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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화첩 가짠가(외언내언)

    최근 공개된 혜원 신윤복의 「속화첩」이 진품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한다.이 주장에 의하면 「속화첩」은 간송미술관 소장의 혜원화첩에서 일부인물을 그대로 모사해서 재배치시킨 가짜그림이라는 것이다.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회화기법도 혜원의 작품세계와 전혀 다르며 낙관도 다르다고 한다. 이 보도를 접한 또 다른 전문가는 『인물묘사는 비슷하나 배경이 치졸하고 특히 벽돌의 묘사가 이상하다』면서 『명암처리도 서양화의 수법을 연상시킨다』고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다.고미술품의 감정은 사용된 종이의 질과 물감 및 그림의 화풍(구도와 필법)등으로 해낼 수 있는데 화풍이 다르다는 것이다. 혜원의 「속화첩」은 진짜라면 국보로 지정돼야 할 만큼 귀중한 것이다.혜원의 작품이 많이 전해지고 있지 않는데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혜원의 작품은 이미 국보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그 진위여부가 철저히 가려져야 할 것이다. 고미술품의 감정은 쉽지 않다.그래서 우리 고미술계에서는 가짜시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시중에 나돌고 있는 추사글씨의 90%이상,단원그림의 60%이상이 가짜라는 말도 떠돈다.그러나 고서화는 돈과 직결돼 있으므로 책임지고 말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전문가들은 상인들과 수장가들 사이에 끼여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마음만 모으면 진위여부는 가려낼 수 있다.미술사학계등 공신력을 인정받는 관련학계의 공개감정이 그 한 방안이 될 것이다.소장자측이 작품의 입수경위를 밝히는 것도 진위여부확인에 도움이 될 것이다.이 작품이 일본에서 입수된 것으로만 알려져 있을뿐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됐는지는 아직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이번에는 흐지부지 말고 진위가 정확히 밝혀졌으면 한다.
  • “국보급 고미술품”/신윤복화첩 되찾아왔다

    ◎동호인 모임 인우회,새달 3∼14일 덕원미술관서 전시/고려청자·「백자조문각병」 등 총 122점/문갑·책장 등 조선조 생활품도 선보여 세계 각급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점차 한국 미술품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등 해외에 유출됐던 우리의 귀중한 고 미술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자리가 동호인들의 노력으로 마련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 고 미술품 수집을 통해 결성된 40대후반의 고 미술품 동호인모임 인우회(회장 진이근)가 오는 6월3일부터 14일까지 덕원미술관(723­7771)에서 여는 「고미술정품전」이 그것으로 서화 57점,도자기 38점,민속공예품 27점이 선보인다. 전시품들은 인우회 회원들이 해외에서 수집한 귀환문화재가 대부분으로 혜원 신윤복(1768∼?)이 술을 마시고 그린 「취화첩」과 속화첩등 조선시대 회화와 고려청자·백자청화등 자기,그리고 문갑 책장등 조선시대 생활품이 다양하게 전시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미술품은 신윤복의 취화첩 6폭과 속화첩 10폭. 신윤복은 18세기 조선화단에독특한 화풍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연기를 써넣지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이번 전시에 나온 취화첩은 그림마다 시를 써놓고 곁에다 「술에취해 썼다」(취서)고 밝히고 있으며 작품에 「무진맹추」로 기록해 혜원이 54세때 그린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이와함께 속화첩 10폭도 현존하는 그의 풍속화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혜원풍속도」(간송미술관 소장)보다 먼저 것으로 추정돼 주목된다. 이 속화첩가운데는 혜원풍속도와 비슷한 화풍의 것도 4폭이나 들어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그보다 먼저 그린 혜원의 초기작이다. 이 속화첩에는 교미중인 개를 보고 있는 야릇한 모습의 부인과 처녀를 그린 것과 등을 든 소년을 앞세우고 세남녀가 밤 길을 가는 모습,기방에서 남녀가 얼싸안고 정담을 나누는 모습등 에로틱한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도자기는 고려시대 청자와 함께 18∼19세기의 백자청화가 주류를 이루어 청화의 원속에 점을 찍듯 그린 새와 각진 병 어깨 양쪽에 두마리의 다람쥐가 납작 엎드린 모습을 한 「백자청화원권조문각병」과 주둥이가 밖으로 휘어지면서 띠를 둘렀고 몸통에 원을 그려 그안에 매화를 간결히 처리해 여백의 공간과 원속의 매화가 아름답게 조화를 보이는 「백자청화매화문지통」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와함께 이층 책장과 주칠용문 3층장등도 실용성과 평민적인 개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목공예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 “안견의 산수화” 7점 새로 공개

    ◎이양재씨,「청산백운도」등 진작주장… 학계 논란/기존학설/“「몽유도원도」가 유일한 작품”/일부학자/“철저히 검증… 진위규명 해야” 몽유도원도가 안견의 대표작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진작이란 국내 학계의 안견론을 뒤집는 그림들이 공개됐다. 재야미술사연구가 이양재씨(40)와 중국미술품 수집가 이건환씨(50·우상헌대표)가 17일 공개한 「청산백운도」등 산수화 7점이 그것으로 모두 당대에 제작된 안견의 진작으로 추정되고있어 학계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개된 청산백운도는 가로 1백4㎝,세로 1백78㎝크기의 회견위에 호분과 석채를 써서 설채한 청록수묵산수도로 왼쪽 상단에는 「청산아아 백운유유」라는 제기와 함께 주경이란 서명및 「지곡안씨」란 낙관이 새겨져 있다.우측 하단에는 위쪽으로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4개의 수장인이 찍혀 있다. 이와함께 공개된 산수화는 도산전서등에 퇴계 이황이 안견의 산수화에 쓴 것으로 기록된 시의 분위기에 그대로 들어맞는 그림으로 6점 모두 가로 47.5㎝,세로 45.5㎝크기의 다듬이 장지위에 수묵으로 그려져있다. 이씨등 두사람은 이 가운데 청산백운도에 명기된 주경은 바로 안견의 별호이고 서체가 몽유도원도에 쓰여진 「지곡가도작」이란 안견의 서명 필적과 동일할뿐 아니라 주경이란 서명 하단에 「지곡안씨」라는 도장을 찍은 점을 들어 안견의 진작이라고 주장했다.또 우측하단에 찍힌 소장자들의 도장이 모두 당대 안견과 가까운 상류층을 암시하는 내용의 것들이어서 이 그림이 안견의 진작임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등은 이 그림과함께 공개한 산수화에 대해서도 이황이 제발한 시 구절이 산수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것들인만큼 기록에 전하는대로 안견의 산수화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내 안견론을 주도하고 있는 학자들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몽유도원도만이 안견의 화풍을 대표하는 유일한 진작」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번 기회에 명확한 검증을 거친 진위여부규명작업이 이뤄져야하며 이 그림들이 진작으로 판명될 경우 안견에 대한 재조명작업을 서둘러야한다』고 밝혔다.
  • 궁궐/서울정도 6백년 기념 문화재 재건사업

    ◎헐렸던 경복궁복원… 숭정전부터 “우뚝”/숭정문·회랑등과 함께 마무리공사 한창/자정전·태녕전등 「2단계 공사」 9월부터/운현궁은 고증없이 증축한 회랑 보수작업 착수 서울 옛 도성안에는 아직도 여러 궁궐이 남아있다.경복궁을 비롯,창덕궁·덕수궁·창경궁 등이다.역사교육장으로 때로는 휴식의 장소로 사랑받는 전통공간이 되어왔다.이들이 모두 조선의 궁궐임을 쉽사리 안다. 그러나 잃어버린 조선의 궁궐들을 아는 이들은 흔치 않다.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까맣게 모르는 조선의 궁궐,그것은 바로 경희궁(사적271호)과 운현궁이다.5대궁의 하나인 경희궁은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서울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다.모두가 헐리고 2채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궁궐터마저 철저히 파괴되어 버렸다. 그 경희궁이 제모습을 찾기시작했다.1907년 일제통감부가 중학교를 세우면서 헐린 조선의 궁궐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서울시가 정도6백년을 맞아 기념사업으로 추진한 경희궁 복원이 실현되어 정전인 숭정전부터 우뚝세워졌다.그리고 숭정문이 들어서고 회랑이 둘러쳐졌다.오는 9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궁궐터마저 파괴 일제가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왕기가 서린 경희궁을 해체하고 긴 식민통치를 펴는 동안 자취없이 사라진 경희궁.조국광복을 맞고도 한동안 염두에 두지 못한 경희궁복원이야기가 나오더니,지난 87년부터 궁터발굴이 진행되었다.그리고 착공 6년만에 잃어버린 궁궐모습을 떠올렸다.서울시가 이번 1단계 복원사업에 쏟은 예산만도 58억1천3백만원에 이른다. 서울시는 경희궁정비 2단계사업으로 오는 96년까지 편전인 자정전,임금의 초상화를 봉안했던 태령전,임금이 신하들을 접견한 흥정당 등을 복원한다.숭정권 뒤편에 터를 잡았던 자정전 자리는 명지대건축문화연구소가 확인한 바 있다.자정전은 기단지의 호석및 바닥전돌이 발굴됨으로써 이미 복원되고 있는 숭정전축과 일치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궁궐지」에 의하면 경희궁은 본래 외전과 내전이 좌우에 나란히 놓이고 전체적으로 동향을 하고있는 것으로 되어있다.정궁인 경북궁과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인다.경복궁은 남향으로 외전과 내전이 앞뒤에 구성되었다는 점과 다른 것이다.또 경희궁은 정문을 바른쪽 모퉁이에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이같은 점은 처음 이궁으로 지었던 창덕궁에서도 찾아진다.결국 의도적으로 경복궁보다는 격식을 덜 차렸다는 이야기가 된다.각 건물의 배치는 우선 외전의 경우 숭정전을 서쪽에 앉혀 동향을 바라보게 하면서 주위는 행각을 돌린 가운데 사방에 문을 냈다.숭정전 뒤에는 후전인 자정전이 있고 주변에 태령전이 위치했다.숭정전 오른편 즉 북쪽에 흥정당,그 주변에 왕이 책을 읽는 장소인 존현각과 석음각을 두었다는 것이다. ○58억들여 6년 공사 오른쪽 내전으로는 정침인 회상전,융복전,장락전이 있었다.그 주위에는 용비·봉상이라는 누각과 연못,연회장인 광명전을 배치했다.궁의 외부 출입문은 모두 5군데로 되어 있으며,동북쪽 모서리에 있는 흥화문이 정문이다.경희궁은 흥화문을 거쳐 내전 앞을 지나 서쪽 끝의 외전 정전에 도달하는 특수한 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희궁의 전각들은 거의 모두 헐려 없어졌으나 정전인수정전과 정문인 흥화문,후원의 정자 황학정이 남아있다.정전은 1926년 조계사에 매각되어 동국대 캠퍼스에 다시 세워졌다.정면 5칸,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 지붕을 한 주심포양식의 건물.1686년 처음 지은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흥화문 역시 1686년에 세워졌다.지난 1932년 일본인들의 절 박문사로 옮겼다가 지난 88년 제자리에 복원되었다.지난 1923년 민간인에게 팔렸던 황학정은 서울 사직공원 사직단 뒤편으로 옮겨 복원했다. 경희궁은 야주현대궐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그것은 정문인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명필이었고 글에서 광채가 나 밤에도 훤히 비추었다는데서 유래한다.흥화문의 현판글씨는 경복궁 동무광에 보관되어 있다. ○교육장으로 활용 서울시는 경희궁을 현재 건립중인 시립박문관과 연계,역사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경희궁 경내를 야외문화전시공간으로 조성하는 한편 궁중가례를 재현시켜 국내외인들에게 볼 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그리고 수시로 전통문화행사를 유치키로 했다.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사업 이외에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사적257호)복원계획도 정도6벡년 기념사업에 포함시켰다.시는 83억2천8백만원을 들여 지난해 토지(2천1백48평)와 건물을 매입,현재 보수작업을 펴고있다.40억3천7백만원을 들여 회랑을 신축하는 등의 보수공사를 오는 95년12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역사전통공간은 대원군유품을 비롯한 고미술품전시장,전통예절교육장,고건축 연구학습장,전통혼례식장,민속놀이마당으로 활용된다.이를 위해 72평의 회랑을 새로 짓고 마당 3백40평을 확장키로 했다.그리고 고증없이 최근에 증축한 부분을 제거,옛 모습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운현궁은 본래 흥선대원군의 사저다.조선 후기의 주택건축물로,고종이 임금자리에 오른 뒤 대폭확장하면서 궁으로 부르게 되었다.현재의 건물은 대원군이 섭정을 하던 1863∼1873년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담에는 4곳의 대문을 설치했다.그 안에는 아재당을 비롯 사랑채인 노안당,안채인 이로당,노안당,선조들을 모신 사당 등을 두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음산한 겨울날 숨을 거두는것으로 시작되는 김동인의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무대이기도 하다.파락호 시절에 겪었던 수모와 시련,이를 극복하고 섭정의 권좌에 도달한 대원군의 체취가 서린 역사현장이다.그래서 운현궁은 풍운의 근세사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 ▷경희궁 약사◁ ▲1620년(광해군12년)이궁으로서의 경덕궁을 지어 궁궐 모습을 갖춤 ▲1623년 인조가 즉위하면서 정사를 보기 시작함 ▲1654년(문종8년)숙종이 이 궁의 회상전에서 태어남 ▲1688년(숙종14년)경종이 이 궁의 융복전에서 태어남 ▲1760년(영조30년)궁명을 경희궁으로 개칭함 ▲1777년 정조가 이 궁의 숭정문에서 즉위함 ▲1835년 헌종이 숭정문에서 즉위함 ▲1907년 일제 통감부가 궁 서쪽에 중학교를 세움 ▲1915년 경성중학교(서울고 전신)가 궁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파괴 ▲1922년 전매국 관사용지로 궁터를 파는 등 4만1천여평으로 축소됨 ▲1923∼32년 황학정,숭정전,회상전 뿔뿔이 이축됨 ▲1974년 서울고 이전과 더불어 부지를 현대에 매각 ▲1984년 서울시가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교환형식을 빌려 부지를 확보함 ▲1985∼87년 경희궁 복원계획에 따라 궁지발굴(단국대) ▲1987년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던 흥화문을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복원 ▲1989년 숭정전 발굴(명지대) ▲1990∼94년 숭정전,숭정문,회랑공사
  • 그림자인형극 자료 전시관 “북적”/독일 전용공간에

    ◎이집트·중국등 소도구 수백점/“매혹적 신비감”… 유럽에 큰 반향 전세계에 있는 초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이 파리에 모였다. 파리의 그랑 팔레 미술관은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19세기 후반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모두 모아 「인상파와 그 기원」이라는 대대적인 기획 전시전을 지난달 23일부터 열고 있다. 세계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상파의 마네·모네·피사로·세잔·르누아르·드가등 화가들 작품 1백80여점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전시되는 그림들은 사물을 구조에 따라 묘사하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방법을 과감히 탈피하고 눈에 띈 순간의 모습을 그리려 시도했던 1859년부터 1869년까지 10년간의 인상파 초기화가들의 작품들.당시 아카데미와 살롱에서 배척됐던 「혁명적」작품들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모스크바,스톡홀름등에 소장돼 있는 이 미술품들이 1백40여년만에 집결된 셈이다. 그랑 팔레의 이번 전시회 기획 취지는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명을 하는 것이지만 파리가 예술의 중심임을 다시한번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15세기에는 피렌체,17세기에는 로마가 유럽 미술의 중심지였으나 19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파리가 미술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몽마르트의 테르테르 광장에서 무명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도 화실을 박차고 나온 인상파 화가들이 정착시킨 새 풍속이다. 전시되는 작품들 중에는 초상·풍경·바다경치·생활정경·정물·나체등을 그린 에두아르 마네의 「젊은 부인의 초상」「풀밭위의 식사」「스페인의 가수」등이 있다.마네는 매일 하오 2시부터 2시간동안 비평가인 보들레르와 튈르리 공원을 산책하면서 자신의 미술세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보들레르로부터 「현대적인 생활을 하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또 「인상파」라는 이름을 낳게 한 클로드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등이 전시돼 인상파의 역사를 알수 있게 해준다. 부드러운 터치와 밝고 감미로운 색깔로 주로 인물을 그렸던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한길」「목욕장 풍경」등과 드가의 판화작품들도 볼 수 있다.이 전시회는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들이 마치 다시 모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새로운 소재와 화법으로 기존 화단에서 배척받아 살롱에 등장하지 못하고 「낙선자 전시회」라는 특별전시회에 전시됐던 작품들이 살롱에 다함께 등단하는 것이다.
  • 초기인상파 그림 파리에 모였다/팔레미술관

    ◎마네·드가등 명화 1백80점 특별전 전세계에 있는 초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이 파리에 모인다. 파리의 그랑 팔레 미술관은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19세기 후반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모두 모아 「인상파와 그 기원」이라는 대대적인 기획 전시전을 23일부터 열고 있다. 세계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상파의 마네·모네·피사로·세잔·르누아르·드가등 화가들 작품 1백80여점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전시되는 그림들은 사물을 구조에 따라 묘사하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방법을 과감히 탈피하고 눈에 띈 순간의 모습을 그리려 시도했던 1859년부터 1869년까지 10년간의 인상파 초기화가들의 작품들.당시 아카데미와 살롱에서 배척됐던 「혁명적」작품들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모스크바,스톡홀름등에 소장돼 있는 이 미술품들이 1백40여년만에 집결되는 셈이다. 그랑 팔레의 이번 전시회 기획 취지는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명을 하는 것이지만 파리가 예술의 중심임을 다시한번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15세기에는 피렌체,17세기에는 로마가 유럽 미술의 중심지였으나 19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파리가 미술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몽마르트의 테르테르 광장에서 무명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도 화실을 박차고 나온 인상파 화가들이 정착시킨 새 풍속이다. 전시되는 작품들 중에는 초상·풍경·바다경치·생활정경·정물·나체등을 그린 에두아르 마네의 「젊은 부인의 초상」「풀밭위의 식사」「스페인의 가수」등이 있다.마네는 매일 하오 2시부터 2시간동안 비평가인 보들레르와 튈르리 공원을 산책하면서 자신의 미술세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보들레르로부터 「현대적인 생활을 하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또 「인상파」라는 이름을 낳게 한 클로드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등이 전시돼 인상파의 역사를 알수 있게 해준다. 부드러운 터치와 밝고 감미로운 색깔로 주로 인물을 그렸던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한길」「목욕장 풍경」등과 드가의 판화작품들도 볼 수 있다. 이 전시회는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화가들이 마치 다시 모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새로운 소재와 화법으로 기존 화단에서 배척받아 살롱에 등장하지 못하고 「낙선자 전시회」라는 특별전시회에 전시됐던 작품들이 살롱에 다함께 등단하는 것이다.
  • 조선 청화백자 24억에 팔렸다/뉴욕 크리스티 경매소서

    ◎도자기 경매사상 세계최고가 기록 조선조초기인 15세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보상당초문 접시(지름 21.9㎝)가 세계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가인 3백8만달러(한화 24억6천만원)에 팔렸다고 뉴욕의 크리스티경매소가 28일 밝혔다. 크리스티경매소측은 지금까지 국제경매에 부쳐진 한국 예술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이 도자기가 지난 27일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가격인 30만∼40만달러의 10배에 달하는 가격에 팔려 전세계의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도자기가 형태가 좋고 짜임새가 우수할 뿐만 아니라 무늬도안이 매우 선명하고 드문 모양』이라면서 높이 평가했다. 지금까지 한국 미술품으로서 국제경매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것은 지난 91년 10월 1백76만달러(한화 14억원)에 낙찰됐던 14세기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였다. 또한 도자기중 세계 최고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은 지난 92년 12월에 2백86만달러(한화 23억원)에 팔린 중국 명대의 항아리와 그 덮개였다. 경매소측은 이번에 팔린 도자기가 현존하는 같은 모양의 도자기 3점 가운데 하나로 나머지 2점은 일본 오사카(대판)의 동양도자기박물관과 야마가타(산형)현의 데와자쿠라박물관에 각각 소장돼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조선조 도자기가 사상최고시세로 팔려나간 것은 예술품경매시장에서 한국도자기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크리스티경매소는 설명했다. 이 당초문접시의 낙찰자 인적사항은 크리스티 경매장 관례에 따라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매장 주변에서는 한국인,일본인,또는 한국계 미국인 등 동양계일 것으로 추측했다. 이 경매품의 가격은 두 명의 전화응찰자가 경쟁하는 바람에 더욱 고가로 낙찰됐으며 세계 최고가를 기록하자 경매장의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번 경매에서 관심을 모았던 또 다른 작품은 15∼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어문병으로 예상가격 8만∼10만달러였던 이 병은 일본인에게 18만9천달러에 팔렸다. 이날의 경매는 한국 미술품 단독 경매였으며 청자·백자·분청사기등 도자기와 금속공예품·수묵화와 현대회화로 박수근 도상봉 이응로 김흥수 이대원씨등의 작품 1백4점이 출품됐다. 현대화가들의 개수양 대부분 예상가를 웃도는 값에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 “건전문화 육성” 기업이 밑거름/문화·예술 분야별 지원실태

    경제성장과 문화·예술의 발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문화·예술이란 자양분의 공급없이는 경제가 일정수준이상 커나가기 어렵고 경제적 뒷받침없이 문화·예술만 홀로 성장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동안 경제성장에 주력하느라 문화·예술 분야를 소홀히 했으며 대표적 경제주체인 기업들도 이 분야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던게 사실이다.이제 국내기업들이 문화·예술 투자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을 계기로 기업체들의 지원현황을 학술·문학·연극·음악·미술·무용등 분야별로 살펴 본다. ◎학술/대우·현대 연구지원·총서발간 활발/문학/교보·삼성,문인발굴에 창작지원도/연극/삼풍­실험극장 결연 “이상적 만남”/음악/금호·린나이,연주단체운영 돋보여/미술/10여개사 갤러리 운영/무용/적립성기금지원 늘어/홍보·산업성 치중 지양… 내실 바람직 ▷학술◁ 기업의 학술활동 지원은 그동안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던 분야이면서도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삼성 현대 대우등 3대그룹이 설립한 삼성미술문화재단·대우재단·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을 비롯,쌍용의 성곡문화재단,럭키금성의 연암문화재단,동아그룹의 백제문화개발연구원등 대기업 산하 각종 단체가 모두 특징적인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학술지원 사업의 대표주자는 대우재단.학계에는 『아직도 대우재단 연구기금을 받지 못한 교수가 있느냐』는 우스개가 퍼져있을 만큼 지금까지 9백60건의 연구에 대해 지원을 했다.이 연구과제가 책으로 만들어져 나온 것만 해도 2백60여권에 달한다.책의 권수가 문제가 아니라 이 책 대부분이 우리학계에 꼭 필요하되 사업성이 없어 출판업계에서는 외면되었던 내용이라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민음사가 출판을 맡아 인문과학은 2천권,자연과학은 1천권을 찍는데 재단이 상당분량을 구입해 공공도서관과 연구기관에 기증했다. 아산재단도 연구개발지원 및 출판에 열심이다.이 재단은 특히 중국과 동유럽등 특정국가나 지역에 대한 연구신청을 받아 반드시 현지조사연구를 하게한뒤 「아산재단 연구총서」라는 이름으로 출판한다.지금까지 러시아 중국과 아세안·동유럽 지역을 대상으로 한 10여권의 총서가 나와 연구는 물론 시장개척등 실제적인 분야에 도움을 주고 있다. 삼성미술문화재단은 학술부문에서 역사학과 고고학·문화재 발굴 분야를 중점지원하고 있다.이같은 지원은 호암박물관 및 호암미술관과 협조체제를 이루어 문화재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문학◁ 문학의 경우 이벤트성이나 전시효과와는 거리가 먼 장르의 특성 때문인지 기업의 투자가 별무한 상태다. 이 분야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벌이는 문화재단으로는 대한교육보험의 대산재단과 삼성의 삼성미술문화재단을 꼽을 수 있다.대산이 문학상공모와 함께 청소년문예캠프등 문인의 조기발굴에 치중한다면 삼성은 장편문학 발전에 초점을 맞춰 신진작가 발굴과 창작활동 지원에 나서고 있는게 특징이다. 이와 함께 대산은 지난 2월 제정한 청소년문예공모에서 선발된 예비문인들을 기성문인과 함께 5일동안 문예캠프에 참가시키고 최우수자 2명에게 대학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키로 한 것도 문인 조기발굴차원에서 관심을끌고 있다. 삼성재단의 경우 문화투자의 하나로 다른 장르와 맞물려 문학지원을 하고 있지만 다른 기업이 선뜻 나서지 않는 분야,특히 장편문학에 중점을 두고 있는게 두드러진다. 지난 71년 도의문화저작상을 제정,소설·논문 부문에 상을 주다가 지난 75년 희곡을 신설했다.또 지난해 명칭을 삼성문예상으로 바꾼뒤 장편동화부문을 추가했다.이 문학상이 배출한 문인은 60명에 이른다. ▷연극◁ 기업체의 지원이 전반적으로 저조한 분야다.일부 기업이 간헐적으로 연극활동을 지원하고 있지만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또 계속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도 꾸준히 지원한다기 보다 홍보효과만 겨냥하는 사례가 많아 연극활동의 내실을 북돋우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이같은 상황에서 몇몇 극단은 기업의 지원을 활용해 짭짤한 실익을 얻고 있다. 지난해 9월 18년동안의 운니동시대를 마감하고 압구정동에 전용극장을 마련한 극단「실험극장」(대표 김동훈)이 대표적인 경우다.지난 91년 삼풍(당시 케임브리지멤버스)과 자매결연한 뒤 매년 6천만원씩을 지원받고 있다. 특히 삼풍측의 이사가 극단의 운영위원으로 참가,경영자문역까지 맡고 있어 기업과 연극의 이상적인 만남이란 평을 듣고 있다. 또 한샘과 대농·한강등 3개 기업은 지난해 뮤지컬 전문 제작단체인「에이콤」을 설립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한샘은 앞으로도 사무실운영비등 3억여원에 이르는 연간경상경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스포츠서울이 동양맥주와 공동주최하는 「OB스카이 대학연극제」도 기업과 문화의 성공적인 협조사례로 꼽힌다.OB는 지원금을 올해부터 최고 2천만원선으로 늘려 신인연극인을 발굴하는 순수아마추어 연극축제를 더욱 가꿔나간다는 방침이다. 「서울어린이 연극상」을 2년째 지원하고 있는 영창악기제조도 지난해 2천만원에 그쳤던 지원규모를 올해부터 대폭 확대,명실상부한 어린이연극축제로 키울 계획이다. ▷음악◁ 기업의 음악분야에 대한 투자는 크게 ▲연주단체 운영 ▲공연장 운영 ▲연주단체에 대한 지원 ▲연주회 주최와 지원으로 나눌 수 있다. 「연주단체 운영」은금호그룹의 금호현악4중주단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국내정상급 연주자들로 구성된 이 4중주단은 지방도시 위주로 연간 25회이상 연주회를 열어 균형있는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금호재단은 앞으로 「스트라디바리우스」등 세계적인 명기들을 구입해 연주자들에게 빌려주고 전용 연주장을 만드는 등 이 4중주단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릴 계획이다.주방기구 생산업체인 한국린나이의 린나이콘서트밴드,도서출판 삶과 꿈의 「삶과 꿈 싱어스」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공연장 운영」은 삼성그룹의 호암아트홀과 두산그룹의 연강홀이 우선 눈에 띈다.음악전용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나 음악계의 공연장란을 상당 부분 덜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연주단체 지원」의 예는 쌍용그룹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지원에서 찾을 수 있다.그러나 쌍용의 경우 올해까지는 4억원을 지원하나 내년 이후의 지원계획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대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청되는 분야이다.반면 서울팝스오케스트라는 중소기업인 동주제지로 부터 연습장과 사무실을 무료대여받아 큰 짐을 덜고 있어 비교가 되고 있다. ▷미술◁ 미술분야에 대한 기업의 지원은 문화재단을 설립해 그 기금으로 각종 관련 사업을 벌이는 형태와,미술관·갤러리를 지어 전시공간을 빌려주면서 미술품 컬렉션을 통해 수익사업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삼성·금호·동양·동양화학·미원·베링거잉겔하임·대유등이 재단을 설립해 미술문화 지원에 나서는 기업들인데 아직 그 수가 10곳에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이 문화재단들은 나름대로 특징을 살려 국내 미술 발전에 한몫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삼성미술문화재단은 미술관련 학술단체 지원,금호문화재단은 청년·지역작가 발굴,대유문화재단은 강연회및 워크숍을 열어 미술교육의 장을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갤러리는 삼성 호암미술관과 대우 선재미술관을 비롯해 선경 워커힐미술관,금호 금호갤러리,동아 동아갤러리,동양 서남미술전시관,벽산 갤러리아트빔,동양화학 송암미술관,극동 새갤러리,신동아 63갤러리,한원 한원미술관등 10여곳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업의 미술공간은「예술부문 지원」이라는 본래 목적과 다르게 운영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 미술계의 지적이다.즉 미술애호가인 기업주,또는 그 가족이 미술품 수집을 목표로 설립한다는 것.더욱이 일부 기업이 백화점에 낸 화랑이나 갤러리는 상업성을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무용◁ 지난해부터 적립성기금 지원이 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은행을 중심으로 국민은행·농협중앙회·주택은행·중소기업은행·외환신용카드·삼경화성·세종합동법률사무소등이 국립발레단후원회를 결성,1억4천여만원의 기금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인 예. 이 후원회는 정기공연외에도 단원들의 해외연수와 외국 유명안무가의 초청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해외연수의 경우 올해 1차로 국립발레단의 주역무용수인 한성희씨를 미 샌프란시스코발레학교에 보냈으며 수혜자를 단계적으로 늘려나가기로 했다. 또 제일기획(대표 윤기선)은 무용단을 중심으로 한 전통예술단을 지난달 창단했다.이 예술단은 민속무용을 비롯,매년 2∼3회의 공연을 가지며 장기적으로는 안무로테이션제 및 고정레퍼토리제를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 수익사업 열올리는 러 박물관/정부지원 끊겨 보수공사 엄두도 못내

    ◎기념품점 개설·해외자본 유치 안간힘 소연방 붕괴이후 문화관련 예산의 대폭삭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 박물관들이 옛 명성유지를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다. ○명성유지 골머리 슬라브문화의 정수를 간직,세계미술사와 예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명성을 지켜온 이들 박물관들도 시장경제라는 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사회의 상업박물관처럼 변신해 가고 있다. 이들 박물관들은 정부 지원이 중단되자 진행중이던 보수공사는 물론 교육·연구·탐사활동도 중단하고 운영기금유치와 새로운 수익사업개발등 박물관 경영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페테르부르크의 국립러시아박물관은 소장품의 해외전시와 박물관내의 기념품상점운영으로 얻어진 돈을 모두 박물관보수공사를 위한 특별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박물관내 상점에선 소장그림의 복사본과 각종 기념품,미술품과 문화재의 사진이 박힌 35달러짜리 티셔츠등을 팔고 있다. ○티셔츠까지 팔아 이 박물관에서 현대미술을 담당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보로프스키씨는수익사업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아직은 예산부족으로 각종 전시관 보수·확장공사등이 중단된 힘든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예전같으면 천박한 짓으로 비판받고 엄두도 못냈을 수익사업들이 러시아의 거의 모든 박물관들로 확산되고 있다.노브고르드 예술박물관의 경우 지난해 여름 거의 모든 소장품들을 해외전시하는 통에 정작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헛걸음을 해야만 했다. 가장 일반적인 재정곤란 타개책중 하나는 해외지원유치.허미티지박물관의 경우 네덜란드정부로부터 1백20만달러의 시설개선자금을 유네스코를 통해 얻어냈다.이 자금은 소장품보전및 안전시설,조명 등의 개선에 쓰일 계획이다. 예산부족에 따른 해외예술품 구매 중단에 대한 타개책은 주로 개인소장가들의 기증과 그동안 국가적인 이미지등의 이유로 전시되지 못한채 보관창고 속에서 잠을 자야만 했던 약탈예술품들의 양성화.허미티지측은 세계적인 무용가인 러시아출신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로부터 피카소의 작품을 기증받았고 푸신킨박물관은 약탈문화재의 양성화와 기증자의이름을 전시되는 소장품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러 전역으로 확산 푸신킨박물관의 경우 개인과 박물관소장 약탈문화재등을 모아 2만2천여점의 질버쉬타인컬렉션,로첸코프컬렉션,아르메니아의 그림과 금동제품등의 코너를 새로 신설하는등 큰 효과를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박물관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계속 명성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그러나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백곳의 군소 박물관들은 보전및 안전관리시스템의 부족등 열악한 상황에다 날로 심해져 가는 전문적인 미술품절도,달러가 벌리는 것이면 무엇이나 팔아넘기는 상황에서 상당수가 명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 백제인의 도교사상(백제를 다시본다:6)

    ◎금동향로에 「불로장생의 신선관」 재현/풍요로운 경제생활… 느긋한 심성반영/궁남지섬을 신선 사는 방장산에 비유/“불종율령” 무령왕릉 지석은 웅진시대 도교신앙 입증하는 귀중자료 백제인의 성정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지형적,지리적 입지조건이다.백제는 고구려나 신라처럼 산악지대를 터전으로 하여 자라난 나라가 아니었다.삼국 중 백제는 가장 넓은 평야지대를 끼고 있었고 또한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안선은 중국을 향해 거의 무방비상태로 개방되어 있었다.백제가 농업생산력이나 대외교역면에서 선두를 차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이것은 백제 역사의 전개에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짐승과 화초 길러 백제인의 느긋한 심성은 결국 여유있는 경제생활의 산물이었던 것 같다.오늘날 남아 있는 백제시대 유적이나 미술품을 대하면서 우리들이 한결같이 감명을 받는 것은 그들이 진정 풍류와 멋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사비도성의 진산인 부소산성 동쪽 산봉우리에는 영일루가 있었는데 왕과 신하들이 멀리 계룡산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았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실로 이곳에서는 계룡산 연천봉과 남쪽으로 가림산성(성흥산성),구룡평야 등 훌륭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또한 백제 지배층은 부소산성 바로 밑을 흐르는 금강을 마치 하나의 내해,호수쯤으로 생각하여 이곳에서 북과 거문고를 타며 연유를 즐겼다. 백제인의 풍류와 멋을 잘 보여주는 것은 그 궁원문화이다.「삼국사기」를 보면 백제가 왕궁에 연못을 파서 즐긴 것은 한성시대인 진사왕7년(391년)의 일이었다.이때 궁실을 중수하고 못을 파서 인공산을 만들어 이상한 짐승과 화초를 길렀다고 한다.그뒤 웅진시대인 동성왕22년(500년)봄에도 궁성 동쪽에 높이가 다섯 발이나 되는 임류각을 세우고 못을 파서 진기한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현재 부여에 남아 있는 궁남지는 사비시대의 전성기였던 무왕35년(634년)3월에 물을 20여리나 끌어들여 만든 것이었다.기록에 의하면 못언덕에는 사방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속에 인공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에 비겼다고 한다.뒤에 못가에 망해루를 지어 궁중 연회장소로 이용했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백제에 도교사상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증언해 준다.고대 중국의 도가사상에서는 특히 불로장생설이 유행하여 동해(우리의 서해)의 삼신산에 신선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신선이 사는 세개의 산이 바로 방장산과 봉래산,그리고 영주산이다.그러니까 궁남지에 만든 인공섬을 방장선산으로 여겼다는 것은 도교사상의 영향임에 틀림없다.사실 도교사상은 비교적 일찍부터 백제에 들어온 듯하다. 한성시대의 근소고왕은 남쪽으로는 마한을 정복하고 북쪽으로는 황해도방면에서 고구려군대를 크게 무찌른 일세의 정복군주였다.근초고왕 24년(369년)장군 막고해는 승전의 여세를 몰아 북진을 계속,마침 수곡성(황해도 신계)북쪽에 이르렀을 때 태자 근구수에게 더 이상의 추격을 중지할 것을 건의했다.막고해는 태자에게 이르기를 「일찍이 도가의 말을 들으니,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그칠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했습니다.지금 얻은 것이 많은데 어찌 다시 구할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했다.이로 미루어 볼때 당시 백제의 지배층 사이에서는 노자의 「도덕경」이 읽혀졌던 것 같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지석은 웅진시대 백제의 도교사상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즉 무령왕비의 지석 끝에 음각된 매지문에는 「불종율령」(율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란 문구가 있는데 이는 도사들이 주문을 외울때 마지막 대목에 으레 따라붙은 「급급여율령」이란 구절을 백제식으로 고친 것으로 짐작된다.하긴 도교 용어가 보인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도교사상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일지도 모른다.학계 일각에서는 이 매지권의 사상적 근거를 유교사상에서 찾고 있다. ○도교제도를 제정 그렇지만 지석과 함께 출토된 두개의 구리거울,즉 의자손수대경과 방격규구신수경의 명문에 「상유선인 불지로」(위에 선인이 있어 늙음을 모른다는 뜻)라는 문구가 있는 점을 아울러 고려할때 역시 「불종율령」이란 문구는 6세기초 도교신앙의 실태를 엿볼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본래 도교는 중국의 민간신앙에서 나온 종교이다.거기에는 음양오행설이나 신선사상,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노장의 은둔사상등 갖가지 요소가 뒤섞여 있다.그것이 남북조시대인 5세기경에 불교의 자극을 받아 경전과 사원(도관)이 만들어지고 전문 사제직으로 도사제도가 제정되면서 정식 도교로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백제에 도교의 요소는 침투해 들어왔다고 생각된다.장군 막고해가 「도덕경」을 인용한 것은 그 단적인 증거이다.불로장생과 현세에서의 부귀와 향락을 추구하는 도교는 고구려와 신라에서도 널리 유포되었다.당시는 삼국간의 항쟁이 격화된 때였으므로 도교는 불교와는 다른 측면에서 백성들에게 안심립명의 위안을 주는 심리적 효과가 컸을 터이다. 도교사상은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긴 백제인의 기질에 잘 들어맞는 점이 있었다.더욱이 지배층이나 일반국민은 가릴것 없이 장기간의 전란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던 만큼 장생불사하면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도교의 가르침은 그 자체 유토피아사상에 다름 아니었다.사비시대에 불교와 더불어 도교가 크게 융성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그리하여 그것은 의장이나 제작 기법으로 볼때 도교적 요소가 짙은 궁남지와 같은 정원문화를 창출하게 되고 또한 독자적인 조형미술을 꽃피우게 했다. ○조형미술 꽃피워 오래 전에 부여군 규암에서 발견된 이른바 산경무늬 벽돌만 해도 품자형의 세 봉우리가 중첩하고 산 밑에는 암석이 돌기,산 위에는 수목이 총립,한 가운데는 집 한채,오른쪽에는 도사로 짐작되는 한 사람이 새겨져 있다.이는 분명히 삼신산과 도관,도사를 표현한 것으로 그자체 유현한 도교적 세계관이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지난해 연말에 기적적으로 발견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는 사비시대 백제의 도교신앙을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이 향로의 몸체를 덮고 있는 뚜껑부분은 삼산형의 문양장식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다시 다섯개의 산을 들리고 산꼭때기에 앉아있거나 날아가는 새모양을 조각해 놓았다.바로 도교의 삼신산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 향로를 명명함에 있어서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을 부가한 것은 적절하다고 하겠다.실로 이 금동제향로는 사비시대 도교의 풍부한 상상력과 환상적 표현주의가 한껏 발휘된 최고의 명품이 아닐수 없다. ◎6세기 고구려에 처음 들어와/삼국유사에 기록… 한때 유교·불교보다 우위 도교의 본바탕은 신선사상이다.거기에 노장사상과 유교·불교와 함께 민속신앙의 여러 요소들을 수용하여 종교로 발전한다. 신선사상은 기원전 3세기쯤 중국에서 생겨났다.산악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신선사상은 결국 도가사상으로 태어난다.이 도가사상은 도교가 종교형태를 띠고 나타나기 이전에 존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그래서 도가사상은 도교가 흡수,조절한 주요 사상이기는 하나 본래부터 도교가 도가사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도교는 5세기 쯤에 불교의 체제와 조직을 모방,비로소 종교형태를 갖춘다.도교가 추구하는 궁국적인 목적은 불로장생이다.특히 그 원류가 신선사상에 연결되어 건강관리를 중시하게 되었다.결국은 질병치료에서 불로장생에 이르는 도교의학을 성립하는데,그 극치가 이른바 김단이다.특히 금단에서 이끌어낸 물리화학적 방술의 단학을 도법 수련의 한 방편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에 도교가 들어온 기록은 삼국유사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AD624년(영류왕7년)에 당나라 고조가 도사를 파견,천존상을 보내고 「도덕경」을 강론케 함으로써 영류왕이 나라사람들과 같이 들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그 뒤에 AD640년 실권자 연개소문의 건의로 당나라로부터 도사 8인과 「도덕경」을 다시 구해와 도교를 유교와 불교보다 우위의 종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 가운데 백제에 대한 도교유입기록은 거의 없다.백제의 경우 도교적 정황이 약간은 풍겨왔다.그런 가운데 충남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백제 도교의 실상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는 주요자료로 부상했다. 어떻든 도교는 삼국과 고려를 거쳐 조선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평정과 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종교로 이해되었다.
  • 예술품을 컴퓨터로 관리/삼성데이터시스템,화상DB 가동

    삼성데이터시스템(대표 남궁석)은 최근 골동품·그림 등 예술품을 컴퓨터로 관리하는 「소장품화상관리시스템(ARTIS)」를 개발,2일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이번 시스템개발로 소장품을 수천점씩 갖고있는 각급 박물관들도 도입을 서두를 것으로 보여 문화재컴퓨터관리가 보편화될 전망이다. 이 시스템은 미술품 등을 화상DB(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품목별 작가와 가치평가,보존상태도 모두 DB화 했다. 이는 클라이언트/서버 컴퓨터환경에 사용되는 화상정보시스템으로 관계형 DB시스템(RDBMS),랜(LAN),이미지압축 및 복원기술 등을 이용,기존 문자정보는 물론 지금까지 중앙집중제어방식 환경에서 처리가 어려웠던 그래픽과 이미지정보를 그래픽사용자환경(GUI)에서도 편리하게 처리하도록 돼있다. 특히 응용프로그램을 쉽게 개발하기 위해 모든 구성요소들을 도서관처럼 목록화 했고 사용자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대응할 수 있는 엔드유저(END USER)컴퓨팅환경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사용자들은 필름·슬라이드·스캐너 등을 이용,새로운 소장품을 이미지화시켜 이를 문자정보와 함께 DB화 하고 화면이나 인쇄물로 검색을 할 수 있다. 삼성은 이 시스템을 우선 삼성미술재단에서 소장중인 예술품을 관리하는데 이용하고 앞으로 화상 및 음성정보를 이용한 안내시스템과 CD­ROM을 이용한 멀티미디어시스템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 “서정성 풍성”… 러시아 풍경화전

    ◎5·18기념재단,오늘∼8일 공평아트센터서/60∼70년대 대표화가 21명 40점 선봬 그동안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러시아 미술품들을 대거 국내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5·18기념재단(이사장 김동원 전남대교수)이 2일부터 8일까지 공평아트센터에서 마련하는 「러시아 회화전」. 이 회화전은 민간차원의 독자적인 러시아미술전으로는 처음 열리는 것으로 지난 60∼70년대 당시 러시아의 대표적 사실화가 21명이 그린 풍경화 40점이 선보이게 된다. 5·18기념재단은 대학교수 목사 국회의원 재야인사등 5·18항쟁의 주역들이 모여 5·18항쟁의 진상규명과 정신계승을 위해 장학사업과 연구기관 설립을 목표로 지난해 설립한 단체. 이번 전시회는 재단 회원들이 그 첫 문화사업으로 러시아 4대 미술관의 하나인 트레차코프 미술관(모스크바소재)측과 협의끝에 이 미술관 소장 작품을 국내에 전시키로 합의한 행사여서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시작가들은 구소련 인민예술가 유리 포드랴스키,안드레이 안드레이비치 밀르니코프,드미트리 난발잔,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이고세프,비체스라프 플라누예비치 자고넥등을 포함해 모두 당시의 대표적 풍경화가들. 이들은 모두 국내에선 생소한 작가들이지만 일방적인 서구 현대미술의 추종이 아닌 향토적 서정성을 짙게 담아내는 민족적 사실주의 경향의 화가들로 지난 30년대 우리나라의 향토적 서정주의와 같은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가운데 들꽃이 점점이 묘사된 언덕길가를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맑은 정취가 배어나오는 리지아 브로드스카야의 「풍경」이나 우리나라의 여수항과 비슷한 분위기를 담은 알렉산드르 다닐리체프의 「유람선」,밝은 광선의 처리가 충만한 기쁨으로 나타나는 드미트리 난발잔의 「겨울」등이 모두 이같은 경향의 대표적 작품으로 「자연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겸허한 존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회기간중에는 향나무 곰솔 노간주나무등 한국의 분재 17점이 함께 전시되어 이채.
  • 1300년전 정신세계(백제를 다시본다:5)

    ◎상징동물은 바로 백제인의 소우주/향로엔 짐승 39마리·수중생물 26마리/사슴은 영생·재생·원숭이는 장수의미/처음 나타난 기마무인상… 천리를 달리는 진취적기상 돋보여 백제의 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전해진 것이 없다.선사시대 암각화나 고구려 고분벽화,신라 토우에는 많이 나타났지만 백제쪽으로 오면 동물이 상대적으로 희귀하였다.그런데 웬 일인가….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향로에서 백제의 동물들이 한꺼번에 달려나왔다.1300여년전 백제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보게 하는 이들 동물은 고고민속학적 해석을 바닥낼 정도가 되었다. 향로에는 봉황을 비롯하여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현실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사슴·코끼리·원숭이 등 39마리의 동물상이 표현되고 있다.또 연꽃사이에는 두 신선과 수중생물인 듯한 26마리의 동물이 보인다.특히 이 향로의 기마인물상들은 백제미술품에서는 처음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곰은 모신적존재 전체적인 구성원리는 음양의 체계를 이루어 아래로 수중동물의 대표격인 용을 등장시키고,그 위로 연꽃과 수중의 생물,지상계에는 산악과 짐승 및 신선,천상계의 정상부는 원앙과 봉황을 배치하였는데,봉황은 양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동물이다. 백제금동향로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 가운데 특히 백제와 관련이 많은 곰,남방계 동물인 원숭이와 코끼리,백제미술품에서 처음 나타나는 기마상,신령스런 영매로서 영생과 재생의 상징인 사슴등이 민속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곰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한민주의 모신적 존재로서 한국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곰은 단군신화와 민간설화에서 여성으로 등장한다.환웅과 혼인한 융녀의 몸에서 단군이 태어난 건국신화,삼국유사에 신라 김대성이 토함산에 올라가 곰을 잡고 곰의 징벌이 두려워 그 자리에 곰을 위해 장수사를 지었고,고구려의 해모수는 유화를 웅신산 기슭 압록으로 유인했다는 역사문헌기록,여인으로 변한 곰이 나무꾼을 유혹해 동거한 금강(곰강)의 전설 등 곰은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곰 웅자」 붙은 지명이 웅천,웅촌,웅진,웅강,웅산 등으로 많다.특히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금강이 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명으로 흥미를 끈다.이 곰이 백제향로 정면에서 왼쪽에 꼬리를 치켜세우고 걸어가다 도인을 향에 되돌아 보고 있다. 선계의 산에 나타난 원숭이·코끼리·연꽃 등은 불교 문화를 수용한 세계관의 한 표현이다.입에 앞발을 대고 있는 원숭이가 뭐라고 귓속말을 전하는 듯하다.예로부터 「동국무원」이라 하여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던 것으로 원숭이와 얽힌 내용은 그리 흔치 않다.원숭이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신라 토우의 원숭이는 부적으로 휴대하거나,부장품 혹은 각종 용기의 장식으로 사용되었고,십이지신상의 원숭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당당한 시간신이며 방위신으로 나타난다.청자,백자로 만든 원숭이는 도장,작은 항아리,연적,걸상에서 자연에서의 모습과 모자뉴대의 형상을 띠고 있다.옛 그림 속에서는 원숭이가 십장생과 함께 장수의 상징으로,자손 번창의 상징으로 스님을 보좌하는 역할로 묘사되고 있다. 기마인물상은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백제무인이 두발을 곧추세운 사나운 기세의 말을 타고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수평적으로 내닫고 있는 정적인 신라의 마각문토기·마형토기·기마인물토기·천마도등과 고구려 고분벽화의 말을 타고가는 기사도,말을 타고 활을 쏘는 수엽도,죽은 사람의 영혼이 타고 가는 개마도등과는 다르다.45도 각도로 위로 치고 나가는 금동향로의 백제 기마무인상에서는 천리를 달리는 진취적 기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말에 대한 표현방식은 시대에 따라서 문헌·유물·설화·신앙·놀이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말에 대해서 느끼는 관념은 변함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 같다.말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은 「신성한 동물」「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수렴되었다.그래서 하늘의 사자,중요한 인물의 탄생을 알리고 얘기할 줄 아는 동물,예언자적 구실,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승용동물,장수·신랑·선구자 등이 타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사슴과 새 그리고 맹호가 평화롭게 뚜껑의 맨 아랫부분에 부조되어 있다.사슴이 유유자적하며 선계의 산으로 오른다.사슴아래 나뭇가지에는 새가 앉아 노래하고 나무아래로 맹호가 포효하고 있다.백제인의 여유와 취미와 예술,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오늘날의 민속이나 무속에서는 사슴이 중요한 신앙소로 등장하지는 않는다.그러나 상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이 다르다.우리 민족은 사슴을 상상의 동물인 기린에 준하는 거룩한 동물로 숭상하였다. ○영원의 세계표현 사슴뿔은 남권의 상징이자 가부장및 공동체 수장의 상징일 수 있다.사슴뿔은 나뭇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봄에 돋아나 자라면서 딱딱한 각질로 되었다가 이듬해 봄에 떨어진다.그리고 다시 뿔이 난다.이러한 순환기능과 나무를 머리에 돋게 하고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은 사슴뿐이다.따라서 사슴은 대지의 원이를 갖춘 동물로 여겼다고 할 수 있다. 사슴의 출현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로 보았다.청학이 신선의 벗이자 짝이듯이 사슴도 신선의 벗이자 시종이었다.사슴은 호랑이와 더불어 신선의 탈것으로 생각되었다.사슴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과 닮아 작은 기린으로 여겼으며 신선으로 도인의 품성을 갖춘 것으로 인식했다. 금동향로의 1백개 부조상은 영원불멸의 하늘 세계의 상징으로서 봉황과 북방 설원에서 설매 끄는 사슴,상상의 동물인 공작,하늘을 나는 천마의 신성함,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물로서 원숭이 등등 고대 백제인의 이상과 꿈,영원의 세계를 표현한 소우주라 할수있다. ◎백제인의 신앙생활/한국인 심성속에 자리잡은 동물/거북·학·기린 등 신령으로 모셔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삶을 지키기 위한 원초적 본능으로 신앙미술을 창조했다.선사암 각화등이 그 초보적인 신앙미술이다.신앙미술은 곧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된 동물상징으로 발전함으로써 생활문화와 사상,관념,종교등을 표현하기에 이른다.그리고 동물은 원시시대이래 인간에게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가하면 먹거리이기도 했다.그 힘은 노동력으로도 이용되어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한반도에서도 바위그림이나 동물벽화를 비롯해 토우,토기,고분벽화 등에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한다.이 동물들에도 제각기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제각기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상징이 숨겨져있는 것은 물론이다.청동기시대의 반구대암각화에는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과 사냥장면,개,사슴,호랑이,곰,물고기,거북,고래등이 묘사되어 있다.이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생산활동인 고기잡이와 사냥,그리고 그 대상이된 동물들을 표현했다. 동물그림이 선사시대 바위그림에 못지않게 자주 나타난다.대상이 된 새는 학 꿩 공작 갈매기 부엉이 봉황 주작 닭등으로 현실의 새도 있고 상상속의 새도 등장한다.동물로는 범과 사슴 멧돼지 토끼 여우 곰등 산짐승과 소 말 개등 집짐승들이 그려져 있다. 신라의 동물상징은 주로 토우라 불리는 흙인형에서 나타난다.얼핏 살펴보아도 개 말 소 물소 돼지 양 사슴 원숭이 토끼 호랑이 거북 용 닭 물고기 게 뱀 개구리등이 눈에 뛴다.그런가하면 십장생 가운데 거북 학 사슴과 상상의 동물인 용봉황 기린등은 현재도 신령스런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고대인이 지녔던 정신세계의 일단이기도 한 동물의 세계가 이번에는 금동향로에 한꺼번에 나타나 백제인의 내면적 사상과 의식을 새롭게 조명할수 있게 되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신축설계 국제공모/올 주요 사업계획 확정

    ◎4백39억원 투입/옛 조선총독부건물철거 작업 착수/학술조사·유적발굴·해외교류 확대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사업계획이 확정됐다.모두 4백39억9천만원을 들여 추진할 주요 사업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및 국립중앙박물관 신축 ▲문화재 특별 전시 ▲학술조사 연구 및 유적발굴 ▲해외문화교류 ▲사회교육 활동등이다. 먼저 오는 20 00년에 문을 열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설계를 국제공모하는데 이어 지질 및 교통영향평가등 기초자료 조사에 초점을 맞춘다.또 총독부 건물 철거를 위한 실측 및 철거 설계작업과 함께 박물관이 임시로 이전될 현 문화재관리국 건물에 대한 증·개축 공사도 시작한다. 다양한 주제로 중앙과 지방박물관에서 잇따라 펼쳐질 특별전시회는 박물관의 기초적인 기능.중앙박물관은 「국내외 특별전 포스터전」과 「금동용봉봉래산향로 특별전」,「이달의 문화인물 기념전­안견」등을 준비하고 있다.또 재일일교포 두암 김용두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토기와 도자기·회화등을 가려 뽑은 「재일교포 소장 한국 미술품전」과 미국 피바디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개화기 유물 1백여점을 모은 「유길준과 개화기의 한국전」등도 눈길을 끈다. 이밖에 경주박물관은 「통일신라 금동불전」,광주박물관은 「선사인의 삶과 죽음전」,진주박물관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부여박물관은 「선사고대유물전」,청주박물관은 「충북도민 소장 문화재전」,전주박물관은 「고구려 고분벽화전」,공주박물관은 「상감문 유물전」을 각각 연다. 학술조사 및 유적발굴도 중요한 대목.중앙박물관이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 청자요지 발굴을 비롯,창원 다호리 고분군 제8차 조사,아산만 일대 선사유적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등을 계획하고 있는등 각 박물관이 다양한 조사연구 활동을 펼친다. 해외교류 사업으로는 「18세기 한국미술전」이 지난해에 이어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 새클러 갤러리와 LA 카운티박물관에서 8월까지 열리고 애지현 도자자료관이 7∼8월에 여는 「동양도자명품전」에 우리 도자기 11점을 출품한다.
  • 유출 문화재(외언내언)

    일제하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일본으로 유출되는것을 안타까워한 간송 전형필선생(1906∼1962)은 「문화적 항일」의 방법으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일본인에게 빼앗겨서는 안되는 중요한 문화재는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구입,전설적인 일화들을 남기기도 했는데 군수 월급이 70원이던 당시 거금 1만4천여원을 던져 일본인에게 경매되기 직전의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보물 241호)을 사들인것이 그 한 예.백석지기만 되어도 부자 소리를 듣던 때 황해도 일대의 방대한 토지와 종로의 상권을 장악했던 선대의 유산 10만석을 그는 고미술품 수집에 고스란히 바쳤다. 그렇게 수집된 우리 문화재가 소장돼 있는 곳이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이곳의 소장품중 「훈민정음」원본,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등 20여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소장품에 대한 정리가 아직 끝나지 않아 모두 몇점의 문화재가 이곳에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 질에 있어서 국립박물관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간송의 선각자적인 안목과 혼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많은 문화재가 일본에 유출됐다.해외 유출문화재의 약 60%가 일본에 있어 세계 15개국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 5만4천6백55건 가운데 일본에 3만1천2백23건이 있는것이다(문화재관리국 집계).그러나 이는 박물관등 공개된 곳에 전시된 것만을 밝힌 공식집계일뿐 개인소장품등까지 합한다면 6만건도 넘을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가 일본의 대중예술시장 개방과 관련,한국문화재 반환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일본대중예술과 한국문화재의 관계가 어떻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다시 찾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그리스 문화상 멜리나 메르쿠리처럼 문화재 반환을 위한 끈질긴 외교활동을 펴는 한편 민간차원에서도 간송의 대를 잇는 우리 문화재의 역수입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그를 위한 행정지원도 물론 있어야 한다.
  • “청동항아리 1억불에 경매”/성승 김교각일생 영화화 자금마련목적

    ◎가야화랑 김희용씨 중국과 일본 불교계에서 환생한 지장보살로 크게 숭상받고 있는 당나라 고승 김교각이 신라 왕손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각종 문헌에서 입증된데 이어 한 국내 화랑대표가 그의 일대기를 영화화하겠다며 소장중인 중국 고대 휘귀 골동품 1점을 최저가 1억달러(한화 8백10억원)에 공개경매하겠다고 나서 화제. 서울 인사동 가야화랑 대표 김희용씨(47)는 24일 김스님의 해탈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구도의 과정을 한·중합작으로 영화화하는데 필요한 비용조달을 위해 중국 춘추전국시대(BC 770∼403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제 황동상감 고대인류활동문 쌍고리 귀면 사각항아리」를 경매에 부치겠다고 밝힌것. 진위여부를 떠나 이 작품을 놓고 김씨가 제시한 최저 낙찰가 1억달러는 단일품목으로는 세계 미술품 거래사상 최고가격이다. 89년부터 사재를 털어가며 지장왕 유적답사와 구화산 성역화에 몰두해온 김씨는 『한민족이 낳은 성승 김교각이 아직도 잊혀진 역사속의 위인으로 남아있는 것이 안타까워 그의 삶을 영화로 제작키로 했다』고. 「성승 지장왕」이란 제목아래 한·중합작으로 제작될 이 영화는 김씨와 중국극작가협회 주석 장천민이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쓸 예정이며 김씨는 작년 5월 완성한 자신의 시나리오를 장씨에게 보내 최종 탈고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골동품가에도 “장씨파문”/장씨,“출소후 1백억대 현금 구입”

    ◎업계,“20억어치 정도… 거의 가까일것” 3백억원대를 호가한다는 큰손 장영자씨 소장의 골동품들은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진품들인가? 그녀가 12년전에 드러난 1백억원대의 골동자산외에도 최근 출소한후 현금 1백여억원상당의 골동품을 사들였다는 진술에 따라 세인의 관심을 끌고있다. 그러나 고미술업계에 따르면 『장씨가 출소후 골동가에 나타나 도자기류의 골동품을 매입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점포없는 중개인인 이른바 「나까마」들로부터 20억원대 정도를 어음거래한 걸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녀의 이같은 골동품 거금매입 주장은 자금추적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라는게 업자들의 얘기다. 이러한 분석은 지난82년 장여인이 처음 사기사건을 벌였을 당시 비슷한 규모인 1백억원대의 골동품을 재산으로 제시,이를 압류한 검찰의 요구로 시가와 진위여부를 감정한 고미술업계 전문가의 증언에서 더욱 확실하게 유추할 수 있다.12년전 그녀의 소장품감정을 맡았던 전고미술협회 회장 공창호씨는 『당시 서화등 골동품이 1백억원규모를 넘는다했는데 정작 실물을 보니 1천점정도에 90%가 가짜나 전혀 돈이 안되는 것들로 전부 따져서 5억원정도였다』고 말했다.『당시 장씨는 부도를 내기 직전 가짜인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마구 사들인 걸로 알고 있으며 그때 부도를 내고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골동품상 강대욱이란 사람과 주로 거래했다』고 덧붙였다.공씨가 그당시 감정한 장씨의 소장품들중에는 그야말로 웃지못할 가짜들이 수두룩했다는데 『기록에도 없는 충무공의 「혈죽도」란 작품은 돼지피로 그린 황당한 작품이었고 도자기나 서화도 이미 가짜미술품이 나타나기 시작한 한말이나 일제때의 엉터리 작품들이었다』고. 그녀는 사들인 서화들을 한번 펴봤다가 둘둘 말아놓은 상태로 쌓아두었다고 하며 82년 당시 거주지인 서울 강남구 청담동주택 2층에 꾸며놓은 법당에는 서양화가 김모씨에게 주문해 자신의 얼굴을 모사한 부처형상의 1백호크기 그림을 걸어두고 유명인사들을 초대하기도 했다고 한다.예술품을 사기행각에 철저히 이용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그녀인 셈이다.
  • 북한산 전/「서울의 맥」 웅장한 산세 “생생”

    ◎학고재서 문봉선씨의 60점 21일부터 선보여/실명제 이후 화랑의 수익 첫 공개키로/작품거래실적 밝혀 높은 세율 개선 건의 전시회 내용이나 체제면에서 매우 획기적인 개인전이 열리게 돼 신년화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1일부터 2월3일까지 서울 인사동 학고재(739­4937)에서 열리는 한국화가 문봉선씨(34)의 「북한산」그림전­.지난 3년간 북한산만 1백여차례 답사하며 그린 북한산그림 60여점을 출품,서울정도 6백주년을 맞는 올해의 의미를 더하는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게다가 작품가격과 화랑의 판매수익을 전면 공개하여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미술시장 최초로 이 제도에 합당한 형식을 취하는 전시가 된다. 지난 87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중앙미술대전 대상,동아미술상 최고상등을 모두 거머쥐며 한국화단의 기린아로 부상한 문씨는 이번 전시에 내놓는 그림들을 소품기준 호당 10만원,1백호크기의 대작은 8백만원선에 작품가를 제시한다.이와 함께 학고재대표 우찬규씨는 전시장 입구에 작품가격표를 내걸고 작품거래실적 일체를 국세청등 관련부처에 숨김없이 공개할 방침이다.『당국은 화랑이 신고하는 거래내역을 믿지않고 화상들은 현행 세제아래에서 존립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어 문제점들을 속시원히 드러내 놓고 양측이 타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같은 일을 추진하게 됐다』는 우씨는 『혼자 힘으로 어려워도 세율인하를 요구하는 화상입장에 서서 현행세금을 적용할때 과연 얼마만큼 부담이 되는가를 따져보고 검증해보자는 각오』라고 그 취지를 밝혔다. 현실적으로 미술품의 세율은 판매총액의 22∼42%가 화상의 판매이익으로 간주되는데 화상들은 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이고 세무당국은 세금을 제대로 내지않기 때문에 높은 세율을 매길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씨와 의기투합,이번 전시에 나선 작가 문씨는 아직 미술시장의 인기작가군에 진입할만한 경륜은 아니나 그 작업에 대한 평가는 A급에 속한다.『붓과 먹을 쓰는데 섬세한 감각을 갖고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농담의 변화와 세필의 끊어치기가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단조롭다거나무성의함이 보이지 않는 미덕을 보인다』(미술평론가 유홍준)는 등의 평가가 있다. 대상에 대한 주관적 관점을 절제하고 그 느낌을 철저히 관객에게 넘겨주는 그는 북한산을 그리면서 산세를 화면속에 담아내기 위해 산의 주름을 표현하는 방식에 새롭게 눈을 돌렸다고 한다.『북한산 구석구석을 다 가봤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곳이 많고 그려보고 싶은 곳도 많다.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웅장한 산세와 사계절을 표현하려면 더 깊은 노력이 따라야한다.앞으로도 계속 북한산과 씨름하겠다』 북한산에 대한 애정이 절절한 작가의 말에서 보이듯 그의 북한산 그림들은 오늘 우리 서울의 맥을 깊이있게 담아내고 있다.
  • “미술시장 개방대비 유통체계 전문화를”

    ◎“호당가격제 개선·작품 감정 과학화 돼야”/평론가 최병식씨 계간 「화랑춘추」서 지적 95년 미술시장 본격개방과 소더비·크리스티등 세계적 미술품경매회사의 국내영업을 눈앞에 둔 우리 미술시장은 과연 개방화시대에 걸맞는 대응력을 갖추고 있는가. 미술평론가 최병식씨(40)는 한국화랑협회 소식지 계간「화랑춘추」 최근호에서 한국미술계의 현실을 낱낱이 진단하고 국제화·개방화시대를 맞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의 미술시장,그 반성과 미래」란 제목의 특별기고에서 최씨는 국내미술관과 화랑수가 각각 20여개,3백80여개로 양적인 면에서 일본의 9분의 1수준에 불과한 우리 미술계의 빈약함을 지적했다. 정부와 기업등이 연간 조성하는 문화예술기금을 비교할 경우 지난89년에 일본이 7천억원(89년 기준)이었던데 비해 우리는 지난해에 겨우 1천7백억원(92년)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또 일반국민들에게는 아직도 미술품이 투기수단이나 비정상적 투자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어 상당한 반감과 적대감을 사고있는 것으로진단했다. 이때문에 정부당국 역시 96년초부터 미술품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키로 하는 등 행정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시장확장과 국제화대비를 위해 동분서주해야 할 미술계의 날개를 꺾는 격이 되고 있다는것. 그러나 떳떳치 못한 거래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미술계인사는 수십명에 불과하고 이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물론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작가와 화랑·구매자가 공동으로 져야하지만 극소수의 부정적 견해에 따라 각종 규제로 일관하는 정부도 적잖은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최씨는 또 유통체계의 비전문성과 작품성에는 관계없이 크기에 비례해 가격을 매기는 호당가격제,명료한 과학적 분석과 증거없이 경륜과 현장체험만을 중시하는 작품감정 체계,거래자료의 비객관화및 비정보화등이 거래질서 확립을 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예술적 식견과 안목이 결여된 사람들이 화랑을 경영함으로써 극단적 상업화만을 초래하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됐다. 따라서 화랑경영자들은 미술품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길러야 하며 실력이 부족하면 큐레이터나 자문위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최씨는 강조했다. 작가들이 오늘날 미술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으로는 ▲인기도중심의 작품가 결정에 따른 객관성 결여 ▲예술적 가치보다 인·학맥,수상경력,해외전시등을 통한 편법적 자기홍보 ▲작품경향의 상업화로 인한 실험의식 감소등을 꼽았다.
  • 국내 철도역 최초 미술관/「서울역 문화관」 감상객 “북적”

    ◎개관 보름만에 3천명 찾아 우리나라 1백여년 철도역사상 최초로 기차역에 등장한 미술전시관인 서울역문화관이 서울역 이용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있다. 지난해 12월17일 철도청이 서울역 구역사 1층 만남의 장소와 2층 그릴자리에서 개관한 이후 보름간 이곳을 다녀간 관람객은 3천명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된것. 기차역을 열차를 타기 위해 무료하게 기다리는 단순한 공간에서 역동적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킬 필요가 있다는 여론에 따라 철도청이 수년전부터 준비한 장소로서 개관취지에 부응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문화관 공간은 원래 1층 만남의 장소 자리와 플라자호텔이 지난 83년부터 직영그릴을 운영해오던 2층으로 연면적 1백57평. 철도청은 공간 일부를 개조,77평규모의 메인홀과 48평·12평·11평·9평홀등 5개의 대소 전시실을 만들었다. 회화와 서예·사진·공예·도예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품 전시가 가능하도록 했으며 점차 대형화하는 현대화의 추세를 감안,4m에 달하는 높은 벽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소규모 문학강좌나세미나를 열수 있는 공간도 마련,문화예술의 다양한 전시·발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철도청은 앞으로 서울역문화관을 각종 미술기획전,문화이벤트 장소로 활용함은 물론 평당 1천원이란 저렴한 비용만 내면 누구나 대관전도 열 수 있도록 방침을 세웠다. 서울역측은 문화관운영 총괄업무를 맡을 6급상당 관장과 큐레이터 1명을 전문인력으로 배치했다. 개관과 함께 국내화단의 중견 서양화·한국화 작가 63명이 참여하는 초대기획전을 오는 15일까지 열어 우리미술의 최근 경향을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10호내외 소품들이 소개되고있는 초대기획전에는 강대운 김용기 김정자 한승재 장순업 김원 성찬경 신현조 이왈종 이재호씨등이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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