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미술사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발효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트리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42
  • NGO / 내셔널트러스트운동 3년 어디까지 왔나 정회원 1200여명… 존폐 기로

    ‘내셔널트러스트(NT)운동’은 훼손위기에 놓인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확보한 뒤 이를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운동을 말한다.우리말로 하면 ‘자연유산 신탁운동’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 1월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공식적으로 닻을 올렸다.하지만 출범 이후 만 3년이 흘렀지만,활동이 저조해 위기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참여율이 너무 낮은데다 기금 조성이 형편없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환경부가 자연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이 운동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법제화를 추진하는 등 ‘수혈’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불씨가 살아날지 주목된다. ●매화마름·최순우 古宅 매입이 성과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태동시킨 영국이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역사만도 100년이 넘는다.전 국토의 1.5%와 해안지역의 17%를 소유해 영구적으로 보호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뉴질랜드 등 세계 26개국에서 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국내에도 이 운동의 성격을 띤 지역단위의 시민운동들은 90년대부터 있어왔다.무등산 지키기와 대전 오정골 외국인선교사촌 보존운동,경기도 맹산 반딧불이 자연학교 조성,고양시 고봉산 한뼘사기,용인 대지산 지키기 운동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0년 1월 300여명의 각계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본부가 출범되면서부터다. 당시 그린벨트 보전의 실패를 경험한 시민·환경단체들은 대안운동으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국토 1% 소유·관리가 목표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본부의 사업목표는 2020년까지 전국의 보호대상지 100곳을 발굴해 내셔널트러스트 방식으로 소유·관리하고 국민총생산의 1%가 이 운동을 위한 자산으로 적립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 회원 수를 100만명으로 늘리고,자원봉사자를 5만명까지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한 실천사업으로 자연자원에 대한 모니터링과 보전대상지 선정관리,후원인·국민모금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아울러 정부 차원의 법제도 정비와 특별법 형태의 ‘국민자연신탁법’ 입법 청원운동 등도 펼치고 있다.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지방 트러스트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연대를 모색 중이다.현재 200여명의 시민전문가들이 분과별로 활동하고 있으며 1200여명의 정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과로는 시민들의 기금으로 강화군 매화마름 군락지와 미술사학자 최순우 고택(古宅)을 사들인 것이 꼽힌다.시민 자연유산 1호로 기록된 매화마름은 912평으로 112평은 무상 기증받았고,800평은 4800만원의 시민기금으로 매입했다. 최순우 고택 역시 10여명으로부터 8억여원을 기부받아 매입,시민 문화유산 1호가 됐다. ●정부 ‘국민신탁법' 추진 활성화기대 무엇보다 이 운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회원 확보와 기금 조성이 시급하다.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참여율은 무척 저조한 편이다. 기금조성을 위해 각종 모금운동과 기부·기증운동,헌납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지금까지 3년간 모금액은 고작 11억여원에 불과하다. 국민자연신탁법 입법 청원운동을 전개하고 있는것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여기에는 자연과 문화유산이 국민들의 공동소유라는 법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뜻도 담겨 있다. 하지만 기부문화가 불충분한 우리나라에서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는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보전 대상에는 고가의 토지가 많아,국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성금으로 보전지를 취득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또 취득 자산에 대한 법적 보장,즉 신탁으로서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이 운동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정부 차원의 재정적인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자연보전 차원에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적극 권장돼야 한다.”면서 “국민자연신탁법 제정의 필요성과 관련해 이미 용역을 의뢰해 놓고 있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용역결과가 나오는 대로 입법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유진상기자 jsr@
  • “문화재 사회환원은 수집가 윤리”국보급 유물 기증 김대환 씨

    아직 기부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한 시민의 행동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저는 수산물 가공품을 취급하는 무역업체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일 뿐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대환(44·대한벤더 부사장)씨는 11일 오전 서울 상명대 박물관 개관에 맞춰 자신이 20여년간 수집해온 삼국시대와 고려·조선시대 불교 유물 128점을 포함,국보급 문화재까지 모두 900여점의 수집품을 기증했다. 금속 불교 유물을 테마로 수집하는 그의 기증품 가운데 현재까지 유일한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금니여래입상을 비롯,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국보 68호와 거의 흡사한 고려 청자상감운학문배병 뚜껑,다뉴세문경보다 3∼4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다뉴조문경 등은 주요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또 고려 금동9층탑,송광사에 소장된 보물 175호 경패와 거의 비슷한 경패도 있다.경패란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제작된 목함의 내용물을 알리기 위해 부착했던 표지물이다. 김씨의 기증이 남다른 것은 한창 왕성하게 취미활동을 할 40대의 컬렉터가자신의 유물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지금이 기증하기엔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하는 그는 “가끔씩 풀어서 볼 때마다 조상의 숨결은 물론 제가 하나하나 수집할 때의 에피소드도 떠올라 행복합니다.그러나 조금 아쉬울 때,아직은 더 갖고 있고 싶은 때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제가 꿈꿔온 컬렉터의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김씨는 상명대 박물관과는 어떤 인연도 없다.또 국립박물관에도 기증할 기회가 있었지만 욕심내지 않았다. “한때는 저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죠.제 이름으로 전시실을 하나 갖게 된다면 영예로운 일이니까요.하지만 그것도 공명심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신생 박물관에 기증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상명대학을 택했어요.많은 박물관이 활성화되는 것이 더 좋으니까요.” 고려대 경제학과 1학년 때부터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과 인사동,지방의 작은 골동품 가게를 뒤졌던 때의 추억에 흠씬 젖을 수 있었다는 그는 이번 기증을 ‘인생의 중간 정리’라고 말했다. “원래 사학도가 되고 싶었어요.역사의 숨결을느끼는 것이 좋았고 고구려인들의 기상은 제게 감동을 줬으니까요.집안의 반대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그동안 무역회사를 다니면서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습니다.2년 전부터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그동안 흠모만 하던 사학에 직접 몸을 담그고 나니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유물들에서 보다 자유로워졌다고 할까요.” 기증을 받은 상명대 최규성 박물관장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유물들이다.금속 공예사 연구는 물론 한국 고유의 독창적인 디자인 개발과 연구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감사를 표시했다. “골동품 컬렉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단다.그의 고1·중1,두 아들은 해외 어학연수는커녕 외국 여행도 한 번 못했다.우리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컬렉션 역시 “돈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10개월씩 할부로 구입하기도 했고 다른 곳에는 철저하게 아끼면서 살았지요.” 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컬렉션을 이해하고 도와준 아내(구본영·42)와 함께 기증한 것”이라는 한 마디를 보탰다. 허남주기자 hhj@
  • 책꽂이

    ●이집트 신화(베로니카 이온스 지음,심재훈 옮김,범우사 펴냄) 이집트에는 고유한 창조신화가 많았다.눈(Nun)이나 아툼,라 같은 태초의 신,네케베트와 아몬,아텐 등 파라오와 왕국의 수호신,프타와 세크메트 등 창조와 다산·출산을 담당하는 신,세케르와 셀케트 같은 죽음의 신 등 여러 신들이 있었다.이런 신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결혼을 하기도 하고 자식을 낳기도 하며 권력을 분산시키기도 하는 인격신의 면모를 지닌다.고대 이집트의 신앙은 결국 내세의 지배자 오시리스로 귀결된다.역사 속에 스며든 고대 이집트의 신앙을 샅샅이 살폈다.1만 2000원. ●법정에 선 나무들(크리스토퍼 스톤 지음,허범 옮김,아르케 펴냄) 요즘 환경행정법 영역에서 최대 이슈는 원고적격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하는 것이다.아직까지 자연환경이 원고가 돼 소송이 진행된 사례는 찾기 힘들지만 여러 원고 중 하나로 자연물이 포함된 경우는 적지 않다.미국 캘리포니아주 동부와 네바다주에 걸쳐 있는 저지대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그 한 예.이책은 비인격의 권리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1만 5000원. ●일본 최고 부자가 공개하는 돈버는 기술(오마타 간타 지음,이명숙 옮김,신원문화사 펴냄) 늘 상인의 자세로 생각하고 행동하라.상인은 무엇보다 시대를 읽을 줄 알아야 하며,상인다운 자각만이 성공의 열쇠.슬림도칸 등 다이어트 식품으로 유명한 긴자마루칸의 창업자인 저자의 ‘평범한’ 진실을 담았다.8500원. ●조선미술사(세키노 다다시 지음,심우성 옮김,동문선 펴냄) 일제 관학자에 의해 씌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한국미술의 독창성을 부정,중국 미술의 모방 내지 아류로 규정한다.그런 시각에서 한국미술의 시발점을 낙랑미술에서 찾는다.또한 삼국시기부터 통일신라 시기까지는 그런대로 발달의 여지를 보이지만 고려시기부터는 쇠조하면서 조선시기에 와서는 쇠퇴·타락하고 있음을 강조한다.‘반도적 성격론’‘정체론’‘일선동조론’ 등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성격을 띠지만 자료로서의 가치는 적지않다.3만원. ●유형별 면접정보 분석과 입사전략(이대성 지음,성신여대 취업지원센터 펴냄) 주요 기업별 면접정보와 입사전략을 수록.면접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하지만 인사담당자들은 나름의 비전전략을 세워 취업전선을 돌파하라고 권한다.‘특이형’ 인재만을 뽑는 소수·수시채용 시대에 맞는 자기소개법 등 실전지침이 실렸다.3000원. ●달라이 라마 자서전(톈진 갸초 지음,심재룡 옮김,정신세계사 펴냄) 인도 동북부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본명 톈진 갸초)의 자서전.1935년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티베트 동북부 암도지방의 탁최라는 곳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 이름은 라모 톤둡.세 살이 되기 전 달라이 라마의 화신으로 인정받은 그는 1950년 티베트가 중국의 침략을 받자 15살의 나이에 14대 달라이 라마에 즉위하면서 티베트의 정치적 통치자가 됐다.티베트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 1959년 인도로 망명했다.1만 5000원.
  • 시·그림 어우러진 ‘응축된 수필’/三佛 김원용 10주기 문인화展 25일부터 서울 가나아트센터

    삼불(三佛) 김원용(1922∼1993)은 흙에서 나 평생을 흙 속에 담긴 역사를 연구하다 흙으로 돌아간 한국 고고미술사학의 태두다.그는 자신의 유해를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에 뿌리도록 해 마지막까지 고고학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올해는 삼불의 10주기.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삼불 김원용 문인화’전이 25일부터 11월16일까지 열린다.문인화는 전문 직업화가가 아닌 시인이나 학자 등 사대부 문인들이 여기로 그린 그림을 총칭하는 말.그림의 기법이나 세부적인 묘사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고자 하는 사물의 내면이나 화가의 의중을 표현하는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이번 전시에는 인물·산수인물·산수·동물·화조·어해(魚蟹)·화훼·묵죽·묵란 등 다양한 주제의 문인화 60여점이 선보인다. 삼불은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화폭에 담았다.무엇을 그리든 그 속에는 그의 사상과 철학이 녹아 있다.그것은 그림의 여백에 남긴 문구를 통해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자유로운 필치로 씌어진 글들은 그림의 의미를 한층 분명하게 밝혀준다.시와 그림이 어우러져 서화동체(書畵同體)를 이루는 삼불의 그림은 그런 점에서 일종의 ‘응축된 수필’이요, ‘형상화된 수필’이다. 전시작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전해준다.조그만 서안(書案)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옆모습을 그린 ‘초탈속진(超脫俗塵)’은 자화상의 성격이 강하다.여백에 쓰인 글에는 세상의 티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이 잘 드러나 있다.‘먼 객지에서’란 제목의 작품에는 네 그루의 소나무 옆에 자리잡은 작은 초가집에 선비 한 사람이 그려져 있다.자신의 모습을 그린 듯하다.여백에는 “서가에 쌓인 천권의 고서,집밖에 소나무를 스치는 맑은 소리,책상 위에 놓인 향로,한 항아리의 술이면 그밖에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어 올곧은 선비의 학구적인 생활과 청정하고 검박한 삶을 엿보게 한다. 문인화가로서 삼불은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소나무와 대나무,난초를 즐겨 다뤘다.‘대나무 안되는 것은’이라는 작품에는 “대나무 안되는 것은 나 사람 못되어서인가”라고 씌어져 있다.그림의 격조를 그것을 그린 사람의 인품과 연관짓는 문인화가의 자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게를 그린 ‘해빈일해(海浜一蟹)’는 손녀의 돌을 맞은 감회를 담아낸 그림.“인생은 바닷가의 한마리 게와 같구나.망망대해를 대하면 오직 두려운 생각뿐이네.”라는 글귀에는 다가올 인생살이의 고단함을 우려하는 혈육의 정이 담겼다. 개구리는 삼불의 그림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삼불은 왠지 개구리를 자주 그렸다.그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유수즉영(有水則泳)’이란 작품에 씌어진 글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물이 있으면 헤엄치고 흙이 있으면 걸으니 그 행세함이 발을 씻는 선비와도 같다.”는 내용.삼불은 개구리에게서 선비의 도를 본 게 아닐까. 삼불은 생전에 ‘나의 인생,나의 학문’등 세 권의 수필집을 냈고 두 차례 문인화 개인전을 열 정도로 다재다능한 선비였다.전통적인 지필묵연(紙筆墨硯)의 문방사우를 쓰는 삼불의 그림에서는 누구든 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져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발하는 진정한 문인화의 멋을 느낄 수 있다.(02)720-1020. 김종면기자 jmkim@
  • ‘숨구멍’이 있는 따뜻한 추상/서양화가 이영희 8년만에 개인전

    서양화가 이영희(55)는 ‘색채주의자’다.스스로 색채를 떠나본 적이 없다.단색조 회화가 주류를 이뤄온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그는 다색의 평면작업만을 고수한다.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미학을 추구해온 그가 21일부터 11월2일까지 서울 소격동 갤러리 사간에서 8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전시의 주제는 ‘색채와 구조의 조화,그리고 관람객과의 소통’.평론가들은 이영희 그림의 특징을 표현적 색채와 기하학적 구조라는 두 대립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데서 찾는다.색채와 구조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 그림이라는 하나의 실체를 이룬다.이화여대 윤난지(미술사) 교수는 그의 그림을 ‘색채구조(color construction)’라는 말로 설명한다. 이영희는 아크릴 물감을 주로 사용한다.하지만 아크릴의 ‘얇은’ 느낌이 나지 않도록 여러번 거듭해 색을 칠한다.그의 그림에서 유화와 같은 깊이가 느껴지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그는 “그림에도 숨구멍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달리 말하면 그림에 어떤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미세한 붓끝의 떨림에서 탄생하는 숨구멍으로 말미암아 그의 작품은 차가운 추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따뜻한 그림이다.(02)736-1447. 김종면기자 jmkim@
  • ‘십이동파도 고려청자’가 던지는 의문점들/ 어디서 어디로 운반했나 서해서 최상급 인양안돼

    전북 군산 십이동파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운반선은 알려지지 않은 고려시대 역사의 상당 부분을 밝혀줄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도자사와 상업사,선박사 등에 걸쳐 두루 의문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십이동파도 침몰선은 그러나 당장은 더 많은 의문을 학계에 던지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십이동파도 침몰선에는 최소한 1만점 이상의 청자가 실려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수량은 엄청날지 모르지만 대부분 중·하급품인 이 그릇 자체에 미술적 가치를 크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학계는 말한다.지난해 비안도 앞바다에서 어부가 인양한 청자는 평가액이 한 점에 평균 25만 8000원 정도였다.십이동파도 청자도 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십이동파도 침몰선은 고려 청자의 생산 및 공급체계를 밝히는데 상당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그 만큼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이 배가 어디에서 청자를 실어,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부터가 미술사학자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윤용이 명지대 교수는 “왕실 청자를 생산하던 강진이 아니라,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가마터에서 만들어 개경으로 운반하는 과정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김영원 국립제주박물관장은 “당시에는 해로를 통한 수요공급이 원활했다.”면서 “이 청자가 전라도에서 만들어졌다면 수요처는 충청도 지역 호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기에 일종의 ‘도자기 도매상’이 배로 여러 곳을 돌며 물건을 한데 모아 수요처를 찾아갔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구일회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도자기를 조창에 모아 한데 올려보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포개놓은 대접 사이를 지푸라기와 갈대로 채우는 포장방법이 밝혀진 것도 주목할만하다.그러나 최상급 왕실용 청자도 이렇듯 거칠게 포장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신안유물선의 송·원대 도자기는 나무상자로 포장됐다.지금까지 최상급 청자가 서해에서 인양된 적이 전혀 없다는 것도 관심거리다.신안 해저발굴 이후 도자기가 그물에 걸려 나왔다고 신고된 지역은 서·남해안에서 모두 200곳이 넘는다. 지금으로서는 ‘선박의 크기’의 문제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일종의 관요(官窯)의 성격을 가진 강진 등의 가마에서 개경으로 최상급 청자를 운송하던 배는 왕실에 소속된 대형선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자연히 거친 풍랑에도 중·하급 도자기를 취급하는 소형 장삿배 보다는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훨씬 낮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십이동파도 침몰선은 길이 10m,폭 3∼4m 정도의 작은 배다.1984년 발굴되어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복원되어 있는 길이 10m,폭 3.5m의 10t급 완도유물선과 거의 같은 크기다.반면 최상급 도자기 무역선인 신안선은 길이 34m,폭 11m에 적재중량이 200t에 이른다. 학계는 십이동파도 침몰선에서 ‘의문을 밝혀줄 그 무엇’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걸고 내년까지 이어질 발굴작업을 주시하고 있다. 결국 십이동파도 침몰선이 ‘보물선’인 것은 고려 청자가 가득 실려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려시대 선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서동철기자 dcsuh@
  • “미술관 이전 공론화작업 적극 추진”/취임후 첫 기자회견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반인들이 찾아가기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요.분당에 사는 저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한 시간 반 넘게 걸립니다.예술의 대중화,미술의 공공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미술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9월 취임한 김윤수(67)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4일 기자들과 만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과 문제점에 대해 소견을 밝혔다.김 관장은 이 자리에서 “대중 속에 살아 숨쉬는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이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 지역 이전을 추진할 것이며 앞으로 공론화 작업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문화적 수요와 욕구에 부응하려면 미술관의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합니다.시스템 개편과 함께 전시기획,작품매입 및 수집과정의 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해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직원은 모두 89명,이중 학예직은 14명에 불과하다.국립박물관은 물론 국립민속박물관과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국립현대미술관의 규모로 볼 때 큐레이터가 적어도 30∼40명은 있어야합니다.그래야 조사연구와 전시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지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질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선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가의 대표작·화제작 위주로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작품을 매입,수집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나는 민중미술운동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일하기 위해 온 것”이라며 “특정 성향의 작가들을 우대하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김 관장은 “그동안 전시 내용이 회화나 조각 같은 메이저 아트에 집중됐고 디자인 같은 기타 장르는 상대적으로 소외돼온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전시의 다양화·다원화를 위해 힘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술관 이전의 소망이 이뤄질 때까지 관람객들이 꼭 봐야 할 중요한 전시는 덕수궁 분관을 활용토록 하고 ‘찾아가는 미술관’ 프로그램을 적극 활성화한다는 복안도 밝혔다. 김종면기자 jmkim@
  • 점, 선, 여백…/호암·로댕갤러리 이우환展

    이우환(사진·67·도쿄 다마 미술대 교수)은 흔히 ‘그리지 않는 그림’의 철학자로 불린다.그가 그리지 않는 그 ‘여백’이야말로 그의 존재론적인 사유의 결정체다. 그에게 여백은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닌 열린 세계,곧 우주와의 교감이 이뤄지는 현장이다.작가와 대상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과 울림,철학적 사유의 아름다움이 그 안에 담겼다.나와 타자,현실과 관념 사이를 중재하며 작가는 특유의 여백의 미학을 보여준다.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여백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그렇기에 이우환의 그림은 ‘어려운’ 그림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 호암갤러리(02-771-2381)와 로댕갤러리(02-2259-7780)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이우환-만남을 찾아서’전은 국내에서 처음 마련된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다.일본과 유럽에서 주로 활동해온 이우환의 예술세계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우환은 화가이자 조각가,문예비평가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그는 일찍이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미술평론가로 등단해 당시의 모노하(物派) 운동을 주도했으며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전위미술운동과 단색화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미술사적으로 이우환은 모노하에 최초로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평가받는다.모노하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에서 나타난 미술경향으로,전후 일본 미술의 가장 두드러진 흐름 가운데 하나다. 나무나 돌,점토,철판 같은 모노(物),즉 물건을 거의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작품을 보는 사람이 그 공간 안에서 사물과의 관계를 직접 자각토록 한다는 점에서 모노하는 현상학적이다.이우환이 추구하는 사유와 감성의 조화 또한 그런 ‘만남의 현상학’에 다름 아니다.이번 전시에는 35점의 회화작품 외에 사물과 사물 혹은 사물과 인간간의 관계를 다룬 조각도 여러 점 나와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서울 태평로 대한매일 사옥 앞에 설치돼 일반에 널리 알려진 ‘관계항(關係項,Relatum)’.한 장소에서 서로를 의탁하고 있는 철판과 돌의 모습이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역시 저것에서 말미암게 된다.”는 장자 ‘제물론’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조각작업을 병행해서인지 이우환의 그림에선 공간감이 짙게 묻어난다.그는 캔버스의 바탕과 긴밀하게 호흡한다. 색채와 형태,구성,이미지 등 회화적 요소를 되도록 배제하는 그의 그림에서 캔버스에 나타난 선 하나,점의 위치,방향성,붓자국의 나타남과 사라짐,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조응관계는 매우 중요하다.이번에 선보인 ‘조응(Correspondence)’ 시리즈에서는 80년대 해체적인 분방함에서 90년대 엄격하고 절제된 공간으로 회귀한 작가의 예술적 변모 양상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이우환은 백남준과 함께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국제무대에서 인정받는 작가다.지난해 ‘호주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에서는 백남준,쿠사마 야요이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작가 3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같은 세대인 백남준에 대해 그는 “백남준은 비디오의 창시자인 동시에 비디오의 종말을 고한 자”라고 평가한다. 이번 전시는 그 이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우환의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전시는 11월 16일까지. 김종면기자 jmkim@
  • “문화유산 보존 정부 인식전환 급선무”/취임 첫 기자회견 김홍남 국립민속박물관장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동안 문화재 파괴의 주범은 사실상 정부였습니다.그런 만큼 정부에서 제가 할 일은 많습니다.” 김홍남(金紅男·55) 신임 국립민속박물관장이 7일 취임 이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통하여 유산 보존에 힘써온 그답게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정부의 인식 전환”을 일성으로 내놓았다. 김 관장은 “정부의 문화유산 보존쟁책은 그동안 보존·수리 차원에 머물렀다.”고 지적하고 “이제는 콘텐츠 위주로 바꾸어야 하며,이런 과정에서 민속박물관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산 문제에도 “그동안에는 양을 늘리는 데에는 어렵지 않게 예산을 배정하면서도,질을 높이는 데는 외면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이제는 문화의 질을 높이는 데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중국미술을 전공한 미술사학자인 김 관장은 이화여대에 재직하며 6년 동안 박물관장을 맡기도 했다.그는 “민속박물관에 한 해에 3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 것은 대영박물관과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가슴벅찬 일”이라면서 “대학 박물관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며 의욕이 넘쳤다. 김 관장은 “민속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전통 문화의 양대 축(軸)”이라고 했다.그는 “중앙박물관이 고고·미술 중심이라면 민속박물관은 생활사 중심으로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면서 “경복궁 복원 계획에 따라 박물관을 옮기는 것은 운명인 만큼 그동안 추진한 용산 이전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김 관장은 최근 민속학계가 민속학 비전공자임을 내세워 취임 반대 성명을 발표한데 대해서는 “영암 구림마을의 보존에 앞장서는 등 민속에 대한 열정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면서 “15년간의 박물관·미술관 경험을 살릴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당부했다. 김 관장은 “앞으로 민속박물관을 모든 면에서 여성적 섬세함으로 바꾸어 나가겠다.”면서 “내가 여성적이지 않다고 소문이 난 것은 사회활동을 하는 여자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남자들의 오해”라고 잘라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스페인 방랑화가의 독특한 ‘원색 에너지’/29일까지 선갤러리 ‘에두아르도 우르쿨로’ 展

    파블로 피카소,호안 미로,살바도르 달리,후안 그리스,훌리오 곤살레스,파블로 가르가요,에두아르도 아로요,안토니 타피에스….20세기 현대미술을 살찌운 스페인 출신 작가들이다.스페인 출신 작가들의 특징이라면 가공할만한 에너지와 무한한 상상력,풍부한 감수성을 꼽을 수 있다.이같은 스페인 현대미술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또 한 명의 거장이 바로 에두아르도 우르쿨로(1938∼2003)다.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는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다. 서울 인사동 선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에두아르도 우르쿨로’전(29일까지)은 그런 점에서 특별히 눈길이 가는 전시다.정물화를 중심으로 유화,드로잉 등 모두 56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서는 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르쿨로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마지막 암소’‘신비한 테라스’‘시선’‘정물화’‘카페’ 등 대표작들이 망라됐다. 우르쿨로는 영원한 ‘방랑화가’다.그 자신이 여행을 무척 좋아해 스스로를 여행자 혹은 방랑자로 불렀다.우르쿨로는 “나의 의도는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할 주제들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그 주제들이란 여행가방,모자,구두,재킷,우산,암소,기모노,엉덩이,두개골,뉴욕의 도시풍경 등 사뭇 독특하다.작가는 특히 마천루의 스카이라인,브루클린 다리 등 뉴욕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여행자가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우수 깃든 화면에 담아냈다. 우르쿨로의 작품들은 미술사적으로 팝아트 양식에 가깝다.말기에는 큐비즘에 기울어 팝아트와 큐비즘을 결합한 ‘네오 큐비즘’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리듬감 넘치는 절제된 화면을 추구하는 그는 스페인의 전통적인 낭만주의적 특성에 따라 화려하고 강한 원색을 구사했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순회전의 하나로 올들어 베이징,콸라룸푸르,상하이에서도 우르쿨로전이 열렸다.우르쿨로는 지난 7월 베이징 전시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전시에 맞춰 한국에 온 미망인 빅토리아 이달고씨는 “우르쿨로가 한국 방문을 고대했는데 갑작스럽게 사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문화재 보존 관심 큰 학자 여성 첫 국립민속박물관장/김홍남 이화여대 교수

    김홍남(金紅男)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다음주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립민속박물관장에 취임한다.그는 문화재 분야에서 남녀를 통틀어 이미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김 교수가 민속박물관장을 선뜻 맡을 것인지는 그동안 관련 분야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지난 3월 차관급을 격상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이건무 현 관장과 막판까지 경합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2급인 민속박물관장은 정부 서열상 중앙박물관장 보다 두 단계나 낮다. 김 교수가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자 민속학계의 강력한 반발도 있었다고 한다.‘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얘기도 들린다.민속학 분야에서는 정부의 최고위직인 민속박물관장 자리를 미술사학자가 맡는데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민속학계를 다독이는 것은 그가 취임한 뒤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혼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 교수를 기용한다는 문화관광부의 방침은 일찌감치 결정됐다고 한다.외부 인사를 민속박물관장에 임명하여 공무원 출신 일색인 중앙박물관의 관료화를 견제하겠다는 뜻이 없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김 교수는 중앙박물관장 선임 초반 경쟁했던 유홍준 명지대 교수와 서울대 미학과 동기로 미국 예일대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이화여대 박물관장을 6년 동안 역임하면서 박물관학을 정규 과목으로 개설하는 등 박물관 분야의 발전에 힘을 쏟았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 문화유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헐릴 위기에 있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성북동 한옥을 모금운동을 통하여 매입, 기념관으로 탈바꿈시켰고,석굴암 역사유물전시관 건립 계획을 무산시키는 데도 한 몫을 했다. 최근에는 반구대 암각화 공원 개발사업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에도 참여하는 등 문화재 보존활동에는 빠진 적이 없다. 북촌문화포럼 대표로 경복궁에서 창덕궁에 이르는 ‘양반동네’를 전통과 현대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듯 김 교수의 왕성한 활동력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민속박물관장 취임 이후 경복궁복원계획에 따른 박물관의 용산 이전과 연구 및 전문인력 확충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정치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이 있는 반면,분위기를 바꾼다며 자칫 이벤트성 행사에만 치중할 경우 발전을 오히려 더디게 할 수도 있다는 충고도 없지 않다. 서동철기자 dcsuh@
  • 민속박물관장 김홍남 교수

    문화관광부는 2일 공석 중인 국립민속박물관장에 김홍남(金紅男·사진·55)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를 내정했다. ▶관련기사 23면
  • “미술품 유통의 혁명 꿈꾸며 40대후반에 제2인생 시작”미술품 전문경매 ㈜서울옥션 김순응 사장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하지만 자기 일을 신명이 나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40대 후반,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기 쉬운 나이에 과감하게 자신의 꿈을 실현한 사람이 있다.미술품 경매 전문회사인 ㈜서울옥션의 김순응(50) 사장이 주인공이다.2년 전만 해도 그는 하나은행의 자금본부장을 맡고 있었다.그러나 김 사장은 지금 23년의 은행원 생활을 접고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미국 남 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돈과 관련된 공부를 했고 돈을 다루는 일만 했다.그런 그가 이제는 그림을 사고파는 전문가가 돼 ‘미술소비’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김 사장은 “미술품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강조한다.그가 보기에 우리 미술시장엔 엄밀한 의미의 ‘시장’도 ‘가격’도 없다.같은 그림이 유통경로에 따라 천지차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미술품의 이중가격 관행이야말로 우리 미술계의 뿌리깊은 병폐다.이것은 그동안 미술시장이 작가와 화랑에 의해 독점돼온 것과 무관치 않다.우리 미술시장의 또 다른 고질 가운데 하나는 호당가격제.예술작품을 크기에 따라 값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술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피카소의 작품은 같은 크기라도 완성도에 따라 100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난다.김 사장은 그런 점에서도 미술품경매제는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한다.“미술품 가격은 자유로운 경쟁과 시장원리에 따른 경매를 통해 끊임없이 검증되고 공개돼야 합니다.선진 외국에선 미술품 거래의 절반 이상이 경매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어요.경매를 통해야 작품의 ‘기준가격’이 형성되지요.” 그에 따르면 92년 이후 한국 미술시장의 불황은 이같은 미술시장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금융과 미술의 만남.김 사장은 앞으로 자신의 장점을 살려 미술시장의 인프라를 갖춰 나가는 데 힘을 쏟을 작정이다.우리 제도금융권에선 미술품 담보대출을 시행하는 곳이 없다.보험회사에서도 미술품을 받아주지 않는다.“선진국에서는 많은 은행들이 개인고객관리 차원에서 미술품 투자 등을 위한 ‘아트 뱅킹’ 부서를 따로 두고 있어요.우리에게 무엇보다 우선적인 과제는 미술품 담보대출과 보험제도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서울옥션에서 시행하고 있는 미술품 담보대출은 현재 대출잔액이 40억원선에 불과하지만 미술시장에 적잖은 활력소가 되고 있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작가들 뒤엔 늘 위대한 화상들이 있었다.2차대전 후 뉴욕에서 활약한 레오 카스텔리는 그 대표적인 예다.로버트 라우셴버그·재스퍼 존스·프랭크 스텔라·로이 리히텐슈타인·앤디 워홀·제임스 로젠키스트·도널드 저드·리처드 세라 등 숱한 유명작가들을 무명 시절 발굴한 이가 바로 그다.카스텔리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작가와는 절대로 같이 일을 하지 않았다.우리 화랑들은 얼마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하고 있을까.김 사장은 “화랑들이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기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유명작가들의 작품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러면서도 왜 사람들이 박수근이나 김환기 작품만 찾느냐고 불평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말한다. 김 사장은 때로 “경매 때문에 화랑이 망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하지만 그의 경매관은 확고하다.“경매는 소비자 주권을 가장 확실하게 구현하는 유통혁명입니다.화랑으로선 일시적으로 시장이 잠식되는 측면이 있지만 결국은 미술시장의 볼륨을 키우고 체질을 강화하는 길입니다.” 잘 나가던 엘리트 은행원에서 미술품 경매회사 CEO로 변신한 지 2년 6개월.그는 이제 아웃사이더의 순수한 열정뿐 아니라 전문가의 감식안으로 그림을 사고 판다.그런 만큼 그가 들려주는 작품구입 요령은 참고할 만하다.“주식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가치주를 사놓고 때를 기다리듯이 미술품 투자도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의 작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미 평가가 끝난 대가들,즉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은 환금성과 안정성은 있지만 진정한 컬렉션의 묘미는 주지 못해요.” 개인적으로 20년 넘게 그림을 수집해온 김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소장품은 민중작가 오윤의 판화 ‘춤’.그가 이 작품을 아끼는 것은 자산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림은 고달픈 하루가 끝난 뒤에 쉴 수 있는 편안한 안락의자 같아야 한다.”는 프랑스 화가 마티스의 말을 믿기 때문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책꽂이

    ●해협: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이진희 지음,삼인 펴냄) 1972년 일본이 광개토왕릉비문을 변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 주장은 일본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에 진출해 백제와 신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한일 역사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이 책은 당시 비문 변조설을 제기한 재일 사학자인 저자의 자서전.조총련을 탈퇴하고 전향한 뒤 한국국적을 취득하게 된 경위,한·일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계간 ‘삼천리’ 창간에 얽힌 이야기 등이 실렸다.1만 5000원. ●엣센스 영어숙어사전(손봉돈 지음,민중서림 펴냄) 코리아타임스 편집위원인 저자가 14년에 걸쳐 집필한 영어숙어 대사전.1만2000여개의 이디엄을 풍부한 예문과 함께 풀이해 영작과 회화에 도움이 되도록 꾸몄다.저자는 스포츠서울에 ‘시험에 꼭 나오는 영어’를 연재,화제를 모았던 인기 필자이자 영어학자다.4만원. ●버리고,행복하라(비노바 바베 지음,사티시 쿠마르 엮음,김문호 옮김,산해 펴냄) 간디가 인도 독립의 날 인도 국기를 맨처음 게양할 사람이라고 말했으며,간디의 후계자로 받아들여졌던 사회개혁가 비노바 바베.영국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국제적 생태공동체인 ‘슈마허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인도 출신의 국제 평화운동가 사티시 쿠마르가 그의 스승 비노바의 진리와 비폭력에 관한 지혜를 담은 말과 글을 발췌해 묶었다.9000원. ●한권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임두빈 지음,가람기획 펴냄) 구석기시대 미술의 기원으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는 서양 미술의 역사를 개관.저자(한국미학미술사연구소 소장)는 스텐실 판화가 이미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혀 눈길을 끈다.구석기시대 화가들은 가죽에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은 후 그 가죽을 동굴 벽면에 가까이 대고 입으로 씹은 물감을 구멍을 통해 뿜어내어 크고 작은 점들을 그렸다는 것.이런 방법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스텐실 판화기법이라는 것이다.2만 5000원. ●세계의 통화전쟁(하마다 가즈유키 지음,곽해선 옮김,경영정신 펴냄) 세계는 환율인하경쟁의 갈림길에 서 있다.원인은 달러 하락이다.기축통화국인 미국은 1980년대의 ‘강한 달러’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채무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의도적 무시(Benign Neglect)’와 ‘강경한 개입(Hawk Engagement)’이라는 그들의 정책기조를 양날의 검으로 사용하면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해 왔다.이 책은 달러 일극체제에 도전장을 내민 유로와 위안 그리고 엔의 통화파워를 점검하고 그들 통화정책의 실체를 밝힌다.9800원. ●미국 인터넷 산업의 지도(한광야·송규봉 지음,한울 펴냄)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거대한 정보기술(IT)벤처의 인큐베이터였다.이 책에서는 미국의 IT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뉴리더 도시들을 소개한다.항공·운송·데이터 산업으로 거듭난 시애틀,컨트리뮤직의 도시 내슈빌,영화산업의 중심지 할리우드,라틴음악의 교두보 마이애미,남미 정보통신 시장의 전진기지 샌안토니오 등을 살펴본다.1만 4000원.
  • 韓國그린 最古서양화 ‘고종 행렬’ 발견

    |파리 함혜리특파원|서양인이 한국을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는 가장 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 ‘고종의 행렬(사진)’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가로 41㎝,세로 21.5㎝ 크기의 종이에 펜으로 드로잉된 ‘고종의 행렬’은 1876년 전후 한국을 여행한 프랑스 화가 펠릭스 르가메가 그린 것으로,지금까지 한국을 소재로 한 최초의 서양화로 알려진 휴버트 보스의 고종 초상화(1896년경)보다 20년 정도 앞서 그려진 것이다. 파리의 가나보부르 화랑에서 열린 한국 미술인 프랑스 100년사 개관식 참석차 파리에 온 가나화랑 이호재 대표는 23일(현지시간) “미국인 고서화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는 ‘고종의 행렬’을 뉴욕에서 직접 보고 펠릭스 르가메가 아시아 지역을 여행한 1876년 전후 그린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는 1896년 한국을 방문했던 휴버트 보스가 그린 고종의 초상화가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한국에 대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으나 ‘고종의 행렬’은 이보다 20년 앞서 그려진 것으로,한국을 소재로 한 서양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그림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화가 겸 동양전문가로 알려진 펠릭스 르가메(1844∼1907년)는 파리의 아시아예술 전문 국립박물관인 기메미술관 설립자 에밀 기메와 함께 당시 세계 일주 여행을 했으며,중국 일본 한국을 거쳐 1876년 프랑스로 돌아왔다.고종이 가마를 타고 청계천 수표교를 지나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은 이 그림은 당시 한국 여행 중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메미술관의 피에르 캉봉 수석학예연구원은 “동양의 아름다움을 프랑스에 소개한 최초의 화가 가운데 한 명인 펠릭스 르가메는 일본 여행 중 그린 작품들을 많이 남겼지만 한국에 대한 그림은 그동안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고종의 행렬’은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lotus@
  • ‘화단의 나폴레옹’ 다비드 그는 기회주의자인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유화 ‘황제와 황후의 대관식’은 루브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다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세로 6.3m, 가로 9.8m의 이 대작은 나폴레옹 황제 당시 궁정 수석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것으로,나폴레옹이 그 앞에 양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황후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주기 위해 두 손으로 관을 높이 쳐드는 장면을 담고 있다.19세기 초 신고전주의의 개척자 다비드.그는 ‘화단의 나폴레옹’으로 프랑스 화단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에는 브뤼셀로 망명하는 등 나폴레옹과 같은 인생 곡선을 그린 인물이다. ‘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김광우 지음,미술문화 펴냄)은 나폴레옹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다비드의 일생과 그의 작품들을 소개한다.미술비평가인 저자는 다비드의 어둡고 외로웠던 어린시절,로마 유학,스승인 조제프 마리 비엥과 개빈 해밀턴을 만나 신고전주의자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나폴레옹과 만남,‘황제의 제1화가’로서의절정기,나폴레옹 몰락에 따른 벨기에 망명과 사망 등을 연대순으로 다룬다. 다비드를 이야기하려면 신고전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1750년에 시작돼 1830년까지 유럽에 널리 유행한 신고전주의는 고대의 미술,특히 고대 그리스 미술을 규범으로 삼아 단순한 형태와 색을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꾸밈이 없고 기하학적인 이 시기의 작품들은 르네상스의 마지막 거추장스러운 양식인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의도적으로 피했다.저자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설명과 함께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경제적 혼란상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그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렸다.그러나 그 작품들은 순수한 미학적 동기에서 그렸다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었다.그런 만큼 적잖은 사실들이 왜곡됐다.다비드의 뛰어난 기교와 단순하고 명료한 양식은 서양미술사에 있어서 신고전주의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내용면에서는 다분히 정치선전적이었다는 비난도 면치 못한다.다비드는 천재화가인가 기회주의자인가.해답도 없고 유효기간도 없는 의문이다.2만 8000원. 김종면기자
  • 순박하고 친근한 ‘나한상’ 한자리에/춘천박물관 9일부터 첫 나한展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Arhat)을 줄인 말이라고 한다.부처의 제자로 수행끝에 깨달음을 얻은 존재이다.중생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점에서는 보살과 다르지 않지만,신의 모습보다 인간의 모습에 훨씬 가깝다. 통일신라 말기부터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나한은 고려와 조선에 걸쳐 중요한 불교 신앙의 하나로 자리잡았다.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진 나한은 나한전 혹은 응진전이라는 독립된 전각에 모셔져 예배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나한은 그동안 다른 불화나 불상에 비하여 주목받지 못했다.국립춘천박물관이 9일부터 여는 ‘구도의 깨달음의 성자,나한’특별전이 나한을 미술사적으로 다룬 최초의 종합적인 전시회라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은 마지막 손질을 하느라 어수선했다.그러나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면서도 순박하고 친근한 150여점의 나한 그림과 조각은 망치소리며 드릴의 기계음이 신경쓰이지 않을 만큼 하나하나가 흥미로웠다. 나한이 주목받는 것은 2001년 영월 창녕사터에서 16세기 ‘오백나한상’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높이 30㎝ 정도에 화강암으로 만든 나한상은 동글납작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일품이다.춘천박물관은 지난해 개관하면서 이 나한상을 위하여 급작스럽게 전시실을 개조하기도 했다.이번에는 당시 수습한 290점 가운데 37점이 나왔다.이 앞에 서면 발걸음을 쉽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렵다. 특별전은 나한 신앙의 역사로 시작한다.김제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승려상과 석굴암의 십대제자상은 아직 나한 신앙이 체계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그러나 ‘최사위 묘지명’(1075년)에 이르면 ‘나한전’을 언급하기 시작하고,이후 청자나한상이 만들어지는 등 본격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지은원(知恩院)에서 빌려온 고려시대 오백나한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일본 천리대 소장)에 비견할 수 있는 특별전의 하이라이트.석가삼존좌상을 중심으로 가늘고 탄력있게 묘사한 오백나한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려시대 산수화 기법을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백나한도는 우리 문화재가 불행한 역사를 거치며 어떻게 제자리를 떠났는지를 보여준다.중앙박물관의 진보장존자 말고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등에 흩어져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우리 나한 신앙의 진면목이 드러난다.선암사 목조건칠나한상을 비롯한 일련의 ‘사람의 모습’을 한 나한상에서는 조선시대 민중불교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콧물을 흘리면서 졸고 있는 석조나한좌상(동아대박물관 소장)은 나한이 갖고 있는 인간적 면모의 극치일 것이다.그런가 하면 분홍빛 테두리가 있는 부드러운 겉옷을 살포시 머리에 둘러감은 조선 후기 목조나한좌상은 성모마리아로 착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다. 특별전은 주목받지 못했던 나한을 한국인의 심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 존재이자,미술사를 풍요롭게 하는 뛰어난 예술품으로 새롭게 부각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자체 소장 유물이 거의 없는 지역박물관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립박물관의 역할에 걸맞은 전시회가 이루어진 것이 반갑다.(033)260-1524. 춘천 서동철기자 dcsuh@
  • “고려때 꽃피웠던 寫經 원형복원이 꿈”/24년 사경작업 외길 김경호씨

    평생을 단 한 가지 목표에 매달려 사는 것은 쉽지 않다.그것이 남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렇게 일궈낸 삶은 훨씬 더 값지다.사경(寫經)연구가 김경호(41)씨는 일찍부터 불모의 영역인 사경에 눈을 떠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 인물이다.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새 장르의 문화재를 복원해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전파해야 하는 필생의 사업이 됐다. “사경은 고려 청자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문화재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 원형 복원 노력과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는 김씨는 “사경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독보적인 우수성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문화재”라고 거듭 강조한다.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불교 경전을 한자 한자 그대로 옮겨 쓰는 사경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고교시절 출가해 1년간 행자생활을 했으나 부모의 만류로 귀가해 어렵사리 고교를 졸업했다.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사경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했지만,기본 자료조차 없는 실정을 개탄해 사라진 문화재의 원형 복원에 고군분투해 왔다.고교 시절부터 치면 24년간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고려사 충렬왕·충선왕·충숙왕조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 원 조정에서 많게는 한 번에 100명씩 고려에 관리를 파견해 사경을 제작해 갔다고 한다.사경 기술은 중국에서 전래됐지만 전성기인 고려시대의 사경은 서예,회화,금은공예 등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월등한 종합예술로 꽃피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그토록 번성했지만 국내엔 옛 사경을 추적할 만한 기초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그에 비해 일본에선 오래 전부터 사경연구가 활발히 전개돼 왔지요.” 그동안 국내 박물관을 샅샅이 뒤졌으나 신통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일본측 자료에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그런 점에서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통일신라기 사경인 국보196호 ‘대방광(大放廣)불화엄경’은 주목할 만한 유물이라고 강조한다.‘대방광불화엄경’은 연대가 분명한 사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먹으로 쓴 것이면서도 표지 그림과 경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를 금은으로 그려 당시 금은 공예가 얼마나 발달했는가를 잘 보여준다.무엇보다 통일신라기인 일본 천평(天平)시대에 전국적으로 흥했던 일본 사경의 모태가 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일본은 우리로부터 사경을 받아 꽃피웠지만 오히려 그것을 건네준 한국에선 그 의미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형편.내로라하는 일본 사경 연구가들의 정통 사경이라는 것에서조차 원전에서 벗어난 오·탈자와,원 형식과는 다른 모순을 적지 않게 발견한다는 김씨.그의 자부심은 그냥 말만 앞세운 게 아니다.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가리지 않고 사경과 그 기록이 있는 곳이면 빼놓지 않고 발품을 팔아 슬라이드로 정리해놓은 것만 해도 3만여점.지난해 10월엔 자신이 직접 작업한 사경을 중심으로 사경의 모든 형태와 해설을 붙인 교본격인 사경집을 내기도 했다. 6차례의 개인전을 포함해 20여회의 전시를 열면서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지난 6월에는 한인미주이민 100주년을 기념해LA로터스갤러리에 초대받기도 했다.내년 봄 미국 현지 교인들이 뉴욕 전시를 추진 중이며 일본측에서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라 우수한 우리의 사경을 원형 그대로 살려내 발전시키는 것에 가장 힘을 기울인다.표지와 발제,경전,변상도로 구성된 양식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다.실제로 그의 사경 작업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경전 선택과 원본의 오·탈자를 확인하는 대교 작업부터 작업의 전체 틀과 맞물릴 변상도 구상,닥종이와 금가루에 아교물을 입히고 푸는 데 이어 선을 긋는 계선과 경문쓰기,변상도 그림과 표지,금을 입힌 글자의 광내기인 연마작업…. 요즘엔 한국사경연구회(02-733-8334) 회원들이 자신의 뜻에 동참하고 있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사경연구회는 동양미술사학과 출신들과 사경에 뜻을 가진 학자,승려들과 함께 지난해 결성했다.서울 연희동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는 부인의 수입이 사경작업의 모든 재원이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일반인 대상의 강의를 맡고 있고 동아문화센터에도 출강하고 있지만,이는 사경을 알리는 절실한 수단에 불과하다.동국대 대학원에서 사경에 관한 석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서예지 등에 사경을 알리기 위한 기사 연재에 매달리느라 쉽지 않다. 사경 작업을 할 때는 며칠 밤낮을 지새우기 일쑤.사경에 몰두하다 보면 1∼2시간 정도만 의자에 앉아 눈을 붙여도 거뜬하지만 작업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아프다는 김씨.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나에게 맡겨졌다.천직으로 안다.”며 주섬주섬 사경 도구를 챙겼다. 김성호기자 kimus@
  • 30년만에 다시 만나는 ‘열정’/조각가 권진규 30주기전

    한국미술사에서 근대조각을 완성하고 현대조각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조각가 권진규.흙을 사용한 테라코타와 옻칠기법을 원용한 건칠(乾漆)이란 독창적인 양식을 개척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인 그는 1973년 52세의 나이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인생은 공(空),파멸’이란 유서를 남긴 채.고뇌와 열정의 작가 권진규 30주기전이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작은 테라코타,건칠,석조,목조 등 유작 120여점.자폐적인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듯 침울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습을 담은 테라코타 흉상 ‘지원의 얼굴’등 대표작 외에 사후 30년동안 서울 종로구 동선동 작업실에서 잠자던 20여점의 작품이 처음으로 선보였다.석고틀에서 재현한 ‘여인’이나 부조 ‘작품’ 등은 작가가 사망한 후에도 그의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해온 막내 여동생 권경숙씨가 내놓은 것.또 작가가 일본 유학시절인 1950년대에 남긴 초기 스케치북 2권도 전시돼 관심을 모은다.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만나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던 오기노 도모 여사가 30주기를맞아 처음 공개한 것으로,권진규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작가가 죽음을 앞두고 몇몇 지인들에게 보낸 유서를 포함,손때 묻은 기물과 유품들도 전시돼 인간 권진규를 보다 진솔하게 만날 수 있다.전시는 15일까지.(02)736-1020. 김종면기자 jmkim@
  • 국보 59호 지광국사현묘탑 옛 자리 찾았다

    강원도 원주 법천사터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현재 경복궁 마당에 있는 국보 59호 지광국사현묘탑이 건립 당시 세워졌던 자리가 확인됐다. 또 지광국사현묘탑의 상층 기단 모서리 조각도 발견하여 결실상태였던 탑의 원형 복원이 가능해졌다. 독특한 형태의 정교한 조각으로 고려시대 부도를 대표하는 지광국사현묘탑은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15년 가까스로 돌아온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강원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부터 원주시 부론면 법천2리 법천사터에서 벌인 제2차 발굴조사를 31일 마무리했다.2001∼2002년 사역 전체를 시굴조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중심 사역의 동쪽 900여평을 발굴했다. 그 결과 1938년 일본인이 만든 실측도만 남아있을 뿐 그동안 정확하게 알 수 없었던 지광국사현묘탑의 위치를 확인했다.높이 4.55m에 이르는 탑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하여 돌을 다져넣은 기초(적심)는 가로·세로 각 3.5m 정도이다.이 곳에서 탑의 상층기단 모서리 조각과 함께 석등의 화사석(불을 켜는 자리) 조각과 석등의 기둥돌도 보이는 사자상 조각도 수습됐다.화사석은 8각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측면에는 보살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조사단은 이 사자상 석등이 국보 제5호 법주사 쌍사자 석등과 비교 검토가 필요한,미술사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광국사 해린은 1067년 고려 국사의 신분으로 법천사로 은퇴한 뒤 1070년 입적했다.법천사는 조선 초기까지는 법맥이 이어졌으나,허균이 1609년 “폐허가 된 법천사를 답사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등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한편 강원도와 원주시는 이달부터 법천사터에 대한 3차 발굴에 들어가 2006년까지 사역을 모두 발굴한 뒤 유적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서동철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