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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약진하는 에코부머 누가있나

    [에코붐세대를 말한다] 약진하는 에코부머 누가있나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 세대인 에코붐 세대(1979~1985년 출생·에코부머)는 성장 과정에서 사회적 다양성을 접한 세대이기도 하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곳에서, 다른 과정을 거치고도 두각을 나타내는 에코부머들이 많은 것도 이 같은 까닭이다. 위기와 고난은 때로는 위장된 축복이라는 것을 증명한 이들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산소탱크’ 박지성(30)이 대표적인 에코부머다. 그는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먼 명지대를 졸업했지만 끈질긴 도전 끝에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까지 3회 연속 본선에 진출하며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체격이 왜소해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위의 기존관념을 불식하고 인생 역전을 일궈낸 사례다. ‘대한민국 대표 마술사’ 이은결(30)도 중학생 때 내성적 성격을 고치기 위해 마술을 시작했지만 마술을 대중화시키고 처음으로 단독공연을 시도해 ‘매직 콘서트’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끊임없이 새로운 마술에 도전하다가 자괴감에 빠질 즈음 입대, 해군 마술병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제대했지만 올 3월 세계마술가협회가 1년에 한 명에게만 시상하는 멀린상(The Merlin Award)을 국내 마술사로는 최초로 수상, 녹슬지 않은 마술실력을 증명했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프로게이머의 1세대인 ‘테란의 황제’ 임요환(31)은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프로게이머다. 2001년 한빛소프트 스타리그와 코카콜라 스타리그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프로게이머 1억원 연봉시대를 연 그는 프로게이머 사상 최고 연봉 기록(2억여원)도 세웠다. ‘청바지 화가’로 불리는 최소영(31·여)도 이색 아이디어 하나로 20대에 이미 이름을 떨쳤다. 그는 천 위에 스케치를 한 뒤 누군가가 입다 버린 청바지를 자르거나 꿰매는 작업을 통해 도시 이미지와 서민 동네를 예술적으로 표현해 낸다. 부산 동의대 미대 3학년이던 2001년 서울 인사동 블루갤러리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가졌고, 200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그의 작품 ‘광안교’가 1억 9000만원에 팔려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20~30대에 경매시장에서도 가장 인기를 끄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인디 음악계의 서태지’로 불리는 장기하(29)는 서울대 졸업생으로 인디밴드 활약을 하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서 독특한 퍼포먼스와 코믹한 가사 등이 널리 퍼지면서 ‘인디’ 돌풍을 일으켰다. 인디밴드 ‘눈뜨고 코베인’에서 6년간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2008년 5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했다. 인터넷과 방송 등에 출연해 열렬한 박수를 받은 뒤 싱글 앨범 ‘싸구려 커피’, 정규 1집 ‘별일 없이 산다’ 등을 발매해 인기를 얻었다. 지난달에는 2집 ‘장기하와 얼굴들’을 정식 발매해 주요 온라인 판매처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다시 한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글로벌기업의 신성장 미래전략] 롯데백화점

    [글로벌기업의 신성장 미래전략] 롯데백화점

    롯데백화점은 2018년까지 전세계 5위권에 드는 백화점을 지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외 매출 25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비전 실현을 위해 현재 롯데백화점은 해외 영토 개척에 한창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점, 중국 베이징점에 이어 최근 톈진점을 성공적으로 개점한 롯데백화점의 해외 출점은 더욱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주요 공략지는 VRICs(베트남, 러시아, 인도네시아, 중국)다. 인구가 많고 아직 낙후돼 있지만 해마다 성장 속도가 빨라 잠재력이 높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2018년까지 40여개 점포를 추가로 연다는 계획이다. 2012년 톈진 2호점, 웨이하이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점이 문을 열고, 2013년엔 중국 선양점과 베트남 하노이점 개점이 예정돼 있다. 중국은 특히 해외 사업의 거점이다.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지역마다 2~3개 점포를 열고, 이후 발전 가능성이 큰 중소 도시로도 진출하는 ‘다점화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백화점과 쇼핑몰이 함께 구성된 복합단지에 진출할 방침으로, 2018년까지 중국에서만 20여개 점포 개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소비자들의 생활수준 향상과 소비형태 진화에 맞춰 새로운 유통업태 개발에 치중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지난 4월 대구시 봉무에 신개념 쇼핑몰인 라이프스타일센터 1호점 ‘롯데몰 이시아폴리스점’을 연 데 이어 연말에는 파주에 프리미엄 아웃렛을 개점한다. 또한 수도권 서부상권을 새롭게 이끌어 갈 복합쇼핑몰 ‘김포 스카이파크’에도 백화점을 출점한다. 가장 성장세가 좋은 온라인몰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기존 온라인몰들이 이월상품처럼 값싼 상품에 치중하고 있는 틈새를 노려 수준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미엄급 온라인몰 개설을 준비 중이다. 주문 제작 자동차나 요트, 미술품 등을 취급하고 한류로 인해 한국 상품에 관심이 많은 해외 고객에게까지 주문·배송서비스가 가능한 온라인몰로 국내 1등 유통 기업답게 시장을 선도한다는 방침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인터넷 쇼핑몰, 유통업계 신성장 동력으로

    인터넷 쇼핑몰, 유통업계 신성장 동력으로

    상권 포화로 몸집 불리기가 여의치 않아 성장 둔화를 겪고 있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온라인몰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인터넷쇼핑몰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0.4% 성장한 24조 8000억원으로, 처음으로 백화점 시장 규모를 추월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9% 신장해 시장 규모가 30조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2009년 인터넷쇼핑몰 시장은 평균 15% 성장을 거듭, 가장 전망이 밝은 유통업태로 꼽혔다. 백화점은 같은 기간 6%대, 대형마트는 5% 수준이었다. 유통업체들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온라인몰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이마트몰이 거둔 성과에서도 확인됐다. 14일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리뉴얼 오픈한 후 1년간 이마트몰의 매출을 보면 전년 대비 120% 성장했다.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162%나 늘어난 142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으며, 올해 목표인 3000억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반해 오프라인 이마트의 상반기 매출 성장은 전점 기준 전년 대비 11.5%, 기존점(개점 1년 이상)을 기준으로 하면 고작 5.6%로 주춤세다. 이마트가 이마트몰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은 무엇보다 오프라인 매장 객단가(5만 4000원)보다 온라인몰의 객단가(7만원)가 높다는 점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충동구매를 하게 되는 일반 매장의 객단가가 더 높을 것이라는 기존 상식을 깬 것으로 계획·목적 구매를 하는 온라인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구매 연령대 확대도 고무적인 요인. 이마트몰의 구매연령대를 살펴보면 26~35세 36.1%, 36~45세 33.9%를 차지하고 있으며, 50대 이상도 20%에 육박했다. 이마트의 온라인담당 최우정 상무는 “2013년까지 전체 매출을 1조원대로 상승시켜 이마트 전체 매출에서 비중을 15%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백화점 업계 1위 롯데백화점은 연내 ‘프리미엄 온라인몰’ 개설을 준비 중에 있다. 기존 저가·이월 상품을 취급하는 온라인몰이나 오픈마켓과 뚜렷하게 차별화한다는 방침이다. 명품외에 주문제작 자동차, 요트, 미술품 등 희귀한 고가 제품들뿐 아니라 오프라인 백화점 매장의 동일한 상품까지 취급한다. 해외 출점에 따른 인지도 상승까지 감안, 해외 고객도 주문, 배송 가능하도록 영문판도 따로 제작한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그 비싼 작품들 왜 사서 보나요?

    그 비싼 작품들 왜 사서 보나요?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식으로 말하자면 (전시 자체를 포함해) 모두 가짜다. 페이크 다큐다. 앤디 워홀, 마르셀 뒤샹, 마르코 로스코, 이우환, 게르하르트 리히터 같은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고, 그 앞에는 소장가들이 언제 어떻게 작품을 구입했는지 설명하는 동영상이 놓여 있다. 처음엔 반신반의한다. 이지은(변호사), 반이정(미술평론가), 이대형(큐레이터), 최기석(엔지니어), 조광제(철학자)처럼 그럴듯한 전문직 종사자에서부터 임경훈(주부), 소재희(고등학생), 정시우(초등학생) 같은 일반인들까지 모두 열정적으로 소장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구심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런 명작이 한국에? 그것도 한국적 풍토에서 소장자가 맨얼굴을 직접 드러내고 소장 경위를 설명한다? 거기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미술품 판매 계약서까지? 전시장 입구에 놓였던 도록을 펼쳐 드니 맨 끝장에 적혀 있다. ‘새.빨.간.거.짓.말.’ 오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아트라운지 디방에서 열리는 오재우(36) 작가의 ‘컬렉터스 초이스’(Collector’s Choice) 전시다. 언뜻 굉장히 냉소적으로 느껴진다. “그림이 왜 그렇게 비싸지? 이게 출발점이에요. 예술이란 거, 백남준이 말했듯 결국 사기 아닐까요.” 오라가 사라진 무한 복제 시대 자체를 연극적인 연출로 완연히 드러낸 셈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홍대 회화과 출신이다. “자존감이랄까 그런 게 약한 것 같아요. 대학 때는,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림들을 그렸어요. 사회와 인간, 국가 폭력 같은…. 그런데 이게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질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물어본 거다. “좋은 그림을 골라내서 소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거예요. 제가 뭐라 답을 내렸다기보다.” 전시된 작품은 모두 작가가 만든 모작이다. 참가자들이 갖고 싶은 작품을 지정하면 작가가 그려줬다. 대신 그 작품의 가치와 소장 경위에 대해 상상해서 대답하라고 요구했다. “놀랍게도 모든 분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셨어요. 작품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를 그 분들 스스로 표현하신 거죠.” 어쨌거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글쎄요. 젊었을 때 한 번은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나이 들어선 못 할 테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예술이 뭐지, 미술품이 뭐지 스스로 고민해보고 싶은 거지요.” (02)379-3085.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5도 인사, 사람 사이 가장 겸손한 접속이죠”

    “15도 인사, 사람 사이 가장 겸손한 접속이죠”

    “겨우 200개 정도 팔았어요. 그쪽 대사관에서는 무조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큰일이네요. 다 안 팔리면 빚을 내서라도 하긴 해야죠. 허허허.” 다음 달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열리는 ‘그리팅맨’(Greetingman·인사하는 사람) 전시 얘기다. 유영호(46) 작가는 머리를 긁적였다. 작가가 작품 판매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대개는 안 그런 척한다. 대놓고 팔리네 안 팔리네 말하지도 않고, 가격은 슬쩍 귀엣말로 건넨다. 그런데 유 작가는 전시장 한편에다 개당 20만원이라는 가격표를 당당히 붙여놨다. 내놓고 판매 걱정부터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000개를 팔아 그 돈으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다 6m짜리 그리팅맨을 세울 예정이라서다. 우르과이대사관은 부지를 물색 중이다. 작품 하나를 들어 봤다. 묵직하다. 한 개당 무게가 1.5㎏ 정도 한단다. 슬쩍 물어봤다. 알루미늄 주물이 아니라 플라스틱처럼 좀 싼 재료를 쓰면 자금 마련이 한결 쉽지 않을까. “아유, 그럴 순 없죠. 겸손하게 인사하는 작품이니까 받아들거나 세워놨을 때 겸손함의 무게감이 느껴져야죠. 그래서 20만원이 비싼 게 아니에요. 가격을 높여볼까 하다가 일반인들도 많이 참가하셨으면 해서 그렇게 정한 겁니다. 나중에 6m짜리 만들면 그분들 이름을 동상 발판에 다 새겨 드릴 겁니다.” 왜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했을까. “인사라는 게 인간 대 인간이 가장 겸손하게 접속하는 거잖아요. 전 지구적으로 인사를 건네보자는 거죠. 몬테비데오도 그래서 골랐습니다. 지구 상에서 한국과 정반대쪽에 있는 곳이니까요. 전 세계 분쟁 지역, 빈민가, 오지 같은 데 1000곳에다 저걸 다 세우는 게 목표입니다.” 가능할까. “안 그래도 주변에서 미쳤다 그래요. 하하하. 그래서 그리팅맨 파는 가게를 만들 겁니다. 계속 팔아서 그 돈으로 제작비를 대는 거죠.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인사하는 자세는 지극히 절제되어 있다. 뺨을 비벼대는 호들갑도,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당당함도 없다. 온몸을 일자로 만든 데다 온몸의 무게중심이 배꼽이 아닌 목에 있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거기다 수백 개의 그리팅맨이 쭉 도열해 있다 보니 경건함까지 배어 나온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르게 나도 신발 벗고 올라가 똑같이 인사해야 할 것만 같다. 절에서 볼 수 있는 천불상, 만불상 같은 게 떠오른다. “안 그래도 어떤 외국인 분은 현대적인 절이라고 감탄하시더군요. 사실 개인적으로 저런 배치를 좋아하지도 않고 갤러리에 어울리는 배치도 아니지만, 그 때문에 저렇게 세워뒀습니다.” 인물상을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아마 큰 조각상 가운데 인사하는 사람은 없을걸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광장 같은 곳에 들어선 조각상들은 대개 근엄한 얼굴에 위압적 태도를 하고 있다. 대형 조각상은 대개 국가와 민족의 승리나 영광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김일성 동상과 닮았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다시 만들기로 한 해프닝이 한 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예의, 우애, 소통, 공감을 나타내는 그런 동상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개 숙이는 각도도 중요하다. “90도 인사는 진정성이 없어 보이잖아요. 뻣뻣하지도, 가식적이지도 않은 각도를 찾다 15도로 정했죠. 저 각도 찾아내는 게 의외로 어렵습디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한국 미술의 세계 진출이라 하면 어렵고 추상적인 서양적 맥락의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말고 세계적인 작품은 오히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단순함이 좋다, 뜻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가회동 한옥을 구경하고 가던 사람들이 그리팅맨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서는 제 갈 길을 간다. (02)747-4670.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덩어리와 내면, 그리고 그림자

    덩어리와 내면, 그리고 그림자

    한창 작업에 물오를 40대 중반 나이에 요절한 조각가 전국광(1945~1990)의 20주기를 기념하는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 2관에서 열리는 ‘매스(mass)의 내면 - 전국광을 아십니까’다. 고 이병철 회장이 아끼는 작가였던 전국광은 조각가로서 가장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인 덩어리, 그러니까 ‘매스’의 문제에 천착했다. 그래서 미술관 1~3전시실 가운데 2층에 마련된 2전시실부터 보는 게 좋다.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남긴 각종 드로잉이나 간단한 메모 같은 것들을 모아뒀다. 매스를 밑바닥에서부터 재구성하기 위해 점으로 선을 구성하고, 이 선을 반복적으로 겹치고 쌓아 나가면서 2차원적인 ‘면’을 만들고, 이를 다시 3차원적인 ‘공간’으로 일으켜 세워 나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때문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작품 그 자체 못지않게 그 작품에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다. 그림자는 ‘덩어리’스러운 질감을 더 풍성하게 드러냄으로써 매스의 내면을 다룬 설치작품들을 돋보이게 한다. 1전시실과 전시장 외부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이 풍경을 적절히 드러낸다. 동시에 그 매스의 내면에 작가가 부여한 자연스러운 리듬감도 함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는 30일 오후 2시에는 전국광의 작품 세계를 두고 세미나도 열린다. 입장료 3000원. (02)737-8643.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신세계百 “애플처럼 라이프스타일 창조”

    신세계百 “애플처럼 라이프스타일 창조”

    “올해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81주년을 맞는다. 우리에겐 80을 빼고 첫 1년을 시작하는 해다.” 지난 5월 1일 이마트와 분리돼 새로운 출발을 다지고 있는 신세계백화점의 박건현 대표가 요즘 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그가 언급한 ‘신세계백화점 원년’의 밑그림은 외형적 성장에만 있지 않다. 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박 대표는 “이제 신세계백화점은 단순 소매 유통기업을 넘어 고객의 삶 전반에 걸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기업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회의에서 2020년까지 점포수 17개, 매출 15조원, 영업이익 1조 5000억원을 거두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됐다. 그러나 신세계에서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기업’이라는 다소 모호한(?) 목표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숫자로 표현된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업계 3위의 신세계백화점이 1위로 올라서기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경쟁업체처럼 “향후 몇 년 안에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내세우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다. 거창한 미래를 제시할 수 없는 신세계백화점이 기업 분할 석달째가 돼서야 경영전략회의를 연 것만 봐도 고민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2009년부터 신세계백화점을 맡아온 박 대표의 어깨에 힘을 실어준 것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이제 마켓셰어(시장점유율)가 아니라 라이프셰어의 시대다.”라는 정 부회장의 말은 신세계백화점이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정 부회장은 신세계가 벤치마킹할 대상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동종업계도 아닌 애플을 꼽았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보다 규모면에서 훨씬 작은 애플의 기기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실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는지에 대해 늘 설파해 왔다. 신세계백화점이 앞으로 진행할 신규 점포 및 신사업 진출은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사 점포가 없는 광역상권이나 핵심상권에 투자를 확대해 대형 점포를 지속적으로 늘려 전국적으로 17개 점포를 갖출 계획이다. 앞으로 출점하는 대다수의 점포는 현재 개발 중인 동대구점이나 의정부역사점처럼 엔터테인먼트와 쇼핑이 결합된 복합쇼핑몰이 될 전망이다. 현재 하남시에 건설 중인 부지면적 12만여㎡ 규모의 도심형 쇼핑몰도 역시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각 지역 상권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점포를 만든다는 ‘1번점 전략’에도 더욱 치중한다. 본점, 센텀시티, 경기점, 강남점, 영등포점, 광주점 등 주요 점포의 매장 규모를 대폭 넓혀 미술관, 문화홀 등 여가공간을 확대한다. 이와 함께 서비스, 상품력도 강화해 고객 만족이 큰 점포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복안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점포수를 늘리는 것보다 각 점포의 경쟁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2000억원 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 발견

    2000억원 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 발견

    최초 경매에 45파운드(약 7만 7000원)에 나온 ‘굴욕적 작품’이, 알고 보니 1억 2000만 파운드(약 2052억 원)의 가치를 지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유화로 그려진 이 그림은 ‘구세주’(Saviour of the World)라는 제목의 작품이며, 당초 다빈치의 제자가 그린 그림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세계 명작 전문가들, 특히 다빈치 그림 전문가 4명은 이 그림이 그의 제자가 그린 것이 아니라 다빈치의 그림이 확실하다는서약을 했으며, 이 작품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까지는 어떤 정보에 대해서도 함구할 것을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와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한 전문가인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마라니 교수는 “우리는 ‘구세주’ 작품과 관련해 어떤 정보도 발설할 수 없으며, 작품의 소유주도 이에 대해 매우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가능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작품이 다빈치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작품 속 머리 부분과 눈썹 등이 일부 훼손되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양호한 상태”라며 “지금까지 이 작품은 그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복제가 판을 쳤지만, 색감이나 붓터치 등이 가히 환상적으로, 다빈치의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로 그린 다빈치의 ‘구세주’는 500여 년 전에 완성됐지만, 17세기 영국의 국왕이던 찰스 1세가 처형당하면서 이 그림은 찰스 2세의 소유가 됐다. 이후 이 그림은 다빈치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오해받으며, 1958년 소더비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에 거래된다. 한 미술품 경매 담당자는 “이 그림이 경매시장에 등장하면 최소 1억2000만 파운드까지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이 그림은 올해 말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리는 다빈치 특별전에서 공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인사]

    ■국무총리실 ◇부이사관 전보 △공공갈등관리지원관 정현용◇서기관 전보△공공갈등관리팀장 손선미△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 정책조정팀장 김민△조세심판원 조사관 현재빈 ■교육과학기술부 ◇일반직 고위공무원 △국립과천과학관 전시연구단장 최은철△창원대 사무국장 김선옥△교과부 박필환△평생직업교육관 김영철△강원도 부교육감 박기용◇별정직 고위공무원△교원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김기남 ■행정안전부 ◇고위공무원 전보 △조직실장 김상인△경기도 행정1부지사 김성렬△제주도 행정부지사 김형선△감사관 유상수△재난안전실장실 재난안전관리관 송석두△정부청사관리소장 감종훈△중앙공무원교육원 기획부장 정윤기△강원도 기획관리실장 배진환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 승진·전보 △2012핵안보정상회의준비기획단 파견 박용철◇과장급 전보△홍보지원국 홍보콘텐츠기획관실 정책광고과장 윤종석△관광산업국 관광레저기획관 녹색관광과장 이경직△2012핵안보정상회의준비기획단 파견 권수진 ■고용노동부 ◇일반직 고위공무원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 안경덕◇별정직 고위공무원△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김양현◇국장급 직무대리△대변인 정지원◇과장급 전보△고용정책실 직업능력정책과장 김민석△감사관실 고객만족팀장 마성균△노동정책실 산재보상정책과장 김경윤△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장 김명철△중부지방고용노동청 강릉지청장 김수곤△부산지방고용노동청 부산북부지청장 이원두△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인천고용센터소장 김영중 ■통계청 ◇국장급 △호남지방통계청장 신승우◇과장급 전보△통계대행과장 윤석은△경제통계기획과장 최성욱 ■병무청 ◇과장급 전보 △감사담당관 최성원△현역입영과장 임중혁△서울지방병무청 징병관 박정환△대전충남지방병무청 〃 최은순 ■농촌진흥청 <경남도 농업기술원>△원장 최복경△기술지원국장 강양수<경기도 농업기술원>△연구개발부장 임재욱△기술보급〃 이상필 ■산림청 ◇부이사관 승진 △기획재정담당관 오기표△산림정책과장 최병암◇과장급 전보△비서관 박은식<과장>△운영지원 이현복△산림자원 이상익△산림경영소득 김형완△산불방지 남송희△치산복원 이명수△산림병해충 윤병현<산림인력개발원>△재해방지교육과장 이중락<지방산림청장>△중부 홍명세△서부 윤정수 ■식품의약품안전청 ◇신규임용 △기획조정관실 비상계획담당관 김선태◇전보(7월 4일자)△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제품연구부 의료기기연구과장 오현주△부산지방청 시험분석센터 수입식품분석과장 김형수 ■기상청 ◇고위공무원 승진 △부산지방기상청장 남재철◇3급 승진△총괄예보관 양진관△기상기술과장 김성균△기후정책〃 윤원태◇과장급 전보△국제협력담당관 안명환△수치모델개발과장 박훈△예보기술팀장 이정환△기상산업정책과장 김백조△정보통신기술〃 이동일△부산지방기상청 기후과장 남효원△안동기상대장 안용모△창원〃 조진대△청주〃 최기상△수원〃 허형재△제주지방기상청 예보팀장 구대영△국가기상위성센터 위성기획팀장 윤성득◇서기관 승진△부산지방기상청 예보과장 조서환△목포기상대장 정병석△대전지방기상청 예보과장 하창환△강원지방기상청 예보과장 이선기△제주지방기상청 기후팀장 고정석△기상레이더센터 레이더분석팀장 허복행△항공기상청 정보지원과장 조기현△정책지원팀 유상진△운영지원과 김영동△총괄예보관실 신동현△슈퍼컴퓨터운영과 연혁진△기후예측과 김현경◇과장급 신규 채용△감사담당관 이효선 ■부산시 ◇3급 전보 △감사관(개방형 직위) 조성호△문화체육관광국장 이갑준△북구 부구청장 요원 이철형◇행정4급 전보△여성정책담당관 조숙희△시의회사무처 전문위원 김정호<부구청장 요원>△부산진구 허종성△사하구 전복덕△연제구 박종철<과장>△경제정책 정진학△기업지원 이규환△창조도시기획 권정오△총무 성덕주△체육진흥 정권영△관광진흥 강희천△환경정책 이완호△자원순환 서혜숙<인재개발원>△원장 김윤일△교육운영과장 김숙자△교육지원〃 정완식<파견>△미 볼링그린주립대 이범철◇기술4급 전보△건축정책관 김영기△보건환경연구원장 김기곤△강서구 부구청장 요원 이광욱△낙동강사업본부 사업부장 이근희△국제산업물류도시개발단장 임경모<과장>△기간산업 서만석△도시재생 임기규<담당관>△하천관리 김종경△도시정비 곽영식△건축주택 한성근<건설본부>△토목시설부장 김판섭△건축시설〃 강신윤<국장 요원>△서구 황용태△동래구 양상열 ■충북도 ◇3급 △행정국장 박성수△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 조직위 파견 강호동△농정국장 박종섭△정책기획관 오진섭△자치연수원장 권영동◇4급△청원부군수 신찬인△보은〃 정한진△음성〃 송인헌△정책기획관실 박영선△법무통계담당관 박완수△자치연수원 교육운영과장 피의섭△북부출장소장 이용재△도로관리사업소장 신연식△산림환경연구〃 안광태△충주시 전원건△공보관 김진형△비서실장 이차영△의회사무처 정책복지전문위원 홍범회△〃 산업경제전문위원 송장섭△보건환경연구원장(개방형) 오용길<바이오밸리추진단>△단지개발과장 김용태△바이오산업〃 정인성<과장>△미래산업 김용국△여성정책 김영환△관광항공 정효진△치수방재 권봉억△자치행정 박은상△체육진흥 이성수△저출산고령화대책 정준영△식품의약품안전 권석규△일자리창출 김재영△농업정책 이진규△농산지원 김기원△문화예술 강성택△균형개발 이상헌△도로 정시영△보건정책 성국현 ■충남도 ◇2급 전보 △자치행정국 총무과(파견 대기) 박한규◇3급 전보△천안시 부시장 박윤근△의회사무처장 이성호△경제통상실장 남궁영△자치행정국장 권희태△문화체육관광〃 이성우△농수산〃 채호규◇4급 승진△지방공무원교육원 교수 강경원△백제문화단지관리사업소장 김순권△농업기술원 총무과장 이윤선△의회사무처 전문위원 신관수△아산시 오건환△경제통상실 기업지원과장 김정호◇4급 전보△홍보협력관 김돈곤△감사위원회 위원장 이완수△농수산국 농촌개발과장 염창선<직대>△지방공무원교육원장 조이현△서울사무소장 정동국△건설교통항만국 도로교통과장 조은하<부군수>△연기군 윤호익△서천군 김종화△태안군 이수연<경제통상실>△일자리경제정책과장 윤영우△전략산업〃 홍민표△국제통상〃 유병덕△투자입지〃 한치흠<의회사무처>△입법정책담당관 이두훈△전문위원 김주찬 최욱환<문화체육관광국>△문화예술과장 이상영△문화산업〃 황선만<자치행정국>△정보화지원과장 김기승△총무과 임헌용 황수철 한규성 황상용(이상 공로연수 파견) 박종구<지방공무원교육원>△총무과장 배동헌△교육운영〃 김세현<보건환경연구원>△원장 서우성△보건환경연구부장 인치경△유갑봉 ■국민권익위원회 △상임위원 박성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장 이한신△문화복지부장 강지훈△시각예술 책임심의위원 김찬동△다원예술·문화일반 〃 김윤희 ■한국전기안전공사 ◇본사 △경영지원처장 이기종△안전정책〃 박지현△전기안전기술교육원장 정기용△전기안전연구〃 김종훈△비서실장 한재진△예산〃 고성일△인력관리〃 한연수△성장동력본부장 임동훈◇사업소 <지역본부장>△서울 이상요△부산울산 송주용△대전충남 정재환△경기 변철균△충북 홍귀석△전북 김학용△경남 정찬호△제주 이은우<지사장>△서울동부 이상조△서울남부 이상목△부산동부 김기종△울산 박윤동△대구서부 김주철△구미칠곡 문이연△경주 박희만△천안아산 김정규△충남중부 최종수△보령청양 최덕기△전남남부 변석태△인천서부 유수현△경기중부 남정윤△경기서부 윤종식△이천여주 박영철△경기북동부 원대희△강원동부 김영선△충주음성 이경남△익산 정인덕△군산 이창환△경남북부 권기영△통영거제 장충섭△김해양산 이정규 ■예금보험공사 △보험정책부장 장건식△법무실장 이흥섭△정보시스템〃 서승성△재산조사〃 양태영△감사〃 김광의△특수자산TF팀장 정욱호△금융감독원 파견 김병만△홍보실장 정대영△대동은행·영남종금 파산재단 파견 전상오 ■서울도시철도공사 △고객서비스본부장 김성호 ■국민체육진흥공단 ◇실장급 전보 △감사실장 김윤수△기금관리〃 김광희△경주사업본부 고객만족실장 황용필△〃분당지점장 안경원△〃 경정훈련원장 이재효△체육과학연구원 정책개발연구실장 유지곤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보 △운영처장 이영석△시설〃 김영래△감사실장 박영덕△비서〃 윤덕구△재난안전부장 이재원△전략기획TF팀장 김두한△국립공원연구원장 권혁균<사무소장>△속리산 백상흠△내장산 안시영△내장산백암 박갑동△덕유산 정석원△오대산 박문규△주왕산 황정걸△다도해해상서부 박용규△소백산 이용민△월출산 정장훈◇승진△탐방지원처장 이임희△재정운용부장 조승익△녹색탐방〃 송동주△환경디자인〃 이수형△변산반도사무소장 서윤석 ■공무원연금공단 ◇부장 승진 △전략기획실 경영평가부장 박인선◇전보△융자사업실장 이기만△ 부산지부장 하광빈△전북〃 심재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통신정책연구그룹장 나성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중앙방송>△대표이사 김동섭<중앙일보> [중앙종합연구원 부소장]△경제연구소(논설위원 겸임) 김종수△중국연구소 한우덕△경영지원실장 제찬웅△중앙엠앤비부문 경영지원실장 박형우<중앙일보시사미디어>△경영지원실장 권능오 ■TV조선 △광고사업본부장(상무보급) 박혁규 ■스포츠월드 △생활경제부장(부국장 겸임) 배병만△연예문화〃 류근원 ■산은자산운용 ◇승진 △부사장 김영은
  • [김문이 만난사람] ‘가난한 인간’만찍은 원로 사진작가 최민식

    [김문이 만난사람] ‘가난한 인간’만찍은 원로 사진작가 최민식

    작은 사진기에 흑백필름을 넣어 어깨에 둘러메고 1950년 중반부터 조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사진기를 들이댔을 때 조리개를 통해 들어온 피사체는 다름 아닌 상처 입은 동족의 슬픈 얼굴이었다. 거리의 모퉁이에서 ‘호옥’ 하고 숨 한 번 쉬고 국숫발을 빨아 올리는 어린 여자 아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이중삼중 뼈 휘는 노동을 해야 하는 여인, 조국의 번영을 말하는 선거 벽보 밑에서 막 잠이 든 가난뱅이, 하루 종일 일 나간 부모를 기다리다가 해 질 녘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자선을 바라는 눈먼 걸인, 굵은 주름이 이마를 덮은 지친 노동자…. 원로 사진작가 최민식(83)씨가 쓴 사진 산문집 ‘종이 거울 속의 슬픈 얼굴’의 첫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러한 슬픈 모습들이 카메라 앵글을 통해 가슴을 두드리는 멍으로 전해져 왔기에 최씨는 단 한 번도 ‘인간, 가난한 사람의 범주’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하여 그가 찍은 사진에는 5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를 주제로 그동안 펴낸 사진집만 14권에 달하고 사진작가로는 보기 드물게 사진 에세이집을 8권이나 발간한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곧 9권째 사진 에세이집 ‘생각이 머무는 곳에 인생이 있다’를 출간할 예정이며 오는 10월 15권째 사진집을 발간하기 위해 한창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팔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어떻게 이런 열정이 나올 수 있을까.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28일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전화를 걸었더니 대연동 어디로 오라고 했다. 잠시 후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기다렸다. 까만색 모자를 쓰고 카메라를 둘러맨 노() 사진작가가 시내 거리를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걸어온다. 평생 그랬던 것처럼 본능적으로 피사체를 찾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선생님,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이 지역에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휴먼터치’라고 있어. 젊은이에서 칠순까지 모두 25명 정도 돼. 월 1회 모여서 사진 작업한 내용들을 평가하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야. 나는 자문 역할을 해주고 있어. 거기 막 갔다 오는 길이야.” 노 작가는 그러면서 “여기서 한 100m쯤 가면 우리 집인데 그리로 가지 뭐. 옛날 집이라 누추하지만.”이라고 했다.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하지만 시선은 습관처럼 지나가는 피사체를 응시한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악수한다. 이어 작은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과일가게 아저씨, 떡방앗간 주인이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시장 골목에 내리는 비는 다른 곳보다 정겨웠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대선배의 모습을 카메라에 분주히 담았다. 잠시 후 노 작가의 자택에 도착했다. 흔히 시내 변두리 골목에서 보았음 직한 아담하고 작은 1층 단독주택이었다. 노 작가의 서재 안으로 들어서자 베토벤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누가 그렸을까. 노 작가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내가 직접 그렸지. 먹화야.”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기야 그가 2년 동안 일본에서 미술 공부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베토벤 그림 옆에는 세계적 지휘자로 명성을 날렸던 레너드 번스타인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시선을 그쪽으로 옮기자 노 작가는 잠시 번스타인이 지휘했던 음악을 틀면서 “사진만 한다고 뭐가 되는 게 아니야. 음악도 알아야 하고 미술도 알아야 하고.”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서재(노 작가는 창고라고 했다)에 있는 책들을 잠시 살폈다. 철학, 미학, 사회학, 세계 각국의 사진집 등 정치와 경제 분야만 빼놓고 모든 분야의 책들이 꽂혀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이 책들을 다 읽었을까. “5년 전에 국가기록원과 약속을 했어. 내가 죽은 후에 이 책들을, 아니 이 창고에 있는 모든 자료들을 기록원에 기증하기로 말야. 내 눈과 손이 안 닿았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다들 애지중지 여기는 것들이지. 내가 즐겨 들었던 귀한 클래식 엘피판만 해도 1000장이 넘어. 50년 넘게 휴머니티만 찍은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알기로는 역대 대통령이나 추기경 외에 일반 개인의 자료가 기록원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처음이야.” 2000년에 받은 옥관문화훈장이 새삼 돋보였다. 서재에 있는 각종 서적은 1만여 권에 이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 인간을 주제로 한 책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그는 “이 창고 때문에 우리 집사람이 사는 공간이 좁아졌지.”라며 웃는다. 인터뷰를 하면서 노 작가의 눈동자가 나이에 비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눈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할 터. 그래서 비결을 물었다. “눈이 아직도 밝아. 5m 밖의 피사체는 선명하게 보이지. 간판의 전화번호, 사람의 표정까지 다 읽을 수 있어. 내 나이가 84살이거든, 동료들은 다 갔어. 다들 사진을 못 찍어. 나는 선천적으로 타고났나 봐.(웃음)” 별도로 운동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그저 시간만 되면 사진 찍고 원고 쓰고 하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요즘에는 카메라 메고 어디로 다닐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다. 주변 산동네, 자갈치 시장, 부전시장 등을 비롯해 밀양, 언양, 청도까지 가서 시장과 농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가까운 곳은 혼자 걷고, 먼 곳은 가끔 후배들과 함께 버스나 기차를 타고 동행한다. “그냥 가난한 사람을 찍는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것은 아니야. 체험이 있어야 해. 아니면 책을 읽어서 간접 체험이라도 쌓아야 해. 또 역사를 알아야 하고…. 사진은 리얼리즘이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음으로 찍어야 해. 요즘에는 이런 것들을 외면한 채 그저 출품만 염두에 두고 쉽게 만들 생각만 하고 있지. 포토샵만 가르치고….” 이런 연유에서 노 작가는 지금도 대학 강단은 물론 도서관과 구청문화원 등에서 사진 예술과 기법, 마음의 자세 등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 틈틈이 지방 출장을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달 25일에는 동강사진미술관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노 작가에게 왜 50여 년 동안 가난한 사람만 찍었느냐고 물었다. “동정심이나 측은지심인 아닌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야. 고난과 시련을 겪는 인간으로서의 아픔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지.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사진 속에 담겨 있는 인물의 고통에 직면하게 했어. 이것은 비참하고 불쌍하다는 동정적 의미보다 인간이 누리고 있는 삶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아픔이기도 해.”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의무라고 생각한 데서 출발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의 경험도 깔려 있다. 12살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씨름을 하다가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되자 어린 최민식은 직접 소작농일까지 해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온 그는 품팔이, 공장생활, 지게꾼을 비롯해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그렇게 거리를 전전하다가 6·25전쟁 때 참전한 뒤 1955년 평소의 꿈인 화가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해 도쿄에 있는 중앙미술학원 야간부에 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사진집 ‘인간 가족’을 발견했다. 이 사진집은 2차대전 때 해군장교로 활약했던 사진작가이자 미술관 기획자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편집한 것으로 인간의 출생과 성장, 사랑 등의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돼 미술 공부를 포기하고 사진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1957년 가을 그는 중고 카메라 세 대와 부속품, 수십 권의 사진집을 구입해 밀항으로 부산에 도착했다. 몇 달 후 미국인 신부가 운영하는 자선회에서 사진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가 실기 테스트에 합격했다. 이후 사진의 주제를 ‘가난한 사람’으로 정하고 지금까지 ‘휴머니즘’에 천착해 왔다. 고충도 적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 때는 ‘가난한 사람’을 사진에 담는다고 해서 여러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지금의 노 작가에겐 어떤 꿈이 있을까. 아프리카 우간다 난민촌에 가서 그들의 아픔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이 일을 하고자 얼마 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찾아갔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아 섭섭한 마음으로 그냥 돌아서야 했다. 유니세프라는 완장이 있으면 안전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살아 생전 어떻게 해서든 우간다 난민촌에서 가서 그들의 모습을 기필코 담겠다고 강조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작가 최민식은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평남 진남포 군수공장 기능자 양성소에서 공부하며 공장 일을 했다. 1945년 광복 이후 서울에서 식당 일과 넝마주이, 지게꾼 생활을 했다. 6·25전쟁 때에는 참전해 청진까지 북진했다. 1955년 일본으로 밀항해 도쿄 중앙미술학원에서 공부했다. 1957년 귀국한 후 독학으로 사진 연구에 몰두하면서 인간을 소재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62년 대만국제사진전에서 처음으로 입선한 후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20여 개국 사진 공모전에서 220점이 입상 및 입선됐다. 아울러 1970년부터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7개국에서 15회 이상 개인 초청전을 가지며 해외에도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68년 개인 사진집 ‘인간’ 1집을 낸 후 지금까지 14집을 냈다. 사진집 외에 산문집 ‘종이 거울 속의 슬픈 얼굴’, 사진 에세이집 ‘사람은 무엇으로 가는가’를 펴냈다. 이 밖에 ‘리얼리즘 사진의 사상’ ‘작품 사진 연구’ ‘세계 걸작 사진 연구’ 등 다수가 있다. 주요 수상으로 부산시 문화상(1967), 예술문화대상(1987), 옥관문화훈장(2000), 동강사진상(2005), 국민포장(2008), 부산문화대상(2009) 등 1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 在美 미디어 작가 김신일 ‘제3의 아름다움’展

    在美 미디어 작가 김신일 ‘제3의 아름다움’展

    ‘간취’(看取). 떠올랐던 단어다. 작가가 그렇게 던져 놓았고, 관람객이 그렇데 집어들 것만 같다. 눈을 손 삼아 움켜쥐고(看) 귀를 돋우어 들은 것(取)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어 보인다. 24일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개막한 재미 미디어 작가 김신일(40)의 ‘제3의 아름다움’전 얘기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김 작가만의 기법인 압인(押印) ‘초상화’. 압인 드로잉이란 종이 등을 도구로 눌러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부분을 문자나 형상으로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종이 등 눌러 형태 만들고 조명… ‘압인 드로잉’ 기법 활용 김 작가는 물감을 다 써버린 볼펜 같은 것을 도구 삼아 일일이 드로잉하듯 눌러 만들어 뒀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빛. 빛이 드로잉을 통과하면서 묘한 형상을 만들어 낸다. 언뜻 보면 이게 뭔가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머리 꽤나 복잡하게 굴리는 사람의 축 처진 어깨선이 고스란히 눈으로 빨려 들어온다. “흔히 망점이라고 하죠. 돋보기에 빛을 투과시키면 초점이 모이는 부분. 그림자란 게 원래는 까만데 망점만은 하얗습니다. 그 햐안 부분을 모아둔 게 저 머릿속이지요.” 전시장 안쪽에 자리 잡은 ‘책상 위의 정물’ 1·2·3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러저리 위치를 바꾸어 봤지만 별 차이는 없다. 조명을 그렇게 배치했기 때문이다. 일정한 방향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로 조명이 들이쳐야 음영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빛 자체에도 획과 농담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동양화적인 느낌까지 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개념은 전시장 중간 듬성듬성 놓여진 문자조각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낱개의 알파벳을 만들어다 붙인 것인데 어떤 글자로 무슨 문장을 만들었는지 맞춰보면 된다. ●“그림자 가운데 망점은 하얘… 작품 ‘초상’에 하얀 그림자 활용” 그 뒤편엔 다른 알파벳 덩어리도 있다. 아예 ‘눈높이, 분할된 시야, 개체’(Eye Level, Divided Sight, Individuality)라는 말의 알파벳을 뒤섞어 놨다. 분할된(divided) 시야이지만 분할되지 않는(in-divided) 개체의 아이러니를 조형적으로 제시한 셈. 살짝 기분 나빠진다. 뜻은 다 좋다 쳐도 왜 하필 영어만 잔뜩 늘어 놨을까. “지금 미국에서 활동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글보다 더 낯선 알파벳으로 이런 조형을 만들었을 때 어떤 느낌을 줄까 궁금해졌어요. 미국 사람에게는 되레 한글로 이런 걸 만들어 보여주고 싶어요.” 김 작가는 1999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1년 미국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압인드로잉과 문자조각을 한데 합쳐 놓은 듯한 벽면의 문구. “When....are seen in the light of emptiness”라고 전시장 한쪽 구석에 새겨져 있다. ‘뭔가가 텅빔의 빛 속에서 보여질 때’ 정도로 읽힌다. 그런데 이게 거꾸로 찍혀 있는 바람에 전시장 바깥의 어떤 존재가 이 문구를 들여다보는 관람객을 관람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주어 자리는 무수하게 많은 존재가 들어찼다가 지워져 버린 듯 글자의 흔적이 어지러이 남겨져 있다. 그 숱한 주어들은 텅빈 공간의 빛 속에서 사라져 버린 듯 하다. 초월해 버렸을까, 견딜 수 없었을까. 훅 풍겨오는 것은 불교적 냄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회 오빠’였는데 자꾸 작업을 하다보니 불교 쪽으로 넘어가더군요.” 왜 그럴까. “어떤 범주화를 하고, 그래서 구분 짓고 분별하는 것을 한번 흔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럼 범주화하고 분별 짓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언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언어 자체를 비틀어보고 싶었어요.” ‘정오의 시간’ 운운한 니체가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어떻게 해석하든 “개인의 너무 사사로운 경험을 다루는 최근의 개념미술 경향과는 궤도를 달리 한다(최열 학예실장).”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을 듯.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면 상설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도 좋다. 김종영 선생의 채색목조 작품들을 ‘여름에서 가을 사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해 뒀는데 전시장 배경 색깔을 연두색으로 해 뒀다. 보통 하얀색인 전시장에 비해 훨씬 시원한 감이 든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 나왔던 독고진의 집이 바로 김종영미술관이다. 건물만 봐도 눈이 시원해진다. 김신일전은 다음 달 28일까지다. (02)3217-648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클럽데이의 부활] “경쟁력 있는 문화아이콘” vs “포장된 유흥… 그들만의 퇴폐”

    [클럽데이의 부활] “경쟁력 있는 문화아이콘” vs “포장된 유흥… 그들만의 퇴폐”

    ‘클럽데이’ 부활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클럽문화가 ‘홍대 앞’으로 통칭되는 서울 서교동 일대를 떠올리는 열쇠 말인 동시에 서울의 문화 아이콘으로 보는 긍정론이 우선 존재한다. 하지만 인디음악의 인큐베이터였던 라이브클럽들이 발을 빼면서 자칫 ‘그들만의 축제’로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럴 듯하게 포장된 유흥 문화에 불과하다는 냉소 또한 뿌리 깊다. 홍대 클럽문화가 주목받은 것은 강남, 이태원 등 서울의 다른 곳은 물론 서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성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록 밴드 공연 위주의 라이브클럽들이 먼저 홍대에 자리 잡았다. 당시만 해도 라이브클럽은 2인 이상의 동시 연주를 금지하는 식품위생법의 적용을 받아 툭하면 영업 정지를 당했다. 클럽 관계자들과 문화 예술인들이 합법화 투쟁을 벌인 끝에 1999년 불법 딱지를 뗐다. 신촌이 일찌감치 유흥가로 변모한 것과 달리 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 주차장 거리에 이르는 도로변에는 화랑과 미술학원, 카페가 모여들면서 ‘피카소 거리’란 애칭이 붙었다. 1993년 ‘발전소’, 1995년 ‘드럭’ 등 홍대 출신들이 만든 전위적 인테리어와 독특한 분위기의 클럽이 입소문을 타면서 패션, 음악, 문학, 건축, 미술 분야의 재기발랄한 신예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하지만 2001년 3월 m1, nb 등 4개 클럽으로 단출하게 클럽데이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클럽 문화에 대한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일부 클럽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엑스터시 등 환각제를 복용한 사건을 놓고 언론에서 탈선과 범죄의 온상으로 몰아간 탓이 컸다. 클럽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결정적 계기 중의 하나는 2002년 월드컵 축구 대회였다. 2004년부터 사운드데이란 이름으로 독자적인 행사를 열어온 라이브클럽 9곳이 2007년 12월 클럽데이와 합쳐지면서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는 1만여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해방구로 변했다. ‘클러버’가 아닌 ‘몸치’도 부담 없이 홍대를 찾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여행·문화 정보 사이트 CNN GO는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인 50가지 이유’ 중 하나로 홍대 문화를 꼽았다. 서울시도 클럽데이를 ‘서울 테마별 관광 코스 30선’에 포함시켰다. 장양숙 클럽문화협회 총무는 “클럽데이는 홍대뿐 아니라 서울의 상징적 행사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올 1월 중단된 이후 홍대 거리가 활력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월드컵을 전후로 외부 상업 자본이 빠르게 침투하면서 홍대의 문화 지형도도 바뀌었다. 대형 클럽들이 득세하면서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나 실험 예술가, 출판사 등은 당인리발전소 부근과 망원동, 광흥창역, 문래동 등으로 밀려났다. 클럽데이가 번창하면서 역설적으로 클럽들의 독창성이 사라지고 청년 하위 문화를 일궈 온 홍대의 문화 예술인들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부비부비’라는 속어로 상징되는 선정성 논란과 미성년자 출입, 잦은 폭력·폭행 사고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최근 홍대의 한 클럽에서 “‘짝짓기’에 성공하는 커플에게 모텔 숙박권을 주겠다.”고 공지했다가 취소하는 등 볼썽사나운 이벤트를 하는 것도 클럽문화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부추긴다. 홍대의 문화 정보를 다루는 월간지 ‘스트리트 H’의 정지연 편집장은 “1990년대 홍대의 록카페는 대안적·전위적 성격이 있었고 ‘수질 관리’나 연령 제한이 없는 열린 공간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부비부비’가 번지고 클럽이 대형화되면서 문화가 아닌 유흥의 성격이 짙어졌다.”면서 “클럽데이 수익금 분배 방식이 종전 n분의1에서 (기여도 등을 감안한) 차등 분배로 바뀌면 자본의 논리가 강해져 대형화, 상업화, 획일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과거 클럽데이는 단순히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이곳의 자생적인 인디 문화와 창조적인 분위기가 결합돼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라면서 “5개월 만에 부활한 클럽데이가 이전과 달리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경쟁사회의 구조를 답습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용어 클릭] ●클럽데이 & 클러버 한 장의 티켓으로 홍익대 앞 주요 클럽들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날이 클럽데이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이다. 2001년 3월 30일 4개의 테크노 클럽이 처음 시작했다. 클럽을 정기적으로 돌아다니며 클럽문화를 즐기는 사람을 클러버라고 한다. 클럽데이의 최초 행사 이름도 ‘클러버들이 하나 되는 날’(Clubbers’ Harmony)이었다.
  • [현장 행정] 목요일엔 가슴 뛴다는 이 남자

    [현장 행정] 목요일엔 가슴 뛴다는 이 남자

    “아파트 놀이터 시설기준을 지난 1월부터 소급 적용해 여기에 맞추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창동 아파트 주민 A씨) “창동역 주변이 너무 지저분하고, 노점이나 포장마차에서 버리는 음식물로 인한 악취와 위생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 주세요.”(아파트 주민 B씨) “구에서 600만원을 지원받아 노인정에 안마기 두대를 놓아주니까 자금이 바닥이 났어요. 줄넘기 강사를 구에서 연결해 주세요.”(아파트 주민 C씨) 지난 16일 창동 주공3단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이동진 도봉구청장과 ‘건강한 생활터 만들기 사업’ 운영자 30여명 사이에 나온 이야기다. 올해 네 번째 ‘주민과 함께하는 목요 데이트’였지만 이 구청장은 수요일만 되면 가슴이 뛴단다. 짧은 만남이라 뾰쪽한 대책을 내놓지 못해도 주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 구청장은 창동역 주변 포장마차와 관련, 심각한 표정으로 “창동민자역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나타난 문제다. 나도 답답해서 코레일 허준영 사장을 만났다. 코레일이 집을 지어 들어오는 것이니 속도를 내달라고 부탁했는데 최근 시행사 관계자가 두 명이나 구속되면서 다시 답보 상태에 빠졌다. 노점상 문제는 원래 민자역사의 설계를 약간 변경하도록 유도해 민자역사 내로 흡수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고 답했다. 또 그는 “도봉산 노점상을 철거하려고 했더니 전국 노점상연합회 등에서 2000명이 운집했다.”면서 “노점상을 모두 없애는 게 능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서울시와 협조해 해결점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놀이터와 관련해서는 “우리에겐 규정을 완화할 권한이 없다.”면서 “다만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이니, 다각도로 국회나 정부 등에 문의하면서 해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줄넘기 강사와 관련해 이 구청장은 씩 웃으면서 “건강공동체를 만들라고 준 지원금을 기구를 사는 데 한꺼번에 털어 넣으면 안 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일단 생활체육과 과장님에게 손을 쓰도록 일러놓겠다.”고 덧붙였다.이어 구청 지하 체력단련실을 오후 9시까지 개방해 달라거나 다른 구민이면서도 창동민자역사에 박차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이 구청장은 시종일관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도봉구가 현재 떠안고 있는 주요 과제는 광역급행철도(GTX)와 연계해 노후화한 국철 1호선 경원선을 지하화하는 문제다. 지난 3일에는 이 구청장 주동으로 김성환 노원구청장,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안병용 의정부 시장 등이 모여 GTX 제3노선과 경원선 지하화 병행을 위한 협약도 체결했다. 이 구청장은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인 장광근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힘을 보태고 있어 실현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최근엔 둘리미술관 현상설계 공모작을 발표, 구청 로비에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이 구청장은 “원작권을 다투는 경기 부천시와 선의의 경쟁을 하며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北 위폐·마약유통說 사실로

    北 위폐·마약유통說 사실로

    북한 사회내 범죄 상황과 유형별 처벌지침이 담긴 문서가 공개됐다. 탈북자 구출사업을 하는 갈렙선교회는 2009년 6월 당시 북한의 인민보안성(현 인민보안부) 출판사가 발간한 것으로 돼 있는 791쪽 분량의 ‘법투쟁부문 일군들을 위한 참고서’를 19일 공개했다. 참고서 머리말에는 ‘이 도서는 처음으로 출판된 것이며 인민보안사업 과정에서 실재한 사건, 사정들과 있을 수 있는 정황에 기초했다’고 적혀 있다. 참고서에는 인민보안서 일꾼들이 시장 판매금지 품목을 단속, 물건을 압수하자 주민 20여명이 몰려가 당국의 책상을 뒤엎고 의자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린 사례가 소개돼 있다. 주민들이 당국의 통제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부분이다. 또 한 미술원이 1000원권 화폐 100장을 위조해 유통시키거나 휘발유 교환권을 위조했다는 사건도 들어있다. 마약 유통 문제도 실려있다. 약학대학 한 교원이 자기집에서 마약생산 원료를 구입해 ‘빙두’ 혹은 ‘아이스’로 불리는 히로뽕류 마약 500g을 만들어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거창한 것보다 나누고 사는 이야기 담고 싶어”

    “거창한 것보다 나누고 사는 이야기 담고 싶어”

    “언제든 잡혀갈 생각을 했죠. 아니나 다를까 좀 있으니까 종로서 정보과 형사들이 전시장 주변을 돌아다니더군요. 올 게 왔구나 싶어서 기다리는데, 웬걸, 잡아가질 않아요. 왜 그런고 했더니 ‘사람들이 이렇게 줄까지 서서 보는 작가를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잡아가 봐라. 김지하처럼 오히려 작가를 영웅으로 만들어준다’는 얘기가 들어간 거죠. 전시가 끝난 뒤 가택수색 한 번 하곤 그냥 내버려둡디다. 허허” 판화작가 이철수(57). 1981년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열었던 첫 전시의 기억을 뿌연 담배연기와 함께 뿜어냈다. “부작용도 있었어요. 촌놈 초짜가 너무 인기를 끈 거예요. 줄을 서서 보고, 작품이 다 팔려 나가고, 사람들이 너무 몰려 저녁엔 전시장 문도 못 닫고, 그 때문에 다음 전시 준비하던 작가가 항의하고…. 전시란 게 다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하다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하하하.” 30년 만에 관훈갤러리로 돌아왔다. ‘목판화 30년 기획초대전-새는 온 몸으로 난다’를 들고서다. 전시기간은 오는 22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30년 인생을 113점의 작품에 추려 넣었다. 이 가운데 55점은 2005년 이후 만든 최근작이다. 작품은 간결하고 힘이 있다. 글까지 넣어 이해하기도 쉽다. 그만큼 대중적이다. 어쩌면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판화 자체보다 대화였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 ‘착하게 사는 게 좋을 걸’, ‘나누고 사는 게 좋을 걸’ 이런 거요. 그렇게 작품을 해 놓고 난 그렇게 살고 있나 자문해 봅니다. 그래서 작품 속 인물들에게 그런 표정을 넣어요. 작품 속 얼굴이 제 얼굴인 셈이지요. 족쇄 같아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덕에 내가 이만큼이나마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30년 결산인지라 작품은 다양하게 섞었다. “1970년대 말에 고민했던 게, 참여문학은 많은데 참여미술은 왜 없을까였어요. 아무도 없다면 나라도 하자 했지요. 판화라는 게 일종의 인쇄복제술이잖아요. 데모하는 데 딱 어울리기도 하고, 쉽게 나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장르의 존재방식 자체가 가장 민주적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사실 지금 와서 보면 거칠고 선동적인 작품이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못난 거, 마음에 안드는 거는 많이 숨겼는데 그때는 시절이 그랬으니 그 시절만의 느낌을 줄 수 있는 것들이라 남겨 놓았습니다.” 그가 대학을 안 나온 사실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제도권 교육을 거부했다는 둥, 데모하다가 ‘잘린’ 게 아니냐는 둥.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간단했다. 원래 수유리 입시미술 학원가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미술학도였단다. 학원들이 ‘공짜로 학원 다니게 해 줄 테니 대신 다른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고 제안했을 정도였다고. 그런데 서울대 미대에 지원했다가 뚝 떨어졌다. 재수할 집안형편이 못돼 군대에 갔다. 말년 병장 때 유행성출혈열에 걸렸다. 눈, 코, 입으로 피가 쏟아져 정말 죽는구나 싶었단다. “내놓고 떠들 얘기는 아니지만” 그 뒤 몸을 추스르느라 대학 갈 생각을 못했던 것뿐이라고. 최근작들은 어떨까. “밥해 주는 엄마 마음이에요. 미학, 이런 어려운 말은 모르고. 그냥 덜 심심하게, 간 잘 맞춰서 먹을 만하게 해 줘야 할 텐데, 그 생각뿐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내세우고 싶은 작품은 독수리예요. 그전 작품들이 선에 힘을 실었다면, 이번엔 사진처럼 보이는 세밀한 묘사를 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붓으로 그린 것처럼 번져나간 느낌을 연출해 보고 싶었어요. 독수리가 날아가는 힘, 그걸 해 보고 싶어요.” 제목은 ‘새는 온 몸으로 난다’이다. 고(故) 리영희 선생이 소개해 널리 알려진 말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에 대한 나름의 수정 작업이다. 여기엔 작업 변화에 대한 이유도 담겨 있다. 그는 1989년 독일 순회전 뒤 민중미술적 성향과 이별했다. “넌 정체가 뭐냐, 좌냐 우냐, 이런 말 하도 많이 들어서. 그 질문에 대해 제가 준비한 답이에요. 이념이니 국경이니 의미가 없다는 세상인데 왜 그런 걸 가지고 아직도 싸우나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온몸으로 육박하는 존재의 실체가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런 화두를 던져 보고 싶었어요.” 퍼드덕거리는 날개만 보지 말고 쭉 밀고 나가는 몸통을 보자는 얘기다. 그런데 판화의 시대는 이제 가버린 것은 아닐까. “고민 중이에요. 뭔가 마무리를 잘해야 하는데…. 그래서 디지털 프린트로 만들어 봤어요. 판화라는 게 속성상 사이즈에 항상 제한받다 보니까 디지털 프린트로 하면 크기를 확 키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디지털 프린트는 아직 판화로 인정이 안 된대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시뿐 아니라 작품까지 정리한 책 ‘이철수-나무에 새긴 마음’(컬쳐북스 펴냄)도 나왔다. 한마디 덧붙인다. “내가 참 복이 많구나 싶어요. 30년동안 이 짓을 할 수 있었고, 30년 했다고 전시하자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 책 내자는 사람도 있으니. 큰 복이죠. 허허.”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그림 통해 꿈과 희망 주며 살고 싶은데…”

    “그림 통해 꿈과 희망 주며 살고 싶은데…”

    경남 창원의 명곡교회에서는 지난 11일부터 ‘못다한 이야기’라는 소박한 그림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지적장애 3급인 노태준(29)씨. 2009년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부터 ‘지적장애인 청년화가’로 알려진 주인공이다. 그의 이번 전시회가 특별한 것은, 어쩌면 생애 마지막 전시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폐암 4기 판정… 병세 급격히 악화 ‘노씨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가족들은 애써 그에게 이번 전시회를 마련해 주었다. 노씨가 지난해 6월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던 것.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화가가 되겠다던 노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상심 속에 하루하루를 지내던 가족들은 급기야 지난 4월 주치의로부터 ‘길어야 2개월’이라는 선고를 전해 들었다. 그런 가운데 최근 들어 노씨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가족들은 그가 그려 놓은 작품 30여점을 모아 부랴부랴 전시회를 열었다. 급하게 전시회를 준비했으나 장소가 마땅찮아 노씨가 다니던 교회를 전시장으로 삼았다. 작품 팸플릿도 그림과 안내문을 실은 간단한 엽서로 대체했다. 노씨가 처음 붓을 잡은 것은 고등학교 때. 미술을 전공한 교회 지인의 딸로부터 처음 그림을 배웠다. 주변에서는 “지적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세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며 그를 격려했다. 그 후 2006년부터 노충현 화백으로부터 그림을 배우며 유화와 드로잉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지적장애인 청년화가’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9년 첫 개인전 ‘하느님이 채우신 그림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회는 기독교와 풍경을 주제로 한 유화와 드로잉으로 구성됐다. 들판에서 기도하고 있는 예수를 그린 ‘광야의 기도’와 베네치아의 풍경을 담은 ‘물의 도시’가 가족들이 꼽는 대표작. 노씨는 힘든 암투병 기간 동안 그림을 5점밖에 그리지 못했다. 노씨의 어머니 최영혜(56)씨는 “암투병하느라 더 많은 그림을 그리지 못해 아들이 무척 아쉬워한다.”고 전했다. ●‘광야의 기도’ 등 30여점 선보여 안타깝게도 생애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전시회에 그는 한 번밖에 가 보지 못했다. 암세포가 온몸으로 전이돼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고열에 시달리는가 하면 호흡도 점차 가빠지고 있다. 가족들이 부를 때야 겨우 의식을 차리고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병상의 노씨는 가족들에게 “하느님이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재능을 주셨기 때문에 전시회도 열 수 있는 것”이라면서 “찾아 주는 분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어머니 최씨는 “아들이 투병 중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美·中 냉전 종식 설계자’ 헨리 키신저 “G2, 사이버 데탕트 필요”

    “중국과 미국 이제 해킹에 대한 데탕트가 필요하다.” 미·중 사이버 전쟁이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미·중 냉전을 종식시켜 ‘미·중 관계 정상화의 설계자’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88) 전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에는 해킹 전쟁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휴전과 공존을 제안했다. ●해킹戰 심각성 지적… 공존 제안 키신저 전 장관은 14일(현지시간) “미·중이 사이버 공격과 스파이 행위를 제한하기 위해 (고위급에 의한) 전반적인 틀에서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정보 제공업체 톰슨 로이터가 주최한 뉴욕행사에서 “(사이버 공격을) 사례별로 하나하나 대응하면 고소와 맞고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양국이 전반적인 틀에서 규제를 합의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미·중 모두 특별한 스파이행위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면서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 놓고 중국과 토론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미국 관리들과 싱크탱크, 록히드 마틴 같은 방산업체, 상원, 씨티그룹 등 기업 및 언론에 대한 해킹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중국인 민주화 운동가, 티베트 망명자 등의 구글 지메일(Gmail)을 해킹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최근 미·중 외교 관계사를 정리한 책 ‘중국에 관해’(On China)를 펴낸 키신저는 미국이 중국과 좀 더 가까운 관계를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존 헌츠먼 전 중국 주재 미국대사는 이 자리에서 “일부 특정영역에 대해선 미·중 양측이 레드 라인(금지선)을 설정해 이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美·中 토론으로 문제 해결해야” 한편 지난 4월 미국은 양국 ‘인권대화’ 때 온라인 청원 인터넷 사이트(Change.org)가 중국에 의해 해킹된 것과 관련해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이트는 반체제 인사이자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석방을 촉구해 왔다. 이 사이트는 세계 각국의 미술관장들이 석방을 촉구하는 청원을 한 이후 서명자가 14만명을 넘어섰으나 지난 4월 이후 디도스(DDoS) 공격을 받아 장애를 일으켰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저변 확대랍시고 마구잡이 변형한 한복은 안되지요”

    “저변 확대랍시고 마구잡이 변형한 한복은 안되지요”

    오는 10월 3일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한복 패션쇼가 열린다.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패션쇼를 여는 주인공은 28년간 한복 디자이너의 외길을 걸어온 김혜순(54)씨. 김씨는 오는 17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뉴욕 패션쇼’를 미리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에서 여는 쇼는 그에게 한복을 소개한 외삼촌 허영(1947~2000) 선생의 10주기 추모 의미도 담았다. ●18세기의 한복 충실히 재현해 한복 ‘붐’ 패션쇼 준비로 분주한 김씨를 지난 8일 서울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아직도 외삼촌의 인형에 새 한복을 지어 입히고 있었다. “저에게 한복 디자이너의 길을 열어준 분이 바로 외삼촌입니다.” 허영은 KBS 연기자 출신으로 전통인형작가와 한복연구가로 활동했다. 김씨의 작업실에 전시된 허영의 한복 인형은 고운 아미와 섬세한 연지 화장이 살아있는 미인의 모습이다. “나는 인형에게 한복을 입히지만 너는 움직이는 사람에게 한복을 입혀라.”라는 외삼촌의 한마디가 그를 한복의 세계로 이끌었단다. ‘김혜순 한복’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가장 큰 계기는 2006년 방송된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 ‘황진이’였다. 당시 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화려한 한복 디자인(작은사진)은 지금까지 아이들의 돌 한복에 사용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커다란 붉은 꽃이 박히거나 서양의 드레스처럼 속이 비치는 저고리 등은 우리 한복에도 저런 디자인이 있었나 하는 반응을 끌어냈다. “모두 18세기 말의 옷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라는 게 김씨의 거듭된 설명이다. ●패션쇼 모델은 송일국·채시라·윤석화 화제를 뉴욕 패션쇼로 돌렸다. 지난해 그는 책 ‘왕의 복식’을 출간했다. 실제로 왕이 입었던 옷을 보고 다시 만들어서 소개한, 조선 왕실 의복의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조선 왕의 행렬을 재현한 초대형 한복 패션쇼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를 준비하게 됐다고. 그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복식과학재단의 최인순 이사장이 쇼를 기획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후원한다. 패션쇼가 끝나면 ‘왕의 수라’란 제목으로 한식이 제공되어 전통적인 옷과 음식을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패션쇼 모델로 왕은 송일국, 왕비는 채시라, 왕의 어머니는 윤석화가 나선다. 뉴욕 패션쇼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반기문 UN 사무총장, 한국계 미국 배우 샌드라 오, 미국 프로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 미국에서 활동한 배우 김윤진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 뉴욕의 유명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는 한복을 변형한 드레스 패션쇼를 열어 큰 화제를 모았다. 이 패션쇼를 봤다는 김씨는 “큰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가야 할 길이 겁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갓을 변형한 검은색 모자를 쓴 백인 여성 모델의 모습이 한편으로 우스꽝스럽다는 반응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똑같은 걸 보더라도 해석이 다르구나. 우리 옷을 보고 어떤 생각으로 저런 옷을 만들었을까. 전통에 안주해서도 안 되지만 생각 없이 변화를 줬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뉴욕 유명 디자이너 ‘변형한복’ 보고 책임감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씨가 한복을 입고 신라호텔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일도 그에게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줬다. “신라호텔에서 열린 도올 김용옥 선생의 자제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신라호텔 사장을 만났는데 한복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름이 같아 저를 이혜순씨로 착각한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우리 옷을 입고 갔는데 쫓겨났다는 현실 앞에서 한복하는 사람으로서 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그가 한복을 통해 꿈꾸는 한류는 어떤 것일까. “옷에는 그 나라의 정신이 부여되어 있죠. 우리가 싫어하지 않으면서 많이 입고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저변 확대랍시고 아무렇게나 입는 것은 반대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대통령 취임 축하연에 입고 나온 황금색 한복을 만들었던 김씨는 정상 외교에서 더 자주 한복을 볼 수 있길 바랐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정상외교에서 한복 더 자주 봤으면…”

    ”정상외교에서 한복 더 자주 봤으면…”

     오는 10월 3일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한복 패션쇼가 열린다.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패션쇼를 여는 주인공은 28년간 한복 디자이너의 외길을 걸어온 김혜순(54)씨. 김씨는 오는 17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뉴욕 패션쇼’를 미리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에서 여는 쇼는 그에게 한복을 소개한 외삼촌 허영(1947~2000) 선생의 10주기 추모 의미도 담았다.   ‘황진이’ 하지원·김윤옥 여사 한복 디자인  패션쇼 준비로 분주한 김씨를 지난 8일 서울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아직도 외삼촌의 인형에 새 한복을 지어 입히고 있었다. “저에게 한복 디자이너의 길을 열어준 분이 바로 외삼촌입니다.”  허영은 KBS 연기자 출신으로 전통인형작가와 한복연구가로 활동했다. 김씨의 작업실에 전시된 허영의 한복 인형은 고운 아미와 섬세한 연지 화장이 살아있는 미인의 모습이다. “나는 인형에게 한복을 입히지만 너는 움직이는 사람에게 한복을 입혀라.”라는 외삼촌의 한마디가 그를 한복의 세계로 이끌었단다.  ‘김혜순 한복’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가장 큰 계기는 2006년 방송된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 ‘황진이’였다. 당시 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화려한 한복 디자인은 지금까지 아이들의 돌 한복에 사용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커다란 붉은 꽃이 박히거나 서양의 드레스처럼 속이 비치는 저고리 등은 우리 한복에도 저런 디자인이 있었나 하는 반응을 끌어냈다. “모두 18세기 말의 옷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라는 게 김씨의 거듭된 설명이다.   패션쇼 모델은 송일국·채시라·윤석화  화제를 뉴욕 패션쇼로 돌렸다. 지난해 그는 책 ‘왕의 복식’을 출간했다. 실제로 왕이 입었던 옷을 보고 다시 만들어서 소개한, 조선 왕실 의복의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조선 왕의 행렬을 재현한 초대형 한복 패션쇼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를 준비하게 됐다고. 그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복식과학재단의 최인순 이사장이 쇼를 기획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후원한다.  패션쇼가 끝나면 ‘왕의 수라’란 제목으로 한식이 제공되어 전통적인 옷과 음식을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패션쇼 모델로 왕은 송일국, 왕비는 채시라, 왕의 어머니는 윤석화가 나선다. 뉴욕 패션쇼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반기문 UN 사무총장, 한국계 미국 배우 샌드라 오, 미국 프로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 미국에서 활동한 배우 김윤진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 뉴욕의 유명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는 한복을 변형한 드레스 패션쇼를 열어 큰 화제를 모았다. 이 패션쇼를 봤다는 김씨는 “큰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한복 디자이너로서 가야 할 길이 겁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갓을 변형한 검은색 모자를 쓴 백인 여성 모델의 모습이 한편으로 우스꽝스럽다는 반응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똑같은 걸 보더라도 해석이 다르구나. 우리 옷을 보고 어떤 생각으로 저런 옷을 만들었을까. 전통에 안주해서도 안 되지만 생각 없이 변화를 줬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호텔서 한복 쫓겨나는 현실에 책임감 더 생겨”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씨가 한복을 입고 신라호텔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일도 그에게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줬다. “신라호텔에서 열린 도올 김용옥 선생의 자제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을 만났는데 한복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름이 같아 저를 이혜순씨로 착각한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우리 옷을 입고 갔는데 쫓겨났다는 현실 앞에서 한복하는 사람으로서 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그가 한복을 통해 꿈꾸는 한류는 어떤 것일까. “옷에는 그 나라의 정신이 부여되어 있죠. 우리가 싫어하지 않으면서 많이 입고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저변 확대랍시고 아무렇게나 입는 것은 반대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대통령 취임 축하연에 입고 나온 황금색 한복을 만들었던 김씨는 정상 외교에서 더 자주 한복을 볼 수 있길 바랐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한국 컬렉터 ‘봉’ 그래서 슬픕니다

    한국 컬렉터 ‘봉’ 그래서 슬픕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큰 관심거리인가요.” 간단한 반문이었다. 오는 23일까지 서울 신사동 예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웅(67) 작가. 최근 끝난 이탈리아 베네치아비엔날레 얘기가 화제에 오르자 이처럼 말했다. 김 작가는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가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와 예일대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지금까지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가지 점이 눈에 띄었다. 우선 미국에서 30년 넘게 작업해 오고 있음에도 작품은 사뭇 한국적이다. “프로들이 그린 그림보다는 아마추어들이 만든 전통 민예화나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산과 들과 초가집과 온갖 벌레 같은 것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추상적으로 표현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구상화 같은 느낌이다. 큰 작품들은 선을 쓱쓱 그어 표현한 산 모양이 있어 조선시대 병풍처럼 느껴진다. 작은 작품들은 접시에 담긴 풍경을 형상화했는데 거실 같은 곳에 둘 소품으로 적당해 보인다. 캔버스를 잘라 붙여 입체감을 주는 동시에 물감을 두껍게 덧칠한 것도 인상적이다. “돈 없이 촌에서 자라다 보니 장판이나 도배 같은 걸 내 손으로 직접 했는데, 그래서인지 뭔가 두껍게 붙이거나 바르지 않으면 덜 그린 것 같고 완성한 것 같지가 않다.”는 게 이유다. 그러고 보니 두껍게 칠해진 화면은 마치 기름을 두껍게 먹인 장판, 두번 세번 겹쳐 바른 벽지 같다. 주요 활동 무대가 미국이다 보니 국내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얘기들도 술술 풀어냈다. 베네치아비엔날레에 대해서는 “서구 작가들은 개인 작업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런 비엔날레, 특히 미국 작가들은 유럽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면서 “국가 대항전이라는 이미지가 미술이라는 장르와 어울리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물주’들이 해외 작품을 유명작이라는 이유로 사들이는 행태에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 김 작가는 “내가 겪은 바로는 서양은 이해타산과 계산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철저하다.”면서 “그런 사람들이 한국이란 곳에서 작품을 사겠다고 했을 때 곧이곧대로 1급 작품을 내놓을 리 없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아마 그런 작품이 한국에 들어왔다면 틀림없이 전시되지 못하고 창고에 있던 작품을 팔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부 한국 컬렉터들이 국제 시장에서는 일종의 ‘봉’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김 작가는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비판이나 불만이 아니라 슬프다는 뜻”이라고도 했다. 30년간 뉴욕에 머물면서도 한국적 느낌의 작업을 하는 이유와도 겹쳐 보였다. (02)542-5543.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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