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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병언 재산 얼마길래? 유병언, 도피 중에도 측근 명의로 부동산 매입

    유병언 재산 얼마길래? 유병언, 도피 중에도 측근 명의로 부동산 매입

    ‘유병언’ ‘유병언 재산’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이 도피 중에도 측근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1일 조선일보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유병언이 지난 5월초 자신이 은신했던 전남 순천의 별장 ‘숲속의 추억’ 인근의 6만 503㎡(1만 8300여평·2억 5000만원 상당) 규모의 농가 주택 및 임야를 사들였다”고 전했다. 유병언은 이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측근인 변모·정모씨 부부 명의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순천 별장 인근에서 송치재휴게소와 염소탕 식당을 관리해왔으며 유씨 도피에 도움을 준 의혹을 받고 있다. 한편 1일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검사)은 유병언 회장 일가의 실소유 재산 102억원 상당에 대해 기소 전 추징보전 명령을 법원에 청구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두 차례에 걸쳐 유씨 일가 실소유 재산 374억원 상당과 계열사 주식, 미술품, 시계 등에 대해 추징보전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화 In&Out] 외세에 빼앗겼다 돌아온 우리 문화재 사연들

    [문화 In&Out] 외세에 빼앗겼다 돌아온 우리 문화재 사연들

    일제가 패망을 앞둔 1944년, 도쿄는 계속된 공습으로 아수라장이었다. 41세의 중년 신사 손재형(1903~1981)이 병석에 누워 있던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를 찾아 도쿄로 건너간 것도 이즈음이었다. 후지쓰카는 ‘추사 김정희에 미쳐 있다’고 할 만큼 추사의 금석학과 예술, 청나라 경학에 정통한 학자였다. ‘서예’라는 용어를 만든 서예가 손재형은 첫 만남에서 후지쓰카에게 아무 말 없이 인사만 하고 돌아왔다. 하루에도 수차례 공습경보가 이어졌지만 문안은 계속됐고, 일주일 뒤 후지쓰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눈을 감기 전에 내놓을 수 없으나 세상을 뜰 때 아들에게 유언을 해 보내 줄 터이다.” 손재형은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그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서화는 조선시대 문인화의 최고 걸작인 추사의 ‘세한도’. 소나무와 잣나무가 어울린 조촐한 집과 추사체를 담은 그림이다. 제주로 유배를 떠난 추사가 1844년 역관인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그려 줬다. 이상적은 청나라를 방문해 세한도에 16명의 학자로부터 글을 받아 두루마리로 표구했는데, 이렇게 엮인 글과 그림의 길이가 14m를 넘는다. 이런 세한도는 기구한 운명을 지녔다. 이상적이 죽은 뒤 제자였던 김병선과 아들 김준학에게 차례로 넘겨진 작품은 이어 휘문고 설립자인 민영휘의 손에 들어갔다. 아들 민규식은 구한말 경성제대 교수였던 후지쓰카에게 양도했고, 후지쓰카는 퇴임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손재형이 이를 찾아왔으나 이후 큰 빚을 지고 사채업자에게 넘겼고, 돌고 돌아 지금은 미술품 소장가인 손창근이 갖고 있다. 손재형이 세한도를 찾아온 지 석 달쯤 지나 후지쓰카의 서재가 폭격을 맞아 소장품이 전소됐으니, 세한도는 기적적으로 질긴 삶을 이어 오고 있는 셈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현재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15만여점, 그중 일본에 6만 6000여점이 남아 있다. 불법 반출된 문화재의 반환을 규정한 유네스코협약이나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윤리강령이 있으나 ‘빛 좋은 개살구’일 따름이다. 우리가 1965년 6월 일본과 맺은 한일협정이 큰 걸림돌이다. 일본은 4개의 부속협정 중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432점만 돌려준 뒤 공식적으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오구라 컬렉션과 같이 도굴·도난당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는 동안 20년간의 협상 끝에 외규장각 의궤 등이 민간의 도움을 받아 속속 돌아왔다.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교수부터 성직자, 교포, 외국인, 시민까지 수많은 사람이 힘을 보탰다”면서 “문화재 반환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단은 최근 이 같은 이야기를 모아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란 단행본을 펴내기도 했다. 예컨대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모은 1만 9000여점의 데라우치문고 중 1995점은 문고를 관리하는 야마구치현과 자매결연 관계인 경남도의 노력으로 1996년 돌아왔다. 창덕궁 선정전 앞의 용모양 매화나무인 ‘와룡매’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 센다이번 영주인 다테 마사무네에게 뽑혀 일본으로 갔으나 400여년 만인 1999년 접목해 얻은 후계목들이 서울 남산의 안중근기념관 앞으로 돌아왔다. 국가 주도의 문화재 환수와 활용이 어떻게 민간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는 여전히 큰 의문이자 과제다. 환수 이야기가 단순한 무용담에 그치지 않고 소중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선 보다 합리적인 토론과 공론화가 필요해 보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천경자 미스터리’ 2라운드…이번엔 대형 갤러리와 갈등

    ‘천경자 미스터리’ 2라운드…이번엔 대형 갤러리와 갈등

    천경자(90) 화백의 가족이 국내 대형 화랑인 갤러리현대와 일부 작품의 저작권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생사가 불투명하다는 소문에 이어 최근 대한민국예술원에 회원 탈퇴서를 제출하면서 국내 예술계와 한바탕 감정 다툼을 벌인 바 있다. 26일 국내 미술계에 따르면 천 화백의 장녀인 이혜선(70)씨는 최근 서울시를 통해 갤러리현대의 아트포스터 판매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1995년 갤러리현대가 천 화백과 직접 맺은 아트상품 제작에 대한 약정서가 무효라는 주장이다. 천 화백은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인 1998년 서울시에 작품 93점과 더불어 자신의 모든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기증했다. 현재 천 화백 작품의 저작권은 서울시가 갖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이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명화를 만나다-한국 근현대회화 100선’에서 판매된 아트포스터 탓에 불거졌다. 다양한 종류의 아트포스터 가운데 ‘길례언니’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등 천 화백이 그린 작품 두 점이 포함됐고 판매업체는 갤러리현대로부터 포스터를 구매했다고 밝혔다. 갤러리현대는 “1995년 맺은 약정서에 따라 제작했다가 남은 포스터들을 이번에 판매한 것”이라고 밝혔다. 천 화백 외에 박수근, 장욱진, 유영국 등 다른 유명 작가들과도 같은 내용의 약정서를 맺었으며 최근 새롭게 제작한 상품이 아니어서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천 화백 측은 날짜와 직인이 없는 약정서의 형식을 놓고 법적 효력이 없다며 반박했다. 약정서에는 ‘미술품 재생산에 사용되는 저작권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다. 갑(천 화백)은 대상 작품에 대한 저작권의 권리를 을(갤러리현대)에게 양도한다’고 적혀 있다. 천 화백의 서명은 있지만 직인이나 계약 일자는 없다. 대상 작품이 어떤 것인지도 명시되지 않았다. 갤리러현대 측은 서류상의 미흡함은 인정하지만 “서울 사간동 갤러리에서 박명자 회장이 직접 천 화백에게 서명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천 화백과 막역한 사이다. 정작 이런 정황을 입증할 천 화백은 2003년 미국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장녀 이씨의 간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여년간 외부와의 접촉이 끊긴 상태에서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미술계 안팎에선 소문만 무성한 상태다. 이씨는 어머니가 거동은 못 해도 의식은 있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현재 양측의 화해나 합의를 권유하고 있다. 시가 천 화백으로부터 저작권을 기증받기 3년 전 이뤄진 계약이라 직접 관여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씨가 천 화백의 작품을 놓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초 서울시의 관리 소홀을 이유로 기증 작품과 저작권 반환을 요구했고 천 화백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에도 같은 이유로 반환을 요청해 기증했던 작품 60여점을 2012년 돌려받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5) 佛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5) 佛 파리 루브르 박물관

    센강을 낀 파리의 중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프랑스의 상징을 넘어 인류 문명의 보고로 자리 잡았다. 38만점에 이르는 소장 예술품이나 방문객 수의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루브르는 2013년 연중 관람 인원 933만명으로 2위인 영국 박물관(670만명)을 한참 앞서며 선두 자리를 지켰다. 더 이상 부연할 것도 없어 보이고, 다 아는 것 같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곳이 또한 루브르다. 근대 박물관의 역사를 이끌어 온 루브르는 지금도 그 어떤 박물관보다 앞서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12세기 말에 지어진 요새에서 시작된 루브르의 역사는 20세기 유리 피라미드를 거쳐 2015년 말 개관 예정인 루브르 아부다비(Louvre Abu Dhabi)까지 이어진다. 루브르 박물관의 중앙 입구는 루브르의 주정원인 나폴레옹 궁정에 있는 유리 피라미드를 사용한다. 박물관 개관 시간에는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서 있어 루브르의 식을 줄 모르는 명성과 가치를 대변하기도 하는 유리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 M 페이가 설계했다.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고색창연한 석조건물들로 둘러싸인 궁전 마당 한가운데에 유리와 경량의 알루미늄 골조로 세워진 피라미드에 지금은 모두 익숙해졌지만 30년 전 건설계획이 발표됐을 당시만 해도 온 나라가 들끓었을 정도로 숱한 반대에 부딪혔던 구조물이다. 루브르의 새로운 시대를 연 유리 피라미드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추진한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의 하나였다. 라데팡스 신개선문, 바스티유 오페라, 국립도서관, 라빌레트 공원 등 그랑 프로제 건축물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을 불렀던 것이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였다. 1983년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선정된 페이의 계획은 역사적 석조건물과 초현대적인 유리 피라미드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6년 뒤인 1989년 3월 30일 유리 피라미드가 완성됐을 때 이런 비난은 순식간에 찬사로 바뀌었다. 나폴레옹의 역사를 간직한 가로 110m, 세로 220m의 박물관 내 궁정에 들어선 35m×35m×22m의 하이테크적인 유리 피라미드는 세간의 논란이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특수제작된 투명 유리와 경량의 알루미늄 빔이 만들어 낸 피라미드의 기하학적 형태는 오래된 주변의 건물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도시의 역사와 미래의 비전을 꿰뚫는 페이의 통찰은 루브르가 명실상부하게 프랑스 역사를 대변하는 건축물로 재탄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역사와 전통의 도시 파리에 기념비적인 현대 건축물들을 조화롭게 들여놓음으로써 세계적으로 위상이 실추돼 가는 프랑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미테랑 대통령의 원대한 프로젝트는 제대로 그 목표를 달성했다. 현재의 루브르 건물은 12세기 말 필립 2세 왕이 세운 요새가 그 시초다. 앵글로노르만 족의 공격으로부터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립 2세는 이곳에 외벽과 탑, 내부 건물로 이뤄진 요새를 지었다.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요새만으로 파리를 보호하기 어려워지자 14세기 후반 샤를 5세는 건축가 레이몽 뒤 탕플에게 루브르를 거주하기 위한 성으로 개조하도록 지시했다. 16세기 들어 프랑수아 1세는 낡은 중세의 건물을 부수고 그 자리에 본격적인 왕궁을 건설했다.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피에르 레스코가 건설 총책을, 벽면 장식은 당대 최고의 조각가 장 구종이 각각 맡았다. 이후 루이 13세와 루이 14세는 계속 궁전을 확장했다. 루브르가 궁전에서 왕실 소장 예술품 관리 및 전시를 위한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것은 루이 14세가 1682년 거처를 베르사유 궁으로 옮기면서다. 소수 특권층만이 누리던 전시 공간이 국민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본격적인 의미의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대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국민의회는 “루브르는 국민들을 위해 국가의 걸작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천명하고 1792년 9월 27일 프랑스 박물관으로 설립했다. 이어 1793년 8월 10일 537점의 회화작품을 루브르궁의 갤러리에 전시하면서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박물관을 필두로 19세기 유럽에는 다양한 근대 박물관이 잇따라 설립됐다. 쉴리관에는 17~19세기 프랑스 회화와 파라오 시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에트루리아·로마, 근동의 문화재 외에 루브르의 역사를 보여 주는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문화 강국 프랑스를 상징하는 루브르는 과거에 만족하지 않고 막강한 브랜드파워를 발판으로 미래를 향해 도약 중이다. 2012년 12월 프랑스 북부의 광업도시 랑스에 제2박물관을 개관한 데 이어 2015년 12월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수도 아부다비에 첫 해외 분관이 문을 연다. UAE 정부가 관광특구로 개발하는 ‘사디야트아일랜드’(행복섬)에 건설 중인 루브르 아부다비는 프랑스의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를 맡았다. 돔형의 건물이 신기루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형상의 초현대식 건물은 벌써부터 화제다. 사막의 직사광선 아래에서 쾌적한 휴식처가 되도록 직경 180m의 파라솔을 씌워 거대한 그늘을 만들고 돔 아래로는 점점이 떨어지는 ‘빛의 오아시스’를 경험하도록 했다. UAE는 30년 동안 ‘루브르’라는 이름을 쓰는 대가로 프랑스 정부에 5억 2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루브르로부터 미술품 대여와 특별 전시회, 전시 컨설팅 등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7억 4700만 달러를 추가로 내게 된다. 박물관 건축 공사에만 1억 800만 달러가 들어갔다. 그것뿐이 아니다. UAE는 어마어마한 돈을 치르고 최근 몇 년간 피카소의 ‘젊은 여인의 초상’, 르네 마그리트의 ‘억눌린 독서가’ 등 작품160여점을 구입했다. 지난 2일부터 오는 7월 28일까지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루브르 아부다비 개관에 앞서 박물관을 소개하고 전시작품을 미리 선보이는 ‘박물관의 탄생’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lotus@seoul.co.kr
  • 세계 큰손·21세기 다빈치들 수백억대 미술 장터 열다

    세계 큰손·21세기 다빈치들 수백억대 미술 장터 열다

    #1. “비엔날레보다 볼거리가 많다”는 아트 바젤의 아시아 담당 디렉터 매그너스 랜프루의 장담은 허언이 아니었다. 공식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상업과 예술의 벽을 허문 아트 바젤의 대형 부대행사 ‘언리미티드’ 전에 몰린 VIP 관람객 수백 명의 생생한 표정이 이를 방증했다. 이탈리아 자연주의 미술의 거장인 주세페 페노네를 비롯해 칼 안드레, 앤서니 카로, 이우환, 양혜규 등 거장과 유망 작가들을 망라한 78명의 영상·설치 작품들이 ‘제1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왜 ‘아트 바젤’이 미술 월드컵으로 불리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자리였다.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레진과 테라코타로 치장한 46m 길이의 주세페 페노네의 설치작품 주변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칼 안드레가 깔아 놓은 철판 위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다녔고, 쉬전의 대형 조각 앞에선 기념촬영이 이어졌다. 다른 부대행사인 전시장 뒤켠의 ‘14룸스’ 전에는 데미안 허스트, 오노 요코 등 현대미술 대표작가 14명의 흥미진진한 퍼포먼스가 재현됐다. 바이엘러재단과 아트 바젤 등이 마련한 전시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퍼포먼스 총괄 큐레이터 클라우스 비센바크 등이 공동 기획했다. 마크 스피겔러 아트 바젤 총괄 디렉터는 “우리가 단지 돈벌이에만 관심 있는 건 아니다”고 힘줘 말했지만, 이 또한 미술관 등 대형 컬렉터를 고려한 마케팅 성격이 짙다는 평가였다. #2. “이우환의 작품을 8점 갖고 왔는데, 벌써 6점이나 팔렸어요. 유명 컬렉터나 미술관 관계자들이 망라됐지요.” 세계 4대 갤러리로 꼽히는 ‘페이스’(미국)의 마케팅 담당 직원인 니컬러스 스미르노프는 들뜬 표정이었다. VIP 고객을 위한 17~18일 프리뷰 행사 기간의 성적표 덕분이다. ‘점으로부터’(1978·1980년) 등 구작부터 ‘대화’(2008, 2014년) 등 비교적 신작까지 내놓는 족족 큰손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페이스 갤러리는 아예 이우환과 클래스 올덴버그, 단 두 작가의 작품만 전시했다. 다른 메이저 화랑인 리송·카멜 메누르(프랑스)나 SCAI 더 배스하우스(일본) 등도 이우환의 작품을 내놓았다. 16년째 아트 바젤에 참여해 온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조각 등 이우환 작품을 두 점 내놨는데, 구겐하임 등 대형 미술관들의 관심이 크다”고 전했다. 19일 오전(현지시간) 공식 개막한 ‘제45회 아트 바젤’에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세계 최고의 화상들이 몰렸다. 아트 바젤 측은 “미술계의 세계 50위권 큰손들은 개막에 앞선 이틀간의 프리뷰 행사 때 모두 다녀갔다”고 전했다. 오는 22일까지 나흘간 이어지는 본행사에는 34개국 285곳의 선택받은 화랑들이 파울로 피카소의 대형 인물화 등 4000여점의 작품을 장터에 내놨다. 아트 바젤의 대주주 격인 바이엘러재단의 바이엘러 갤러리는 한 점에 250억원을 호가하는 자코메티의 대형 조각 2점을 전시했고, 바이엘러 미술관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 외곽에서 분위기를 달구고 있다. 벌써부터 500억원이 넘는 대형 거래가 성사될지에도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한국 작가로는 이우환을 비롯해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김기린, 구현모, 정희승 등의 작품이 내걸렸다. 이 회장은 “첫날 ‘퍼스트 초이스’ 때 작품이 매진돼 이튿날 새롭게 작품을 내걸었다”며 “이우환의 단색화 등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행사에 중국, 중동, 인도 등의 큰손들이 특히 많이 몰렸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메인 부스가 작아지면서 참가 화랑 숫자도 소폭 줄었다. 부대행사인 ‘언리미티드’ ‘14룸스’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술시장의 거래 지표를 형성하는 미술품 견본 시장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이들은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탄 노인부터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까지 다양했다. 한국미술시장의 불황을 드러내듯 주최 측으로부터 초청받은 한국인 컬렉터들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글 사진 바젤(스위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꽁꽁 숨어버린 문정왕후 어보

    꽁꽁 숨어버린 문정왕후 어보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몰래 가져가 미국 박물관에 소장 중인 조선시대 문정왕후 어보는 못 돌아오는 것인가, 안 돌아오는 것인가. 3일 문화재계와 교민사회에 따르면 문정왕후 어보를 소장 중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박물관(LACMA)은 지난해 9월 프레드 골드스틴 수석 부관장이 어보의 반환 의사를 표시하며 60여년 만의 반환을 일단락짓는 듯했다. 하지만 사건은 미 수사당국의 전격적인 어보 압수와 박물관 측의 법적 대응이 이어지면서 끝을 알 수 없는 교착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중종의 둘째 왕비인 문정왕후의 어보는 거북 모양 손잡이가 달린 금장 도장이다. 1951년 미군이 종묘에서 불법으로 훔쳐간 40여 과의 인장 가운데서도 가치가 높은 문화재로 꼽힌다. LACMA 측은 도난품인지 모르고 2000년 경매를 통해 문정왕후 어보를 구입했다고 밝혔고, 지난해 9월 반환을 요구하며 박물관을 찾은 혜문 스님 일행에게 “조속한 시일 안에 일정과 방식 등을 (한국 정부와)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보는 지난 4월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방한 때 대한제국 국새 등과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수사당국인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은 “복잡한 법률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만 밝힌 상태다. 복수의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HSI는 지난해 9월 말 LACMA에 전시 중이던 문정왕후 어보를 전격 압수했다. 혜문 스님 일행이 박물관을 방문해 반환을 약속받고 나서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다. 이에 LACMA는 3만 쪽에 이르는 법리 검토서를 사법당국에 제출해 몰수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SI가 몰수 과정에서 LACMA 직원에 대한 사법 처리나 벌금형 등을 거론한 것도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는 것이다. 한 문화재계 인사는 “LACMA가 단단히 감정이 상한 것으로 보인다”며 “법리 검토를 마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HSI는 지난해 5월 문화재청의 수사 의뢰를 받으며 수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문화재청도 LACMA와 어보의 반환을 놓고 밀고 당기는 물밑 협상을 벌여 왔다. 이 과정에서 박물관 측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영구 임대 방식의 반환이 검토되기도 했다. 신미양요 당시 미 해병대에 약탈됐다가 2007년 장기임대 형식으로 반환된 ‘어재연 장군기’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반환운동이 드세지면서 협상은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HSI는 LACMA의 어보 구입 과정을 문제 삼으며 수사를 확대했다. LACMA에 어보를 판매한 사람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LA의 한 고미술품 수집가. 미 사법당국은 문정왕후 어보는 물론 이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는 현종 어보까지 압수했다.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어보의 반환은 물론 향후 미국에 있는 국보·보물급 문화재의 반환 협상도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 박물관 관계자는 “LACMA는 한국인 큐레이터를 고용할 만큼 한국 문화재에 큰 관심을 나타냈던 곳”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박물관이 유통 경로가 불분명한 한국 문화재들을 전시실에서 치워 수장고에 감출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문화 In&Out] 처음 열린 개인화랑 미술재단 시대

    [문화 In&Out] 처음 열린 개인화랑 미술재단 시대

    개관 31주년을 맞은 국내 최대 개인화랑인 가나아트가 최근 문화재단을 출범시켰다. “성공한 상업 화랑의 경험과 축적된 미술자산을 공익화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유명 화상이 만든 프랑스의 매그 미술관과 스위스 바이엘라 미술관이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은 3억원의 자본금을 내놨고, 올 4분기에는 개인 컬렉션(소장 미술품) 200여점을 기탁할 예정이다. 재단 설립은 물밑에서 속도감 있게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발기인 대회를 거쳐 올 2월 서울시로부터 비영리법인허가를 받았고 3월에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됐다. 이사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김형국(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전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이사장을 맡았다. 이 회장 외에 고영훈·박영남·임옥상 작가와 윤범모 미술평론가, 이진학 딜로이트코리아 부회장, 정병국(전 문화부 장관) 의원은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7일 출범 간담회에서 김 이사장은 “예전 가나아트가 진행해 온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확대해 공익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상업 화랑이 담당하기에는 시장성이 약하고, 공공미술관이 하기에는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미공개 미술 작품도 발굴하겠다”고 운영 계획을 밝혔다. 가나아트는 현재 70여곳의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작가에게 임대료와 관리비 대신 작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재단이 출범하면 무상 지원할 계획이며, 월북작가인 정종여 등 그늘에 가려진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할 방침이다. 윤범모 평론가는 “(이 회장이) 마음이 흔들리기 전 지금 하려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으나 당사자인 이 회장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간담회에는 참석지 않았다. 이렇듯 출발은 긍정적이지만 안팎에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문화재단이 이 회장 일가의 상속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30일에는 이 회장이 회장을 맡은 서울옥션 주총을 통해 친동생인 이옥경 가나아트 대표가 서울옥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장남인 이정용 상무가 가나아트 대표가 된다. 이런 시점에 수익사업을 제한받는 사단법인이 아니라 재단법인 형식으로 출발한다는 점도 일각에서는 예사롭지 않게 본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김 이사장은 “일단 출연된 자산은 개인 미술관과 달리 재단 해체 시 모두 사회에 귀속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도 “우리는 그림이 재산인데 (등록되지 않은)그림을 상속시키려면 오히려 재단에 등록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사설 화랑으로는 국내 처음 재단을 출범시킨 가나아트가 미술품을 시장 논리로만 평가하는 국내 미술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도난 추정 불교 미술품 경매 나와… 수사 착수

    도난 추정 불교 미술품 경매 나와… 수사 착수

    도난품으로 추정되는 불교 고미술품들이 경매시장에 나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29일 대한불교 조계종은 고미술품 경매사인 마이아트옥션이 다음달 2일 ‘조선시대 불교미술 특별 경매’에 출품한 18점 중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시리즈 2점 등 모두 4점을 도난품이라며 문화재청과 경찰에 신고했다. 조계종 측은 마이아트옥션이 추정가 5억∼6억원에 경매에 출품한 ‘영산회상도’가 2000년 5월 경북 청도 용천사 대웅전 내에 있다가 도난당한 불화와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普薩坐像·추정가 1억∼2억원)은 2004년 충북 제천 정방사에서 도난당한 충북 유형문화재 제206호 목조관음보살좌상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또 다른 ‘영산회상도’는 1993년 4월 강원 삼척 영은사 대웅전에서 없어진 작품과, ‘신중도’(神衆圖)는 2000년 9월 경북 청송 대전사 보광전에서 없어진 작품과 각각 같은 작품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조계종과 문화재청,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 등은 이날 서울 종로구 관훈동 마이아트옥션 본사를 찾아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마이아트옥션 측은 “경매팀 관계자들이 통상 출품 전 도난품 여부를 확인하는데, 도난된 불화들과는 크기나 특징이 조금씩 상이했다”면서 “해당 작품을 제외한 14점을 예정대로 경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그림 한 점이 무려 ‘120억 원’…英 유명화가 작품 공개

    그림 한 점이 무려 ‘120억 원’…英 유명화가 작품 공개

    경매 낙찰가가 무려 12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림 한 점이 공개돼 수집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경매에 나온 작품은 영국의 유명 화가인 로세티(본명 가브리엘 찰스 단테 로세티)의 그림으로, 1871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제목 ‘판도라’(Pandora)의 이 작품은 로세티의 애인이자 ‘뮤즈’로 알려진 제인 모리스라는 여성의 초상화다. 제인 모리스는 로세티의 친구이자 역시 예술가로 활동했던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이며, 로세티에게는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준 여성이었다. 때문에 제인 모리스는 ‘판도라’뿐만 아니라 로세티가 수 십 년간 작업한 작품 전반에 모습을 드러낸다. 로세티는 일명 ‘라파엘로 전파’의 한 작가로 유명하다. 라파엘로 전파는 라파엘 이전 시기인 14-15세기의 이탈리아 화가들과 비슷한 양식의 그림을 그렸던 19세기의 영국 화가들을 지칭하며, 로세티는 향락적ㆍ관능적인 유미주의의 화가로 평가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판도라’는 60년간 개인 소장품이었다가 최근 영국 소더비 경매에 나왔다. 영국 소더비의 경매 전문가인 시몬 톨은 “라세티의 ‘판도라’는 분명 엄청난 화제가 될 것”이라면서 “라세티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것의 예상 낙찰가는 700만 파운드(약 120억 5000만원) 정도”라고 소개했다. 한편 미술품 경매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은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92)의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1969)이다. 이 작품은 지난 해 11월 미국에서 열린 경매에서 1억4240만 달러, 한화로 약 1460억 원(경매 당시 1528억 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우린 아직 일본의 문화재 식민지다

    우린 아직 일본의 문화재 식민지다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아라이 신이치 지음/이태진·김은주 옮김/태학사/256쪽/1만 5000원2011년, 조선총독부가 강탈해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실의궤(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가 89년 만에,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간 도서가 145년 만에 돌아왔다.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에 약탈된 우리 문화재의 소재가 확인돼 우리 정부가 요구하면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는 일본의 전쟁 범죄와 책임 문제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아온 아라이 신이치 일본 스루가다이대 명예교수 겸 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 공동대표가 조선 말기와 식민지 시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한국의 문화재에 관해 쓴 책이다. 원제는 ‘식민주의와 문화재-근대 일본과 조선을 통해 생각한다’. 그는 2011년 4월 조선왕실의궤 등 귀중 도서 반환에 관한 한·일 협정을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회가 심의할 때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그 자리에서 “반환 문제는 식민지 지배 청산을 위한 기본틀이며, 역사자료 등 문화재는 그것이 태어난 환경이나 배경에 두어야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으므로 조선왕실의궤도 조선왕조 문화의 상징으로서 원래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진술했다. 저자는 일제의 문화재 약탈이 어떻게 시작됐고 진행됐는지를 추적했다. 첫 무대는 1875년 9월 강화도였다. 그때 일본은 이노우에 요시카 함장의 지휘 아래 조선의 귀중 도서들을 노획해 갔다. 이후 1894년의 청일전쟁에 편승해 일본은 궁중의 재화와 보물들을 마구 약탈했다. 일본 궁중 고문관 겸 제국박물관 총장인 구키 류이치는 전시 문화재 수집 지침을 정부와 육해군 고관들에게 전달했다. 평시에는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명품을 얻을 수 있으며, 평시에 비해 중량 있는 물품을 운반할 방법이 있다는 등 군이 주도하는 문화재 약탈의 이점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일본의 학계와 정치인, 군이 일체가 되어 국가적 사업으로 문화재 약탈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일제의 목표는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미술품까지 약탈, 수집함으로써 ‘동양미술 유일의 대표자’ 지위에 서는 것이었다. 청일전쟁 선전포고 직전인 1894년 7월 23일 조선 주재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는 궁중의 재화, 보물, 역대 제왕의 진기한 물건이나 법기(法器), 종묘의 주기(酒器)류를 모조리 챙겨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조선이 수백년간 축적해 온 것을 하루아침에 빼앗아간 것이다. 개성과 강화 부근의 고려 고분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파헤쳐졌고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자기를 포함한 고미술품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뒤 발군의 것들을 골라 일왕에게 갖다 바쳤다. 오사카에는 조선에서 나온 고물(古物)을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일제의 기상학자인 와다 유지는 우량(雨量) 측정기인 측우기를 일본으로 빼갔다. 이후 1923년 이 측우기는 영국에 기증돼 현재 런던 과학박물관에 있다. 일제가 학술조사라는 이름으로 시행한 고적(古跡) 조사는 한국의 문화재를 더욱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빠트렸다. 낮은 등급 판정을 받은 경희궁이 헐렸고, 고분묘 조사는 결과적으로 사굴이나 남굴 풍조를 심화시켜 유적들을 괴멸시켰다.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일본으로 반출된 한반도 문화재가 6만 1409점이 넘을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 내에서 개인이 수집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만 해도 30여만 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정설로 통한다. 2000년대 들어 국제사회에서 약탈 문화재 반환 사례가 부쩍 늘었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에우프로니오스의 항아리를 포함해 21점을 이탈리아에 반환했다. 영국은 20만년 전 돌도끼와 기원전 7000년대의 토기, 동전 등 2만 5000점의 유물을 이집트에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도 약탈 문화재의 일부를 반환했다. 책에는 한·일 간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참고 사항들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해외 여러 나라들의 문화재 반환 사례, 국제법적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반환 움직임, 문화재 반환과 식민지 청산의 현재적 의미 등을 두루 짚어볼 수 있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나치 때 약탈 미술품 1400점 유언 따라 스위스박물관 갈 듯

    ‘히틀러의 미술상’으로 불렸던 독일인 미술상이 아들에게 상속한 나치 시절 약탈 미술품들이 스위스의 박물관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날 숨진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가 자신이 보유한 1400여점의 미술품을 스위스 베른에 있는 쿤스트박물관에 기증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보도했다. 독일 뮌헨 법원은 구를리트가 올해 초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증된 유언장에 서명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법률 전문가들은 그가 지난달 미술품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같은 유언 때문에 법적 절차가 복잡해지고 협상이 길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를리트는 아버지 힐데브란트로부터 마네, 르누아르, 피카소, 샤갈 등 거장의 작품이 포함된 미술품을 물려받아 뮌헨의 아파트에 소장해 오다 2012년 세관에 발각됐다. 작품 중 다수는 나치 정권이 공공미술관이나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 원소유주의 유가족이나 상속인 등은 즉각 반발했다. 구를리트의 소장품 중 ‘해변의 승마’를 그린 화가 막스 리베르만의 조카 데이비드 토렌은 변호인을 통해 “경찰이 은행 강도를 잡으면 빼앗은 돈을 은행에 돌려줄 때 강도에게 허락을 받지 않는다”면서 “이것은 그가 죽었거나 살아 있거나 상관없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문화 In&Out] 미술계 ‘상업전시’에 뛰어든 중앙박물관?

    [문화 In&Out] 미술계 ‘상업전시’에 뛰어든 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3일부터 오는 8월 31일까지 이어가는 ‘오르세미술관 특별전’이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클로드 모네의 ‘양산 쓴 여인’등 오르세 미술관의 대표작 일부가 국내 처음 공개되는 의미 있는 자리이지만, 국립기관이 상업성 짙은 전시를 기획했다는 사실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와 드로잉, 초상, 공예 등 모두 175점이 나오는 매머드급 기획전이다. 기 코즈발 오르세 미술관장도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해 분위기를 띄운다.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선 성인 1만 2000원, 중·고생 1만원, 초등학생 8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48개월 이상 유아와 65세 이상 고령자도 각각 5000원, 6000원의 입장료를 무는 등 여느 상업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시 입장료가 만만찮은 것은 상업 기획사가 주관사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지역 미술품과 유물의 국내 전시 판권을 지닌 기획사는 ‘오르세 미술관’전에 일정액을 투자한 동시에 현장운용과 홍보·마케팅을 맡는다. 박물관 측은 “미술품 선정을 우리가 직접 했고, 대관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투자금에 따라 기획사와 박물관이 수익금을 나눠 갖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특별전에 기획사가 참여해 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전시가 과연 중앙박물관의 기능과 성격에 맞느냐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근현대 회화를 담당하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관련 전시를 열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중앙박물관까지 나서 미술계 상업전시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 ‘오르세미술관’전이 열리는 건 이번이 네 번째다. 2000년 처음 열린 전시는 우리나라 ‘블록버스터’ 미술전시의 효시로 기록되며 무려 40만명의 관람객을 끌었다. 2007년과 2011년 전시도 역대 오르세 소장품전 중 최대 규모라는 타이틀이 붙으며 관람객 입장 기록을 경신했다. 2011년 방한한 기 코즈발 관장은 “오르세미술관 밖에서 이처럼 많은 작품이 전시되는 건 관장으로서도 깜짝 놀랄 일”이라고 했을 정도이며, 기획사와 전시장 모두 큰 이윤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미술계에선 “문화유산 전시가 주된 업무인 중앙박물관이 이미 수차례 국내 전시가 열린 인상파 미술전을 다시 열 필요가 있느냐” “서양회화를 전공한 김영나 관장의 영향”이라는 등의 해석이 흘러나온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전시장소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처음도 아닌 전시를 국가 예산을 투입해 열어 그 수익금을 상업기획사와 나눠 갖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대관이나 다름없는 유명 기획전을 기획해 비판받아온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물관 측은 19세기 서구 문화·예술 탄생의 배경을 아우르는 접근 방식으로 기존 미술전시와 차별화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3개월여 이어질 전시가 박물관의 주장처럼 기존의 고정관념을 깰지, 여느 상업전시와 다를 바 없는 ‘그렇고 그런’ 기획전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문화단신] 새달 7일부터 ‘서울오픈아트페어’

    ‘열린 미술 시장’을 지향하는 미술품 장터인 ‘서울오픈아트페어 2014’(SOAF 2014)가 다음 달 7∼11일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올해 9회째를 맞은 SOAF는 누구나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2006년 출범했다. 올해에는 박영덕 화랑, 청작화랑, 예화랑 등 국내 갤러리 89곳과 해외 갤러리 4곳이 참여해 회화와 조각, 사진, 판화, 설치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배우 강석우, 김영호, 김혜진이 참여하는 스타 자선 전시도 함께 열린다. 성인 1만원, 학생·단체 8000원. (02)545-3314.
  • 쓰나미로 만들다 아픔을 치유하다

    쓰나미로 만들다 아픔을 치유하다

    “2011년 3월 거대한 쓰나미가 삼켜버린 이와테현 미야코시의 처갓집을 찾았습니다. 형체도 없이 쓸려간 집 바닥에는 빛바랜 녹색 타일만 남아 있었죠. 이들을 모아 테이블을 만들었어요. 모든 것이 통째로 폐허로 변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잔해를 가져와 작품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죠. 주변에는 엉망이 된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지요.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합니다.” 일본의 설치미술가인 아오노 후미아키(46)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센다이시 출신인 그는 3년 전 대지진과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진 사건을 함께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운 표정이었다.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삶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치유자를 자처해 왔으나, ‘사고’를 주제로 작업하는 일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일본에선 예술가들이 쓰나미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게 불문율로 여겨진다. 함부로 생채기를 건드리면 유족의 아픔을 이용한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오는 6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이어지는 ‘환생, 쓰나미의 기억’전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과거를 무조건 잊기보다 파괴된 물건에 복원 당사자의 능동적 해석을 덧붙여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에요. 이를 통해 스스로 정신적 치유를 받았어요.” 작가는 일본의 주류 미술계에서 한발짝 물러나 동북부에 기거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에 천착해 왔다. 그간 찢어진 천이나 파편을 모아 ‘모노화’처럼 물성을 복원하는 작업을 해오다 대지진을 계기로 작품관을 확장했다. 남겨진 흔적들을 새로운 사물과 짝지어 영원한 기억으로 되살려 놓는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가져온 널브러진 자동차와 아스팔트 덩어리, 구겨진 간판, 뒤틀린 신발, 욕실매트, 교과서, 페트병, 트럼프 카드, 사진 등이 각기 다른 형태의 설치 미술품으로 복원됐다. 처가에서 가져온 장판과 타일, 도로의 아스팔트는 탁자의 상판으로 바뀌었고, 자동차는 시커먼 앞면과 곱게 칠한 뒷면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전시품으로 변모했다. 구겨진 빨간 코카콜라 간판은 흉물이 된 가구로 만들어진 탑의 지붕이 됐다. 생사조차 불분명한 아이의 흑백사진은 생환을 기원하듯 그림 작품의 일부가 됐다. 작가는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 사흘 뒤인 지난 19일 내한했다. “TV에서 세월호 사건을 계속 지켜봤어요.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직 구조가 진행 중이니 더 지켜봐야 합니다. 마음이 무겁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겐 ‘다시 함께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작가는 동병상련의 슬픔을 ‘쓰나미의 기억’을 넘어 ‘세월호의 아픔’으로 치환하고 있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숨긴 골동품 330점 찾아… 가압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숨긴 골동품 330점 찾아… 가압류

    현재현(65) 동양그룹 회장이 숨긴 것으로 추정되는 골동품 330여점이 동양네트웍스 회생 절차 도중 관리인에 의해 발견돼 법원이 전격 가압류에 나섰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파산4부(수석부장판사 윤준)는 지난 8일 현 회장 부부 소유의 미술품, 도자기, 고가구 등 골동품 330여점에 대한 보전 처분을 내렸다. 이 골동품은 회생절차 관리인으로 지정된 김형겸(49) 전 동양네트웍스 상무보가 지난 4일 서울 논현동 동양네트웍스 사옥과 가회동 회사 소유 자택에서 발견해 법원에 알린 것이다. 동양네트웍스는 검찰이 지난해 10월 현 회장을 수사하면서 압수수색을 벌인 계열사 중 한 곳이다. 현 회장 측은 가압류 직전 현장에 트럭을 보내 골동품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으나 관리인이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대규모 자산을 법원이 극적으로 확보함에 따라 출처와 은폐 경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가압류한 골동품의 강제집행을 위해선 별도 재판이 있어야 한다”면서 “나중에 경매를 하더라도 현재로선 시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동양네트웍스 회생 절차를 맡고 있는 재판부는 조만간 재판을 통해 현 회장의 손배 책임 유무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서는 골동품의 출처와 은폐 경위가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일본 속 한국문화 유적 답사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일본 속 한국문화 유적 답사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테마기행이 여행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마치 자유여행을 온 듯한 만족감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화 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적지를 몸소 체험하는 현장답사기행의 인기가 특히 높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일본 속의 한국 문화 유적 답사’는 고대 한국 문화의 일본 전파 경로를 따라 일본 속에 뿌리내린 한국 문화의 원류를 찾아보는 테마기행이다. 지난달 27일 일본 간사이국제공항의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마친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답사기행 일행은 오사카 히라가타시의 전왕인박사묘(傳王仁博士墓)로 향했다. 백제의 학자 왕인의 묘로 추정되는 곳이다. 답사기행의 해설을 맡은 이종태 국민대 교수는 “응신천황(應神天王) 15년, 아직기(阿直岐)의 추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왕인이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적혀 있다”며 “일본 아스카문화(飛鳥文化)와 나라문화(奈良文化)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 문자와 문물을 전한 백제 학자의 뜻이 시공을 초월해 양국을 이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농부가 죽순을 캐다 발견했다는 다카마쓰총고분(高松塚古墳)은 1972년 발굴 당시 짙은 채색의 벽화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전후(1945년) 최대의 발굴’이라며 연일 1면 톱을 장식했다. 벽화에 색동 주름치마를 입고 등장한 여인들은 고구려 수산리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여인상이다. 특히 고구려의 진파리 1호분, 강서대묘와 중묘의 벽화와 흡사한 사신도가 눈길을 끈다. 이 교수는 “장례의식은 누군가의 강요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전통과 관습으로 전해지는 것”이라며 “일본 고분에서 채색의 벽화가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고대 한국의 풍습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제의 고승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에 크게 공헌했다. 백제인의 예술성과 일본인의 불심이 빚은 불교 건축물이 곳곳에 즐비하다. 세계문화유산인 호류지(法隆寺), 도다이지(東大寺) 등 거대 사찰의 가람배치와 축조기법은 백제에서 가져온 것이다. 특히 신성한 본당을 둘러싸고 있는 긴 복도인 회랑(回廊)의 설치는 전형적인 백제 양식이다. 호류지의 금당은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린 ‘비천도’(飛天圖)로 유명하다. 1949년 화재로 사라져 아쉽게도 모사 작품이었지만 하늘로 훌훌 날아가는 천녀, 위엄 서린 관세음보살 그림이 살아 있는 듯 꿈틀대고 있었다. 백제 사람이 만들었다는 구다라(백제)관음상도 빼놓을 수 없다. 2m가 넘는 목조 관음상의 부드러운 얼굴과 눈썹의 선, 입가에 살포시 머금은 ‘백제의 미소’에서 백제 장인의 흔적이 느껴졌다. 일찍이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말로가 ‘모나리자’, ‘미로의 비너스’와 더불어 세계 3대 미술품으로 꼽은 작품이다. 단일 목조건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도다이지(東大寺). 이 교수는 “백제계 행기(行基)와 양변(良弁) 스님이 성무천왕(聖武天王)의 간청으로 불사를 주도했고 그 공로로 지금도 사찰 내에 그들의 흔적(행기당, 개산당)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가람의 총책임자는 고구려 출신 고려복신(高麗福神)이고 대불전 전당을 건립할 때 책임자로 신라인 저명부백세(猪名部百世)가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높이 16m의 금동불상 ‘비로자나대불’을 보고 한 시인은 “부처의 진리를 크기로 가둘 수 없고 오묘한 깨달음의 장엄한 빛을 감출 수 없다”고 예찬한 바 있다. 일본 불교의 시조인 쇼토쿠(聖德) 태자의 혼이 밴 오사카의 사천왕사(四天王寺)는 백제 부여 군수리 절터와 같은 가람양식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독창적인 일본식 사고를 곁들인 고대 건축 유적이어서인지 우리 사찰과는 모양이 크게 달랐다. 마지막 날 방문한 ‘고려박물관’은 이번 답사의 특별코스다.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 유일한 우리 문화재 박물관이다. 건물 앞뜰에는 낯익은 우리 문인석이 서 있었다. 1925년 일본으로 건너온 재일 교포 정조문씨가 40여년간 일본을 돌아다니며 모은 것들로 국보급 문화재도 수두룩하다. 정씨의 아들인 정희두씨는 박물관 입구에 자리 잡은 고려시대 석탑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고베(神戶) 농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 10년 넘게 주인을 설득해 사들인 것”이라며 “수집품 하나하나마다 이런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고려미술관은 영원히 뺏길 뻔했던 일본 내 우리 문화재들을 되찾은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차별받던 재일 교포들에게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줬고, 일본으로 하여금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 고치도록 한 것이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소중한 문화유산에 담긴 역사적 의의와 높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국내외 문화유적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1989년부터 ‘일본 속의 한국 문화 유적 답사’, ‘중국 실크로드 학술 문화 유적 답사’ 등의 행사를 잇달아 열어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 교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역사 문화 유적을 찾는 참가자들의 열기는 뜨겁다. 연령층도 대학생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상진(60)씨는 “일본 속의 한국 문화에 대해 책에서만 공부를 했는데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매우 뜻깊은 답사여행이었다”고 말했다. 4년째 답사에 참여하고 있는 한부자(59)씨는 “일본 문화의 일정 부분이 우리 문화의 도래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며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 원조는 백제 문화”라고 웃으며 말했다. 문화 유적은 과거의 흔적이며 이를 통해 현대문화의 정신과 정체성을 완성할 수 있다. 더욱이 문화 유적 답사는 선조들의 지혜와 삶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 문화유산의 높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한층 더 매력적이다. 글 사진 오사카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커버스토리] 독특한 외관 놀랐다, 멀티문화공간 반했다

    [커버스토리] 독특한 외관 놀랐다, 멀티문화공간 반했다

    정부 세종청사에도 봄은 온다.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공무원은 봄을 애타게 기다린다. 변변한 병원 하나 없어 세종청사 내 건강관리센터에 독감 환자가 몰리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던 기억, 허허벌판에 불어오는 공사장 먼지 섞인 겨울바람, 서울보다 평균 2~3도 낮은 기온, 제설 안 된 도로에서 차가 미끄러진 경험 등을 감안하면 꽃 피는 봄은 특히 가족과 떨어져 있는 ‘기러기 공무원’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올해 봄은 지난해와 다르다. 세종청사 주변 아파트가 완공돼 사람들이 입주했고 유명 커피 체인점을 비롯한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가 첫 봄을 맞았다. 이곳 옥상 식당에서 호수공원을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는 것은 아직까지 최고의 사치에 속한다.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양식이지만 춘곤증이 밀려오면 책만 한 수면제가 없고, 주말에는 아이에게 이만한 놀이터가 없다. 세종청사 곳곳에 넓은 주차장이 있음에도 주말이면 불법 주차의 유혹을 받게 되는 유일한 핫 플레이스, 국립세종도서관이다. 지난 2일 찾은 세종특별자치시 다솜3로 세종도서관의 외관은 책을 펼쳐놓은 듯했다. 4층 건물의 정면과 후면은 모두 유리로 이뤄져 있으며 실내 온도와 자연 채광을 위해 해의 방향에 따라 커튼을 친다. 언뜻 공간 효율성 측면에서 양 날개 부분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내부에 들어서면 의문을 풀 수 있는데 우선 바로 만나게 되는 로비는 4층까지 뚫려 있다. 열람실은 4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건축물의 가운데는 평평하고 양쪽 날개에는 층계가 있다. 계단마다 미술품 전시대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책상은 계단 아래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찾지 않는 다락방에 숨어 앉아 책을 읽는 듯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세종도서관은 3대 디자인상(레드닷, iF, IDEA) 중 올해 레드닷 디자인상 본상을 확정한 상태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디자인센터가 주관하는 상으로, 디자인의 혁신성과 기능성 등을 평가한다. 오는 7월 본상을 받은 작품끼리 대상을 두고 다시 한번 경쟁하게 된다. 세계적 디자인 정보 전문 웹진인 디자인붐(www.designboom.com)은 ‘올해의 세계 최고 도서관 10개’(TOP 10 libraries of 2013) 중 첫째로 세종도서관을 꼽았다. 미국 온라인 인테리어 잡지인 홈에디트(www.homedit.com)도 우수한 현대 건축 도서관 12개 중 하나로 세종도서관을 선정했다. 도서관의 총공사비는 1015억원으로 연면적은 2만 1077㎡다. 2011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공사를 했고 지난해 12월 12일 개관했다. 강동진 세종도서관 기획관리과 과장은 “책 모양의 건물 외관은 정보가 전송되는 이미지에서 착안한 것”이라면서 “주차장 등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기와 지열발전기를 이용해 전체 소모 전력의 약 30%를 충당하고 있으며 어린이 열람실과 성인 열람실을 열린 공간으로 이어 놓은 반면 어린이 열람실의 소음이 성인 열람실에는 잘 들리지 않도록 백색소음기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백색소음은 귀에 쉽게 익숙해지는 소리로 아이들의 말소리, 의자 끄는 소리 등 다른 소리에 대한 주의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건물은 지상 4층, 지하 2층 구조다. 1, 2층에 성인 열람실이 있고 3층에는 강의실과 도서관 업무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옥상이기도 한 4층 일부에는 2개의 식당이 있다. 3층에도 별도로 2개의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건물 정면에서 보면 지하 1층에 어린이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의 후면에서 보면 1층이 된다. 어린이 도서관 앞에는 놀이터와 쉼터 등이 마련돼 있고 자연스레 호수공원과 연결된다. 도서관 앞 호수공원은 경기 일산 호수공원보다 약간 크고 8.8㎞의 산책로와 4.7㎞의 자전거 도로가 있다. 성인이 호수 둘레를 걸을 경우 1시간가량 걸린다. 봄에는 매화나무, 라일락, 이팝나무, 영산홍 등이 만들어내는 꽃길이 인상적이다. 오전 5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70m까지 물을 쏘아올리는 희망분수 등 4개의 분수와 5개의 인공섬이 있다. 인공섬에서는 문화 축제 등이 열린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체험형 동화구연실’이다. 강사가 들려주는 동화에 따라 아이들이 몸 동작을 하면 다른 방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는 아이들이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연출된다. 독서통장을 통해 자신이 읽은 책을 기록할 수도 있다. 어린이 도서관은 책상을 놓은 일반 열람실과 별도로 신발을 벗고 방 안에 들어가 앉아서 책을 읽는 열람실이 있다. 이곳 방 안 벽에 마련된 나무 모양 의자는 아이들에게 인기다. 세종도서관은 주말에 특히 붐빈다. 주말의 하루 평균 방문 인원은 3700명으로 평일(2000명)의 거의 2배다. 가족과 함께 세종시에 거주하는 공무원들이 대부분 어린 자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고위 공무원 대다수는 혼자 생활한다. 세종시뿐 아니라 충남 전역에서 방문자가 온다. 세종도서관 측은 방문객들의 항의로 세종시 주민에게만 책을 대여해 줬던 제한을 없앴다. 세종청사에 있는 국립도서관이다 보니 정책도서관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개관일부터 100일 동안 가입한 회원 1만 5367명(방문객은 16만 5000명) 중 공무원은 30.4%(4679명)다. 퇴직 공무원 중에서 정책 멘토를 선정해 이들에게 공동연구실을 줄 계획이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공무원을 위한 독서토론이나 강연회 등도 운영한다. 박병주 도서관 서비스이용과장은 “세종청사의 중앙부처마다 있는 도서관과 연계해 정책에 필요한 자료를 공급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면서 “세종청사에도 무인도서반납기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국립도서관이 지방에 분관을 낸 것은 세종도서관이 처음이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 12일 개관일까지 2달 동안 내부 공사를 했다. 목표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도서관’이었다. 자연 채광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서가의 아래쪽에는 발광다이오드(LED) 등을 달아 책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장서는 총 8만권이다. 이 중 1만권은 기증받았다. 지하 1, 2층에는 총 330만권의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서고를 갖췄다. 또 곳곳에 공중전화 부스와 닮은 휴대전화 부스를 설치해 도서관 열람실 안에서 전화를 받으며 떠드는 경우를 크게 줄였다. 영화를 볼 수 있는 멀티미디어실은 1인석, 연인석, 가족석으로 나뉘어 있다. 가족석에는 대형 텔레비전과 소파가 준비돼 있다. 멀티미디어실과 어린이 도서관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한다. 일반 열람실은 아침 9시에 문을 열어 저녁 9시에 문을 닫는다. 도서 대출증은 국립세종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회원으로 등록한 후 도서관을 방문해 발급받을 수 있다.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세종도서관 개관 이후 가장 많이 대여된 책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신의 물방울(아기 다다시), 토지(박경리), 한강(조정래), 고구려(김진명), 정글만리(조정래), 미생(윤태호), 아리랑(조정래), 태백산맥(조정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순이다. 글 사진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글 사진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김종준 ‘저축銀 부당지원’ 중징계… 퇴출 위기

    김종준 ‘저축銀 부당지원’ 중징계… 퇴출 위기

    김종준(왼쪽) 하나은행장이 옛 미래저축은행 유상증자와 관련해 부당 지원 혐의로 중징계 통보를 받았다. 김승유(오른쪽)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이와 관련된 혐의로 경징계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하나은행과 하나캐피탈 등에 대한 추가 검사를 끝내고 김 행장에게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김 전 회장에게는 주의적 경고 상당의 경징계를 본인에게 사전 통보했다. 문책 경고 등의 중징계를 받은 은행 임원은 향후 3~5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된다. 임기 2년이 지난 김 행장은 지난달 20일 주총에서 1년 임기 연장이 확정됐지만 내년 3월 이후 하나은행장에서 물러나면 금융권 재취업을 할 수 없게 된다. 금감원은 김 행장과 김 전 회장의 이의나 반론을 듣고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징계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김 행장과 김 전 회장에게 저축은행 부당 지원과 관련해 상당한 문제점이 발견돼 징계를 사전 통보했다”고 밝혔다. 김 행장은 하나캐피탈 사장 시절 김 전 회장의 지시를 받고 옛 미래저축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했다가 손실을 냈다는 의혹 일부가 사실로 밝혀져 중징계가 예고됐다. 하나캐피탈은 2011년 저축은행 구조조정 당시 미래저축은행에 145억원을 투자했지만 60여억원의 피해를 봤다. 금감원은 하나캐피탈이 투자 과정에서 가치평가 서류를 조작하고 이사회를 열지도 않은 채 사후 서면결의로 대신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나은행은 김 행장에게 주의적 경고 등 경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문책 경고로 수위가 높아진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달 중순 이후 제재심의위원회가 남아 있는 만큼 중징계 결정이 확정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만에 하나 문책 경고가 내려진다고 해도 현재 은행장직 수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김 전 회장도 하나캐피탈 부당 대출에 관여한 사실 일부를 적발했다. 거액 대출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의 지시 없이 진행되기가 어렵다는 점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또 재직할 때 과도한 미술품을 구매해 검사 과정에서 지적받았다. 은행이 미술품 4000여점을 보유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고, 임직원 출신 회사를 통해 미술품이 거래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나은행은 650여개 지점에 2~3점가량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나머지 2000여점은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교도소, 허재호 車 들여보내고 취재진 막아 주고… 출소 순간까지 ‘황제 대접’

    교도소, 허재호 車 들여보내고 취재진 막아 주고… 출소 순간까지 ‘황제 대접’

    대법원이 지난 25일 ‘황제 노역’ 논란을 빚고 있는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제도 개선책 마련에 나선 데 이어 검찰이 26일 허 전 회장의 노역을 중단하고 미납 벌금 강제집행에 나섰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이 허 전 회장의 황제 노역에 일조했다는 여론이 일자 뒤늦게서야 수습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허 전 회장은 교도소를 나서는 순간까지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허 전 회장은 일반 교도소 수감자들이 200m가 넘는 교도소 안쪽 길을 걸어 나와 정문 경비초소를 통과해 출소하는 것과 달리 미리 준비한 개인 차량을 타고 취재진을 따돌린 채 교도소를 빠져나갔다. 교도소 측은 허 전 회장이 사라진 지 10분가량 지나서야 ‘수감자가 출소했다’고 밝혔다. 당초 검찰은 광주지검에서 조사를 받는 허 전 회장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에게 ‘교도소에서 취재할 수 있으니 자제해 달라’고 했지만 정작 교도소에선 언론 노출을 피하도록 꼼수를 썼다. 검찰은 이날 노역 중단 및 강제집행의 근거에 대해 “법리 검토 결과 노역장 유치 집행도 형의 집행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고 있고, 형 집행정지 사유 중 임의적 형 집행정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벌금이나 과료를 완납하지 못한 자의 노역자 유치 집행은 형의 집행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검찰은 허 전 회장의 경우 벌금형 미납에 따른 노역장 유치를 강제로 중단할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벌금이 강제집행 대상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검찰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허 전 회장이 자진 납부 의사를 밝힌 데다 은닉한 재산 정황을 포착한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허 전 회장에게 은닉 재산이 있다고 볼 근거가 있기 때문에 이를 파악한 뒤 벌금을 집행할 필요가 있다”며 “일당이 5억원에 달한다는 점,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센 점 등을 포함해 형 집행정지의 가능성, 적정성, 실효성 등에 대해 면밀히 숙고했다”고 설명했다. 허 전 회장은 이날 광주지검 특수부(부장 김종범)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재산을 팔아 벌금을 내겠다’며 납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허 전 회장 자녀 소유의 미술품 가운데 일부가 허 전 회장 소유라는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허 전 회장이 노역장으로 갈 때까지 벌금을 낼 경제적 능력 등에 대해 부실하게 검토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허 전 회장이 귀국한 지 5일이나 지난 시점에 형 집행정지를 결정하면서 30억원의 벌금이 탕감됐기 때문이다. 또 미납 벌금의 액수 등 명확한 기준 없이 여론의 질타에 밀려 강제집행에 나서면서 향후 비슷한 사건에 대해 어떠한 기준을 적용할지도 논란거리로 남았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황제노역’ 이어 ‘황제출소’…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이미 30억 탕감

    ‘황제노역’ 이어 ‘황제출소’…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이미 30억 탕감

    ‘황제노역’ ‘황제출소’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검찰이 이른바 ‘황제노역’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던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벌금형 노역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교도소 노역장에서 출소하는 순간에도 허재호 전 회장에 특혜를 베풀어 ‘황제 출소’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검찰청 공판송무부(부장 강경필)는 “관련 법리를 검토한 결과 노역장 유치가 집행된 수형자에 대하여 형 집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26일 밝혔다. 대검은 “노역장 유치 집행도 형의 집행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고 있고, 형 집행정지 사유 중 임의적 정지 사유에 해당하므로 향후 관련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검은 “벌금도 강제집행 대상”이라며 “현지 광주지검에서 구체적인 형 집행정지 관련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광주지검은 별도의 형 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소집하지 않고 곧바로 허재호 전 회장의 노역장 유치 집행을 정지했다. 허재호 전 회장은 이날 오후 9시 55분쯤 광주교도소 노역장에서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허재호 전 회장은 가족이 타고 온 차로 취재진을 따돌리면서 교도소를 빠져나가 교도소가 특혜를 베푼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에 앞서 허재호 전 회장은 광주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오후 9시 10분쯤 광주교도소로 돌아갔다. 검찰에 따르면 허재호 전 회장은 이날 광주지검 특수부에 피의자로 소환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미납 벌금액을 자진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광주지검은 허재호 전 회장의 재산 은닉 및 국외재산도피 의혹을 수사 중이다. 광주지검은 별도의 형 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소집하지 않고 곧바로 허재호 전 회장의 노역장 유치 집행을 정지했다. 허재호 전 회장은 이날 오후 9시 55분께 광주교도소 노역장에서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허재호 전 회장은 가족이 타고 온 차로 취재진을 따돌리면서 교도소를 빠져나가 교도소가 특혜를 베푼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에 앞서 허재호 전 회장은 광주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오후 9시 10분께 광주교도소로 돌아갔다. 한편 검찰에 따르면 허재호 전 회장은 이날 광주지검 특수부에 피의자로 소환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미납 벌금액을 자진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광주지검은 허재호 전 회장의 재산 은닉 및 국외재산도피 의혹을 수사 중이다. 허재호 전 회장의 미납 벌금에 대한 시효 진행은 지난 2012년 6월 14일 중단된 상태다. 벌금형의 시효는 3년이다. 이는 부동산 압류로 인한 것이며 압류 상태가 지속되는 한 시효는 진행되지 않는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한편 허재호 전 회장의 재산으로 의심되는 미술품 100여점 등 동산 일부가 검찰에 파악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실은 국세청에서 확보해 광주지검에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소송법 492조에 따르면 벌금이나 과료를 완납하지 못한 자에 대한 노역장 유치의 집행은 형의 집행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471조에는 징역, 금고 또는 구류를 선고받은 사람에 대해 일정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통상의 형 집행 정지는 건강, 고령, 출산, 본인 아니면 보호할 친족이 없는 때 등의 사정이 있을 때 허용된다. 다만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도 허용되는데 허 회장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보고 형집행을 정지한 사례는 지금까지 한차례 있었다. 그러나 벌금 대신 유치장 노역을 하는 ‘환형유치’와 관련해 형집행정지 사유가 된다고 판단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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