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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지와 응시 사이 [으른들의 미술사]

    금지와 응시 사이 [으른들의 미술사]

    ●옷을 입은 누드의 충격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1746~1828)의 ‘마하 연작’은 스페인 미술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여성 누드로 평가된다. 두 그림은 마드리드의 귀족 정치가였던 마누엘 고도이가 개인 감상을 위해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학자들은 고도이의 연인 알바 공작부인을 모델로 했다고 하지만,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 그림은 제작 당시 대중 공개를 전제로 그려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은밀해 보인다. 이는 18세기 말 스페인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 속에서 더욱 큰 충격을 낳았다. 특히 고야는 재킷과 드레스를 입은 ‘옷을 입은 마하’에서조차 몸의 굴곡을 강조해 은밀한 관능을 숨기지 않았다. 옷을 입고 있는 이 작품은 누드 못지않은 관능을 드러낸다. 실제로 프라도 미술관은 이 작품이 누드 버전보다 더 거칠고 빠른 붓질로 처리됐으며 색채 또한 한층 선명하다고 설명한다. 옷을 벗은 누드나 입은 누드나 스페인을 뒤흔들었다. 19세기 초 보수적 기준으로 두 그림은 문제적 이미지로 간주됐다. 그 결과 두 ‘마하’ 모두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고야는 한때 스페인 종교재판소의 조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금지된 시선과 근대적 인간성 화면 속 여성은 소파에 기대어 정면을 응시하며, 황금색 무늬가 들어간 검은 레이스 재킷과 흰 드레스, 화려한 허리띠를 착용한 채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렇게 직접적인 시선 처리와 사실적인 신체 표현은 18세기 말 스페인 미술에선 볼 수 없었다. 고야는 장식적 배경을 최소화하여 인물의 존재감을 전면에 부각했다. 그러나 고야의 마하는 수동적 대상이라기보다 당당한 주체로 화면을 장악하고 있다. 모델의 시선은 근대적 개인의 자의식을 예고한다. ●가장 스페인다운 여성, 마하 여기서 ‘마하’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마드리드 하층 혹은 도시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특정 인물의 초상이라기보다 당시 여성을 부르는 명칭에 가깝다. 남성형은 ‘마호’로 불렸으며, 귀족이 아닌 평민 계층이면서도 화려한 복식과 당당한 태도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낸 젊은이를 의미했다. 마하와 마호는 세련된 몸짓과 대담한 태도로 당시 상류층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점차 스페인의 멋과 세련미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고야는 마하가 옷을 입거나 벗은 짧은 순간 자신의 의지대로 화면 밖을 볼 줄 아는 근대적 자아의 탄생을 포착한 것이다.
  • 현대차, LA 카운티 미술관과 2037년까지 파트너십

    현대자동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과의 파트너십을 2037년까지 연장하고 신규 전시 시리즈를 선보인다고 24일 밝혔다. 현대차는 2015년부터 LACMA와 협력해왔으며 총 8회의 전시를 후원했다. 이번 파트너십 연장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전시 시리즈는 ‘현대 프로젝트’다. 이는 환태평양 지역과 연계된 작가들의 작업 세계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2028년부터 격년으로 열릴 예정이다.
  • 광주 고려인마을, 3·1절에 만세운동 재현

    광주 고려인마을, 3·1절에 만세운동 재현

    올해 3·1절을 맞아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열린다. 24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새달 1일 오후 1시 30분 광산구 월곡동 일원에서 3·1절 107주년과 고려인 만세운동 103주년을 기념하는 ‘빼앗긴 조국, 그날의 함성’ 행사가 개최된다. 고려인 동포와 월곡동 선주민들이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1919년 당시의 절박한 순간을 재현한다.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 복장의 오토바이 부대와 만세운동에 나섰던 소녀, 독립운동 지도자 차림의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마을 둘레길을 따라 행진하며 만세삼창을 외친다. 문화공연도 이어진다. 고려인마을 어린이 합창단과 아리랑 가무단이 ‘아리랑’을 연주하며 세대를 잇는 기억의 무대를 꾸민다. 태극기 만들기 체험과 중앙아시아 전통빵 ‘리뾰시카’ 나눔 부스도 마련된다. 고려인 미술 거장 문 빅토르 화백의 대표작 50여점을 선보이는마을 미술관 개관식도 열린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우크라이나·우즈베키스탄 등에 거주하며 국권 회복에 헌신했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정착한 공동체로, 현재 7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3·1 만세운동 재현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이주와 디아스포라의 역사 속에 이어져 온 독립의 기억을 오늘의 광주에 다시 불러내는 자리로 의미를 더한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3·1 만세운동 이후 연해주로 모여든 독립운동가들을 돕기 위해 고려인 선조들은 식량과 자금, 병력을 지원하는 등 항일투쟁에 힘을 보탰다”며 “그 눈물과 희생을 기억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가 무엇을 이어가야 할지 되묻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슈퍼맨 관악 강감찬버스

    슈퍼맨 관악 강감찬버스

    “‘관악 강감찬버스’가 어떻게 운행되는지 직접 살펴보러 나왔습니다.”(박준희 서울 관악구청장)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아 불편했는데 이젠 동네에서 계속 살아야겠어요.”(주민 A씨) ●공공시설과 교통취약지역 연결 지난달부터 정식 운행을 시작한 공공문화시설 셔틀 ‘관악 강감찬버스’에 대한 주민 의견을 현장에서 듣기 위해 박준희 구청장은 지난 3일 2호선 노선의 ‘일일 안내사’로 나섰다. 관악 강감찬버스는 복지관이나 관악파크골프장,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등 공공문화시설과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은 고지대 주택가를 연결하다 보니 주민 호응이 높다. 1호선 노선은 난향동을, 2호선 노선은 남현동 일대를 다닌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무료승차권을 받거나 실시간 운행 노선을 확인할 수 있다. 어르신들은 신분증을 제시하면 된다. 서너 개 정거장을 지나자 25인승 버스는 이내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탑승객 대부분은 고령층이다. 남현동에 사는 이모(78) 씨는 “시장만 갔다가 올 때마다 언덕이 힘들어 중간에 몇 번은 멈춰 쉬어야 했는데 강감찬버스가 생기니 든든하다”며 웃었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넨 박 구청장은 틈틈이 공원이나 미술관, 도서관 등 곳곳의 공공문화시설도 소개했다. 그는 “시의원으로 일할 때부터 교통 취약지역에 마을버스 신설 요청이 많았는데 사업성이 낮다 보니 노선 연장도 쉽지 않아 고안된 버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시범 운행을 거쳐 노선이 정착되면서 이용 인원도 증가세다. 시범 운행 기간에는 하루 평균 317.6명이 이용했는데, 지난달에는 40.6% 늘어난 446.6명이 버스를 탔다. 박 구청장은 “정류장을 정할 때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을 적용했다”면서 “향후 추가로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출퇴근 시간 운행 1시간 늘려 달라” “수요가 많은 출퇴근 시간에는 운행 시간을 1시간씩 늘리면 좋겠다”는 주민 의견도 나왔다. 현재 배차 간격은 20~30분으로, 운행 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시승을 마친 박 구청장은 즉각 담당 부서와 회의를 했다. 그는 “경로당 등을 가더라도 미리 가서 기다리거나 주변에 볼일이 있기도 하다”면서 “30분씩 운행 시간을 늘리는 게 법적으로 가능한지 등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구청장은 “구청의 역할은 구민의 삶에 행복감을 더해주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 르누아르가 남긴 행복의 문장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르누아르가 남긴 행복의 문장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19세기말 사실주의·자연주의 유행당대 작가들은 어두운 이면 폭로 르누아르 “세상은 이미 골치 아파 예술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소신붓을 든 ‘행복의 호르몬’ 역할 자처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는 행복을 그린 화가로 불린다. 실제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마음이 즐겁고 편안해진다. 이런 감정은 기분 때문만은 아니다. 영국의 신경생물학자 세미르 제키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 뇌의 특정 영역으로 흐르는 혈류량이 최대 10%까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맛있는 음식을 볼 때처럼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면서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르누아르는 어떻게 관람자의 뇌를 사랑에 빠뜨리는 그림을 평생 그릴 수 있었을까. 대답은 르누아르가 남긴 편지와 그의 아들 장 르누아르의 회고록, 그의 화상이자 전기 작가였던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저서 ‘르누아르’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명언 “나에게 그림은 소중하고 즐겁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 이 문장은 르누아르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르누아르가 활동하던 19세기 말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예술사조가 유행하던 시대였다. 많은 예술가들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폭로하는 것을 일종의 의무처럼 여겼다. 사회적 모순을 작품으로 고발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도 르누아르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에게 그림은 삶의 고단함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쉼터여야 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미 세상에는 골치 아픈 일이 충분히 많은데 굳이 예술가까지 나서서 불쾌한 일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회화는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그의 생각은 그림의 장식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배경과도 연결된다. “나는 벽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을 선호한다”는 그의 말처럼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잠시라도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이 곧 예술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이런 르누아르의 예술관은 대표작은 ‘뱃놀이 일행의 점심’에서 완벽하게 구현된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빈부 격차로 인한 불안과 긴장이 커지고 있었지만 화면 어디에서도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림 속 장면은 파리 시민들의 인기 나들이 장소였던 파리 근교 샤투에 위치한 메종 푸르네즈 식당의 발코니다. 르누아르는 14명의 젊은 남녀가 한낮의 햇살 아래 모여 음식과 와인, 이야기와 웃음을 나누는 화기애애한 순간을 포착했다. 화면 왼쪽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강아지를 어르고 있는 여성은 훗날 르누아르의 아내가 되는 알린 샤리고다. 의자를 돌려 앉아 편안한 자세로 대화하는 남성은 인상주의 화가 귀스타브 카이유보트다. 그 밖에도 여배우, 언론인, 상인 등 다양한 사회 계층과 직업군을 대변하는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르누아르는 이들이 점심을 먹으며 허물없이 교류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삶의 기쁨과 조화로운 공동체를 화폭에 담아냈다. 차양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한낮의 햇살, 식탁 위 술병과 유리잔에 반짝이는 투명한 빛, 와인과 대화로 달아오른 사람들의 발그레한 뺨까지 인상주의 특유의 밝은 색채와 자유로운 붓 터치를 사용해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관람자는 시원한 강바람이 부는 발코니에 함께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놀라운 점은 파리 시민들의 행복한 여가 생활을 담은 그림과는 달리 르누아르의 실제 삶은 오랫동안 가난으로 얼룩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르누아르는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청년 시절에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화공으로 일하며 지독한 궁핍을 견뎌야 했다. 그가 30대 중반이었을 때 인상주의 전시가 잇따라 실패하고 비평가들의 혹평이 쏟아지면서 경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는 너무 배고픈 나머지 목탄화를 지울 때 쓰던 빵 부스러기(당시에는 지우개 대신 빵을 사용)를 먹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훗날 르누아르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 자루의 말린 콩이면 한 달을 버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시카고 미술관의 연구에 따르면 르누아르는 새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이미 그려진 그림 위에 다시 덧칠해 재사용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인상주의 화가 바지유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매일 먹지는 못하지만 나는 여전히 즐겁네.” 이때나 그 이후에도 그는 단 한 번도 피로나 걱정, 우울과 같은 어두운 감정을 화면에 옮기지 않았다. 두 번째 명언 “신이 여성의 가슴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내가 화가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다소 파격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르누아르의 작품 세계에서 행복만큼이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주제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에게 여성은 아름다움과 창조의 근원이었다. 그는 여성의 몸이 지닌 부드러운 곡선과 빛을 머금거나 반사하는 투명한 피부에서 무한한 회화적 가능성을 발견했다. 특히 여체를 그릴 때 조각가가 점토를 빚듯 붓으로 살결을 어루만지는 듯한 촉각적 질감을 화면에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화상 볼라르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성의 엉덩이를 그렸을 때 그것을 만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더 나아가 “나는 내 붓으로 사랑을 나눈다”며 누드화 작업을 성적 행위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육체적 쾌락보다는 생식과 풍요, 자연의 순환과 연결된 건강한 에너지를 의미한다. 그는 몽마르트르의 평범한 모델들을 신화 속 여신 비너스처럼 묘사했다. 일상의 누드 속에서 고전미의 원형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했다. ‘금발의 목욕하는 여인’은 여성의 몸이 그의 창조적 에너지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금발의 여인은 알린 샤리고다. 자연 속에 편안히 기대어 앉은 그녀의 풍만한 몸은 다산과 풍요, 영원한 여성성을 상징한다. 이 누드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붓자국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마감된 살결의 질감이다. 살이 눌리고, 접히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미묘한 굴곡과 빛을 머금은 듯 투명한 피부의 맑은 기운이 화면에서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림 속 여성 누드는 더이상 수치심이나 관음의 대상이 아니다. 르누아르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의 벗은 몸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생명체라는 것을 보여 줬다. 세 번째 명언 “고통은 지나가도 아름다움은 남는다.” 이 말은 1917년 12월께 르누아르와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의 대화에서 나왔다. 삶의 행복을 담은 르누아르의 그림들이 처절한 육체적 고통 끝에 얻어진 결실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매우 중요한 증언이다. 젊은 시절 마티스는 노년의 르누아르를 당대 최고의 화가로 우러르며 그의 집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자신의 근작을 보여 주며 조언을 구하곤 했다. 르누아르는 마티스의 파격적인 화풍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색채 감각만큼은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며 진심으로 격려했다고 전해진다. 그 무렵 마티스가 목격한 르누아르의 일상은 육체와의 전쟁터였다. 1890년대부터 시작된 류머티즘 관절염은 그의 관절을 서서히 파괴해 갔다. 특히 화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손은 엄지가 손바닥 안쪽으로, 다른 손가락들은 손목 쪽으로 굽어 들어가 새의 발톱처럼 변형되었다. 마침내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져 결국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손과 팔의 강직은 화가에게 치명적 위협이었지만 르누아르는 그런 상태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굳어버린 손가락 사이로 붓을 억지로 끼워 묶고 붓질 한 번 할 때마다 신음이 새어 나오는 노화가의 모습을 마티스는 곁에서 지켜보았다. 결국 참다 못한 마티스가 이렇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고통을 겪으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십니까?” 그러자 르누아르는 붓질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네.” 르누아르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매달렸던 유작 ‘음악회’는 고통을 이겨내고 인류에게 아름다움과 기쁨을 선물하고자 했던 그의 투쟁의 결과물이다. 이 작품에는 이국적인 의상을 입은 두 여인이 등장한다. 한 여인은 악기를 연주하고 다른 한 여인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몸을 기대어 깊은 친밀감을 표시한다. 어릴 적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던 르누아르에게 음악은 조화와 평화를 의미한다. 그는 관절이 굳어가는 통증 속에서도 어릴 적 성가대에서 느꼈던 평온한 안식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에게 그림은 고통을 잊게 해 주는 진통제이자 평생 갈망하던 조화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마지막 통로였다. 르누아르의 그림은 언뜻 보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그린 것 같은 가벼움과 자연스러움을 풍긴다. 그러나 작품 한 점을 완성하는 데 수십 년에 걸친 연습과 실패, 고통을 견뎌낸 인내가 농축되어 있다. 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고백이 있다. “이 드로잉을 완성하는 데 5분이 걸렸지만 여기에 도달하는 데 60년이 걸렸다.” 그의 걸작 ‘조르주 샤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을 감상하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목한 상류층 가족을 그린 초상화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부인과 그 옆에 나란히 앉은 두 아이, 소파와 카펫, 개까지 한순간 포착된 장면을 스냅사진처럼 자연스럽게 캔버스에 옮겨 놓은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물들의 시선과 자세가 만들어 내는 정교한 삼각 구도, 부인의 검은 드레스와 아이들의 흰 드레스가 이루는 선명한 색채 대비, 화면 전체에 흐르는 우아한 리듬까지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람자가 느끼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은 그가 창작에 바친 긴 세월과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19년 12월 3일 행복과 아름다움에 평생을 바쳤던 르누아르가 숨을 거두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중 하나는 이렇게 전해진다. “이제야 무언가를 좀 알 것 같다.” 그의 말은 이렇게도 들린다. “평생을 바쳐 행복과 아름다움을 그리기 위해 애써 왔지만 이제야 그림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마감 후] 영감은 또 다른 영감을 낳고

    [마감 후] 영감은 또 다른 영감을 낳고

    올해 초 ‘선물’과 같은 시간이 있었다. 창덕궁 옆 작은 카페에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이수지와 소설가 김연수, 음악 듀오 솔솔이 함께 마련한 ‘눈 내리는 삼일포’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 현장을 찾은 관객들은 좀먹은 18세기 그림에서 시작된 영감이 그림책이 되고 그림책이 다시 소설과 음악이 되는 순간을 함께 목격하고 즐겼다. 이야기는 2022년 5월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시작된다. 당시 미술관은 소장품의 일부를 복원·보존 처리해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중에는 현재 심사정(1707~1769)이 그린 ‘삼일포’가 있었다. 삼일포는 금강산에서 흘러나온 신계천이 36개 봉우리에 가로막혀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신라 화랑들이 들렀다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사흘 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림은 쪽빛 배경 곳곳에 하얗고 동글동글한 눈이 내려 운치를 더한다. 사실 여기에는 멋진 이야기가 숨어 있다. 눈처럼 보이는 흰 점은 좀이 갉아먹어 구멍이 난 흔적으로 화첩 속에 접혀 있던 까닭에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대칭으로 예쁘게 구멍이 났다. 담당 학예사는 이 구멍들을 보이지 않게 메울 것인지 고민했지만 그동안 관람객들이 구멍을 그림의 일부로 사랑해 온 역사를 감안해 결국 ‘눈 내리는 모습’을 유지한 채 복원했다.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이수지는 2024년 ‘눈 내리는 삼일포’라는 그림책을 선보였다. 그는 ‘삼일포’의 장면을 가운데 두고 앞뒤로 살을 붙여 그림책을 완성했다. 조금씩 내리던 눈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쌓여 가더니 마침내 화면을 온통 하얗게 채우면서 끝난다. 구멍이 뚫린 표지도 인상적이다. 그림책은 김연수에게 또 다른 영감이 됐다. 그는 동명의 소설을 지난해 1월 ‘현대문학’ 70주년 기념 특대호에 실었다. 그리고 주석에 “서울 서촌의 한 음식점에서 이수지 작가가 한 장씩 넘기며 ‘눈 내리는 삼일포’를 보여 줬다. 이 소설은 그 순간부터 쓰이기 시작했기에 이렇게 밝혀 둔다”고 적었다. 17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어의에게 학질(말라리아)에 걸린 딸을 살려 달라며 ‘덕암’이라는 남자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솔솔은 동명의 제목으로 조선시대 정가(감정을 절제하고 품위 있게 부르는 전통 성악곡) 형식의 음악을 만들었다. 토크콘서트에서는 이수지의 그림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상과 김연수의 낭독이 어우러졌다. 솔솔은 기교와 감성을 깊게 담아내는 시창의 선율을 통해 눈이 내리는 순간의 서정과 시간의 흐름을 담아냈다. 여기에 해금과 피리 연주가 더해져 깊이를 더했다. 옛 예인들의 경연을 봤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각자의 분야에서 예술적 완성도를 높인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며 진정한 풍류의 장에 초대된 것 같았다. 예술이란 멈춰 있는 유물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해 끊임없이 흐르는 대화와 같다. 좀 먹은 흔적을 지우는 대신 현 시대의 관람객이 작품과 함께한 역사를 고려한 학예사의 안목, 그리고 글과 그림, 음악으로 키워낸 예술가들의 화답에서 예술이 가진 힘을 느낀다.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에서 비롯된 ‘K헤리티지’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삼일포’가 ‘눈 내리는 삼일포’가 된 것처럼 전통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충분히 쏟아지는 관심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윤수경 문화체육부 기자(차장급)
  • 70대에 ‘화성’의 경지… 유홍준이 극찬한 ‘겸재 정선’

    70대에 ‘화성’의 경지… 유홍준이 극찬한 ‘겸재 정선’

    2009년 절판한 책의 개정 증보판미술사 빛낸 예술가 삶 첫 시리즈겸재, 조선 산천 담은 진경산수 개척60~70대에 인왕제색도 등 걸작 완성 “설령 직접 밟으며 두루 유람한다 한들, 어찌 머리맡에 두고 실컷 보는 것만 하랴.” 겸재 정선(1676~ 1759)의 ‘금강전도’ 상단에 누군가 이 그림을 칭찬하며 남겨놓은 시 한 구절이다. 금강산을 직접 가서 유람하는 것보다 작품을 베갯머리에 두고 감상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정도라니 작품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 대중에게 문화유산을 보는 안목과 ‘눈맛’의 기쁨을 선물하며 인문학 열풍을 일으켰던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새로 쓰는 화인열전’을 통해 한국 미술사를 빛낸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한다. 화인열전은 한국 미술사를 빛낸 예술가들의 삶을 소개하는 책으로 빈센트 반 고흐나 파블로 피카소 같은 서양 화가보다 한국 화가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새로 쓰는’이라는 말이 붙은 건 2001년 출간했다가 2009년 절판한 화인열전의 개정증보판이기 때문이다. 그사이 조선 회화사 연구는 괄목할 성과가 축적됐고, 유 관장은 이를 반영해 “완전히 새로 쓰는” 마음으로 집필했다고 밝혔다.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조선 후기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담아 진경산수라는 장르를 개척한 겸재 정선을 내세웠다. 유 관장은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남다른 인복과 노력으로 70대에 예술의 절정기를 맞은 겸재를 ‘그림의 성인’인 화성(畵聖)이라고 극찬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찬사만을 늘어놓진 않는다. 겸재의 금강산 그림 중 자신이 최고봉으로 꼽는 금강전도와 1711년 겸재가 36세 때 그린 신묘년 풍악도첩 중 ‘금강내산총도’를 비교하며 “도저히 같은 화가의 작품으로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노년작과 비교해 구도와 필치가 매우 미숙하다는 것이다. 그는 겸재가 금강전도를 59세가 아닌 70대에 그렸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한다. 금강전도 상단에 낙관처럼 적혀 있는 ‘갑인동제’(갑인년 겨울에 썼다)를 통해 1734년에 그린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유 관장은 겸재의 ‘풍악내산총람’, ‘금강내산’ 등 다른 작품과 화풍 비교를 통해 겸재의 70대 중엽 작품으로 추정한다. 저자는 겸재를 대표적 ‘대기만성의 화가’로 평가하며 겸재의 예술의 여정을 세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진경산수를 개척해 가는 모색기(60세 이전), 둘째는 진경산수 화풍을 완성하는 확립기(60대), 그리고 셋째는 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원숙기(70대 이후)다. 대부분의 화가는 60세를 넘기면 세상을 떠나거나 만년기로 들어가지만, 겸재의 경우 60~70대에 예술의 절정기를 맞으며 ‘인왕제색도’, ‘독서여가도’, ‘박연폭도’ 같은 걸작을 완성했다고 설명한다. 겸재의 인간적인 면모를 소개하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당대의 인기 화가였던 만큼 쏟아지는 ‘러브콜’을 마다하지 않았던 모습이나 그림에 유머를 담는 모습 등도 엿볼 수 있다. 올해 겸재 탄생 35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특별전 ‘겸재 정선’이 열린 데 이어 대구 간송미술관은 오는 9월 겸재 전시를 예고한 상태다. 잇따르는 겸재 전시에 이 책이 길잡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서울광장] 고향이 있는 이들이 부럽다

    [서울광장] 고향이 있는 이들이 부럽다

    충남문학관을 운영하는 소설가 이재인 선생을 뵈러 충청남도 서산에 다녀왔다. 지난해 인터뷰를 인연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그동안 입버릇처럼 “한번 놀러가겠다”고 했는데 실행하게 된 것이다. 한국문인인장박물관을 겸하는 충남문학관은 그의 고향 예산에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홍성이다. 그런데 서산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는 “이참에 내포(內浦) 문화예술인 순례를 한번 해 보자”고 했다. 이 선생이 최근 펴낸 ‘내포를 따라 걷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내포는 ‘안개’의 한자식 표기라고 한다. ‘개’는 바다나 하천의 물가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륙 깊숙이 자리잡았으면서도 바다와 소통하는 땅이 안개다. 이런 지형을 가진 충청도 서쪽 10개 고을이 곧 내포다. 이 선생은 박태신 내포지방고대문화연구원장과 함께 나왔다. “백제가 마지막 항전을 벌인 주류성이 내포 지역이라는 연구를 오래 하신 분”이라고 박 선생을 소개한다. 필자는 주류성이 세종시 운주산이었다고 주장하며 주류성출판사까지 운영하는 최병식 선생과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다. 다른 학설을 내세우는 두 분 사이에서 눈치를 제대로 봐야 할 판이다. 박 선생은 필자를 만나자마자 “그동안 운주산 이야기를 쓴 기사를 다 읽었다”며 ‘선전포고’를 했으니 더더욱 가슴이 뜨끔할밖에. 이 선생과 박 선생은 사제지간이라고 했다. 이 선생이 예산고등학교 국어교사이던 젊은 시절 박 선생은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두 분에겐 실례되는 표현이겠지만, 함께 나이 들어 가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스승과 제자가 지역 문화를 함께 끌고 가는 모습이기도 했다. 박 선생은 피성으로도 알려진 당진 면천의 몽산성 이야기에 진심이었다. 조선시대 면천읍성은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백제시대 몽산성은 의미가 부각되지 못한 채 훼손돼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이 선생은 아동문학가 사무실부터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이 양반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기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었다. ‘아동문학가’와 ‘사무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그대로 조규선 선생은 서산시장을 지냈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동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조 선생은 서울신문과의 추억이 있다며 반가워했다. 그는 젊은 시절 새마을 지도자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 풍토를 조성하자”는 운동을 비롯해 이런저런 봉사활동이 알려지면서 충남 대표로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질문할 내용은 미리 청와대에서 받았다. 막상 대통령과 마주서니 밤새 외운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머뭇거리다가 “충남은 말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기로 유명했지만 각하께서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다음부터 말도 빨라지고 행동도 빨라졌다”고 외쳤다. 대통령이 박장대소하면서 졸지에 스타가 됐다는 것이다. 조 선생은 다음날 서울신문에 기사가 크게 실렸다며 웃었다. 오후에는 박수복 화백의 해인미술관을 찾았다. 인사동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미술관은 대호만 방조제를 막아 생겼을 넓은 간척지가 바라보이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 뒷동산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추상화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한국적 필치의 세화(歲畫)가 인상적이다. 새해를 시작하며 행운을 기원하는 세화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는 것도 반갑다. 마지막 일정은 몽산성에 오르는 것이었다. 박 선생은 산성에 올라 열변을 토하는 것만으로도 후련한 표정이었다. 헤어지며 건네받은 ‘백제부흥전’ 논문집에는 박성흥·박태신 두 저자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앞의 함자는 부친이라고 했다. 박 선생은 백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대를 이어 하고 있었다. 당일치기 내포 순례를 마친 감상은 고향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로 옮겨간 다음에도 줄곧 서울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 그런데 고향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고향을 위한 활동이다. 반면 서울 사람은 성심을 다하고자 해도 쏟아낼 대상이 없다. 생전 처음 이런 생각을 했으니 불러 준 이 선생이 고맙다. 서동철 논설위원
  • 1970년대 기념품으로 둔갑… 미국에 반출, 송시열·채제공·김도화 문집 책판 3점 귀환

    1970년대 기념품으로 둔갑… 미국에 반출, 송시열·채제공·김도화 문집 책판 3점 귀환

    1970년대 기념품으로 둔갑해 미국인들에게 판매됐던 조선 후기 주요 문집 책판 3점이 귀환한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미국에서 척암 선생 문집 책판, 송자대전 책판, 번암집 책판을 기증받았다고 9일 밝혔다. 책판은 책을 펴내기 위해 글씨를 새긴 목판을 의미한다. 이 유물들은 1970년대 초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구입해 가져갔던 것으로, 당시 국내에서 도난 혹은 분실된 책판 중 일부가 기념품으로 둔갑한 뒤 외국인들에게 판매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1917년에 만든 ‘척암선생문집’ 책판은 을미의병(1895) 당시 경북 안동 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김도화(1825~1912) 선생의 문집 책판이다. 원래는 1000여점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 중 19점만 전해져 2015년 ‘한국의 유교책판’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상태다. 이후 2019년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으로 독일 경매에서 재단이 1점을 구입해 기증했으며, 이번에 1점이 추가된 것이다. 이번 기증자는 1970년대 초 미국 국제개발처(USAID) 한국지부에 근무하던 미국인 애런 고든의 가족이다. 고든은 한국 골동품상으로부터 구입한 뒤 미국으로 책판을 가져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사망 이후 가족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 기증 문의를 하던 중 재단 미국사무소에 인계돼 이번에 반환이 결정됐다. 1926년에 판각된 송자대전 책판은 조선 후기 유학자 우암 송시열(1607~1689)의 문집과 연보 등을 모아 만든 것이다. 송자대전은 1787년 첫 간행됐지만, 1907년 일본군에 의해 책판이 전량 소실됐다. 이후 송시열의 후손과 유림이 복각했다. 현재 복각한 책판 1만 1023점은 1989년 대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태다. 이 책판 역시 고든 가족이 기증했다. 1824년 만든 번암집 책판은 조선 후기 문신 관료이자 영·정조기 국정을 함께 이끈 핵심 인물이었던 번암 채제공(1720~1799)의 문집 책판으로 전체 1159점 가운데 358점만 현존하고 있다. 이 책판 역시 ‘한국의 유교책판’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일괄 등재된 상태다. 책판은 1970년대 초 한국에서 근무했던 한 미국인이 한국 골동품상으로부터 구입한 뒤 미국으로 가져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 태권브이랜드·반딧불 투어… K관광 수도 무주, 주민 행복도 ‘V’

    태권브이랜드·반딧불 투어… K관광 수도 무주, 주민 행복도 ‘V’

    “주민이 행복한 지역에 관광객도 몰린다.” 전북 무주군의 지방소멸에 맞선 인구 대응 전략이다.현재 인구 문제는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풀어야 할 공통 과제가 됐다. 농산어촌 지역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주민등록 인구에만 의존하기엔 한계에 다다랐다. 무주군의 상황도 그렇다. 전형적인 산악형 농촌지역으로 인구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무주군은 ‘생활인구’에서 대응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기본 방향은 ‘살기 좋은 지역, 찾고 싶은 관광지’ 만들기다. ‘무주형 기본사회’로 주민이 행복한 지역을 조성하고 글로벌 태권도 문화관광도시 육성, 교통망 확충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는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K관광 수도’를 완성하는 게 목표다. ●군민 기본권 보장 올해 무주군은 무주형 기본사회 실현을 위해 기본권 보장 확대를 추진 중이다. 기본소득을 포함한 돌봄과 교육, 주거, 교통, 의료, 에너지 등 기본 서비스를 망라한다. 무주군은 지난해 정부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포함되지 않자 자체 지급을 결정했다. 군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일상을 위해선 경제적 기반 확보가 필수라는 판단이다. 사업추진의 첫 관문인 사회보장제도 신설에 관한 보건복지부 협의를 지난 2일 최종 마무리했다. 이를 기반으로 기본소득 시범사업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조례 개정 및 예산 편성 등 남은 행정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재원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위해 책정했던 군비 184억원으로, 개인별 지급액은 예산 범위 내에서 군의회와 협의 후 결정될 예정이다. 기본소득은 무주사랑상품권으로 지급된다. 또 드림스타트 아동들의 가정환경 모니터링 등 사례 관리를 강화하고 학습 지원과 방역, 운동 교실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건강한 성장을 돕는다. 저소득층과 장애 군민의 자립을 위해 직업 기능을 배양하는 등 자활근로 사업을 지원한다. 전체 인구의 39.6%를 차지하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해 돌봄·일자리 체계를 강화하고 70세 이상은 이·미용비와 목욕비를 지원하는 등 보편적 복지서비스 제공에도 애쓴다. 생활밀착형 에너지 복지 확대, ‘행복콜택시 운행’ 등 교통약자 이동권 강화, 안정적인 삶을 위한 주거복지 강화에도 힘을 쏟는다. ●체류형 콘텐츠 늘려 생활인구 확대 지속 가능한 지역 활력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2만여명의 거주인구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무주군이 생활인구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생활인구 분석 결과에 따르면 무주군의 체류 인구는 평균 26만여명에 달한다. 등록 인구보다 10배 이상 많은 숫자다. 특히 겨울철 스키 시즌과 맞물리는 1월에는 전국 최다인 42만여명이 체류한다. 군은 다양한 관광·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찾고 싶은 관광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군은 현재 관광 종합개발계획(2023~2032)을 토대로, 6개 읍면의 특화 관광 자원 개발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군은 또 ‘야간 관광진흥 도시 지원’ 사업을 통해 무주의 야경을 특화하고 있다. 농촌 체험과 연계한 ‘반딧불이 투어·체험’,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낙화놀이’, 스크린과 거리공연을 결합한 ‘무주산골영화제’ 등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대체 불가 세계적 청정 관광지로 선정 무주는 이미 세계 대표 관광지로 인정받기도 했다. 지난해 유엔 세계관광기구가 주관한 ‘제5회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에 무주읍이 선정됐다. 세계관광기구가 무주를 주목한 이유 중 하나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힐링 여행 마을이라는 점이다. 향로산 자연휴양림과 남대천 등을 품은 청정지역인 무주는 천연기념물이자 환경 지표 곤충인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국내 최고의 힐링 여행지로 유명하다. 군은 문화와 예술, 축제를 꽃피워 대체 불가한 지역의 매력을 선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6월 4일부터 8일까지 20개국 9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또한 30회를 맞는 무주반딧불축제는 한층 고도화된 생태·문화 콘텐츠로 방문객을 맞이할 계획이다. ‘반디문화창작소’ 조성 역시 마무리할 예정으로 최북미술관 일원을 문화거점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이곳에는 ‘그림책미술관’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선다. 특히 ‘고향올래-런케이션(배움과 휴가를 합친 신조어)’ 공모 선정으로 추진하게 된 ‘무주 그림책 놀이 창작 틔움 터’는 공예 공방과 연계한 문화·예술 체험형 체류 공간으로 조성한다. ●무주의 글로벌 엔진, 태권도 무주는 세계 태권도 산업의 중심지다. ‘세계 태권도 성지’이자 ‘2025~2026 한국 관광 100선’인 태권도원은 전국 88곳의 ‘2025 우수 웰니스 관광지’ 중 가장 많은 외국인이 방문한 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태권전과 명인관 등 태권도원을 다녀간 외국인은 3분기 기준 2만 6510명이고 연말까지 3만 1603명이 방문하는 등 무주는 태권도와 결합한 지역 관광, 스포츠 관광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태권도는 단순한 무술을 넘어, 전 세계 수천만명이 공유하는 문화이자 교육·관광·외교의 자산이다. 현재 태권도 수련 인구는 전 세계 200여개국 1억 5000만명에 달한다. 무주군은 태권도를 무주만의 차별화된 성장 동력으로 삼아 세계 태권도의 중심이 되겠다는 각오다. ‘글로벌 태권도 인재 양성센터 건립’, ‘제2 국기원 도전’, ‘전북국제태권도고등학교 설립 추진’ 등을 통해 ‘글로벌 태권도 문화관광 도시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태권브이랜드는 동작형 태권브이 로봇이 자리하는 공간으로, 현재 오 구동 시험을 완료한 상태다. 올해 안에 격납고를 설치하고 로봇을 이전·설치할 예정이며 연계 관광 활성화를 위한 전시 체험관, 비밀기지, 편의시설 등도 마무리할 계획이다. 주변에는 테마공원을 조성해 태권도 체험형 상품 쇼핑 존과 3D(3차원) 체험이 가능한 시설도 함께 갖출 예정이다.
  • 너덜너덜해진 신문지, 지울수록 빛난 침묵의 시간

    너덜너덜해진 신문지, 지울수록 빛난 침묵의 시간

    볼펜·연필로 수만번 긋고 덧칠해언어 속 매몰된 자아의 회복 표현 “자기 식으로 살다가, 자기 방식대로 작업하다가, 그냥 없어지면 되는 겁니다.” 최병소(1943~2025) 작가는 과거 국립현대미술관 작가와의 대화에서 ‘미술가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문이나 잡지를 볼펜이나 연필로 긋는 수행적 행위를 통해 시간과 자신을 지워가던 작가는 그렇게 무(無)로 돌아갔다. 서울 강남구 페로탕 갤러리에서 그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간 남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작가가 별세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개인전이다. 전시에는 ‘무제’라는 제목이 붙었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대표 연작 ‘신문 지우기’ 21점이 걸렸다. 작가는 신문지 위에 볼펜을 수천, 수만 번 그어 글씨와 사진을 지운다. 다시 그 위에 연필을 덧칠한다. 작업 과정에서 종이는 자연스럽게 찢기고 너덜너덜해지고 양철판처럼 광택을 지니게 된다. 작가는 일상에서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신문과 모나미 볼펜을 고집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그의 지우기 작업은 다양한 해석으로 읽힌다. 작품의 시작은 필기만으로도 너덜너덜해지거나 찢어지던 1950년대 교과서였다. 과거에는 ‘죽어버린 언론에 가하는 항변’, ‘유신과 검열에 대한 저항’이라고 읽혔으며 노년에는 ‘문자와 이미지를 없앤,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태도’로 해석됐다. 전시장에는 검은 화면의 ‘무제 0191211’과 흰 화면의 ‘무제 0241029’가 나란히 걸려 눈길을 끈다. 흔치 않은 그의 흰 작품은 인쇄되기 전 신문 용지에 나오지 않는 볼펜을 계속해서 긁는 행위만 더한 것이다. 검은 화면이 언어를 지웠다면 흰 작품은 시간을 지우는 행위로 읽힌다. 본체는 잃은 채 ‘타임’(TIME)이나 ‘라이프’(LIFE) 같은 제호만을 남겨둔 작품도 있다. 시끄러운 세상이 지워진 자리에는 침묵만 남았다. 작가는 떠났지만 작품은 남아 언어의 홍수 속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삶의 실제적 시간과 자아의 회복을 제안한다. 전시는 다음 달 7일까지.
  • 비너스의 몸, 르네상스의 시작

    비너스의 몸, 르네상스의 시작

    아직 코트를 벗기엔 이른 날씨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으른들의 미술사’는 두 달 간 ‘코트를 벗는 순간’이라는 테마로 봄의 욕망과 몸을 연결해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코트를 벗는 순간 몸이 드러나는 방식이 사회, 도덕적 관습과 어떻게 충돌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바람 앞에 선 몸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은 우피치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신화적 주제보다도 벌거벗은 비너스의 당당함이다. 이 비너스는 부끄러움을 감추기보다, 지금 막 육체를 획득한 존재로 바람 앞에 당당히 서 있다. 그녀의 자세는 고전 조각의 정숙한 비너스, 즉 비너스 푸디카 유형을 따르지만, 손과 머리칼로 몸을 감추려는 그 제스처는 오히려 몸의 윤곽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이 미묘한 제스처는 노출과 절제 사이에서 르네상스 아름다움의 핵심을 드러낸다. 비너스는 막 바다에서 태어나 조개껍질 위에 서 있지만, 이 장면에는 탄생의 혼란이나 부끄러움은 없다. 그녀는 이미 하나의 완성된 몸으로 존재한다. 이 그림이 말하려는 것은 몸이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복귀하는 순간이다. ●고전의 재발견 이 작품이 제작된 15세기 후반 피렌체에서 고대 신화는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르네상스인들은 육체적 아름다움을 인간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이해했으며, 비너스는 그 사유의 시작에 해당한다. 한 다리를 살짝 접고 다른 한 다리에 체중을 실어 서는 자세를 콘트라포스토라 한다. 이 자세는 고대 그리스 고전기에 발명된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어깨와 엉덩이가 이루는 S자 곡선은 역동적이고 편안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이 자세는 고대 그리스에 발명된 후 르네상스 시기에 조각과 회화에서 다시 활용되었다. 재생, 부활의 의미를 지닌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의 이상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아직 인체 해부학을 연구하기 전이므로 보티첼리의 인체에 대한 이해도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비너스의 왼쪽 어깨는 있는 듯 없는 듯, 혹은 빠진 듯 불편하게 보인다. ●인간의 고귀함은 태도가 결정한다 이 그림은 벌거벗은 몸도 고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답은 명확하다. 고귀함은 옷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비너스의 누드는 단순한 관능을 표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옷이 없다는 것은 신분, 직업, 도덕적 규범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보티첼리는 인간의 고귀함은 옷이나 장신구가 아니라 몸의 균형과 태도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비너스는 벌거벗었지만 천박하지 않고, 연약해 보이지만 나약하지 않다. 태도가 기분이 된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 비너스의 몸, 르네상스의 시작 [으른들의 미술사]

    비너스의 몸, 르네상스의 시작 [으른들의 미술사]

    아직 코트를 벗기엔 이른 날씨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으른들의 미술사’는 두 달 간 ‘코트를 벗는 순간’이라는 테마로 봄의 욕망과 몸을 연결해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코트를 벗는 순간 몸이 드러나는 방식이 사회, 도덕적 관습과 어떻게 충돌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바람 앞에 선 몸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은 우피치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신화적 주제보다도 벌거벗은 비너스의 당당함이다. 이 비너스는 부끄러움을 감추기보다, 지금 막 육체를 획득한 존재로 바람 앞에 당당히 서 있다. 그녀의 자세는 고전 조각의 정숙한 비너스, 즉 비너스 푸디카 유형을 따르지만, 손과 머리칼로 몸을 감추려는 그 제스처는 오히려 몸의 윤곽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이 미묘한 제스처는 노출과 절제 사이에서 르네상스 아름다움의 핵심을 드러낸다. 비너스는 막 바다에서 태어나 조개껍질 위에 서 있지만, 이 장면에는 탄생의 혼란이나 부끄러움은 없다. 그녀는 이미 하나의 완성된 몸으로 존재한다. 이 그림이 말하려는 것은 몸이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복귀하는 순간이다. ●고전의 재발견 이 작품이 제작된 15세기 후반 피렌체에서 고대 신화는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르네상스인들은 육체적 아름다움을 인간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이해했으며, 비너스는 그 사유의 시작에 해당한다. 한 다리를 살짝 접고 다른 한 다리에 체중을 실어 서는 자세를 콘트라포스토라 한다. 이 자세는 고대 그리스 고전기에 발명된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어깨와 엉덩이가 이루는 S자 곡선은 역동적이고 편안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이 자세는 고대 그리스에 발명된 후 르네상스 시기에 조각과 회화에서 다시 활용되었다. 재생, 부활의 의미를 지닌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의 이상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아직 인체 해부학을 연구하기 전이므로 보티첼리의 인체에 대한 이해도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비너스의 왼쪽 어깨는 있는 듯 없는 듯, 혹은 빠진 듯 불편하게 보인다. ●인간의 고귀함은 태도가 결정한다 이 그림은 벌거벗은 몸도 고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답은 명확하다. 고귀함은 옷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비너스의 누드는 단순한 관능을 표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옷이 없다는 것은 신분, 직업, 도덕적 규범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보티첼리는 인간의 고귀함은 옷이나 장신구가 아니라 몸의 균형과 태도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비너스는 벌거벗었지만 천박하지 않고, 연약해 보이지만 나약하지 않다. 태도가 기분이 된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 영화 속에 담긴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아서[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 본 영화]

    영화 속에 담긴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아서[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 본 영화]

    연초부터 미국에서 날아든 K컬처 관련 낭보에 많은 이들이 설레고 있다. 먼저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과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해 2관왕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뒤이어 ‘케데헌’이 아카데미에서도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K콘텐츠의 저력을 재확인시켰다. ‘케데헌’은 알다시피 미국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한국계 미국인 매기 강 감독이 연출한 K컬처를 담아낸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K팝과 한국의 전통문화 속 신비롭고 해학 넘치는 캐릭터를 잘 버무렸다. 비록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한국계 감독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 공개 후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과 인기를 모았고, 극장에서 ‘싱얼롱 버전’의 상영도 이어지는 등 화제가 된 작품이다. 지난해 여름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강 감독을 유홍준 관장이 직접 안내했고 유 관장이 “백자 달항아리는 어질고 친숙한 맛이 있고,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을 지닌다”고 설명하자 강 감독은 “설명을 듣고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얘기하며 한국 전통 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케데헌’의 여파에 힘입은 듯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상품인 뮷즈(뮤지엄+굿즈)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또한 박물관에 관람객이 몰려들어 주말이면 주차장에 들어서려는 차들로 박물관 인근이 북새통을 이룬다. 겨울방학을 맞은 지금도 관람객들로 가득하다. 박물관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역시 크게 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관람객 650만명이 찾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873만명)과 바티칸 박물관(682만명)에 이어 세계 주요 박물관 가운데 관람객 순위 3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케데헌’을 바라보는 눈길도 다양한데 학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연말에 열린 한국미술사학교육학회에서는 ‘케데헌의 도상학’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케데헌’과 한국 전통미술·도상학을 연결해 ‘케데헌과 해태의 도상학’, ‘저승사자의 도상과 그 변천’, ‘케데헌과 경복궁’, ‘케데헌 포스터의 도상학적 접근’ 등 한국 전통의 이미지, 상징의 의미를 해석하고 토론했다. 리움미술관의 ‘까치호랑이 호작(虎鵲)’전도 마찬가지 의미에서 열리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영화 중에는 이런 작품이 없을까 생각해 보니 임권택 감독이 2002년 연출한 ‘취화선’이 떠오른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단원 김홍도(1745~?), 혜원 신윤복(1758~?)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원 장승업(1843~1897)의 일대기를 담았다. 거지소년에서 천재 화가로 거듭나는 장승업의 예술과 당시 사회상을 담아 임 감독은 제5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다. 영화에서는 화가이며 중앙대 교수를 역임한 김선두 작가가 장승업 역 최민식 배우의 손을 대신해 그림을 담아냈고 김근중, 이종목, 조순호 등 소장파 한국화 작가들이 영화 속 도화서 화원 화가로 분장해 스크린 속 화폭을 아름답고도 사실적으로 채워 줬다. 영화가 개봉된 이듬해인 2003년 봄 사간동의 한 미술관에서는 ‘취화선, 그림으로 만나다’라는 전시를 열어 작품에 등장했던 작품들을 관람객들이 직접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는 영화와 미술의 만남, 전통과 현대의 접속, 한국 전통문화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개봉 당시 프랑스문화원 주최로 열린 시사회에서 미학자이며 문화평론가인 서경대 이즈미 지하루 교수가 지적했듯이 장승업의 기준작을 비롯해 진작이 한 점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많이 아쉬웠다. 영화에 출연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지닌 소장파 작가들의 심혈을 기울인 모작들로 채워졌지만, 영화 속에 진작이 전혀 등장하지 않음은 후대에 이 작품을 통해 장승업을 평가함에 다소 부족함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리라. 이후 신윤복을 다룬 전윤수 감독의 영화 ‘미인도’(2008)나 조선 중종 때 기생 황진이의 삶을 다룬 장윤현 감독의 영화 ‘황진이’(2007)와 김철규 피디의 드라마 ‘황진이’(2006) 등 전통문화를 담은 사극 작품이 있었으나 여러 아쉬움을 남겼다. 전통문화를 재현하는 것은 막대한 예산뿐 아니라 치밀한 인문학적 해석이 전제돼야 한다는 화두를 다시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주면 설 연휴가 시작된다. 추석과 함께 한국 영화산업에서 가장 큰 관객몰이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올해 설 영화 라인업에 반갑게도 한국 사극 영화가 있다.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임금(단종)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장항준 감독이 연출했다. 설을 맞아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이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 그것이 애절한 역사적 사실을 담아낸 작품임에도, 영화 속에 재현된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조금이나마 감동해 한 발짝 다가간다면 많은 영화인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 새달부터 30분 일찍 만나는 국중박… 11월엔 ‘스위스 예술’ 펼친다

    새달부터 30분 일찍 만나는 국중박… 11월엔 ‘스위스 예술’ 펼친다

    새달 16일부터 개·폐관 시간 당겨연 7회 휴관·주차장 추가 확보도 내년엔 예약제·고객정보통합관리11월27일부터 ‘전쟁, 예술…’ 특별전취리히 미술관 작품 90여점 선보여 “1월 한 달간 벌써 67만명이 박물관에 다녀갔습니다. 지난해(650만명)만큼은 못 해도 올해 600만명까지는 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지난해 관람객 650만명 시대를 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관람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개관 시간을 30분 앞당기고 용산어린이공원 주차장을 활용한다. 또 스위스 최대 미술관인 취리히미술관과 함께하는 특별전 등 대규모 전시 계획도 공개했다. 박물관은 3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3월 16일부터 개관 시간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오전 10시~오후 6시였던 개·폐관 시간을 30분씩 앞당기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관람객 밀집도를 분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 상반기로 예고했던 사전 예약제 도입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앞서 지난해 10월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유 관장은 박물관 유료화 논의에 앞서 올해 상반기 예약제를 먼저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사전 예약뿐 아니라 비대면 전자 검표, QR 모바일 티켓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시스템 개발로 방향을 변경하다 보니 도입 시점이 미뤄졌다”며 “12월 고객정보통합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내년 상반기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휴관일도 변경된다. 기존에는 매년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등에 휴관했으나 앞으로는 3·6·9·12월 첫째 주 월요일에 추가로 휴관할 계획이다. 올해는 3월 2일은 정상 개관하고 6월 1일, 9월 7일, 12월 7일에 쉰다. 주차난을 피하고자 상반기에 박물관 뒤편에 있는 용산어린이공원 주차장(150면) 공동 활용을 추진한다. 8월에는 거울못 카페, ‘물멍 계단’ 등 옥외 편의시설을 확충한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은 어린이박물관은 2029년까지 현재 규모(약 2539㎡)의 약 2배인 4950㎡ 규모로 확장 건립할 예정이다. 대규모 특별전과 상설전시 계획도 밝혔다. 11월 27일부터 내년 3월 21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전쟁, 예술 그리고 삶’은 스위스 취리히미술관과 협력해 열리는 전시다. 스위스를 중심으로 인간 내면을 성찰하며 전개된 예술사의 주요 흐름을 조망하고, 예술가와 지식인의 안식처였던 중립국 스위스에서 탄생한 국제적·개방적·실험적 예술세계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페르디난드 호들러,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등 90여점을 선보일 계획이다. 7~10월에는 K푸드의 원형과 변천을 조명하는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이 열리며, 국내 최초로 태국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는 6~9월에 선보인다. 또 전체 소장품 약 44만점 가운데 2% 수준인 9000점만 전시 중인 만큼 주제 전시, 전시품 교체 등을 통해 더 많은 문화유산을 소개할 계획이다. 오는 26일 서화실을 재개관해, 겸재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보물) 등과 같은 시즌 하이라이트 선정작들을 소개한다. 상설전시실 역사의 길에서는 ‘대동여지도’를 전시하며 12월에는 10여년 만에 불교조각실 및 불교회화실을 재개관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소재로 한 실감 영상도 12월 공개를 예고했다. 유 관장은 “지난해 방문객 수치는 ‘K컬처’의 총본산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뿐 아니라 선진국으로서의 지표를 보여준다”며 “올해는 세계를 견인하는 ‘K박물관’ 구현을 본격화하겠다”고 강조했다.
  • ‘관람객 650만’ 국립중앙박물관 30분 일찍 문 연다… 주차장 확대도 추진

    ‘관람객 650만’ 국립중앙박물관 30분 일찍 문 연다… 주차장 확대도 추진

    “1월 한 달간 벌써 67만명이 박물관에 다녀갔습니다. 지난해(650만명)만큼은 못 해도 올해 600만명까지는 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지난해 관람객 650만명 시대를 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관람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개관 시간을 30분 앞당기고 용산어린이공원 주차장을 활용한다. 또 스위스 최대 미술관인 취리히미술관과 함께하는 특별전 등 대규모 전시 계획도 공개했다. 박물관은 3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3월 16일부터 개관 시간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오전 10시~오후 6시였던 개·폐관 시간을 30분씩 앞당기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관람객 밀집도를 분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 상반기로 예고했던 사전 예약제 도입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앞서 지난해 10월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유 관장은 박물관 유료화 논의에 앞서 올해 상반기 예약제를 먼저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사전 예약뿐 아니라 비대면 전자 검표, QR 모바일 티켓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시스템 개발로 방향을 변경하다 보니 도입 시점이 미뤄졌다”며 “12월 고객정보통합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내년 상반기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휴관일도 변경된다. 기존에는 매년 1월 1일, 설날·추석에 휴관했지만, 박물관은 3·6·9·12월 첫째 주 월요일을 추가로 휴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3월에 시간을 조정한 뒤 6월 1일, 9월 7일, 12월 7일에 문을 닫을 예정이다. 주차난을 피하고자 상반기에 박물관 뒤편에 있는 용산어린이공원 주차장(150면) 공동 활용을 추진한다. 8월에는 거울못 카페, ‘물멍 계단’ 등 옥외 편의시설을 확충한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은 어린이박물관은 2029년까지 현재 규모(약 2539㎡)의 약 2배인 4950㎡ 규모로 확장 건립할 예정이다. 대규모 특별전과 상설전시 계획도 밝혔다. 11월 27일부터 내년 3월 21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전쟁, 예술 그리고 삶’은 스위스 취리히미술관과 협력해 열리는 전시다. 스위스를 중심으로 인간 내면을 성찰하며 전개된 예술사의 주요 흐름을 조망하고, 예술가와 지식인의 안식처였던 중립국 스위스에서 탄생한 국제적·개방적·실험적 예술세계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페르디난드 호들러,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등 90여점을 선보일 계획이다. 7~10월에는 K푸드의 원형과 변천을 조명하는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이 열리며, 국내 최초로 태국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는 6~9월에 선보인다. 또 전체 소장품 약 44만점 가운데 2% 수준인 9000점만 전시 중인 만큼 주제 전시, 전시품 교체 등을 통해 더 많은 문화유산을 소개할 계획이다. 오는 26일 서화실을 재개관해, 겸재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보물) 등과 같은 시즌 하이라이트 선정작들을 소개한다. 상설전시실 역사의 길에서는 ‘대동여지도’를 전시하며 12월에는 10여년 만에 불교조각실 및 불교회화실을 재개관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소재로 한 실감 영상도 12월 공개를 예고했다. 유 관장은 “지난해 방문객 수치는 ‘K컬처’의 총본산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뿐 아니라 선진국으로서의 지표를 보여준다”며 “올해는 세계를 견인하는 ‘K박물관’ 구현을 본격화하겠다”고 강조했다.
  • 이건희 컬렉션 ‘피카소 도예’ 경남도립미술관으로…3월 18일 전시 개막

    이건희 컬렉션 ‘피카소 도예’ 경남도립미술관으로…3월 18일 전시 개막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이 경남에 온다. 경남도립미술관은 오는 3월 미술관 3층 전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 피카소 도예’를 연다고 3일 밝혔다. 전시는 3월 18일 개막해 6월 28일까지 이어진다. 전국 지자체 공립 미술관 중 이건희 컬렉션에 속한 피카소 도예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경남도립미술관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경남도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간 업무협약에서 비롯됐다. 문화예술 자원의 수도권 편중을 완화하고 지역민 문화 접근성을 높이자는데 두 기관이 뜻을 같이했다. 경남도립미술관은 별도 전시 예산을 편성하는 등 지난해부터 전시 준비를 이어왔고 현재는 개막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시에서는 회화로 잘 알려진 피카소의 또 다른 실험인 도자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말년의 피카소가 도자를 통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도한 예술적 탐구를 도예 작품 98점으로 선보인다. 관련 영화와 사진 자료도 함께 공개한다. 박금숙 경남도립미술관장은 “도립미술관은 모든 관람객에게 열린 공간이자 일상 속 쉼터로, 도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며 “옛날 프랑스 남부 발로리스에 휴가차 방문해 도자라는 색다른 매체에 깊이 빠져든 피카소처럼 이번 전시가 많은 분께 영감과 휴식, 사색의 시간으로 다가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 갈라지고 썩고 바래고… 삭는다는 건 아름답다

    갈라지고 썩고 바래고… 삭는다는 건 아름답다

    달걀노른자 겹겹 쌓아올린 그림전시장 바닥 채운 폐기물 섞인 흙빛 받으면 서서히 사라지는 벽화눈비에 운명 맡긴 풀 뭉친 작품도“생산·소비·축적 질서에서 벗어나상호의존·돌봄에 관한 사유 불러” 여기 스스로 스러지기로 마음먹은 작품들이 있다. 전시 내내 점점 빛이 바래고 썩어간다. 작품 일부를 관객이 가져가도록 내어주는가 하면, 비나 눈을 맞아 형태를 점점 잃어가다 아예 사라질 운명에 놓인 작품도 있다. 뛰어난 작품을 흔히 ‘불후의 명작’이라 부른다. 불후(不朽)는 ‘썩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백 년, 수천 년을 변치 않고 남아야 명작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펼쳐지고 있는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이런 통념에 균열을 내고 전복을 시도한다. 작정하고 작품의 분해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국내외 작가 15인(팀)의 작품 50여 점을 묶어 만든 ‘삭는 미술’의 장(場)이 펼쳐진다. 전시장 입구를 밝히는 이은재의 노란색 회화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은 달걀노른자를 한 겹 한 겹 쌓아 올려 그린 그림이다. 갈라지고 바래가는 바탕을 긁어 작가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적었다. 이미지가 완전할 수 없다는 의심, 사라져도 좋을 것이라는 안도, 그래도 한동안 그것이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뒤섞인 가운데 작품은 그의 의도대로 서서히 바래간다.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사드 라자의 작품 ‘흡수’를 밟아야만 한다. 전시장 바닥을 채운 ‘네오소일’을 지나며 관람객은 폭신한 흙에 발이 빠지고 뒤뚱거리며 걷는 경험을 얻는다. 네오소일은 서울대 토양생지화학 연구실의 실험과 자문을 통해 제작된 흙으로, 택배 상자 골판지, 닭 뼈, 커피 찌꺼기, 길거리 은행 껍질, 솔잎 등 서울의 폐기물이 뒤섞여 있다. 작가는 관람객이 흙을 한 줌씩 가져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삭는 미술에 내재하는 공동성의 계기를 보여준다. 여다함의 ‘향연’은 향이 타며 피어오르는 연기의 움직임을 작품으로 삼는다. 향은 제 몸을 계속해서 태우며 사라지고, 한 번도 같은 모양을 보이지 않는 연기 역시 대기의 흐름에 반응하며 허공에 흩어져 버린다. 유동적인 작품을 감싸고 있는 것이 실의 매듭을 짓는 뜨개질이라는 점은 한 번 더 관람객을 사유로 이끈다. 이은경의 벽화 ‘소멸의 빛’을 지날 때면 해조류의 냄새가 난다. 조류에서 추출한 스피룰리나라는 안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안료는 빛에 취약해 태양광 전구의 빛을 받은 벽화는 매일 색이 달라지다가 마침내 사라지게 된다. 미술관 중정(中庭)인 ‘마당’에는 풀을 뭉쳐서 만든 고사리의 ‘초사람’과 흙을 다져 만든 김주리의 ‘물 산’이 자리 잡고 있다. 비나 눈이 내리면서 또 바람이 불면서 작품은 서서히 형태를 잃어갈 운명에 놓였다. 유코 모리의 ‘분해’는 썩어가는 과일에서 비롯된 에너지로 빛을 밝히고 연주를 이어가며 에드가 칼렐은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라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공존해 온 고대 마야인들의 지혜를 전한다. 돌 30개를 제단 삼아 과일과 채소가 올려진 칼렐의 작품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의 ‘소장작’이 아닌 ‘보호작’이다. 테이트는 이 작품이 판매 혹은 소유의 대상이 아님을 인정하고 2023년부터 작품을 돌보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주연 학예연구사는 “미술의 관념을 전환하고 생산과 소비, 축적이란 질서에서 탈피하는 전시를 기획했다”며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언제든 삭아서 없어져 버릴 수 있다는 겸허한 인정을 목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취약함을 아름다움으로 바꿔 읽을 수 있는 계기는 인간을 상호 의존과 돌봄에 관한 윤리적 사유로 이끈다”고 덧붙였다.
  • 강서구 ‘마곡미술길’, 로컬브랜드 육성 상권 선정

    강서구 ‘마곡미술길’, 로컬브랜드 육성 상권 선정

    서울 강서구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2026년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 공모에 ‘마곡미술길’ 상권이 선정됐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상권 육성사업은 특색과 매력을 갖춘 상권을 지역 로컬콘텐츠와 연계해 주민이 머물고 다시 찾고 싶은 상권으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구는 2년간 최대 10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선정된 상권은 ▲ 지역 문화자원과 연계한 차별화된 상권 경쟁력 ▲ 로컬점포 비율(프랜차이즈가 아닌 점포) ▲ 상권 접근성 등을 종합 평가한 결과 잠재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됐다. 9개 자치구가 신청해 강서구 포함 3개 상권이 선정됐다. 마곡미술길은 약 9만㎡ 규모로 지하철 5호선 마곡역과 발산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근처에는 서울식물원, LG아트센터, 코엑스 마곡, 서울 서남권 첫 공공미술관인 스페이스K 등 문화 명소가 있다. 강서구는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도심 속 공간, 마곡미술길’이라는 주제로 전시·공연 관람 후 카페·식당 등 상권 소비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로컬브랜드 상권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술길 야외 이동로를 전시 공간으로 꾸며 ‘걷는 미술관’을 조성한다. 일부 구간을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 거리로 구성하고,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개방형 작업공간을 마련한다. 이외에도 버스킹존 운영, 마곡 하늘품은 야외도서관, 마곡 위시빌리지 등 강서구 대표 축제를 연계해 계절별로 미술길을 꾸민다. 강서구는 주차장과 개방화장실도 조성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개선한다. 건물 외벽은 스크린처럼 활용해 영상을 투사(프로젝션 매핑)함으로써 야외갤러리 분위기를 연출할 계획이다. 강서구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마곡이라는 도시가 주민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며 “일상과 예술이 공존하는 서울의 대표 로컬브랜드 상권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상인들과 협력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우리가 몰랐던 국보 하회탈’…안동문화예술의전당 특별전 개최

    ‘우리가 몰랐던 국보 하회탈’…안동문화예술의전당 특별전 개최

    경북 안동시 안동문화예술의전당은 이달 28일까지 ‘우리가 몰랐던 국보-하회탈展’을 개최한다고 1일 밝혔다. 송강미술관과 공동 주관하는 새해맞이 문화관광 활성화 특별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김동표 장인의 하회탈 복원작 9점을 비롯, 이희복 도예가의 도자기 하회탈 작품, 관련 사진과 영상 자료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서양화가 고 권준 작가가 하회별신굿탈놀이의 8마당 서사를 회화적으로 풀어낸 24점의 유화 작품은 탈놀이가 지닌 극적 구조와 민중적 상상력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아울러 다양한 매체로 구성된 전시 작품들은 도슨트(전시해설) 해설을 통해 전통과 현대, 의례와 예술을 잇는 새로운 시각으로 만나 볼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전화(054-840-3600)로 문의하거나 안동문화예술의전당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대한민국 국보 제121호 ‘하회탈’, 천년의 표정에 담긴 이야기와 예술적 가치를 만날 수 있으며, 하회탈 속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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