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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 화가 이상원

    일찍이 역사 속의 화가들은 독학을 한 천재가 많았다. 예술학교에 다니지 않아도,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천부의 재능과각고의 노력으로 보는 이를 감동시켰다.고흐 고갱 박수근 이인성이모두 그랬다. 지금처럼 예술이 엄격한 수련과 정치한 이론,후견으로축조되는 때에도 독학 화가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한국화가 이상원화백(66)은 우리에게 “그렇다”는 대답을 준다.공사판 막일꾼에서 극장간판장이로,상업초상화가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현대회화작가로 우뚝 선 이화백의 삶은 예술지망생뿐만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욕망과 좌절로 번뇌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꿈과 야망을 잃지말라,목표가 확실하면 고통도 즐겁다”고 위무한다. 이상원화백은 1935년 강원도춘천시 신북읍유포리에서 7남매중 둘째로 태어났다.초등학교4학년때 할아버지 얼굴을 그린게 소문나 동네 노인들의 초상화를 죄다 그릴 정도로 그림에 재주를 보였다.6·25를 만나 공부 때를 놓치고 고교2년 중퇴, 17세때 가출 상경했다. 아무데나 끼여 자며 노동판을 전전했다.공사장에서 쉬던 중우연히그린 스케치 한장 때문에 당시 동양극장 간판부장을 소개받게 됐다. 간판장이가 됐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벤허’‘닥터지바고’‘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닥치는대로 그렸다.프로가 끝나면 흰페인트로 쓱쓱 지워 없어져버리는 화면을 보며 허탈감을 느꼈다. 그러던 차 양씨라는 미8군납품업자가 찾아와 초상화를 권유했다.젊은 사람이 돈도 벌고 학교도 가야하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설득했다.데생엔 자신이 있었고 인기가 좋아 하루에 많게는 70장까지 그렸다.이때 그린 미8군 사령관 초상화를 보고 노산 이은상선생이 안중근의사공식 영정을 부탁해 왔다.유명화가가 그려온 것이 마음에 안든다는것이다.70년10월 박정희대통령이 참석한 영정봉안식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고 그때부터 박대통령 부모,부부등 요인 초상화제작 주문이 줄을 이었다.외국까지 소문이 나 험프리부통령등 국가원수급 회담때 공식선물이 될 정도였고 중동건설 특수 때는 왕가의 공주,사위까지 그렸다.돈도 많이 벌었다.노산선생은 순수미술 얘기를 꺼냈다.어느날은 부르더니 ‘후암예술세계(厚岩藝術世界)’란 휘호를 써주며 제갈길을 가라고 당부했다.그리곤 한 달 후 별세했다.그의 뜻대로 진짜 미술을 하기로 했다. 독학을 했다.초상화는 다시 그리지 않았다.국내외 유명작가의 화집을 수집해 연구하고 미술관도 찾아다녔다.당시 유명화가를 찾아가볼까생각도 해 봤지만 마음뿐이었다.학연도 인맥도 없어 존재를 알리는길은 공모전밖에 없었다.74년 마흔의 나이로 국전에 도전해 첫 입선했다.78년엔 민전인 제1회동아미술제와 중앙미술대전에서 차석을 차지해 작가로서 당당히 자격인정을 받았다.그러나 세차례의 개인전.국내화단의 반응은 냉랭했다. 작품가치를 알아보고 높이 평가한 곳은 오히려 해외 화단이었다.98년 연해주 주립미술관을 필두로 중국미술관(98,베이징),프랑스 살페트리에르미술관(99,파리),국립러시아미술관(〃,상페테르부르크),중국상해미술관(2001)등 세계 정상급 미술관서 초대전을 잇달아 열어주며 뜨거운 반응을 보내줬다.작품도 구입해갔다.지난달 30일 끝난 상해전시서는 “감동적인 박애정신”이며 “아시아예술탐색의 앞날을 밝혀주는 작품”이란 평가(미술평론가 水天中)를 받기도 했다. 이젠 국내서도 외톨이가 아니다.지난해엔 국전의 후신인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한국화부문 심사위원장도 맡았다.국전 대상은 놓쳤지만한국화단의 스승으로 거듭난 것이다. *화가 이상원 인터뷰. ◆화가가 됐다는 느낌은 언제부터 들었는가. 민전에서 두달 새 두번 차석을 하고나서다.두번째 국전 응모때 작품두점을 냈는데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이 제외돼 실망했다.더구나 입선작을 놓고 평론가들이 대상감인데 아깝게 됐다고 말하는 걸 보고울분이 치솟았다.아끼던 낙선작을 78년 처음 열린 동아미술제에 내봤더니 차석이었다.중앙미술대전에선 대상을 다퉜으나 두 달 전 민전 차석자를 대상으로 뽑을 수 없어 또 다시 차석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자신감이 들었다.그때부터 외곬으로 내 세계를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작품을 보면 한국화인지 서양화인지,구상화인지 추상화인지 착각이 들 때가 많다.극사실주의 기법을 써 서양화같기도 하고 바퀴자국,마대,밧줄,인물을 세밀히 묘사해구상계열에 속하면서도 화면구성이나형태는 추상화 같은 느낌을 준다. 내작품은 한국화,구상화라기보다는 ‘현대회화’라는 편이 맞다.엄격한 조형성에 철학적 내용을 추구한다.기법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장지에 유채와 수묵을 혼합처리한 그림은 나밖에 없다.나름대로 기존의벽을 허물었다고 생각하며 나만의 길을 갈 것이다. ◆독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영향을 준 화가가 있다면. 스승은 없다.밀레와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인상파작품들을 좋아했다. 큰 스케일,과장된 표현은 간판작업서,세밀한 묘사는 초상화작업의 영향일 거다.평론가 신양섭씨는 직선적인 발언으로 많은 자극을 주었다. ◆작가활동은 성공적이었나. 독학의 설움을 많이 받았다.86년 첫개인전을 열었는데 보러 와 주는화가,평론가가 거의 없었다.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다른 작가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이런 구박과 설움에서 내 작품의 힘이 나오는거라고 생각한다.인생의 힘겨운 무게,쓸쓸함,낡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충만한 애정은 나의 자화상이다. ◆작품을 팔지 않는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팔기 위한 그림은 실컷 그렸다.10,000점 이상 그렸고 돈도 많이 모았다.내 작품이 개인창고에 묻히는 건 바라지 않는다.러시아국립미술관 같은 좋은 미술관엔 작품을 기증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두운 테마 말고 다른 그림을 그려볼 생각은. 미인도나 아기 그림을 그려보라는 사람이 많다.누드를 하고 싶다.흔한 누드가 아니라 나만의 작품.갯벌현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이 뒤얽혀 있는 누드군상 어떤가. ◆인사동에 화랑을 갖고 있는데. 그동안 모은 돈으로 건물을 사뒀다가 97년 갤러리로 꾸몄다.나처럼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작품만 좋으면 발표를 할 수 있는 곳이다.전시장 얻기도 쉽지 않았던 내 과거를 생각해 마련했다.두 아들이 내 취지를 잘 살려 운영한다.앞으로 미술재단을 만들어 좋은 일을 하고싶다. 신연숙편집위원
  • 서예가 정도준 파리 유네스코 본부 초대전

    중견 서예가 소헌(紹軒) 정도준(54)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본부에서 초대전을 갖는다.유네스코 본부에서 한국 서예가의 초대전이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소헌은 5일부터 20일까지 파리의 미로갤러리에서 한문과 한글작품을 전시,한국서예의 우수성을 알린다. 진주 촉석루와 합천 해인사 해인총림 현판 등을 남긴 유당(惟堂) 정현복의 차남인 소헌은 한국 서예계의 거목 일중(一中) 김충현의 문하에 들면서 서예의 기초를 다졌다. 1982년 제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조춘(早春)’으로 대상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해서·행서·예서·전서·초서 등 한문의 오체에 두루 능하다는 평.정형화한 한글서예에 변화를 준 ‘오륜체’란독특한 한글서체를 개발, 궁체가 주를 이루는 한글 서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99년 독일의 3대 국립대학 가운데 하나인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에서초대전을 연 데 이어 지난해엔 프랑스 파리와 독일 사브리켄에서도초대전을 가졌다. 이번 전시에는 한글서예의 박물관이라 할 만큼 다양한 한글 작품을내놓는다.그중에는 기존 직사각형 구조의 고체(古體)에서 벗어나 자형을 일그러뜨리면서 작품 전체로 균형을 잡은 한글 서체도 있어 눈길을 끈다.그의 이런 조형작업은 문자로서의 의미보다는 조형적인 특성에 비중을 둔 것.그것은 물론 문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구인들을 의식한 것이다. 김종면기자
  • 신간 맛보기

    오산학교 교장 다석의 생애.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박영호 지음,두레 펴냄) 함석헌의 스승으로 오산학교 교장을 지낸 큰 사상가 다석(多夕)류영모(1890-1981)의사상전집.“‘나’가 죽어야 얼이 산다”는 것을 52세에 깨달아 치정의 뿌리인 색욕을 버리기 위해 아내와 해혼(解婚)해 남매처럼 지냈고,탐욕의 뿌리인 식욕을 버리고자 저녁 한끼만 먹는 등 일생동안 진리를 구도하고 그것을 실천한 생애와 사상을 조명.잣나무로 만든 널판에서 잠자고 언제나 무릎꿇고 앉는 등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었다.씨알 등 독특한 순우리말을 발굴해 쓰기도 했다.상·하권 각 1만3,000원해방이후 北사회주의 미술사. ◆북한미술 50년(이구열 지음,돌베개 펴냄) 해방이후 현재까지 북한사회주의 미술의 흐름을 정리.월북 후 평양미술대학 초대 학장을 지낸 김주경을 비롯해 김용준 길진섭 정종여 정영만 김의관 정창모 조규봉 김정수 등 북한을 대표하는 인민예술가·공훈예술가의 작품을소개.50년대가 전후 인민경제의 복구와 사회주의 건설을 찬양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 시기라면,60년대는 집체창작과 각종 기념비 미술이 창작된 ‘천리마 시대’였다.70년대는 ‘조선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진 주체미술의 전성기.80년대는 주체미술을 지속적으로 구현한 시기며,90년대에는 김정일의 주체 사실주의가 새로운 미술창작 방법으로 강조됐다.1만5,000원. ‘화랑세기’에 신라의 비밀이.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이종욱 지음,김영사 펴냄) 고대사학계가 진위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여온 ‘화랑세기’를 전문연구자가손을 보아 대중의 품으로 돌려줬다.진본임을 주장하는 저자는 그 내용을 통해 당시 신라인들의 생활을 재미있고 쉽게 이해하게끔 꾸몄다.평소 ‘화랑세기’를 신라의 비밀을 푸는 암호로 여겨온 저자는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신라인들의 삶을 재구성 해냈다.저자는 신라인들의 생활을 오늘의 윤리관과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금물이라며 신라인들의 충격적인 성윤리·생활 등을 차분히 얘기한다.1만5,900원전쟁·도박도 사회에 필요하다. ◆저주의 몫(조르주 바타이유 지음,조한경 옮김,문학동네 펴냄) 죽음과 에로티즘의 작가가 성찰한 비생산적 소모의 이론.우리는 넘치는에너지를 해결해야 하고,생식 목적이 아닌 성행위나 전쟁 종교의식도박 공연 예술 등 비생산적인 소모,즉 저주의 몫의 규모를 비중있게 늘려야만 사회의 생존 자체가 가능하다고 역설.포틀래치(경쟁적 증여 또는 파괴) 등을 적당한 소비 형태 창출 사례로 든 반면,저주의몫을 고려하지 않은 사회가 끔찍한 형태의 소비와 맞닥뜨린 최근 역사를 상기시키는 등 모든 문명사의 변화 원인을 잉여의 소비 방식에서 찾는다.1만2,000원
  • ‘흙으로 빚는 미래’는 어떤 색깔 ?

    내년에 열리는 ‘세계도자기엑스포 2001 경기도’의 윤곽이 드러났 다.8월 10일부터 10월 28일까지 경기도 이천과 여주,광주에서 분산 개최될 세계도자기엑스포의 주제는 ‘흙으로 빚는 미래’.세계도자기 엑스포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종민)는 이 행사를 도자예술과 산업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문화의 현장으로 꾸민다는 방침이다. 엑스포의 꽃은 전시다.조직위는 이천·여주·광주행사장의 특성에 맞춰 전시를 기획했다.엑스포 주행사장으로서 세계도예센터가 건립되 는 이천은 실험적인 전시 위주로 구성된다.산업도자의 메카로 떠오른 여주는 생활도자기들을 중심으로 꾸며진다.광주는 조선시대 관요가 있었던 유서깊은 지역임을 감안,전통도자에 비중을 두도록 했다. 전시는 세계도자문명전,세계현대도자전,동북아도자교류전,한국현대 도자전 등으로 나뉜다.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 모전도 마련된다. 세계도자문명전은 동양부문과 서양부문으로 나뉜 가운데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루돌프 슈니더 스위스 취리히대학 교수가 각각 큐레이터를 맡았다.동양부문에서는 중국 베이징고궁박물관의 국보급 유물 등 50여점과 일본 문화재청,아이치현 도자자료관 등에서 빌려온 명품 40여점 등 170점이 전시된다.특히 조선 도공이 일본에 건너가 만든 이도다완(井戶茶碗) 등도 소개돼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서 양부문에서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양도자의 발달사를 조망 한다.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박물관,영국 대영박물관 등에서 국보급 유물 170점을 대여해 전시할 계획이다. 신상호 홍익대 미술대학장이 큐레이터로 나설 세계현대도자전은 195 0년대 이후 나타난 도자기의 예술적 변화양상을 추적,도자예술의 새 로운 가능성을 살펴보는 자리다.초대작가는 ‘현대도예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피터 볼커스를 비롯해 일본의 준 가네코,이탈리아의 니노 카루소,영국의 토니 프랑크스 등 40여명.신상호 큐레이터는 “ 전시 출품작은 도자기라는 용기적 개념에서 탈피,순수조형으로서의 도자작품으로 한정했다”며 “장르의 틀을 깨고 조각으로 영역을 확 장한 현대도자예술의 성취를 보여주는것이 목적”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동북아교류전은 세계도자사를 주도했던 한국과 중국,일본 도자의 교 류관계를 집중적으로 살핀다.이들 세 나라는 중국이 주축이 돼 역사 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나라·시대별 사정에 따라 독특 한 도자문화를 일궈냈다.이 전시는 동북아의 도자교류를 통해 꽃피운 각국의 미술사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큐레 이터는 김재열 호암미술관 부관장. 정형민 서울대 교수가 총괄하는 국제도자학술회의는 ‘도자의 도(道) 와 기(器)’를 주제로 내년 9월 20일부터 22일까지 이천에서 열린다. 세계 도자의 전통을 인류문화사적 맥락에서 고찰하고 그 이론적 틀 을 마련한다. 세계도자기엑스포의 주요 행사중 하나가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 전이다.창의성있는 도예가들을 발굴,후원하기 위해 도입한 이 행사는 이천의 세계도예센터를 비엔날레관으로 활용해 2년마다 열린다.공모 분야는 생활도자와 조형도자 2개부문으로 시상금 액수가 1억4,000만 원에 달한다.이 국제공모전은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일본 에서는 3년마다 기후현 미노(美濃)국제공모전이 개최되며,대만에서는 매년 ‘황금도자상’이 열리고 있다. 세계도자기엑스포의 총예산은 1,200억원.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국 가적 행사인만큼 국민적인 관심과 참여가 요구된다.조직위는 이번 행 사의 관람인원 목표를 내국인 440만명,외국인 60만명 등 500만명으로 잡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내가 만드는 도자기’, 세계민속공연,세라믹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는 복안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서울방문 북측 주요인사 6인 근황·경력

    제2차 이산가족 북측 방문단 100명 중에는 북한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저명 학자를 비롯해 예술가,관리 등이 다수 포함됐다.북측 유명인사 6명의 근황과 경력 등을 살펴본다. ▲김영황 김일성종합대학 교수(70) 어학 계열에서 손꼽히는 권위자.6·25 때 인민군에 입대하기전 동국대학 문학부에 다녔다.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40여년간 교단에 섰다.‘조선민족어발전연구’ 등 40여점의 교과서와 참고서뿐 아니라 230건의 논문을 집필,“조선어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지난 8월 70회 생일을 맞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생일상을 받았다.남한에 조카 우현씨(52)가 살고 있다. ▲하재경 평양시 김책공업종합대학 강좌장(65) 서울 중앙중학에 입학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6·25가 일어나자 의용군에 입대했다.30여년간 교편을 잡았으며 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 과학자·기술자대회에 참석했다.99년 7월4일자 북한 통일신보에소개된 수기에서 “내 나이 어느덧 60고개를 넘어서고 떡돌 같은 손자까지 생기고 보니 때때로 지나온 한생이 돌이켜져 잠못이룰 때가많다”면서 “가장 큰 소원은 조국통일의 그날을 한시바삐 앞당겨 오는 것”이라고 감회를 밝혔었다.서울에 둘째 형 재인씨(73)가 살고있다. ▲김봉회 평양시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강좌장(68)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월북했으며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백남운의 생질이다.전북 고창군 고창면 도산리가 고향으로 고창중학교를 졸업,고려대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중 의용군에 소집돼 참전했다.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 교단에 섰다.3남매를 두고 있으며 서울에 동생 규회씨(67)와 영숙씨(60·여)가 살고 있다. ▲홍응표 평양시 직물도매소 지배인(64) 14세 때 부모를 잃고 북한으로 갔다.서울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고 업무에서 인정을받아 ‘국가수훈’을 받았다.같은 서울출신 아내 권순녀씨와 손자들과 함께 평양시 모란봉구역 서흥동에 거주하고 있다.올 1월에 출간된 북한화보 ‘조선’에 기고한 ‘꿈속에서도 그리는 고향’이라는 글에서 50여년간 아버지,어머니 시신 위에 흙 한줌 덮어주지 못한 죄스러움을 안고 할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말했다.누나 양순씨(69)가 상봉을 기다리고 있다. ▲김기만 평양미술대학 교수(71) 운보(雲甫) 김기창화백의 셋째 동생으로 북한에서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서울 시립미술연구소 연구생으로 있다가 51년 월북했다.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65년 조선미술박물관 부장을 역임했다.대표작으로는 ‘고구려 인민들의 무술경기', ‘구주성전투' , ‘소년선봉대' , ‘금강산풍경' , ‘홍경래 농민폭동' , ‘윷놀이’ 등이 있으며 북한 민족의상을 소재로 한 50여편의작품이 있다.화조화 1,500여점 가운데 20여점은 북한의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로승득 자강도 임업연합기업소 자재상사 사장(70)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생일상을 받았다.전북 김제에서 출생,6·25 때 인민군에 입대했다.임업부문에서 오랫동안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주석기자 joo@
  • 화장실 “이보다 멋질순 없다”

    깔끔한 실내에 격조있는 음악,벽에 걸린 그림들이 찾는 이들의 기분을 금세 바꿔 놓는다.은은한 향기가 더해져 안온하고 상큼한 실내 분위기에 성인·어린이용으로 구분된 세면시설도 청결하다.화장지가 항시 비치돼 있고 이름도 생소한 ‘에티켓 벨’이 설치됐는가 하면 비데와 헤어드라이어까지 갖춘 곳도 있다. 이는 어느 호텔 이야기가 아니다.바로 최근들어 새로 들어서고 있는 서울의 공중화장실 모습이다. 서울의 공중화장실이 환골탈태하고 있다. 송파구는 지난 31일 잠실야구장 맞은편에 카페를 겸한 공중화장실을 신축,준공식을 가졌다.연면적 80평의 실내는 35평의 고급스런 카페와 30평의 공중화장실로 구분돼 있다.카페 수익금으로 화장실 운영비를 충당하는 이른바 ‘자족형 화장실’이다. 장애인과 어린이용 변기·세면대가 따로 설치돼 있으며 여성들을 위한 에티켓벨과 비상벨은 물론 비데와 화장대,헤어드라이어 등이 갖춰져 호텔 화장실 못지 않다. 광진구는 서울지역에서 처음으로 시민단체가 참여한 ‘화장실 개선추진협의회’를 구성,체계적인 화장실바꾸기에 나섰다. 광진구는 이미 올 상반기 서울지역 최우수 화장실로 뽑힌 능동 어린이대공원 후문옆의 ‘아름다운 화장실’에 카페 분위기를 연출,시민들로부터 ‘이곳이 정말 공중화장실이냐’는 반응을 얻었다.청결도는 물론 편리성 쾌적성 편의용품 비치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성북구도 최근 돈암동 마을마당에 ‘성곽형 화장실’을 마련한데 이어 내년 4월까지 북한산 국립공원에 ‘산장형 화장실’을 신축하기로 하고 최근 기공식을 가졌다.자연채광을 이용하는 등 환경친화형에다양한 편리성과 안전성을 갖추도록 설계했으며 명칭도 ‘숲속의 쉼터’로 정해 정서공간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화장실 이벤트도 이채를 더하고 있다.광진구는 지난 8월 새로 단장한 관내 4개 공중화장실을 돌며 환경사전전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송파구도 지난해 구청 화장실에서 경원대 미술대학원생들의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화장실이 ‘생리공간’에서 ‘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 이밖에 용산구는 이태원 일대 개인화장실을 ‘국제 관광용’으로 개·보수하고 안내도까지 제작,배포하고 있으며 구로·동대문·용산·은평·양천구 등 각 자치구들이 앞다퉈 공중화장실 특화에 나서 새로운 ‘서울이미지’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시도 월드컵 등 국제행사에 대비,문화운동 차원에서 시범화장실을 건립하는 등 화장실문화 바꾸기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올해 13곳의 시범화장실을 건립하고 개·보수비용을 지원하는 등 ‘국제적으로 악명높은 서울의 공중화장실’을 점차 선진국화한다는 계획이다.이용 시민들은 “멋진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이렇게 기분좋은 일인 줄 몰랐다”며 “모든 화장실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
  • 28일 시민의 날 맞아 서울5곳서 축제마당

    깊어가는 가을,새천년 첫 서울시민의 날(10월28일)을 맞아 28∼29일 서울 각 지역에서 기념축제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번 축제의 특징은 차별화된 지역특성에 따라 신촌,인사동,동대문,대학로,명동 등 5개 권역으로 구분,‘거점지역행사’로 열린다는 것. 28일엔 신촌과 동대문,명동,대학로에서,29일엔 인사동에서 각각 축제가 열린다. ◇신촌문화축제=신촌 인근의 연세·이화·서강·홍익·서울예대 등 5개 대학과 록밴드,풍물패,노래패 등이 참여해 신촌 일대 길거리를 온통 공연의 물결로 뒤덮는다. 또 홍대 및 전국 대학생 디자인학과연합회 소속 작가들이 설치미술작품을 선보이며,문화행동21 작가 및 서울지역 미술대학 연합회에서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아티스트 벼룩시장도 열린다.또 그림엽서 그리기,재활용품을 이용한 생활소품 만들기,핸드프린팅 및 페이스프린팅 등 시민참여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대학로 문화축제=28일 11부터 오후 5시까지 아티스트벼룩시장이 열린다.회화·조각·공예품 등을 전시·판매하며,도자기 시연 및 재활용품을이용한 생활소품 만들기에 참여하는 ‘나도 예술가’ 코너도진행된다. 12시부터 1시30분까지는 서울지역 대학생 풍물패가 판소리마당,춤마당,길놀이,사물놀이 등 신명놀이 한마당을 펼친다. ◇명동거리축제=28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명동입구∼관광명품전 사거리 구간에서 참여마당,공연마당,캠페인마당으로 나뉘어 열린다.공연마당에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제작한 의상을 발표하는 패션쇼,각 학교 동아리의 풍물 및 춤,노래 공연,청소년 제작 영화 상영 등이 진행된다. 참여마당엔 사진찍기 및 페이스페인팅,세계문화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이와함께 기아어린이 돕기,북한동포돕기 캠페인도 열린다. ◇우리가족 패션 콘테스트=동대문에선 유명 디자이너가 아닌 청소년등 일반시민이 디자인한 작품을 선보이는 패션쇼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청소년들의 개성적인 의상과 교복 패션을 선보이는 퍼포밍아트쇼,패션 사진전 및 메이크업이벤트,명함 디자인 전시 등 이벤트 행사 등이 마련된다. ◇인사동 거리문화축제=29일 오후 1∼5시 참여마당과 공연마당,전시마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시민 참여 프로그램으로는 인사동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한 그림그리기,전통차 우리기와 다도 배우기,좌선시연,표구 배우기 등이 있다. 또 전통떡 및 한과만들기,사찰음식 및 궁중요리 알아보기,절기별 음식시연 등 전통차 및 음식축제도 열린다. 임창용기자 sdragon@
  • [‘6.15’이후의 북한] (6)인민예술가 정창모씨

    9월 7일 평양 국제문화회관 2층에서는 ‘인민예술가 정창모 그림전람회’가 개막됐다.주최는 조선미술가협회. 정창모 선생(68)은 지난 8월 15일 이산가족 북측 방문단의 일원으로서울을 방문했던 인물이다.전주북중 재학중 19세의 나이로 월북한 한의용군 소년이 북의 화가중 최고봉인 ‘인민예술가’가 되어 돌아옴으로써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개막식은 오후 4시였다.전람회장 앞홀에는 200∼300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정 선생과 가족들,조선미술가협회 관계자들,북의 대표적 전문미술창작단인 만수대창작사 관계자들,학생들,그리고 일반 관람객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개막식에선 문화성 부상(차관)의 축사가 있었는데 “장군님께서 정창모 선생의 ‘비봉폭포의 가을’(김주석의 집무실이었던 금수산의사당에 전시되어 기념촬영 배경으로 사용되던 작품)을 높이 평가하셨다”는 언급에서도 북 화단에서 그의 위치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개막식이 끝나자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그와 문화성 부상을 선두로 전시회장에 입장했다.서울에서 온 취재기자임을 밝히고 그 옆에 따라붙었다. 문화성 부상은 전시된 그림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돌아보았다.황량한군사분계선 위를 철새 떼가 날아가는 그림(‘장벽을 넘는 철새들’)앞에서 그가 물었다. “이 그림은 무슨 생각하면서 그렸소?” “분단의 아픔을 안고… 빨리 통일이 돼야 되겠다는 염원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개성,금강산,임진강 등 군사분계선 일대를 그린 것이많았다.수없이 현지를 답사했다고 했다.설악산을 그린 ‘설악만봉’(1998년)도 있었다.부상은 “고향을 그리는 심경과 통일의 염원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림들이구만”하고 감탄했다.백두산,묘향산,압록강등 국내는 물론 일본,폴란드 등을 현지 답사해 그린 작품도 눈에 띄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이라는 서예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낙관의 날짜는 2000년 8월 18일.서울에서 돌아오자마자 쓴 것이었다. “모처럼의 전시회에 그림만 있으면 관람객들이 심심할까봐 써봤다”는 말이었으나 독특하고 힘있는 필치였다.화풍이 조금 다른 그림도보였다.대학생 시절의 습작품이라고옆에 있던 해설강사가 설명했다. ‘분계선의 옛 집터’란 작품 앞에서 모두들 멈춰섰다.대단한 그림이었다.군사분계선이 가로질러 폐허가 된 집안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돌담은 다 무너지고 우물가에 깨진 장독들이 구르고 있었다.우물은메워져 그 안에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자랐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복숭아나무의 열매가 땅에 떨어지고 또 떨어져 바닥에는 씨가 수북이쌓여 있었다.그가 설명했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깨진 독들이 나무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단말입니다. 바닥에 구르던 독들이 나무가지가 자라면서 거기에 걸려나무가지에 열린 거지요.너무 가슴아프고 비참해서 이 모습은 뺐습니다” 그가 기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에 살건 북에 살건 이제는 이런가슴아픈 분단의 상처를 걷어내고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뜻을담고자 했습니다. 신 선생,이 그림 좀 남쪽에 많이 소개해 주십시오” 전시된 그림을 돌아본 후 그와 회견할 기회를 얻었다. “이번 전람회는 어떻게 마련되었습니까?” “나는 전라북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9세때 의용군으로 북에 들어왔습니다.이번 전람회는 내가 북에 들어온지 50년이 된것을 기념해서 마련되었습니다” “남쪽에 계실 때부터 그림에 뜻을 두셨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고,북에 들어와 군사하면서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서클활동이 있을 때면 무대배경도 그렸습니다.그때 제 재능을 인정해주셨는지 57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게 됐습니다.그 어려운 시기에 귀한 외화를 들여 화구와 종이,지우개까지 우방국가에서 사다 공급해주셨습니다.대학을 졸업한 후 40년간 만수대창작사에서활동해 왔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에서 전통적인 동양화와 일치하면서도 뭔가 다른 점을 느끼게 되는데 그 점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우리 화가들에게는 조선화의 전통적 기법을 더 풍부히 발전시켜서 새로운 세대들에게 넘겨줄 의무가 있습니다.옛날 것 그대로 모방해서 후대들에게 넘겨준다면 예술가로서의 내 몫은 없다고 생각해요.제 나름대로 한 평생을 바쳐서 조선화의 몰골(沒骨)기법을 더욱 현대화하고 화법에서 필치,색깔 문제들을 늙은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시대젊은 사람들의 감정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제 그림은 전통의 바탕에 서 있으면서도 선은 예리하고 질감이나 색채감각이 좀더 부드럽고 선명해서 어딘지 모르게 시적 감흥을 자아내는 면에서 남다른 개성이 있다고들 합니다.물론 모두가 대중이 평가할 문제입니다” “서울에 계신 동생들이 와서 보면 무척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지요.아직 한번도 만나지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선생님의 이번 서울방문을 기해서 전람회가 준비됐다가 취소됐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서울의 경인미술관에서 화첩도 출판하고 준비를 다 했는데 중간에 선 중국미술상이 협잡을 했는지 내가 가서 보니 54점중 대여섯개만내 그림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어요.섭섭하지만 잘되든 못되든 진짜 내 얼굴을 가지고 해야 하니까 전람회를 열 수가 없었지요.마음같아서는 이 그림들 그대로 다 가져가서 서울에 가서 했으면 싶어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있어서 인터뷰는 여기서 마쳤다. 전람회장을 나서면서 기자는 산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군사분계선 위를 줄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의 그림을 다시 한번 보았다.‘새들은 날아가건만’ 남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50년간 찾지 못했던 화가의 아픔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신준영기자 junyoung@
  • 미술대전 ‘뇌물 입선’

    지난 98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출품한 화가들이 금품을 제공해 측근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앉히고 입선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4일 미술협회 동양화 분과위원장 이모씨(56)에게 금품을 주고 자신의 측근인사를 심사위원에 선정되도록 해 미술전에 입선한 화가 정동복씨(52)와 측근인사인 화가 최정칠씨(51)를 배임증재 혐의로 구속하고 이모씨를 배임수재의 혐의로 불구속 수사중이다. 정씨는 동료 화가들과 모의하여 지난 98년 11월초 화랑을 운영하는허복동씨(64)를 통해 대한민국 미술협회 간부 이씨에게 1000만원을건네고 친분이 있는 D여대 미술대학장 송모씨(64)를 운영위원에 임명하게 한 뒤 다시 송씨를 통해 최씨를 심사위원으로 앉혀 미술대전에서 특선상을 수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정씨가 운영위원이 심사위원을 선정,추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씨에게 로비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송하기자 songha@
  • 인사동 선화랑 ‘현대미술 12인전’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2000년 현대미술12인전’ 이 20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정창섭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윤명로 김봉태 최명영 하동철 이강소오수환 이두식 박승규 등 한국 현대미술을 주도해온 대표급 작가 12명이 각각 2,3점씩 모두 30여점의 작품을 낸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주목할 만한 것은 모노크롬,즉 단색화다.단색화는 1970년대 후반 한국 현대미술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으로,국제적으로 미니멀리즘과 맞물리면서 크게 유행했다.백색 모노크롬 계열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가는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김홍석 이동엽 허황 곽남신 윤명로 진옥선등.흑색 혹은 기타 색채에 의한 모노크롬 작가로는 김기린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최명영 김진석 최대섭 박장년 등이 꼽힌다.이번 전시의감상 포인트는 바로 모노크롬 작가의 작품과 그 자취를 더듬어 보는데 있다. 모노크롬 쪽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는 ‘묘법’시리즈의 박서보다.그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선배 추상작가들과는달리한국의 미술대학에서 배출된 첫 세대로,그의 화력은 한국 현대미술 특히 추상미술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그가 30년 이상 매달려온 ‘묘법’은 한지를 통해 묻어 나오는 부드럽고 고아한 맛,도자기에서나 볼 수 있는 담백하고 거친 표면의 질감,숨을 고르면서 서예를하듯 절제된 행위 등이 특징. 한국 현대미술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평이다. 이강소와 오수환은 동양의 서체적 특징이 담긴 작품으로 눈길을 끄는 작가.이강소의 획은 동양의 서체처럼 어떤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한결 자유롭고 추상표현주의적인 기운이 강하다.그가 흔히 사용하는 제한된 흰색이나 회색 또는 청색은 70년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노크롬 미술과도 연관된다.오수환은 기호를 즐겨 사용한다.그기호들은 서예의 필법을 연상케 한다.본래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글자를 새로 쓰는 팰림프세스트(palimpsest) 양식이야말로 오수환 회화작업의 색다른 점이다. 참여 작가중 박승규(49)는 가장 젊지만 나이에 비해 다채로운 화력을 쌓은 화가로 주목된다.그의 회화세계는 ‘확산 공간’과 ‘확산이미지’로 요약된다.그는 오토마티슴(automatisme,자동기술법)이나콜라주,데콜라주(deacollage,붙였다 떼어내기)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독자적인 ‘이미지-공간’의 세계를 구축한다.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역시 ‘확산 이미지’다. 격정과 관조의 미학이 어우러진 현대미술의 대표작들을 통해 잡동사니화해가는 현대미술의 품격을 되찾도록 한다는 게 이번 전시의 의도다.(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남북이산상봉/ 北 최고 인민화가 鄭昶謨씨

    “춘희야,남희야.이게 얼마 만이냐.정녕 50년 만이냐”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로 활동중인 정창모(鄭昶謨·68·만수대창작사인민예술가)씨는 15일 여동생 춘희(61)·남희(53)씨를 만나는 순간두 동생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오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감싸 안고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비벼댔다.50년전 다정했던 오누이로돌아간 것처럼. 정씨는 여동생 춘희씨가 “어머니는 오빠를 잃은 고통에 하루도 마음 편히 사신 날이 없었다”며 부모님의 손때가 묻어있는 문갑과 화분을 건네자 얼굴을 감싸쥐며 오열했다. 정씨는 “50년 세월이….50년 세월이….원망스럽다”면서 반세기의생이별을 한탄하면서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더란 말이냐.아들이이렇게 왔는데”라며 눈물을 감출 줄 몰랐다. 정씨는 6·25전쟁 당시 전주북중(현 전주고) 5학년때 의용군에 입대,월북했으며 평양미술대학 졸업후 공훈예술가를 거쳐 89년 인민예술가 반열에 올랐다.정씨는 현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과 국가작품심의위원 등을 맡고있다.정씨의 76년 작품 ‘비봉폭포의 가을’은김일성 주석의 집무실인 금수산의사당에 걸려있다. 정씨의 작품은 북한작가로는 처음으로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전시된다. 황수정기자 sjh@
  • 北 후보자 명단…학자·예술인 다수 포함

    북한이 통보해온 이산가족방문단 후보 명단에는 북한에서 이름난 유명 학자와 연예인들이 다수 끼여 있다.‘비날론’을 개발한 화학자 이승기박사(96년사망)의 부인 황의분씨(84)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이들의 신상과 활동상을알아본다. ■학계. [류렬] 일제 때 중학교만 졸업한 후 독학으로 공부해 고려대학교 강사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참가,북한으로 넘어갔다.경남산청군이 고향으로 현재 평양시 경림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사회과학원언어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지난 83년 북한 국어학계의 ‘기념비’라고 일컬어지는 ‘세 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과학백과사전출판사)를 집필했다. [조주경]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자 북한에서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유명 과학자이다.경북 영양군이 고향으로 서울대문리대를 중퇴한 뒤 지난 50년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영천 전투에 참전,왼팔을 잃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23세부터 교단에 섰다.40여년간 8명의 박사,33명의 학사(석사),12명의 후보학사를 비롯해 수많은 과학자를 양성했다.지난91년 남한의 어머니로부터 사진과 편지를 받았다고 노동신문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김영황] 북한 어문학 계열에서 손꼽히는 권위자 중 한명이다.입북 경위는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6·25전쟁이 계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입북전 동국대학 문학부에 재학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북한에서도 어문학에꾸준히 매진했으며 지난 60년대 초반 언어학 학사로 되면서 김일성종합대학교원으로 근무했다. [조용관] 북한 방직부문 기술의 대가이자 공훈과학자이다.전북 장수군 출신으로 지난해 7월 21일 평양방송을 통해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경공업방직분원 방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북한에서 교수,박사,공훈과학자의 칭호를 받았으며,‘조선지식인대회’를 비롯해 각종 과학부문 대회에 대표로 참석하는등 북한당국으로부터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하재경] 평양시 김책종합공업대학에서 강좌장으로 있다.서울 중앙중학교에입학했다가 금전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가슴아픈 경험을 갖고있다.충북 괴산군에 거주하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입대해 참전,북한으로 넘어갔다.30여년동안 교편을 잡았으며,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과학자·기술자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봉회] 한덕수 평양경공업대학 강좌장으로 일하고 있다.전북 고창군 고창면 도산리가 고향으로 고창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입학을 기다리다의용군으로 소집돼 참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술계. [정창모]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화가로 일한다.인물화,풍경화,화조화,정물화 등 조선화의 각 장르에 걸쳐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뛰어난 화가이다.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해 월북했으며,평양미술대학 전문부와 조선화학부에서 공부했다.지난 76년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집무실로 사용했던 금수산의사당(현재 금수산기념궁전) 기념촬영대에 비치될 ‘비봉폭포의 가을’을성공적으로 완성해 김 주석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77년 공훈예술가,88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오영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분과위원회 소속으로 자타가 공인하는북한 최고의 시인이다.김 총비서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지난 50년 의용군으로 월북,김형직사범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20대 중반부터 개성있고 형상성이 뛰어난 시를 창작해 두각을 나타냈다. 수백편의 시와 수십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대표작으로 시집 ‘대동강’과‘영원히 당과 함께’,노랫말 ‘인민은 우리 당에 영광 드리네’,서사시 ‘인민의 태양’등이 있다.평양에 있는 주체사상탑의 비문에 새겨진 시 ‘오,주체사상탑이여’를 짓기도 했다.89년 ‘김일성상’을 수상했다.지난 89년 3월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대표로 참가했다. [박 섭] 서울에서 극단 ‘신향’의 배우로 활동하다 월북,현재 북한 최고의영화더빙 전문 성우이자 인민배우로 활약하고 있다.외국영화를 전문적으로번역하는 조선번역영화제작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우리에게도 조국이 있다’‘처녀리발사’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다.김 총비서에게 올라가는 외국영화치고 그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북한 성우계의 거봉으로자리잡고 있다.[김점순] 북한의 국립민족예술단 성악지도원이자 고음독창가수로 활동하고있다.6살 때 가족을 따라 만주 땅으로 건너갔으며 8·15 광복 후 서울로 귀국했다.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와 함께 의용군에 편입됐다. 6·25 이후북한의 첫 가극인 ‘콩쥐팥쥐’를 비롯해 ‘온달과 공주’‘밝은 태양 아래서’ 등 수많은 가극에서 주인공 역을 훌륭히 소화,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60년 ‘공훈배우’칭호를 받았다. 서울연합
  • 유혜숙씨, 프랑스 몽루즈 살롱전 회화상 수상

    [파리 연합] 파리에서 활동중인 화가 유혜숙(35)씨가 프랑스의 권위있는 몽루즈(Montrouge) 살롱전에서 회화상 수상자로 뽑혔다. 올해로 45회를 맞는 몽루즈 살롱전은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몽루즈 살롱전 입상은 프랑스 미술계의 공식적인 등단을 의미한다. 64년 서울 출생으로 87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건너온 유씨는 파리 8대학 및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으며 젊은 작가들을 선보이는주요 무대인 몽루즈 살롱,바뇨 살롱,존 팽트르 살롱 등에 참가해왔다. 유씨는 붉은 콩,땅콩,귀,머리카락 등 일상적인 것에서 작품의 소재를 구해왔는데 이번 몽루즈 살롱전에서 입상한 작품은 195x130㎝ 크기의 작품 2개를연결한 딥티크(Diptyque,2장 접이그림)로,검은색 톤으로 머리카락을 그리고있다. 몽루즈 살롱전은 매년 500∼600명의 후보작 가운데 150 작품을 선정,한달정도 전시하고 마지막날에 대상,회화상,조각상,사진상 등을 수여한다. 한국 작가로는 조택호,박광성,이태경씨 등이 수상했다.시상식은 4일 거행된다.
  • 그림보다 아름다운 장학 열정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로 미술인들이 노령의 예술혼으로 펼치고 있는 장학사업이 알찬 결실을 맺어 아름다운 귀감이 되고 있다. 서울 성북장학회(공동회장 崔滿麟·李圭晧·趙文子)는 지난달 31일 성북구청 강당에서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면학에 전념하거나 선행으로 주위에 모범이 된 학생들에게 모두 1,352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장학금은 중학생 24명에게 24만원,고교생 12명에게 31만원,대학생 5명에게100만원씩 주어졌다.중·고생에게는 연 3회,대학생에게는 2회씩 지급된다. 성북장학회는 이 지역에서 활동해온 원로 미술인들이 지난 78년 후학들에게보람있는 일을 하자며 태동시킨 모임.운보 김기창(金基昶) 화백을 비롯해 서세옥(徐世鈺) 전 서울대교수,최만린씨,조문자 전 홍익대교수,정하경(鄭夏景) 한성대 미술대학원장 등 33명의 미술인이 참여하고 있다. 장학기금은 회원들이 기증한 작품으로 2년마다 전시회를 열어 마련하고 있으며 현재 적립된 금액이 3억7,743만원에 이른다. 장학회 설립 이후 22년동안 적립금 이자수익으로만 3억6,200여만원의 장학금을 마련,모두 1,172명의 후학들에게 전달해 학구열과 선행을 격려했다. 서화백 등은 “회원들이 모여 사회원로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다 장학회를 만들게 됐다”며 “앞으로 더욱 알찬 장학회로 꾸려 가겠다”고 밝혔다. 심재억기자
  • 20년간 돌에 새긴‘인간 사랑’…조각가 한진섭씨 개인전

    조각가 한진섭(44)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두고 온 유년의 고향이 떠오른다.넉넉한 대지의 품에 안긴 듯 마음이 편해지고 은근한 생명의 온기가 전해진다.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접근해 푸근한 정을 느끼게 하는 한진섭의 돌조각.그 조형언어의 핵심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인간’을 화두로 20여년동안 돌작업을 해온 그가 7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6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한진섭의 조각세계는 인체상이 주를 이룬다.깎은 밤 같은 똑 떨어진 조각상을 추구하기보다는 토속적이고 질박한 아름다움을 중히 여긴다.때론 구체적인 형상이 생략돼 추상성을 띠기도 한다.이목구비를 익살스럽게 일그러뜨리거나 인체를 단순화해 하나의 덩어리로 만든 작품들도 있다.비균제미(非均齊美)와 곡선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돌작품은 한국미의 원형과 통한다.우리의구상조각이 서구조형의 아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그의 작업은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한진섭은 돌조각만을 고집한다.조각,그중에서도 특히 힘든 것이 돌조각이다.미술대학에서조차 ‘기피 장르’다.그렇기에 돌조각을 향한 그의 마음은 더욱 곡진한 데가 있다.그는 지난 81년 이탈리아 카라라로 유학을 떠나 10년동안 이웃 도시인 피에트라산타에서 작업을 했다.피에트라산타는 미켈란젤로를비롯해 이사무 노구치, 세자르,포모도르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땀이 배어 있는 유서 깊은 대리석 조각의 본고장이다.그는 이곳에 머물며 조각에 쓰이는돌은 거의 다 만져봤다.미켈란젤로가 ‘피에타’‘다비드’‘모세’ 등을 만들 때 사용한 ‘대리석의 왕자’ 스타투아리오,대리석의 일종인 트라베리티노,카라라비양코 등이 그가 좋아하는 돌.반면 까만 색의 대리석인 네로 벨지움은 느낌이 차고 신경질적인 돌이라서 싫어한단다.한국돌로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나는 토종 대리석과 화강암의 일종인 마천석,상주석,청석,오석,포천석 등을 즐겨 쓴다.그는 “대리석 작품 서너개 만들 때 화강석 작품은 하나밖에 못만들지만 그래도 화강석은 서민적이어서 좋다”고 말한다. 한진섭은 이탈리아 카라라·파나노,프랑스 디녜 등 여러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입상했다.일본 하코네 미술관과 프랑스 대통령궁에 각각 ‘기다림’과‘우는 아이’란 작품을 남기는 등 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해외파’다.그런 만큼 서구적 조형어법에 익숙하다.이탈리아 유학시절 작품인 ‘엄마와아기’ 같은 작품에선 서양의 구성주의적 방법을 시도한 흔적이 역력하며,‘소년좌상’은 아프리카 흑인조각의 영향이 뚜렷하다.그렇다고 해서 그가서구조형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그는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적감각으로 풀어낸다. 작품 밑바닥에 흐르는 정신의 에센스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전통 서정이다.그의 작품에는 한국미술 특유의 여유와 해학,유머 등이 스며 있다.‘봉숙이’‘하품하는 아이’‘허수아비’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작품들이다. ‘꿈을 찾아서’란 작품은 비상하는 꿈의 나래를 형상화한 듯한조형물이 높다란 기둥 위에서 빙빙 돌아가도록 돼 있어 눈길을 끈다.이번 개인전에는 30여점이 출품된다. 그는 최근 들어 성(聖)미술품 제작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강원도평창 대화성당에 있는 제대와 감실,성수대,십자고상 등이 그의 작품이다.특히 그가만든 눈·코 없는 마리아상은 퍽이나 파격적이다.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강원도 대화는 이제 예술적인 대화성당으로 더욱 이름을 얻고있다.그는 당분간 ‘미술과 종교의 만남’작업을 계속할 작정이다. 지난 95년 이래 경기도 안성의 작업실에 칩거하며 새로운 조각의 세계를 열어가고 한진섭.그는 거기서 돌과 대화하며 석조각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돌은 정직합니다.정으로 한번 때리면 한번 때린 만큼의 효과가 날 뿐이죠.돌에도 음과 양이 있어요.그 음양의 조화를 살펴가며 돌을 다뤄야 합니다.돌과싸워서는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김종면기자 jmkim@
  • 19회 미술대전 대상 ‘숨을 쉬고 있는 상자’

    한국미술협회(이사장 박석원)가 주최한 제1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제1부 비구상계열:한국화,양화,판화,조각)에서 조각 ‘숨을 쉬고 있는 상자’를 출품한 이상길씨(李祥吉·36)가 대상을 차지했다. 우수상은 한국화 ‘고유감성-(대지)’를 내놓은 최창봉(崔昌鳳·36),서양화 ‘나반의 정원’을 출품한 장수창(張水昌·39),판화 ‘지적인 제안’을 출품한 김경아(金瓊兒·30),조각 ‘디이칠칠(de77)’을 낸 정동명(鄭東明·30)씨가 각각 받았다. 이번 미술대전에는 한국화 500점,양화 691점,조각 38점,판화 61점 등 모두1,290점이 응모해 특선과 입선을 포함,315점이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수상작은 15일부터 2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며 개막에 앞서 15일오후 3시 시상식이 거행된다.서울전시에 이어 12월에는 포항과 광주에서 순회전을 연다.다음은 특선자 명단■한국화 ▲한경혜 노병렬 황현숙 김지영 전영숙 강영지 박영학 유정상 최라영박옥남 이길우 조희경 한윤기 이창훈 강규성 ■양화▲윤종석 박봉춘 박점영 박태홍 이재삼 김병구 유서형 우은정 이규학현종광 김태은 이혜경 황나영김동석 ■판화 ▲김필구 한 용 김진숙 이명숙 ■조각(야외) ▲이재길 우무길. *대상 수상 이상길씨 “제도화된 관습 속 상호소통 열망 상징”. “상자는 우리들의 삶과 생각을 구속하는 제도화된 관습을,숨을 쉬는 마개구실을 하는 코르크는 막힌 현실에서 상호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을 상징합니다” 10일 발표된 제1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조각가 이상길씨는 자신의 조각품을 단절된 현대사회에서의 소통가능성을 묻는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숨을 쉬고 있는 상자’는 작가가 지난 5년 동안 매달려온 작업 테마.작가는 스테인레스와 알루미늄,유리,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먼저 냉혹한기하학적 구도의 상자를 만든다.그 상자는 죽어 있는 밀폐된 공간이 아니다. 무언가를 향한 움직임과 생명력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특히 버려진병의 코르크 마개는 ‘치즈의 눈’처럼 외부와 내부의 소통 가능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쓰인다. 작가는 앞으로 ‘숨을 쉬고 있는 상자’작업과 병행해꿈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할 작정이라고 말한다.“이상적인 의미의 꿈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꾸는 꿈을 통해 내적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서울대 조소과와 일본 다마 미술대학원을 나온 그는 일본 유학시절 일본 이과전(二科展)에서 특선을 받기도 했다.6월말에는 도쿄 이낙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김종면기자 jmkim@
  • 북한화가 작품 첫 서울나들이

    북한이 자랑하는 천재소녀화가 오은별(20)의 개인전이 서울에서 열린다.㈜아트빌 미술방송국은 오씨의 조선화(한국화) 48점을 입수,5월3일부터 16일까지 서울 목동에 있는 아트빌 미술방송국과 아트빌 조형연구소에서 전시한다.북한출신 화가의 개인전이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만 두살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당시 평양3역 장충유치원에 다니며 꽃·대나무·기러기·병아리 등을 소재로 해맑은 동심을 그려냈다.특히 기러기 그림을 잘 그려 지금도 ‘기러기소녀’로 불린다. 다섯살 때는 ‘전국 청소년미술전람회’에 참가해 특등을 차지해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87년엔 3만명이 참가한 국제어린이미술전람회(모스크바)에서1등상을 받는 등 지금까지 십수차례에 걸쳐 국내외에서 입상했다.북한당국은 일찍부터 그의 천재성에 주목,영어로 작품집까지 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않고 있다. 이번 전시작중엔 무리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나 부리를 마주하고 장난치는 병아리,어미닭 주위에 모여 노는 병아리 그림 등이 포함돼 있다.유치원때 그린 것들이지만20대 작가에 버금가는 역량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그는 현재평양미술대학에 재학중이며 동생 오옥별도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 [새세기를 새롭게 비전’한국21’](12)’고급문화의 위기’

    (12)'고급문화의 위기'어떻게 극복할까 한 원로 연극인은 “6·25 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한탄한다.전쟁 직후 피난지 부산에선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고 한다.“연극공연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 한국연극의 앞날은 밝다”고들 했다는 것이다.그런데 상황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50년대 젊은이들이 장년·중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는 동안 70년대에도,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젊은이들이 있어 한국연극의 앞날은 밝다”는 말은되풀이됐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선 지금도 연극공연장에서 나이든 관객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한 때의 문학청년·소녀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우리 대학은 엄청난 숫자의 문학전공자를 배출했다.과거엔 대학 전공의 절반가까이가인문계였고,그 인문계의 절반 이상은 어문학이었다.지금도 어문학 전공자는적지않은 숫자가 배출된다.공연예술이나 미술 영화 등을 포함하면 예술전공자의 숫자는 훨씬 불어난다. 그럼에도 고급문화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들 한다.시나 소설은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몇몇을 제외하면,정부가 예산으로 생계비를 보조해야 할 정도로 책이 팔리지 않는다.글을 실어줄 지면은 늘었다지만, 원고료를 제대로주는 문예지는 많지 않다.공연예술 역시 공연장은 언제나 초대권 관람객으로 채워지거나,빈자리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애호가는 고사하고, 예술의공급자이자 수요자가 되어야 할 그 많은 전공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외형으로만 보면 우리 사회는 누구든 쉽게 고급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고급문화의 대중화’가 이미 이루어져 있어야 정상이다.그러나 현실은 고급문화대중화가 아니라 ‘고급문화의 특권화’나 ‘고급문화의 대중문화화’라는양극단으로만 치닫는다. 특권화의 길을 걷는 대표적인 분야는 음악과 무용·미술.서민들이라면 ‘돈없으면 자식들에게 가르치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 대표적 분야이기도 하다. 이른바 고급문화의 전통이 굳건한 서구사회에서 연주자나 무용수·화가의 신분은 그리 높지 않았다.그러나 ‘고급문화’라는 수식어를 달고 수입되면서한국의 연주자나 무용가·화가는 경제적 상류사회의 전유물이 됐다. 도쿄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우에다 유조는 한국의 미술계를 진단하며 “왜예술대학이 예술인만 길러내느냐”고 반문한다.해외의 예술대학처럼,예를 들어 미술대학이라면 큐레이터와 미술관 운영,미술조명 등의 전문가를 함께 길러 내야 미술분야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지만,한국적 현실에선 어려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선진국이라면 회화나 조각 전공같은 창작 분야든,미술조명 같은 창작지원 분야든 사회적인 지위와 수입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그러나 한국에서 미술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고,잘해도 수입이 한정된미술조명을 택할 이유가 없다.여기엔 선진국보다도 그림값이 비싼 우리 미술시장의 왜곡된 구조도 한몫을 한다. ‘대중문화화’의 길을 걷는 대표적인 고급문화는 문학과 연극이다. 전체적으로는 침체되어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활기를 띤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대중문화적 속성이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문학작품과 연극공연의 일부가 잘 팔려나간다 해도 그것은 대중성 때문이 아니라, ‘예술성’이라는 후광을 업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귀기울여야 한다. 시인 김정란은 “대중은 그 작품이 문화적 허영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에 읽는 것이지,그 작품을 대중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그러면서 실제로 “나는 대중문학을 한다”고 공언한 베스트셀러 작가는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고급문학으로 포장된 대중문학이 문학의 존재기반을 뒤흔든다는 것이다. 연극도 마찬가지.벗기는 연극이 관객을 모으는 까닭은 ‘포르노’이기 때문이 아니라 연극이라는 ‘예술’로 포장했기 때문이다.실제로 벗기는 연극을시도하여 재미를 본 한 제작자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더욱 선정적인작품을 계속 무대에 올린다.논란이 가열될수록 손님은 더 들고, 비교적 순수한 연극인이라도 사법처리라는 ‘법’과 맞서는 이유가 장삿속인줄 뻔히 알면서도 벗기는 ‘예술’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문학평론가 이태동은 문화를 “신이 불완전하게 만든 세계를 인간의 교육과훈련,그리고 사회적 경험을 통하여 완성시키는,인간적인 영역과 가치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이른바 고급문화가 중요한 것은 이처럼 대중문화라면 아예 수행하지 못하거나,아니면 조금밖에 수행하지 못하는 ‘인간적인영역과 가치를 확대하는’핵심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한국사회가 왜 고급문화를 ‘정상화’하고,나아가 부추겨야 하는지는 이 말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서동철 이순녀기자 dcsuh@. *우리의 전통음악 활성화를. 한 국문학 교수는 몇년전 인도방송이 만들어 해외에 내보낸 프로그램을 TV에서 본 때의 경험을 잊지못한다.20분 남짓한 프로그램은 인도의 전통악기인 시타르로 전통음악의 한 형태인 ‘라가’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그 교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지붕도 없는 공회당에 모인 사람들의 남루하고 지친 모습이 안쓰러웠다.그러나 연주가 시작되고,음악이 절정을 향해가면서 그들의 표정은 희열로 변해갔다. 라가가 잘 차려입고 멀리 떨어진 특별한 장소로 가야만 즐길 수 있는 예술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그렇다해도 한국같으면 해외에 보내는프로그램에 남루한 사람들만 모아 찍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제대로 배웠을 것 같지도 않아보이는 사람들이 서양 고전음악의수준을 뛰어넘는다는 라가를 이해하고 몰입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엔 나레이션도 없었다. 보는 사람이 라가를 함께 즐기고,몰입하는 청중과 호흡을 같이하지 않는다면 한낱 가난한 인도의 현실을 보여주는 화면에 다름아니다.그것이 고급문화의 힘이고,고급문화로 단련된 사람들의 자존심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한국의 전통음악 문화는 어떨까.물론 라가가 인도음악에서 가장 인기있는일부분인만큼 전체 음악문화의 양상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한국의 전통음악은 라가만큼 생명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사물놀이다.농악을 새로운 연주형태로 만들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는 점에서 뚜렷한 성공사례일 것이다.그러나 사물놀이가 환호를 이끌어내는 동안 정악과 아악이 침체의 길을 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200년전 사람이라고 해서,그들이 작곡한 음악을 옛날음악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그럼에도 정악과 아악은 시대에 뒤진 옛날음악취급을 받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음악학자들은 걱정한다.가치를 몰라서그렇게 보는 것이지,알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윤미용 국립국악원장은 “사물놀이가 우리 민족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정악은 우리의 세련된 문화와 높은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정악을 외면하면 한국 음악문화의 절반을 잃어버리는 정도를 넘어 음악적으로는 우리가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줄 근거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순녀기자 coral@. *문화 지원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현재 한국에는 31개 공공 교향악단과 20여 민간 교향악단이 활동한다. 서양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사람들은 숫자만 보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유럽이나 미국은 갈수록 젊은층이 고전음악을 외면하고 있어서 교향악단이 쇠퇴기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크로스 오버’가 유행하는 이유도,‘문화의 다양화’등으로 포장하여 갖가지 애드벌룬을 띄워 놓았지만 고전음악 종사자들이 살아남기 위한고육지책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고전음악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일까.그러나 우리 교향악단 단원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순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단원들은 대부분 조기 음악교육을 받았다.상당수는 나름대로 ‘영재’소리를 들었다. 음악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으면 2,000만∼3,000만원짜리 악기를 사고, 한달에 200만∼300만원을 내 유명교수나 교향악단 단원에게 레슨을 받는다. 대학을 졸업하면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순서.그러다 학업을 마치고 교향악단단원이 되면 한달에 60만∼70만원을 받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이름있는 교향악단에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민간 교향악단이라면 사정은 더욱 어렵다.많은 민간단체들은 월급보다는 수당으로 ‘수고비’를 주는 형편이기 때문이다.연습이나 연주회를 늘리려고 해도 레슨을 해야하는 단원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다. 반면 몇몇 교향악단은 동구권 출신 연주자를 쓴다.그들은 수천만원 짜리 악기를 갖고 있지도 않고,수백만원 짜리 레슨을 받지도 않았다.대부분 평범한가정에서 태어나 예술가라기보다는 직업인이 되기 위해 음악을 배웠다. 봉급은 한국인단원에 비해 많지 않지만 고향에서 받던 액수보다는 많다.현상황에 대한 만족도는 내국인 단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연주횟수가 많아져도불평하지 않는다. 연주가 많아지면 연습이 많아지고,당연히 실력도 늘어난다.음악인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이처럼 연주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국인 단원들은 레슨비가 주수입원인 몇몇 유명 교향악단 소속이 아니라면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경제적 ‘홀로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음악인의 경제적 종속은 음악계의 경제적 종속으로 이어졌다.이제 우리 음악계는정부든,기업이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굴러가지 못하는 상황이다.그러니 음악계 자체가 스스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가 되지 못하고,경제·사회적 상황에 좌우되는 종속변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문화지원 정책은 문화예술이 종속변수가 되기를 오히려 강요하는듯 하다.문인에게 주는 창작지원금 사업에서 보듯,창작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벌이게 만들었다. 이제는 배고픈 이들에게 밥값을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원인처방을 내려해당 장르의 구조를 바꾸어 가는 방식으로 고급문화 지원정책의 패러다임을바꿔야 한다. 서동철기자
  • ‘예술경영’차세대 인기직업으로 뜬다

    지난 8월말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실시한 첫 공채직원 선발 경쟁률은 무려 100대1이었다.17명을 뽑는데 1,700여명이 몰린 것이다.극심한 취업난 탓도 있겠지만 예술단체에서 일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삼성문화재단이 매년 실시하는 ‘멤피스트’(문화예술인재양성제도)에서 지원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분야 역시 예술경영이다.90년대초 영화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듯 이제는 예술경영이라는 신직종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처럼 보인다. 국내에 예술경영이란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0년전 단국대 경영대학원에 석사과정이 처음 개설되면서부터.이후 최근 2∼3년새에 중앙대(예술대학원) 경희대(경영대학원) 숙명여대(정책대학원) 서울시립대(도시행정대학원) 홍익대(미술대학원)등이 특수대학원안에 예술경영 과정을 잇달아 만들었다. 해외유학파도 갈수록 늘고 있다.LG연암재단의 김주호부장(영국 시티대) 스튜디오 메타의 이승훈실장(뉴욕시립대) 문예진흥원 교육연수팀의 홍영주씨(뉴욕대)등 현재 20여명의 미국·영국 유학파들이 각 문화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그러나 현장경험 없이 2∼3년의 외국유학만으로 섣불리 일에 뛰어들었다가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는 이들도 적지않다.예술의 전당이 전문적 예술경영의 모범 사례가 된 이후 각 예술기관·단체도 앞다퉈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새로운 시도와 실험으로 한국적 예술경영과 마케팅의 모습을 보여준 정동극장과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디딘 세종문화회관 등을 비롯해 전문 예술경영은빠른 속도로 확산될 전망이다. 미국 아메리컨대학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한 문화관광부 도서관박물관과 용호성 사무관은 “앞으로 2∼3년내에 상당수의 문예회관이 독립법인화하고,현재 33관에 불과한 문화의 집이 대폭 늘어나게 되면 예술경영 전문인력들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예술경영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문인력의수급을 위한 제도적 기반위에 이들을 위한 자격인증제와 의무고용제,그리고인턴제도 등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순녀기자
  • 구청 화장실에 가면 진짜‘볼 일’이 있다

    ‘화장실에서 웬 작품전시회?’ 송파구(구청장 金聖順)가 민원인이 많이 찾는 구청 1·2층 화장실과 로비에서 작품전시회를 갖기로 해 화제다.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열리는 작품전시회의 제목은 ‘송파구청 화장실에는 ‘볼일’이 있다’이다. 관학 자매결연을 한 경원대 미술대학원 졸업생과 재학생 5명이 15점의 작품을 전시한다.변기나 불결한 화장실문화 때문에 불쾌했던 기억 등을 형상화함으로써 화장실 문화의 개선을 도모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한편 송파구는 그동안 송파나루공원의 공중화장실을 청결하고 쾌적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수준높은 휴식공간으로꾸며 호평을 받았으며 ‘화장실문화 개선을 위한 시민의 모임’을 구성하는등 화장실 문화개선에 역점을 두어왔다. 조덕현기자 h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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