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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연우의 재밌는 일기쓰기 기계/김상화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연우의 재밌는 일기쓰기 기계/김상화

    “이번에는 머리에 연두색 리본을 달고 있는 우리 연우가 나와서 읽어 볼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우는 수업 시간에 곧잘 손을 들어 발표를 했지만 일기를 읽는 시간에는 아직 한 번도 발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일기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담임 선생님은 일기 검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일주일에 세 번 아이들이 스스로 발표하게 했습니다. 4학년이 되고 나서 연우의 일기를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11월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꼬박꼬박 숙제도 잘하는 연우가 일기를 쓰지 않을 리는 없을 텐데 왜 발표를 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선생님은 11월이 되어도 발표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연우에게 발표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선생님이 연우의 이름을 불렀을 때, 연우는 땋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머뭇거렸습니다. “일기 썼지?” “네, 썼어요.” “그럼 나와서 읽어 봐. 쓴 걸 그대로 읽기만 하면 돼.” 연우는 일기를 쓰긴 했지만 발표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모습을 꺼내서 보여 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쭈뼛쭈뼛 앞으로 나가서 겨우 어제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11월 11일 수요일. 낮에 공부를 좀 하다가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누워 있으니 잠이 조금씩 왔다. 누워서 이제 무슨 공부가 남았지 하고 생각해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연우의 일기는 딱 두 줄뿐이었습니다. 일기를 다 읽었을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읽어.” “다 읽었어요.” 아이들이 ‘와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으니 연우는 부끄러웠습니다. “그것밖에 못 썼어?” 연우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거 봐,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잖아.’ 선생님은 연우의 원망을 들으셨는지 더 원망스러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연우는 내일 다시 일기 발표를 하도록 하렴.” 이어서 연우의 단짝인 아연이가 손을 들어서 세계 명작 동화 읽는 것처럼 일기를 아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연우와 집으로 가는 길에 아연이는 일기를 잘 써서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일기에 거짓말도 조금 있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별로 재미가 없었던 일도 모두 재미있었다고 쓰는 거야.” 아연이는 속삭였습니다. “사실 거짓말은 아니야. 재미없었지만 재미있었다고 상상하는 거야. 맛없을 때도 맛있다고 상상하는 거야.” “쳇, 그게 뭐야. 거짓말이나 마찬가지잖아. 일기를 쓰기 위해서 맛도 없는 걸 맛있다고 상상한다고? 우웩, 토할 것 같아.” 연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보여 주어야 하는 일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듣는 사람들 생각도 해 주어야 하니까요. 연우는 예쁜 새 일기장을 사서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우는 아연이에게 전화기를 빌렸습니다. 연우에게도 전화기가 있습니다. 그건 오빠가 쓰던 스마트폰인데 개통을 하지 않아서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톡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연우는 아연이의 스마트폰으로 회사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했습니다. “엄마, 나 새 일기장 사게 돈 좀.” “아우, 연우야. 지금은 정신이 없으니까 내일 체크카드에 입금해 줄게. 엄마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알았지?” 연우는 엄마가 정신이 없다는 말을 돈이 없다는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냥 쓰던 일기장에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연우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바쁜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아연이에게 지고 싶지 않았지만, 일기를 잘 쓰기 위해서 꼭 새 일기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괜찮았습니다. 연우는 오늘이 끝나기 전에 일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하루 종일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가길 바랐지만 금방 밤이 되어 버렸습니다. “연우, 이제 티브이 그만 보고 방에 들어가거라.” 아빠가 설거지하다가 말씀하셨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아홉 시 반이었습니다. 이제 오늘이 끝난 걸까요? 오늘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연우가 일기를 써야 할 시간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재미난 일기를 쓰기 위해서 뭔가 사건이 벌어져야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어서 이제 새로운 사건을 일으키기란 어려웠습니다. 늦은 밤 학교에 다시 갈 수도 없고 어디로 놀러갈 수도 없었습니다. ‘도둑님이시여, 제발 우리 집에 와 주세요.’ 연우는 이런 나쁜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있었던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일은 내일 일기를 발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이 일을 일기로 쓰려니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연우가 텔레비전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기 쓰는 거 잊지 말구.” 아빠가 고무장갑을 벗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연우는 그만 방문을 쾅 닫고 말았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말똥말똥 일기장을 쳐다보았습니다. 한숨을 쉬며 양손을 턱에 괴고 생각했습니다. ‘일기를 대신 써 주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필을 너무 세게 쥐는 바람에 연필심이 탁 부러졌는데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전화가 안 되는 스마트폰을 떠올린 것입니다. 전화는 안 되지만 와이파이만 되면 자동완성 기능이 작동됩니다. 연우는 자동완성 기능으로 일기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오빠가 쓰던 기계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은 오빠가 쓰던 말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 흘리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오빠는 스마트폰을 초기화해 놓지 않고 자기가 쓰던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친구들과 톡을 할 때에도 연우는 오빠가 쓰던 스마트폰 자동완성 기능의 재미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연우는 이 자동완성 기능이 일기를 쓰는 기계가 되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어 아무 글자나 썼습니다. ‘신’이라는 글자를 입력하자 이 기계는 자기 마음대로 말을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신, 이시여, 제발, 저에게, 힘을, 주세요, 꼭.” 연우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1월 12일.” 스마트폰은 11월과 12일만 쓰는데도 13, 14 이러면서 자동완성 기능으로 어서 일기를 써 주고 싶어서 안달복달 난리였습니다.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 목요일을 쓰려고 ‘모’까지 썼을 때, ‘모기’, ‘목요일’, ‘목소리’라고 자동완성 기능이 세 낱말을 띄워 주었습니다. 그중에서 연우는 ‘목요일’이 맞다는 것을 자동완성 일기쓰기 기계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스마트하긴 하지만…, 많이 똑똑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내가 잘 골라 주어야 해.” 그래도 다른 자동완성 기능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ㅋ’ 하면 다른 자동완성 기계들은 ‘ㅋㅋㅋㅋ’밖에 모르지만 연우의 일기쓰기 기계는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오빠가 쓰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빠가 쓰던 말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날짜와 요일만 썼을 뿐인데도 연우는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오늘’이라고 쓰자 ‘오늘은’, ‘오늘도’ 하고 보기를 내 주었습니다. “오늘도 일기를 읽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라고 쓰자 ‘선생님께서’라고 자동완성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내 이름을’이라고 썼을 때, 일기쓰기 기계는 ‘불렀다’와 ‘외쳤다’ 두 가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맞습니다, 선생님은 분명 연우의 이름을 부른 게 아니라 외쳤습니다. 그건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거든요. 하지만 연우의 귀에만 그렇게 들렸을 뿐이라는 걸 연우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우는 이렇게 썼습니다.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연우의 일기쓰기 기계는 가끔 연우와 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연우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쓰면 “어떻게 써야 할지 다 알겠다”라고 뜹니다. 연우가 ‘모르겠어’를 지우고 ‘알겠어’라고 쓰면, “나도”라고 대답합니다. 막막함 속에서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것밖에 못 썼어?’라고 쓰려고 ‘못’을 썼을 때 일기쓰기 기계는 ‘못이 박이도록’, ‘못지않다’, ‘못뽑이집게벌레’, ‘망치’를 보여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이것밖에 못 썼냐고 말씀하셨을 때, 못 말고 망치 썼다고 대답할걸 그랬어.’ ‘그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던’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연우의 손가락이 조금 굵어서일까 ‘던’ 대신 ‘단’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단’이라는 말은 바로 ‘그동안 왜 일기를 쓰지 못했단 말인가!’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연우는 자동완성 일기쓰기 기계와 함께 오늘의 일기를 썼습니다. 한 낱말을 쓰면 다른 낱말이 이어지고, 그걸 일기에 쓰면 또 다른 말을 알게 되고, 또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끝말잇기처럼 계속 말들이 생겨났습니다. 연우는 방 안에서 혼자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안 자니?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왔다. 나와서 아이스크림 먹어라.” “네.” 연우는 대답하고 나서도 발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글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했습니다. ‘새 일기장을 사려고 엄마에게 돈’까지 쓰고 멈추었습니다. ‘돈’이라는 글자를 쓰자마자 바로 ‘돈 돈 돈’이라고 변했기 때문입니다. ‘돈 돈’ 두 글자를 지우자마자 바로 또 ‘돈’은 자동으로 ‘돈 돈 돈’ 하고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새 일기장을 사려고 엄마에게 돈 돈 돈을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문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는데 다음 문장은 더 재미있었습니다. “엄마가 돈 돈 돈이 없다고 내일 체크카드에 돈 돈 돈 입금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연우의 일기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11월 12일 목요일 오늘도 일기를 읽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나를 불렀을 때, 너무 무서워서 천둥소리처럼 크게 내 이름을 외치는 것같이 들렸다. 일기를 다 읽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것밖에 못 썼어?” 나는 못을 쓰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왜 못 썼다고 하시면서 망치처럼 내 마음을 때릴까? 나는 못이 아닌데, 그동안 왜 일기를 쓰지 못했단 말인가! 일기를 쓸 수 있는데도 두 줄밖에 쓰지 않았던 이유는 노력을 안 해서 그랬던 거다. 새 일기장을 사려고 엄마에게 돈 돈 돈을 달라고 했지만, 새 일기장이 아니라도 새 마음으로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부터 일기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다. 다음 날, 연우는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도 전에 손을 들어 일기 발표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연우에게 못을 쓰지 않았는데 못 썼다고 말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만에 일기가 풍년이 들었다며 칭찬도 해 주셨습니다. 친구들에게 박수도 받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아연이가 연우에게 뛰어왔습니다. 아연이는 연우에게 귓속말로 물었습니다. “내 말 맞지? 거짓말 아주 조금 섞어서 쓰니까 진짜 잘 써지지?” “무슨 거짓말?” 연우는 잠깐 생각하다가 아연이가 어제 일기에 쓰려고 맛없는 것도 맛있다고 상상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아연이는 연우가 일기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다는 말이 진짜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 정말 재밌어졌다는 말? 그거 거짓말 아닌데?” “쥐꼬리만큼도?” “응.” “손톱만큼도?” 아연이가 자꾸 물으니까 연우는 일기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연우가 말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에는 맘이 바뀔지도 몰라. 하지만 어제는 분명히 진짜였어.” 연우와 아연이는 둘이 함께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등장인물 수용 29세/ 벽을 허무는 집주인 이리 30세/벽을 허무는 집주인의 친구옥형(노파) 88세/벽이 허물어지는 집 아랫집 거주자 때2017년 어느 가을 곳수용의 집 무대 벽이 있다. 벽의 좁은 면이 관객을 향하고 있다. 벽을 가운데 두고 하수로 붉은 조명, 상수로는 햇살 같은 밝은 조명. 붉은 조명은 빌라 주민들이 삼삼오오 돈을 모아 만든 ‘특수학교 설립 반대’ 현수막의 붉은 천에 빛이 투과된 것이다. 무대 뒤쪽, 현관문이 벽과 같은 방향으로 있고 문과 이어지는 계단은 불투명한 박스와 닿는다. 박스는 사람 하나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옥형의 집이다. 옥형은 수용의 집 아래층에 사는 노파이지만, 우리가 만드는 것이 무대이니만큼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용의 집보다 위에 있다고 약속하자. 공업용 마스크를 낀 수용 하수 등장. 낡은 후드와 트레이닝 바지 차림의 수용은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지만 분무기와 김장비닐을 든 손에는 비장함이 은근하게 뿜어져 나온다. 수용, 비닐을 바닥에 깐다. 아주 꼼꼼히. 그사이 이리, 상수 등장. 붉은 천을 허리와 목에 두르고 양손에 커다란 망치를 하나씩 끌고 온다. 옆이 트인 롱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다리와 팔뚝의 타투들과 붉은 천, 망치의 조화는 길거리 행위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이리 (붉은 방을 둘러보며 기운을 한껏 느껴본다) 느껴져. 느껴져, 느껴져! 느낌이 팍! 온다, 와. 수용 … 이리 딱이야, 딱. 아주 먹고 죽기 딱이야. (손을 까딱거리며 허공에서 술잔을 넘긴다) 뭐랄까, 아주 옥보단스러워. 수용 일조권을 침해받는 참혹한 현장이야. 전혀 옥보단스럽지 않아. 이리 하루만 빌려줘라. 네가 우리 집에 가서 자. 수용 얼마 줄 건데. 이리 얘 봐라. 무슨 돈을 달래. 서울 살더니 양아치 다 됐다. 수용 나 원래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이리 서울시장은 뿌듯하겠어. 서울시민이 이렇게 우정보다 돈이 먼저인 양아치라서. 수용 (가만히 생각에 빠져든다) 뿌듯하기보다는 머리 아프지 않을까. 네 말대로 서울에 살면 돈만 밝히는 양아치가 되면, 서울시민은 곧 양아치란 말인데. 이 많은 양아치들을 다 관리하려면 시장은 최고의 양아치가 해야겠네. 이리 하여튼. 또 이상하게 진지해지지. 으, 진지충. 헛소리는 됐고, 하루만 빌려줘. 수용 (마스크를 하나 주며) 네 룸메 코 골아서 싫어. 이리 오랜만에 나비랑 오붓하게 시간 좀 보내 보자. 수용 나비? 이리 말 안 했나. 애인. 뉴 원. 수용 그새? 울고불고할 땐 언제고. 체력도 좋다. 이리 능력이 좋은 거지. 수용, 비닐을 다 깔고 일어서는데 비틀 이리 (곰곰이) 체력도 좋긴 해야겠다. 하여튼, 진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하루만 빌려줘. 어? 알겠지? 수용 너 오늘 우리 집에 왜 왔어? 이리 네가 오라며 새끼야. 수용 내가 왜 오라고 했어? 이리 하, 진짜 장난치나. (가만 돌이켜보다 손에 망치를 보고) 아… 벽…! 수용 그래, 오늘이면 옥보단도 안녕인데. 뭘 자꾸 빌려 달래. 수용, 마스크를 끼고 벽 앞에 선다. 이리 진짜 하게? 수용, 이리에게 마스크 하나를 주고 망치 하나를 받는다. 심호흡. 수용, 벽을 내리친다. 엄청난 진동과 소음 그리고 뿌옇게 이는 먼지. 삭막함이 감돈다. 수용, 다시 벽을 내리치려는데 이리 말린다. 이리 야, 잠깐만. 수용 왜? 이리 아니, 아랫집에서 올라오겠어. 진동이 장난 아닌데? 수용 아랫집만 올라 오냐. 엄청 커다란 직사각형 박스 하나에 벽을 댄 게 다인데. 다 쫓아오겠지. 이리 그냥 저번처럼 해. (몸에 두르고 있던 붉은 천을 흔들며) 두 번 했는데 세 번은 쉽지. 수용 세 번짼 수선비를 청구하겠대. 이리 얼만데, 얼마면 되는데. 누나가 해결해 줄게. 멀쩡한 벽을 허무는 것보다는 수선비가 낫지 않냐. 수용 빛 없이 사는 삶을 네가 알아? 숲세권 남향에 사는 네가 빛이 없어서 사람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기분을 알 리가 없지. 머리랑 마음이 건조해지다 못해 바스러지는 기분이야. 이리 빛이 많아야 바싹바싹 마르지 없는데 왜 말라. 그냥 문을 열어 놓고 살던가. 수용 문이라는 건, 열고 닫으라고 있는 거야. 그게 문의 역할이지. 한 번 열면 언젠간 닫아야 제 역할을 다하는 거라고. 닫히지 않는 문은 문이 아니지. 그럴 바엔 없는 게 나아. 이리 그럼 창문을 만들자. 수용 (벽을 치며) 만들고 있잖아. 엄청 커다란. 창틀도 없고 유리판도 필요 없는 실용적인 창문. 이리 극단적인 놈. 수용 뭐든 확실한 게 좋잖아. 수용, 다시 벽을 허물기 시작 이리 어떻게 세상이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으로 굴러가. 너 그거 강박이야. 괜히 바짝바짝 마르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뭐 마른 장작이 잘 탄다더라. (쿵) 수용 이렇게 살다 죽겠지 뭐. 이리 무모한 놈. (쿵) 수용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나는 자살할 것 같아. 이리 또 데드타임! 웬일로 그냥 넘어가나 했다. 수용 데드타임? 이리 그래, 너 죽는다는 소리 하는 거. 수용 왜 사람들은 이름 짓길 좋아할까. 이리 언젠 병에 걸려 죽을 것 같다며. 수용 엄밀히 말하면 병이긴 하지. 내 죽음의 원인은 내 안에 우울이니까. 있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대. 말이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세상을 그렇게 살아질 수가 있는 건가. 이리 오늘은 아니지? 수용 뭐가? 이리 데드타임. 수용 오늘은 벽을 허물어야지. 그때, 관리실 방송. 수용과 이리, 방송이 나오는 천장을 가만 본다. 방송 아아, 관리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잠시 후 2시부터 특수학교 설립 반대 관련 7차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회의 후 시위가 바로 시작되니 참석을 희망하시는 모든 주민들은 2시,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1시 50분까지 늦지 않게 관리실로…. 수용 다 저기 가느라 벽이 무너지는지, 빌라가 무너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도 안 써. 그러니까 오늘 끝내야 돼. 수용, 다시 망치질을 시작하고 이리, 소음과 먼지 속에서 분무기로 물을 뿌려 먼지를 잠재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이리, 수용의 얼굴에 물을 뿌린다. 수용 야! 이리 바싹바싹 마른다길래. 그때, 무대에 노파 등장. 노파가 있는 곳은 수용과 이리가 있는 공간과 다른 공간.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으로 나오는 노파는 명절에 자식이 사준 듯한 빳빳한 꽃무늬 재킷에 펑퍼짐한 배바지를 입고 낡은 크로스백을 맨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대를 둘러 계단으로 향한다. 이리 (창밖을 보다) 야, 근데 저기에 아랫집 할머니는 없는 것 같다? 수용 네가 아랫집을 알아? 이리 오다가다 몇 번. 그 할머니가 좀 인상적이잖아.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고 해야 되나? 직설적이면서 약간 자기 방어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게 꽤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겠다 싶지. 괜히 과거를 상상하게 만들잖아. 수용 순수는 무슨. 그냥 괴팍한 할머니야.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만 하는 딱 옛날 사람. 이리 와우. 노인 혐오야? 수용 무슨 내가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야? 이건 정당한 혐오야. 이리 (웃음이 터진다) 세상에 정당한 혐오도 있어? 수용, 상의를 걷어 올리자 시퍼런 멍이 배에 크게 있다. 이리 그래, 언젠가 너 맞을 것 같더라. 수용 야. 이리 누구야, 누가 이랬어.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왜 맞고 다니냐 너는, 속상하게. 수용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을 갖고 계신 분. 이리 할머니한테? 이게 할머니가 만든 멍이라고? 수용 어. 이리 역시 호기심을 자극한다니까. 아니 그렇잖아.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서 걷는 할머니가… 또 네가 싹수없게 굴었지. 수용 내 싸가지도 가릴 건 가려. 이리 근데 진짜 왜 그런 건데? 수용 이름 석 자 부탁한 대가야. 이리, 한쪽에 놓인 빈 서명지를 들어 본다. 이리 자가인가? 수용 뭐? 이리 아니, 그 정도로 반대하는 거 보면. 강경한 표현이잖아. 수용 강경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폭력적이지. 이리 너무 텅 비었다. 나라도 서명 해줄까? 학교 설립 찬성해. 수용 너는 우리 구민이 아니라서 소용없어. 빌라 주민들의 소란스러운 소리. 장애학교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이리 서명이라는 게 굉장히 순수한 방식이야. 동시에 직설적이기도 해. 굉장히 너답다. 수용 내가 순수하고 직설적이라고? 이리 나 이사 올까? 그럼 나도 지역구민 되잖아. 수용 됐어. 이리 나도 해본 말이다 뭐. 수용 불편과 불만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해소되는 건 맞지. 그게 옳은 방향이야. 하지만… 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과연 옳은 방향인가 의문을 던질 수는 있잖아. 저 사람들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 거지. 저 확신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건데. 나는 그게 무지라고 생각해. 그사이, 노파 집 앞에 도착해 가방을 뒤지고 깜빡깜빡하는 현관 비밀번호를 적어 놓은 노트를 찾는다. 이옥형이라 커다랗게 적힌 노트를 꺼내는데 노트 사이에서 날이 시퍼런 과도가 뚝! 떨어진다. 떨어진 건 작은 과도지만 운석이 떨어진 듯한 소리와 진동이 무대를 흔든다. 수용과 이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고 잠시 사이. 노파가 과도를 주워 넣는 그사이, 무대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노파 천천히 과도를 집어넣고 비밀번호를 확인하곤 집으로 들어간다. 밖에 소리가 무대를 환기하고 이리 (창밖을 보곤) 열정적이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너무 비난만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해. (수용의 시선을 느끼고) 야, 레이저 나오겠다. 분명히 말하는데 옹호하는 거 아니야. 그냥 공감능력을 지닌 인간으로서 감정이입을 해보자는 거지. 사실 그렇잖아. 누가 좋아해,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고. 수용 부동산이 떨어진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집값이 떨어진다는 가설은 무지에서 시작된 삐뚤어진 믿음이야. 수용, 망치질을 시작한다. 이리 그래 좋아, 뭐가 됐든. 그 믿음이 아틀라스처럼 세상을 지탱하고 있잖아. 저 자리가 원래 학교 부지란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뭔데. 학군 빵빵한 동네가 지하철로 네 정거장만 가면 되잖아. 그렇게 멀지도 않아. 공사부지 맞은편은 곱창에 포차, 막걸리 온갖 술집이 줄 서 있더만. 워싱턴 노래방 간판이 애들 하굣길을 밝혀 주겠지. 이 동네보다는 그 동네가 백 번 나아. 안 그래? 수용 …. 이리 기시감 들지 않아? 수용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리 한국전쟁 이후 국가적으로 밀고 있는 꽤 전통적인 방식인데. 그놈의 낙수효과야말로 삐뚤어진 믿음 아니야? 이게 진짜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뿌리 깊은 믿음. 네 말대로 무지에서 비롯된 거지. 될 놈만 건지고 나머지는 버리겠다는 걸 그럴듯하게 이름 붙여서 포장을 해요. 항상 그럴듯해 보이는 게 사람 눈 돌아가게 만들잖아. 난 그놈의 낙수효과가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수용 가부장제의 근본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이리 야 너. 짜식, 평소에 내 말을 아주 허투루 듣는 건 아니었구나. 수용 그럼. 귀는 문이 아니잖아. 닫히질 않아. 이리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용 가끔은 닫혔으면 좋겠지만…. 이리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건 중요해. 근데 이 망할 놈의 세상은 밑 빠진 독이라서 어딘가는 새게 되어 있잖아. 수용 왜 날 봐. 계속해. 이리 성장이 제1의 명분이 되는 시대는 흘러가고 있어. 이젠 희생의 이유도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는 거지.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수용 애들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이리 뭐가? 수용 아이들이 배울 곳이 필요하다. 이걸로는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으로 부족해? 이리 무엇보다 중요하지 수용 꼭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인류애적인 충만함을, 정신적인 보상을 얻을 수도 있어. 안 그래? 이리 …. 수용 왜 아무 말도 안 해? 이리 것도 능력이야. 한 번에 양쪽을. 수용 양쪽을 뭐. 이리 아냐. (쿵) 이리 하여튼 지금은 어떤 이유도 저 사람들한텐 먹히지 않을 수도 있어. (쿵) 이리 (밖을 보며) 한껏 쫄아 있으니까. 나는 저 사람들의 확신이 무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번에도 버려질 거란 공포에서 나왔다고 봐. (쿵) 수용 시끄럽지? 수용, 음악을 튼다. life is killing - type O negative 수용 소음에는 락이지. 소음은 음악소리에 묻히고 뿌연 먼지 사이로 둘, 망치질. 벽을 타고 온 진동이 노파의 아크릴 박스를 사정없이 흔든다. 노파, 공포에 질린 비명이 락에 묻히고 노파의 사정과는 별개로 망치질을 하는 수용과 이리의 모습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등록금 인상에 반대 시위를 하는 프랑스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하고 어느 삭막한 공사장의 인부 같아 보이기도 하다. 일순간 음악이 멈추고 노파가 있는 불투명 박스에 조명 노파 아주 발광을 허네! 수용, 노래를 멈춘다. 이리 왜? 수용 뭐라고 하지 않았어? 이리 아니. 수용 (귀를 파며) 아닌가. 이리 살살해, 스윙에 감정이 실렸다. 누구 생각해? 수용 여럿 (쾅) 생각하지. 이리, 분무기로 먼지를 잠재운다. 수용 사람들이 타격감에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잖아. 복싱이나 야구공 치는 것처럼. 아무래도 난 때리고 (쾅) 던지고 (쾅) 치고 박으면서 (쾅) 스트레스 푸는 거엔,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수용, 손목을 턴다. 이리 (덥다. 옷을 펄럭) 너도 참, 손목 아프단 말을 장황하게 한다. 수용 (보곤) 옷 빌려줄까? 이리 아니, 됐어. 수용 먼지 엄청 붙었네. 이리 블랙이 적나라하지. 수용 하나 가져다줄게. 이리 아냐, 됐어. 수용 아냐 가져다줄게. 이리 아니 괜찮아. 수용 불편해 보여. 가져다줄게. 이리 진짜 괜찮다고. 수용 나도 진짜 괜찮아. 이리 아니. 괜찮다니까? 수용 왜 화를 내. 이리 화를 낸 게 아니라. 됐다고 했는데 못 알아들으니까. 크게 얘기 해준 거지. 수용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이리 남자들 종족 특성이야? 왜 노를 못 알아듣지? 강요하지 마. 수용 내가 언제 강요를 했다고 그래. 이리 방금. 수용 그냥 물어본 거잖아. 불편해 보이니까. 이리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일곱 번째로 말해줄게. 됐어. 필요 없어. 난 이 옷이 좋아. 불편하든 더러워지든 이미 나랑 한몸이라고. 네가 신경 쓸 거 아니란 거지. 알겠어? 수용 그래. 그럼. 이리, 망치질 이리 넌. 매사에 모든 걸 통제해야 속이 시원해? 왜 그래? (쾅) 이리 무지에서 나온 삐뚤어진 믿음? 웃기네. 야, 이름 짓기 좋아하는 건 나보다 네가 더해. 벽을 마구 치며 쏟아낼 대로 쏟아낸 이리, 숨을 고르고 이내 머쓱해진다. 수용 …. 이리 야. 미안하다. 수용 …. 이리 미안하다고. 수용 어. 이리 된 거지? 수용 …. 이리 미안해. 너도 알잖아. 내가 한 번씩 예민해지는 거. 수용 한 번씩이 아니잖아. 항상 예민해. 이리 항상은 아니지. 수용 맞아. 그리고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나도 너 못지않게 예민해. 난 화장실에 앉아서도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어. 잘 때도 먹을 때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서 미쳐버릴 것 같아.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걸지도 모르지.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 싶어. 그게 더 확실하잖아. 어중간하게 미쳐 있는 것보단 명백한 환자가 되는 게 낫지. 이리 무슨 그런 말이 있냐. 수용 나는 그렇다고. 정상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닌 경계에 서서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을 네가 알아? 이리 알지. 내가 여자 좋아하는 걸 알았을 때 그랬지. 수용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머니한테 커밍아웃 언제 할 거야? 이리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확실한 건 네 인생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수용 말이 나올 만하니까 하는 거야. 성 서방 밥은 잘 먹고 다녀? 불쑥불쑥 연락 올 때마다 무시도 못하고 답장도 못하고 얼마나 난감한 줄 알아? 3년이야. 이사 도와준 대가가 이렇게 부담스럽고 죄책감 드는 건 줄 알았음 도와 달라고도 안 했지. 커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는 네 선택이지만 나까지 죄책감 들게 만들지는 말아 주라. 이리 … 말을 하지 그랬냐. 둘 다 입 꾹 다물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수용 나는 그렇다 쳐도 너희 어머니는 아니었을걸. 네가 보기에 내가 무모하고 강박적으로 보이겠지만 내가 볼 때 넌 무책임하게 도망만 다니는 걸로 보여. 시간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 그냥 유예시킬 뿐이지. 편한 선택은 그만할 때도 됐잖아? 이리 내가 편하게 사는 것 같아? 수용 최소한 네 멋대로 사는 걸로는 보여. 이리 진짜 멋대로 사는 게 누군데. 세상이 어떻게 모 아니면 도로 돌아가. 불가능한 걸 바라면서 이게 왜 불가능하지 왜 이렇게 안 되지, 사람들이 왜 서명을 안 해 주지. 하루라도 징징거리는 걸 멈추고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 궁금해하긴 해봤어? 아니지. 네가 생각할 때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니까. 안 그래? 그렇게 결론지었잖아. 왜? 그게 쉽고 편하니까. 수용 그래! 맞아! 왜냐고? 누구나 배울 권리가 있으니까! 이리 정신적 보상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누가 아니래? 수용 아니라잖아! 그러니까 저러지. 수용과 이리 사이에 침묵이 잠시 흐른다. 이리 내 말 듣긴 했니? 수용 내 귀는 문이 아니니까. 이리 칸트도 너보단 융통성 있을 거야. 알지 칸트? 골방에 틀어박혀서 글만 쓰던 외톨이. 제발 사람 좀 만나. 글로 배우지 말고. 그러다가 너도 청혼 승낙만 7년 고민하는 수가 있어. 결혼해야 하는 이유 354가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350가지 쓰면서. 수용 … 내내 날 그렇게 생각했어? 이리 언제부터 내 생각이 중요했냐. 넌 너 이외의 사람들은 다 멍청하고 덜떨어졌다고 생각하잖아. 수용 내가 언제. 이리 자신을 한 번 돌아봐. 수용 … 그만 가주라. 이리 왜 도와 달라며. 아, 그래서 불렀니? 옛말에 무식한 놈이 힘세다고 이런 일엔 내가 나서야지. 수용 됐어, 가. 네 도움 필요 없어. 이리 정말? 수용 그래. 이리 후회 안 하지? 수용 그래! 정말 진짜로 필요 없어. 이리 그래 그럼! 이리, 돌아갈 채비 하는데 초인종 소리. 수용, 현관으로 가(계단의 문이 아닌 객석을 향해) 손님을 확인하는데 이리 간다 수용, 이리를 잡고 숨을 죽인다. 이리 왜? 문 두드리는 소리 이리 놔. 수용 (속삭이듯) 아랫집. 이리 이런 게 자승자박이란 거다. 이리, 문으로 향하고 수용 어디 가. 이리 가라며. 수용 할머니 가면 가. 이리 벽은 허물면서 저깟 문은 하나 못 여냐. 수용 그게 아니라. 손에 뭐가 있어. 이리 뭐? 수용 몰라. 뾰족하고 날카로운 걸 쥐고 있어. 송곳이나 드라이버 같아. 이리, 현관(객석을 향해)으로 가 보면 커다란 스크린에 할머니의 모습이 뜬다. 모니터로 보이는 노파는 인터폰 렌즈에 왜곡된 모습이다. 괴이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리 진짜네…. 수용 잘못하다간 오늘 피 보겠어. 이리 피는 무슨. 수용 말했잖아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라고. 이리 나도 난데 너 너무 고정관념으로 뚤뚤 뭉친 거 아니냐. 그냥 할머니야.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수용 네가 안 맞아 봐서 그래! 이리 쫄았구만. 수용 … 얼마나 아픈데. 이리, 다시 현관으로 가 동태를 살피곤 이리 안 가시네…. 수용 그냥 없는 척하자. 층간소음에 살인도 난다잖아. 이리 그 난리를 쳤는데 없는 척이 돼? 수용 해보고 말해. 왜 안 해보고 그래? 이리 넌 이상한 데서 긍정적이다? 수용 넌 남 일에만 용기를 내잖아. 이리 그래, 알겠어. 집주인 마음대로 해. 말 그대로 집주인이 주인이니까. 이리, 가방을 대충 던지곤 의자에 털썩 앉는다. 가만 보던 수용은 멀찍이 떨어진 바닥에 앉는다. 이리 왜 바닥에 앉아? 수용 왜. 이리 지금 눈치 주냐. 수용 그건 무슨 피해망상이야. 이리 네가 나중에 또 뭐라고 할까 봐 그러지. 불만 있을 땐 말 안 하고 한참 지나서 말하잖아. 수용 내가 쌓아 두는 게 아니라 네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 이리 실수가 실순지 어떻게 알아, 말을 안 하는데. 수용 어떻게 몰라? 이리 넌 아니? 수용 당연하지. 내가 네 입장이었으면. 이리 그런 가정은 하지 말자. 넌 내가 아니잖아. 나도 네가 아니고. 수용 상식에 대한 얘기야. 이리 이젠 내가 상식도 없다? 수용 (난감하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지) 가끔. 이리 너한테 난 대체 뭐냐? 수용 친구. 이리 원래 친구한테 이래? 아님 나한테만 이래? 수용 내가 뭘…. 이리 방금! 수용 조용히 해. 이리 내가 상식이 없다며 아까는 정상 아니라고 하더니 넌 상식도 없고 정상도 아닌 애랑 왜 친구 하냐. 노파 (문 쿵쿵) 안에 없어? 있지? 수용 가끔 그렇다고. 왜 이렇게 발끈해? 나도 가끔은 상식 없이 굴어. 이리 정말 박수를 보낸다. 노파 있네. 문 좀 열어봐, 총각! 이리 저 할머니 말귀 어두운 거 맞아? 별로 크게 말 안 하는데 다 들어. 수용 그래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이리 아이고, 엎드려 절 받기다. 수용 그래, 그것도 내가 미안해. 이리 할머니 아니었음 절대 안 했을 말이지.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수용, 무릎을 꿇는다. 이리 뭐하냐? 수용 미안. 이리 일어나…! 수용이 일어나지 않자 이리도 같이 무릎 꿇고 이리 뭐 하자는 거야. 수용 네 방식대로 사과하잖아. 이리 이게 무슨 내 방식이야. 수용 날 감정적으로 굴복시키고 싶어 하잖아. 이리 날 그런 쓰레기로 봤어? 수용 내 사과를 사과로 인정하질 않잖아. 이리 그건 맞는데. 수용 그것 봐. 이리, 노파가 만들어 내는 소음과 수용의 행동에 머리가 터질 듯하다. 이리 나중에 하자. 제자리걸음이야. 차라리 저쪽을 선택할래. 수용, 이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이리 뭐해…! 수용 가지 마. 이리 왜 이래, 얘가…! 수용 이대로 나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이리 하지 마. 기분 되게 이상해. 두 사람 잠시 실랑이를 벌인다. 그 순간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춘다. 두 사람 문을 가만 바라보고 노파, 집 안 소리를 듣기 위해 문에 귀를 대 본다. 이리 봐, 조용해졌어. 수용 안 갈 거지? 이리 어! 수용, 이리를 놓아 준다. 이리, 문으로 향하니 수용은 움찔거리고 이리 안 가! 이리, 문에 귀를 대 본다. 수용 (조심스레) 갔어? 이리 (속삭이며) 몰라. 노파 이봐! 이리, 화들짝 놀라 되돌아온다. 수용 거 봐. 이리 오늘 무슨 날이냐. 미치겠네. 벽하고 말하는 것 같아. 수용 나 말하는 거야? 이리 총체적으로 다. 노파, 문틈에 종이 한 장을 끼워 놓고 돌아간다. 수용 내가 벽이면, 나도 이렇게 부숴버릴 거야? 이리 부수는 건 네 아이디어잖아. 귀찮게 뭐 하러 그래. 나였음 그냥 이사 갔어. 수용 … 지금 절교 선언한 거야? 이리 아니. 뭐래 정말. 지금 벽 얘기하던 거 아니었어? 수용 그래, 벽 얘기하고 있었지. 네가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다며. 이리 아니, 내가 말한 벽은 이 벽이고, 나라면 그냥 이사를 갔을 거라고! 네가 말한 벽은 그러니까 너고 네가 벽이라면 나는 이사를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내든가 창문을 하나 뚫든가 어? 뭐가 이렇게 어렵지. 울어? 이리,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쯤 노파는 자리를 뜨고) 수용 …. 이리 미안해. 수용 네가 왜 사과하는데? 이리 내가 남자 눈물에 약하잖아.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넌 왜 우는데. 무슨 일 있어? 오늘이 그날은 아니지? 아까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수용 무슨 날. 이리 데드타임. 수용 아니야. 그냥…. 조기 갱년기 같아. 이리 이제 스물아홉이 웃기네. 수용 아예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지. 요즘 애들 사춘기 일찍 온다며. 아니면 비타민D 부족 우울증이든가. 모르겠어. 세상에 거대한 벽이 느껴져. 이리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고? 수용 너도 그래? 이리 생리 전 증후군이 딱 그래. 너도 정신적 생리하니? 수용 장난치지 마. (사이) 나는 그냥 햇빛을 보며 살고 싶어.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이리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수용 동구에 특수학교 설립이 2012년에 결정됐어. 근데 어떻게 된 줄 알아? 예정대로라면 올해 3월에 개교를 해야 했거든? 근데 아직 벽돌 한 장 못 얹었어. 여기는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희망이 안 보여…. 이리 희용소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지. 수용 희용소? 이리 희망, 용기, 소망. 희용소. 수용 (한숨) 오늘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이리 장난치는 거 아냐. (잠시 생각을 고른다) 사랑이 눈에 보이니? 느끼는 거지. 사람을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사소해. 아주 작은 떨림이면 충분하거든? 나는 내가 처음 좋아했던 애를 떠올리면 지금도 손끝이 떨려. 심장은 말할 것도 없지. 여기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니까. 내가 그 애랑 잘되지 않았다고 해서 걜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걸까? 내 첫사랑은 지독한 이성애자고 나는 더 지독한 레즈비언이라서 영원히 평행선에 설 수밖에 없지만, 걘 여전히 내 첫사랑이야. 결과가 본질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희망도 똑같아. 느끼는 거지. 수용 그러면 더 확실하네. 왜냐면 내가 요 근래 느끼고 있는 건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뿐이거든. 이리 진동을 만들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네가 심장인가 보지, 네가 망치인 거야. 아까 망치질해 봐서 알잖아. 망치질하는 놈 손목은 아 나는 거라고. 그래서 네가 지금 힘들고 또 뭐냐,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를 느끼는 거야. 누군가는 네가 만든 진동을 느끼고 있어. 수용 … 희망사항이다. 이리 최소한 나는 느껴.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이리, 수용의 곁으로 가 가만 안아 준다. 수용, 이리의 어깨에 머리를 가만 기댄다. 이리의 서툰 위로가 마음에 닿는다. 수용 내가 여자가 되면 날 사랑해 줄래? 이리 무슨 소리야. 수용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이리 난 널 사랑해. 네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삶의 충만함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수용 스트레스는 알겠는데 삶의 충만함은 뭐야? 내가 너한테 그런 걸 줘? 이리 응. 수용 …. 수용,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느끼며 일어서 문으로 향한다. 이리 왜? 수용 좀 덥지 않아? 난 좀 덥네. 이리 열게? 수용 어. 열어드리게. 이리 이제 안 무서워? 수용 아니. 어. 아니. 내가 언제 무서워했다고 그러냐. 그냥, 혼란스러웠던 거지…. 가신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계시면 나한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 테니까…. 이리 갑자기 용감해졌네. 수용 도와주겠지 뭐…. 이리, 그런 수용을 보며 미소 짓고 수용, 머쓱하게 돌아서며 현관문(계단에 있는 문)을 연다. 무대 위 작은 무대, 노파는 종이 한 장을 날려 보낸다. 종이는 수용 앞으로 떨어진다. 특수학교 설립 찬성 서명서다. 이리 뭐가 적혀 있는데? 수용과 이리, 적힌 글을 보고 내가 배움이 짧아 글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되어 늦게나마 표를 줍니다. 내 이름 석 자가 좋은 일에 쓰여 참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웃사촌 김옥형. 옥형이 있는 아래를 본다. 글쓰기 연습을 하는 옥형의 모습에서 암전.
  •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제주, 애도/윤치규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제주, 애도/윤치규

    그러니까 빙의가 될 거라고 했다. 무당이 바다에 빠져 죽은 넋을 건져 올릴 거라고. 정확히는 무당이 아니라 심방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불렀다.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당연히 농담인 줄 알았다. 내가 아는 양 차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굿을 한다니. 그것도 아는 사람도 아니고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위해 제사를 올린다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주도의 밤이 푸른 이유는 어둠 속에 귀신이 섞여서 그런 거야.” 바다 위에는 아주 작은 불빛도 떠 있지 않았다. 양 차장의 말과 정반대로 하늘은 어두웠고 바다는 그것보다 더 어두웠다. 아득히 먼 곳에서 파도만 끊임없이 밀려왔다. 파도는 내 발밑에서 잠시 반짝이다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 지루한 반복을 지켜보면서 돌아갈 핑계를 찾았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보다 지금 내 처지가 더 분하고 답답했다. 도대체 난 무엇을 바라고 제주도까지 내려온 걸까? 양 차장이 이렇게 변해버린 줄 알았다면 아마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따가 상주 역할 좀 맡아줄 수 있어?” “제가 그런 걸 어떻게 해요.” “왜 못해? 현충원에서 대표로 묵념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은 꺼림칙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상주를 맡으라니. 부모님이 멀쩡히 살아계신데 그런 역할을 맡아도 되는 건가? 만약 그게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경험은 전혀 해보고 싶지 않았다. 상주는 심방이 칼을 들고 춤을 출 때 그 앞에서 미안하다고 흐느끼며 대신 매를 맞아야 했다. 양 차장은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딱히 그런 일을 자처해서 겪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냥 한 번 해봐. 시늉만 해보는 거야.” “진짜 싫어요. 아무리 차장님 부탁이라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남서쪽으로 내려오는 해안선을 따라 승합차 한 대가 전조등을 켜고 다가왔다. 승합차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지나 동쪽으로 향하다 문 닫은 어촌계 앞에서 차를 돌려 해변 뒤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시동이 켜진 상태로 문이 열렸고 차 안에서 네 사람이 내렸다. 셋은 남자였고 한 명은 여자였다. 그들은 모두 한복 위에 두툼한 패딩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어깨에 저마다 북과 장구, 징 같은 악기를 하나씩 짊어지고 서로 짝을 이뤄 무거운 상자를 옮겼다. 그들은 해변에 짐을 내려놓고 눈짓으로 인사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크기가 가장 큰 현무암 바위 앞에 모였다. 서로 손을 붙잡고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사장 위에 멍석이 깔리고 천막이 세워졌다. 멍석은 전통방식으로 짚을 엮어서 만든 것이었지만 천막은 철제 캐노피였다. 천막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네 귀퉁이 위에 큼지막한 돌멩이를 올려놓고 고정끈을 단단하게 묶었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준비하는 모습이 다들 전문가처럼 보였다. 천막 안에는 여섯 칸짜리 병풍을 펼쳤다. 그 앞에 직사각형 밥상을 놓고 놋으로 된 제기 위에 청귤과 보리빵, 고기산적을 올렸다. 작은 반상 위로 소주도 한 병 보였다. 여자는 소주를 노란색 주전자에 붓고 빈 병은 멍석 바깥쪽에 두었다. 그사이 남자들은 바지 끝단을 걷어붙이고 바다로 향했다. 현무암 바위에 오색 줄을 두르는데 뒷부분이 물에 조금 잠겨 있었다. 그들은 발이 젖어도 신경 쓰지 않고 줄을 동여맸다. 오색 줄은 어느 한 곳도 느슨하거나 처진 곳 없이 단단하게 묶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여자가 승합차로 돌아가 심방을 모셔왔다. 심방은 연세가 아주 많은 할머니였다. 흰색 고깔을 머리에 쓰고 붉은색 도복을 입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겉옷 밑단으로 삐져나온 도복이 부산하게 펄럭였다. 머리에 쓴 고깔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심방은 느리고 우아하게 한 걸음씩 바닷바람을 뚫고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을 내딛는 모습이 묘한 경외감을 주었다. * 휴가도 아닌데 주말에 일부러 제주도까지 내려온 이유는 양 차장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정기 인사를 앞두고 본부장이 새로 설립된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의 총괄 책임자로 양 차장을 추천했다. 본부장은 나를 따로 불러 양 차장의 의중을 알아보라고 시켰다. 전화로도 충분히 물을 수 있었던 일을 주말에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 이유는 나 또한 누구보다 양 차장의 복귀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양 차장은 마땅히 돌아와야 하는 사람이었다. 과수원 한가운데 귤 창고를 개조해 놓은 카페에서 양 차장을 만났다. 볕이 좋은 테라스에 앉아 청귤 라떼를 마시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남편과 아들의 장례식 이후로 일 년 반 만이었다. 그래도 표정이 전보다 한결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대화 중에 농담도 자주 섞었고 먼저 웃음을 보일 때도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는 괜찮아진 사람처럼 보였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일 수는 있게 된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오셔야죠. 이렇게 한가로운 곳에서 경력 다 썩히기는 아깝잖아요.” “제주도는 안 바쁜 줄 아니? 여기도 정신없어. 오히려 그때보다 시간이 더 부족해.” “여기는 안 어울려요. 화려하게 복귀하셔야죠. 그 덕에 저도 승진 좀 하고요.” 일부러 추켜세워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 양 차장의 경력은 은행 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영업점 경험은 기본이고 본부에서도 핵심 부서로 손꼽히는 자본시장부 출신이었다. 대리 때는 글로벌 인재로 선발되어 아이비리그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과장 때는 은행장의 비밀 장부라고 불리는 도쿄지점의 첫 여성 책임자로 발령받기도 했다. 이런 사람을 초임지 때 사수로 만난 건 내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실제로 아무 연줄도 없었던 내가 자본시장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양 차장의 추천 덕분이었다. “차장님 안 계시니까 저 완전 찬밥 됐어요. 승진도 벌써 몇 번째 밀리는지 몰라요.” “나 없어도 잘하잖아. 승진은 때가 되면 하게 될 거야.” “부사수를 끝까지 책임지셔야죠. 자꾸 이러시면 제가 제주도 따라옵니다.” 가족을 잃은 직후 양 차장은 은행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도 설득하기 위해 제주도까지 내려온 사람은 나였다. 인사부가 먼저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전례 없는 특혜지만 그만큼 사고가 비극적이었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모두 잃었다.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1139번 국도의 좁은 커브 길과 군데군데 얼어붙은 빙판, 그리고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은 두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양 차장의 미래까지도 한순간에 앗아갔다. “나 지금은 여기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야.” “어머니 따라서 귤 농사라도 이어받아요?” “그런 건 아니고. 궁금하면 너도 같이 가볼래?” 양 차장이 가방에서 팸플릿을 꺼냈다. 만장굴에 대한 안내 책자였다. 유네스코 삼관왕이라느니,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수식어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접혀 있는 종이를 펼치니까 그 안에 동굴 속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었다. 주석에는 이 동굴이 수십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화산 동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다 뭐냐고 묻자 수줍게 치아를 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고향을 잃은 사람에게 고향을 다시 돌려주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일을 하면 마음이 좀 나아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게 좀 도움이 되시냐고요.”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양 차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봤다. 말해 놓고 보니 마음이 뜨끔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양 차장은 잘못했다는 말을 싫어했다. 그때 당시 신입이었던 내가 어떤 실수를 저지르면 고개를 숙이거나 반성하지 말고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방안부터 제시하라고 다그쳤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거나 죄송하다면서 울먹거리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노력했어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책임을 질 뿐이다. 책임에는 후회와 반성이 필요하지 않다. 죄송하다는 말은 자기 연민일 뿐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의 양 차장은 그런 말을 단호하게 내뱉는 사람이었다. “차장님 혹시 예전에 저한테 자주 했던 말 기억하세요?” “어떤 말? 너한테 맨날 그만두라고 했던 거밖에 기억 안 나는데.” “은행원답지 않게 너무 사연에 연연한다면서요. 특히 신용평가표 작성할 때마다 그랬잖아요. 은행원은 모든 것을 숫자로 말하고, 숫자에는 구구절절한 서사가 없다.” 지점에서 처음 업무를 배울 때 내가 가장 어려웠던 것은 취급자 의견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대출을 해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단계인데 이상하게 반려되거나 보류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입이 올린 평가여서 더 까다롭게 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핵심적인 이유는 내가 그 의견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승인권자가 궁금해하는 건 차주가 어떤 곤란한 사정으로 어디에 쓰려고 돈을 빌리는지가 아니었다. 오직 담보와 소득, 매출액과 순수 자본 비율 등을 고려해 얼마나 보장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회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양 차장은 내게 서류를 검토할 때는 숫자만 정확히 산출하면 다른 것을 고민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고객마다 털어놓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정은 계산식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매출액과 영업이익처럼 계량화할 수 있는 수치뿐이라고. 숫자가 나쁘면 대출은 진행될 수 없었다. 반대로 숫자가 좋으면 필요하지 않더라도 대출을 적극적으로 권유해야 했다. 반기별로 할당되는 이익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기업이 아니라 돈을 갚을 수 있는 기업에 더 강하게 대출을 밀어줘야 했다. 그렇게 사정이 어려운 업체는 조금씩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여건이 되는 업체는 기존의 대출을 유지하기 위해 쓸데없는 대출을 추가로 끌어안았다. 한번은 그런 방식에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정말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대출이 나갈 수 없고,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대출을 밀어 넣는 일에 대해서. 당장 거래처에 문제가 생겨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소기업 사장에게 고금리의 제2금융권을 소개해 일정 비율 원금을 변제시킨다거나, 여유 자금이 생겨 대출을 갚겠다는 사람을 내부 평가 기간에 맞춰 억지로 미루게 하는 일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양 차장은 그런 걸 정상이라고 말했다. 정말 조금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은행이 자선단체는 아니잖아? 그 답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영리법인의 선과 정의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확신에 차 있던 사람이 이제는 제주도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 자카르타마저 포기한 채로. 아무리 사람이 쉽게 변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무책임할 정도로 변해 버린 것 같아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 굿당에 도착한 심방이 멍석 위에 고무신을 벗어 앞코를 뒤집어 놓았다. 옷매무새를 천천히 매만지며 비뚤어진 고깔부터 버선까지 다시 한번 점검했다. 덧신을 신고 멍석 위에서 채비를 갖추자 여자가 흰색 술을 가져왔다. 가닥이 풍성하고 끝이 구불구불한 술이었다. 심방은 술 안에 손가락을 넣어 위에서 아래로 몇 번 쓸어내렸다. 꼬여 있던 술이 한 올씩 풀리자 신기하게도 바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심방은 노란 주발에 쌀을 가득 담았다. 놋그릇 안에 흰 쌀을 붓고 무명으로 감쌌다. 쌀이 쏟아지지 않게 끈으로 단단하게 묶고 그 밑에 머리빗 하나와 소주병을 같이 얽어맸다. 무명천 밑에 매달린 머리빗과 소주병이 부딪치면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주변이 적막한 탓인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남자 중 한 명이 그걸 들고 바다로 향했다. 물에 잠긴 바위를 지나 더는 들어갈 수 없는 깊은 곳까지 걸었다. 달그락 소리는 무명천에 감싼 주발을 물속에 던져버리고 나서야 사라졌다. 바람이 그치자 파도의 기세도 한결 약해졌다. 여자가 소반을 들고 굿당에서 나왔다. 심방이 정해준 장소에 소반을 내려놓는데 제기 위에 있던 청귤 몇 개가 백사장 위에 떨어졌다. 여자는 그걸 주워 소매로 닦아 내게 하나 건넸다. 양 차장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두 손으로 받기는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쥐고만 있었다. 청귤은 전체적으로 녹색이었고 군데군데 노란 빛을 띠었다. 껍질은 무르지 않아 아직 단단했다. 양 차장이 내 손바닥에 놓인 것 중에 알이 작은 것 하나를 집어 향을 맡았다. “이촌역 지점에 있었을 때 모셨던 지점장님 기억나?” “저랑은 악연이에요. 그분이 고과를 긁어놔서 지금도 승진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퇴직해서 그런지 얼굴이 좋아졌더라. 청귤청도 두 상자나 사 갔어.” 이촌역 지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청귤 향이 떠올랐다. 양 차장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 청귤청이 지점장실뿐만 아니라 창구에도 하나씩 놓였다. 청귤차라는 게 별것도 아닌데 고객에게 반응이 좋았다. 상담할 때면 새콤달콤한 향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덕분에 고객에게 청귤차 한 잔을 내오는 건 이촌역 지점만의 특별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달콤한 차는 금리나 신용처럼 민감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씁쓸한 커피나 떫은 차를 대접할 때보다 더 대화가 잘 풀렸다. 설명 듣는 시간이 길어져도 불만이 적었다. 가끔은 어떤 상품에 가입해야 청귤청을 사은품으로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인기가 좋았던 청귤차가 지점에서 사라진 건 지점장과 양 차장이 언쟁을 한 이후부터였다. 두 사람이 다투게 된 원인은 내가 거절한 어떤 대출 때문이었다. 지점장은 자신의 친구라며 손님 한 명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직접 만나기도 전에 서류부터 건네는 게 처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 고객이 신청한 대출은 서민구제금융 대출이었다. 재직만 확인된다면 신용등급을 따지지 않는 상품이었다. 취급하기에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았다. 만약 돈을 갚지 못한다고 해도 국가기관에서 대신 갚는 담보 특약이 있어 부담이 적은 대출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고객이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차려 버린 것이었다. 지점장이 준 서류는 위조된 것이었다. 자신이 아는 업체 사장에게 부탁해 용역회사에서 청소직으로 근무하는 것처럼 꾸몄다. 건강보험료까지 정식으로 내고 있어 서류만으로는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내가 그게 위조라는 사실을 아예 몰랐다면 전혀 꺼릴 게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 고객이 폐암 4기이며, 이미 너무 많은 종류의 항암제를 써서 더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점장님은 곧 퇴직하니까 상관없었던 거예요.” 재직 문제로 대출이 어렵다고 보고하자 지점장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그러면서 유연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냐고 은근히 압박을 넣었다. 외부에서 감사가 나오더라도 서민구제금융은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따져보지 않는다면서 다시 한번 판단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류에 도장을 찍고 처리하면 모든 것이 내 책임이 될 것 같았다. 이대로는 진행할 수 없어 사수였던 양 차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양 차장은 길길이 날뛰며 곧바로 지점장에게 따졌다. 지점장은 한 걸음 물러서며 내 자율에 맡긴 거라며 선을 그었다. 그 말은 결국 내게 양 차장을 따를지 자신을 따를지 결정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점장이 나를 거칠게 몰아세웠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능숙한 사람이었다. 지점장은 그 동기가 외환위기 때 어쩔 수 없이 그만둔 사람이고, 그가 그만두지 않았다면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됐을 수도 있었다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내게 그런 걸 상상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제비뽑기처럼 누군가는 잘리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던 시대를. 아무 잘못도 없이 운이 조금 나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평생 어떤 수모와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 그런 말을 듣는 내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딱히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사정은 분명히 안타까웠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 같았다. * 멍석 위에 앉은 남자들이 악기를 집었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예행연습을 시작했다. 북채를 쥔 고수가 북을 두드리자 장고수가 장단을 더하며 합을 맞췄다. 징수는 징을 한 번 쳤다. 크고 웅장한 징소리가 먼바다까지 닿아 사라지면 다시 징을 쳤다. 심방은 징 소리에 맞춰 사방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장고수의 박자가 조금 빨라지자 심방이 천천히 춤사위를 시작했다. 버선발을 높게 세우고 두 팔을 하늘로 뻗었다가 무릎을 굽히면서 다시 땅 밑으로 늘어뜨렸다. 제자리에서 낮게 뛰기도 하고 절을 하듯 허리를 굽히기도 했다. 춤사위는 아주 느렸다가 갑자기 속도가 붙었다. 횟수가 반복될수록 동작이 조금씩 격해지고 빨라졌다. 북과 장구의 박자도 그에 맞춰 더 급해졌다. 어둠 속에서 흰색 술은 선명하게 빛났다. 밤바다 앞에서 흰색 궤적을 그리며 허공 위에 흔들렸다. 징수가 채를 한 번 휘두르면 하늘로 치솟았고, 고수가 매화점을 두드리면 땅으로 떨어졌다. 그 잔상은 구천을 떠도는 도깨비불 같다가도 업을 풀고 승천하는 혼령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부르면서도 내쫓는 것 같았고,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그 자국을 두 눈으로 좇다 보니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갈 것 같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주변에 사람이 늘어나 있었다. 뭔가에 홀린 것 같아 서둘러 돌아보는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자세히 보니 낮에 양 차장을 따라 만장굴에 갔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한낮이었지만 만장굴 내부는 굉장히 어두웠다. 입구에서 계단을 내려갈 때만 해도 땅속으로 들어간다는 걸 실감하지 못할 정도였다. 동굴이니까 어두운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어두운 줄은 몰랐다. 바닥에 설치된 조명은 박쥐 때문에 밝기를 제한하고 있었다. 굴의 내부는 좁고 어두워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 같은 걸 조금만 구경하려고 해도 금방 뒷사람이 다가왔다. 바닥은 또 울퉁불퉁해서 자주 돌부리에 걸렸고 천장에서 떨어진 물이 군데군데 고여 신경 써서 걷지 않으면 미끄러질 수도 있었다. 양 차장이 인솔한 단체는 오사카 지역의 이쿠노구에서 온 재일 교포 상인회였다. 조센이치바라고 불리는 시장의 정식 명칭은 미유키모리 쇼오텡가였지만 일본에서는 코리아타운이나 조선 시장 같은 속칭으로 더 유명하다고 했다. 내가 처음 들어본다고 하자 일행 중 비교적 한국말이 유창한 어떤 노인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킨테츠선의 츠루하시역과 이마자토역 사이에 작은 강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면 조센이치바가 나온다고. 과거에 제주에서 일본으로 떠난 사람 대부분이 그 일대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양 차장은 만장굴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는 거북바위 앞에서 일행을 모았다. 그곳에서 마이크를 켜고 거북바위와 해안동굴에 대한 설명을 잠깐 들려주었다. 노인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양 차장의 해설을 들었다. 바위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제주도와 닮아 있었다. 가운데 볼록한 부분은 한라산이 솟은 것 같았고, 전체적인 윤곽도 해안선과 비슷했다. 바위의 아래쪽에는 유선이 아직 남아 있었다. 동굴 벽면에 그려진 것과 거의 같은 높이였다. 아마도 천장에 붙어 있던 암석이 떨어졌을 때 그만큼의 수위로 용암이 흐른 것 같았다. 용암에 잠긴 부분은 모두 쓸려갔지만, 윗부분만큼은 섬처럼 남은 것이다. “화산 동굴은 용암의 겉과 속이 식는 속도가 달라서 생깁니다. 겉은 식어서 단단하게 굳지만 속은 여전히 뜨거운 상태로 계속 흘러 이렇게 텅 비는 거예요.” 설명을 다 듣고 동굴 속을 걷는데 생각보다 길이 일찍 끝나버렸다. 조류에 휩쓸리듯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더듬거리며 앞으로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공간이 넓어지고 조명이 환한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있고 비상 전화기 같은 것도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무너진 천장에서 용암이 쏟아져 내려 생긴 근사한 돌기둥 앞에서 줄지어 사진을 찍었다. 그제야 뒷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겨우 유선과 종유석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는데 우습게도 그곳이 반환점이었다. 반환점에서 노인은 눈을 감고 벽에 귀를 가져다 댄 채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용암 벽 너머로 무언가가 들리는 것처럼 두 손으로 귀를 모았다.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다. 손주들이 포켓몬스터와 던전 같은 단어를 내뱉으며 신나게 뛰어노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벽 안쪽의 소리를 들었다. 점자를 읽듯 조금씩 색이 다르고 층이 나누어진 선명한 가로줄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었다. 그는 그 벽 너머에 어렸을 때 들었던 소리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대낮의 호루라기 소리나 새벽녘의 군화 소리, 누군가가 끌려가며 질렀던 비명. 고막을 찢는 일방적인 사격 소리 같은 것들이었다. 기억이 청각으로만 남은 이유는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눈을 가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그때 자신의 두 눈을 덮어주었던 주름진 손바닥에 대해 회상했다. 노인을 지켜준 손은 여러 명의 것이었다. 해변에서는 아버지였고 방안에서는 어머니였다. 마을이 불탔을 때는 삼촌이 되었다가 밀항선에 숨을 때는 이웃집 아저씨가 되기도 했다. 그는 산지항에서 무역선 배 밑창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게 너무 후회된다면서 벽에서 귀를 떼지 못하고 오랫동안 흐느꼈다. 관람이 다 끝나고 양 차장은 그들에게 기념품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탁자 위에 장식용으로 두는 돌하르방이었다. 돌하르방은 겨울 모자를 눌러쓰고 양손을 가슴과 배 위에 올려놓았다. 돌하르방의 모습은 어쩐지 지점장의 친구였던 그 고객과 닮은 것처럼 보였다. 그 고객은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빠진 머리털을 가리려고 모자를 썼다. 스테로이드와 호르몬 약의 부작용으로 눈과 코가 부어올랐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했다. 그와 마주 앉은 것은 아주 잠깐뿐이었지만 그 인상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다. * 본격적으로 굿판이 시작됐다. 구경하는 사람은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진지하게 제사를 지켜봤다. 낮에 본 노인은 맨발로 천막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나머지는 자리가 부족해 모래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모 뒤에 몸을 숨겼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붉은 도복에 흰 고깔을 쓴 심방이 무서운지 실눈을 뜨거나 아예 눈을 감아버린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돌하르방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낮에 들은 설명 때문인 것 같았다. 양 차장은 마을마다 돌하르방을 세우는 목적이 복을 기원하는 게 아니라 화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심방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가 직사각형의 종이를 조심스럽게 들고 왔다. 중간에 가짜 돈이 매달려 있고 위쪽이 삼각형으로 접혀 있는 종이였다. 여자는 그 종이를 심방의 등 뒤에 붙였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심방의 걸음걸이와 표정이 바뀌었다. 심방은 주위에 모인 모든 사람을 데리고 바다로 나가 짚으로 만든 인형을 내려놓았다. 파도는 작게 들이쳐 인형의 밑을 적셨다가 빠져나갔다. 인형에 수의를 입히고 염포로 단단하게 묶었다. 두꺼운 상자를 펼쳐 상여를 만들고 그 위에 인형을 시체처럼 올렸다. “인형에 염을 하고 나면 굿당 가운데 잠깐 앉아 있어 줘.” “저는 진짜 못하겠어요. 솔직히 이게 다 뭐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나 대신한다고 생각해. 나도 그런 적 있었잖아.” 최후의 일격처럼 긴 파도가 뭍 안쪽으로 깊이 밀려들어 왔다. 파도는 양 차장의 운동화를 덮치고 용왕상까지 닿았다. 파도에 두 발이 다 젖었는데도 양 차장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멍석 귀퉁이에 올려놓고 맨발로 모래를 밟고 섰다. 발이 시릴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심방이 염포의 끝을 넉넉하게 잡고 내게 건넸다. 그걸로 상여를 굿당까지 끌고 오라는 것 같았다. 당황해서 멀뚱히 있자 양 차장이 등을 떠밀었다. 왜 내가 이런 일까지 맡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이상했다. 시키는 대로 일단 상여를 억지로 끌고 와 굿당 앞에 놓았다. 신발을 벗어 멍석 중앙에 앉아 무릎을 꿇었다. 그 사이 무아지경에 빠진 심방의 무용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무악은 요란해졌고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곡을 시작했다. 곡소리와 북소리가 절정에 닫자 심방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한순간에 춤이 멈추고 심방이 내 앞에 우뚝 섰다. 흰색 술을 바닥에 내려놓고 댓가지를 꺾어 만든 기다란 회초리 묶음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걸로 내 등을 내리쳤다. 댓가지가 얇아서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 대 두 대 맞을 때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이유로 매를 맞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지점장이 지시했던 대출은 결국 불가 판정을 내렸다. 내게는 지점장보다는 양 차장에게 잘 보이는 게 중요했다. 지점장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만 그를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보고 다시 결정하라고 부탁했다. 그 고객이 직접 찾아온다고 해서 위조된 서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내 입으로 직접 거절의 뜻을 전하라는 의도였다. 자신이 맡기 싫은 역할을 내게 떠넘기는 짓이었다. 지점으로 찾아온 그 고객은 행색이 지나치게 초라했다. 오랫동안 고생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비굴함이 몸 전체에 배어 있었다. 그는 나를 계장님이라고 깍듯이 호칭했다. 의례적으로 묻는 말에도 변명하듯 눈치를 보며 둘러댔다. 차라리 선배라고 거들먹거리는 부류였다면 거절하기가 더 나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대출이 어렵다는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양 차장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그를 칼같이 잘라내지 못했다. 그에게 대출이 거절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양 차장이었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양 차장이 도와주려고 다가왔다. 양 차장은 그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자리를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 고객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단 한 칸 옆으로 옮기는 것뿐이었지만 그를 비추고 있던 어떤 불빛 같은 게 꺼지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곤란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한 번 더 사과했다. 창구에 앉아 그가 떠난 의자를 바라보면서 대화를 엿들었다. 대출이 안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 듣는 동안 그는 계속 기침을 쏟았다. 입안이 바짝 말랐는지 마른 혀를 계속 다시는데도 양 차장은 능숙하게 키보드만 두드렸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지점에서 청귤청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지점장이 자신의 집무실에 있던 것을 치우게 하자 창구에 놓였던 것도 자연스럽게 버려졌다. 그 외에는 딱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점장과의 신경전도 끝났고 우려했던 인사 보복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다만 나는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아무도 없는 지점에 나와 그 고객이 단둘이 마주 앉아 있는 꿈이었다. 그 꿈은 지금도 가끔 꿀 때가 있었다. 꿈속에서 그 고객은 날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 앉아 기침을 쏟을 뿐이었다. 나 역시도 딱히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몇 번을 곱씹어도 그날의 결정은 옳은 일이었다. 다만 후회하는 것은 그때 내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오지 못한 것이었다. 야윈 목에서 쏟아지는 메마른 기침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에게 청귤차 한 잔을 권하지 않았다. 아무리 잘못한 게 없더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설운 어멍아 이런 변고가 어디 있수광. 구름 질로 바람 질로 고향산천 온 줄 모릅니까. 한 달을 그물고 두 달을 그물어도 경해도 원망하고 있수광. 이승에서 못한 것 저승에서 허쿠다. 잘들 삽서 하다하다 걱정말앙 잡들삽서. 살암시민 살암십서.” 심방이 백안을 뜨고 귀신에 씐 것처럼 여러 목소리를 냈다. 노인처럼 한탄하다가 아기처럼 울었고 남자처럼 화를 내다가 여자처럼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엎드려 있었다. 양 차장은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듯 무언가를 빌었다. 나는 시킨 대로 고맙수다 라고 말하며 심방에게 절을 해봤다. 고맙수다, 고맙수다. 기계적으로 말을 반복할 뿐인데도 내가 진짜 상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방은 매질을 멈추고 제풀에 꺾인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멀리 바다를 바라봤다. 밤하늘은 여전히 별도 없이 캄캄했지만,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그 밑이 아주 조금은 푸른 듯 보였다.
  • ‘국민검찰’ 강조 윤석열…“박찬호같이 말하는거 좋아해”(종합)

    ‘국민검찰’ 강조 윤석열…“박찬호같이 말하는거 좋아해”(종합)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으로 두 차례나 직무에 배제됐다가 다시 출근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31일 검찰 직원들에 보낸 신년사를 통해 ‘국민의 검찰’을 강조했다. 윤 총장은 신년사에서 “검찰개혁의 목적과 방향이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이 되어야한다”면서 “‘국민의 검찰’이란 오로지 그 권한의 원천인 국민만 바라보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윤 총장은 “‘공정한 검찰’이란 수사착수, 소추, 공판, 형 집행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편파적이지 않고, 선입견을 갖지 않으며, 범죄방지라는 공익을 위해 부여된 우월적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검찰 조직이 법률전문가 집단으로서 “국민들이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까지 방어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며 더 낮고 겸손한 자세로 사건관계인의 말을 경청할 것을 주문했다. 윤 총장은 1월1일 시행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등에 대해 “‘공정한 검찰’과 ‘국민의 검찰’은 ‘인권 검찰’의 토대가 된다”면서 “실질적인 ‘인권 검찰’은 ‘공정한 검찰’과 ‘국민의 검찰’의 자세로 법집행을 할 때 이뤄질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직장인들의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에 대검찰청 직원이 올린 윤 총장에 대한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블라인드는 직장 명의 이메일을 인증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익명 게시판으로 직장인들의 대나무숲으로 불린다. 대검 직원은 “민주당에서는 검찰 보스라지만 윤 총장은 같이 근무하는 8급 수사관, 청소하시는 같은 층 여사님까지 진심으로 챙긴다”며 “그냥 (야구선수) 박찬호같이 말하는 거 좋아해서 정이 많은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이어 징계로 업무가 정지되어 나가는 날에도 막내 수사관이 메신저로 쪽지를 보내자 읽자마자 답장을 해줬다고 덧붙였다.윤 총장이 원래 밤에 집 근처에서 부르면 나와서 술값을 내주는데 수사관들끼리 술마시다 밤 10시에 전화를 했지만 안 나왔다가 다음날 컨디션 안 좋아서 미안했다며 돈을 보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대검 직원은 “이용구(법무부차관)나 박범계(법무부장관 후보자)나 형형 거리는데 그냥 형형 불러도 받아주니 저러는 것”이라며 “못된 형한테 절대 못 그러지 않나”라고 법조계에서 윤 총장의 높은 신망에 대한 촌평을 보탰다. 또 윤 총장이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좌천됐을 때도 저녁에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먹고 야근하던 모습에 직원들이 반했다고 덧붙였다. 이 직원은 “정권에 찍혀서 좌천됐는데 그냥 일반 형사 깡치사건(수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관련자가 많은 복잡한 사건) 붙들고 혼자 밤새가면서 일하던 모습을 봤다는 증언이 계속 나온다”면서 “당시 대구고검에서 행사 사진 올린거보면 저 뒤에 혼자 서있어서 진짜 불쌍한데 이 때는 윤 총장이 정권에서 찍힌 사람이라 가까이하기 힘들었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마스크 써달라는 게 맞을 짓입니까”…매일 불안에 떠는 편의점

    “마스크 써달라는 게 맞을 짓입니까”…매일 불안에 떠는 편의점

    “이런 싸가지 없는 X.” 경북 지역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최민희(34·이하 가명)씨가 지난달 야간 근무 중에 한 손님한테 들은 말이다. 손님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편의점에 들어왔다. 최씨는 손님에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편의점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안내했다. 그러자 손님은 욕설을 하며 “너, 내가 내일 마스크 쓰고 다시 올 건데 그땐 어떻게 하나 보자”고 위협했다. 하루 2~3명 꼴 ‘노마스크’···입만 가려놓고 “썼잖아” 최씨는 “깜빡 잊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손님은 거의 없고, 대부분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냐’면서 폭언을 하고 비아냥거린다”며 “‘입스크’(마스크로 입만 가림)를 하고도 당당하게 ‘마스크 꼈잖아. 그럼 된 거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개인의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가 절실한 상황에서 마스크로 코와 입을 제대로 가리지 않는 ‘노마스크’ 손님들 때문에 편의점 주인과 직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현재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 모든 시설의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와 2.5단계 조치가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일부 손님들은 마스크 착용을 안내하는 편의점 주인과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준석(38)씨는 “하루에 2~3명꼴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손님들이 편의점을 방문한다”면서 “지난주에 마스크를 안 쓴 손님에게 마스크 착용을 안내했더니 손님이 ‘내가 하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이야? 내가 빨리 나가면 되잖아?’라고 반말하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고 말했다. 지난 11일에는 경기 성남의 한 편의점에서 ‘턱스크’(마스크로 턱만 가림)를 한 손님이 마스크 착용을 안내한 편의점 주인을 폭행해 전치 2주 등의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과태료도 무용지물··· “왜 우리한테 화내죠?” 현행 감염병예방법은 시설 관리·운영자가 시설 이용자에게 마스크 착용 등 방역지침 준수를 안내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시설 이용자에게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안내조차 ‘노마스크’ 손님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최씨는 “과태료 부과 얘기를 해도 ‘여기가 서울이냐’, ‘수도권만 그런거다’, ‘네가 300만원 내면 되겠네’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한씨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최근 1000명대에 달하고 감염경로를 확인하기 어려운 확진자 수가 늘고 있다보니 지금은 ‘노마스크’ 손님 때문에 과태료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예방이 더 신경이 쓰이는 상황”이라며 “마스크를 안 쓴 손님들이 왜 우리에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음식물 던지고 행패···보복 무서워 신고도 못해 정부는 식당 내 식사를 제한(오후 9시 이후에는 포장·배달만 허용)한 방역조치를 편의점에도 적용 중이다 서울시는 오후 9시 이후에는 편의점 안팎에서 취식을 금지하는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1일 새벽 인천 연수구의 한 편의점에선 한 남성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매장에 들어와 음식을 먹다가 이를 제지하는 직원을 향해 샌드위치와 우유를 집어던지고 달아나기도 했다.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김민혁(27)씨는 “최근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에 편의점에 와서 캔커피를 산 손님이 야외 탁자에서 일행과 함께 앉아 캔커피를 마시려고 했다. 지금은 탁자를 이용할 수 없다고 했더니 손님이 저한테 ‘네가 뭔데 어린 놈의 XX가 나한테 비키라 마라야!’라고 화를 냈다”며 “잘못은 그 손님이 했지만 매장에 더 큰 피해가 갈까봐 저에게 사과를 요구한 그 손님한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고 말했다. 최씨도 “밤에 혼자 일하는데 마스크를 안 쓴 손님이 편의점에 와서 행패를 부려도 보복 우려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국민검찰’ 강조 윤석열…“박찬호같이 말하는거 좋아해”

    ‘국민검찰’ 강조 윤석열…“박찬호같이 말하는거 좋아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으로 두 차례나 직무에 배제됐다가 다시 출근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31일 검찰 직원들에 보낸 신년사를 통해 ‘국민의 검찰’을 강조했다. 윤 총장은 신년사에서 “검찰개혁의 목적과 방향이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이 되어야한다”면서 “‘국민의 검찰’이란 오로지 그 권한의 원천인 국민만 바라보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윤 총장은 “‘공정한 검찰’이란 수사착수, 소추, 공판, 형 집행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편파적이지 않고, 선입견을 갖지 않으며, 범죄방지라는 공익을 위해 부여된 우월적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검찰 조직이 법률전문가 집단으로서 “국민들이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까지 방어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며 더 낮고 겸손한 자세로 사건관계인의 말을 경청할 것을 주문했다. 윤 총장은 1월1일 시행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등에 대해 “‘공정한 검찰’과 ‘국민의 검찰’은 ‘인권 검찰’의 토대가 된다”면서 “실질적인 ‘인권 검찰’은 ‘공정한 검찰’과 ‘국민의 검찰’의 자세로 법집행을 할 때 이뤄질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직장인들의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에 대검찰청 직원이 올린 윤 총장에 대한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블라인드는 직장 명의 이메일을 인증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익명 게시판으로 직장인들의 대나무숲으로 불린다. 대검 직원은 “민주당에서는 검찰 보스라지만 윤 총장은 같이 근무하는 8급 수사관, 청소하시는 같은 층 여사님까지 진심으로 챙긴다”며 “그냥 (야구선수) 박찬호같이 말하는 거 좋아해서 정이 많은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이어 징계로 업무가 정지되어 나가는 날에도 막내 수사관이 메신저로 쪽지를 보내자 읽자마자 다 답장을 해줬다고 덧붙였다. 윤 총장이 원래 밤에 집 근처에서 부르면 나와서 술값을 내주는데 수사관들끼리 술마시다 밤 10시에 전화를 했지만 안 나왔다가 다음날 컨디션 안 좋아서 미안했다며 돈을 보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대검 직원은 “이용구(법무부차관)나 박범계(법무부장관 후보자)나 형형 거리는데 그냥 형형 불러도 받아주니 저러는 것”이라며 “못된 형한테 절대 못 그러지 않나”라고 법조계에서 윤 총장의 높은 신망에 대한 촌평을 보탰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75세 옵티머스 피해자 ‘191일째 투사’

    75세 옵티머스 피해자 ‘191일째 투사’

    사모펀드 사기로 피눈물 흘린 유혜경씨 “남편 유산 잃고 매일 피켓 들고 거리로PB 말 믿고 투자했으니 판매사도 책임”“해 넘기면 일흔여섯인데 매일 추위에 떨고 있으니 힘들죠.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나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길 것 아니겠어요?” 3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만난 유혜경(75)씨는 191일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는 올 한 해 세상을 시끄럽게 한 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건의 피해자다. 피해 사실을 안 초여름 시작한 시위를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계속하고 있다. 옵티머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청사 앞은 물론 NH투자증권 본사와 금융감독원, 국회, 청와대 등 관련 기관을 돌며 마라톤 시위를 하고 있다. 유씨는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해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처벌받아야 피해자 배상 문제도 해결될 것 같아 검찰청사 앞으로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칠순이 넘도록 청와대나 법원 등 권력기관과는 무관하게 살아 온 유씨가 시위를 하면서 목격한 풍경들은 씁쓸했다. 그는 “이곳저곳에 오랫동안 혼자 서 있다 보니 억울함을 호소하는 여러 시위대를 만났다”면서 “정치인들도 처음에는 관심을 갖지만, 적지 않은 문제들이 결국 정치 공방으로 끝나더라”고 말했다. 유씨는 지난해 먼저 떠난 남편의 유산 5억원을 옵티머스 펀드에 넣었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사치 한 번 안 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평생 일해 모은 돈이다. 남편이 남긴 돈을 생활비 삼아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노후를 보내려 했지만 펀드 사기 사건에 얽히면서 ‘투사’가 돼 버렸다. 옵티머스 펀드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유씨처럼 노후자금을 날린 고령자다. 생업 때문에, 몸이 불편해 시위에 동참하지 못한 피해자들은 유씨에게 미안해하며 메신저 등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조금만 서 있으면 발목이 시큰하지만 시위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 유씨 등 피해자들은 사기 주범인 옵티머스 자산운용은 물론 판매사인 NH투자증권 등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증권사 고객이던 노인들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해 매우 안전한 상품’이라는 프라이빗뱅커(PB)의 말을 믿고 투자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나같이 평범한 노인이 피켓을 들고 악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된 게 안타깝다”면서 “금융사가 점점 탐욕스러워지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씨는 “예전에도 금융 사기가 있었을 텐데 그때 책임자가 처벌받고 피해자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관행이 만들어졌다면 우리 같은 피해자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적당히 위기만 모면하려는 금융사들의 태도를 바꿔 내려면 자신이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씨는 “완전 배상이 결정될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 금액보다 마음입니다… 저금통 깬 기초수급 어르신

    금액보다 마음입니다… 저금통 깬 기초수급 어르신

    “너무 적은 금액이라 쑥스럽지만, 그래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은평구 불광2동 주민센터에 한 노인 A씨가 찾아왔다. A씨는 빨간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이런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복지팀 직원에게 전달했다. 저금통에는 A씨가 차곡차곡 모아 온 동전 10원, 50원짜리가 있었다. 금액은 총 1만 4480원이었다. A씨는 “너무 적은 금액이라 쑥스럽지만,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A씨는 지역의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자투리 돈이 남을 때마다 저금통에 저금을 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저금통의 일부 동전을 빼서 사용해 미안하다”며 “나중에 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주민센터를 나섰다. 고범석 불광2동 동장은 “금액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며 “코로나19 등으로 올해 겨울 유난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그 마음이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 동장은 “노인이 기부한 돈은 ‘따뜻한 겨울나기’ 사업에 보태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금액보다 마음입니다… 저금통 깬 기초수급 어르신

    금액보다 마음입니다… 저금통 깬 기초수급 어르신

    “너무 적은 금액이라 쑥스럽지만, 그래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은평구 불광2동 주민센터에 한 노인 A씨가 찾아왔다. A씨는 빨간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이런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복지팀 직원에게 전달했다. 저금통에는 A씨가 차곡차곡 모아 온 동전 10원, 50원짜리가 있었다. 금액은 총 1만 4480원이었다. A씨는 “너무 적은 금액이라 쑥스럽지만,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A씨는 지역의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자투리 돈이 남을 때마다 저금통에 저금을 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저금통의 일부 동전을 빼서 사용해 미안하다”며 “나중에 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주민센터를 나섰다. 고범석 불광2동 동장은 “금액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며 “코로나19 등으로 올해 겨울 유난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그 마음이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 동장은 “노인이 기부한 돈은 ‘따뜻한 겨울나기’ 사업에 보태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결혼식 나타난 전 남친 탓에 실신한 인니 신부 (영상)

    결혼식 나타난 전 남친 탓에 실신한 인니 신부 (영상)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한 결혼식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SNS상에서 화제에 올랐다. 한 하객이 “신랑에게 동정이 간다. 아무래도 신부는 아직 전 남자 친구를 잊지 못한 것 같다”는 글과 함께 트위터에 공유한 이 영상은 135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콤파스 등 주요 매체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롬복 섬 동쪽 라부안 롬복 마을에서 한 젊은 남녀의 결혼식이 열렸다. 이날 식장에는 많은 하객이 모여 단상에 앉아 있는 신랑과 신부를 둘러싸고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한 남성이 신랑과 신부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이 남성은 단상에 오르자 마자 신랑과 축하의 포옹을 나눴다. 그런데 갑자기 그 옆에 있던 신부가 남성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신부의 가족들은 황급히 남성을 데리고 나갔지만 신부는 옆에 신랑이 있는데도 남성을 쫓아가려고 해 주위에서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엄숙하게 치러지던 결혼식은 이 남성의 출현으로, 신부의 고함 소리와 난감해진 하객들의 말 소리로 어수선해졌다. 울부짖던 신부는 감정이 너무 격해진 탓인지 그 자리에서 실신해 고개를 떨구고 쓰러졌다. 실제로 이번 소동의 원인이 된 남성은 신부의 남자 친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부는 갑자기 나타난 남성의 모습에 아직 마음의 정리를 다하지 못해서인지 당황했던 모양이다.에이드리언 히다얏이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나중에 SNS를 통해 “결혼식을 망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번에는 신랑 측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아 결혼식에 참석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남성은 또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신랑과 신부를 축하하기 위해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었다”면서 “신랑과 그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데디라는 이름의 신랑은 아올리나 알피아 레스타리라는 이름의 신부가 이날 벌인 행동에 대해 이미 용서했다고 콤파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또 “아내도 그녀의 가족도 이제 괜찮아졌다”면서 “난 아내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시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박주민 ‘쌈짓돈’ 발언에 조은희 구청장 “‘서민증세’가 문제”

    박주민 ‘쌈짓돈’ 발언에 조은희 구청장 “‘서민증세’가 문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재산세 절반을 깎아주겠다고 나선 조은희 서초구청장을 향해 “세금은 구청장의 쌈짓돈이 아니다”라고 하자 조 구청장이 강하게 반발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서초구의 재산세 50% 환급 조치에 대해 “정말 황당한 일”이라며 “언제부터 세금이 구청장이 흥정하듯 깎아주고 말고 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 구청장이 재산세를 깎아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강남3구에서 재산세가 많이 걷히기 때문이라면서 작년 기준으로 강남3구의 재산세 징수액이 서울시 전체 재산세의 27.4%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 구청장은 29일 “거꾸로 가는 대통령의 ‘서민증세’가 문제 아닌가요?”라며 “번짓수 제대로 찾아 화살돌리라”고 반박했다. 조 구청장은 친문 핵심인 박 의원의 서초구 재산세 환급에 대한 발언이 ‘적반하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3년반 내내 ‘서민증세’를 해온 대통령에게는 쓴소리 한마디 못하고, 세금을 환급하는 유일한 야당 구청장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렸다”면서 “‘우리 국민이 대통령의 화수분 아니다’라고 대통령에게 고언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어 조 구청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2017년 5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6억 635만원이었는데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불과 3년 반 동안 50%, 즉 평균 3억원이 넘게 집값을 올려놓고 세금을 더 걷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박 의원이 서초구의 재산세가 많이 걷힌다고 한 부분은 2008년 재산세 공동과세가 실시된 이후부터 매년 서초구 재산세 절반이 서울시로 가는 ‘(민주당에) 불편한 진실’을 쏙 빼놓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올해에도 서초구 재산세 절반인 1809억원이 서울시 통장에 입금됐다고 조 구청장은 덧붙였다. 조 구청장은 “박 의원 지역인 은평구도 2017년 30억이었지만, 2020년 151억원으로 재산세 부과금이 크게 늘어 서민들이 세금폭탄을 맞고 있는데 지역구민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라면서 “서초구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어 재산세를 환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위기상황과 재산세 급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예산을 절약해서 돌려드리는 ‘정성’을 보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코로나 속 추·윤 갈등에 갈라지고, 봉준호·BTS에 위로받다

    코로나 속 추·윤 갈등에 갈라지고, 봉준호·BTS에 위로받다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상을 거머쥐었고 BTS는 빌보드 기록을 갈아치웠다. 상상이 현실이 된 쾌거를 오롯이 만끽하지 못했던 것은 코로나19의 기습 탓이었다. 4·15 총선에서는 여당이 압승을 거뒀고, 집값은 농담처럼 치솟았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에 날이 지새다시피 했다.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2020년 국내 주요 사건들을 인물로 되짚어 봤다.●봉준호·방탄소년단한국 첫 오스카·빌보드 싹쓸이 세계 영화사와 음악사에 깨지기 힘든 기록을 남기며 전 세계 시선을 한국 문화에 집중시켰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기생충’으로 지난해부터 각종 국제영화제 상을 ‘수거’하더니 지난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등 4관왕에 등극했다. 한국 최초는 물론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첫 사례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2월 빌보드 ‘소셜 50’ 164번째 1위에 오르며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고, 9월 영어곡 ‘다이너마이트’와 12월 한국어곡 ‘라이프 고스 온’으로 빌보드 싱글 1위에 연이어 올랐다. 비지스만큼(3개월간 3곡 1위), 비틀스만큼(2년 6개월간 앨범 5장 1위) 빠르고 많은 기록이다. 내년 그래미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그들의 여정은 계속된다.●추미애·윤석열1년 내내 정국 달군 ‘추·윤 갈등’ 지난해 7월 검찰 수장에 오른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와 울산선거 비리 의혹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로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결국 올 1월 취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결국 채널A 사건과 관련한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본격화됐다.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데 이어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배제 명령을 내리면서 ‘추·윤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법원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집행정지를 결정하면서 윤 총장의 승리로 귀결됐다. 임기 내내 무리수를 남발한 추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 표명을 한 뒤 사표 수리를 앞두고 있다.●여권 잠룡 이낙연·이재명엄중 낙연·사이다 재명 ‘양강 구도’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에서 압승하며 사상 초유의 ‘180석 여당’이 탄생했다. 부동산 3법, 임대차 3법, 공수처법 등 권력기관 개혁 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압승과 독주의 중심에는 ‘어대후’(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낙연)로 불리는 이낙연 당 대표가 있었다. 입법 독주와 검찰개혁의 부작용이 이 대표의 발목을 잡는 사이 공직선거법 무죄를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지율이 상승해 이 대표와 동률이 됐다. ‘엄중 낙연’과 ‘사이다 재명’의 여권 양강 구도는 새해에도 이어질까.●김여정·南 공무원 피살 사무소 폭파 등 얼어붙은 남북관계 지난 6월 16일 북한이 남북 협력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했던 북한의 ‘2인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에 강력 반발하며 건물 폭파를 주도했다. 9월 22일 북한군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을 사살하고 잔혹하게 불에 태운 사건은 경색된 남북 관계를 더 얼어붙게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다”는 통지문을 보냈지만, 남북 관계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故 박원순 서울시장 최장수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극단적 선택 3180일간 서울시를 이끌며 최장수 서울특별시장 기록을 이어 가던 박원순 전 시장은 지난 7월 10일 북악산 숙정문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비서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오기 직전 홀로 관사를 나선 그의 사인은 극단적 선택에 의한 것으로 수사 당국은 결론 내렸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전 시장은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는 등 한국 시민사회 운동사의 중심에 있었다. 201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서울시장에 오른 뒤 내리 3선에 성공, 10년 가까이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됐다.●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하늘로 떠난 반도체 신화·혁신 경영의 리더 ‘대한민국 반도체 강국’의 신화를 일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월 25일 별세했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지 6년 반 만이었다. 1987년 45세로 삼성전자 회장에 올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혁신 경영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냈다. 하지만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 불법 비자금 조성, 무조노 경영 등으로 우리 사회에 어두운 유산을 남겼다. 지난해 말부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등 1·2세대 ‘재계 거인’들이 줄줄이 퇴장했다.●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 K방역의 중심 ‘바이러스 전사’ ‘올해의 여성 100인’(BBC),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K방역의 중심에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이 늘 있었다. 지난 1월부터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을 맡아 정례브리핑을 통해 감염 상황을 알리고 생활방역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한마디, 한마디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외유내강의 뚝심으로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바이러스 전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어깨 골절로 입원했다가 엿새 만에 깁스를 한 채 코로나19 점검 회의에 복귀한 모습에 응원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박사방’ 조주빈 ‘디지털 성범죄’ 단죄 징역 40년형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을 통해 아동·여성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지난 3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검거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성범죄에 관대하다는 비판을 받던 법원은 지난달 1심에서 조씨에게 이례적으로 징역 40년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조씨의 공범들, 텔레그램 성범죄 원조인 ‘n번방’ 운영자 ‘갓갓’ 문형욱(25)을 비롯해 성착취물 구매자 등 지금까지 검거된 피의자만 2800명이 넘는다. 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단죄뿐만 아니라 1000여명에 달하는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피해 회복이 과제로 남았다.●‘여성인권 운동가’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의 위안부 운동·기부금 폭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 운동가인 이용수(92) 할머니는 지난 5월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비판했다. 30년 가까이 ‘위안부 운동’을 주도한 윤 의원이 피해자들을 기부금 모금에 이용했으며 수요집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증오와 상처만 가르친다고 지적했다. 이 할머니의 폭로를 계기로 윤 의원과 정의연의 기부금 유용 및 회계부정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윤 의원을 1억원 유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윤 의원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김현미 前국토부 장관 집값 광풍에 ‘대책 남발 장관’ 오명 전국에 불어닥친 집값·전셋값 상승 광풍을 일으켜 ‘대책 남발 장관’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현 정권 출범과 동시에 임명돼 최장수 국토교통부 장관 기록을 세웠지만, 24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의 불신이 증폭되면서 결국 개각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치인 출신 장관답게 청와대의 의중을 부동산 정책으로 밀어붙인 실세 국무위원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생집망’의 신조어와 함께 기록적 집값 폭등의 책임을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 코로나 속 추·윤 갈등에 갈라지고, 봉준호·BTS에 위로받다

    코로나 속 추·윤 갈등에 갈라지고, 봉준호·BTS에 위로받다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상을 거머쥐었고 BTS는 빌보드 기록을 갈아치웠다. 상상이 현실이 된 쾌거를 오롯이 만끽하지 못했던 것은 코로나19의 기습 탓이었다. 4·15 총선에서는 여당이 압승을 거뒀고, 집값은 농담처럼 치솟았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에 날이 지새다시피 했다.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2020년 국내 주요 사건들을 인물로 되짚어 봤다.① 봉준호·방탄소년단한국 첫 오스카·빌보드 싹쓸이 세계 영화사와 음악사에 깨지기 힘든 기록을 남기며 전 세계 시선을 한국 문화에 집중시켰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기생충’으로 지난해부터 각종 국제영화제 상을 ‘수거’하더니 지난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등 4관왕에 등극했다. 한국 최초는 물론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첫 사례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2월 빌보드 ‘소셜 50’ 164번째 1위에 오르며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고, 9월 영어곡 ‘다이너마이트’와 12월 한국어곡 ‘라이프 고스 온’으로 빌보드 싱글 1위에 연이어 올랐다. 비지스만큼(3개월간 3곡 1위), 비틀스만큼(2년 6개월간 앨범 5장 1위) 빠르고 많은 기록이다. 내년 그래미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그들의 여정은 계속된다.② 추미애·윤석열1년 내내 정국 달군 ‘추·윤 갈등’ 지난해 7월 검찰 수장에 오른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와 울산선거 비리 의혹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로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결국 올 1월 취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결국 채널A 사건과 관련한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본격화됐다.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데 이어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배제 명령을 내리면서 ‘추·윤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법원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집행정지를 결정하면서 윤 총장의 승리로 귀결됐다. 임기 내내 무리수를 남발한 추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 표명을 한 뒤 사표 수리를 앞두고 있다.③ 여권 잠룡 이낙연·이재명엄중 낙연·사이다 재명 ‘양강 구도’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에서 압승하며 사상 초유의 ‘180석 여당’이 탄생했다. 부동산 3법, 임대차 3법, 공수처법 등 권력기관 개혁 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압승과 독주의 중심에는 ‘어대후’(어차피 대통령 후보는 이낙연)로 불리는 이낙연 당 대표가 있었다. 입법 독주와 검찰개혁의 부작용이 이 대표의 발목을 잡는 사이 공직선거법 무죄를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지율이 상승해 이 대표와 동률이 됐다. ‘엄중 낙연’과 ‘사이다 재명’의 여권 양강 구도는 새해에도 이어질까.④ 김여정·南 공무원 피살사무소 폭파 등 얼어붙은 남북관계 지난 6월 16일 북한이 남북 협력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했던 북한의 ‘2인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에 강력 반발하며 건물 폭파를 주도했다. 9월 22일 북한군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을 사살하고 잔혹하게 불에 태운 사건은 경색된 남북 관계를 더 얼어붙게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다”는 통지문을 보냈지만, 남북 관계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⑤ 故 박원순 서울시장최장수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극단적 선택 3180일간 서울시를 이끌며 최장수 서울특별시장 기록을 이어 가던 박원순 전 시장은 지난 7월 10일 북악산 숙정문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비서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오기 직전 홀로 관사를 나선 그의 사인은 극단적 선택에 의한 것으로 수사 당국은 결론 내렸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전 시장은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는 등 한국 시민사회 운동사의 중심에 있었다. 201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서울시장에 오른 뒤 내리 3선에 성공, 10년 가까이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됐다.⑥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하늘로 떠난 반도체 신화·혁신 경영의 리더 ‘대한민국 반도체 강국’의 신화를 일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월 25일 별세했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지 6년 반 만이었다. 1987년 45세로 삼성전자 회장에 올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혁신 경영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냈다. 하지만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 불법 비자금 조성, 무조노 경영 등으로 우리 사회에 어두운 유산을 남겼다. 지난해 말부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등 1·2세대 ‘재계 거인’들이 줄줄이 퇴장했다.⑦ 김현미 前국토부 장관집값 광풍에 ‘대책 남발 장관’ 오명 전국에 불어닥친 집값·전셋값 상승 광풍을 일으켜 ‘대책 남발 장관’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현 정권 출범과 동시에 임명돼 최장수 국토교통부 장관 기록을 세웠지만, 24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의 불신이 증폭되면서 결국 개각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치인 출신 장관답게 청와대의 의중을 부동산 정책으로 밀어붙인 실세 국무위원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생집망’의 신조어와 함께 기록적 집값 폭등의 책임을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⑧ ‘여성인권 운동가’ 이용수 할머니윤미향의 위안부 운동·기부금 폭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 운동가인 이용수(92) 할머니는 지난 5월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비판했다. 30년 가까이 ‘위안부 운동’을 주도한 윤 의원이 피해자들을 기부금 모금에 이용했으며 수요집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증오와 상처만 가르친다고 지적했다. 이 할머니의 폭로를 계기로 윤 의원과 정의연의 기부금 유용 및 회계부정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윤 의원을 1억원 유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윤 의원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⑨ ‘박사방’ 조주빈‘디지털 성범죄’ 단죄 징역 40년형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을 통해 아동·여성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지난 3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검거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성범죄에 관대하다는 비판을 받던 법원은 지난달 1심에서 조씨에게 이례적으로 징역 40년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조씨의 공범들, 텔레그램 성범죄 원조인 ‘n번방’ 운영자 ‘갓갓’ 문형욱(25)을 비롯해 성착취물 구매자 등 지금까지 검거된 피의자만 2800명이 넘는다. 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단죄뿐만 아니라 1000여명에 달하는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피해 회복이 과제로 남았다.⑩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K방역의 중심 ‘바이러스 전사’ ‘올해의 여성 100인’(BBC),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K방역의 중심에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이 늘 있었다. 지난 1월부터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을 맡아 정례브리핑을 통해 감염 상황을 알리고 생활방역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한마디, 한마디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외유내강의 뚝심으로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바이러스 전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어깨 골절로 입원했다가 엿새 만에 깁스를 한 채 코로나19 점검 회의에 복귀한 모습에 응원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사회와 단절된 1인 가구 마음의 벽 허무는 안양시 ‘마음의 라디오’

    사회와 단절된 1인 가구 마음의 벽 허무는 안양시 ‘마음의 라디오’

    “어쩌다 고시원 생활을 하게 돼 사회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다시 재기의 꿈을 꾸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네요.” 경기 안양시 온라인 플랫폼 라디오방송이 고립된 1인 가구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고 위안을 전하고 있다. 안양시는 복지 사각지대 1인 가구와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온라인 방송 ‘마음의 라디오’를 운영한다고 26일 밝혔다. 시가 구축한 방송 ‘마음의 라디오’는 시 자원봉사센터에서 발굴한 다양한 연령층 300여 1인 가구 청취자를 주요 대상으로 진행한다. 코로나19 시대 사회와 더욱 단절된 1인 가구와 비대면으로 함께 공감하고 소통해 고독사를 막고, 사회적 고립가구에 대응하기 위한 방송이다. ‘이웃’, ‘함께’, ‘공동체’를 주제로 1인 가구에게 위안을 전하는 ‘마음의 라디오’는 희망 손 편지, 마음의 편지. 자원봉사자의 응원 등 애절하고 감동적인 사연을 소개한다. 오디오계 유튜브로 알려진 스푼(Spoon)라디오를 통해 사회와 단절돼 많은 시간을 홀로 힘들게 보내는 이들과 소통하며 다가서고 있다. 청취자도 방송을 들으며 댓글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쌍방향 소통채널이다. 최근 시 자원봉사자는 고립된 1인 가구 발굴을 위해 건강식품과 마스크, 봉사자가 쓴 손 편지, 홀로 사는 이의 마음을 적을 빈 편지지까지 다양한 물품을 비대면으로 250여명에게 전달했다. 이 중 60여명이 마음을 담아 보내온 사연이 ‘마음의 라디오’에 소개됐다. 비산동 한 고시원에 거주하는 한 분은 “비록 힘들고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힘들게 살고 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돌봐주는 동V터전(시 자원봉사센터 조직)이 있어 그래도 힘이 납니다. 혼자의 삶도 어려운 시기에 저를 위해 함께 해주는 자원봉사센터에 감사드립니다”라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비산동에 사는 한 자원봉사자는 “먼지도 외로움을 느낀다, 하나보단 둘인 게 좋다. 혼자 지내시는 분들 모두 외롭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내용의 1인 가구를 응원하는 글을 전해왔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자영업을 하는 한 청취자의 애절한 사연도 소개됐다. 그는 “암으로 오랫동안 투병 중이던 어머니가 40년간 최선을 다해 운영했던 장어집이 코로나19로 매달 몇천만원씩 적자가 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면역저하까지 겹쳐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운 사연을 보냈다. 이어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도 어려운데 다른 자영업자들은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이 악몽 같은 상황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기원했다. 이웃과 이웃의 마음을 연결하는 ‘마음의 라디오’는 한 달에 두 번 한 시간 동안 이 같은 다양한 사연을 소개한다. 이 사업을 통해 고립된 1인 가구와 사회적 신뢰관계를 형성해 함께 건전한 마을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다. 박문국 안양시 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1인 가구에게 따뜻한 위로와 위안을 전하고, 사회와 단절된 이들의 굳게 닫힌 마음의 담장을 허물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씨줄날줄] 국군의 비건 식단/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국군의 비건 식단/임병선 논설위원

    채식주의는 고대 인도와 그리스의 철학자, 종교인들이 비폭력을 실천하는 수행법이었다. 유토피아를 앞당기려는 영적인 실천으로 여겼다. 초기 기독교가 바라는 이상적인 식단 역시 채식이었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 득세로 유럽에서 채식주의는 사라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출현했다. 현대적인 의미의 채식주의는 1809년 영국인 윌리엄 카우허드가 세운 ‘바이블 크리스천 처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50년 미국채식재단이 창립됐고 1908년 국제채식연맹이 세워져 본격적으로 퍼져나갔다. 채식주의자들도 다채롭게 갈린다. 달걀은 먹지만 유제품은 안 먹는 쪽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벌꿀까지 안 먹는 이도 있다. 적절한 온도로 조리된 채소를 먹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해도 끼치지 않으며 얻어진 식물만 먹는 이가 있다. 뿌리채소는 먹지 않는 이도 있고, 통곡물만 먹는 이도 있다. 사람들은 채식주의를 오해한다. 동물에 대한 죄책감이나 미안함 때문에 비건을 택한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환경이나 건강을 고려해 비건을 택하는 이도 적지 않다. 다만 비건이 감자튀김이나 술을 먹는다면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피하는 것이지, 음식 자체를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비건 햄버거나 피자도 있다. 또 맛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채식주의자라고 허약할 것이라는 건 편견에 불과한 예가 적지 않다. 김한민의 책 ‘아무튼, 비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국 사람들이 믿는 것은 신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가족, 친구, 학벌, 돈, 부동산, 성공도 아냐. 이 모든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건 ‘세상은 안 변한다’는 믿음이야. 어차피 나 혼자 애쓴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 남들 따라 편하게 적당히 즐기다 가자는 주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회 문제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 외면하는 태도”. 이른바 ‘안변해교(敎)’인데 이 통념이 가장 강력한 곳이 대한민국 군대였다. 내년 2월부터 입영하는 병사가 비건인지, 할랄(이슬람 율법을 지켜 조리된) 음식을 즐겨야 하는 무슬림인지 적도록 해 맞춤형 식단을 제공한단다. 육군 사병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3000㎉의 열량을 충족시키며 연두부, 김, 과일, 샐러드, 시리얼, 야채비빔밥, 비건 통조림 등으로 식단을 짠다고 한다. 현역 병사 중에는 채식과 무슬림 식단을 원하는 이가 각각 한 명씩 근무한단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도 비건이었다. 군대 식단의 변화를 통해 세상이 조금 더 다양하게 바뀌는 것을 절감한다. bsnim@seoul.co.kr
  • 어느새 1년… 코로나 최전방엔 평범한 그들이 있었다

    어느새 1년… 코로나 최전방엔 평범한 그들이 있었다

    ■노숙인 돌보던 의사 “취약층 의료 공백 걱정” 서울시립동부병원 박신웅 응급실장박신웅(37) 서울시립동부병원 응급실장은 코로나19 의료 최전선에 있으면서도 2주 전 퇴원해야 했던 이들을 걱정했다. 동부병원은 서울 내 노숙인과 외국인 노동자, 저소득층 등 민간병원에 가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이용하던 공공병원이었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지난 7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퇴원해야 했다. 박 실장은 “공공병원이 전염병 대처를 하는 게 맞다”면서도 “우리 병원까지 전담병원이 되면서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에 관심을 두는 곳이 없어졌다”며 걱정했다. 동부병원은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4, 5, 6층 병동 각층에 이동형 음압기 27개 병상을 마련했다. 총 81개 병상에 의료진 3개 팀이 주야간 10시간, 14시간씩 3교대 순환으로 근무한다. 병원에 있는 모든 의사가 진료과목과 상관없이 밤을 새운다. 박 실장은 “대학병원 인턴 때 이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한겨울에도 땀이 뻘뻘 나는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진료를 하면 숨쉬기가 답답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다”고 말했다. 환자 상태가 악화하면 구급차를 함께 타고 인공호흡기를 이용할 수 있는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이동시키는 일도 박 실장의 업무다. 그는 “병상이 부족해져 전원 요청을 해도 하루이틀 기다려야 하는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코로나 영웅’으로 동료를 꼽았다. 그는 “올 한 해 최일선에서 코로나와 싸운 모든 의료진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주말 없는 역학조사관 “확진자 거짓말, 가장 힘들어”서울시 서초구 최영조 역학조사관코로나19 방역 ‘최전방 공격수’는 역학조사관이다. 의료진이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하며 코로나19와 맞선다면 역학조사관들은 이보다 앞서 선제적으로 감염될 지점을 포착해 확산을 막는다. 서울 서초구의 최영조 역학조사관은 “밀접접촉자를 분류하고 자가격리를 통보할 때, 또 그 접촉자가 코로나19 확진자로 판정받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병이 더 퍼지지 않도록 확산을 저지할 수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초구는 서울 내 다른 지역보다 유동인구 밀집 지역이 많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강남역 사거리가 있고, 대형 백화점도 여럿 있다. 최 조사관은 “서초구에선 역학조사관 3명과 그 밖의 지원 인력 100명이 함께 근무한다”며 “확진자 수가 폭증하면서 평일·주말 구분 없이 밤 10~11시가 돼야 퇴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확진자 동선 추적이 어려울 때 가장 힘이 빠진다”며 “확진자가 얘기한 최초 동선과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가 맞지 않을 때 애를 많이 먹는다”고 밝혔다. 최 조사관은 코로나 영웅으로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구청 동료들을 꼽았다. 그는 “구청에서 차출돼 보건소에 온 일반행정 직원들은 평소 업무가 아니어서 힘들 텐데도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한다”며 “모두 힘을 모아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선별검사소에 핫팩 전달한 시민 “의료진 헌신 기억”의료진에 핫팩 기부한 정서희씨경기 군포시에 사는 정서희(33)씨는 지난 21일 동네 주차장에 새로 설치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검사소 천막 한쪽 면이 펄럭이며 찬 공기가 안으로 들어갔다. 정씨는 주변을 살폈다.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몸을 녹일 난방기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정씨는 검사소를 나오는 직원에게 미리 준비한 핫팩(손난로)과 한 입 크기의 초콜릿이 가득 든 봉지를 건넸다. 검사소 직원은 “어떻게 이런 걸 다 준비하셨느냐”면서 “감사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씨는 “작은 호의였지만 기쁘게 생각해 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했다. 얼마 전 검사소에서 자원봉사를 한 사람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 정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의료진이 핫팩으로 손이 아닌 볼펜 잉크를 녹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 잦은 손소독제 사용으로 의료진 손이 건조하다고 해서…. 겨울이라 피부가 갈라질 수 있으니까 핫팩을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코로나19 의료진에게 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정씨. 그는 “어려운 시국에 발 벗고 나선 의료진 그리고 뒤에서 의료진을 돕는 공무원들에게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국민들은 이분들의 헌신을 꼭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생각하는 코로나 영웅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었다. 정씨는 “정 청장은 어려운 시기에 꾸준히 브리핑을 하면서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지휘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은 국민 모두에게 본보기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코로나19로 어려울 때일수록 취약계층에게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목욕탕을 계속 운영하도록 하는 이유가 집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식당도 집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영업을 허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보다 좀 더 세밀한 복지가 필요합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임관 앞당긴 간호장교 “환자 감사 쪽지에 피로 싹”성남 국군수도병원 이해인 소위“음압병실에서 한 환자가 퇴원하며 작은 쪽지를 건네줬어요. 작은 글씨로 ‘지금까지 감사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동안의 고생이 싹 잊히는 듯했습니다.”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간호장교 이해인(23) 소위는 지난 3월 코로나19 의료 지원을 위해 국군대구병원에서 근무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구·경북 지역에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 3월 국군대구병원에 약 한 달간 파견돼 의료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정부는 부족한 병상을 마련하기 위해 국군대구병원을 국가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하고 국군간호사관학교 60기 신임 장교 75명을 파견했다. 이들은 급박한 상황 때문에 졸업 및 임관식도 6일을 앞당겨 치른 뒤 곧바로 대구로 향했다. 이 소위는 “임상 경험이 없어 환자나 의료진에게 오히려 폐를 끼치게 될까 걱정했지만 주변에서 많은 응원을 보내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국군대구병원에 도착한 이 소위는 첫날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무겁고 땀이 차는 방호복은 갑갑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고생하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방호복이 가벼운 전투복처럼 느껴졌다. 아직 생도 신분인 간호사관학교 62기 후배들도 지난 18일 생활치료센터 지원에 투입됐다. 이 소위는 “한창 공부해야 할 때 어려운 환경으로 파견을 가게 돼 안타깝고 미안하다”며 “배운 대로 임한다면 선배들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후배들을 응원했다. 코로나 영웅을 묻는 말에 이 소위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방역지침을 잘 따르는 모든 국민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근무 중 감염 공무원 “혈장 공여·후유증 연구 참여”성남시청 선명희 주무관코로나19에 감염돼 치료를 받던 성남시청 주무관 선명희(39)씨는 확진된 지 일주일이 되던 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에 빠졌다. 의료진의 응급처치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선씨는 코로나19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깨달았다. 완치 후 다음 중환자들을 위해 선뜻 혈장을 내놓은 이유다. 지난 3월 보건소에서 근무하던 선씨는 역학조사를 나갔다가 다른 동료 직원 4명과 함께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보건소에서는 역학조사관이 본격적인 조사에 나가기에 앞서 ‘선조치’를 취한다. 확진자의 기초 동선을 확보하고, 확진자가 방문한 병원·회사·학교 등에 알려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37일 만에 완치된 선씨는 동료 직원들과 함께 혈장을 공여하기로 결심했다. 혈장 공여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혈장 공여를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인 고려대 안산병원은 보건소와 1시간 거리였다. 철분 수치 등 부적격으로 공여가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선씨와 동료들은 직접 철분제를 사서 먹고, 개인 연가를 쓰면서 혈장 공여를 마쳤다. 코로나19 치료제가 없는 지금은 완치자들의 혈액을 채취한 혈장치료제가 절실하다. 선씨는 확진 중 호흡곤란이 왔던 때를 떠올리며 “이게 다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받은 의료 혜택만큼 다음 환자들이 빨리 완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코로나19 후유증 연구에도 참여 중이다. 연구도 연가를 사용해 나가고 있다. 선씨는 “코로나19 해결을 위해 이 한몸 바쳐 보겠다”면서 “보건소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코로나 영웅”이라며 웃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지하철 청소노동자 “방역복 입고 청소하면 땀이 줄줄”지하철 방역 최전선 황춘자·임윤미씨지하철역에 들어설 때 손이 닿는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부터 개찰구, 승강장의 전광판, 화장실 수도꼭지, 열차 의자와 손잡이까지. 지하철 청소노동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소독약을 뿌리고 닦는다. 수많은 이용객의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수서고속열차(SRT)와 3호선이 교차하는 수서역에서 역사 청소를 맡은 황춘자(64)씨와 전동차 기지에서 일하는 임윤미(53)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업무량이 배로 늘었지만 우리 모두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여름에는 방역복을 입고 열차를 청소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는데, 겨울은 따뜻해져서 낫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지난 9월 신도림역에서 청소노동자 8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겁이 더럭 났다고 했다.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는 좁은 휴게실에서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란히 앉아 식사하고 대화를 하지 않는다. 최근 청소노동자 전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는데, 방역수칙을 지켰던 황씨와 임씨도 지난 20~21일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함께 외치는 구호도 바뀌었다. 황씨는 “우리 역은 원래 ‘너도 안전, 나도 안전, 고객 안전 지키자’가 구호였다”면서 “지금은 ‘개인위생 철저히 해서 아프지 말고 퇴직하자’고 외친다”고 말했다. “감사하다”는 한마디는 언제나 큰 힘이 된다. 황씨는 “‘지하철 화장실이 호텔보다 깨끗하다’는 감사 인사도 듣는다”며 “코로나19 이후 우리 일의 중요성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돼 보람도 커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든 청소노동자가 코로나 영웅”이라고 답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인생 첫술 같이 못마셔줘 미안” 맥줏값 맡기고 세상떠난 아버지

    “인생 첫술 같이 못마셔줘 미안” 맥줏값 맡기고 세상떠난 아버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매트 굿맨이 인생 첫 맥주를 들이켰다. 미국에서는 18살 생일을 기점으로 법적 성인이 되지만, 음주 및 카지노 이용은 21살 생일이 지나야 가능하다. 굿맨도 이날 21살 생일을 맞아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됐다. 생일 하루 전, 누나는 굿맨에게 때 묻은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들 앞으로 남긴 10달러(약 1만2000원)였다. 누나는 10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의 기념비적 순간마다 아버지는 곁에 없었고, 동생도 많이 힘들어했다. 그런 동생을 보며 비밀을 계속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밝혔다.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굿맨의 아버지는 굿맨이 21살이 되면 건네주라며 딸에게 몰래 지폐 한 장을 맡겼다. 막내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술 한잔 함께 마셔주지 못할 것을 안타깝게 여긴 터였다. 그렇게 6년이 흘러 굿맨이 드디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누나는 수년간 옷장 속에 비밀로 묻어두었던 아버지의 '유산'을 건넸다. 생일날 아침이 밝자마자 굿맨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인생 첫 맥주를 들이켰다. 그는 “아버지가 사주신 것과 다름없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굿맨에게 아버지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20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아버지가 더는 내 곁에 없다는 사실에 정말 힘들었다. 아버지는 내 행복을 위해 못할 게 없는 분이셨다”고 밝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상심이 컸지만, 아버지는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계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굿맨은 “다가올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위해, 내 21번째 생일을 위해 아버지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떠나셨다. 내가 받은 생일 선물 중 최고”라고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그의 사연이 전해지자 현지에서는 비슷한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이들의 격려가 쏟아졌다. 직접 술 한잔 사고 싶다는 사람도 줄을 섰다. 한 맥주회사는 굿맨에게 맥주 8상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해당 맥주는 살아생전 굿맨의 아버지가 즐겨 마시던 맥주였다. 굿맨은 “아버지를 위한 건배가 이어졌다. 멋진 일”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나쁜 선례와 나쁜 선례 사이… 결단의 시간 다가오는 KBO

    나쁜 선례와 나쁜 선례 사이… 결단의 시간 다가오는 KBO

    D-5. 임기가 올해까지인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결단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KBO가 ‘팬 사찰’ 의혹을 받는 키움 히어로즈에 대한 징계 수위에 대한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키움에 대한 상벌위원회의 징계 수위가 엄중경고인 것으로 알려졌고, 정 총재는 그 이상의 징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끝나가는 임기 속에 정 총재가 어떤 결정을 하든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은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어느 쪽이든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KBO 상벌위는 총재 자문기관으로서 별도의 독립된 기구다. KBO가 간섭할 수 없는 구조다. 다만 KBO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 제재규정에 따르면 ‘제재에 관한 모든 결정과 관련하여 총재는 경중과 심각성에 따라 제재를 추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 규정상으로는 총재가 상벌위의 결정에 대해 필요하다면 추가 징계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KBO 총재가 상벌위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순간 기구의 존속 이유가 흔들린다. 총재의 의중에 따라 징계 내용이 바뀔 수 있게 되면 상벌위는 유명무실해진다. 총재의 호불호에 따라 고무줄 징계가 가능해지는 순간 총재는 절대군주로 군림하게 된다. 그동안 물의를 일으킨 사안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이 따라도 KBO가 상벌위의 결정을 수용한 이유다.공정성이 생명인 만큼 상벌위는 내부 인사는 물론 변호사, 교수 등 외부 인사로 구성돼 있다. 법리적인 부분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규정에 근거해 징계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야구와 관련돼 있지만 야구와 동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상벌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야구에 대해 잘 몰라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KBO 관계자는 “제제를 추가할 수 있다는 규정은 넓게 보면 추가할 수도 있지만 감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에 대해 총재가 상벌위의 결정을 번복하면 선례가 남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추후에 봐주기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경고 수준으로 넘어가면 총재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어쨌든 규정상으로는 추가 징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총재의 임기가 끝나가는 마당에 이번 징계가 법적 공방으로 이어져 다음 총재의 임기까지 이어지는 것은 부담스럽다.모두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안에 대해 경고 징계로 넘어가는 것도 부담스럽다. 이것 역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문제가 있어도 엄중경고 차원으로 끝난다면 다른 구단도 문제를 일으켰을 때 방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게 된다. 그러나 키움이 리그와 관련해 문제를 일으킨 점이 한 번이 아니라는 점에서 KBO도 고민이 크다. 이장석 전 구단주는 물론 허민 이사회 의장까지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허 의장이 경영에 전면 나서지 않는 것도 고민스럽다. 이택근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번에 불거진 논란 역시 뒤에는 허 의장이 있었다. 허 의장은 대표이사나 단장의 배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음에도 허 의장은 단 한 번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이택근이 팬 사찰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키움 관계자는 “팬 사찰이 아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키움이 KBO 결정에 불복해 법적인 소송으로 가게 되면 KBO는 부담스럽다. 야구 외적으로 진흙탕 싸움이 된다면 팬들의 마음을 잃을 위험도 있다. 어느 쪽이 되든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안의 결정적인 딜레마다. 그렇다고 결정을 차일피일 미룰 수 없다. KBO의 결단이 시급하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찰리박, 이혼 후 투병 근황 공개 “아들 전진과 연락 끊은 이유는...”

    찰리박, 이혼 후 투병 근황 공개 “아들 전진과 연락 끊은 이유는...”

    그룹 신화 멤버 전진의 아버지이자 가수였던 찰리박의 근황이 공개됐다. 지난 24일 방송된 ‘현장르포 특종세상’에서는 혼자사는 찰리박의 모습이 공개됐다. 그는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투병하며 홀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 찰리박은 “2017년에 쓰러졌다. 뇌졸중이었다. 왼쪽 편마비와 언어장애가 와 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라며 “죽지 못해 사는 입장이다보니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다. 재활 운동 하면서 몸이 아프니까 여러 생각도 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반성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하 연습실에서 홀로 생활하는 찰리박은 지역복지센터에서 가져다준 음식을 먹으면서 지냈다. 그는 지난 2016년 3번째 아내와 이혼한 후 쭉 홀로 살았다.“아들과는 연락하지 않나”고 묻자, 찰리박은 “나하고 연락 안 하기로 했다. 입이 두 개라도 말을 못 한다. 내 탓이 크기 때문에 아들을 원망할 일이 없다”고 고백했다. 찰리박은 아들 전진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사업이 잘 안되니까 집안에 신경을 못 썼다. 안양 호프집이 망해서 8~9억 빚을 졌다. 아들이 금전적으로 지원을 많이 해줬다. 매달 돈을 보내줘서 그걸로 생활했다”고 말하며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찰리박은 “아들이 열 일 제쳐놓고 나한테 많은 지원을 해줬는데 아프니까 더 미안하다”며 “(아들 전진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며느리 류이서와 알콩달콩 건강하게 행복한 삶 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바람피냐” 아내 찌른 남편…아내는 “남편 용서한다”

    “바람피냐” 아내 찌른 남편…아내는 “남편 용서한다”

    외도 의심해 아내 찔러…살인미수 혐의검찰 “상처 가볍지 않아”…징역 4년 구형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내를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 50대에게 검찰이 실형을 구형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손주철)는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중국 국적 김모(51)씨의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지만 상처가 가볍지 않다”며 김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씨는 지난 10월 주거지에서 흉기로 아내 A씨를 살해하려고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아내가 외도를 한다고 의심한 상태에서 술에 취해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 측 변호인은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순간적으로 실수했다”며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아내 “남편을 용서하고 싶다” 이날 법정에서 재판부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A씨는 “저는 피해자인 동시에 아내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남편을 용서하고 싶다”며 “본인의 후회하는 마음을 살면서 갚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최후 진술에서 “집사람에게 미안하고 가족을 잘 이끌어나갈 용기와 힘이 있다. 잘 살아서 대한민국 정부에 은혜를 갚고 싶다. 기회를 주면 잘살겠다”며 울먹였다. 한편 김씨에 대한 선고는 내년 1월15일 오전 진행된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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