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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 2인자 이인원 자살…“국내 500대 기업 중 최장수 CEO”

    롯데 2인자 이인원 자살…“국내 500대 기업 중 최장수 CEO”

    롯데그룹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69)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자살했다. 이 부회장은 숨지기 직전 남긴 유서에서 끝까지 회사를 걱정하고 신동빈 회장을 옹호하는 충성심을 보였다. 검찰은 소환 조사를 앞둔 이 부회장의 자살로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롯데는 조직 내 존경받는 선배였던 이 부회장의 자살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 유서 남기고 자살 = 26일 오전 7시 10분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산책로 한 가로수에 이 부회장이 넥타이와 스카프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운동 중이던 주민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이 부회장 차 안에서는 A4용지 4매(1매는 표지) 분량의 자필 유서가 나왔다. 유서에서 이 부회장은 롯데 임직원에게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라며 끝까지 조직과 신 회장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가족에게는 “그동안 앓고 있던 지병을 간병하느라 고생 많았다. 힘들었을 텐데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썼다. 유서에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내용은 없었다. 경찰은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유서 전문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은 정확한 자살 동기를 밝히기 위해 유서 내용을 분석하고 있으며, 시신을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방침이다. 고인의 아들은 경찰조사에서 “아버지는 최근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 가정사까지 겹치면서 많이 힘들어 했다”고 진술했다.▲ 롯데 측 관계자는 “고인은 검찰 수사에 따른 심리적 압박뿐만 아니라 40여년 롯데맨으로 근무해오면서 최근 롯데그룹이 검찰 수사를 받고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데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며 “특히 신격호 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모시면서 롯데가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를 해왔는데 최근 발생한 경영권 분쟁과 검찰 수사로 이러한 공로가 폄하되고 비판받는 데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자살 배경을 전했다. 시신 발견 당시 이 부회장은 반바지와 검은색 점퍼를 입고 있었으며, 가로수에 넥타이와 스카프로 줄을 만들어 목을 맸으나, 줄이 끊어져 바닥에 누운 상태였다. 이 부회장이 숨진 양평 현장은 생전 그가 간혹 주말이면 찾아와 머리를 식히던 곳으로, 퇴직 후 근처에 집을 짓고 생활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 지인인 강건국 가일미술관 관장은 “이 부회장은 양평에 별다른 연고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이곳을 찾아 머리를 식혔던 것으로 안다”며 “그는 산과 강이 있는 양평이 좋다면서 은퇴하고 30~40평짜리 단층 짜리 집을 짓고 소박하게 살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이 부회장은 전날 오후 10시께 “운동하러 간다”며 외출했다가 귀가하지 않았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경찰은 이 부회장이 집을 나온 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경유해 양평 현장으로 향했으며 경유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으로 경찰은 이 부회장의 부검결과 분석, 이동 경로 및 행적 조사, 휴대전화 통화 내역 분석 등 추가 조사 후 통상 변사사건 처리지침에 따라 사건을 자살로 종결할 방침이다. 유족은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 빈소를 마련하고, 롯데그룹 5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 검찰 ‘롯데수사’ 차질 불가피 = 롯데그룹을 수사하는 검찰은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날 검찰 출석을 앞두고 이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확인되자, 수사 일정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며 “롯데그룹 수사 일정의 재검토를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9시 30분 이 부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었다. 이 부회장은 그룹 내 알짜 자산을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로 헐값에 이전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이 매년 계열사로부터 300억원대 의심쩍은 자금을 받아 챙기고 신 총괄회장이 편법 증여를 통해 3천억원대 세금을 내지 않은 과정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날 이 부회장과 함께 신동빈 회장의 가신그룹으로 꼽히는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을 불러 밤샘 조사를 벌인 검찰은 이날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향후 수사방향과 일정 등을 숙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부재에 따라 이르면 다음 주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를 줄줄이 불러 조사한다는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롯데 수사 변호인단을 이끄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측은 “저희도 매우 황망하다. 경위와 상황을 파악 중이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의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어제까지 이 부회장을 포함한 롯데그룹 측과 논의를 했고, 고인이 오늘 소환에 응해 출석할 예정이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예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자세한 경위를 파악 중이며 유서가 있다고 하니 그 내용도 검토해야 할 것 같다”며 “그룹 측과 관련 내용과 대책 등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 롯데 ‘충격’ = 이 부회장의 자살소식을 접한 롯데그룹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부회장은 1973년 롯데호텔 입사 후 40여년간 근무한 그룹의 ‘산 역사’이자 ‘최고참 전문 경영인’으로, 임직원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맡아왔기 때문에 그룹의 심리적 타격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그룹 정책본부 관계자 다수는 이 부회장이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출발해 오전 9시께 서초동 검찰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고, 검찰청 입구 등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오전 8시 20분께 연합뉴스 보도를 통해 처음 비보를 접했다. 정책본부 고위 임원은 당황한 목소리로 “9시께나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고 경호나 주변 정리 등에 신경 쓰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식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출근길에 휴대전화 등으로 속보를 확인한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임직원들도 굳은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그룹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롯데 정책본부 수석급 직원은 “이인원 부회장은 50대부터 롯데쇼핑 사장을 맡을 만큼 선후배들로부터 두루 능력을 인정받았고, 성품도 온화하고 합리적인 분이라 사실상 롯데 임직원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임원은 “신격호 총괄회장은 물론 신동빈 회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부회장을 총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부회장의 역량과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며 “청렴함도 항상 임직원들의 모범이 됐던 분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마음이 여린 분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심리적 압박이 매우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이인원은 누구 = 이 부회장은 오너인 신동빈 회장에 이어 롯데그룹의 ‘넘버 2’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최근까지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정책본부 본부장을 맡아 신 회장과 함께 경영 전반을 이끌어왔으며, 황각규 사장과 함께 신 회장의 가신 그룹으로 꼽힌다. 특히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에 43년간 몸담으며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에 이어 아들 신동빈 회장의 신뢰를 얻어 대를 이은 최측근 심복이다. 그는 이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2011년 오너 일가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1997년 롯데쇼핑 대표이사를 맡은 이래 20여년간 롯데그룹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국내 500대 기업 중 최장수 CEO이기도 하다. 1947년 8월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경북대사대부고와 한국외대 일본어학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한 뒤 1987년 그룹 주력계열사인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07년까지 롯데쇼핑에서 관리이사, 전무이사, 대표이사 사장을 거치며 신격호 총괄회장을 도와 롯데쇼핑의 사세를 확장하는데 큰 공을 세우며 신임을 얻었다. 수십 년간 신 총괄회장의 ‘입과 귀’ 노릇을 해온 이 부회장은 눈빛만 봐도 신 총괄회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복심으로 꼽혔다. 2011년 발간된 ‘롯데와 신격호, 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임종원 전 서울대 교수 집필)라는 책에서 이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에 대해 “연세가 아흔 살에 가까우신데도 아직도 청년 시절과 다름없는 열정과 무한한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신 총괄회장의 활발한 경영활동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2007년 그룹 정책본부 부본부장(사장)을 맡아 당시 정책본부장이던 신동빈 회장을 보좌하며 능력을 또 한 번 인정받았으며 2011년 정책본부장(부회장)에 올랐다. 공격적이고 서구적인 경영 스타일의 신 회장이 주요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그는 신 총괄회장의 스타일대로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사업 의견을 제시하며 신동빈 회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는 게 롯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신격호 사람’으로 분류됐던 이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신동빈 회장 편으로 기운 것은 지난해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다. 신동주·동빈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치열해지고 신 총괄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손을 떼게 되면서 이 부회장은 신 회장 편으로 노선을 정리했다. 이 때문에 신 총괄회장이 지난해 7월 한국 롯데그룹 최고위 임원을 해임을 지시하는 인사명령서, 이른바 ‘살생부’에 이 부회장의 이름이 황각규 사장과 함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경영권 분쟁이 한창일 당시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계열사 사장들의 ‘신동빈 회장 지지 성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경영권 분쟁 이후 ‘신동빈의 오른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롯데그룹의 ‘산 역사’로도 불리는 이 부회장은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부회장직에 오른 인물로서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철저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업무 처리가 철두철미하면서도 젊은 직원들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합리적인 경영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 정책본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50대에 사장이 된 이후 부회장 자리까지 올라 철저한 업무 처리와 합리적인 경영 스타일로 직원들의 존경을 많이 받았던 분”이라며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윤리의식도 강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 “이인원 부회장, 롯데 퇴직뒤 양평에서 노후 보내려 했는데”

    [단독] “이인원 부회장, 롯데 퇴직뒤 양평에서 노후 보내려 했는데”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검찰에 나가기로 한 날 경기도 양평에서 자살했다는 뉴스가 26일 오전 8시쯤 나오자 양평에 거주하는 이 부회장의 지인들이 참담한 심정으로 현장을 나와 있었다. 양평에서 미술관을 하는 강건국(79) 대표는 부인과 함께 자살현장을 돌아보면서 “이 부회장의 부인이 아파서 지난해 양평에 작은 땅 사서 전원주택 짓고 노후를 이곳에서 마무리할려고 했는데…” 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강 대표의 부인은 그 현장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5년여 전 강 대표가 하는 가일미술관에 이 부회장은 부부동반으로 방문하는 덕분에 친분을 쌓게 됐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이 부회장이 회사 일을 몹시 힘들어해서 지난해 봄쯤에 ‘사표를 내라’고 권유를 했는데 ‘그룹 상황이 그럴 형편이 못된다’고 했다”고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그는 “그러면서도 이 부회장은 회사 일이나 검찰 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 부회장은 그후로 지난해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를 위해 산쪽으로 쑥 들어간 양평에서도 비교적 싼 땅을 구입해 40평짜리 1층 집을 지으려고 설계까지 맡겨놓은 상태라고 했다. 강 대표는 “평생 동안 재벌기업에 다녔지만 재산이 얼마 없어서, 싼 땅을 구해달라고 했다”고도 했다. 그가 회상하는 이 부회장은 주말이면 직접 자신이 운전해 양평을 찾을 정도로 소탈하고 성실했으며,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는 “최근 한달 동안은 연락도 안되고 연락도 안와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검찰이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서 연락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말해 검찰이 강도높은 수사를 벌인 정황이 드러나기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부인은 평소 건강이 좋지 못했지만, 이번 검찰 수사로 더 스트레스가 심해져 최근 큰 수술을 했다고 강 대표가 전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세계 문화·자연유산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세계 문화·자연유산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한국관광공사가 9월에 가볼 만한 6곳을 선정, 발표했다. ‘세계유산 다시 즐기기’가 테마다. 하나같이 역사와 생태가 잘 보존돼 산책이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손색없다. 조선 왕릉의 박물관 만나다 ●조선 왕릉 9기 온전하게 보존 - 경기 구리 동구릉 조선 왕릉은 조선왕조 500여년에 이르는 역사를 품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온전하게 보존된 문화유산이다. 특히 경기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많은 9기가 모여 있어,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불린다. 태조의 건원릉부터 가장 늦게 조성된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수릉까지 9기 17위를 모셨다. 동구릉을 대표하는 능은 태조가 잠든 건원릉이다. 고향을 그리워한 태조를 위해 태종이 함흥 땅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대장간마을과 아차산고구려유적전시관, 구리타워와 구리시곤충생태관, 구리한강시민공원 등을 묶어 돌아볼 만하다. 구리시 문화예술과 (031)550-8353. 백제인이 꿈꾸던 미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 전북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등 전북 익산의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문화적으로 융성한 백제 후기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공주와 부여에 가려져 있다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등재됐다. 금마면 익산 미륵사지는 가람 배치가 독특한 백제 최대 사찰 터이고,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은 백제 무왕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국내 최대 석탑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복원 작업 중이며, 복원 과정을 참관할 수 있다. 왕궁면 왕궁리 유적은 백제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직사각형 왕궁 터에서 정원 유적, 금을 가공하던 공방 터 등이 발굴됐다. 이웃한 보석박물관, 두동교회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익산시 문화관광과 (063)859-5797. 고인돌에서 채석장까지 ●거석문화 진수 - 전남 화순고인돌 유적 고인돌은 선사시대 무덤이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영국의 스톤헨지나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 등과 함께 세계 거석문화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남 화순은 강화, 고창과 함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발견돼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산기슭에 분포해서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5㎞ 구간에 있어 탐방 동선도 편리하다. 도곡면 효산리에서 진입하는 게 수월하나,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발굴지보호각을 먼저 들르면 고인돌 문화를 이해하기 쉽다. 운주사, 적벽투어 등과 연계한 돌 문화 여행도 좋다. 화순고인돌유적 대신리 발굴지 (061)379-3907. 정조의 효심이 낳은 성곽의 꽃 ●우리 건축역사 독보적 건축물 - 경기 수원 화성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된 경기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2016년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로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하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고,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경치도 볼 만하다. 정조가 화성 행차 중에 머문 화성행궁에서는 장용영 무사들이 날마다(월요일 제외) 무예24기 공연을 선보이며, 일요일에는 장용영 수위 의식이 진행된다. 수원화성박물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나혜석거리 등도 묶어서 돌아보면 좋다. 수원문화재단 (031)290-3600. 문무왕 만나러 가는 ‘왕의 길’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길 - 경북 경주 신문왕 호국행차길 신문왕이 아버지가 잠든 경북 경주 대왕암(문무대왕릉)을 찾아간 ‘신문왕 호국행차길’ 걷기는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이다. 통일신라 격동의 역사와 만파식적 신화가 담겨 있다. 신문왕 행차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 수렛재를 넘어 천년 고찰 기림사에 이른다. 수렛재는 울창한 활엽수림이 장관이고, 용연폭포는 용의 전설을 품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걷기는 기림사에서 끝나지만,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던 감은사지를 거쳐 이견대와 대왕암까지 둘러보자.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양동마을에선 조선시대의 풍경과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경주시 관광컨벤션과 (054)779-6077~9. 화산이 빚어낸 시간 속으로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7㎞ - 제주 세계자연유산 제주도의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등 12개 명소는 2010년 세계지질공원에 각각 등재됐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인 성산일출봉과 성산리, 오조리를 두루 지나는 도보 여행 코스다. 내수면을 따라 7㎞ 남짓 걷는다. 거문오름은 만장굴을 비롯해 여러 용암동굴을 만든 모체다. 예약자에 한해 탐방이 허용된다. 해설사와 함께 신비한 화산지형, 곶자왈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용암동굴인 만장굴엔 용암 유선, 용암 선반, 7.6m짜리 용암 석주가 남아 있다. 제주관광공사 (064)740-6074,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1800-2002.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 피렌체 산마르코 국립미술관: 프라 안젤리코의 프로스코화가 가득

    피렌체 산마르코 국립미술관: 프라 안젤리코의 프로스코화가 가득

     갈릴리 북쪽 산악지대에 있는 나사렛 마을에서 사는 마리아는 같은 지역에서 목수로 일하는 요셉과 곧 결혼하기로 돼 있었다. 어느 날 마리아가 조용히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을 때 낯선 빛이 무릎 위에 내려 앉았다. 깜짝 놀라 올려다 보니 하나님의 사자인 대천사 가브리엘이 서 있었다.  가브리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마리아,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너를 크게 축복하셨으니 두려워 마라. 너는 이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그는 오래 기다려 온 왕이고, 다윗 왕의 후손이며, 그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 탄생의 일화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예고하는 부분이다. ‘알리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 ‘아눈티아레(annuntiare)’에서 유래한 고유명사 ‘수태고지(受胎告知,Annunciation)’의 순간은 그리스도교가 정착한 5세기 이래 서구 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 졌다. 날개달린 천사가 한 여인에게 무언가 말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의 제목은 열이면 열, ‘수태고지’라고 보면 된다.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특히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걸출한 화가들이 ‘수태고지’를 주제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개인적 취향의 차이는 있겠으나 지금까지 본 모든 수태고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서슴치 않고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1387~1455)의 ‘수태고지’라고 답하겠다.  프라(Fra)는 수도사들의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으로 ‘형제’라는 뜻이고, 안젤리코는 ‘천사같은’이라는 뜻이다. 본명이 구이도 디 피에트로인 그는 청년기에 채색 삽화가로 도제수업을 받고 화가로 활동하다가 23세에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깊은 신앙심을 지닌 그는 기도의 행위로서 그림을 그렸다. 채색 필사본과 제단화로 이름을 알리던 중 도미니크회가 1436년 인수한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의 장식화를 맡게 됐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본래 실바네스트리 수도회 소유였던 것을 코시모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재건축한 것이다. 메디치 궁을 지은 건축가 미켈레초가 1437년부터 재건축 공사를 시작해 16년만인 1452년 지금의 수도원 건물이 완성됐다. 프라 안젤리코는 1436년부터 1445년까지 이 곳에 머물며 벽화와 회랑의 프레스코화, 수도사들의 독방 프레스코화를 완성했다. 현재는 산마르코 국립박물관으로 불리지만 프라 안젤리코 미술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수도원은 광장 쪽으로 1층에 성당이 있고 그 왼쪽으로 들어가면 큰 정원과 아치가 이어지는 성안토니오 회랑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회랑을 따라 걷다가 2층으로 올라가면 첼라(Cella)라고 하는 수사들의 독방이 42개가 있다.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과 같은 당대의 기술과 수도사로서의 경건함과 신실함, 신학적 지식을 담아 수도원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장식했다.  2층으로 가기위해 계단을 오르면 맞은 편 벽면에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생각보다 꽤 크고,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고 섬세한 작품을 보는 순간 온 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다.  회화의 주제로서 수태고지 장면에서 마리아의 모습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5가지 미덕의 상태로 표현된다. 천사의 출현으로 경이로워 하는 당혹한 상태, 천사의 말씀을 듣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심사숙고의 상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의 상태,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종의 상태, 마지막으로 예수를 잉태하게 되는 공로의 상태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반문하고’ ‘순종하는’ 단계를 담고 있다. 조심스럽게 사실을 알리는 가브리엘의 자상한 표정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라며 반문하다가 말씀을 따르겠다고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황금 빛이 은은하게 공간을 비치는 가운데 천사와 마리아 모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의 이 그림 속에 프라 안젤리코는 원죄없이 잉태가 이뤄지는 기독교 교리의 본질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그리스도교에서 수태고지는 예수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동시에 지닌 존재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록이었다. 또한 ‘신을 탄생하게 한 여자’로서의 마리아를 예고하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를 그림에 쓰거나 백합, 흰 수건 등으로 그려 넣어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지만 프라 안젤리코는 그런 직접적인 상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에서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있는 장소로 수도원의 로지아를 그렸다. 로지아의 아치는 마리아를 상징하는 ‘M’자형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런 기적이 수도원에서 일어났을 것이라 상상하며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2층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수도사들의 방에 각기 다른 성서의 이야기를 프레스코화로 남겼다. 각 방에는 번호가 적혀있지만 프레스코화에 담긴 그림은 성서의 순서대로 그려져 있지는 않다. 1번 방에는 부활한 예수를 처음 발견한 마리아가 손을 잡으려 하자 예수가 “나를 잡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 2번 방에는 죽은 예수의 시신을 가운데 두고 슬퍼하는 장면을 그린 ‘애도’, 3번 방에는 또 다른 ‘수태고지’가 그려져 있다.  어두운 복도의 양쪽으로 무거운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창문 하나가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인 두 평 남짓한 독방이다. 이곳에서 수도사들은 성서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들과 도미니크회 순교자들의 모습을 그린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를 보면서 고요하게 신을 생각하고 묵상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방마다 다른 일화를 표현한 프레스코화가 있는 2층은 수도원이 폐쇄된 19세기가 되어서야 대중에게 공개됐다.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 외에도 산마르코 수도원에는 유명한 그림들과 중세 수도원의 유물들이 많다. 수도원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를 위해 북쪽 회랑 끝에 마련한 특별 기도실(39번방)에는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경배’가 있다. 동방박사는 피렌체에서 선택받은 가문, 존경받는 가문, 선지자적인 가문이고 싶었던 메디치 가문의 수호성인이었다. ‘동방박사의 경배’ 속에는 피렌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아들 피에로, 손주 로렌초 데 메디치가 그림에 등장한다. 피렌체의 인문학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이 자주 모였던 아래층 수도사들의 식당(레페르토리오)에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유명한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수도원장이었던 지롤라노 사보나롤라의 유품도 볼 수 있다. 사보나롤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역사에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15세기 후반은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도시는 부유했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면서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졌고 예술과 종교도 세속적으로 흘러갔다. 이때 산마르코 수도원장이 되어 피렌체에 입성한 사보나롤라는 광기어린 설교로 “지금 당장 청빈한 삶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사람들을 선동했다.  놀랍게도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사망하던 해에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피렌체를 침공했고 1494년 로렌초의 아들 피에로 데 메디치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도시에서 추방됐다. 사보나롤라의 추종자들은 피렌체를 장악하고 신의 이름으로 독재정치를 펼쳤고 사보나롤라는 온갖 사치스러운 것들을 시뇨리아 광장에 모아놓고 ‘허영심의 화형식’을 거행하고 성직자들의 타락을 비난하며 교황청의 개혁을 요구한다. 과격함이 극에 달하자 결국 교황청은 1497년 그를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사보나롤라는 허영심의 화형식이 있었던 시뇨리아 광장에서 1498년 공개화형된다. 산마르코 수도원에는 사보나롤라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프라 바르톨로메오가 1508년에 그린 사보나롤라의 초상화 2점이 남아있다. 아직 사보나롤라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죄악시되던 때라 바르톨로메오는 그림에 ‘순교자 베드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수도원 2층 복도에는 아름다운 도서관도 있다. 아름답기만 할 뿐 아니라 세계최초의 공공도서관이라는 명예까지 안고 있는 이곳에는 수도사들이 직접 쓰고 그린 수백년 된 필사본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푸른 단색 회화가 선보이는 예술의 숲…추경 ‘관계의 숲-BLUE’ 개인전

    푸른 단색 회화가 선보이는 예술의 숲…추경 ‘관계의 숲-BLUE’ 개인전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가을의 문턱에서 보기만해도 시원한 푸른 단색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의미를 담아낸 회화 전시회가 열린다. 설미재 미술관은 9월 2일~10월 30일까지 추경 작가의 ‘관계의 숲-BLUE 展’을 연다고 23일 밝혔다. 설미재 미술관 관장인 추경의 20회 개인전이다. 설미재 미술관은 자연 경관이 수려한 경기 가평군 설악면에 있다. 추 관장은 잣나무, 밤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산 중 작업실에서 20여년 동안 작품 활동에 매진해왔다. 추 관장은 이번 개인전에 대해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열게하고, 눈을 뜨게하는 아침, 너무나 무거운 허공, 산과 산이 속삭이는 밤, 내 육신을 적시며 뿌려지는 별무리들, 한 겨울내 하얀 침묵으로 추위에 견디었던 나뭇가지에 초록의 움을 피우는 설국세상, 그 세월의 흐름 위에 만들어진 삶의 궤적과 예술적 영감을 나만의 조형 언어로 변환한 푸른 단색 회화를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추 관장은 회화 뿐만 아니라 설치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인 다음달 28일과 10월 26일에는 전시연계 프로그램으로 ‘추 관장과의 토크 세미나’와 ‘작품 감상과 함께하는 블루 회화체험’도 진행된다. 관람은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학생 2500원이며 경기도민(가평군민)은 무료다. 설미재 미술관은 서울-춘천 고속도로 설악IC 유명산 방향으로 1㎞ 좌측 언덕에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갑던 폐공장의 따뜻한 변신

    차갑던 폐공장의 따뜻한 변신

    ‘와이어 공장의 변신은 무죄.’ 부산 도심의 한 폐공장이 말끔하게 단장돼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다. 민관 협력 문화재생사업의 국내 첫 사례로 전시, 공연, 교육, 상업, 휴식 기능이 합쳐진 공간이 들어선다. 특히 문화시설이 부족한 곳이어서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시와 고려제강은 23일 수영구 망미동 고려제강 옛 수영공장에서 복합문화공간 ‘F1963’ 조성과 운영을 위한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복합문화시설 조성사업은 기업이 주도해 시민을 위해 문화시설을 확충하고 문화향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기업 메세나 활동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는다. 고려제강 측은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2016년 부산비엔날레 특별전시장으로 활용한 뒤 행사가 끝나는 11월 말부터 조성 공사에 들어가 내년 연말 준공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국·시비 32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시민들은 복합문화공간 F1963이 대만 가오슝의 보얼예술특구, 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 공장지대에서 변신해 ‘베이징의 소호’라 불리는 중국 다산쯔 798예술구에 버금가는 세계적 수준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시민 손호권(51·수영구)씨는 “외국에는 조선소 공장 등을 재활용해 식당, 카페, 전시장 등으로 조성한 사례를 더러 봤는데 부산에도 이런 복합문화공간이 탄생한다니 한껏 기대된다”고 기뻐했다. 고려제강 수영공장은 고려제강 모태가 되는 공장으로, 1963년부터 2008년까지 50년 넘게 와이어로프를 생산해 왔다. 김병기 부산시 문화관광국장은 “기업 메세나 활동의 대표 사례로 고려제강 수영공장의 새로운 변신에 시민과 예술인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서병수 부산시장,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 유재중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전국/‘와이어 공장의 변신은 무죄’?부산 도심 폐공장,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전국/‘와이어 공장의 변신은 무죄’?부산 도심 폐공장,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와이어 공장의 변신은 무죄.’ 부산 도심의 한 폐공장이 말끔하게 단장돼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다. 민관 협력 문화재생사업의 국내 첫 사례로 전시, 공연, 교육, 상업, 휴식 기능이 합쳐진 공간이 들어선다. 특히 문화시설이 부족한 곳이어서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시와 고려제강은 23일 수영구 망미동 고려제강 옛 수영공장에서 복합문화공간 ’F1963‘ 조성과 운영을 위한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복합문화시설 조성사업은 기업이 주도해 시민을 위해 문화시설을 확충하고 문화향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기업 메세나 활동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는다. 고려제강 측은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2016년 부산비엔날레 특별전시장으로 활용한 뒤 행사가 끝나는 11월 말부터 조성 공사에 들어가 내년 연말 준공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국·시비 32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시민들은 복합문화공간 F1963이 대만 가오슝의 보얼예술특구, 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 공장지대에서 변신해 ‘베이징의 소호’라 불리는 중국 다산쯔 798예술구에 버금가는 세계적 수준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망미동 지역은 도심에 있으면서도 문화시설이 부족하고 지역개발이 더딘 곳이다. 시민 손호권(51·수영구)씨는 “외국에는 조선소 공장 등을 재활용해 식당, 카페, 전시장 등으로 조성한 사례를 더러 봤는데 부산에도 이런 복합문화공간이 탄생한다니 한껏 기대된다”고 기뻐했다. 고려제강 수영공장은 고려제강 모태가 되는 공장으로, 1963년부터 2008년까지 50년 넘게 와이어로프를 생산해왔다. 2014년 부산비엔날레 특별 전시장으로 사용됐다. 고려제강과 부산시는 이를 계기로 이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기 부산시 문화관광국장은 “기업 메세나 활동의 대표 사례로 고려제강 수영공장의 새로운 변신에 시민과 예술인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서병수 부산시장,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 유재중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중소형 아파트 ‘해운대 중동 동부센트레빌’ 조합원 모집

    중소형 아파트 ‘해운대 중동 동부센트레빌’ 조합원 모집

    현대사회에서 1~3인 가구와 직장인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자녀 수는 줄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현대인들은 합리적인 중소형 주거지를 선호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분양가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아파트 시장에서는 건설기업이 아닌 조합원이 직접 사업주체가 되는 지역주택조합아파트 방식도 재조명 받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조합원들이 직접 토지를 매입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아파트를 짓는 방식으로 토지 매입에 따른 금융비용과 각종 부대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사업 절차도 기존 재개발, 재건축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므로 진행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을 지닌다. 실제 지난해 전국에서 지역주택조합으로 공급된 아파트는 4만8천여 가구에 이른다. 전년도 공급물량인 1만5천여 가구 대비 3배 이상 많아진 수치다. 이처럼 지역주택조합아파트가 높은 선호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합리적인 가격에 기인한다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설명하고 있다. 분양 관계자는 22일 “지역주택조합아파트는 인근 시세에 비해 평균 20% 정도 분양가를 낮출 수 있다"며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자가 마련이 가능해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지역주택조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지역 역시 신규아파트 조합원을 모집 중이고, 그 중 하나가 해운대구 중동에 들어서는 '해운대 중동 동부센트레빌'이다. 조합원 가입조건은 부산, 울산 및 경상남도에서 6개월 이상 거주자여야 하며 무주택 세대주이거나 85㎡이하 주택 1채를 소유한 세대주일 경우 가능하다. 해운대 중동 동부센트레빌은 전용면적 59㎡A, B타입(예정) 376세대와 84㎡A, B타입(예정) 212세대, 중소형 타입 위주로 총 588세대(예정) 공급된다. 평면은 일조량과 채광에 유리한 4-bay 평면을 적용했다. 여기에 조망권을 높인 2면 개방형 평면을 도입할 예정이다. 일부 세대는 공간 활용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알파룸도 설계했다. 입주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주방 팬트리 공간 등 다양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단지 주변에는 달맞이 고개에 위치해 향후 부산 달맞이 신흥 주거타운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해운대 생활권으로 천혜의 자연환경인 동백섬과 달맞이길 해월정, 장산 등 부산의 뛰어난 자연 명소도 가까이 즐길 수 있다. 도시철도 2호선 중동역을 비롯해 차량 이동시 좌동순환로, 수영로, 충렬로와 인근 광안대교, 부산-울산고속도로는 시내,외 어디든 빠르게 이어주는 교통 환경이 마련됐으며, 해운대로를 이용해 남구, 수영구, 기장군 등 타 구역으로 이동하기가 편리하다. 또한 해운대 신시가지 장산역 일대의 근린생활시설과 백병원, 금융시설, 도시공원 등의 이용이 용이하다. 부산 센텀시티와도 인접해 인근 대형백화점, 할인마트, 벡스코, 부산 시립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쇼핑시설을 누릴 수 있다. 단지 인근에는 동백중학교, 동백초등학교가 인접해 있고, 해송초, 신곡초, 신곡중과 신시가지 내 학원가들도 인접해 교육시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택홍보관은 8월 26일 민락역 근처에서 오픈 예정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작가 300명의 작품, 한 번에 본다

    작가 300명의 작품, 한 번에 본다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해 1973년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했다. 1986년 지금의 과천관으로 옮겨 관람객을 맞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현재 누적 전시 횟수 316회, 누적 관람객 수는 약 1901만명을 기록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 30주년을 기념해 야심 차게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 전시 제목은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그동안의 주요 성과인 소장품을 중심으로 작품을 하나의 생명주기를 가진 생명체로 보고 마치 달을 탐사하듯 예술의 기원과 해석, 생애와 운명의 비밀을 좇아가는 경로를 보여 주겠다는 게 기획 의도다. 그러나 주제가 지나치게 현학적인데다 전시가 논문 구성처럼 복잡하게 나열돼 있고 출품작과 작가가 방대한 탓에 공간은 산만하다. 의욕적으로 펼쳐 보였으나 관람객들이 제대로 기획 의도를 이해하고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별전답게 이번 전시에는 과천관 전관이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일부가 아닌 8개 전시실과 중앙홀, 회랑 등 미술관의 모든 공간이 한 전시를 위해 사용되기는 처음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구성하는 주요 작가 300명의 작품과 자료, 신작 등 전시 작품 수만도 총 560여점에 이른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은 7840점으로 과천으로 신축 이전한 후 수집한 작품은 전체 소장품의 74%에 해당하는 5834점이다. 강승완 학예실장은 “작품을 중심축에 두고 작가, 미술계, 제도, 관람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예술의 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 제작, 유통, 소장, 활용, 보존, 소멸, 재탄생의 생명주기와 작품의 운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기획된 이번 전시는 크게 ‘해석’, ‘순환’, ‘발견’의 3가지 주제로 나뉜다. ‘해석’은 다시 1부 ‘확장’과 2부 ‘관계’로 구성된다. 서로 다른 분야의 작가, 기획자, 연구자가 협업을 통해 소장품을 둘러싼 다층적인 소통을 시도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다다익선’ 주위에 밧줄이 얼기설기 둘러쳐진 것은 이승택 작가의 신작 ‘떫은 밧줄’이다. 작품들은 1층부터 3층까지 분산 전시돼 있다. 2부 ‘관계’는 미술관의 소장품 16쌍을 일대일로 비교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의 ‘안드로진과 수레바퀴’와 임응식의 ‘노점수레’, 베른트&힐라 베허의 ‘벽과 배관’ 사진 시리즈와 노순택의 ‘얄읏한 공’,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진 콜라주 작품 ‘레일이 있는 그랜드 캐년 남쪽 끝’과 황인기의 ‘몽유-몽유’ 등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두 번째 대주제 ‘순환’은 1부 ‘이면’과 2부 ‘이후’로 구성된다. 이면에서는 소장작품의 탄생과 그 이후의 궤적을 다루면서 작품들의 이면을 조망한다. 박서보의 ‘원형질 1-62’, 정상화의 ‘무제’를 벽에 걸어 두지 않고 전시 공간 한가운데 세워 놓아 관람객들이 캔버스 뒷면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후’에서는 전체를 4개의 영역으로 나눠 미술작품이 완성된 이후 새롭게 탄생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미술의 개념을 다룬다. 비누로 조각을 만들어 놓고 실제 화장실에 비치해 사용하도록 하는 신미경의 ‘화장실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3층을 구성하는 주제는 ‘발견’이다.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여러 가지 사유로 그동안 전시되지 못한 작품을 재조명한다. 주로 설치, 영상, 사진 등의 작품들로 과거의 작품을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한 이기봉,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김미현과 사진작가 고낙범은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비교해 작품세계가 어떤 형태로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밖에도 2층에서는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억의 공존’전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천 이전 배경과 건축 과정, 개관 특별전, 조각공원의 조성, ‘다다익선’의 설치와 역대 전시 등 30년간의 주요 사건과 활동을 보여 준다. 3층 통로에서는 과천관 내·외부 공간을 무대 삼아 국내외 건축가 30팀이 만들어 낸 새로운 미술관 이미지를 통해 과천관의 현대적 가치를 제고하는 공간 변형 프로젝트도 진행된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계속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이주의 어린이 책] “르네가 그린 재미있는 세상 찾아봐요”

    [이주의 어린이 책] “르네가 그린 재미있는 세상 찾아봐요”

    꿈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클라스 베르플랑케 글·그림/주니어RHK/40쪽/2만 5000원 이탈리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하고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최종 후보에 오른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클라스 베르플랑케의 작품이다. 서양 미술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작품관을 어린이 눈높이에서 쉽고 흥미롭게 전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 그림을 그렸다. 르네라는 이름의 화가는 꿈속에서 사과, 나뭇가지, 달걀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익숙한 사물을 또 다른 무언가로 재탄생시킨다. 작품 속 르네가 그린 그림은 모두 초현실주의 표현 기법인 ‘데페이즈망’이라는 독특한 화풍으로 완성된 것이다. 작가는 꿈이라는 판타지 공간을 이용해 르네의 초현실 세계의 분위기에 맞는 그림 공간을 창조해 낸다. 본문 곳곳에는 ‘빛의 제국’, ‘통찰력’, ‘연인’ 등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6개가 숨어 있다.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거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아이들에게 엉뚱한 상상이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한다는 것. 우리들의 고정관념이나 편견, 관습에서 벗어나 좀더 새롭고 자유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 준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유아용 예술그림책.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첫 출근일은 1981년 9월 23일, 결혼 날짜는 1982년 12월 20일입니다. 아직 기사 마감 전이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다음날 그가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인터뷰 때 정확한 날짜를 얘기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도움 될 만한 정보와 자료들을 문자와 이메일로 알려 왔다. 참 꼼꼼하고 철두철미하다 싶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김달진(61) 관장은 그런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섬세함과 집요함이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연구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지금의 그를 있게 했으리라. -“신문 쪼가리 모아서 밥은 어떻게 먹고살려는지…쯧쯧.” 어른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그럴 만도 했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생이 신문이건 잡지건 서양 명화가 실린 자료라면 닥치는 대로 오려서 스크랩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나중에 밥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을 게다. 나도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당장은 좋아하는 취미가 우선이었다. 비록 인쇄물이긴 해도 르누아르, 피카소, 천경자, 박수근의 그림을 모으는 기쁨은 컸다. 고교를 졸업할 때 내가 모은 미술자료는 스크랩북으로 10권이나 됐다. 결과적으로 이 자료들이 내 밥벌이의 든든한 밑천이 됐다. -충북 옥천에서 5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초등 4학년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셋째 형님을 따라 대전의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작은 껌종이, 담뱃갑, 우표 등이었다. 기념우표가 나오면 가장 먼저 우체국 창구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다 ‘주부생활’ ‘여원’ 등 잡지에 실린 세계 명화를 접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수집에 나섰다. 틈만 나면 헌책방이 많았던 청계천 6, 7, 8가를 돌며 미술전집 등을 샀다. 서점 주인에게 그림 한 장을 뜯어서 팔라고 조르기도 했다. 1972년 고 3 여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인쇄물로 된 서양의 명화만 보다가 우리 근대미술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물로 보니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걸 네가 직접 다 모은 거냐? 참으로 기특하구나.” 고 3때 당시 홍익대박물관장이던 이경성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막연하나마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계와 학계, 출판계에 계신 분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뜻밖에도 이 교수님이 한번 보자고 하셔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큰절을 한 뒤 가방에 싸 간 스크랩북 10권을 보여 드렸다. 교수님은 깜짝 놀라시며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과 함께 등을 두드려 주셨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때의 만남이 나중에 큰 인연으로 이어졌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인사동 전시장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던 시절 동대문도서관에서 월간 ‘전시계’라는 잡지를 알게 됐다. 잡지사에 편지를 보내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최학천 사장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더라. 지금의 남대문경찰서 인근 초원다방에서 만났는데 대뜸 “잡지 일은 어렵다. 사환으로 심부름도 하면서 취재하러 다녀야 한다. 월급은 따로 없고 교통비 정도만 줄 수 있는데 그래도 하겠느냐”고 물었다. 두말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때가 1978년이다. 취재해서 기사 쓰고, 미술자료 기획물도 연재하고, 편집일도 배우며 신나게 일했다. 하지만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바람으로 잡지가 폐간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청소부라도 좋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전시계’가 폐간된 뒤 청주에서 누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도우며 지내던 1981년 이경성 교수님이 정년퇴임하고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하셨다는 기사를 봤다. 당장 편지를 썼다. 관장님은 흔쾌히 나를 받아 주셨다. 당시 미술관 직원은 30명에 불과했다. 전시과, 서무과 2개만 있었고 큐레이터란 직제는 아예 없었다.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오광수 선생이 그때 전문위원으로 큐레이터 역할을 했는데 전문위원실에 책상 하나를 얻어 자료 수집을 담당했다. 하루 4500원 일당의 임시 일용직이었지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매주 금요일마다 출근부에 사인한 뒤 인사동, 사간동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전까지 미술관은 보내오는 자료만 수집했는데 그렇게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얻은 별명이 ‘금요일의 사나이’다. 한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다른 손엔 쇼핑백을 든 채 신문사와 전시장을 쏘다녔다. 화랑 관계자들은 “뭐하러 이걸 가지고 가느냐. 다 보내줄 텐데”라고 의아해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전시장에 걸린 그림과 도록에 실린 작품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도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니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편집광적이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그런 사소한 오류들이 자꾸 눈에 띄는 걸 어쩌겠나. 한 번 잘못 기록되면 계속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다. 그때 하도 몸을 혹사한 탓인지 2011년 척추에 종양이 생겨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정년퇴직 때까지 미술관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1996년 1월 미술관을 그만뒀다.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응어리가 지더라. 처음 별정직 7급 계약직으로 들어가 8년을 일했는데 그다음에 기능직 10급으로 강등됐다. 미술 잡지에 내가 쓴 미술자료 관련 글이 여럿 소개되고, 신문에도 인용 보도되면서 미술자료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승진은커녕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당시 아들이 몸이 약해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 처지였던 데다 좌절감까지 더해져 결국 미술관을 떠나게 됐다. 마침 가나화랑 이호재 사장과 인연이 닿아 자료실장으로 발탁됐다. 5년 10개월 근무하는 동안 ‘가나아트’ 잡지 편집회의에 참석했고, 기획물과 인터뷰 기사를 썼다. 이 사장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미술 정보지 ‘파리스코프’를 견본으로 포켓용 전시회 가이드를 만들기도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나에서 독립한 뒤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내게 됐다. -2001년 12월 직장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내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이듬해 1월에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했고, 그해 9월 미술정보 포털 사이트 ‘달진닷컴’도 오픈했다. 그리고 2008년 40여년 가까이 수집한 자료들을 한곳에 모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했다. 각종 희귀 자료와 기증 자료, 단행본, 정기간행물, 학회 자료 등이 하루가 다르게 쌓이면서 공간은 점점 부족해졌다. 평창동, 통의동, 창성동, 창전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전월세 생활을 한 끝에 지난해 3월 상명대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박물관 겸 사옥을 마련했다. 건물 사느라 은행에 빚을 많이 졌는데 건축가 김원이 재능 기부로 리모델링을 맡아 준 덕에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미술자료를 수집·정리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잡지 미술 연재물 기록을 시작으로, 미술단체카드, 미술인명카드, 주제별 미술기사 색인 카드 등을 정리했다. 1980~90년대 중반까지 내가 발표한 글이 신문에 자주 인용 보도되면서 ‘자료 하면 김달진’이란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았다. 평론가를 비롯해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없었다. 특히 미술자료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미술’ 1985년 겨울호에 쓴 ‘관람객은 속고 있다-정확한 기록과 자료 보존을 위한 제언’이란 글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료의 힘이랄까, 자료의 활용도와 중요성을 널리 알린 게 나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미술인 하면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만을 생각하지만 나는 비창작 미술인인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 미술행정가, 작품 보존 및 수복전문가 등에 대한 기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울아트가이드’ 미술계 인명록에 이런 인물에 관한 내용을 수집해 꾸준히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보완해 2010년 ‘대한민국미술인 인명록 1’을 발간했다. 조선시대 초상화가 채용신부터 1850년 이후 태어난 4900명을 실었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1000부를 비매품으로 찍었는데 이 책을 보고 “우리 할아버지가 화가였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이 책에 약력이 실려 있어 깜짝 놀랐다. 가보로 삼겠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다. 밤하늘 별 중에 왜 일등별만 기억해야 하느냐. 이등별, 삼등별 자료도 남겨야 우리 미술계가 풍부해진다. 인명록에 숫자 1을 붙인 건 언젠가 2권을 꼭 만들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현재 달진닷컴에서 7800명의 미술인이 검색되니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 왔으니 후회는 없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내(최명자씨)는 전시계에서 일할 때 같이 근무한 동료였는데 책을 좋아하고, 서예가 취미인 점 등이 나와 잘 맞았다. 박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할 때 아내가 아침마다 신문 배달하고, 우유 배달해서 살림에 보탰다. 직장이든 집이든 자료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아이들과 놀아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 관악구 남현동의 오래된 예술인 마을에 살았는데 자료를 놓아 둘 데가 없어서 라면 박스와 사과 박스에 담아서 안방에 침대 매트리스처럼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잤다. 어느 날 무게를 못 이겨 마룻바닥이 휜 것을 본 주인이 방을 빼라고 하더라. 할 수 없이 앞집의 빈 지하실을 얻어서 자료를 옮겼는데 여름 장마철에 습기가 차서 자료를 몽땅 버려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언젠가 그때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아팠다. 딸 영나(32)와 아들 정현(29)은 지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딸은 대학에서 만화창작을 전공했고, 아들은 미술경영학을 공부했다. 일부러 시킨 건 아닌데 자기들이 스스로 아빠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를 잇겠다고 하더라. 미술계 지인들이 다 부러워한다. 아내도 서울아트가이드 발행인을 맡고 있다.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를 창립했다. 전시, 학술, 뮤지엄 분과로 나뉘어 있고 3권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라키비움(라이브러리+아카이브+뮤지엄) 강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우환, 천경자 화백의 위작 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작품 이력과 같은 객관적 정보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 등 눈에 보이는 지원에만 신경쓰지 말고 자료 수집과 보존, 디지털화, 공공 수장고 확보 등 미술계 토양을 튼튼히 하는 인프라에 좀더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신 일도 많으시지만 하실 일도 많으십니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005년 11월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국내 미술계가 직면한 한국 미술의 정체성 문제, 미술계 위작 시비, 미술시장 활성화,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 등 많은 문제들의 단초가 오늘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전시 리플릿 한 장, 메모 한 줄에 담겨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30년 전 ‘관람객은 속고 있다’에 쓴 글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는 신념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순녀 문화부장 coral@seoul.co.kr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46년간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보존, 연구에 매진해 온 자타공인 국내 미술자료 전문가 1호다. 미술계 안팎에선 오래전부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미술계 인간 자료실’로 통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전문 분야를 개척해 온 그는 스스로를 “한국 근현대 미술의 기록과 공유를 지향하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라고 부른다. 2013년부터 라키비움 프로젝트를 통해 아키비스트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1955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과 졸업(1993),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졸업(1999) ▲월간 전시계(1978~1981),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1981~1996),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1996~2001)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 개관 ▲2002년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창간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개관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창립 및 협회장,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장, 서울시박물관협의회 이사, 종로구사립박물관협의회 회장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2010), 한국미술저작출판상(2014), 홍진기창조인상(2016)
  •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전남 나주시는 우리나라 4대 강의 하나인 영산강이 시가지를 관통하고, 광주 산업권의 근교로 목포, 함평, 무안, 영암, 강진, 해남군 등 10개 시·군의 관문인 교통의 중심지다.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선열이 많이 배출됐다. 임진왜란 의병장 김천일 선생과 조선의 석학 신숙주의 태생지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유명하다. 고려의 건국에도 토대 역할을 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부인은 나주 출신 오씨가문의 딸로 그가 낳은 아들은 2대왕 혜종이다. 왕건은 나주 오씨 세력과 손을 잡고부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나주는 전국 12개 주요도시에 목이 생길 때 나주목이 돼 구한말까지 1000여년 동안 큰 도시의 지위를 이어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천년목사 고을’로 불린다. 전라도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유래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의 향기와 자연의 감동이 살아 숨 쉬는 ‘호남의 천년고도’로 알려졌다. 나주는 영산강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풍요한 맛과 멋, 여유를 주는 고장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도시의 지세가 한양과 비슷하다고 적었던 나주는 당시 한양 구경하기가 힘든 전라도 백성들에게 ‘나주읍성에 가면 한양 갔다 온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서울’로 불렸다. 이 같은 역사문화도시인 나주는 금천·산포면 일대에 한국전력공사 등 14개 공공기관이 들어선 ‘빛가람 혁신도시’가 건설돼 호남권 중심도시로 재도약한다. 서울 용산역에서 나주역까지 KTX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수도권 등지 관광객들이 역사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가족 단위로 부담 없이 찾아온다. >>볼거리 ●영산강 추억 실은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바닷물이 영산강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시절 과거 영산강 물길을 이용해 쌀, 소금, 미역, 홍어 등 생필품을 실어 나르던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를 말한다. 영산강 황포돛배는 육로교통이 발달한 데다 1976년 상류에 댐이 들어서고 영산강 하굿둑이 만들어지자 1977년 마지막 배가 떠난 후 자취를 감췄다. 2008년 30여년 만에 웅장하고 위엄 있는 옛 모습 그대로 부활한 황포돛배는 추억을 싣고 영산강을 오르내린다. 영산강변을 따라 자연경관을 보면서 물살을 가르는 황포돛배 체험은 자연이 주는 큰 선물이다. 옛 목선을 그대로 재현한 빛가람 1호와 2호, 한옥 지붕이 멋스러운 나주호, 발굴된 고려시대 배 조각을 복원해 놓은 왕건호, 빠르게 물살을 가르는 영산강호까지 황포돛배 투어가 풍성하다. 영산강 비단 물결을 따라 유람하는 황포돛배투어는 나주 여행의 백미다. 영산강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돛배를 타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해설사가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놓고 미끄러지듯 배는 강을 거슬러 오르며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좋은 일 생기는 한옥 체험 ‘목사내아’ 나주목은 전남도를 관할하는 중심고을이었다. 전라도 최고의 곡창지대인 나주 일대를 관장하는 나주목사 자리는 조정의 정3품 당상관이 맡던 고위직이었다. 1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목사가 한양에서 나주로 내려왔다. 고려와 조선시대 때 나주목사로 내려온 중앙관리가 살던 살림집이 나주목사내아다.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훼손되자 한옥체험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서 ‘금학헌’으로 이름 지었고 명소로 자리잡았다. 목사내아는 정적인 문화재에서 관광객이 직접 숙박을 통해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바뀌었다. 특히 나주목사 중에서 존경을 받았던 유석증 목사와 김성일 목사의 이름을 딴 특별한 방을 마련했는데 이곳에서 숙박을 한 뒤에는 좋은 일들이 생겨서 소원을 이루는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체험부터 전시까지 ‘천연 염색박물관’ 나주는 예로부터 비단 직조 기술과 쪽 염색이 발달한 곳으로 오늘날에도 샛골나이와 염색장이라는 인간문화재가 활동하는 천연염색 문화의 중심지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리적 환경 덕에 쪽과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좋았던 게 큰 이유다.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살려 건립한 천연염색 문화관은 다양한 전시와 교육, 염색 체험을 통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염색 문화를 알 수 있는 장소다. 200명이 동시에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관과 세미나실, 연구실 등을 갖췄다. 어린이 등 가족 단위 체험을 위한 상설 체험장을 운영, 천연염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천연염색 상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방도 있다. ●고대왕국 반남고분군·복암리 고분군 반남고분군은 나주시 반남군 자미산(98m)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지에 산재해 있다. 신촌리 8호분, 덕산리 14호분, 대안리 12호분 등 총 34호분으로 이뤄졌다. 이곳에는 대형 옹관고분 수십 기가 분포한다. 대형 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항아리)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구별되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이다. 대형 옹관고분은 기원전 3세기부터 6세기까지 4세기 동안 영산강 유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3세기쯤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하며 이때에는 분구의 규모가 훨씬 대형화돼 그 규모가 40~50m에 이른다. 또 1996년 인근에서 발견된 총 4기의 복암리 고분군도 신비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복암리 고분군 중 제일 큰 3호분은 도굴을 당하지 않아 금동신발, 은제장식, 환두대도 등의 유물이 나왔다. 40여기의 다양한 묘가 한 봉분 안에 촘촘히 조성돼 일명 아파트 고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남면 고분로에 세워진 국립나주박물관은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을 비롯해 출토된 유물 1500여점을 전시한다. ●드라마 ‘주몽’의 감동 영상테마파크 나주시 공산면 일대 14만㎡의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주 영상테마파크는 35억원을 투입해 특화한 영상촬영지다. 드라마 ‘주몽’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은 옛 고구려의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그동안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 및 영화에 출연했던 송일국, 한혜진, 전광렬, 이계인, 진희경, 최정원, 정진영, 김정화, 오윤아 등 주연배우의 핸드 프린팅과 출연 사진을 배너로 표현한 ‘스타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테마파크 안에 들어가 고구려궁 맞은편에 있는 성루에 올라서면 S자로 굽이치는 영산강과 넓게 펼쳐진 다야뜰을 볼 수 있어 막혀 있는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2005년 건립 후 10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갔다. 초가집으로 조성됐던 저잣거리를 너와 형태로 개조해 천연염색, 죽물, 소목, 한과, 한지, 비누, 점토공예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방으로 조성했다. 세트장 입구에는 ‘삼족오의 비상’ 조형물과 광장이 조성됐고, 망루와 누각·성문 주변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실내 스튜디오 한쪽에는 밀레, 고흐, 뭉크, 마티스, 클림트, 신윤복, 김홍도 등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실사(實寫)한 그림을 내건 명화미술관이 있다. 규모가 방대해 테마파크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맑고 담백한 국물 ‘나주곰탕’ 소뼈를 고아 낸 물에 소고기, 양지와 내장을 썰어 넣은 뒤 다시 푹 고아서 낸 국물로, 맑고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다. 윤기가 자르르한 나주쌀밥을 넣어 먹는 나주곰탕은 이제는 전 국민의 영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곰탕은 어디나 있지만 나주곰탕은 다른 지역에서 넘볼 수 없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하다. 흔히 곰탕 하면 우윳빛 뽀얀 국물을 떠올리지만 나주곰탕은 국물이 말갛다. 색깔부터 다르다. 소뼈를 우려내는 일반 곰탕과 달리 소뼈를 적게 넣고 양지나 사태 등 좋은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 맛이 짜지 않고 개운하다. 소고기는 단백질과 양질의 지방이 풍부하며 소뼈에서 우러난 풍부한 칼슘이 성장기 아이들과 여자들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나주곰탕은 고기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무, 파, 마늘 등을 많이 넣기 때문에 비타민과 무기질도 충분한 영양식이 된다. 나주답사1번지인 금성관 인근에 곰탕거리가 조성돼 있다. 하얀집, 노안곰탕, 남평할매곰탕, 제일곰탕 등 전통 있는 음식점이 많이 있다. ●임금님 진상품 ‘나주배’ 나주는 배로 유명한 고장이다. 예로부터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는 기록(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우수성을 오래전부터 인정받았다. 2400여 농가가 매년 6만여t을 생산해 1200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영산강 유역 양질의 토양과 연평균 기온 14도 내외 최적의 기후조건,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기술로 재배해 향이 좋고 당도가 높다. 연하고 부드러우며 과즙이 많고 색깔이 고운 게 특징이다. 전국에서 배 수확이 가장 빨라 추석 제수용품으로 나주배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출하된다. 이때 전국으로 유통되는 배의 대부분이 나주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들의 입맛도 잡으면서 미국, 대만, 베트남 등지로 수출된다. 지난해 미국에 1530t이 팔렸다. ●세상만사 좋을시구 ‘영산포 홍어’ 영산포는 홍어의 고장이다. 영산포 선창가 일대에는 홍어 전문점 30여곳이 성업 중이다. 톡 쏘는 홍어에 잘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곁들이면 유명한 홍어삼합이 된다. 여기에 막걸리 한잔이면 ‘세상만사 좋을시구’가 절로 나온다. 과거에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영산강을 따라 올라오는 일주일간 자연 발효되면서 독특한 맛의 홍어가 됐다. 지금은 웰빙식품으로도 많이 알려진 전라도 대표 음식이다. 홍어는 홍어회와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탕 그리고 나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홍어애보릿국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참으로 이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소설가 황석영이 홍어를 처음 먹어본 후 토해낸 말이다. ●미꾸라지 먹고 자란 ‘구진포 장어’ 영산포를 지나 다시면 회진마을로 가는 길목에 구진포가 있다. 구진포는 영산강 뱃길이 끊기기 전까지 사람들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나루터였다. 구진포 장어는 구진포가 번성하던 시절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포구 주변에서 잘 잡히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 맛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다. 장어는 민물에서 살지만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나가고 부화한 장어들이 민물로 들어온다. 포구는 기능을 잃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옛맛이 그리워 구진포 장어집을 찾는다. 1940년대부터 들어선 장어 음식점들로 장어구이촌이 형성, 지금도 구진포 도로변에는 고소한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깨알 보좌 달인’ 조윤선, 朴정부서 세 번째 중용 승승장구

    ‘깨알 보좌 달인’ 조윤선, 朴정부서 세 번째 중용 승승장구

    친이계→대변인 거치며 ‘입’으로… 여가부 장관·여성 최초 정무수석 “내 정치의 원동력은 문화다. (입각한다면) 문체부 장관을 하고 싶다.”<서울신문 2011년 5월 9일자 단독 인터뷰에서> 조윤선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16일 정계 입문 15년여 만에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현실로 일궈냈다. 여성가족부 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에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 세 번이나 중용됐다. 친박(친박근혜)계 사이에서는 “(박 대통령의) 심기 보좌의 달인”으로, 여야 정치권에서는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후보자는 정계 입문 이후 18대 국회 비례대표 국회의원 시절까지만 해도 친이(친이명박)계로 분류됐다. 하지만 2002년 19대 총선 불출마를 결정한 뒤 박 대통령과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됐다. 19대 총선 및 18대 대선 당 대변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등을 거치며 ‘박근혜의 입’ 역할을 했다. 특히 박 대통령을 곁에서 수행하면서 여성이라는 심리적 동질감을 바탕으로 의상과 소품까지 꼼꼼히 챙기는 ‘깨알 보좌’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후보자가 정무수석에 임명된 직후 역할에 대해 묻자, 박 대통령은 웃으며 “하시던 대로 하세요”라고 답한 일화는 둘 사이의 두터운 신임 관계를 보여 준다. 조 후보자가 지난 20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뒤 개각 하마평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개각으로 박근혜 정부의 ‘실세’로 자리잡았다. 조 후보자에게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도 줄곧 따라붙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첫 여성 변호사,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발탁돼 보수정당 사상 첫 여성 대변인, 첫 여성 정무수석 등이 대표적이다. 조 후보자는 이날 기자 브리핑에서 “앞으로 문화융성으로 국민이 행복하고, 나라를 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길에 성심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조 후보자는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2007)와 ‘문화가 답이다’(2011)라는 관련 분야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3개 부처 개각…‘세번째 요직’ 조윤선 “의원님 질문에 성실히”

    3개 부처 개각…‘세번째 요직’ 조윤선 “의원님 질문에 성실히”

    박근혜 정부들어 세번이나 요직을 밭게 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는 16일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는 뜻을 밝혔다. 조 내정자는 이날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국정 기조 하에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는 시기에 문체부 장관 후보로 지명돼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화융성으로 우리 국민이 행복하고 윤택하게, 우리나라를 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성심을 다하겠다. 국회 청문회 준비를 충실히 하고 의원님 질문에 성실히 임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덧붙이고 간담회장을 떠났다. 조 내정자의 이런 행보는 전임 장관들과는 차별성을 갖는다. 현 정부 들어 문체부 장관에 임명된 유진룡·김종덕 장관은 장관 후보로 지명됐을 때 기자들과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를 갖지 않았다. 조 내정자가 이날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가진 것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조 내정자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간담회를 가진 것은 국회 청문 절차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직 정식으로 장관에 임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질의응답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무시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청와대의 개각 발표가 나자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사무실을 마련해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에 들어갔다. 문체부는 우선 인사청문회의 기본 자료인 조 내정자의 경력 증명과 재산·소득 관련 서류들을 챙겨 오는 20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조 내정자는 문체부 간부들로부터 부서별 주요 업무와 현안을 보고받는 등 국회 청문에 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문체부 공무원들은 조 내정자의 내정 소식에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나타냈다. 이미 언론에서 조 전 수석이 유력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기 때문인지 별다른 동요 없이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특히 조 내정자가 문화예술에 대해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어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현 정부의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인 문화융성을 잘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실장급 공무원은 “조 후보자가 국회의원 당시 문화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해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며, 문화예술과 관련된 책을 쓸 정도로 조예가 깊어 문화융성 정책을 잘 펼쳐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 내정자는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2007)와 ‘문화가 답이다’(2011)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다른 한 실장급 공무원은 “2년 가까이 당의 대변인을 지내 언론에 굉장히 친화적인 분”이라며 “언론 등과의 소통도 아주 원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장급 한 공무원은 “조 후보자가 현 정부 초기부터 문체부 장관 물망에 줄곧 오른 것은 문화예술 분야의 업무 능력을 이미 인정받았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조 내정자의 청와대 정무수석 재임 시절 국민소통 비서관으로서 8개월가량 함께 일했다는 정관주 문체부 제1차관은 “스마트하고 성실하며 능력이 있으면서도 예의가 바른 분”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개 부처 개각…조윤선 맞는 문체부, 별다른 동요 없이 ‘담담’

    3개 부처 개각…조윤선 맞는 문체부, 별다른 동요 없이 ‘담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은 16일 법조인 출신 여성 정치인인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신임 장관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에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동요 없이 차분한 분위기다. 이미 언론에서 조 전 수석이 유력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기 때문인지 별다른 동요없이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특히 조 내정자가 문화예술에 대해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어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현 정부의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인 문화융성을 잘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실장급 공무원은 “조 후보자가 국회의원 당시 문화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해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며, 문화예술과 관련된 책을 쓸 정도로 조예가 깊어 문화융성 정책을 잘 펼쳐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 내정자는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2007)와 ‘문화가 답이다’(2011)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다른 한 실장급 공무원은 “2년 가까이 당의 대변인을 지내 언론에 굉장히 친화적인 분”이라며 “언론 등과의 소통도 아주 원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장급 한 공무원은 “조 후보자가 현 정부 초기부터 문체부 장관 물망에 줄곧 오른 것은 문화예술 분야의 업무 능력을 이미 인정받았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조 내정자의 청와대 정무수석 재임 시절 국민소통 비서관으로서 8개월가량 함께 일했다는 정관주 문체부 제1차관은 “스마트하고 성실하며 능력이 있으면서도 예의가 바른 분”이라고 전했다. 한편 문체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중 한 곳에 사무실을 마련해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믿고 쓰는 조윤선?…여가부 장관,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까지

    믿고 쓰는 조윤선?…여가부 장관,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까지

    조윤선 전 새누리당 의원이 16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돼 여성가족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에 이어 박근혜 정부 세 번째 요직을 맡게돼 화제다. 조 장관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내각에서 여성가족부 장관(2013∼2014년)을 맡았고, 2014년 6월 청와대 참모진 개편때 최초의 여성 정무수석으로 기용되며 청와대의 ‘유리천장’을 깨뜨려 화제를 모았다. 법조인 출신인 조 내정자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2012년부터 당선인 시절까지 대변인으로서 박 대통령을 보좌했다. 특히 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부터 박 대통령의 패션부터 말투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꿰며 ‘그림자 수행’을 했고, 박 대통령으로부터 일찌감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조 내정자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여성가족부장관→정무수석→문화체육관광부 장관(내정)으로 잇따라 발탁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굴곡도 있었다. 지난해 국회에서 박 대통령의 1호 개혁과제인 공무원연금개혁안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됐을 때 당·청 간 물밑조율에 주력했으나, 여야 합의 결과가 애초 청와대에 기대 수준에 못 미치자 정치적 책임을 지고 11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올해 4월 20대 총선 때는 서울 서초갑에 출마하기 위해 당내 공천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당내 경선에서 경쟁자인 이혜훈 후보에게 밀려 낙천하기도 했다. 당시 이 후보와의 여론조사 경선은 1% 미만의 소수점 차이의 격차로 승부가 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여론조사 경선에서 석패한 조 내정자를 서울 용산을 비롯한 다른 지역구에 ‘전략 공천’ 할 방침이었지만, 조 내정자는 “서초 주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출마를 고사했다. 조 내정자는 총선 낙천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지명도를 갖고 있고 참신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 총선 이후 다른 요직 기용이 꾸준히 예상됐었다. 정계와의 인연은 지난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대변인을 맡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6년간 공백기를 가졌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았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지만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했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법학 석사를 땄다. 여기에 변호사와 한국씨티은행 부행장 경력 등으로 외교·법률·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췄다.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와 ‘문화가 답이다’라는 교양서를 낼 만큼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식견을 갖고 있다는 평가이다. 변호사인 남편 박성엽씨와의 사이에 2녀. ▲서울(50) ▲세화여고, 서울대 외교학과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 선대위 공동대변인 ▲한국씨티은행 법무본부장(부행장) ▲한나라당 대변인 ▲18대 국회의원 ▲19대 총선 새누리당 선대위 대변인 ▲18대 대선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대변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여성가족부 장관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성신여대 법과대학 석좌교수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서 보물급 ‘고려 거울걸이’ 발견

    일본서 보물급 ‘고려 거울걸이’ 발견

    일본 아이치현미술관에서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급 거울걸이(鏡架)가 발견됐다. 불교미술사를 전공한 최응천 동국대 교수는 아이치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기무라 데이조 컬렉션에서 높이 56.4㎝, 폭 42.1㎝인 고려 거울걸이를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거울걸이는 두 개의 사각 틀을 교차해 접고 펼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로, 고려 거울걸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 3점, 국립전주박물관과 국립청주박물관에 각각 1점 등 5점밖에 없는 희귀한 문화유산이다. 연합뉴스
  • 독일을 사랑한 방랑자들, 현대미술을 키우다

    독일을 사랑한 방랑자들, 현대미술을 키우다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1990년대의 독일은 마치 예술의 용광로 같았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에게 독일은 문화적 차이를 초월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예술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예술적 공간이었다. 특히 베를린은 1950년대의 파리, 1960년대의 뉴욕에 이어 국경을 초월한 문화 방랑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생생한 동시대 미술의 현장으로 부상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독일’ 전은 1990년대 독일로 이주해 온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독일 미술계의 다문화적 경향과 독일 현대미술의 다양한 지형을 탐색한다. 독일 외교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독일국제교류처(ifa)가 기획한 전시로, 새로운 예술적 공간으로서의 독일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예술가들의 국경을 초월한 잦은 이동과 교류를 꼽는다. 국경이 무의미해진 현대 사회에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이동하는 ‘정신적 유목민’으로서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전시의 기획의도이다. ●독일서 수학·작품 활동했던 13인 50여점 전시 전시에는 알만도(네덜란드), 칸디스 브라이츠(남아프리카공화국), 토니 크랙(영국), 조지프 코수스(미국) , 마리 조 라퐁텐(벨기에), 백남준(한국) 등 세계적인 작가 13인의 회화, 사진, 설치 작품 등 총 50여 점이 소개된다. 작가들의 국적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독일에서 수학하거나 작품 활동을 해 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이 독일 내에서 활동한 시기는 독일 현대미술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시작품은 모두 ifa 소장품으로 이뤄져 있다. 세계를 무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초창기 오리지널 작품이 대거 선보이는 드문 전시다. 고아라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배양지’로서 독일 미술의 지형도를 가늠해보기 위한 것”이라며 “작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와 사회 간의 연결고리를 살펴보면서 20세기 현대미술의 형성에 예술가들의 이주가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예술의 다양성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쟁과 인류 갈등·인간과 자연 관계 등 소재 다양 네덜란드 출신 알만도의 작업은 전쟁과 인류의 갈등을 주로 다룬다. 어린 시절에 각인된 나치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이 내면에 자리잡은 결과다. 전시에는 작가를 억압하고 있는 내면의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회화작품 ‘깃발 9-4-85’ 등이 소개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출생한 칸디스 브라이츠는 일란성 쌍동이를 인터뷰한 뒤 편집해 보여주면서 언어와 소통의 문제를 다룬 미디어 작품을 선보인다. 영국 출신의 조각가 토니 크랙은 1977년부터 독일 부퍼탈에 거주하며 뒤셀도르프쿤스트아카데미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대량생산의 배설물이라 할 수 있는 폐품과 쓰레기로 만든 거대한 형상을 통해 인간과 문명 그리고 자연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스위스 루체른 태생의 마리안느 아이겐헤어는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바젤과 런던에서 작가, 큐레이터, 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삶의 궤적을 따라 남겨진 개인의 유물을 통해 작가는 현재와 미래, 알려진 것과 만들어진 것, 실제와 모조를 결합하면서 사적인 생활에 대한 연구를 새로운 이미지로 변형시킨다. 이스탄불에서 조각을 공부한 후 독일 카셀예술대학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에서 가르친 아이제 에르크먼은 가변형 설치물 ‘여기 그리고 저기’를 선보인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구축한 해안방어선 잔해를 흑백사진으로 작품화한 ‘대서양 벽’은 체코 태생인 막달레나 예텔로바의 1995년 작품이다. 덴마크 출신의 추상표현주의 작가 페르 키르케비의 1991년도 회화 작품, 미국 출신 작가인 조지프 코수스의 개념미술, 칼스루에 미술대학 교수와 베를린 예술대학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벨기에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 마리 조 라퐁텐의 사진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생물학자 헤르만 드 브리스는 독일 크네츠가우에 거주하며 식물채집과 드로잉, 여행, 그림 그리기를 병행하고 있다. 그는 나뭇잎과 흙으로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주는 ‘10월 산사나무 울라리 아래에서 이틀’과 ‘프로방스 토양’이라는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미켈란젤로도 반한 ‘미술 보물창고’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미켈란젤로도 반한 ‘미술 보물창고’

    ‘신성한 마리아의 새로운 성당’이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겉보기에는 참 심플하다. 피렌체 역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이 성당은 도미니크회 최대 규모의 성당으로 1278년 착공해 1350년 건물이 완공됐다. 파사드(건물 정면)는 100년이 지난 1456년 피렌체의 거부인 루첼라이 가문의 지원을 받아 공사가 시작됐다. 1470년 완성된 성당의 파사드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설계를 맡았다. 알베르티는 금융업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알베르티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24살에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이면서 음악, 수학, 희곡, 그림, 건축을 섭렵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그는 두 개의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를 완성한 브루넬레스키에게 헌정한 ‘회화론’에서는 2차원 화면 위에 3차원 공간을 보여 주기 위한 수학적인 설명과 함께 회화와 조각에서 어떻게 이를 구현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최초로 건축이론을 정립한 비트루비우스의 책을 참고로 쓴 ‘건축론’에는 조화와 균형, 비례의 규칙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 양식 조화 이룬 건물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파사드에는 군더더기 없는 형태만으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알베르티의 건축철학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파사드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이런 조화로운 배치를 통해 알베르티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장식성이 있는 독특한 화면을 만들었다. 은은하고 정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 성당을 미켈란젤로는 “나의 신부여” 라고 부르며 특히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원근법 정수 ‘성 삼위일체’ 벽 뚫은 듯 착시 일으켜 안으로 들어가 보자.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에는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조토의 ‘십자가형’, 기를란다요의 ‘마리아와 성 요한의 생애’, 보티첼리의 ‘ 동방박사의 경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마사초(1401~1428)의 ‘성 삼위일체’는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수학적 선원근법을 적용한 혁신적인 작품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토스카나 지방의 산조반니 출생인 마사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피렌체와 로마에서 후원자들의 가족 예배당 프레스코화를 제작하거나 성당의 의뢰로 제단화를 그리던 그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건축에서 브루넬레스키, 조각의 도나텔로와 함께 회화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출발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마사초는 착시 현상을 이용한 중앙 원근법을 능숙하게 구사해 2차원의 평면이지만 물체는 3차원의 공간에 있는 듯이 보이도록 했다. ‘성 삼위일체’는 완숙한 원근법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교회당의 왼쪽 벽 중간쯤에 그려져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자연광의 효과까지 계산에 넣은 이 그림은 평면에 그렸음에도 가장 안쪽처럼 보이는 천장의 아치모양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어서 마치 벽을 뚫어 놓은 듯 착시를 일으킨다. 기품이 넘치는 부드러운 색조에 화면 전체는 완전한 대칭을 이루며 가운데에 위치한 그리스도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를 소실점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뒤에 서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빛이 퍼져 나가는 효과를 냈다. 그림 속 건물 안쪽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는 마리아와 요한이 있다. 이들은 마리아와 요한이 입은 것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이다. 마사초는 당시 이탈리아 남자의 평균키 162㎝에 맞춰 눈높이(약 153㎝)를 기준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 높이가 기증자 부부가 무릎을 꿇고 있는 면과 일치한다. 그림 하단 양쪽(화면 속 예배당 바깥쪽)에는 이 그림을 주문하고 기증한 도메니코 렌지와 그의 아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림 아래쪽에는 해골이 누워 있는 석관이 그려져 있다. 해골 위에는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과거에 현재의 당신이었으며, 당신 또한 나와 같이 되리니.’ ●한가운데 걸려 있는 조토의 십자가도 볼거리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한가운데 걸려 있는 조토의 십자가 맞은편 벽에 걸린 브루넬레스키의 십자가도 눈여겨볼 거리다. 발길을 붙잡는 또 다른 작품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1449~94)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다. 질서와 균형이 돋보이고 우아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귀족들로부터 부름을 받을 정도로 인기 절정의 화가였다. 메디치가와 사돈 관계인 토르나부오니 집안에서도 최고 인기 화가에게 예배당을 장식할 벽화를 외뢰했다. 기를란다요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중심으로 위쪽에는 성모마리아의 대관식 장면을, 오른쪽에는 마리아의 일생을, 그리고 왼쪽에는 세례 요한의 일생을 그려 넣었다. 인물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뛰어났던 기를란다요의 손끝을 통해 완성된 프레스코화에는 르네상스 여성들의 우아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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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의 역사(앤서니 그래프턴 지음, 김지혜 옮김, 테오리아 펴냄) 오늘날 학술서와 논문에 필수적인 각주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연구자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데 각주를 활용하는 학계의 관행 등도 다룬다. 320쪽. 1만 5000원. 국립고궁박물관(최동군 지음, 담디 펴냄)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조선 왕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박물관 구석구석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알아 가는 재미를 준다. 319쪽. 1만 6000원.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스베틀라나 페트로바 지음, 공경희 옮김, 세종서적 펴냄) 명화에 뚱보 고양이 자라투스트라를 결합해 디지털 시대의 예술과 세계 최고의 미술관으로 안내한다. 304쪽. 2만원. 버섯 도감(권혁도 외 그림, 석순자 그림, 보리 펴냄) 우리나라에서 나는 5000종이 넘는 버섯 중 125종을 뽑아 아름다운 세밀화로 버섯 역사부터 각 버섯의 정보를 담았다. 348쪽. 8만원. 여행을 믿는다(이재영 지음, 클 펴냄) ‘글쓰는 엄마’와 책을 읽기 좋아하는 딸이 함께 떠난 여행의 순간순간을 이야기하듯이 풀어낸 책이다. ‘엄마이자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303쪽, 1만 3000원. 오! 나의 강아지(헬렌 피어스 글, 케이트 서튼 그림, 김진현 옮김, 보통의나날 펴냄) 어린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의미, 반려견과 함께 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반려견을 향한 배려와 책임감을 키울 수 있도록 안내한다. 48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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