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미아
    2026-07-03
    검색기록 지우기
  • 농촌
    2026-07-03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7-03
    검색기록 지우기
  • 본인
    2026-07-03
    검색기록 지우기
  • 생명
    2026-07-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202
  • 연금에서 복귀까지 61시간

    ◎크리미아별장 겹겹 포위… 바다엔 함정 배치 고르바초프는 크리미아에 강제로 연금됐던 나흘동안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은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르바초프는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뒤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기전 외신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쿠데타군으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은 받지 않았으나 초긴장상태가 계속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한가지 점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쿠데타 세력과 어떠한 거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별장으로 침투하려 하는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총을 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그는 『월요일 새벽4시 바다에는 군함이 가득했으며 별장 주위에는 병사들이 여러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그러나 경호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충성심을 보였고 외부의 적에 대해 경계태세를 취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22일(현지시간) 가질 예정인 기자회견을 통해 소련국민들과 국제사회에 그동안에 일어난 일에 대해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오는비행기안에는 체포된 KGB의장인 크류치코프가 동승했으며 고르바초프의 가족들인 부인 라이사여사,딸 이리나,손녀 크세니아가 함께 타고 있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6

    ◎“포플러나무 잘라라”… 폴 버년작전 발동/21일 새벽 특공대 60명 돌진… 전폭기 엄호/“만행응징” 한밤 펜타곤서 작전개시 재가/김일성 “유감”표명… 9월8일 경계태세 「데프콘4」로 완화 8·18만행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첫째는 군사적 행동 없이 정전위를 통한 강력한 항의,두번째는 즉각적인 군사보복,세번째는 상징적 경고행위등이 스틸웰사령관에게 보고되었다. 스틸웰사령관은 지하벙커의 월 룸으로 곧바로 와서 참모회의를 열어 작성중인 OPLAN(작전계획)을 점검했다.우선 정전위 차석대표인 마크 푸르덴 해군소장을 불러 다음날 소집키로한 정전위원회에서 자신이 북한의 김일성에게 보내는 강력한 항의서한을 전달토록 지시했다.한편 즉각적 군사보복은 3차대전으로의 확대위험이 있다는 판단하에 상징적 경고행위를 채택키로 했다.그 작전은 유엔사령부의 힘을 명백히 보여주는 동시에 경고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했으므로 장소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로 한정키로 했다. ○「상징적 경고」 채택 작전의 주요내용은 문제의 포플라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결국 그 나무가 미국 권위의 상징처럼 된 것이다.지난 8월초 유엔군이 처음 그 나무를 베려했을때 북한군의 공갈협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북한군에게 약점을 보였다는 판단에서였다.따라서 증강된 무력시위와 함께 공동경비구역 안에 들어가 그 나무를 당당하게 베어버림으로써 북한측에 심리적 위축을 주자는 것이었다. 다음날인 19일 아침 본토의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미군의 방어태세를 데프콘­3로 격상시키도록 지시가 하달됐다.이는 1953년 휴전협정조인 이래 처음 내려진 조치였다.30분후 한국 국방부장관도 한국군에 비상전투태세를 명령했다.잠시후부터 SR­71초음속정찰기들이 고공으로 발진,DMZ 상공을 가로지르며 북한군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하기 시작했다.또 나이키­허큘리스 장거리미사일도 적의 레이다를 향해 발사준비를 완료했다.RF­4D 정찰기와 와일드 워젤 방공억제기가 일본과 필리핀기지에서 이날 아침 발진,한반도의 오산 군산 대구기지에 도착했다.또 미아이다호의 마운틴 홈 공군기지에서는 핵을 장착한 F­111전략폭격기가 한반도를 향해 출발했다.이로써 북한과의 신경전이 개시됐다. 지상군은 미보병2사단과 한미1군단이 DMZ를 따라 전진배치를 끝냈으며 여러 구경의 재래식 포와 전술핵 미사일등이 발사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수많은 트럭이 병력을 싣고 전방으로 투입됐으며 수송헬기가 계속 전선으로 보급물자를 날랐다.이같은 움직임은 과거어느때도 볼 수없는 규모로 북한측에게 불안한 징조로 받아들여졌음이 틀림없었다. 사건발생 다음날인 8월19일 밤까지 우리는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전시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전의 이름은 폴 버년(PAULBUNYAN)으로 명명됐다.작전의 목적은 공동경비구역은 물론 DMZ지역 어디서나 미군지휘하에 있는 유엔군이 권리를 침해당했을 경우 반드시 행동으로 응징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작전내용은 포플라나무를 자르고 또 지난 65년부터 북한측이 공동경비구역내 도로상에 불법으로 설치해 놓은 2개의 차량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작전개시일은 8월21일 토요일 상오7시 정각이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군과 조우하지 않고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철수하는 일이었다. ○남침땐 핵 사용 공동경비구역내에서의 실제작업은 빅토르 비에라중령이 이끄는 한미합동으로 편성된 2개소대 60명의 특공대가 맡기로 했다. 20일 새벽 펜타곤으로 보내진 이 작전에 대한 최종 재가는 작전개시를 7시간여 남겨놓은 그날밤 23시45분에 내려졌다. 다음날 새벽까지 나는 이번 작전에 동원된 모든 예하부대 지휘관들로부터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출발선에 대기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결전의 시간을 앞두고 나는 월 룸 맨끝에 있는 빈방으로 가서 기도를 올렸다.이번 작전의 전쟁발생 가능성은 반반이었다.만일 전쟁으로 비화된다면 불과 한시간도 못돼 수십만명이 피로 물든 산과 들에서 싸우다 죽어야할 것이었다.북한군의 살인공격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부를 것이고 이 대응이 또 북한의 침공으로 이어진다면 대량살상을 피할수는 없을 것이었다.사실 우리는 북한군이 서울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가해온다면 2차대전 이래 최초로 핵무기 사용을 요청할수 밖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상오6시48분.특공대병력을 실은 대형트럭들이 키티호크기지를 떠나 공동경비구역으로 출발했다.앞에는 미군 소령이 칸보이했다.공동경비구역의 남쪽 통로인 제2초소를 통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소령은 인접한 중립국감시위원회 막사로 갔다.그곳에는 스위스대표 클라우드 무브덴소장과 스웨덴대표 라게 베른스테드소장이 있었다.소령은 그들에게 나의 인사장을 내밀고 방금 시작될 우리의 작전을 설명하고 북측의 폴란드와 체코대표단에도 통보해주도록 요청했다.그러자 장군들은 이 계획을 사전에 자신들에게 통보하지 않은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공격은 공동경비구역 안으로 특공대트럭이 요란하게 돌진하면서 시작됐다. ○북 경비병들 당황 동시에 20대의 병력수송 헬기가 12대의 AH­1G 코브라건십의 에스콧을 받으며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엄호병력을 풀었다. 동시에 대전차 F­4팬텀기와 F­111 중거리 전략폭격기들이 발진했으며 서해쪽으로는 괌기지에서 B­52 수개편대가,또 동해상으로는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에서 40여대의 전폭기가 발진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특공대중 1개소대는 포플라나무를 둘러싸고 다른 1개소대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쪽으로 가 북한군의 진입로를 차단했다. 북한경비병들이 놀라 자기네 진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우리 작업단은 신속하게 나무밑둥을 베어나갔고 다른 작업팀은 적들이 설치해 놓은 차량장애물 쪽으로가 그 구조물을 크레인으로 들어내고 있었다.이때 수십명의 북한경비병들이 달려왔으나 몽둥이와 곡괭이등으로 무장한 건장한 60여명의 경비병이 작업단을 호위하고 있었으며 중무장된 한국군 수색대가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포진돼 있는등 엄청난 규모에 놀라는듯 했다. 10분쯤후 우리 작업단이 잘라낸 밑둥을 작게 잘라 트럭에 싣고 있을때 버스 한대와 트럭 2대 그리고 덜거덕거리는 동독제 고물 세단 한대로 편성된 북한경비대가 경비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 멈추더니 AK­47소총으로 무장한 1백50명가량의 병사들이 차에서 내려 제방주위로 포진했다.그러나 그들은 계속 지켜보기만 할뿐 이렇다할 행동은취하지 않았다. 우리 작업단이 경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철수를 시작한 것은 상오7시45분부터 였다.적의 기습을 우려해 조심스럽게 철수가 진행됐으며 모두 키티호크기지로 귀환한 것은 8시30분 이었다.유엔측 경비병들은 정위치로 돌아갔고 북한경비병들은 포플라나무로 와서 잘린 부분을 살펴보고 철거된 장애물들을 돌아봤다. 작전은 무사히 끝났으나 상오10시15분쯤 공동경비구역남쪽을 날며 작전의 마무리를 지휘하던 브래디장군의 헬기가 북한군의 자동화기 사격을 받았다. ○폭력책임 첫 시인 그러나 여섯대의 코브라헬기가 사격자세를 취하며 선회하자 그들의 사격은 멎었다.정오무렵까지 더이상의 총성이 들리지 않았으며 북한측이 정전위원회를 즉각 열자고 제의해 왔다.이 회의에서 북한군측 대표는 그들의 총사령관인 김일성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그는 8·18사건을 「유감」으로 표시했으며 남북 양측이 이같은 불행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주장했다.이는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23년만에 북한이 부분적일 망정 DMZ내에서 폭력의 책임을 시인한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수일 동안 위성사진에 따르면 북한이 계속 방어적 배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그들이 서서히 경계를 완화시키는 동안 미군은 그대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9월8일 북한이 우리들의 요구를 사실상 모두 수용했을때 합동참모본부는 경계태세를 데프콘­3에서 데프콘­4로 완화시켰으며 미드웨이호는 동해를 떠났다. 폴 버년작전은 북한의 오만하고 필사적인 공산지도자들을 힘으로 다스린 예가됐다.김일성이 마침내 물러서게된 유일한 이유는 그가 직면한 위험상태를 우리가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미군은 동남아시아에서의 퇴각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한국에 대해서는 강력한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 소 쿠데타 실패/고르비 대통령직 복귀

    ◎비상위 8인 체포,곧 재판회부/군 철수… 통금등 포고령 무효화/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옐친 급부상… 오늘 긴급간부회의 소집 유혈사태까지 빚으며 내란위기로 치닫던 소련의 반개혁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이에따라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연금상태에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하오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연방최고회의는 그의 대통령직을 복권시켰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쿠데타 주도세력인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20일 해산됐고 8인위원들도 대부분 체포되거나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모두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발트3국을 비롯한 비상사태선포지역에 배치됐던 모든 연방군 병력도 이날 철수를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전역은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연방간부회의는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에 따라 반쿠데타 선봉에 섰던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는 21일 모스크바로귀경길에 올랐다고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보좌관이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연금상태에 있던 크리미아반도의 휴양지로부터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연방최고회의 지도자들은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축출기도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쿠데타 지도자들에 의해 내려진 모든 포고령을무효화했다고 연방최고회의의 유리 카리아트킨 대의원이 말했다. 그는 연방최고회의가 모스크바의 야간통행금지령과 독립적인 언론매체의 보도금지령 등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내렸던 모든 포고령을 무효화했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타스 AFP 연합】 소련 국방부는 모스크바를 비롯,비상사태가 선포된지역에 배치된 모든 연방군 병력에 대해 철수를 명령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국방부가 비상사태 선포 지역으로부터 모든 부대와 분견대 병력의철수를 이행토록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TV 정규방송/언론검열 해제 【모스크바 AP 연합】 쿠데타 세력들이 모스크바를 떠남에 따라 쿠데타발생이후 방송이 중단됐던 소련의 TV와 라디오가 21일 방송을 재개했으며 관영 타스통신은 독립적인 출판물에 대해 내려졌던 출판금지령이 해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 소 강경파,「국민의 뜻」 못읽었다

    ◎엉성했던 조직력… “수준미달의 거사”/“실패원인” 미 시각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성공 확률은 50%를 넘지 않는다』이것이 쿠데타 발발 사흘째를 맞은 미국의 많은 관리들의 예상이다. 따라서 부시 미국대통령의 잇따른 강경발언은 감정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쿠데타가 종국에는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실질적인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고 관측되고 있다. 즉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소련 쿠데타의 실패를 예상하고 반쿠데타전략을 세운 것으로 대부분의 언론들은 보고 있다. 쿠데타를 일찍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는 충분한 조직과 무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설마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하는 최초의 생각이 크게 빗나갔기 때문. 쿠데타 중심세력의 결집력이 예상외로 단단하지 않다는 진단은 거사당일인 19일부터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우선 쿠데타 지도부안의 분열 또는 충분히 계획이 안된 임시변통의 조치로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그리고 발틱해안 여러 공화국들에의 쿠데타군 배치가 엉성하며 엄격한 비상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더욱이 모스크바에 배치된 군대의 일부는 배치된 뒤 친옐친으로 태도를 바꾸기까지 하고 있다.미국관리들은 『아직까지의 사태진전만 가지고 말할 때 이것은 고전적인 쿠데타와는 다르다.탱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쿠데타 발표가 있은지 몇시간이나 지난 뒤였다』는 말로 실패를 단정했다. 또 하나의 실패징조는 쿠데타지도자들이 소련의 여러 공화국 지도자들을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일부 공화국 지도자는 이미 반쿠데타 입장을 밝혔으며 다른 지도자들중 상당수도 그 뒤를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라디오와 TV 등의 언론에 대한 통제도 보통의 쿠데타 수준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모스크바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다른 우방을 독려하여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즉 미국은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경제원조를 잃게될지 모르며 국제적인 미아가 될 것임을 믿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 ◎경제난 해결책·정통성 미비가 치명적/불 르몽드지 분석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 르 몽드지는 21일 소련전문가 미셸 타튀의 분석을 인용,이번에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르 몽드지의 모스크바특파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소련문제전문가인 타튀는 르 몽드지 기고를 통해 이번 쿠데타상황이 지난 64년의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와 판이하고 또 쿠데타 주도세력이 경제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갖고있지 못한데다 군부내의 이견등이 겹쳐 결국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 소련의 정치·경제상황이 현재와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중국 천안문사태때의 반정부세력도 지금 소련의 경우와 비교하면 훨씬 미약했을 뿐 아니라 당시 중국내부문제도 현재 소련에 비해 덜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우선 현 쿠데타세력이 흐루시초프때와 비교해 「권위성」「신뢰성」,그리고 무엇보다 「정통성」이 결여돼 있다고 전제,64년 당시 흐루시초프 축출세력은 공산당 중앙위원회라는 제도의 틀내에서 일을 벌였으며 또 소련최고회의가 이를 승인하고 당사자인 흐루시초프도 자신의 사임에 동의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우 쿠데타 인정을 거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역시 헌법상 규정되지 않은 기관이며 이는 공산당내에서도 합법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타튀는 주장했다. 쿠데타 주동세력들은 또 최대한 지지를 긁어모으기 위해 「법과 질서」「범죄와 부도덕 비난」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으나 이는 스탈린­브레즈네프 시대에 성행했던 「러시아인 주도 질서」를 연상케 하는 「향수적」인 것으로서 다른 민족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군부내 이견을 지적,구세대 고위간부와 중간장교·사병 등 군구성원중 중간장교와 사병은 이제 정치보다는 경제적 요인에 불만이 더 큰 만큼 대중에 보다 접근해 있다고 지적했다. 공산노선 고수를 주장하는 고위장성들 역시 최근 기존노선고수와 군개혁 필요성의 모순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조제잘못 약사 구속/환자 전신피부에 부작용

    서울 종암경찰서는 20일 도봉구 미아5동 구인약국 약사 김기웅씨(45)를 업무상 과실치상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 5월 입안이 헐어 약국을 찾아온 김모씨(39·여·성북구 동소문동)에게 조제한 약을 팔았다가 고열과 함께 전신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자 다시 안정제와 진통제를 주어 피부가 썩어들어가는 전치7개월의 부작용을 일으키게한 혐의를 받고 있다.
  • 고르비는 어디서 무얼하나

    ◎크리미아서 안전히 휴식/비상위원/모스크바이송,연금상태/옐친측근 크리미아에서 여름휴가중 전격 실각된 고르바초프는 현재 어디에,어떤 상태에 있을까. 고르바초프의 신변과 관련,그가 축출됐음을 처음 알린 타스통신은 『고르바초프가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어 야나예프가 대통령직을 인수했다』고 밝혀 그의 신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었다.그러나 그뒤로 전해진 보도나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그의 건강엔 이상이 없으며 그는 집권세력에 의해 모스크바로 이송,계속 연금상태에 놓여있는 것 같다. 그의 신변에 대해 이번에 쿠데타를 주도한 8인 비상위원의 한사람인 야나예프대통령대행은 『크리미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프바초프는 수년동안 너무 지쳤으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할 뿐 더 이상의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그는 고르바초프의 신변에 큰 우려를 표시한 헬무트 콜 서독총리에 친서를 보내 『고르바초프는 극히 안전한 상태에 있으며 어떠한 위협도 받고 있지않다』고 안심시키고 있다.그러나 야나예프의 말처럼 고르바초프가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어떤 위협도 받지않고 안전한 상태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또 『고르바초프가 건강을 회복한 뒤 대통령직에 복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도 선무용 발언에 지나지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야나예프의 발언과는 달리 레닌그라드의 사프차크시장등은 그가 연금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사프차크시장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사임을 강요당했지만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크리미아휴양지 별장에서 연금돼 있다』고 말하고 쿠데타를 계획한 일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휴가중인 고르바초프의 별장으로 찾아가 미리 준비한 사임문서에 서명토록 강요했었다고 그 내막을 폭로했다.러시아의 RIA통신은 그가 크리미아의 별장을 떠나 알려지지 않은 장소로 향했다고 보도하고 목격자의 말을 인용,그의 건강이 양호한 상태라고 전했다.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한 측근 소식통도 그가 지난 토요일밤 크림반도로부터 모스크바에 이송돼 강경파들로부터 대통령 권한을 포기한다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한편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한 보좌관은 고르바초프가 지난 19일 군용기편으로 모스크바에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그의 소재확인과 관련,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고르바초프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야 하는지 의료검진을 받아야하며 고르바초프와 새로운 강경파지도부가 제3자와 대면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의 소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연금돼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 “경협 어떻게 되나”… 경제계 초비상/충격·경악속 대책마련 부산

    ◎“북방 교역에 타격” 정정에 촉각/경제단체/소 지사에 급전… 현지동정 주시/진출업체/“계획경제로 회귀 힘들 것” 낙관도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갑작스런 실각은 그동안 소련진출을 활발히 추진해오던 경제계에도 충격과 심각한 우려를 주었다. 이날 하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실각이 알려지자 주가는 대폭락을 했고 소련관련 경제단체및 진출기업들은 사태진전을 주시하며 앞으로의 대책마련에 부산했다. ▷경제단체◁ ○…전경련·대한상의·무역협회등 국내 경제단체들은 소련이 보수파의 득세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가 이끌어온 개방 경제정책에는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이유는 소련이 예전의 계획경제체제로 급선회할 경우 서방 선진국으로부터 경제원조의 중단은 물론이고 고르바초프 집권이후 상당부분 뿌리내리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급속히 배제하기 힘들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단체들은 현재 소련 내부의 정국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추이를 좀더 지켜보고 대응해야 한다는 신중한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한상의 민완기이사는 『소련이 자국에 이익이 되는한 자본주의 경제를 구태여 막을 이유가 없다』며 『그러나 사태발생 원인이 정치·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에 있다면 우리기업의 소련진출 템포를 늦추거나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소경제협회 조중근사무국장은 『새로 집권한 보수세력의 성명문 논조가 강경한 것으로 봐서 경제정책을 포함,고르바초프의 정책에 강한 제동을 걸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도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소련이 완전히 과거의 계획경제체제로 돌아서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전경련의 소련경제담당 이성환선임조사역도 『강경 보수세력들이 고르바초프 실각후 내부 정리를 위해 일시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유입을 통제할지 모르나 결국은 자본주의 경제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갈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단체들은 우리나라가 소련에 30억달러의 경제원조를 약속했고 이를 계기로 상당수 기업들이 소련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단계에서 소련이 최악의 경우 고르바초프 집권이전 상황으로 회귀한다면 우리의 북방경제정책에 큰 타격이 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번 고르바초프의 실각이 소련내부에서 오랫동안 진행되던 정치 상황의 일시적 변화가 아닌 군부세력에 의한 쿠데타 상황일 경우 정부차원에서의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북방국가와의 경협창구인 무공(KOTRA)은 이날 하오 임인주통상본부장을 중심으로 대소대책반을 긴급 편성,대책마련에 들어갔다. 무공측은 모스크바주재 무역관과 통화를 시도한 결과 이미 외신을 통해 보도된 내용외에는 더이상의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면서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수시로 보고토록 조치했다. 지난 89년4월17일 모스크바에 무역관을 설치한 이래 올 10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정식으로 양국의 트레이드센터를 건립키로 합의한 무공은 이번의 사태로 트레이드센터 건립일정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 ▷진출기업◁ ○…지난 89년 1월 이후 지금까지 정주영명예회장이 10차례나 소련을 방문하는등 민간업계에서 대소진출에 가장 적극성을 보여온 현대그룹은 갑작스러운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에 어리둥절. 현대는 외신보도가 나온 이날 하오 모스크바지사와 전화통화를 통해 『방송으로 고르비의 실각소식을 들었으나 일반적인 분위기는 평온하다』는 보고를 받고 현대종합상사·현대자원개발·현대종합목재등의 지사와 현장을 통해 사태파악과 대책마련에 부산.현대 모스크바 지사는 현지에서 고르비가 ▲발레를 구경하던 중 당했다▲크리미아에서 휴가를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던 중 당했다▲가택에 연금돼 있다는등 3가지 설이 나돌고 있다고 보고. ○…삼성그룹의 경우 북방교역을 전담하고 있는 삼성물산의 시장개척팀이 모스크바 지사와 수시로 전화접촉을 가지면서 현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삼성은 특히 소련의 경우 고르바초프의 실각에 따른 권력변화가 기업활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판단아래 보다 정확한 정보획득을 위해 미국·일본등 소련과 관련한 정보수집이 가능한 모든 해외지점에 긴급전문을 보내 소련내 동향을 세밀히 점검토록지시. 이와는 별도로 삼성물산의 시장개척팀은 전기·전자·섬유 등 소련에 현품을 수출하는 영업부서및 수입부서와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상품수출입및 대금결재 현황등을 재점검. 삼성의 올해 대소교역목표량은 모두 2억5천만달러(수출 1억5천만달러,수입 1억달러)이며 상반기중 수출 4천5백만달러,수입 2천1백만달러 등 모두 6천6백만달러 규모의 교역실적을 기록. ○…올 4월20일 국내은행으로선 처음으로 모스크바에 사무소를 개설,3명의 직원을 파견하고 있는 수출입은행도 나름대로 대책마련에 나섰으나 현지 사무소와의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내외신 보도에만 의존해 사태를 파악. 수출입은행측은 모스크바 사무소개설이래 동구권지원프로젝트 관리업무,해외투자,조사활동및 차관업무 등을 담당해 왔다.
  • 금수 일제캠코더 백화점서 판매/전시장 마련… 일부선 판촉 열올려

    유통시장 개방 확대로 일제전자제품의 위협이 가중되는 가운데 서울시내 각 백화점이 대부분 밀수 등 비공식적으로 반입된 일제 캠코더를 판매하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캠코더는 정부가 수입선다변화품목으로 지정,일제 캠코더의 공식적인 수입은 물론 휴대반입까지 전면 금지되고 있는데도 롯데백화점을 비롯한 신세계 현대 미도파 뉴코아 갤러리아 쁘렝땅 건영옴니프라자 한신코아 삼풍 갤러리아 진로유통 등 서울시내 대부분의 백화점들이 일제 캠코더를 판매하고 있다. 백화점들은 대부분 일제 캠코더가 불법 유통되는 남대문과 용산전자랜드,또는 인근의 점조직망을 통해 제품을 구입하고 있으며 일부 백화점은 아예 전시장에 버젓이 진열해놓고 팔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본점과 롯데월드,영등포점에서 모두 소니사 캠코더를 판매하고 있으며 특히 영등포점은 7층에서 개점 1백일 기념행사로 일제 캠코더와 TV를 연결해 놓고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의 경우 일제 캠코더를 캐비닛에 감춰놓고 판매하고 있으며 미아점은 손님들에게 팸플릿으로 제품에 대한 소개를 한뒤 주문을 할 경우 집에까지 배달해주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무역센터점 4층에서 유리상자에 일제 캠코더를 버젓이 전시해놓고 있으며 압구정본점은 별도로 전시는 하지 않고 점원들이 원하는 고객들에게 캐털로그로 제품소개를 하면서 필요하면 구해주겠다고 밝혔다. 미도파백화점도 본점에서 일제 캠코더를 감춰놓고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뉴코아백화점은 2층 수입센터 매장에서 팔고 있다.
  • 「세모」 유 사장 내주 소환/검찰/오대양서 송씨에 거액송금 확인

    ◎대전에도 「제3의 세모타운」 건립 의혹 【대전=박국평·손성진·최용규기자】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전지검 특수부(이재형 부장검사)는 25일 수배된 송재화씨(45·여)로부터 돈을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진 전주식회사 세모 특허관리부과장 김기형씨(41)를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 집에서 연행,송씨로부터 돈을 받았는지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에 대한 조사결과 송씨로부터 세모측에 사채가 유입된 사실이 확인되는대로 다음주초쯤 세모사장 유병언씨를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박순자씨및 오대양직원들의 송씨에 대한 사채송금에 대해 그동안 은행계좌및 수표를 추적해본 결과 박씨와 오대양 직원 8명이 지난 83년부터 84년사이 모두 4억6천여만원을 송씨에게 송금한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전 삼우트레이딩 사원 서화남씨(47)와 지난 89년 송씨와 함께 전남도경에서 사기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오수영씨(46)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세모는 이와함께 대전시 중리동에 또다른 세모타운으로 보이는 1백5가구분의 아파트를 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전시 대덕구청에 따르면 세모 대표이사 박상복씨(50)명의로 중리동250의 3∼4일대 4천7백67㎡의 부지에 10층 1동과 5층 1동등 연건평 1만1천4백60㎡ 규모의 1백5가구분 아파트를 지난 5월8일 착공,오는 92년10월 완공을 목표로 현재 30%가량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 내 아이 찾는다는 마음으로(사설)

    석달 하고도 열흘 동안 그 부모들은 얼마나 가슴 조이며 애를 태워오고 있는 것일까.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상심하며 실의에 빠져 살 맛을 잃고 있는 것일까.오죽 못견디겠으면 직장까지 그만두고 방방곡곡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개구리 잡는다고 하면서 집을 나간 대구 성서국민학교 다섯 어린이들의 소식은 지금까지 감감하기만 하다. 대도시에서 아이를 키운 부모 가운데는 아이를 잃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보사부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6천3백여건의 미아 사건이 있었다고 하지만 나들이철에 인파가 북적이는 곳에서 몇시간 동안 아이를 잃었다가 찾은 경우까지 통계에 잡힌 것이 아니고 보면 나타난 숫자보다 10배 백배 많을 수도 있다.그 때의 그 절망감과 허탈감을 회상하면서 비단 이 다섯 어린이의 부모뿐 아니라 다른 미아사건의 부모들 마음까지도 헤아려야겠다.그러면서 국민 모두가 수사원이 되어 각자의 주변을 유심히 살펴 보아야겠다.내 아이를 찾는다는 그런 마음으로 주변의 수상쩍은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이 다섯 어린이의 경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말 못하고 길을 모르는 아이들이 아닌 국민학교 3학년 이상의 어린이들임으로 해서 곧 돌아오겠거니 했다.그러다가 시일이 흐른 것이다.지난 어린이날에는 노태우대통령의 특별지시도 있고 해서 연인원 7만여명의 경찰력이 투입되고 텔레비전으로,전단으로 찾고 있지만 행방은 묘연하다.경찰은 어떤 단서 하나 잡지 못한 채 제보를 기다리는 상태다. 진작에 사회적인 관심이 쏠렸더라면 이미 해결이 났을 일인지도 모른다.그런데 그 어린이들이 가출한 3월26일 이후 시국문제하며 선거 등등으로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그러는 사이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는 것도 사실이다.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아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은 같다.금품을 뜯어낼 만한 집안들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다섯명이나 되는데 다른 불길한 소식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렇다 해도 1백일이나 지났고 보면 어떤 불량집단에 의해 감금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별로 신빙성이 없는 제보가 1백50여건 있었던 모양이다.그런데 개중에는 돈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또 텔레비전 방영중에는 그 중의 한 어린이를 사칭하는 장난질 전화까지 한 못된 사람도 있었다.남의 불행한 일에 끼어들어 벌이는 장난질처럼 야비하고 천벌받을 짓도 없다.삼가야 할 악습이 아닌가 한다. 어린이를 유괴한다든지 혹은 어린이를 시켜 범죄행위를 하게 한다든지 하는 짓은 범죄중에서도 극악한 것이다.내 자식이 귀한 것과 같이 남의 자식도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어느 악의 집단에서 이 어린이들을 악의 목적으로 감금하고 있다면 우리 모두가 다같이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 상도하여 어서 속히 풀어줄 것을 당부한다. 시국이 안정됨에 따라 사복체포조도 민생치안쪽으로 투입되고 있다.그 인력이 이 어린이 실종사건의 해결에도 도움이 되어 줬으면 한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의 눈」이다. 수사력과 제보가 합창하는 개가를 듣게 되기 바란다.
  • 백악관 앞뜰 “국빈맞이” 예포 21발(노 대통령 북미순방여로)

    ◎전례없는 인파… 악수 공세에 진땀/교민들과 일일이 인사,공항출발 지연/“봄바다에 떠있는 영산”… 북한변화 강조 ○“다시 만나 반갑다” 인사 ◎…노태우대통령의 국빈방문에 따른 공식 환영행사는 백악관 남쪽뜰에서의 옥외환영식과 백악관 본관 2층 크로스홀에서의 공식수행원및 환영위원 접견순으로 2일 상오10시(한국시간 2일 하오11시)부터 약30분간 진행. 환영식은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사열대 등단후 의장대의 양국 대통령에 대한경례에 이어 애국가와 미국 국가연주,양국국가 연주중 21발의 예포발사,양국 대통령의 의장대 사열,부시대통령 환영사,노대통령 답사순으로 20분간에 걸쳐 장중하고 엄숙하게 거행. 노대통령 내외는 환영식에 앞서 영빈관을 출발,10시 정각 백악관에 도착했으며 부시대통령 내외는 외교사절 출입구인 디플로매틱 엔트런스 앞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영접. 양국 대통령내외는 서로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며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고 나서 잠시 인사말을 주고 받은뒤 리드 백악관의전장의 안내로 전면의 환영식장으로 이동. 환영식에는 이상옥외무장관을 비롯한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김봉규공사등 우리측 환영위원회위원,김상하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수행경제인등 특별초청인사들과 비공식수행원,대사관직원과 가족,상사주재원,교민지도자등 우리측인사 3백여명과 퀘일 부통령내외,베이커 국무장관내외,수누누 비서실장,제레미아 합참차장,그레그주한대사내외를 비롯한 미측 환영위원회위원등 4백여명이 참석. 양국 정상내외는 환영식이 끝난후 백악관 2층 크로스홀로 이동해 부시대통령,노대통령,바바라 부시여사,김옥숙여사순으로 나란히 서서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양측 환영위원들을 접견. ○15분간 단독회담 가져 ◎…양국 정상은 약30분간에 걸친 공식환영행사에 이어 상오10시30분(현지시간)1층의 대통령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바로 옆의 각료회의실에서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을 약1시간 가량 진행. 단독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이,미측에서는 스코우크로프트대통령안보보좌관이 배석했으며,통역은 우리측의 이정하공보비서관과 미측의 크리스텐센 주한미대사관 1등서기관이 각각 수행. 약15분간의 단독회담에 이어 열린 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이상옥외무,이봉서상공,현홍주주미대사,정해창비서실장,김종인경제수석,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이수정공보수석,이정하비서관(통역)이,미측에서는 퀘일부통령,베이커국무,모스배커상무,스코우크로프트안보보좌관,솔로몬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크리스텐센 서기관(통역)이 각각 배석. ○잇단 박수답례에 상기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일 하오5시(한국시간 2일 상오6시)전용기편으로 워싱턴 앤드루스공군기지에 도착한 노태우대통령은 현지 교민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베풀어진 리셉션에 참석하는 것으로 워싱턴 일정을 시작. 노대통령이 저녁 7시 정각 리셉션장인 옴니슈람호텔 리젠시 볼룸에 입장하자 현홍주 주미대사와 최광수 현지교민회장 등이 박수로 영접했고 노대통령은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 노대통령은 모임에 앞서 오석봉 전현지한인회장(61)및 태권도사범 존 리(한국명 이준구)씨 등과 잠시 환담.노대통령은 존 리씨에게 『국위를 선양해 고맙습니다』고 말했고 존 리씨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영광으로 느끼며 활동합니다』고 답례. 노대통령은 교민들의 잇따른 박수답례에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북한은 변화할 것이며 봄바다에 떠 있는 빙산은 녹게 마련』이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연단을 치기도. ○플래카드 들고 환호성 ◎…노대통령내외가 도착한 앤드루스 공항에는 교민 1천여명이 나와 플래카드와 피켓등을 들고 환호하는등 어느때보다도 환영열기가 고조됐는데 노대통령의 해외순방에서 환영교민이 이처럼 많기는 처음. 이날 하오5시께 대한항공 특별기가 공항에 도착한 직후 노대통령내외가 리드 백악관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오면서 교민들을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들자 교민들은 일제히 환호. 노대통령은 트랩밑에 대기하고 있던 빅스 워싱턴지구 공군사령관,그레그 주한대사,솔로몬 국무부 아태담당차관보,앤더슨 부차관보등 미국측 인사와 현홍주주미대사등의 영접을 받았다. 노대통령내외가 양측 인사들로부터 영접을 받는 동안 2백여m 떨어진 교민환영대에서 계속 환호성이 터지자 노대통령내외는 환영대쪽으로 이동해 교민들과 일일이악수로 인사를 나눴는데 교민의 수가 많아 공항출발 시간이 15분간 지연되기도.
  • 크렘린 권력판도 대변혁 예고/소 「민주신당」 결성되면…

    ◎정망작성 구체화… 7월 출범 가능성/범급진세력 결집… 「개혁목소리」 거세질듯 소련공산당에 필적할 수 있는 전국단위 새 민주정당의 탄생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26일 모스크바 소식통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신당참여 인사들의 인선과 조직구성은 물론 정망작성 단계에까지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지난주 두 차례 회합에서 정강작성까지 논의된 셈이어서 이런 속도로 작업이 진행될 경우 오는 7월이면 신당이 출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신당 창당과 관련,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참여인사들의 면면이다. 현재 거명되는 인사로는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을 비롯,전 정치국원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전 내무장관 바딤바카틴,급진파 경제학자인 스타니슬라프 샤탈린 등 과거 고르바초프 정권에 몸담았다 개혁을 둘러싼 이견으로 그의 곁을 떠난 사람들이 총망라되다시피 하고 있다. 현직 고위관리로는 지난 12일 재선된 가브릴 포포프 모스크바시장과 아나톨리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이 포함돼 있다. 조직면에서 신당은 공산당에 맞먹는 전국단위 정당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24일 2차회담이 끝난 뒤 러시아민주당 집행위의 발레리 호미아코프 의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러시아공내 민주개혁세력 모임인 「민주러시아운동」을 다른 공화국의 민주운동단체와 연결시켜 정당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앞서 거명된 전직 고위관리 출신 인사들과 소련내 각 공화국에 포진돼 있는 제민주개혁세력이 손잡게 되는 결과가 돼 공산당에 필적할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의 출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90년 2월 소련 헌법에서 공산당의 권력독점 조항이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소련에선 거의 정당조직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정당들만 일부 공화국 단위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들 소규모 정당조직도 신당에 흡수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창당돼 3만6천명의 당원을 확보한 러시아민주당은 신당의 실질적인 중추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의 반발 등을 고려해 현재 신당참여파로 거명된 인사들 중 일부는 참여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야코블레프는 26일 자신의 공산당 탈당­신당참여설에 대해 이를 터무니없는 날조라고 부인했고 신당창당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알려진 셰바르드나제도 당 보수파들로부터 당의 분열을 획책한다는 비난을 받고 일시 침묵하는 상태이다. 러시아민주당의 키라 울리아노바 대변인은 이러한 외압을 의식,『현재로서는 신당 창당이 언제 이루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계자들이 새 민주정당 창당에 관한 성명이 금명간 모스크바에서 발표될 예정이며 앞서 거명된 인사 다수 공산당과 결별하여 신당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당이 내세울 강령으로는 시장경제화,정치적 민주화를 토대로 과감한 개혁정책을 주장하는 외에 창당과 함께 현 크렘린 지도부에 연정을 제의할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창당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내년 실시예정인 총선에서 신당이 후보를 내세울 경우 소련 권력판도에 일대 파란이 일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움직임에 벌써부터 내외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범대서양 협력체제」 첫발 내딛다/유럽안보협 외무회담 결산

    ◎동구의 정치·경제적 지원도 협의/소 등선 내부문제 개입에 거부감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19·20일 베를린에서 열린 35개국 첫 외무장관회의를 계기로 밴쿠버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는 범대서양 협력체제로서의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었다. 이는 89년 11월 베를린장벽의 붕괴로 상징되는 동구의 민주화물결에 이어 지난해 11월 CSCE 파리정상회담에서 「신유럽 건설을 위한 파리헌장」을 채택하면서 『이제 냉전의 대결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지 반년 만에 실질적인 이해와 협력의 큰 걸음을 내딛는 것을 의미한다. CSCE는 이번 회담에서 중부 및 동부유럽의 정치·경제 재건과 대결과 반목의 요인을 사전에 중재·해소하기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한 끝에 20개 항의 합의문서를 채택했다. 75년 설립된 CSCE는 당시 안전보장·경제협력·인권존중 등을 표명한 「헬싱키선언」으로 유럽의 안정과 협력을 위해 몇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로 대별되는 대결과 반목의 구도 속에서는 그 목적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해 파리정상회담에서 냉전시대의 종식선언이 있은 뒤 처음으로 열린 이번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미래의 유럽평화를 이끌어가는 구체적인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CSCE는 새로운 범유럽협력체제에 방해가 되는 회원국간의 충돌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분쟁방지센터를 빈에 설치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으며 프라하,바르샤바에 사무국을 설치,이 기구의 조직과 기능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또 이번 회담이 냉전시대 동서대치의 현장인 베를린에서 개최됐다는 사실이 함축하는 바도 크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 참석한 각국 외무장관들도 과거와 달리 동서유럽간의 화해와 교류증진에 의미를 부여,외교적인 활동에 치중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걸맞는 실질적인 방안도출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회담이 끝난 뒤 아로이스 목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은 『전유럽의 안보협력체제를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고 바바라 맥도갈 캐나다 외무장관은 『역사적인 화해였다』고 평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그 동안 유럽의 미아로 알려진 알바니아가 35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서 이 조직이 전유럽을 커버하는 실질적인 조직으로서의 모습을 갖췄으며 내년 외무장관회담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개최키로 해 동서유럽의 유대강화의지를 극명하게 표출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유럽공동체(EC)·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럽의회와 긴밀히 협조,유럽의 안보를 다진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기존의 서구 시장경제와 법치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중부와 동부유럽의 새로운 질서구축에 전력할 것임을 밝혔다. 이번 회담에서 외무장관들은 앞으로 유럽에서의 분쟁은 동서간의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갈등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새로운 환경에 들어선 동구에 대한 정치적·경제적인 지원방안에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범대서양 공동체를 제의한 것도 밴쿠버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지역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동구를 포함한 유럽의 안보기구를 확립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번 베를린회담은 CSCE가 단시일 안에 유럽의 안전을 보장하는 기구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분쟁방지센터의 설립에 대해 키프러스문제를 안고 있는 터키와 발트3국문제를 최대의 현안으로 안고 있는 소련이 국내의 내부적인 문제를 CSCE가 개입하는데 대해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 그 한 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의 지원하에 이번 회의에 업서버자격으로 참석하려 했던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은 소련의 강력한 저지로 참석을 하지 못하는 등 벌써부터 회원국들의 이해관계를 한목소리로 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소련은 또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에 대응해 NATO의 해체를 요구하는 주장을 이번 회의에서도 되풀이함으로써 소련간의 현저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에 대한 영향력의 감소를 우려,CSCE에 강력한 통제력을 부여하기를 꺼리고 있으며 NATO 등 기존기구의 강화와 더불어 CSCE의 기능강화라는 두 마리의 새를 쫓고 있다. CSCE가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은 분명하지만 유럽안보의 중추적인 안보기구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공선협」회원 8명 연행/탈법사례담은 유인물 배포/경찰

    ◎선거법 저촉땐 형사입건키로 경찰이 특정정당후보의 불법선거사례를 담은 유인물을 돌리는 등 공명선거캠페인을 벌이던 「공선협」 회원들을 연행,이들의 행위가 지방의회의원선거법에 저촉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15일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민자당 후보의 불법선거운동 사례가 적힌 유인물을 나눠준 유규환씨(32·회사원) 등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소속 회원 4명을 연행,조사중이다. 유씨 등은 이날 하오 8시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지하철 2호선 신천역 입구에서 『송파 3선거구에 출마한 민자당 정 모 후보가 주민들에 대해 향응을 베푸는 등 불법선거운동을 벌였다』는 내용의 유인물 5백여 장을 귀가길의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것이다. 또 성북경찰서도 이날 하오 7시30분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부근에서 『성북구 1선거구에 출마한 민자당 윤 모 후보는 주민들에게 향응을 베풀다 검찰에 고발된 사람으로 유권자들이 힘을 합쳐 윤씨를 낙선시키자』는 내용의 유인물 1천5백여 장을 돌린 김동규씨(26·회사원·도봉구 미아7동) 등 4명을 연행해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하오 4시30분쯤 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 앞에서 열린 「공명선거실천시민대회」에 참석하고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백화점 앞까지 평화행진을 벌인 뒤 송파 3선거구,성북 1선거구 등 모두 8곳으로 나뉘어 해당선거구 주민들을 상대로 「기권방지 선거부정 규탄 캠페인」을 벌이다 민자당 선거사무원 등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됐다. 한편 경찰은 이들의 행위가 지방의회의원선거법에 저촉될 경우,검찰의 지휘를 받아 형사입건하기로 했다.
  • 「치기배」 범죄단체조직죄 적용/4명 12∼5년형 선고/서울형사지법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재판장 김동건 부장판사)는 13일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취객들의 금품을 털어온 이른바 「아리랑 치기배」 임낙인 피고인(34·도봉구 미아4동 138) 등 4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례적으로 범죄단체조직죄 등을 적용,징역 12년∼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미리 역할을 나눈 뒤 훔친 차를 타고 다니며 지속적으로 범행을 저질러왔고 빼앗은 돈을 사전약속에 따라 공정히 분배해온 점 등으로 볼 때 범죄단체조직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 강청 “영욕의 77년”

    ◎무명배우서 모와 결혼 뒤 실력자 행세/문혁때 온건파 탄압… 끝내 자살로 마감 지난 5월14일 북경의 자택에서 자살한 것으로 5일 공식발표된 전 중국 지도자 모택동의 미망인 강청(77)은 무명 영화배우에서 중국 정계의 가장 강력한 실력자로 떠올랐다 침몰한 파란만장의 일대를 보낸 인물. 모와 결혼함으로써 힘을 움켜쥐게 된 강은 모가 쇠약해지자 그를 지배,정적들을 박해하고 사실상의 황후처럼 군림하려 했으나 지난 76년 9월 모가 사망하자 채 한 달이 못 돼 그가 이끌던 소위 사인방이라는 다른 3명의 추종자와 함께 몰락,「인민의 적」이라는 죄목으로 영어의 몸이 됐다. 강은 81년 1월25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해 2년 동안 사형집행이 중지됐는데 끝내 회개를 거부,83년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채 형무소 생활을 하다 84년 5월 신병치료를 위해 풀려났다. 1914년 산동성의 한 작은 도시에서 한 지주와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난 강은 주벽이 심한 부친이 모녀를 수시로 구타하는 바람에 함께 집을 뛰쳐나온 뒤 14세 때 한 유랑극단에 입단,5년 후 당시 중국의 예술중심지였던 상해에 진출해 보헤미아적인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으며 모와의 결혼 이전에 이미 두 차례나 결혼을 하기도 했다. 39년 북부 산악지대 연안에 있는 모의 게릴라본부에서 모와 결혼한 강은 그후 항일전쟁과 국부군과의 내전이 계속되는 동안,그리고 49년에 세워진 중화인민공화국의 초기까지는 모의 그늘에서 지냈다. 그러다 66년에 모의 문화혁명이 벌어지자 정치에 간섭하기 시작한 강은 극좌파와 결탁,국가 주석이던 유소기와 같은 원로급 온건파 지도자들을 상대로 정치싸움을 벌였으며 끝내는 그 싸움판에서 살아남은 등소평에 의해 쇠고랑을 차는 몸이 됐다. 성격이 과격했던 강은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공격,당대의 칙천무후나 청대의 서태후로 비유되기도 했다.
  • 「철인 아시아컵」 참가 일 선수/수영하다 심장마비사

    ◎연맹,경기 전면 취소 【제주=김영주 기자】 2일 상오 8시30분쯤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에서 전 일본 트라이애슬론연맹이 주최하는 91트라이애슬론 아시아컵 제주대회에 참가했던 일본인 오미아 지카라씨(50·일본 대판시 추추분정1의 233)가 수영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오미아씨는 이날 한국선수 8명,일본선수 5백89명 등과 함께 이날 상오 7시부터 시작된 수영경기에 참가했다가 변을 당했다. 또 상오 9시10분쯤 제주시 연동 신성부락 입구도로에서 수영대회를 마치고 자전거경기에 나섰던 일본 선수 요다케 요시키씨(18)가 도로를 횡단하던 강담 할머니(70)를 치어 강 할머니의 오른쪽 무릎을 다치게 했다. 상오 9시50분쯤에는 북제주군 애월읍 신엄리 새마을금고 앞 도로에서 제주5바6125호 봉고승합차(운전자 강행준)가 자전거경기를 벌이던 일본 선수 히로야 나카오씨(29)를 치어 히로야 선수의 오른쪽 무릎이 크게 다쳤다. 대회주최측인 전 일본 트라이애슬론연맹은 오미아씨를 제주의료원으로 후송한 뒤 사이클 등 경기를 속행하려 했으나 비가 오는 날씨와 오미아씨 사망 등의 이유로 대회를 전면 취소했다. 이 대회는 당초 출전선수들을 이날 상오 7시부터 하오 11시까지 제주도 일원 총 2백30.2㎞ 구간에서 수영·사이클·마라톤을 휴식없이 완주토록 한 다음 3일 상오 9시30분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우승철인에 대한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 새벽 여관 불… 남녀 6명 숨져/3층 객실등 태우고 4백만원 피해

    26일 상오 4시30분쯤 서울 도봉구 미아 3동 189 청화장여관(주인 김주옥·41)에서 원인모를 불이 나 3층 객실에서 잠자고 있던 정복희씨(22·볼링장 종업원·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오금리 172)등 인근 볼링장 여자종업원 5명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지고 한정현씨(28·무직·도봉구 번1동 510)가 불을 피해 창문으로 뛰어내렸으나 숨졌다. 불은 3층 객실 2개와 복도·계단 등을 태우고 4백20여 만원의 재산피해를 낸 뒤 20여 분 만에 꺼졌다.
  • 미도파·신세계에도 “독극물” 협박편지

    경찰은 2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동백화점 안 모 사장 앞으로 현금 1천만원을 입금시키지 않으면 매장안의 식품에 독극물을 투입하고 집에 폭발물을 투척하겠다는 협박편지가 24일 하오 2시쯤 배달된 것과 관련,같은 시간에 미도파백화점 청량리지점과 신세계백화점 미아지점에도 똑같은 내용의 편지가 배달된 것을 밝혀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미도파·신세계백화점에서는 우편물 분류작업이 늦어 이날 협박편지가 배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