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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필름 “전액 무상 영화학교 2015년 개교”

    명필름 “전액 무상 영화학교 2015년 개교”

    영화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당을 나온 암탉’ ‘건축학개론’ 등을 만든 제작사 명필름이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파주출판도시에 영화학교를 만든다. 명필름의 심재명·이은 공동대표는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에 30억원 상당의 개인재산을 내 ‘명필름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영화학교와 미술관 등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2015년 2월 개강 예정인 명필름 영화학교는 숙식이 제공되는 2년 과정 기숙학교로 전액 무상으로 운영된다. 극영화·다큐멘터리 연출, 제작, 연기, 미술, 촬영, 편집, 사운드 등의 세부 전공으로 나눠 해마다 총 10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이은 대표는 “한 개인이 영화를 하고 싶을 때 곧바로 충무로로 나올 수 없고 일정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사회가 제도적으로 육성할 필요를 느꼈다.”면서 ”이 학교를 통해 매년 두 편의 극영화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작품이 나오게 되는데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까지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 작품은 명필름이 제작하는 다른 영화들과 같은 방식으로 개봉이 이뤄질 것”이라며 “졸업 작품이 곧 감독 데뷔작이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신입생은 나이, 국적, 연령 제한이 없으나, 실제 영화화를 목표로 한 프로젝트를 얼마나 성실하게 구상해 왔느냐를 평가할 방침이어서 현장 경험이 있는 이들이 선발될 가능성이 크다. 영화학교는 명필름이 파주출판도시 2단계 개발 부지에 건립을 추진 중인 회사 사옥, 미술관, 예술영화전용관과 함께 들어선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시코쿠 기차 여행

    시코쿠 기차 여행

    매일 서너 시간씩 꼬박 기차를 탔다. 명승지가 많은 도시도 갔고, 역장 없는 간이역도 들렀다. 오솔길처럼 난 숲 속을 한 량짜리 기차로 달릴 땐 거의 창문에 매달려 갔다. ‘올 시코쿠 레일 패스’로 본전 뽑고 돌아온 시코쿠 기차 여행.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동미 취재협조 럭키투어 02-734-6656 4박5일간의 느린 여행 기차여행에는 비행기나 배로 하는 여행과는 다른, 막연한 낭만이 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릴 때, 생각은 아무런 제약 없이 쑥쑥 커지고 상상이 되어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알랭 드 보통 역시 <여행의 기술>에서 ‘모든 운송 수단 가운데에서도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기차일 것’이라고 썼다. ‘열차 밖의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며’ 영감을 준다. 한가로운 논과 밭을 옆에 두고 달리면서 나의 생각들도 적당한 속도로 함께 달렸다. 2년 전에 왔던 시코쿠의 늦겨울을 기억해냈고, 폭염이 쏟아지는 시코쿠의 여름 속에 사람들은 모두 거리에서 사라졌다. 돌아다니느라 땀을 흠뻑 흘리고 올라탄 시코쿠의 열차는 시원한 여유와 휴식을 제공하며 다음 목적지로 데려다주었다. 4박5일 동안 기차를 타고 시코쿠에 있는 네 개의 현들을 모두 밟아 봤다. 시코쿠는 일본을 구성하는 네 개의 주요 섬 중 가장 작은 섬이지만, 섬 안에 네 개의 현(우리나라로 치면 도)이 있는 큰 섬이다. 때문에 네 개의 현을 다 다니려면 여간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올 시코쿠 레일 패스’가 있어 더욱 살뜰히 돌아볼 수 있었던 여행이다. 올 시코쿠 레일 패스는 JR 노선뿐만 아니라 지역간 특급열차와 기타 사철, 전차 등을 정해진 기간 내에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다. 2일, 3일, 4일, 5일짜리 패스 중 자신의 일정에 맞게 선택해 원하는 지역으로 기차여행을 떠나면 된다. 한두 여행지에서 충분히 머무는 게 목적인 사람보다는 다양한 열차를 타고 시코쿠의 작은 마을들을 만나 보고픈 여행자에게 더 유용하다. 한 칸짜리 카이요도 하비 열차를 타고 좁은 숲속 길과 작은 마을의 간이역들을 지난 시간은 이번 기차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덜커덩거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도 다녀왔고, 무인역에서 일하는 개암나무 할아버지도 만났으며, 고치에 사는 요괴들도 만나고 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고토히라에서 고토덴 열차를 타고 리츠린 공원에 도착하는 중 2 오보케협곡을 따라 30여 분간 뱃놀이를 즐길 수 있다 3 세토내해의 드넓은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이시즈치 특급열차 4 작은 간이역들과 깊은 산속 길을 달려 도착한 오보케역의 풍경 5 고토히라구 신사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비석들. 신사에 헌금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비석들이다 6 도롯코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던 도카와역 ▶travie info * 시코쿠 가는 방법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에서 다카마쓰(가가와현)와 마쓰야마(에히메현)로 가는 직항편을 일주일에 3회 운영하고 있다. 마쓰야마로 가는 항공편은 화·금·일요일, 다카마쓰로는 화·목·일요일에 출발한다. 다카마쓰로 입국하고 마쓰야마에서 출국하는 일정(그 반대)도 가능하다. 인천에서 소요시간은 각각 1시간 30분여 정도다. * ‘올 시코쿠 패스’란? JR뿐만 아니라 기타 사철 및 지역철도도 이 패스로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한 칸짜리 특급 열차에서 전차, 지역간 특급열차 모두 탑승 가능하다. 자유석은 물론 패스를 이용해 좌석을 미리 지정할 수도 있다. 시코쿠의 다카마쓰역, 마쓰야마역, 도쿠시마역, 고치역 내 관광안내소와 간사이 우메다역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판매 신청서를 작성하면 바로 구입 가능하다. 한국판매점 럭키투어 02-734-6656 www.tourismshikoku.kr 가격┃어른┃2일 패스 6,300엔, 3일 패스 7,200엔, 4일 패스 7,900엔, 5일 패스 9,700엔 어린이┃2일 패스 3,150엔, 3일 패스 3,600엔, 4일 패스 3,950엔, 5일 패스 4,850엔 칙칙폭폭 첫째 날 다카마쓰에서 시작하다 대개의 여행자들은 인천에서 바로 도착하는 가가와현의 다카마쓰 공항이나 에히메현에 있는 마쓰야마 공항을 통해 시코쿠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여행은 다카마쓰에서 시작해 에히메현의 마쓰야마시를 거쳐 고치현의 시만토 강을 건너고, 도쿠시마현의 오보케 협곡을 지나 고토히라에서 머문 뒤 다시 다카마쓰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하루에 꼬박꼬박 3~4시간 이상 기차를 탔는데, JR기차를 포함해 호빵맨 열차, 피규어로 장식된 가이요도 하비 트레인, 사방이 뚫려 있는 토롯코 궤도열차 등 다양한 기차들로 갈아탔다. 게다가 내리는 역에서는 타고 온 기차 노선의 이름이 적힌 호빵맨 도장을 찍을 수 있었는데(심지어 기차 안에서도!), 꼬마들은 당연히 좋아하거니와 어른들도 꾹꾹 도장을 찍는 게 그리 유치한 행동은 아니었다. 어차피 여행은 평소에 하지 않는 일탈과 엉뚱함과 자유를 위한 시간 아닌가. 그래서 읽던 책 맨 뒤 페이지에 나도 호떡만큼 큰 호빵맨 도장을 꾸욱 찍고 다카마쓰역에 내렸다. 다카마쓰시가 있는 가가와현은 400년이 넘은 리츠린 공원과 연간 수백만명의 참배객이 찾는 고토히라 궁, 세토대교 부근에 위치한 세토우치 미술관 등 볼거리가 풍부한 여행지다. 특히 다카마쓰항에서 페리를 타고 들어가는 나오시마섬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중 미술관과 베넷세 하우스 등 섬 전체가 세계적인 작가들의 예술품으로 꾸며진 ‘아트의 섬’으로 유명하다. 가가와현에서 하루 이상 머물 계획이라면 나오시마 섬을 들어가 보는 것도 좋다. 다카마쓰 시내에서 머문다면 다카마츠츄오 상점가는 필수 코스다. 총길이 2.7km에 이르는 일본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 상점가로, 이 안에는 무려 800여 개에 달하는 상점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워낙 상점가가 거대하다 보니 안에는 다시 8개의 개성 강한 쇼핑거리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거리가 마루가메마치 상점가다. 20년에 걸쳐 단계별로 정비해 온 이 거리는 오래된 일본의 상점가를 되살리려는 사업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유리로 천장이 만들어진 아케이드는 더위와 추위를 막아 주고, 날씨에 관계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 편리하다. 루이비통 매장까지 들어선 이 상점가의 한 이자까야에서 닭다리 구이와 맥주를 마시며 첫날밤을 보냈다. 다카마쓰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닭다리 구이인데, 어미 닭다리 구이와 새끼 닭다리 구이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살이 연하고 야들야들하면서도 독특한 후추맛이 나는 영계 닭다리 구이와 기린 생맥주를 마시니 일본 여행이 달착지근하게 감겨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이시즈치 열차 앞 기차 안내원 2 현재 일본에 12개밖에 현존하지 않는 에도시대 이전에 건축된 천수의 마쓰야마 성 3 이마바리역 내에 위치한 자이언트 스토어 4 에히메현의 도고온천역 앞에 있는 봇짱 가라쿠리 시계. 매 정시마다 시계탑이 열리고 <봇짱>의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5 정겨운 마을과 숲속 오솔길을 달리던 한 량짜리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 칙칙폭폭 둘째 날 봇짱열차 타고 과거로 다카마쓰 ▶▶▶ 마쓰야마 도고온천 다카마쓰에서 마쓰야마로 가는 특급열차 ‘이시즈치’는 시코쿠섬 북서부의 세토내해를 굽이굽이 돌아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탁 트인 바다와 경사면을 따라 자리한 마을의 경치를 기차에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코스다. 구루시마 해협 근처에 있는 아마바리역에 잠시 내려 구루시마 해협의 대교와 시마나미 바닷길도 헤아려 본다. 시마나미 해도는 이마바리와 히로시마현을 9개의 다리로 잇고 있는 해도로, 약 70km의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어 사이클링 명소로도 손꼽힌다. ‘사이클링의 성지’답게 이마바리역 옆에는 유명한 스포츠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자이언트 스토어가 위치해 있다. 일본 전역에 있는 8곳의 자이언트 스토어 중 최초로 렌탈 사이클 서비스를 선보이는 이곳에는 전문장비와 샤워룸까지 갖추어져 있어 사이클링 루트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사람들은 이곳에서 크로스 바이크와 헬멧을 대여해 ‘선라이즈 이토야마’로 먼저 간다. 60번째 사이클링 터미널인 이곳에 구루시마 해협 대교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에히메현의 최대 도시인 마쓰야마에서는 도고온천을 빼놓을 수 없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1894년에 건축된 도고온천의 본관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목욕탕 ‘아부라야’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고,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봇짱(도련님)>에도 등장한다. 저녁 무렵이 되자 유카타를 입고 수건을 든 사람들이 온천 앞 거리를 활보한다. 그 풍경이 시계를 되돌려 19세기로 돌아간 듯 낯설고 옛스럽다. 마침 봇짱 가라쿠리 시계가 정각을 가리키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튀어나왔고,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울렸다. 나는 마쓰야마에서 봇짱열차를 타고 과거로 가고 있었다. 칙칙폭폭 셋째 날 호빵맨, 피규어와 함께 고치 ◀◀◀ 마쓰야마 아침 일찍 마쓰야마에서 우와지마로 가는 특급열차 ‘우와카이’에 올랐다. 특급열차들은 속도가 빠르고 편안했지만 셋째 날까지 타고 온 열차들이 비슷비슷해서인지 기차 여행에 대한 감흥도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이번에 탄 호빵맨 오렌지 열차가 동심 어린 볼거리를 던져 준다. 호빵맨 열차는 이 만화를 그린 야나세 다카시 작가가 고치현 출신이라 시코쿠에서 운행하는 열차노선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다행히 호빵맨 열차 뒤에 탄 카이요도 하비트레인부터 풍경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푹푹 찌던 날씨도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비를 뿌렸다.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은 일본 피규어 제조회사인 ‘카이요도’사의 피규어들을 차량 안팎에 디자인한 기차인데, 달랑 한 량짜리 열차라는 점이 특이했다. 한 량짜리 기차에 기관사는 세 명이다. 앞에 두 명, 뒤에 한 명이 앉아 운전을 한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철로가 미끄러워 열차는 경사면을 오르지 못했다. 기관사들이 내려 철로 위에 모래를 뿌려놓고 다시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기차를 몰았다. 그 숲 속에서 예고 없이 15분 정도가 흘렀다. 멀리서 나란히 달리던 논과 평야는 어느새 사라지고, 고치현의 산속 작은 마을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작은 마을과 간이역을 촘촘히 지나면서 비를 맞은 풍경은 더욱 싱그러운 녹색으로 진해졌다. 깊은 산속에서 흘러나와 도사만으로 흘러가는 시만토강이 모습을 드러냈고, 시만토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휴게소에서 이 지방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든 소박한 점심도 먹었다. 도카와역에서 일행은 도롯코 열차로 갈아타고 여정을 이어간다. 이번엔 두 량짜리 열차다. 뒤에 달린 칸은 그나마 창문도 없다. 사방이 다 뚫린 기차는 터널과 숲속 길을 번갈아가며 열심히 달렸다. 비가 들이쳤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앞 칸으로 피하지 않았다. 시만토강을 내려다보면서 달리는 이 절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도롯코 열차가 우쓰이가와역에 섰고 그곳에서 일행은 카이요도 하비관과 갓파관을 둘러보았다. 카이요도 하비관은 2009년에 폐교가 된 우쓰이가와 초등학교의 체육관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으로, 카이요도사의 역사와 피규어 콜렉션을 모아 놓은 곳이다. 세계적인 프라모델들과 최신 피규어, 공룡, 미소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피규어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름부터 생소했던 갓파관은 쉽게 말하면 일본에서 전래되어 오는 상상의 동물 ‘갓파’를 모아 놓은 박물관이다. 시코쿠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갓파는 머리에는 접시, 손과 발가락에는 물갈퀴가 달렸고 입이 튀어나온 요괴인데, 인간의 나쁜 액을 막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시코쿠의 내륙에는 깊은 산과 계곡이 많아서인지 산마을마다 전해 내려오는 요괴도 많다. 요괴 인형은 식당 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가 하면, 사물함에도 붙어 있다. 마음 한켠에는 요괴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요괴들을 정겨운 이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인상 깊게 남았다. 1 폐교가 된 초등학교의 체육관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 카이요도 하비관 2 개구리와 원숭이를 합쳐 놓은 듯한 상상의 동물 갓파를 다양한 조각과 캐릭터로 전시해둔 갓파관 3 기차 안 한켠에 공룡과 다양한 캐릭터의 피규어들을 전시해둔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 4, 6 열차의 외관과 내부가 호빵맨과 그 친구들로 그려진 호빵맨 열차 5 지난해 7월 카이요도 하비관의 개장과 함께 1년간 운행하기로 했던 카이요도 하비 트레인은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좋아 1년 더 연장 운행 중에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칙칙폭폭 넷째 날 비경을 가르는 도산선 루트 코토히라 ◀◀◀ 도쿠시마현의 오보케 ◀◀◀ 고치 시만토강을 굽어보고 고치를 거쳐 오보케 협곡을 지나는 JR 요도선과 도산선 루트는 이번 기차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큼 아름다운 길이었다. 고치의 자연 비경과 순박한 사람들을 고스란히 만나는 길이라 더욱 생동감이 넘쳤다. 오보케역에 내리니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역장 모자를 쓰고 앞니가 두 개뿐인 남자 형상의 나무 조각상이 서 있다. “오보케역은 무인 간이역입니다. 도착하신 분들이 이곳에 아무도 없어 쓸쓸할까 봐 마을 사람들이 개암나무로 역장 할아버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 위에 보시면 위임장도 보이시죠? 고나키 할아버지는 작년 7월부터 이 역으로 출근을 하고 계신데요, 아직 한번도 안 나온 날이 없으시답니다.” 마을 관계자의 말을 듣고 보니, 고나키 역장의 표정이 마치 ‘어서 오십시오’하고 말하는 듯했다. 역 안에는 역무원 모자를 쓴 개의 사진도 걸려 있었는데, ‘고오타로’라 불리는 이 개는 매주 일요일마다 이곳에 출근해 고나키 역장 할아버지의 일을 돕는다고 했다. 이 정겨운 스토리에 나는 오보케 마을을 보기도 전에 마음을 빼앗겼다. 무인역 하면 아련히 떠오르는 쓸쓸함을 이 마을에선 찾아볼 수 없다. 오보케역에서 보이는 빨간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 지역은 오보케와 이야 마을로 나뉘는데, 우리가 들어선 곳은 이야 마을쪽이었다. 역 바로 앞에 있는 보께마트에서는 주인 유키코 아주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일행을 맞는다. 이 마트에서는 이야 마을에서 만드는 식료품들을 살 수 있는데, 겉이 매우 딱딱한 이와 두부와 이 마을에서 만든 녹차 등을 쉴 새 없이 권하신다. 훈훈한 이야기만큼 후한 인심과 정이 뚝뚝 묻어나는 마을이다. 일본에서 3대 비경으로 꼽히는 이야 계곡은 츠르기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강의 물줄기가 시코쿠 산지를 날카롭게 파헤치며 20km에 걸쳐 이어진다. 우리는 2억년 전의 지층인 함력편암이 바위와 절벽을 이룬 오보케 협곡 아래의 강줄기를 따라 30분 동안 뱃놀이를 즐겼고, 덩굴나무를 엮어 만든 흔들다리 ‘카즈라바시’도 건넜다. 10여 미터 아래의 계곡물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길이 45m의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은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영원히 건너지 못할 다리처럼 여겨졌으나, 거의 울다시피 하며 겨우 건넜다. 어쨌든 짜릿한 스릴을 느끼기에는 최고다. 신선한 가다랑어를 통째로 꼬치에 끼워 구운 것을 사람들이 핫도그처럼 들고 다니며 먹는 모습도 신기했다. 오보케의 마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다. 오보케 협곡에서 뱃놀이와 다리 건너기로 기력을 소진한 채 난푸 20호를 타고 고토히라에 도착했다. 온천 호텔에 머물며 낮의 피로를 풀고 싶었으나, 온천욕은 밤으로 미루고 고토히라구에 먼저 올랐다. 일본에서 2대 신사로 꼽히는 이곳은 ‘곤피라산’이라 불리는 수호신을 참배하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참배길은 사람이 못 오면 개의 목에 돈을 달아 대신 보낼 정도로 유명했고, 일생에 한 번은 참배하고 싶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785단의 긴 돌계단을 오르면 고혼구에 이르며, 여기서 583단의 계단을 더 오르면 최종 목적지인 오쿠샤에 다다른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부적을 사고 소원을 빈다. 탁 트인 사누키 평원과 평원 위에 우뚝 솟은 사누키 후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 소원이 사누키 평원을 지나 후지산에도 닿기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 1 무인역인 오보케역에서 고나키 역장을 도와 일요일마다 역으로 출근을 하는 고오타로 강아지 2 덩굴나무만을 엮어 만든 카즈라바시 다리 3 오보케 협곡 유람선 표를 파는 지역 휴게소 내의 음식점 한켠에는 고치현에 사는 요괴 인형이 놓여 있다 4 고토히라구의 고혼구 부근에 세워져 있는 석등 5 오보케역에서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개암나무로 만든 고나키 역장 6 고토히라역에서 내리면 유난히 낡은 상점과 집들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운치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1 이야 계곡 주변에는 카케나가시 원천의 노천탕을 갖춘 온천도 여러 곳 있다 2 100여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야마을의 오보케역에 놀러나오신 동네 할머니 3 이야마을로 시집 와 51년째 살고 있는 보께마트의 유키코 아주머니. 마을에서 직접 딴 고추 바구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4 고토히라 신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본 길거리의 작은 사물함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깊고, 곱고, 매끈

    깊고, 곱고, 매끈

    미술관이란 공간 자체, 그러니까 하얀 벽에다 작품 내걸어 시선을 고정시키도록 유도하는 화이트큐브 자체가 남자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이리저리 힐끗대는 사냥꾼 습성이 짙게 밴 남자에게 ‘닥치고 작품!’을 외치는 꼴인데, 이건 변기에 앉아서 소변 보라는 마누라의 지청구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내년 1월 27일까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아니쉬 카푸어(58)의 전시장은 여기다 하나를 더했다. 리움의 거대한 화이트큐브만도 벅찬데, 이번에 전시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딱 한단어 밖에 생각 안 난다. ‘여근곡’(女根谷). 그 왜, 백제군 때려잡았다는 선덕여왕의 일화 말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번에 선보이는 그의 작품의 특징을 뽑아보자면 깊은 공간감, 고운 색감, 미끈한 표면이다. 관객을 맞이하는 첫 작품은 지름만 8m에다 무게는 15t에 이르는 작품 ‘동굴’(Cave)이다. 2~3개 연대 병력 한끼 식사 정도는 거뜬히 해결해줄 수 있을 듯한 거대한 밥솥을 위태롭게 엎어놓은 듯한 이 작품을 두고 작가는 그 앞에 서서 그 안을, 무한한 공간을 들여다보라고 제안했다. 실제 그리 해보면, 그 어두컴컴한 공간이 점차 다가선다. 그 외 작품들, 작가의 명성을 널리 퍼뜨렸던 보이드(Void)시리즈들도 비슷하다. 아주 곱디 고운 원색으로 벽이나 바닥을 뒤로, 아래로 깊이 뚫어놓은 작품들이 여럿이다. 이 깊은 공간감이 폐허와 상실이 아니라 긍정적 생산의 공간임을 주장하는 작품은 벽을 볼록하게 솟아오르게 한 ‘내가 임신했을 때’(When I am pregnant), 20t의 거대한 붉은 왁스 덩어리를 1시간에 한 바퀴 도는 시계형태의 운동으로 정리해나가는 ‘나의 붉은 모국’(My Red Homeland)이다. 임신한 상태, 붉은 이미지라는 것은 어떤 생성을 드러내지만, 거대한 순환고리라는 점에서 그것이 꼭 ‘진보’라 단정할 필요는 없다. 으스스한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돌린 곳은 야외 전시장. 그동안 리움미술관을 상징했던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마망’을 수장고로 밀어넣은, 카푸아의 설치작품들이 있어서다. 잘 닦인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한 작품들이니 야외에서 작렬하는 빛을 받아 번쩍번쩍한다. 아, 드디어 양기 넘치는 작품들인가. 그런데 나가봤더니 젠장, 볼록 거울이 아니라 오목거울이다. 그러니까 구멍을 안 뚫었다 뿐이지 깊이 빨아들이는 공간감은 매한가지란 뜻이다. 작가 스스로도 여성 작가의 작품처럼 보인다는 평이 좋다 하니 말 다 했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작가, 1991년 영국 터너상 수상에 이어 지난 런던올림픽 상징조형물 ‘궤도’를 선보인 카푸어는 영국이 내세우는 대표 작가로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다. 일반 8000원. 초중고생 5000원. (02)2014-69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아름다운 공공건축을 그리며/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름다운 공공건축을 그리며/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서울시 신청사가 문을 열었다. 투입된 공사비 2496억원에 비하면, 많은 시민들로부터 큰 축하를 받지 못하며 문을 열었다.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택시 승객 열 명 중 아홉 명은 좋지 않은 평을 한다고 한다. 신청사의 미학적 감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의 절친한 동료교수는 오래 전부터 ‘서울시 신청사가 완공되는 게 겁난다.’는 말을 하곤 했다. 성남시 신청사는 호화 논란을 일으켰다. 성남시가 3222억원을 들여 신청사를 지었는데, 스텔스 전투기 모양에 수입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로비를 마감하고 관공서 최초로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용인시는 1974억원을 들여 신청사를 지었다가 비판을 받았다. 사무실 공간을 좁게 하는 반면, 로비와 복도는 크게 하고 외관은 유리로 마감했다. 용산구청 역시 1587억원을 투입해 역삼각형의 기하학적 모양에 유리를 입혔다. 이들 신청사가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호화’인지 몰라도, 건축물의 미학적 측면에서는 ‘호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 많은 돈을 쏟아붓고 이 정도밖에 짓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더 크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비정형에 유리로 외장을 하고 있다. 이것이 요즘의 대세인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들은 그 미감에 공감하지 않는다. 필자처럼 미감이 둔한 사람들을 뛰어넘어 수십년 후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비정형에도 수준이 있다. 비정형의 대명사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1973년 문을 열었다. 이곳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연간 200만명에서 400만명의 관광객이 모여든다. 매년 4억 호주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스페인의 빌바오 역시 탁월한 설계자 프랑크 게리를 택하여 비정형의 미술관을 지어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1997년 1500억원을 투입하고 미술관을 개관했는데, 첫해 135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첫해에 건축비를 제하고도 1100만 유로를 남겼다.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빌바오 미술관을 찾지만, 오페라 하우스에 오페라를 보러 가고 빌바오 미술관에 미술품을 보러 가는 사람은 드물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러 이곳에 간다. 공공건물을 지으며 큰 예산을 투입할 수도 있다. 또 비정형의 최신 유행을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건물을 짓고, 최신 유행을 따를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공공건물을 보는 즐거움도 선사해야 한다. 아무리 첨단의 건축미를 추구했다 해도 무지한 민초들일망정 그 미감은 귀신같이 아는 법이다. 또, 제 아무리 위원회를 구성하여 결정권을 부여했다고 해도 건축을 담당하는 정책가들의 책임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일제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일제시대 지어진 건물들을 부수고 새 공공건축물들을 짓는다. 문제는 우리가 새롭게 짓는 건물들이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들보다도 못하다는 데 있다. 67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방학 때 외국엘 나가지 않는다. 요즘엔 웬만하면 국내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학술자료를 다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요금 역시 천정부지로 올라 경제적인 부담도 크고, 비행기 멀미도 생겼다. 이런 와중에 외국에 나가고 싶은 충동이 강렬히 일 때가 있다. 딱 한 가지 이유에서다. 파리나 빈, 혹은 노르웨이의 시골마을에 가서 건축물들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이 엮어내는 마을의 풍경에 감동하고 싶을 때가 있다. 도시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생각 말고 그저 경외와 감동의 순전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 도시의 건축물을 아름답게 짓고, 마을을 그윽하게 가꾸는 일은 이제 한가한 취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격을 높이고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고, 사람들의 심성도 부드럽게 순화시켜 준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공공기관들이 건물의 이러한 가치에 눈 뜨기를 기대한다
  • 천하제일 비색, 고려청자 속살

    천하제일 비색, 고려청자 속살

    중국 송나라에 이어 9세기 말~10세기 초에 청자를 굽기 시작한 고려는 12~13세기 무렵에는 종주국인 송나라를 따돌리며 청자의 색깔과 다양한 형태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특히 12세기 중엽 고려 상감청자는 세계 도자사에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23년만에 국내展… 향로·연적 등 다양한 작품 350여점 국보 18점과 보물 11점,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청자 2점을 포함해 국보·보물에 준하는 고려청자 350여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일본으로 반출돼 일본 중요문화재로 선정된 12세기 작품인 ‘청자 구룡형 정병’은 일본에 소재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만큼이나 구경하기 쉽지 않은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으로 전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6일부터 진행한 고려청자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天下第一 翡色靑磁)이다. 1989년 ‘고려청자 명품’ 특별전 이후 23년 만의 전시회이다. 전시 이름은 송나라 태평 노인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책 ‘수중금’(袖中錦)에서 따온 것으로, 그는 고려청자가 중국의 송 청자를 제치고 천하제일로 꼽혔다고 노래했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1091~1153)도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도기의 푸른 빛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말한다(陶器色之靑者麗人爲之翡色).”라고 기록했다. 박물관은 “송나라의 청자는 화장을 짙게 한 여인이라면, 고려청자는 얼굴의 주근깨가 보이도록 얇게 누드화장을 한 여인”이라고 설명했다. ●日 중요문화재 ‘청자 구룡형 정병’ 국내 첫 전시 색깔도 비색이지만 고려청자의 특징은 다양한 도자기의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박물관 소장 ‘청자 인물형 주자’(국보 167호)와 청자 어룡형 주자(국보 61호), 청자 사자장식 향로(국보 60호), 청자 투각칠보문 향로(국보 95호)와 간송미술관의 청자 모자원형 연적(국보 270호), 개인소장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국보 173호), 앞서 말한 일본의 ‘청자 구룡형 정병’과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청자 동자·동녀형 연적’ 등이다. 상감청자는 화려함에서도 최고지만, 당대 기술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흙그릇을 초벌구이 하면 크기가 23% 정도 줄어든다. 이 초벌구이에 흙의 축소비율이 다른 백토와 흑토를 채워넣어 장식한 뒤 재벌구이를 하면 2차 축소가 일어나기 때문에 자칫 망가지기 십상이다. 도자기 장인들이 섭씨 1300도 이상에서 도자기가 터지지 않을 그 황금비율을 잡아낸 것이야말로 기술이었다. 전시는 오는 12월 16일까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파리 시절의 반 고흐를 만나다

    파리 시절의 반 고흐를 만나다

    11월 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막을 올리는 ‘반 고흐 인 파리’전은 1886~1888년에 이르는, 짧지만 강렬했던 반 고흐(1853~1890)의 파리 체류 시절을 다룬다. 오늘날 고흐 하면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풍경’ 같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얇고도 밝은 붓 터치를 이용한 독특한 그림체를 떠올린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게 그린 건 아니다. 37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가 화가로 활발히 활동한 기간은 불과 생애 마지막 10여년. 그 가운데 네덜란드에 머물러 있던 전반부 6년 동안에는 아주 두껍고 어두운 필체를 구사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농부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화풍의 변화는 동생 테오의 후원 등으로 파리로 오면서 일어난다. 큰 문화적 충격과 함께 인상파,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어떻게 하면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모색해 나가는 시기가 파리 시기다.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때 고흐가 색채, 양식, 구도를 두고 어떤 걱정과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추적하기 시작했고, 7년간의 추적 결과를 모아 지난해 봄 네덜란드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것을 가져온 것이다. 작품은 파리 시기를 중심으로 한 55점의 유화. 파리에서 고흐에게 물감을 제공했던 미술상인을 그린 ‘탕귀 영감’ 같은 작품은 프랑스 로댕박물관 소장작품인데 프랑스 이외 지역으로 반출되는 것은 처음이다. 전시작품들의 보험평가액은 깎고 깎아서 5500억원대에 이른다. 여기에다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진행했던 X선 촬영 사진 등 연구 자료들을 함께 전시했다. 또 눈길을 끄는 대목은 9점에 이르는 자화상들. 고흐는 평생 36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이 가운데 27점을 파리 시기에 그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구를 위해서는 직접 그려 봐야 하는데 돈이 없어 모델을 쓸 수 없으니 자기 얼굴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 본 것이다. 이 가운데 9점의 자화상이 전시된다. 전시 총감독을 맡은 서순주 박사는 “마침 네덜란드 쪽에서 대대적인 미술관 개보수 작업이 이뤄져 이번 같은 전시가 가능해졌다.”면서 “2007년 80만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간 고흐전이 대표작을 모은 일종의 회고전이라면, 이번 전시는 고흐의 천재적 화풍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교육적인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4일까지. 성인 1만 5000원. 청소년 1만원. 1588-261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TV 미술관(KBS1 밤 12시 40분) 작곡가 김형석은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로 이름을 알린 이후 성시경, 아이유 등 수많은 가수에게 히트곡을 선물했다. 클래식을 전공한 그가 발라드의 대부가 된 데에는 드뷔시 등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한편 르누아르의 작품 ‘보트’를 통해 그가 얻은 영감들을 피아노 선율로 전한다. ●오감만족 세상은 맛있다(KBS2 밤 8시 20분) 헝가리의 ‘붉은 황금’이라 불리는 파프리카는 헝가리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식재료이다. 유럽 최대 파프리카 생산지인 헝가리. 특히 세게드와 칼로처 지역은 헝가리 파프리카 산지의 양대 산맥이다. 프로그램에서는 개그맨 김미연과 함께 매운 맛이 진동하는 파프리카 밭에서 직접 딴 파프리카로 음식을 만들어 본다. ●고향을 부탁해(MBC 오후 6시 50분) 심청이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효의 마을 청송 심씨 집성촌 칠봉리. 추수를 시작하기 전 반짝 한가한 이 때, 목화를 수확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1970년대부터 수입 원면과 화학섬유에 밀려 재배 면적이 눈에 띄게 줄어 지금은 목화밭을 구경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이렇게 잊혀져 가는 목화를 살리기 위해 칠봉리 사람들이 나섰다. ●꾸러기 탐구생활(SBS 오후 4시 30분) 고유가 시대에 해바라기 씨로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해바라기 꽃에서 씨앗을 추출해 만들어지는 친환경 대체에너지인 바이오디젤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한다고 하는데…. 꾸러기 대원들과 함께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원유를 대신하고, 환경도 살리는 바이오디젤에 대해 배워 본다. ●다문화 휴먼다큐 가족(EBS 밤 12시 5분) 필리핀 새댁 캐롤라인은 퇴근하는 남편 명섭씨에게 특별한 부탁을 한다. 바로 필리핀 산모들이 즐겨 먹는다는 초록색 망고를 사다 달라고 한 것이다. 명섭씨는 아내가 먹고 싶다는 망고를 사기 위해 시장에 들른다. 하지만 제철이 아니라 망고를 쉽게 구할 수 없고, 명섭씨는 찹쌀떡과 비슷한 팥이 든 떡을 사가기로 한다. ●올리브(OBS 밤 11시 5분) 성우 박일은 브라운관 속 미남 할리우드 배우들의 목소리를 모두 대신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치아성형’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던 중, 젊은 시절 컵 좀 씹던 남자라고 밝혀 출연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 덕분에 치아에는 잔금이 가고 깨지고, 울퉁불퉁 괴물 치아가 됐다고 하는데 그의 현재 치아 건강 상태는 어떨까.
  • 피카소 그림 등 명작 7점 네덜란드 미술관서 도난

    피카소 그림 등 명작 7점 네덜란드 미술관서 도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퀸스트할 미술관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해 피카소와 모네 등 세계적인 화가의 작품 7점이 무더기로 도난당했다고 AFP 통신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테르담 경찰 대변인은 “오전 3시쯤 작품을 도난당했으며 철저하게 준비된 범행으로 보인다.”면서 “누가 어떤 경로로 들어오게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를 찾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사라진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의 ‘광대의 초상’(그림) ▲앙리 마티스의 ‘희고 노란 옷을 입은 책 읽는 여인’ ▲클로드 모네의 ‘런던의 워털루 다리’와 ‘런던의 채링 크로스 다리’ ▲폴 고갱의 ‘약혼녀라 불리는 열린 창 앞의 여자’ ▲마이어 데 한의 ‘자화상’ ▲루치안 프로이트의 ‘눈을 감은 여인’ 등 모두 7점이다. 해당 작품들은 지난해 사망한 네덜란드의 대부호 빌럼 코르디아가 설립한 트리톤재단의 소유로 창립 20주년을 맞아 퀸스트할 미술관에서 19~20세기 화가들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시회를 기획했으며 지난주부터 일반인에게 그림을 공개해 왔다. 트리톤재단은 과거에도 화가 1~2명의 그림을 전시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모든 화가의 그림을 동시에 전시한 것은 처음이다. 미술관에 전시 중인 작품 가운데는 도난당한 6명의 화가 작품 외에도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 마르크 샤갈, 로이 리히텐슈타인, 피에트 몬드리안, 마르셀 뒤샹, 르네 마그리트, 오귀스트 로댕, 앤디 워홀의 그림 150점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퀸스트할 미술관 측은 이날 국영 라디오를 통해 “범인이 미술관에 침입한 즉시 비상벨이 울렸지만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 도망쳤다.”면서 “도난된 미술품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김원일·신달자 등 6명 ‘은관문화훈장’ 받아

    김원일·신달자 등 6명 ‘은관문화훈장’ 받아

    소설가 김원일(왼쪽), 시인 신달자(가운데), 한국화가 서세옥, 서양화가 김창열, 대한민국예술원 음악분과 회원 이영자, 연극배우 손숙(오른쪽) 등 6명에게 은관문화훈장이 수여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5일 20명의 문화훈장 수훈자를 확정해 발표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5등급(금관·은관·보관·옥관·화관)으로 나누어 준다. 김원일씨는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담은 소설 100여 편을 발표했고, 신달자씨는 1964년 여성지 ‘여상’으로 등단한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 왔다. 연극배우 손숙씨는 49년간 15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으며, 서세옥씨는 수묵을 이용한 추상화로 명성을 얻었다. 김창열씨는 물방울 작가로, 이영자씨는 창작 음악 활성화의 대표주자로 알려졌다. 서훈과 시상은 오는 17일 오전 10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진행된다. ■보관문화훈장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 ▲김치수 이화여대 학술원 석좌교수 ▲김복희 한양대 예술학부장 ■옥관문화훈장 ▲염돈호 강릉문화원장 ▲조병두 동주 대표이사 회장 ▲이무호 세계문화예술발전중심회장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신영복 한국미술협회 고문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프로듀서 ■화관문화훈장 ▲최공열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 이사장 ▲이호균 남해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성영관 영천문화원장 ▲이상림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유의호 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 이사장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대중음악 ●손병휘 5집 발매 기념 콘서트 ‘너에게 가는 길’ 19~20일 서울 장충동 스테이지팩토리. 포크 싱어송라이터이자 민중가수 손병휘가 5년 만에 신보를 내놓고 기념 공연을 연다. 노랫말에는 서정과 고백을 담고, 어쿠스틱 기타와 아코디언 등을 내세워 드라마틱한 선율을 선사한다. 5만원. (02)3143-7709. 연극·뮤지컬 ●연극 ‘나의처용은밤이면양들을사러마켓에간다’ 28일까지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 극장.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세 번째 작품. 불륜을 용서와 관용으로 미화한 ‘처용가’를 인간의 나약함, 본성에 대한 억압으로 비틀어 풀었다. 망상과 현실,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가 엉키면서 검은 처용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성열 연출, 이남희·유연수 등 주연. 1만~3만원. (02)3279-2233. ●뮤지컬 ‘칵테일’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 네모극장. 자살절벽에 있다는 이유로 폐업 위기에 몰린 칵테일바 바텐더들이 가계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유쾌한 이야기. 칵테일 쇼와 디스코, 아카펠라 등 다양한 음악을 녹였다. 5만원. (02)2659-7001. 무용 ●LDP_유니크 플레이(Unique Play) 22~23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20주년 기념공연. 왕성한 활동을 하는 무용단 LDP의 대표 작품을 만날 기회다. 발레 기본동작을 확장시킨 차진엽의 ‘킵 유어셀프 어라이브’(Keep Yourself Alive), 20대의 감성으로 인간관계를 들여다본 김재덕의 ‘킥’(KicK), 인간의 본능을 이야기하는 신창호의 ‘디스 퍼포먼스 이스 어바웃 미’(This performance is about me)를 선보인다. 2만~3만원. (02)2263-4680. 미술·전시 ●‘명청(明淸)시대의 회화대전’ 28일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추사 김정희가 모았던 명청시대 중국 회화 60여점을 전시한다. 이 가운데 제주 유배 시절에도 추사가 극도로 아꼈던 화첩 ‘장포산진적첩’(張浦山眞蹟帖)이 눈길을 끈다. 1997년 이후 15년만에 열리는 중국회화전으로 전시작 가운데 3분의2 정도는 국내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02)762-0442.
  • [사설] 다양한 민간 영입으로 공직 전문성 살찌우길

    사회복지사, 수의사, 아랍 전문가, 미술관 큐레이터 등 자기분야에서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닦은 민간인들이 정부의 초급 관리자로 대거 채용됐다. 행정안전부는 그제 민간경력자 5급 사무관 일괄채용시험 합격자 103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그동안 부처별로 수시로 진행됐지만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의 딸 특채 파문을 겪고 나서 지난해 일괄 공채로 바꾼 데 이어 두 번째 배출이다. 29대1의 치열한 경쟁을 거친 합격자의 면면을 보면 30대가 84%로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여성비율이 41%였고, 평균 8년의 민간경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복지시설 관리정책분야에 합격한 임동민(32)씨는 태어나자마자 아동보육시설에서 자랐고, 사회복지사가 돼 13년을 사회복지관에서 근무했다. 사회복지의 수혜자이자 공급자로 살아온 공직 적임자이다. 동물질병 연구분야의 유광수(39)씨도 바이러스학을 전공한 수의사이면서 대학과 국내외 연구소 등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박사학위나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응시할 수 있었던 요건을 완화해 직무분야별로 경력, 학위, 자격증 중 1개 이상을 충족하면 응시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힌 것이 인재 영입에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양한 민간 인재의 전문성과 산 경험이 각종 정책에 잘 스며들 것으로 본다. 또 공직의 숨통을 조이는 고시 중심의 간부 충원 경로가 다양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해 임용된 여성 일등 항해사 등이 공직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게 이를 방증한다. 이와 함께 올해로 도입 12년째를 맞는 개방형 직위제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길 기대한다. 개방직 제도는 그동안 ‘무늬만 개방직’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민간경력자의 공직 유입 확대가 개방과 경쟁이라는 공무원 사회의 해묵은 과제를 푸는 해법일 수 있다. 공직의 순혈주의와 보신주의가 꼬리를 내릴 날이 멀지 않았다.
  • 아낙네들 손에 피어난 유럽명화 속 집 이야기

    아낙네들 손에 피어난 유럽명화 속 집 이야기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1876년 작 ‘점심식사’(큰사진). 점심 때인데 어둡다. 창에 어리는 빛으로 봐서는 날이 흐리거나 방이 구석진 곳에 있어서가 아니다. 두꺼운 커튼에다 어두운 가구들 때문이다. 방을 더 어둡게 하는 것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식사에만 몰두하는 풍경이다. 카유보트의 이 그림을 두고 흔히 과감한 원근법 얘기를 한다. 관람객이 식탁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 맨 아래의 접시가 아예 평면으로 보일 지경으로 원근법을 강하게 적용했으니. 그런데 정치적 해석도 있다. 1871년 파리코뮌이다. 코뮌 세력의 바리케이드 저항을 막기 위해 파리는 아예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확 밀어버리고 대로를 냈다. 그걸 주도한 이가 오스망 남작이고, 오늘날 볼 수 있는 파리 시가지의 원형은 이때 형성됐다. 저자가 이 그림을 두고 “오스망 시절 파리의 호화로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숨막히는 권태와 고독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카유보트의 독창성”이라고 해둔 이유다. 파리코뮌의 상처가 그림에 깊게 배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심영아 옮김, 이봄 펴냄)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서구의 명화들을 ‘예술혼’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적 풍속화’로 조명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여자고, 제목에 ‘살림’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간단히 볼 책이 아니다. 1차적으로는 에밀 살로메, 요하네스 베르메르, 빌헬름 함메르쇼이, 에드가 드가 등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중세에서 20세기까지 유럽의 인테리어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지만, 저자는 여기서 유럽 모더니티의 흐름도 정확히 짚어 나간다. 가령 근대 초기 한때 “잘 때는 18세기로 가고, 저녁은 15세기에서 먹으며, 시가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때는 동방으로 가고, 몸단장을 하려면 폼페이나 고대 그리스로 가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한 인테리어가 있었고, 이는 고스란히 그림에 드러난다. 이게 가능했던 건 집을 관리할 수 있는 거대한 하녀군단 덕분이다. 그런데 하녀군단이 사라지면서 이런 치장은 사라져 갔다. 대신 등장하는 것은 단순하고 간결한 스타일이다. 그림을 통해 읽는 시대상의 변화, 꽤 매력적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방향없는 몸짓 어정쩡한 시선 그게 우리더라

    방향없는 몸짓 어정쩡한 시선 그게 우리더라

    “맞아요. 저 표정,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저 표정, 그게 어떤 연기나 쇼가 아니라 진짜 사람의 얼굴에서 나오는 표정이라고 봤습니다. 양가성을 가진 표정이지요.” 1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앞두고 있는 오원배(59) 작가를 서울 필동 동국대 작업실에서 만났다. 학교 내 작업실인데 복층 공간이라 높이가 상당했다. 원래 보일러실 옆에 붙은 창고 같은 공간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차지하게 됐고, 학교에서 이리저리 손봐준 데다 사비까지 얹어서 작업실로 고쳐 쓰고 있다.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도 “작업실을 오가려면 시간이 낭비되니까, 학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학교 안에 큰 작업실이 있는 게 꿈이에요. 저야 복받은 거죠.”라고 받아넘긴다. 이번 전시 제목은 ‘회화적 몸의 언어’. 몸의 언어를 내건 전시답게 그림 속 등장인물들의 동작은 아주 크고 다이내믹하다. 다만 뭔가 방향성은 없어 뵌다. 초점 없이 흐릿한 눈처럼, 어두운 굴 속을 더듬더듬 짚어 나가는 모습들이다. 무얼 찾아 나가나 싶어 표정을 살펴볼라치면, 그냥 중립적이다. 당황하거나 겁먹었다든지, 저기 멀리 어디선가 출구에서 나오는 빛을 발견했다든지 하는 표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온몸의 신경세포를 곤두세워 주변 상황을 더듬어 나가는 데만 몰두하는 표정들이다. 작가가 자살이냐, 반항이냐, 희망이냐를 두고 고민했던 알베르 카뮈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이유다. 또 작가의 작품을 두고 ‘실존’, ‘소외’ 같은 단어들이 따라붙는 이유다. ●700~1000호짜리 20점… 미술관 전관 채워 그림은 또 압도적으로 크다. 사실 금호미술관 전관을 다 쓰는 전시라는 말, 그리고 전시하는 작품 수가 20여점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워낙 대작을 많이 선보여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 넓은 공간을 다 채우나 싶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림 하나가 700~1000호다. 캔버스 두 개를 덧대어 만든 작품도 여럿이다. 젊었을 때야 신났더라도 나이 들면서는 은근 후회하지 않았냐 했더니 “이상하게도 대형 작업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고 웃더니 “1980년대 프랑스 유학 때 아주 강렬한 대작들을 많이 봐서 그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또 대학에 자리잡은 작가다 보니 팔리는 작품이 아니라 정말 작품성 있는 그림을 선보여야 한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한다. “앞으로 몇년간은 열심히 사다리를 오르내리겠는데, 더 나이가 들면 전동리프트를 사서 그걸로 오르내려야 할 것 같다.”며 웃는다. 그렇게 큰 캔버스 위에 그려놓다 보니 인물들은 “실제 인체의 3배 크기”라고 한다. ●“닳고 닳은 몽당 붓 거친 느낌 그림 맛 살지…” 또 작가는 몽당 붓을 선호한다. 아니 공사장에서 쓰는 붓도 제법 쓴다고 했다. 부드러운 붓으로는 뭔가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다 직접 물감을 만들어 쓴다. “남들은 천연안료 쓰냐고 부러워하는데 내가 쓰는 건 다 화학약품”이라며 웃었다. 몸에 해로울 법도 한데 아직 별 이상이 없는 걸 보니 더 작업해도 될 것 같단다. 이번에는 독특한 공간도 선보인다. 그간 작업에서 배경이 주로 추상적인 공간이었다면, 이번엔 정밀한 기계식 공장의 풍경이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빽빽하게 기계설비가 들어찬 공간이다. 인천 지역 공장 풍경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림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우연한 기회에 공장을 견학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 분위기와 공간 분할 같은 것들이 시선을 붙잡아 끌었다.”고 했다. 기기묘묘한 철골구조와 요즘은 웬만한 공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벨트 구동 기계들이 쭉 깔려 있다. 특유의 검은색 배경에 비하자면 밝아졌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기계류들이라서 그런지 쇳가루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대작 외에도 틈틈이 그려온 드로잉 200여점도 한데 모아 전시한다. 대작을 보다, 이러다가 회고전을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농담 삼아 물어봤다.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제자들이 많은데, 작품을 위해 이들을 찍어둔 사진을 함께 공개해 버리겠단다. 그림에서 보듯 당연히 인물들은 헐벗고 있다. 긴장하는 게 좋겠다. (02)720-5114.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회복지사·아랍 전문가·수의사·미술관 큐레이터… 민간경력자 103명 사무관 됐다

    사회복지사·아랍 전문가·수의사·미술관 큐레이터… 민간경력자 103명 사무관 됐다

    꼬박 26년을 사회복지시설에서 지낸 사회복지사, 아랍 전문가, 수의사, 미술관 큐레이터 등 모두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 꼽히는 이들이 대한민국 사무관이 됐다. 행정안전부는 11일 민간경력자 5급 일괄 채용에서 이들을 포함한 103명의 최종 합격자 명단을 사이버국가고시센터(http://gosi.go.kr)에 발표했다. 그동안 민간 경력자 채용은 부처별로, 수시로 진행됐으나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파문 이후 지난해 처음 일괄 공채로 바뀌었다. 올해가 두 번째로 3109명이 지원해 평균 29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사회복지시설 관리정책 분야에 합격한 임동민(32)씨는 태어나자마자 아동양육시설에 들어가 꼬박 13년을 자랐고, 나중에 사회복지사가 된 뒤 역시 13년을 사회복지관에서 근무했다. 유년기와 청년기 26년 동안 사회복지의 수혜자이며 공급자로 살았던 만큼 복지정책의 허실과 과제 등을 몸으로 체험해 온 맞춤형 적임자인 셈이다. 아프리카, 중동지역 외교 분야의 유성재(38)씨의 삶 또한 이미 특화된 외교관의 삶을 향해 걸어 왔다.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한 그는 이집트에 어학연수를 갔다 왔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한국어-아랍어 통번역을 전공했다. 전문용어사전 편찬 사업에서 연구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지 언어만 구사하는 책상물림은 아니다. 졸업 뒤에도 코트라와 한화건설 사우디법인 등에서 시장조사, 플랜트 수주 영업, 관공서 인허가, 노무관리, 인력송출 등의 업무를 맡아 현지 실무경험도 탄탄히 쌓았다. 디자인을 전공한 손주영(33)씨는 영국의 정부장학생으로 선발돼 디자인과 미술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미디어, 영상,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융합 장르의 새로운 전시기획 방법론을 개발해 해외에서 독립 큐레이터로 명성을 다져나갔고, 20대 중반의 나이인 2005, 2006년 ‘한국의 차세대 디자인 리더상’을 거푸 받기도 했다. 국립미술관 큐레이터로서 국가브랜드가 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동물질병 연구 분야에 합격한 유광수(39)씨는 바이러스학을 전공한 수의사로서 가톨릭대 세계보건기구 간염연구소, 국제백신연구소 등에서 일해 연구 성과를 국제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연구자로서 기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내년 4월부터 2012년 공채 합격자들과 함께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10주 동안 기본 소양교육을 받는다. 민간경력 채용자들에게도 공직 내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줌은 물론, 공채 합격자들과 대등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10월의 어느 멋진 날 그림 한점 낙엽 한잎

    서울 서초구의 가을이 예술로 물든다. 구는 11일 구청 광장을 비롯한 거리 곳곳과 지역 내 갤러리 일대에서 대중적 미술축제인 ‘제1회 서초미술제’를 개막했다. 9일간 진행되는 이 행사는 지역 예술인 등으로 구성된 서초미술제 추진위원회가 주관하고 서초미술협회 등이 후원자로 나섰다. 미술제에는 예술의 전당 내 한음 등 미술관 3곳과 서초구 곳곳에 위치한 40여개 갤러리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자체 기획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부대 행사를 주민들에게 선보인다. 갤러리에서는 전시 해설가로부터 흥미로운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거리 곳곳도 전시관으로 변한다. 구는 구청~국립국악원, 예술의 전당~서초역 등 총 4개 구간의 가로등 배너 깃발을 다양한 미술 작품으로 채웠다. 낙엽을 밟으며 이 거리를 산책하며 총 190여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서울 경찰청, 7억 들인 CSI 특수차 방치한 이유?

    서울 경찰청, 7억 들인 CSI 특수차 방치한 이유?

    서울경찰청이 7억원을 들여 지난 3월 도입한 ‘이동식 현장증거분석실’(Mobile CSI Lab)이 지금까지 단 세 차례만 원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 버스를 기반으로 한 이 장비가 사실상 방치 상태에 놓인 것은 일선 현장에서 마땅한 주차 공간을 찾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일을 추진해 공연히 예산만 낭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중요 사건·사고 현장 급파용인 이동식 현장증거분석실은 거짓말 탐지, 몽타주 작성, 지문 자동 검색 등의 시스템과 혈액원심분리기 등을 갖춘 첨단 과학 수사 장비다. 대당 가격은 6억 9000만원으로 2010년 경기·전남·경북경찰청에, 올해 서울·대구·전북경찰청에 1대씩 도입됐다. 경찰은 2014년까지 전국에 총 17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서울경찰청의 지난 7개월간 이동식 현장증거분석실 사용 실적은 3월 주요 50개국(G50) 핵안보 정상회의, 7월 변사 사건, 8월 국립현대미술관 화재 등 3회가 전부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증거 분석이 필요한 살인 사건 등은 주로 좁은 골목에서 벌어져 대형 차량을 들여보내고 주차하기가 어려운 데다 지방보다는 현장과 경찰서가 가까워 차량 대신 관할 경찰을 직접 투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유가 어찌됐든 서울 치안 현장의 지리적 특성이나 경찰관서 분포 등을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일 처리를 해 거액의 국민 세금이 들어간 장비를 판판이 놀리고 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정부미술은행 10일 출범

    정부 각 부처에 산재한 미술품을 통합해 관리하는 ‘정부미술은행’이 10일 출범한다. 1억원이 넘는 고가 미술품도 45점 포함돼 2600점에 달하는 정부의 공영 미술품 관리체계가 확립될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부미술은행 출범식을 갖는다. 정부미술은행은 앞으로 미술품을 취득·관리하고 국가기관에 대부·전시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앞서 문화부와 재정부, 조달청 등은 정부가 소장한 미술품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지난해 10월 ‘정부미술품 관리 체계 개선방안’을 수립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한국 사경의 진수 세계에 알린다

    한국 사경의 진수 세계에 알린다

    미국 뉴욕에서 한국의 전통 사경(寫經)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려 불교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12일부터 올 연말까지 80일간 뉴욕의 대표적인 종합문화공간 플러싱 타운홀갤러리에서 있을 한국사경연구회 초대전. ‘삼매(SAMADHI)+예술(ART)=사경(SAGYEONG)’이라는 주제 아래 김경호 회장의 작품 6점과 사경 전문가들로 구성된 회원 23명의 작품 46점 등 엄선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번 초대전은 국내에서도 흔치 않은 사경 전시회가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에서 전격적으로 열리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플러싱 타운홀은 올해 ‘뉴욕시 랜드마크’로 선정된 건물. 뉴욕시의 후원을 받는 33개 문화단체 그룹 중 하나이며 세계적인 박물관·리서치 단체인 스미스소니언의 멤버이기도 하다. 올해 건립 150년을 맞아 새 도약을 위한 특별 기획행사로 한국 전통사경 전시회를 마련해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경은 보통 불교경전을 한 자 한 자 옮겨 적는 전통 예술을 말한다. 심하게는 한 자 크기가 고작 2∼3㎜에 불과해 작업이 아주 정밀하고 고도로 응축된 삼매의 경지가 필요하다. 불교가 흥했던 고려시대 때는 중국 원나라에 전문가를 파견해 ‘금은대장경’을 제작해 줄 만큼 최고의 기량을 자랑했지만 조선시대 이후 맥이 끊겼다. 한국사경연구회는 이 같은 상황에서 전통 사경을 복원해 전파하고 있는 한국 최초의 전통사경 연구 및 창작단체. 사경 전문가로 구성된 4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뉴욕전은 금니·은니·주묵·묵서·만다라·자수·민화 사경 등 전통과 현대를 망라한 작품들을 소개해 사실상 한국 사경의 총체를 보여주는 자리인 셈이다. 80일간의 본 전시에 얹혀 열리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관심거리다. 12일 오후 플러싱 타운홀 2층 극장에서 김 회장의 ‘한국 전통사경의 세계사적 의의와 가치’ 특강에 이어 전통 사경 제작 시연회가 열린다. 13일엔 김 회장의 작품 사인회가, 14일엔 전시 참여 작가들과 현지인이 함께 사경을 제작해 보는 워크숍이 각각 마련된다. 특히 12일 특강과 시연회에는 박물관장·미술관장·큐레이터를 비롯해 뉴욕의 정치·경제·사회·문화계 주요 인사 1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초대전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김 회장의 ‘감지금니 7층보탑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은 국내외 사경 관계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모으는 작품. 김 회장이 지난 8개월간 하루 8시간 이상을 정진해 완성한 역작이다. 세로 6.4㎝, 가로 1㎝ 크기의 7층 보탑 450기를 그리고 각 층 탑신부에 2∼3.5㎜ 크기의 한글 궁체로 법화경 견보탑품 경문 한 글자씩을 써 넣었다. 역대 사경 유물 중 가장 작고 정치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김 회장은 “대부분의 서예가들조차 폄하할 만큼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소홀히 취급됐던 한국 전통 사경의 정신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반갑다.”며 “이번 초대전을 시작으로 세계 유수의 박물관 전시와 특강, 시연회를 통해 전통 사경을 더욱 널리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기고] “인생을 영화처럼…인생을 여행처럼…”/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기고] “인생을 영화처럼…인생을 여행처럼…”/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중순쯤 동대문구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여행을 담은 포토에세이 ‘그곳에 가면 누구나 행복해진다’를 읽고 그중 한 구절을 구청의 희망글판에 게재해도 되겠는가 하는 요청이었다. “인생을 영화처럼… 인생을 여행처럼…” 이 구절을 싣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응낙했다. 평소에 광화문 글판에 실린 감동적인 글귀를 보고 마음 뿌듯한 느낌을 받아왔기 때문에 내 글이 어딘가 글판에 실린다는 건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일본으로 여행 갔을 때 일행 중 한 명인 영화 감독이 건배사를 했다. “인생을…영화처럼…” 같이 갔던 사람들은 그 건배사를 참 좋아했다. 영화처럼 살고 있진 못하더라도 영화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공포영화나 액션영화처럼 살고 싶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달콤 씁쓰레한 감성의 촉촉함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여행은 영화처럼 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일 것이다. 떠나간 그곳이 어디이건,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여행이건 여행의 색깔은 총천연색이다. 화려해야만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마음의 떨림이라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자신을 겹겹이 보호하고 있는 무미건조한 방탄복을 벗어 던질 수만 있다면 된다. 여행을 참 좋아한다. 많은 곳을 다녔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을 찾아 다니면서 머릿속에서 전구가 반짝 불을 밝히는 느낌을 받을 때 나는 행복했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여행을 떠나면 큰 풍경에서부터 카페에 놓인 작은 컵의 세세한 모습까지 아름다운 것을 다 찍는다. 그렇게 찍다 보니 모인 사진이 수만장이나 된다. 내 컴퓨터의 스크린 세이버로 만들어 놓고 5초에 한 장씩 사진이 화면에서 바뀌도록 해놓았다. 그 장소에서 느낀 감정들, 그때 그 순간이 아니면 느끼기 힘들었을 마음의 장면들이 사진 속에 다 녹아 있다. 결국 여행도 사진도 영화도, 찰나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붙들어 매는 작업이다. 일상의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느낌으로 그 속을 채우는 기회가 된다. 빈자리가 없는 것 같은데도 비워낼 게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가득 차 있는 것 같은데 또 채울 게 있다는 것도 오묘한 일이다. 10여년간 여러 가지 일로 다니다 보니, 꽤 많은 곳을 여행했다. 갈 때마다 수백장씩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도 꽤 많이 모였다. 어느 누구의 인생도 마찬가지리라. 돌이켜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곳을 갔으리라. 단지 한 곳에 모아서 정리를 안 했을 뿐이리라. 구청 관계자와 통화 후 2주 정도 지났을 무렵 이메일로 동대문구청 청사 입구에 게재된 희망글판 전경을 찍은 사진을 받았다. 사진을 보는 순간, 이제 관공서도 많이 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이야기하는 감성글판을 청사 입구에 걸어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열심히 생활하는 구민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줄 수 있다니 말이다. 내 글뿐만 아니라 더 좋은 글들이 구 청사를 방문하는 구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인생을…영화처럼…” 그리고 “인생을…여행처럼…”
  • 텅빈 공간 빛의 흐름… 물러섬의 미학

    텅빈 공간 빛의 흐름… 물러섬의 미학

    23일까지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빛, 시간의 경계’전을 여는 정보영(39) 작가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말수도 많지 않았고 말소리는 바로 옆에 서 있어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았다. 그런 작가가 그린 대상은 청주에 있는 한 작은 사립미술관이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수집가가 자그마한 미술관을 짓다 보니 공간을 찬찬히 볼 기회가 생겼고 빛의 변화까지 포함해 캔버스에다 옮겨뒀다고 했다. 요즘 젊은 작가 하면 강렬한 자의식이 돋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작가는 작품을 중간에 두고 주춤주춤 네댓 발짝쯤은 뒤로 물러선 것 같다. 그 공간을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치고 들어오길 바라는 것 같다. 치고 들어오는 걸 넘어서 아예 탐정처럼 돋보기를 들이대고 코를 킁킁대면서 캔버스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길 원하는 것 같다. 셜록 홈스처럼 구두 뒤축에 묻은 흙덩이 하나 보고 저 사람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추리해 내길 기대하는 것이다. 작품 속 풍경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적막강산. 사람이나 동물 혹은 식물처럼 뭔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나 다른 것들까지 그리게 되면 한 화폭에서 이야기가 너무 많이 생길 것 같아서 일부러 피했다.”고 한다. 그냥 텅 빈 공간 그 자체다.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고 튀는 게 없어서 보고 있노라면 심심하기 그지없다. 붓 터치도 그렇다. 유화 작업이라지만 유화에 흔히 등장하는 두꺼운 질감이나 입체적인 느낌, 혹은 두꺼운 표면을 만든 뒤 그걸 갉아내고 상처낸 흔적도 없다. 수채화처럼 물감을 얇게 펴발라 놨으니 양각도 음각도 없이 아주 정직하게 2차원 평면 그 자체에 충실하다. 색채가 화려한 것도 아니다. 취미삼아 그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때도 이유는 “톤다운된 색채들의 느낌이 좋아서”였다. 다른 데 한눈 팔지도 않았다. “(설치나 영상 같은) 그런 작업들도 쭉 봤는데, 저에게는 그런 작업들이 새롭다, 신선하다기보다는 한번 보고 마는 것이란 느낌이 강했어요. 처음엔 새로운데 별로 남는 게 없는. 저는 오래된 회화방식이 더 좋은가 봐요.” 그래도 작품 여기저기 은근슬쩍 변주를 깔아뒀다. 서랍이 하나 삐죽 나와 있다거나, 문이 하나 활짝 열려 있다. 바깥에 무슨 급박한 일이라도 있어서 방금까지 이곳에 머물던 사람이 뭔가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급하게 뛰어나간 모양새다. 아니, 허둥지둥 들어오는 바람에 뒷마무리를 못한 것인가, 헷갈린다. 작품 제목마저 그렇다. ‘열리는 중, 혹은 닫히는 중’, ‘다른 하나 위에 하나가 놓이다’, ‘나타나는 중, 혹은 사라지는 중’ 하는 식이다. 지독하게 평면스러워 도대체 움직임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공간인데도 캔버스를 서서히 일렁이게 하는 것은 촛불, 혹은 조명이다. 작가는 “빛을 통해 시간을 드러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린다는 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뭘까 생각하다 보니 공간·원근법·소실점 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됐고, 그 공간을 빌려 빛과 시간과 사건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시간은 신”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렇다면 언젠가 저 그림 속 알쏭달쏭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순간이 있을까. 아니 어쩌면 중요한 건 사건 자체가 아닐는지 모른다. “길거리에 버려진 귤껍질이 방금까지 그 귤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혼난 마음을 달랜 아이의 하루를 얘기했고 공중전화부스에 펼쳐진 전화번호부는 길을 가다 느닷없이 오래전 서울로 떠난 연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화번호부를 펼쳐본 주부의 사연을 들려줬다.”던 소설가 김연수의 글처럼, 그 사건의 전모란 관람객이 대입해야 할 문제일는지 모른다. (02)730-781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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