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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세대 미술평론가 ‘쓸쓸한 말년’

    한국 미술의 제1세대 평론가로 국립현대미술관장까지 지낸 석남(石南)이경성(李慶成·83)씨가 변변한 거처조차 없이 쓸쓸한 말년을 보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씨는 그동안 서울 종로구 한국병원 노인병동에 임시 기거해 왔으나,운영난에 시달리는 병원 측이 최근병실을 비워달라고 통보해와 늦어도 다음 달에는 퇴원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평생 욕심없이 가난한 비평가의 길을 걸어오며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한 이씨로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 딸이 살지만 낯선 외국에서 노년을 보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온 이씨는 23일쯤 미국 딸 집으로 잠시 옮겼다가 내년 2월 말 귀국할 예정.귀국 후에는 서울여자간호대의 평창동 노인병동에 들어갈 수 있게 됐으나 이곳도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온전한 거처는 아니다.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인천시립박물관장·국립현대미술관장·워커힐미술관장·모란미술관 고문·홍익대 교수·삼성문화재단 이사·현대미술관회 이사 등을 거치며 평생을 미술과 더불어 살아온 인물. 김환기비평집 ‘내가 그린 점 하늘 끝까지 갔을까’를 비롯해 ‘아름다움을 찾아서’ 등 미술서를 냈고,예리한 평론은 미술계의 방향타 구실을 해왔다. 이씨는 지난 2월 말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석남이 그린 사람들’전을 열면서 “외로워서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나이 들수록 사람이 그리워진다는 뜻일 게다.90년대부터는 그림도 그려 화가로도 통하는 그의 곁을 몇몇 후학과 지인들이 지켜주고 있지만,“작가는 우대받고 평론가는 푸대접을 받는다.”는 예술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연합
  • [젊은이들의 신 메카]②사간동

    “사간동 갑시다.” 시간을 쪼개 화랑을 둘러보는 서울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더 이상 ‘인사동 갑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미술계 인사들은 인사동 대신 사간동·삼청동으로 발걸음을 돌린 지 꽤 오래됐다.멋모르고 인사동을 찾은 대학생이나 직장 초년생들도 상업화한 거리 모습에 질려 ‘전통문화가 숨쉬고,볼거리도 풍부한’ 사간동으로 자연스레 발길을 돌린다. 난 17일 사간동 거리에서 만난 한경혜(26)씨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이 있는데다 고궁 분위기가 그윽하고,잘 정돈된 가로수 거리여서 날씨가좋을 땐 데이트하기에 딱 좋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여름날 하루를 예로들었다. 친구들과 인사동에서 만나 사간동 뒷길로 올라가 아트선재선터에서 설치미술을 보고 학고재에서 한국화를 관람했다.이른 저녁을 먹고는 세종문화회관쪽으로 진출,비언어 공연 ‘델라구아다’를 봤다.때론 북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쉬기도 한다. 봄·가을 관광철에는 경복궁을 찾는 외국인으로 붐비고 소풍·현장학습 나온 학생들이 넘쳐나는 곳이 사간동이다.이 거리에는 또 수제비 등 별미를 찾아 차를 몰고 삼청동을 찾는 40∼50대와,문화를 찾아 도보로 사간동을 찾는20∼30대가 뒤섞여 있다.현재는 20∼30대 비중이 전체 유동인구의 20∼30%수준이지만,최근 젊은이들의 유입이 점차 늘어난다. 96년 학고재를 연 우찬규 대표의 사간동 예찬은 최상급이다.그는 “가회동계동 삼청동 등 한옥밀집 지구인 ‘북촌’이 살아 있고,고궁과 청와대가 옆에 있어 운치가 있다.파리나 뉴욕의 화랑거리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계적인화랑거리”라고 자부한다.청와대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바이케이드로 막혀있어 거부감이 생기기도 하지만,바리케이드 안쪽에 위치한 갤러리인이나 브라질대사관을 찾아갈 때는 “갤러리(대사관)에 왔다.”고 말하면 쉽게 들어설 수 있다. 사간동에 화랑이 들어서기는 1975년 갤러리현대가 처음.화랑을 중심으로 한 문화의 거리가 된 시기는 90년대 중반이다.95년 갤러리현대가 현대적인 건물을 새로 지었고 뒤이어 국제갤러리·금호미술관·학고재 등이 들어섰다.건축상을 받은 국제갤러리 건물 꼭대기에 설치된 ‘지붕 위를 걷는 여자’는젊은이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다.건물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빨간 블라우스와파란색 바지를 입은 긴머리 여자가 한눈에 와락 들어오기 때문이다.흥국생명 앞에 서 있는 22m의 대형 조각 ‘해머링 맨’을 만든 조너선 브롭프스키의작품이다. 간동은 90년대 후반까지는 ‘삼청동 수제비’집을 비롯한 인기 음식점들 덕에,문화의 거리보다는 ‘먹자골목’으로서 명성을 누렸다.99년 이후에야 ‘문화’가 ‘먹거리’를 앞섰다.청담동에서 ‘갤러리서미’가,동부이촌동에서‘갤러리인’이 옮겨왔고,지난해 11월 ‘갤러리pkm’이,올 4월에는 ‘가모화랑’이 문을 열었다.지금도 화랑 두 곳이 입주하고자 공사하고 있다.최근에이곳에 자리잡고 싶어하는 화랑이 많아졌지만,자리가 나질 않는다. 사간동에 젊은이를 비롯한 문화향수자들이 모이는 까닭으로는 먼저 인사동이 전통과 문화의 거리로서 풍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점이 꼽힌다.인사동거리 정비를 하면서 잡상인이 급격히 늘었고,부동산 실거래 가격도 평당 5000만원으로 껑충뛰었다.매매가 급등에 따라 임대료가 높아지자 부담을 느낀 화랑들이 하나둘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최근 부동산 가격이 뛰었다지만 사간동은 아직 평당 2000만원 수준. 지난해 12월 오픈한 ‘티벳박물관’도 사간동의 명물이다.1200여점의 전시품은 티벳의 종교·장례·식생활·의생활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심광웅 티벳박물관 홍보실장은 “티벳문화를 전달하기에 아주 좋은 지역이고,아트선재선터와 연계해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전시를 기획한다.”고 밝혔다.특히 티벳박물관이 있는 골목에는 티벳풍의 옷을 파는 ‘홍조’‘달광선’과특이한 액세서리점들이 있어 젊은이들이 기웃거리곤 한다.수공예로 모자를맞춰주는 모자전문점 ‘루이엘’은 30대 미시족이 자주 찾는 장소. 축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사간동을 즐겨 찾는다.한국건축대상에서 상을 받은 현대적 건축물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배병길씨가 지은 갤러리현대·국제갤러리, 한옥과 현대적 건물을 연결한 유태용씨 작 갤러리서미는 1995년과 2000년에 각각 건축상을 받았다. 아트선재센터·갤러리인 등도 주위와 조화를 잘 이룬 아름다운 건물로 평가받는다.정독도서관 내 ‘교육문헌사료관’도 가 볼 만한 곳이다.지난 세대의 각종 교복과 교과서·학용품이 과거에대한 향수 또는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20대는 물론이고,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30∼40대가 적지 않다. 사간동과 삼청동에 젊은층 유동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삼청동 먹자골목도 변화하고 있다.분위기보다 맛을 찾는 ‘삼청동 수제비’나 홍합밥이 유명한 ‘청수정’등의 오래된 음식점 말고도 분위기가 ‘죽이는’ 음식점이 늘어나는 것이다.‘뺑&빵’과 ‘수와래’,국제갤러리가 운영하는 ‘더 레스토랑’은양식당.프랑스·이탈리아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좋은 장소다.퓨전 일식 ‘라마마’도 있다.한식당도 깔끔해져서 반가(班家)음식을 내는 ‘한상’‘큰기와집’ 등이 있고,‘밥’은 한식과 손수제비·칼국수 등으로 유명하다.인사동 밥집에서는 작품 수준의 도자기 식기가 사라졌지만,이곳 한식집에서는 여전히 범상찮은 도자기들이 먹는 즐거움을 두배로 키워준다. 문소영기자 symun@
  • 화학과 미술이 만났을 때, 갤러리사간 ‘케미컬 아트전’

    화학 신물질들이 미술과 만났다.서울 소격동 갤러리 사간이 새달 1일까지 여는 제1회 케미컬 아트(Chemical Art)전이다. 1960∼70년대 한국 수출에서 기여도 1위이던 화학공업은 공해산업으로 낙인 찍히면서 사양산업이 됐다. 그러나 세계 수준인 IT의 발전에 힘입어 화학산업에서도 카멜레온 도료(휴대전화용 페인트)나 홀로그램 도료(액정용 페인트)등 신물질이 개발되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케미컬 아트는 그 신물질들을 작품 재료로 응용한 전시회로,한국적인 상황에 맞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다. 갤러리 사간의 양찬제 큐레이터는 “물감·석고·파스텔 등을 사용하는 미술은 근본적으로 화학”이라면서 “화학 강국인 한국의 이미지를 ‘화학 예술’장르의 정상으로 끌어올려 세계 미술계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런 기획 의도에 동의해 애경유화 애경화학 신한화구 문교화학 문교산업 매일유업 호미아트 등 화학기업들이 기업 메세나 차원에서 2000여만원 수준의 화학 제품을 지원했다.참여 작가는 30∼40대의 장승택 도윤희 양만기 이기붕 김건주 김현숙 등 기성작가와,김현성 장희진 김형관 이영경 등 신진작가 등 18명.작가들은 모두 지난 1월 2박3일간 열린 워크숍 기간에 협찬사의 생산현장과 연구소를 방문,작품용 재료를 직접 선택했다. 화학예술은 작가의 마음 속 이미지를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장점.이를테면 맥주의 거품이 쏟아지는 순간은 ‘우레탄 폼’이 아니면 현실에서 재현할 수 없다.냉장고의 성에와 얼음을 실온 상태에서 표현하려면 곧 녹아버리는 얼음조각을 쓸 수 있지만,영구적으로는 무수프탈산이 아니면 안된다. 하지만 작가들은 물성이 각기 다른 이런 화학물질을 뜻하는 대로 다루려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플라스틱 그림을 그린 작가 도윤희는 “액화 상태의 투명 폴리코트를 고체로 만들려면 경화제를 배합해야 하는데,경화제 배합량에 따라 폴리코트의 색이 짙은 보라색이 되기도 하고 옅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또 경화제 양이 많을수록 빨리 굳고 고열이 발생하는데,잘못되면 작품이 망가지기도 한다.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도 작가를 괴롭힌다. 박진범의 무수프탈산을 이용한 입체작품 ‘하이-콜드’는 제작과정이 수월치 않았다. 분말 무수프탈산은 액체로 되면 부피가 4분의1로 줄기 때문.25㎏들이 분말 15포대를 131도 이상으로 끓여야만 했다.액체 상태에서 작품의 틀을 뜬 뒤 외벽은 급히 냉각시켜 얼음처럼 매끈하게,내벽은 천천히 식혀 성에처럼 표현했다. 장승택의 ‘무제-폴리회화’는 헝겊 대신 플라스틱을 사용한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다.정재철의 ‘Work 2002-11’은 유리병 내부에 우레탄 폼을 채워넣어 맥주병에서 거품이 터져나오는 순간을 포착했다.고온에서 견디는 건축용 페인트인 우레탄 도료를 이용해,김건주는 불과 사람의 관계를 조각으로 담았다. 카멜레온 도료를 이용한 김형관의 ‘수평/수직’은 관객의 위치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그림.마치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액정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색채가 변화하는 것과 같다.(02)736-1447. 문소영기자 symun@
  • 디지털아트·현대적 산수 세상과의 새로운 소통

    모든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다.생계가 달렸다는 직접적인 이유 외에 그림은 화가에게 곧 ‘말’이기 때문이다.프랑스 파리에서 오랫동안 작업해온 서양화가 진유영(52)과,최근 조선일보사의 이중섭미술상을 받은 한국화가 정종미(45)는 치열하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온 여성작가들이다.새로운 방법론과 재료로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의 힘찬 발걸음을 듣는다. # 서양화가 진유영展 “나를 낮추면 모든 것이 편안해져요.그림도 그래요.” 진씨는 11년만에 귀국전을 열면서 제 그림을 아주 작은 사람이 돼 바라본 사물을 재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그래서 그림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설명이다.그림 앞에 서면,전시장 벽면은 갑자기 눈부신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창문으로 변하는 듯하다.A4용지 크기의 틀에 짜인 그림들이 보여주는 환상이자 착각이다.한장씩 보면 추상화이고,모아 놓으면 사실적인 회화로 변화한다. 1969년 ‘서양화 국비유학생 1호’가 돼 파리로 간 그는 오는 17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진유영-회화는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이 전시는 94년이후의 작업 결과로,94년 시작한 ‘불가역’,99년부터의 ‘살아있는 돌’,최근 ‘편도’시리즈까지 모두 보여준다.특히 편도 시리즈는,작은 캔버스에 그린 유화들을 모아 놓은 ‘살아있는 돌’작업을 디지털로 변환해 최종적으로 종합한 듯하다. 편도 시리즈의 작업과정은 번거롭다.우선 수채화를 그려 손바느질한 입체물에 붙인다.그리고 몸을 완전히 낮춰(이를테면 땅바닥에 누운 채로)입체물을 디지털사진기로 찍는다.그 한장의 사진을 컴퓨터에서 200장 정도로 분할해 확대 출력한다.출력한 사진에 수채물감으로 다시 그림을 그린다.그 그림을 디지털카메라로 재촬영한 뒤 컴퓨터로 채도와 농도,광도를 조절해 출력해 완성한다.이어 색깔이 햇빛에 바래지 않도록 코팅한다. 그는 말한다.그림을 그리는 일은 사회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고,사회에서 나를 확인하는 작업이라고.갤러리현대(02)734-6111. # 한국화가 정종미展 올해 이중섭미술상을 받은 한국화가 정종미는 미술계에서도 ‘집념이 강한 화가’로 소문나 있다.일반적으로 한국화가들은 먹과 아교 안료 등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뒷전으로 미뤄두기 일쑤다.그러나 그는 재료를 파고들어 그만의 독특한 그림 맛으로 살려낸다.95∼96년 무렵의 ‘종이부인’은 그가 연구한 콩즙의 특수효과를 이용한 작품으로 세월이 갈수록 운치가 느껴지는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콩즙·들기름 등 우리 재료와 안료,전통적인 기법이 서양의 유화와 경쟁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한다. 40대에 들어서 그는 단색 풍의 그림으로 전환한 듯하다.학고재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22일까지 열리는 ‘정종미전’은 ‘현대적 산수’를 시도한 것이다.먹으로만 그린 수묵화가 아니라 채색화이다.그 위에 천연염료로 염색한 삼베나 비단 등을 콜라주로 덧붙였다. 그는 이번 전시에 ‘어부사시사’‘몽유도원도’·‘소쇄원' 등 고전의 시가·그림,옛 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을 시리즈로 60여점 내놓았다.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제목을 따온 작품을 그는 “조선 초기 유학자들의 이상향을 현대인의 이상향으로,컬러시대에 맞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연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복숭아 나무가,비단에 짜넣은 무늬처럼 촘촘한 것을 몽유도원도에서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구상은 아니지만 완전한 비구상도 아니다.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형상화한 그림에서는 흥겹게 노래하며 고기잡는 어부를 느끼거나,출렁대는 바닷물과 검은 조약돌을 떠올려 보는 것도 그림을 감상하는 포인트이겠다.학고재(02)720-1524. 문소영기자 symun@
  • 조선화가 채용신作 부부초상화 공개

    조선시대 마지막 인물화가인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ㆍ1850∼1941)이 그린 부부 초상화가 발굴됐다. 월간 ‘미술세계’는 11월호에서 “조선후기의 명의 서병완(徐丙玩ㆍ1868∼1947)과 부인 남원 양씨(1865∼1926)의 초상화가 손자인 서인원(53)씨에 의해 공개됐다.”고 보도하고 “이 초상화는 1925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채용신 전성기 때의 화법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밝혔다.가로 62㎝,세로 115㎝크기의 초상화는 비단에 채색화로 그렸다. 석지는 고종의 어진을 비롯해 이하응(李昰應),황현(黃玹) 등의 초상을 남겼고,1904년부터는 최익현 등 애국지사와 항일의병의 초상을 주로 그렸다.미술계에서는 그를 친일 미술가였던 김은호(金殷鎬)보다 더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문소영기자 symun@
  • ‘한국화 살아남기’ 새로운 시도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려는 노력이 한창이다.이런 가운데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 2명이 6일 각각 여는 두 전시가 눈길을 끈다.이들의 화두는 ‘한국화가 세계 미술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자.’이다. 갤러리 아트사이드는 ‘이종목초대전’을 18일까지,이화익 갤러리는 ‘이기영 초대전’을 26일까지 마련한다.한국화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지향점은 같으면서,방법론은 서로 달라 한국화가들의 고민의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다.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14번째 개인전을 여는 이종목(45) 이화여대 교수는 동양화의 전통인 지·필·묵의 개성을 살리면서,자연과 인간이 살아가는 풍경을 반구상으로 보여준다.이 교수는 “스피드 시대에 필력을 내세우는 일이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한 획으로도 내적인 통찰이 드러나도록 했다.”면서 “여백을 현대화한다는 개념을 도입,점과 선이 전면에 드러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붓으로 한 점을 푹 찍어 산 하나를 완성한 그림도 있고,동양화의 특징인 여백을 거의 남김없이 점과 선으로 가득찬 그림도 있다.선과 점은 사람 나무 바위 해 물 구름 등 구체적인 형상을 이미지화한 것으로,한 화면에서 치우침이 없도록 배려했다. 채색화는 한지 앞·뒤에 모두 그리는 동양화의 전통적인 개념을 지켰다.작품 30점을 전시한다. 이화익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업화가 이기영(39)의 ‘매혹적인 먹꽃’전의 출품작은 얼핏 보면 판화 같기도 하고,실크스크린 같기도 하다.그러나 그림들은 한지에 먹으로 그린 한국화가 분명하다.1998년부터 전업작가의 길을 걸은 그는 개인전을 99년에야 열었다.뒤늦은 출발이었다.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전시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여러 차례 특선을 했다.그러나 공모전을 기웃거리던 93∼97년까지만 해도 한국화가가 된다는 확신이 없었다.”고,그는 자신의 뒤늦은 분발을 설명한다. 그의 그림이 실크스크린처럼 보이는 이유는 독특한 밑작업 때문.한지에 소석회와 대리석 가루를 섞어,접착제로 잘 개어서 나이프로 긁듯이 열 차례나 바른다. 긁듯이 바르기에,밑작업이 끝났을 때 한지의 바탕은 얇지만 잔금이 생기지 않는다.또 먹이 한지로 스며들지도 않는다.그 위에 먹물을 살짝 묻힌 마른붓으로 그림을 그리는데,그린 뒤 마른 수건으로 닦고 그리기를 반복한다.‘먹의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는 그의 설명이 이해되는 듯하다. 60㎝×60㎝의 정사각형에 담긴 꽃 새 자연 등 소품 30점이 1주일에 10점씩,3주간 번갈아가며 전시된다.갤러리 아트사이드(02)725-1020,이화익 갤러리(02)730-7818. 문소영기자 symun@
  • 문예진흥기금 1조5000억 조성

    문화관광부가 30일 밝힌 ‘순수예술 진흥 종합계획’은 ‘국민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를 다시 문화정책의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일종의 ‘반성문’으로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사실 ‘국민의 정부’ 초기 문화정책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를 “자동차 수십만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사례로 들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문화’에 집중했다. 물론 ‘문화산업’으로 문화정책의 중심축이 옮겨지는 동안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꾸준히 늘어났지만 문화산업 집중지원은 예술계,나아가 순수예술 지원의 궁극적 수혜자인 국민의 상대적 빈곤감이 깊어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어 보겠다는 이번 종합계획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최근 미술계의 여망이 되고 있는 ‘대관 전문 미술관의 건립’과 ‘한국 근·현대 문학관’ 및 ‘지역문학관과 문학인의 집’ 건립 등이 눈에 띈다. ‘대관전문 미술관’은 서울시내에 2500평 정도의 공간을 물색한다.한국 문학사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보존·연구 기능을 맡을 ‘근·현대문학관’은 3만평의 부지에 건평 2만 4000평 규모로 건립한다.‘문학인의 집’은 이미 남산에 지어 놓은 서울을 제외하고 15개 시·도에 세우며 ‘지역문학관’도 전국 50곳에 만든다. 공연 분야에서는 전국 503군데 공연장의 43%인 214곳을 차지하는 300석 미만의 소공연장을 활성화하고자 시설·환경 개선을 지원하고,무대예술 전문인력의 무상 연수도 확대한다.연극 관람료 일부를 지원하는 ‘사랑티켓’ 제도는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한다. 이같은 계획을 마무리지으려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재원의 마련이다.현재 4144억원인 문예진흥기금을 2010년까지 1조 5000억원으로 조성 목표를 높인다는 방침도 그래서 나왔다.그러나 3800억원은 국고에서,5000억원을 공공 부문에서 출연받고,민간기부금 등으로 1700억원을 유치한다는 구상을 실현하기에는 험난한 앞날이 예고된다. 예술인의 ‘문화생산비’와 국민의 ‘문화생활비’에 세제 혜택을 주거나,‘문화예술인 복지’조합이나 기금에 정부가 일부를 출연하는 방안에 관해당장경제부처들이 협조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서동철기자 dcsuh@
  • 호암갤러리 ‘미국현대사진 1970∼2000’전

    사진예술이 판화에 이어 세계 현대미술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것은 지난 70년대이다.세계 미술관과 개인들이 다투어 소장하면서 인기 작가의 작품은 수십만 달러에 거래되는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현실의 재현’에서 ‘예술작품’으로 진화된 사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린다. 호암갤러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 소장한 1만2000여점 가운데 113점을 골라 ‘미국현대사진 1970∼2000’전을 내년 2월2일까지 연다.작가는 신디 셔먼,셰리 르빈,리차드 프린스 등 40명.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이론의 핵심적 쟁점인 현실과 정체성,일상이 소주제다. 전시장 초입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현실(The Real)’.그러나 진짜 현실은 없고 조작되고 모방된 가짜 현실이다.셰리 르빈의 ‘워커 에반스 모작(Afer Walker Evans)’연작은 사진작가 워커 에반스의 작품을 재촬영한 작품이다.필립-로카 디 코르시아의 ‘28살의 마릴린,네바다주 라스베가스;$30’은,30달러의 모델료를 지급한 모델에게 원하는 자세를 요구한뒤 거리에 조명 장치를 설치하고 찍은 조작된 현실이다.‘차용 미술의 선두주자’였던 리처드 프린스의 ‘무제(고개 숙인 세 여인)’ 연작도 잡지 광고를 재촬영한 작품이다.이들은 계속 ‘우리 앞의 현실이 뭐냐.’며 의문을 제기한다.샌디 스코클런드의 ‘결혼’은 붉은 딸기잼으로 벽을,노란 마멀레이드로 바닥을 발라 연출했다.달콤하지만,한편 질척거리는 결혼의 양면성을 불온하게 보여준다.신부가 살짝 들어올린 발바닥에 흘러내리는 진득한 액체를 잘 살펴보도록. 정체성 탐구는 존 코플란즈의 ‘자화상’에서 시작한다.맨 등을 잔뜩 구부린뒤 주먹을 어깨로 올린 작가의 누드는 더듬이를 올린 달팽이의 얼굴같다.60살부터 찍었다는 그의 나체에서 ‘나는 늙은이가 아니라 나다.’라는 메시지가 강렬하다.마약 중독자 등 소외계층을 소재로 즐겨찍던 낸 골딘의 ‘구타당한 낸,종속의 발라드 중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얻어맞아 눈이 충혈되고 멍든 작가 자신의 얼굴이다.포스트모더니즘 사진의 대표작가 신디 셔먼의 ‘무제 필름 스틸’연작은 B급 영화 속의 여배우로 분장한 작가가 매맞는 아내,악녀,마릴린 먼로 등 정형화된 여성의 역할을 선보인다.현대의 이미지는 매스미디어가 제공한 이미지들의 변형이자 차용이라는 점을 고발한다. 이 밖에 컬러사진의 장을 연 윌리엄 이글스턴,인간의 자연파괴를 조작된 사진기법으로 고발하는 빌 오웬스,아동학대 논란을 빚은 샐리 만의 작품이 출품됐다.(02)750-7990. 문소영기자 symun@
  • 도상봉 탄생 100주년 기념전, 여인·꽃·도자기… 한국적 정서 담아

    국립현대미술관은 ‘균형과 조화의 미학-도천(陶泉) 도상봉 탄신 100주년기념전’을 덕수궁미술관에서 12월8일까지 개최한다. 도상봉(1902∼1977)은 서양화 1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한국적 정서를 전통적인 사실주의 회화로 확립한 화가. 함경남도 홍원 출신으로 보성고보를 졸업한 그는 1920년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에게 서양화를 배운 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대 법과에 입학했다.그러나 곧 미술로 전향해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근대 일본 아카데미즘의 본산인 동경미술학교는 구로다 세이키를 중심으로 구성된 백마회(白馬會) 출신의 외광파(外光派) 계열 작가들이 교수진이었다. 도상봉은 오카다 사부로스케 교수에게서 본격적으로 배웠다.외광파란 대상의 형태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고전적인 묘사법과 인상주의 풍의 색채표현을 절충한 기법을 쓰는 계파.김관호 이종우 이병규 공진형 오지호 이마동 김인승 심형규 손일봉 등이 이에 속한다. 귀국한 그는 교편을 잡으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다가 광복 이후에는 국전 창설에 가담,국전심사위원과 대한미술협회위원장(1955년)등을 맡아 우리 미술계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인물화·정물화·풍경화를 두루 그렸다.캔버스의 올이 보일 만큼 아주 얇게 유화물감을 펴바른 것도 특징. 풍경화 중에는 성균관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많은데,서울 혜화동에 성균관을 내려다 보는 집을 장만한 것이 계기가 됐다.‘명륜당’(1933)‘성균관’(1953) 등이 비교적 초기 작품이고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는 부산의 해안 풍경이 간간이 등장한다.‘향원정’을 중심으로 한 고궁 풍경은 후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인물화는 주로 초반에 해당하는 30∼50년대에 제작했다.‘여인 좌상’‘한정’‘출가 전’‘우산과 여인좌상’ 등이다.동경미술학교 시절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 정확한 형태감각과 아카데미즘에 기초한 엄격한 조형미를 보여준다.인물 주변에는 도자기를 두어 구성의 균형을 이루었다.그는 50여 년간 도자기와 꽃을 중심으로 정물을 즐겨 그리기도 했다.호를 ‘도자(陶瓷)의 샘’인 도천으로 지을 만큼 도자기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그는 조선백자의 소박하고 부드러운 선과 색채를 소재로 한 정물화를 좋아했다.꽃 중에는 라일락을 즐겨 그렸는데 백자와 같이 오묘하고 부드럽고 은은한 빛깔 때문이었다. 문소영기자 symun@
  • 밀레 작품 서울서 본다 - 시립미술관 12월부터 전시회

    농촌의 풍경을 목가적으로 그린 ‘만종’‘이삭줍기’등으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작품이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된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한국지부 등은 오는 12월13일부터 내년 3월30일까지 ‘밀레전-Millet After Millet’전을 을 연다고 밝혔다.이번 전시에는 밀레의 대표작인 유화 ‘자비심(라 샤리테)’을 비롯해 판화·드로잉 등 70여점과,밀레에게 영향을 준 신고전주의파 다비드,밀레로부터 영향을 받은 천재화가 고흐와 세잔 등의 유화와 판화 56점 등 모두 130여점을 소개한다.아쉽게도 ‘만종’과 ‘이삭줍기’는 이번 전시에서 빠진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밀레 자신이 대표작으로 손꼽은 ‘자비심’.‘자비심’은 1860년대 미국의 자산가인 밴더빌트 가에 1000프랑에 팔린 후 행방불명됐다가 2000년에 발견돼 세계 미술계를 뒤흔든 작품이다. 지난해 일본 메르시안 뮤지엄에서 처음 공개된 후 한국에서 두번째로 미술팬들을 만난다. ‘자비심’은 농가로 구걸을 하러온 문 밖의 거지에게,농부의 아내가 딸을 시켜 빵을 건네주도록 하는 서정적인 작품이다.(02)2124-8936. 문소영기자
  • [굄돌] 직업의 전문화

    ‘개미 제국의 발견’이란 책에서 어릴 때 배웠던 개미들의 조직사회나 분업활동을 재확인하게 된다.그중 어떤 종류의 개미는 체형 자체가 그들의 임무수행에 적합하게 기능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변화되어 발달되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요즈음은 전문가,전문화란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등장하고 많은 일이 전문화되어 있다. 정보화시대로 넘어오면서 예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혀 생소한 이름의 직업이 생겨나는가 하면 직종이 갈수록 세분화 되고 있어 웬만한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어디다 말을 붙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전문화 세분화되는 이 시대에도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분명 예술가와 교육자는 직종이 다른데도 서로들 이쪽 저쪽을 넘나들면서 자기들 영역을 지킬 생각도 구분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어우르고 있다.오늘의 미술계의 현상이다.이를테면 겸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해방이후 건국초,외국에서 수학한 원로 미술인들이 동분서주하면서 후학들을 위한 배움터도 만들고 창작 활동으로 미술품의 수요도 감당하다보니 자연히 예술가로서의 창작활동과 교육자로서의 미술교육이 동일시되어 자연스럽게 겸업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고정관념은 반세기를 지난 지금도 대학강단에서의 경력이 작품성 이상으로 높이 평가 되는 모순으로 우리사회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이러한 풍조가 창작에만 전념하는 전업 미술가들에겐 커다란 어려움이다.사회의 제반 여건이 바뀌면 사고도 바뀌어야 마땅하다. 이제 우리 미술계에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정녕 전문화 세분화가 이루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업미술가들은 진지하고 순수하게 창작활동에만 전념하는 예술가로,미술교육자는 후학을 지도하고 양성하는 진정한 교육자로 분명한 자리매김을 해야한다.백화점식으로 이것 저것 하다 보면 전문화 세분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며 미술계의 발전도 그만큼 더디어질 것이다. 김춘옥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
  • 회갑 기념展 여는 간송미술관 학예실장 최완수씨

    “촌스럽게 무슨 회갑연입니까.‘회갑’이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는데…” 9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악예원에서 열리는 ‘최완수 회갑기념전’의 개막식이 열린 3일 가헌(嘉軒)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얼굴을 붉히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번 전시회는 ‘간송학파’인 김천일(목포대) 오병욱(동국대) 조덕현(이화여대) 장지성(전주교대) 이태승(용인대) 교수 등 10여명이 회갑연 및 저서‘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1’ 출판기념회를 겸해 마련한 자리.제자들은‘가헌 선생 19세 진영(조덕현 작)’ 등 그의 초상화를 비롯해 한민족의 정신이 살아 있는 탱화·불상·한국화·서양화 등을 출품했다.모두 최 실장의 정신을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이 전시회는 지난 73년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한국미술사를 강의한 이래 30여년 동안 한국 전통문화 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써온 그에게 제자들이 해줄 수 있는 최대의 ‘헌사’일 것이다.그는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년간 일한 뒤 66년 사립 박물관인 간송미술관으로 옮겨 학예연구실장으로 지금까지 일해왔다. 한국 불교미술사학계의 강력한 학맥인 이른바 ‘간송학파’는 쉽게 말해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다.70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연세대에서 그의 강의를 듣고 학문적 토대를 닦은 이들이 자연스레 구성했다.‘식민사관에서 탈피해 우리 전통문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갖자.’는 그의 사상에 공감한,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학 분야 등의 인문학자들을 포괄한다. 그는 “나에겐 전수할 학문이 있고,스승의 색깔을 이어갈 수 있는 뛰어난 학생들이 있어 학통이 이어진 것뿐”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최 실장은 “학문에는 고전에서 이어지는 수직적인 지식과 동시대의 수평적인 지식이 있다.요즘 교육은 검증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수평적인 학설만 요구하는 것 같다.그러나 문화의 주체자가 돼 외래문화를 수용하려면 수직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그래야 지식인들이 태어날 풍토가 마련된다.”며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문소영기자 symun@
  • [열린세상] 역사는 정방향으로 흐른다

    군사독재정권이 신임 교수들을 일주일씩 정신문화연구원에 집어넣고 정신교육을 시키던 1987년 여름의 일이다.6월 항쟁으로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상황에서 정신교육에 들어간 내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은 것은 북에서 갓 내려온 김만철씨와의 대화였다.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 TV에도 아랑곳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일방적으로 남쪽이 좋다고만 하지 말고 거꾸로 북의 장점과 남의 단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잠시 멈칫했던 김만철씨가 이제까지와 달리 머리를 꼿꼿이 들고 가슴을 편 채 자랑하듯 말을 꺼냈다. “북은 친일을 빨리 청산했습니다.그리고 남은 극장 간판에 보이는 것처럼 너무도 부도덕해 보입니다.”그 말을 들으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해방 직후 1년 만에 작업을 마친 북과 달리 남의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청산은 실패로 끝났다.미군정은 행정 공백과 공산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친일 반민족 세력을 다시 내세웠고,이승만 또한 자신의 집권을 위해 그들과 손을 잡았다.그 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은 친미 반공주의자로 둔갑하였고 ‘건국의 공로자’로까지 올라섰다.일본 장교 출신 대통령을 비롯하여 친일 인사 7명이 9번이나 국무총리를 지냈고,18명이 22번 장관을 지낸 내무부와 13명이 16번을 거친 법무부,10명이 11번을 지낸 상공부에서 보듯 중앙 부처 대부분을 그들이 장악하였다.또한 서울,경기,전북,경북은 4번씩이나 친일 경력 도지사를 배출하였으며,군부는 더욱 심해서 12명이 13번에 걸쳐 국방부장관을 지냈고,육군참모총장은 초대부터 21대까지,합동참모회의의장은 초대부터 14대까지 일본 장교 출신들로 도배하였다.어디 그뿐인가.각 대학 총장들을 비롯하여 언론계,문화계 등 모든 분야에서 친일 인사들이 원로대우를 받았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정부지원으로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일부 언론은 자신들의 친일행각을 감추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또한 1995년에는 이완용의 손자가 할아비의 땅을 되찾아 땅 값 20억 원을 들고 외국으로 떠났으며,재작년에는 서울대학교 김민수 교수가 미술계 원로들의 친일 행각을 비판하다가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바른 방향으로 흐른다고 했던가? 올해 3·1절 전날 비록 국회 차원의 활동은 아니었지만 여야 소장 의원들이 만든 ‘민족정기를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708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그리고 광복절 즈음인 지난 13일 학술단체협의회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친일의 의미와 친일파 청산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14일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비롯한 문학단체들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문인 42명의 명단을 발표하였다.특히 참여 숫자도 숫자지만 어느 분야보다 후대의 가슴에 아픈 못질을 한 친일 문인들의 작품을 낱낱이 적시하면서 이날 후배 문인들은 당사자 선배들을 대신해 국민들 앞에 사죄의 글을 올렸다.그리고 ‘친일인명사전’편찬 작업과 소장파 의원들에 의한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특별법’추진이 모두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물론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당사자들 대부분이 죽은 지금 지나간 과거를 들추는 일은 죄 없는 후손에게 피해를 줄 뿐이라는 주장에서부터 그들이야말로 민족을 위한 역사의 희생자라는 논리까지 다양하다.하지만 친일 청산운동은 과거 개인의 잘못을 일일이 응징하자는 것이 아니며,민족을 분열시키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정당한 역사적 심판을 거쳐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운동이다.그리고 그 성공 여부는 시민운동으로 승화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라고 하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 같은 불공정협약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지 못한 것처럼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자주적일 수 없는 것이다.한편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교빈/ 호서대 교수 철학
  • 8.15 민족통일대회/ 北미술품 분단후 첫 ‘서울나들이’, 워커힐호텔서 107점 전시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쪽 땅에서 북한의 미술작품들이 대거 전시되며 문화예술 교류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 15일부터 이틀동안 서울 워커힐호텔 무궁화볼룸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조선화 62점,유화 12점 등 모두 107점이 선보였다.이중 국보급 작품이 20점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80년대 이후 작품까지 대거 소개돼 북한 미술계의최근 경향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대부분 작품들은 정치색을 띠지 않으면서도 북한사람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남북이 미술뿐 아니라 서로의 정서,실생활까지 공유할 수 있는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 단연 ‘국보급’으로 평가받는 정영만 화백의 ‘강선의 저녁노을’이 전시돼 주목을 끌었다.인민예술가 정 화백이 그린 이 작품은 대동강변에 있는 강선제강소에 저녁 노을이 지는 모습을 수채화풍으로 아름답게 그렸다. 지난 99년 숨진 정 화백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조선화창작단단장을 지냈다. 공훈예술가 최상건은 평양미대를 졸업하고 만수대창작사에 소속되어있는 원로 미술가다.그의 작품인 ‘금강산귀면암’은 ‘총석정’ 등과 함께 그가 천착하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힘이 넘치게 그리며 사람의 감성을 묘하게 휘어잡는 마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밖에 천진난만한 북한 아이들이 서로 키를 재고 있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슬그머니 웃음짓게 만드는 정현웅 화백의 ‘누구 키가 더 큰가’라는 작품과 인민예술가 김성민의 ‘칼춤’ 등 남측에 한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이번에 전시됐다. 박록삼기자
  • 민중미술 외면하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한 1980년대 민중미술 350여점이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350여점은,가나아트센터 이호재 사장이 지난해 3월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 200여점과,비슷한 시기에 민중미술 작가들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거나 기증과 다름없이 싼 가격에 넘긴 작품 150여 점을 말한다.요절한 민중 판화가 오윤과 화가 홍성담 강요배 박불똥 김원숙의 작품 들이 포함돼 있다. ‘사건’이 발생한 까닭은 서울시가 가나아트센터로부터 기증받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민중미술 상설전을 열기로 한 약속을 1년여가 지나도록 지키지 않았기 때문.서울시는 “반정부적인 내용의 작품들을 공공 문화공간에 상설 전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기다리다 지친 가나아트센터는 지난 6월 ‘시집간 딸’이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판단해 서울시에 “기증품을 돌려달라.”고 구두로 요구했다. 또 지난 8일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성명을 내 “서울시는 지난해 가나아트센터가 기증한 200여 점의 민중미술 작품이 상설 전시될 수 있도록 하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최열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은 “기증 당시에 약속한 대로 ‘가나아트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상설전을 열지 않는다면,서울시가 약속을 파기한 것으로 이해하고 기증 자체를 철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사장이 서울시에 작품을 기증한 것은 서울시립미술관측이 민중미술 컬렉션 중 몇점을 구입하겠다고 제의했기 때문.제안을 받자이 사장은 멕시코시립미술관을 떠올렸다고 한다.20세기 초 멕시코 미술계는조국이 스페인의 식민통치 300년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되자,이를 기념하는 민중미술 작품을 양산했다.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디에고 리베라 등이 대표적인 작가다. 멕시코시립미술관은 당시 리베라 등 민중미술가가 그린 벽화와 그림 등을 본격적으로 수집·전시한 덕에 전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이 사장은 80년대 민중미술의 상설전시관으로서 서울시립미술관이 한몫을 하리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당시 이 사장의 기증 소식이 나돌자 ‘가나아트 컬렉션’에서 빠진 일부 민중미술가들은‘80년대 민주화운동 및 사회상을 담은 컬렉션에 내가 빠질 수 없다.’면서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을 앞다투어 기증해 서울시립미술관은 사실상 80년대 민중미술품의 최대 소장자로 떠올랐다. 민예총에서는 “민중미술이 반정부적이라서 전시를 못하겠다는 서울시의 생각은 예술에 대한 무지와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비판했다.미술계 인사들도“서울시가 또 다른 기증자의 작품은 그의 이름을 붙여 상설전을 열면서도 민중미술에 대해서는 명백히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소영기자 symun@
  • 미술계엔 아직도 ‘월드컵 열기’, 회화·사진전등 개최 잇따라

    2002 한·일 월드컵 광풍이 잠잠해진 지 한달을 넘겼지만 미술계에서는 ‘월드컵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다. 전시 전용공간인 쌈지스페이스는 20일까지 ‘현장 2002:로컬컵(LOCALCUP)’전시를 연다.일민미술관은 18일까지 ‘오! 필승 코리아-2002 감동의 순간’을,조선일보 미술관은 새달 월드컵 관련 사진전을 개최한다. 각 전시회가 월드컵을 소재로 다룬 점에서 닮았지만,투영된 의식은 사뭇 다르다.‘로컬컵’이 한반도를 열광시킨 ‘국가주의’‘태극기’‘붉은악마’등의 문화코드를 뒤집어 본다면 일민과 조선일보 미술관의 사진전은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 월드컵을 풍자한 로컬컵에는 박불똥 조습 이중재 등 작가 14명이 참여했다.비디오 회화 사진 등을 전시한다.주제가 무거운 데 반해 표현하는 양식은 자유롭고 다양하다. 참여작가 중 가장 나이어린 조습(27·95학번)은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패러디한 사진 ‘습이를 살려내라’를 내놓았다. 직접 모델이 된 작가는 ‘Be The Reds’를 입고 1987년 6월과 2002년 6월의 한국 현실을 비교한다. 김태헌의 ‘화난중일기’는 축구를 좋아하는 한 남자의 그림일기.왕관을 쓴 ‘블랙 무대뽀’가 붉은악마로 변한 모습은 일상을 포기한 채 열광하는 소시민들의 모습과 닮았다.이중재는 좀더 직접적으로 ‘축구는 축구일 뿐,오버하지 말자.’고 주장한다.월드컵 영상이 흐르는 가운데 격렬한 섹스 장면을 교차시키는 비디오 영상은 3S(스포츠·섹스·스크린을 말하며 우민화 정책을 상징함)가 불변임을 강조한다. 박불똥은 바람개비와 축구선수를 합성한 ‘돈개비춤’으로 스포츠 마케팅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의 논리를 형상화했다.이 작가의 ‘반공천사’는 반쪽난 공으로 ‘반공(反共)’을 떠올리게 하는 언어적 비틀림이 돋보인다. 일민미술관의 ‘오!필승코리아’전은 월드컵대회 때 찍은 사진으로 꾸미는 다큐멘터리 전시.광화문 네거리를 한국의 힘이 모아진 상징적 공간으로 설정하고 당시의 흥분과 열기가 담긴 사진들을 내놓았다.전시회장에는 붉은 옷을 입은 안내자가 분위기를 띄운다.유동인구가 많은 덕인지 전시회는비교적 호황이고,이 때문에 전시회 일정을 늘릴 예정이다.붉은악마들의 응원전과 선수 사진 96종을 엽서 크기로 만들어 한 장에 100원,한 세트에 7500원에 판다.쌈지스페이스(02-3142-1693)일민미술관(02-2020-2062). 문소영기자 symun@
  • 문화광장/ 미술

    ◆ 지금,사진은 - 25일까지 가나아트센터(02)3217-0233.길버트 앤 조지,로버트실버스,김수자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진과 영상 작가들.작품 크기가 관객을 압도. ◆‘디아판네’조승규 개인전 - 29일까지 포스코미술관(02)3457-0793.독일에서 활동중인 작가가 12년만에 고국에서 갖는 전시.서양화와 설치작품 40여점. ◆ 인물로 본 한국 퍼포먼스 30년의 투영 - 31일까지 쌈지스페이스(02)3142-1693.무세중,성능경,이건용 등 한국의 전위예술가들 조명.전위예술 1∼4세대작가들의 사진과 비디오 영상자료 등 60여점. ◆ B를 바라봄-배종헌전 - 20일까지 풀(02)735-4805.미술계의 대안공간을 표방하고 나선 풀이 공모한 개인부문 당선작 전시.텍스트,사진,드로잉을 매체로한 실험성 강한 자리. ◆ 2002 色전 - 13일까지 덕원미술관(02)723-7772.PC통신 유니텔 아마추어 미술동호회의 6번째 전시회.38명의 작가가 회화,조소,도예,설치,사진 등 50점출품.
  • 클림트, 황금빛 유혹 - 황금빛으로 가득한 숨막히는 에로티시즘

    오스트리아가 낳은 회화의 거장,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키스’는,전세계에서 복제되는 양으로 볼 때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작품이라고 한다.별처럼 쏟아지는 황금빛 안개 속에서 두 눈을 꼭감고 입맞춤하는 연인의 모습은 달콤하고 신비스럽다 못해 숨막힐 정도로 에로틱했다.특히 여성들에게 그렇다. ‘클림트,황금빛 유혹’(신성림 지음,다빈치 펴냄)은 ‘키스’뿐 아니라 황금빛이 가득한 그림 148장을 눈 앞에 뿌려놓고,‘봐!정말 감탄할 만하지?’하고 자랑스럽게 되묻는다.지은이는 이화여대 철학과와 동대학원을 나온 뒤프랑스 파리10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해 박사 과정을 마쳤다.베스트셀러가 된 ‘반 고흐,영혼의 편지’를 비롯해 미술 관련 서적을 다양하게 번역해 왔다. 클림트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좋아한다는 그는 “클림트가 국내외적으로 열광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평전 한권 없다.”며 “이 책은 클림트가 산 시대에 대한 이해를 통해 클림트 작품을 잘 감상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때문에 클림트의미술사적 지위나,그림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은 상대적으로 무시했다.대신 큐레이터처럼 그림 구석구석을 꼼꼼히 볼 수 있도록 가이드한다. 금세공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클림트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빈 분리파’를 이끌며,상징주의와 아르누보적 회화로 유럽 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화가다.금가루를 그림에 이용한 ‘황금 시대’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건축가 아돌프 로스,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등이 활동하는 빈의 문화적 토양에서 그는 그림을 그렸다.‘무서운 아이’로 알려진 신예 코코슈카와 에콘 실레를 발굴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림트는 현재 동시대에 활동한 뭉크보다는 덜 주목받고 있다.일반인의 눈을 멀게 하는,황금빛 배경과 화려한 장식성 탓이라는 지적도 있고,그림의 선정성을 문제삼기도 한다.하지만 에로티시즘은 그의 제자 에콘 실레에게 문제였지,클림트는 아니었다.실레는 관습과 규범에 대한 불경스런 조소와 도전으로 에로티시즘을 사용했지만,클림트는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를 구현했다. 신비주의적 색채를 띤 그의 상징성은 문제였다.빈 대학 강당에 그려넣으려고 주문한 그림 ‘철학’‘의학’‘법학’등은 특히 논쟁을 일으켰다.한 예로 ‘이성의 위대한 힘에 대한 찬양’을 요구한 ‘철학’에서 클림트는 고통에 허덕이는 인간을 세기말적이고 염세적으로 그렸다.19세기말∼20세기초의 지배계급인 부르주아 계층이나 이성 옹호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음은 당연하다. 클림트는 초상화를 제외하면,상류층 여인과 신화의 여인 등을 ‘팜므 파탈(요부)’로 재탄생시킨 ‘여인의 화가’로도 유명하다.그림의 중심은 여성이었고,남성은 늘 부분에 불과했다.말년에는 ‘부분의 남성’마저 빠지고 여성만 남는다.황금빛 세계를 배경으로 한 여성은 클림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욕망과 매혹의 대상이자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을까.1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
  • 중견화가 작품 100원에 판매, 노의웅 호남대교수 이색 특별전

    호당 30만원을 넘는 중견화가의 작품이 단 돈 100원에 판매되는 이색 전시회가 화제다. 광주지역 중견 서양화가 노의웅(盧義雄·사진·58·호남대 미술학과) 교수는 다음달 12일부터 18일까지 광주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노의웅 100원 특별전’을 열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추첨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100원을 받고 판매하는 전시작은 1∼30호 크기의 유화 70여점. 지역 미술계에서는 노 화백의 그림이 호당 30만원을 호가하는 것을 감안할때 이번에 나눠줄 그림은 시가 2억여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70∼80년대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특선 2차례와 입선 8차례,90년대이후 전국 규모 미술대회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축구와 예술의 만남, 내일부터 갤러리 현대서 ‘미술로 보는 월드컵전’

    축구선수와 화가의 공통점은? 축구선수는 한 골을 넣는 것이고,화가도 한 점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축구선수나 화가는 직사각형의 틀 안에서 ‘일’한다.슛을 쏘고,그림을 그리는 일 말이다.축구는 중앙공격수인 센터포워드를 가졌고,미술은 예술전위대인 아방가르드를 가졌다.프랑스 미술평론가 앙리 프랑수아 드바이유의 주장이다. 이렇게 공통점이 많은 축구와 미술이 만나 일을 냈다.한·일 월드컵을 맞아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누보 레알리즘의 아르망을 비롯한 미술계 스타와 천재들이 모여 갤러리 현대에서 ‘미술로 보는 월드컵’전을 열기로 한 것이다.19개국 70명이 참여해 축구라는 단일한 주제 설치,조각,회화까지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경험할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월드컵을 맞아 급조한 것들이 아니다.멀게는 1994년부터 2002년 최신 작품까지 연도별로 다양하다.축구가 전세계인이 애호하는,스포츠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언어’라는 점에 착안해 세계인들의 정열을 한데 묶어놓았다. 삶,사랑,전쟁,친교,스타일과 재능의 주장,기교라는 축구의 ‘창조적 행위’를 미술로 표현한 것이다. 백남준의 ‘무제 1998’은 비디오 아티스트답게 TV모니터와 원색으로 채색한 축구공 10개를 원형으로 설치한 작품이다.그가 “지구와 축구공은 인간의 머리 모양처럼 원형이다.”고 말했듯 작품의 큰 틀은 원형이다.프랑스 미술가 아르망은 루이비통 가죽으로 만든 공 15개로 만든 98년 작인 ‘사치,분노,쾌락’을 내놓았다.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물방울 작가’로 잘 알려진 김창열은 영롱한 물방울을 축구로 치환한 작품을 선보인다.중국작가 류 다홍은 2001년작 ‘혁명의 공’을 통해 캔버스를 가득 채운 축구공의 이미지에 혁명의 모습을 배치해 놓았다.축구공의 공기주입 구멍이 화면의중심에 놓여 혁명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뉴욕의 제프 쿤스는 85년작 ‘Zungul’을 출품했다.나이키 포스터를 프레임한 것.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자 위에 왕관을 쓰고 앉은 작가 자신을 그린 작품으로 축구공들이 신하들처럼 도열한 구도가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패션디자이너의 참가도 눈에 띈다.한국디자이너인 지해씨.2001년 1월 아시아인으로서는 두번째로 파리 오트퀴트르 협회 정회원이 된 그녀는 축구공의 5각형 무늬를 주제로 한 패션을 내놓았다. 2002년 파리 오트퀴트르(고급 맞춤복)봄·여름 컬렉션에 출품한 것이다.4∼16일 갤러리 현대(02)734-6111,조선일보 미술관.입장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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