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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차관급 문화재청장에 거는 기대/조유전 동아대 고고미술사학 초빙교수

    16대 국회 막바지인 지난 2일 본회의에서 문화재관리국을 차관급으로 격상시키는 정부조직법 개정이 통과되었다.지난 1999년 문화재관리국이 1급 청장직급인 문화재청으로 승격했지만 그 중요성을 볼 때 최소한 차관급으로라도 격상해야 한다는 줄기찬 여론이 받아들여진 셈이다.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지 42년만에 문화재의 총 관리부서 장이 차관급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으로,만시지탄이 있지만 환영할 일이다. 문화재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의 유산이자,바로 우리의 얼굴이고 자존심일 뿐 아니라 민족의 긍지이자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정체성이다.그렇기 때문에 그 문화재를 다루는 총책기관의 위상을 높여야 할 당위성은 충분히 있다.이제 요구대로 문화재청의 위상이 보다 높아졌으니 그에 걸맞게 문화재 보존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지금까지의 문화재보존 정책에서 진일보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문화재의 복원·보존에 비중을 두어왔던 정책을 예방 우선 차원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이 말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문화유산에 더이상 손상이 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 문화재를 복원한다 해도 그것은 오늘날에 새롭게 만든 것이지,옛 것 그대로의 복원에서는 멀다.예를 들어 성곽을 복원한다는 계획아래 무너진 부분을 헐어내고 새롭게 쌓았다면 그것은 외형만 옛 것을 따랐을 뿐 오늘날 새로 쌓은 성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음은 문화재의 활용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지금까지 많은 문화유산이 지정,보존되고 있지만 이들 유산이 극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이해되고 향유되는 전유물로 남아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예를 들면 경주에서 신라시대 황룡사가 있었던 터를 발굴조사한 지 30여년에 이르고 있지만 고작 조사된 건물터에만 잔디를 심고 정비해,찾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공개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이 곳을 찾는 사람들조차 전문가의 긴 설명 없이는 유적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없다.말하자면 시각적으로 느끼게 해서 찾아드는 이들에게 이해와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도록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유적의 중요성이 보는 사람 모두에게 이해되고,이를 통해 자긍심을 복돋우게 될 때 우리의 문화유산은 저절로 보존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이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로의 정책전환이 중요한 것이다.이러한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가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 전문 연구인력의 대폭적인 확보다.문화재는 한번 원형을 잃게 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그렇기 때문에 심층적인 조사연구 없이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다.이를 위해서 고도의 숙련된 전문인력 양성이 따라야 함은 당연하다.즉 교육공무원이나 교도·법무행정처럼 일반행정이 아닌 특수한 문화재 직종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지방조직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문화유산의 관리에는 현장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지방조직이 없다는 것은 머리만 있고 몸통은 없는 기형의 형태나 다름없어 문화유산의 전국적인 관리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셋째 앞으로 다가올 남북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한성백제의 고도인 서울을 아우를 국책연구기관,말하자면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설립이 시급하다. 넷째 매장문화재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개발에 수반되는 매장문화재의 파괴가 심각한 반면 민원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그러나 문화재청의 업무 폭주는 한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되었다.기구를 확대하고,문화재기금을 마련해서라도 이 문제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문화재청장의 위상만 높였다고 문화재의 보존정책이 진일보하지는 않는다.거듭 말하지만 위상에 걸맞은 조직과 예산이 함께 따라야만 명실공히 한 단계 높아진,새로운 문화재 정책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조유전 동아대 고고미술사학 초빙교수 ˝
  • 중앙박물관 ‘토요명품감상’ 첫날 200여명 몰려

    국립중앙박물관의 ‘토요 명품 감상’에 문화유산 애호가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큐레이터와의 대화’라는 부제처럼 박물관의 전문학예직이 주도하여,하나의 주제로 5점 이하의 명품만 집중 감상하는 대(對)국민 서비스다. ‘토요 명품 감상’은 지난 6일 ‘금속공예’를 주제로 막을 열었다.금속공예를 전공한 이귀영 학예연구관은 이날 고려 현종 1년(1010년)에 만들어졌다는 국보 제280호 천흥사 동종을 설명하는 데 한 시간을 모두 소비했다.고려 범종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답다는 천흥사 종에서 시작한 설명은 자연스럽게 우리 종의 역사에서부터 한·중·일 범종의 특징으로 이어졌다. 관람객들은 천흥사 종 하나만 봤을 뿐이지만,결과적으로 범종에 대한 종합적 지식을 섭취하고,기초적인 범종 감식능력을 터득할 수 있었던 셈이다. ‘토요 명품 감상’은 중앙박물관이 용산 이전을 앞두고 휴관하는 10월 말까지 매주 주제를 달리하여 이어진다. 13일은 국보 제61호 청자 어룡무늬 주전자,20일은 조희룡의 매화그림,서예를 주제로 하는 27일은 퇴계 이황의 칠언시를 다룬다.새달 3일은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10일은 조선시대 반가(班家)의 사랑방,17일은 국보 제101호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을 중심으로 감상한다. 현재의 중앙박물관은 고고·미술사 박물관의 성격을 갖고 있다.용산으로 이전하면 역사 박물관의 성격을 강화하겠다며 역사부를 신설한 것이 최근이다.그동안 고고·미술사 박물관으로 만족스럽다고 하기도 어려웠다.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린 뒤 용산 박물관을 잇는 임시 박물관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도,초라한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늦었지만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어디에 내세워도 자랑스러운 우리 미술품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토요 명품 감상’은 보여준다.한 시간 이상 설명해야 할 만큼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범종을 갖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앞으로 감상할 반가사유상과 감은사 서탑 사리장엄구 등은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종일 설명하고도 모자랄 만큼의 의미를 담고 있다.청자와 백자·분청사기 등도 마찬가지다. 사실 ‘토요 명품 감상’은 중앙박물관이 국민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지난 1월 공표한 ‘대 국민 서비스 강화’방침에 따라 급작스럽게 준비한 프로그램이다.그렇지만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첫날,예상을 두 배나 뛰어넘은 2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아왔다.국민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관람객은 몰려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중앙박물관은 실감했을 것이다. ‘토요 명품 감상’에 참가하려면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중앙박물관 2층 안내데스크를 찾으면 된다.(02)398-5140 중앙박물관 미술부. 서동철기자 dcsuh@˝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 모나리자 스마일

    1503년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에 거주하고 있는 부호(富豪)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에게 환심을 얻기 위해 그의 부인 엘리자베타의 초상화를 그렸다.저 유명한 ‘모나리자’다.미술 전문 용어로는 ‘패널화(畵)’로 규정되고 있는 이 명화에 담긴 미소는 흔히 ‘모성애를 자극하는 온화한 눈웃음’의 대명사로 각인돼 있다. 그런데 이 미소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성들이 남성에게 느끼고 있는 지극히 불안한 감정을 삼키고 있는 음울한 제스처라고 한다면…? 이같은 ‘발칙한 상상력’을 담고 있는 신작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모나리자 스마일’이다. 1953년 고풍스러운 중세 건물로 장식된 뉴잉글랜드.자유분방한 캘리포니아 처녀답게 ‘결혼은 여성의 굴레’라는 보헤미안 기질을 갖고 있는 미술사 담당 교수 왓슨(줄리아 로버츠)이 명문 웨슬리 칼리지로 부임한다.낯선 이방인에게 지극히 배타적인 학풍(學風) 때문에 수업 첫날부터 곤욕을 치르는 왓슨.하지만 그녀의 페미니스트 시각은 백인 중산층 남자를 만나 아들·딸 낳고 사는 것을 인생의 최대 행복으로 여기고 있던 보수적인 여학생들의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고 결국 남성들의 울타리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생각을 품게 한다. 1950년 4월 발표돼 빅히트를 기록한 팝송이 냇 킹 콜의 ‘모나리자’.‘당신은 신비로운 미소를 떠올리는 숙녀를 닮았어요.그 미소는 사랑의 유혹인가요.아니면 상처 받은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인가요?’라는 노랫말을 담고 있다. 극중 결혼식 축하곡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이 노래는 이제 ‘남자들 때문에 여성들이 흘리는 상처의 노래’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2003년 10월 미국에서 출간돼 여성계 뉴스를 제공한 신간인 언론인 출신 레이철 사피어의 ‘저기 신부가 간다(There Goes The Bride)’.미국의 경우 해마다 결혼을 눈앞에 둔 미혼 여성중 5만명이 파혼을 선언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이 서적은 ‘결혼 예물을 반환하는 법’ 등 합리적인 파혼 절차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여성들이 ‘꿀맛을 보기 직전’에 결혼을 포기하는 주요 이유는 ‘이 남자가 정말 내가 원하던 이상형인가?’와 ‘결혼은 나(여성)의 후반 인생을 행복하게 보장해 줄 수 있는가?’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하다 결국 도망가는 신부를 택한다고 분석했다.이런 여성의 심리를 반영하듯 게리 마셜 감독은 ‘런어웨이 브라이드’(1999)에서 결혼식장에만 들어서면 신랑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는 여성의 행동을 묘사해 또래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난 당신의 신부가 되면서 생의 의미를 찾게 됐어요.’라는 패티 페이지의 팝송은 이제 구석기 시대 박제된 유물에서나 찾아야 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제 미혼 남성들은 배반하지 않을 반려자를 찾기 위해 로미오처럼 심야의 세레나데를 절규할 때라고 단정한다면 이것도 기혼 남성의 편협한 자만일까? 영화 칼럼니스트
  • [열린세상] 책을 팔아 책을 사다/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헌 책을 읽을 때마다 절대 만날 수도,알 수도 없는 전 주인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그리고,이 책은 어디에서 여기까지 넘어 왔을까 그 내력에 대해 상상하곤 한다. 평생 책을 읽는 이들에게 재산 목록 1호는 당연히 책이다.하지만 재산 가치로 그다지 좋은 품목이 아니다.한번이라도 책을 팔아본 사람은 안다.당장 돈이 아쉬운데,지갑과 통장은 바짝 말라 버렸고,집안에 있는 값 나가는 물건이라고는 책밖에 없어 책 한 보따리 싸 들고 헌 책방 찾아가는 심정을.단골 책방의 주인도 가지고 온 책은 반가워할지언정 책 값 칠 때에는 야박할 수밖에 없다.헌 책방도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그걸 뻔히 알면서도 한 보따리 책 팔아 몇 만원 쥐고 나오는 심정을 뭐라고 딱 부러지게 설명하기는 참 난감하다. 어렵게 구입한 책을 헌책방에 왕창 판 적이 있다.옥스퍼드 영어사전 한 질을 꼭 갖고 싶었던 것이다.도서관에 갈 때마다 나는 그 사전 앞을 그냥 지나치지를 못했다.하루는 꿈에 짙은 청색 장정의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직접 등장하기까지 했다.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그 때는 나름대로 비장하게 ‘이건 분명히 사전을 사야 할 운명이다.’라고 생각했다.결심하고 나니 제일 걸리는 게 3000달러라는 책값이었다.생각다 못해 나는 책 한 트럭을 내다 팔았다. 책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지만,나는 정말 그들에게 면목이 없었다.그래도 부족해서 아내 몰래 책장 사이에 끼워둔 비상금의 일부도 털어 넣었다.스무 권짜리 사전 한 질을 방에다 놓고,나는 이틀 밤잠을 설쳤다. 두달 전,옥스퍼드영어사전 제작 과정을 담은 사이먼 윈체스터의 두 번째 책 ‘모든 것의 의미(The meaning of everything)’를 읽다가 한 장의 광고 엽서를 발견했다.75주년 기념으로 옥스퍼드 사전을 895달러에 판다는 것이다.공교롭게도 그 가격은 내가 아내한테 옥스퍼드 사전을 싸게 샀다고 거짓말했을 때의 액수와 비슷했다.하지만,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자신이 처음으로 번 1000달러로 1971년 옥스퍼드 사전을 샀다는 리타메어 브라운은 그것이 자기 일생을 통틀어 가장 현명한 쇼핑이라고 했다.그렇게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한 트럭의 책을 팔아 스무권의 사전을 산 쇼핑을 자책하지는 않는다. 위안을 주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조선시대 선비 이덕무 같은 이도 글 읽는 데에는 능했지만,돈 버는 데에는 재주가 없는 탓에 논어를 병풍 삼아 한서를 이불 삼아 추위를 이겼다.밥을 굶다 못해 ‘맹자’를 팔아 배를 채웠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이덕무의 글 친구 유득공은 그 이야기를 듣고,자신의 ‘좌씨전’을 팔아 이덕무에게 술을 사 주었다. 책을 팔고 나서 땅바닥을 내리친 사람들 가운데 미술사학자 김용준 선생을 따라갈 이가 또 있을까.그의 책 ‘근원수필’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담겨있다.끼니거리가 다 떨어진 김용준 선생이 부인에게 쌀과 고기를 사 들고 오겠다고 큰소리치며 나간 곳은 명동의 서점.중국의 대표적 자전인 ‘강희자전’(康熙字典)을 들고 나가 보았지만,결과는 참혹했다. 쌀 한 말에 800원하는 세상에 귀한 책을 50원에 날린 것이다.돈이 없어 팔기는 팔았으나,그 다음 날부터 전전긍긍 책이 팔리지나 않았나 싶어 사흘이 멀다 하고 그 책방에 드나든다.꼭 한 달 만에야 돈이 생긴 그가 팔지 않겠다는 주인과 다툰 끝에 20원의 돈을 더 얹어 70원을 주고 되사고야 만다. 헌 책을 읽을 때마다 절대 만날 수도,알 수도 없는 전 주인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그리고,이 책은 어디에서 여기까지 넘어 왔을까 그 내력에 대해 상상하곤 한다.내가 팔았던 책들은 지금 어디에서 누구에게 읽히고 있을까.내 도장이 찍힌 책들은 그래도 다시 돌아올 희망이 있을까. 서울 신촌의 어느 헌 책방에 갔다가 대학원생쯤으로 보이는 어느 학생이 책을 파는 모습을 보았다.어깨는 축 처져 있었고,얼굴은 착잡해 보였다.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그 학생이 그 돈으로 다시 책을 살 것이라는 것을.책을 팔아 다시 책을 사는 바보,그 바보들을 나는 옹호한다.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문제의 이 사발은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견되는 당시 일본 외교사절인 ‘왜국국왕사(倭國國王使)’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전해졌다.조선시대 일본 외교사절은 승려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이들은 조선과의 국교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으로 잠시 국교가 단절되었던 때까지 조선을 방문하여 우수한 조선의 문물을 배웠거나 직접 가지고 돌아갔다. 대표적인 것은 베틀을 이용한 직물의 생산,불경과 대장경,도자기와 그 제작기술 등이었는데,조선 도자기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일본이 매우 탐내는 첨단 문명이었다. ●조선 도자기기술은 세계최고 수준 1423년 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이후 일본 승려들의 조선 방문은 더욱 활발해져서 조선의 민간 풍물과 사찰 문화를 집중적으로 수입해갔다. 조선에서 배워간 문물을 이용하여 일본의 저급한 문화를 일깨웠는데,가마쿠라막부와 무로마치막부 시대의 혼돈과 무절제,사치와 방종의 폐해가 일본의 존립을 위협할 때 그 대안으로서 조선의 문물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송나라로부터 수입한 문화인 서원차(書院茶) 병폐를 치유시키기 위해 응용한 것이 조선 서민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초가집 살림살이와,깊은 산중에서 은거하는 청빈한 수행자의 토굴 생활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절제와 무소유 철학을 가미하여 일본 특유의 초암차를 만들었다.이 초암차는 뒷날 ‘다도(茶道)’라는 일본 특유의 차문화가 탄생하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서원차에서 다도까지의 진보 과정은 일본이 혼돈과 야만에서 정화와 문명으로 변화하는 혁명적 승화였다.이 혁명을 완성한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인간의 내면세계를 혁명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그릇이었다.그 찻그릇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도차완이 통도사 봉발을 조형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그릇은 조형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모두 중국의 청자와 백자를 조형의 모체로 삼아서 나름의 독창성을 이루어 냈다. 중국의 그릇 또한 인도 불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발전했다.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른바 주발(周鉢: 위가 약간 벌어지고 뚜껑이 있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식기),바리(놋쇠로 만든 여자 밥그릇.오목주발과 같지만 입이 좀 더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음),완(梡,碗) 종류들이다. 모두 산스크리트 patra를 음역한 발(鉢: 승려의 식기)의 형태를 모체로 삼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한국적 특성 가장 잘 나타낸 분청사기 흙을 재료로 한 사발(砂鉢),구리를 이용한 동발(銅鉢),쇠를 이용한 철발(鐵鉢),진흙을 이용한 와발(瓦鉢),은을 이용한 은발(銀鉢)등이 크기와 형태에서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그렇게 발전한 대표적인 성과물이 송나라대의 찻사발들인데,천목(天目)이라 부르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릇이다.천목찻사발의 형태는 고려 청자 찻사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필연적으로 중국 도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자문화로 일컬어지는 분청(粉靑) 사기는 한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청자에서 백자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체험하고 터득해 낸 조선 사기장들의 지혜와 미감(美感)이 응집되어 창출된 한국형 사발이다.이같은 우리나라의 도자사(陶磁史)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 저 일본인들이 이도(井戶)라 부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를 통해서였다.따라서 그 이전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에서 이것의 존재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400년 넘게 일본에서 자란 그릇이어서 이 그릇의 참된 주인은 일본 차인들이라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른다.그렇다보니 이 그릇의 본래 용도에 관한 연구와 논의도 일본에서만 이루어져 왔다.그러던 중 이도차완에 관한 한국 사기장들의 관심이 표명된 1960년대부터 조금씩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 국한되어서였다. 그 뒤로 중국,일본의 차문화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한국에서도 차 마시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헤아리게 되면서 다른 찻사발들과 함께 이도차완의 감상과 미학적 탐구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왔다. 어느새 한국의 현재 찻사발 종류 중에서 이도차완 형태를 본뜬 것들이 찻그릇 문화를 주도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히 이도차완으로 이름이 붙여져 찻사발로 이용되고 있는 이 그릇의 본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생겨났다.무릇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 그 쓰임새를 알아야만 그릇에 대한 정확한 가치매김을 할 수 있다.이도차완은 본래 찻사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기된 당연한 의문이다.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맨 먼저 이 그릇의 용도를 얘기한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이다.동양미술사학자인 그는 일제시대를 통하여 조선서민들의 생활용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대표적인 사람이며, ‘민예(民藝)’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만큼 조선문화에 대한 전문가였다. ●日선 “雜器” “祭器” 두가지 견해 그는 이도차완을 16세기 조선서민들의 밥그릇,생활 잡기였다는 잡기설(雜器說)을 내놓았다.이 그릇의 투박한 생김새,자유분방한 색깔과 재료의 특성 등을 그 증거로 제시하면서였다. 두 번째 의견은 동경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내기도 한 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祭器說)이다.이도차완 중에서 규격이 큰 그릇들의 특징인 높은 굽을 증거로 내놓았다. 이 그릇의 가장 큰 특징이 높은 굽임은 확실하고,이 높은 굽으로하여 청자나 백자 혹은 분청사기와도 현저하게 다른 그릇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도차완의 가장 큰 특징 또한 굽의 형태와 굽 언저리의 신비스러운 문양이어서 높은 굽은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일제시대의 산물이며,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4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그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제기설에 동조하는 견해와 잡기설을 지지하는 견해로 나눠져 있다.두 가지 견해를 모두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 국보가 된 한국의 그릇은 이도차완뿐이며,청자,백자,분청사기는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이도차완 중에는 신비와 전설의 대상이 되었을 만큼 놀라운 정치적 흥정물로,천문학적 가격으로,죽기 전에 꼭 한 번 구경하기를 소망하는 그릇이 여러 점이다.이같은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는 더 관심거리로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어쨌든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이 그릇이 지닌 미학적 요소들을 놀라운 미감과 관찰력으로 읽어내어 이 그릇에 관한 평가를 한층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 祭器는 백자가 유일 16세기 조선의 도자사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쓴 그릇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16세기 조선의 도자기 생산 제도는 철저한 관요(官窯)체제여서 모든 생활그릇의 공급을 국가가 전담했다.민간인이 마음대로 그릇을 생산 판매할 수 없었다.일정 직급의 관료와 양반 사대부,소수의 중인 계층들에게만 관요에서 생산된 그릇이 주어졌다. 따라서 농민 등 서민층은 질그릇 외의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기설이 이 그릇의 높은 굽에 착안하고 있는 점은 조선의 민속과 제도에 얼마큼 지식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조선시대의 제기는 백자가 원칙이었다.놋그릇,목기를 제외한 사기그릇 제기는 백자가 유일하다.이도차완 종류는 백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도차완 형태의 그릇을 제상에 진설할 수 있는 상차림이란 없다. 두 가지 견해 모두 이 그릇의 용도를 전혀 엉뚱하게 추정하는 잘못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견해일 따름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문제는 한국인들이 앞의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도차완의 원래 용도는 통도사 봉발대의 봉발을 근원으로 하여 생활화하려 했던 승려들의 발우였던 것으로 보인다.마하승기율,사분율 등 주요 경전에서 규정하고 있는 흙발우의 조건과 통도사의 봉발,그리고 이도차완의 모든 것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도차완 미학의 신비로움은 미륵신앙에 담겨 있는 종교적 염원과 긴 역사가 승화된 것이라고 볼 때 조선 사기장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도예가들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문제의 이 사발은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견되는 당시 일본 외교사절인 ‘왜국국왕사(倭國國王使)’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전해졌다.조선시대 일본 외교사절은 승려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이들은 조선과의 국교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으로 잠시 국교가 단절되었던 때까지 조선을 방문하여 우수한 조선의 문물을 배웠거나 직접 가지고 돌아갔다. 대표적인 것은 베틀을 이용한 직물의 생산,불경과 대장경,도자기와 그 제작기술 등이었는데,조선 도자기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일본이 매우 탐내는 첨단 문명이었다. ●조선 도자기기술은 세계최고 수준 1423년 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이후 일본 승려들의 조선 방문은 더욱 활발해져서 조선의 민간 풍물과 사찰 문화를 집중적으로 수입해갔다. 조선에서 배워간 문물을 이용하여 일본의 저급한 문화를 일깨웠는데,가마쿠라막부와 무로마치막부 시대의 혼돈과 무절제,사치와 방종의 폐해가 일본의 존립을 위협할 때 그 대안으로서 조선의 문물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송나라로부터 수입한 문화인 서원차(書院茶) 병폐를 치유시키기 위해 응용한 것이 조선 서민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초가집 살림살이와,깊은 산중에서 은거하는 청빈한 수행자의 토굴 생활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절제와 무소유 철학을 가미하여 일본 특유의 초암차를 만들었다.이 초암차는 뒷날 ‘다도(茶道)’라는 일본 특유의 차문화가 탄생하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서원차에서 다도까지의 진보 과정은 일본이 혼돈과 야만에서 정화와 문명으로 변화하는 혁명적 승화였다.이 혁명을 완성한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인간의 내면세계를 혁명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그릇이었다.그 찻그릇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도차완이 통도사 봉발을 조형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그릇은 조형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모두 중국의 청자와 백자를 조형의 모체로 삼아서 나름의 독창성을 이루어 냈다. 중국의 그릇 또한 인도 불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발전했다.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른바 주발(周鉢: 위가 약간 벌어지고 뚜껑이 있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식기),바리(놋쇠로 만든 여자 밥그릇.오목주발과 같지만 입이 좀 더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음),완(梡,碗) 종류들이다. 모두 산스크리트 patra를 음역한 발(鉢: 승려의 식기)의 형태를 모체로 삼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한국적 특성 가장 잘 나타낸 분청사기 흙을 재료로 한 사발(砂鉢),구리를 이용한 동발(銅鉢),쇠를 이용한 철발(鐵鉢),진흙을 이용한 와발(瓦鉢),은을 이용한 은발(銀鉢)등이 크기와 형태에서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그렇게 발전한 대표적인 성과물이 송나라대의 찻사발들인데,천목(天目)이라 부르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릇이다.천목찻사발의 형태는 고려 청자 찻사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필연적으로 중국 도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자문화로 일컬어지는 분청(粉靑) 사기는 한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청자에서 백자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체험하고 터득해 낸 조선 사기장들의 지혜와 미감(美感)이 응집되어 창출된 한국형 사발이다.이같은 우리나라의 도자사(陶磁史)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 저 일본인들이 이도(井戶)라 부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를 통해서였다.따라서 그 이전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에서 이것의 존재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400년 넘게 일본에서 자란 그릇이어서 이 그릇의 참된 주인은 일본 차인들이라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른다.그렇다보니 이 그릇의 본래 용도에 관한 연구와 논의도 일본에서만 이루어져 왔다.그러던 중 이도차완에 관한 한국 사기장들의 관심이 표명된 1960년대부터 조금씩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 국한되어서였다. 그 뒤로 중국,일본의 차문화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한국에서도 차 마시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헤아리게 되면서 다른 찻사발들과 함께 이도차완의 감상과 미학적 탐구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왔다. 어느새 한국의 현재 찻사발 종류 중에서 이도차완 형태를 본뜬 것들이 찻그릇 문화를 주도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히 이도차완으로 이름이 붙여져 찻사발로 이용되고 있는 이 그릇의 본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생겨났다.무릇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 그 쓰임새를 알아야만 그릇에 대한 정확한 가치매김을 할 수 있다.이도차완은 본래 찻사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기된 당연한 의문이다.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맨 먼저 이 그릇의 용도를 얘기한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이다.동양미술사학자인 그는 일제시대를 통하여 조선서민들의 생활용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대표적인 사람이며, ‘민예(民藝)’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만큼 조선문화에 대한 전문가였다. ●日선 “雜器” “祭器” 두가지 견해 그는 이도차완을 16세기 조선서민들의 밥그릇,생활 잡기였다는 잡기설(雜器說)을 내놓았다.이 그릇의 투박한 생김새,자유분방한 색깔과 재료의 특성 등을 그 증거로 제시하면서였다. 두 번째 의견은 동경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내기도 한 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祭器說)이다.이도차완 중에서 규격이 큰 그릇들의 특징인 높은 굽을 증거로 내놓았다. 이 그릇의 가장 큰 특징이 높은 굽임은 확실하고,이 높은 굽으로하여 청자나 백자 혹은 분청사기와도 현저하게 다른 그릇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도차완의 가장 큰 특징 또한 굽의 형태와 굽 언저리의 신비스러운 문양이어서 높은 굽은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일제시대의 산물이며,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4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그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제기설에 동조하는 견해와 잡기설을 지지하는 견해로 나눠져 있다.두 가지 견해를 모두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 국보가 된 한국의 그릇은 이도차완뿐이며,청자,백자,분청사기는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이도차완 중에는 신비와 전설의 대상이 되었을 만큼 놀라운 정치적 흥정물로,천문학적 가격으로,죽기 전에 꼭 한 번 구경하기를 소망하는 그릇이 여러 점이다.이같은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는 더 관심거리로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어쨌든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이 그릇이 지닌 미학적 요소들을 놀라운 미감과 관찰력으로 읽어내어 이 그릇에 관한 평가를 한층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 祭器는 백자가 유일 16세기 조선의 도자사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쓴 그릇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16세기 조선의 도자기 생산 제도는 철저한 관요(官窯)체제여서 모든 생활그릇의 공급을 국가가 전담했다.민간인이 마음대로 그릇을 생산 판매할 수 없었다.일정 직급의 관료와 양반 사대부,소수의 중인 계층들에게만 관요에서 생산된 그릇이 주어졌다. 따라서 농민 등 서민층은 질그릇 외의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기설이 이 그릇의 높은 굽에 착안하고 있는 점은 조선의 민속과 제도에 얼마큼 지식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조선시대의 제기는 백자가 원칙이었다.놋그릇,목기를 제외한 사기그릇 제기는 백자가 유일하다.이도차완 종류는 백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도차완 형태의 그릇을 제상에 진설할 수 있는 상차림이란 없다. 두 가지 견해 모두 이 그릇의 용도를 전혀 엉뚱하게 추정하는 잘못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견해일 따름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문제는 한국인들이 앞의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도차완의 원래 용도는 통도사 봉발대의 봉발을 근원으로 하여 생활화하려 했던 승려들의 발우였던 것으로 보인다.마하승기율,사분율 등 주요 경전에서 규정하고 있는 흙발우의 조건과 통도사의 봉발,그리고 이도차완의 모든 것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도차완 미학의 신비로움은 미륵신앙에 담겨 있는 종교적 염원과 긴 역사가 승화된 것이라고 볼 때 조선 사기장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도예가들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책꽂이]

    ●내 안의 바람소리(강추자 지음,청조사 펴냄) 중견 희곡작가인 저자가 그동안 발표한 산문 60여편을 묶었다.저자는 그 글들을 ‘미망의 편린들’이라 부른다.창작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우리 속담에 ‘애정이 헛벌이 한다.’라는 말이 있다.애정이란 아무리 쏟아 부어도 보수가 없으며 아무리 봉사를 해도 한이 없다는 뜻이다. 스스로의 삶을 되새김질하게 하는 저자의 글은 새벽을 여는 어둠의 이치를 일깨워준다.9000원. ●훈민정음 국어사전(금성출판사 사전팀 지음,금성출판사 펴냄) 현대 국어의 어휘들을 가려 뽑아 실었다.규범상의 표준어뿐만 아니라 현대 언중들이 실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들도 폭넓게 반영했다.사후검증이 되지 않은 유령어 등은 배제했다.기존 사전의 병폐인 자의적(字義的) 뜻풀이를 피하고 현장감 있는 실제적인 뜻풀이를 한 것이 특징.사용 빈도가 높은 북한어들을 부록에 담았다.2만 7000원. ●파노프스키와 뒤러(신준형 지음,시공사 펴냄) 르네상스 미술사 연구에 초석을 놓은 도상학의 확립자 어윈 파노프스키와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대가 알브레히트 뒤러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뒤러는 피렌체와 베네치아 등을 중심으로 번성한 르네상스 양식을 북유럽으로 들여온 화가.그는 후원자의 주문을 받고 나서 작품을 만드는 중세적인 장인이 아니라 작품을 먼저 기획·제작해 놓고 판로를 개척한 사업가이기도 했다.1만 5000원. ●책에 미친 바보(이덕무 지음,권정원 옮김,미다스북스 펴냄)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서 간추려 뽑아 번역한 산문집.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 중 한 명인 이덕무는 북학파 실학자 중에서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다.이덕무는 서얼 출신이었지만 유득공·박제가·이서구와 함께 한시사가(漢詩四家)로 청나라에까지 명성을 떨쳤을 만큼 뛰어난 문장가였다.겨울밤이면 군불도 때지 못한 냉골에서 똑바로 앉아 손을 모은 채 논어를 읽었다는 ‘아름다운 선비’ 이덕무의 문향(文香)을 느낄 수 있다.1만 1000원. ●중국의 정체성(강준영 지음,살림 펴냄) 중국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량치차오는 해양문화는 인간의 진취성을 자극하지만 대륙문화는 보수적이고 정태적임을 지적한 바 있다.동아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은 동으론 망망대해를,서북쪽으론 구릉지를,서남으론 험준한 칭장(靑藏)고원을 두고 있다.때문에 자신들을 늘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천하관념’이 형성됐다는 것이다.저자는 이런 폐쇄적 지리환경이 중국인의 ‘자아중요감’을 형성케 했다고 주장한다.3300원.˝
  • [5일 TV 하이라이트]

    ●찔레꽃(오전 8시5분) 옥녀는 집에 온 준서를 붙들고 수옥이만은 안된다며 울부짖는다.명욱에 대한 의혹이 깊어가는 유경은 병우에게 수옥이 명욱의 딸이냐고 묻는다.병우로부터 유경이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명욱은 성희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진다.한편 점례와 샤리는 일감을 받으러 간 공장에서 수옥을 만난다. ●달려라 울 엄마(오후 9시20분) 영애는 젊고 예쁜 예령에게 경쟁의식을 느낀다.결국 영애는 불편하지만 참으면서 화려하고 섹시한 옷을 차려 입고 나선다.한편 항상 돈에 쪼들려 사는 주희는 점점 불만이 쌓여간다.더구나 아버지가 1000원 때문에 싸움을 벌여 다쳤다는 말을 듣자 더욱 속상해한다. ●천생연분(오후 9시55분) 연일 부부싸움을 하는 석구와 종희는 서로 괴롭다.종혁은 종희에게 석구가 애쓰고 있다고 말하지만 종희는 시큰둥하다.답답한 석구는 은비를 만나 넋두리를 늘어놓고 그럴수록 은비는 석구에게 더욱 끌린다.귀가하던 종희는 석구가 술에 취한 채 은비의 차를 타고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오후 7시5분) 전라도 광주에는 밤만 되면 어김없이 마을 야산을 떠도는 불빛이 보이고,끊임없이 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불빛을 쫓아간 제작진에 포착된 것은 돌탑을 쌓고 있는 한 여인.이 돌탑에는 말 못할 사연이 담겨 있다고 한다.돌탑에 얽힌 여인의 슬픈 사연 속으로 떠나본다. ●1050 정면승부(오후 10시50분) ‘업그레이드 버스안에서’는 사당동에서 안양으로 떠난다.노래 잘하는 고등학생과 양배추의 노래 실력 대결과 삼수 고시생의 아픔 등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대결 한판승부’는 경기도 구리시의 명인 후보들이 팽팽한 명인 퀴즈 열전을 펼친다. ●TV 우리집 주치의(오후 9시) 사람이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갑상선은 뇌의 발육과 에너지 대사에 관여한다.성장에 따라 뼈를 자라게 하고,에너지도 만들며,뇌를 발달하게 하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갑상선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거나,적은 기능항진증과 기능저하증에 대해 알아본다. ●세계 세계인(오전 10시40분) 300여개의 거울과 200여개의 조명이 동원된 ‘인공태양’ 아래서 항상 습기찬 날씨에 불만이 많았던 영국인들은 마음껏 일광욕을 즐긴다.태양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들에게 인공태양은 예술작품 이상이라고 한다.영국의 한 설치미술사 엘리아손이 선보인 인공태양을 소개한다. ˝
  • ‘오타니 컬렉션’ 한국 연구성과 가장 앞서/국립중앙박물관 서역미술展서 확인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12월16일부터 ‘서역미술’특별전을 열고 있다.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 지역에서 가져온 1700여점의 이른바 ‘오타니 컬렉션’가운데 200여점이 나와있다. 이 전시회는 중앙박물관이 용산시대를 앞두고,‘서역전시실’을 미리 꾸며본 것.실제 전시에서 보완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점검해보겠다는 뜻이었다.전시실 입구에 만들어놓은 중국 신장(新疆)성 일대의 유물출토지 지형도를 두고 “어느 지역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관람객의 불만이 나오자,용산에는 주변의 나라이름과 지명까지 덧붙이기로 한 것은 좋은 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는 뜻하지 않게 중앙박물관,나아가 우리 미술사학계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오타니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한·중·일 3국 가운데 우리의 연구가 가장 앞서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1900년대 3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오타니 원정대의 서역탐험은 전문학자도 참여하지 않은 채 그야말로 보물찾기식으로 이루어졌다.유물 목록은 연구에 혼란만 줄 뿐,차라리 없느니만도 못할만큼 엉터리라고 한다.따라서 오타니 컬렉션 연구는 정확한 유물목록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유물의 상당수는 베일에 가려졌던 출토지와 제작시기를 명쾌하게 밝혀놓았다.민병훈 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등 한국 미술사학자들이 10여차례 이상 서역을 드나들며 사진 자료 등을 현장에서 비교 확인한 결과이다. 이같은 연구 성과가 반영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일본의 고고미술사학자와 중앙아시아 역사학자들이 줄지어 중앙박물관을 찾았다.도쿄국립박물관 및 오타니 컬렉션,오타니가 제22대 문주(門主)였던 니시홍간지(西本願寺)가 설립한 류코쿠(龍谷)대학 관계자가 찾아온 것을 비롯하여,NHK 등 보도진의 취재도 잇따랐다. 이에 따라 중앙박물관은 당초 지난 1일 막을 내리려던 ‘서역미술’전을 오는 29일까지로 연장했다.해외 미술사학계의 요청을 수용하고,졸업시즌 및 봄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관람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호탄(和田)지역에서 출토된 2∼3세기 세라피스상 등 11점의 유물도 새로 나온다.세라피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4∼30년)가 그리스와 이집트의 신앙통일을 위해 만든 국가신(神)이다.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그리스계인 마케도니아사람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에 세웠다. 서동철기자 dcsuh@
  • 책/조선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곽차섭 지음 푸른역사 펴냄 지난 1979년 한 국내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이탈리아 남부 카탄차로의 알비(Albi)라는 작은 마을에는 코레아(Corea)씨가 모여살고 있다.이들의 조상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이탈리아 상인 카를레티에게 노예로 팔려 로마에 정착한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것이다. 1983년의 런던발(發) 기사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1577∼1640)의 ‘한복 입은 남자’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비싼 값으로 팔렸다는 내용이었다.새달 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루벤스-반 다이크 드로잉전’에 나와 있는 ‘조선 사람(Korean Man)’이 바로 이 그림이다.당시 언론은 안토니오 코레아가 이 그림의 모델이었을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지었다. ‘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루벤스를 만나다’(푸른역사 펴냄)는 안토니오와 루벤스의 관계를 추적하고 있다.이 책을 쓴 곽차섭 부산대 교수는 미술사에도 관심이 많은 이탈리아 역사학자.그는 지난 2000년 방문학자로 미국 UCLA에서 1년 동안 머물렀다.‘조선 사람’을 소장한 게티미술관이 이웃에 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곽교수는 ‘조선 남자’의 모델이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보고 있다.그렇지만 안토니오를 알비에 사는 코레아씨의 조상으로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절제되지 않은 민족주의가 낳은 신화라는 것이다. 곽교수는 1792년 월리엄 베일리 이후 최근까지 서양 미술사학계가 이 그림을 꾸준히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이번에 이들의 연구성과를 국내 학계에 제시한 것도 이 책의 또다른 성과다.8000원. 서동철기자 dcsuh@
  • 모나리자의 신비 디지털로 부활/세종문화회관 ‘거장의 숨결’展

    외국의 미술관을 찾아 원작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대부분은 이따금 접하게 되는 그림책에서 원화의 이미지를 감상하는 데 만족할 뿐이다.복제품 시장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욕구를 대리 만족시켜주는 유력한 통로다.국내 복제품 시장은 2000억원 정도.시중에 나와 있는 복제품은 그나마 수입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거장의 숨결’전은 디지털 기술로 재현한 명화 모음전으로,우리의 복제품 문화를 되돌아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일단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모두 117점의 세계 걸작들이 첨단 디지털 기술로 재탄생했다.국내 한 벤처회사가 원화의 환등 필름에서 스캔을 받아 원작과 거의 같은 크기의 캔버스에 고유의 색감과 질감을 그대로 살려냈다. 전시는 조화와 균형의 르네상스 미술,생동감 넘치는 바로크 미술,행복과 향락의 로코코 미술,이성과 규범의 신고전주의 미술,열정과 상상력의 낭만주의 미술,진실의 기록인 사실주의 미술, 빛을 추적한 인상주의 미술,표현과 추상의 20세기 미술등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 보게 한다.현대의 디지털 기술이 2만여년 동안 이어져 온 서양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사용된 셈이다.다빈치 같은 르네상스시대의 천재부터 몬드리안 같은 20세기 모더니즘 반역자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잘 알려진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복제의 문제를 정면 돌파했다.팝아트나 다다이즘 등 ‘혁신적인’ 예술 형식을 통해 미술품의 유일무이성과 권위에 도전했다.그러나 사실은 복제를 시도한 게 아니라 복제의 문제에 의문을 제기한 것에 불과했다.원본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강화된 것이다.이른바 ‘오리지널’이 아니면 판화가 됐든 사진이 됐든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지만 이번 전시는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우리의 자체 기술을 통해 복제예술품을 생산하는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전시는 3월 1일까지.입장료는 일반 6000원,초·중·고생 5000원,어린이 4000원.(02)786-3131. 김종면기자 jmkim@
  • 국립현대미술관 신소장품展 3월21일까지 540여점 공개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한 해 동안 수집한 작품들을 공개하는 ‘신소장품 2003’전이 20일부터 3월21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1,2전시실과 상설전시실에서 열린다.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은 42억원의 예산을 들여 211점을 구입했고,391점을 기증받았다.이번 전시에서는 이 중 540여점을 골라 선보인다. 한국화가 허건의 초기 화풍을 보여주는 ‘목포교외’(1942),네덜란드계 미국 화가 휴버트 보스가 그린 구한말 시기의 유화 ‘서울풍경’(1899),류경채의 초기작 ‘산길’(1954),김주경의 인상주의 화풍의 초기작 ‘사양’(1927) 등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유명 해외작가들의 작품도 소개된다.빌 비올라의 비디오 ‘의식’,질 아이요의 회화 ‘샤워중인 하마’,볼프강 라이프의 조각 ‘쌀집’,안드레아스 세라노의 사진 ‘생각하는 사람’,이미 크뇌벨의 회화 ‘새로운 사랑-4’,게리 시몬스의 회화 ‘갇혀진 부재’ 등이 소장품 목록에 추가됐다.기증 작품으로는 조각가 문신의 드로잉을 비롯해 김영주의 판화,홍종명의 유화 등이 나온다.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5000여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02)2188-6000 김종면기자 jmkim@
  • “물방울 그림 30년… 고생한 보람 느껴”/프랑스 국립주드폼미술관서 회고전 여는 김창열 화백

    |파리 함혜리특파원|지난 30여년간 물방울을 화두 삼아 도 닦듯이 회화 작업을 해 온 ‘물방울 화가’ 김창열(金昌烈·사진·75) 화백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회고전이 13일부터 3월7일까지 약 두달간 프랑스 국립 주드폼미술관에 열린다. 물방울이라는 하찮은 소재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미적 체험을 제공해온 그는 “선배들도 많은데 먼저 미술관 전시회를 갖게 돼 송구스럽다.”면서도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파리에서 처음 갖는 미술관 전시회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인다. 주드폼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온 현대 미술관.19세기 중엽 건립된 미술관으로 오랑주리 미술관과 함께 1954년부터 오르세 미술관 개관(1986년) 이전까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던 유서깊은 곳이다.한국 작가로는 이우환씨가 97년 처음 초대전을 가졌고 조덕현씨가 아시아 작가 그룹의 한 명으로 이 미술관 앞뜰에서 설치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김 화백의 회고전은 올 봄부터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모습을 바꾸기에 앞서이곳에서 열리는 마지막 전시회다. 그는 미술관 전시가 갖는 의미에 대해 “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미술사에 기록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작품이 공인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라고 말한다. 물방울의 생성과 소멸 사이의 한 순간을 포착해 캔버스 위에,모래판에,나무판자 위에,천자문 위에 극사실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물방울 시리즈 작품들은 ‘우리의 존재 방식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규정하도록 요구하는 내면성의 그림’이라는 찬사와 함께 동서양을 초월한 보편적인 시각언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회에는 60년대 초 미국에서 작업한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미술 작품 ‘제사’부터 파리에 건너온 초기의 스프레이 작업,화면 바탕에 천자문을 써 넣은 ‘회귀’,최근의 ‘황토’까지 30여년간 작업 중 대표적인 작품들이 소개된다.총 34점의 그림과 함께 지름 20㎝의 물방울 모양 수정작품 ‘명상’도 전시된다. 그는 ‘미련하리만치’ 오랜 세월 동안 물방울에만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 “1969년 말 어느 아침에 캔버스 뒷면에 영롱하게 맺혀 있는 물방울을 발견했습니다.바람이라도 불면 후두둑 떨어져 버리는 덧없는 운명 앞에서도 아침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순수한 물방울의 아름다움은 충격적이었지요.그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지금까지 씨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금껏 물방울과 씨름하며 묵묵히 살아온 그는 또다시 물방울을 그리기 위해 붓을 잡았다. lotus@
  • 불붙은 ‘운주사 천불천탑’ 논쟁/‘몽골의 문화영향’ 재조명 계기될까

    서울신문이 새해 들어 연재를 시작한 소설가 정동주씨의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시리즈의 첫번째 주제인 ‘운주사 천불천탑-신비에 대한 오해와 몽골문화’가 지난 3일과 5일 나뉘어 실린 것이 곧바로 도화선이 됐다. 정동주씨가 이 글에서 “운주사 천불천탑은 몽골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몽골군의 삼별초를 진압한 전승기념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자,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는 “민족문화에 대한 음해”라면서 강력히 반발하는 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운주사 천불천탑이 몽골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지적은 충격적으로 들리지만,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미술사학자인 소재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의 ‘운주사 탑상의 조성불사’라는 논문은 이런 주장의 뿌리에 해당한다.2001년 ‘동원학술전국대회’에서 발표됐을 때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소 연구관은 논문에서 “운주사 탑과 불상은 스타일이 일률적이어서,고려왕조의 힘이 미약했던 원 침략기에 수많은 석공이 동원되어 단기간에 완성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정통 불교문화를 충분히 인식한 고려시대 지식인의 수준으로는 이처럼 수많은 불탑과 불상을 한꺼번에 조성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운주사 불사(佛事)는 원의 군부가 주도하고 막대한 고려의 물자와 석공인력이 동원되었을 것”이라면서 “멀리 타국에 나와 있는 원병(元兵)들의 무운을 빌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그는 특히 “고려석공들은 라마불탑에 익숙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을 토속적인 고려식으로 조성했고,생소한 원반형탑이나 난형탑(卵形塔)들은 라마탑의 시험적 작품일 것”이라면서 “◇형과 X형 등 전혀 고려탑에서 볼 수 없는 무늬들은 몽골식 도안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볼 때 정동주씨의 주장은 곧 소연구관이 제기한 문제를 발전시키고,몽골 현지를 찾아가 증거들을 직접 수집한 결과를 스스로 밝힌 대로 세상에 “보고한 것일 뿐”이다. 불교학자인 허일범 진각대 교수도 다른 방향에서 운주사 천불천탑과 몽골의 관련 가능성을 언급했다.그는 “밀교교설에 입각한 다면다방불(多面多方佛)은 티베트 불상의 특징을 계승한 것”이라면서 “운주사 석조감실안에 있는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의 합체불은 티베트나 몽골 등지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는 40여년의 대몽(對蒙)항쟁기간과 한 세기에 걸친 정치적 간섭기를 거쳤다.원의 간섭은 고려시대와 그 이후의 정치·사회·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그들이 신봉한 라마불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최근 출간된 ‘불교조각 Ⅰ·Ⅱ’(강우방 이화여대교수 등 3인 공저, 솔 펴냄)에는 ‘화려한 장엄,라마 불교의 영향’을 하나의 주제로 삼아 취급하고 있다. 미술사학자인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는 특히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강산 출토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아예 “원에서 직접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을 ‘한국미술사’(예술원 펴냄)에서 내놓았다. 나아가 고려에 유입된 라마 양식의 불상은 이국적 풍모에 장식성이 강한 양식을 형성하여 조선 초까지 크게 유행했다.이런 왕실불상의분위기는 퇴화하기는 했어도 조선 중기까지는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소 연구관은 “운주사의 불탑과 불상이 자력불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해도,몇몇 이국적 디자인을 제외하고는 고려시대 선조들이 이룩한 토착적 석공예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강조했다.나아가 ‘달빛의 역사…’은 명백히 실재(實在)했지만 규명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몽골의 문화적 영향’을 부각시켜 세상의 관심을 갖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몽골의 영향이 있으면 있는 대로,우리 고유의 미의식이 담겼으면 담긴 대로,사실 그대로 밝히는 것이 숨기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문화사를 풍요롭게 하는 노력이 아니겠느냐.”는 한 독자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동철기자 dcsuh@ 史料로 본 천불천탑 운주사(雲住寺)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다.남북으로 길게 벋은 협곡에 이른바 천불천탑이 자리하고 있다.운주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현재 석탑 17기와 석불 80여구가 남아있다고 적고 있다. 운주사 천불천탑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조선 성종 12년(1481년) 편찬하고 중종 25년(1530년) 증보한 ‘동국여지승람’이다.영조 19년(1743년) 발간된 ‘조선사찰사료’의 ‘도선국사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 지형은 떠가는 배와 같으니 태백산,금강산은 머리이고 월출산과 영주산(한라산)은 꼬리이다.변산은 키이며,지리산은 삿대이고,운주는 그 뱃구레이다.뱃구레를 눌러주어야 솟구쳐 엎어지는 것을 면한다.이에 절과 탑,불상을 세워 진압하게 됐다.” 이와 함께 천불천탑은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냈다는 전설도 이 지역에는 전해진다.그러나 미술사학자들은 천불천탑이 도선국사가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신라말이 아니라 13세기를 전후한 고려 중기의 특색을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한다.특히 양식은 30년 이상의 시차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큰 힘에 의하여 일거에 만들어지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해 왔다.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명찰순례’(대원사 펴냄)에서 이를 신불(神佛)의 힘을 빌려 몽골군을 격퇴하고자 조성한 호국도량으로해석했다. 하룻밤 창건설을 논외로 한다면,소설가 정동주씨가 ‘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에서 새로 펼쳐 놓은 ‘몽골의 전승기념물’이라는 주장과 최완수 연구실장의 ‘고려의 호국사찰’이라는 학설은 조성의 주체만 다를 뿐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진실이 어떤 쪽이든,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이 완전히 밝혀지는 날이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온 것만은 분명하다. 서동철기자
  • 이 주일의 어린이 책/왜 미술을 하나요?

    엘리자베스 뉴베리 지음 신상호 옮김 / 동산사 펴냄 미술사조나 유명화가의 작품세계를 단편적으로 조명하는 어린이 미술교양서는 꾸준히 발간돼왔다.하지만 좀더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안내서가 아쉬웠다면 ‘왜 미술을 하나요?’ 시리즈를 눈여겨볼 만하다. 지은이는 대영박물관 큐레이터 출신으로 현장경험을 책속에 고스란히 녹였다.전문가적 식견을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흥미진진하게 포장했다. 예컨대 미술이 서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이렇게 귀띔한다.신화와 전설을 좋아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상상 속의 이야기를 생활용품에 투영시켰다는 해설과 함께 기원전 540년경의 그리스 술항아리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는 식이다. 미술이론을 설명하는 데 동원한 소재도 매우 다양하다.메시지를 담는 대화창구로서의 미술기능은,미국 독립기념일 경축엽서에 등장한 샘아저씨 그림으로 이해시킨다.미국(United States)의 첫 글자인 ‘US’를 상징한 표현물 샘아저씨(Uncle Sam)와 성조기,독수리가 어우러져 미국의 애국심과 긍지를 극대화시킨다는 사실을 친근한이야기체로 들려준다. 미술기법에 대한 해설서 ‘어떻게 미술을 하나요?’ ‘미술과 색’ ‘미술의 비밀’ 등이 함께 나왔다.초등 3년 이상.각권 8500원. 황수정기자 sjh@
  • 책/역사인물 초상화 대사전

    초상화를 두고 우리나라 옛 사람들은 “털끝 하나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一毫不似便是他人).”라며 극도의 사실성을 드러내려 했다.한편으로는 정확하게만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주인공이 품었던 뜻을 드러내는 사의(寫意)와 정신세계를 느끼게 하는 전신(傳神)을 강조하기도 했다. ‘역사인물초상화대사전’(현암사 펴냄)은 이런 선인들의 초상화를 한데 모은 자료집이다.신라의 최치원과 고려의 정몽주,조선의 태조 이성계에서 한말 이용익에 이르는 역사인물의 초상 269점을 담았다.맹인재 문화재위원과 유희경 복식문화연구원장,김미자 서울여대 교수 등 전문가들의 해설도 실었다. ‘역사인물…’은 지난 1972년 탐구당에서 나온 ‘한국명인초상대감(韓國名人肖像大鑑)의 증보판에 해당한다.대표집필자인 이강칠 전 군사박물관장은 1968년 일본에서 덴리(天理)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 ‘명인초상화첩’을 열람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여기에 실린 201점의 초상화 가운데 중복된 것과 제문이나 발문이 없는 것을 뺀 118점을 추렸다.소식이 알려지자추가수록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았고,이 과정에서 70여점의 국보급 초상화가 새로 발굴되어 실렸다. ‘역사인물…’은 탐구당 한정본 이후 발굴된 실학자 다산 정약용과 화가 최북의 초상화 등 60여점을 새로 반영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지원군 장수 이여송의 초상화도 새로 수록했는데,우리나라에 귀화한 후손들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역사인물…’은 그러나 복식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미술사의 관점에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방향이 다를 수 있겠다.10만원. 서동철기자 dcsuh@
  • “고구려史 연구 대수술” 한목소리

    ‘고구려사 연구 이대로 좋은가.’ 최근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시도가 첨예한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학계가 고구려사 연구 풍토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고대사학회를 비롯한 17개 한국사 관련 학회로 구성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공동대책위원회’는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시도를 저지하는 첨병 역할을 자임,다양한 고구려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국내 여론 조성과 남북공조에도 적극 나설 것을 천명했다.대책위는 특히 내년 6월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에서 북한의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에 따라 고구려사 연구성과와 방향을 점검하는 크고 작은 학술세미나가 줄을 잇고 있다.정신문화연구원은 고대사 연구 및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동북고대사연구소’를 설립하기에 앞서 15일 ‘고대사 관련 심포지엄’을 열어 고구려사 연구의 방향을 점검한다.‘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공동대책위원회’도 내년3월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의 고대사 학자들을 초청해 ‘고구려 고분과 벽화의 세계’를 주제로 국제세미나를 열 채비를 하고 있다.한국미술사학회와 한국고대사학회도 각각 ‘고구려의 민속문화’‘고구려 역사’를 주제로 세미나를 올해 안에 열 계획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대응논리를 세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학계의 고구려사 연구풍토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고구려사 연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연구인력 부족과 연구영역의 편중성.백제·신라사에 비해 연구인력이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에서 연구영역도 당연히 편향적이라는 게 공통된 견해다.또한 중국과 북한 지역에 자료가 집중돼 현장 접근이 수월치 않은 탓도 있지만 문헌사학과 고고학이 원활한 공조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점이 문제다. 학자들은 따라서 무엇보다 국내 학자들의 협력과 남북공조,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연구지원 및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일본의 경우 중국의 고구려 유적 발굴보고서를 해체해 재구성하는 수준에 와 있지만 우리는 고구려 유적 성격 등에 관한 해석에서 거의 중국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중국의 경우 현재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수백명의 연구자가 참여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고구려 관련 박사학위 소지자 12명을 포함,전체 연구자가 3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고구려와 발해 고조선사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철 강남대 교수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역사전쟁으로 규정한채 단기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이번 기회에 고대문화의 전체적인 역사와 흐름에서 국가와 민족을 재조명할 수 있는 포괄적인 기초를 다진다는 각오와 자세가 더 중요하다.”며 “모든 학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초등교육과 취업96%… 법학 40%/대학 학과별 취업률 조사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인문사회계열 중에서 ‘법학계열’ 등 일부 인기학과의 취업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국산업인력공단 중앙교육정보원이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해 분석한 ‘2004 학과정보’에 따르면 올 4월1일 기준으로 법학계열의 취업률은 40.33%로 전국 121개 학과·계열 중에서 최저 수준으로 집계됐다. 한때 ‘잘 나갔던’ 법학계열의 취업률이 가장 낮은 이유는 상당수 학생들이 취업을 하지 않고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사회계열 중에서 또 문화민속미술사학계열이 42.75%로 취업률이 끝에서 두 번째를 차지했으며,심리학 44.88%,국악 45.17%,에너지공학계열 46.39%,천문기상학 47.09%,역사고고학계열 47.11%,정치외교학계열 47.61%,철학·윤리학계열 48.70%,행정학계열 48.94% 등의 순이었다. 취업률이 가장 높은 계열은 초등교육으로 96.76%였다.초등교육학계열은 현재 이화여대·한국교원대 등 2개 대학에 개설돼 있으며 올해 졸업생 223명 중에서진학자 7명을 빼고 209명이 취업했다. 초등교육학과 졸업생은 재학시 교생실습을 거치면 초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며,교원임용교사에 합격하면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된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창환 박사는 “초등교육학과 취업률이 높은 원인은 일단 초등학교 교원이 모자라는 데 있다.”고 말했다. 초등교육학과 다음으로는 치의학계열이 95.89%로 2위를 차지했다.또 간호학계열과 의학계열이 각각 92.20%,91.89%로 3,4위에 올랐다.특수교육계열 91.26%,한의학계열 85.94%,약학계열 79.14%,유아교육학계열 75.88%,체육계열 75.56%,보건학계열 75.12% 등의 순이었다. 취업률은 졸업생 가운데 진학자와 입대자를 뺀 나머지 중에서 취업한 사람의 비율을 나타낸다. 김용수기자 dragon@
  • 루벤스의 ‘한국인’ 국내 첫선/‘루벤스 - 반 다이크’ 드로잉展

    루벤스로 대표되는 플랑드르 미술은 17세기 서양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플랑드르 미술은 보통 19세기 이전 남부 네덜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미술로,오늘날 벨기에 북부의 행정구역인 플랑드르주와는 관계가 없다.플랑드르 미술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19일부터 내년 2월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루벤스-반 다이크 드로잉’전에서는 루벤스를 비롯해 반 다이크,요르다엔스 등 플랑드르 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작 중에는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통해 잘 알려진 루벤스의 작품 ‘한국인(사진)’이 국내에 첫 소개돼 관심을 끈다.지난 83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드로잉 경매사상 최고가인 32만 4000파운드에 팔린 ‘한국인’은 미국 로스엔젤레스 게티 미술관 소장품.이 드로잉은 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공복(公服)차림의 사내를 묘사한 것으로,회화제작을 위한 습작이 아니라 독립된 완성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다.하지만 작품 속 인물이 정말 한국인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반 다이크는 루벤스의 가장 뛰어난 제자로,유럽미술사에서 귀족 초상화의 새로운 전형을 창조한 인물로 평가 받는 인물이다.(02)580-1300. 김종면기자 jmkim@
  • 삼국 풍만 고려 우아 조선 요염/그림으로 본 시대별 한국 미인

    한국의 고전적인 미인상이 삼국시대 ‘풍만형’에서 고려시대에는 ‘우아형’,조선시대에는 ‘요염형’으로 변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미의 기준은 남성의 욕구에 따라 형성되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억압을 받기도 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홍선표 교수는 3일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이 ‘한국인의 신체관’을 주제로 연 학술대회에서 ‘한국 미인화의 신체 이미지’라는 발표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홍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고려 불화,조선의 풍속화 등을 검토해보면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고대에는 훤하고 퉁퉁한 여성에서 고려 때는 아담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여성으로 옮겨갔다.”고 밝혔다.또 “조선시대부터는 정감적이고 염요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이 미인으로 여겨졌는데 조선 후기 유흥과 향락의 주체가 사대부에서 중인으로 넘어오면서 이런 경향이 더욱 노골화되었다.”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특히 “고전적 미인상은 16∼18세 나이의 성적 생식능력이 생기기 시작하는 ‘소녀’를 ‘진미인(眞美人)’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미모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보는 쪽의 감성적 느낌을 중심으로 자연의 주술력이나 신체미에 비유해 형용했던 것 같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그는 “맑고 선선하면서 가늘고 긴 눈과 붉고 작은 입술,흰 피부,좁은 어깨,가늘고 유연한 허리 등이 미인의 조건이었다.”고 덧붙였다. 구혜영기자 koo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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