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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경기, 미신고복지시설 60곳 폐쇄

    8월이후 경기도내 미신고 사회복지시설 가운데 60곳 이상이 폐쇄될 전망이다. 경기도는 31일 정부의 방침에 따라 지난 2002년 6월부터 미신고 사회복지시설을 양성화하기로 하고 각종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도 조건부 신고 시설 289곳, 미신고 시설 85곳 등 모두 374곳의 미신고 사회복지시설이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각종 지원 및 홍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신고시설로 전환한 미신고 복지시설은 단 28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머지 미신고 시설들은 7월말까지 신고시설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폐쇄된다. 특히 현재 미신고 시설 가운데 그린벨트나 용도지역 변경이 불가능한 지역내 미신고 시설 60곳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폐쇄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폐쇄되는 복지시설 생활자들을 인근 신고 복지시설로 옮겨진다. 도는 미신고 복지시설의 적극적인 양성화를 위해 7월말까지 시설별 담당공무원을 지정, 신고시설 전환을 위한 행정절차 및 재정지원 내용 등을 적극 홍보하고 각 시설에 국·도비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본회의 통과 주요법안 요지

    ●민사집행법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급료에 대해서는 압류를 못하도록 했다. ●조세특례제한법 국민주택규모(전용면적 25.7평)를 초과하는 공동주택에 부과하는 일반관리용역 및 경비용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기한을 2005년 12월까지 1년간 연장한다. ●부가가치세법 음식·숙박업을 영위하는 간이과세자에 대해 신용카드 등 매출세액 공제율을 현행 1%에서 1.5%로 높였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신용불량자’라는 용어와 등록제를 삭제하고, 채용할 때 개인 신용정보의 제공 등을 못하도록 했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퇴직금 제도에 퇴직연금(기업연금) 제도를 병행, 퇴직연금제를 선택하는 근로자는 만 55세부터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지금은 5000만원 이상의 금액을 현금으로 금융기관에서 예·출금할 때는 은행 등이 이런 사실을 금융정보분석원에 통보하는데, 개정안은 통보 기준금액을 대통령령(2000만원 유력)이 정하는 수준으로 낮추도록 하고 있다. ●국어기본법 공공기관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하되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 한해 괄호 안에 영어나 한자를 병기한다. ●금융지주회사법 정부가 금융지주회사의 지배주주가 되는 경우 그 보유주식의 처분기한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한다. ●증권거래세법 증권거래세를 신고기한 내에 신고하지 않거나 미달 신고하면 미신고세액의 10%를 가산세로 부과한다. ●지방자치법 지방자치단체가 위법한 재무·회계행위를 할 경우 주민들이 감사청구를 거쳐 해당 자치단체장을 상대로 주민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한다.
  • [녹색공간] 불씨가 꺼져가고 있다/김하돈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정책위원장·시인

    백두대간 보호법의 시행을 앞두고 정부, 지자체, 주민, 시민단체가 마주 앉는 현장 쟁점토론회가 몇 군데서 열렸다. 다른 이야기는 접어두더라도 그 동안 현장 주민들에게 전달된 법안의 취지와 내용에 대한 극심한 왜곡과 와전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집을 지을 수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다는 소문은 고사하고, 땅을 사고 팔거나 심지어 무덤도 쓸 수 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아연실색할 뿐이다. 낱낱이 거짓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이 법률에 의해 발목이 잡힌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지자체의 선전에 불과했다. 더욱 분통이 터질 일은 그동안 정부부서에서 보호지역 주민과 지자체에 대한 지원과 보상에 대하여 오랜 연구와 검토로 정리된 일정의 성과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해서는 단 한 토막도 현장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률의 진정한 제정 이유나 가치에 대한 인식도 대부분 호도되어 있다. 백두대간이 풍수지리에 근거한 턱없는 미신이라거나 정부부서의 탁상공론식 줄긋기에 불과하다는 말들이 그렇다. 단언하건대, 백두대간을 지정 보호하자는 취지의 뿌리는 풍수지리도 아니요, 국가 행정부의 막연한 보호구역 줄긋기도 아니다. 지금 한반도의 육상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어 거의 초죽음에 이르렀다. 저 아름다운 설악산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지 못한 이유를 아시는가? 산은 그 어느 나라의 것보다 갑절 아름답지만 동식물의 서식이 절멸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먹고 사는 문제가 코앞이니 그러려니 한다 해도, 언젠가는 깨끗한 물, 맑은 공기를 복원하기 위하여 무수한 노력을 기울이는 날이 올 것이다. 바로 그때,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끊이지 않고 오르내리는 백두대간이야말로 한반도 육상 생태계를 복원하는 불씨이다. 불씨가 남아 있어야 다시 불을 지필 것 아니겠는가! 하여, 이제라도 이 마지막 남은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보호하자는 것이 이 법률의 절박한 염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서인 산림청은, 현장의 주민반대로 위장한 지자체의 개발논리 벽 앞에서 당황하여 이런저런 개발예정지 및 쟁점지역을 모두 제외시킬 작심을 하고 있다. 그리 되면 그것은 이미 ‘보호법’이 아니라 ‘관리법’에 불과하다. 군데군데 대형 국책사업으로 끊어지고, 듬성듬성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잘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구멍 나고 비루먹은 백두대간 보호법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속절없이,1월1일이 다가오고 있다. 보호구역도 없는 보호 법률이 시행되는 그날 아침을 새해라고 달갑게 맞아야 하는 운명이다. 흐르는 세월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렇게 해가 바뀐다 하더라도, 부디 새해에는 정부와 지자체와 국민이 모두 함께 백두대간의 진정한 복원과 보전의 명제가 정녕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되묻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호구역의 넓이나 길이가 아니라, 무엇을, 왜, 얼마나 끊이지 않게 연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칙과 방식이다. 그리하여 그 침범할 수 없는 원칙과 방식이 서면, 국가는 지자체와 주민들이 규제에 의해 입은 손실을 지원 보상하고, 지자체나 주민들은 그에 따른 국가 차원의 절박한 ‘불씨’ 보전의지를 수용하고 동참해야만 한다. 피할 수 없는 개발도 생태계 보호선에서 조금씩 물러나고, 또 어느 곳에서는 보호구역도 조금쯤 양보하자. 무슨 한이 있어도 백두대간만큼은, 그 한반도 육상 생태계의 마지막 불씨만큼은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자손만대로 물려줄 국토를 살리는 외길이다. 김하돈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정책위원장·시인
  • “美시장 교포기업 통해 뚫어라”

    “미국에 교포기업만 3만개가 넘습니다.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이들 교포기업만 접촉해도 수출선은 훨씬 쉽게 뚫릴 겁니다.” 미국에서 30여년간 섬유사업 및 신용조사업을 하고 있는 이동연(53) 한미신용정보 회장의 말이다. 하지만 교포 기업가를, 그것도 업종이 엇비슷한 곳을 찾아내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이 회장이 1년여의 준비작업 끝에 최근 ‘미주 한인기업 연감’을 발간한 이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간 지 100년이 넘었지만 미국내 교포기업 소개책자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연감 발간을 기념해 고국을 찾은 이 회장은 15일 기자와 만나 “미국시장 공략은 돈이 아니라 정보”라고 힘주어 말했다. 500쪽 분량의 연감에는 알짜 교포기업 5000여개의 미국내 주소, 대표, 연락처 등이 나와 있다. 무엇보다 업종별로 갈무리해 한국내 중소기업들이 자신들과 연관되는 회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바이어 명단’인 셈이다. 물론 자체 신용조사를 거쳐 어느 정도 튼실한 회사만 엄선했다. 이 회장은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중소기업이나 거꾸로 한국시장에 관심있는 미국내 교포기업들이 그동안 사업 파트너를 찾으려고 해도 상호 정보가 부족해 애를 먹었다.”면서 “이같은 정보 네트워크야말로 시장을 공략하는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9·11 사태이후 외국인, 특히 동양인에 대한 적대감이 커져 이제는 미국이 무섭다.”는 그는 “얼마전 미국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서로 말이 통하는 기업끼리 손을 잡는 윈윈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출주문을 따내기 위해 매출이나 품질을 부풀리는 등의 ‘거짓말’은 절대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연감은 전국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한국核’ 의장성명으로 매듭

    |빈 함혜리특파원|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는 26일(하오) 한국 핵물질 실험에 대해 7개항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IAEA의 문제제기로 촉발된 한국 핵실험 파문은 3개월 만에 일단락됐다. ●막판 진통 끝 최종합의 이사회는 당초 이날 속개된 회의에서 이사국간 합의를 기초로 한국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하지 않되 정오(한국시간 오후 8시쯤) 미신고 사항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포함한 의장성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의장이 이사국들과 문안을 놓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국가가 특정 문안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회의를 일시 중단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이사회는 이날 채택한 의장 성명에서 한국의 핵물질 실험과 이를 IAEA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은 명백한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실험들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고 ▲그동안 모든 미신고사항들에 대한 시정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졌으며 ▲한국이 적극 협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사무총장이 이사회에 적절한 방식으로 보고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례적인 결정 빈의 외교 소식통들은 이번에 이사회가 한국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한 점을 이례적인 결정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안전조치 위반으로 IAEA에서 의제로 다룬 나라 가운데 안보리에 회부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막판까지도 불투명했던 한국 핵실험 처리 방향이 최종 단계에서 미국 등 주요국들의 입장변화로 이사회 차원의 종결로 급선회한 것은 우리 외교 관계자들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이는 우리 정부가 외교망을 총동원해 ‘원자력 외교’를 펼친 것이 효과를 발휘했으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 문제를 안보리에 보고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추가확인 작업 적극 협력” 국제사회는 그동안 한국문제를 접하면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실험이 실시된 것을 한국정부가 몰랐을 리 없고 이는 정부차원에서 핵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이사회의 결론으로 이같은 의혹은 벗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핵확산금지조약(NPT) 당사국이며 핵발전율 세계 6위의 국가로서 투명성 측면의 신뢰도에 금이 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IAEA 이사회가 앞으로 미진한 부분에 대해 추가적인 사찰을 실시해 적절한 방식으로 보고할 것을 주문한 것은 한국정부에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한다. 오는 12월 실시될 추가 핵사찰 등 앞으로의 사찰결과 지금까지 확인된 사항 이외의 심각한 사안들이 드러날 경우 안전조치 위반에 대한 논의 강도는 이번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 대표인 최영진 외교통상부 차관은 “우리로선 핵실험 문제가 공정하고 균형있고 적절한 방식으로 IAEA 내에서 평가됐으며 일단락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차관은 이어 “앞으로 IAEA 이사회 틀 내에서 미확인 안전사항 등의 확인작업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며 “그러나 추가 조사에서 새롭고 특별한 사항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lotus@seoul.co.kr ■ IAEA 이사회 의장성명 7개항 ▲공정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진행된 IAEA의 사무총장 보고서에 감사한다. ▲한국의 핵실험 보고 누락이 심각한 우려 사안이라는 사무총장의 보고서에 동의한다. ▲그러나 한국의 핵실험 관련 물질이 소량이고 실험이 계속된 징후가 없다는데 주목한다. ▲한국정부의 시정조치를 환영한다. ▲한국정부는 IAEA 핵투명성 관련조치에 계속 협력해 달라. ▲추가의정서의 효과와 유용성을 입증한 사례다. ▲사무총장은 추후 조사결과를 적절한 방식으로 이사회에 보고해 달라.
  • 한국核 안보리 회부 않기로

    |빈 함혜리특파원|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한국의 과거 핵실험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가 밝혔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사무총장도 “한국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핵물질이 양이 적고 미신고 실험이 계속돼 왔다는 징후가 없다.”면서 유엔 안보리에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한국 핵물질 실험 문제에 대한 처리향배는 이번 이사회에서 의장성명 또는 요약보고 형식으로 종결되거나 차기 이사회(내년 2월말)로 넘어가는 방안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준 외교부 국제기구 정책관은 IAEA 이사회가 시작된 25일 오전(현지시간) 이사회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현 시점에서 우리의 핵실험이 안보리에 보고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사국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오 정책관은 “그동안 안보리 회부를 강력히 주장해 온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도 사무국 보고서를 검토하고 다른 이사국과의 협의를 통해 한국의 핵실험 문제를 안보리에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이사회에서 한국 핵물질 실험문제가 종결될 것인지, 또 종결되더라도 어떤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인지 등은 아직 불투명한 실정이다. 오 정책관은 “이사국들은 추가 확인할 사안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차기 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방안과 사무총장이 추후 연례보고서 등 적절한 방식으로 보고하는 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결과문서는 의장성명이나 요약보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의장성명은 안보리 보고보다는 약하지만 이사국들간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요약보고는 이사국간 합의가 조금 미약하더라도 의장이 다수의 의견을 정리해 보고하는 것이어서 강도의 차이가 있다. 이와 관련해 마크 고즈데키 IAEA대변인은 “비록 상대적으로 위반정도가 약하고 극미량이기는 하지만 일부 국가의 입장은 한국이 핵안전조치 협정을 위반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해 의장성명이 채택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편 이사국들 간의 의견이 엇갈려 오후 회의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26일까지 한국문제 논의가 연장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아직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사무총장 보고서에 근거해 차기 이사회로 한국문제가 넘겨질 가능성도 있다.IAEA는 오는 12월 한국에 대한 추가 사찰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차기 이사회로 순연하지 않고 이번 회의에서 일단 사안을 종결하되 추후 사무총장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이사회에 보고하는 방안을 설득할 방침이다. lotus@seoul.co.kr
  • “한국 우라늄농축 美도 책임”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의 미신고 우라늄 농축 실험을 둘러싸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보고서 채택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공동연구 형태로 한국에 기초적인 기술을 제공한 미국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4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한국 과학자들은 1980년대 미국에 유학한 핵무기 개발 거점인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나 공군무기연구소의 자금과 설비 등을 제공받아 레이저 농축 장치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동증기(銅蒸氣) 레이저나 미세가공 등의 기술을 습득했다. 레이저 농축 전문가로 한국원자력연구소 과학자들을 잘 아는 미주리대학 제프 아켄스 박사는 한국이 습득한 동증기 레이저 기술이나 이 기술을 기초로, 특수한 금속을 대신해 사용한 테스트의 집적이 “우라늄 농축 성공의 배경에 있다.”고 지적했다. taein@seoul.co.kr
  • 불법 외환거래 무더기 제재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해외 부동산이나 골프장 회원권을 사들이는 등 불법 외환거래를 한 기업과 개인에 대해 무더기로 제재조치가 취해졌다. 금융감독위원회는 29일 정례회의를 열어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기업 77개사와 개인 89명에 대해 1개월∼1년간 외국환거래 정지, 해외직접투자 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렸다. 금감위는 또 불법 외화유출이나 탈세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 2개사와 개인 13명에 대해서는 검찰에 명단을 통보하고, 기업 56개사와 개인 261명은 국세청과 관세청에 통보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업무소관상 이번에는 당국 미신고 등 불법거래에 대해서만 조치가 이뤄졌으나 앞으로 검찰, 국세청 등이 확인에 나설 경우 불법 외화유출이나 탈세 혐의가 더 많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처분 대상자 가운데 개인 13명은 중국 부동산을 취득하면서 매입자금 일부를 현지 은행에서 대출받아 충당하고도 한국은행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개인 6명은 한은에 신고하지 않고 해외 골프장 회원권을 사들였으며, 기업 11곳과 개인 14명은 해외 현지법인에 자본금 등을 투자하면서 외국환은행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국내 증권사를 거치지 않고 해외증권을 취득하거나 해외 부동산을 임차한 경우도 제재대상에 포함됐다. 금감원은 올해 이뤄진 증여성 송금과 유학생 경비 등 일반송금, 해외투자 과정에서의 외국환거래법 위반여부에 대해서도 집중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또 분산송금 등을 통해 불법 외환거래를 방조한 혐의가 있는 은행 영업점에 대한 조사도 조속한 시일내에 마무리짓기로 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히포크라테스/자크 주아나 지음

    히포크라테스/자크 주아나 지음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작성했다는 의사의 윤리강령, 즉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다. 그러나 정작 히포크라테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적이 없다.‘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 집안인 히포크라테스 가문에서 다른 집안의 의사 지망생을 받아들일 때 요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의학을 ‘인간의 과학’으로 끌어올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그 이름은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히포크라테스의 삶과 업적이 워낙 안개에 싸여 있고, 국내에서는 그에 관한 독립된 책 한 권 나온 게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조명하는 히포크라테스의 삶 그런 점에서 최근 국내에 소개된 평전 ‘히포크라테스’(자크 주아나 지음, 서홍관 옮김, 아침이슬 펴냄)는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단순한 의학자 전기는 아니다. 히포크라테스와 그가 남긴 저술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 사회 분위기, 풍속까지 아우르는 종합교양서라 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대학의 그리스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각종 역사서와 연설문, 서사시, 희곡 등 방대한 그리스 문헌과 역사 유물들을 살펴보고 히포크라테스 총서를 꼼꼼히 검토하며 히포크라테스의 생애를 오롯이 복원해냈다. 우리는 왜 히포크라테스를 위대한 의사로 칭송하는가. 왜 그를 서양의학의 시조라고 부르는가. 이를 알려면 먼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60년경 그리스 코스 섬에서 태어나 기원전 377년 무렵 테살리아 지방의 라리사에서 죽었다고 한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가문의 후예인 그는 의술을 익힌 뒤 고향을 떠나 한 평생 그리스 반도와 소아시아를 여행하며 의술을 실천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질병은 신이 내리는 벌’이라며 질병 치료를 초자연적인 의술에 의존했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이 질병을 고쳐준다고 믿어 곳곳에 그의 신전이 세워졌다. 병든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제물을 바친 뒤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신의 치유 손길을 기다렸다. 히포크라테스는 이런 ‘미신’을 과감히 물리쳤다. 그리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신에게 빌거나 주문을 외우는 대신 음식과 운동을 처방하고, 약물을 사용하고, 칼로 절개하고, 불로 지지는 치료를 베풀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치료법이지만 당시로선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히포크라테스를 기점으로 합리적 의술은 마침내 주술적 의술과 결별했다. ●환자 분비물 맛 볼 정도로 치료에 열성 히포크라테스학파는 환자에 대한 관찰을 중시했다. 히포크라테스학파의 의사들은 땀, 대변, 토사, 가래, 고름, 질 분비물의 냄새를 직접 맡았고 맛까지 보았다. 환자를 관찰하고 만져보고 소리를 듣는 데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던 히포크라테스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얼굴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해 ‘자격증’ 없는 떠돌이 의사들이 참고로 삼게 했다. 이것이 바로 ‘히포크라테스 안색’이라 불리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합리주의적 사고와 인간존중 정신이다. 히포크라테스 당시는 간질환자가 몸을 떨면서 정신을 잃었다가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리는 모습을 신과 만나는 접신(接神)과정으로 여겼다. 때문에 간질은 ‘신성한 병’으로 간주됐다. 이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히포크라테스는 합리적인 정신을 잃지 않았다. 한 예로 스키타이인들이 성 불구가 많은 현상에 대해 히포크라테스와 동시대 인물인 헤로도토스는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지만, 히포크라테스학파 의사들은 스키타이인들의 잦은 승마가 정자의 통로를 손상시켰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히포크라테스학파 의사들은 또한 신분에 따라 환자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마케도니아 왕가와 대대로 친분이 있었던 히포크라테스는 평범한 하층민들의 진료도 꺼리지 않았다. 심지어 노예를 진료할 때도 질병의 경과를 열심히 관찰하고 치료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의술에 대한 사랑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3년간의 각고 끝에 번역을 끝낸 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 박사는 “히포크라테스에 관한 책은 한국은 물론 외국에도 별로 없다.”며 “히포크라테스학파 의사들이 환자를 세심하게 배려한 대목은 지금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히포크라테스로 돌아가자” 이 책은 자신의 가문에 독점적으로 전승돼 오던 의술을 외부에 개방해 널리 보급하고 인체를 처음으로 자연과학의 탐구대상으로 삼은 ‘의술의 혁명가’ 히포크라테스의 업적에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우리가 흔히 접하는 히포크라테스에 관한 그릇된 상식도 지적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은 보통 예술을 창조한 사람은 죽더라도 그들의 그림이나 음악 등은 영원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가 원래 의도한 뜻은 예술이 아니라 의술이 후대까지 길이 전승된다는 것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생전에 명의로서 명성을 얻었고, 죽은 뒤에는 더욱 추앙받아 의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사람들은 ‘히포크라테스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히포크라테스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3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美언론 경험으로 예측한 승부

    美언론 경험으로 예측한 승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간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접전으로 전개되자 미국의 언론들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미신’으로 승부를 예측해 보고 있다. 우선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 전통에 따르면 부시 후보가 유리하다.1812년 이래 지금까지 전쟁 중 선거를 치른 5명의 대통령은 모두 재선됐다. 해리 트루먼과 린든 존슨은 수행 중인 전쟁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재선을 포기한 바 있다. 또 역대 미 대선에서는 대체로 키가 큰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신장이 2m 가까이 되는 케리 후보가 유리하다. 1936년 이래 워싱턴의 풋볼팀 레드스킨스가 선거 전 마지막 경기를 이기면 현역 대통령이 재선됐고 지면 도전자가 이겼다. 올해는 스킨스가 마지막 게임을 비겼다. 1956년 이후 어린이 모의투표에서 승리한 후보가 실제로도 승리했다. 올해 ‘위클리 리더’가 50개주 32만 7000명의 어린이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부시 대통령이 65 대 35의 압승을 거뒀다. 1980년 이래 ‘핼로윈 축제’에 쓸 마스크가 많이 팔리는 후보가 승리했다. 올해는 부시의 얼굴을 담은 마스크가 케리 마스크보다 55 대 45의 비율로 많이 팔렸다. 또 1992년부터 ‘패밀리 서클’이 후보 부인들의 요리 솜씨를 평가했는데 여기서 높은 점수를 받은 쪽이 모두 승리했다. 올해의 경우 이 잡지가 로라 부시의 초콜릿 쿠키와 테레사 하인즈 케리의 호박 쿠키 제조법을 인터넷에 올린 결과 로라쪽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후보 가운데 머리숱이 많은 쪽이 이기는 경향도 있었으나 부시나 케리 모두 곱슬머리와 직모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머리털을 하나하나 세기 어려울 만큼 숱이 많아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dawn@seoul.co.kr
  • [논술이 있는 책]동양 철학 에세이/김교빈·이현구 지음

    ‘동양 철학’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공자왈 맹자왈’하는 까다롭고 고리타분하기만 한 규범들이라는 생각, 아니면 사주나 관상과 같은 신비스러운 미신들? 어떤 것이든 많은 사람들이 동양 철학에 대해 나하고는 직접 상관없는 옛 유물이며,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한자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뜨거워지는 요즘의 청소년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동양 철학은 우리의 문화와 사고 체계를 이루고 있는 우리 전통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인간과 삶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사상가들이 남긴 훌륭한 유산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더욱 충실하게 꾸미기 위해서 한 번쯤은 꼭 되돌아보고, 딛고 나아가야 할 디딤돌이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학문이 가장 화려하고 자유롭게 발전했다는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공자·노자·묵자·장자·맹자·순자·법가·명가·주역의 아홉 가지 주제로 나누어 하나하나 간결하게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동양 철학의 세계로 매우 쉽고 재미있게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참다운 장점은 쉽고 재미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동양 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우리들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쓴 사람들은 철학은 현실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동양 철학에 대해 시대와 사회를 넘어선 보편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각 사상들의 시대적 의미와 한계를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그들 사상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현실과 삶에 대한 동양의 옛 사상가들의 여러 가지 진지한 고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과 생각을 좀더 알차고 여유롭게 꾸미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 (www.unidream.co.kr) ●생각해보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각 인물들의 사상의 특징과 주요 개념을 표로 정리해 보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사상가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인물과 사상을 골라 그 이유를 써보자. ▲공자 사상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지, 생각을 써보자. ▲최근의 환경 위기와 관련하여 노자와 장자의 ‘무위자연’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주목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노자와 장자가 말하는 ‘도(道)’의 뜻을 정리해 보고, 그들의 사상을 공자의 사상과 견주어보자. ▲흔히 묵자의 ‘겸애’ 사상을 기독교의 ‘사랑’과 비교해서 말하곤 한다. 이 두 가지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밝혀보자.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의 내용을 정리하고, 각 인간관의 차이가 사회관에 어떠한 차이를 낳는지 자기 생각을 써보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양철학에 대한 잘못된 수용 자세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왜 잘못되었는지 자기 생각을 써보자. ▲흔히 ‘동양은 정신적이고 서양은 물질적이다.’,‘동양은 실천적이고 서양은 이론적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런 생각이 갖는 문제점을 써보자. ▲동양 사상은 현대 사회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받는 근대 서구 물질 문명의 대안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독서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3∼고3 -관련 교과:중학 사회·도덕/고등 사회·윤리와 사상, 전통윤리 -함께 읽어볼 고전 및 원전:공자의 , 장주의 -1998년 서울대 논술고사 기출문제 지문
  • [AL 챔피언십시리즈] ‘밤비노 저주’ 시작됐나?

    ‘밤비노의 저주’는 84년이 흐른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지난해 뉴욕 양키스와의 미프로야구 아메리칸리그(AL) 챔피언십시리즈(7전4선승제) 마지막 7차전에서 투수 교체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저주를 자초한 보스턴 레드삭스는 올해 첫판부터 팀의 에이스 커트 실링을 희생양으로 내줘야만 했다.“‘밤비노의 저주’ 따위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큰소리친 실링은 최악의 투구로 대거 6점을 헌납하며 3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왔고,초반부터 실링을 두들긴 양키스는 2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양키스가 13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벌어진 AL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서 선발 투수 마이크 무시나의 호투와 마쓰이 히데키를 축으로 한 호화타선을 앞세워 보스턴을 10-7로 따돌렸다. 정규시즌 12승9패를 기록한 무시나는 이날 보스턴 타선을 상대로 4연속 탈삼진을 포함해 6과 3분의1이닝 동안 무실점 무안타의 퍼펙트 행진을 벌였고,마쓰이는 5타수 3안타 5타점으로 승리에 힘을 보탰다. 양키스는 1회말 2사 뒤 게리 셰필드의 2루타에 이어 4번타자 마쓰이가 가볍게 갖다 댄 타구가 좌중간을 뚫고 나가며 선취 득점했고,버니 윌리엄스의 적시타로 다시 1점을 보탰다.3회에도 양키스는 데릭 지터,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연속안타와 셰필드의 볼넷으로 무사 만루를 만든 뒤 마쓰이가 실링의 초구를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맞히는 2루타로 주자를 모두 불러들였다.호르헤 포사다의 희생플라이로 점수를 보탠 양키스는 싱거운 승리를 낚는 듯했다. 그러나 8-0으로 앞선 7회 마크 벨혼에게 2루타를 내준 무시나의 퍼펙트 행진이 깨지면서 갑작스레 흔들렸다.데이비스 오티스,케빈 밀라,트롯 닛슨에게 연속 안타로 3실점하며 무시나가 강판된 것.구원 등판한 태년 스터츠마저 제이슨 배리택에게 2점 홈런을 맞아 8-5까지 쫓겼다. 화력이 살아난 보스턴은 8회 2사 1루에서 매니 라미레스의 안타로 1,3루를 만든 뒤 오티스의 3루타로 1점차까지 바짝 따라 붙었지만 양키스에는 ‘철벽 소방수’ 마리아노 리베라가 있었다.조카와 사촌의 장례식을 마치고 경기 시작 직후 고국 파나마에서 막 돌아온 리베라는 불 붙은 보스턴의 방망이를 단 2안타로 잠재웠고,박빙의 우위를 지킨 양키스는 8회말 버니 윌리엄스가 2타점짜리 3루타로 쐐기를 박았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국감장 주변은 이익단체 집회장”

    국정감사장 주변이 노조나 관련단체,지역주민의 민원성 집회와 시위로 얼룩지고 있다.해당 부처나 지자체,정치권에 요구사항을 알리고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미신고 집회가 늘고 일부 시위가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자 경찰청은 국감장의 출입을 막거나 국감을 방해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즉각 검거하는 등 엄정 조치토록 일선 경찰서에 지시했다.또 미신고 집회는 해산조치하고,국감 상임위원장의 요청이 있으면 국감장 내부에도 경찰을 배치키로 했다. 6일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국회 산업자원위 국정감사는 오전 내내 열리지 못했다.국감장인 경기 분당 가스공사 정문 앞에서 공사 노조원 100여명이 국감 시작 1시간 전부터 구조개편 추진과 민영화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인 것이 발단이 됐다.한나라당 김용갑 의원 등은 “이런 상황에서는 감사를 진행하기 어렵다.국감장을 국회로 옮기자.”고 주장했고,국감은 4시간 남짓 정회됐다. 비슷한 시간 행정자치위의 국감이 진행된 서울시청 앞에서도 공공연맹 소속 노조원 150여명이 서울시측과 장기간 분쟁중인 공공부문 사업장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국감 방청을 요구하다 사전허가가 없었다는 이유로 국감장 출입이 봉쇄되자 경찰들과 10분 남짓 몸싸움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일부 노조원이 경찰 방패에 맞아 부상을 입기도 했다. 판교주민대책위 소속 주민 200여명도 이날 국정감사가 열린 분당 한국토지공사 정문 앞에서 개발에 따른 이주단지 조성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가졌다. 앞서 전날에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악덕 기업주들의 구속을 촉구했다. 4일에는 세종로 문화관광부 앞에서 제주도 카지노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위원회 소속 100여명이 카지노 증설 계획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같은 날 한국전력 국감장 주변에서는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노조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대해 상지대 정치학과 정대화 교수는 “국정감사와 정기국회 중 각종 단체의 집회 시위가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강화된 국회의 권한에 비해 그만큼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이익집단의 비정상적이고 과도한 요구가 있다면 국회가 공익적차원으로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경찰청 관계자는 “노동,환경,인권 등 각 분야 국회의원들이 모이는 데다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어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시위가 줄을 잇고 있다.”면서 “국감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불법 시위에는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엘바라데이 IAEA총장“심각한 우려상황 표현은 모든 미신고활동에 적용”

    엘바라데이 IAEA총장“심각한 우려상황 표현은 모든 미신고활동에 적용”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지난달 IAEA이사회에서 ‘한국의 핵물질 실험이 심각한 우려사항’이라고 한 것과 관련,“이는 IAEA에 신고하지 않은 모든 활동에 적용되는 표현”이라고 3일 말했다. 퍼그워시 서울총회에 참석차 방한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달 중 예정된 IAEA 3차 사찰단 파견과 관련,“그간 2차례의 조사활동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사를 위한 정상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의 핵물질 실험은) 1982년과 2000년의 것으로 20여년 전 일이어서 완전한 조사가 이뤄지고 실험들의 역사가 재구성되려면 시간이 걸리며 따라서 사찰단을 계속 보내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핵물질 실험의 성격에 대해 “단순한 실험 이상은 아니었으나 신고됐어야 하는 것이었고,그렇기에 단순한 실험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11월 IAEA이사회에 보고서를 내기 전에) 관련 실험의 성격과 본질,실험의 범위가 파악돼야 한다.”고 말했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가능성에 대해 “보고서가 나오고 나서 IAEA의 이사회가 결정할 문제로 현재로선 예견할 수 없다.”면서도 “(현재까지의 조사에서 핵물질 실험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도 없다.”고 덧붙였다.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하며 북한은 핵무기로 한반도에 대한 위협을 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IAEA “한국核 고강도 사찰”

    IAEA “한국核 고강도 사찰”

    |빈 함혜리특파원|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은 다음주 초부터 실시될 한국에 대한 추가사찰에서 플루토늄 추출실험에 사용된 감손우라늄 2.5㎏의 출처,광석우라늄 150㎏이 134㎏으로 줄어든 경위 등 핵물질의 경로추적을 중심으로 세부 사안에 대해 집중적인 사찰을 실시하게 된다고 마크 고즈데키 IAEA 대변인이 15일 밝혔다. 고즈데키 대변인은 이날 기자와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한국은 지난 1982년의 플루토늄 추출실험과 2000년의 우라늄 농축실험 자체를 신고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들 실험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항들에 대한 신고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실험에 사용된 재료의 출처,실험 기기,부산물의 소재 및 용처 등이 이번 추가사찰 대상이라고 말했다. IAEA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안전조치 위반사항(미신고 사항)으로는 ▲화학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실험 자체 ▲플루토늄 추출 실험의 재료로 사용된 감손우라늄 2.5㎏의 출처 ▲증기레이저동위원소분리기(AVLIS)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실험 ▲천연우라늄 전환시설 3곳 ▲전환작업을 거쳐 광석우라늄 150㎏을 생산한 점 ▲광석우라늄의 일부를 이용해 농축우라늄 200㎎을 분리한 점 등이다. IAEA는 이들 세부 항목별로 전문가들을 수차례 파견해 대덕원자력연구소와 서울 공릉동 원자력연구센터 등 우라늄 및 플루토늄 실험이 실시된 현장에서 환경샘플 등 추가자료를 수집하고,관련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고즈데키 대변인은 덧붙였다. IAEA 이사회는 회의 마지막날에 기타 사안에 포함된 한국문제를 비공식 협의에서 논의한 뒤 의장이 이사회의 의견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입장을 공표할 수도 있다고 IAEA 외교소식통은 말했다.이 ‘의장성명’에는 한국이 모든 핵물질 활동을 신고했어야 하며,한국 정부는 핵비확산조약(NPT)과 부속협정의 규정에 따라야 할 모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의 과거 핵물질 실험에 대한 IAEA 이사회의 논의는 이란 핵프로그램에 대한 이사국들 간의 대립 여파로 17일 오후에야 다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lotus@seoul.co.kr
  • [사설] 대형 참사 불러온 미신고 복지시설

    사회복지시설에서 정신지체장애인이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5명이 중상을 입은 참사는 미신고 사회복지시설의 문제점을 분명히 보여 준 것이다.이 시설에는 정신질환자,치매환자,독거노인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수용자 17명이 마구 뒤섞여 살고 있었다.제대로 된 복지시설이라면 노인복지법 등의 규정상 있을 수 없는 운영 형태다.관리자도 원장을 포함해 4명밖에 안 돼 이번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한마디로 탈법 운영에 부실 관리가 빚은 참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신고 복지시설의 문제점은 어제오늘 지적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책임도 크다.미신고 시설은 정식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없지만 관리 감독의 손길 또한 미치지 않는다.이 때문에 정부의 감독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미신고 상태로 남는 시설도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이번 시설도 지난 2002년 노인복지시설로 신고했으나 시설 규모와 종사자 수 기준 미달로 반려돼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갈 곳 없는 독거노인,불우한 치매환자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복지 당국은 미신고 복지시설에 대한 관리 대책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미신고 사회복지시설은 정식 시설보다 많은 1096개에 달하는 실정이다.시설 규모 등 신고 기준을 완화해서라도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사회복지사 등 자격소지자 확보예산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복지 수요의 증가와 함께 늘어만 가고 있는 미인가 복지시설을 이대로 방치해선 똑같은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없다.
  • IAEA “20일 한국에 사찰단”

    IAEA “20일 한국에 사찰단”

    |빈 함혜리특파원·서울 안미현기자|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한국의 우라늄·플루토늄 실험을 추가 조사하기 위해 오는 20일 사찰단을 파견할 방침이라고 IAEA의 외교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사찰단은 20일 출발,한국에 도착 후 대덕 한국원자력연구소와 공릉동 연구센터 등 과거 우라늄 추출과 플루토늄 분리 실험 등을 한 것으로 보고된 현장을 방문,환경시료 채취 등 보고서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실험 관계자나 정부 당국자들과 만날 계획”이라며 “사안에 따라 IAEA는 여러 차례에 걸쳐 사찰단을 파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IAEA측은 추가사찰단의 파견일정은 한국당국과 상의할 사안이라며 정확한 출발 시점과 사찰단의 규모 등에 대해 공식 확인을 거부했다.한국에 대한 추가사찰 결과는 오는 11월 열리는 4분기 정기이사회에 보고된다. 한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이 아직 보고되지 않은 또 다른 실험이 한국에서 실시됐다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IAEA의 관계자는 “지난 13일 이사회에 보고한 외에 다른 미신고 실험이 있었다는 발언을 사무총장이 한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앞서 13일 개막된 IAEA 정기이사회의 보고에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한국이 신고되지 않은 3개 시설 중 한곳에서 80년대 150㎏의 금속우라늄(natural uranium metal)을 생산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가 2000년 레이저동위원소분리법(AVLIS)으로 농축우라늄 0.2g을 제조하는데 사용됐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우리 정부가 우라늄 농축실험과 플루토늄 추출실험 등 2건의 실험에 대한 해명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다. 빈에 파견된 과기부 조청원 원자력국장은 이에 대해 “금속우라늄은 당시 핵연료 국산화 차원에서 0.02%의 우라늄을 함유하고 있는 인광석으로부터 천연우라늄을 추출해 이를 실험재료인 금속우라늄으로 전환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시험생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조 국장은 “당시 인광석으로부터 천연우라늄 800㎏정도를 생산해 대부분은 월성 원전용 핵연료로 사용했으며,이 중 남은 물량을 변환해서 금속우라늄을 만들었다.”며 “2000년 실험에 사용된 것과 손실분을 제외한 134㎏의 금속우라늄은 현재 원자력연구소가 보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기부는 지난 8월의 IAEA 보고를 앞두고 총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금속우라늄의 존재가 드러남에 따라 이를 지난 7월 IAEA에 신고,IAEA사찰단도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실시한 원자력연구소에 대한 조사에서 확인했다고 조 국장은 밝혔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언급한 ‘신고되지 않은 3개 시설’은 수입 인광석으로부터 천연우라늄을 생산한 시설,천연우라늄을 금속우라늄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이 진행된 시설을 지칭하는 것으로,이 시설들은 이미 폐기됐으며 IAEA사찰단도 지난번 조사에서 이를 확인했다.금속우라늄은 비료의 원료인 인광석에서 이산화우라늄(UO(F)·분말형)→사불화우라늄(UF(H)·분말형)을 거쳐 만들어지며 AVLIS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시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금속우라늄의 시험생산은 초창기 과학자들이 실시한 핵연료 연구의 일환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지난 80년대 전환작업을 통해 금속우라늄 150㎏을 생산하고 이를 2000년 우라늄 농축에 사용한 점 ▲플루토늄 추출 사실을 IAEA 사찰단의 정황표본 추출 후에야 보고한 점 등을 들어 정부의 해명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lotus@seoul.co.kr
  • “인터넷쇼핑몰 사기 꼼짝마” 서울시, 새달 고발센터 개설

    서울시는 환불거부나 허위·과대광고 등으로 속출하는 전자상거래 관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9월부터 전자상거래센터(ecc.seoul.go.kr)를 개설한다고 30일 밝혔다. 한국소비자연맹에 위탁,운영되는 전자상거래센터는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모니터링과 정보,미신고·사기 사이트에 대한 감시 활동 등을 펼치게 된다.또 온라인 사기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소비자와 사업자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제공하며 소비자상담실과 자료실도 운영한다. 한편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7월5일부터 8월23일까지 서울시에 등록된 2만 126개 온라인 쇼핑몰에 대해 조사한 결과,현재 영업중인 1만 906개 업체 가운데 59.7%인 6508개가 청약철회를 아예 보장하지 않거나 7일의 법정기한·대상 물품을 줄여 소비자의 청약철회권이 크게 제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서울, 새달 불법광고물 집중단속

    서울시는 9월 한달을 주택가 골목에 난립해 있는 음란전단·벽보·현수막 등 불법광고물에 대한 집중단속 기간으로 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시는 다음 달 25개 자치구의 가용인력을 총동원,유흥업소 밀집지역과 학교 주변,주택가 등 시내 전지역에서 불법광고물을 집중단속한다.단속대상 광고물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음란광고물,주요 간선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에 난립한 대리운전 광고 등 미신고 현수막·인터넷 PC방·비디오방·대화방 등 창문이용 광고물 등이다. 시는 불법광고물 광고주나 제작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한편,음란성 광고물을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증거물로 제출,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또 10월 중 청소년유해 광고물·대리운전 현수막 등 종류별 불법광고물 사진전을 서울광장에서 열 계획이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간판·입간판·전단·벽보·현수막 등을 공중통행장소에 설치해 폰팅·전화방·화상대화방과 성매매 알선 등의 전화번호를 표시,부착,배포한 광고주나 제작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의 벌금에 처해진다.또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은 불법 광고물의 광고주나 제작자에게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는 현행법상 광고를 내건 광고주나 제작자의 인적사항 추적이 불가능해 그동안 효과적인 단속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보고 관련규정 개선을 행정자치부와 청소년보호위원회에 건의했다. 시 관계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살포,게시되는 불법광고물로 도시미관이 저해되며,특히 음란성 광고물이 청소년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한달간의 단속으로 불법광고물이 주변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신고하는 등 단속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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