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미술사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강박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알선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지분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남한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41
  • 국내 최대 미술장터, 세계 ‘큰손’ 모인다

    국내 최대 미술장터, 세계 ‘큰손’ 모인다

    英·中 등 13개국 167개 갤러리 참가 거물 수집가·미술관 관계자 대거 방한 다양한 특별전·대담 프로그램도 마련 한국의 대표적 아트페어인 ‘2017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2017)가 오는 20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닷새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품 장터로 올해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독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13개국의 갤러리 167곳이 참가한다. 한국의 가나아트갤러리,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학고재, 아라리오 등 국내 주요 갤러리가 대거 참가하며 해외에서도 보두앵 르봉(프랑스), 디에(독일), 이스트갤러리(대만), 브루노 마사(벨기에) 등이 참여한다. 배병우 등 한국작가 작품을 다루는 파리의 RX 갤러리와 오사카의 요시아키 이노우에 갤러리의 합류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해외 큰손들의 방한이다. 벨기에 모리스 벨벳 아트센터 설립자인 모리스 버비트, 한국의 단색화를 유럽에 적극적으로 알린 벨기에 문화재단 보고시안재단의 장 보고시안 회장, 카타르 도하 현대미술관(MATHAF)의 압델라 카룽 관장, ‘샐러리맨’ 컬렉터로 이름난 일본의 다이스케 미야쓰, 상하이 히말라야 미술관 설립자 다이지캉 등이 KIAF를 찾는다. 화랑협회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해외 VIP 80명을 초대했고, 지인들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는 120명 정도가 KIAF를 찾았다. 이들의 직접 구매액은 50억원 정도이지만 행사 이후에 개별적으로 접촉해 구매하기도 하고, 지속적인 네트워킹이 이뤄지기 때문에 무형적 가치를 따지면 투자 대비 효과가 크다는 설명이다. 화랑협회 이화익(이화익갤러리 대표) 회장은 “구매력 확대와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해외의 개인 수집가와 미술관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고자 했다”면서 “KIAF는 미술시장으로 작품 판매가 최우선이지만 국제적 행사로 자리매김해야 하기 때문에 특별전과 대담프로그램에도 예산을 많이 투입했다”고 밝혔다. KIAF는 단순히 갤러리 참가 수를 늘리기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꾀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부대행사도 보강했다. 코엑스 A홀에서는 엄격한 심사를 거친 국내외 10개의 갤러리가 엄선한 작가들의 신작 또는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을 선보이는 하이라이트 섹터와 특정 작가 한 명을 집중 조명하는 솔로프로젝트가 마련된다. 아울러 다채로운 미디어 작품으로 꾸미는 ‘너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것들’(김노암 감독), 한국 행위 예술 50주년을 조망하는 아카이브 전시인 ‘실험과 도전의 전사들’(윤진섭 감독) 등 특별전도 연다. ‘퍼포먼스의 가능성’ ‘상하이, 현대미술의 허브로 급부상’ ‘1920년대 경성의 다다이스트’ ‘아시아의 전후 추상미술’ ‘개인 컬렉션에서 공공 컬렉션으로’ 등 5개의 대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남북 다툼 가슴 아파 조국 안 떠나… 그게 이중섭의 양심”

    “남북 다툼 가슴 아파 조국 안 떠나… 그게 이중섭의 양심”

    올해 101세인 김병기 화백. 지난 7월 대한민국예술원 역대 최고령 신입회원이 되어 화제가 됐던 그는 우리 근현대 화단의 형성을 직접 몸으로 겪은 거의 유일한 생존 화가다. 여름을 아쉬워하듯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김 화백의 화실에 예사롭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순박한 인상의 야마모토 아야코(42). 한국미술사의 찬란한 빛과 같은, 그러나 ‘불운의 천재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중섭(1916~1956)의 큰아들 태현(1947년생·지난해 작고)씨의 장녀, 그러니까 이중섭의 손녀다.●김화백, 이중섭과 보통학교서 첫 인연 김 화백은 아야코를 보자마자 반갑게 두 손을 부여잡고 “네가 바로 중섭의 손녀로구나”라며 감격스러워했다. 다마미술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하고, 지금은 교토 근처 나라에서 인쇄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아야코는 “할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김 화백님을 만나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화백과 이중섭은 평양의 종로보통학교에서 6년간 같은 반을 지낸 동창이다.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도쿄의 분카가쿠엔(文化學院)에서도 함께 유학했다. 이중섭은 1935년 도쿄 제국미술학교서양화과에 입학했다가 1년 만에 그만두고 전위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분카가쿠엔 미술부로 옮겼다. “평양의 종로보통학교에서 중섭과 나는 6년을 같은 반에서 공부했지. 한 학년에 3개 조가 있었고, 우리는 3조였어. 같은 학년에서 미술을 하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었기 때문에 더욱 가깝게 지냈지. 중섭의 집에 가서 형님에게 붓글씨를 배우기도 했고, 중섭이 우리 집에 와서 홍차도 마시고, 아버지(김 화백의 아버지는 1세대 서양화가인 김찬영이다)가 두고 간 영국 잡지를 보곤 했어.”김 화백은 평양 지도를 그려 보이며 이중섭과의 학창 시절 얘기를 쏟아 놓았고 아야코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나는 평양고보로 진학하고, 중섭은 평북 정주의 오산 고보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민족주의자가 된 거지. 일본 유학 시절에도 중섭은 석고 데생 시간에 소를 그리고, 학생 파티에선 일본 학생들이 알아 듣거나 말거나 ‘낙화암, 낙화암, 왜 말이 없는가’ 하는 조국의 노래를 거리낌 없이 불렀어. 어떻게든 해야 하는 일을 하는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지.” ●외로움 견디며 ‘부부’ 등 걸작 쏟아내 이중섭은 분카가쿠엔에서 2년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도 만났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 학교를 졸업하고 연인 마사코를 일본에 둔 채 원산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마사코가 한국으로 와 혼례를 올리고 부부가 됐고 첫째 태현과 둘째 태성을 얻었다. 가족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란을 내려갔다가 제주 서귀포에서 1년을 살았다. 1951년 겨울 부산으로 건너오지만 생활고 때문에 마사코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이중섭은 1953년 도쿄에서 단 5일의 해후를 끝으로 가족과 영영 이별하게 된다. 김 화백은 그때를 또렷이 기억했다. “나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본에 가서 살 방도를 찾았겠지만 중섭은 달랐어. 두 형제(남과 북)가 서로 싸우는데 내가 어떻게 일본에 마음 편히 남겠는가라고 했지. 그게 바로 중섭의 양심이었어.”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소’, ‘부부’, ‘가족’ 등 한국 미술의 대표적인 걸작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통을 겪다 1956년 9월 6일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외롭게 숨을 거뒀다. 그의 주검을 처음 본 것도 김 화백이었다. ●간염·영양실조 고통 겪다 숨져“적십자병원에 중섭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갔는데 침대에는 안 보이고 시체실에 있었던 거야. 그 길로 문예단체총연합에 연락하고, 친구들에게도 연락해서 20여명이 모여 예술인장을 치렀어. 홍제동에서 화장을 하고 뼈의 일부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다른 일부는 일본으로 보냈어.” 마지막 순간의 이야기를 듣던 아야코는 기어코 눈물을 쏟았다. 아야코는 “할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누구와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너무 외롭게 가셨을 것 같아 항상 마음에 걸렸다”면서 “마지막 길을 잘 열어준 김병기 화백님께 찾아가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라고 할아버지가 나를 떠미는 것 같아 한국에 왔다”고 털어놨다. 김 화백은 아야코의 손을 꼭 잡고 “처음 만났지만 순수한 점이 중섭을 빼닮았다”면서 “나를 친할아버지처럼 생각하라”고 했다. 아야코는 “할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오래전부터 아는 분처럼 따뜻했다. 감사의 마음을 직접 전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두 사람은 이미 한 가족이었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이중섭 그리며… 중랑아트센터 8일부터 특별전

    서울 중랑구는 오는 8일부터 10월 28일까지 복합문화공간인 중랑아트센터에서 ‘이중섭과 그의 시대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191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1956년 서울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한 뒤 3일 만에 지역 내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모셔졌다. 구는 이런 인연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으며, 특별전을 통해 이중섭이라는 인물과 그가 살아 왔던 시대를 재조명한다. 나진구 중랑구청장은 “좋은 작품들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전혁림미술관, 장욱진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등 여러 미술기관의 협조로 이번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다”면서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50년대 근대 한국미술사를 한눈에 볼 기회”라고 소개했다. (02)2094-1840.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예술적 감성과 상상을 불어넣은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예술적 감성과 상상을 불어넣은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집이 변하고 있다. 더 젊어지고 때로는 아뜰리에 같은 형태로도 변화하고 있다. 단순 실용성을 뛰어넘어 예술적 감성과 영감을 불어넣는 럭셔리한 공간으로 라이프스타일과 휴식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국내 대표 최고급 주거공간인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서는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작품들이 곳곳에 자리하며 작은 소품 하나에도 품격 있는 퀄리티를 선사한다. 그야말로 예술과 문화가 일상이 되는 곳이다. 또한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그간 보기 힘들었던 세계적 수준의 호텔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국내 초호화 레지던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최시영, 배대용, 김백선 등의 국내 정상급 공간 디자이너 들이 참여한 인테리어를 통해 최고급 주거공간에 맞는 창의적인 공간구성을 제공한다. 특히 내부는 판티니(Fantini), 안토니오 루피(Antonio Lupi), 잉고 마우러(Ingo Maurer) 등의 글로벌 명품설비가 도입된다. 상류층의 프라이빗한 사교 플랫폼이 되는 지상 42층 고급 어메니티는 거장들의 예술작품으로 가득하다. 10여개가 넘는 아트 오브제와 유명 작품들이 어메니티를 채우고 있는데,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이곳에는 골프연습장 및 요가실 등 스포츠시설은 물론 문화 및 사교를 즐길 수 있는 클럽라운지, 라이브러리카페, 파티룸, 미팅룸, 프라이빗샤워실, 와인셀러, 카페 게스트룸 등이 조성된다. 어메니티 라운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설치 작품 ‘무제Untitled, 2016’는 미술시장의 스타작가 이재효의 작품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명순환을 동양적인 현대미로 표현한 이 작품은 압도적인 크기와 웅장함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를 비롯해 가구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유럽 최정상 가구 브랜드 프로메모리아(PROMEMORIA)와 김백선 작가가 협업하여 제작한 아트 오브제들도 품격을 드높이고 있다. 특히 갤러리 라운지의 장식장과, 라운지 쇼파의 정교한 면 분할, 푸른색 가죽과 황동색 금속의 짜맞춤은 장인정신 그 자체다. 게스트룸과 컨시어지 등에도 미술사의 큰 획을 그은 이우환 작가의 작품과, 영국의 현대미술의 대표주자 이안 다벤포트(Ian Davenport),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했던 이용백작가 등의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스마트 원패스 키 홀더’도 이탈리아 가죽 명가인 ‘다비드 알베르타리오’가 제작하는 등 디테일에 신경을 쓴 점도 눈에 띈다. 한편 롯데건설은 송파구 신천동 일대에서 분양중인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지하 6층~지상 123층 높이 555m, 국내 최고층인 롯데월드타워 내 지상 42층~71층에 들어서며, 전용면적 133~829㎡ 223실로 구성된다. 현재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의 방문 및 실물 투어는 철저한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미술사부터 실학까지… 관악은 지금 인문학 ‘열공’

    미술사부터 실학까지… 관악은 지금 인문학 ‘열공’

    서울 관악구가 다음달 미술사, 주역, 실학 등을 주제로 한 풍성한 인문학 강연이 마련된다고 24일 밝혔다.화가 겸 미술평론가인 박희숙 작가는 ‘그림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라는 주제로 관악문화관도서관에서 다음달 15일부터 6주간 강연을 펼친다. 르네상스, 로코코 시대, 신고전주의 등 시대별 유명 화가의 작품을 살펴볼 예정이다. 관악구 관계자는 “강의를 통해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깊게 파악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해왔던 화가들의 열망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악구에 사는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직장인을 위한 야간 인문학 강연도 마련된다. 이영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다음달 8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총 8회에 걸쳐 ‘주역’ 강의를 한다. 다음달 11일, 18일에는 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이 진행하는 ‘다산 정약용, 실학으로 넉넉한 삶을 꿈꾸다!’가 진행된다. 실학 강연은 실학 박물관 탐방도 예정돼 있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전화(02-825-5825) 또는 관악문화관도서관 홈페이지(www.gwanakcullib.seoul.kr)에서 신청하면 된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삶의 활력소가 되는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조각가 정현 우현예술상 수상

    조각가 정현 우현예술상 수상

    조각가 정현(61) 홍익대학원 교수가 제11회 우현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인천 출신의 한국 최초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인천문화재단이 수여하고 있다. 우현예술상 심사위원회는 “시각예술분야 중 조각은 적극적 활동이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예술적 역량과 작가적 진정성을 익히 검증받고 한국뿐 아니라 국제적인 조각가로 공적을 이뤘다”고 밝혔다.
  • “25년째 답사기 굴레… ‘궁궐의 도시’ 서울 다뤄”

    “25년째 답사기 굴레… ‘궁궐의 도시’ 서울 다뤄”

    “1993년 첫 책이 나올 때만 해도 3권까지 쓰곤 본업(미술사가)으로 돌아가고 싶었죠. 그런데 북한을 가게 되면서 팔자가 그렇게 안 됐어요. 답사기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든 게 우리 지역은 왜 안 써 주느냐는 항의가 심해요. 올해로 25년째, 국토의 반을 써 왔는데 아직도 안 쓴 게 더 많네요. 20권쯤 쓰면 끝나지 않을까요(웃음).”전국에 답사 열풍을 일으킨 유홍준(68)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가 사반세기 만에 서울로 들어섰다. 8권의 국내 편과 4권의 일본 편을 합쳐 380만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답게 9, 10권인 서울 편은 이미 예약판매만 8000부에 이른다. 16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유 전 청장은 “문화재청장을 3년 반 했기 때문에 미세하게 알 수 있었던 게 많아 국민들이 같이 알아야 할 걸 쓰다 보니 뜻밖에 어려워졌다”면서도 “이 책을 읽고 현장에 가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란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네 권으로 구상한 서울 편 가운데 먼저 나온 1권은 창덕궁, 창덕궁 후원, 창경궁 등 궁궐 이야기, 2권은 한양도성과 자하문 바깥의 별서 등에 얽힌 서울의 매력과 내력을 짚었다. “세계적으로 일본 교토는 ‘사찰의 도시’, 중국 쑤저우는 ‘정원의 도시’로 공인돼 있죠. 하지만 세계 어디를 가 봐도 궁궐 5개가 모여 있는 도시는 서울밖에 없어요. 영욕의 세월이 얽혀 있지만 다른 나라, 도시와 다른 특성을 보여 주는 우리의 자랑이라 할 수 있죠. 궁궐에 대한 책은 많지만 대부분 건물 이야기에 그치는 데 반해 조선시대 그곳에서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지 스토리텔링에 주력했습니다.” 화재로 그를 문화재청장 자리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했던 숭례문 이야기는 서울편 3권에 담길 예정이다. “(숭례문 화재 사건은) 실화도 아니고 방화인 데다 지방자치단체에 관리 책임이 있으니 마지막엔 억울했죠. 포커에서 돈 잃었을 때는 빨리 털고 가야지 개평이나 얻을까 하고 있으면 추해지니 빨리 나간 거죠. 사람들은 숭례문이 불타서 없어졌다고 잘못 알고 있지만 중환자실에서 고쳐 살아난 거예요. 당시 참여정부가 언론과 불편한 관계에 있어 기사의 상품적 가치가 원없이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편에 이어 중국 편 답사기도 함께 집필 중인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중국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선 과정에서 광화문 대통령 공약 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유 전 청장은 “청와대 집무실 광화문 이전과 광화문광장 변경 등은 현재까지 결정된 건 없다”며 “다음주쯤 사업 규모와 방향에 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마음 움직이는 작품 선택해야 나만의 컬렉션 구성”

    “마음 움직이는 작품 선택해야 나만의 컬렉션 구성”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는 순간 어린아이가 됩니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고 좋은 감정을 감추질 못해 바로 작품을 구입하죠.”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화랑을 운영하며 안목 높은 미술품 수집으로 주목받는 신홍규(27) 신갤러리 대표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그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우라 또는 에너지가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면서 “수집 이전에 예술적 안목을 키우고 미술사와 작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강남 케이옥션 아트타워에서 미술시장 트렌드와 컬렉션 비법 등에 관해 특별 강연을 한 신 대표는 “마음에 들고 내가 원해서 구입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후회해 본 적은 없다”며 “나만의 색이 있는 컬렉션을 구성하려면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모딜리아니, 베이컨 등 거장의 작품 경매에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것으로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신 대표의 컬렉션은 국내에 공개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미 미국 뉴욕 MoMA,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 전시될 정도로 높은 수준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선택이 옳았는지는 나중에 미술관을 개관하면 관객들이 평가를 해주리라 믿어요. 처음부터 나의 눈과 직관을 믿고 작품을 구입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 “어릴 때부터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미술사와 전쟁역사를 매우 좋아했다”는 그는 13세 때 2차 세계대전 독일군 반합을 모으며 수집의 세계에 눈을 떴다. 컬렉션에 대한 진지한 꿈을 키운 것은 14세 때 우연히 접한 우타가와 구니요시의 우키요에 작품(채색 목판화)을 용돈 30만원을 털어 사면서부터다. 아직 젊지만 이미 13년을 미술 수집에 완전히 빠져 살아 왔다는 그는 “13년 동안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은 작가 발굴, 작품 조사 그리고 미술역사 공부를 했다”고 했다. 자신의 컬렉션에 대해 “옛 거장의 그림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하게 수집하고 있다”면서 “우아하고 경쾌한 S자형의 곡선을 자유분방하게 그려낸 프랑수아 부셰부터 평범한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실주의의 화가 발튀스, 그리고 화려한 색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현실 또는 작가의 자신 일부를 그려낸 한국 작가 현경까지 시대를 초월한 작품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델라웨어대학에서 미술품 보존학을 공부하던 2013년 뉴욕에 연 신갤러리와 프로젝트 스페이스 외에 오는 9월 세 번째로 전시공간을 열 계획이다. 말 그대로 열정적인 갤러리스트인 그는 “올해 7명의 전속 작가 중 6명이 카네기 미술관, 테이트 모던, 휘트니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전시했거나 하고 있다. 많은 관객이 전속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감탄할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신라왕 극락왕생 빈 백제 유민…불비상에 아로새긴 망국의 한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신라왕 극락왕생 빈 백제 유민…불비상에 아로새긴 망국의 한

    1960년 대학 탁본 과제 계기로 발견 …세종·공주 소재 7점 국보·보물로 지정 1960년 동국대 불교학과 2학년이었던 이재옥 학생은 집 주변의 문화재를 탁본해 오라는 방학 과제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이후 1970년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고 2011년 타계한 미술사학자 황수영 선생이었다. 학생의 고향은 오늘날에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로 바뀐 충남 연기군 서면 쌍류리였다. 그는 고향집에서 서쪽으로 언덕을 하나 넘으면 나타나는 세종시 전의면 다방리의 비암사에서 어릴 적부터 봤던 비석들을 떠올렸다. 극락보전 앞 삼층석탑의 3층 지붕에는 세 점의 검은색 비석이 있었다.이재옥 학생은 스님이 출타하기를 기다려 사다리를 놓고 석탑에 올라갔다. 하지만 처음 해 보는 탁본이라 표면의 이끼를 제거해야 하는 것을 몰랐던 데다 스님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서두르느라 찍힌 모양이 선명하지 않았다. 황수영 선생은 탁본을 새로 해 오라고 했고, 이재옥 학생은 다시 고향에 내려가 이번에는 이끼를 벗겨내고 제대로 탁본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외출했던 스님이 돌아왔고, 크게 혼이 났다. ‘부처님의 무덤’에 올라갔으니 당연한 일이다.탁본에 찍힌 명문(銘文)을 보고 황수영 선생은 조사단을 구성해 9월 10일 비암사로 향했다. 이날 확인한 것이 계유명전씨아미타삼존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과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銘阿彌陀佛碑像)과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이다. 국내에서는 처음 알려진 불비상이었다. 글자 그대로 비석 모양의 돌에 부처를 새겼다.이듬해 세종시 조치원읍 서창리 서광암에서 계유명삼존천불비상(癸酉銘三尊千佛碑像)이, 연서면 월하리 연화사에서 무인명석불비상(戊寅銘石佛碑像)과 칠존불비상이 조사됐다. 공주시 정안면 평정리에서도 삼존불비상이 확인됐다. 모두 삼국시대 백제땅이다. 한반도 다른 지역에는 없는 특정 불교조각이 일정 시기 좁은 지역에서 집중 조성된 것이다. 비암사 아미타삼존석상과 서광암 삼존천불비상은 국보로, 다른 5점의 불비상은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비암사 불비상 3점은 196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넘겨진다. 지금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유물로 대접받고 있다. 이제 팔순에 접어든 이재옥 선생은 여전히 비암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주시 정안면에 살고 있다. 역사에 남을 ‘중요한 발견’을 한 셈이지만, 이 때문에 비암사(碑巖寺)는 비암(碑巖)없는 절이 되고 말았고, 그는 미안한 마음에 오랫동안 비암사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있다.서광암 삼존천불비상은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박물관이 선사·고대문화실의 전시를 교체하고 있어 삼존비상을 볼 수는 없다. 공주 정안의 삼존불비상도 동국대박물관으로 넘겨졌다. 연화사의 두 불비상은 그대로 연화사에 있다. 서광암과 연화사는 모두 일제강점기 이후 세워진 사찰이라고 한다. 비암사 불비상도 다른 절에서 옮겨 왔을 가능성이 크다. 절 이름도 불비상을 옮겨 왔기에 이렇게 지었을 것이다. 황수영 선생은 비암사 불비상을 조사한 해 11월 ‘비암사 소장의 신라재명석상(新羅在銘石像)’이라는 논문을 처음 발표한다. 이후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미술사학자와 역사학자가 이들 불비상에 남겨 놓은 의문을 푸는 노력을 해 오고 있다. 불비상에 얽힌 의문이란 이런 것이다. 비암사 계유명삼존석상에는 ‘국왕·대신(國王·大臣) 및 칠세부모(七世父母)와 모든 중생(含靈·함령)을 위해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과 함께 이 불사(佛事)를 주도한 이들의 벼슬과 이름을 새겨 놓았다. 그런데 신라 관등인 내말(乃末)·대사(大舍)와 백제 관등인 달솔(達率)이 한데 명기되어 있다. 연화사 계유명삼존천불비상도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학계는 계유년을 백제가 망하고 13년이 지난 673년(신라 문무왕 13)으로 추정한다. 조각 양식이 8세기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 같은 이치로 무인년은 678년(문무왕 18), 기축년은 689년(신문왕 9년)으로 보고 있다. 망국민(亡國民)이 새로운 지배 치하에 막 들어서 조성한 불비상에 새긴 ‘국왕·대신’이 백제왕인지, 신라왕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백제왕과 대신으로 보는 학자들은 불비상을 백제 옛 땅에서 백제 유민들이 만들었다는 데 주목한다. 신라가 당나라와의 혈전을 앞두고 백제인들에게 관작을 주면서 회유하던 시기 망국의 군주와 대신의 극락왕생을 비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백제부흥운동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비암사 계유명삼존석상의 인왕상(仁王像)은 갑옷 차림에 왼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고, 허리 장식은 X자형으로 교차되어 있는데, 사찰의 수호신이라기보다는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백제부흥군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주장이다. 신라왕과 대신으로 보는 학자들은 명문의 백제 유민 대부분이 신라 관등을 갖고 있는데다 백제부흥운동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근거로 삼는다. 특히 계유명 불비상을 조성한 673년은 당나라가 백제 옛 땅에 설치한 통치기관인 웅진도독부를 내쫓은 이듬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신라가 백제 유민들의 역량을 당군 축출에 집결시키려면 황폐해진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만큼 불비상과 사찰 조성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라왕과 대신으로 보는 학자들도 불비상을 발원한 백제 유민이나, 조상(造像)에 참여한 백제 조각가들이 마음속으로도 새로운 지배자들의 발복을 빌었는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백제 유민과 조각가들은 망국의 현실은 인정하면서도, 백제인의 정체성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기에 옛 백제 양식으로 불상을 조성하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종의 절충론이다. 일련의 불비상은 죽은 뒤 서방정토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아미타신앙에 기반한다. 따라서 ‘국왕·대신 및 칠세부모와 모든 중생’에는 백제 패망과 부흥운동 과정에서 죽은 중생, 당나라에 끌려간 1만 2000명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외적이고 표면적인 조성 목적은 신라왕과 대신들을 위해서라지만, 심정적으로는 백제왕과 대신들을 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불비상은 새로운 통치자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백제 옛 땅 유민들의 복잡한 심사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신라인으로 삶을 이어 가야 하는 망국민이기에 불상 및 사찰 조성에서도 타협하는 자세를 보여 주기는 해야 했으되 망국의 스타일로 불상을 만들어 사라져 간 사람들을 마음 한구석에 담아 두고자 하는 처연함을 불비상은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문명의 모자이크’ 터키 발굴 현장을 가다] 신석기인 8000명의 ‘평등 공동체’… 1000년 이은 ‘역사의 집’

    [‘문명의 모자이크’ 터키 발굴 현장을 가다] 신석기인 8000명의 ‘평등 공동체’… 1000년 이은 ‘역사의 집’

    “터키는 살아 있는 인류 문명의 야외 박물관이다.”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이다.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을 겯고 있는 터키는 지난 5000여년간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이집트, 그리스·로마 등을 아우르는 ‘문명의 모자이크’다. 인류사에 뚜렷한 인장을 남긴 문명의 유산과 이야기를 캐기 위해 터키 전역에서는 현재도 220여개의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6~26일 한·터키 수교 60주년을 맞아 진행된 학술·문화 교류 행사 ‘아나톨리아 오디세이’의 여정을 따라 새길수록 더 새로운 고대인의 지혜가 깃든 터키의 유적 발굴 현장을 찾아가 봤다.“차탈회이위크의 신석기인들은 공존의 해법을 알았습니다.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가능한 삶의 방식을 보여 주고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살아왔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간 이 초기 인류의 생활상은 환경 파괴가 극심하고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현대사회에 큰 시사점을 줍니다.” ●주거지 규모 동등… 평등한 사회 구현 ‘공존과 평화의 해법’을 알았던 신석기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선 노랑 물감을 흩뿌린 듯 만개한 해바라기들이 먼저 마중 나왔다. 이슬람 신비주의의 한 갈래인 메블라나 수피즘의 본향 터키 코니아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온 길. 약 5㎞의 외진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세계문화유산(2012년 등재) 마크가 찍힌 인류 최초의 계획도시, 차탈회이위크 표지판이 고개를 내민다. 두 개의 나지막한 언덕에 8000~9000년 전 인류가 살았던 300여기의 대규모 주거지가 자리한 현장이다.차탈회이위크가 처음 세계인에게 알려진 건 영국 고고학자 멜라트가 1961~1965년 발굴에 나서면서부터다. 이 후 30여년간 방치돼 있다가 1993년부터 발굴단을 이끈 세계적 고고학자 이언 호더(69) 스탠퍼드대 교수의 지휘 아래 다시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지난 21일 발굴 현장에서 만난 호더 교수는 “이곳은 인구가 최대 8000여명에 이르렀던 마을이자 무덤”이라며 “우두머리나 공공의 장소, 의사 결정 기관도 없었고 주거지 규모도 대부분 동등한, 나눔에 기초한 평등 사회였다”고 소개했다.멜라트가 처음 파내려 갔던 남쪽 주거지의 가장 높은 지대, 기원전 6100년 층에 섰다. 주거지가 드러난 맨 밑바닥은 기원전 7100년 층의 땅. 차탈회이위크의 공동체가 1000여년간 이어졌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이곳의 초기 인류는 새로 집을 지을 때마다 기존 건물에서 흰 진흙으로 쌓아 올린 벽의 윗부분을 허물고 땅을 평평하게 다진 뒤 그 위에 다시 건물을 세우는 방식으로 세대를 이어 왔다. 최대 25개 층에 이르는 곳도 있다. 차탈회이위크의 전형적인 주거 형태를 보여 주는 남쪽 주거지의 한 집에서는 서로 껴안은 남녀와 어린이 3명의 유골이 있는 무덤, 붉은 안료로 그린 기하학적 무늬의 벽화, 화덕이 있던 흔적, 나무 기둥, 벤치, 황소 뿔 장식 등이 발견됐다. “근대에는 생산과 제의, 죽음의 구역이 다 나뉘나 차탈회이위크의 주거지에서는 생활과 제의, 죽음이 통합돼 있었습니다. 머리가 없는 시신 등 비슷한 풍습으로 옛 유골이 묻힌 자리에 다시 시신을 묻었고, 한 주거지에서 많게는 62구의 시신이 한꺼번에 발굴되기도 했죠. 과거의 전통이 계속 기억되면서 또 다른 전통을 만들어 가는 이런 방식으로 정체성을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린 여기를 ‘역사의 집’이라 부릅니다.”●공동체 전체가 아이 부모… 性차별 없어 거리가 따로 없이 주거지와 주거지 사이에 난 구멍이나 사다리를 통해 빽빽하게 밀집된 건물 지붕 위로 다니던 이 공동체들에선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개념이 없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호더 교수는 “이들은 사유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혈연만이 가족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가 곧 가족이었다”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이 따로 나누어져 있지 않았던 것도 공동체 전체가 아이들의 부모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남녀의 생활이나 죽음의 방식 모두 비슷하다는 점에서 남녀의 성 역할 구분이나 차별이 없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들은 소, 염소, 양 등 가축을 길렀지만 유독 야생동물을 그린 벽화를 다수 남겼다. 곰이나 멧돼지 등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모습뿐 아니라 사슴의 혀나 꼬리를 당기는 등 괴롭히는 모습, 사냥을 기념하고 축제를 벌이는 모습을 세심하게 표현한 벽화에서는 해학마저 느껴졌다. 화산 봉우리 아래 밀집해 있는 집들을 상세히 그린 도시계획도도 한 주거지에서 나왔다. 현장을 함께 답사한 김종일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농경이 시작되면 생산력과 인구가 증가하고 잉여 생산을 착취하는 지배 계급이 발생하며 종교가 발달한다는 게 신석기 혁명의 논리였다”며 “하지만 차탈회이위크는 농경과 정착이 함께 이루어지면서도 종교가 생활과 분리되지 않고 위계 없는 평등사회가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 주며 문명의 발달 과정에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고 했다. 글 사진 차탈회이위크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예술과 주거의 만남…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눈길’

    예술과 주거의 만남…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눈길’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가 예술과 주거를 동시에 누릴 수 있어 눈길을 끈다.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최시영, 배대용, 김백선 등의 국내 정상급 공간 디자이너 들이 참여한 인테리어를 통해 최고급 주거공간에 맞는 창의적인 공간구성을 제공한다. 특히 내부는 판티니(Fantini), 안토니오 루피(Antonio Lupi), 잉고 마우러(Ingo Maurer) 등의 글로벌 명품설비가 도입된다. 상류층의 프라이빗한 사교 플랫폼이 되는 지상 42층 고급 어메니티는 거장들의 예술작품으로 가득하다. 10여개가 넘는 아트 오브제와 유명 작품들이 어메니티를 채우고 있는데,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이곳에는 골프연습장 및 요가실 등 스포츠시설은 물론 문화 및 사교를 즐길 수 있는 클럽라운지, 라이브러리카페, 파티룸, 미팅룸, 프라이빗샤워실, 와인셀러, 카페 게스트룸 등이 조성된다. 어메니티 라운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설치 작품 ‘무제Untitled, 2016’는 미술시장의 스타작가 이재효의 작품이다. 유럽 가구 브랜드 프로메모리아(PROMEMORIA)와 김백선 작가가 협업하여 제작한 아트 오브제들도 품격을 드높이고 있다. 게스트룸과 컨시어지 등에도 미술사의 큰 획을 그은 이우환 작가의 작품과, 영국의 현대미술의 대표주자 이안 다벤포트(Ian Davenport),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했던 이용백작가 등의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스마트 원패스 키 홀더’도 이탈리아 가죽 명가인 ‘다비드 알베르타리오’가 제작하는 등 디테일에 신경을 쓴 점도 눈에 띈다. 롯데건설은 송파구 신천동 일대에서 분양중인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지하 6층~지상 123층 높이 555m, 국내 최고층인 롯데월드타워 내 지상 42층~71층에 들어서며, 전용면적 133~829㎡ 223실로 구성된다. 현재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의 방문 및 실물 투어는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텅 빈 홍채·인중 표현·스케치선…미인도, ‘천경자 코드’와 달라 위작”

    “텅 빈 홍채·인중 표현·스케치선…미인도, ‘천경자 코드’와 달라 위작”

    “어머니는 위작이 출현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보석 같은 비밀을 숨겨 놓았습니다.”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인도’가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작품이 맞는지를 놓고 26년째 진위 공방 및 고소·고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가 ‘미인도’가 확실한 위작이라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2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자신이 쓴 책 ‘천경자 코드’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부 화랑 대표 및 전문가에 이어 권력기관인 검찰까지 합세해 위작을 ‘진본’이라고 강변하는 희한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며 “1977년(‘미인도’에 표기된 해)의 천경자 진품들과 미인도의 미학적 비교분석 과정에서 독특한 작법의 천경자 코드를 발견해 책을 통해 그 전모를 밝힌다”고 말했다. 작품의 미학적 비교분석에는 미술사학자인 클리프 키에포 미국 조지타운대 석좌교수, 김 교수의 남편인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가 참여했다. 김 교수는 “홍채, 인중, 입술, 밑본 스케치, 그리고 그림을 숟가락으로 문대는 독특한 작법 등 5가지 ‘코드’를 통해 ‘미인도’가 위작임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천 화백은 인물의 홍채를 표현할 때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긁고 파 들어가듯 표현한 흔적이 확연하지만 ‘미인도’는 단지 두 가지 색이 병렬됐을 뿐이고 안이 텅 비어 있다. 입술을 그릴 때에는 의도적으로 인중을 가르지 않았지만 ‘미인도’에는 인중이 나타나 있다. 입술은 윗입술의 근육 모양을 생략하고 일자로 표현하지만 ‘미인도’에는 인중이 나타나 있다. 천 화백은 밑그림을 다른 동양화가들처럼 목탄 스케치를 하지 않고 처음부터 엷게 붓질을 시작해 서서히 형태가 나타나게 그리는데, ‘미인도’의 경우 날카로운 스케치선이 확인된다. 김 교수는 “천 화백은 여인상의 어두운 목 부분과 눈 사이를 숟가락으로 문대는 방식으로 두드러져 보이게 했지만, ‘미인도’에는 숟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책 출간으로 천 화백 유족과 국립현대미술관 사이에 벌어지는 진위 공방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미인도’의 제작기법이 천 화백의 양식과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유족 측은 이에 불복해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를 제기했지만, 검찰이 기각결정을 내렸다. 이에 김 교수 측은 지난 6월 1일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블랙리스트, 그들이 꽃피운 독일 예술

    블랙리스트, 그들이 꽃피운 독일 예술

    독일 미술가와 걷다/이현애 지음/마로니에북스/320쪽/1만 6000원독일의 나치 정권은 “독일적인 예술의 순수성을 더럽힌다”는 명목으로 ‘퇴폐미술가’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20세기 독일 전위 예술가들을 감시하고 문화 예술 활동을 금지시켰다. 1937년엔 국공립미술관에서 그들의 작품을 철거한 뒤 독일 전역을 돌며 전시했다. 그 유명한 ‘퇴폐미술전’이다.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미술가들은 어떤 이들이었고, 나치는 어떤 이유로 그들의 작품을 혐오했을까. 신간 ‘독일 미술가와 걷다’는 나치에 의해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힌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에 주목한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것처럼 책은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진 것에 맞춰 급조한 책이 아니다. 미술사가인 저자는 “좋은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정리하다 보니 대부분이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들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왜 그런지는 책을 읽으며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이해가 간다. 하나의 이름표를 붙였지만 다양했던 그들의 삶과 예술을 역사의 굴레 속에서 조망하기 위해 작가들을 사망연도 순으로 소개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는 파울라 모더존 베커(1876~1907)다. 여성이 미술가로 교육 받기도 어려웠던 시절 파울라는 “좋은 그림 세 점을 그린 다음에 기꺼이 이 세상을 떠나겠노라”고 선언하며 치열하게 작업했다. 서른한 살에 요절한 파울라는 불과 15년 동안 18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서양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기록된 여성 화가의 누드 자화상이다. 브레멘의 ‘파울라 모더존 베커 미술관’에 소장된 자화상에는 예술 세계에서나 일상에서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쳤던 예술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파울라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째 되던 해에 나치는 비정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해 독일 민족의 건강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파울라를 퇴폐미술가로 판정하고 자화상 한 점을 보란 듯이 퇴폐미술전에 내걸었다.표현주의 미술가 에른스트 키르히너(1880~1938)는 20대에 드레스덴공대 건축학과를 함께 다니던 친구들과 미술가 공동체 ‘다리파’를 결성해 활동했다. 안락을 추구하는 낡은 힘에 대항하며 다른 세상으로 건너는 다리가 되겠다는 취지로 만든 다리파 작가들은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한다. 나치는 표현주의 미술가들을 특히 적으로 규정했다. 저자는 이들이 자기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표현할 줄 아는 개인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나치의 관점에서 키르히너처럼 표현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개인은 전체주의 체제 유지에 위험한 인물이었다. 1936년 작품 전시 및 거래를 금지당한 키르히너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합병해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3개월 뒤인 1938년 6월 권총을 자기 가슴에 쏘아 58년의 삶을 마감했다. 이 밖에 노동자와 여성의 밑바닥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판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 전쟁의 참상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적나라하게 옮긴 오토 딕스(1891~1969),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1891~1976) 등의 굴곡진 삶이 차례로 이어진다.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다. “나치는 길들여지지 않는 눈을 두려워했으며 그 두려움을 다스리고자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부당한 살생부는 언젠가 삶의 이야기로 다시 쓰인다. 이 책이 그 증거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에이리언’ 시리즈와 그로테스크한(?) 인간상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에이리언’ 시리즈와 그로테스크한(?) 인간상

    오싹한 영화나 소설을 읽는다고 더위가 가시랴마는 그래도 습기에 옷이 몸에 척척 감기는 여름엔 역시 납량물이 최고다. 올해 5월 개봉한 ‘에이리언-커버넌트’는 여름에 딱 맞는 SF 스릴러다. 흉악한 외계생물과 인간의 혈투를 다룬 ‘에이리언’은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처음 만들었다. 이후 1986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에이리언2’를 만들고 이어 1992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에이리언3’, 1997년 장피에르 죄네 감독이 4편을 만들었다.‘스콧 감독은 2012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프리퀄 ‘프로메테우스’로 다시 에이리언 시리즈에 복귀했다. 그러곤 5년 만에 내놓은 후속작이 ‘에이리언-커버넌트’였다. 이로써 시리즈는 지금까지 총 6편이 나왔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SF영화의 흐름을 바꾼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속편들은 전편에 구애받지 않고 편마다 독특한 스타일과 영상미로 관객의 눈을 호사시켰다.스콧 감독은 각본을 읽고 매우 끌렸지만 영화 속 ‘우주괴물’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이었다.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화가 H R 기거의 화집 ‘네크로노미콘’(1977)을 보면서 ‘바로 이 괴물이야’라고 무릎을 쳤고 화집 속 이미지를 영상으로 고스란히 옮겼다. 미술가들의 상상력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준다. 현대미술 감상은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세상에서 새로운 것, 낯선 것, 나와 다른 것을 대할 때 놀라지 않는 넉넉한 태도와 침착함을 길러 주기도 한다.기거의 작품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그는 매우 익숙하게 붓이 아닌 에어브러시를 사용해 금속성의 인체를 매우 섹시하게 그렸다. 또 장기나 성기를 연상시키는 것들을 회색 조로 ‘그로테스크’하게 그려 당시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같은 잡지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저 삽화로만 대하기에는 아쉬운 초현실적인 기이함과 편집광적인 정밀함이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하이퍼리얼리즘이나 포토리얼리즘과 맥을 같이했지만 너무나 독특한 나머지 주류 세력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어려서부터 초현실주의자였던 장 콕토와 달리에 심취했던 그는 건축과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1966년쯤부터 음험한 느낌의 초기작을 완성해 나가며 화가, 조각가, 일러스트레이터, 괴물(크리처)·세트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후 그는 초현실적이고 음울한 환상, 불안하고 왜곡된 형체, 그리고 인체와 기계가 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그림을 그렸다. 무명 시절 그의 재능을 알아본 화가 달리가 영화 ‘성스러운 피’의 조도롭스키 감독에게 소개해 영화계와 인연을 맺고 1979년 에이리언에 참여하면서 일약 유명 화가 반열에 들었다. 기거는 그 후 인간의 생체를 뜻하는 ‘바이오’와 사실적이고 정밀한 기계를 뜻하는 ‘메카노이드’가 결합된 엽기적인 ‘바이오 메카노이드’를 완성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사투르누스나 르네상스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에 나오는 괴물, 19세기 말 미국 공상소설가 H P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괴물 이야기들로 꾸며진 크툴루 신화는 그의 기괴스러운 작품 탄생에 영감을 줬다. 또 시각적으로는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나 스위스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 그리고 폴란드의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와 맥이 통한다. 기거는 늘 악몽을 꾸었다. 이런 경험은 예술적으로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의 그림은 충격적이고 불합리한 이미지의 조합으로 사람들을 놀라움, 불편함, 매혹, 공포 등으로 이끈다. 빅토르 위고는 그로테스크를 새로운 예술의 방법론으로 채택해 세계가 이성적이고 질서정연한 것이 아닌 혼돈 즉 ‘모순의 결합’이라며, 이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선과 악, 비천과 고귀를 하나로 묶어 양면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로테스크한 그림은 현실계 너머의 세계이다. 특히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는데 1970년대 후반 등장한 극사실주의 즉 하이퍼리얼리즘 화가들은 이를 즐겼다. 현실 같지만 현실이 아닌 허구의 세계, 즉 만들어진 상상의 세계를 보여 주는 데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붓을 대신하는 에어브러시의 등장은 사진만큼이나 미술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작가의 개성을 중시하던 모더니즘적 태도를 버리고 사진처럼 또는 사진보다 더 정교하며 객관적으로 세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포토리얼리즘이 등장했다. 이를 슈퍼리얼리즘, 래디컬리얼리즘이라고도 하는데 팝아트처럼 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좀더 극단적으로 객관적이며 즉물적이다. 돋보기나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얼굴의 피부 조직이나 땀구멍까지 극명하게 그려내 관객들을 질리게 하거나 충격을 준다. 또 사진은 렌즈의 왜곡현상 때문에 화면의 주변이 휘거나 흐릿해지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수정해서 눈으로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여 준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정교한 현실 묘사는 역설적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이를 표현할 적절한 방법을 상실한 현대미술의 무기력함을 보여 준다. 하지만 ‘손의 복권’을 통한 ‘그림’의 본질적 의미를 일깨웠으며 구상과 추상,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의 구별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역사적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켰다는 점은 중요하다. 여기에 그림의 예술적 목표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제아무리 사실적인 그림도 결국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드러내 그림의 허구성을 부각시킨 점은 역설적이다. 아무튼 상상을 초월하는 기거의 그림 한 장에서 비롯된 영화 ‘에이리언’은 문화가 됐다. 수많은 덕후(?)들이 오늘도 여기에 몰입해 그들 나름대로 스토리를 입혀 새로운 에이리언들을 만드는 등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저’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징그러움의 궁극인 제노모프 즉 에이리언은 소름끼치게 기괴한 생명체이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기거의 말처럼 그 바탕은 인간의 모습에 두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진정 인간일까. 문득 으스스해진다.
  • 원로작가 김구림 “자료왜곡 명예훼손에 저작권 침해까지”

     한국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원로작가 김구림(81)이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진행 중인 전시에 자신과 관련한 자료가 왜곡돼 자신의 명예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전시 중인 작품의 일부는 작가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전시되고 있어 국가기관에서 작가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영한국문화원(원장 용호성)이 주관한 ‘리허설 프롬 더 코리안아방가르드 퍼포먼스 아카이브’전과 관련해 자신의 작품 ‘1/24초의 의미’ 소개자료가 심각하게 잘못돼 있다고 주장했다. 전시 리플렛은 이 작품에 대해 ‘최원영(감독), 정찬승, 김구림, 정강자, 반대규(촬영)가 만들었고, 다른 예술가들이 작품 제작과정에 참여했음에도 뒤늦게 합류한 김구림 작가가 이 작품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이 작품은 내가 기획하고 감독해 만든 전위영화이며 다른 사람들은 스태프로 참여했을 뿐”이라며 “평소 나와 사이가 좋지 않던 김미경씨가 생전에 주장하던 내용이 사실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고증도 하지 않고 리플렛에 그대로 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작품을 소장한 테이트모던에서 리플렛에 소개된 내용을 보고 나에게 의문을 제기해 매우 난처했다”며 “한 평론가의 개인적인 주장을 작가에게 확인도 거치지 않고 마치 사실처럼 공개한 것은 국가 망신”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몇몇 주요 작품은 공식적으로 허가도 받지 않은 채 전시가 됐다“며 ”이는 저작권법 위반에도 해당하는 내용“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부분에 대해 용호성 원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았고 잘못된 리플렛은 수거한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며 “(전시와 관련해) 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부 작가에 대한 특혜 의혹도 제기했다. 김 작가는 “소수의 특정 작가에 대한 아카이브 자료나 작품만 부각시켜 소개하고, 다른 작가들과 작품에 대해서는 공정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왜곡된 한국 전위미술사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당초 전시 취지와 달리 문화원 측이 특정 작가만을 위한 전시로 구성했다는 의혹을 감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 작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용호성 원장은 “작가의 주장 중에 사실 관계가 다른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다“며 ”곧 해명자료를 준비해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닮은 듯 다른 父子의 시선

    닮은 듯 다른 父子의 시선

    안창홍(64)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한국의 근대사가 안고 있는 비합리성과 비논리성, 인간 본성의 이면을 날카롭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표현해 왔다. 그의 아들 안지산(38)은 젊은 작가들이 영상과 미디어, 설치작업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전통적인 회화의 한계에 도전하는 보기 드문 작가다. 대를 이어 작업을 하는 예술가 부자가 각각 부산과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과감하게 들추어 내어 도덕적 경고를 던지는 동시에 인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온 안창홍은 부산 해운대구의 조현화랑에서 ‘눈먼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조각과 회화의 만남을 시도한 거대한 가면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2014년 개인전(더페이지갤러리)에서 맨드라미를 모티브로 한 ‘뜰’ 연작과 함께 ‘눈먼자들의 도시’라는 보라색 조각을 공개했던 그는 양평 작업실을 확장한 뒤 거대한 두상 조각과 가면 시리즈 제작에 전념했다. 20여점이 조현화랑에서 선보이고 있다. 거대한 크기와 강렬한 색상이 시선을 압도하는 두상 작품들에는 표정도 없고 가면에는 눈동자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표정 변화 없이 ‘눈먼 자’로 살아가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다.두상 이마에 바코드처럼 새겨져 있는 숫자 ‘2014416850’은 2014년 4월 16일 8시 50분을 의미한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다. “2014년 개인전을 준비하던 중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그 겨울 7시간 30분을 운전해 팽목항을 방문했다.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날 따라 바람도 많이 불었다.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예술가들도 지난 몇 년을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게 보냈다.” 새로운 형식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민한 촉수를 번득이며 시대의 일그러진 초상을 예술로 꾸짖어 온 그는 “작가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며 “그늘진 곳을 끊임없이 파헤치고 부조리를 찾아내 이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7월 16일까지.안지산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한 뒤 네덜란드 프랭크모어 인스티튜트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2013~2014년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에서 작업하며 탄탄하게 실력을 쌓았다. 자신의 표현대로 하면 ‘회화에만 목을 맨지’ 7년째, 나름대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다듬어 가고 있는 안지산은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최근 작업한 유화와 드로잉 20여점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열고 있다. 조각난 사진들도 있지만 극사실적으로 그려진 가죽 점퍼, 거대한 붉은 모자, 음산한 표정의 인물, 그림자처럼 어두운 인물의 형상들, 김홍도의 ‘운우도첩’ 일부분 등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웬만해선 공통의 주제를 찾기 힘들다. 작품에도 제목이 안 붙어 있고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나 보조 이미지가 간간이 붙어 있을 뿐이다.작가는 “큰 주제를 정하기보다는 이전 작업과정에서 제외됐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그동안 생각했던 아이디어들을 좀더 발전시켜 보려 했다”며 “그래서 전시 제목도 ‘무제’이고 작품에도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로의 느낌은 다르지만 대부분 직간접으로 ‘섹슈얼리티’에 관련돼 있다”면서 “지금까지 전시에서 에로틱한 장면이나 성에 관련된 것을 언급한 적이 없어서 조금 낯선 마음으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에게 부실했던 부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승부 근성은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뚝심으로 밀고 나가는 그의 아버지를 꼭 닮았다. 작가에게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자동으로 “존경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술가로서 정말 존경스러워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새로운 주제를 찾는 것을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업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시기도 하지만 작가로 열심히 활동하는 그 모습 자체가 제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대를 이어 예술가의 길을 가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기에 더욱 그렇다. 안지산에게 아버지 안창홍은 작업에 대한 고민도 들어주고, 격려해 주는 예술가 선배이자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예술이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랐어요. 그럼에도 예술가의 길을 택한 저에게 아버지는 포기하지 말라고, 신념을 가지고 작업하라고 항상 용기를 주십니다.” 전시는 7월 2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국내 최고가 아파트 ‘한남더힐’ 집값 고공행진

    국내 최고가 아파트 ‘한남더힐’ 집값 고공행진

    국내 고급아파트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남더힐’의 주거가치가 매년 상승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단지는 집값이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지만 집값은 해마다 꺾일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남더힐’의 전용 244㎡는 82억원에 매매 거래됐다. 같은 해 1월 79억원에 거래된 것 대비 1년 새 3억이 오른 것이다. 또한 이는 지난해 국내 아파트 가운데 가장 비싼 아파트에 이름을 올렸다. 공급면적이 약 330㎡ 가량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3.3㎡당 실거래가가 8,000만원을 웃돈다. 올 초 국내 최고 분양가 기록을 세운 잠실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3.3㎡당 7500만~8000만원)와 맞먹는 수준이다. 올 들어 가격 상승 속도는 더욱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한남더힐’ 전용면적 240㎡가 65억원에 거래됐다. 이는 5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62억원에 거래된 것보다 3억이 올랐다. 거래량 상승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한남더힐의 매매 거래건수는 164건으로 2015년 31건 대비 무려 5배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한남더힐의 가격이 오른 것은 고급 주택수요자들에게 적합한 입지와 일반 아파트와 비교할 수 없는 단지설계의 힘이라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게다가 분양전환 당시 일부에서 제기됐던 감정평가액에 대한 논란이 정리되면서 실제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이 몰리며 가격이 폭발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한남동 H공인중개사는 “한남더힐은 최근 시세가 3.3㎡당 4800만~8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며 “최근엔 강남3구 노후화된 주택에서 벗어나려는 수요까지 몰리며 매물도 잘 없을 뿐 아니라 대기수요가 많아 나오는 즉시 거래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남더힐’은 전용면적 59~244㎡ 총 600가구다. 2009년 임대 아파트로 공급했으며, 현재 임대계약이 끝난 후 분양으로 전환하지 않은 일부 가구를 분양 중이다. 언덕을 따라 12층짜리 건물부터 3층짜리 건물 32개 동이 전체 단지를 이루고 있다. 부지면적은 13만㎡에 달하지만 용적률은 120%로 낮아 서울 도심에서는 보기 드물게 단지 내 조경면적이 36%에 이른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강남 아파트촌과 가장 차별화 되는 점이다. 넒은 부지를 채우는 건 드넓은 조경이다. 빼어난 조경은 외국 휴양지의 고급 리조트를 연상케 한다. 세계적인 조경사인 일본의 요지 사사키가 설계한 단지내 조경은 ‘왕의 정원’을 컨셉트로 설계됐다. 물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고 가구마다 독립된 정원을 마련해 놓은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세계 현대미술사에서 대표되는 훌륭한 예술작품 30점 이상이 실외 및 실내공간에 설치돼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최고가 아파트답게 조경은 물론 내부평면과 커뮤니티 시설도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단지 내에는 휘트니스센터는 물론 수영장, 골프연습장, 사우나, 연회장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어 격이 맞는 입주민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누릴 수 있다. 또 아파트 바닥은 천연대리석으로 꾸미고 주방가구는 이탈리아 톤첼리, 독일 에거스만·불탑 등 해외 고급 브랜드로 꾸며졌다. 철저한 보안 역시 이 아파트의 장점이다. 적외선 탐지기를 이용해 외곽에서부터 외부인이 무단침입을 사전에 방지하며, 비상 상황에 대비해 24시간 보안 요원이 상주하고 있다. 단지 내부의 노약자와 아이들의 위치를 관리실 및 월패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가치 또한 높다. ‘한남더힐’ 길 건너편 용산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미군 가족이 주거공간으로 사용하던 외인아파트 부지 약 6만㎡가 지난해 5월 땅값만 6,242억 원에 대신증권 금융계열사인 대신F&I에 팔렸다. 이는 한남더힐 부지 약 13만㎡ 매매가 3,318억원과 비교하면 4배나 차이가 난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가는 토지비와 건축비, 건축가산비 등이 합산돼 산정되는데 토지비가 낮을수록 분양가는 저렴해진다”며 “외인아파트 부지는 주변시세와 높은 토지비 때문에 일반분양 가격이 3.3㎡당 1억 원이 넘어갈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나오면서 외인아파트보다 입지여건이 좋은 ‘한남더힐’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동철 칼럼] 품위 있는 문화국가를 위하여

    [서동철 칼럼] 품위 있는 문화국가를 위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청와대를 옮기고 그 자리에 서울역사문화벨트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새 정부 인사들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청와대 자리를 박물관과 공원 등으로 조성할 뜻을 거듭 밝혔다. 청와대를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도 찬반양론이 없는 정책이 없다지만, ‘청와대 터의 문화공간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일찍부터 서울역사문화벨트 조성 공약 기획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었다니 청와대의 문화공간화 계획은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위원회를 이끌었다는 소식이니 실망스럽지 않은 기획안이 벌써 대통령에게 보고된 상태인지도 알 수 없다. ‘박물관과 공원’을 언급할 수 있었던 것도 적지 않은 진전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청와대 자리에 박물관이 들어선 미래가 누구보다 기다려진다. 문화유산 분야를 오래 취재한 기자라서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기획위원회가 어떤 박물관을 생각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국가대표 박물관’ 말고 다른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온갖 박물관이 있고,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상징적인 자리에는 상징적인 박물관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라가 품위 있는 나라라고 믿는다. 국가대표 박물관이라면 당연히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다. 중앙박물관이 국가대표 고고미술사 박물관이라면, 민속박물관은 국가대표 민속생활사 박물관이다. 물리적 규모는 중앙박물관이 크지만, 두 박물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우선 두 박물관의 상황을 차근차근 따져 보는 게 좋겠다. 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에 자리 잡았다. 용산 박물관은 1997년 기공식을 가졌으니 공사에만 8년이 걸렸다. 기획과 설계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으니 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은 10년이 넘는 대역사였다. 용산에 자리 잡은 이후 중앙박물관은 반듯한 하드웨어만큼이나 전시와 교육에서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방이 공원과 아파트 단지에 포위된 듯 옹색한 입지는 국가대표 박물관에 걸맞지 않다. 용산에 자리 잡기 이전 경복궁의 중앙박물관은 당연히 외국 관광객의 방문 1순위였다. 하지만 이제 적지 않은 외국 관광객은 경복궁 내부에 있는 민속박물관만 둘러보고, 중앙박물관 방문은 포기하곤 한다. 이런 현상은 단체 관광객에게서 더욱 뚜렷하다. 민속박물관은 2030년 경복궁 복원 사업이 마무리되기 이전에 지금의 자리를 비워 줘야 한다. 용산 중앙박물관 옆 공원의 일부를 이전 부지로 점찍었지만 ‘없었던 일’이 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반면 문화정책 실행기관으로서 짊어져야 할 짐은 갈수록 무거워진다. ‘민속’에 머물지 않는 영역 확대가 불가피하다. 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교육 및 프로그램 공급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노령화하고 있는 마당에 노년층에 문화를 공급하는 역할 또한 당연히 민속박물관의 몫이다. 국가대표 박물관을 짓거나 옮기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천문학적 비용도 수반된다. 하지만 어차피 민속박물관이 옮겨 갈 자리는 새로 마련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박물관의 입지를 결정해야 하는 마당에 청와대 자리를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름처럼 중앙박물관이 다시 중심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존 용산 박물관 건물은 민속박물관이 그대로 물려받으면 된다. 하지만 중앙박물관 규모의 시설을 북악산 아래 새로 짓는 것은 다양한 이유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민속박물관을 청와대 자리로 옮기는 방법도 좋다. 기존 청와대 시설을 상당 부분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청와대 자리에 국립박물관이 들어선다는 뉴스가 기다려진다.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미술관, 마음의 위안처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미술관, 마음의 위안처

    어려운 일, 피곤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어딘가 편한 곳을 찾는다. 영화 ‘뮤지엄 아워스’(2012)에서 마음의 피난처는 미술관이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공간, 수많은 사람들의 세파에 닳아버린 삶들이 담긴 그림들 사이로 또 다른 사람들이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분주하게 때로는 무망하게 그림을 보는 일상 아닌 일상 속 시간이 멈추어 선 곳, 문득 떠난 낯선 여행지 같은 그곳이 바로 미술관이다.캐나다에 사는 앤(마거릿 오하라)은 어느 날 존재조차 모르던 사촌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다. 연고자가 없어 유일한 친척 앤에게 연락이 와 빈에 왔지만 사촌도 도시도 다 낯설고 서툴다. 그래서 낯선 도시에서 두렵고 외로우면 조용히 미술관을 찾는다. 그러다 미술관 경비원 요한(보비 소머)에 의해 발견(?)된다. 음악 일에 종사하다 정년퇴직한 그는 그림 보는 일과 그림 보는 관객을 보는 재미로 미술관 일을 하던 중이다. 그런 그가 미술관에서 유독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앤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영화는 두 사람의 뜻밖의 만남을 통해 전개된다. 미술관과 빈이라는 도시를 표류하듯 방황하는 두 사람을 카메라는 정교하게 따라붙어 다큐멘터리처럼 미술품과 일상적 풍경 사이를 슬라이드 쇼처럼 교차하거나, 화면이 분할되어 두 개의 상황이 하나의 화면에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관객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런 영화의 전개방식은 영화보다 비디오아티스트로 더 잘 알려진 젬 코언 감독 덕택이다.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영화와 설치미술 작품들은 주로 다큐멘터리 기법을 차용해 영화도 미술, 음악도 아닌 중간영역에 둔다. 16㎜나 슈퍼 8㎜ 홈비디오를 써서 중심과 주변, 전경과 후경을 수시로 바꿔 주변과 중심을 뒤섞어 놓는데 영화에서도 카메라의 프레임은 액자가 되고 액자 속 그림의 주인공이 움직인다.요한이 근무하는 미술관은 1891년 개관한 빈 미술사미술관이다. 독일의 건축가 G 젬퍼가 설계한 석조건물에 빈을 수도로 6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과 17세기 중엽 레오폴트 빌헬름 장군이 수집한 약 40만점의 미술품이 보태져 서양미술사 전반에 걸친 진귀한 작품들로 가득한 미술관 중 미술관이다. 영화의 배경이 미술관이니 그림은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병문안을 함께 간 요한은 코마 상태의 환자를 두고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아르침볼도의 ‘여름’(1563) 그리고 파티니르의 ‘그리스도의 세례’(1515~24)를 이야기한다. 파산 후 궁핍하고 쓸쓸한 노년기를 보낸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삶의 덧없음과 젊은 날의 회한을, 아르침볼도는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얼굴을 연작으로 그렸는데 ‘여름’은 인생의 가장 절정, 또는 건강했던 시절을 말한다. 파티니르는 루카복음 3장 1~18절과 21~22절을 소재로 ‘그리스도의 세례’를 그렸다. 요한의 그림 이야기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에게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뮤지엄 아워스’에서 주인공은 단연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이다. 처음에는 ‘민간의 전설’ 즉 속담 등을 주제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풍경 속에 수많은 개미같이 작은 인물들을 그렸지만 점차 교묘한 대각선 구도를 통해 화면에 질서를 주어 주제가 명료해지면서 화가로 정착했다. 특히 농민 생활을 애정과 유머를 담아서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인물이 커지면서 ‘농민의 브뤼헐’이 됐다. 현존하는 작품으론 동판화 1점을 포함, 총 45점이 있다. 브뤼헐의 비중은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확인된다. 그의 ‘눈 속의 사냥꾼’(1565)에서 까마귀가 나뭇가지를 차고 날아오르는 그림의 일부와 실제로 까마귀가 나는 일상은 영화에서 오버랩된다. 영화에 함께 등장하는 ‘우울한 날’(1565)과 ‘소떼들의 귀환’(1565)은 그의 대표작인 ‘계절’ 연작 중 일부다. 브뤼헐의 그림이 익숙한 건 1970년대 우리나라 크리스마스 카드와 달력에 많이 사용된 때문이다. 브뤼헐의 작품에는 주인공이 없다. 아니 화면을 개미 떼처럼 가득 채운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숨은그림찾기 속 인물처럼 소리 없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지지고 볶고 살아간다. 영화 속 앤과 요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그들의 존재는 안중에 없다. 주변부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러나 스스로에게는 중심인 그런 사람들이다. 젬 코언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세상의 한 부분을 이루고 살아온 주변을 병렬 배치함으로써 삶과 사회, 삶과 죽음을 되뇌게 한다. 영화의 이해를 위해 그림을 병렬 배치해 보면 요한은 브뤼헐의 작품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며 소일하다 앤을 발견하고 그녀가 마음을 열게 되자 한스 멤링의 누드화 ‘아담과 이브’(1485)를 함께 보며 알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리고 브뤼헐의 작은아들 얀의 ‘큰 꽃다발’(1607)을 본다. 화병에 꽂혀 있는 꽃이란 결국 뿌리 없는 허공 중에 떠 있는 아름다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런 화병 속 꽃 그림은 메멘토 모리 즉 덧없는 삶 혹은 유한한 삶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이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예술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주제이다. 결국 영화는 삶은 그 자체로 죽음의 연속이며, 처음부터 삶 안에는 죽음이 포함돼 있다는 몽테뉴의 말을 빌려 일상과 영화를 버무려 놓고 삶과 죽음을 한 공간에 놓아둔다. 그의 이런 화법 때문에 요한은 미술관 경비원이 아니라 미술관 그림들과 함께 있는 브뤼헐의 그림 속 사람처럼 보인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최악의 ‘영화’이고, ‘예술’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작품’이 되는 이 영화는 대사보다는 화면에 몰입해야 보이고 읽히는 영화이다. 늘 익숙하게 지나치던 일상의 풍경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익숙함과 생경함을 동시에 슬며시 쥐어 주며 생의 비약, 허무의 초극을 동시에 보여 준다. 그래서 일상 속 미술관은 일상 너머의 미술관과 같은 장소임을 알게 해 준다. 몸도 쉬어야 하지만 마음도 정신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껏 복지가 몸만 생각했다면 마음도 쉴 수 있는 헤아림이 포함된 문화복지를 말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에게 돈만 지원해 주면 발전하고 융성(?)할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에겐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마음과 정신을 쉴 곳도 절실하다. 결코 사치가 아니다.
  • “세월호 객실 찌그러져 공간 폐쇄… 미생물 침입 적어 희생자 시신 시랍화”

    “세월호 객실 찌그러져 공간 폐쇄… 미생물 침입 적어 희생자 시신 시랍화”

    13일 사람 뼈 추정 다수 수습… 4층 중앙에서도 16점 수거해 14일 4-11구역서도 1점 발굴… 3층 일반인 객실서 3점 수습 “입었던 옷 재질, 부패 막았을 것…백골화보다 신원확인 쉽게 진행다른 미수습자 8명도 가능성” 세월호 선체 4층 수색 과정에서 단원고 조은화 학생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된 가운데 단원고 남학생들이 머문 객실과 가까운 곳에서도 유해가 다수 발견됐다. 3층 일반인 객실에서도 유해가 처음 나왔다. 특히 지난 12일 ‘시랍화’된 시신 형태의 미수습 희생자가 발견되면서 지난 3년간 거센 맹골수도 바닷속에서 어떻게 시랍화가 가능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랍화는 몸의 지방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진 지방산과 물속 마그네슘, 중금속이 결합돼 비누와 같은 상태로 비교적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해양수산부 출신의 세월호 현장수습본부 고위 관계자는 14일 “지난 12일 바지를 입은 채 발견된 미수습자는 상당 부분 시랍화로 진행된 상태였고 이를 가족들에게 알렸다”고 밝혔다. 시랍화가 가능했던 것은 우선 선체 내 객실이 침몰 충격으로 찌그러지면서 폐쇄돼 수중 생물이나 미생물의 침입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또 입고 있던 옷의 재질 등도 부패를 늦춘 것으로 보인다. 유해발굴 전문가로 현장 자문을 맡고 있는 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바다생물의 공격이 덜한 밀폐된 공간에서 무슨 옷을 어떻게 입고 있었는지가 매우 중요하며 살이 많은 부위는 시랍화가 잘된다”며 “배가 큰 무덤이고 옷의 재질이 부패를 막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베옷보다는 미라에서 종종 발견되는 명주옷을 입었을 때 시신의 부패 속도가 더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도 “펄(진흙) 속에 빠르게 묻혔거나 수중 생물의 접근이 어려우면 시신들이 시랍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른 미수습자들도 백골화가 아닌 상대적으로 온전한 몸 형태의 시랍화로 발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랍화는 뼈만 남은 백골화 상태보다 신원 확인이 좀더 쉽게 진행될 수 있다. 뼈 외에 DNA를 확인할 수 있는 근육과 피부 조직 등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근육 등은 뼈처럼 칼슘을 제거(2~3주 소요)할 필요가 없어 DNA 확인이 빠를 수 있다”면서 “다만 부패 가능성도 있어 뼈를 포함한 다양한 조직을 대상으로 DNA 검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장수습본부는 지난 13일 세월호 4층 여학생 객실이 있던 선미 좌현(4-11구역)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해 다수를 수습한 데 이어 남학생 객실과 가까운 4층 중앙(4-6구역)에서도 사람 뼈 16점을 발견했다. 14일에는 4-11구역에서 사람 뼈 1점이, 일반인 객실이 있는 3층 중앙부(3-6구역)에서도 유해 3점이 수습됐다. 조양으로 추정되는 유해는 지난 12~13일 연이어 선체 4층 선미 8인실에서 상의 등과 함께 발견됐다. 수색팀은 조양의 치과 기록과 비교해 조양임을 추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수습본부는 이날 펄이 많이 쌓여 있는 4층 중앙 객실을 수색하기 위해 천공(선체 구멍뚫기) 작업에 착수했고 3층 객실에 진입하기 위해 지장물 제거와 진입로 확대 작업을 진행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