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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근 3대, 같고 또 다른 ‘화업의 길’

    너무나 대조가 됐다. ‘한국 미술계의 최고’로 불리는 고 박수근·이중섭 화백의 아들이라는 똑같은 입장이지만 두 자손들의 처지는 확연히 달라졌다. 한쪽은 명예롭게 아버지의 아들로 전시회를 열고, 한쪽은 아버지의 ‘위작 파문’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은 상황. 미술계의 최대 위작 파문과 관련, 박수근 화백의 장남 성남씨와 이중섭 화백의 차남 태성씨는 이렇게 갈림길에 섰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 박 화백의 장남 성남(58)씨가 ‘박수근가(家)3대에 걸친 화업의 길’이라는 전시회를 위해 최근 한국에 왔다. “제가 보기에도 이중섭 화백의 그림은 가짜인데 그 아들인 태성씨가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아버지 그림을 진짜라고 설명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그런 모습을 보고 그는 설명회가 끝난 태성씨를 끌어안고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박 화백의 장녀 인숙(61)씨는 그동안 여러차례 개인전을 열었지만 성남씨가 그림을 그려왔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성남씨의 아들 진흥(33)씨도 인도와 호주에서 그림을 전공하며 화업의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이번 전시회로 처음 밝혀졌다.2대 화업이야 적지 않지만 딸과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3대 화업은 드문 경우라 이래저래 이번 전시회는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어버님이 고 3때 돌아가셨는데 그 이듬해인 1965년 유작전에 출품된 ‘좌녀’를 보고 너무나 잘그렸다 싶어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지요.” 그후 그는 국전에 입선도 하고 전시회도 열며 아버지의 길을 잇는 듯했지만 1986년 호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세간에서 잊혀졌다.“먹고 살려고 청소업을 했는데 청소기를 돌리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했지요.” 늘 헐벗은 나무와 시장 바닥의 여인들 등 한국적이며 서민적인 소재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간직한 아버지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지는 배고픈 시대에 살면서 뭔가 담아내야 했기에 칠한데 또 칠하는 덧바르기 미학을 보였지만 저는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다보니 덜어냄의 미학을 찾고 있어요.” 그렇지만 성남씨의 매끄러운 그림이 화강암과 같은 오돌도톨한 촉각이 느껴지는 아버지 박수근의 작품과 연장선 위에 있다고 느껴진다. 장녀 인숙씨의 그림은 더욱 그렇다. 아버지의 작품과 많이 닮아 있다. 다만 박수근의 그림이 고향의 흙냄새처럼 정겹다면 박인숙의 그림은 동화적인 만큼 보다 편안하다. 손자 진흥씨의 그림은 박수근의 그림자를 벗어난 듯하다. 이국적인 환경에서 공부하고, 젊은 세대의 감각이 덧대진 때문이리라. 이번 전시회는 11월5일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주변에 건설되는 ‘박수근 마을’의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2년에 공사끝에 완공되는 이곳에는 200평 규모의 전시관과 작가 스튜디오등을 갖추고 있다. 11월5일부터 2월26일까지 박수근미술관(033)480-2655.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김재철(70) 회장은 자신을 장보고라고 생각하는 몽상가였다. 김 회장이 서울 농대를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를 지원한 것은 어쩌면 바다에 대한 동경이 아니면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거칠고 험한 바다를 꿈의 대상으로, 기업의 대상으로 삼은 기업인은 우리 사회에 드물다.”소설가 최인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을 주름잡던 마도로스 출신의 김 회장에 대해 건전하고 꿈이 있는 몽상가라고 평했다.2000년 당시 해상왕 장보고기념사업회를 이끌던 김 회장은 최인호씨에게 장보고를 소설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최인호씨는 장보고가 흥미있는 인물이지만 권력을 꿈꾸다 암살(삼국사기)당했던 만큼 내키지 않았지만 김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장보고에 깊이 빠져 소설 ‘해신(海神)’을 쓰게 됐다. ●바다와의 인연…장보고를 꿈꾸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벤처 비즈니스맨의 전형이다. 서울대 입학을 마다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좇아 바다 인생을 택했기 때문이다. 성실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개척자 정신으로 바다와 싸워 성공을 거뒀고 식품가공업과 금융부문 등으로 그룹을 키워내며 자신의 꿈을 이뤘다. 김 회장의 삶은 이처럼 바다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1935년 전남 강진 농촌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는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 동생들 대신 학교를 다닌 셈이다. 어린 동생들은 후에 김 회장이 학비를 대주었지만 기대와 책임감을 한몸에 안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걸어서 두 시간이 족히 걸리는 강진농고를 결석 없이 다니면서 우등생 자리도 놓치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 시절.“바다는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다. 우리 젊은이들이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이끌려 망망대해로 인생의 나침반을 돌렸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계기로 그는 수산대에 진학해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당시 서울대 농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대에 들어간다면 큰 경사인데 갑자기 지방에 있는 뱃사람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또 졸업하고 나서 배를 탈 때도 장애가 많았습니다. 정식 학부 졸업생이 배를 탄 것은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수산대 졸업생들은 수산청이나 수산업협동조합 같은 관계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교사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 저도 여수수산고 교장으로 계시는 고등학교 은사로부터 교사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백면서생의 객기쯤으로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결국 항해중에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겨우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참치 잘 잡는 마도로스’ 1958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원양어업을 시작한 뜻깊은 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승선자이기도 하다. 기업가로 변신하기 전 김 회장은 8년간 실제로 마도로스 생활을 했다. 항해사로 시작한 뱃사람 생활에서 곧 능력을 인정받아 3년 만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됐다. 파격적인 승진이다. 다른 배보다 빨리 만선을 기록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그때부터 국내외 원양어선 업계에서 그는 ‘참치 잘 잡는 선장’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 수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각오로 배를 탔고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출어에 나섰다.”면서 “고기떼를 찾아 바다를 헤맬 때나 조업을 앞둔 새벽이면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뒤의 일은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신조로 삼았던 마음 가짐 때문인지 승승장구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대충’‘괜찮아’다. 1964년 고려원양 수산부장으로 스카우트돼 물품판매, 차관업무, 선박도입 등 수산업 관련 업무를 익혔다. 당시 원양어선이 잡은 참치는 대부분 현지에서 수출됐는데 그때 외국상선들과 거래하며 쌓은 신용은 나중에 창업할 때 큰 도움이 됐다. 1969년.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조업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동원 산업을 창업했다. 당시 사업 밑천은 1000만원. 배는 일본 기업에서 공짜로 빌렸다. 일본에서 어선 구입비로 37만달러의 차관을 도입했는데 담보나 정부·은행의 지불보증 없이 신용만으로 빌린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10여년간 쌓아온 신용의 결과였다. 사장이 된 뒤에도 그는 직접 배를 몰고 고기잡이에 나섰다.‘참치 잘 잡는 선장’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게 동원산업의 원양어선은 월등한 어획고를 기록했다. 창업 2년만인 1970년 외화 획득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수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70년대 초 몰아닥친 1차 석유파동은 동원산업을 비롯해 모든 원양어선 업계에 타격을 주었다. 불황으로 도산하는 기업체가 속출하는 가운데 감원·감량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동원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등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일본에서 4500t급 초대형 트롤어선을 구입했다. 당시로서는 큰 모험이었지만 그는 바다생활을 통해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배를 타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기상정보가 정확지 않아 예보없이 폭풍우를 만나는 일도 많았지만 바람이 온다고 일일이 피해 다니다보면 고기를 잡을 수 없다. 배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와 싸워 이기고 났을 때처럼 감격스럽고 벅찬 희열도 없다. 폭풍우와 맞서 싸운 경험들이 인생을 성장시켰고 여물게 해준 것 같다.” 그는 해양에 관한 풍부한 경륜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85∼91년 한국수산업 회장,90∼92년 원양어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식품과 금융업으로의 확장 다른 원양회사들이 낡은 배를 가지고 ‘본전뽑기’식 조업을 하는 동안 동원은 조업을 끝낸 선박은 현지에서 매각하고 최신형 장비를 갖춘 선박을 구입하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업계 선두주자가 됐다.30여척의 원양어선과 함께 연간 10만t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수산업체로 키운 것이다. 동원산업에서 참치캔을 내놓으며 식품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2년. 다랑어란 본명을 가진 참치는 참치의 일본명인 ‘마권(眞黑)’에서 ‘참(眞)’을 따고 우리나라 생선 대부분의 이름처럼 끝에 ‘치’를 넣어 참치로 부른 것이 유례가 됐다. 참치잡이는 그가 배를 타던 지난 1958년부터 시작됐지만 참치 가격이 비싸고 일반인들에게 낯선 고기여서 전량 수출됐다. 그는 “1981년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코스에서 몇달 공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참치통조림을 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럼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참치통조림을 먹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참치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시 어획고 전량을 일본·태국 등 외국에 전량 수출하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소비가 된다면 동원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다른 업체들이 참치통조림을 만들어 팔다 실패한 뒤의 도전이었지만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참치가 원래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지 않는 고기라 낯설기 때문에 통조림에 참치 모양을 그려 넣고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참치통조림 시식회를 하는 등 참치를 알리는 데 총력을 쏟았다. 출시 이후 4∼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88올림픽과 함께 국민 식품으로 자리잡으면서 동원은 명실공히 식품 업계 강자로 부상했다. 동원 참치캔은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식품업을 시작한 1982년. 김 회장은 증권업에도 뛰어들었다. 역시 하버드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공부하며 들었던 얘기가 동기가 됐다. 하버드대학 MBA출신들이 어떤 분야에 주로 취업하는가를 조사해 봤더니 우수한 사람들이 증권회사나 투자은행을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라는 것이다. 그는 어선을 더 사려고 준비했던 돈으로 증권회사를 샀다. 당시 국내 증권회사의 인식이 좋지 않아 원양어선 한 척 값(80억원대)으로 중견 증권회사인 한신증권을 살 수 있었다. 한신증권을 낙찰받으면서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신증권은 1996년 동원으로 개명했다. 지난 2004년 12월에는 아예 동원그룹에서 분리되어 한국투자증권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재탄생했다. 99년 무역협회 23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그룹의 일들은 주요 사항만 보고받고 있다. 무협 직원 절반가량을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 한편 전자무역 인프라 구축, 세계적인 전시 컨벤션 육성, 수출입물류비개선 , 국제물류센터 추진 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아들들에 밑바닥부터 경영수업 김 회장은 부인 조덕희(67) 여사와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선장시절인 1962년 당시 초등학교 동창이던 조 여사의 오빠 조영채(70)씨의 소개로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조 여사의 아버지는 김 회장이 졸업한 군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낸 분으로 김 회장을 사위로 맞는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 김 회장은 2004년 12월 그룹을 각각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분리하면서 큰아들에게는 금융을, 작은아들에게는 식품을 맡도록 했다. 장남인 김남구(42)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듬해인 지난 6월 자사보다 덩치가 훨씬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기존 동원금융지주보다 시가총액이 두배나 많은 1조원대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했다. 고려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1987년 동원산업 사원으로 입사한 후 91년 동원증권 대리, 기획담당 상무, 부사장을 거쳐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금융지주 지분 33%를 소유하고 있다. 동원F&B 등 식품 계열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김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32) 경영지원실장(직급 차장)이 물려받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92학번인 김 실장은 회사 지분 44.98%를 갖고 있다.97년 동원산업에 입사, 동원엔터프라이즈 과장 등을 거쳤다. 아버지가 만든 참치캔 이후 업계를 선도할 새 베스트셀러를 내는 게 목표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장남 김 사장은 입사하기 앞서 6개월간 남태평양과 베링해에 나가 참치배를 타며 동원을 이해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면서 “하루 16시간 중노동을 하면서 그물을 던지고 참치를 잡는 한편 참치를 삶고 냉동시키는 과정에서부터 갑판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남 김 실장 역시 1997년 경남 창원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시작, 동원산업 영업부 평사원으로 시내 백화점에 참치제품을 배달하는 등 밑바닥부터 배웠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체구가 좋고 남들이 보면 구두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평이다. ●정·관계로 이어지는 화려한 혼맥 건설교통부 장관부터 국정원장까지 동원가의 혼맥은 화려하다. 큰 아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고병우(72) 28대 건교부 장관의 딸인 고소희(37·이대 전산학과 86학번)씨와 1992년 4월 공항터미널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고려대 김동기 교수가 주례를 섰다. 두 사람 사이에 동윤(12)과 지윤(7) 1남1녀가 있다. 고 전 장관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아건설 회장 등을 역임하다 현재 한국경영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철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 쌍용증권 회장 재직시절부터 김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김남구 커플은 ‘괜찮은 사람이니 한 번 만나보라.’는 양가 어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8개월간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대 서양학과 84학번인 첫째 딸 김은자(40)씨는 1989년 서울지검에 재직중이던 정택화(44·고대 법대 79학번) 검사와 중매로 결혼했다. 김은자씨는 내성적이고 일 욕심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생을 겨냥한 사설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 검사는 광주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산고검 부부장검사, 의정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한 뒤 현재 대구 고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열두살된 외동아들 연욱이 있다. 둘째 딸 김은지(37·이대 정외과 87학번)씨는 고 김택수 전 의원의 4남인 서울 법대(81학번) 출신의 김중성(43)씨와 지난 1992년 10월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주례로 식을 올렸다. 성격이 명랑하고 친정과 시댁의 집안 대소사를 두루 잘 챙겨 어머니 조덕희씨의 자랑이 자자하다. 두 사람은 김 회장과 평소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여행사 회장이 1988년 여행사에서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프로그램(CISV)의 대학생 리더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나라종합금융 상무이사를 지낸 김씨는 지난 2001년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투자관리회사인 세인투자관리를 설립,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선(12)과 현선(6) 두 딸이 있다. 막내 김남정(32) 실장의 아내는 33대 법무부 차관과 25대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64) 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의 셋째 딸 신수아(33·이대 장식미술학과 91학번)씨. 대학교 4학년 때 동아리 선배의 소개를 통해 누나-동생 사이로 만난 뒤 6개월만에 연인 사이로 발전,3년 열애끝에 결혼했다. 김상하 삼양사 회장 주례로 지난 1998년 10월 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동찬(5)과 서연(2) 남매를 두고 있다. 사돈인 신건 전 국정원장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인 김재국(63) 전 동해하이테크 사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뛰어난 문장가’ 김재철 회장 “재웅아! 우리는 드디어 만선(滿船)을 했다. 우리 배는 지금 어창(魚倉)마다 고기를 가득 싣고 사모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 떠가고 바다엔 새하얀 우리 배가 물결을 가르면서 달린다. 물위에 떼를 지어 놀던 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한가로이 물에 떠 있던 고래도 배를 피해 점잖게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엊그제까지도 바다는 성난 파도로 꿈틀거렸는데 오늘은 우리의 만선귀항을 축하라도 하는 듯 잔잔하구나.”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소개된 김재철 회장의 ‘남태평양에서’의 한 구절이다. 김 회장은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하지만 문장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젊은 시절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글을 많이 썼다. 이밖에 ‘바다의 보고’,“거센 파도를 헤치고’ 등 그의 글은 초·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소설가 정비석씨는 ‘사상계(思想界)’에 발표한 김 회장의 글을 보고 “이 정도 글 솜씨라면 작가로 데뷔해도 좋겠다.”고 평했다. 김 회장 스스로도 기업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문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서로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가 있다. 그는 원양어선 선장시절 선용품을 사기 위해 시모노세키 등의 항구에 기항하면 책방에 가서 헌책들을 무게로 달아 구입해 배 안에서 끊임없이 읽었다. 덕분에 김 회장은 문학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만큼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다. 지난 2004년 일본 미쓰비시 그룹 회장·사장단으로 구성된 모임인 ‘금요회’에서 ‘나의 인생과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주제로 일본어 특강을 했다. 요즘도 월 평균 10∼20권의 책을 읽는다. 경제·경영·역사·심리 등 분야가 다양하다. 회계학도 독학으로 배워 재무제표도 꼼꼼히 본다. 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동원산업 사내 게시판에는 책 요약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처남인 박인구 동원F&B 사장도 국내 출장이나 여행 때는 반드시 KTX를 탄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강조했다.1주일에 적어도 한 권씩은 읽도록 했다. 정독이 안되면 통독을 하라고 가르쳤다. 책을 주고 A4용지 4∼5장 분량의 독후감도 받았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느낀 점이 부족하면 느껴야 될 점과 핵심 등을 설명해 주었다. 장남인 김남구 사장은 오래전에 독후감 제출을 졸업했지만 김 사장보다 열살 어린 동생 김남정 실장은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독후감 제출 대상이었다. 김 실장은 “일본 대하소설 ‘대망’을 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얼마나 고생해 지도자 자리에 올랐는지 토론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최근에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추천받았는데 유익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동원출신 CEO들 ‘반짝반짝’ 김재철 회장은 소식·금연·절주 등 절제된 생활로 유명하지만 인재 욕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좋은 인재=좋은 실적’이란 생각에서 1980년대 후반 증권업계 최초로 성과급제를 도입했고 금융권 최초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했다. 동원이 인수한 한신증권은 90년대 한번에 특별성과급을 400%씩 지급,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참치를 많이 잡으면 선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듯 선장을 지낸 그의 삶에 성과주의가 깊이 배어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원증권 출신들 중에는 스타급 인사가 많다. 동원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CEO(최고경영인)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대신증권에서 김 회장에게 한신증권으로 스카우트된 그는 1998년 동원증권 사장 재직 당시 금융권 최초로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주택은행장으로 영전돼 권리 행사는 하지 못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즐겁게 일한 뒤 행복하게 헤어진 모범 케이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동원이 놓아주지 않으려 애를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 창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사 재직 시절인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동원증권을 나왔다. 그를 놓아줬다는 이유로 화가 난 김 회장이 김 전 행장과 무려 6개월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일화는 아직도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행장은 한신증권 이사로 일하면서 박 회장을 동원에 영입했다. 두 사람은 절친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재경부 공무원 출신의 정태석 광주은행장(전 동원증권 상무), 장인환 KTB 자산운용 사장(전 동원증권 차장), 송상종 피데스 투자자문 사장(전 한신증권 대리), 조승현 전 교보증권 사장(전 동원창업투자 사장)도 모두 한때 동원증권에 적을 뒀다. 지금도 동원에 몸담고 있는 스타 CEO들이 많다.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사장은 2002년 초 김 회장의 영입제의를 받고 통신장비업체인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 사장으로 왔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 3월 이스텔시스템즈와 동원EnC가 합병한 회사다. 그는 1997년 말 한국전기초자의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 퇴출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3년만에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주인공. 김범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금융관료 출신으로 2002년 합류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은행구조조정팀장과 구조개혁기획단 은행팀장을 지냈다.2000년 초 키움닷컴 사장을 지냈다. 김 회장의 두 아들을 제외하고 동원에서 일하는 인척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 김재운 동영콜드프라자 대표이사 회장, 둘째 처남인 동영콜드프라자 최재열 상무와 셋째 처남인 동원F&B 박인구 사장 등이다. 박 사장은 1997년 산자부 상무관 시절 동원정밀 부사장으로 동원에 합류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익을 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동원F&B 사장이 됐다. 박 사장은 “김 회장은 항상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부인이 아직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없이 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덧붙였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외동자녀 명문대로”…6~7세부터 집중 과외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외동자녀 명문대로”…6~7세부터 집중 과외

    날로 뜨거워지는 사교육 열풍에 중국의 부모들도 허리가 휘어진다.1979년부터 시작된 ‘1가정 1자녀 갖기 운동’으로 소위 샤오황디(小皇帝·외동자녀)들에게 아낌없이 교육비를 투자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명문대 입학이 곧 출세로 이어진다는 ‘일류병’과 ‘학력 제일주의’도 주요한 이유다. 이 때문에 중국의 샤오황디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들의 극성에 못이겨 학원을 전전하고 각종 과외에 시달리고 있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양우(楊武·12)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다. 베이징(北京) 자오양취(朝陽區) 야윈촌(亞運村)에 사는 그는 내년 7월 치러지는 중학교 입학시험에 대비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중학교 입학부터 시험을 본다. 무역업자인 아버지는 홍콩과 미국·캐나다와 교역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60평 규모의 아파트와 자가용을 소유한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초등생 14시간 넘게 공부 시달려 양우의 목표는 베이징에서 명문 중학교로 꼽히는 런민(人民大)대 부속 중학교 입학이다. 부모들은 양우가 칭화(淸華)대나 베이징대 등 명문대를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양우의 하루는 대입 수험생 이상으로 정신없이 바쁘다. 새벽 6시30분에 일어나 7시30분에 등교, 오후 4시반까지 학교 수업을 듣는다. 국어(중국어)와 수학, 영어는 물론 컴퓨터와 음악, 미술, 체육, 사회, 도덕 등 대략 12개 과목을 소화해야 한다. 방과 후에는 야윈춘 근처의 학원에서 하루 2시간씩 영어를 배우고 저녁 8시에 집에 도착,1시간씩 수학 ‘푸다오(輔導·과외)’를 한다. 수학이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학교 숙제를 끝내면 밤 10시가 넘기 일쑤여서 늘 잠이 부족하다. 주말이라고 쉴 틈이 없다. 오히려 더 바쁘다. 입시 과목인 국어(중국어)와 과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어머니 리쥐안(李絹·40)은 “좋은 중학교에 입학해야만 명문 대학교까지 술술 풀리는 것이 중국의 교육 상황”이라며 “아이가 불쌍하지만 다른 학부모들도 나처럼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있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중국의 어린이들은 6,7세때부터 영어나 피아노, 수영 등 온갖 과외를 받는다. 사교육비 부담이 만만찮지만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려는 부모들의 애뜻한 ‘사랑’을 막을 길이 없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상황은 더욱 가혹하다.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베이징대 부속중학교 가오중(高中·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인슝(銀雄·17)은 “대졸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어 명문대를 나오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낙오될 것이란 불안감이 있다.”며 “비밀리에 과외를 하는 친구들이 많고 일부는 상당한 고액 과외도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 하이뎬(海淀)구에 위치한 신둥팡(新東方)학원 등 입시학원들은 수험생들로 일년내내 초만원이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무려 2000위안(26만원)이나 하는 고액의 10일짜리 합숙 영어 프로그램에 수백명이 몰려 중국의 교육열을 실감케 했다. ●1년 유치원비 1인평균소득 넘어 높은 사교육열은 가정 경제의 ‘주름’으로 직결된다. 초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지만 빚을 내서라도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베이징의 경우 1년 교육비가 무려 3만위안(약 390만원) 하는 최고급 유치원들도 적지 않다. 베이징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이 2만 8000위안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영어와 컴퓨터는 기본이고 피아노와 미술, 수영 등 예체능학원까지 다녀야 한다. 대략 300∼500위안(3만 9000∼6만 5000원) 정도를 내면 희망자에 한해 학교에서 보충수업도 받을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과외 수업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후 수업보다 비싸더라도 질이 높은 가정교사나 학원을 찾는다. 대부분 맞벌이인 가정들은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자식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상하이(上海)시 교육위원회가 최근 3027명의 초·중학생 부모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93.1%가 과외나 학원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실제 학원을 보내거나 가정교사를 둔 경우는 초등학생이 19.2%, 중학생 27.5% 등 모두 46.7%로 조사됐다. 상하이 사회과학원은 보고서를 통해 1∼16세까지 자녀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25만위안(약 3250만원)이며 대학 졸업후 취업까지는 총 49만위안(6300만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상하이 시민들은 연간 평균소득이 중국 전체 평균보다 5배 많은 5000달러(500만원)이며 사교육비로 아낌없이 투자한다. 때문에 중국내 최대 사교육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칭다오(淸島)대 멍톈윈(孟天運)교수(사회학)는 “학교성적 올리는 데에만 급급해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는 현재의 사교육은 학생들을 공부기계로 만들 위험이 높다.”고 일침을 놓는다. ●교사 박봉…학원강의 등 부업 높은 교육열과는 반대로 교사들의 처우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다. 지난해 전국 전문대 이상 대학 교수의 연봉은 평균 4만위안(520만원)이 안되고 초·중·고교 교사의 평균 연봉 역시 2만위안(260만원) 안팎이다. 월급 이외에 제공되는 주택이나 각종 사회보장 혜택은 제외된 금액이다. 언론에 소개된 리밍(李明·29) 교사의 사례를 보자. 그는 지난 2000년부터 난징(南京)의 한 고교에서 영어 선생으로 재직 중이다.2개반의 담임을 맡고 있으며 매주 14시간을 강의한다. 월급은 기본급 1200위안에 수당을 합쳐 2000위안. 각종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빼면 손에 들어오는 돈은 1500위안(약 20만원)이다. 때문에 박봉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과외나 학원강사 등 부업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지역의 경우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문 과외교사로 변신, 현직 때보다 2∼3배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청소년 1000만명 정신건강 심각 과외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중국 청년보는 중국의 과외가 ▲보모형 ▲입주형 ▲수험형 등으로 분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모형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생에게 영어·수학의 기초와 그림·노래·무용 등 예체능 분야을 직접 챙기는 형식이다. 입주형은 부유한 가정에 대학생들이 함께 살면서 학습 전반과 교육·생활태도까지 지도하는 신형 과외다. 전·현직 교사나 대학교수들까지 가세하는 수험형 과외비는 보통 시간당 100(1만 3000원)∼200위안(2만 6000원) 선이다. 과도한 교육열 때문에 후유증도 적지 않다. 특히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베이징 완바오(北京晩報)는 베이징시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우울증 환자가 60만명을 넘어섰다고 최근 보도했다. 중국 전역에서는 1000만명 이상이 각종 심리적 이상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때부터 시작되는 입시에 대한 중압감과 치열한 성적 경쟁 속에서 중국의 청소년들이 시름시름 병들어 가고 있다. oilman@seoul.co.kr ■ 현직교사 눈에 비친 교육열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학교에서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나면 학부모들이 줄을 서서 과외 교습을 요청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25년 넘게 교사생활을 해온 왕밍(王明·가명·55)은 중국의 교육열이 최근 하나뿐인 샤오황디(小皇帝·외동자녀)에 대한 기대감과 학력 제일주의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현직 교사로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과외나 학원강사 등의 부업으로 버는 돈이 학교에서 받는 월급보다 많다.”며 “박봉에 시달리는 중국 교사들이 과외 등 부업의 유혹을 떨치기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과외비는 교사들마다 다르지만 자신의 경우 중3과 고3 수험생들의 경우 시간당 100위안이고 ‘일반 학생’은 50위안씩을 받는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대부분 시간당 20∼30위안 정도를 받는다. 현재 중국에서는 교사들의 과외 교습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부업으로 과외 교습을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적발되더라도 퇴직이나 감봉 등의 벌칙은 없다. 승진에만 영향을 받을 뿐이다. 왕 교사는 “한 학교에서 대략 20∼30%가 가정교사나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워낙 박봉에 시달리고 있어 학교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자신의 월급을 밝히길 거부했지만 베이징의 경우 대학졸업 후 교사의 초봉은 대략 1500위안이고 10년 정도 지나도 2000위안이 조금 넘는다는 설명이다. 농촌이나 중소도시의 경우 교사들의 월급은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교직에 대한 젊은이들의 선호도를 묻자 왕 교사는 고개를 흔들며 “젊은이들 사이에는 인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졸 실업자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청년들이 호구지책으로 교사를 선택하지만 좋은 직장을 찾으면 미련없이 교직을 던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중국 교육의 문제점을 물어보자, 왕 교사는 한참 뜸을 들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교육비는 갈수록 높아지고 이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도 적지 않다.”며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oilman@seoul.co.kr
  • 그림 사려면 ‘화랑미술제’로

    이번 가을 큰맘 먹고 지갑을 털어 그림 한점 사고 싶다면 ‘화랑미술제’와 ‘서울국제판화 아트페어’를 한번 둘러보면 어떨까? 최근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가짜 그림 사건 파문으로 그림 사기를 저어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미술제를 활용하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가 되더라도 화랑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선포한 곳이기 때문이다.●화랑미술제다음달 3일부터 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의 미술축제. 한국화랑협회(회장 김태수)주최로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화랑미술제는 화랑들이 발굴하거나 제휴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 거래하는 아트페어다. 올해는 60개 화랑에서 작가 213명의 회화와 조각, 영상, 설치, 판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인다. 각 화랑마다 내놓는 대표 작가와 작품들을 비교하는 것은 물론 작가의 작품값 동향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작품은 원로 대가들의 고가의 작품도 있지만 중견 작가의 소품이나 젊은 작가들의 작품처럼 다소 저렴한 작품도 있다.100만원 내외에서 고를 만한 작품도 적지 않다.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베스트 작가의 베스트 작품전’. 김기창, 남관, 문신, 이응로 등 작고 작가는 물론 김창열, 김흥수, 서세옥, 전혁림, 곽훈, 이강소, 고영훈, 김창영, 도윤희, 양만기, 정종미 등 40∼70대에 이르는 이른바 ‘잘나가는’작가 37명의 작품 46점이 출품된다. 이와는 별도로 화랑별로 김종학, 사석원, 이정웅 등 대표 작가들을 선정해 작품을 내건다.(02)733-3706∼8.●서울국제판화 아트페어오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아트페어는 판화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회화에 비해 가격은 싸면서 작품성을 갖고 있는 판화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자리. 황규백, 이대원 등 국내 유명 작가를 비롯해 미국, 일본, 영국 등 세계 판화 미술을 이끄는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출품됐다. 피카소의 작품을 비롯해 앤디워홀, 리히텐 슈타인, 요시토모 나라 등 국내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작품들도 눈에 띈다. 이들의 작품은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점차 가격이 올라가는 추세다. 소장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 이번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구입한다면 선택 폭은 10만원에서 1억원까지 다양해서 주머니 사정에 따라 ‘결행’하면 된다.(02)532-6889.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서울이야기] (26) 여성의 문화·여가활동

    [서울이야기] (26) 여성의 문화·여가활동

    # 사례 1 세 살된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 김미란(30)씨는 친구와 전화통화 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미혼인 친구들이 모처럼 모여 음악회를 가기로 했다며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지휘자에 즐겨듣는 곡들로 구성된 공연이었다. 결혼전에는 곧잘 공연장이나 미술관을 찾아다녔던 김씨이다. 문화예술에 별 관심이 없던 남편도 이런 김씨 덕분에 연애시절에는 공연이나 전시장에 종종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결혼 후 아이 낳고 키우느라 직장까지 그만 둔 김씨는 공연장과 미술관은커녕 동네 가까운 영화관에 가 본 기억도 아물아물하다. 김씨의 남편은 간혹 직장 동료들과 함께 화제작인 영화를 보러가기도 하는데 회사에서 영화비를 주고, 관람 후에는 동료들과 한잔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란다. ●서울 여성의 문화생활 수준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여가문화활동에 대한 관심은 더 크나, 현재 자신의 여가문화활동에 대한 불만족은 남성에 비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서울시정개발연구원,2004년). 서울 남성과 여성 모두 문화행사에 자주 참여하는 편은 아니다. 연극의 경우 서울 여성의 26%가 일년에 한편 이상 연극을 보며, 서울 남성은 이보다 약간 낮은 22%이다. 미술전시회의 경우, 서울 여성의 27%가 1년에 한번 이상 전시장을 찾은 적이 있으며, 남성은 이보다 적은 21%가 전시장을 갔다. 음악 공연의 경우 장르별로 대중음악공연을 일년에 1회 이상 본 서울 여성은 19%, 서울 남성은 20%로 별 차이가 없다. 뮤지컬의 경우 서울 여성의 12%가, 서울 남성의 10%가 일년에 일회 이상 관람하였다. 클래식, 오페라는 이 보다 저조하여 서울 여성의 8%, 서울 남성의 7%가 일년에 한번 이상 클래식, 오페라를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민이 가장 적게 접하는 공연은 무용으로 서울 여성의 3%, 서울 남성의 4%만이 일년에 한번 이상 무용 공연을 관람했다. 서울 시민이 가장 손쉽게 접하는 문화활동은 역시 영화 관람으로 여성과 남성 74%는 일년에 한편 이상의 영화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행사 참여도만을 볼 때 서울 여성은 서울 남성에 비해 근소하나마 문화생활을 더 향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서울 여성의 60%는 왜 현재의 문화여가생활에 불만족한 것일까. # 사례 2 토요일 오후 집안일을 겨우 끝낸 이미경(42)씨는 서둘러 쇼핑길에 나섰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아이를 둔 이씨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결혼 후 집 장만을 위해 힘들기는 했으나 맞벌이를 했는데,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이제 만만치 않아 당분간 맞벌이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올해 들어 주 5일제 근무가 시작되었으나, 이씨는 오히려 주말에 더 바빠졌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최근 병원에 입원한 시어머니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나고 있다. 주 5일제가 되면서 집안일을 봐주던 파출부를 그만 오게 하고, 대신 자신이 주말에 밀린 집안일들을 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는 일요일마다 병문안을 간다. 만약 여가시간이 나면 집에서 TV를 보거나 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한다. 앞으로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가고 싶고, 연극도 보러가고 싶다. ●서울 여성의 여가생활 양식 서울 시민은 남녀 모두 약 60%가 여가 시간을 주로 TV 시청과 잠자는 것으로 보내고 있어 일반적으로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 시민이 문화예술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남녀 모두 시간이 없어서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녀와 부모를 돌보느라, 또는 돈이 없음을 이유로 드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30∼40대 여성의 경우 그러한 경향이 더하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어린 아이가 있는 취업여성들이 문화여가생활에서 더욱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의하면 맞벌이 가구의 주부는 남편에 비해 평일 가사노동시간이 약 1시간 많으며, 취업 주부의 가사노동 시간은 주말에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취학 자녀가 있는 취업여성은 평일 9시간 50분을 일하고, 일요일에도 6시간 56분을 일하고 있어, 경제활동과 가사노동에 대한 이중 부담을 크게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활용방법에서 여성과 남성간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가사와 스포츠 활동이다. 여성의 경우 여가시간에 46%가 주로 가사를 하며, 스포츠를 주로 한다는 여성은 4%에 불과하다. 반면 남성은 여가시간에 주로 가사를 한다는 경우는 13%이며, 스포츠를 주로 하는 사람은 15%였다(통계청,2002). 서울 여성의 대부분은 여가를 주로 집에서 TV를 보거나 휴식, 가사 등으로 소극적으로 현재 보내고 있으나, 여가를 여행이나 스포츠 레저활동, 공연관람으로 적극적으로 보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 사례 3 이번 토요일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동호인 그룹 전시회를 갖게 될 박정란(35)씨는 마음이 약간 들떠 있다. 첫 전시회라 긴장도 되지만, 성취감과 함께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2년전 구민문화예술회관이 완공되면서 여러가지 강좌가 개설됐다. 마침 평소에 박씨가 하고 싶던 유화 실기가 교육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취학전인 둘째아이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어서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초 여성이 구민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오면서, 구민문화예술회관 내에 어린이 놀이터와 독서실 공간을 만들었다. 박씨가 유화 실기를 하는 동안 둘째아이는 어린이 놀이터 내에서 보내고 있다. 저렴한 수업료에 강좌시간에는 아이까지 돌봐주는 구민문화예술회관이 없다면 자신에게 이 처럼 투자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부들이 집에서 자신의 작업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을 배려하여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작지만 공동작업실을 제공해 주었다. 공동작업실을 꾸준히 이용하던 몇몇 여성들이 서로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작업을 하다 뜻을 모아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이들에게 흔쾌히 전시공간을 대여해 주기로 했다. 박씨는 첫 전시회 작품을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자화상으로 구상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작품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박씨는 새로운 삶의 자신감이 생겨남을 느끼고 있다. # 사례 4 요즘 최정아씨 가족은 대화가 많아졌다. 가족들이 최근 각자 좋아하는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어제 구민문화예술회관의 국악 공연을 보고 오셨는데,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국악 공연은 빠지지 않고 이제 가겠다고 하신다. 중학교 다니는 딸은 오늘 저녁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청소년 연극제에 가기로 되어있다. 내일은 초등학교 아들이 좋아하는 만화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저녁 시간에 요가반이 개설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최씨 같은 여성들도 드디어 구민문화예술회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구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일요일 가족음악회에는 온 가족이 함께 한다. 최씨가 특히 구민문화예술회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성을 배려해 시설물이 설계됐기 때문이다. 우선 여자화장실이 넓고 아이를 동반한 여성을 배려하고 있다. 가족음악회 중간 휴식시간에 이곳은 다른 문화시설과 달리 여자 화장실의 줄이 짧은 편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위한 놀이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휠체어를 탄 채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통로도 계단이 아닌 나지막한 경사로 되어 있다.1층 로비에는 안락의자가 놓여 있고, 음료를 파는 작은 매점도 있다. 구민문화예술회관 주변은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에 아름답지만 밝은 조명으로 편안한 기분이 든다. 여름에는 매점이 밖으로 나와, 저녁 늦게까지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최씨도, 딸아이도 저녁 시간에도 안심하고 구민문화예술회관을 이용하고 있다. ●여성친화적인 문화시설과 운영 방식 1998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정책회의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문화권(Cultural Rights)이 인권만큼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문화예술을 향유하거나 문화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데 장애요인이 많으므로 여성의 문화기관 접근성, 여성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 장려하는 정부 차원의 문화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그럼 여성친화적인 문화시설과 문화정책으로 어떤 사례들이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우선 여성들은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문화시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 여성의 경우 서울 남성에 비해 지역사회 문화시설인 구민회관, 공공도서관, 구민체육센터, 구민문화예술회관, 문화의 집 등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문화시설을 이용할 때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가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 문화여가시설이 교통이 불편하거나 외진 장소에 있다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시설 이용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서울시가 목표로 하고 있는 지역문화예술회관 건립 지원, 소규모 공공도서관 확충사업, 학교시설에 체육스포츠센터나 문화공간을 확보하는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은 여성친화적인 문화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사회 문화시설을 여성이 많이 이용하는 만큼, 시설 설계나 운영이 이를 고려해서 건립될 필요가 있다. 최근 여성경제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들 직장 여성을 위한 운영 방안이 필요하다. 영국의 글래스고시는 시민조사를 통해 여성의 72%가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낮 시간에 제공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시에서는 취업여성들을 위한 저녁 스포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 일부 시설에서는 저녁시간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혼취업여성들을 위해 다림질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자 청소년과 여성은 남성에 비해 문화여가시설의 쾌적함과 안전에 대해 민감한 편이다. 따라서 시설이나 주변환경이 쾌적하거나 안전한 느낌이 들지 않을 경우, 이용을 꺼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스포츠 시설의 경우 탈의실 같은 남녀별 이용시설 표식을 분명하게 하거나, 시설 안팎으로 조명을 밝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여성과 여자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체육시설을 조사하고, 여성친화적 시설운영지침을 만들기도 하였다. 유럽, 캐나다, 미국의 문화시설에서는 전통적으로 무시되거나 과소평가 받아온 여성예술가나 여성 작품을 발굴하고 이를 알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미국의 국립여성미술관은 여성 예술가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소장한 세계 최초의 여성 전문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가족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어린 관람객에게 여성 예술가의 공헌에 대해 교육하며,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성공한 여성들과 여자 청소년 여성을 연계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이밖에 문학, 음악, 영화, 무용 등의 분야별로 여성 예술가 중심의 행사와 교육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유네스코는 한 사회의 문화적 창의성은 문화 다양성에서 나오므로 여성 예술가와 여성 작품을 재평가하며, 여성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정책에 각 정부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성친화적인 문화시설 운영과 관련해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의 경우 정책적으로 문화시설의 운영위원이나 고위직의 경우 여성과 남성의 참여율이 50대50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동작구에는 여성을 위한 문화복지시설인 서울여성플라자가 있다. 이곳은 여성들이 문화 및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동안, 아이들은 그들을 위한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여성 관련전문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2003년부터 서울여성플라자에서는 유쾌한 치맛바람이란 주제로 서울여성문화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2005년 5월에는 유쾌한 치맛바람 가족風(풍)을 주제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를 했다. 여성문화예술활동에 관심이 있거나, 또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문화생활에 빠져 들고 싶다면 서울여성플라자의 행사일정을 찬찬히 챙겨 본다면 유용할 것이다. 서울여성플라자의 프로그램은 홈페이지(www.seoulwomen.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경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
  • [서울戀街] (5) 삼청동 거리

    [서울戀街] (5) 삼청동 거리

    북적이는 도심을 뒤로 하고 경복궁 모퉁이를 돈다. 낙엽을 즈려밟으며 발걸음을 옮긴지 10분이 지났을까. 어느새 삼청동 어귀에 다달았다.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늘어선 단층 건물들은 시공(時空)을 뛰어넘은 세상에 있는 듯 하다. 고즈넉한 한옥들은 인사동에 비해 더욱 한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동시에 아기자기한 야외 테이블과 벽돌집 앞에 놓여진 꽃들은 유럽의 어느 골목길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삼청동 풍광을 담은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삼청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도 생겼다. 회원은 2만여명에 이를 정도다. 이들이 인정하는 맛집·술집·찻집들을 찾아 떠나보자. 쿡앤하임(Cook´n Heim) 햄버거를 무조건 정크푸드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운 조리장이 웰빙을 목표로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작은 정원에 마련된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운치가 있다. 이탈리아의 구운빵인 ‘포카차’에 두툼한 패티를 넣은 이탈리안 칠리버거는 8500원.733-1109. 8 steps 식당에 들어가려면 8개의 계단을 올라가야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빵에 훈제연어·버섯샐러드·가지·문어·시금치 등을 올려먹는 스페인 요리인 ‘타파스(tapas)’가 독특하다. 가격은 1만 2000원∼1만 6000원. 저녁에는 타파스를 비롯해 티라미스, 스테이크 등이 포함된 코스(5만원)만 내놓는다.738-5838. 아 따블르(A Table) 프랑스어로 ‘소박한 밥상’이라는 의미다. 메뉴판이 따로 없는 게 특징. 그렇다고 주는대로 먹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주인이 그날그날 가장 신선한 재료를 골라 ‘오늘의 메뉴(Plats du Jour)’를 짠 뒤 작은 칠판에 요리들을 적는다. 테이블이 6개밖에 없어 한옥만의 아늑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점심 3만원, 저녁 4만5000원·5만5000원(부가세 10% 별도)736-1048. 추억의 햄버거 스테이크부터 갖가지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까지 있다. 올디스 팝송이 나오는 편안한 분위기다. 호주산 쇠고기로 만든 부드러운 안심스테이크(2만 9000원·200g)가 잘 팔린다. 점심 메뉴는 6400∼1만 3000원.733-3535. 청(淸) 통유리창을 통해 인공 폭포와 연못이 있는 아기자기한 숲을 볼 수 있는 중식당. 로맨틱한 정원 풍경과 촛불 아래에서 재즈를 들으며 와인을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연두부에 크림을 같이 반죽해 얇게 튀긴 ‘일품두부와 비타민(1만 5000원)’은 고소하면서 담백하다. 코스 요리는 점심이 2만3000∼6만원, 저녁이 4만5000원∼9만원.720-3396 뺑&빵 쌍둥이 자매가 동부이촌동에 이어 낸 스파게티 전문점. 가게 이름도 이들의 별명에서 따왔다. 둘 다 유학파로 깔끔한 맛의 이탈리아 정통 스파게티를 내온다. 여러 사람들이 찾는 메뉴는 크림스파게티.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구수한 맛을 내면서 스파게티를 싫어하는 남성들도 자주 찾는다. 해물스파게티나 각종 리조또도 맛있다. 가격은 스파게티가 1만5000∼1만8000원으로 약간 센 편.722-5930 콰이민스 테이블(Qwymin’s Table) 미술가 김쾌민씨가 손수 인테리어한 아기자기한 카페. 지난해 2월 문을 열었다. 벽에는 이국적인 골동품, 벽돌 등과 함께 김씨의 설치미술 작품인 ‘벽의 눈물’이 전시돼 있다. 식사와 와인, 차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와인은 4만원, 차는 5000원부터.1만 5000원 받는 프랑스식 전골 ‘해물 브야베스’도 특이하다.736-7320 비움(VIUM) 삼청동의 갤러리 카페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그러나 각종 자기들을 전시·판매하는 곳으로 벌써 널리 알려졌다. 컵, 사발 등 뿐 아니라 액자 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국 뉴욕, 독일 뮌헨, 일본 나수 등에도 매장과 전시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먹거리도 전시품 못지 않게 빼어나고 깔끔하다. 특히 삼청동에서 가장 저렴한 값의 와인을 만날 수 있다. 호주산 와인인 노티지힐을 3만원에 내놓고 있다.730-7258. 지난해 새로 문을 연 퓨전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다.‘이리와’라는 뜻의 식당 이름 답게 붉은 색의 조명이 삼청동을 찾은 이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사천해물밥, 해물잡탕밥, 중국식 물냉면 등이 인기다. 가격은 식사 5000∼1만원, 요리는 1,2만원 선이다.720-3368. 김유영 이두걸기자 carilips@seoul.co.kr ■ 삼청동서 와인 한 잔 트래블러스 행아웃(Traveler’s hangout) 우리말로 풀어쓰면 ‘여행자 소굴’쯤 된다.2년동안 20여개국을 여행한 28세의 젊은 사장이 운영한다. 여행책자도 여러권이어서 주인에게 배낭여행 상담을 하러 가도 된다. 아담하지만 가운데 마당에는 모닥불도 있고, 종종 어쿠스틱 라이브가 열리기도 한다. 원래 구조를 허물지 않아 다락방도 있다. 아르헨티나 차인 마떼가 6000원. 삼청동에서 맛보기 힘든 소주와 라면은 각각 4000원.734-3009. 링가롱가(Linga Longa) 삼청공원 부근 눈에 띄지 않는 골목에 있어서 처음 발견하는 순간 ‘보물찾기’에 성공한 듯한 기분이 든다. 밖에는 갖가지 꽃화분이 늘어서 있어 유럽의 까페같다. 안에 들어서면 낮은 천장 아래 지중해빛 노랑 회벽에 물감으로 그려진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정겹다. 목공예가인 주인장과 화가인 아내가 직접 꾸민 것이다. 외국에서 가져온 접시·목각 인형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눈에 띈다.3만원대의 중·저가 와인들이 많이 있으며 커피는 직접 로스팅한다.730-3223. 라 끌레(La Cle) 프랑스어로 ‘열쇠’란 뜻이다. 사진작가인 주인 문순우씨가 직접 수집한 각종 시계·전화, 카메라 등 소품들은 따뜻한 느낌을 자아낸다. 무늬만 재즈카페가 난무하는 요즘, 도심에서 제대로 된 재즈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8시30분부터 2시간30분 동안공연을 즐길 수 있다.4만∼5만원부터 있는 와인도 유명하다.734-7752. 까브(Cave)프랑스어로 깊은 동굴·포도주를 저장하는 지하 창고를 뜻한다. 프랑스의 와인 저장 창고 까브를 그대로 본떠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외에서 접하기 힘든 희귀 와인까지 100여종의 와인으로 가득하다. 비싼 것은 220만원에 달한다. 매일 오후 8시부터 은은한 조명 아래 음식과 와인을 맛보면서 클래식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다.739-1788. 안(安·Ann) 개조된 한옥의 큰 창 밑으로 와인병들이 무수히 많이 쌓여있다. 담벼락에는 그려진 와인 코르크 마개로 만든 프랑스 지도가 풍취를 더한다.722-3301. TOS 형광색에 가까운 주황색 외벽을 따라 작은 골목을 들어서면 나온다. 다른쪽(The Other Side)의 준말이다. 천정이 뻥 뚫린 미니바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와인이 일품이다.720-7854. 이두걸 김유영기자 douzirl@seoul.co.kr ■ 삼청동 터줏대감 특유의 맛 지킴이 삼청동은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로운 가게들이 생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삼청동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곳을 꿋꿋이 지키고 있던 맛집들도 여전히 건재하다. 손맛을 인정받은 삼청동 토박이 맛집들을 소개한다. 눈나무집(雪木杆) 각 테이블마다 시원한 국물에 아삭아삭한 이북식 김치를 얹은 ‘김치말이 국수(4500원)’를 하나씩은 시켜 먹는다. 그릴에 다진 쇠고기와 떡볶이용 떡을 구워 나오는 ‘떡갈비(7000원)’도 인기다. 주말이면 기다려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비좁아 올해초 건너편에 분점도 냈다.739-6742. 수와래 파스타 종류가 20여가지로 재로를 듬뿍 넣은 게 특징이다. 주문을 받은 뒤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만들어 신선하다. 버섯·치즈·크림을 넣은 알프레도와 홍합·오징어·새우를 넣은 페스카토레가 각각 1만 2000원선. 삼청동 음식점으로서는 드물게 전용주차장이 따로 있다.739-2122. 조앤리의 밥집 조앤리 정식(2만 5000원)에는 야생초 겨자무침·모듬전·문어숙회·곰취보쌈·장어구이 등이 나온다.730-7002. 용수산 고려시대 개성음식을 재현했으며 퓨전으로 나온다. 고려정식이 5만 8000원.7399-5599. 지화자 조선왕조 궁중음식 부문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황혜성씨가 맏딸인 한복려씨와 운영하는 한정식집이다. 궁중정식 9만 9000원.733-5834. 청수정 홍합밥 하나로 명성을 얻었다.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홍합밥만 봐도 먹음직스럽다. 여기에 참기름과 간장으로 간하고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정도다. 정식에는 호박, 버섯 등을 무친 반찬과 된장·순두부찌개도 함께 나온다. 정식이 부담스러우면 간단한 도시락도 있다. 이밖에도 대구머리로 만든 뽈데기탕은 칼칼한 맛으로 입맛을 돋군다. 홍합밥 정식 1만 3000원, 홍합밥 도시락 6000원.738-8288 향나무 세그루 청국장 맛으로는 서울 시내에서 손꼽힐 만하다. 걸쭉하면서도 비리지 않은 맛은 청국장을 싫어하는 사람도 손이 저절로 간다. 매일 전북 군산에서 갓 담근 장을 올려 끓이는 게 맛의 비결. 청국장에 콩나물, 무생채 등 각종 나물을 넣고 쓱쓱 비비면 천하진미가 따로 없다. 두툼하게 나오는 전북 함평산 돼지목살도 일품이다. 육질이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11년 동안 가격을 한 번도 올리지 않은 것도 이 집만의 미덕이다. 청국장 4000원, 돼지목살 6000원.720-9524. 삼청동 수제비 식사 시간이면 줄이 10m 넘게 늘어설 정도로 유명한 집이다. 멸치와 조개 등으로 우려낸 국물에 해물을 첨가한 한결같은 수제비 맛으로 20년 넘게 단골에 단골을 만든 집이다. 쫄깃한 맛의 수제비와 갓 담은 김치도 궁합이 잘 맞는다. 감자를 직접 갈아 부친 감자전과 파전에 막걸리 한 잔도 일품이다. 항아리 수제비 5000원, 찹쌀수제비 6000원, 감자전 6000원.735-2965. 서울에서 둘째로 잘하는 집 국적을 잃어버린 삼청동에서 20년이 넘게 ‘한옥촌’의 명맥을 잇고 있는 한방찻집이다. 이집의 ‘주 종목’은 단팥죽. 팥과 삶은 밤, 은행, 울타리콩 등이 어우러져 달콤한 맛을 낸다. 죽 안의 찹쌀떡을 씹으면 계피향이 입 안에 가득 찬다. 쌍화탕과 녹각대보탕, 십전대보탕 등 한방차도 그윽한 맛을 자랑한다. 단팥죽 4500원, 녹각대보탕·십전대보탕 5000원, 쌍화탕·생강차 3000원.734-5302. 김유영 김기용기자 carilips@seoul.co.kr
  • [책꽂이]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황상익 등 지음, 고즈윈 펴냄) 자신만의 영역에 갇혀 있는 지식인들에게 던지는 과학논객들의 제언을 담았다. 생명공학의 성과속에 대두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논쟁을 다루면서 영역을 초월한 성찰을 촉구한다.1만 1000원.●정원의 역사(자크 브누아 메샹 지음, 이봉재 옮김, 르네상스 펴냄)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정원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페르시아, 아랍제국, 프랑스 등 전세계 정원 문화의 변천사를 다양한 일화들과 함께 풀어냈다.1만 5900원.●영화와 신화(스튜어트 보이틸라 지음, 김경식 옮김, 을류문화사 펴냄) ‘7인의 사무라이’‘대부’‘늑대와 춤을’‘양들의 침묵’ 등 불멸의 작품으로 꼽히는 영화 50편에 담긴 신화의 세계를 영화 주인공들의 여정을 통해 살펴본다.1만 7000원.●세계를 삼킨 숫자 이야기(I.B 코언 지음, 김명남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쓴 숫자와 통계의 역사. 방대한 통계의 역사와 예화를 모아서 숫자들이 어떻게 활용되었으며, 인류 진보에 어떻게 공헌했는지 보여준다.1만 1000원.●미술전시장 가는 날(박영택 지음, 마음산책 펴냄) 미술평론가인 저자가 한국 미술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인사동, 사간동, 광화문 일대에 있는 미술관들을 하나씩 둘러보고 인상 깊었던 작품과 전시장의 단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차분히 풀어냈다.●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마단 사럽 지음, 전영백 옮김, 조형교육 펴냄) 라캉의 정신분석학, 데리다의 해체이론, 들뢰즈와 가타리의 후기구조주의 등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근간이 되는 여러 이론들의 핵심을 명쾌하게 해설한다.1만 3000원.●신문경영론-MBA 저널리즘과 한국신문(김동률 지음, 나남출판 펴냄) 미디어 산업을 구성하는 핵심영역인 신문산업을 기업경영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분석하고자 한 책. 언론 경영의 각 유형을 예로 들어서 가급적 실용적으로 접근했다.1만 8000원.●그녀들의 반 역사(김원 지음, 이매진 펴냄) 대한민국 개발의 시대에 가난한 삶을 떨치고자 좁은 야학당에서 노동법전을 펴놓고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던 어린 여공들의 삶을 현재적 시각에서 복원하고, 여성노동 문제의 근원을 탐색한다.3만 5000원.●하룻밤에 읽는 과학사(하시모토 히로시 지음, 오근영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수학·물리학·과학·생물학·의학 등 인류역사가 시작하던 시기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학이 어떻게 진보해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1만 1000원.●그림을 보는 법-화가와 미학자의 맛있는 그림 이야기(야자키 요시모리·나카무라 겐이치 지음, 이수민 옮김) 미학자와 화가가 그림에 대해 나눈 일주일간의 대화를 바탕으로, 그림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법을 소개한다.1만 5000원.
  • ‘광명 음악밸리축제’ 성공 이끈 음악평론가 박준흠씨

    ‘광명 음악밸리축제’ 성공 이끈 음악평론가 박준흠씨

    지난 주말, 경기도 광명시는 음악에 흠뻑 취했다. 강렬한 록 비트와 감미로운 포크 선율이 하루종일 광명의 하늘에 넘실거렸다. 전국에서 모여든 20만 관객들은 30여년을 아우르는 한국 음악의 성찬 앞에서 내남없이 한데 어울렸다. 척박한 음악환경에서 피어난 한송이 꽃이라고나 할까. 광명을 ‘음악도시’로 색칠한 광명음악밸리축제를 이끈 주인공은 바로 음악평론가 박준흠(39)씨다. 음악팬들에게 ‘전설’로 남아 있는 대중음악전문지 ‘서브’의 편집장이자 웹진 ‘가슴’을 이끌고 있는, 국내에 몇 안되는 음악평론가다. 이번 축제의 예술감독으로 기획과 진행 등을 도맡으면서 대중음악사를 새롭게 썼다. ●20만명 음악축제에 빠지다 광명음악밸리축제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 대중음악계로서는 ‘기이’하면서도 ‘축복’ 같은 행사였다.‘음악도시 광명 3일간의 음악축제’라는 부제로 7일부터 사흘동안 ▲싱어송라이터 전문 음반사인 하나뮤직 스페셜과 밸리초이스 ▲인디뮤직 10년사 ▲민중음악 30년사라는 큰 줄기로 치러졌다. 출연진은 우리의 대중음악 역사를 모두 아울렀다. 한국 포크의 역사 한대수·조동진과 민중음악의 뿌리깊은 나무 노래를 찾는 사람들, 기타리스트 이병우, 인디밴드 허클베리핀 등 80개 팀이 함께했다. 전국에서 모인 20만명의 다양한 관객들은 이에 화답하듯 인근 찜질방을 전전하면서 주무대가 있던 광명시민운동장을 매일 가득 메웠다. 이번 축제의 부제는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다.‘좋은 음악창작자는 좋은 앨범을 만든 사람’이라는 당연한 명제가 통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아프게 반영한다. 박씨는 “존중받아야 할 음악가들이 걸맞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한 자리에 모셨다.”면서 “음악인들도잘 모르는 노동음악가 연영석씨의 노래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을 보고 ‘진정성 있는 기획은 통하는구나.’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떠올렸다. ●지역 문화축제의 모범 이번 축제는 음악 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와 더불어 지역 문화축제의 모범이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광명을 음악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백재현 광명시장의 의지도 큰 몫을 했다. 광명음악밸리축제는 대공연장과 음악 유통·교육·기획시설, 클럽 등을 갖추게 될 광명의 ‘음악밸리’ 사업을 알리는 행사다. 이 목표는 이미 달성됐다. 이번 축제를 통해 광명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던 사람들도 광명시의 ‘팬’이 됐다. 더구나 하이서울페스티벌 등의 행사비용보다 적은 5억원밖에 들지 않았다.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 수가 아닌 행사의 질로 승부하는 도시 이미지 마케팅을 경험하지 못한 시의회와 관료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민중음악이나 인디음악을 하루종일 공연하면 누가 오겠냐.’는 비난이 많았다. 지역 예술단체를 앞세워야 한다는 ‘외압’도 있었으며, 예산 문제로 심야 음악영화제를 열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러나 문화기획의 전문성에 대한 주위의 신뢰가 있었기에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음악은 삶을 위로할 수 있어야 박씨의 이력은 음악애호가에서 전문가로 변한 전형이다. 음악을 좋아하던 형과 누나를 둔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록의 ‘세례´를 받았다. 광운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것도 음향 엔지니어를 꿈꿨기 때문. 결국 LG정보통신연구소, 케이블TV 등을 거쳐 95년 음악기획자 겸 평론가로 들어섰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한 고교 시절은 암흑의 80년대였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의식에 민감했던 그에게 음악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박씨는 “독재정권과 억압적인 학교 시스템을 견디는 창구가 음악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삶의 일부다. 때문에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창작행위도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번 축제 때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공공미술 프로그램 등을 포함시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상을 외면한 음악은 장식물에 불과하다. 나 역시 ‘왜 이렇게 생계가 힘들까.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구나.’라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음악은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척박한 우리나라를 정상적으로 바꾸는 데 일조해야 한다. 훈장처럼 과거의 경력을 들먹이는 사람들은 허클베리핀이나 연영석의 노래를 듣고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화려한 생활만을 노래하는 ‘엔터테이너’들이 점령한 가요판을 비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인디음악을 이번 축제의 중심인 토요일에 배치했다. 작품성과 삶에 대한 진정성을 겸비한 인디음악의 10주년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최근 물의를 일으켰던 펑크밴드 럭스를 공중파에 추천한 것도 그다. 앞으로의 목표는 음악 배급, 행정, 정책 등 제작인력을 키우는 것. 한국 음악계는 ‘산업’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낙후돼 있다. 박씨는 “문화정책은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음악인프라 구축과 함께 대중음악이 바람직하게 성장할 수 있는 문화시스템 기획자로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광명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66년 서울 출생 ▲85년 광운대 전자공학과 입학 ▲95년 LG정보통신연구소, 케이블채널 GTV 등에서 근무하다 음악평론가로 전업 ▲98년 1월∼99년 3월 대중음악 전문지 서브 편집장 역임 ▲99년 8월 음악전문서 ‘이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교보문고) 출간 ▲99년 10월 대중문화 비평 전문웹진 ‘가슴’ 창간 ▲2000년 3월∼2002년 1월 인터넷방송국 쌈넷 방송국장 역임 ▲2005년 3월 광명음악밸리축제 음악감독 취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 [서울이야기(25)] 인사동과 대학로

    [서울이야기(25)] 인사동과 대학로

    서울엔 다양한 모습이 있다. 종로 5가엔 약국이 모여 있고, 사당동엔 가구점이 몰려 있다. 아현동엔 웨딩거리가 있고, 또 경동시장엔 한약재가 있다. 어떤 지역에 특정 자원이 밀집되어 고유한 이미지가 연출되는 것, 이를 우린 클러스터(cluster)라 부른다. 한 지역에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요한 이유는 시너지(synergy) 효과 때문이다. 한 곳에 몰려 있다 보니 경쟁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보다 끊임없는 혁신이 이루어진다. 지속적인 혁신과 발전, 클러스터가 형성되는 중요한 이유다. 다른 하나는 특정 자원이 밀집되어 있다 보니 서로 연관관계가 형성되고, 지역을 통하는 고유한 이미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어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 지가가 비싸도 클러스터에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계는 어떨까. 예술계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들과 경쟁해야 하고, 세계적인 흐름과 교류해야 하는 이상 다른 분야보다 강도 높게 밀집이 전개된다. 전통적인 서화와 표구점, 화랑, 필방이 모여 있는 인사동과 연극 자원이 밀집되어 있는 대학로. 아틀리에와 클럽이 있는 홍대 지역 등 서울에도 그런 지역은 상당수 많이 분포되어 있다. 외국의 경우 이런 지역은 문화회랑이나 특별지구로 지정 보호한다. 정부 또한 이런 지역을 보호하겠다는 명목 하에 2000년 문화지구 제도를 도입하였다. 문예진흥법에 문화지구를 법제화함으로써 특정 지역 내 문화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지원할 수도 있고, 위해한 업소 및 영업행위는 퇴출시키기 위해 그 영업을 금지할 수도 있다. 현재 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곳이 인사동과 대학로 등 두 곳이다. ●인사동, 세월의 흐름이 멈춘 도시의 쉼터 2003년 최초로 문화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인사동이다. 제도 자체가 인사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지정한 인사동은 문화지구 지정의 표본 모델이었다. 지정을 고민하던 1998년 당시 이 지역엔 172개의 골동품점과 87개의 표구사,108개의 화랑이 있었다. 전통의 업소가 484개나 밀집된 곳은 세계적으로 그리 흔하지 않다.2000년 전통의 업소가 366개로 크게 줄고, 인사동 전반에 개발의 압력과 상업화의 열기가 일자 문광부와 서울시는 이 지역을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문화지구 지정 이후 거리는 많이 변했다. 전통업소는 상당수 늘었고, 개발압력도 가라앉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살펴보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전통업소 중 상업적인 공예품점이 크게 늘어난 반면, 골동품점과 표구사, 필방 등은 크게 줄어들었다. 인사동의 주인이었던 전통예술이 크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예품점이 주인을 차지한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고서점과 표구점, 필방이 모두 공예품을 팔려고 나서고 있다. 인사동의 가치는 단지 전통업소가 아닌 전통예술이 촘촘히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는 데 있다. 조선왕조부터 풍류를 즐기던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인사동은 본래 서화의 거리였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다수의 골동품과 고서화가 나오며 일본인들에 의해 골동품과 고서화를 취급하는 거리로 바뀌었고, 화랑과 표구점, 필방, 지업사들이 들어서면서 인사동은 고미술 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 지역에 자리잡은 예전 다방과 찻집, 음식점은 모두 이 예술가를 위한 것이었다. 한 때 ‘메리의 거리’(Mery’s Alley)라 불릴 정도로 번성하던 거리는 88 올림픽과 더불어 국제적인 관광의 거리로 바뀐다. 올림픽 기간 중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이 방문할 수 있는 거리로 인사동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많은 고서점과 골동품점이 떠나게 된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들끓는 개발압력과 지가 때문에 전통 예술업종이 하나 둘 밀려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공예품점이 늘어선 건 지가 때문이다. 그러나 인사동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인사동을 위해서도, 우리의 관광과 예술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예술이 시장을 만나고, 전통의 느낌이 현대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멈추는 곳. 사실 인사동이 지니고 있는 매력은 ‘시간이 멈추어 선 전경’이다. 인사동에 들어서면 전통이 주는 무게가 가볍게 느껴진다. 그것은 마친 시장에 옮겨 논 박물관처럼 누구나 손쉽게 만지고 즐기게 만든다. 가격부담 없이, 조용할 필요 없이 전통을 즐기며 맛볼 수 있는 공간. 인사동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 덧 시간은 멈춰 과거 속에 특정한 시간과 조우한다. 가장 바쁘고 현대적인 도심 내에 가장 여유롭고 전통적인 멋이 있는 곳. 인사동은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거리로서, 우리의 예술을 보여줄 관광지로서, 전통의 예술과 자원이 밀집된 지역으로서 우리에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예술창작 지구, 대학로 대학로는 세계 최고의 공연예술지구다. 현재 대학로에 있는 공연장 수는 정확히 70개. 멀티플렉스로 지어진 최근 공연장을 고려하면 극장 수는 70개를 훨씬 상회한다. 숫자로는 세계 최고의 수준. 대학로 만한 밀집공간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대학로가 갖는 특징이라면 모든 연극자원이 밀집되어 있다는 데 있다. 공연장은 말할 것도 없이 극단이 무려 48개나 밀집되어 있다. 우리나라 극단 중 32%가 대학로에 자리잡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국민대와 중앙대, 상명대 등 각 대학교의 연극 관련 학과가 있다. 예총과 연극협회, 배우협회가 있고, 우리나라 문화예술 지원의 종합창구인 ‘문화예술위원회’도 여기에 자리잡고 있다. 연극에 관한 한 모든 것이 있는 곳, 그곳이 대학로다. 대학로의 가치는 이 많은 자원들이 경쟁하며 살아 있는 실험성과 창의성을 창출한다는 데 있다. 우리가 보기에 언뜻 초라해 보이는 100석에서 300석 규모에 달하는 극장. 그러나 이 극장들은 창의성과 실험성을 발휘하기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본래 낭만주의 시대에는 대규모 극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극장에선 관객의 느낌을 느낄 수 없자 작고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극장을 세우게 된다. 독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소극장운동이라 불리는 새로운 연극을 정착시키게 된다. 대학로의 극장은 바로 그렇듯, 소극장 운동의 핵심이 된다. 관객과 호흡하며 관객과 관객끼리도 커뮤니케이션하는 공간. 그런 만큼 연기는 충실하고 연습의 강도는 강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한국 영화에서 언뜻언뜻 만날 수 있는 우리 연극배우들의 이름들. 그 이름들은 대학로의 연극이 우리나라 영화와 영상산업의 바탕이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대학로에는 또한 특징적이고 전문적인 극장이 있다. 하늘땅 소극장은 어린이 전용극장이며, 샘터 파랑새 극장은 ‘라이어’를 장기공연하는 극장이다.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지하철 1호선’이 공연되고 있는 ‘학전그린’극장, 품바 중심의 ‘강강수월래’ 극장 등 그 전통의 명맥은 대학로를 연극의 1번지, 연극의 갯벌로서 만들고 있다. 이런 대학로도 최근 위기에 빠져 있다. 문화지구 지정 등 최근 관심이 고조되면서 300석 이상의 대규모 극장이 들어서고, 극단보다는 상업적인 기획자나 건물주가 운영하는 공연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관료가 올라가고 연극은 상업적으로 변하고 있다.100석 이하의 공연장이 줄고,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연극은 삼선교 등 성신여대 주변으로 이전하리라는 예상이 곳곳에서 그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로에서 지켜내지 못하는 한 우리나라 연극의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 필요는 있다. 대학로는 촘촘히 박힌 공연장과 연극관련 학교, 극단, 단체, 협회 등이 숨쉬는 곳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창작활동과 연기연습이 이루어지며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모든 공연예술의 살아 있는 생태계를 형성하는 지역. 대학로를 보존할 필요성은 여기에 있다. ●인사동과 대학로, 변화 진통 문화지구 지정과 더불어 인사동도 대학로도 변해가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전통적이고 자그마한 업소가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인사동도 고서화점과 표구점이 위기다. 대학로는 작은 극장들이 위기다. 이 위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 중 하나다. 문화지구는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지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지정하려는 순간 그 지역은 어느새 유명해져 지가가 상승하기 시작한다. 문화를 보호하려는 정책이 지역의 생태계를 바꾸고 작은 것이 큰 것에 먹히는 사태를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문화지구는 그런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 숲의 건강함은 여러 수종의 나무에 있다. 물은 또한 다양한 어류가 살아야만 깨끗함을 보장받을 수 있다. 문화 또한 마찬가지다. 자그마한 시설이 세태와 관계없이 살아남을 때 우린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인사동에 있는 자그마한, 그리고 보잘것 없는 골동품점. 대학로에 있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극장.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자산이다. 이번 주말 이 자그마한 시설을 찾아보자. 심금을 울리는 연기와 배우들의 땀방울이 당신의 머리에 튈지 모른다. 우리 조상이 남긴 멋진 골동품 한 점이 초라하게 숨겨져 있다 해도 우리가 찾으면 보배다. 주말 그 보배를 찾아 떠나보자.
  • APEC 한달 앞으로… 부산은 축제중

    ‘2005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개회(10월19일)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부산시는 오는 19일 ‘D-30일’을 전후해 대 태러 합동 모의훈련과 함께 전국민적 관심과 참여 유도 및 성공개최 분위기 확산을 위해 다양한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다.●부산항 대테러 합동 모의 훈련 13일 부산항 제2부두 24번 선석에서는 오거돈 해양수산부장관, 허남식 부산시장 등 각급 기관장 및 항만관련 기업체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항 대 테러합동 모의훈련’이 실시됐다. 이 날 모의훈련에는 부산해경, 해군 함대, 부산경남본부세관, 항만소방서, 부산항만공사, 부산항 부두 관리공사 등이 참가해 ▲선박테러 첩보입수 및 전파▲대 테러단계설정 및 조치▲테러범 진압 및 요인 구출▲선박내 폭발물제거▲화재 진압 및 사상자 수송 등의 훈련이 실시됐다.●다양한 경축행사 봇물 13일 오후 해운대 우동 시네파크에서는 시민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 행사인 ‘KBS 열린음악회’가 열렸다. 이 날 축하 공연에 앞서 APEC 성공을 기원하는 대통령 및 부산시장의 영상메시지가 상영됐으며, 인기연예인들의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15일 같은 장소에서 춤과 함께 하는 청소년들의 거리축제, 시민참여 그림전, 미술체험전, 퍼포먼스 등 ‘APEC 성공기원 거리축제 행사’가 펼쳐진다.정상들의 회의 장소로 사용될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들어서 있는 해운대 동백공원에서는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해 준공기념 시민대축제를 연다. 19일 부산시청 12층 국제회의실에서는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형성을 위한 세미나가 열린다. 또 부산외국어대학과 부경대에서는 각각 ‘APEC 정상회의 기념 학술대회’와 ‘APEC 성공개최 기원 합동 학술세미나’가 열린다(20일).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서울옥션 신임대표 윤철규씨

    이중섭 화백의 가짜그림을 경매에 부치면서 미술계 최대의 위작 파문을 일으켰던 서울옥션의 신임 대표로 윤철규(48)씨가 내정되었다. 계간미술 기자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전문기자 등을 거친 윤 신임대표는 “경매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전문성을 높여 최고의 경매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서 이호재 전 대표는 지난 7일 대표직을 사임했다.
  • 은행PB영업 ‘궤도수정’

    은행PB영업 ‘궤도수정’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프라이빗 뱅킹(PB) 대중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수억원대 이상의 예금을 가진 고객에게 특별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오던 은행들이 서비스 대상을 수천만원의 예금 고객까지 확대하고 있다. 은행들이 PB 영업전략을 수정하는 것은 그동안 극소수 고객을 상대로 벌여온 ‘귀족 마케팅’이 투자에 비해 수익성이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아직은 금융자산이 크지 않지만 조만간 ‘갑부’로 등장할 잠재적 부유층을 미리 포섭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소수에게만 온갖 특혜를 주고, 일반 고객들은 자동화기기로 내몬다는 비판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3000만원 이상도 PB 고객으로 모십니다” ‘PB 대중화’에 가장 신경쓰는 곳은 우리은행이다. 황영기 행장은 지난달 ‘모든 고객을 PB 고객화하자.’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은행측은 PB 고객을 예치금 기준으로 30억원 이상,10억원 이상,3000만원 이상 등으로 세분화하기 시작했다.PB 고객 담당 직원들도 ‘마스터 PB’ ‘전문 PB’ ‘예비 PB’로 등급을 매겨 체계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특히 예비 PB에 해당하는 자산관리전문가 500명을 키워 각 지점으로 투입, 자산설계에 관심이 높고 적극적인 투자성향을 보이는 중산층 및 젊은 고객을 유치할 생각이다. PB 전문센터인 ‘골드 앤 와이즈’를 통해 예금액 3억원 이상의 고객을 집중관리했던 국민은행도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공격적으로 늘려왔던 전문센터 확장을 16개에서 중단하고,1억∼3억원의 고객까지 아우르는 소형특화 점포를 내기 시작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극소수 투자자를 위한 비밀주의 영업전략이 아닌 좀더 대중적인 자산관리 시스템을 갖춘 새로운 PB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들도 한국의 PB 시장을 좀더 광범위하게 공략하고 있다.SC제일은행은 고객 기준을 5000만원까지 낮춰 1대1 평생 자산관리를 해주는 ‘프라이어러티 뱅킹’ 서비스를 지난달부터 시작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1억원 이상의 자산가를 대상으로 ‘프리미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국씨티은행도 고객층을 세분화한 ‘씨티골드’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부유층 세분화일 뿐 서민금융 서비스 확대는 아니다” 은행들이 PB 대중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기존의 마케팅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수백억원을 들여 PB전문센터를 개설하고, 고객 한 명에게 온갖 서비스를 제공해 왔지만 직접적인 수익은 크지 않았다는 게 PB 담당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 PB 담당자는 “PB 영업은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다.”면서 “부동산종합대책 발표 이후 부자 고객을 상대로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해 각종 설명회를 열고, 고객의 취미 생활을 위해 호화스러운 미술전시회 등을 잇달아 개최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외국의 자산가들은 PB 직원 한 명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만 한국의 부자들은 여러 은행을 거래하면서 1%의 수익률에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유동성이 강한 한국 고객을 상대로 정통 PB 영업을 고집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PB 대중화를 서민금융 서비스 강화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극소수 고객에게 최고의 혜택을 주는 기존의 영업을 그대로 유지한 채 바로 아래 단계의 우량 고객에게도 PB 서비스의 일부를 나눠주는 세분화 전략이 대중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서도 나타났듯이 은행에 100억원 이상을 예치한 194명 중 51명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등 PB 영업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하나은행은 오히려 PB 고객 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 결국 초기 PB 시장 쟁탈전에서 밀린 은행들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대중화로 나선 셈이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부유층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젊은 중산층에게까지 PB 서비스를 확대하다 보면 이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 서민들에 대한 서비스는 더욱 열악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英 노블·웹스터 커플의 ‘춘화전’

    英 노블·웹스터 커플의 ‘춘화전’

    영화도 아닌, 웬 미술 전시회의 관람객을 19세 이상으로 제한하는지는 전시장을 둘러보면 고개가 끄떡여 진다. 영국의 잘나가는 젊은 작가 팀 노블과 수 웹스터 커플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그들이 처음 선보인 40개 드로잉은 모두 ‘춘화’(春畵)일색. 마치 은밀한 침실의 야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연필 드로잉이다. 너무나 노골적인 묘사에 한번 놀라고, 등장하는 남녀 모델이 바로 작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그들은 “1972년 발간, 베스트셀러이던 ‘섹스의 즐거움’이 현재 쓰레기로 변한 것을 보고 다시 생명을 불어 넣고 싶었다.”면서 “오늘날의 생활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문화적 재생’”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회에서 눈여겨 볼 작품은, 그들이 명성을 얻게 된 초기 작품인 ‘그림자 작업’이다. 깡통, 담배, 휴지등 쓰레기를 교묘하게 조합해서 만든 작품 ‘쥐’만 해도,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조명에 의해 벽에 투사된 실루엣을 보면 영락없는 쥐의 형상이다. 또 번쩍이는 광고물에서 영감을 받아, 네온사인으로 글자를 새긴 작품도 유명하다. 한편 이번 전시회의 드로잉 작품을 놓고 화단에서는 “지나치게 상업성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초 갤러리측도 이들에게 원한 작품은 ‘그림자 작업’과 ‘네온사인 작업’이었지만 작가들이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면서 이런 ‘춘화 전시회’가 됐다. 성(性)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가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드로잉 작품을 과연 순수한 예술품으로 받아들일 지는 관객들이 결정할 문제.11월6일까지.(02)735-8449.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효성가(家)의 2세 경영이 닻을 올린 지 30여년. 선친인 만우 조홍제 회장의 ‘유훈 경영’ 방침대로 효성은 내실과 외양을 조화시키며 튼튼한 중견 그룹으로 커왔다. 대신 2세들의 분가와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축소된 사세(社勢)는 아직 옛 영광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3세들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효성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안정 지향의 경영 색깔에서 도전과 진취가 ‘경영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 효성은 올해를 ‘뉴스타트의 해’로 삼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 선두주자에 효성의 3세 경영인들이 포진해 있으며, 이들의 성공적인 착근이 ‘신(新) 효성’의 성공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세 분가 효성가(家)의 2세 분가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만우 회장이 3형제(조석래-양래-욱래)에게 일찍이 효성의 주력 기업을 하나씩 떠맡기면서 독립 경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만우 회장은 “3형제가 장성했고, 기업의 경영책임자로서 제몫을 다하는 만큼 앞으로 지켜볼 따름”이라며 1978년 사실상 기업경영에서 손을 뗐다. 장남인 조석래(70) 회장은 70년대부터 주력 기업인 효성물산과 동양나이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4개사 모두 ㈜효성으로 통합) 등을 맡았다. 차남인 조양래(68) 회장은 자동차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한국타이어를 물려받았다. 성격이 활달한 3남 조욱래(56)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전피혁 사장에 올랐다.3형제는 이후 분리 경영을 해오다가 1980년부터 주거래 은행까지 달리할 정도로 철저한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83년 그룹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제2의 창업’을 선언, 화섬과 중전기, 화학, 건설, 정보통신 등으로 효성을 키워오고 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한국타이어와 한국전지, 한타M&B 등을 통해 타이어사업의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 반면 3남 조욱래 동성개발 회장은 외환위기 시절 효성기계 부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권토중래를 모색 중이다. ●만우 회장과 4자성어 2세 경영의 특징은 선친의 ‘유훈 경영’과 밀접하다. 만우 회장이 197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다. 그는 세 아들에게 ‘항상 가까이 두고 뜻을 새기라.’는 차원에서 각각 휘호를 하나씩 줬다. 장남인 효성 조 회장에겐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라는 뜻에서 ‘숭덕광업(崇德廣業)’이란 글귀를 남겼다. 차남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쉬지 말고 힘을 길러라’라는 뜻에서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글귀를 받았다. 막내인 동성개발 조 회장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4자성어를 받았다. 자식들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우 회장의 일종의 ‘자식 사랑’인 셈이었다. 2세들도 선친의 뜻에 따라 지금껏 경영을 해오고 있다. 효성 조 회장은 화학과 정보통신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갔고, 특히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문어발식 기업 확장 대신에 타이어 ‘한우물 경영’에 충실했다. ●학자풍의 조석래 회장 조 회장은 학구적이며 논리적이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만을 앞세운 경영보다 윤리적이고, 원칙적인 경영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가끔은 융통성이 없다거나 보수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조 회장은 조씨가(家)의 학자풍 스타일 면에서 선친을 가장 많이 닮았다. 만우 회장과 조 회장 모두 젊은 시절엔 기업인보다 대학 교수에 관심이 더 많았다. 조 회장의 이런 학자적 소양은 경영에 발을 내디딘 초기부터 많은 빛을 봤다.74년 초 오일쇼크의 여파로 나일론 원자재가 품귀 현상을 빚었을 때 슬기롭게 넘긴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 회장은 나일론의 원자재인 ‘카프로락탐’ 구입난에 직면하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완성품인 카프로락탐의 직접 구입보다 매입이 더 쉬운 기초 원자재를 구입해 카프로락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조 회장의 광범위한 정보 획득과 주도 면밀한 연구가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었던 착상이었다. 조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56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해 홀로 고군분투를 하던 선친의 부름을 받고,1966년 효성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후 나일론 원사사업을 세계 4위까지 육성시켰으며,1975년엔 폴리에스터 공장을 준공해 효성을 명실상부한 화섬업계의 리더로 이끌었다. 또 한·미 재계회의와 한·일 경제인 회의,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등의 리더로서 국제 협력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길경영’과 ‘권토중래’ 조양래(67) 한국타이어 회장은 나서기를 꺼려하고, 검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조 회장은 5년 전에 산 국산 브랜드의 구두를 여태껏 신고 다닌다. 아직 쓸 만하다는 것이다. 조 회장이 하루는 직원들과 식당에 밥먹으러 갔는데 너무 구두가 낡아서, 직원들이 회장 구두를 찾지 못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언론에 얼굴 내밀기를 싫어하는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 사장 시절에 딱 한 번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 사진 기자가 인터뷰용 사진을 여러 장 찍는 것을 본 조 회장은 “무슨 전문가가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는가. 전문가이면 사진을 한 번만 찍으면 되는 것을. 필름만 그저 아깝게….”했다고 한다. 조 회장은 해외 출장에 수행원을 두지 않고 다닌다. 또 숙소도 일반 출장자들이 주로 머무르는 2급호텔에 투숙한다. 그의 이런 검소함과 치밀함은 한국타이어 경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이후 조 회장은 줄곧 타이어사업 하나만 매진해 세계 9대 타이어 메이커로 성장시켰다. 조 회장은 1988년 “경영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회장은 현재 한국타이어 복지재단 회장직을 맡아 ‘미신고 복지시설’ 지원 등에 앞장서고 있다. 3남인 조욱래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대전피혁 사장에 취임,10년만에 대성과 효성알미늄, 효성금속, 효성기계, 동성, 동성개발 등 총 8개 계열사로 늘리는 경영 수완을 보였다. 특히 일본 스즈키사와 제휴해 오토바이 생산업체인 효성기계를 설립, 한때 대림산업과 함께 국내 오토바이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 회장의 책임·내실 경영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한파는 효성기계를 어렵게 했다. ●효성가 3세 효성가 3세(조현준-현문-현상)들은 경영수업의 첫발을 모두 외국 회사에서 내디뎠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모건스탠리를 거쳐 97년 부친인 조 회장의 부름을 받고,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효성에 입사했다. 차남 조 전무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99년 효성 경영전략 2팀장으로 합류했다. 막내 조 상무는 세계적 경영컨설팅사인 베인&컴퍼니와 일본의 세계적인 통신사인 NTT도코모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효성에 입사했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미국의 명문고인 세인트 폴 고교를 나와 예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영어와 일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효성맨’이 된 조 부사장은 효성의 독특한 사업구조인 퍼포먼스유닛(PU)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섬유·산업자재·무역·정보통신 등 주요 사업군을 ㈜효성의 우산 아래로 모으면서 효성T&C(옛 동양나이론)·효성물산·효성생활산업·효성중공업을 합병시키는 등 굵직한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차남인 조 전무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했다. 고교 시절 조 전무의 별명은 ‘바야바’. 큰 키에 모범생인 그를 친구들은 이렇게 불렀다. 그는 98년 하버드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99년 효성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조 전무는 국제 변호사로서 큰 역할을 해냈다. 효성 도메인(www.hyosung.com)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온 것.99년 닷컴 도메인을 선점한 사이버 ‘스쿼터(도메인 매점매석 행위자)’가 수억원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 도메인등록협회와 미 법원에 제소,‘효성닷컴’을 찾아왔다. 미국 브라운대 출신인 3남인 조현상 상무는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오랜 직장 경험을 쌓았다. 그는 사내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다. 조 상무는 현재 그룹의 핵심 현안인 성장엔진 발굴을 위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으며, 그룹 장기전략 수립과 기업이미지 개선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3세들의 역할이 날로 확대되고 있지만 3세들의 경영 승계 시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 회장이 아직 정정한 데다 3세들이 배울 것이 많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타이어의 3세 경영도 관심이 쏠린다.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업무 권한을 팀장들에게 대폭 위임,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덕장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차남인 조현범 상무는 치밀한 분석력과 폭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스타일.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3세 혼맥 조씨가(家)의 3세 혼맥도 국내 명망가와 혈연으로 잘 엮여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두환 전 대통령가(家)와 ‘사돈의 사돈’이라는 것과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돈이라는 점이다. 또 권노갑 전 의원과도 ‘사돈의 사돈’이다.2세 혼맥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家)와 통혼으로 이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조씨가는 국내 내로라하는 정치 가문과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만우 회장이 일부러 정치권을 기피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는 매우 뜻밖의 사실이다. 조석래 회장과 송광자(61) 여사는 슬하에 3남을 뒀다. 장남인 조현준(37) 효성 부사장은 2001년 11월 한국제분 이희상 회장의 3녀인 미경(29)씨와 결혼했다. 양가가 서로 안면이 있는 데다 미경씨의 형부가 적극 나서면서 서로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은 연애 시절 테니스와 연주회 등을 관람하면서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결혼식은 조 부사장의 모교인 세인트 폴 고교에서 했다. 현재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조 부사장의 처가인 이희상가(家)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간이다. 한국제분 이 회장(60)은 부인 정영화(59)씨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인 윤혜(34)씨가 전 전 대통령의 3남인 재만씨와 혼례를 치렀다. 조 부사장과 재만씨는 동서간이다. 차남 조현문(36) 효성 전무는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 여진(31)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진씨는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거쳐 뉴욕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재원. 노무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다가 지금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조 회장과 송 여사가 이어줬다. 시부모와 며느리간 첫 만남은 2001년 6월 한·미 재계회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진씨는 당시 미국 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로, 한·미 재계회의엔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 연례회의에서 조 회장 부부와 여진씨는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안면을 트는 사이가 됐다. 인연은 다음해에 또 이어졌다.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에 세 사람은 같은 일정을 보내게 됐다. 당시 장남인 조 부사장이 막 결혼을 한 시기여서 주변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던 송 여사는 이렇게 화답했다고 한다.“아직 두명을 더 보내야 한다.”고. 이후 조 회장은 조 전무에게 여진씨를 소개해줬고, 두 사람은 3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조 회장과 여진씨의 부친인 이 전 청장과는 서로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으며, 조 전무의 동생인 조현상 상무와 여진씨의 오빠는 미국 브라운대의 선후배 사이일 정도로 양가는 사돈으로 맺어지기 전부터 가까웠다.3남 조 상무(34)는 아직 미혼이다. 효성가의 방계 3세들의 혼맥도 화려함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홍문자(64) 여사는 2남2녀를 뒀다. 미국 뉴욕의 FDU대 수학과 교수인 맏딸 희경(39)씨는 연세대 법대 교수인 노정호(43)씨와 혼례를 치렀다. 차녀 희원(38)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장남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차동완 카이스트 교수의 딸인 진영(28)씨와 인연을 맺었다. 진영씨의 모친은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차녀인 설영자씨다. 차남 조현범(33) 상무는 2001년 9월 이명박 서울시장의 3녀인 수연(30)씨와 결혼했다. 최근에 보기 드문 정치인과 재벌의 혼사였다. 조욱래(56) 동성개발 회장의 자제는 모두 2남 1녀. 장남인 현강(30)씨는 삼정KPMG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차남 현우(22)씨는 미국 TUFTS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장녀인 윤경(27)씨는 홍준기 삼공개발 회장의 아들인 석융씨와 혼인했다. 홍 회장의 딸인 지연씨가 권노갑 전 의원의 아들인 정민(35)씨와 결혼해 조씨가는 권 전 의원 가문과 한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효성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이상운(53) ㈜효성 사장은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전문경영인. 경기고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76년 효성물산에 입사했다. 중동 등에서 ‘섬유수출의 귀재’라는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효성물산 기획실과 시장개척실, 사업개발실 등을 거치며 업무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외환위기 때에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효성그룹의 주력 4개사를 통합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송형진(62) ㈜효성 건설PG장은 건설 경력 35년이 넘는 전문 경영인이다. 건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가장 강조한다. 특히 사람을 관리하는 팀워크를 중요시해 건설PU장 시절, 사업이 진행중인 현장을 한 번 이상은 방문해 현장 직원들과 어울리곤 했다. 경기고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나왔다. 김재학(57) ㈜효성 중공업 PG장 겸 전력PU장 사장은 기계공학 전공자답게 정확함과 세밀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경영은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조직력 결속을 중시한다.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최병인(44) ㈜효성 정보통신PG장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효성의 전문경영인(CEO)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리다.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며,2000년 효성에 합류했다.2002년 그룹 정보통신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체인 효성데이타시스템과 효성컴퓨터를 합병해 노틸러스효성㈜을 출범시켰다. 우신고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나왔다. 유효식(58) ㈜효성 지원본부장 부사장은 1974년 동양나이론에 입사한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외환위기 때에는 ‘책임 경영’ 체제 구축을 위해 경영 시스템을 ‘PU체제’로 전환시켰다. 인천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정윤택(50) ㈜효성 재무본부장 전무는 종합조정실과 재무본부 등에서 근무한 베테랑급 재무 전문가다. 추진력이 탁월하고, 금융 및 산업계의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나다. 서울 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류필구(60)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95년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의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10년째 경영하는 국내 IT업계 최장수 CEO다.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고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안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조충환(63) 한국타이어 사장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말단 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전형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64년 삼성물산에 입사, 도쿄 지사장 등을 거친 ‘상사 수출맨’이다.83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이후 기획과 재무 등을 거친 뒤 97년 12월 한국타이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golders@seoul.co.kr ■ 바깥활동 활발한 며느리들 효성가(家) 며느리들은 세련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커리어 우먼’쪽에 가깝다. 경영수업을 쌓고 있지는 않지만 바깥 활동엔 꽤 적극적이다. 흔히 며느리들은 안으로 돌리고, 딸들은 출가외인으로 치부하는 국내 재벌가(家) 문화와 거리가 있다. 딸이 귀한 가문이어서 시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의 여성 후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조석래 회장의 부인으로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송광자(61) 여사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들의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여성도 일을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야 후회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심지어 며느리들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보약을 다려줄 정도다. 아들만 있는 송 여사는 며느리가 모두 딸 같다고 한다. 장남인 조현준 부사장의 얘기다.“지난달 제수씨가 북핵 6자회담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가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열심히 하고, 꼭 좋은 결과를 갖고 오라고 북돋워주더라고요.” 송 여사가 그렇다고 며느리 뒷바라지나 집안 살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와 종교 활동을 통해 이웃돕기에 나서고 있다. 주한 외국대사 부인들의 모임인 서울 가든클럽에서 봉사 활동도 한다. 또 미대 출신으로 국내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미술관 지원사업이나 일반인에 대한 현대미술 교육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3세 며느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어머니께서 무척 배려를 해주신다.”면서 “일이나 공부 때문에 늦게 귀가하면 어깨도 주물러주고, 저녁도 대신해 때로는 당황스럽고, 몸둘 바를 모를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송 여사의 이런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인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의 영향이 크다. 당시 재계에서 엘리트였던 만우 회장은 며느리들에게 평생 교육을 강조했다. 예컨대 며느리들에게 앞으로 자가용 시대가 온다며 면허증을 따도록 했으며, 연료로 연탄을 주로 쓰던 시절 차세대 연료인 LPG(액화석유가스)에 관한 공부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 미술을 전공한 맏며느리인 송 여사에겐 신혼 초에 살림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전시회를 열어 줄 정도로 미술 공부를 독려하곤 했다. 며느리 건강을 위해 보약을 챙겨주기도 했으며, 훗날 맏며느리가 그림 공부를 그만두자 만우 회장이 이를 가장 애석해했다. 조석래(70) 회장의 맏며느리인 이미경(29·조현준 부사장 부인)씨는 서울대 음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식품영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대학에서 음악(피아노)을 전공했지만 다른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같다.”면서 “이번엔 한국 전통음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 했다. 둘째 며느리 이여진(31·조현문 전무 부인)씨는 1997년 외무고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을 거쳐 현재 국가안전보장회(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조 전무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절제가 뛰어난 것이 와이프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golders@seoul.co.kr ■ 재주꾼인 3세들 효성가(家)의 3세들은 재주가 다양하다. 취미와 스포츠, 외국어 모두 수준급이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딴따라’ 기질도 있어 보인다. 장남 조현준(37) 부사장의 설명은 이렇다.“부친과 조부는 뭐든 하려면 제대로, 일정 수준 이상까지 요구했었습니다. 덕분에 운동도 종목을 바꿔가며 취미 이상으로 실력을 키웠고, 다른 분야도 비슷했었습니다. 특히 외국어는 영어, 일본어는 기본이었고, 제3외국어도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조 부사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미국의 세인트 폴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야구부 주장을 맡았다. 미식 축구 대표선수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경영수업 틈틈이 사내 야구팀과 직장인 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스키와 스쿼시, 테니스는 선수급 기량이다. 그는 한때 건축학과 교수가 꿈이어서 건축과 미술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탈리아의 바티칸박물관 복구 작업에 참가한 특이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한옥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재 보호단체인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운영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는 소믈리에(와인감별사) 자격증을 따로 취득할 정도로 와인 전문가이다. 차남 조현문(36) 전무는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다. 대학 시절엔 가수 신해철 등을 비롯한 중·고교 동창들과 어울려 보컬그룹 ‘무한궤도’를 결성,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피아노 뿐 아니라 작곡과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그의 곡들은 ‘무한궤도’ 1집에 수록돼 있다. 조 전무는 또 축구 마니아다. 미국 유학 시절에 축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스키와 테니스 실력은 형인 조 부사장에 못지 않다. 3남 조현상(34) 상무도 스포츠와 음악에 관심이 많다. 그는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축구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브라운대 아카펠라 그룹에 가입해 밴드 리더로 활동했다. 아카펠라 해외 공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조 상무도 형들과 마찬가지로 ‘공 운동’은 모두 좋아한다. 축구와 스키, 스케이트 등은 한때 교내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사설] ‘가짜 이중섭그림’ 위작 근절 계기돼야

    고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유족과 작품 소장자, 미술품 감정기관이 얽혀 벌어진 미술계 최대의 위작 시비에 1차 결론이 났다. 두 화백의 작품으로 공개된 58점에 대해 검찰이 위작 판정을 내린 것이다. 검찰은 명예훼손 고소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울대의 한 연구소,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공립 3개 기관에 감정을 의뢰했고 그 결과는 모두 같았다. 검찰이 58점말고도 두 소장자가 보유한 2740점 모두를 압수했다고 하니 검찰의 판단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먼저 작품의 진위 여부에 신뢰할 만한 판정이 내려진 사실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중섭·박수근 두 화백은 한국 회회사에 빛나는 거장들이다. 그런데 돈벌이에 눈 멀어 가짜 그림을 제작·유통한 행태는 그들의 예술혼을 도둑질하는 짓에 다름아니다. 게다가 위작이 돌아다니면 작가와 진품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고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야말로 미술계의 암적인 존재인 것이다. 검찰이 가짜를 제작·유통한 과정을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니 이 기회에 위작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이 뿌리뽑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우리는 미술품 진위 논쟁이 결국 검찰의 개입으로 결정난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위대한 작가를 육성·보호하는 데는 활발한 미술품 시장과 누구라도 신뢰하는 감정기관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위작 논쟁을 자체 해결할 수 있게끔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이 조속히 자리잡기를 바란다. 또 미술품 애호가들이 작가의 명성보다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로 그 가치를 평가하는 감식안을 길러야만 우리사회에 위작이 발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 미술품 위작시비 줄이을 듯

    논란이 됐던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유작 진위여부와 관련, 검찰이 ‘가짜’로 결론짓자 미술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두 대가의 작품 말고도 다른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둘러싸고 가짜 시비가 잇달아 제기될 조짐을 보이면서 가뜩이나 위축됐던 미술 시장은 거래마저 꽁꽁 얼어붙을 분위기다.●서울옥션 대표 즉각 사임이중섭 화백의 작품 4점을 경매에서 팔면서 미술계 최대의 위작 논란을 일으켰던 서울옥션 이호재 대표는 7일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이 대표는 “본의 아니게 미술계에 혼란을 준 점에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수사 결과를 존중한다.”면서도 “개인적으로 할 말은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며 검찰 수사결과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당사자인 이 화백의 차남 태성씨와 이 화백의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김용수씨는 수사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태성씨는 “유족이 갖고 있는 유품을 검찰에서 가짜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향후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중섭예술문화진흥회 측은 전했다. 김씨의 대리인인 신봉철 변호사는 “감정위원들의 감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외국의 감정 기관에 다시 감정을 의뢰해야 한다.”며 검찰 결정에 즉각 항고 의사를 밝혔다.●“화랑의 아버지 작품 거의 가짜” 강남의 A화랑 대표는 “최근 고객으로부터 그림을 사고 싶지만 의구심이 생겨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민을 들었다.”면서 “미술시장에 대한 불신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20년 된 고객 1000여명에게 전시회 안내장을 보내면 10명도 안 온다.”고 위축된 미술 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 위축에 따른 미술품 구매 감소 현상도 있지만 이화백과 박화백의 유작 파문 이후 화랑가에 고객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이번 수사결과는 의외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미술 유통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진위 공방이 잇따르는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한 원로작가의 아들 B씨는 최근 인사동 화랑가를 둘러본 뒤 “인사동에 걸려 있는 자신의 아버지 작품 대부분이 가짜”라면서 “한두 점이 아니어서 일일이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힘들 지경”이라고 개탄했다.●`투명한 미술시장´ 계기로 이중섭 화백의 유작에 가짜 의혹을 제기, 이 화백의 차남 이씨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됐던 미술품감정협회의 최명윤 감정위원은 “위작으로 밝혀져 기쁘다.”면서도 “미술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검찰수사까지 간 것에 대해 비애를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파문이 미술시장을 정화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미술평론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미술 시장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앞으로 미술 유통시장이 새롭게 거듭 나도록 노력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특히 “감정 전문인력 양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공신력 있는 감정기구의 설립 등 가짜 그림을 몰아내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하) 베를린-냉전 상징서 유럽 심장부로

    [統獨 15주년, 빛과 그림자] (하) 베를린-냉전 상징서 유럽 심장부로

    45년 동안 동서로 갈라졌던 냉전의 상징 베를린은 분명 상처받은 도시였다. 그러나 1961년 8월13일 이후 베를린 시를 동서로 갈랐던 43.1㎞의 콘크리트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그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통독 이후 독일의 수도로 다시 태어난 베를린은 1조유로(약 1254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 미래 도시에 걸맞은 인프라를 구축하며 주요 행정기관과 다국적 기업을 유치했다. 분단 도시의 흔적을 지우고 유럽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베를린 장벽의 잔재는 박물관이나 기념물 외에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대신 곳곳에 들어선 다양한 디자인의 초현대식 고층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는 미래 지향적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베를린 함혜리특파원| 많은 사람들은 베를린을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끝없이 건설 중인 도시’라고 표현한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1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출발역부터 종착역까지 한두번만 가보면 이 표현의 적절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버스는 초(동물원)역에서 출발해 티어가르텐, 전승기념탑, 벨뷔 궁전, 세계문화관, 연방의회 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 문, 운터 덴 린덴, 박물관 섬, 알렉산더광장 등 시내의 주요 명소를 지나가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1871년 독일이 제국으로 통일된 것을 기념해 지어진 의사당은 통독 이후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 옥상에 통독 이후 투명돔이 지어지면서 통독의 상징이 됐다. 미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투명돔은 내부에 거울기둥들이 다양한 각도로 설치돼 있고, 여기서 반사된 햇빛이 본회의장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박물관 섬(Museuminsel)’에서는 과거를 볼 수 있다. 슈프레강 한복판에 있는 이 지역은 이름 그대로 1830년부터 100년 동안 차례로 지어진 4개의 박물관과 1개의 국립미술관이 있으며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부터 후기 비잔틴을 거쳐 1900년대에 이르는 건축과 미술의 역사를 담고 있다. 베를린시는 밀레니엄을 맞아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잡기 위해 10년 안에 8억2900만유로(약 1조원)를 들여 미술관과 박물관을 재정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사가 끝나면 박물관 섬에 있는 5개의 건물은 지하 통로로 연결되고 행정동과 기술센터도서관, 교육시설들이 갖춰지게 된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쌓여졌던 두텁고 높은 콘크리트 장벽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현대식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 지역의 핵심은 포츠다머 광장이다. 1920∼30년대 유럽 최대의 번화가였으나 전쟁과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폐허로 남아 있었다. 베를린시가 도시의 상징적인 광장을 만들기 위해 1991년 주최한 국제도시계획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건축가 힐머와 자틀러가 제안한 복원계획이 당선됐고,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가 설계와 건설을 맡았다. 베를린의 미래를 보여주는 포츠다머 광장에는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40억마르크(약 2조 4000억원), 일본 소니가 13억마르크(약 7800억원)를 각각 투자했다. 광장에는 복합 빌딩을 비롯해 고급 쇼핑몰, 영화관, 카지노, 아파트와 사무실 등 17개의 현대식 대형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간판건물로 꼽히는 소니센터는 뉘른베르크 태생의 건축가 헬무트 얀이 설계한 미래형 복합 빌딩으로 유리와 강철로 만든 돔형의 지붕과 7개의 빌딩으로 이뤄져 있다. ●문화 중심지로의 화려한 복귀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동쪽으로 뻗어있는 운터 덴 린덴(‘보리수 나무 아래’라는 뜻)은 베를린 최초의 계획된 산책로로 2차 대전 이전까지 베를린의 문화적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냉전시절 동베를린에 속하면서 낭만을 잃었다가 지금은 고급 부티크와 카페,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즐비한 베를린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바뀌었다. 1920년대 유럽 문화의 중심지에서 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삭막해졌던 베를린 시내는 이제 젊은이들과 예술가들, 무궁무진한 문화적 인프라를 향유하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베를린에는 3개의 오페라하우스,100개가 넘는 연극 공연장,170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넘치면서 근사한 레스토랑과 바, 카페 등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난다. 통독 15주년 국경일인 지난 3일 국립미술관 앞은 고야 특별전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4∼5시간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시며 지루한 줄 모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하터시에서 왔다는 프랑크 엡슈타인은 “베를린에는 친구들도 많고 오페라와 연극 등 볼거리도 많아 자주 방문한다.”며 “베를린이 하나로 합쳐진 뒤 문화적 풍요로움이 더해져 즐겁다.”고 말했다. ●유럽 중심도시로 발돋움 독일 통일로 베를린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거대 도시가 됐다. 그러나 유럽의 중심도시로 발돋움하려는 베를린의 변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베를린시는 전체 170㏊에 달하는 지역에 총 1000여개의 새 건축물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도시 계획은 전반적인 도시의 밑그림(STEP)을 기준으로 지역계획(FNP), 구역계획(BEP) 등 단계별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된다. 내년 완공예정인 베를린 중앙역사를 비롯해 건축아카데미 복원계획, 스프리 강변의 미트지역에 세워질 업무 및 주거 복합빌딩 지르쿠스, 현대적 시설을 갖춘 오스트반호프 실내 체육관, 티어가르텐 서쪽의 특급 호텔 및 위락시설 지역 KPM쿼터, 스프리강변의 미디어센터 등이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건축의 경연장이나 다름없다. 주독 한국대사관의 신동민 전문연구원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베를린은 미래의 유럽 중심지로 부상하기 위해 정보·첨단 IT·교육 등 지식산업시대를 겨냥한 도시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며 “경제적 문제 때문에 독일 통일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같은 도시의 발전은 수치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철거” “보존” 논란 |베를린 함혜리특파원| 베를린 서쪽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동쪽으로 뻗은 운터 덴 린덴 거리를 따라 10분정도 걸어가면 왼쪽으로 작지만 아름다운 공원을 마주한 베를린 대성당이 나오고 그 뒤로 박물관 섬이 보인다. 고색창연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맞은 편에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터를 끼고 있는 5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철거를 앞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옛 동독 공산당사(Republik)다. 군데군데 깨어진 황동색 유리와 강철로 외관이 장식돼 있고 규모는 매우 큰 편이지만 어딘지 황량했다. 심지어 흉물스러워 보인다. 통일 이후 15년간 방치된 탓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달 17일부터 ‘프락탈 Ⅳ’라는 현대미술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젊은 예술가 25명이 ‘죽음’을 주제로 설치, 비디오 아트, 회화, 조각 등을 전시하고 있다. 동베를린 지역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시대의 흔적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해 전시장을 찾았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런 대로 건물의 모양새를 갖춘듯 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철골 구조만 남아 을씨년스러웠다. 전시장이 아닌 곳은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출입을 금지했다. 이런 분위기는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장 안내를 맡고 있는 힐미라는 청년은 “오는 2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를 끝으로 공산당사는 문을 닫고 내년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전시 주제가 ‘죽음’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는 프로이센 왕궁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 실현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아 철거하기로 결정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사는 과거 프로이센의 왕궁이었던 건물을 헐고 옛 동독 공산당이 새로 지은 건물이다. 독일 정부는 통일 후 과거의 어두운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 건물을 헐고 왕궁을 복원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옛 동독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일단 보류했다.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종종 현대 미술 전시회장으로 사용되면서 이 건물의 철거에 반대하는 서독 지역 사람들마저 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전시회를 보기 위해 일부러 왔다는 질케 블룸은 “프로이센 왕국은 이미 지나간 과거인데 많은 돈을 들여 복원하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한다. 건축이 전공이라는 클라우디아 힐가트는 “공산당사가 분단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역사의 일부”라며 “이대로 보존하면 오히려 역사의 교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역세권 아파트 탐방] 문정동 삼성래미안

    [역세권 아파트 탐방] 문정동 삼성래미안

    ‘조경시설+투자가치+강남입지’서울 송파구 문정동 삼성래미안은 문정주공 단지를 재건축한 아파트로 33·44·53·60평형 총 1696가구가 살고 있는 대단지다. 입주는 2004년 10월에 이뤄졌다.2001년 서울 5차 동시분양에서 377가구를 일반 분양할 당시 청약 경쟁률이 51.68대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모든 주차 공간을 지하로 배치했다. 때문에 지상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어 단지의 쾌적성이 눈에 띈다. 공원, 분수대, 조각상 등도 곳곳에 설치돼 있어 단지 안이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단지와 바로 인접해 개롱공원, 두댐이 공원 등 녹지 공간도 충분하다. 가격은 많이 올랐다. 최초 분양가 대비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입주 시점 분양가가 평당 1000만원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2500만원을 웃돈다. 강남권에 위치한 대단지인데다 브랜드 인지도까지 더해진 때문이다. 문정 삼성래미안은 최초 분양자에 대해 등기후 5년 내에 양도세가 100% 감면되는 조세특례제한법이 적용되는 단지이다. ●인근에 법조타운·첨단 산업단지 등 추진 앞으로도 가격 상승 여력이 있어 보인다. 인근 올림픽훼미리 하단으로 오는 2010년 동부지법, 동부지검 등이 들어서 법조타운이 형성되는 데다 동남권 유통단지 등의 개발 호재까지 겹쳐 있다. 법조단지 주변 생산녹지 지역에 IT(정보통신)·BT(생명공학) 등 미래형 산업단지 유치계획을 연말까지 확정지을 예정이다. ●3호선 연장·장지지구 건설도 ‘한몫´ 또 근처 가락시장을 경유하는 지하철 3호선(수서∼오금역) 연장선(수서∼가락시장∼경찰병원∼오금역)이 오는 2009년 말쯤 개통될 예정이어서 교통 여건도 좋아질 전망이다. 2007년 완공될 동남권 유통 단지의 경우 부지(15만 5000평)의 지주들에게 보상 작업이 진행 중이다. 부지 내에는 청계천 이주 상인들을 위한 이주상가 단지와 화물 취급장, 집배송센터, 창고 등의 물류단지, 복합상업단지 등이 조성된다. 서울외곽순환도로(송파IC)와 수서∼분당 고속화도로 및 송파대로와 인접해 있다. 게다가 단지 하단에 장지지구 등 200만평의 미니신도시도 들어설 계획까지 있어 호재가 많은 곳이다. ●출·퇴근때 진입로 다소 붐비는 게 흠 5호선 개롱역과 8호선 문정역이 도보 15분 거리다. 단지 진입구는 편도 2차선인데 단지를 조금 지나 문정초등학교와 문정중학교 앞 4거리에서 차선이 편도 1차선으로 줄어들어 평일 출·퇴근 시간에 차가 다소 밀릴 수 있는 것이 단점이다. 교육시설로는 문정초, 평화초, 가원중, 문정중, 송파중 등이 있으며 편의 시설로는 단지근린공원,GS마트, 가락시장, 송파도서관, 경찰병원, 로데오거리 등이 있다. ■ 도움말 내집마련정보사 김정용 팀장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서울이야기(24)] 문화로 청계천 읽기

    [서울이야기(24)] 문화로 청계천 읽기

    ●문화로 가득찬 청계천 “눈부신 햇살이 아름다운 거리에/오고가는 사람들 흥겹게 노래한다./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모여 웃음꽃 피우네./푸른 가로수 길가에는 그대 희망찬 발걸음이/불빛 가득찬 청계천에 우리의 소망이 피었네.” 조용필이 부른 ‘청계천’의 모습이다. 눈부신 햇살과 불빛, 푸른 물과 가로수, 아름다운 다리가 있는 청계천, 그곳엔 흥겹게 노래하고 웃음꽃 피우며, 꿈과 희망과 소망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사랑과 기쁨과 미소가 충만해 있다. 청계천은 아름다운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다리에 얽힌 역사가 있고, 미소와 기쁨을 자아내는 예술이 있으며, 꿈을 일구고 흥겹게 즐기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이러한 청계천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든 사유물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함께 참여해 만들고 또 만들어가는 공공공간이다. 그래서 청계천은 ‘역사’,‘예술’,‘삶’,‘참여’의 문화적 키워드가 공존하는 문화공간이다. ●청계천은 역사다 ‘하천’시대(조선시대∼1950년대),‘복개’시대(1960∼1990년대),‘복원’시대(2000년대)의 역사적 숨결이 담겨있는 청계천. 우선, 자연하천이자 서민의 생활터전이었던 하천시대의 역사를 더듬어 보자. 다리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스며 있다. 상류층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는 사회계층들의 삶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도성 최대의 다리로서 어가와 사신의 행렬이 지나가는 교통로이자, 정월대보름이면 수천명의 민초들이 다리밟기를 행하던 ‘광통교’, 중인과 상인계층들의 삶터로서 수심을 측정했던 수표와 보물 제838호 수표교의 옛터이자 겨울이면 서민들의 연날리기 명소였던 ‘수표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사연과 역사가 담겨 있다. 물론, 하천시대의 역사는 아직 온전히 복원되지 못했다. 광통교는 원위치에 자리잡지 못했고, 정조가 수원화성에 행차하는 모습을 담은 길이 192m의 세계최대 도자벽화 ‘정조대왕능행반차도’에서나 그곳의 자취를 연상해 볼 수 있다. 수표교도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 있다. 서민들의 생활터전으로서 청계천의 모습 또한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의 ‘청계빨래터’와 징검다리 속에서만 더듬어 볼 수 있다. 수표교 근처 ‘준천사터’등 천변 곳곳에 위치한 유적 기념비들과 함께, 앞으로 더 복원해야 할 하천시대 청계천의 역사를 성찰하고 그 모습을 꿈꿔보는 것, 그 자체도 청계천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가 아닐까. 다음으로, 산업화·근대화의 엔진이자 도심산업문화의 정점이었던 복개시대의 역사를 만나 보자. 복개시대의 대표적 상징물인 ‘삼일고가’,‘삼일빌딩’,‘삼일아파트’를 우선 들 수 있다. 삼일고가는 무학교 아래에 세 개의 ‘존치교각’으로 남아 있다. 건축당시 서울의 최고층 빌딩이었던 삼일빌딩은 삼일교 앞에 건재하고, 다산교에서 황학교 사이에 포진한 역시 건립당시 최고의 아파트였을 삼일아파트는 위층이 모두 헐린 채 2층의 영업공간으로 남아 있다. 복개시대의 역사는 무엇보다 여전히 청계천을 지키고 있는 도심산업문화의 자취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수표교 부근의 공구, 세운교 부근의 전자·조명, 배오개다리 부근의 시계귀금속, 오간수교 부근의 신발도매, 맑은내다리 앞 관상어 상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예전과 달리 깔끔한 디자인으로 통일된 간판들의 모습에서 새롭게 태어나려는 상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새벽다리를 사이에 둔 한국 최초의 근대시장 광장시장과 건자재 종합시장 방산시장, 마전교에서 다산교 사이의 평화시장들, 영도교 앞 황학동 도깨비시장, 고산자교 부근의 마장동 축산시장 등 상인과 서민들의 삶터이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었던 시장들도 여전히 복개시대 청계천의 정서를 담고 있다. 이러한 도심산업문화를 창출한 역사의 기저에는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평화시장 앞에 생을 바쳤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있다. 그의 분신장소 앞에는 과거의 낡고 초라한 표석 대신 늠름한 모습의 동상이 건립되었고, 동상이 위치한 버들다리는 전태일 다리로, 부근의 패션의 거리는 전태일 거리로 다시 태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복개시대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부 상권이 옮겨지고, 주변지역이 개발되고, 시장이 타운으로 변모하고, 허름한 간판과 골목이 새로운 이미지 통합(CI)과 더불어 정비되고는 있지만, 청계천은 여전히 생태공원이나 여가공간의 차원을 넘어선 상인들과 노동자들의 생계공간이자 삶터다. 생태환경 복원에 이어 삶의 공간으로서 문화복원이 이루어지도록 복개시대의 자취들을 꼼꼼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젠 문화도시 서울을 견인할 복원시대의 역사를 체험해보자. 복원공사를 하면서 경험했던 다양한 사건과 자료와 꿈들, 청계천의 과거·현재·미래를 이제는 마장동 두물다리 앞에 위치한 1728평의 복합문화공간인 ‘청계천문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청계천 시점부에 조성된 2100여평의 ‘청계광장’은 서울광장과 연계해 광장 문화의 새 역사를 선언하고 있다. 삼일교 앞에 조성된 ‘베를린 광장’ 역시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의 임무를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공사기간에 영업이 어려운 황학동 벼룩시장 노점상들의 생계공간으로 마련된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은 이제 동대문의 명물이 되었다.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흐르는 곳에 위치한 35만평의 ‘서울숲’은 복원시대를 상징하는 핵심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다. 복원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다. 그만큼 복원시대의 역사는 앞으로 청계천에서 우리 모두가 만들어내는 문화를 통해 겹겹이 쌓여갈 것이다. ●청계천은 예술이다 청계천에서는 예술적 혼과 정신의 편린들을 만날 수 있다. 광통교와 수표교, 오간수문의 건축양식에서는 그 시대의 장인정신을,‘정조대왕능행반차도’에서는 김홍도를 비롯한 정조시대 최고의 화가들의 혼을 느낄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을 형상화한 마전교의 ‘옥류천’,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오간수교의 ‘문화의 벽’, 청계미니어처와 프로그램분수, 만남과 화합을 상징하는 8도석이 마련된 청계광장, 물과 어우러진 다양한 조각품과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장통교 앞 관철동의 젊음의 거리는 ‘피아노 거리’로 변모해 건반 모양의 돌벤치에 앉아 거리아티스트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청계천의 삶이 예술과 결합되는 다양한 축제들 또한 만날 수 있다. 무교·다동 음식문화축제와 동대문패션축제 등 상권활성화와 화합을 도모하는 지역축제를 비롯, 다리밟기를 현대화한 답교 퍼레이드 등 다양한 천변 민속축제들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 막 복원된 청계천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은 아직은 협소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청계천에는 다양한 예술적 사건들이 흐를 것이다. 정서와 감수성을 풍요롭게 해주는 삶과 사람과 예술을 청계천에서 만들어 보자. ●청계천은 삶이다 청계천은 그속에서 생계를 꾸리고 인생을 가꾸는 상인과 기업들의 삶터다. 또한 청계천은 그곳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쉼터이자 놀이터다. 따라서 청계천의 삶과 사람, 그에 얽힌 다양한 스토리들 그 자체가 청계천의 문화다. 준설사업을 시행했던 암행어사 박문수, 천변에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던 남이장군, 수표교 밑에서 그림을 그렸던 천재화가 장승업을 만날 수 있다. 복개시대 이 곳의 주인이었던 광장시장 거리의 악사 백연화, 청계천 설치미술가 설승순, 황학동 만물시장의 시인 홍이종, 청계천 하구에서 빈민운동을 했던 제정구,4단밥상 배달 아줌마 박호순, 전태일의 동료였던 재단사 배강일 등도 이곳의 살아 있는 역사다. 영도교 앞 20년 전통 멸치국수 포장마차와 곱창골목의 상인들, 광장시장에 있는 삼류 ‘바다극장’과 오간수교 부근의 ‘뉴서울카바레’에서도 청계천 상인들의 멋과 낭만이 배어 있다. 이제 새롭게 복원된 청계천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둥지를 틀고 삶을 일구어갈까. 어떤 사람들이 이 곳에서 새로운 추억과 사건들과 이야기들을 만들어갈까. 그 삶들을 함께 지켜 보자. ●청계천은 참여다 청계천은 함께 만들었다. 청계천을 만든 ‘7인’ 혹은 ‘20인’ 등 언론에서는 특정인들을 조명하고 있지만, 열린 물길을 접하러 그곳을 찾은 수백만의 시민들, 그들의 문화적 욕망이 청계천 복원의 실질적 힘이다.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 50m 길이로 조성된 ‘소망의 벽’에는 2만여 명의 소망과 염원이 담겨 있다. 버들다리 위의 전태일 동상과 4000개의 기념동판에는 “시민의 힘으로 만들자.”를 외치며 수년간 싸워온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와 전태일 열사의 뜻을 기리는 시민들의 성금이 녹아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청계천 아티스트 프로그램은 매주 문화달리기를 통해 얻은 기금과 시민들의 청계천 문화의 다리 성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칠 ‘청아람’ 등의 자원봉사단도 청계천을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심부름꾼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사초기부터 생존권 수호를 외쳤던 청계천상권수호대책위원회,‘청계천은 차별천’이라 외치는 장애인이동권쟁취시민연대, 청계천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 폭력없는 사회를 외치는 ‘청소년 맑은물 축제’ 참석자들, 그들의 목소리는 청계천을 인권천이자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중요한 참여의 소리가 될 것이다. 인근의 기업들도 ‘오천팔백미터 사람, 자연, 문화의 어울림, 희망이 흐릅니다’ 등 다양한 플래카드를 내걸며 청계천 복원에 참여하고 있다.01번 청계천 순환버스, 지하철과 함께 하는 청계천 나들이,2개 코스의 도보관광 등 공공기관도 청계천 문화에 쉽게 접근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청계천은 미래고 꿈이다 청계천 문화, 이제부터 시작이다. 문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기에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갓 물리적으로 복원된 청계천에서 역사와 예술과 삶을 감동으로 조우하기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와 문화기획들이 산재한다. 그래서 본격적인 문화복원과 문화창출은 지금부터다. 우리는 청계천에서 어떠한 문화를 발견하고, 어떠한 문화를 심을 것인가. 서울시에서는 주변의 문화벨트(북촌, 대학로, 정동, 남촌, 장충, 돈화문길, 서울숲)와 연계해 ‘청계천문화벨트’를 조성한다고 한다. 또한, 청계천 브랜드 개발, 문화공간 및 시설 조성, 관광상품 개발, 축제이벤트 전략 등을 골자로 하는 ‘청계천 장소마케팅 전략’도 구상 중이다.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에서는 ‘전태일 광장과 기념관’을 추진하고 있고, 구보학회에서는 ‘박태원 천변테마파크’를 구상하고 있다. 장애인인권단체에서는 장애인이동권을 찾고자 하고, 청계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청계천포럼을 만들고 있다. 개발업자들은 천변에 초고층 빌딩을 기획하고 있다. 청계천은 역사·예술·삶이 있는 도심의 문화갯벌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청계천을 탐색하고, 즐기고, 성찰하고, 싸우고, 만들어 보자. 청계천엔 문화가 흐르고 미래가 흐를 테니까. 이무용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부연구위원
  • [옴부즈맨 칼럼] 독자의 마음부터 읽어라/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 교수

    종이신문의 구독자가 줄어들고 있다. 반면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접하는 이용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신문을 보지 않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이 신문을 외면하고 인터넷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터넷의 속보성과 다양한 정보, 그리고 편리한 이용방식 때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인터넷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문은 왜 인터넷처럼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을까? 지면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취재력이 부족해서 일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신문은 독자들이 필요한 내용을 직접 취재해 압축적으로 제공한다. 신속성과 다양성은 뒤처지더라도 독자에게 필요한 의미 있는 정보를 깊이 있게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신문의 내용이 기자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독자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신문은 독자들이 가려워하는 데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데 취약하다. 지난주 서울신문을 포함하여 일간지들의 주요 지면을 차지했던 내용은 청계천 복원에 관한 기사였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기사가 청계천 복원과정과 참여자, 그리고 청계천 복원을 기념하는 행사소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복원된 청계천 주변의 약도를 지면에 소개했다. 서울신문도 청계천 약도와 서울시장의 인터뷰, 음악회와 미술전 등 복원기념 각종 행사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나마 청계천 주변의 음식점을 소개한 9월29일자 보도가 차별화된 기사였다. 독자들은 청계천 복원 기사를 보면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대부분은 신문에 소개된 청계천 약도를 보면서 자신이 청계천에 간다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유심히 살폈을 것이다.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산책할 수 있고, 물에 발도 담글 수 있고, 그리고 여유있게 차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에 이러한 정보는 없었다.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가볼 만한 장소를 추천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주 국정감사에서는 인터넷 민원서류의 위변조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서울신문은 이와 관련, 사설을 포함하여 5건의 기사를 보도하였다. 인터넷으로 발급되는 민원서류의 중단소식과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이 기사를 접한 독자들은 어떤 정보를 원했을까? 상당수의 독자들은 다양한 민원서류 중에서 어떤 서류가 조작이 가능한지, 그리고 민원서류를 안전하게 발급받는 방법은 없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지면에 이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나마 무인 민원발급기는 안전하다는 9월27일자 보도가 독자의 궁금증을 조금 풀어준 기사였다. 서울신문이 1면을 비롯해 지면을 새롭게 꾸미고, 신선한 기획기사를 제공하는 것도 독자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1면 톱기사를 결정할 때 기존의 뉴스가치 기준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독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면 변화와 함께 내용에서도 독자를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10월1일자에 서울신문이 보도한 중국산 납김치를 식별하는 방법이나 대학별 취업률을 학교보다는 전공별로 분류하여 제시한 기사는 고무적이다. 신문이 다양한 독자의 취향을 모두 고려하여 기사를 쓸 수는 없다. 아울러 모든 기사를 독자가 필요로 하는 내용으로 채울 수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 소비자의 마음을 생각하며 쓴 기사와 그러지 않은 기사는 독자에게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기존의 관행과 사건 자체에만 신경을 쓰는 기사와 독자의 입장을 생각하며 쓴 기사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소비자가 중심인 정보시장에서 신문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기사에 반영하는 일일 것이다. 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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