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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신라「불상」 조선시대「회화」 등/문화재급 103점 전시·경매

    ◎다보성전시관,26일까지 명품전 개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과 조선시대 회화등 문화재급 고미술품을 대거 한자리에서 감상,구입할 수 있는 전시·경매의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다보성 고미술전시관이 지난 2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앞 다보성고미술전시관(581­5600)에서 마련하고 있는 다보성고미술명품전이 그것으로 오는 26일까지 명품전을 가진데 이어 27일부터 31일까지 경매전도 개최한다. 이 미술전시관이 그동안 수집,소장해오던 고미술품중 엄선해 내놓는 이번 전시는 금동여래입상과 금동관음보살입상 등 통일신라시대 불상 3점을 비롯해 국보급 청동7층탑 3층탑 5층탑 등 고려시대 철기류 20점,고려청자 주전자 주병 신라토기 조선조 백자등 도자기 50점과 분청류 30점등 보기드문 명품으로 구성된다. 이가운데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등 불상은 균형잡힌 조형과 얼굴표정 등 당시 종교적 의미를 잘 나타내는 것으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다.또 고려시대 청동3층탑과 7층탑,9층탑은 전래의 목조건축 전승양식을 이어주며 특히 탑 양식에서 보기드문 상륜부가 완전하게 남아있어 탑연구에 좋은 자료로 관측되고 있는 문화재다. 회화에 있어서도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 화첩과 작자미상의 관서팔경도화첩 등은 그동안 일반적으로 알려져온 조선시대 산수화와 차이를 보이는 화면구성법이 눈길을 끄는 것들이다. 다보성 고미술전시관은 명품전과 경매전을 끝낸뒤 11월1일 하오2시 그동안 이번 전시에 출품된 명품을 포함한 대규모 경매를 실시할 예정이다.
  • 젊은 날의 반 고흐/드뤼으 라 로셸(화제의 책)

    ◎외톨이 화가를 통해 본 「고독」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던 한 외톨이 화가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숙명적 고독을 그린 소설.「아터버리」「런던」「훼브르」「헤이그」등 4부로 이뤄진 이 소설은 끊임없는 내적 성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간 반 고흐를 모델로 삼고 있지만 미술사적 관점에서 고흐를 다루지는 않는다. 고흐에게 있어 예술은 그의 개인적인 운명과 동일한 것이었다.그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곧 그의 전 존재의 작열이자 불안 혹은 기쁨의 절규였다.자신의 운명적인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 정열의 포로가 된 인간.「…반 고흐」는 바로 이 천재예술가의 고독과 정열의 길을 따라 씌어진다. 젊은 날의 방황과 좌절을 거쳐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갈 천직을 찾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불투명한 자아와 익명성에 흔들리는 현대인에게 특히 단단한 중심이 되어줄만한 작품이다.민음사 이연행 옮김 6천5백원.
  • 태국 수코타이(세계 문화유산 순례:7)

    ◎「타이의 새벽」을 지키는 거대한 불상들/가는 신세·뚜렷한 곡선의 이목구비/불교미술사 큰획 「수코타이 양식」 본향/“태국의 세종대왕” 람캄헹왕 신격화/학업성취 소원비는 학생들 줄이어 어느 민족이든 뿌리를 처음 내린 땅에는 민족문화의 원형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태국 중북부지방의 역사유적지 수코타이가 그랬다.「타이(자유)의 새벽」이라는 수코타이의 뜻에서 알수 있듯이 태국민족의 주류인 샴족의 역사는 이곳에서 시작됐다.아울러 불교미술사에 굵은 획을 그은 「수코타이 양식」을 낳은 땅이기도 하다. 은 획을 그은 「수코타이 양식」을 낳은 땅이기도 하다. 수코타이유적은 역사공원으로 조성돼 있었다.그 중심부에는 옛날 수코타이왕국(1238∼1365년)의 왕성터가 자리잡았다.동서로 1.8㎞,남북 1.6㎞인 성벽 안에는 당시 건물 35채가 남아 있다. 먼저 「왓 마하탓」을 찾았다.앙코르 와트의 「와트」가 사원을 뜻하듯이 태국에서도 「왓」은 절이다.이 절을 본따 방콕의 왕궁사원을 세웠다고 하니,마하탓은 불교국인 이 나라에서 신앙의 고향인 셈이다.하지만 마하탓의 정경은 폐허나 다름없었다.곳곳에 남은 불상들은 좌상이건 입상이건 지붕도 벽도 없이,비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그밖에 보이는 체디(불탑)와 스투파(탑파)는 대부분 시커멓게 이끼를 뒤집어쓴 채 스러져 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마하탓의 불상들은 아름다웠다.양옆으로 늘어선 기둥사이 높은 벽돌토대 위에 앉은 거대한 부처상은 더욱 그러했다.머리에는 첨탑형 보관을 쓰고 귓불이 유난히 늘어진 부처님은 슬쩍 미소를 머금고 나그네를 내려다 본다. 이 불상을 비롯해 마하탓의 불상들은 「수코타이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수코타이왕국에서 발달한 이 형태는 석가모니 생전 모습대로 불상을 제작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전체적으로 얼굴과 신체는 가늘고 길게,이목구비는 강한 윤곽의 곡선으로 표현했다.자세는 두가지로 구분된다.좌상은 오른손을 땅쪽으로 내민 촉지인을 하고 반연화좌로 앉았다.입상은 한쪽발을 내닫고 오른손을 가슴 가까이 든 「걷는 부처」형상이다. 마하탓을 나서자 서쪽으로 연못이 보였다.은지란 예쁜 이름을 가진 이 연못 복판에는 작은 섬이 있고,거기에 사원터가 남았다.「왓 트라팡응엔」이 있던 곳이라지만 지금은 토대와 기둥만이 쓸쓸히 서 있을 뿐이다.오히려 수면을 뒤덮은 연꽃들,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크고 붉은 그 연꽃들은 차라리 요염해 보였다.이 연못은 람캄헹박물관 동쪽에 있는 금지와 한쌍을 이뤄 유적공원의 경관을 돋보이게 했다. 태국의 역사를 생각하며 발길을 람캄헹왕 기념비쪽으로 돌렸다.삼족은 10세기 무렵 중국 운남성 일대에서 이주해 왔다.당시는 앙코르를 세운 위대한 크메르제국이 이 지역을 통치하던 시대.그러나 크메르 세력이 약해지면서 13세기 초 태국 최초의 국가가 수코타이에 들어섰다. 람캄헹왕(1279∼98년 재위)은 수코타이왕국 제3대 왕으로,「태국의 세종대왕」이다.그는 크메르문자를 변용해 타이문자를 만드는 등 태국문화의 틀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몫을 했다.왕은 또 성문 밖에 종을 매달아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에게 치게 했고,그 사연은 직접 처리했다.우리식으로 말하면 신문고이다.백성을 사랑하는 명군의 마음씀씀이는 우리나라나 태국에서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람캄헹왕의 청동상 앞에 다다랐을 때 마침 그 앞에는 양산을 쓴 모녀가 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기도하고 있었다.15살쯤 됐을까,앳된 소녀는 뙤약볕 아래에서 연신 허리를 굽혔다.소녀는 아마 『공부를 잘하게 해 달라』고 빌었으리라.태국문화를 상징하는 위대한 왕은 신격화해 지금도 부처에 버금가는 신으로서 존경받는다.그는 특히 학업이나 문필의 성취를 이뤄준다고 소문나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왕의 기념비에는 『그가 다스릴 때 강에는 물고기가 그득했고,들에는 벼가 무르익었다』는 구절이 들어 있다.그만큼 태평성대였던 모양이다.동상의 발치 20여m쯤에는 옛 모습을 재현한 종루)를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다는 「왓 시춤」의 불상을 찾았다.폭 32m,높이 15m의 본당에 꽉 들어찬 이 불상은 「악마를 잡는 부처」로 알려져 있다.그래서인지 그 형상도 사뭇 기괴한 분위기를 풍긴다.얼굴은 마치 분장을 한 듯 명암 대비가 뚜렷하다.구미 관광객을 한떼 몰고 온 태국인 가이드는 『이 불상은 말하는 부처이며,사람들의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설명한다.관광객들은 무릎 위에 길게 놓인 오른손 손가락들을 쓰다듬으며,각자 소원을 빌고 있다. 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이끄는 불교사상,그리고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애쓴 람캄헹왕의 땅 수코타이는 이름 그대로 「타이의 새벽」을 연 곳이었다. ◎여행가이드/방콕서 국내선 격일체 운항/외진 곳 많아 단체관광 안전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북쪽으로 4백27㎞쯤 떨어진 수코타이시까지는 자동차로 8시간쯤 걸린다.따라서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시간절약을 위해 좋다.양쪽을 오가는 항공편은 매주 월·수·금·일요일에 한편씩 있다. 여행일정에 맞지 않는다면 수코타이시에서 60㎞쯤 되는 피사눌록시까지 비행기로 가고,거기서 육로로 수코타이시로 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방콕∼피사눌록간 항공편은 매일 네차례 있다.피사눌록도 고도로 유적이 많기 때문에 두곳을 모두 관광하는 계획을 짜봄직하다.항공료는 수코타이행 왕복이 2천3백40바트(7만6천원쯤),피사눌록행이 1천8백40바트(6만원쯤).태국의 화폐단위는 바트(Baht)로 1바트는 32.5원쯤 된다.방콕에서 피사눌록까지 가는 버스나 열차는 수시로 있다. 수코타이유적지는 수코타이시에서 서쪽으로 12㎞쯤 떨어져 있다.유적지에는 숙박시설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 시내에 자리잡는 게 낫다. 수코타이유적지는 외진 곳이 많고 강도사건이 가끔 발생하므로,한둘이 다니기보다는 호텔측이 제공하는 단체관광에 끼는 것이 바람직하다.
  • 「한국과 일본 방정식」/서울대교수 10명 「21C문화연구회」

    ◎21세기 ‘문화일류국가’가 되려면…/양국의 장인정신·종교·과료제 등 비교분석/「문화선진국」 도약위한 각 분야별 조건 점검 한국은 과연 문화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21세기 세계 일류국가가 되기 위한 문화적 조건은? 이웃나라 일본을 준거기준으로 삼아 우리나라의 문화선진국화 방안을 모색하는 문화시론(시논)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서울대 교수 10명이 모여 만든 문화연구모임 「21세기 문화연구회」가 최근 펴낸 「한국과 일본 방정식」(삼성경제연구소 간).특히 이 책은 문화·종교·미술·경제·지리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지만 학제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통일된 전망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이 책에서 지은이들은 「일류국가가 되기 위한 문화의 조건」을 각 분야별로 짚어간다. 한영우 교수(국사학과)는 5천년 역사를 통해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정신적 유산,즉 『법고창신(겁고창신)과 동도서기의 길을 따르면 일류국가가 된다』는 가르침에 주목한다.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하고,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자는 것.도쿠가와시대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장본인이 바로 임진왜란때 잡혀간 장인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한교수는 문화선진국의 제1조건으로 장인정신을 강조한다. 전통종교의 맥락에서 따진다면 일본엔 세계문화시장에 내놓을만한 뚜렷한 종교가 없다.하지만 일본종교는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해외진출에 성공적이다.이와 관련,정진홍 교수(종교학과)는 그 이유를 「미즈고」(수자,유산된 태아)를 제의대상으로 삼는 「미즈고공양」과 마츠시다,닛산,샤프사 등의 「회사공양탑」이라는 일본의 새로운 종교문화를 통해 분석한다. 한국과 일본 관료제의 역사와 특징도 소상하게 비교검토된다.하용출 교수(외교학과)는 한국과 일본 관료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의 경우,고도 경제성장 과정속에서도 관료의 조직적 일체성이 파괴되지 않았던 반면 우리는 그와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라고 밝힌다.하교수는 또 일본 관료제의 「아마쿠다리」관행에도 관심을 보인다.「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뜻을 지닌 「아마쿠다리」는 동기 캐리어조(사무관급 이상 직업관료집단) 가운데 한 사람이 사무차관이 되면 그 나머지는 모두 현직에서 물러나 산하단체나 공공법인,개인기업 등으로 진출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한국은 일본에 비해 군출신의 아마쿠다리가 현저하게 많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안휘준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미술사를 중심으로 일본과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화를 비교한다.안교수는 특히 한국문화의 특성을 슬픔과 눈물에 찌든 「애상의 미」「비애의 미」로 곡해한 일제 어용학자 야나기의 말을 인용하면서,아직도 우리의 의식 저변에는 이같은 식민주의 문화관의 찌꺼기가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교육문제도 비중있게 다뤄진다.고구려의 태학을 출발로 하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는 신용하 교수(사회학과)는 일본 동경대학의 「대학원중점화정책」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도 21세기 최선진국 도약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대학원대학」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밖에 권영민 교수(국문학과)는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는 1백년에 지나지않지만 초간본 작품집이나 시집 하나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라며 『우리 문학유산의 보존을 위한 문학박물관의 설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김종면 기자〉
  • 한국에 손짓하는 인더스문명 유적

    ◎파키스탄 문화재당국 발굴작업 참여 희망/학계 “우리학문 세계화위해 시도 해볼만” 인더스문명의 신비와 고대문화의 실체를 제대로 벗기지 못한 파키스탄은 한국과의 학술협력을 희망하고 있다.선사시대를 일찍 마감한 가운데 기원전 3000년께 인더스강유역에서 인류문명의 불을 지핀 땅 파키스탄은 고대 문화유적의 보고.파키스탄의 학계와 문화재관계당국은 문화유적 탐사를 위해 파키스탄을 방문한 한국학자들에게 고고학발굴 직접 참여 등을 골자로 한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제시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먼저 만난 파키스탄 원로 고고학자 아마드 하산 다니박사는 한국학계가 유적발굴을 원하면 기꺼히 주선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파키탄역사고고학회 회장이자 베나지르 부토총리의 고고학 고문이기도 한 그는 문화유적은 아류의 공동자산으로 발굴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파키스탄 국내 유적의 개방을 강조했다.유네스코(UNESCO)실크로드위원장 자격으로 한국학자들과 함께 실크로트 공동탐사에 나선 적도 있다. 한국이 발굴에 참여할만한 유적은 파키스탄 전역에 널리 분포돼 있다.도시 유적을 포함한 인더스강유역의 문명유적,간다라 불교유적,실크로드 유적 등 손을 대지 않은 유적들이 얼마든지 있다.인더스강유역에서 지금까지 확인한 도시유적은 약 4배여군데로,이 가운데 파키스탄 동남부 신드지방의 모헨근다로와 하라파유적 정도가 발굴되었을 뿐이다.그리고 서북부 펀잡지방 탁실과 간다라유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실스크유적은 그냥 방치된 상태다. 일본은 이미 1950년대에 파키스탄에서 독자적으로 유적을 발굴,상당한 학술적 성과를 거두었다.또 유네스코와 파키스탄 문화재관리국이 주관하는 모헨조다로와 간다라유적 발굴복원사업에도 투자하고 있다.모헨조다로 한 단위유적에만도 50만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최근에는 독일에서도 이들 유적발굴을 지원하는 등 세계가 차츰 파키스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문화체육부 산하의 문화재관리국은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벗어나 제1의 도시 카라치에 자리잡았다.박물관 관장업무를 비롯 문화유적 발굴 및 보존업무를 맡고있는 문화재관리국은 페샤와르와 라호르 같은 중요유적 분포지에 분소를 두었다.문화재관리국과 이들 지역분소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유적을 관리하면서 국제협력관계 업무도 전담하고 있다.유적발굴 및 보존에 따른 전문인력은 77명을 보유했지만,엄청난 유적에 비해 모자란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화재관리국 고고부 니아즈 랏술부장은 한국이 유적발굴 프로젝트 하나를 담당한다면 독자적 발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그것은 파키스탄 문화재관리국의 방향제시나 간섭이 없는 발굴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리고 동종동류의 유물이 2점 이상 출토되었을때는 1점을 한국에 영구임대하는 방법도 검토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이러한 협력은 지난 95년 5월 체결한 한·파키스탄문화교류협정에 근거를 들어 실현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파키스탄은 한국이 문화유적 보존과학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호소했다.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모헨조다로 도시유적발굴현장에서 만난 문화재관리국 엔지니어 모하날 오찬씨는 한국의 문화재보존과학팀의 모헨조다로 파견을 제의하고 나섰다.자연발생의 염분침식으로 유적이 훼손되는 현상을 막기위해 이같은 제의를 하게되었다는 그는 모헨조다로가 세계문화유산임을 누누히 이야기했다. 파키스탄이 그 많은 유적을 발굴,보존하기에는 힘에 겨운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문화국수주의에서 벗어나 인더스문명유적과 간다라 불교미술유적을 보편적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엿보였다.오늘의 파키스탄 현실을 다시 말하면 유적발굴경비 조달에 따른 재정의 한계성과 유적발굴 개방정책이 기묘하게 맞물려있는 것이다.그래서 한국이 진출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로 판단되었다. 이번 파키스탄 문화유적탐사에 참가한 한양대 배기동 교수(고고학)는 『우리 학계도 이제 시야를 세계로 넓힐 시기가 되었다』고 전제하면서 『세계문명의 발상지에서 고고학발굴은 국책차원이나 학술재단 투자형식을 빌려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특히 발굴성과를 집대성한 영문보고서 등을 통해 인류문명사와 고대문화사를 새로운 각도로 복원한다면,그 자체가 우리 학문의 세게화 내지 국제화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파키스탄 문화유적탐사는 이슬라마바드를 기점으로 탁실라(간다라 유적지)→시르캅(고대도시유적)→자울리만(고대불교대학유적)→폐샤와르(실크로드시대의 도시)→닥테바히(고대불교 수도원)→라호르(무글제국의 수도)→모헨조다로→카라치로 이어졌다.배기동 교수 이외에 고려대 권영필 교수(불교미술사),한양대 이희수 교수(인류학),가천박물관 학예연구실 윤열수 실장(불교미술)등의 학자와 서울신문 취재진이 동행했다.〈카라치(파키스탄)=황규호 특파원〉
  • 미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호암갤러리,16일부터 전시

    ◎근·현대 서양미술 걸작 한눈에/「복숭아 담긴 접시」서 「마법의 섬」까지/세잔·반 고흐 등 거장 47명 작품 망라 1879년 폴 세잔의 「정물­복숭아가 담긴 접시」에서부터 1965년 코르네유의 「마법의 섬』까지­. 19세기말부터 지난 60년대 중반까지 서양 근·현대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국내 미술애호가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이 오는 16일부터 10월3일까지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하는 「구겐하임 미술관 걸작전­세잔에서 폴록까지」전.이 재단이 미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관으로 꼽히는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소장작품을 대규모로 들여와 마련하는 흔치 않은 볼거리다. 한국,뉴질랜드,싱가포르를 연결하는 아시아 순회전의 첫 순서로 재단측이 5억원을 들여 유치한 이 서울전의 출품작은 대가 47명의 작품 58점(회화 54점,조각 4점).폴 세잔,빈센트 반 고흐,앙리 마티스,마르크 샤갈,파블로 피카소,피에 몬드리안,바실리 칸딘스키,잭슨 폴록,후안 미로등 세계 미술계의 큰 흐름을 주도했던 대가들이 망라돼있다. 뉴욕 5번가에 자리하고 있는 구겐하임미술관은 철강계의 거물이었던 솔로몬 R 구겐하임이 설립한 명소.1920년대 독일 귀족출신의 화가 지망생 힐라 리베이의 영향을 받은 구겐하임은 유럽및 미국의 비구상회화를 집중적으로 수집,1937년 미술관 건립을 위한 재단을 창립하고 2년후인 1939년 뉴욕의 이스트 54번가에 비구상미술관을 개관했다.구겐하임은 미술관을 확장하기 위해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새 미술관의 설계를 의뢰하기도 했으나 준공을 보지 못했고 그의 사후 10년후인 지난 59년 새 미술관이 마침내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재단측이 창립자의 유지를 기려 이름을 솔로몬 R 구겐하임으로 정한 이 미술관은 큰 달팽이 모양과 계단없는 나선형구조가 독특해 개관 직후부터 뉴욕의 새 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번 전시에는 이가운데 폴 세잔의 「정물 복숭아가 담긴 접시」와 빈센트 반 고흐의 「눈내린 풍경」등 전통적인 전근대 회화의 출발을 알리는 회화 2점을 비롯해 피카소의 「세레의 풍경」,그리고 1909년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다양한 입체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들로네,그리,레제도 포함돼있다.〈김성호 기자〉
  • 서남해역/고려청자 보고로 부상

    ◎지난달 전남 도리포 앞바다서 1백여점 도 인양/완도 어두리·보령 죽도동 180곳서 인양 신고/가마터 전남북 집중… 수송선 침몰 추정 고려시대의 청자가 전남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 앞 바다에서 대량으로 인양되어 서남해역이 청자의 보고로 떠올랐다(서울신문 지난달 29일자 21면 보도). 서남해안에서 청자가 산발적으로 고기잡이 그물에 걸려 올라와 신고된 해역은 모두 1백80군데.도리포 앞바다도 그 가운데 하나로 지난해 10월 이후 지금까지 5백92점의 유물이 인양되었다. 서남해안에서 고려청자가 본격적으로 인양된 해역은 모두 3군데.도리포 말고도 전남 완도군 어두리 앞바다와 충남 보령시 죽도 앞바다가 있다.완도군 어두리 앞바다에서는 지난 83년과 84년에 걸쳐 자그마치 3만6백72점의 청자를 건져 올렸다.그리고 보령시 죽도 앞바다에서는 40여점의 유물이 인양되었으나 서기 1329년에 해당하는 「기사」라는 글씨가 보여 제작연대를 밝혀주었다. 서남해안에서 많은 청자가 인양되는 까닭은 당시 청자가마와 깊은 연관이 있다.전남의 강진,해남,영광,함평과 전북의 고창,부안 등지에 가마가 집중됐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이들 가마에서 구워낸 청자를 해상 수송하는 도중에 배가 침몰하면서 수장된 것이다.완도군 어두리 앞바다에서 인양한 대량의 청자유물은 11세기 후반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서 구워내어 이웃 마량포에서 배에 싣고가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번에 문화재관리국이 도리포 앞바다에서 건진 유물은 보령,죽도 앞바다의 유물과 비슷한 시기인 14세기 전반에 강진 사당리 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보고있다.이들 두 해역의 인양유물은 청자가 쇠퇴하는 시기의 것이다.이에따라 전성기에 무척 밝았던 유약의 비색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공통점을 지녔다.그 이유는 무신란 이후의 사회상과도 무관치 않다는 학설도 있다. 이번에 도리포 앞바다에서 건진 청자의 봉황과 용무늬는 이들 그릇이 왕실용이라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서해를 거쳐 예성강을 따라 고려의 왕실이 있는 개경에 닿기 전에 불행하게 사고를 당한 것이다.원광대 박물관장 윤용이 교수(도자미술사)는 『도리포 앞바다의 청자는 흩어진 채로 여기저기서 발견되어 단순한 해상사고라기 보다는 14세기 서남해안에서 극성을 부렸던 왜구의 노략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든 서남해안 지역의 물산을 고려의 도읍지로 올기는 데는 전적으로 해로에 의존했다.청자가 서남해안 1백80군데 해역에서 발견된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그래서 서남해안에서는 더 많은 청자인양이 기대되는 해저유물의 보고로 각광을 받고있다.
  • 국빈 나들이(외언내언)

    30여년전 프랑스의 작가이자 문화상이던 앙드레 말로가 일본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일본열도가 침몰한다면 나는 한점의 미술품을 가지고 나가겠다.그것은 호류지(겁강사)의 백제관음보살상이다』 목조로 된 이 백제관음은 천의자락 휘날리는 부드러운 몸매와 은은한 미소로 세계최고의 걸작조각품으로 꼽힌다.1천3백년전 백제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조각품이다. 국내에는 가부좌를 틀고 오른쪽 손으로 턱을 고인 특이한 자세의 대형 불상이 둘 있다.국보 83호와 78호로 지정된 백제시대 금동반가사유상이다.그런데 똑같은 반가사유상이 일본 고류지(광강사)에 전해지고 있다.재질이 나무라는 점이 다를 뿐 신비하고 고졸한 천년의 미소는 너무도 똑같다.동일인의 작품이 아닌가 느껴질 정도다. 백제의 금동반가사유상은 불상으로나 조각으로나 세계최고의 걸작품이다.7세기 한반도 서안에 자리잡았던 작은나라 백제가 어떻게 이렇듯 최고수준의 예술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다.『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미술을 연결하는 고리다.그리고 서기 6백년경 조선의 미술은 찬연한 융성의 자리에 도달하였고 분명히 두 경쟁자인 중국과 일본을 능가했다』 이것은 동양미술사를 전공한 미국 페놀로사 교수가 1920년 그의 저서에서 밝힌 탁견이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1912년 당시 이왕가박물관에서 일본인 도굴꾼에게 거금 2천6백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도굴품이라 출토지가 불명으로 돼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경주근처에서 출토됐다고 하고 충청도 벽촌에서 수습했다는 설도 있다. 이 반가사유상이 애틀란타올림픽 문화예술행사에 선보이기 위해 6월에 나들이를 떠난다.79년 한국미술 5천년전에 이어 두번째.이 불상에 걸린 보험금은 5천만달러(4백억원)나 된다. 79년 나들이때 반가사유상 등 국보 46점을 포함,3백54점의 보험금이 1백20억원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상승이다.우리 문화재가 해외에서 가치와 평가를 제대로 받게 된 것이다.〈반영환 논설고문〉
  • 간송 미술관/개관 25돌 특별전

    ◎국보 135호 등 진경시대 걸작품 망라/회화·조선최고 도자기 등 130점 전시 조선후기 문화의 절정기로 불리는 「진경시대」의 미술품을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민간 고미술 전문미술관인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개관 25주년을 맞아 마련한 「진경시대전」.6월2일까지,762­0442. 진경시대는 숙종조로부터 정조때까지 1백25년간 조선고유의 색을 찾아낸 시기로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표암 강세황,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등의 거장을 낳았다.이번 전시는 간송측이 이 대가들의 작품경향에 따라 우리 산하의 실경과 함께 그 산하에 어린 정신까지 담아내겠다는 뜻으로 소장품 가운데 진경시대의 것 모두를 내놓은 흔치 않은 자리.회화와 도자기 1백30점이 눈길을 끈다. 이 진경시대 작품은 미술관을 탄생시킨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때 미술경매장 등에서 사들였다.전선생은 휘문고보와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한 후 일제하에서 민족문화전통의 단절을 막기 위해 민족문화재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고 미술사연구의 요람을 세운다는 각오로 보화각을 세웠으며 이 보화각이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됐다.이번에 나온 미술품은 각고 끝에 모은 것으로 국보 제135호인 신윤복의 「전신첩」과 31세때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열린 경매에서 힘겹게 구입한 보물 제241호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란국초충문병」등 30점이상이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전신첩은 초상화 30폭을 묶은 것으로 산수풍경과 주변배경에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다.조선후기 풍속화 개척자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으며 「청화백자…」는 조선 최고의 자기로 평가되기도 한다. 전영우 관장은 『조선 진경시대 문화는 당시 세계 최고수준급으로 손색이 없다』면서 『이번 전시는 조선왕조의 업적을 고의로 폄하해 식민통치를 합리화시키려 한 일제 식민사관 불식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김성호 기자〉
  • 후소회 창립 60돌 기념전/25일까지 예술의 전당서

    근대 한국화단의 거봉 이당 김은호 화백의 맥을 이은 한국화단체 후소회(회장 김기창)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념전을 마련했다. 17일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개막된 「후소회의 조망과 그 미래전」.창립회원과 작고·전·현회원을 비롯,후소회공모전 수상작가와 초대작가 작품 1백13점이 출품돼 근·현대 한국미술사의 궤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자리가 되고있다.25일까지. 출품작은 이당의 70년작 「황후대례복」(호암미술관 소장)과 김기창의 35년 선전입선작 「가을」(국립현대미술관 〃),이유태의 「포도도」(36년작,본인소장),장우성의 「노묘」(68년작,본인소장)등 거장들의 주요작품이 망라됐다. 지난 36년 1월18일 이당의 사랑방이자 후진양성소였던 서울 종로구의 낙청헌에서 발족된 후소회는 가장 오랜 역사의 한국화단체.이당의 제자 김기창·장우성·한유동·이유태·장운봉·정홍거·조중현등이 주축이 돼 결성됐다.위당 정인보 선생이 지어준 명칭 후소회는 논어에 있는 「후소회사」에서 따온 것.『깨끗한(인격)후에 그림을 그린다』는 뜻을 담고있다.
  • 「아름다운 우리도자기」 펴낸 원광대 윤용이 교수(저자와의 대화)

    ◎“도자기는 각 시대의 삶 담긴 문화체” 『도자기는 단순한 골동품이 아니라 각 시대 삶의 흔적이고 역사와 사상,종교까지를 듬뿍 담고있는 문화체 그 자체입니다』 신석기시대부터 요즘까지 8천년에 걸친 우리 도자기의 모든 것을 일반인들이 알기쉽도록 해박한 지식과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풀어낸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학고재간)의 저자 원광대 윤용이 교수(50·문화재위원·원광대 박물관장).그는 『지난 20년간 도자기 연구에 몰두하면서 일반인들이 도자기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골동품,혹은 값비싼 고미술품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을 안타깝게 느껴왔다』고 털어놓았다. 성균관대 사학과 재학중 미술사학자 고유섭(고유섭·1905∼1944) 선생의 「고려청자」를 읽고 짧지만 감동적인 글에서 도자기를 단순한 기물로 보지않게 됐다는 윤교수는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도자사를 전공,그 인연으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도 지냈다.지난 83년 원광대 교수로 부임,강의를 해오다 올해부터는 박물관장직도 맡고 있는데 「아름다운…」는 그동안 대학과 박물관강좌,문화재보호재단 문화강좌,동방예술연구회등에서 10여년 넘게 강의한 도자기 관련 내용을 다듬어 엮어낸 것이다. 『박물관 학예관 시절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국보·보물급 도자기들을 직접 만질때 행복감을 느꼈다』는 윤교수는 도자기를 이해하기 위해 가마에서 도자기 굽는 과정을 며칠밤을 뜬 눈으로 지켜보기도 했다.그는 특히 『도자기 연구에 있어서 가마터 조사는 인류학자들이 원주민을 조사하는 것과 같다』면서 『현재까지 발견된 가마터 1천2백개중 9백개를 내 집 드나들듯 다녔다』고 귀띔한다. 도자기에 대한 변함없는 집념으로 그가 남긴 도자기 관련 저서만도 「한국 도자사연구」를 비롯해 「일본속의 한국문화재」「고창 용계리 청자가마터 보고서」「미국속의 한국문화재」등 4∼5권.윤교수는 그러나 자신의 이 책들뿐만 아니라 다른 도자기 연구서들이 전문성이 강해 도자기와 친해지고 싶은 일반인들에겐 사실상 별 도움이 되지않았다고 「아름다운…」의 발간배경을 설명했다. 「아름다운…」는 「고려청자의 세계」「조선분청자의 세계」「조선백자의 세계」등 총론 3편과 「토기 도기 사기 자기」「고려청자의 기원」「상감청자의 비밀」 등 각론 30편 및 질그릇에 관한 보론등으로 구성돼 우리 도자의 연원과 특징을 강의하듯 차근차근 설명하는 흐름. 윤교수는 이 책에서 도자기에 관한 여러가지 사실을 새롭게 지적한다.청자의 색깔은 원래 녹색으로 고려 문인 이규보 (1168∼1241)의 문집에서도 「녹자」라는 표현을 썼다든가 또는 「자기」라는 표현은 일본식으로,요즘도 흔히 쓰지만 원래는 「자기」로 써야 한다는 것등이 그것이다. 중국 도자기를 「화려한 연극배우」,일본 것을 「잘 차려입은 기생」,우리 도자기를 「수수한 가정부인」으로 비교해 표현하는 윤교수,그는 이렇게 말한다.『도자기를 이해하는 것은 음악을 듣는 귀가 열려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아는 만큼 이해하는 것이지요.다양한 체험을 하다보면 그 세계가 보이고 기쁨을 느끼듯 이런 기쁨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도자기는 우리 문화유산 이해차원에서 절실한 체험이니까요』〈김성호 기자〉
  •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를 찾아서(인터넷으로 떠나는 세계여행:2)

    레오나르도 다빈치,렘브란트,밀레,르누아루,고흐,피카소,클레…. 이 기라성 같은 거장들의 작품들을 감상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할 필요는 없다.책상위에서 인터넷 서비스만 받는다면 일반인들로서는 해설을 곁들여가며 박물관 여기 저기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무리가 없다. 이곳의 인터넷 홈 페이지(Home Page)주소는 http://www.cnam.fr/wm/paint/이다.프랑스에서 직접 전송받는 데이터는 지구 반대편이므로 거리도 멀고,전송되어 오는 방식도 인공위성을 이용해야 하므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수 없다.그래서 아시아의 한국·일본·싱가포르 지역에서는 주옥 같은 이 미술 작품들의 디지털 데이터를 제공한다.한국과학기술원의 http://cair-archive.kaist.ac.kr/wm/paint/,일본 동경과학대학교의 http://sunsite.sut.ac.jp/wm/paint/,그리고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http://sunsite.nus.sg/wm/paint가 그 홈페이지들이다.디지털 기술의 장점 덕분에 KAIST 컴퓨터 안에 있는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실제 파리 루브르 컴퓨터안의 모나리자 데이터는 전혀 다르지 않다. 시대별,작품 성향별,주제별로 잘 정리되어 있는 초기화면은 중세 고딕 양식 시대의 화가들 작품부터 르네상스,바르크,시민혁명과 왕정 복고 시대,인상파를 거쳐 20세기 야수파,표현주의 추상파,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원하는 작가의 작품만을 고르고 싶다면 작가 색인(Artist Index)을 선택하여 약1백60여명의 화가들 중 원하는 화가를 선택하여 감상할 수도 있다.용어해설(Glossary)을 선택한다면 각 미술사적 조류별로 분류된 작품들의 설명을 읽을 수 있다.이처럼 화가별·조류별·시대별로 작품을 감상하고 이를 비교하여 볼 수 있는 미술여행은 인터넷이 제공하는 혜택중에 가장 멋진 것일 것이다. 유명한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소와 라파엘로의 막달레나의 미소를 한꺼번에 비교해 보는 것도,원한다면 몇번의 간단한 조작만으로 가능하다.세계적인 거부이자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인 빌 게이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가장 존경하였다 한다.다빈치만을 위한 홈페이지는 http://www.leonardo.net/museum/main.html이다. 책상 위에서 떠나는 세계여행,미술을 잘 모르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해보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 선각자 송석하(외언내언)

    1946년 4월25일 서울 남산기슭의 일제 총독관저 잘에 「한국민족박물관」이 개관되었다.해방 직후의 혼란기에 아직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 미군정하에서 생소한 이름의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이다.민족문화를 되찾겠다는 목소리가 높기는 했지만 값나가는 골동품도 아닌,잡동사니 같은 민속자료들을 전시했다는건 대단한 파격이었다.청사를 얻고 자신이 수집한 민속품을 중심으로 전시장을 만든 선각자는 당시 44세의 석남 송석하. 그는 우리 민족학연구의 개착자로 일제때 최초로 전국을 답사하며 민족조사와 유물수집을 해온 민족학자.조선민족학회를 창립,회지를 발간했으며 이병도와 함께 진단학회를 창립하는등 민족문화연구에 선구적 업적을 남긴다.1930년 스웨덴의 조류학자 베르그만이 백두산 동물생태조사를 위해 내한했을때 황해도 사리원으로 데리고 가 봉산탈출을 무비카메라로 촬영케 한 것은 유명한 일.그의 노력으로 봉산탈춤이 세계에 소개되었고 그 필림은 원형을 전승시킨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석남이 48년에 타계하자 주인을 잃은 민족박물관은국립박물관에 흡수되고 6·25동란중에 흐지부지 종적을 감추었다.한 사람의 열정과 집념이 지탱해주었던 민족박물관이다.그 뒤 민속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접부직제에 부활된 것은 1975년. 민속박물관은 고고·미술사 박물관과 달리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전시장.그래서 민족의 기층문화로 불린다.한민족의 전통성·정체성이 가장 잘 표출되는 곳이다.조상들이 살아온 숨결과 체온이 거기 담겨 있기 때문. 송석하가 민족박물관을 개관한지 꼭 50년이 된다.이를 기념하여 국립민속박물관은 전시회·특별공연·학술발표회등을 열고 있는중이다.50년전 선각자의 업적을 기려 정부는 석남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다는 소식이다.민족박물관의 남산옛터에는 안기부가 옮겨간뒤 양반마을로 조성되고 있는중이다.또 하나의 미니 민속마을로 맥락을 잇게 된 것이다. 민속학연구에 끼친 그의 업적이 큼에도 그를 기념하는 상 하나 제정되지 않은것은 아쉬운 일이다.
  • 박물관 안내 자원봉사자/현장학습 선생님 역할 톡톡히

    ◎특활시간 이용 견학온 초중고생애 산교육/한국박물관회 특별교육 수료한 정예요원/7∼8명씩 인솔… 유물·고대사 등 상세히 설명 박물관 전시안내를 자원봉사하는 박물관 전문교사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게 들리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학생이나 관람객들에겐 낯설지 않은 선생님들이다.잠시 활동을 중단했던 이 박물관 전문교사들이 오는 9월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빠질 전망이다.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회(회장 김성진 전 문공부장관)측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중학생들의 특별활동(이하 특활)시간을 이용해 박물관을 견학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학교가 벌써 6개교나 되고있다.특활시간을 이용한 학생들의 박물관 견학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조선총독부 철거관계로 상반기엔 중단됐지만 특활로 박물관을 찾은 학생들이 94년 1천명에서 지난해엔 2천2백명으로 늘어난 추세다.이 학생들에게 박물관 구석구석을 상세히 소개하는 이들이 바로 전문교사들인데 전문교사 1인당 학생 7∼8명씩을 인솔하며 전시유물을 설명해줘 현장학습 선생님 노릇을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 전문교사는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회가 지난 77년부터 실시해오고 있는 연간 특설강좌(박물관대학)의 수료생들중 스터디그룹 활동을 5년이상 한 1백50명이 맡고 있다.박물관대학은 고고학,미술사,민속학,역사 등을 대학강의 수준으로 하고 있는데 지난 77년 처음 개설된 이래 지금까지 수료자가 7천명에 이르고 있다.이들중 기별로 50∼1백명씩 8개팀 6백명이 스터디그룹을 하고 있는데 전문교사는 이가운데서도 특별교육을 다시 받은 정예요원들로 박물관 안내에 있어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게 박물관회측의 설명이다. 이 전문교사제는 원래 10년전부터 박물관대학 수료생들이 어린이들에게 전시실 교육을 해온 것에서부터 시작돼 지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때 크게 빛났고 지난 94년 9월부터 체계적으로 실시하게 된 것이다. 한국박물관회 신병찬 사무국장은 『박물관의 전문인력이 부족한 실정에서 이 전문교사들은 큰 보탬이 되고 있다』면서 『지난 8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민속박물관 자리에서 현위치로 옮겨올때 도자기 파편 등 유물정리 작업을 지원했듯 현 박물관이 조선왕궁역사박물관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활시간 박물관 현장학습을 원하는 학교측은 사전에 한국박물관회(730­7093)로 신청하면 박물관회측이 정해진 시간대에 박물관 전문교사와 학생들의 팀을 구성해 현장교육을 받도록 해준다.〈김성호 기자〉
  • 97년 광주비엔날레 조직위 구성

    오는 97년9월 광주광역시에서 개최될 제2회 광주비엔날레를 조직하고 이끌어 갈 전시자문위원과 조직위원회가 구성됐다. 광주광역시는 13일 광주비엔날레 제7차 재단이사회를 열고 제2회 대회 조직위원회 30명과 25명의 전시자문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조직위원과 전시자문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조직위원 유준상(위원장·미술평론가)김영순(””)김영재(””)김윤수(””)김홍희(””)유재길(””)유홍준(””)윤범모(””)이영철(””)이일(””)최민(””)강연균(서양화가)김종일(””)박상섭(””)오승윤(””)윤명로(””)이두식(””)황영성(””)이종상(한국화가)임병성(””)김행신(조각가)정윤태(””)김용태(문화기획가)김우창(영문학자)박영택(큐레이터)박정기(””)송재구(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이태호(미술사학자)한만섭(예총광주지회장)시의원 1명은 미정. 전시자문위원 강봉규(전 예총광주시지회장)국중효(목포대교수)김재형(호남대미술대학장)김정헌(서양화가)김종수(””)박석규(””)배동환(””)양영남(””)양인옥(””)임병규(””)정승주(””)조규일(””)최재창(””)김형수(한국화가)문장호(””)박행보(””)윤애근(””)이창주(””)김지하(시인)성완경(미술평론가)이규일(””)원동석(””)조태일(광주대예술대학장)최영훈(조선대미대학장)윤장현(광주YMCA 시정기지단 회장)
  • 오세창 선생 서예특별전/전서 등 3백여점 한자리에

    ◎사후 40여년만에 전시회/3·1운동 민족대표… 격동기 “정신적 지도자”/저술·독립선언서 원본·전각실인 등 포함 한국 근대서예사의 거두이자 근대전각의 아버지,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의 1인이며 광복후 서울신문 초대사장을 지낸 우리나라 근세격동기의 정신적 지도자. 한두 줄로 압축하기엔 너무나 뛰어난 업적과 예술적 위상으로 시대를 풍미한 위창 오세창 선생. 서울신문사와 예술의 전당은 12일부터 4월7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그의 서예특별전을 마련한다. 이 전시에는 뜨거운 민족애와 예술혼을 불태우며 이 땅의 개화기에서부터 일제강점기,6·25등 격동기를 고고히 살다간 그의 삶을 투영한 서예등 명편 3백여점이 출품된다.유족과 개인소장자는 물론 공공미술관이나 도서관등에서 출품,사후 40여년만에 빛을 보는 전시작은 서예 70점을 포함한 저술원본과 감식관련자료 1백18점,전각분야의 실인 2백40여점,「근역서화징」원본등 10여점,독립운동선언서원본,제·발문 대표자료 20점,유품 10점,청조문인간독첩 7책등. 전서의금자탑을 이룬 그의 서예와 독보적 경지를 이룬 전각작품은 조형의 현란함보다 표정 없는 묵직한 필획구사로 걸출한 예술성을 드러낸다.독자적 상형문자의 의미구성으로 그의 깊은 정신적 기저를 간파할 수 있게하는 대표작들이 전시장을 무게 있게 채움과 동시에 미술사연구의 결정서인 「근역서화징」이 의미를 더해준다.우리나라 역대서화가 1천1백17명의 사적과 평전을 편년체로 엮은 이 저서는 위창 이후에 없는 서화사의 귀한 필독서다. 1864년 개화선각자이자 금석문의 대가인 오경석의 장남으로 서울 중인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8대에 걸친 역관가문의 환경에서 일찍이 한학을 접하며 16세에 역과에 합격했다. 그후 박문국 주사를 역임하며 언론과 인연을 맺어 한성주보 기자를 거쳐 만세보와 대한민보사장,광복후 서울신문 초대사장을 지내며 국민계몽활동에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민족지도자로서의 면모 또한 굳건해 일제식민통치에 항거하다 33인중의 1인으로 3년의 옥고를 치렀으며 항일정신은 광복까지 계속됐다. 「근대전각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독보적 경지를 이룬 그가 작품활동에 몰입한 것은 서화사의 격동기인 1920년대이후.청·장년기를 사회활동으로 놓쳤으나 가문에서 전해오는 방대한 양의 고서화정리와 함께 금석문탁본,전각의 무서운 수련을 통해 60대이후 서예에 일가를 이루게 된다. 당대최고의 서화수집가이며 엄정한 품평가로도 실력을 발휘한 위창은 지난 53년 피난지인 대구에서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 위창 오세창전(외언내언)

    3·1운동 33인의 한 분이며 언론계의 선구자이고 서예와 전각의 독보적 대가였으며 금석문·미술사학자로서 탁월한 안목을 지녔던 분­바로 위창 오세창 선생이다.르네상스시대에는 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아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불렀다.화가·조각가·과학자·해부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이 그 예가 된다. 독립운동가로서 「3·1선언」에 민족대표로 참여했다가 3년의 옥고를 치른 것만으로도 그의 자취는 우뚝하다.33인 중 상당수가 3·1운동 뒤 변절,친일파가 됐던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언론인으로서의 오세창은 1886년 박문국에 들어가 한성주보의 기자를 했으니 근대신문 최초기의 기자라고 할 수 있겠다. 언론을 통한 구국활동에 힘을 쏟은 그는 초창기 만세보·대한민보 사장을 지냈으며 광복후 1945년 11월22일에는 81세 고령에 창간된 서울신문의 초대 사장으로 추대됐을 정도.언론계를 떠난지 반세기만에 「해방조선의 대변지」인 서울신문 창간 사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독립운동가로,언론인으로 너무도 우뚝했던 탓에 예술가로서의 오세창은 일반에게 그리 알려지진 않았다.일찍 서구문명과 학문에 눈떴던 그는 서화에도 뛰어난 감식안을 가지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우리나라 역대 서화가 1천1백17명의 사적과 평전을 집대성한 역저 「근역서화징」을 펴냈다.해박한 지식과 고증을 바탕으로 한 이 저서는 우리 미술사 연구의 시원을 이룬다. 전서와 전각으로 일가를 이루었던 위창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시회가 오늘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다(4월7일까지).서예작품 1백20여점 외에 전각도장 2백40점과 감식자료 30여점 등이 전시돼 그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부친 오경석이 중국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주고받은 서간과 위창 자신의 서신들도 함께 전시돼 당시 지식인들의 생활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그의 예술적 노작들은 해방 이전 일제하의 질곡밑에서 이루어졌다.식민지 치하에서 그의 예술혼이 더욱 치열했음을 알게 한다.
  • 「초·중등 필수과목 국사 제외」 논란/교개위에 관련학회 강력반발

    ◎사학회­“사회교과로 편입은 신한국 창조 역행”/교개위­“국정지표 세계화… 특정 교과 이기주의” 한국사연구회·한국고고학회 등 한국사관련 14개 학회및 단체는 7일 최근 교육개혁위원회가 마련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개혁방안에서 국사과목이 필수과목에서 제외된 것에 반발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교육개혁위원회가 국사를 독립된 필수 교과목에서 통합사회교과의 일부로 다루기로 결정한 것은 신한국 창조의 주역이 될 국민을 양성하는데 역행하는 조치』라면서 『국사를 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꾸는 것은 민족혼을 쓰러트리는 행위이며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정책과 상반되는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남북한의 역사 연구가 갈수록 이질화 경향을 보이는 시점에서 고교에서조차 역사를 외면함은 인접 국가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정신적 패배를 자초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세계화 추진과정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국사교육을 강화할 것과 ▲민족통일을 위한 밑거름인 국사연구의 객관성유지와 보급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국사교과 독립 및 충실한 교육방안 강구를 촉구했다. 이날 성명에는 한국고고학회·한국사연구회·역사학회·역사교육학회·한국사학회·진단학회·한국미술사학회·한국고문서학회·한국경제사학회·한국고대학회·한국중세사연구회·한국과학사학회·조선시대사연구회·한국독립운동사연구회 등이 참여했다. 오는 97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새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혁방안은 기존의 제6차 교육과정과는 달리 고교과정에서 국사를 독립된 필수과목이 아닌 통합사회교과의 일부내용으로 다루도록 하고 있다.따라서 고교 2·3학년 인문영역과목에서 국사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국사가 고교의 전 교과과정에서 배제되게 돼있다.선택과목인 인문영역과목은 역사 1·2,국사 1·2,세계사 1·2,유럽사,미국사,중국사,근대사,현대사,역사고전,윤리,철학,철학고전,논리학,논리와 컴퓨터,종교등으로 분류돼 있다. 이와 관련,최충옥교육개혁위원회전문위원(46)은 『세계화라는 국정지표를 고려할 때 교육 담당자 측면에 집중됐던 국사교육을 피교육인 학생 입장에서 고려한 방안』이라면서 『특정 교과 이기주의에 빠진 집단적 행동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미술관들「배움의 터」개설/이론·실기·공개강좌 등 전문적 프로준비

    권위있는 미술관들이 미술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좋은 배움터가 될 미술관교육을 마련한다.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의 「미술아카데미」와 환기미술관의 「토요미술포럼」,토탈미술관의 「토탈미술관 아카데미」가 그것들로 저마다 국내 최고수준의 강사진에 전문적이고 내실있는 커리큘럼을 준비하고 있다. 6∼9일 4일간 22개반 6백20명의 수강생을 모집하며 6개장르의 미술실기반 등 신청인의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수강료는 이론 3만원,실기 4만5천원이며 3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다.문의 580­1130. 정원은 50명,수강료는 30만원이며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강의한다. 미술평론가,교수 등 미술이론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사진의 현대미술이론연구와 미술비평이론강좌와 함께 작가들을 초청하는 작가연구로 구성된다.접수는 12∼25일이며 문의는 391­7701.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토탈미술관 아카데미」는 올해 4기를 맞는 미술위주의 전문예술교육프로그램.「현대미술사」「현대미술의 거장들」「음악사」「음악의 거장들」「건축의 이해」등 5개강좌가 마련된다.강의는 세계 거장의 작품소개를 중심으로 강사진의 해설과 강의가 뒷받침된다.수강료는 30만원이며 3월부터 11월까지 계속된다. 접수는 17일까지,문의는 379­3994.
  • 단색화 「모노크롬」의 진수 재조명

    ◎현대화랑­70년대 대표작가 김창렬 등 15인전 기획/국제화랑­유럽등서 활약… 세 젊은작가 새모습제시 「모노크롬」.일반인에게 생소한 이 단어는 「단색화」를 지칭한 것으로 외국은 물론 한국 현대미술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던 미술유형이다. 전위의 무한한 혼재속에 고전적 평면회귀가 강조되고 있는 최근 세계미술계 흐름속에서 새해들어 국내 두 주요 화랑이 이들 「모노크롬」회화의 진수를 선보이는 자리를 차례로 마련한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갤러리현대가 올해 첫 기획전으로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전(2월1일∼25일)을 갖고,한 동네의 국제화랑이 국내외 젊은 작가 3인의 회화전 「표면과 이면사이」(3월12일∼4월2일)를 통해 새로운 「모노크롬」회화의 경향을 살필 수 있는 자리를 펼치는 것. 두 전시는 구상회화와 달리 단색화면위에 특별한 그림이 없어 일반인들에게는 아직도 이해가 힘든 「모노크롬」이라는 장르가 국내 미술계에서조차 이제 「고전」적 위치에 가 있는 현실이어서 관심있는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노크롬」은 한국의 서양미술이 서구영향에 묻힌 50년대말 무정형의 「앵포르멜」과 60년대 「추상표현주의」를 거친 것과 달리 70년대 중반 우리 정신이 담겨진 회화로 꽃피워낸 장르. 단색화면위에 덧칠하고 긋는등 다양한 기법아래 탈속적 느낌으로 단아하게 창출된 한국의 「모노크롬」은 국내 서양화단의 거물급 작가들의 화폭에서 그 빛을 발했다. 현대화랑의 「1970년대…」전은 바로 이 한국의 「모노크롬」을 꽃피운 대표작가들을 내세운다. 출품작가는 한국 서양화단의 큰 맥을 이뤄온 박서보·정창섭·윤형근·김창렬·정상화·하종현·이우환·김기린·이승조·서승원·최명영·이동엽씨등 15명. 작가 박서보씨는 『우리의 모노크롬은 다색주의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탄생한 서구 모노크롬 회화와는 달리 동양정신에 바탕을 둔 자연관의 회복에 근원을 두고 있다』면서 흰색을 주조로 미묘한 느낌의 중간색을 사용하면서 조선시대 백자의 빛과 같이 우리민족의 정신을 표출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국제화랑의 전시는 한국과 미국,유럽이라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과거 모더니즘회화의 뿌리를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는 3명의 젊은 작가를 통해 새로운 「모노크롬」을 제시한다. 한국의 이인현(41),미국태생의 교포2세 바이런 킴(35),이탈리아태생의 유럽작가 루돌프 슈팅겔(40). 지난60년대 모더니즘 작가들이 추구했던 절제된 색과 기하학적 조형위에 현대적인 분석과 위트,아이러니를 담고있는 이들은 새 세대의 후기모더니스트로 불리운다. 형식면에서는 「모노크롬」을 탈피하지 않지만 그 위에 설명을 함축하는 매우 「개념적」이라는 점에서 70년대 우리 「모노크롬」 작가들과 다른 이들은 「형식 이어받기와 내용 새로 집어넣기」면에서 80년대이후 신개념주의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 작가들의 두드러진 경향을 보여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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