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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영무 “韓 빼고 美 단독 전쟁 없을 것”

    송영무 “韓 빼고 美 단독 전쟁 없을 것”

    국방·법사 등 12개 상임위 열려 “북핵 실전 배치 아직 도달 안해” 여야는 12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국정감사에서 국방, 법제사법, 외교통일 등 12개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북핵 위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등을 놓고 난타전을 벌였다.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미국은 한국과 협의 없이 단독으로 전쟁할 수 있느냐’고 묻자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이 단독으로 (전쟁을) 한다는 그런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장관은 북한 수뇌부 제거 가능성을 묻는 질의에 “그런 얘기는 여기서 밝히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 배치해 사용 가능한 상황이냐는 질문에는 “거기까지 도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미국의 대북 군사조치는) 우리의 협의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과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미군 장성이 부사령관을 각각 맡는 ‘미래 연합군사령부’ 편성안을 이달 말 확정할 방침이라고 국방부는 보고했다. 국방부는 또 “전시 연합작전을 지휘하는 미래 연합군사령부 편성안을 오는 27∼28일 열리는 한·미군사위원회(MCM)와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승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 연합군사령부는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전작권 조기 전환 이후 해체되는 기존의 한·미연합사령부를 대체하고자 새로 창설되는 연합지휘체계다.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2015년 12월 한·일 간에 합의된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전술핵 문제 등이 도마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 간의 8차례에 걸친 밀실 합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은 “전술핵 배치의 현실화 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가 (미리) 전술핵 배치를 단언하여 포기할 필요는 없다”면서 “전략자산 순환 배치가 아닌 상시 배치, 전술핵 재반입, 미사일 방어 체제의 보강, 핵 주기 완성 등을 고려하는 등 군사적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은 “강 장관이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후 열린 외통위 현안보고에서 한·미 간 FTA 재협상 합의는 없었다고 단언했었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국감에서는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과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이 공개한 원자력 발전원가의 적정성이 도마에 올랐다. 한국당 곽대훈 의원은 한수원의 2016년 발전원가가 1kWh(킬로와트시)당 53.98원으로 국회 예산정책처가 제시한 2015년 기준 신재생·기타에너지 발전단가(221.3원)의 4분의1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화제의 영상] ‘아이 깜짝이야!’ 타이어 펑크 소리에 간 떨어진 사자

    [화제의 영상] ‘아이 깜짝이야!’ 타이어 펑크 소리에 간 떨어진 사자

    자동차 타이어 터지는 소리에 꽁무니를 내빼는 사자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국립공원에서 촬영된 해당 영상은 공원 측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난 10일 공개됐다. 영상을 보면, 도로에 정차해 있는 자동차 옆으로 사자 한 마리가 접근한다. 이후 녀석은 운전석 쪽 타이어를 물어뜯는다. 갑자기 새어나오는 바람에 녀석은 화들짝 놀라 줄행랑친다. 이후 피해 차량은 구멍 난 타이어를 교체하면서 영상이 마무리된다. 영상을 게재한 이에 따르면 “우스꽝스러운 사자의 모습을 지켜본 우리는 웃고 또 웃었지만 피해 차량 탑승자들에게는 결코 우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돌발 상황을 지켜보며 낄낄댔던 것에 미안함을 드러냈다. 사진 영상=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단독]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오늘도 난 ‘일바보’

    [단독]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오늘도 난 ‘일바보’

    “저녁 먹자” 부장 한마디는 야근 경보승진 위해 집보다 회사가 편하다고이런 분위기에다 실적 압박에직원들 감히 어떻게 가방을 드나 대한민국은 ‘야특’(야근·특근) 공화국이다. 근로계약서에 적시된 ‘소정근로시간’은 갑(회사)도, 을(직원)도 믿지 않는 허울일 뿐이다. 서울신문이 리서치회사 엠브레인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68.4%가 ‘과로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답한 건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왜 일만 아는 ‘일 바보’가 됐을까. 설문조사 결과와 사례 취재 등을 통해 노동자들이 과로의 덫에 빠져든 원인을 살펴봤다.“저녁 먹자.” 사무실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자 사장실에서 팀장이 상기된 얼굴로 나왔다.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진 뒤 먼저 밖으로 나간다. 팀원들은 말없이 따라나선다. 이렇게 야근은 또 시작됐다. 어제도 자정 넘겨 퇴근했는데 오늘은 대체 몇 시에 퇴근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 팀에선 개별 행동이 허용되지 않는다. 점심·저녁 식사는 물론 야근도 함께한다. 회사 내에서도 악명 높다. 그런데도 이 팀에 오려고 줄을 선다. 승진 때 가점 받는 등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무언의 약속 때문이다. #직장인 60% “일의 절대적 양이 많아 야근” 이 팀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국내 대기업 중 한 곳인 A사의 기획실 소속이다. 임원급인 팀장은 사장에 직접 보고한다. 팀원들은 팀장이 보고 때 ‘깨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팀장이 낮 미팅 중 스마트폰 메신저 텔레그램 등으로 메시지를 보내 ‘필요한 자료를 찾으라’고 지시하면 잽싸게 만든다. 밤에는 팀장이 다음날 오전 9시 회의 때 보고할 자료를 준비한다. 자료 작성이 끝나야 집에 갈 수 있다. 하루 평균 업무시간은 15~17시간. 초과근무 수당은 없다. 이 회사 사무직에는 초과근무라는 제도 자체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팀원이 지친 팀 전체를 위해 ‘총대’를 멨다. 팀장에게 “앞으로는 팀원을 반으로 나눠서 돌아가며 야근하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했다. 거절당했다. 결국 그는 지난달 사표를 내고 외국계 기업으로 옮겼다. “몇 년 더 일해봤자 골병만 날 것 같다. 미안하다”는 고별사를 남겼다. A사의 모습은 정도가 조금 심할 뿐 대한민국 기업의 평균적 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문조사 결과 평일 초과근무를 하는 직장인은 전체 응답자의 58.7%였다. 초과근무를 하는 이유로는 ‘일의 절대적 양이 많아서’라는 답변(60.6%·중복응답)이 가장 많았다. 전자업체 연구원인 강모(31) 대리는 “업무 특성상 10월까지 과제를 마무리해야 해 매일 밤 샌다”면서 “졸음이 쏟아지는 밤에는 단순업무 위주로 하고 그나마 정신이 든 낮에 생각하는 업무를 한다”고 말했다. 강씨 동료 중에는 귀갓길에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낸 사람도 있다. 직장인 2명 중 1명은 ‘회사 분위기 때문에 먼저 퇴근할 수 없어 야근한다’(46.9%)고 답했다. 내 일이 다 끝나도 상사가 퇴근을 안 해 눈치 보며 사무실에 앉아 있다는 얘기다. 반면 습관적으로 회사에 남는 ‘자발적 야근’을 한다는 답변도 21.4%나 됐다. 습관적 야근자는 나이가 많을수록 늘어난다. 20대 직장인 중에는 12.2%에 불과했지만, 50대는 29.3%에 달했다. 결국 관리자급 직원들이 승진을 위해 또는 집보다 회사가 편하다는 이유로 자발적 야근을 하니 젊은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남게 된다. 또 습관적 야근자는 남성(응답자 중 28.5%)이 여성(14.1%)보다 많았다. #2명 중 1명 “회사 분위기 때문에 먼저 못 가” 몇 해 전부터 정부가 앞장서 ‘일·가정양립’을 외치다 보니 ‘가정의 날’(특정 요일에는 일찍 퇴근하는 제도) 등을 도입한 회사가 늘었지만 큰 효과가 없다.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집에만 빨리 가라고 하기 때문이다. 4대 은행 중 한 곳인 B은행에서는 한 달에 약 10번씩 직원들이 유연근무제를 신청해 일찍 퇴근하도록 하고 있다. 유연근무일에는 PC를 못 쓰도록 모니터링한다. 하지만 부지점장급 이상 일부 직원은 “더 남아 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꼼수를 쓴다. 이 은행 과장급 직원인 임모(39)씨는 “비정규직 직원 사번으로 로그인하면 컴퓨터를 쓸 수 있다”면서 “남아 일해야 하는 직원들이 하소연하다 보니 노조에서 이런 편법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과로를 하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지칠 수밖에 없다. 설문 응답자의 96.9%가 평소 피로를 느낀다고 답했다. 49.5%는 매우 심하거나 심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또 피로가 업무 수행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본 응답자는 전체의 85.0%나 됐다. 결국 피로하다 보니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퇴근 시간만 늦추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장시간 근무가 과로에 가장 영향을 미친다(35.1%)는 설문 결과는 당연하다. 직장인들은 또 과도한 업무 강도(18.7%), 불규칙한 근무 형태(12.9%), 지나친 실적 압박(10.5%) 등도 과로 원인으로 지목했다. #“과로사 피하기 위해 대충 쉰다” 48% 정부도, 기업도 과로의 근본 원인을 뿌리 뽑지 못하다 보니 과로사와 과로자살이 끊이지 않는다. 국내 대기업의 과장급 직원 서모(34)씨는 “모시던 부장님이 과로로 돌아가셔서 팀 분위기가 침울했다”면서 “차장급 직원들은 ‘우리에게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며 한탄했다”고 말했다. 특히 실적 압박이 상대적으로 심한 금융권에서는 과로자살이 많다. 지점장 시절 전국 지점 실적 평가에서 9차례 연속 1위를 했다는 시중은행의 전직 부행장은 “스트레스가 심해 새벽 3~4시만 되면 잠에서 깼다”면서 “실적이 저조한 달에는 바깥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과로사 소식을 들을 때마다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과로사를 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극히 제한돼 있다. 설문 결과 전체 응답자의 48.3%는 ‘근무 중 알아서 쉰다’고 했다. 회사에 적극적 도움을 구하기보다 눈치껏 업무량 조절을 한다는 얘기다. “퇴직을 고려한다”(20.0%)는 응답자는 5명 중 1명꼴이었다.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15.6%나 됐다. 특별기획팀 dream@seoul.co.kr 서울신문은 기업과 사회가 노동자에 과로를 강요하거나 은폐하는 현실을 집중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독자들이 회사에서 겪은 과로 강요 사례나 과도한 업무량을 감추기 위한 꼼수, 산업재해 승인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 등 부조리가 있었다면 dynamic@seoul.co.kr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 강원래, 싱글맘 오승은에 “남편은?” 오승은 반응은..

    강원래, 싱글맘 오승은에 “남편은?” 오승은 반응은..

    클론 강원래가 배우 오승은에게 실수를 했다.10일 오후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MBN ‘함께하는 자연육아, 한 지붕 네 가족’(이하 ‘한지붕네가족’)에서 강원래는 오승은이 인사를 하자 “누구야?”라고 물었다. 이에 김송은 “너무 미안한데 우리 신랑...연예인 진짜 몰라”라고 양해를 구했고, 오승은은 “괜찮다. 내가 오빠를 아니까”라고 쿨 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강원래는 “어디 나왔어?”라고 물었고, 오승은은 “영화 ‘두사부일체’”라고 답했다. 그러자 강원래는 “아~ 고등학생. 애 낳았어? 남편은?”이라고 물었고, 오승은은 “애가 둘이다. 돌아 왔다...”고 이혼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한 강원래는 “뭘 돌아와?”라고 물었고, 김송은 “싱글맘”이라고 알려줬다. 이에 강원래는 “아 그래... 미안해”, 김송은 “우리 남편 진짜 연예계 소식 몰라서 그래”라고 사과했고, 오승은은 “아니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편 이날 오승은은 “싱글맘 된지는 얼마나 됐어?”라는 김송의 물음에 “이제 3년 조금 넘었다”며 “근데 아직도 고민인 게...아직도 아이들은 (이혼 사실을) 몰라”라고 고백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안정환 “한국보다 못하는 팀 없다…내가 히딩크여도 안와”

    안정환 “한국보다 못하는 팀 없다…내가 히딩크여도 안와”

    모로코와의 평가전에 1-3 완패를 당한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은 경기 후 “스코어도 지고 경기 내용도 졌다. 참패를 인정한다”고 말했다.신 감독은 10일(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엘의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평가전 이후 취재진과 만나 “냉정히 따지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나부터 반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감독은 “선수들이 이 정도로 몸이 무겁고 경기력 떨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시인했다. 이날 대표팀은 공수 양면에서 모두 최악의 경기력을 펼쳤다. 스리백을 들고 나왔던 신 감독은 초반에 일찌감치 두 골을 허용하자 28분 만에 선수들을 교체해 포백으로 전환하며 전술 실패를 인정했다. 신 감독은 “사실 초반에 그렇게 실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선수들이 경기력이 그렇게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러시아전 후 바로 그날 밤 장거리 이동하면서 선수들 몸도 피곤한 데다 전체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평가전 의미 살리려고 했는데 경기력이 너무 떨어져서 나도 깜짝 놀랐다”며 “빠르게 분위기를 전환해야 할 것 같아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이날 경기를 보면서 “한국팀보다 못하는 팀은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히딩크여도 한국 감독 안한다”고 일침했다. 종료 1분여를 앞두고 구자철 선수가 모로코 진영에서 프리킥을 얻은 상황에서 그는 이어서 “선배로서 후배들을 응원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랑의 온도’ 서현진♥양세종, 여행 데이트 포착 “최적 온도”

    ‘사랑의 온도’ 서현진♥양세종, 여행 데이트 포착 “최적 온도”

    ‘사랑의 온도’ 서현진과 양세종이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까.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극본 하명희, 연출 남건, 제작 팬엔터테인먼트)가 오늘(10일) 방송에 앞서 이현수(서현진)와 온정선(양세종)의 여행 데이트 스틸컷을 공개했다. 미소를 한껏 머금은 표정과 사랑이 담긴 포옹 등 보기만 해도 온수커플의 뜨거운 사랑의 온도가 느껴진다. 특히 지난 밤 예고에서 공개된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라는 현수의 고백은 계속해서 엇갈렸던 두 사람이 어떻게 최적 온도를 찾게 되는지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 9일 방송에서 정선은 그동안 표현하지 않았던 상처를 드러내며 현수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이에 현수는 “사랑은 둘이 하는 건데 나만 생각했어”라며 자신이 밀어내는 동안 다가와 줬던 정선에게 미안함을 표하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정선의 방송 출연으로 굿스프는 활기를 띠었지만, 현수는 결국 자신이 쓴 드라마 ‘반칙형사’ 하차를 선언한 극과 극의 상황에서 두 사람은 어떻게 사랑의 온도를 찾게 될까. 오늘 방송에서 정선은 현수와 황보경(이초희)의 여행에 짐꾼을 자처해 함께 여수로 향한다. 눈치 빠른 경의 도움으로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는 현수와 정선. 5년 전, 벌교 데이트를 하며 둘만의 추억을 만들었던 여수에서 또 하나의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 예정이다. 관계자는 “오늘(10일) 밤, 5년 동안이나 서로 다른 이유로 엇갈렸던 현수와 정선이 5년 전처럼 함께 여행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며 “한 명이 다가가면 다른 한 명이 후퇴했던, 지독하게도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지난 시간과 달리, 길고 긴 고민을 끝낸 현수와 정선이 동시에 서로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기대해달라”고 전했다. ‘사랑의 온도’는 오늘(10일) 밤 10시 방송된다. 사진제공 = 팬엔터테인먼트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경찰 “‘어금니 아빠’, 여중생 살해 혐의 시인…딸, 시신유기 공범”

    경찰 “‘어금니 아빠’, 여중생 살해 혐의 시인…딸, 시신유기 공범”

    중학생인 딸의 친구를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은 ‘어금니 아빠’ 이모(35)씨가 살해 사실을 시인했다.서울 중랑경찰서는 10일 “이씨가 딸 친구 A양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실을 시인했다”며 “범행 동기와 살해 방법에 대해서는 진술을 회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 딸 B양은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건네고 시신을 내다 버리는 데 동참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이씨는 A양 시신을 내다 버린 사실은 인정했지만 A양을 살해하지는 않았다면서 살인 혐의를 부인해 왔다. 그러나 이날 이뤄진 경찰 추가 조사에서 경찰은 이씨의 혐의 인정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딸은 집으로 찾아온 A양에게 수면제를 건넸고, A양이 숨진 뒤에는 이씨와 함께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 딸은 조사에서 “A양에게 ‘집에서 영화를 보고 놀자’고 해 집으로 데려와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하고 나가서 다른 친구들과 놀다 집에 들어오니 A양이 죽어 있었다”며 “아버지로부터 ‘내가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A양 혈액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를 회신 받았다.이씨 딸과 A양은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과거에도 이씨 집에 여러 차례 놀러온 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사망한 부인이 생전 좋아했던 아이라는 이유로 A양을 부르라고 딸에게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씨 부녀가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것을 사건 하루 전에 모의했다고 밝혔다. 이씨 딸은 A양이 집으로 찾아오자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건네 마시게 했다. 수면제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이씨가 집안에 다수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경찰은 이씨 딸이 살인 행위가 이어질 것을 알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버지가 시킨 행동을 꼭 해야 했는지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씨 딸은 이후 A양 시신을 검정 여행 가방에 담아 이씨와 함께 차량에 싣고 강원도 영월 야산에 버렸다고 경찰에 자백했다. 이씨는 A양을 살해한 뒤 형과 지인 박모(구속)씨를 만났고, 박씨 차량을 이용한 것 외에는 특별히 다른 사람을 만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는 이날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하면서 “딸에게 미안하다”고 흐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또 숨진 A양 시신 부검 결과 성적 학대를 받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씨에게서 그와 관련한 성적 취향도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 범행을 도운 혐의(사체유기 등)로 이씨 딸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씨를 상대로 범행 동기와 수법 등을 추가 조사할 계획이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 3년 주말없이 일했는데 해고 압박… 남편은 추운 겨울 스러졌다

    [단독] 3년 주말없이 일했는데 해고 압박… 남편은 추운 겨울 스러졌다

    1911명. 지난해 업무상 과로로 쓰러지거나 숨져 국가에 산업재해 인정을 요청한 노동자 수다. 그들의 죽음 뒤에는 연평균 2069시간에 달하는 우리 사회의 노동문화가 숨어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2016년 기준 평균 1764시간) 중 최고 수준이다. 노동자의 마지막 에너지까지 요구하는 기업문화와 실적, 승진, 명예퇴직 등을 둘러싼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도 맞물려 있다. 우리 직장인은 어떻게 죽음으로 내몰리고, 가족을 잃은 유족들을 나락으로 몰아갈까. 서울신문은 과로 문제 취재 중 만난 이서경(49·가명)씨로부터 들은 남편 김인환(사망 당시 51·가명)씨의 사연을 재구성했다.“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지 왜 다녔어요?” 잔인한 한마디가 끝내 서경씨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남편의 과로사를 인정받으려 OO지역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찾은 자리였다. 판정위원이었던 한 여성 외과 전문의가 무표정한 얼굴로 무심하게 내뱉었다. 서경씨는 생각했다. ‘나이 쉰에 한창 자라는 아들이 있는 아버지가 힘들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그가 만난 산업재해 판정위원들의 감수성은 딱 그 정도였다. 국내 과로사 인정 비율이 20%대에 불과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경씨의 가정에 비극이 움튼 건 약 2년 전, 2016년 1월 어느 겨울이었다. 지방 건설사에 다니던 인환씨는 20평 남짓한 사택 안방의 담요 위에 홀로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심근경색. 사망한 지 꼬박 하루가 지난 뒤였다. “주말부부라 남편이 보통 토요일 오후에 서울 집에 왔거든요. 그날은 밤늦도록 오지 않아서 다음날 실종신고를 했죠. 그런데….” 당시를 떠올리던 서경씨가 말을 잊지 못했다.회사 동료들이 기억하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은 금요일 회식 뒤 자정쯤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아타던 장면이었다. 빈소에서 만난 남편 동료들은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부장님이 너무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이건 명백한 업무상 재해예요.” 회사 임원은 장지까지 쫓아와 “내가 뭐든 해 줄 테니 산재 신청을 하라”고까지 했다. 도대체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서경씨가 기억하는 남편은 유능한 영업사원이었다. “서울의 큰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2010년쯤 그 회사로 스카우트됐어요. 고급 아파트를 분양하는 일을 했죠.” 남편은 사고 당시 수백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었다. 남편이 이상 징후를 보인 건 사고 몇 주 전부터였다. 주말이면 아들과 붙어 있는 게 일이던 남편이 방에만 틀어박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불경기다 보니 분양 계약을 맺었다가 취소하겠다는 신청이 많아졌어. 그게 제법 쌓였는데, 소송까지 걸었더라고.” 남편이 고민을 털어놨다. 그런 남편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일이 터졌다. 해고 압박을 받은 것이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오너가 조만간 사업 분야를 조정하겠다고 했대요.” 남편은 그때부터 아들에게 “아빠가 12월부터 실업자 될 것 같아”라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다. 부장이었던 남편에게는 10명 남짓한 부하 직원들도 걱정이었다. 대부분 40대 후반, 50대 초반. 부양할 아이들이 있었고 다른 일터를 구하기엔 애매한 나이였다. 사방의 압박, 결국 남편은 벼랑 끝에서 버티지 못했다. 산재 신청을 결심한 서경씨는 노무사를 찾았다. 그리고 뜻밖의 조언을 들었다. “사망하고 바로 산재 신청을 하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좋게 보지 않는대요. 돈만 밝힌다고 생각한다나. 그게 우리나라 정서래요.” 그래서 석 달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잘못이었다. 제 일처럼 뜨겁게 애도하던 회사 동료들은 그사이 싸늘히 식어 있었다. “회장이 산재 신청을 너무 싫어했대요. 과로사는 중대재해니까 회사 부담도 커질 테고….” 직원들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직장은 소중했다. 현행법상 과로를 인정받으려면 사망 직전 주당 최소 60시간씩 일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산재 입증을 위해서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서류를 얻어야 한다. 유족이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서경씨는 편지까지 써 가며 회사로부터 급여 내역서 등 최소한의 자료를 얻었지만 증거로 삼기 어려웠다. 남편은 연장·야간근로를 자주 했지만 회사가 건넨 서류에는 시간외수당이 따로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임금을 뭉뚱그려 주는 포괄임금제 탓이다. “남편은 영업직이라 생산직이나 공무원과 달리 출퇴근기록부가 없었습니다. 보통 7시에 출근해 6시에 사무실에서 나왔는데, 영업이란 게 퇴근 이후에도 업무가 진행되잖아요. 고객 만나고, 언제든 전화 오면 일해야 하고. 모델하우스에 가자는 고객이 있으면 주말이 없어졌어요. 이런 건 서류에 기록되지도 않습니다.” 회사를 옮긴 2010년부터 3년간은 주말에도 일이 많아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 왔지만 산재 심사 때는 최근 3년 기록만 증거로 인정됐다. 서경씨는 반년 동안 어렵게 모아 만든 서류 70여장을 들고 복지공단에 산재보험의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질병판정위가 열렸다. 판정위원들은 서류에 적힌 근로시간 외에 남편이 겪은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대신 남편의 심장이 멈춘 게 과로 때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데는 놀라울 만큼 집요했다. 복지공단 측은 남편의 건강검진부를 뒤져 ‘10년 동안 담배를 하루 한 갑 피웠다’는 문진기록까지 증거로 들이밀었다. 1차 심사에서 승인 여부를 판정받지 못했다. 다수결로 결정하는 구조인데 의견이 동수로 갈렸다. 과로사 승인을 받지 못하면 행정소송도 벌일 계획이지만 현행 법체계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질 확률이 99%”라는 노무사의 얘기에도 버티며 이 정도까지 싸우고 있으니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아주 조금 덜어지기는 했다. 서경씨는 아직 ‘한부모가정’ 신청을 하지 못했다. 아들이 아빠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그렇게 보냈지만 서경씨는 스스로 ‘더 밝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가오는 걸 어려워한다”고 했다. 왜 이토록 모진 싸움을 하는지 물었다. “너무 불쌍하잖아요. 누구보다도 성실했던 그이가 그냥 죽은 게 아니라는 것만큼은 꼭 기록에 남기고 싶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특별기획팀 dynamic@seoul.co.kr *유족의 요청으로 가명을 쓰고, 회사명은 익명 처리했습니다.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기업과 사회가 노동자에 과로를 강요하거나 은폐하는 현실을 집중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독자들이 회사에서 겪은 과로 강요 사례나 과도한 업무량을 감추기 위한 꼼수, 산업재해 승인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 등 부조리가 있었다면 dynamic@seoul.co.kr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 경찰, 여중생 딸 친구 살해한 30대 남성 영장 신청

    경찰, 여중생 딸 친구 살해한 30대 남성 영장 신청

    경찰이 여중생 딸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30대 남성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서울 중랑경찰서는 살인·사체유기 혐의로 이모(35)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딸의 친구인 중학생 A(14) 양을 살해하고 시신을 강원도 영월의 야산에 내다 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A 양 부모로부터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A 양의 행적을 확인하던 중 이 씨가 범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경찰은 이어 지난 5일 이씨를 서울 도봉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검거했다. A양의 시신은 강원 영월의 야산에서 발견됐다. 검거 당시 이 씨와 딸은 수면제를 과다복용한 상태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두 사람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이 씨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라며 “이 씨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범행 동기 등을 자세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씨는 자신과 같은 희소병을 앓는 딸을 돌보면서 주변 불우이웃을 돕는 등 선행으로 과거 언론에 수차례 보도된 인물이다. 이씨가 평소 운영하던 개인 홈페이지에는 딸에게 미안하고 아내를 따라가겠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씨의 아내는 몇 달 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30대 남성 검거…여중생 딸 친구 살해 후 야산에 유기한 혐의

    30대 남성 검거…여중생 딸 친구 살해 후 야산에 유기한 혐의

    10대 여중생을 살해한 뒤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혐의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런데 이 범행의 피해자는 다름 아닌 용의자 딸의 친구였다.서울 중랑경찰서는 살인·사체유기 혐의로 이모(35)씨를 검거해 조사 중이라고 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자신의 딸의 친구인 A(14)양을 살해한 뒤 시신을 강원 영월의 한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A양의 부모로부터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A씨의 마지막 행적을 확인한 결과 이씨에게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경찰은 A양이 지난달 30일 정오쯤 이씨의 집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은 사실을 폐쇄회로(CC)TV로 확인했다. 다음날 이씨가 딸과 함께 여행용 가방을 들고 강원 정선의 한 모텔에 투숙한 사실도 확인했다. 경찰은 이씨를 전날 밤 10시 20분쯤 서울 도봉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체포한 뒤 이날 오전 9시쯤 영월에서 A양의 시신을 찾았다. 검거 당시 이씨와 그의 딸은 수면제를 과다복용한 상태였다. 이씨가 평소 운영하던 개인 홈페이지에는 ‘딸에게 미안하고 아내를 따라가겠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씨의 아내는 몇 달 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가 체포된 직후 글이 올라온 점으로 미뤄 이씨의 형이 대신 글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씨와 그의 딸을 상대로 사건 경위와 범행 동기 등을 조사 중이며,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한편 이씨는 자신과 같은 희소병을 앓는 딸을 돌보면서 주변 불우이웃을 돕는 등 선행으로 과거 언론에 수차례 보도되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개불 처음 본 러시아 친구들의 반응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개불 처음 본 러시아 친구들의 반응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러시아 친구들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5일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측은 “랍스터...너무 불쌍해ㅠㅠ(소녀감성)”라는 제목의 영상을 선공개했다. 영상에는 러시아 친구들이 수산시장을 방문해 해산물을 사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들은 수산시장에 놓인 해산물을 보더니 “불쌍하다. 잘 살고 있다가 먹히는 거지 않냐”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이내 먹을 것을 구경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러시아 친구들은 시장 아주머니가 개불을 보여주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결국 산낙지, 개불, 전복, 랍스터를 구입했다. 손질되기 직전의 랍스터를 본 친구들은 “너희는 참 운이 없구나. 미안하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또 한 번 고백했다. 한편,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이날 오후 8시 30분에 방송된다. 사진=네이버TV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서인국 심경 “당당히 현역 입대 하고 싶었지만...” [전문]

    서인국 심경 “당당히 현역 입대 하고 싶었지만...” [전문]

    가수 겸 배우 서인국이 군입대와 관련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4일 서인국은 자신의 팬카페에 군면제와 관련된 장문의 심경글을 올렸다. 서인국은 “입대 연기는 했어도 재검 신청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입대시 어떠한 자료도 들고 가지 않았다”며 “다만 첫 면담 때 아픈 사람은 손을 들라는 소리에 다리가 조금 불편하다고 말씀드렸다”고 당시 설명했다. 그는 이것 때문에 병원을 가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앞서 서인국은 지난 3월 28일 경기도 연천군 5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입소했다. 하지만 사흘 만인 31일 좌측 발목 거골의 골연골병변으로 귀가 명령을 받았다. 이후 그는 재검사와 추가 정말검사를 통해 좌측 발목 거골의 골연골병변(박리성 골연골염)으로 인한 5급 전시근로역 병역처분을 받았다. 서인국은 “당당하게 현역으로 입대하고 싶었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군 훈련을 받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돼 내보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하셨다”며 사실상 면제를 받게 된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팬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도 덧붙이며 심경글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서인국 심경 고백 전문. 군 입대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우선 입대연기신청을 했었어요. 일에 대한 욕심이 있기도 했지만 아팠던 곳이 이미 수술 권유를 받은터라 통증완화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군대를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입대연기는 했어도 재검신청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입대시 어떠한 자료도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첫면담 때 소대장님께서 아픈 곳이 있으면 미리 말하라고 하셨고 검사받는 날 아픈 사람 손들라는 소리에 다리가 조금 불편하다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 때문에 병원으로 가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병원에 가자마자 엑스레이부터 먼저 찍게 되었고 그 다음 상담을 받았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제가 군대에서 나가게 될 것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요. 분명한 저의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배우 그리고 가수로써 당당하게 현역으로 입대하고 싶었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나온 뒤에도 병원 측에 계속 군대에 남게 해달라고 요청 드렸습니다. 제가 이대로 나가게 되면 저 역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기에 어떻게든 남고 싶었어요. 하지만 병원에서는 군 훈련을 받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어 내보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제가 팬 분들께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게 모든 것이 변명 같고 구차해 보일까봐 겁이 났어요.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는 부분들을 보고 저 역시도 놀랐고 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입장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확산되고 퍼지는 걸 보고 저를 아껴주고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이 마음 아파하실까 진실을 꼭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때문에 속상한 것도 너무 미안해요. 저에 관련해서 좋은 기억만 갖게 하고 싶었는데 그 마음에 상처 받았을까봐 혹은 마음이 아픔으로 인해 닳았을까봐 저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어떻게 하면 그 시간들을 위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할게요. 앞으로 좋은 일들만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우리 팬분들이 주신 마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의 진심이 여러분께 꼭 닿길 바라며 남은 연휴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래요. 인국이가. ps. 많이 아팠다면 정말 미안해요. 아픈 마음 꼭 아물게 만들께요. 사진제공=비에스컴퍼니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미우새’ 이상민, 채권자 초대 “결혼하면 30% 빚 탕감” 사유리와?

    ‘미우새’ 이상민, 채권자 초대 “결혼하면 30% 빚 탕감” 사유리와?

    이상민이 채권자들을 초대해 명절음식을 대접했다.1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안정환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출장 전기 기사가 돌아간 뒤, 이상민은 채권자들에게 받은 추석 선물을 정리했다. 전복, 한우, 산삼까지 화려한 추석 선물에 이상민은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상민은 럭셔리한 명절 음식을 손수 만들었고, 침샘을 자극하는 산삼육전말이에 출연진들은 시선을 빼앗겼다. 완성된 산삼육전말이를 맛본 이상민은 “우리나라에 이런 메뉴가 있나?”라며 틈새 허세로 웃음을 안겼다. 이어 전복내장버터구이를 요리했다. 곧이어 양손 가득 선물을 든 의문의 손님들이 도착했고, 이상민은 손님들을 격하게 환영했다. 채권자들은 이상민의 건강을 걱정했고, “방송도 줄어든 것 같아요”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상민은 서둘러 준비한 명절 음식들을 차렸다. 거한 상차림에 채권자들은 “목에 안 넘어 갈 것 같다. 미안하다”고 반응했다. 이날 한 채권자는 “이상민이 결혼하면 채권자들에게 말해 빚을 30% 탕감 해줘야한다”고 말했고, 이에 어머니들은 “사유리랑 결혼하면 되겠네”라고 응수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달 전국 6만 5000가구 아파트 분양

    이달에 전국에서 아파트 6만 5000가구가 분양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달 전국에서 분양 예정인 아파트는 6만 4570가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달(7만 6384가구)보다 18% 감소했다. 추석 연휴가 길어 분양 시기를 조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순위 청약 자격이 강화된 이후 사실상 처음 분양되는 아파트다. 향후 분양 시장을 전망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청약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급량이 가장 많은 곳은 수도권이다. 서울과 경기에서 재개발·재건축 등 대규모 아파트가 많아 전국 분양 예정 물량의 63%(4만 696가구)를 차지한다. 서울은 서대문구 남가좌동 ‘래미안DMC루센티아’(가재울뉴타운5구역재개발) 997가구,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9구역 힐스테이트’ 1464가구,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고덕주공3단지재건축) 4066가구 등 1만 3548가구가 분양된다. 경기도에서는 2만 6593가구, 인천에서는 555가구가 분양된다. 광명시, 의왕시에서는 새 아파트가 분양된다. 지방은 부산에 분양 아파트가 몰려 있다. 부산진구 전포동 ‘서면아이파크’, 수영구 광안동 ‘광안자이’ 등 7622가구가 공급된다. 이 밖에 광주 4866가구, 경남 3583가구, 충남 2505가구, 전남 2168가구, 대구 1722가구, 전북 818가구, 충북 380가구, 울산 210가구가 분양된다. ‘8·2 부동산 대책’에 따라 개편된 청약제도가 이달부터 본격 적용되면서 청약 시장 상황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실수요자 위주의 청약으로 청약 경쟁률이 낮아지고, 무주택자는 청약 당첨 기회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점수가 높은 청약 통장 가입자들은 입지가 빼어난 재개발·재건축 일반분양 아파트에 청약해도 당첨 확률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백성들이 굶주리는 때인데 홀로 추석 잔치하기 미안하다”

    “백성들이 굶주리는 때인데 홀로 추석 잔치하기 미안하다”

    “상왕(정종)이 추석제를 건원릉(태조의 능)에서 행하였다. 임금(태종)이 상왕을 동교(東郊)에서 맞아 잔치를 베풀고, 대소신료에게 점심 식사를 내려 주었다. 잔치가 끝나자 두 임금은 매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고, 기생과 풍악이 앞에서 인도하였다. 병조판서 김한로, 광록경 권영균에게 각각 매 1련(連)을 주었다.”1417년(태종 17년) 음력 8월 12일 당시 상왕이었던 정종이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능에서 제사를 지내고 동생이자 국왕인 태종과 잔치를 즐겼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다. 사흘 후인 8월 15일 태종도 건원릉에 나아가 추석제를 올렸다. 조선 왕실의 추석나기는 오늘날과 비슷하다. 선왕의 능과 위폐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낸 뒤 잔치를 열어 왕족, 관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다. 추석제는 조선의 기본 예법인 ‘국조오례의’에 규정된 공식 의례는 아니었지만, 왕실 차원에서 국왕이 조상에 대한 효를 다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로서 의미가 있었다. 한형주 경희대 교수는 “추석제는 종묘제, 사직제와 같이 국가 차원에서 지내는 공식 제사는 아니었지만, 국왕이 직접 참석할 경우 공식 제사보다 규모가 더 커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특히 세종이 추석제를 중시한 것으로 나타난다. 1431년(세종 13년) 음력 8월 10일 실록 기사에는 허조가 세종에게 “헌릉(태종의 능)에 8월 14일에 친히 나가 제향하시고, 또 15일에 대신을 보내어 행하게 하시면, 추석은 한 번인데 두 번 제향함은 모독함이 없겠습니까”라며 세종의 처사를 만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세종은 “문소전(태조의 사당)과 헌릉에 내가 추석 제사를 친히 행하고자 하나, 하루에 두 곳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13일은 문소전에 제사하고, 14일에는 헌릉에 제사하는 것이며, 15일은 정작 명일인즉 어찌 이미 제사를 행하였다 하여 그대로 빠트릴 수야 있겠느냐. 이러므로 두 번 제사하는 것이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추석제 도중 실수를 해서 감옥에 갇힌 예관도 있었다. 1497년(연산군 3년) 음력 8월 15일 예관 윤은보는 문소전에서 신위판을 받들다가 발을 헛딛는 바람에 땅에 떨어트려 파손시켰다. 이로 인해 윤은보는 의금부에 하옥돼 국문을 받았으며, 곤장을 맞고 유배를 가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윤은보는 이듬해 풀려났으며 이후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효를 중시하던 조선 왕실은 추석제 이외에도 생존해 있는 왕실 어르신을 위해 축하연을 열기도 했다. 1518년(중종 13년) 음력 8월 12일 당시 우의정 안당은 중종에게 “8월 15일은 곧 추석이니 속칭 삼명일(三名日)입니다. 삼명일인 정조(설날)·단오·추석에는 어버이가 있는 사대부는 술상을 올려 어버이를 기쁘게 하고, 어버이가 없는 사람은 묘소를 찾아서 제사를 지냅니다. 지금 상(임금)께서 자전(慈殿)이 계시는데, 매양 재변을 두려워하고 또 자전이 금지하시어, 명일(名日)이 되어도 풍정(연회)을 올리는 예식을 거행하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추석에 자전께 잔치상을 올리는 것이 불가하지 않습니다”라고 진언한다. 중종은 이를 허락한다. 직전 해인 1517년 음력 8월 3일에는 중종이 추석을 맞아 어머니 자순대비를 위해 성대한 연회를 이틀에 걸쳐 시행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조선 왕실은 조상을 위한 제사와 연회를 극진히 행하면서 효의 의무를 다했지만 그렇다고 백성을 돌봐야 할 공적 의무를 방기하지 않았다. 1548년(명종 3년) 음력 8월 6일 의례를 담당하는 부서인 예조가 명종에게 “진풍정(대비를 위한 연회)을 오랫동안 폐지하여 매우 미안합니다. 오는 추석에는 거행하소서”라고 진언했다. 하지만 명종은 “자전(慈殿)께 의견을 여쭈었더니 ‘지금은 재변이 잇달아 일어나고 백성들이 굶주리는 때인데 홀로 잔치를 받기가 미안하다’ 하시기에 따르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한형주 교수는 “조선의 국가 이념 측면에서 왕은 왕실 뿐만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 존재한다”며 “흉년이 든다든지 자연재해가 발생해 백성이 어려움을 겪을 경우 왕실은 매번 잔치를 축소하거나 폐지했다”고 설명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명불허전’ 김남길X김아중, 애틋한 재회 후 이별 결심 ‘시청자 울린 눈물 엔딩’

    ‘명불허전’ 김남길X김아중, 애틋한 재회 후 이별 결심 ‘시청자 울린 눈물 엔딩’

    조선왕복 메디활극 ‘명불허전’ 김남길과 김아중이 애틋한 재회를 했지만 끝내 이별을 결심했다.30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명불허전’(연출 홍종찬, 극본 김은희, 제작 본팩토리) 15회에서 허임(김남길 분)과 최연경(김아중 분)이 달하고 애틋한 데이트를 끝으로 이별을 고하는 ‘맴찢’ 엔딩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이날 조선으로 돌아간 허임과 서울에 남은 최연경은 각자의 위기를 맞았다. 허임은 가까스로 연이(신린아 분)를 만났다. 연이의 병이 마음의 상처 때문에 더 커진 사실을 알게 된 허임은 온 정성을 다해 연이를 치료했다. 최연경은 과거의 과오 때문에 수술을 거부하는 최천술을 진심을 다해 설득하고 수술까지 성공적으로 집도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위기를 극복한 허임과 최연경이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함과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연이의 치료를 끝낸 허임은 다시 서울, 최연경의 곁으로 돌아왔다. 허임을 본 최연경은 단숨에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애타는 헤어짐 끝에 재회한 두 사람은 데이트를 즐기며 평범한 연인의 모습으로 달달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허임은 망설임 끝에 자신의 결심을 전하기 위해 “미안하오”라는 말로 입을 뗐다. 허임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게 된 최연경은 “고마워요. 돌아와 줘서. 마지막 인사 할 수 있게 해줘서.”라고 말하며 애써 미소 지어보였다. “이제 돌아가요. 당신이 있어야 되는 곳으로.”라며 먼저 이별 인사를 전하는 최연경의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함으로 눈물의 엔딩을 선사했다. 최종회까지 단 1회만을 남기고 펼쳐진 허임과 최연경의 애틋한 감정들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재회는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만큼 애틋했다. 달콤한 데이트가 시청자들의 설렘을 자극하는 동시에 이별을 직감한 두 사람의 슬픈 눈빛이 안타까움을 유발했다. 허임은 위기를 맞은 조선에 꼭 필요한 의원이었고 최연경은 서울이 가장 어울리는 의사였다. 각각의 위치에 두 사람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있었고, 진짜 의원인 두 사람은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에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애절할 수밖에 없었다. ‘단짠’을 오가며 매회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김남길, 김아중의 케미는 종영을 앞두고 정점을 찍었다. 특히 15회에서 보여준 허임과 최연경의 데이트는 달달함 속에 서로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표현해야만 했다. 이미 서울에 돌아올 때부터 조선에 남기로 결심한 허임의 아픈 마음을 깊이 있는 눈빛 안에 담아낸 김남길과 허임의 결정을 예감하고 먼저 결단을 내린 최연경의 절절한 속내를 섬세하게 포착한 김아중의 연기는 몰입감을 고조시켰다. 침통의 비밀도 모두 드러났다. 허준은 “그 침통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침통의 도움으로 새로이 의원의 길을 걸어갈 기회를 얻었다”며 “의원이 귀한 시대에 하늘이 내린 의원을 지키기 위해서 아닐까 짐작한다”고 설명했다. 침술은 가난한 민초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의술이었고, 약재 조달이 어려운 전란에서 허임은 조선에 꼭 필요한 의원이었다. 최연경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떠나는 허임에게 허준은 “오면 다시 갈 수 없음을 아느냐”고 물었고 허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국 조선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진정한 의원 허임의 결심이 드러난 가운데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 침통이 가진 조선왕복의 힘이 언제까지 발휘될지도 결말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편,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최고조에 이른 대망의 ‘명불허전’ 최종회는 오늘(1일) 밤 9시 tvN에서 방송된다. 사진=tvN <명불허전> 15회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100초 인터뷰]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추석을 반납한 소녀상 지킴이들

    [100초 인터뷰]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추석을 반납한 소녀상 지킴이들

    “끝까지 지켜야죠…” 민족 대명절인 추석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추석은 장장 10일이다. 누군가는 고향으로, 누군가는 여행지로 떠난다. 그 와중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대신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학생들이 있다. 바로 소녀상 지킴이들이다. 30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 인도에 마련된 비닐 천막에서 만난 박지연(전북대학교 4학년, 25)씨는 추석이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말한다. “소녀상을 24시간 지키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꼭 필요해요. (이번에는) 제가 한다고 했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들은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틀 뒤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부터 무기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현재 642일(2017년 10월 1일 기준)째다. 박씨는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한다”고 명확한 목적을 밝혔다. 힘든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박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조금씩 이 문제를 잊는 것 같아서다.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줄어들고, 언론의 관심도 멀어졌어요. 하지만 ‘힘내라, 응원한다’고 한 말씀 해주고 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의 응원을 받으면 쳐졌던 어깨가 다시 올라가요. 힘이 나요.”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20대 대학생들이다. 집에서의 걱정은 당연지사. 박씨도 집에 걱정을 끼치는 자식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추석연휴 10일 중 8일간 소녀상 곁을 지킨다. 박씨는 “(부모님께서는) 추석에는 내려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죠…”라고 답한 뒤 미소를 지을 뿐이다.지난 8월 28일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90) 할머니에 이어 같은 달 30일 이 모(93) 할머니가 별세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5명에 불과하다. 박씨는 “할머니 중 제일 나이가 어린 분이 90세라고 들었어요. 할머니들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분들과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이어 박씨는 한일합의 폐기가 되는 그날까지 소녀상 곁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할머니들이 수요집회에 오실 때마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할머니들을 대신해 그분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할머니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박지연씨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당당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는 소녀상 지킴이들을 보고 같은 이야기를 한다. “당신들 역시 아름답다”고.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김경준, 칼 갈았다 “BBK 공범 이명박 수사해달라”

    ‘그것이 알고싶다’ 김경준, 칼 갈았다 “BBK 공범 이명박 수사해달라”

    ‘그것이 알고 싶다’는 30일 ‘BBK 투자금 진실게임’ 편을 통해 사라진 384억 원의 행방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집중 조명했다.익명의 제보자가 BBK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막이 적혀져 있는 편지를 제작진에 전달했다. BBK 사건은 김경준이 BBK라는 투자자문 회사를 설립해 384억에 달하는 돈을 횡령했던 사건으로 2007년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사건에 관여되어 있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주가 조작으로 5000명이 넘는 소액 주주들을 피해자로 만들게 한 역대 최악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손꼽힌다. 당시 김경준의 부인은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글로 된 계약서는 이명박 후보가 BBK를 소유한 것을 증명하는 계약서”라고 밝혔다. 이에 이명박 측은 도장을 도용한 허위문서라고 반박했다. 김경준이 국내로 송환된 지 불과 20일 만에 경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김경준은 BBK는 본인이 100% 지분을 가진 회사이고 이명박 후보는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진술을 번복하며 단독 범행임을 자백했다. 이에 이명박 후보를 향한 주가조작 혐의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김경준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났고 당시 이명박 후보는 높은 지지율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이에 대해 유원일 전 국회의원은 “(김경준이) 누나하고 아내를 소환하겠다, 강제 구인하겠다, 그런 협박을 하니까 정권의 힘에 저항할 수 없어서 거짓으로 자백을 했다더라. 많은 사람에게 실망감을 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더라”라고 전했다. 실제로 수사 결과 발표 직후 검찰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는 김경준의 메모가 공개되면서 BBK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진실게임에서 피해를 본 사람은 김경준이 아니라 옵셔널벤처스 소액투자자들이었다. BBK의 후신인 옵셔널벤처스는 이명박 전 현대건설 사장이 회장으로 있단 소문이 돌자 많은 투자자가 주목했던 투자처였다. 노후자금과 퇴직금, 대학교 등록금을 잃은 소액주주들은 이 전 대통령, 김경준의 진흙탕 싸움 사이에서 잊혀져갔다. 옵셔널벤처스는 상장폐지 후 새로운 경영진을 꾸려 옵셔널캐피탈로 개명했다. 소액주주들로부터 지분을 양도받아 미국으로 도주한 김경준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됐다. 그리고 지난 2011년 2월 LA 연방법원은 김경준에게 371억 원을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7년을 끌어온 재판은 마무리가 됐지만 옵셔널캐피탈 측이 받아야 할 김경준의 스위스계좌 140억 원이 DAS라는 기업으로 넘어갔다. BBK에 투자한 자금 140억을 회수하기 위해 김경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던 DAS가 공교롭게도 옵셔널캐피탈의 승소판결 직전 김경준으로부터 140억을 먼저 받아간 것이다. DAS 측은 소송 과정에서 정당한 합의 조정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했다고 설명하지만, 김경준은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DAS는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회사로, BBK에 이례적으로 190억 원이라는 가장 큰 금액을 투자했다. 최근 민간기업 DAS가 140억 원을 회수하는 과정에 국가 공권력이 작동했다는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DAS의 소송을 관리하는 행정관이 있었고, LA 총영사관도 그 과정에 개입되어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주진우 기자는 “당시 다스에서 김경준의 돈 140억 원을 돌려받기 위해서 청와대, 법무부, 외교부 등이 움직였다는 증거와 다스 내부의 제보가 있었다”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실제로 청와대 민정수석관이 개입했다는 서류가 공개되기도 했다. 제작진을 만난 김경준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제기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혐의 없음 불기소 처리됐기 때문에 법원에 온 적이 없다. 제가 유죄면 이명박이 공범이니까 그 수사를 해달라”고 강조했다. 시청자들은 “김경준이 칼을 갈고 나온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 떳떳하시다면 조사 받으셔서 진실 밝혀주길”, “‘그것이 알고싶다’ 마지막 멘트 너무 진실이라 소름”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것이 알고싶다’ 측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식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답해야 할 차례”라며 방송을 맺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이시영·김기방·정겨운·라이머, 오늘 30일 결혼 ‘무려 네 쌍의 부부 탄생’

    이시영·김기방·정겨운·라이머, 오늘 30일 결혼 ‘무려 네 쌍의 부부 탄생’

    배우 이시영(35)과 김기방(36), 정겨운(35), 가수 라이머(40)까지 무려 네 커플이 오늘(30일) 나란히 결혼식을 올린다.이시영은 30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애스톤하우스에서 양가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업가 조승현 대표와 결혼식을 올린다. 앞서 이시영은 지난 7월 “올 가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갑자기 예식 일정을 잡은 이유는 현재 4개월을 바라보는 14주차 예비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결혼과 임신 소식을 함께 알린 바 있다. 현재 이시영은 임신 7개월로, 최근에는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는 등 건강한 모습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김기방은 2년 열애 끝에 4살 연하의 뷰티브랜드 그라운드플랜 김희경 부대표와 부부가 된다. 결혼 발표 당시 예비신부와 만남을 “복덩이가 굴러왔다”고 표현한 김기방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SNS를 통해 달달한 일상을 공개해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라이머는 전 SBS 기자이자 현재 통역가와 프리랜서 MC로 활약 중인 안현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두 사람은 5개월의 열애 후 결혼을 결심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라이머는 결혼이 알려진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 이제 하나가 되려 합니다. 부족한 저를 아껴주고 매 순간 저에게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축복해주세요. 감사합니다”라며 예비신부 안현모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안현모도 “이 세상에 없을 줄 알았던, 감히 꿈꾸기조차 양심에 찔렸던 꿈에 그리던 반쪽. 그럼에도 거친 삶으로 나를 초대해 미안하다 말하는 남자. 기꺼이 그와 한 배에 오르겠습니다”라는 글로 마음을 전했다.정겨운은 30일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미모의 음대생과 비공개로 결혼식을 진행한다. 당시 소속사 C9엔터테인먼트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정겨운 씨는 평범한 여성과 좋은 감정을 가지고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라며 “정겨운 씨는 배우로서 좋은 작품과 좋은 연기로 여러분 앞에 계속해서 인사드릴테니 앞으로의 활동에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라고 전한 바 있다. 앞서 정겨운은 2014년 4월 웹디자이너와 결혼한 후 지난 해 5월 이혼한 바 있다. 정겨운은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태원 군, 자넨 대학생이니 중학생인 우리 아들 잘 부탁하네”

    “정태원 군, 자넨 대학생이니 중학생인 우리 아들 잘 부탁하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6·25 전쟁 발발과 심선택 선생님 나(정태원)는 일제 때 인천창영국민학교를 33회로 졸업하고,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를 졸업한 후 성균관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인천상업중학교에 다닐 때 야구선수였으며 6학년 때는 주장을 했었고 그때 야구부 코치는 해병 소위로 9·15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셨던 심 선택 선생님(본 참전기 3회 참고)이셨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인천에 북한군이 쳐들어왔다. 얼마 지나 “인민의용군에 지원하라”면서 길에서 닥치는 대로 젊은이들을 잡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의용군으로 끌려가면 개죽음당한다는 걸 들었기 때문에 연수동 작은 할아버지 댁으로 도망쳐 숨었다. 그 해 지옥 같은 여름을 인민군 치하에서 보내고서 9월이 왔다.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민군이 물러나고 인천은 다시 자유를 찾았다. 우익학생들을 주축으로 인천학도의용대가 결성되었는데 대원들은 중학교 학생들이었고 간부들은 대부분 대학생으로, 연대장이 이계송(고려대 2학년)이었는데 이계송은 나하고는 인천상업중학교 동기동창이었다. 인천학도의용대 활동과 나와의 인연 나는 대학생이었고 인천상업중학교 동기동창생 이계송이 대장으로 있어서 인천학도의용대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가 단체로 남하한다는 소식이 내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인민군 치하의 지옥 같은 생활이 기억나 또다시 인민군이 들어오면 더 이상 갈 곳도 없어서 인천학도의용대가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교)를 향하여 남하할 때 같이 남하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인천학도의용대 활동을 하지 않았던 중학생들도 많이 있었는데,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하려는 내 결심을 인천학도의용대 활동을 하지 않았던 동네 후배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형, 우리도 형하고 같이 가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국민학교까지 따라오신 고향 인천 신흥동의 동네 후배 부모님들은 “중학생인 우리 아들 잘 부탁하네”라는 간곡한 부탁의 말씀을 하셨다. 생전에 마지막으로 뵌 어머니 모습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약 2500명은 인천축현국민학교를 출발하였는데, 경동파출소 앞을 지나면서 보니까 어머니께서 경동파출소 정문에서 나를 보시고는 손을 흔드시면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이었다. 나는 행진하는 대열 속에서 손을 흔들면서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였다. 이날 뵌 어머니 모습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었으며 이듬해인 1951년 4월 15일 내가 진해에서 해병대의 포병대대 창설 요원으로 훈련 중일 때 어머니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우리들은 걸어서 행군하여 수원, 대전, 대구,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을 지나서 17일만인 1951년 1월 3일, 최종 목적지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에 가까운 마산에 도착하였다. 인천에서 마산까지 17일간 걸어서 남하 행군하면서 우리들은 전쟁의 참상을 보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 중에도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되어 남하하던 많은 국민방위군 젊은이들이 굶거나 얼어 죽은 소문만을 들은 것이 아니라 버려져서 들판에 나뒹구는 국민방위군 시체를 보기도 했다. 국민방위군(國民防衛軍) 사건 전시에 신속한 병력 동원을 위해 1950년 12월 제정한 국민방위군법에 의한 예비군이었으나 1951년 1·4 후퇴 때 소집된 50만명의 국민방위군 중에서 약 10만명이 굶거나 얼어서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관련된 장성 5명이 총살당했고 국민방위군은 1951년 5월에 해체되었다. 내가 고향 인천의 동네 후배 중학생 15명을 데리고 마산에 무사히 도착한 날은 인천을 출발한 지 17일째 되는 1951년 1월 3일이었다. 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고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교)로 15명의 고향 인천의 동네 후배 중학생들을 데리고 가는 걸 주저하고 마산에 머물러 있었다. 이튿날인 1951년 1월 4일, 고향 인천에서 같이 내려온 동네 후배 이의범(인천상업중 3학년)이 해병 신병 모집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같이 있었던 후배들을 데리고 해병 6기 신병모집소로 가서 그 신체검사에 응하였다. 1951년 1월 6일 진해에서 해병 6기 입소 다음날 1951년 1월 5일 아침에 해병 신병 신체검사 결과를 보러 해병신병 모집소에 가니 해병 신병 모병관이 “신병 모집에 지원한 사람들은 진해까지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들은 진해를 향하여 창원고개를 넘어 진눈깨비를 맞아가며 야간행군으로 밤늦게 자정 넘어서 진해경화국민학교에 도착했다. 우리들은 전원 합격되어 옷을 벗고 새 미군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우리들은 1951년 1월 6일부터 해병대 신병 훈련에 들어갔다. 해병 6기(인천 기수) 대표로 입대 선서 6기 입대식은 1951년 1월 24일이었다. 6기 입대식 날 나는 신현준 해병대 사령관 앞에서 6기생 대표로 해병 입대 선서문을 읽었다. 흔히 해병 6기는 인천 기수라고도 말하는데 정말로 6기는 대부분 인천 지역 중학생들이었다. 1951년 2월 10일 해병대 6기로 신병교육을 마친 우리들은 보병과 포병으로 나뉘어 보병은 즉시 전방 전투지역으로 출동하게 되었고 포병은 그 날로 진해에 새로 생긴 제1포병대대에 배치 받았으며 당시 대대장은 고길훈(高吉勳)중령이었다. 당시 해병대에는 포병부대가 따로 없었으며 처음으로 창설된 해병대 포병대대에 인천 지역 중학생 출신 해병 6기생들이 포병대 창설 요원으로 선발된 것이었다. 해병대 제1포병대대 창설 요원으로 참전 해병대 제1포병대대가 창설된 지 얼마 후 우리 부대는 강원도 최전방으로 출동하여 펀치볼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 해병 포병대대는 서부전선 임진강 부근 장단 고랑포 쪽에 포진하여 장단지구 전투에도 참전하였다.나는 1950년 12월 18일 고향 인천의 동네 후배 중학생들을 데리고 마산까지 18일간 걸어가서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고, 사병으로 참전한 지 3년 9개월 15일이 되는 1954년 10월 20일 만기 제대하였다. 평생 잊지 못한 말… “우리 아들 부탁하네!” 1950년 12월 18일 인천을 떠날 때 고향 인천의 동네 후배 중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나에게 하신 “정태원 군, 우리 아들 잘 부탁하네!”라는 말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형으로서 고향 동네 후배 중학생 15명을 데리고 마산까지 18일간 걸어가서 같이 자원입대하고, 함께 사병으로 군복무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자부하며 나는 살아왔다. 그러나 15명 중에서 2명은 전사하였고 그 어린 고향 동네 후배 중학생들의 전사는 지금도 나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다. “함께 참전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2500여명 인천학생들이 20일간 마산이나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하였고, 그중에서 208명이 전사했다는데 오늘까지도 인천학생들의 6·25 참전역사 기록이 없는 것을 형으로서 동네 후배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아무쪼록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인천학생들의 6·25 참전역사 찾는 일을, 인천상업중학교 후배 이경종과 그 아들 이규원(치과 원장) 두 분 부자가 끝까지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라며, 인천학생들의 애국심과 애향심이 길이길이 후대에 전해지기를 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4회를 마치며 숲에서 시끄러운 소리 내면서 불어 나오는 바람이 지나간 뒤에 숲은 아무 소리 없이 조용하다. 정태원 님은 대학생이었지만 장교임관도 포기하고 고향 인천의 중학생 후배들을 데리고 국민방위군을 따라 18일간 걸어서 내려갔습니다.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되어 끌려간 50만여명의 젊은이 중 약 10만명이 얼거나 굶어 죽었습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마산까지 무사히 이끌어 준 훌륭한 일을 했지만 누구에게도 자랑한 적이 없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섭섭해하지 않았던 형이 인천에 살았었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을 자랑스럽게 해 주신 정태원 님께 글로 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정태원 ▲해병대 6기 ▲성균관대학교 2학년 1930년 3월 15일 : 인천광역시 중구 유동에서 태어남. 1943년 : 6년제 공립인천상업중학교 입학·졸업. 1950년 12월 18일 : 성균관대학교 2학년생으로 고향 인천 신흥동의 동네 후배 중학생 15명을 데리고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를 향하여 18일간 걸어서 내려감. 1951년 1월 4일 : 국민방위군 참상을 본 후 통영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인천에서부터 함께 내려온 동네 중학생 후배들과 마산에서 해병 6기 신병 모집에 지원함. 1951년 1월 24일 : 해병 제6기 입대식날 6기 대표로 입대 선서문을 읽음. (군번 9210161) 1954년 10월 20일 : 대학생이기 때문에 장교임관을 할 수 있었음에도 장교임관을 포기하고는 고향 인천의 동네 후배 중학생들과 같이 사병으로서 3년 9개월 15일을 군 복무하고 만기 명예 제대함. ■ 정태원 인터뷰 일시 1998년 7월 28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치과 3층) 대담 정태원 이경종(6·25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큰아들) ■ 이규원 인사말 안녕하셨습니까? 정태원 님! 저는 6·25 사변 때 인천학생 2500명이 부산이나 마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하고 208명이나 전사한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꼭 기억해야 할 귀감이라 생각합니다. 고향 인천의 동네 후배 15명을 데리고 마산까지 18일간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정태원 님과 오늘 인터뷰는 인천학생들의 6·25 참전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1998년 7월 28일 오늘까지도 참전 기록이 전혀 없었던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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