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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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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의 정체성’ 학술대회 여는 JC 박상용 회장

    “한·중 양국이 벌이고 있는 고구려사 논쟁의 핵심은 바로 고구려의 정체성 문제라고 봅니다.지금 우리사회의 정체성 문제는 비단 역사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청년의 애국심과 민족적 자긍심을 강조해온 한국청년회의소의 입장에서 당연히 관심을 갖고 천착해야 할 중대한 사안입니다.” 오는 28∼30일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콘퍼런스홀과 소회의실에서 ‘고구려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여는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 박상용(38)씨.‘조국의 미래,청년이 책임’이라는 한국JC의 대명제를 거듭 강조하면서 이번 학술대회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6월 중국 광명일보에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임을 주장하는 기사가 실려 파문이 인 직후부터 고구려연구회와 접촉해 구체적인 사업으로 구상했습니다.역사왜곡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에 맞닥뜨려 정체성 찾기에 젊은이들이 앞장서 불씨를 지펴보자는 뜻에서 적극 매달렸습니다.” 학술대회는 ‘사서에 나타난 고구려의 정체성’ ‘연구사를 통해서 본 고구려 정체성’ ‘한국사에 나타난 고구려 정체성’ ‘대외관계를 통해서 본 고구려 정체성’ ‘고고미술사를 통해선 본 고구려 정체성’이란 소주제 아래 모두 84명이 참가해 주제발표와 토론을 진행한다.각국의 학자들이 똑같은 자료를 갖고 해석해도 각기 다른 관점과 입장을 보이기 때문에 토론을 거쳐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전체 37명의 발표자 가운데 12명을 외국학자로 구성했다. 한국JC는 올해 주요 사업인 ‘고구려 역사찾기 운동’의 하나로 마련한 이 학술대회 말고도,중국에서 입수한 고구려사 관련 사료들을 번역해 학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우리 학계의 고구려사 연구 환경이 아주 열악하다고 들었어요.학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관련 자료가 한정되어 있고 데이터베이스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학자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미공개 자료들을 입수해보자는 것이지요.단발성이 아닌 지속사업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한국JC는 전국 16개 지구,368개 지방회의소를 갖춰 정회원 2만여명과 40세 이상 명예회원 3만명 등 5만여명의 총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청년 기업조직.세계 110개 회원국 가운데 세번째로 많은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17대 국회의원으로 17명이 진출했으며 39명의 기초단체장,100여명의 광역의회 의원,300여명의 기초의회 의원들이 한국JC 출신이다.지난 1월 제53대 중앙회장으로 취임한 박 회장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을 JC운동으로 재건하자.’는 숭고한 이념 아래 창립된 한국JC가 본질과는 다르게 비쳐지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며 앞으로 이미지 개선과 홍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원로 예술인의 삶’ 다시 본다

    지금은 현장에서 물러났지만 격동의 근현대를 살면서 문화예술의 창조자로 맹활약했던 원로들이 역사기록자로 나섰다. 지난해 6월부터 ‘한국 근현대예술사 증언채록사업’을 벌여온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소장 강태희)는 최근 문화예술계 원로 32명의 증언채록을 마쳤다고 23일 밝혔다. 문예진흥원 후원으로 진행되는 증언채록사업은 지난 세기 현장에서 활약했던 80·90대 원로 예술인 100인의 증언을 통해 한국 근현대예술사를 정리하는 기획으로,이번에 1차사업이 마무리됐다. 이달 말 책으로 발간될 32명에 대한 증언 채록 작업에는 자문,발제,토론,촬영,녹취문 작성 등에 200여명의 예술인과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2005년까지 진행될 채록사업은 음악,무용,연극,미술,문학,대중예술 등 6개 분야에 걸쳐 1930년 이전 출생한 원로 예술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이번 1차연도에는 1920년 이전 출생자들이 인터뷰 대상자로 참여했다. 해당분야 전문가들이 5∼6회에 걸쳐 대상자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촬영,녹취한 증언 채록작업 결과 총 300여 시간 분량의 영상자료와 200자 원고지 4만 5000장의 녹취문이 만들어졌다. 영상자료와 녹취 문집은 문예진흥원 예술사료관에 보관돼 연구의 1차사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1차연도 사업에 참여한 문화예술인에는 정진숙(92) 을유문화사 사장,국악인 이은관(87),미술사학자 황수영(88)·진홍섭(88),연극배우 김동원(88),시인 황금찬(86),화가 전혁림(88)·정점식(88)·김흥수(85),무속인 김석출(82),건축가 엄동문(85),방송작가 한운사(81)씨 등이다.구상 시인,영화배우 독고성씨,한만년 일조각 대표도 인터뷰 대상이었으나 채록에 앞서 별세했다.아동문학가 어효선 선생은 증언채록 한 달 뒤인 지난 5월 작고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미술사학자 진홍섭씨는 고유섭 선생을 만나 미술사로 전환한 경위와 동료 미술사학자 황수영·최순우씨 등과 교유했던 과정을 상세히 전했다. 미수(米壽)의 화가 전혁림은 “처음부터 화가가 되려던 게 아니고 문학을 하기 위해 일본어로 번역된 소설책을 탐독했다.”며 자신의 그림작업이 문학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털어놓았다. 정진숙 사장의 증언에는 광복 직후 문화예술인들이 출판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동해안별신굿의 무속인 김석출옹은 우리네 삶은 전통과 현대,몸과 정신이 한꺼번에 버무려진 집합체임을 들려준다. 이인범 예술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시기까지 역사의 주체이자 문화예술의 당사자였던 원로예술인들의 체험과 기억은 우리 근현대예술사의 단절과 공백을 메울 중요한 자료”라며 “구술작업을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없던 지난 시절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이그림 파는 건가요?’ 펴낸 미술평론가 임창섭 씨

    “이발소에 가면 ‘이발소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밀레의 ‘만종’을 흉내낸 그림이 대표적이었지요.그 다음으로 초가집 옆에 물레방아,어떤 알프스 같은 뾰족한 산을 그린 그림이 많았습니다.요즘에는 ‘야한 여인’이 인쇄된 그림이 점령했지요.” 미술평론가 임창섭(44·미술사학 박사)씨는 ‘이발소 그림’의 변천사를 재미있게 분석한다.예나 지금이나 이발소에 가면 반드시 ‘무슨 그림’이 걸려 있다고 했다.이발소 주인은 아무 생각없이 걸어놓고,손님 또한 그저 무심하게 쳐다볼 뿐이란다.글로 따지면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 그림도 많다고.이러한 특징 때문에 오랫동안 ‘이발소 그림’이라고 불려졌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발소 그림’은 어떻게 시작됐을까.그는 이같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 그림 파는 건가요?’라는 이색적인 책을 최근에 펴냈다(들녁刊).화단 언저리의 세계를 흥미롭게 다뤄 눈길을 끈다. “19세기말,20세기초 일본은 서양화를 받아들이면서 밀레를 중심으로 한 학파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1893년 파리 유학후 귀국한 동경미술학교의 구로다 교수가 당시 서양화풍을 주도했지요.또 동경미술학교 교수들이 우리나라의 관전(官展)이었던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참가했습니다.이 무렵 신문물의 하나인 우리 이발소에 일본 유학파들이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밀레의 그림이 등장했지요.” 이후 이발소 그림은 눈높이가 변하면서 대중의 흐름을 따랐다고 그는 설명했다.빠르게 마르는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면서 밀레의 ‘만종’ ‘이삭줍는 여인’외에 돛단배나 초가집 혹은 눈덮인 뾰족산이 전형적인 ‘이발소 그림’으로 등장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그는 “이발소 그림에는 작가가 없다.있어도 가명이나 영문 알파벳으로 이니셜만 있어 이름을 알 수 없다.”면서 “한때는 수출주력 상품으로 육성하자는 주장도 있었고 지금 역시 이발소 그림은 생산되고 있다.”고 말했다.이래저래 이발소 그림은 미술문화의 한 부분을 담당해왔단다.요즘에도 그림시장에서 ‘이발소 그림’을 달라고 하면 산과 계곡 등이 그려진 풍경화를 가장 먼저 보여준다고 했다. “지구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이래 사과 한 알 실감나게 그리는 데 9만년쯤 걸렸습니다.또 그리스의 미술에서 발가락을 그리기까지는 수백년이 걸렸습니다.” 다음은 그가 전하는 그림 관람객의 세 가지 유형이다.▲일류=고개를 갸웃거리며 위아래로 그림을 훑어본다.그리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다음 그림으로 게걸음한다.▲이류=화랑문을 확 열고 들어와 빠른 걸음으로 그림을 쭉 훑고 나가버린다.그런 다음 작가의 팸플릿을 반드시 본다.▲삼류=그림 앞에 딱 붙어 열심히 본다.손가락으로 그림을 푹 찔러본다.요즘에는 디지털카메라가 부착된 휴대전화로 연방 그림을 찍어댄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나를 사로잡은 그녀,그녀들’/함정임 지음

    “암사슴들에 둘러싸인 소녀,그녀에게 뚜렷한 것은 오직 눈뿐이다.그것은 흡사 새로 돋아난 별과 같고 초승달과 같다.” 소설가 함정임(40)은 최근 펴낸 미술에세이집 ‘나를 사로잡은 그녀,그녀들’(도서출판 이마고)에서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의 그림 ‘암사슴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시인 장 콕토가 야수파와 입체파 사이에 낀 로랑생의 옹색한 입지를 두고 파리 화단의 ‘불쌍한 암사슴’이라 불렀듯,함정임은 지금 그녀를 불러내 ”미안하다.”는 말로 안쓰러운 마음을 전한다. 함정임은 오랑주리 미술관의 로랑생 그림을 보기 위해 프랑스에 갔지만,노트르담의 쌍탑이 눈에 들어오는 생 미셸의 다락방에서 한 달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로랑생’을 찾아 나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어머니 몰래 화실을 드나들던 화가지망생 함정임과,야간 소묘 교실에 다닌 것을 제외하곤 오로지 독학으로 미술가가 된 마리 로랑생.이 둘의 운명엔 어떤 공분모라도 있는 것일까.문학평론가 김윤식이 1992년 함정임의 첫 창작집 ‘이야기,떨어지는 가면’에 적어 놓은 것을 보면 모종의 암시를 얻을 수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보름달을 그 자체로 머금고 있기에,마리 로랑생의 당나귀와 새와 여우와 함께 있어도 또는 청색 홍색 한가운데 놓여 있어도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다.…” 저자를 사로잡은 그림속의 ‘그녀들’에겐 저마다의 삶이 있고 사연이 있다.벌거벗은 그녀,목욕하는 그녀,춤추는 그녀,레이스 뜨는 그녀,책 읽는 그녀,짝짓는 그녀,복수하는 그녀….삶의 밑바닥을 온전히 견뎌낸 이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아우라를 발한다.저자는 미(美),감(感),정(情),인(人)이라는 네 개의 감각적인 주제로 나눠 그림 속 주인공에 접근한다. 저자는 보들레르적인 미의식을 드러내는 “기이하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 책이 그림속 여성들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심미적 탐험의 기록임을 밝힌다.그런 만큼 그림이나 화가의 역사적 배경과 미술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기존의 미술관련서와는 구분된다.작가 고유의 감성과 상상력으로 그림 속 인물과 공감을 이뤄내는 독자적인 글쓰기 방식을 택했다. 에드가 드가의 작품 ‘압생트’의 그녀를 통해 서른 아홉 살에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부양해야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는가 하면,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을 보면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한순간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서른 세 살 봄의 자신을 회상한다.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프리다 칼로,나혜석의 작품에 접해서는 그들의 상처투성이 삶을 떠올린다.이처럼 그림 속 ‘그녀들’과 한 몸이 되기까지 저자는 15년의 긴세월 동안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성당,유적지들을 돌아다녔다.소설가이면서도 정작 소설책보다는 미술관련 책들을 서가에 더 많이 꽂아두고 있는 작가.이 책은 함정임의 그림에 대한 오랜 짝사랑의 결실이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이런책 어때요]

    ● 안녕하세요 교황님/최성은 지음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담았다.교황의 본명은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1920년 폴란드 남부 도시 바도비체에서 예비역 육군장교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 출신의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책은 ‘하늘 아래 최고 성직자’로 불리는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폈다.크라쿠프 지역의 주교신부를 맡아달라는 부탁에 “그렇다고 제가 카누를 못타게 되는 건 아니겠죠.”라고 되물었다는 이야기,교황 취임식 행사를 앞두고 오후에 축구경기를 봐야 하니 오전중으로 행사를 마쳐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 등이 실렸다.8000원. ●트로이수전 우드포드 지음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은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의 탄생과 여신들(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의 사소한 다툼에서 비롯됐다.책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의 원천이 된 트로이 전쟁의 신화를 복원한다.미술사가인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벽화와 암포라(몸통이 불룩하고 목이 긴 항아리) 등에 남아 있는 그림들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아킬레우스의 죽음,아이아스의 자살,오디세우스의 계책에 의한 트로이의 함락,아이네아스의 탈출 이야기에 이어 6세기 비잔틴 시인 아가티아스의 노래로 끝을 맺는다.1만 1900원. ●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필립 쿤 지음 중국 역사에서 청나라의 전성기라면 강희,옹정,건륭 세 황제의 치세를 꼽을 수 있다.특히 가장 뛰어난 만주족 황제였던 건륭제가 다스린 60년간(1735∼1795년)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이를 토대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시기다.그런데 1840년 아편전쟁 이후의 중국 근대사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가 갖게 되는 의문이 있다.그런 건륭년간이 끝난 지 불과 반세기 만에 어떻게 청나라가 서양 열강들 앞에서 그토록 무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저자(하버드대 교수)는 1768년 중국 대륙을 휩쓴 ‘영혼절도’사건을 고리로 얘기를 풀어간다.1만 8000원. ● 마틴 루터 킹 / 마셜 프래디 지음 서른다섯 살에 노벨평화상을 받고 서른아홉에 극적으로 생을 마친 인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평전.내성적인 어린 시절부터 1955∼1956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의 버스승차 거부투쟁을 통해 미국 전역의 이목을 끌며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로 떠오른 시기,1968년 테네시의 한 모텔에서 흉탄에 맞아 절명하는 순간까지 다룬다.간간이 내비치던 킹의 자만과 허영,난잡한 혼외정사 등 도덕적 약점과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기’를 고대했을 만큼 극심했던 심적 갈등,죽기 직전까지 시달렸던 ‘순교’에 대한 의무감 등도 숨김없이 보여준다.1만 6000원. ●야만의 시대/김성진 지음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인 이라크는 20세기에 들어 오토만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각축장이 됐다.2차대전이 끝나자 겨우 독립을 이룰 수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이란 새로운 적을 만나 신음하고 있다.영화 ‘왝 더 독’‘쓰리 킹즈’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전쟁에 반대한 유럽 각국의 의도를 헤아려 보게 한다.영화를 통해 문명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의 실상을 파헤쳤다.‘착한 쿠르드,나쁜 쿠르드’‘살아 있는 붓다’‘마수드 아프간’ 같은 분쟁지역의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분석도구로 삼았다.1만 1800원.˝
  • 英 현대미술대표작 100여점 전소

    |런던 연합|영국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던 주요 작가들의 대표작 100여점이 예술품 창고에서 발생한 초대형 화재로 잿더미가 됐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BBC 등 영국 언론들은 26일 예술품 전문 보관창고인 ‘모마트’에서 24일 발생해 이틀째 계속된 화재로 세계적 현대 미술품 컬렉터 찰스 사치의 소장품들이 전소됐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영국 현대 미술사의 최대 비극”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모마트 예술품 창고에는 트레이시 에민,채프먼 형제,데미언 허스트,사라 루카스,게리 흄 등 1980년대 이후 혜성같이 등장해 영국 현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창조했던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대량으로 보관돼 있었다. 찰스 사치의 대변인은 “화재 현장에서 터너상에 빛나는 에민의 ‘텐트-내가 잠자리를 같이 했던 사람들 1963∼1995’ 등이 소실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피해 규모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사치는 큰 충격에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마트 창고는 찰스 사치 이외에 내셔널 갤러리,테이트 모든,테이트 브리튼 등 영국 유명 박물관들이 소장한 현대 미술품들을 보관해 왔다. 헤이스팅스는 영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이른바 ‘젊은 영국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비롯해 다양한 미술품들이 보관돼 있었다고 밝혔다.˝
  • 한국역사민속학회 주강현 회장

    “우리 민중의 생활사와 풍속사,그리고 문화사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합니다.역사기술이 파워 엘리트 중심으로 편향돼 있기 때문이지요.” 주강현(49) 한국민속문화연구소 소장은 최근 ‘한국역사민속학회’ 회장에 선임됐다.지난 90년 창립된 이 학회 역사상 비(非) 대학교수의 회장은 처음이어서 주목을 끈다.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서럽도록 외면되다시피 한 민중생활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연구하는 ‘행동하는 민속학자’로 유명하다.민속학계에서는 그를 가리켜 ‘건강한 진보사관’의 소유자라고 일컫는다.그는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데가 없다.인터뷰 자리에서 불쑥 제주도의 한 촌락을 얘기했더니 무당이름까지 거론하며 민속적 특징을 막힘없이 줄줄 꿴다. 그는 “민초들의 삶과 역사는 대부분 구질구질하다는 이유로 기록되지 못했다.”면서 “위(상층부)에서 아래로가 아닌,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역사기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예를 들어 19∼20세기의 어민의 삶과 역사에 대해서는 어떠한 기록도 없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누가 이 일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위와 아래,내연과 외연으로 오고가는 그런 역사연구가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흔히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 저는 ‘인문학자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청계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연구할 학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지난 97년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1,2편’을 발간하면서 민속학계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이후 서점에서는 ‘민속학’ 관련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그의 ‘우리 문화∼’는 30만부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최근에는 신세대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정판을 냈다.그의 장점은 철저한 ‘발품’에 있다.민속사의 현장을 직접 답사해 사진을 찍고 잊혀져가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깨알같이 기록한다.직접 촬영한 관련 사진만 해도 20만컷 이상 보관하고 있다.경기도 일산의 그의 집에는 2만여권의 관련 장서가 있어 귀중한 ‘정보창고’(정발학연)가 되고 있다.그는 “진정한 민속사는 깡촌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열심히 만나 구술하는 오럴 히스토리(Oral History)”라고 말했다. 그는 ‘두레연구’로 경희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또 최근에는 고려대에서 문화재학 박사까지 취득,왕성한 연구의욕을 보이고 있다.주 전공은 역사민속학으로 해양문화학,민속미술사,성풍속사,무형문화 등이 연구의 중심 축을 이룬다.지금까지 ‘조기에 관한 명상’‘굿의 사회사’‘마을로 간 미륵’‘개고기와 문화제국주의’ 등 3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객반위주(客反爲主),객이 주인행세를 한다는 것이지요.신자유주의의 패권적 확충이 절대화될수록 토종문화는 구닥다리로 내몰리기 마련이지요.그러나 인간 스스로의 삶을 위해서라도 문화적 종 다원성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오세창선생 유물 예술의 전당으로

    서울신문사 초대사장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선생의 유물 60건 300여점이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기증된 것으로 알려졌다.박물관측은 지난해말 위창의 막내 아들 오일육(82)씨가 ‘근역서화징’초고와 위창의 글씨 등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와 지난달 유물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인 선생은 전통 그림,글씨 감식과 미술사 연구로도 이름이 높았다.기증된 유물은 ‘근역서화징’초고를 비롯해 선생의 부친인 오경석(1831~1879)이 중국 지인들과 주고받은 간찰집인 ‘중사간독첩’,금석문 탁본집인 ‘위창인보’ 등이다.한국 미술사 연구의 필수자료로 여겨지는 ‘근역서화징’은 고대부터 근세까지 국내 유명 서화가의 행적을 정리한 인물사전.특히 위창의 숨결이 친필 속에 담긴 초고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희귀본으로 평가된다. ‘중사간독첩’역시 조선 말기 통역관을 지낸 오경석이 중국을 오가며 현지 문인과 나눈 편지를 모은 것으로 한·중 문화교류사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희귀자료다. 외교관 출신인 기증자 오씨는 “죽기 전에 수집자료들을 공공기관에 기증하는 것이 선친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이들 유물은 오는 25일 개막하는 위창 기증유물 특별전에서 공개된다. 김소연기자 purple@˝
  • ‘김봉태-창으로부터’ 展

    서양화가 김봉태(67)는 원색을 사용해 빛의 세계를 표현하는 ‘빛의 작가’다.1960년대 앵포르멜의 세례를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동시대 작가들이 단색조 회화에 빠져 작업하던 시기에도 오방색을 바탕으로 한 강렬한 색감의 세계를 추구했다.이같은 색면예술의 세계는 40여년의 화업을 통해 이어져 왔다.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김봉태­창으로부터’전에 나와 있는 작품들 역시 작가의 그런 풍부한 색채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 97년부터 선보여온 ‘창문’ 연작 중 최근작 40여점을 골랐다.아크릴릭과 자동차 도료로 사용되는 폴리우레탄을 안료로 쓰는 작가의 작품은 미세한 붓질 흔적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곱고 선명하다.여러 모양으로 변형된 캔버스와 알루미늄을 사용해 부조 형식으로 꾸민 점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왜 ‘창’에 관심을 가질까.작가에게 창은 안과 밖의 경계이자 외부와 내부가 소통하는 통로다.창이라는 틀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색채를 통해 작가는 경계를 뛰어넘는다.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너와 나의 구분이 무의미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이번 작품들은 정형화된 사각의 창문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각형에 삼각형이 잇대어진 것,아래 위로 두개의 삼각형이 포개어진 것,둘레에 가느다란 막대모양의 프레임을 얹은 것 등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띤다. 작가는 지난 63년 미국으로 건너가 20여년 동안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살며 강렬한 자연의 색채들을 경험했다.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서는 태양빛을 닮은 찬란한 색채들이 빛을 내뿜는다.김봉태는 ‘현대미술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의 ‘ART TODAY’(영국 파이돈 출판사)에 백남준,하종현,김종학과 함께 한국미술의 대표 작가로 실려 있다.전시는 16일까지.(02)720-1020. 김종면기자 jmkim@˝
  • 꽁꽁 싸고 둘둘 말아서… 國寶는 ‘이동중’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9일 석재유물 2120점을 옮긴 것을 시작으로 용산 새 박물관으로의 이전작업에 본격 돌입했다.1915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시작한 중앙박물관 이전은 한국전쟁 이후 1953년 남산,65년 덕수궁 석조전,72년 경복궁,86년 중앙청 이전에 이어 96년 현 박물관으로 이전한 뒤 8년 만에 이뤄지는 대대적인 작업이다. 19일 이전한 경복궁내 박물관 수장고의 석기·청동기시대 마제석검 등 석재품을 포함해 오는 연말까지 약 8개월에 걸쳐 이전할 유물은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 등 모두 9만 9622점. 이전작업에 연인원 7700명이 투입되며 5t짜리 무진동차량 490대가 소요된다.전체 유물 가치는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300억원을 포함해 약 7000억원으로 평가됐으며 유물의 이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지급한 손해보험 액수만도 5억 2000만원에 달한다. 19일 국립중앙박물관이 시연을 통해 공개한 이전 내용을 보면 유물은 우선 중성 한지로 싼 뒤 충격에 대비해 솜포로 다시 감싸 각각의 크기에 맞게 제작된 오동나무 상자에 넣은 다음 소형 알루미늄 상자에 담아 차량에 싣게 된다. 경복궁 내 현재의 위치에서 용산 새 박물관까지 9.5㎞의 구간을 30분에 걸쳐 이동하게 되는데 안전을 위해 운송차량에는 직원과 무장한 호송원이 탑승하며,운반차량 앞뒤에서 경찰이 호송을 지원한다. 유물 이전은 석재품을 시작으로 토기를 비롯한 토제품,도자기류,금속유물,피모직물류에 이어 전적류 및 회화의 순서로 진행된다. 박물관에 전시중인 유물 6300점은 오는 10월18일 임시 휴관에 들어간 뒤 이전하고,야외 전시 석조유물은 새 박물관 조경이 완성되는 내년 3월부터 옮길 계획이다. 한편 내년 10월 개관할 용산 새 박물관의 현재 공정률은 92%.외부 조경과 전시실 인테리어 공사 등을 남겨두고 있으며 박물관내 미군 헬기장 이전 부지가 결정되면 올 하반기 철거에 들어가 조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새 박물관의 규모는 현재 건물의 3.5배.수장고도 4249㎡에서 1만 2434㎡로 확대되며 이중외벽으로 누수나 유해공기 유입을 차단하고 유물의 재질에 따라 수장고별로 독립 공조시설이 설치되는 등 수장환경이 크게 개선된다.이전된 유물들은 21곳의 수장고에 성격과 재질별로 정돈,보관된다.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중앙박물관은 이번 이전으로 6번째 옮기게 되지만 한국전쟁 중 숱한 문화재를 부산으로 옮기면서 피해를 최대한 줄인 경험을 살려 오래 전부터 이전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왔다.”면서 “새 용산박물관이 완공되면 역사관을 신설해 고고발굴자료 및 미술사 자료에 크게 의존해 왔던 종전 전시에서 고지도·고문서·금석문 등 역사자료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kimus@˝
  • 노화랑 ‘20세기 7인의 화가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도상봉 오지호 이상범 변관식.민족의 보편적인 정서를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로 승화시킨 거장들이다.2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리는 ‘20세기 7인의 화가들’전에선 이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골라 소개한다. 박수근이 서민생활의 애환을 다뤘다면,이중섭은 민족의 힘과 아이들의 천진함을 그렸다.김환기는 자연의 영원함과 추상적 미의 세계를,도상봉은 자연에의 순응을,오지호는 빛과 대기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상범의 나지막한 동산이 친근함을 준다면,변관식의 산야는 힘찬 기운을 내뿜는다.전시 작품은 박수근 ‘모자’,이중섭 ‘닭과 어린이’,김환기 ‘노점’,도상봉 ‘항아리’,오지호 ‘항구’,이상범 ‘하경’,변관식 ‘추경’ 등 30여점. 이번 전시에선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도상봉과 오지호를 각각 짝지어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20세기 전통회화의 두 거장인 청전과 소정의 작품세계는 퍽 대조적이다.명지대 이태호(미술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청전의 산수화는 잔잔한 수평구도인데 비해 소정의 그것은 수직이나 사선구도로 드라마틱하다.도상봉과 오지호는 동경미술학교 선후배 사이로 똑같이 인상주의의 세례를 받았다.하지만 두 사람의 작업 방향은 크게 달랐다.도상봉이 조심스러운 필치로 조용한 감수성을 내세웠다면,오지호는 캔버스에 속도감 넘치는 격정을 표출한 것이 특징이다.(02)732-3558. 김종면기자˝
  • 그리스신화 한국 정서로 읽는다

    오는 8월 13일부터 29일까지 아테네에서 열리는 제28회 하계올림픽에 앞서 기획한 ‘아테네올림픽 신화 화필기행’은 수많은 신화와 설화의 무대가 된 아테네와 인근 주요도시의 유적들을 찾아가 한국인의 정서와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테네올림픽 신화 화필기행’ 참여 작가 12명과 관계자들은 20일 아테네 출발에 앞서 17일 사비나미술관에서 3시간 넘게 마라톤 워크숍을 열고 작품의 방향과 ‘집단창작’ 구상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작가들은 시간,공간보다는 주제별로 접근해야 한층 호소력을 지닐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이날 ‘그리스 특강’을 한 미술사학자 노성두(45)씨는 일단 신화·영웅·스포츠·종교·누드·전쟁·죽음·건축 같은 키워드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하지만 현장감각이 중요한 만큼 작가들이 도식적으로 특정 주제를 맡지는 않기로 했다.경기도 양평 선바위 마을에서 작업에 몰두해온 작가 안창홍(51)씨는 “전쟁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놓고도 작가들이 갖는 인식의 차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며 자유로운 창작혼을 강조했다.작가들은 아테네에서의 현장토론을 통해 화제가 될 만한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해나가기로 다짐했다. 그리스 하면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게 그리스 신화다.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 신화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돼 왔다.세계의 신화들이 대부분 음유시인들의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리스 신화만큼은 여전히 심장의 고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그 생명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작가들은 7박8일간의 아테네 취재기간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해 니케 신전,포세이돈 신전,델포이의 톨로스 원형 신전 등 주요 신들의 거처를 찾아가 그 신비로운 맥박을 짚어낸다.저마다 자별한 상상력의 프리즘을 통해 독특한 빛깔의 ‘신전 작품’으로 다시 꾸민다.여기에 감상 포인트가 있다. 아테네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고대 올림픽 경기가 개최된 올림피아 성지는 작가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기원전 2∼3세기 레슬링이나 투창,원반던지기 연습을 했던 옛 올림픽 훈련장은 이제 기둥만 늘어선 폐허로 변했다.최초의 고대 올림픽 경기에 참가한 것으로 전해지는 괴력의 사나이 헤라클레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작가들이 과연 이 그리스신화 최고의 영웅으로부터 어떤 화재(畵材)를 끌어낼지 궁금증을 더한다.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지역은 다양한 문화가 쉼없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던 곳이다.그런 만큼 지중해 세계의 가장 큰 매력은 다채로운 문화적 체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그러나 지중해 문명은 우리에게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다.정보와 지식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그나마 지중해 문명에 관해 우리가 얻는 상식은 대부분 서양의 문헌에 의존한다.‘아테네올림픽 신화 화필기행’은 그리스,나아가 지중해 문명에 다양한 ‘한국적’ 감성으로 접근한다.그동안 그리스 기행 그림들이 단편적으로 선보이기는 했지만 이처럼 일급 화가군이 대규모로 현장을 찾기는 처음이다.화단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서울신문 창간 100년] 아테네올림픽 신화 ‘화필기행’

    오는 8월 중순 제28회 올림픽이 열리는 그리스 아테네는 시인 존 밀턴의 말처럼 ‘그리스의 눈’ 역할을 하며 고대부터 지금까지 영원한 문화도시로 자리잡아 왔습니다.서양문명의 발상지답게 이 신화의 도시에는 인류의 귀중한 유적과 유물이 가득합니다. 조각가 피디아스의 숨결이 살아 있는 파르테논 신전,세련된 미노아 문명을 보여주는 크노소스 궁전,원형 사원 톨로스 등 찬란한 유산은 그리스를 언제라도 가고 싶은 매혹의 나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신문사는 올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사비나미술관과 함께 고대 그리스 문명의 흔적을 탐색하는 대규모 기획특집 시리즈 ‘아테네올림픽 신화 화필(畵筆)기행’을 마련합니다.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그리스 문명의 뿌리를 살펴보는 고품격 역사 문화탐방 프로젝트입니다.서울신문사는 7월부터 그리스 문명의 현장에서 12명의 화가들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형상화한 그림을 관련 글과 함께 주 2회 지면에 싣습니다.이어 8∼9월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그리스 화필기행’전도 열 예정입니다. 참여 화가는 김봉준·김성호·김홍주·박병춘·박은선·안창홍·이강화·이만수·이종빈·정정엽·최민화·홍성담 등 화단에서 역량을 인정받는 중진작가들입니다.본사 문화부 김종면 차장과 미술사학자 노성두씨,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 김준기씨도 동행 취재합니다. 시공을 뛰어넘는 위대한 그리스 문명으로의 지상여행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 [이런책 어때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세르주 브람리 지음

    화가이자 건축가,공학자,군사전문가,과학자,해부학자,식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상징이다.이런 통속적인 이해에도 불구하고 다 빈치만큼 베일에 가려진 인물도 드물다.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가 “외모가 얼마나 수려한지 그를 보기만 해도 슬픔이 사라졌다.”고 했을 정도로 다 빈치의 존재는 그 자체가 칭송의 대상이었다.책은 다 빈치가 영향을 받은 마사초·조토·알베르티의 예술관,미켈란젤로와의 갈등,말년에 후견인을 찾아 쓸쓸하게 프랑스로 떠나는 장면 등을 소개한다.천재의 일생을 편견없이 들여다봤다.전2권 각권 1만 5000원.˝
  • 시민문화유산 1호 탄생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시민문화유산 1호인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이 10일 개소식을 갖는다. 내셔널트러스트란 보전가치가 있는 자연 및 문화 유산을 시민들의 기증과 기부를 통하여 확보한 뒤 시민들이 주도하여 관리하는 시민운동.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공동대표 김상원 김성훈 양병이)는 지난 2002년 12월 시민들의 성금으로 매입한 최순우 옛집의 복원·수리공사가 끝남에 따라 시민들에게 공개하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며 한국미술사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은 수많은 논저를 통하여 한국미술에 대한 국민의 이해의 폭을 넓힌 미술사학자.그가 1976년 사들여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최순우 옛집’은 전 국민의 필독서가 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쓴 곳이기도 하다. 성북동 고택은 1920년대에 지어진 한옥으로,조선말기 선비집의 운치를 그대로 이어받았다.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행랑채가 마주보고 있으며 소나무 산수유 등이 심어진 뒤뜰도 아름답다.집안에는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라는 혜곡 선생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문을 닫아 걸면 이곳이 바로 깊은 산중’이라는 뜻이다. 대지 120평에 건평이 45평인 이 집은 혜곡의 외동딸이 관리해 왔으나 다가구 주택 건축바람이 불면서 보전에 어려움을 겪었다.2001년 1월 발족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위원회(위원장 김홍남 국립민속박물관장)는 같은 해 9월부터 국민모금운동을 전개하여 사들일 수 있었다. 집값은 7억 8000만원으로 모금액은 8억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매입 이후 보수·복원 자문회의를 거쳐 공사를 끝마치기까지 들어간 비용의 100%를 민간모금으로 충당했다. 최순우 옛집은 한국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거듭난다.시민참여 문화유산 보전의 명실상부한 첫번째 성과인 만큼 당연히 시민들에게 되돌려지는 것.사랑채에는 고택을 관리·운영하고,문화유산 보전에 필요한 민간기금 모금을 선도할 ‘재단법인 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사장 김인회 전 연세대 박물관장)이 입주한다.최순우 옛집 개소식은 문화유산기금 발족식을 겸하게 된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최순우 옛집에 이어 오리 이원익(1547∼1634)선생의 유적지인 광명시 충현서원터와 서울 안국동의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살던 집,안동 하회마을의 북촌댁,인천 근대문화유산 지역,대천 선교사수양관 등을 보전대상으로 선정해 놓았다. 이에 앞서 내셔널 트러스트는 2002년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를 시민자연유산 1호로 확보하여 시민들의 자연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있는 매화마름 군락지는 땅주인 사재구씨가 112평을 무상으로 기증했고,800평은 시민기금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한편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오는 2020년까지 국민소득의 1%를 시민자산의 매입과 관리·운영을 위하여 적립하고,100만명의 회원과 5만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며,전국토의 1%를 소유 관리하는 시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목표를 세웠다.최순우 옛집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다.(02)739-3131.www.nationaltrust.or.kr 서동철기자 dcsuh@˝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

    “퇴계선생은 로맨스나 스캔들이 없었나요?” “왜요,단양의 기생 두향(杜香)이 하고 연애한 것은 유명하잖아요.” “낮퇴계,밤퇴계가 달랐다면서요?” “그런 속전이 있지.” “자네 퇴계선생의 매화음(梅花吟)이라는 걸 들어봤나?” “아뇨.” “퇴계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알고 싶으면 매화에 관한 시를 읽어봐.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저 매화나무에 물 줘라’하셨고 내내 아무 말 없다가 저녁에 일으켜 앉히니 앉은 채로 서거하셨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서 저자와 한 퇴계연구가 사이에 오고 간 선문답이다. 혹자들은 100여년전에 ‘서유견문’의 유길준(兪吉濬)이 있다면 이 시대에는 ‘문화견문’을 쓴 유홍준(兪弘濬·55·명지대 미술사학)교수가 있다고 얘기한다.공교롭게도 둘은 이름의 ‘돌림자’도 같은 기계(杞溪)유씨 ‘충목공파’의 문장가 집안 출신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반도 구석구석 안 가본데가 없다.북한까지 다녀왔다.발품으로 일궈낸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3권이 이를 입증한다.1,2권만 합쳐 250만부나 팔렸다.작고한 소설가 이문구는 생전에 그를 가리켜 ‘문화재급 역마살’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국토 박물관’으로 불려 그는 지난 10년동안 ‘나의 문화유사 답사기’(이하 답사기)를 비롯해 ‘완당평전’‘화인열전’ 등 13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특유의 감각적 글솜씨로 ‘해방후 최고의 베스트셀러’‘살아 있는 국토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어다닐 정도로 평판이 높다. 시인 박노해씨는 옥중에서 ‘답사기’를 읽고 저자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제 눈을 맑게 열어준 운명같은 마주침의 책,펼칠 때마다 선방의 죽비처럼 내 등짝을 때리는 책,내 마음속 가장 은밀한 자리에 꽂아둔 우리 시대 고전같은 책입니다.…유 선생의 ‘답사길’을 따라가다보면 내 속에 갇혀 있던 나 아닌 것들이 벌떼처럼 살아나서 나를 깨뜨립니다.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자식이구나,조상님들이 내속에 살아계시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답사기’를 읽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했다.“읽고 깨우친 바 기쁨이 하도 커서 말하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없다.기막힌 비경이나 특별히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풍기고 싶어 입이 근지러운 심정이라고나 할까….” 지난 주말 명지대 행정관 4층 복도끝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노크했다.한창 집필중인 ‘답사기’ 4,5권의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연구실 문을 열자 ‘고색 창연한’ 냄새가 코끝에 확 밀려왔다. 산골 오지의 어느 노인이 밤새 새끼꼬아 촘촘히 기워만들었음직한 멍석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그위에는 낡은 궤짝 하나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또 양쪽 벽에 쭉 늘어진 책꽂이에는 ‘답사의 노정’을 말해주듯 때묻은 고서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1만권은 훨씬 넘지요.이쪽은 한국미술사,저쪽은 중국미술사,저기 저쪽에는 서양미술사 책자들이지요.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중독처럼 사다놓은 결과물입니다.” 담배 하나 꺼내 물었다.97년 이전에 3년정도 끊었으나 북한을 다녀오면서 다시 피우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네모난 성냥곽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성냥은 충청도 어딘가에 있는 국내 유일의 공장에서 만든것입니다.그런데 자동이래요.이렇게 열었다 놓으면 뚜껑이 저절로 닫히니까.나원 참….”답사도중에 얻어온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가지 놀라운 일,책상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었다.600자원고지와 만년필이 대신해 있었다.그는 “컴퓨터로 글을 쓰면 이쪽저쪽에서 글을 퍼오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쓰다가 잘못되면 원고지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써야 글이 살아 숨쉰다.”며 특유의 ‘원고지철학’을 늘어놓았다.컴퓨터는 인문적인 것을 쏙 빼버린 기계적인 빠름일 뿐,고뇌도 없고 과정도 없으며,잃어버린 게 많다고 했다. 문득 독자들을 사로잡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했다.기다렸다는 듯이 “최고의 취미는 여행이다.여행이라는 매체를 넣고 글을 썼다.마침 독자들이 거기에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거침없는 답변이 계속됐다. ●“학자인지 문필가인지 나도 몰라” “가끔 내 자신이 학자인지,문필가인지,평론가인지를 물어보곤 합니다.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문사(文士)가 없어요.고행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문사말입니다.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서 문사일 수 없으며 지조있는 선비정신이 내재돼야 합니다.‘답사기’를 3권까지 썼지만 갈수록 글쓰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절반쯤 진행중인 4,5권 집필도 더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제주도를 답사했더니 4·3사건을 안 다룰 수가 없고,경상도를 갔더니 거창학살사건을 다시 조명해야 하기 때문이란다.이런 과정을 거쳐 ‘답사기’의 완결편 2권을 올 상반기중 마무리할 작정이다. 그런 다음 일생의 또다른 역작,즉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어떤 강렬한 요구에 답을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새로운 다짐이다.그것은 온국민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일이다.준비는 오래전부터 해와 곧바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술사는 문화사의 꽃입니다.학식과 학덕을 쌓은 사람이 그 시대의 역사관을 잘 반영했을 때 더욱 향기나는 꽃이 되겠지요.또 복잡한 현상을 단박에 단도질할 수 있는 깊이와 연구업적이 뒤따라야 합니다.영어로 쓰여진 한국미술사는 물론 번역할 수 있는 마땅한 텍스트도 없습니다.” ●한국인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 강해 이곳저곳 강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인은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그는 반면에 열등의식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다.결국 ‘짬뽕’식이 되다보니 단군 이래 세계문화를 주도해본 적이 한번도 없이 중심부가 아닌,늘 주변부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이제는 주변이 아닌 중심적인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동아시아문화의 ‘주주’로서 다른 나라에 문화적 영향을 줘야 한다는 필연이 도래했다고 역설했다.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이란다. “일본은 동아시아를 주도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네들만 살려고 해서 실패했습니다.더이상 도덕적으로 동아시아를 주도하기는 틀렸습니다.중국사람들은 우리보다 5,6년 뒤져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한류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십시오.대중의 힘은 어마어마합니다.미국의 문화가 오기전에 마를린 먼로가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왔지 않습니까.이제는 세계에서 1등이 나와야 합니다.노무현 대통령도 동아시아물류중심국가를 외쳤는데 이는 반쪽에 불과합니다.물류와 문화가 합쳐진 그런 정책이어야 하지요.” 나이 40이 넘어가면 과거의 이력이 얼굴에 하나둘 새겨진다는 말을 꺼내자 그는 “파란과 곡절도 많았다.93년 이전까지는 정말 별볼 일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14년반만의 대학졸업,교수직 박탈,8년동안의 백수상태,운동권 이론가라는 제도권 교수의 따돌림 등만 떠올려도 그렇단다. ●고3때 담임선생님 권유로 미대 진학 청운초·중학을 나온 그는 경복고교 입학시험에 낙방했다.중동고로 방향을 튼 그는 1967년 고3때 국문학과를 택하려고 했으나 담임선생의 권유로 서울대 미학과에 진학했다.그러나 ‘예술학개론’‘예술비평’ 등의 딱딱한 강의가 많아 연극회에 가입해 유치진의 ‘토막’,천승세의 ‘만선’ 등 민족극 공연에 적극 참가했다.공부는 뒷전이었다.연출은 주로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김지하씨가 맡았다. 대학시절 그의 서울 종로구 창성동 집에는 소위 ‘의식있는’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보안 경찰관에게 데모꾼 소굴로 인식됐다.결국 69년 4월 ‘3선개헌 풍자극’의 대본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그해 7월 무기정학을 받았다.시련을 호되게 겪은 그는 서둘러 군입대를 하게 됐다.제대 후 한국미술사 연구에 필생을 걸고 뜻을 세우지만 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됐다.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현상수배중이던 이철(전 국회의원)에게 남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75년 2월 그는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다.방황하던 그는 7개월 뒤 군복무중 미술관에서 만난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원래는 장준하 선생이 주례를 맡기로 했으나 의문의 실족사로 리영희 교수로 바뀌었다.결혼 후에는 금성출판사,공간사 등에 다녔다. 80년 10월,입학한 지 14년 반만에 겨우 졸업장을 받고 이듬해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에 들어갔다.대학원을 마친 그는 건국대 교수로 채용됐으나 미복권 상태임이 밝혀져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이때 그는 ‘미술속에서 현실을 찾자’는 구상 아래 그 유명한 슬라이드강좌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를 열어 떠돌이 생활로 대중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답사기’라는 역마살도 이때 시작됐다. “인세요? 한 15억원정도? 세금 한 4억 냈을테고….집사람한테 물어봐도 안 가르쳐줘요.장관이라도 돼야 정확히 알 수 있을란가?(웃음)” ‘답사의 달인’에게 꼭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전문화의 진수는 경주,건축의 아름다움은 병산서원·부석사라고 했다.또 자연의 풍요로움을 느끼려면 제주가 으뜸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알면 보이나니,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유홍준 교수는 ▲1967년 중동고 졸.80년 서울대 미학과 졸.83년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98년 찰학박사(성균관대). ▲77년 공간 편집부.78년∼83년 중앙일보 계간 미술부 근무.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당선.91년∼2002년 영남대 회화과 조교수.2002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장.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2003년 문화재위원. ▲저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다시 현실과 비평에서,정직한 관객,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3,나의 북한유산 답사기,완당평전,화인열전 등. ˝
  • 선화랑 ‘임효­생성과 상생’ 展

    한국 미술사학을 개척한 우현 고유섭은 한국미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구수한 큰맛’을 꼽았다.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화가 임효(49)만큼 한국미의 근원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는 작가도 드물다.임효는 이미 자신이 고안해낸 ‘우림수묵’과 ‘들임수묵’이란 작업을 통해 독창성을 인정받아 왔다.콩을 쪄서 메주를 만든 뒤 발효시켜 장을 만들듯 그는 종이죽을 쑤어 바탕을 만들고 먹을 우려내 작품을 완성한다.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우림수묵,그의 표현을 빌리면 ‘장맛수묵’이다. 들임수묵은 우리 전통한복의 천연염색 과정처럼 한지를 물들이는 선염 절차를 말한다.작가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보다 완결된 형태의 미감을 얻기 위해 끝없는 조형실험을 펼친다. 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는 ‘임효­생성과 상생’전은 작가로서는 또 다른 변신의 장이다.특히 마무리 작업은 임효의 작품세계의 특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그는 가히 도침장(搗砧匠)이라 할 만하다.마무리 작업으로 으레 자신이 만든 한지를 수없이 두드려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작가는 이 작업을 위해 도침망치를 20개나 직접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물에 불린 콩을 갈아 바르는 콩댐작업과 옻칠작업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정.때문에 그의 그림은 변색이 전혀 없다.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한지의 부조 이미지 위에 수묵채색으로 드로잉을 함으로써 판화와 회화를 아우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한다. 임효의 작가적 관심은 자연과 신화로 요약된다.그는 1983년 실경산수를 중심으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지금까지 자연을 화두로 작업해 왔다.설악산이나 지리산,홍도의 용바위벽·떡시루바위 등 산과 암벽은 그가 즐겨 그린 자연의 대상이다.90년대부터는 그의 그림에 성녀·신목·한밝산·개천대도 같은 신화적 요소들이 등장한다.이같은 흐름은 이제 ‘생성과 상생’이란 하나의 주제로 묶였다.작가는 자연과 신화의 본질을 생성과 상생으로 본다.만물은 흐른다는 것,시간과 역사는 순환한다는 것이 그의 화론의 핵심이다. 임효는 시간의 흔적을 작품에 끌어들인다.최근 여행한 인도에서 만난 허물어진 옛 성벽과 강원도 철원 옛 노동당사의 잔해에서 본 포탄의 상흔은 작가로 하여금 묵은 세월의 이미지를 화폭에 옮기게 했다.작가는 그것을 ‘시간의 그림’이라 부른다.이번에 선보이는 62점의 작품은 하나같이 그런 태고적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마치 선사시대 암각화 같다.새빨간 주사(朱砂)로 부적처럼 새겨넣은 ‘태양’이 인상적이다. 작가가 강조하는 생성의 에너지는 종종 에로틱한 형상으로 드러난다.2003년이란 글자로 여인의 소담스러운 둔부를 묘사한 ‘상생­관계’나 ‘상생­연가’,‘상생­음양’ 같은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다.작가 스스로 표현하듯 “음양의 조화가 빚어내는 축제 한마당”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우리문화의 정체성 찾기에 둔다.그 일환으로 내년쯤엔 전통한지와 수묵,그 웅숭깊은 미의 세계를 소개하는 ‘수묵과 한지의 만남’(가제)이란 책도 펴낼 계획이다.(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고시플러스]

    ●충북 보은군(poun.chungbuk.kr) 학예연구 분야의 지방전임계약직 ‘라’급 1명을 뽑는다.박물관이나 문화재 관련 전공의 석사학위자나 3년 이상 경력이 있는 학사학위자가 응시할 수 있다. 관련 전공은 고고미술사학,역사학,국사학,한국사학,사학,역사교육학,문화재학,고고학,고고인류학,문화인류학 등이다. 나이는 1958년 1월1일 이후 출생자로 제한한다.채용기간은 3년 이내로 재계약 가능하며 연봉은 3000만원 정도다.19일부터 21까지 군청 행정과로 방문접수해야 한다.문의 (043)540-3103. ●충남 태안군(taean-gun.chung nam.kr) 지방공무원을 특채 모집한다.사회복지 9급 2명,환경 9급 1명,별정 7급의 보건진료원 1명,별정 8급의 농기계교육교관 1명,기능 10급의 지방운전원 1명 등 총 6명을 뽑는다. 사회복지직은 사회복지사 3급 이상 자격자,환경직은 환경분야 산업기사 또는 기사 자격자,보건진료원은 간호사나 조산사 자격자 등이 지원할 수 있다.농기계교육교관도 농기계정비기능사 2급 이상,지방운전원은 1종 대형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경력이 있는 자는 지원 가능하다.응시원서는 6,7일 이틀간 군청 자치행정과에 방문 접수해야 한다.문의 (041)670-2232. ●산림항공관리소(fao.go.kr) 기능 9급의 산림보호원 2명을 모집한다.강원도 원주지소와 경상북도 안동지소에서 각 1명씩 채용한다.산불 진화와 긴급 재난시 인명구조활동,산림병해충 방제 등 각종 산림보호사업을 수행하게 된다.서류전형과 면접시험 외에 1000m·100m달리기,윗몸일으키기,턱걸이 등의 실기시험이 있다. 20세 이상 40세 이하로 공수부대 등에서 2년 이상 근무했거나 구조·구급경력이 있는 소방공무원만 지원가능하다.신장 165㎝,체중 55㎏ 이상이어야 하며 주소지 제한도 있다. 원서는 29일부터 5월1일까지 3일간 우편접수한다.문의 (02)2166-4506.˝
  • [열린세상] 고구려사 남북공동연구 필요/최광식 고려대 역사학 교수

    북한의 학자가 논문을 보내와 학술적 동참을 하였다는 데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이것은 북한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응을 보인 첫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rh구려의 역사와 문화유산’ 국제 학술대회가 지난 26일과 27일 이틀간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중국의 고구려사왜곡 공동대책위원회 주최,한국고대사학회·서울시정개발원 주관,국제교류재단과 서울시 후원으로 열린 이 행사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사를 왜곡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여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러시아,프랑스,미국의 학자들이 참가를 하였으며,북한과 중국의 학자들은 직접 참석은 하지 않았으나 논문을 보내와 많은 관심을 갖게 하였다.중국의 학자들은 원래 4명이 참가하기로 하였으나 행사 일주일전에 갑자기 불참 통지를 보내왔다. 한편 북한측은 3월10일까지 참가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하고 아무 소식이 없다가,3월18일 중국을 통하여 사회과학원력사연구소 조희승교수의 논문을 보내왔다.양국이 고구려사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제1부 고구려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주제발표에서는 문헌자료나 미술사 자료,금석문 자료를 통해 볼 때 한국의 역사가 틀림없다는 의견들이 개진되었다.다만 중국의 학자만이 소위 ‘일사양용론’을 내세워 고구려의 현실적 계승은 중국과 북한의 현재 국경선으로 결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옛 고구려 땅의 3분의2와 인구의 4분의3은 현재 중국의 영토안에 있으므로 이는 중국이 계승하였으며,고구려 땅의 3분의1과 인구의 4분의1은 북한이 계승하였다는 것이다.지금의 국경을 기준으로 과거의 역사를 재단하자는 정치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제2부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에 대한 주제발표에서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의 양식과 주제가 중국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가 하는 문제와 고구려의 독자적인 문화가 얼마나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제3부 고구려의 문화유산에 대한 주제발표는 고구려의 고분과 유물,그리고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에 대해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졌다.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좋은 의견들이 많이 개진되었다. 종합토론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고구려의 역사적 정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었다.학문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과 민족주의적 관점과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학문적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하였다.그래서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해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족주의적 관점의 연구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하겠다.한편 공격적 민족주의와 방어적 민족주의가 똑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는 모두 이구동성으로 학제적으로 국제적인 공동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역사학뿐만 아니라 고고학,미술사,종교학,지리학,천문학 등 여러 학문분야가 학제적으로 협력하여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었다.그리고 고구려가 자리잡고 있었던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문화유산을 동북아시아 여러나라 학자들이 자유스럽게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개진되었다.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여러나라 학자들이 고구려의 문화유산을 공동으로 조사하고 연구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만 민족주의적 관점을 극복하고 동아시아적 관점의 역사해석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여태까지 이루어진 고구려사 국제학술회의 중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학자들이 참석하여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논하였다는 데 큰 의미를 지닌다. 더구나 직접 참석을 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학자가 논문을 보내와 학술적 동참을 하였다는 데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이것은 북한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응을 보인 첫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이를 계기로 남북이 함께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공동으로 조사하고 연구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광식 고려대 역사학 교수˝
  • 화가 김병종 ‘생명의 노래’展 26일부터 가나아트센터

    단아(旦兒) 김병종(51·서울대 미술관장)은 한글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시서화 일치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문인화와는 다른 차원의 한국적 미의식을 보여준다.그의 그림은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이다.전체적으로 보면 추상화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상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구려 벽화 속의 비마(飛馬)가 한 순간에 뛰어나올 것 같은가 하면,한마리 새가 지상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듯하다.하늘과 땅,음과 양,자연과 인간의 기운이 화면에 넘쳐난다.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는 작가 김병종이 5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26일부터 4월18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김병종­생명의 노래’전에는 새,물고기,꽃,나비,말,아이 등이 등장하는 5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어린시절 섬진강 물가에서 놀던 기억을 살려 물의 기운을 필획의 기(氣)로 풀어낸 신작들을 다수 공개해 관심을 모은다.물고기를 타고 가거나 물고기 위에 물구나무선 소년,물고기 옆에서 나란히 헤엄치는 소년의 모습을 힘찬 붓놀림과 여백의 울림을 통해 표현한다.작가는 “멱을 감다 우연히 바라본 햇빛이 수면에서 반짝이던 느낌과 물결에서 발견한 선의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말한다.자신의 호 ‘아침 아이’의 이미지처럼 해맑은 동심을 전해주는 작품들이다. 작가가 10년 넘게 ‘생명의 노래’에 매달려 온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바보 예수’ 연작을 그려오던 작가는 1989년 치명적인 연탄가스 사고를 당했다.사경을 헤매며 두달 반 동안 입원한 그는 회복후 어느날 등산길에서 우연히 노란 들꽃을 만났다.그리고 거기서 생명의 신비를 발견했다.이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무심히 봐넘기지 않게 됐다.작가 특유의 ‘생명의 미술’은 그렇게 탄생했다. 김병종은 자신의 그림 뿌리를 한국미술사에서 찾는다.“나는 한국미술사로 정신적 유학을 다녀왔다고 할 수 있다.그곳에서 내가 집어낸 것은 고구려 벽화의 힘과 문인화의 여유,민화의 해학,기운생동의 운필이다.” 작가의 말은 그의 작업방식에서 그대로 확인된다.화선지라는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닥종이판에 먹과 몇몇 단색을 사용한 그의 그림은 문인화의 전통적인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수묵화의 현대적 감각을 잊지 않는다.그는 먼저 치자로 물들인 닥원료를 천연풀에 반죽해 토담에 미장질 하듯 판을 짜고 물감을 겹겹이 바른다.그러면 누르스름한 바탕색이 배어난다.그의 그림이 주는 정겨움과 장판지 같은 투박한 맛은 그런 고단한 과정의 산물이다.김병종의 그림은 최근 들어 더욱 강해지고 단순화됐다.필치와 선조(線條)를 적절히 사용하는 골법용필(骨法用筆)을 한국화에 적용해 거칠면서도 굵은 획이 눈에 띈다.작가는 “단번에 긋는 꾸밈없는 필치를 구사하는 나는 전통 필법의 관점에서 보면 사문난적인 셈”이라고 말한다.‘해에게서 소년에게’‘산첩첩 물겹겹’‘춘삼월’‘봄날은 간다’‘송화분분’ 등은 그와 같은 작가의 회화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02)720-1020. 김종면기자 jmkim@ 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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