자끈자끈 아픈게 그저 시큼털털한 개살구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어~” 이 선생은 “이제 그만 됐습니다.”라고 할 때까지 한 호흡도 쉬지 않고 계속 이어나간다. 10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대체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여 건강에 대한 얘기부터 나왔다. 이 선생의 웃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해맑고 환하다. 그 자체만 해도 건강 유지 방법 중 하나이다. “나 말이오? 건강하죠. 그러니까 이때까장 노래부르잖아요. 전화 목소리는 잘 안들리고 가끔 다리가 아파서 걷는 것을 조심하고 있어요.” 병원에 입원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다만 건강검진을 위해 3일 정도 입원한 적이 있다고 옆에 있던 제자가 거들었다. 그렇다면 75년의 소리인생을 살아오면서 지금도 무대를 휘어잡는 진짜 건강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말이에요. 생활이 규칙적이죠. 식사를 하루에 다섯 번 해요. 먹고 싶을 때 조금씩 다섯 번을 먹는 습관이 있어요. 소식이지요. 하루 세 끼가 아니라 다섯 끼이기 때문에 혼자서 해먹지요. 기본 반찬은 며느리가 갖다 주는데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동네 슈퍼에 가서 미리 사놨다가 혼자 요리를 해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선생의 자택은 서울 황학동이다. 사업을 하는 아들 부부가 2층에서 살고 이 선생은 아래층에 혼자 산다. 주로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원래 고기를 좋아해요. 소고기도 좋아하는데 돼지고기 사다가 김치에다 라면을 넣고 끓여 먹으면 아주 맛있어요. 그래저래 고기는 한 달에 20일 이상 먹는 편이지. 소식으로 여러 번 먹고, 또 고기를 자주 먹는 그런 습관이 30년이 넘었어요. 요즘에는 잠을 잘 자요. 낮이건 밤이건 자고 싶을 때 1시간이나 3시간씩 여러 번 잠을 자요. 밤에 자다가 일어나 출출하면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도 해 먹고 다시 자고 아주 편해요. 잠이 안 오면 악보 그리고 작사하고, 심심할 시간이 전혀 없어요(웃음).” 그는 지금도 작사 작곡을 한다.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는 자작곡(신민요와 민속민요)만 100여편에 이른다. 또 색소폰, 전자오르간, 아코디언 등 서양악기는 물론이고 피리, 가야금 등 대부분의 국악기도 다룬다. 이 선생의 말대로 ‘심심할 틈’이 도저히 없다. 올해는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 선생은 “나는 잘 몰라요. 우리 제자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한다. 옆에 있던 제자 전씨가 얼른 얘기한다. “10월 9일 소월아트홀(서울 행당동)에서 공연이 있어요. 제자들과 함께하는 무대이지요. 그리고 10월 16일 밀양에서 있고, 연말까지 10회 정도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선생님(이은관)의 열정은 정말 대단해요. 지금도 한 달에 큰 행사만 2~3회 정도 합니다.” 화제를 옛날 얘기로 돌렸다. 어떻게 소리를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이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신불출(만담가이자 연극인)의 ‘대머리 영감’이나 ‘엉터리’, ‘견우직녀’, ‘홍길동’ 같은 ‘유성기’를 동네 사랑방에서 어른들과 함께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부였던 부친이 노래를 잘 불렀다고 회고한다. “아버님 따라 밭에도 가고 산에도 갔지요. 그때마다 아버님이 ‘나무하러 가세 나무하러 가세, 상상 마루에 올라가세’ 하는 산타령을 지게 작대기로 장단을 맞추면서 아주 잘 불렀어요. 내가 그걸 따라 부를 때마다 흥이 납디다. 아마 내 노래 소질은 아버님을 닮은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 배운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라는 창가,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 등의 동요를 불러 학예회에서 우등상을 받기도 했다. 17살 때 강원도 철원극장에서 콩쿠르가 열렸다.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 출전해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일등상을 받았다. “그때 상을 받는 바람에 얼씨구나 하고 좋아했지요. 이젠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갔어요. 왜냐하면 서울에는 방송국도 있고, 서울에 가면 출세하는 줄 알았지요. 결국 어떻게 해서 경성방송국에 출연했어요. 그게 소문이 나서 더욱 우쭐했지 뭡니까. 고향에 다시 갔더니 여기저기에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하지만 그는 노래실력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황해도 황주에 있는 이인수 명창에게 찾아가 배뱅이굿과 서도소리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는 “3개월 동안 스승님 집에서 먹고 자고 하며 노래를 배웠는데 아주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셨다.”면서 “재담이 아주 길고 다양하셨다.”고 술회한다. 이후 이 선생은 서울로 다시 와 조선가무단에서 유랑극단 생활을 했다. 이때 특유의 높고 고운 소리의 구성진 창법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의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해 배뱅이굿 1인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 배뱅이굿은 굿이 아니라고 이 선생은 강조한다. 남도의 판소리처럼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춰 배뱅이 이야기를 서도소리로 풀어내는 1인 창극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탁발 나온 상좌중과 사랑에 빠진 정승의 딸 배뱅이가 상사병을 앓다 죽자 부모가 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팔도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데 건달 청년이 거짓 무당 행세로 횡재한다는 줄거리다. ‘배뱅이굿’은 경쾌하고 장조가 많은 특징이 있으며 이 선생이 이런 장단을 처음으로 정립했다.1984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는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16살 차이 나는 맏딸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가족 얘기가 나오자 잠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학교 시절이었지요. 하루는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해서 선을 보러 말타고 20리를 갔습니다. 얼굴도 제대로 못봤는데 방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신부 목소리가 아주 곱더군요. 아이 셋 낳고 먼저 갔습니다. 내가 자식들 공부를 제대로 못 시켰어요. 그게 한이 됐지요. 출세하려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고 나중에 돈이 생기니까 ‘공부값’으로 자식들한데 얼마씩 주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매년 초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난다. 증손자까지 모두 20여명이라며 웃는다. 다복하지 않으냐는 표정이다. 인간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꿈이 있기 마련이다. “5년만 있으면 100살입니다. 남은 인생 잘 마무리해야지요. 뒤돌아보면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고 먼저 세상을 떠난 처가 생각납니다. 내가 제자를 많이 받아들이는 것도 그런 한이 있어서 그래요. 정신이 또렷할 때까지 열심히 가르치고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제자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민속악도 그냥 소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보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일어섰더니 “추석 잘 보내시고 일어나지 못해 미안해요.”라며 파안대소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은관 옹은 고교시절 마을 콩쿠르서 1등 후 소리공부…‘배뱅이굿’은 이인수 명창에게 배워 1917년 11월 27일 강원도 이천에서 8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나온 뒤 철원고등학교 시절 마을 콩쿠르대회에 나가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1등을 차지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과 황해도를 오가며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했다. 14살 때 4살 연상과 결혼했지만 떠돌이생활로 소리인생을 시작했다. ‘배뱅이굿’과 ‘서도명창’은 황해도 황주에서 스승 이인수 명창에게 배웠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의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1984년 배뱅이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29호로 지정받았다. 2002년 제9회 방일영국악상, 1990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지금도 한 달 평균 큰 행사만 2~3회를 치를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슬하에 6남매를 두었으며 서울 황학동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다.
  • [길섶에서] 성묘길/육철수 논설위원

    추석날, 장인어른이 안장된 이천호국원을 찾았다. 장모님은 사위의 동행이 무척 반가우셨나 보다. 이른 아침부터 차례 음식을 챙기고 옷단장에 선글라스까지…,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떠 계셨다. 온 식구가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나섰는데,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순간 앞이 캄캄했다. 대한민국의 차란 차는 다 쏟아져 나온 것 같았다. 1시간 거리를 4시간 만에 갔다. 돌아올 때는 국도와 지방도로를 이용했다. 쾌청한 가을날, 누런 들판과 시골의 정경들이 스쳤지만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서울로 가는 길만 신경 썼다. 장모님이 이따금 “저녁 사 먹고 가자.”고 하셨지만 “괜찮습니다!”를 연발하며 길을 재촉했다. 3시간 후 서울에 막 들어서는데 장모님 말씀, “여보게 육 서방! 볼 일이 아주 급하네….” 운전에 몰입한 사위한테 말을 걸기가 미안해서 한 시간을 참으셨다나? 아차! 저녁 먹고 쉬어 가자는 게 그 뜻이셨구나. 장모님께 효도 좀 하려고 모처럼 함께 나선 성묘길인데, 하마터면 막판에 큰일 날 뻔했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김성환 외교 “독도문제, 타협은 없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제무대에서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겠다고 밝히는 등 28일 저녁(현지시간)으로 예정된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앞두고 대일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 27일 미국 뉴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거듭된 독도 도발과 관련해 “우리 입장은 항상 단호했고 타협은 없으며 그것이 분명한 원칙”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일본이 분쟁화를 기도한다고 해도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다고 해도 강제관할권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거부하면 소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한 “일본이 우리나 중국을 직접 거명하지 않으려 고심한 것으로 보이나 센카쿠는 놔두고 독도만 ICJ에 갖고 가겠다는 것은 이중잣대”라며 “요즘 일본 정치인들이 우리에게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도 없는데 이는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작심한 듯 비판했다. 김 장관은 이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면 한국 국민들은 이를 또 다른 침략 시도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며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언급할 예정이다. 김 장관은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은 적시하지 않겠지만 내용을 보면 알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혀 ‘일본’과 ‘위안부’라는 구체적 표현보다 ‘전시 여성의 인권’을 거론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한편 김 장관은 이날 오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 회담을 갖고 올바른 역사인식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치를 촉구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대낮 ‘야전삽 테러’ 당한 강남 초등학교 교실

    대낮 ‘야전삽 테러’ 당한 강남 초등학교 교실

    우울증 치료를 받던 10대가 대낮에 초등학교 교실에 침입, 무차별로 학생들에게 둔기를 휘둘러 6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28일 서울 강남의 유명 사립 초등학교 교실에서 흉기를 휘둘러 학생들을 다치게 한 김모(18)군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다. 김군은 이날 오전 11시 50분쯤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계성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 들어가 장난감총으로 학생들을 위협하다 준비해 간 야전삽을 갑자기 휘둘렀다. 김군이 휘두른 흉기에 4학년 장모(11)군이 왼쪽 턱이 5㎝가량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장군 옆에 있던 같은 반 학생 5명도 팔이 부러지고 입술이 찢어지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김군은 5분가량 난동을 부리다 옆반 남자 교사 2명에게 제압당했다. 당시 아이들은 5교시 특별활동에 대해 회의를 하던 중이었고, 담임 여교사는 교실 뒤편에서 회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해당 학교에는 사설 경비원이 있었으나 흉기를 든 외부인의 진입을 막지 못했다. 학교 관계자는 “평소 등·하교할 때를 제외하고는 경비원이 있는 정문만 열어두는데 최근엔 옥상공사 때문에 후문을 열어뒀다.”면서 “김군은 들어오는 공사 차량 뒤에 붙어 학교로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때 후문을 지키는 경비원은 없었다. 이 관계자는 “김군은 우리 학교에 아는 학생이 없고 이 동네에 연고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김군은 지난해 3월말부터 4월초까지 인천의 한 신경정신과 병원 폐쇄병동에서 2주간 치료받은 경력이 있고 퇴원 후에도 최근까지 매월 한 차례씩 통원 우울증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군은 범행 당시 ‘열심히 노력해서 언젠가는 성공한다 해도 제겐 절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저지르니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변명은 안 하겠습니다. 제 장례식은 치르지 마시고 남은 시신 처리나 해주세요.’ 라는 내용의 메모를 소지하고 있었다. 경찰은 “김군이 인천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에 합격한 상태였으며 중퇴한 모교의 교복을 입은 채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야전삽과 모의권총은 친구들과 함께 캠핑을 가기 위해 인터넷에서 구매했다고 진술했다.”밝혔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깔깔깔]

    ●횡재 두 남자가 시골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고장이 났다. 밤이 다 된 시간이라 둘은 한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과부가 나왔다. “자동차가 고장났는데 오늘 하룻밤만 묵을 수 있을까요?” 과부는 허락했고 두 남자는 다음 날 아침 견인차를 불러 돌아갔다. 몇 달 후에 그 중 한 남자가 자신이 받은 편지를 들고 다른 남자에게 갔다. “자네, 그날 밤 그 과부와 무슨 일 있었나?” “응,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그럼 혹시 과부에게 내 이름을 사용했나?” “어, 그걸 어떻게 알았나? 미안하네 친구.” “그랬구먼, 근데 그 과부가 며칠 전에 죽었다는 편지와 함께 나에게 5억원의 유산을 남겨 줬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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