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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년안에 경영정상화 확신”/한국보증보험 김창낙씨(새 사장)

    『우리 회사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내실 없는 경영 탓도 있지만 국내 경기의 침체로 보증을 해준 중소기업체들이 대거 문을 닫은데도 큰 원인이 있습니다』 한국보증보험(주)의 김창락사장(60)은 취임이후 한달동안 지방 영업국 순시와 업무 파악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회사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짜내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89년 11월 자본금 3백억원으로 설립된 한국보증보험은 급속한 외형의 성장을 위해 그동안 기업의 회사채 보증을 비롯,어음·리스보증등 손해율이 높은 금융성 보증을 무리하게 끌어 들였다가 최근 관련 회사들이 무더기로 도산하여 자본금 전액을 잠식하고 46억원의 적자까지 냈다. 『기업 환경이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 책임이 무겁습니다.그러나 전임직원들이 회사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의욕으로 가득차 있고 주주들도 연차적으로 7백31억원을 증자할 계획이어서 경영 정상화는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김사장은 완전한 경영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2∼3년안에 정상화의 토대를 반드시 구축하겠다는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임직원들도 평소보다 1시간 이른 상오 8시까지 출근,근무시간전에 미수채권 회수(구상)활동과 영업정신강화·과제연구발표를 통해 재기를 다짐하는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한다.김사장 자신도 회사발전과 인화·협동등을 담은 4개항의「나의 결의」란 문구를 손수 작성, 매일 근무시간 전에 직원들과 함께 외우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7월 이후부터는 보험사고가 적은 비금융성보증(가계성)이 금융성보증을 앞질러 균형을 되찾고 있습니다.앞으로도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손익관리를 철저히 해나갈 작정입니다』 김사장은 『전에 있던 곳(대한재보험)보다 3배는 일을 더 하는것 같다』면서도『그러나 아직도 일을 할만한 건강이 있어 모든 어려움을 즐거운 마음으로 헤쳐 나가겠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김사장은 지난 68년부터 76년까지 재무부에서 근무(부이사관)한뒤 외환은행이사(77년) 증권감독원 부원장(82년) 국민투자신탁사장(86년) 한국금융증권사장(87년) 대한재보험사장(87년) 등을 역임했다.
  • “「NAFTA피해」 당장엔 없다”/대외경제정책연

    ◎“장기적으론 준회원국 가입 필요”/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도 촉구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되더라도 우리상품의 대미수출차질등 부정적인 영향은 단기적으로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NAFTA발효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도 NAFTA의 준회원국으로 가입을 시도하고 한미간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8일 「NAFTA의 영향과 대응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이미 90년초부터 NAFTA발효에 대비,우리나라 가전·섬유업체들이 멕시코등 중남미지역의 진출을 늘려온데다 NAFTA발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품목의 관세는 1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인하될 예정이어서 즉각적인 악영향을 적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NAFTA발효이후 우리수출상품과의 경쟁이 예상되는 멕시코의 경우 이미 미국으로부터 특혜관세(GSP)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으며 반도체 VTR 전자레인지등 주요 경합품목도 가격보다 품질경쟁력이 중요한 품목이어서 NAFTA발효로인한 관세철폐가 멕시코상품의 경쟁력을 크게 높혀주지는 못할 것으로 평가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최근 우리상품의 전반적인 경쟁력약화현상과 대미수출감소추세등을 감안할 때 NAFTA충격을 최소화하기위한 적극적 통상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강화된 원산지규정을 극복할 수 있도록 조립공장위주의 단독투자보다는 대기업과 부품생산중소기업의 동반진출과 합작투자를 추진해야 하며 북미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통상외교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유럽금리인하 한국에 유리/재무부 전망

    ◎EC권 수출증대 기대/달러화채권 발행여건 개선 최근 진행되고있는 유럽통화체제의 변화는 국내기업의 달러화 채권발행과 함께 미국 및 유럽공동체(EC)에 대한 수출확대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18일 재무부가 발표한 「최근 유럽환율체제 동향과 전망」에 따르면 이번 독일의 금리인하로 미 달러화의 가치가 안정되면서 미국 금리의 추가인하 가능성이 높아지고 미달러화 채권에 대한 선호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따라 양키본드등 국내기업의 미달러화 채권발행 여건이 더욱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재무부는 또 독일 및 주요 EC국가의 금리인하로 그동안 부진을 보인 이 지역의 경제가 다소 활성화돼 수입수요가 늘면서 EC에 대한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달러화의 강세로 당분간 우리나라의 대미수출은 늘어날 것이지만 기타 통화국에 대한 수출은 불리하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한편 한국은행도 유럽금융시장의 혼란이 19일 열리는 G­7 회담에서 선진국의 공동이해로 어떠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낙관,장기적으로 원화환율의 소폭상승과 선진국의 경기회복에 힘입어 국내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 송상용 한림대교수 항주 중국과학사 국제학회 참관기

    ◎“중국과학사 국내연구 활성화 절감”/한국학자 발표논문 큰 반향 일으켜/한·중·일 과학용어 통일위한 논의도/북경선 천문기구 복원 협의… 과기교류 확대 기대 지난 8월말 항주에서 열린 중국과학기술사 국제심포지엄은 두가지점에서 뜻깊은 모임이었다.개방이후 중국에서 두번째인 이 회의에 한국은 처음으로 초청을 받았다.7월부터 내몽고·후흐트·북경·항주에서 잇따라 수학사·의학사·과학기술사 회의가 있었는데 의학사회의에는 정우열교수(원광대)등 한의학자들이 참석했고 항주에는 7명이 갔다.20여명을 보내려던 계획은 미수교국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규제해 좌절되었다. 회의 전날 한중수교(건교)가 발표되어선지 우리는 각별한 대접을 받았다.항주시장 환영연에서는 나를 시장 옆자리에 앉혔고 일본대표 다음으로 연설하게 했다.절강성 당부서기 초연에서도 고위인사들이 모두 찾아와 축배를 제의했다.닉슨이 묵었다는 서호가의 숙소에서도 최고의 특실이 배정되었다. 개막식에서는 과학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긴 연설이 이어졌는데 왕영명시장은 생산력을 들먹였고 절강대 노용상교장은 개방을 강조해 대조를 보였다.중국에서는 주요 과학사학자들을 총망라한 1백50명이 참석했으나 외국학자들은 20여명이 왔을 뿐이었다.국제적으로 알려진 학자로는 하병욱(니덤연구소장),전상운(성신여대),교본(일본),황일용(대만),스티븐슨(영국),셸라(프랑스)정도여서 실망이 컸다.한국에서도 박성래·김영식·김기협 등 중국과학사학자들이 못간 것은 유감이었다. 첫날 전체회의에서는 니덤,수내,전보종등 거물 중국과학사학자를 평가하는 논문이 발표되었고 이어 천수,물화지,생농의,기술,종합 5조로 나누어 총 90여편의 논문발표가 진행되었다.한국에서는 남문현교수(건국대)의 「세종 자격루」와 장회익교수(서울대)의 「중국전통사상의 시공개념」이 큰 반향을 일으켜 여러 잡지의 쟁탈전이 벌어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회의진행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고 중국학자들의 논문수준도 대체로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많은 귀중한 자료와 정보를 얻은 것이 수확이었다.회의도중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연구소 진미동소장 일행이 우리를 예방,두나라의 협력을 다짐했다.또한 중국측의 요청으로 한중일 과학기술용어 통일을 위한 협의도 가졌다.그밖에도 우리는 회의 전후해서 북경 고관상대를 찾아 천문기구 복원을 협의했고 소주에 있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석각천문도 탁본을 사왔다. 60년대에 시작된 일곱번째 중국과학사 국제회의는 내년 8월 일본 교토에서 있을 예정이다.한국이 이 회의를 유치하는 것은 아직 이르지만 우리는 이와 별도로 제5회 한일과학사세미나를 확장한 아시아과학사회의를 후년에 서울서 주최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이번 회의를 통해 절감한 것은 한국의 중국과학사연구를 크게 활성화 해야겠다는 것이다.그것은 한국과학사연구를 자극하고 돕는 길이기도 하다.
  • 황화 전 중국외무/지난 13일 한국에/삼성서 초청

    황화 전 중국외교부장이 삼성물산의 초청으로 지난 13일 내한,국내 정·재계인사들과 상호 관심사에 대해 협의를 하고 있다. 국제적인 민간교류 및 미수교국의 외교문제를 전담하는 중국 국제우호련락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황 전 외교부장은 오는 20일까지 우리나라에 머문다.
  • 억울한 옥살이 백40일/2백10만원 배상 판결/부산지법

    【부산=김정한기자】 부산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영석부장판사)는 15일 사기미수등 혐의로 구속돼 1백40일동안 구금되어 있다 무죄가 확정돼 풀려난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구명제일교회 목사 조정용씨(51)가 국가를 상대로 낸 형사보상금 청구결정에서 『국가는 형사보상법에 따라 청구인에게 하루 구금에 1만5천원씩 따져 모두 2백1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 대만의 한인,“양국관계 재정립을”(한국과 단교이후 현지표정:하)

    ◎유학생·교민 등 3천여명 불안한 나날/“서울의 화교와 상응하는 대우 보장을” 한국과 대만의 전격적인 단교조치에 대만사람들 못지않게 충격과 당혹감을 느낀측은 교민과 상사직원,유학생등 대만에 거주하는 한인들이었다. 청년들의 구둣발에 짓이겨지고 불태워지는 태극기의 모습을 TV화면에서 목격한 한인들은 불과 넉달전 미LA 흑인폭동때 한인들이 당한 피해를 떠올리며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였다.교포상인들은 서둘러 한글간판을 가리거나 가게셔터를 내렸고 길거리로 나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한중수교와 한대단교가 공식발효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인들의 폭력에 대한 공포감은 차츰 해소돼가고 있다.요즘 TV에서는 다시 중국어로 개사된 한국가수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반한시위장면 대신 미대통상협상에 때맞춰 벌어지고있는 이른바 「슈퍼301조」에 대한 반미시위장면이 방영되고있다.그러면서 한인들의 입에서는 단교후 교민보호책에 대해 언급이 없었던 본국정부에 대한 섭섭함과 앞으로 겪게될 불이익조치에 관한 걱정이 표출되기 시작했다.대만에는 현재 유학생 7백50명,상사원 5백여명,교민 1천7백명등 모두 3천여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른 걱정거리들을 안고있지만 한국정부의 화교대우에 상응하는 동등한 배려가 자신들에게 취해져야 한다는 점에는 인식을 같이 하고있다. 교민들은 가장 큰 고민거리로 영주권 확보문제를 지적한다.대만은 지난 4월 통과된 「취업복무법」에 따라 「공작증」(취업증명서)을 갖춰야만 「외교거류증」을 내주고 있다.말하자면 직업을 잃게되면 아무리 교민으로 오래 대만에 머물러왔더라도 더이상 체류를 불허하고 있다.한국교민회의 김사옥회장은 이와 관련,『교민들의 당면최대현안인 공작증문제는 그동안 교민회와 대사관이 대만정부와 협의,진전을 보아오다가 이번 단교로 백지화됐다』며 영주권 확보문제의 심각성을 호소한다. 대북한교학교 이문희교장은 서울의 화교학교가 중국으로 넘어간 사실때문에 한인학교에 대한 대만인들의 시선이 곱지않다고 알려주고 『정치·외교적 이유로 단교가 됐지만 교육활동은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그는 단교이전에도 학교에 맞붙어있는 아파트에서 돌멩이가 날아와 학생이 부상당했던 사실을 털어놓으며 개학후가 걱정된다고 밝힌다.유학생들도 장학금 감축등 재정적 불이익보다 개학후 교수나 동료대만학생들이 어떤 감정적 반응을 보일지에 크게 신경을 쓰고있다. 특히 상사원들은 단교의 후유증을 피부로 느끼고있다.이들은 그동안 자동차의 경우 미수교 구미국들엔 완전시장개방을 해주고 한국은 쿼터제로 묶어 불이익을 준데서 알수있듯 무역·건설·입찰 등에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했지만 특혜를 주어왔다는 대만정부의 주장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앞으로 대만측의 대응강도를 짐작케 해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역진흥공사 대북무역관의 한 관계자는 단교후 대만인들의 무역관방문이 뚝 끊겼으며 수입업자들도 대만정부의 관세율 조정여부를 살피느라 일체의 상담이 중단된 상태라고 밝힌다.그는 그러나 교류가 상호이익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과 대만의 국민성이 실리위주인 점을 감안할때 이같은 상태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마디로 단교후 외교공백기에 처한 대만내 한인들의 하루하루는 아직 불안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고 있다.그리고 공백기가 길수록 후유증 또한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따라서 대만의 냉정한 현실인정,한국의 관계재정립 작업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 “부국 대만” 과시… 외교고립 벗기(한국과 단교이후 현지표정:중)

    ◎달러 앞세워 미수교국가에 적극 접근/대본토교류 확대 등 「경제외교」 가속화 지난 79년 1월 미국이 「중공」과 수교하고 대만과의 결별을 선언했을때 대만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한때 동요가 일었다. 거리에는 「옹호정부,자립자강」구호가 빌딩마다 내걸리고 반미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주식시장은 흔들렸으며 주택건설예약 취소가 잇따랐다.정부에서도 미중수교로 위협을 느낀 소련이 세계도처에서 분쟁을 야기,결국 미국의 안전을 크게 해칠 것이라는 경고정도 이외에는 「배신자」에 대한 별다른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3년후 한중수교와 한대단교를 맞이하는 대만의 자세는 엄청나게 달랐다.거리는 침울한 분위기에 젖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정부는 즉각 대한보복에 착수하는 기민한 대응을 보였다.한국과의 단교가 대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의 상황변화는 아니며 오히려 한국이 경제적으로 한번 당해보라는 배짱같은 것이 배어있다. 철저한 외교고립속에서 대만의 이같은 자신감과 의연함은 어디서 나오는가.한마디로 경제력이다. 대만은 근년들어 소비자물가상승률 3∼4%선을 유지하며 연7%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지속하고 있다.1인당 국민소득도 91년 8천8백13달러를 기록한데 이어 금년중 1만달러를 돌파한다는 계획을 잡고있다.특히 외환보유고는 지난해말 현재 8백31억달러로 세계 최대무역흑자국 일본을 제치고 수위자리를 차지했다.게다가 올 상반기에만 52억6천만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외환보유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태다. 이같이 든든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한 급속성장세의 경제력은 대만이 본토피흡수 위협과 외교단절의 시련기를 헤쳐나갈수 있는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다.투자및 교역을 통해 본토로 하여금 대만체제에 대한 매력을 유발,강제흡수통일욕구를 진정시키고 미수교국들에 대해서도 축적한 부를 과시,스스로 접근해오도록 만듦으로써 고립탈피를 꾀하고 있다. 실제로 대만의 부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만­본토간 무역교류는 홍콩을 통한 간접방식이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88년 27억달러에 불과했던 교역액이 91년 58억달러로 늘었으며 올 상반기에도 전년대비 43%의 증가세를 보였다. 대만인들은 이같은 양안간 경제교류확대가 곧 자신들의 발전경험을 무기로 대륙의 정치·경제체제를 대만체제쪽으로 최대한 유도한 상태에서 통일협상에 임한다는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담강대 미주연구소장인 이본경교수는 이를 『대만의 경제기적이 이룬 성과』라고 평가하고 『정치발전과 경제발전만이 오늘의 대만국민에게 미래를 제시할수 있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냉전구도 해소로 실리위주의 외교경향이 보다 보편화되면서 대만의 경제력은 외교무대에서도 큰 위력을 떨치고 있다.달러에 목마른 나라들과 돈을 들여서라도 고립을 탈피하고자 하는 대만의 뜻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과 단교하면서 대만과 국교를 정상화한 니제르,라트비아나 그이전 중앙아프리카,그레나다 등과의 외교교섭에서 대만의 「경제력」이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은 외교가의 공개된 비밀이다. 이번의 한대단교로 일부 우리 건설업체들이 타격을 입게된 대만국가건설 6개년계획 참여를 둘러싸고 선진·개발도상국들이 벌이고 있는 수주전이나 앞으로 있을 차세대전투기추가구매 국제입찰에 군사강국들이 펼치고 있는 신경전은 대만의 「국가」존립과 돈의 함수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대만은 수차에 걸친 시련기를 겪으면서 돈의 위력을 경험적으로 깨쳐왔다.따라서 지금까지 견지해온 철저한 실리위주,경제위주의 대외정책과 대본토 경제교류 확대정책은 한대단교를 계기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 역경 딛고 민주화·개혁기수 40년

    ◎「거산」의 정치역정… 집권당총재가 되기까지/25세에 국회입문… 9선에 야총재 4번 역임/한때 연금 등 핍박… “구국일념” 3당통합 결행/대학땐 학생운동 몰두… 「6·25」 나자 의용대 지원도 「정치 거산」김영삼총재는 이제 명실상부한 집권당의 제1인자이다.신장 1백68㎝,체중 66㎏,아담한 체구,미소띤 동안의 그는 어떤 역정을 거쳐 이 자리에 섰는가.65년동안 살아오면서 40년간을 민주화투쟁과 정치개혁의 일선에서 기수역할을 해온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9선의원에 야당총재를 4차례나 역임하고 다시 집권당총재로 선출된 그의 진기한 기록은 앞으로 찾기어려울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로 꼽힌다.그의 연륜과 불굴의 정치역정을 조감해보면 그가 왜 오늘 이자리에 섰으며 또한 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유복한 어린시절 ▷출생◁ 김총재는 1927년12월20일(음력)경남 거제도동쪽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 김홍조씨(82·마산거주)는 당시 어장주로 거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고 모친 박부연씨(60년작고)는 대가집며느리답게 손도 컸고 자식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김령김씨 충정공파 28대손인 김총재는 여동생만 다섯을 둔 외아들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러한 성장과정은 김총재가 돈문제에 초연한 점이라든가 숱한 정치역경에 부닥쳐서도 대담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심성의 바탕이 된것으로 보인다.어머니 박씨는 60년 고정간첩에 의해 살해돼 김총재식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수영·축구에 소질 ▷성장◁ 아호가 거산인 김총재는 거제 장목소학교를 거쳐 통영중학교에 진학하고 45년해방과 함께 부산에 있던 경남중학교(6년제)3학년에 편입했다.43년4월에 입학한 통영중학시절 김총재는 민족의식이 강하고 수영과 씨름을 잘하는 학생으로 동창생들에게 기억되고있다.김총재가 당시 한국인학생들을 차별하는 일본인교장을 골탕먹여 무기정학처분을 받은 일은 아직도 주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44년 전근하는 교장의 이삿짐을 나르면서 곡물자루에 구멍을 내고 잡동사니를 채워넣은 사건으로 영삼학생은 통영경찰서 고등계에까지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이다.해방이 되던해 11월 영삼군은 경남중으로 전학했다.학업성적은 중상정도였으며 문학과 역사과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정치학수업 열심 ▷대학시절◁ 김총재는 47년9월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입학했다.김총재가 철학과를 지망하게 된것은 당시 모교인 경남중 안용백교장의 영향이 컸던것으로 알려져있다.경성제대 철학과 출신인 안교장이 학생들에게 윤리교육을 통해 많은 교훈을 주었으며 김총재의 학과선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했다.철학과 동기생은 김총재와 이한조씨(서강대 명예교수)등 모두 7명.그들은 김총재가 대학시절 철학과수업보다는 웅변부에 가입하는등 학생활동에 열성적이었다고 기억한다.당시 정치학과에 다녔던 이규원씨(현대문예사대표)는 영삼학생이 정치학과 수업에 열심히 나왔고 웅변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정치학과에 다니던 손도심씨(작고·전서울신문사장)와 「순학회」라는 우익단체를 만들어 낭산 김준연,창랑 장택상씨등을 초빙해 강연회도 갖는 등 학생운동에도 열심이었다.김총재는 51년5월 서울대를 졸업했는데 졸업논문제목은 「칸트에 관한 소고」였다. ▷군대시절◁ 김총재는 전쟁이 한창이던 50년10월 「대한학도의용대」에 들어감으로써 군생활을 시작했다.「군번은 E135」.그러나 전투병으로 전쟁에 참가한것이 아니라 후방 정훈교육요원으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대북방송담당으로 일했다.김총재는 이시절을 매일 1시간동안 직접 원고를 써서 군가를 섞어가며 대북방송을 했는데 날마다 다른말을 하려니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대북방송을 맡은지 8개월쯤 지난후 김총재는 당시 장택상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에 발탁되면서 군생활도 마감했다.김총재는 80년봄과 87년 대선에서 군복무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정적들의 공격을 받았으나 김총재의 복무사실에 대해서는 당시 김상구씨(유도회총본부회장)등 학도의용대관계자들이 확인해주고 있다. ○거제서 최연소 당선 ▷정치입문◁ 창랑 장택상과의 만남은 일찌감치 정치에의 꿈을 키워오던 김총재에게 현실정치입문의 계기가 됐다.서울대2학년때 정부수립기념 웅변대회에서창랑과 인연을 맺은 김총재는 50년 5월 경북 칠곡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창랑의 지원유세를 하면서 현실정치를 몸에 익혔다.이후 51년 학도의용대 복무중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수업을 받았다.장택상씨가 총리가 되면서 인사담당비서관도 지냈다.53년 창랑이 총리직을 사임하자 김총재는 다음해 5월 실시될 3대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거제로 돌아왔다.무소속출마를 준비중이던 김영삼은 선거 열흘전 유력한 무소속후보를 찾던 자유당의 눈에 띄어 정당공천을 받게 됐다. 첫 선거결과 김영삼후보는 총2만7백70표를 얻어 차점자인 1만4천1백10표의 서순영씨(작고)를 누르고 만25년6개월의 나이로 금배지를 달았다. ○사사오입에 반대 ▷야당시절◁ 사사오입개헌에 반대해 자유당을 탈당한 김영삼청년의원은 당시 야당인 민국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가입함으로써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30여년 야당인이 된다.55년9월 민주당이 창당되자 김영삼은 중앙당청년부장겸 경남도당부위원장을 맡았다.당내에서는 선이 굵은 조병옥박사의 계보인 구파로 분류됐다.김총재는 이때 56년·60년 2차례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조박사를 쫓아 다니며 승부사의 정치감각을 익혔다고 한다.3대의원시절 김영삼의원은 대구매일피습사건·김창용특무대장암살사건 등의 진상규명에 뛰어난 활약을 했다.58년 4대총선에서 민주당후보였던 김영삼은 부산서갑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당시 선거는 자유당말기로 선거부정의 공방이 치열했으며 김영삼후보는 선거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진행도중 4·19를 맞게된다. 4·19이후 5대 7·29총선에서 부산서갑에 다시 출마해 차점자를 무려 3배이상 표차로 제치고 원내에 복귀했다. 이후 김총재는 정치규제에 묶였던 11,12대를 제외하고 내리 9선에 달하는 헌정사상 최고다선을 기록했다. 김영삼의원의 활약은 5·16이후 구성된 6대국회부터 두드러졌다.김영삼의원은 제1야당의 대변인으로서 한일협정서명,공화당창당과 관련한 4대의혹사건,월남파병문제등 굵직굵직한 정치쟁점에 능숙히 대처함으로써 위상이 높아졌다. ○대선 낙선,좌절도 74년과 79년 신민당총재에 두차례 선출됐고 87년 통일민주당 총재와 13대 대통령후보에 이르기까지 줄곧 야당의 정상을 지켜온 그였지만 이기간중 두차례 2년간의 가택연금,23일간의 단식,총재직정지가처분및 의원직제명,정치활동규제등 핍박은 그를 불굴의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87년 대통령선거에서 야권대통령후보 단일화 실패로 대통령선거에 낙선하고 이후 88년 4월총선에서는 제2야당으로 전락하는 좌절의 시기도 겪었다. ▷3당통합◁ 김총재는 90년 1월 4당구조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으로 당시 노태우민정당총재·김종필공화당총재와 3당통합을 결행,오늘날에 이르렀다. 89년 당시 민주당총재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해 미수교국과의 초당외교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90년 3당합당후 민자당대표로 소련을 다시찾아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하는등 정당외교사의 새지평을 열었다. 민자당출범후 2년반여동안 계파간 갈등속에서도 꾸준히 여권2인자의 자리를 지켜 드디어 대통령후보경선을 치렀고 총재에 선출됐다. ▷가족관계·사생활◁ 김총재는 51년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명순여사와 결혼,슬하에 혜영(39·연대 도서관학과졸)·혜경(37·이대 음대졸)·은철(36·한대 열공학과졸)·현철(33·고대 사학과졸)·혜숙씨(31·이대 음대대학원졸)등 2남3녀를 두고 있다. 25년째 상도동 인근 산에 올라 4㎞씩 조깅으로 건강을 다지고 있으며 술은 마주앙 1∼2잔 정도며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과거 양주2병에 하루 서너갑씩 담배를 피우기도 했으나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하자 과감히 끊어버렸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현재 충현교회 장로이다. 좌우명은 「대도무문」으로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의 붓글씨를 써넣어 구운 도자기를 선물하기도 한다.
  • 25년형 복역중인 19회 강도강간범/「화성」 용의자 수사

    【화성=김학준기자】 경기도 화성경찰서는 28일 강도강간죄로 원주교도소에 복역중인 정모씨(26·무직·전남 강진군 군동면)가 화성사건 9번째 피해자 김미정양(14)피살사건의 용의자라는 제보를 받고 정씨의 혈액·모발등을 채취,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감식을 의뢰했다. 경찰이 정씨를 이 사건의 용의자로 보고있는 것은 정씨가 지난 85년 중반 화성사건현장 부근인 화성군 태안읍 반정리 논둑에서 귀가중이던 이모씨(29·여)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적이 있고 김양이 피살됐던 지난 90년 11월15일 이후 3∼4일간 자신이 근무하던 태안읍 기산리 H산업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H산업 김모씨의 제보에 따른 것이다. 정씨는 지난 4월21일 수원시 권선구 인계동 임모씨(24)집에 침입,현금 2만원을 빼앗고 임신중이던 임씨를 성폭행하는등 수원시내 일대에서 19차례의 강도강간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6월 구속기소돼 징역 25년이 선고됐었다.
  • 한·중문화교류 “봇물시대” 개막

    ◎수교계기로 분야별 상호협력 전망 점검/학술/발해유적발굴·자료교환 기대/출판/저작권 인정문제 새 국면 예상/방송/PD 등 교류… 협력논의 활발/미술/중국화 등 대량유입바람 일듯 한·중 수교를 계기로 양국간의 문화교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이미 상당한 수준의 교류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져 오긴 했으나 물밑교류로는 불가능했던 상호협력의 장이 열릴것으로 기대된다.특히 방송·출판·학술·미술분야등에서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예상된다°한·중문화교류의 새 양상을 전망해보고 바람직한 우리의 교류자세를 짚어본다. ▷학술◁ 간접·다자적인 교류에 머물렀던 한·중학술교류는 이번 양국수교로 공식적이고 쌍무적·직접적인 교류의 길이 열림에 따라 본격화될 전망이다. 고조선·고구려·발해에 이르는 고대사연구의 보고인 만주지역에 대한 유적발굴과 자료접근은 미수교상태에서 국내학자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했다.때문에 이번 수교로 양국 학자들의 공동연구가 활발해져 발해사등 고대사에 대한 양국 학자들의 견해차를 좁혀 양국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고대사정립 새 전기로 만주지역의 발해유적발굴과 관련,중국당국은 그동안 상당히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지난 89년 서울신문사가 고고학자들과 공동으로 이 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을 시도했을 때에도 유적지 답사는 물론 사진촬영까지 가로 막은 바 있다. 이밖에도 논란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백두산정계비,간도문제,그리고 독립운동사부분등도 홍콩·일본등을 통한 간접자료가 아닌 1차자료의 공개로 사실관계가 보다 명확하게 규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상해임시정부의 활동상과 관련,민족진영연구가 주류를 이루는 국내학계에 조선의용군과 독립동맹 등 공산주의운동계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져 학문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석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양국간의 국교수립으로 공식적인 학술교류가 가능해진 이상 빠른 시일안에 중국사회과학원과 공식교류의 길을 터 양국간의 학술정보교환은 물론 자료공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김달중교수(동서문제연구원장)는 『그동안 국내 학계의 중국연구는 사회주의국가연구라는 맥락에서 다방면에 걸쳐 진행돼 왔다』면서 『양국수교로 전 분야에 걸친 공동연구가 활기를 띠겠지만 무엇보다도 양국간의 최우선 관심사인 경제협력분야에 대한 연구가 가장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출판◁ 한·중 수교룰 계기로 양국 출판물의 저작권 인정 문제가 새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저작권에 관한 국제조약인 「베른조약」에 가입을 신청,회원자격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중국은 10월 우리 정부와 저작권에 관한 논의를 가질 예정이다. ○공동·분업식 출판 가능 출판분야에 관한한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는 중국이 저작권 논의에서 우위에 설 것은 분명하다.따라서 중국측은 우리나라가 가입하고 있는 「세계저작권조약」(UCC)보다 저작권의 보호에서 앞서는 「베른조약」의 규정들을 끌어들이려 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 이 경우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난 중국고전들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있는 중국의 현대문학작품들에 많은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베른조약」의 경우 지은이가 죽은 뒤 50년까지 저작권이 인정되기 때문. 최근 국내에서 번역,출판돼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현대소설 「시인의 죽음」(다이 호우잉 지음),「사람아 아 사람아」(〃),「하늘의 발자국소리」(〃),「황화」(바오미 지음) 등은 나중에 협상대상에 오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쇄기술이 중국보다 앞서기 때문에 함께 분업식으로 출판에 참여하는 공동출판의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경제적인 균형을 맞출 수 있어 한·중출판교류가 우리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출판인들은 말한다. ▷방송◁ 한중수교로 국내방송사가 그동안 추진해오던 한중방송교류 협력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KBS·MBC·SbS등 국내 방송3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교에 대비,중국 방송제도와 방송현황 검토작업을 벌여와 실무차원의 협력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인적·물적교류 가속화 KBS의 경우 지난 2월 정량 대외협력시장이 북경과 연변을 방문,북경 CCTV(중앙TV)와 연변한인방송사장을 만나 수교후 방송교류에 원칙적으로 합의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따라 KBS측은 수교에 대비,지난3월 이미 공보처에 교류허가신청을 내놓은 상태로 수교를 계기로 지국설치·PD 기자및 프로그램교류등 본격적인 실무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MBC측도 최근 최창봉사장이 북경CCTV와 연변 방송사등을 시찰,양국간 방송협력을 논의하고 돌아왔으며 SBS측은 로컬방송인 점을 감안,지역방송인 북경TV측을 표재순전무가 지난6월 방문,협력에 관한 원칙적 합의를 끝내 이번 수교를 계기로 본격적인 교류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수교에 따른 방송교류의 본격적인 추진으로 국내 방송사들의 드라마제작폭도 넓어질 전망이다. KBS의 경우 19세말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양씨일가의 삶을 그린 드라마 「정든님」이 현재 원래 주인공인 연변배우 림홍화(양홍련역)의 방한이 막혀 파행적으로 진행중인데 배우교류가 가속화되면 원래의 캐스팅대로 림홍화의 출연이 가능해지고 스토리전개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제작진들은기대하고 있다. ▷미술◁ 동양화의 원류로 일컬어지는 중국본토미술이 국내에 소개된지는 햇수로 이미 5년을 넘어서고있다. 지난88년부터 공산권 예술의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중국화전시회는 연평균 7∼8회를 넘어 총 30∼40회 열린바 있다. 이에 비하면 국내작가의 중국진출은 다소 미진해 최근 3∼4년사이에 10여건정도에 이른다. ○미술품수입 절차 완화 다행히 국내화단과 미술시장의 여건상 중국화의 유입으로 인한 혼란과 영향력은 크지 않았으나 공식수교가 이뤄진 이제부터는 다양한 중국미술품의 유입에 긴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우리 고고학연구에 새로운 고증자료가 될 문화재급의 미술품유입이 활발해질 전망이며 수입절차의 간소화에 따라 같은 동양권인 우리생활전반에 깊이 침투할수있는 다채로운 수공예품이나 정상급 서화의 대거 유입이 예상되기때문이다. 반면 중국에는 아직 미술시장이 형성돼있지않아 중국미술품의 유입과 같은 차원에서 경제적 목적이 우선된 우리미술의 진출은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모국 방문길 열렸다”부푼 기대/한­중수교 “환영”…동포들의 표정

    ◎“조선족 긍지”… 공관에 축하전화 쇄도/“투자활기로 취업문 넓어졌다” 반겨/동포들 생활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 제거된셈 한중수교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내 조선족 동포사회도 크게 축하하고 환영하는 분위기에 휩싸이고 있다. 기자가 동포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하면 상대편에서는 우선 「축하한다」는 인사부터 건넸다.24일 새로 간판을 내건 주북경한국대사관 직원들에게도 하루만에 조선족 동포들이 전국 각지에서 보낸 축하 팩시밀리가 쌓이기 시작했다. 중국조선족총회의 최동석비서장은 24일부터 신문·방송을 통해 한중수교소식이 전해지자 『우리 동포들은 모두가 환영하면서,수교문제로 얘기꽃을 피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문제로 조선족들이 들뜨거나 흥분하는 기색은 거의 없다.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돼온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이나 한국업체간부들은 한중수교로 한국인들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지고 투자업체가 늘어남에 따라 조선족 동포들의 취업이나 돈벌이 기회가 더욱 넓어져 이들의 기대심리를자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하지만 이곳 동포들은 우선 피부에 와 닿는 변화로 까다로운 한국방문 절차가 대폭 완화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한중교류가 빈번해지면서 동포들이 서울에서 하루 날품팔이를 하면 중국 1개월 월급을 받게돼 중국에서 일할 맛을 잃게하는 부작용을 빚어왔다고 말했다.그래서 단지 한국어를 한다는 단 한가지무기로 서울에서 「떼돈」을 벌어본 동포들은 양국간의 보다 자유로운 왕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경의 중앙인민방송에 근무하는 박모아나운서는 『한중수교로 인해 신분이나 어떤 외형적 변화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분상 변화가 없다는 것은 약 2백만으로 추산되는 중국내 조선족중 1백92만명이 중국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들은 한중수교가 됐다해서 국적을 한국으로 바꿀 사람이 거의 없을테고 수만명으로 추산되는 북한국적소지자들도 국적을 바꿀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다만 자기 조상들의 고향이 남한일 경우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이 아나운서는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특수여건 때문에 한중수교가 되어 중국이 남북한과 동시 수교상태가 됐다해도 일본이나 구소련에서처럼 친남 친북으로 패를 갈라 싸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정부에서도 이같은 편싸움 조직은 허용하지 않을뿐더러 중국국적을 가진 대부분의 동포들은 기본적으로 남북한을 제3자적인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최근 조선족동포들이 서울뿐 아니라 도쿄나 로스앤젤레스등 세계 도처에 나가기는 하지만 돈을좀 벌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내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나 각급 기관단체들이 이제보다 떳떳하고 자유스럽게 이곳 동포들과 접촉할수 있게된 것은 큰 변화중 하나로 꼽을수 있을것 같다.지금까지는 북한측을 의식하고,또 북한을 의식하는 중국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했기때문에 동포들을 접촉하고 지원하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껴야 했다.한국대사관의 한 간부는『연길이나 하얼빈등은 동포 밀집거주 지역이지만 우리가 미수교국이었을 때는 공식접촉하기도 난처했고,조선족 단체들에 간단한 운동기구나 약간의 지원금을 전달하는것마저 신중을 기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형편은 동포 자신들도 마찬가지였다.중국이 북한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괜스레 한국측과 접촉하다가 당국자들로부터 눈총과 감시의 대상이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한중수교는 이같은 장벽을 깨끗이 허물었다고 보아 틀림없을 것 같다.이제 우리 동포들이 운영하는 단체나 기관에 물질적 지원을 한다거나 간단한 홍보물 하나를 전달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뤄질수 있게된 것이다. 북경시내에서 만난 일반 중국시민들중에는 한중수교를 환영하면서 『북한측은 자꾸 우리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지만 한국은 경제가 발달해 중국발전에 도움이 될수 있다』는등 노골적으로 북한을 질타하는 사람을 여러명 만날수 있었다.하지만 조선족 동포들은 차라리 북한쪽에 연민의 정을 표현하면서 『같은 민족인데 그들도 빨리 잘되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주로 했다.남북한에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크게 돋보였다고 할수 있을것 같다.
  • 외국인 토지취득 규제 완화/내무부 방침/단교뒤에도 피해없게 법개정

    ◎대만과의 민간교류 확대 추진 내무부는 24일 한·중간의 정식국교수립으로 대만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됨에 따라 화교들의 경제적인 지위와 관련이 있는 외국인 토지특별법을 전면 재검토키로 했다. 이와함께 각 자치단체들이 일본에 이어 대만과 많은 교류를 하고있는 점을 감안해 국교단절이 되더라도 민간차원에서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대만의 한국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점을 들어 공무원들의 연수및 교류를 중단하라고 각 시도에 지시했다. 내무부는 이에따라 우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토지를 취득할 경우 내무부장관의 허가를 맡도록 되어있는 외국인토지법상의 외국인들이 지금까지는 모두 수교국가의 외국인으로 별 문제가 없었으나 대만과의 단교로 화교들이 미수교국민이 되어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이를 보완,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주기로 했다. 내무부는 이를위해 외무부의 협조를 얻어 국제관례를 면밀히 검토,개정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내무부는 이와함께 자치단체의대 대만교류를 단기적으로는 일단 자제키로 했으나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달리 민간차원의 교류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토록 했다.
  • 한반도 평화통일의 초석을 놓다/한·중수교공동성명 함축

    ◎“남북대화 성의있게” 북에 압력 가중/한국 전방위외교망 구축… 위상 강화 24일 북경에서 서명된 6개항의 한중수교공동성명은 중국이 북한핵문제의 해결,나아가 한반도 통일을 위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어 크게 주목된다. 중국은 지금까지 누차에 걸쳐 한반도의 남북한 당사자간 협의를 거친 통일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혀왔다.한마디로 미국과 일본등 한반도 통일정책에 관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서방 강국들의 북한에 대한 압력 행사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동시에 북한의 통일정책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의 5항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는 대목은 「한민족에 의해」라는 문구를 사용,남북한 당사자간의 협의를 통한 통일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와는 달리 「조기에」라는 표현을 씀으로써북한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여러 채널의 남북대화에 보다 성의있는 자세를 보일 것을 전보다 강도높게 촉구하겠다는 의사를 우회적으로 표시했다. 중국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우선 자신이 아시아권의 맹주로 위치를 굳히기 위해서는 절대로 한국을 제쳐놓을 수 없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분석된다. 6·25당시 교전상대국이었던 한국의 외무장관을 40여년만에 처음으로 공식초청한 중국은 올가을에는 아키히토(명인)일왕을 중국으로 초청한다. 또 노태우대통령과 김일성·김정일부자등 남북한의 국가원수를 공식 초청할 계획이다. 물론 노대통령의 초청은 새롭게 국교를 수립한 상대국 정상에 대한 예우차원에서,그리고 김부자의 초청은 옛 동지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갖지 말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또 핵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용 무기와 인권등 북한에 관한 미국의 태도가 너무 완강해 자신들이 전혀 손을 쓸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북한의 예상되는 불만을 무시하고 한국과 수교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중국은 한·중 수교가 오히려 북한이 국제적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 것같다.그리고 수교교섭 과정에서 한국측에 한·중수교로 인해 북한이 외톨이신세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뜻을 전달했고 그 결과 23일 열린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이상옥장관으로부터 『한국은 양국간 수교로 인해 북한이 고립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공식 코멘트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사실을 종합할 때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을 위해 북한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달라진 정책을 전개할 것으로 전망되며,그 정책은 지금까지의 「무조건적 지지」에서 「선별적 지지」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은 중국이 북한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사를 간접 표시한 것 이외에 한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한국이 제3국과 수교하는 자리에서 대만과 단교를 공식선언했다는데 특색이 있다. 한국은 중국과 국교를 수립,미·일·러시아를 포함해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모든 주변 열강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특히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일한 미수교국이었던 중국과 수교함으로써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외교활동을 펄수 있게 된 것이다. □한·중수교 공동성명/전문 1.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 국민의 이익과 염원에 부응하여 19 92년 8월24일자로 상호 승인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결정하였다. 2.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유엔헌장의 원칙들과 주권 및 영토보전의 상호존중,상호 불가침,상호 내정불간섭,평등과 호혜 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선린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에 합의한다. 3.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하며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4.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간의 수교가 한반도 정세의 완화와 안정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5.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 6.대한민국 정부와 인민공화국 정부는 19 61년의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따라 각자의 수도에 상대방의 대사관 개설과 공무수행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빠른 시일내에 대사를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한다.
  • 교과서부터 바로 잡아야한다(사설)

    역사적인 한중수교가 이뤄졌다.금세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던 일이 드디어 이뤄졌다.단순한 감회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일이 이뤄진 것이다.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는 하지만,마주보고 총을 겨눈 원한의 상대가,당해자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흔연한 친구관계를 맺게 된 것은 놀라운 변화이고 발전이다.한중수교는 그처럼 큰 수확이다. 어쨌든 두나라는 장한 일을 해냈다.어느 모로 보나 조그만 나라인 한국이 만리장성을 넘는 장정으로 거둔 이 성과를 우리는 소중히 여긴다.따라서 이를 훌륭히 결실시키기 위해 두나라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그리고 그 과제중의 하나로 우선순위를 앞세워야 할일은,이세국민들을 가르칠 교과서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다.그것도 직접 원한관계를 맺고 있었던,「전쟁의 갈등」을 지닌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였다.그런 관계의 나라들이 할수 있는 최상급의 적대요소를각급 교과서에 명시해온 나라인 것이다.이같은 내용이 하루빨리 바로잡혀야 한다. 교과서의 왜곡 정도는 양국이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우리 국민학교의 사회과 교과서에서는 세계주요국가의 국기를 기술하면서 「중화민국」의 청천백일기는 싣고,중국의「오성기」는 표시하지 않아왔다.이런 것이 당장 경과조치를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그 밖에도 「미수교국」과 「수교국」간에 개입되는 각종 변화의 사안들이 현실적 수용을 요구하며 우리앞에 다가와 있다.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중국측에도 그런 왜곡부분은 많이 있다.특히 친북한관계국가의 체제가 원인이 된 역사적 사실의 왜곡부분이 너무 많이 있다.그런 부분이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수정보완 되어야 한다.사회주의체제를 아직도 국가적 명분으로 수용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기술이나 묘사가 실제 이상으로 편향 왜곡되어 왔다.6·25전쟁에 대한 표현의 경우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왜곡기술을 해온 것이,북한을 한반도의 유일 우방으로삼아온 중국의 입장이었다.이런 터무니 없는 모든 기술까지가 바로잡히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날의 교과서로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 오늘의 청소년 학생들이야말로 수교를 이룩한 두나라가 실제의 우호국으로 살아가는 시대의 실제적인 주인공들이다.그들의 가소성높은 두뇌속에 적대관계가 청산되지 않은채 남아있게 하거나 잘못된 지식을 넣어놓는다는 것은 두나라를 함께 불행케하는 일이다. 또한 세계가 탈이념의 시대에 공존하면서 우호를 창출할 수 있게 되는 일은 미래의 인류가 염원하는 이상이다.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인 중국이 아직도 이념과 체제의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한국과 수교를 하게 된 관계야말로 미래의 인류가 원하는 평화공존의 표본일 수있다.그 실현의 관건이 될 세대에 대한 교육이 오늘 이시점의 교육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95년이후 개정될 교과서는 물론 그 이전에라도 경과조치의 보완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한·중 과학기술협력 본격화 기대/정식수교 계기로 교류현황 알아보면

    ◎연구기관간 협력각서 총6건 체결/내년 우주 등 8과제 공동연구 착수/과기협정 체결되면 가속기·동의학 등 급속발전 예상 한중수교에 따라 한중 양국의 과학기술협력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한중 과학기술교류는 서로간의 절실한 필요성 인식에도 불구하고 미수교국간 교류라는 한계에 따라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왔다. 하지만 24일 양국의 국교 수립으로 과학기술협력 협정체결,정부관계관 파견등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해 짐에 따라 양국의 협력 관계는 아연 활기를 띠게 될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한중간의 민간 과학기술협력 현황을 보면 국제공동연구로 인하대학과 중국 해양연구소가 중국해 해양자원 개발연구를 지난 90년부터 수행해 왔고 포항공대가 중국 고능물리연구소로부터 방사광 가속기 건설관련 장비및 기술(2백만달러상당)을 도입했으며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중국원자력 총공사에 제공한 대아만 원전비파괴검사 용역(27만 6천달러),진산원전 부지해석기술자문(34만2천달러)을 수행한 정도를 들수있다.그밖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정책기획본부와 중국과학원 정책관리 연구소간의 협력각서체결등 연구기관간 협력각서가 6건 체결됐고 한전·한국해양연구소및 중국국가과학기술위원회간에 가로림만 조력발전 타당성조사 관련기술 협력방안이 협의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양국은 서로간의 국가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기술교류 확대가 긴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국교수립 훨씬 이전인 지난 3월 이미 북경에서 과학기술장관 회담을 갖고 이를위한 토대마련을 서둘러 왔다.특히 이과정에서 863고도기술개발계획등 국가기술개발과제를 추진중인 중국측은 송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부총리급)이 한국측 과학기술처장관을 전격 초청하는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왔다.그 결과 양국은 과학기술 협정체결 필요성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서로의 강점기술분야에 대한 상호보완적 협력및 38개과제 공동연구,중국해지역 환경·자원 공동조사및 동양의약·문화재 연구를 통한 첨단관련기술 공동개발,두만강 유역개발등 동북아지역 협력확대등의 시행과 이를위한 기술조사단의상호 파견을 합의하는데 이르렀다. 따라서 향후 한중간의 과학기술협력은 이같은 양국 합의사항을 단계적으로 실현해가는 과정을 밟아나갈 것으로 예상된다.즉 연구기관및 민간 기술협력의 근거를 마련해주기 위한 과기협정이 우선 체결되고 합의단계에 머물러 있던 공동연구과제가 본격 착수될것이 틀림없다.과학기술처도 이와관련,▲지난 6월 동의약연구조사단에 이은 9월 소재기술조사단등 중국기술조사단의 추가파견(내년까지 8개팀 40명) ▲과학기술협정체결(10∼11월 양국정상회담 개최시) ▲주중 과학관 파견(93년상반기) ▲38개 공동연구과제중 우주항공,가속기,레이저 응용기술등 중국측 강점기술분야 5개과제와 동양의약,해양,문화재등 공동관심분야 3개과제 우선착수(93년)등을 향후 계획으로 밝힌바 있다. 중국은 5천여개의 연구기관과 약 1천만명의 과학기술자등 방대한 과학기술자원 보유국이다.중국은 특히 인공위성을 자체제작,발사하고 핵기술을 보유할 정도로 우주항공·레이저·가속기등 물리기술과 신소재기술,군사기술등에서 세계적인 기술수준을 갖고 있다.따라서 반도체·통신·원자력분야등에서 기술우위를 갖고 있는 한국과 중국이 손잡을 경우 서로간의 기술보완은 물론 신동의약·문화재연구등 전통기술의 현대화에 개발잠재력이 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외언내언

    70의 나이를 이를때 고희란 말을 흔히 쓴다.희수라고도하며 70세에 이른 것을 축하하는 의례를 뜻하기도 한다.당나라 시인 두보의 「곡강시」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라는 구절에서 유래한다.인생은 짧아 예부터 70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의 한탄이다.60이 되어도 오래살았다며 회갑잔치를 성대히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근래에와 장수자가 늘어나면서 고희연도 많아지고 77세의 희수연,88세의 미수연까지 흔히 보게되었다.미수연의 미자는 그 파자가 팔십팔인데서 따온 것으로 장수국 일본에서 생겨난 말.요즈음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사로이 쓰고있다.모두 오래 살았음을 축하하고 더욱 오래살기를 기원하는 인간적인 염원의 행사.◆지난 22일은 우리나라와 24일 수교한 중국최고의 실력자 등소평의 88세 미수가 되는 생일이었다.오래도 살았다는 느낌이면서도 새삼 그의 건강에 우리도 관심을 가질 만큼 세상은 변했다.아시아개혁의 향방이 걸린 중국개혁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인가.김일성의 건강만큼이나 한반도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큰변수이기 때문일지 모른다.◆한중수교의 축하분위기속이지만 등의 건강과 만일의 경우에 대한 대비도 소홀해서는 안되겠다.『대단히 양호하며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문제없다.97년 홍콩반환후 그곳을 방문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등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작년 8월 그의 아들 등박방이 한말이다.당시의 건강진단 결과도 같은 내용이었다.◆금년들어 그것을 과시하듯 동분서주하면서 한중수교결단·개혁독려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하나 회갑·고희·미수등을 축하하는 것도 고령자의 건강은 내일을 믿을수 없기때문.등이 오래살아 중국의 개혁을 확고한 궤도에 올려놓기 바라는사람도 적지 않다.정상교환방문 뿐아니라 등소평의 서울방문이 있을지도 모를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 “부도옹” 등소평 88회 생일

    ◎건강 “양호”… 확실한 후계 아직 없어/지도부 대폭 물갈이,사후대비 강화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22일로 88세(미수)생일을 맞았다. 그러나 많은 인민들을 부유하게 한 그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등의 확실한 후계자는 없는 상태이다.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의 우려에도 그는 올해말 개최되는 중국공산당 14차 전당대회(14전대회)는 경제를 번영시키고 중국을 변화시키면서도 당의 절대권력은 유지하려는 등소평의 「사회주의 시장구상」을 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등은 지난 78년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부상한 후 개혁·개방정책을 추진,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면서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도입시켜 중국을 자신의 구상대로 철저히 변화시켜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등은 그의 사후에 대비,신진개혁파등을 포함한 지도부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자신의 노선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 “6·25는 미의 침략전쟁” 등 역사왜곡/중국 교과서 수정요구키로

    ◎교육부,우리도 수교맞춰 개편 교육부는 22일 중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초·중·고교 교과서의 중국관련 기술내용을 면밀히 검토,현실에 맞게 수정해 나가기로 했다. 교육부는 이에따라 우선 국교 4∼6학년용 사회과 부도에 실리는 세계 여러나라의 국기중 공식 외교관계가 끊기는 중화민국(대만)의 청천백일기를 중국의 오성기로 대체하고 중·고교 사회과 교과서의 대중국 무역관련 기술내용도 「미수교로 인한간접무역」에서 「수교에 따른 직접무역」으로 바로잡을 방침이다. 교육 관련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89년 중국 초·중등학교의 역사·지리·세계사 교과서등을 분석한 결과,이들 교과서는 한국전쟁을 미국의 침략전쟁이라고 하는등 왜곡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공식수교 의미와 파장(한·중수교/동북아 새 질서:1)

    ◎“한반도평화 정착”… 북방외교 대미 장식/47년만에 적대청산… 동반의 악수/고립무원 북한,핵 유연대응 기대/실질경협 가속화… 일 영향력 독주견제 효과도 역사적인 한중수교시대가 열렸다.양국 수교는 6공 북방외교의 완결일뿐 아니라 남북통일시대를 한발짝 앞당길 수 있는 발판으로 평가되고 있다.특히 구 소련을 비롯한 동구국가의 붕괴에 따른 냉전시대의 종막과 지역경제블록화에 따른 경제전쟁시대에 맞춰 이뤄졌다는 점에서 동북아정세변화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한중수교의 의미,양국 실질관계 증대,남북관계에의 영향및 동북아정세변화에 미칠 파장 등을 알아본다. 한 중 양국이 오는 24일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키로한 것은 6공 북방외교의 커다란 결실이자 사실상의 완결판이라 할수 있다. 정부가 지난 88년이래 구소련및 동구국가와 국교를 정상화하는등 평양으로 가는 우회전략은 이제 마지막 남은 중국과 수교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둔 셈이다. 양국간 국교정상화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올해 1백억달러를 육박하는 양국간 교역규모,인적교류등을 감안할때 당연한 측면이 없지 않다.또 구소련의 붕괴등으로 인한 냉전의 와해와 남북 유엔동시가입으로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다. 이상옥외무장관과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이 미수교국 상태에서 지난해 9월 유엔총회참석과정의 첫번째 회담을 가진이후 수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양국 외무장관은 또 지난해 11월 서울 아태각료회의에서 만난데 이어 지난 4월 북경 유엔아태경제사회이사회에서 회담을 갖고 『동북아 평화와 아태지역의 공동번영을 위해 양국간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서울과 북경의 외교창구를 통해 수교교섭을 본격화해 왔다. 특히 이붕총리는 이외무장관 면담시 『물이 생기면 도랑이 생긴다(수도거성)』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수교의사를 밝혀왔다.정부는 이같은 의사타진 결과에 따라 보안유지를 위해 청와대 외무부관계자등으로 별도의 교섭팀을 구성,협상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수교의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동맹국인 북한을 의식,수교의 시간표를 잡지 못해 왔으나 이제 수교일정을 확정하게된 것은 북한에 대한 설득작업이 끝난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양상곤 중국국가주석이 지난 4월 주석으로는 처음으로 김일성 북한주석의 80회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수교의 불가피성을 설득했다는 관측이 가장 유력하다. 한 중 양국의 수교는 우선 양자간 관계에서 볼때 6·25전쟁 이후 47년동안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지난 90년1월 민간 형식의 무역대표부를 상호 교환설치키로 한지 1년7개월여만에 서울과 북경에 대사관이 개설됨에 따라 양국간 정치 외교분야의 협력은 본격화될수 밖에 없다. 또 양국간 관계정상화는 안전한 투자및 경제협력을 가능케 함으로써 교역규모는 더욱 증대되고 인적교류도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함께 양국수교는 남북한 관계 뿐 아니라 동북아 정세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남북관계에서 볼때 이는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북방외교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개방을 유도해내자는데 있는 만큼 북한도 이에 자극을 받아 미 일등 서방국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를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이 미·일·중·러시아등 한반도 주변강국과 수교함에 따라 이들 강대국 가운데 미일의 북한승인 분위기는 한층 고조된 셈이다.그리고 진행중인 일·북한 수교 교섭도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미일등이 대북관계개선의 첫번째 전제조건으로 핵문제 해결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중수교는 동북아 세력균형에도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예상과는 달리 한국과의 수교에 적극적으로 나온 것도 동북아 지역의 이니셔티브를 일본에만 맡길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일본의 군사력이 세계 3위인 데다 평화유지협력법안의 통과로 해외파병의 길이 열리면서 아시아,특히 동북아지역 안보의 세력판도는 불안정한 양상을 띠어 왔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은 국교정상화로 일본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게 됐다. 이제 한중 양국은 수교에 이어 노태우대통령이 빠르면 10월초쯤 중국을 방문,사상최초로 중국 최고위층 인사와 정상회담을 갖게되며,또 중국의 최고위 인사가 상호 교환 방문하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더욱 긴밀해질 전망이다. □한·중 수교일지 ▲83. 5 중국민항기 피랍사건 관련 중국대표단 방한으로 양 국정부당국자 최초 접촉 ▲87.12 노 대통령당선자 국교수립희망 발표 ▲88. 1 한국어선 입어허가(87.10)후 첫 출어 4 산동·요령성 대한국 투자개방 7 기획원차관 북경UNIDO세미나 참석,부산∼상해 컨테이너 정기항로 개설 9 한중화물선 상해∼부산 첫 취항 10 대한항공·중국영공통과 합의 ▲89. 3 KOTRA/CCPIT간 무역사무소 설치 협의 5 재무장관,중국 ADB총회 참가 7 북경박람회,한국등 21개국 참가/IPECK방중, 민간경제협의회 설치논의 8 대한항공,서울∼상해 전세비행 취항 ▲90. 1 한중어선사고 처리방안 협의 10 무역사무소 개설 합의 12 중국국제상회 대외연락부장등 중국측 실무진 방한 ▲91. 1 무역대표부 한국측대표 중국파견 2 한중항공항로개설 협의 7 현대사절단 중국방문 8 KOTRA·민간업체의 중국투자환경조사단 중국파견 11 전기침 중국외교부장 한국방문(외무장관회담,노태우 대통령접견) 12 중국화공진출국총공사 서울사무소 개설허가 ▲92. 2 한중 경제회담,한중 삼강평원 개발협정서명 4 삼강평원 개발합작공사 발족 한중 은행사무소 교환개설 이상옥외무장관 중국방문 5 한중 항공기소재 기술협정 서명 7 한중 투자보장협정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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