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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한 명의 독자 위한 성찰의 편지… 고흐의 ‘뿌리 깊은 고뇌’ 담겼네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한 명의 독자 위한 성찰의 편지… 고흐의 ‘뿌리 깊은 고뇌’ 담겼네

    알다 이전에 ‘본다’가 있다. 쓰다 이전에 ‘본다’가 있다. 세상을 바로 보는 시선은 너무도 중요하다. 김수영은 “이제 나는 바로 보마”(공자의 생활난)라며 ‘보다’라는 행동을 강조했다. 작가란 대상의 본질을 보는 사람이다. 보는 시선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본다’라는 동사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낸 작가를 떠올리면 단연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릴 수 있다.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야. 사람들이 내 그림에 대해, 화가가 깊이 날카롭게 느끼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어. (1882년 7월 21일 / 반 고흐, 신성림 옮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2005) 고흐는 자신이 본 풍경을 ‘뿌리 깊은 고뇌’로 새롭게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의 고뇌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써 있다. 그의 편지에는 자연과 종교를 대하는 태도, 안부를 묻는 내용이 가득하다. 에밀 졸라, 도스토옙스키 등 소설가에 대한 평과 렘브란트, 밀레 등 화가에 대한 간단한 인상주의 비평문도 들어 있다. 그는 화가이지만 ‘편지문학 작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기는 자기만 읽는 글이지만, 편지는 한 명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독특한 문학 장르다. 한 명을 독자로 삼는 편지는 일기 못지않게 속내를 드러내는 솔직한 글이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지. 그런 건 좋다.”(1890년 7월) 당찬 다짐이 들어 있는 편지글은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열정을 느끼게 한다. 그림에 “생명을 걸었다”는 속내는 일기처럼 편지글에서도 드러난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맘대로 써도 되는 일기와 달리, 편지는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성찰하며 이야기를 정리해 보내야 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가난한 사람들’(1946) 등은 편지문학의 대표작이랄 수 있겠다. 편지작가인 고흐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뿌리 깊은 고뇌’였다. 영어로는 6권, 일본어로는 3권짜리 고흐 서간문 전집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말로 고흐 편지 전체가 번역된 적은 없다.●고흐가 본 시엔 한 통계를 보면 미술관에 걸린 누드화의 85%가 여성 누드라고 한다. 누드를 주문하는 자도 남자요, 그림을 그리고 만든 이도 남자였다. 천사처럼 성스러운 존재만을 누드로 그렸던 미술사를 에두아르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를 그려 흔들어 놓았다. 벌거벗은 여성 곁에서 넥타이에 정장을 갖춘 두 사내가 편안히 정담을 나누는 상황은 황당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의 여성은 그림 밖의 관람자를 태연하게 응시한다. 마네의 ‘올랭피아’(1865)는 더 도발적이다. 흑인 여성을 배경으로 하는 백인 여성의 흰 살은 조금은 외설적이다. 슬리퍼, 보석, 머리의 꽃 장식을 보자. 흑인 하녀가 든 향기로운 꽃다발은 누가 선물로 보냈을까. 고흐도 누드를 그렸다. 다만 고민 없이 혹은 그림을 팔려는 의도에서 그린 누드와 다르다. 고흐는 여성의 성적인 육체보다는 여성이 견딘 ‘뿌리 깊은 고뇌’를 그리려 했다. 고흐의 편지를 읽으면, 여성을 대하는 그를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충분히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지난겨울, 임신한 여인을 알게 되었어. 남자에게 버림받은 데다 그 남자의 아이를 배고 있었지. 겨울에 길을 헤매는 임신한 여자가 빵을 얻으려면 어떻게 했을지 너는 알겠지. 나는 그녀를 모델로 삼아 겨울 내내 그녀와 함께 일했어. 나는 그녀에게 모델료를 충분히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방세는 내 주었어. 그리고 다행히도 빵을 그녀에게 나누어 주어 그녀와 아기를 굶주림과 추위로부터 지켜주었어. … 그녀와 결혼하는 것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결혼은 그녀를 구제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 가난해지고, 과거의 구렁텅이로 내몰리는 생활로 돌아가야 해.”(1882년 5월 3~12일)매독에 걸린 채 임신해 있고, 딸까지 데리고 있는 세 살 연상 매춘부 시엔과 고흐는 1년 넘게 함께 살았다. 그녀 때문에 목사인 아버지는 고흐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야단쳤다. 친척이자 존경하던 스승이었던 안톤 모베도 인연을 끊었다. 시엔을 모델로 그린 ‘슬픔’(1882)에서 고흐의 ‘뿌리 깊은 고뇌’를 만날 수 있다. 우키요에(일본 에도시대 화풍)의 영향을 받았으나 외설적이거나 에로틱한 면이 없다. 오히려 힘없이 헝클어진 머리카락, 볼품없이 나온 뱃살이 지저분하고 추한 느낌마저 든다. 앞서 본 마네의 여인들은 팽팽한 곡선, 탐스러운 머리칼, 풍요한 젖가슴을 갖고 있지만, ‘슬픔’에 앉아 있는 시엔은 전혀 반대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박탈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흐는 37년을 살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슬픔’은 고흐 개인사를 넘어 여성의 누드를 ‘슬픔’으로 보는 전복적인 작품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그린 것 중 최고”라고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아파서는 안 된다. …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슬픔’은 그 작은 시작이다.”(1882년 7월 21일) 그가 편지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바람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시엔은 60여점의 데생과 수채화를 위한 모델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나, 시엔을 그린 ‘슬픔’은 여성을 보는 전혀 다른 세계를 제시했다.●감자 먹는 사람들… 빈자의 성찬식 솔직히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느낌 외에 달리 감흥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보면 볼수록 그 분위기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집안은 온통 어둡고 감자가 놓인 테이블에만 빛이 모여 있다. 초라한 식탁에 등만 보이는 소녀 앞에 찐 감자의 김이 금빛으로 오르고 있다. 당시 유럽에서 감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왼편에 그려진 광대뼈가 나온 사내는 거칠게 살아온 황소를 닮았다. 고흐는 왼쪽 사내의 손을 가장 공들여 그렸다고 편지에 썼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1885년 4월 30일 편지) 이 작품을 위해 고흐는 고향 누에넨에서 겨울을 보내며 농부들의 초상화 40여점을 그렸다. 고흐는 이 작품을 오랜 친구인 반 라파르트에게도 석판화로 보냈다. 걸작을 제작했다는 확신 때문에 고흐는 라파르트의 부정적인 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라파르트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예술의 규범을 모두 훼손했다고 생각했다. 굴하지 않고 고흐는 이 작품을 자신이 그린 그림 중에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품이라고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아주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 너도 이 그림이 독창적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1885년 4월 30일)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난 가야트리 스피박 교수는 돈도 없고 배운 것이 없어 자신들의 아픔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이들을 하위주체, 즉 서벌턴(Subaltern)이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까. 스피박 교수는 구조적 문제에 주목하라고 요구한다. 고흐의 그림은 스피박의 서벌턴 이론에 호응한다. 고흐의 ‘슬픔’에 나오는 창녀 시엔이나 ‘감자 먹는 사람들’에 나오는 가난한 가족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서벌턴들이다. 탄광 지역 보리나주에서 썼던 그의 편지를 읽으면 빈자에 대한 심려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괴로운 생활을 보내는 노동자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며 계몽할 수 있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 왜냐하면 그 자신이야말로 우리의 병을 안 위대한 슬픔의 사람이고, 그가 신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목수의 아들로 불린 존재이며,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1878년 12월 26일) 고흐의 편지를 읽는 독자나 그림을 보는 관객은 잠시라도 그가 제시한 슬픔과 가난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의 편지와 그림이 따스한 이유는 낮고 천하고 볼품없고 쓸데없는 것들을 ‘보는’ 그의 시선이 우리를 따뜻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쓸쓸하고 낮은 것과 같이하려는 시선에서 ‘편지작가’ 고흐는 탄생했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의상대사 창건 高雲寺, 가운루·우화루 지은 최치원 호 따 孤雲寺로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의상대사 창건 高雲寺, 가운루·우화루 지은 최치원 호 따 孤雲寺로

    1742년(영조 18년) 10월 보름, 임진강 우화정(羽化亭)에서 웅연(熊淵)까지 선상(船上) 연회가 벌어졌다. 참석자는 경기도관찰사 홍경보와 연천현감 신유한, 양천현령 정선이었다. 이날은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1037~1101)가 적벽강에서 뱃놀이를 하며 ‘후적벽부’(後赤壁賦)를 지은 660주년이었다고 한다. 우화정은 경기 연천군 중면 대사리에 있었다. 지금은 임진강댐 상류 북한 땅이다. 청천 신유한이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라면 겸재 정선은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이 뱃놀이에서 신유한은 ‘의적벽부’(擬赤壁賦)를 지었고 겸재는 배가 우화정에서 떠나는 장면과 웅연에 닿는 모습을 각각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이라는 그림에 담았다. 여기에 창애 홍경보의 서문이 더해진 시화첩을 세 벌 만들어 나누어 가졌으니 유명한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이다.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비로 변하는 것이 우화(羽化)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사람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을 이르는 도교적 표현이다. 소동파의 ‘훌쩍 세상을 버리고 홀몸이 되어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만 같다’(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는 ‘적벽부’ 구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겸재는 이 구절의 신선 선(仙) 자를 배 선(船) 자로 살짝 비틀어 화제(畵題)로 삼았다. 신유한(1681∼1752)은 집안 배경이 변변치 않은 탓에 늦은 나이까지 지방관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와 문장에서만큼은 일찍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1719년(숙종 45)에는 통신사의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다. 통신사 제술관은 여간 글재주가 뛰어나지 않으면 뽑힐 수 없었다. 신유한의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는 것도 통신사행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는 1719~1720년 일본을 여행하면서 지리·풍속·제도는 물론 자연환경까지 자세히 적었으니 곧 ‘해유록’(海遊錄)이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을 이끈 사명대사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사명대사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자신의 평가를 붙인 ‘분충서난록’(奮忠難錄)을 편찬하기도 했다.●오늘날 고운사 중심은 대웅전… 과거엔 극락전 오늘은 ‘컬링의 고장’으로 떠오른 경북 의성의 고운사(孤雲寺)로 간다. 의성군 동북쪽의 고운사는 안동과 경계를 이루는 등운산(登雲山)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절 이름만으로도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孤雲) 최치원(857~?)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친다. 신유한을 떠올린 것은 그가 평해군수 시절인 1729년(영조 5) 고운사의 사적기를 썼기 때문이다. 그의 사적기는 1918년 오시온이 지은 또 다른 사적기와 함께 이 절의 역사를 구성하는 결정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고운사는 절의 역사를 이렇게 서술한다.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해동 화엄종의 시조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연꽃이 반쯤 피어난 부용반개형상의 천하명당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원래 고운사(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유교·도교에 모두 통달해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如智)·여사(如事) 양 대사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고운을 빌려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도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들이다’. 고운사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흩어진 60곳 남짓한 절들을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 지은 산문을 지나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역시 최근 조성한 대웅전을 비롯한 30개 남짓한 전각이 규모 있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고운사는 ‘사세(寺勢)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칸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지금은 교구본사로는 작은 사찰로 전락했다’고 적어 놓았으니 지금보다 훨씬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오늘날 고운사의 중심은 웅장한 대웅전 주변이라 할 수 있지만, 과거의 중심은 극락전이었다. 극락전과 마주 보는 우화루 사이 양옆으로 만덕당과 종무소가 사방에서 마당을 에워싼 일종의 산지중정형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유행한 형태다. 극락전 영역은 소박하기만 하다.●가운루, 구름 탄 누각 의미… 등운산 계곡 가로질러 종교적 의미에서 절의 중심이 어디든, 고운사의 상징은 우화루와 가운루다. 등운산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가운루는 과거 다리 역할을 했다. 가운루란 구름을 타고 앉은 누각이라는 뜻이다. 곧 신선의 세계다. 고운이라는 최치원의 아호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우화루란 이름에서는 곧바로 홍경보, 신유한, 정선의 임진강 뱃놀이가 떠오른다. 사찰의 강당은 부처가 설법하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빌려 우화루(雨花樓)라 이름붙이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은 찻집으로 쓰는 고운사 우화루에도 내부에는 우화루(雨花樓)란 편액이 하나 더 붙어 있다. 우화루와 가운루는 이 절이 최치원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음을 과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화루 명칭은 신선·부처님 가르침 동시에 상징 고운사가 신유한에게 사적기를 청한 것도 청천이 유학은 물론 불교와 도교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천은 사적기 서두에 ‘1728년 고운사 스님이 찾아와 청하는 것을 서류에 파묻힐 만큼 바빠 응하지 못했는데, 이듬해 사자(使者) 셋이 고운사 주지의 글을 다시 들고 오니 거절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고운사의 역사를 정리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사적기는 신유한이 관련 사료를 엄격히 고증해 서술했다기보다는 스님들이 알고 있는 구전(口傳) 자료를 재구성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런데 청천의 사적기에는 ‘의상대사 창건’ 다음에 최치원이 등장하지 않고 곧바로 ‘고려 건국 초 운주화상 중수’로 넘어간다. 최치원의 고운사 중창설(說)과 이후 절 이름 변경설(說)은 신유한이 사적기를 쓰던 시기에는 아직 널리 보편화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명대사가 고운사를 의승군의 전초기지로 썼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사명대사 전문가’인 신유한은 역시 사적기에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운사와 최치원과의 관계로 국한하면 신뢰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보물로 지정된 고운사 약사전의 석조여래좌상은 최치원이 살았던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미술사학계는 보고 있고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도 신라 후기 양식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유한의 사적기에 왜 최치원과의 관계가 서술되지 않았고 오시온의 사적기에는 왜 들어가게 됐는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극락전이 서쪽에 있는 건 서방정토 상징성 살린 것 가운루의 존재에서 보듯 고운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그 동서쪽에 전각이 있는 사찰이었다. 극락전 영역이 서쪽에 자리잡은 것은 주존(主尊)인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정토의 상징성을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계곡 동쪽은 모니전(牟尼殿) 영역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전각이다. 흔히 이런 전각을 대웅전이라 부르지만 절의 큰법당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고자 이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대웅전은 1992년 가운루 상류의 계곡을 메우고 모니전 영역을 해체해 세운 것이다. 모니전 옛 건물은 대웅전 동쪽의 삼층석탑 위로 옮겨 지었으니 지금의 나한전이다. 조촐함에서 닮은 나한전과 삼층석탑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것인 양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여 준다. 일주문 밖으로는 화엄승가대학원이 보인다. 산내 암자인 운수암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신유한은 운수암기(雲水庵記)도 남겼으니 이래저래 고운사와는 인연이 깊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안양박물관, ‘도자’ 단 하나 주제로 1년간 역사문화강좌 진행

    경기도 안양시에서 도예 애호가에게 특별하고, 수준 높은 역사강좌가 1년 동안 열린다. 안양문화예술재단 안양박물관은 오는 21일부터 ‘역사문화토크-도자’ 상반기 강좌를 시작한다고 8일 밝혔다. 이 강좌는 도기, 자기, 토기 등을 통틀어 이르는 ‘도자’라는 단 하나의 주제를 갖고 상·하반기로 나눠 진행된다. 매주 수요일 만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수준 높은 이론강의가 열리고 체험·현장답사 기회도 제공된다. 상반기에는 한국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우리 도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본다. 선사시대~삼국시대 토기, 고려청자, 조선시대 분청자와 백자, 근대 자기 등을 주요 내용으로 5월 9일까자 8차례 강의가 열린다. 먼저 ‘선사시대 토기의 출현과 변천’을 주제로 이형원 학예연구사(한신대학교박물관)가 첫 번째 강의를 시작한다. 이어 ‘원삼국~삼국시대 토기의 이해’(김무중 중원문화재연구원장), ‘고려청자의 세계’(윤용이 명지대 고고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분장, 변화의 시대를 담다’(박경자 청주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순백으로 빚어낸 조선의 마음, 백자’(방병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한국 근대 도자의 명암’(엄승희 이화여대 도예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주제로 강의가 진행된다. 각 주제와 관련 서울·경기 일대 유적과 박물관을 답사하고, 직접 그릇을 만들어 보는 체험을 통해 도자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시간도 갖는다. 수강생 40명을 오는 21일까지 인터넷으로 선착순 모집한다. 수강료는 체험과 답사비를 포함해 12만원이다. 안양문화예술재단 담당자는 “한 주제로 일 년 동안 한국사와 세계사를 살펴보는 특별한 강좌”라며 “이를 통해 도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추사 김정희, 조정 쇄신 의도로 난초 그렸다?

    추사 김정희, 조정 쇄신 의도로 난초 그렸다?

    추사난화/이성현 지음/들녘/472쪽/3만 5000원오른쪽 아래에서 왼쪽으로 쭉쭉 뻗은 긴 난초 잎들. 거센 바람에 속절없이 꺾인 듯 보이는 가운데 바람에 맞서 홀로 고개를 치켜든 난꽃에 배어 있는 기백이 인상적이다. 특히 담담한 필묵으로 간결하게 그려낸 필치는 고상하게 다가온다. 다만 난초의 위쪽과 왼쪽 여백을 채운 빽빽한 한자들은 어딘가 모르게 그린 이가 할 말이 많다는 인상을 풍긴다. 시서화에 능했던 조선 말기 최고의 지성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그린 묵란화 ‘불이선란’(不二禪蘭)이다. 고고한 자태로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듯한 그림 속 난초는 지조 높은 선비의 인품과 충절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참아내는 군자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일까. 동양화가 이성현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가로 31㎝, 세로 55㎝ 크기의 이 그림에 추사가 숨겨 놓은 비밀스러운 메시지가 있다고 주장한다.2016년 출간한 ‘추사코드’에서 추사의 붓글씨에 특별한 뜻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기존 미술사학계의 해석을 뒤집는다. 저자는 그림 위에 쓰는 시문(詩文)인 화제(畵題)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그 안에 추사가 전하고자 했던 정치적인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추사의 난화 중에서도 ‘불이선란’ 분석에 공을 들인다. 난화의 위쪽에 기록된 화제는 ‘부작난화이십년’(不作蘭畵二十年)으로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다. ‘난초 꽃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정도로 해석된다. 저자는 거칠게 휘갈겨 쓴 추사의 이 화제에서 미술사가들이 ‘작’(作)이라고 본 부분은 ‘정’(正)자를 오독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법도에 맞지 않는) 엉터리 난 그림과 함께한 지 20년 만에’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것. 첫 부분부터 작품을 어긋나게 바라본 탓에 ‘불이선란’을 둘러싼 엉터리 해설들이 난무하게 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중국 송말원초 때 화가 정소남(1241~1318)이 망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의 상징을 담아 묵난화법을 창시한 것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진 묵난화는 조선에서도 충절을 중시하는 선비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엉터리 난 그림’이라 함은 ‘국가에서 공인받지 못한 난 그림’이란 의미이고, 정소남의 필의와는 다른 의미로 그린 난화라는 것이다. 저자는 추사가 성리학의 폐해가 만연한 조정을 쇄신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이념을 정립하기 위한 용도로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난화 왼쪽에 있는 화제 중 ‘시위달준방필’(始爲達俊放筆)로 봐 왔던 미술사학계의 통념도 반박한다. 저자는 그림에는 분명 ‘갈 준’(?)으로 돼 있는데 몇몇 연구자들이 사람인변을 추가한 ‘준걸 준’(俊)자로 읽었다고 지적한다. 마음대로 고쳐 읽은 탓에 존재하지도 않는 ‘달준이’라는 인물을 만들더니 ‘처음에 달준이를 위해 그렸으니’라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시작할 시’(始)로 읽어 온 글자 역시 흘려쓴 필획의 움직임을 재현해 볼 때 ‘왕비 비’(妃)로 읽는 것이 타당하며, 풀이하면 ‘왕비가 거만한 결단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 붓을 놀리니’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당시 강력한 세도가였던 안동김씨 가문의 뿌리가 순원왕후 김씨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추사가 이 난화를 통해 그들의 장기 집권을 막고자 했던 의도가 숨어 있다고 결론짓는다. 기존 학계의 해석을 공격할 때 일부 비약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기존의 관점을 뒤집어 생각해 보려는 저자의 시도는 신선하다. 저자도 책 속에서 자신의 파격적인 해석에 대해 독자들이 반신반의하거나 마뜩잖아할 것을 예상하고 있는 만큼 저자의 해석을 따를지 여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유홍준 한국문화특강… 다시 ‘인문학 ’ 강북

    서울 강북구가 다음달 17일 인문학 강의 ‘한국문화특강’을 개최한다. 강북구는 7일 “강북문화예술회관 1층 대공연장에서 ‘어두운 오늘을 찬란한 미래로 바꿔 줄 역사의 힘’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개최한다”면서 “이번 강의는 지역 주민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명사와의 만남을 통해 일상의 작은 행복을 더해 주고자 마련됐다”고 밝혔다. 특강 강사는 유홍준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다. 그는 강의에서 대내외적 변혁의 시기를 헤쳐 나갔던 선조들의 지혜를 전할 예정이다. 유 교수는 예술과 인문학에 정통한 한국의 대표 문화 지식인이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문화재청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 “박경리의 토지가 한국의 정신적 국민총생산(GNP)를 올려놨다면 유홍준은 대한민국의 면적을 열 배는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문화특강은 2016년부터 분기별로 열린다. 직장인, 워킹맘, 학생 등을 배려해 토요일에 열리며 강북구민 누구나 별도의 신청 없이 참여 가능하다. 매회 사회 각계의 전문가를 초빙하고 다양한 주제로 개최되는 구의 대표적인 평생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을 비롯해 의학박사 홍혜걸씨, 전문강사 김창옥씨,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가 강사로 초청돼 강좌를 펼쳤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이번 강의를 통해 우리만의 전통과 문화를 이뤄 온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우수 강사진 만난다…2018년 봄학기 수강생 선착순 모집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우수 강사진 만난다…2018년 봄학기 수강생 선착순 모집

    숙명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이 2018년 봄학기 수강생 선착순 모집을 진행 중이다. 숙대 평생교육원이 전문가 육성 및 문화교양 향상을 위한 총 46개 교육과정을 개설한 가운데 오는 3월 2일부터 강좌별로 순차적 수업이 진행될 계획이다. 특히 숙대 평생교육원은 자격증과정 17개, 전문교육과정 10개, 문화교양과정 11개, 최고전문가과정 3개, 테라피 및 상담 과정 5개 등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46개의 다채로운 강좌를 구성해 수강생들의 선택 폭을 넓혔다는 평가다. 먼저 다양한 문화교양과정이 눈길을 끈다. 역사문화(한국문화·서양문화), 보타니컬아트, 디지털 사진 기초과정, 생활과 한의학, 서양근세미술사, 선교무용, 오색중국어, 감성나눔 캘리그라피, 퍼스널컬러 이미지코칭, 한국화 채색을 품다 등이 있다. 자격증교육과정은 한국몬테소리교육사를 비롯해 아동미술심리지도사, 푸드스타일리스트, 한국전통음식전문가, 디톡스 주스&스무디 마스터 자격증, 로푸드 요리 마스터 자격증, 조향디자이너(1급&2급 통합과정), 홍차·허브차컨설턴트, 오카리나 전문 지도자, 포크댄스 지도자, 명품 시낭송과 스피치, 수납전문가양성과정(2급), 웃음치료 리더십 실버체조, 시니어건강여가지도사, 치매예방 전문가양성과정(1급), 시니어플래너지도자, 웰다잉심리상담사 등으로 구성됐다. 전문교육과정은 미술경영리더십아카데미, 액티브시니어클럽-미래설계아카데미, 시민기자활동가 양성교실, 전통고전머리미용, 플로리스트 입문반, 컬러테리피전문가, 한방꽃차소믈리에, 노래지도자, 와인소믈리에, 커피바리스타(핸드드립&라떼아트)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최고전문가과정은 리더십 최고전문가과정, 뷰티미용스피치 최고전문가과정, 역학 최고전문가과정 등이 있으며 테라피·상담과정은 향기심리상담전문가, 컬러테라피전문가, 미술심리상담사, 놀이심리상담사, 음악심리상담사 등이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관계자는 “최근 시대에 맞는 트렌디한 교육과정을 구성해 수강생들에게 필요한 전문교육 및 문화교양과정을 제공하고 있다”며 “수강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교육과정이 입소문을 타고 있어 수강문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과정 관련 자세한 내용은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홈페이지 및 대표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형광등 348개가 만든 ‘빛의 예술’

    형광등 348개가 만든 ‘빛의 예술’

    끝 모르고 펼쳐지는 거대한 초록빛이 온몸을 감싸 안으며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60㎝ 간격으로 배치된 1.2m짜리 형광등 348개가 만든 ‘녹색 장벽’(40m)의 힘이다. 산업 재료인 형광등을 세계 최초로 예술의 영역으로 들여온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가 댄 플래빈(1933~1996)이 만든 ‘빛의 예술’이 국내에 처음 기획전으로 소개된다. 최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새로 문을 연 롯데뮤지엄(면적 1320㎡)의 개관 전시 ‘댄 플래빈, 위대한 빛’에서다.플래빈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53년부터 미 공군으로 복무하며 이듬해 한국 오산의 제5공군본부에서 기상정보를 수집하는 기상병으로 근무했다. 1956년 뉴욕으로 돌아간 그는 컬럼비아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1960년대부터 형광등 하나로 한 시대를 압축하는 새로운 시각 예술 문화를 만들어 냈다. 4월 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 첫발이라 할 수 있는 ‘1963년 5월 25일의 사선’(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등 플래빈이 1963년부터 1974년까지 제작한 초기작 14점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초록빛 눈부심으로 시선을 압도하는 1973년 작 ‘무제’(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는 여러 개의 형광등을 치밀한 계산으로 반복적으로 설치해 빛만으로 공간을 새로 만들고 지우는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가 압축된 대표작이다. 빛에 의해 기존의 물리적인 구조나 원근법이 해체된 새로운 공간이 잉태되는 이색적인 경험을 즐길 수 있다. 롯데뮤지엄은 연 3~4회의 기획 전시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부터 주목받는 신진작가까지 아우르며 역동적인 현대미술의 현재를 보여 줄 계획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댄 플래빈전에 이어 또 다른 뉴욕 출신 작가이자 리얼리즘 초상 회화로 유명한 알렉스 카츠의 기획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권윤경 롯데뮤지엄 아트디렉터는 “플래빈은 형광등의 빛만으로 공간을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시킨 작가”라며 “플래빈이 발상의 전환으로 시각 예술의 혁명을 이끌었듯 롯데뮤지엄이 기획하는 현대미술이 주는 영감이 관람객들의 삶에 새로운 빛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7000~1만 3000원. 1544-7744.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양산시립박물관·통도사성보박물관 4월 사찰벽화 기획전, 통도사 극락전 나한도 벽화 실물 첫 공개

    양산시립박물관·통도사성보박물관 4월 사찰벽화 기획전, 통도사 극락전 나한도 벽화 실물 첫 공개

    경남 양산시립박물관과 통도사성보박물관이 양산지역 각 사찰 벽면 등에 그려져 있는 다양한 벽화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 전시회를 공동으로 연다. 양산시립박물관과 통도사성보박물관은 15일 양산시립박물관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양산의 사찰벽화’ 특별기획전을 오는 4월 9일 개막해 3개월 동안 공동개최한다고 밝혔다. 사찰벽화(寺刹壁畫)는 사찰 전각(殿閣) 벽면에 그려져 있는 불교회화를 일컫는 말로, 불교 교리에 근거해 다양한 소재를 그려 전각을 엄숙하고 위엄있어 보이게 한다. 두 박물관은 우리나라 3보 사찰 가운데 하나인 통도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시민 염원을 모으고 양산지역 불교문화 우수성과 독창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사찰벽화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사찰벽화전시회는 두 분야로 나누어 양산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과 통도사성보박물관 불교회화실에서 동시에 열린다. 양산시립박물관에서는 사찰벽화 개념과 양산 사찰 벽화 역사성·예술성, 사찰벽화 관련 각종 자료, 양산지역 전통사찰에 있는 다양한 벽화 등을 전시한다. 통도사성보박물관에서는 통도사 본사·말사에 있는 대형 벽화 모사본과 여러가지 불교회화 등을 주제에 따라 분류해 전시한다. 두 박물관은 여러 사찰벽화 실물을 비롯해 벽화 실물을 천에 그대로 그린 모사본, 벽화 관련 각종 사진, 영상자료 등 200여점을 선보인다. 1990년대 벽체를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떼어 내 보존처리 한 뒤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통도사 극락전 나한도 벽화 실물도 처음으로 전시회에서 공개하며 조선시대 여러 벽화 모사본을 대여 전시한다. 양산시립박물관측은 전시회 기간에 불교미술 전문가 등이 양산 사찰벽화의 미술사적 중요성 및 가치, 연구성과 등을 소개하는 학술세미나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산지역 사찰벽화 가운데 통도사 영산전 석씨원류응화사적벽화와 다보탑 벽화, 신흥사 대광전 벽화 등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서유기 내용을 벽화로 그려 놓은 통도사 용화전을 비롯해 별주부전 내용을 재미있게 묘사한 통도사 명부전 벽화, 조선후기 불교회화 기법의 전형을 보여주는 관음전 등 다양한 내용의 사찰벽화들이 남아 있다. 양산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현대미술 새로 쓴 뒤샹… ‘단색화 1세대’ 윤형근

    현대미술 새로 쓴 뒤샹… ‘단색화 1세대’ 윤형근

    시장에서 사온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장에 내놓으며 현대미술을 새로 쓴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1887~1968). 우주를 화폭에 옮긴 한국 추상예술 대모 이성자(1918~2009). 세계에서 먼저 인정받은 단색화 1세대 윤형근(1928~2007).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거장들이다.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주요 전시 일정을 발표했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전시는 국내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마르셀 뒤샹전이다. 오는 12월부터 내년 4월까지 서울관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는 ‘샘’, ‘레디 메이드’ 등 미의 개념을 전복한 그의 주요 작품, 당대 작가들 관련 작품 등 110여점을 볼 수 있다.외국 거장뿐 아니라 국내 중견 및 거장 작가 개인전을 통해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짚어보고 우리 미술사를 되짚어 보는 계기도 마련한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맡은 이성자(3~7월, 과천관), 윤형근(8~12월, 서울관)뿐 아니라 2004년 요절한 박이소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7~12월, 과천관)와 세계적인 여류 사진작가 이정진 개인전(3~7월, 과천관)도 열린다.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1922~1998) 작고 30주기를 맞아 그의 작품 200여점을 볼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이 오는 8월 과천관에서 진행된다. 소장품 연구를 재료로 한 기획 전시도 예정됐다. ?2015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외국인 관장으로 취임한 마리 관장의 임기는 다음달까지다. 마리 관장은 이날 연임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거듭 “예스”라고 답하며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제가 시작한 프로젝트들은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3년은 장기적으로 기획·운영해야 하는 미술관의 주기로 봤을 때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한국에서 첫걸음을 뗀 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게 두 번째 임기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두물머리 작은 산사에서 ‘왕실의 불상’이 쏟아졌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두물머리 작은 산사에서 ‘왕실의 불상’이 쏟아졌다

    절집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장쾌한 것으로는 남양주 수종사(水鐘寺)를 첫손가락에 꼽아도 좋을 것이다. 운길산 중턱의 수종사 마당에서는 북동쪽에서 흘러내려 오는 북한강과 남동쪽에서 달려오는 남한강이 합쳐져 마침내 한강을 이루는 양수리(兩水里)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누가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일대를 왜 두물머리라 부르는지 알 수 있다.절의 창건과 관련해 ‘수종사 중수기(重修記)’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한양 동쪽 칠십리에 운길산이 있고, 이 산에 절이 있으니 수종사다. 세조가 천순 3년(1459·천순은 명나라 영종의 연호) 이두수(二頭水)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중 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튿날 세조는 바위굴에서 18나한상을 발견하니 절을 짓게 하고 수종사라 이름 지었다.’그런데 수종사에는 더 이른 시기의 사리탑이 남아 있어 세조의 창건 설화를 무색하게 한다. 정혜옹주(?~1424) 사리탑이다. 정혜옹주는 태종과 의빈 권씨 사이에 태어났다. 생전에 불심이 깊었는데 다비하자 사리가 나와 사리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리탑의 지붕돌에는 ‘류씨와 금성대군이 시주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1426~1457)은 어린 시절 의빈 아래서 컸다고 한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얼굴 한번 보지 못했을 정혜옹주의 사리탑을 발원한 이유일 것이다. 조선 전기의 대문장가 서거정(1420~1488)의 ‘동문선’에는 ‘수종사 윤(允)선사에게 주는 시’(寄水鍾寺允禪老)가 있다. ‘용진강 위에 옛 가람이 있는데/ 돌길을 굽이돌아 삼나무 숲으로 들어가네’로 시작한다. 과거에는 양수리를 용나루(龍津)라 했고, 그 앞 한강은 용강(龍江)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세조 시대 창건한 젊은 사찰이었다면 서거정이 ‘옛 가람’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다산 정약용(1762~1836)은 ‘수종사는 신라의 옛 절인데, 샘이 있어 돌 틈으로 맑은 물이 흘러나와 떨어질 때 종소리를 내므로 수종사라 부른다”고 했다. 다산이 전하는 말처럼 신라 시대 창건한 사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전기에 이미 ‘옛 가람’이라 불리울 만큼 역사가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한 듯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다산은 수종사에서 내려다보이는 팔당호수변 마재가 고향이다. 그는 ‘운길산 수종사는 옛적 우리 집 정원/ 마음만 먹으면 날아가 절 문에 이르렀네’라는 시를 남길 만큼 어린 시절부터 이 절을 자주 찾았다. 수종사를 큰 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변 산세(山勢)는 가파르기만 해 지금도 대웅보전만 그런대로 번듯한 터전에 자리잡고 있을 뿐 응진전이며 약사전, 산신각은 바위틈에 매달리다시피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세조 창건설(說)이 전하고, 정혜옹주 사리탑이 세워질 만큼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은 물길의 편리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용나루는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운반하는 조창(漕倉)이 있던 충주에서 도성(都城)의 마포를 잇는 남한강 수운(水運)에서 가장 중요한 경유지의 하나였다. 남한강은 충주에서 다시 상류로 단양, 영월, 정선을 거쳐 오대산이 있는 오대천으로 이어진다. 태백산록의 목재는 뗏목으로 엮인 뒤 이 물길을 따라 마포강으로 흘러들었다. 세조가 수종사를 실제로 찾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는 오대산을 오가는 과정에서도 이 수로(水路)에 크게 의존했을 것이다. 수종사는 걸어서 오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자동차로도 절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다. 다만 길이 좁고 가파른데다 구불구불하기까지 하니 초보 운전자라면 말리고 싶다. 어쨌든 수종사에 올라 일반 탐방객들이 주변 경치에 넋을 잃는 동안 불교나 미술사 학자들은 대웅보전 왼쪽에 나란히 세워진 세 기의 석탑에 먼저 눈길을 보낸다. 왼쪽이 정혜옹주 사리탑, 작은 삼층석탑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팔각오층석탑이다. 사리탑은 절 서쪽 산비탈에 있던 것을 옮겼다고 한다. 사리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뚜껑 달린 청자 항아리와 금제구층탑, 은제 도금 사리기 등 화려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금탑과 사리기는 항아리 안에 들어 있었다. 사리기에는 수정으로 만든 공 모양 사리병이 들어 있었는데, 구멍을 뚫고 사리를 모셨다. 일괄해서 보물로 지정된 ‘남양주 수종사 부도 사리장엄구’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높이 3.3m의 팔각오층석탑은 더욱 주목해야 한다. 오대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보여주는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이 조선 시대 들어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성은 더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보물로 지정된 탑도 탑이거니와 내부에 모셔진 불상의 규모와 발원한 사람들의 면면은 매우 흥미롭다. 두 차례 팔각오층석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수습한 불상은 모두 30구에 이른다. 일부 해체가 이루어진 1957년 기단 몸돌에서 금동불 8구, 1층 몸돌에서 금동불 3구와 목불상 3구, 1층 지붕돌에서 금동불 4구를 발견했다. 전면 해체 수리한 1970년에는 2층 지붕돌에서 금동불 9구, 3층 지붕돌에서 금동불 3구를 찾았다. 그동안 4구가 사라져 지금은 26구가 남아 있다고 한다. 팔각오층석탑의 불상들이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불상의 명문(銘文)과 복장(腹藏)의 발원문으로 봉안한 사람과 이유, 그리고 조성 시기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장이란 불상의 배 부분에 넣는 불경 등의 상징물을 말한다. 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층 몸돌의 불상 6구는 숙용 홍씨, 숙용 정씨, 숙원 김씨가 1493년(성종 23)에, 다른 금동불 23구는 인목대비가 1628년(인조 6)에 각각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1층 몸돌 출토품 가운데 금동석가모니불좌상은 바닥 은판에 ‘시주 명빈 김씨’(施主 明嬪 金氏)라고 새겨져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명빈 김씨(?~1479)는 조선 초기 중요한 불교 후원자의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은 성종의 후궁인 숙용 홍씨와 정씨, 숙원 김씨가 ‘주상전하의 성수만세(聖壽萬歲)’를 기원하며 봉안한 것이라고 했다. 명빈이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이 지난 시기다. 명빈 김씨와 성종의 세 후궁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진전된 연구가 필요하다. 23구에 이르는 1628년 봉안 불상에는 발원문이 없는 대신 비로자나불상 바닥에 ‘숭정 원년 무진년에 소성정의대왕대비(昭聖貞懿大王大妃)가 발원한 23존을 주조하여 보탑에 봉안하니 후세에 전해 중생을 구제해 주소서. 화원 성인(性仁)’ 이라는 명문이 있다. 소성정의대왕대비는 곧 인목대비(1584~1632)다. 선조의 계비로 영창대군을 낳은 인목대비는 광해군이 즉위한 뒤 아들을 잃고 폐서인이 됐다가 인조반정으로 복호(復號)되는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말년 대왕대비(大王大妃) 신분으로 발원한 불상은 작지만 화려하다. 하지만 봉안처는 신분이 한참 떨어지는 선대 내명부(內命婦)가 이미 발원했던 탑이니 조촐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수종사가 왕실에서 그만큼 영험 있는 사찰로 유명세를 떨쳤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사상 최고가 ‘예수 그림’, 경매 하루만에 진위 논란

    사상 최고가 ‘예수 그림’, 경매 하루만에 진위 논란

    “다빈치 아닌 ‘다빈치 화실’ 작품…다빈치 다른 작품들과 달라”낙찰자 ‘루브르 아부다비’ 거론...천문학적 가격은 ‘브랜딩 승리’ 우리돈으로 약 5000억원(4억 5000만달러)에 낙찰되며 세계 미술품 경매사를 새로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살바토르 문디’(구세주)를 두고 진위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해당 작품이 실제 다빈치의 작품이 맞는지, 작품의 보존 상태 등을 고려할 때 그 정도의 몸값을 가질 가치가 있는지를 두고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경매사 크리스티 측은 이 작품이 다빈치가 그린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지만, 반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AP는 16일(현지시간) 일부 학자들은 살바토르 문디를 다빈치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다빈치 화실에서 그린 것으로 본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소개했다. 다빈치 작품 전문가이자 예술사학자인 자크 프랑크는 “다빈치가 일부 참여한 화실 작품”이라며 참여 정도를 15% 수준으로 추정했다. 그는 그림 속 손의 모양이 다빈치의 해박한 해부학 지식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제이손 프라고노프도 이날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능숙하긴 하지만 16세기 전환기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로부터 나온 특별히 뛰어난 종교적 그림은 아니다”라며 ‘이슬람식 터치’가 가미된 의상, 예수의 고불고불한 머리카락 등이 다비치의 다른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레오나르도 작품 전문가이자 예술사학자인 자크 프랑크도 NYT에 “기껏해야 레오나르도(의 요소)를 조금 갖춘 좋은 스튜디오 작품이고 많이 손상됐다”면서 “이 작품은 ‘남성 모나리자’라고 불려왔지만 전혀 그렇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의 필립 케니컷 미술전문 기자는 이 작품의 엄청난 가격이 진위에 대한 의심을 없애주진 않는다며, 다빈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다빈치가 일부 참여했을지도 모른다고 보는 게 안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다빈치의 작품으로 명명됨으로써 승리할 수밖에 없는 ‘브랜드의 힘’이라고 규정했다. 애초 다빈치의 제자가 그렸거나 다빈치의 복제품으로 알려졌던 이 작품에 르네상스 미술 거장의 이름이 덧입혀짐으로써 그의 손길을 거친 신성한 유물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본과 복제에 대한 개념 구별이 없는 포스트 기술 복제 시대에, ‘원본’ 다빈치의 그림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그의 그림이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남아있는 다빈치의 ‘물리적 터치에 흔적’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낙찰된 이번 경매는 ‘브랜딩의 승리’라고 보는 시각도 비등하다.미술사 연구가이자 딜러인 벤더 그로스베너 박사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크리스티 측이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홍보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 측은 경매 전 외부대행 기관을 선정해 작품을 홍보하고 홍콩, 런던, 뉴욕 등지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전례 없는 마케팅을 벌였다. 또 150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을 부유하고 열성적인 바이어들이 많은 ‘현대미술’ 경매시장에 내놨다. 이처럼 몸값만 높이는 것이 전체 미술 시장에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미술품 투자 및 자문업체 ‘파인 아트 그룹’의 가이 제닝스는 이번 경매에 대해 “미술 시장의 전반적인 건강을 위한 것 같지 않다”며 막판에 과시적 성격의 수집가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게임을 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가진 부의 엄청난 불균형이 반영된 것”이라며 “세계가 미쳤다”고 비판했다. 낙찰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가디언은 저명한 바이어 또는 아시아와 중동의 신생 바이어였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라고 전했다. 루브르 아부다비와 같은 신생 기관도 거론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 영화] 파울라

    [새 영화] 파울라

    불과 100여년 전 독일이다. 여성은 애를 낳는 것을 빼고는 창조적인 일을 할 능력이 없다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그림은 정확하고 정밀하게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느껴지는 대로, 자신의 감성과 직관대로 그림을 그리며 시대적 편견과 한계를 깨뜨린 독일의 여성 화가의 짧지만 폭풍 같은 삶이 스크린에 채색됐다.9일 개봉하는 ‘파울라’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 파울라 모더존베커(1876~1907)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 취직하거나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물리치고 독일 브레멘 지역의 예술가 공동체 보르프스베데를 찾아가는 파울라를 보여 주며 시작한다. 사실주의적인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설립한 그곳에서 파울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족족 어겨 가며 눈 밖에 난다. 빈민촌에서 그림 대상을 찾기도 하고, 당시로서는 금기시되는 (노인) 남성의 누드를 그리기도 한다. 파울라는 자신(의 그림)에 관심을 드러낸 화가 오토 모더존과 결혼하지만 가정 또한 그녀의 예술혼을 가두지는 못하고, 파울라는 결국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창작열을 불태운다. 교과서에 나오는 여러 예술가의 낯선 삶이 등장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파울라는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본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솔 메이트로 교류한다. 릴케가 당대 최고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비서였고, 또 릴케와 결혼한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가 생계를 위해 로댕의 작업실에서 회반죽을 주물러야 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카미유 클로델도 스치듯 등장해 스승(로뎅)이 작품을 가로챘다고 한탄한다. 파울라의 화풍에 큰 영향을 끼친 폴 세잔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재미. 반면 예술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예술혼이 마냥 멋있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광기까지는 아니지만 일상성을 벗어난 행동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관객의 몫이다. 영화 초반에는 카메라가 캔버스 안을 비추지 않아 파울라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호기심을 자극하다가 중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보여 주는데 색과 선을 단순화한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파울라는 누드 자화상을 그린 첫 여성 화가로 서양미술사에 기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관능적인 여성 누드화와는 거리가 먼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이 대표작이다. 늘 걸작 세 점과 아이 한 명을 세상에 남겨 놓고 싶다고 말하던 파울라는 실제 딸을 출산한 이듬해 세상을 뜨며 불꽃같은 삶을 마감한다. 느닷없이 영화가 끝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엔딩 크레디트 사이로 여운이 많이 흐른다. 스위스 출신 카를라 주리가 파울라로 열연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리플리컨트에게 이식할 기억을 만들던 아나 스텔리네 박사 역을 연기한 배우다. 15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Life & 인물] “미래 사회 앞서가기 위해선 ‘통찰력’과 ‘사고 유연성’ 키워야”

    [Life & 인물] “미래 사회 앞서가기 위해선 ‘통찰력’과 ‘사고 유연성’ 키워야”

    ‘100여년간 쌓아온 여성 교육의 요람.’ 덕성여대가 2020년 창학 100주년을 향해 힘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원복(71) 덕성여대 총장은 인문학적 소양(Humanity)과 스마트 테크놀로지(Smart Technology)를 융합한 ‘휴마트’(Humart) 교육을 전격 도입하고 미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공과대학을 새롭게 만든다고 밝혔다. 덕성의 제2 비상을 주도하고 있는 이원복 총장은 덕성여대에서 30여년간 교수로 근무하고 정년퇴직 후 석좌교수를 거쳐 2015년 3월 총장으로 부임했다. 덕성에서의 오랜 교육경험을 살려 대학교육의 변화를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이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여성 인재를 만들기 위해 인재상을 ‘바른 인성과 전문지식을 갖춘 DS-휴마트형 인재’로 설정하고 교양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다. DS-휴마트는 학생 본인의 전공과목 외에도 다양한 다른 전공과목을 필수로 듣게 해 모든 전공에 대한 기초지식을 두루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 교양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른바 ‘전문 교양’ 교육을 뜻한다.또한 정보통신과 바이오가 미래 산업의 핵심 분야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2018년부터 공과대학을 신설한다. 컴퓨터학과, IT미디어공학과, 바이오공학과 등 3개 학과를 만들어 130명의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계획이다. 이 총장은 “미래 사회는 숲에서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숲을 볼 수 있는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다방면에 고른 전문 기초지식을 갖추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재를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총장과의 일문일답. →취임하신 후 2년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요, 소회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돌이켜보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31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덕성에서 30여 년간 교수로 근무하고 정년퇴임한 후 ‘덕성여자대학교 첫 석좌교수’라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덕성은 언제나 제게 참으로 자랑스럽고 고마운 울타리가 돼 주었죠. 제 평생의 꿈과 열정이 담긴 덕성, 그리고 늘 신뢰와 배려로 함께 해주신 덕성 구성원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총장직을 결심했습니다. →총장직을 수행하시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요. -총장으로서 지내온 지난 시간은 무척 고단하고 어려웠지만 덕성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신하고 덕성을 향한 구성원의 애정과 열정을 느끼며 많은 보람과 더욱 막중한 사명감을 갖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밖에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개혁’이 현실적으로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통감했고 조그마한 변화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고민과 소통이 필요한지 절감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어떤 인재라고 생각하시나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특징은 미래가 ‘초미지(超味知)’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당장 10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죠. 때문에 큰 밑그림을 그려 교육해야 하는데 분명한 점 하나는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해방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존의 질서와 법칙은 언제나 깨질 수밖에 없으며 이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는 사고의 유연성, 개방성, 자율성, 능동성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과 남의 세계에 서로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와 국가라는 공통의 지붕으로 연결된 병립화(Pillarisation) 사고가 필수적입니다. 결론적으로 미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시대 상황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숲에서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숲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인재, 다방면에 고른 전문 기초지식을 갖추고 유연·병립적인 사고를 가진 인재를 육성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하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과 인재상은 총장님께서 추진하시는 교육 혁신과 맥이 닿아있다고 보여지는데요. -잘 보셨습니다. 4차 산업혁명뿐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춰 교육을 혁신해야 한다고 믿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인재상을 ‘바른 인성과 전문지식을 갖춘 DS-휴마트(Humart)형 인재’로 설정했으며 이 같은 인재상을 바탕으로 교육 혁신을 추진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교양교육 과정의 혁신입니다. 우리 대학은 2017학년도부터 교양교육 과정을 ‘휴마트’, ‘학문의 기초’, ‘학문의 융합’, ‘자기설계·개발’의 4대 핵심역량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개편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교양교육 과정은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인성교육과 ‘교양인 양성’에 주안점을 뒀습니다. 그러나 미래 사회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교양교육이 필요합니다. 인성교육 못지않게 타 전공에 대한 기본지식을 갖추지 못하면 격변하는 학문 분야의 부침에 부응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대학은 교양교육 과정의 패러다임을 바꿔 ‘전문 교양’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문과학 전공 학생도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등 각 전공 분야의 전공 교양을 필수로 들어 각 전공에 대한 기초지식을 두루 갖추도록 하는 것이죠. 다양한 기초 전문지식을 통해 융합과 통섭이 가능해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휴마트’는 총장님께서 취임 당시부터 강조하셨던 것인데 현재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저는 총장 취임 이후 시대 변화에 대비한 교육혁신의 일환으로 ‘DS-휴마트 교육’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교육은 인문학적 소양(Humanity)과 스마트 테크놀로지(Smart Technology)가 융합된 우리 대학만의 차별화된 교육으로 다 학문적 융합 역량과 더불어 학생들을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로 키우는 교육방법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 교육방법을 학교가 보증한다고 들었습니다만. -‘휴마트 교육인증’을 들으신 겁니다. 휴마트 교육인증은 재학기간 동안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잠재력을 함양할 수 있도록 휴마트, 감성, 체력, 취업·창업역량 등 4개 영역에서 학교가 추천한 교과목과 프로그램을 기준 이상 이수한 학생에게 기본인증과 우수인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를 통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융합적 정보기술 능력과 함께 인성을 겸비한 인재 양성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휴마트 교육인증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과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갖췄다는 우리 대학의 ‘보증서’로, 학생들의 진로와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2018학년도에 공과대학 신설이 계획돼있던데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5년 내에 사무 관리와 제조업 분야에서 7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이공계 분야는 200만개가 창출될 것으로 예견했습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인공지능, 나노기술, 바이오 등은 혁신적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대학 교육의 콘텐츠와 전공영역도 변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덕성은 미래 산업의 핵심 분야로 자리하게 될 정보통신과 바이오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공학 인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고자 2018학년도에 공과대학을 신설합니다. 신설 공과대학은 컴퓨터학과(45명), IT미디어공학과(45명), 바이오공학과(40명) 등 3개 학과로 이뤄져 총 130명의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우리 대학은 공과대학을 통해 창의성과 융합적 사고력을 갖춘 글로벌 여성 공학 인재를 육성하고 덕성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성 창업 교육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성공적인 취업은 물론 창업을 위한 지원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대학은 여성 창업 교육·지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여성을 중심으로 한 특화된 창업 교육과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2014년과 2016년에 서울지역에서 유일하게 창업진흥원의 ‘여성스마트창작터 주관기관’으로 선정되며 여성 창업 전진기지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여성스마트창작터가 무엇인지요. -여성스마트창작터는 사물인터넷, 앱·웹 콘텐츠, ICT융합 등 지식서비스 분야의 여성 친화적 창업 아이템을 가진 예비창업자 또는 3년 미만의 창업자에게 체험형 창업교육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지난해의 경우 우리 대학 여성스마트창작터에서 배출한 5개 창업팀 모두가 정부 사업화지원 대상에 선정됐고 창업에도 성공하는 등 많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덕성의 여성스마트창작터는 2014년과 2015년 사업운영 성과 평가에서 연속 ‘우수 스마트창작터’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창업 지원 교육에 대한 또 다른 사례가 있는지요. -우리 대학은 지난해 SK텔레콤·창업진흥원이 시행하는 ‘SK 청년 비상(飛上) 프로그램’ 운영 주관기관에도 선정됐습니다. 청년 비상 프로그램은 주관대학과 시행기관이 대학생에게 창업의 모든 과정을 종합적으로 지원해 창업을 활성화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에 따라 창업 인프라 구축, 창업교육 커리큘럼 개발·운영, 창업동아리 육성, 창업아이템 경진대회 등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규 교과목으로 체험형 창업 강좌를 개설해 다양한 분야의 창업에 대한 실질적 교육을 실시하고 창업 관련 특강, 특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학생들의 창업 마인드를 고취하고 성공 창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취임 당시 통일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은 아주 늦게 될 수도, 아니면 당장 내일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세계적인 전망입니다.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죠. 만약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이 된다면 남한과 북한 모두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 혹은 곧 오게 될 통일 시대를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대학은 학생들에게 통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고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인재들을 육성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통일의 중요성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통일의 중요성은 공감하지만 이해는 부족한 편이죠. 우리 대학은 (사)1090평화와통일운동과 손잡고 2016학년도 2학기부터 통일교육 강의인 ‘현대북한과 통일한국-이해와 상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통일과 북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고 비무장지대 방문 등 현장학습도 진행돼 학생들의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또한 통일부의 ‘2017학년도 2학기 옴니버스 특강’ 지원사업에도 선정됐습니다. 이 사업은 북한, 통일 등을 주제로 여러 강사가 돌아가며 강의를 하는 ‘옴니버스 특강’을 개설한 대학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최근 학교 앞에 경전철이 개통됐는데 교통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지난달 서울 1호 경전철인 ‘우이신설선’의 개통으로 접근성이 더욱 높아져 학생들의 통학이 한층 편리해졌습니다.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덕성여대)’ 역은 우리 대학 캠퍼스와 불과 270m, 도보 5분 이내 거리로 매우 가깝습니다. 경전철 개통으로 우리 대학과 서울 중심지를 더욱 쉽게 오갈 수 있고 재학생들의 통학도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앞으로의 총장님 행보가 기대됩니다. 끝으로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항상 취임 당시의 초심을 기억하며 남은 시간 동안도 우리 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제가 가진 모든 것,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노력하겠습니다. 덕성을 눈여겨 봐주십시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학력 1965 경기고등학교 1971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1981 독일 뮌스터대학교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 1986 독일 뮌스터대학교 철학부 서양미술사전공 ■주요 경력 1984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1998 (사)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초대 회장 2002 덕성여자대학교 FTB대학원장 2009 덕성여자대학교 예술대학장 2012 덕성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저서 먼나라 이웃나라(전 15권) 신의나라 인간나라(전 3권) 가로세로 세계사(전 3권)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전 2권)
  • [책꽂이]

    [책꽂이]

    알렉상드르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전경훈·김희주 옮김, 옥당 펴냄) 소설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1833년 펴낸 프랑스 역사서로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에서 샤를마뉴의 프랑크 제국까지 2000년 역사를 다룬다. 432쪽. 2만원. 천재에 대하여(대린 M 맥마흔 지음, 추선영 옮김, 시공사 펴냄) 신학과 역사, 철학, 미술사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천재와 천재성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한다. 560쪽. 2만 4000원. 지리산 아! 사람아(윤주옥 지음, 산지니 펴냄) 올해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50주년을 맞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의 윤주옥 실행위원장이 개발에 신음하는 국립공원을 살리기 위해 벌인 분투기를 담았다. 260쪽. 1만 5000원. 최후의 선비들(함규진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구한말 국권 침탈 등으로 광란과 미혹한 시대를 산 최익현, 김옥균, 유길준, 신채호 등 ‘최후의 선비’ 20명이 걸어간 길을 짚고 그들의 고뇌와 결단을 되새긴다. 368쪽. 1만 6000원. 실리콘밸리 스토리(황장석 지음, 어크로스 펴냄) 기자 출신 저자가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있는 실리콘밸리를 차고 창업, 스탠퍼드 대학, 너드와 투자가, 이민자 등 4가지 키워드로 조명한다. 304쪽. 1만 5000원. 대역 동의보감(허준 지음, 동의문헌연구실 옮김, 이남구 감수, 법인문화사 펴냄) 1993년부터 25년간 한의대 교수와 한의사 등 100여명의 전문학자가 참여하여 번역, 교정, 검증, 감수하여 완성한 동의보감 번역본이다. 2348쪽. 39만원.
  • 예술인 흔적 더듬는 종로

    예술인 흔적 더듬는 종로

    서울 종로구는 종로문화재단이 28일부터 4주간 매주 토요일마다 한옥문화공간인 상촌재에서 ‘박노수미술관 : 삶과 예술-서촌이 배출한 한국미술사의 거장들’ 강연을 한다고 26일 밝혔다.특강은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개관 4주년 기념전시인 ‘성하의 뜰’ 연계 프로그램으로 마련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이자, 서울산수연구소장인 이태호 교수가 진행한다. 서촌에 살았던 걸출한 예술인들에 대한 강의뿐만 아니라 예술인들의 흔적이 살아 있는 현장 답사도 함께 진행한다. 특강은 ‘겸재 정선-인왕의 장엄을 말하다’를 시작으로 ‘청전 이상범-우리수묵화의 전통을 다지다’, ‘천경자-우리 채색화의 전통을 다지다’, ‘남정 박노수-인왕산 아래서 푸른 세상을 꿈꾸다’ 등 순으로 4주간 진행된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겸재 집터, 이상범 화숙, 천경자 집터,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등을 현장 답사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강연료는 회당 1만원이다. 종로문화재단 홈페이지(www.jfac.or.kr)에서 접수한다. (02)2148-4171.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앞으로도 종로구의 풍부한 문화예술 자산을 적극 활용해 주민들에게 더 많은 문화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위대한 컬렉터를 만든 나눔과 베풀기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위대한 컬렉터를 만든 나눔과 베풀기

    요즘 부의 집중과 계층 간의 소득격차에 대한 염려가 가득하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부가 편중되면서 부의 재분배를 위한 많은 장치가 고안되고 담론들이 등장하지만, 문제 해결에 그리 유용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분배에 대해 말은 무성하지만 실제로 작동되는 대책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페기 구겐하임-예술중독자’는 미술품 수집을 통해 당대의 문화와 예술을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동시에 부를 재분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례를 잘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리사 이모르디노 브릴랜드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는 미술관과 컬렉션에 관한,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생생한 그의 인터뷰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이 담겼다. 또한 20세기 미술사를 장식하는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엮였다.페기 구겐하임(1898~1979)을 수식하는 말은 너무나 많다. ‘미술중독자’를 비롯해서 ‘모더니즘의 여왕’, ‘현대미술시장을 만든 사람’, ‘화가가 아님에도 미술사에 이름이 오른 사람’, ‘미술의 수도를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온 사람’ 등등. 미국의 유대인 출신 광산 부호인 구겐하임가의 아버지와 금융 부호인 셀리그먼가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페기는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을 세운 솔로몬의 조카딸이기도 하다. 그녀는 성인이 되던 1919년에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았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3억 4500만 달러(약 3900억원)에 달하는 큰돈이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음에도 페기는 전위적인 예술서점인 선와이즈 턴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흡수했다. 1920년 당시 미국인들의 로망이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많은 예술가와 친교를 쌓았다. 특히 그녀를 촬영한 사진가 만 레이, 콘스탄틴 브란쿠시, 마르셀 뒤샹 등과 가까이 지내면서 다다이즘과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에 경도됐다.24세가 되던 1922년 조각가인 로렌스 바일과 결혼해 아들 마이클과 딸 페긴을 두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폭력적이고 타고난 술꾼인 바일이 바람이 나면서 결국 6년 만에 이혼하고 만다. 그 후 페기는 작가이자 평론가인 존 홈스와 동거하며 그에게서 예술에 대한 통찰력을 배운다. 1938년 런던으로 건너가 구겐하임 죈이라는 상업화랑을 열고 본격적인 작품 컬렉션에 나선 페기는 당시 유럽 현대미술가들의 중요한 후원자이자 친구이며 동시에 연인으로 뜨겁게 살았다.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와 가까웠던 사뮈엘 베케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브란쿠시의 작품이 탐나 그와 결혼을 생각할 정도였다. 엄청난 적자에 1년 만에 화랑을 접고 파리로 간 그녀는 미술관을 열 계획을 하고, 아무도 그림에 관심 없던 전쟁통에 ‘1일 1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술관은 무산되고, 독일이 파리를 침공하자 유대인인 그녀는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애인이었던 막스 에른스트와 1940년 12월 돈을 써서 가까스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시인이자 초현실주의 미술 평론가이기도 했던 앙드레 브르통은 물론 많은 유럽 아티스트들의 미국 망명을 돕는다. 이들 망명 예술가들에 의해 뉴욕은 현대미술의 황금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뉴욕에 다시 자리잡은 페기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42년 금세기미술 화랑(Art of This Century Gallery)의 문을 열고 유럽에서 수집해 온 현대미술품들을 선보였다. 이곳은 뒤샹, 에른스트, 만 레이, 달리, 레제, 로베르토 마타, 자코메티, 이브 탕기 등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온 예술가들의 집합소였다. 동시에 미국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독자적인 미국 미술의 모더니즘을 태동시킨 장소이기도 하다. 로버트 마더웰, 한스 호프만, 윌렘 데 쿠닝, 마크 로스코, 클리퍼드 스틸, 알렉산더 칼더 등 소위 ‘뉴욕화파’라고 하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들이 개인전을 연 곳도 여기였다. 또 당시 무명작가였던 잭슨 폴록을 발굴, 지원해 ‘액션 페인팅’이 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미술을 찾는 컬렉터는 페기 외에는 없던 시절이라 화랑을 운영할수록 적자만 늘어났다. 1947년 페기는 화랑을 접고 뉴욕을 떠나 이탈리아 베니스로 향한다. 그리고 18세기 중반의 건축가 로렌초 보스체티가 설계한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를 매입해 1979년 사망할 때까지 30여년간을 이곳에서 살았다. 194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그녀의 컬렉션이 전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영국국립미술관 테이트, 뉴욕의 구겐하임 그리고 2차대전 당시 페기컬렉션의 보관을 거절했던 프랑스 루브르에서까지 전시를 열어 유명세를 떨쳤다. 페기의 죽음과 함께 컬렉션이 누구 손에 들어갈 것인가는 세계적인 관심거리였다. 테이트와 베니스시가 피 말리는 유치전을 벌였으나 결국 ‘페기컬렉션’은 1976년 자손들이 아닌 뉴욕의 솔로몬구겐하임 재단에 귀속됐다. ‘컬렉션은 바로 컬렉터 자신’임을 잘 알았던 페기가 컬렉션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저택은 페기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녀는 부유했지만, 행복한 삶을 누리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온 부성 결핍으로 아버지 같은 남자를 찾았지만, 그들은 모두 아버지가 아닌 아들 같은 남자뿐이었다. 다행이라면 그들이 모두 지적이었다는 것. 페기가 뛰어난 컬렉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안목과 감각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또한 유대인 태생으로 푼돈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었지만, 기부와 후원에는 누구보다 통이 컸다. 베니스 여행객들에게 필수 코스인 페기구겐하임 미술관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 부자의 나눔과 베풀기 그리고 예술에 대한 사랑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은 왜일까. 부자들 탓도 있지만, 외국에 비하면 턱없이 미미한 세제 혜택이나 기부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문득 나오시마의 기적을 이룬 후쿠다케의 경영 이념이자 행동철학인 ‘공익적 자본주의’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만 잘살면 뭐하는 겨?”
  • 시대가 감당하지 못한 위대한 여성화가…‘파울라’ 예고편

    시대가 감당하지 못한 위대한 여성화가…‘파울라’ 예고편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화가 ‘파울라’의 화려한 삶과 사랑을 그린 영화 ‘파울라’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파울라’는 여성 화가로서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발표,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 ‘파울라-모더존 베커’의 화려한 삶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공개된 예고편은 “파울라, 넌 예술가가 될 재능이 없어”라는 아버지의 말에 반기를 드는 그녀의 당찬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럼에도 당대 여성 화가에게 닿는 편견과 한계에 맞서 파울라는 오롯이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제69회 로카르노 영화제 최고 화제작으로 “선구자적 삶을 산 여성화가 파울라의 화려한 삶과 사랑을 그린 명작”(VARIETY), “한 폭의 그림 같은 영화”(SCREENDAILY), “화려하고 매혹적인 그리고 순수함을 담은 영화”(STAGEBUDDY) 등 극찬 세례를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거침없는 신예 카를라 주리는 여성화가에 대한 편견과 한계에 당당히 맞선 주인공 ‘파울라’를 자신만의 개성으로 소화해 눈길을 끈다. 여기에 ‘토니 에드만’,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제작진이 완성한 ‘파울라’의 감탄을 자아내는 영상미는 하반기 최고의 아트버스터 탄생을 예고한다. 11월 9일 개봉 예정이다. 15세 관람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 펴냄) 위대한 천재이자 과학의 대표적 아이콘인 아인슈타인의 인간적인 결함과 잘못된 결정을 조명한다. 367쪽. 2만원. 김영나의 서양미술사 100(김영나 지음, 효형출판 펴냄)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서양미술사에 관한 100가지 해설을 통해 유명 화가의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와 미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한다. 448쪽. 2만 4000원. 러시아 혁명사 강의(박노자 지음, 나무연필 펴냄) 올해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러시아 출신 한국사학자인 저자가 혁명 이후 소비에트를 이끌었던 레닌, 스탈린 등을 중심으로 혁명의 전후 맥락을 들려준다. 284쪽. 1만 6000원.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송민령 지음, 동아시아 펴냄) 뇌가 몸의 주인인지, 사랑은 화학작용인지, 자유의지는 존재하는지 등의 질문을 뇌과학의 최신 성과에 기반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376쪽. 1만 8000원.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하여(강대희 지음, 새로운사람들 펴냄) 암 예방과 역학 분야의 전문가인 강대희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법 등을 소개한다. 204쪽. 1만 5000원. 이승현의 창업책(이승현 지음, 생각의날개 펴냄) 500원짜리 꼬마김밥을 팔던 노점상에서 연매출 50억원의 사업가로 변신한 이승현 대표가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고 익힌 창업의 노하우가 담겼다. 252쪽. 1만 5800원.
  • 여자의 그림은 투쟁이다

    여자의 그림은 투쟁이다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프랜시스 보르젤로 지음/주은정 옮김/아트북스/368쪽/2만 5000원나를 드러내는 ‘셀피’로 뒤덮인 세상이다. 입술을 도드라지게 내밀고 얼굴이 최대한 갸름해 보이는 각을 요령 좋게 찾아낸 한 컷. 타인이나 풍경 대신 ‘나’를 내세운 이 ‘21세기형 자화상’에는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려는 기대와 만족함, 순간의 충동을 결빙하는 것 외에 다른 이야기는 형편없이 부재한다.‘나를 어떻게 보여 줄까.’ 이 간명하지만 간단치 않은 화두를 위해 시대의 요구와 갈등하며 치열하게 성찰한 이들이 있었다.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지난 400여년간 백인 남성 중심으로 쓰인 미술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여성 화가들이다. 이들은 ‘네잎클로버’처럼 드물 것 같지만 의외로 시대별로 풍부한 자화상을 그려 내며 ‘대상’에서 ‘주체’로 자신만의 특별한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책의 출발이 된 것은 미술사회사를 연구하는 저자의 서랍 속에 차곡차곡 모인 여성 화가들의 자화상 이미지들이었다. 저자에게 자화상은 ‘이것이 내가 믿는 바이다’라는, 화가의 생각을 밝히는 언어였다. 때문에 자화상 속 여성 화가들의 구도, 자세, 눈빛, 손짓, 소도구, 빛과 어둠의 배치 등을 면밀하게 살피는 동시에 그들의 삶까지도 폭넓게 들여다봤다. 그 결과 시대와 사회가 요구한 ‘전형’을 거부하고 자신의 진정한 얼굴을 탐색했던 이들 역시 미술사의 주인공들이자 치열하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던 예술가들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저자는 최근까지도 여성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았던 미술계에 여성 화가의 자화상을 하나의 독창적인 장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 대가들은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 대가를 모방하기 위해, 예술적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다. 르네상스 거장 티치아노의 초상화를 밑거름 삼아 평생 자화상에 매달렸던 렘브란트, 옥스퍼드대 명예 학위를 받고 학위 가운을 입은 모습을 초상화로 남긴 조슈아 레이놀즈가 그 예다. 하지만 여성 화가들은 자신이 ‘소수’이고 ‘주변’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가 남성 화가의 자화상과 다른 프레임과 편견에 싸여 관찰될 것이라는 것도 각오한 채였다. 여성 화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보여 주는 방식을 매번 새롭게 고안해 내야 했던 이유다. 여성에 대한 미술 교육, 직업으로서의 활동이 거의 가로막혔던 16·17세기엔 여성에게 조신함을 필두로 한 품격을 강요했다. 하지만 여성 화가들은 전통을 과감히 뚫고 나왔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고 팔을 의자에 걸친 채 보는 이에게 말을 거는 듯한 유디트 레이스터르의 자화상(1633년 작)은 절제를 미덕으로 했던 과거 여성 자화상들의 질서를 단숨에 부정한다. 남성 화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천재성’, ‘창조의 광기’를 헝클어진 머리와 비대칭의 구조 등으로 극적으로 표현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1630년대)은 남성 못지않은 활력과 독창성으로 당대의 기준에 균열을 낸다. 이들의 분투는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해진 20세기에 이르면 상상의 여력을 뛰어넘는 파격과 실험으로 이어진다. 여성 예술가들의 유쾌하면서도 전위적인 시도는 그간 화폭을 지배했던 성 역할의 경계를 간단히 무너뜨린다. 고통과 열정으로 뒤섞인 삶의 기록을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스타일로 구현했던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1944년 작), 거구의 나체에 낙서처럼 낙인을 찍어 미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 제니 새빌의 작품(낙인찍힌·1992년 작) 등이 대표적이다.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에선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는 편견을 지닌 이들에게 저자는 180여점의 도판을 증거로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여성의 자화상이 보여 주는 다양성은 여성은 뛰어난 모방가이기는 하지만 독창성은 없다는 오랜 믿음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당대의 지배적인 여성성의 개념에 부합해야 한다는 요구 속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고 신념을 밝히며 당대의 기준에 대한 이해를 보여 주는 빼어난 이미지를 찾는 데 이들은 용케 성공했다.’(299쪽)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미술은 공공의 것… 수집은 역사 보존”

    “미술은 공공의 것… 수집은 역사 보존”

     “100권의 책보다 1점의 미술 작품으로 더 많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공립미술관의 역할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수집해서 역사 기록으로 보존하고 후세에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못한다면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스위스 외교관 출신 사업가로,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인 울리 지그(71)는 지난 22일 서울 소격동 한 갤러리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좋은 컬렉터는 자신만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면서 “40년 전 중국 현대미술 수집을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 중요한 공립 미술관에 기증할 계획으로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했다”고 말했다. 주중 스위스 대사를 지낸 그는 대사 시절 수집한 2300여점 중 1500점을 홍콩 서주릉문화지구에 2019년 개관 예정인 복합문화공간 ‘M+(뮤지엄플러스)’ 미술관에 기증해 주목받았다. 그가 기증한 작품은 장페이리, 팡리준, 위에민준, 쩡판즈, 장샤오강, 장후안, 아이웨이웨이 등 중국 현대미술사를 태동기부터 최근까지 총망라하며 그 가치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중 80여점은 지난해 3월 홍콩 아트바젤 기간 중 ‘지그 컬렉션’이란 제목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한국국제미술제(KIAF) 기간에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코리아갤러리위켄드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지그는 “중국 작품 외에 역사적 리얼리즘 작품에 관심이 많다”면서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한국 작품들, 한국의 역사적 리얼리즘 작품과 북한 미술 작품도 몇 점 소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방대한 컬렉션의 수집 계기는.  -법학을 공부하고 저널리스트로 일했었다. 석유파동 이후 엘리베이터 제조회사인 쉰들러사에서 일하면서 1970년대 말부터 중국을 왕래했다. 중국과 외국기업이 합작한 첫 조인트벤처 회사의 아시아 담당자였다. 그러던 중 스위스 정부로부터 대사직을 제안 받아 중국, 몽골, 북한을 담당하는 외교관이 됐다.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에 중국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술품 1점이 100권의 책보다 더 많은 것을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열과 통제가 심했던 중국에서는 더욱 그랬다. 당시 아무도 중국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큐레이터도,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어서 혼자 공부하며 수집을 시작했다. 당시는 작품 가격도 아주 낮아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중국 현대미술의 태동기를 목격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M+ 기증을 후회하지는 않는지.  -공공미술관은 역사를 보존하고 보여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 현대미술 작품을 컬렉션하면서 언젠가 공공기관에 기증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어디에 할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나는 홍콩을 선택했다. 최근 상하이에 많은 사립미술관이 들어서고, 예술특구로 시에서도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검열이나 통제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 M+는 최적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컬렉션 기준과 규모는.  -미술은 돈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나는 돈 벌려고 수집하지는 않는다. 미술은 공공의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얼마나 되는지 보다는 얼마나 좋은 작품인지를 중시한다. 중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를 중심으로 400명 작가의 작품 2300점을 소장했다. 그밖에 개인 취향으로 몇 백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서보, 이세현, 함경아 등 한국 작가도 있다. 분단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을 반영하거나 상호 작용하는 한국 작품들에 관심이 있다. 요즘 관심이 높아지는 아프리카와 유럽, 인도 작품도 몇 점 있다.  →좋은 예술작품이란.  -시각예술은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좋은 작품이란 시각예술만의 특이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텍스트로 표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좋은 작품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좋은 예술 작품이다. 글·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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