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미술사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42
  • 에도의 몸을 열다/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에도의 몸을 열다/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피부를 벗겨내고, 근육을 한점 한점 떼낸다. 뇌를 열어 뇌수를 헤집고, 흘러 내리는 창자를 쓸어 담아 주무른다. 턱을 덜렁거리게 빼내 목구멍을 관찰하고, 대나무에 내장을 줄줄이 꿰어 생선 말리듯 널어 말린다. 18세기 일본 에도시대(1603∼1867년)때 그려진 해부도들의 살풍경이다. 잘리고, 썰리고, 벗겨지고, 헤집어지고, 주물러지는 몸은 일본인의 것이나, 살을 자르고 뼈를 써는 건 서양의 메스와 톱이다. 서양의 도구로 찢겨지고 분해되는 동양의 몸. 서구 근대의 습격에 직면한 동양의 운명이자, 동양이 근대와 접속하는 기회였다. ●해부의 충격에 직면한 일본인들의 수용과 변용 ‘에도의 몸을 열다’(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박경희 옮김, 그린비 펴냄)는 일본 ‘난학’(蘭學·에도시대 중기 이후 네덜란드어 서적을 토대로 서양의 학술·문화를 연구하던 학문의 총칭)의 중심이었던 해부학에 관한 책이다. 의학적으로는 사람 몸에 대한 해부서이고, 문화사적으로는 일본 에도시대 문화 전반에 대한 해부서다. 철학적으로는 세계관과 인식에 대한 해부서이고, 정치적으로는 동서양 힘의 관계에 대한 해부서다. 지은이 타이먼 스크리치(런던대 교수, 일본학연구소장)는 미술사학자다. 신미술사학(예술작품에 반영된 이데올로기와 작품을 둘러싼 사회체계 검토를 통해 예술이 사회와 별개가 아님을 밝히는 연구사조)의 방법론을 차용한 그는 책의 상당 분량을 각종 해부도로 채웠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행해진 해부 문화를 광범위하게 검토하면서도 해부 그 자체보다 해부의 충격에 직면한 일본인들의 ‘수용’과 ‘변용’에 주목했고, 해부라는 외래의 방법론으로 전통의 심장부를 공격한 난학자들의 학문 경로를 탐색했다. 해부는 앎에 대한 욕구다.‘보고자 하는 강박’이자,‘자신이 본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강박’이다. 곧 과학 정신이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휘둘러진 메스는 계몽주의 이래 강력해진 서양의 합리성을 상징한다. 해부의 주체는 칼이고, 객체는 몸이다.‘합리적’ 서양의 칼은 ‘비합리적’ 동양의 배를 가르고 짼다. 일본인의 몸 위에서 펼쳐지는 서양의 해부기술은 결국 일본 그 자체에 대한 서양의 해부였다. 메스로 일본인의 몸을 여는 행위는 책 제목처럼 에도의 몸을 여는 행위였고, 일본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몸과 문화와 의식을 여는 행위였다. 에도 시대 해부학의 급격한 전파는 서양 과학을 선망하는 일본 학계의 첨단적 유행이었던 셈이다. 해부된 신체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듯, 해부당한 일본 또한 과거의 일본이 아니었다. 난학을 통해 일본은 서구가 찍어 놓은 근대의 발자국을 밟아갔다. ●난학의 유행은 국가 정치 기획과도 상통 난학의 유행은 국가의 정치 기획과도 무관치 않다. 부국강병의 논리 하에 한 개인의 신체가 국가에 종속되는 현상은 이때도 발생한다. 신체 내장에 계급을 부여하는 행위는 플라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다. 혈액이 심장으로 모였다 다시 흘러 나가는 모습은 국가의 심장인 왕이 담당한 핵심적인 위상을 설명하는 비유로 차용됐다. 서열이 매겨지는 건 개인만이 아니라 국토 전체였다. 저자는 “도로의 핵심에는 심장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고도 교토가 일본의 심장, 즉 천하의 기원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한다. 난학이 일본 전통의술과 부딪히며 권력투쟁을 벌이는 대목 또한 ‘시대 초월적’이다. 열고 열리는 상호작용이 정치시스템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은 현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미 FTA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2만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2)후삼국통일의 기념비 개태사 삼존불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2)후삼국통일의 기념비 개태사 삼존불

    요즘에는 흔히 대학 이름을 따서 지하철역 이름을 짓는다지만, 한때는 역에 절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해남부선의 불국사역이나 호남선의 백양사역, 경원선의 망월사역, 중앙선의 희방사역이 그렇지요. 경전선의 다솔사역에는 이제 여객열차가 서지 않고, 여천선의 흥국사역은 여천산업공단의 화물터미널이 되었습니다. 호남선 개태사역은 절 이름이 붙여진 역 가운데서도 단연 특별하지요. 기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절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역이기 때문입니다. 호남선이나 전라선 열차를 타고 남도로 내려가다 서대전역이 막 지났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언제나 개태사의 안부가 궁금해 슬금슬금 왼쪽 차창 밖 산기슭으로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개태사가 있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은 ‘황산벌’이라고 설명하면 더욱 이해가 빠르겠지요. 백제의 결사대가 장렬하게 산화한 이곳에는 계백장군의 것으로 전하는 무덤이 있고, 최근 바로 곁에 백제군사박물관이 세워져 계백장군의 충절을 기리고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황산벌 싸움으로부터 276년이 지난 936년 이곳에서는 후백제와 고려가 맞붙게 되지요. 견훤의 큰아들인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군은 지금의 경북 선산 동쪽으로 추정되는 일리천에서 왕건에게 대패한 후유증이 컸던 탓인지 싸움다운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항복하고 맙니다. 개태사는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승리의 현장에 세워졌습니다. 신검의 항복을 받고는 곧바로 착공하여 4년 남짓한 공사 끝에 태조 23년(940) 낙성법회가 열립니다. 개태사(開泰寺)라는 이름은 ‘태평한 시대를 연다.’는 뜻으로 태조 왕건이 직접 지었습니다. 절이 자리잡은 황산도 ‘하늘이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천호산(天護山)이라고 바꾸었지요. 왕건은 친히 발원문을 짓는 등 이 절이 갖는 상징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개태사는 이렇듯 태조의 발원으로 창건된 고려의 대표적인 국찰이었지만,10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절의 분위기는 고즈적함을 넘어서 스산할 지경입니다. 그렇다해도 이 절에는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첫장을 연 보물 제219호 석조삼존불상이 있어 역사적 의미는 퇴색하지 않습니다. 창건 당시 개태사는 상당히 넓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발굴 조사 결과 절터는 석조삼존불이 있는 현재의 개태사와 북쪽으로 400m쯤 떨어진 옛터, 그리고 동쪽으로 150m쯤 떨어진 산중턱까지 미쳐있습니다. 당시의 영화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석조삼존불은 가운데 본존불의 키가 4.15m이고, 왼쪽의 협시보살은 3.5m, 오른쪽의 협시보살은 3.21m 정도입니다. 사진으로는 장난스러워보였던 삼존불을 실제로 대하면 위압감마저 듭니다. 미술사학자들이 아미타삼존불로 분류하고 있음에도, 전각을 미륵이 머무는 용화대보궁(龍華大寶宮)으로 이름지은 것도 개태사를 찾는 중생들이 삼존불에서 미륵의 권위를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삼존불은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왼쪽 협시보살의 조각솜씨가 조금 더 정교한 만큼 본존과 오른쪽 협시보살은 나중에 왼쪽 협시보살을 모델로 조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절터의 전면적인 발굴로 원래 조각의 흔적이 나타난다면 이런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개태사의 창건이 새로운 통일왕조의 개막을 선포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석조삼존불은 후삼국통일의 기념비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여행길에 지나치는 개태사역은 작은 시골정거장에 불과하지만 그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dcsuh@seoul.co.kr
  • 박물관대학 2008년 수강생 모집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 대표적인 사회교육 프로그램인 박물관대학의 2008년 수강생을 모집한다. 국립중앙박물관회(회장 유창종)는 22일부터 제32기 박물관 특설강좌 수강생을 선착순으로 뽑는다. 인원은 목요일반과 금요일반 각 200명씩 모두 400명. 프로그램은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미술사학 등 각 분야에 걸쳐 55개 강좌 및 교육, 그리고 5회의 고적답사 등이다.3월 첫째주부터 12월까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다.38만원.(02)2077-9790∼3. 국립민속박물관회(회장 임동권)의 제6기 민속박물관대학은 3월3일부터 12월15일까지 문을 연다. 민속과 한국사, 종교, 음악 등 다양한 주제에 걸친 31차례의 이론교육과 5차례 현장실습교육으로 구성된다. 교육은 매주 월요일 오후 1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 이루어진다.200명 선착순으로 회비는 25만원.(02)3704-3145∼6.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민만화가 이원복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민만화가 이원복 교수

    ‘사이(間)의 예술’이라고 한다. 미국의 스콧 매클루드(48)는 만화계 천재이자 만화이론을 체계화한 학자로 유명하다.1993년 출간된 그의 저서 ‘만화의 이해’는 전세계 15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지금도 각국에서 스테디셀러로 읽히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 1300만부 이상 팔려 그는 2003년 한국을 방문, 만화산업의 미래를 진단한 바 있다. 이때 만화가 형편없는 상업주의의 소산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을 의식하면서 21세기 문화산업의 축이라고 여겨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위대한 글과 그림이 결합하면 이야기를 서술하는 데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게 가능한 것이 바로 만화다. 장면을 명확하게 묘사하는 역할을 그림이 맡아주면 글은 보다 넓은 영역을 탐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만화의 강점이다.” 그러면서 칸과 칸 사이의 공간이야말로 마술과 미스터리가 일어나는 원천이라고 역설했다. 만화를 그저 오락물이나 심심풀이로 여기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매클루드의 말처럼 만화는 분명 무한한 상상력과 흥미진진함을 던져주기에 인류역사와 함께 꾸준히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여전히 즐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으로, 어른들은 옛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생각나게 한다. 이쯤해서 문득 떠올려지는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국민만화가로 유명한 이원복(62) 덕성여대 교수.‘먼나라 이웃나라’‘가로세로 세계사’‘부자국민 일등경제’‘신의 나라 인간나라’ 등 그가 펴내는 만화마다 대부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특히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초판 이래 현재까지 무려 1300만부 이상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등으로 번역출간돼 해외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교수는 천대받던 만화시장에서 어른들도 즐기는 교양만화의 장르를 개척해냈음은 물론, 글로벌시대의 문화통역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그림 속에 그만의 해박한 지식을 담아 많은 학생들의 세계사 공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 강남의 집필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캐나다에 막 다녀온 직후였다. 이유를 묻자 “8년 전 하나 밖에 없는 아들과 아내를 캐나다에 보내고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신의 물방울´보고 편견 바로잡고자 집필 그는 요즘 와인에 푹 빠져 있다. 최근 ‘와인의 세계’(1권·김영사)라는 만화책을 펴낸 데 이어 ‘세계의 와인’(2권)을 집필 중이다. 지금까지 역사나 경제 등 무거운 주제를 다뤄왔던 그가 다소 생뚱맞게 ‘와인만화’를 펴낸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일본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고나서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뻥이 심한’책이라는 것. 예를 들어 와인 한 모금 마시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 등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제 막 와인 붐이 생겨나는 마당에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기 십상이라는 생각에서 와인만화를 그리게 됐다. “우리나라 최고 경영자 가운데 80%가량이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돈 주고 사먹는 와인인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죠. 그저 입맛에 맞는 와인을 내 방식대로 즐기면 그만입니다.” 와인 이름을 외우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는 그는 어느 프랑스 와인업자의 말처럼 “한국인들은 와인을 입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마신다.”고 했다. 특히 와인열풍과 함께 관련 책이 봇물처럼 나오지만 대부분 보고 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는 것. 때문에 이번에 펴낸 ‘와인만화’도 와인에 얽힌 역사·문화적 에피소드 위주로 쉽게 꾸몄다고 했다. 그가 와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8년 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였다. 당시나 지금도 칠레와인을 즐겨 마신다고 한다. “저는 결코 와인전문가가 아니며 단지 애호가일 뿐입니다. 와인을 즐기다보니 흥에 겨워 책을 내게 됐지만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여러차례 와이너리에 직접 가보기도 했지요. 오는 4월에 나올 두번째 책에는 와인에 대한 편견을 다룰 예정입니다.” 아울러 ‘세계의 와인’이 마무리되는 대로 ‘먼나라 이웃나라’의 스페인편(완간편)을 집필할 계획을 밝혔다.“이제 독자들은 멋있는 정보를 원한다.”면서 “와인만화는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외도”라고 했다. 화제를 바꿨다. 알다시피 그는 ‘현대문명진단’이란 주제로 13년간 만화칼럼을 연재하면서 ‘현대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문명은 어떻게 변화할까. 지체없이 그는 “첫째는 여성중심으로 변하는, 즉 여성문명이 점차 확대되는 특징을 이룬다.”고 했다. 일부일처의 결혼관이 붕괴되면서 혼자 사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도 한 예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는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생활패턴의 변화라고 했다. 즉, 어떤 목적을 위해 서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20세에 대학 들어가 군복무를 마치고 27세에 취직을 한다는 생각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런 패턴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성공이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행복추구를 우선시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등 나름대로 현대문명을 진단한다. ●만화는 영구적 발전… 교육소재는 무조건 대박 만화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젊은이들은 만화책을 어른들은 신문으로 만화를 즐기고 있다. 만화의 독자는 무궁무진하고 영구적으로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만화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는 “인류판타지의 최초 스케치”라고 전제한 뒤,“만화는 돈이 안든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내 생각을 얼마든지 펼쳐보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학습만화는 단군 이래 매년 호황을 이뤘다. 교육을 전제로 한 것은 뭐든지 잘 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만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서울대 건축학과를 다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1960년대 중반 공과대학이 인기를 끌었을 때 건축학도가 그저 멋있게 보여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그가 만화가로 소질을 발휘한 것은 1962년 경기고 1학년 때였다. 소년한국일보에 아르바이트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야망의 그라운드’‘미니 바람 꽃구름’‘치티치티 뱅뱅’‘사랑의 학교’ 등을 그렸다. 이 교수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날 ‘만화는 나를 표현하는 무한한 놀이터’라는 생각에 진로 수정을 하게 됐고 ‘세계문학전집’과 만화를 닥치는 대로 읽으며 소양을 쌓았다. 아울러 틈만 나면 외국만화를 보고 그렸다. 대학 때 독일 유학을 떠났고 유학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새소년 잡지에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이 만화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보는 눈을 뜨게 했다. 그의 유학시절은 나중에 만화이면서 인문서로 인정받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연재를 펑크내지 않았는데 이는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는 습관 덕분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도대체 선생님의 만화가 인기를 끄는 비결이 뭔가요.”라고 질문했다.“자료와 현장이다. 한권 한권 낼 때마다 자료와의 전쟁을 치른다.”며 껄껄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6년 충남 대전 출생. ▲6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66년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수료. ▲75년 독일 뮌스터 대학 디자인 학부 유학. ▲81년 동대학원 졸업,Diplom Designer 학위취득. ▲81∼86년 동교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 전공(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85년 독일 뮌스터시 초청 개인전. ▲88년 한국 도서 잡지 윤리위원회 금상 수상(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89년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금상 수상(학습만화세계사 계몽사). ▲93년 한국색동회제정 눈솔상 수상. ▲94년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간행물, 윤리상(저작부문:현대 문명진단). ▲98년 한국 애니메이션 학회 회장. ▲84∼현재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주요작품 먼나라 이웃나라(87년), 자본주의 공산주의(90년), 세계의 만화 만화의 세계(91년),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93년), 국제화 시대의 세계경제(94년), 현대 문명 진단(94년), 세계로 가는 우리 경영(95년), 사랑의 학교(95년), 펜 끝으로 여는 세상(96년), 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97년),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2003년), 와인의 세계(07년)
  • “3년반 원없이 터지고 원없이 일하다 갑니다”

    “3년반 원없이 터지고 원없이 일하다 갑니다”

    “3년 반 동안 원없이 일하고, 원없이 터지다가 갑니다. 그래도 문화재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들에게는 비판받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10일 국립고궁박물관 카페테리아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참여 정부의 임기가 한달 이상 남은 상황에서 그의 조금 이른 듯한 ‘고별 간담회’는 일찍 마음을 정리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원각사탑 중앙박물관으로 옮길 계획”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스타 미술사학자로 떠오른 그가 문화재청장에 임명된 것은 2004년 9월1일. 그는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충남 서산마애불의 보호각을 최근 철거한 것을 언급하며 “그것 한 가지 하는데 임기를 모두 보낸 것 같다.”며 문화재 행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 청장은 “야외에 석조문화재를 노출시키는 것이 어떻게 보호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탑골공원의 원각사터십층석탑처럼 유리벽으로 싸놓으면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앞으로 원각사탑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탑골공원에는 복제품을 세우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취임식 근정전에서 해도 좋을 듯” 유 청장은 이날 “광화문으로 청장을 시작하여, 광화문으로 청장을 끝내는 것 같다.”고 광화문 복원에 대한 애정을 다시한번 표현했다. 그는 “새 정부에서는 여의도가 아닌 광화문 광장에서 취임식을 갖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하고는 “경복궁의 근정전은 어떨지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반도 대운하로 화제가 이어지자 유 청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운하가 지나는 곳의 문화재 지표조사는 문화재청이 맡도록 특별법에 넣고, 발굴도 국책발굴단을 만들어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적극적으로 ‘운하 추진 대책’을 마련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대운하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는 “(문화재청장을 물러난) 2월26일에 대답하겠다.”면서 웃었다. 유 청장은 퇴임하면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돌아간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이 그림은 왜 비쌀까/피로시카 도시 지음

    45억원이 넘는 박수근의 그림에 대한 위작 의혹이 최근 또 불거졌다. 국내 미술시장이 전례없이 커지면서 고가의 대작을 둘러싼 시비 또한 유례없이 잦다. 그림이 어떻게 돈이 되며, 화가는 어떻게 상품이 되는가. 이런 근원적 의문을 품어본 적 있을 것이다.‘이 그림은 왜 비쌀까’(피로시카 도시 지음, 김정근·조이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그런 독자들의 소구점을 정확히 간파했다. 지은이는 독일 뮌헨에서 활약 중인 법률가이자 미술 자문가. 독일 유명작가인 우고 도시의 아내이기도 한 그는 미술사는 물론이고 경제학, 심리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두루 동원해 미술품에 값이 매겨지기까지의 궁금증들을 풀어준다. 작가, 화랑, 미술관, 컬렉터 등 미술시장을 형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속성과 이면도 자세히 소개했다. 책이 가장 주목한 대목은 미술품이 돈으로 바뀌는 지점. 이를 위해 미술시장의 주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핵심요소는 수집가와 화상.‘묶음’판매 및 구매 행태로 소문난 영국의 거물 컬렉터 찰스 사치의 일화가 제시된다. 골드스미드 칼리지의 학생이던 데미안 허스트를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띄워 올리기까지에는 그의 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골드스미드 칼리지의 여러 젊은 작가들의 파격적 작품을 전시해 그들쪽으로 미술계의 시선이 쏠리게 만들었는가 하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경매에서 비싸게 거래될 수 있도록 조용히 시장을 조종하기도 했다. 예술가 후원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웠다고 평가받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은 기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렸다. 당시 고리대금업으로 막강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은 ‘돈놀이’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예술후원이라는 꼼수를 부렸다. 미술작품이 상품가치를 높이는 과정에도 보이지 않는 입김이 끊임없이 작용한다.‘패배했지만 승리를 거둔 인간’이라는 식의 반 고흐에 대한 평단의 찬사가 그저 무심한 고흐의 그림들을 세계최고 경매가로 기록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위작에 얽힌 웃지 못할 사례도 실렸다. 엘리아 사카이라는 화상은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해 무려 열두번이나 진품과 위작을 번갈아 팔았다, 크리스티 경매소조차 까맣게 속아 위작을 판매도록에 실었던 해프닝도 있었다.1만 3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러시아 미술사/민음인 펴냄

    한치 앞도 모른다는데,10년 후의 일을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1996년 처음으로 러시아에 갔을 때, 문학 공부를 하던 내가 러시아 미술사에 관한 책을 쓰게 되리라고, 그리고 미술 현장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게 될줄 어찌 알았겠느냐 말이다.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스탕달 신드롬’(뛰어난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육체적 충격)을 일으켰다. 이렇게 시작된 러시아 미술 공부는 아마 알지 못했으면, 평생 후회했을 그런 아름다운 세계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 책은 러시아 본토에서 러시아 미술을 공부한 사람으로 러시아 미술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는 사명감과 공부하면서 느꼈던 행복함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서 쓴 책이다. 러시아 미술은 격렬하고 열정적인 러시아인들의 삶 자체와 그것의 예술적인 승화를 보여준다. 19세기까지 존속했던 농노제와 억압적인 차르 통치, 공산주의 혁명과 개혁 등 남다른 역사는 이 나라의 예술 문화에 독특한 특성을 각인했다. 현실이 남루하고 비참할수록, 그것을 직시하면서 동시에 정신적으로 뛰어넘으려는 열망이 러시아 문화 전반의 특징이다. 나는 이러한 열망을 ‘위대한 유토피아의 꿈’이라고 요약했다.19세기의 이동파의 그림, 칸딘스키, 말레비치, 타틀린 같은 20세기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품들은 이러한 유토피아적 열망과 좌절의 과정을 눈앞에서 그림으로 직접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러시아 미술을 소개하되, 딱딱한 연표 외우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야기의 구조를 택했다. 한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인들의 삶과 역사,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더불어 샤갈의 환상적인 푸른색의 비밀, 심수봉이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 ‘백만송이 장미’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이야기의 구조를 빌렸기 때문에 책에 넣을 수 있었다. 또한 독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푸슈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생생한 초상화가 그려졌던 상황도 이 책에서는 전한다. 러시아 미술이라는 특정한 나라의 미술로 시작했으나, 종국에 가서는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만들어낸 위대한 결과물로서의 예술이 창조되는 과정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은 이 책을 끝까지 쓰게 만든 힘이었다.‘일상을 잘 영위하는 것(well-being)´이라는, 다소간 미적지근한 화두가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한 요즘, 뜨거운 삶의 흔적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의 현실은 불우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풍요로웠다.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9)햇골산 마애불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9)햇골산 마애불

    중원문화권은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 일대를 가리키지요. 한반도 중심부의 내륙인 이 지역은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고구려·신라·백제가 각축을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중원문화권에는 당연히 삼국의 문화유산과 통일신라 이후의 문화유산이 두루 남아있는데, 그 ‘출신 국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에 있는 햇골산 마애불상군(群)이 대표적입니다. 햇골산이라는 이름은 동쪽에서 해가 환하게 비춘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하지요. 햇골산은 해발 80m의 야트막한 동산이지만 마애불은 가파른 절벽에 새겨져 있어 답사객을 위해 설치해놓은 철제사다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오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마애불은 산 중턱의 동남향 바위에 새겨져 있지요. 불상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데, 오른쪽 사유상은 좌우에 협시보살을 두어 삼존상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왼쪽에는 세 보살이 나란히 서 있는데, 삼존불과 중첩되도록 새겨놓아 제법 원근감까지 살아나고 있지요. 이 불상군의 왼쪽에는 다시 큼직한 여래좌상과 이 여래에게 고개숙인 공양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마애불이 고구려 양식으로 6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크게 무리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은 6세기 중엽 고구려 제작설에서 7세기 중엽 신라제작설까지 다양한 학설을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6세기 중반설을 내놓은 쪽에서는 이 마애불이 북위(386∼534)의 전통을 이어받은 고구려 초기양식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사유상을 보면, 백제의 서산 마애삼존불이나 신라의 경주 단석산 마애불군의 사유상에서 느껴지는 아이 같은 모습이나 둥근맛이 없는 만큼 마애사유상으로는 삼국을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반면 7세기 중엽설을 주장하는 쪽은 백제에는 태안과 서산에 마애삼존불이 있으나 고구려 것으로 확정된 마애불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고구려에는 마애불 전통이 없었다는 논리를 폅니다. 따라서 햇골산 마애불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앞두고 중원지역을 포섭하는 차원에서 조성했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600년 안팎을 주장하는 쪽입니다. 고구려는 장수왕(재위 413∼491) 시절 이 지역을 세력권에 두었습니다. 햇골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원고구려비의 존재도 이런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지요. 광개토대왕비와 닮은 중원비에는 고구려왕이 남하하여 신라왕과 그 신하들에게 의복을 하사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절치부심하던 신라는 거칠부가 551년 이 지역을 다시 빼앗으면서 556년에는 국원소경(國原小京)을 설치했습니다. 햇골산 마애불을 6세기 후반 이후 것으로 본다면 조성 주체가 고구려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고구려 사람이 신라 땅에 와서 조각한 것’이라는 연구가 나온 것은 이런 고심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이 연구는 고구려의 혜량법사가 551년 신라에 망명할 때 따랐던 무리의 누군가가 마애불을 새겼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추정까지 이어졌지요. 혜량법사는 신라의 국통(國統)이 되어 황룡사 주지에 오른 인물입니다. 보물 제1401호로 지정된 햇골산 마애불은 우리 고대사에 있어 미술뿐만 아니라 사상·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햇골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삼국의 각축이 치열했던 중원지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역사 선생님의 구실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문화유산 보존·연구 유공자 포상

    정부는 문화유산의 보존·연구·활용에 공이 큰 원로 고고미술사학자 이은창 전 호서고고학회장에게 은관문화훈장, 고건축전문가 윤홍로 한국목조건축연구포럼 회장에게 보관문화훈장, 김원길 창작마을 지례예술촌 대표에게 옥관문화훈장을 주기로 했다. 또 대한민국문화유산상 수상자로 학술·연구 분야에 우경식 강원대 교수, 보존·관리 분야에 제주도 공무원 강관수씨와 드잡이공 홍정수씨, 봉사활용 분야에는 직지사 성보박물관장 흥선 스님과 사단법인 화성연구회를 각각 선정했다. 시상식은 7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린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조그만 발명가(현덕 글·조미애 그림, 사계절 펴냄) 한국 근현대 어린이 문학의 대표 작가인 현덕(1909∼?, 한국전쟁 때 월북)이 1939년에 발표한 동화. 주인공 노마는 현덕 작품 40여편에 등장하는 아이다.`조그만 발명가´는 종이 상자를 이용해 기차를 만드는 노마의 `만들기 놀이´를 포착한 동화로, 현덕의 여느 동화처럼 아이의 천진함이 문장 속에 올올이 녹아 있다.9500원.●리남행 비행기(김현화 지음, 푸른책들 펴냄) 북한을 탈출해 두만강에서 중국으로, 다시 태국을 거쳐 남한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봉수네 식구가 겪은 고된 여정을 그렸다. 북한 국민으로도, 그렇다고 남한 국민으로도 완전히 동화돼 살아가기 힘든 새터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읽어보면 좋겠다. 제5회 푸른문학상 수상작.9500원.●윌마 루돌프(캐슬린 크럴 글·데이비드 디아스 그림, 미래아이 펴냄)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지만, 몇 년 후 올림픽 육상 금메달 3관왕에 오른 미국 흑인 여성 윌마 루돌프의 이야기. 토속적인 그림과 간간이 언급되는 당시 흑인들의 생활상 묘사를 통해 단순한 ‘인간승리기’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비켜갔다.9000원.●내일을 여는 창 언어(푸른숲, 실비 보시에 글·메 앙젤리 그림, 푸른숲 펴냄) 언어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설명부터 인지과정을 이야기하는 과학적 설명, 원주민 언어를 소개하는 인류학적 설명에 이르기까지 언어의 이모저모를 다각적으로 다뤘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의 아픈 현실도 빼놓지 않았다. 어린이용 언어학개론.1만원.●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이야기(노성두 지음, 채우리 펴냄) 미술사학자이자 대중적 글쓰기로 미술대중화에 힘써 온 저자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근현대 시대까지 훑으며 세기적 명화들을 쉽게 풀어 해설했다. 다빈치와 고흐, 피카소 등 익숙한 화가에서부터 무티에 그랑발, 한스 홀바인 등 생소한 화가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1만 2000원.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6)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6)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내가 왕궁리 오층석탑이 백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이 탑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토로한 사람은 어느 서정시인이 아니라,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입니다. 그는 지난해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정년퇴직하기에 앞서 미술사학과 학생들을 이끌고 백제 지역을 답사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백제 무왕이 새로운 도읍으로 점찍어 두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던 전북 익산의 왕궁리 유적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는 갑자기 박수가 터졌다고 합니다. 왕궁리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차창 밖으로 스치는 조형에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는 것이지요. 그 박수소리는 미(美)에 대한 찬사였고, 이 탑이 백제 것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왕궁리 오층석탑은 건립 시기를 두고 이론이 적지 않았습니다. 백제시대설과 통일신라 초기설, 그리고 고려시대 초기설이 엇갈렸지요. 그동안에는 ‘옛 백제 영토 안에서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 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어우러진 고려 전기의 작품’이라는 설명이 대세였습니다. 왕궁리 오층석탑 현장의 안내판에도 ‘이 탑은 전형적인 백제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높이는 8.5m이다.…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강 전 관장은 초지일관 백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탑을 처음 본 것이 1986년, 두 번째가 1989년, 세 번째가 1989년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발표한 글에서 그는 “처음 보았을 때 백제 것임을 의심치 않았고, 두 번째 백제 것임을 재확인하였으며, 세 번째 나의 감각적 파악을 실증하고 싶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는 이후 ‘감각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왕궁리 오층석탑에 접근해 조목조목 백제석탑으로 추정하는 이유를 제시하게 됩니다. 나아가 이 탑은 나름대로 백제석탑의 완성으로, 통일신라의 감은사탑에 직접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지요. 그의 주장에 결정적으로 신빙성을 높여준 것은 왕궁리 탑에 모셔져 있던 사리장엄이었습니다.1965년 탑을 해체해 수리하는 과정에서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돼 국보 제123호로 일괄지정되었지요. 그런데 2003년 송일기 전남대 교수는 지붕돌에서 나온 금강경판을 중국과 일본에 있는 모든 금강경사경과 비교검토해 “백제 무왕 때 제작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듬해에는 한정호 통도사 성보박물관 수석학예사가 금제사리합의 내합에 새겨진 구름문양과 연꽃문양이 결합된 연화서운문(蓮花瑞雲紋)이 부여 능산리 고분의 금동산형투각장식과 유사하다는 점 등을 들어 6세기 중반∼7세기 전반 백제시대 것이라고 주장하지요. 무엇보다 왕궁리 유적을 발굴조사하고 있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올해 왕궁리 공방터에서 나온 도가니와 다량으로 출토된 금세공품의 성분과 제작 기법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왕궁리 오층석탑의 사리장엄은 백제의 장인집단이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왕궁리 탑의 사리함과 금강경판은 각각 동판과 은판에 금으로 도금한 것인데, 금과 수은을 2대8로 섞은 아말감을 쓴 기법이 바로 공방터의 그것과 똑같았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우리는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과 익산 미륵사터 서탑 말고도 백제시대 석탑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1400년이 지나, 그것도 젊은이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낼 만큼 아름다운 석탑이 제 나이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dcsuh@seoul.co.kr
  • 유럽 현대미술 거장이 몰려온다

    유럽 현대미술 거장이 몰려온다

    올겨울 미술관은 유럽이 차지한다. 여러 말이 필요없는 현대 추상미술의 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이 온다. 세계 현대미술사에 우뚝 선 러시아 거장들의 전시는 미술애호가들의 마음을 달뜨게 할 만하다. 러시아 거장 미술전이 열리기는 1996년(일리야 레핀 전) 이후 12년 만이다. 유럽 화단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전시는 또 있다. 독특한 화풍의 정물화로 유럽을 중심으로 독창적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독일 작가 자비네 크리스트만이 이미 가나아트센터에서 소개되고 있다. 내친김에 이탈리아 현대예술의 대표작가 시니스카의 작품세계 55년도 들여다봄 직하다. 회화에서 패션까지 아우르는 전방위 예술가 시니스카의 국내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 전 (27일∼내년 2월27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바실리 칸딘스키, 일리야 레핀과 함께 우리에겐 그닥 익숙지 않은 카지미르 말레비치, 레비탄 등 러시아 현대미술의 대표주자 54명의 유화 91점이 날아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미술관,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등 러시아의 대표적 국립미술관 2곳이 소장품들을 내놓았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들어오는 작품 목록은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계열이 63점,20세기 아방가르드 분야가 28점. 관람객들이 손꼽아 기다릴 칸딘스키의 작품은 4점이 포함됐다. 그의 완숙기 걸작으로 꼽히는 ‘블루 크레스트’(1917년),‘구성 #223’(1919년)과 초기작 2점이 별도공간에 전시된다.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 세계대전 이후 인간에 대한 환멸로 고민하던 거장의 숨결이 배어 있다. 레핀의 걸작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수리코프의 대형 역사화 ‘황녀의 수녀원 방문’, 예술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절대주의’란 개념을 주창했던 추상미술가 말레비치의 유화 ‘절대주의’도 꼭 챙겨볼 작품이다. 19세기 러시아 초상화 가운데는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고골, 차이코프스키 등 대문호와 음악가들의 것이 유난히 많다.11점이나 포함됐다. 레핀의 ‘타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작가 고골의 분신’, 크람스코이의 ‘달밤’, 세로프의 ‘유수포프 공의 초상’ 등 11점이 선보인다. 러시아의 자연풍광을 담은 풍경화 14점이 전시공간을 서정으로 물들이기도 한다.(02)525-3321. # 獨 자비네 크리스트만-현실의 환영 전 (12월16일까지 가나아트센터 갤러리 미루) 쇼핑백, 유리병, 캔, 우유팩…. 자비네 크리스트만은 일상의 소재들을 대상으로 독특한 정물화풍을 구축해온 독일 작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내 갤러리 미루에서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현대 소비사회의 생활소재들에 주목하면서도 전통적 미술기법을 동원한 덕분에 그의 화폭은 일반적인 극사실화와는 또 다른 묘미를 안긴다. 한점 한점 메시지가 뚜렷하다. 예컨대 내용물이 없는 빈 용기(容器) 그림들은 외형에 치중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적 은유인 셈이다. 가나아트센터측은 “크리스트만의 대표작 30점이 소개되며, 독일 현대미술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다.(02)3217-0287. # 伊 시니스카 오염-공간 속의 구조 전 (12월4∼27일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국내에는 생소한 이름이겠다. 하지만 회화, 조각, 사진, 패션 등 세계무대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이탈리아의 전방위 작가이다.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이 주최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55년 예술이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공간 묘사가 탁월하며, 국내 첫 전시여서 새달 1일 작가가 방한할 것”이라는 게 전시 관계자의 귀띔이다. 전시회에는 137점의 대표작이 소개된다.(02)3789-5602.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예술품의 허구’를 까발리다

    위작 파문으로 연일 미술계가 뒤숭숭하다. 무더기로 적발된 박수근·이중섭 화백의 위작들로 검찰이 전시회를 갖겠다고 벼르기까지 하는 상황은 웃지 못할 한편의 코믹 드라마다. 새책 행렬 속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책이 ‘라파엘로와 아름다운 은행가’(데이비드 브라운 등 지음, 김현경 옮김, 휴먼&북스 펴냄)인 것은 그런 세태 탓일까. 게다가 제목이 여간 수상하지가 않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와 은행가는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미술적 식견이 있다면 ‘빈도 알토비티 초상화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궁금증은 오히려 더할 듯하다. 장밋빛 입술에 청회색 눈동자의 청년이 묘하게 사선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라파엘로의 걸작(초상화 ‘빈도 알토비티’)에서 화가의 어떤 이야기를 새삼 꺼내겠다는 말인가. 이 책은 그림의 가치가 어떤 요인들로 결정되는지를 신랄하게 까발린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단을 풍미한 천재작가의 작품 한점을 매개로, 집요할 만큼 일관되게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라파엘로의 작품 ‘빈도 알토비티’의 유전(流轉)은 예술품 가치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단서가 될 만하다. 초상화의 주인공 청년 알토비티는 5세기 전 이탈리아 유력 은행가 집안의 상속자. 후대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리게 된 라파엘로가 그를 화폭 앞에 앉혔다. 화가가 당대 최고 유력가 집안의 후계자를 묘사하는 데 얼마만큼 공을 들였을지는 그대로 그림이 말해준다.“모델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서 나아가, 라파엘로가 상상해낼 수 있는 가장 잘생긴 젊은이로 탄생시켰다.”는 해설을 통해 책은 예술품 탄생의 허구성을 슬몃 짚어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엉뚱하게 라파엘로의 자화상으로 둔갑돼 값이 치솟았던 사실에 주목한다.16세기 이탈리아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의 애매모호한 글귀에서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비롯됐다는 것이다.“그가 젊었을 때 빈도 알토비티를 위해 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그 그림이 가장 대단하게 여겨진다.” 바사리가 ‘예술가의 전기’에 묘사한 ‘그’가 라파엘로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통에 삽시간에 그림가치가 급등하는 해프닝이 이어졌다. 유력 화상들이 주목했음은 물론이다.1808년엔 바이에른 황태자 루트비히에게 라파엘로의 자화상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어 팔렸고, 루트비히는 또 얼마 뒤 뮌헨의 왕실 컬렉션에 작품을 기증했다. 인기가 치솟던 초상화는 그러나 다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일부 감식가들이 라파엘로의 제자가 그렸다는 주장을 내놓자 그림값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진 것.1938년 뮌헨미술관은 문제의 그림을 방출했다.‘빈도 알토비티’의 인기는 결국 라파엘로의 ‘얼굴값’이었던 셈이다. 이후 ‘빈도 알토비티’는 밑그림이나 제작기법 등으로 보아 라파엘로가 그린 진품으로 다시 인정받았다. 현재 그림이 걸려 있는 곳은 워싱턴 DC의 미국국립미술관. 초상화 한 점의 궤적에서 미술품 가치의 진실을 넘겨다본 책의 저자는 그곳의 큐레이터다. 그는 “세월이 흐르며 그림의 궤적이 바뀌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림에 매혹된 관람자들이 그 흐름을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서양 근·현대미술사에 빛나는 다양한 초상화들을 감상하는 여유까지 만끽할 수 있는 책.2만 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5) 상여 장식에 쓰였던 木人(목인)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5) 상여 장식에 쓰였던 木人(목인)

    사람은 영혼과 육신을 뜻하는 혼백(魂魄)으로 되어 있어, 죽으면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저승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염라대왕의 명으로 달려온 저승사자는 쇠몽둥이로 등을 치고, 쇠사슬로 얽어매어 사람의 넋을 저승으로 떼어 간다는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이렇게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저승길의 난관을 헤쳐가면서 망자와 동행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면 가장 먼저 ‘사잣밥’을 차려서 저승사자의 마음을 달래고자 했지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시신을 운구할 때 썼던 충남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마을의 ‘남은들상여’(중요민속자료 제31호)에서도 용머리판 마룻대 중간에 동자 차림으로 팔장을 끼고 있는 저승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상여 꼭대기에 버티고 서서 잡귀들에게 앞길을 막아서지 말고 썩 물러나라고 호령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상여에는 저승사자뿐 아니라, 갖가지 색깔로 치장된 다양한 목조각이 베풀어졌습니다. 가마는 임금이나 고관대작이 타는 것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는 신분의 제약이 없었지요. 혼례식 하루 만큼은 신분이 낮은 신랑신부라도 사모관대와 족두리, 원삼 등 궁중예복을 허용한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가마’라고 할 수 있는 상여의 목조각은 오히려 신분이 낮은 사람 것이 훨씬 화려해지기도 했습니다. 남연군 것을 비롯하여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왕실종친의 상여가 단층인 데 비하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살던 만석꾼 최필주의 장사(1856) 때 사용한 ‘산청 전주 최씨 고령댁 상여’(중요민속자료 제23호)’는 4층의 누각식 건물 형태지요. 조각 장식은 살아 생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주고, 저승사자처럼 망자에게 길동무도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성리학이 국교인 조선시대에 장례절차는 당연히 유교관습을 따랐지만, 내심으로는 영혼불멸의 내세관을 그대로 갖고 있었음을 상여 장식은 보여줍니다. 이렇듯 나무로 만든 인형을 목인(木人)이나 목우(木偶), 목용(木俑)이라고 불렀습니다.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에 원색의 화려함과 해학이 더해진 목인은 최근 수집가들 사이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지요. 특히 상여에 장식된 목인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입니다. 말이나 해태, 호랑이를 타고 있는 선인, 선비, 광대는 악귀로부터 망자를 보호합니다. 이 망자의 보호자는 일제강점기에는 칼을 든 순사, 해방 이후에는 철모를 쓴 국군의 모습으로 나타나 시대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봉황을 타고 있는 동자를 조각한 목인은 망자가 하늘로 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상여 장식에 광대와 재인, 악공이 보이는 것은 귀인의 행차를 의미합니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사흘동안 서울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세악수(細樂手)가 연주하는 가운데 광대가 춤추며 익살을 부렸고, 재인은 줄타기나 곤두박질로 흥을 돋우었다고 하지요.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동안 느낄 지루함이나 무서움을 덜어주었을 것입니다. 신랑신부도 등장합니다. 저승에 가서도 좋은 인연을 만나 백년해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신랑신부의 모습만 혼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호적을 들고 있는 여인도 결혼을 상징합니다.‘호적을 판다.’는 말은 여자가 호적을 남자에게 옮긴다는 뜻이지요. 상여 장식에서는 이승에서 호적을 파서 저승으로 가져간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 인사동 골목에는 목인박물관이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수집한 3000점 남짓한 목인을 소장하고 있지요. 자칫 잊혀질 뻔했던 목인이 최근에는 민속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민중예술의 한 장르로 미술사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이런 선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책꽂이]

    ●노동을 거부하라(크리시스 지음, 이후 펴냄) 책을 쓴 크리시스는 독일 뉘른베르크를 거점으로 활동한 좌파 그룹. 소비사회에서의 노동이란 노동하지 않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 행해야 하는 것이 됐으므로 책은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코페르니쿠스적 시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상품생산 체제에서의 노동을 거부하고 노동을 삶 자체로 재통합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자고 제안한다.1만 5000원.●색맹의 섬(올리버 색스 지음, 이마고 펴냄) 미국 컬럼비아대학 메디컬센터 임상신경학ㆍ임상정신의학 교수로 재직 중인 지은이가 어떤 부분을 상실한 인간이 어떻게 적응해가는지를 탐색했다. 그 접근법이 소설처럼 흥미롭다.‘리티코 보딕’이란 특이 풍토병을 앓는 환자들의 사연, 사라져가는 원시생명들의 이야기가 수려한 자연풍광을 병풍삼아 펼쳐지는 ‘맛있는’ 책이다.1만 4000원.●대단한 책(요네하라 마리 지음, 마음산책 펴냄) 일본인 러시아어 동시통역가가 죽기 직전까지 읽은 책 이야기를 186편의 글에 나눠 실었다. 소개되는 책은 390권. 책의 부제(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처럼 지독한 다독가였던 저자의 책읽기 열정이 게으른 독서습관에 죽비를 내려친다.“새로운 언어를 익히기 위한 가장 고통이 적은 수단 역시 독서”라고 주장하는 책이다.2만 7000원.●유럽의 미래(알베르토 알리시나·프란체스코 지아바치 지음,21세기북스 펴냄) “조만간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유럽은 경제적·정치적 몰락을 피할 수 없다.”는 단언 아래 전개되는 책이다. 개방을 통한 무한경쟁을 지향하는 미국식 자유주의에 주목하고, 유럽이 살아남으려면 우선 미국의 시장자유주의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고 주장한다.1만 8000원.●아버지가 없는 나라(양 얼처 나무·크리스틴 매튜 지음, 김영사 펴냄) ‘여인국’이라 불리는 중국 윈난성 오지의 모쒀족 이야기. 모쒀족의 딸로 태어나 미국 일본 등에서 가수, 모델로 활동해온 작가가 서양인류학자와 함께 책을 썼다. 사랑과 가정경제 등에서 여자가 주도권을 쥔 모계사회의 독특한 문화를 통해 현대 가족제도의 기반을 되돌아봤다.1만 1000원.●뉴 소사이어티(피터 드러커 지음, 현대경제연구원북스 펴냄)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1950년 저작이나, 국내에는 처음 완역돼 나왔다. 책이 주장하는 새로운 사회란 대량생산 혁명이 가져온 산업사회로, 드러커 사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드러커는 새 사회에서 경영자뿐 아니라 말단 근로자까지 모든 공정을 숙지하는 관리자적 안목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2만원.●뒤샹, 나를 말한다(마르크 파르투슈 엮음, 한길아트 펴냄) 기성제품을 전시장으로 옮겨놓는 혁신적 기법으로 미술개념의 본질을 뒤흔든 마르셀 뒤샹의 전기.1913년 미국 아모리쇼에 ‘계단을 내려가는 나체’를 내놓아 뉴욕 화단을 뒤흔든 사연 등 전위미술의 선구자로 살았던 뒤샹의 발자취를 그의 발언과 미술사가이자 평론가인 저자의 해설을 곁들여 꼼꼼히 더듬었다.1만 7000원.●백범 어록(김구 지음, 돌베개 펴냄) ‘백범일지’ 주해본을 낸 창원대 도진순(사학과)교수가 사진 100여장과 함께 엮었다. 귀국 회견, 우파 청년과의 담화, 임정 환영대회 답사,3·1절 경축사, 남북연석회의 축사 등 백범의 어록과 관련 언론기사들을 통해 만년의 백범 행적을 읽을 수 있다. 분단과 통일문제를 다룬 어록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1만 3000원.
  • 한국미술의 탄생/솔출판사 펴냄

    고구려 고분벽화는 공간의 절반 이상이 갖가지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벽면은 현실세계를 묘사하고, 천장을 이루는 궁륭에는 천상의 세계를 묘사했다. 우주에는 기와 생명, 도가 충만하여 있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라 추상적 무늬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자인 강우방(66)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고분벽화의 무늬들에 고대미술은 물론 이후의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모든 장르에 걸쳐 그동안 풀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한국미술의 탄생’(솔출판사 펴냄)은 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 미술에 나타난 영기무늬(靈氣文)를 해독하여 한국미술사 전체를 새롭게 해석한 성과를 담은 것이다. 영기(靈氣)란 신령스러운 기운을 말한다. 기(氣)를 표현하는 용어로는 기존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를 구름 모양으로 설명한 운기(雲氣)가 있어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됐다. 그런데 인도에는 우주 만물이 연꽃에서 태어난다는 연화화생(蓮華化生)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일본의 미술사학자 이노우에 다다시(井上正)가 다시 운기화생(雲氣化生)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운기화생은 구름 모양의 기 표현만을 연상하기 쉬우므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기 무늬를 포괄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우주 만물이 영기에서 비롯된다는 영기화생(靈氣化生)이라는 개념을 새로이 제시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 전 관장에 따르면 만물은 영기의 화신이므로 만물에서 다시 영기가 발산된다. 용이나 봉황 또한 본질적으로 동물이 아니라 영기의 집적이므로 영기를 발산한다. 그러기에 석가여래나 예수와 같은 성인은 광배로 영기를 발산하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삼족오투조장식이라든가 백제 무령왕릉의 관 장식, 백제 금동대향로, 경주 황남대총의 신라금관이나 곡옥(曲玉), 신라 성덕대왕 신종의 무늬, 고려 수월관음도에서도 영기무늬는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전 관장은 “그동안에는 통일신라미술이 이후 전개되는 한국미술의 모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기무늬를 해독하고나서부터는 한국미술 전체를 새로이 살피고 새로이 해석하게 되었다.”면서 “그만큼 고구려 고분벽화의 성립은 절체절명의 중요하고 위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책의 제목을 ‘한국미술의 탄생’이라고 한 것은 한국미술의 참모습이 처음으로 밝혀졌다고 확신하기에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9만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80여년 전 예술사진 작가를 만난다

    80여년 전 예술사진 작가를 만난다

    지금부터 80여년 전 이 땅에 예술사진 개인전을 열었던 이가 있었다. 무허(舞虛) 정해창(1907∼1968)이다. 일반인들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을 이름이지만, 그는 정녕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평생 ‘조선적인 것’을 좇았던 예술가였다. 그의 세계를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벽(癖)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전은 취미를 벽(癖)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근대 지식인의 한 전형을 소개한다. 정해창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과 중국 유학을 통해 그림과 사진, 금석학 등을 연구하며 식민시대를 거친 선구적인 지식인. 해방 이전엔 사진가와 서도전각가로, 해방 이후엔 금석학 및 불교미술사 연구에 전념하며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전시는 작가의 예술활동 영역에 따라 두 부문으로 나뉜다.1부 ‘사진인문학을 열다’에선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사진가로 활동한 시기의 사진작품,2부 ‘서도전각의 길을 가다’에선 1941년 당시 화신백화점에서 ‘서도전각전’을 연 이후 서예가와 전각가로 활약했던 시기의 관련작들이 각각 선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촬영한 사진은 민속학에 관심을 둔 송석하가 찍은 것이 거의 전부이다시피하다. 그런 만큼 500여점에 이르는 정해창의 사진자료는 근대 기록문화 유산으로도 손색없다는 평가다. 이번 전시엔 5권의 불교미술 사진첩도 처음 공개됐다.“정해창의 예술사진과 함께 한국 근대기의 중요한 역사기록물로서 사진인문학의 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술관측은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2월3일까지.(02)2020-2057.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여백의 비움 채워진 자유

    여백의 비움 채워진 자유

    올해 ‘최고’의 한국미술 전시라 할 만한 ‘여백의 발견’전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다. 새해 1월2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는 한국미술의 정수들이 한 자리에서 소개된다. 리움과 국립중앙박물관,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미술과 현대미술 작품들을 모았다.4점의 국보와 보물 7점도 포함돼 있다. ●한국 미술사의 명품들 전시공간은 건축가 승효상이 부석사 무량수전의 건축적 특성을 재해석, 한국적인 공간미를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산책하듯 미술품 사이를 누비다 흰 조약돌 위에 걸린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만나고, 마룻바닥을 딛고 올라 조선 달항아리를 볼 수 있는 식이다. 흔히 동양미술의 정신으로 여겨지는 여백, 비움의 미학은 이번 전시에서 자연·자유·상상의 세 가지 주제로 나뉜다. 김홍도의 병진년화첩에 실린 풍경화 옆에 장욱진의 ‘강변풍경’이 걸려 있고,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곁에는 김수자의 비디오작품 ‘빨래하는 여자’가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인도 야무나의 강물이 흐른다. 서양미술이 인물에 치중하고 동양미술이 산수화에 치중했다면, 첫번째 주제인 ‘자연’ 속에서는 자연과 일부가 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번째 주제인 ‘자연’의 대표작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백자호. 둥근 보름달처럼 꽉 차 있어 흔히 달항아리라 불리는 이 도자기는 보물 1424호. 문화재청에 의해 최근 국보로 지정 예고돼, 다음달이면 국보가 된다. 이 달항아리는 안에 담겼던 물질에서 배어나온 얼룩이 표면에 남아 있어 더욱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지금까지는 얼룩의 성분이 색깔로 봐서 간장으로 추정됐지만, 리움 보존연구실의 검사 결과 오동나무 기름성분이 검출돼 관심을 모은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인화 원권문 장군’의 점무늬와 김환기의 푸른색 추상화 ‘하늘과 땅’의 점무늬가 유사한 것도 흥미롭다. 세번째 주제인 ‘상상’에서 특히 상상력을 돋우는 작품은 국보 240호인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이 초상화는 허공에 얼굴만이 둥둥 떠 있는 듯 그려져 있는 데다 형형한 눈빛에 수염 한올한올까지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다. 리움측은 초상화에 달랑 얼굴만 그려진 것과 관련, 그동안 미완성작이라는 등의 추측이 많았지만 몸통 부분은 안료가 날아가서 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구의 점까지 잘 보존된 초상화에서 몸 부분의 안료만 사라졌다는 것은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여백은 오늘날 중요한 정신가치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서울까지 날아온 신라시대 얼굴무늬 수막새는 일부분이 사라졌지만 그래서 더욱 멋스러운 유물이다. 안규철의 탁자 위에 어항과 금붕어 그림을 배치한 개념미술 ‘먼 곳의 물’이나 이우환의 철판과 돌을 설치한 조각 ‘관계항’ 등도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 리움 부관장은 “국제무대에서 한국미술의 이미지는 아직 미미한 데다 한국미술을 되돌아보게 하는 전시도 부족했다.”면서 “여백이란 아시아적 가치를 담아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어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02)2014-6901.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나이가 많지요, 500살 미녀 에 얽힌 수수께끼

    어떤 이는 지난해인 2006년이 모나리자 탄생 500주년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이 1507년 완성된 것으로 보아 2007년이 500주년이라고 얘기한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검은 의상을 입고 상반신을 우측의 관객 쪽으로 향하면서도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며 입가에 신비스런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의 이 스푸마토(Sfumato)기법의 상반신 유화초상은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술작품임에 틀림없다. 눈썹은 면도로 밀었는지 없고 머리엔 잘 보이지 않지만 베일을 쓰고 있다. 환상적인 자연 풍경이 멀리 보이는 테라스에서 난간과 두 개의 원주를 뒤로 한 채 반원형 나무의자에 앉아 왼팔은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고 오른 손은 왼손 손목 위에 포개 놓고 있다. 모나리자 때문에 떼돈 번 사나이 얘기부터하자. 오래 전 미국의 흑인 저음가수 낫킹콜이 한국을 다녀간 적이 있다. 그가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서 공연할 때 그 유명한 노래 ‘모나리자’를 스스로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것이 아닌가?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대 이름을 불러본다. 신비한 미소를 띤 부인이여....” 1950년 6월 10일 낫킹콜이 발라드풍의 ‘모나리자’를 불러 이를 모나리자에게 바치자 300만장의 레코드판이 팔려나가는 기적적인 매상을 보여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이 젊은 날의 멜로디는 지금도 내 귓가에 흐르고 있다. 나의 가라오케에서의 18번의 하나는 바로 이 노래 모나리자가 된 것이다. 모나리자로 큰돈을 챙긴 여인은 당대의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이다. 그녀는 2003년 모나리자 이름을 빌린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즐리 여대에 새로 부임한 미술사 교수로 출연하면서 몸값으로 당시 우리 돈으로 환산 약 2백 80억 원을 챙겼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용 면에서 모나리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무슨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까? 2005년 말 화란의 암스테르담 대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연구팀의 감성 인식 컴퓨터를 통한 그림 이미지 공동연구 결과 모나리자의 미소는 인간의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 중에서 행복 83%, 불쾌함 9%, 두려움 6%, 분노 2%, 무표정 1%로 구성되어 있으며 놀라움은 전혀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모나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모나리자의 정체를 놓고 몇 가지 대조적인 주장이 있다. 1)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가 죽자 그의 전기를 쓴 조르지오 바사리의 주장에 의하면 피렌체의 비단 장사였던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이라 본다. 그리하여 조콘도의 여성형인 ‘라 조콘다’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모나리자 혹은 라 조콘다로 불린 것은 19세기에 와서 이고 그 전에는 ‘한 피렌체부인의 초상’ 혹은 ‘면사포를 쓴 창부’라고 불리기도 했다. 2004년 이태리 학자 쥬세페 팔란티니는 이 모나리자가 1479년 생으로 24세 때 이 화가의 화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5명의 자녀를 낳고 1542년 63세로 죽어 피렌체의 상오솔라 수도원에 묻혔음을 밝혀낸다. 2) 벨연구소의 슈와르츠 박사는 컴퓨터로 디지털 해상분석을 통하여 얼굴 라인을 대조한 결과 이 그림은 여성화되긴 했으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의 초상화라는 주장을 도출하였다. 그렇다면 여장남인으로서 다빈치의 얼굴윤곽을 닮은 가공의 여인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3) 미술 감정가 헨리 퓰리처는 다빈치의 후견인이었던 밀라노의 메디치가(家)의 쥴리아노의 부인 프랑카빌라 공작부인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녀의 애칭도 ‘라 조콘다’였다. 4) 다른 연구가 뤼르센은 그림의 여인은 밀라노 공작의 부인인 아라곤 이사벨라라고 주장하였다. 다빈치는 11년간 밀라노 공작을 위하여 궁정화가로 일하였었다. 다른 유명화가 라파엘이 그린 밀라노 공작부인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는 어디에 그려져 있는가? 보통 캔버스가 아니라 포플러 나무판에 그려져 있다. 모나리자의 화폭 크기는? 세로 77cm, 가로 53 cm이다. 35인치 텔레비전 화면의 크기와 비슷한 정도이다. 모나리자의 몸값은 얼마짜리인가? 기네스북에 의하면 보험에 든 그림 중에 가장 값비싼 그림이 바로 모나리자라고 한다. 모나리자는 1962년 당시 미국 순회 전시를 위한 보험에 들 때 실제로 1억불로 감정하였다. 이것을 현가(2006년 기준)로 치면 적어도 6억 7천만 달러로 환산할 수 있다. 우리 돈으로 6천억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모나리자를 욕보인 남자들은 누구인가? 1) 1956년 신원미상인 사람이 산을 모나리자에 뿌려 그림하반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2) 같은 해 12월 30일 남미 볼리비아사람인 우고 비예가스는 모나리자에 돌멩이를 던져 손상을 입혔다. 그 결과 모나리자의 왼쪽 팔꿈치에 상처가 가게 되었다. 이제는 그림에 방탄유리를 씌어 전시 중이다. 3) 1911년 8월 21일 이태리인 빈센초 페루지아라는 루브르미술관 목공 직원은 모나리자를 훔쳤다. 그녀를 납치(?)후 2년간 자기 아파트에 감금하였다가 피렌체의 미술상 알프레도 게리에게 팔았고 이것이 뒤 미쳐 알려지자 우여곡절 끝에 이태리에서 순회전시가 끝나면서 루브르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페루지오는 나폴레온 시대에 프랑스가 빼앗아간 이태리의 문화유산을 도루 찾아오기 위할 목적으로 훔쳤다고 증언하였으나 실은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발피에르노에 고용되었었다. 그는 모사전문 화가 이브 쇼드론에게 모나리자의 모작을 그리게 하여 진품이라고 속이고 미국의 부호 여섯 명에게 각각 팔아치워 큰돈을 챙겼다. 페루지오는 1년 15일 감옥에 있다가 이태리에 대한 애국적인 입장을 참작하여 풀려났다. 이를 사람들은 20세기 최대의 미술품도난 및 사기 사건으로 일컫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모나리자 때문에 구치소 신세를 졌다? 1911년 모나리자가 도난당했을 때 프랑스의 전위 시인 기욤 아포리넬리라는 사람이 용의자로 체포되었고 그의 친우였던 파블로 피카소도 이어서 체포 구금되었다. 나중 그들은 풀려났지만 피카소는 일생 모나리자의 저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릴린 몬로와 모나리자의 인연은? 1963년 세계적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은 현대적 아이콘으로 모나리자를 나염 천에 그려 넣음으로써 그가 즐겨 그린 마릴린 몬로와 함께 자기의 마스코트임을 나타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모나리자가 미국 나들이를 했을 때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함으로써 그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마릴린 몬로와는 앤디워홀의 붓끝을 통해 모나리자를 사이에 두고 다시 연계되는 꼴이 되었다고나 할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나리자의 관계는? 미국의 뉴요커 지는 1999년 2월 8일 모나리자 이미지를 모니카르윈스키와 합성한 그림 ‘모나 모니카’를 표지에 실음으로써 클린턴에게 아픔을 주었다. 모니카르윈스키는 클린턴 대통령 집무실 옆방에서 지퍼게이트라 불리는 오랄 섹스 스캔들의 장본인이다. 살바도르 달리와 모나리자의 콧수염? 1919년 다다이즘화풍의 거장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모습에 콧수염과 염소 턱수염을 단 그림을 발표한바 있으나 이에 한 술 더 떠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54년 콧수염 달린 자신의 초상화를 모나리자 스타일로 형상화하였다.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미술관에 간 화학자/전창림 지음

    1434년 그려진 얀 반 에이크의 ‘아르폴리니의 결혼’을 보면 600여년 전의 그림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든 생생한 색채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에이크보다 60여년 뒤에 그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색깔도 어두운 갈색으로 바뀌고 물감층이 떨어져 나가는 박락 현상이 나타나는 등 그림이 무척 손상돼 있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두 걸작의 보존 상태가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화가의 화학 지식때문이란 것이 ‘미술관에 간 화학자(전창림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의 주장이다. 저자는 홍익대 화학시스템공학과 교수로 예술학부에서 미술재료학 강의를 하는 등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찾아가는 일을 해오고 있다. 혼례를 치르는 신부 드레스의 녹색을 마치 푸릇푸릇 피어오르는 잔디처럼 손에 잡힐 듯 묘사한 에이크는 유화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이전의 서양화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색채와 모든 물체가 살아있는 듯한 표현은 물감에 불포화지방산을 이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에이크는 식물성 불포화지방산인 아마인유를 이용해 이전에는 거의 생각할 수 없었던 정교한 붓질이 가능한 유화기법을 완성했다. 불포화지방산은 지방산 사슬 중 불포화기를 포함하고 있어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 액체 상태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 불포화기가 결합돼 굳어지면서 단단한 도막을 형성한다. 에이크의 그림은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해 아직까지도 그의 그림은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지금도 대부분의 유화 물감에는 아마인유가 포함된다. 특히 신부의 드레스를 칠한 녹색은 말라카이트 그린이란 성분으로 구리 광맥 속에서 가끔 출토되는 구리 리간드의 구리 카보네이트이다. 매우 아름다운 이 녹색 성분의 전품은 ㎏당 100만원이 넘는다. 지금은 합성으로 만들어지는 말라카이트 그린은 여전히 많은 화가로부터 사랑받는 색이다. 다 빈치는 기계공학, 해부학, 건축학, 기하학, 생물학, 천문학 등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한 천재였지만 화학만은 정복하지 못한 것 같다는 게 저자의 추측이다. 그는 납이나 구리를 함유한 흰색, 녹색과 황을 함유한 버밀리온, 울트라마린 등을 즐겨 이용했는데 이것들은 서로 반응하면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바뀐다. 다 빈치는 나무판에 석회를 발라 평편하게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석회는 울트라마린 등과 반응하면 탈색하는 속성이 있다. 납을 이용한 흰색을 너무 사랑하다 죽음에 이른 화가도 있다. 미국 태생의 화가 제임스 애버트 맥닐 휘슬러는 흰옷을 입은 여인을 즐겨 그렸는데, 이는 1800년대 후반 흰색 화장과 패션의 유행을 낳기도 했다. 휘슬러가 즐겨 사용한 흰색, 특히 연백의 주성분은 납으로 황과 반응하면 검은색의 황화납이 된다. 연백의 납 성분은 사람에게 매우 강한 독성을 가질 뿐 아니라 그림에도 독이 돼 시간이 지나면 작품이 검게 변색한다. 하지만 휘슬러는 은처럼 빛나는 연백의 묘한 매력에 빠진 나머지 납에 중독돼 몸이 병드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연백으로 그림을 그렸다. 책에서는 이처럼 화학이란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미술사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예술을 사랑하는 화학자가 서술한 서양미술사가 명화 이면의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인다.1만 6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