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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정부 질문 ‘검증공방’ 격돌

    8일 경제분야 대정부질의가 열린 국회 본회의장은 전날에 이어 이틀째 대선후보 검증 무대로 전락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해 ▲BBK의 실질적 소유주 ▲미국 미시간주의 호화주택 불법 매입 의혹 ▲대운하 공약의 허구성 등을 지적하며 파상공세를 폈다. 이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경준씨 귀국 기획설’로 응수했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숙부 하숙비 반환 소송 ▲2004년 총선 당시 노인 폄하 발언 논란 등을 거론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 과정에서 고성과 삿대질까지 오갔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고유가와 청년실업 문제, 증권시장 급등락 등 서민생활 개선대책을 내놓기보다 의원들의 정치공방 틈바구니에서 들러리 역할에 그쳐야 했다. 신당 정봉주 의원은 이명박 후보를 향해 “BBK사건 주가조작과 횡령과정의 명백한 주범”이라고 공격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연단까지 나와 항의하는 등 한때 장내가 격앙됐다. 신당 소속 김영주 의원은 “현대건설 부도의 주범인 이라크 미수채권은 이 후보가 현대건설 사장 재직시에 수주한 공사에서 발생했다.”면서 “이 후보의 성공신화는 조작된 신화이며 실패한 CEO는 경제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깎아내렸다. 민주당 이상열 의원도 권오규 경제부총리를 상대로 “금감위가 BBK 주가조작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경준씨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추궁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김경준씨 조기송환은 여권의 정치공작을 위한 기획입국”이라고 주장했다. 진 의원은 이어 신당 서혜석 의원이 전날 ‘2001년 10월 이 후보 최측근인 옵셔널벤처스의 이모씨가 LKe뱅크 D증권계좌로 54억원을 보냈다.’는 주장에 대해 “이 돈은 김경준씨가 해외 증권매수에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신당 경선 당시 차떼기, 박스떼기 등으로 온갖 부정선거를 자행한 정 후보가 반부패를 말할 자격이나 있느냐.”고 쏘아붙였다. 같은 당 이계경 의원은 ”정동영 후보는 자신의 재산 가운데 임실·순창 밭을 상속받았다고 주장하지만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정 후보가 어린 시절 매매한 것으로 돼 있다.”며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박승환 의원은 2004년 당시 정 후보의 ‘노인폄하’ 발언과 최근 자이툰부대를 ‘용병’에 빗댄 것을 거론하며 정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한편, 진 의원과 박 의원은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대선출마에 대해 “대국민 사기극이자 자기모순의 극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서태지, 4년만에 컴백

    가수 서태지(35)가 4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한다. 그는 예당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오는 29일 15주년 기념음반을 발매하며, 내년 상반기 8집 발매와 함께 전국 투어를 할 예정이다. 이달 발매될 기념앨범 ‘(&) 서태지 15th 애니버서리(ANNIVERSARY)’에는 1집부터 7집까지 정규 음반 전곡과 미수록 음원, ‘교실이데아’와 ‘컴백홈’의 새로운 리믹스가 수록된다. 이밖에도 4시간 분량 2장의 DVD에는 서태지 솔로 시기의 뮤직비디오, 베스트 공연 실황 등이 포함된다. 서태지는 지난 1992년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해 ‘난 알아요’,‘교실이데아’,‘컴백홈’ 등을 히트시켰으며, 지난 2004년 1월 7집 ‘Live Wire’ 이후 주로 일본에 체류하며 음반 준비를 해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비단꽃 흩뿌려진 나라만신 60년길

    비단꽃 흩뿌려진 나라만신 60년길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이에게 국민가수, 국민배우 등의 칭호를 붙인다면 그에게는 ‘국민무당’이란 이름이 어울릴 듯하다.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한 미국 공연 이후 줄곧 나라 굿을 도맡아 온 나라 만신 김금화(76)가 자서전 ‘비단꽃 넘세(생각의나무 펴냄)’를 냈다. 그의 이름인 금화의 뜻이 바로 비단꽃이다. 하지만 이 이름은 김금화가 13살이 되기 전까지 얻지 못했다. 그 이전까지의 이름은 ‘넘세’였다. 넘세는 남동생이 어깨 너머에서 넘어다보고 있다는 뜻. 아들을 학수고대했던 부모는 첫째에 이어 둘째인 금화도 딸로 태어나자 몹시 실망했다. 한스러운 어린 시절 이름만큼이나 그의 삶도 한 권의 자서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파란만장하다. 신기가 내린 사람이 대부분 그러하듯 횟배·학질·감기 같은 잔병치레가 잦았고, 황해도 연백의 빈농 집안에서 피죽 한 그릇 얻어먹기도 힘들었다. 12살에 무병을 앓기 시작했으나 14살에는 정신대 나가는 걸 면하기 위해 5리쯤 떨어진 동네로 시집을 갔다. 그녀가 묘사하는 시집살이는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호랑이 시어머니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던 시어머니는 하루종일 고된 농사일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구타까지 서슴지 않았다.2년만에 시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17살에 외할머니로부터 내림굿을 받게 된다. 신어머니를 모시고 굿판을 따라다니며 여러가지 절차를 익히는 무당수업 기간도 시집살이 못지않게 맵고 힘들었다.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 일어나면서부터는 무당과 굿은 한낱 미신으로 몰려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로, 시끄러운 굿판을 벌이면 경찰서에 잡혀가기 일쑤였다. 두번째 결혼도 11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김금화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로 꼽는 것은 82년 미국에서 열린 한·미수교 100주년 공연에 참가했던 일이다. 민속에 관심이 많았던, 에밀레 박물관 창설자 고 조자용 선생의 주선으로 성사된 이 공연은 녹스빌에 이어 워싱턴·뉴저지·뉴욕 등 미국의 곳곳을 돌며 석달간 이어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는 당시에 대해 “우리 굿이야말로 진정한 한·미수교의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고 자부한다. 땅과 얼굴색, 언어가 다른 사람이 굿으로 통했으니 진정한 ‘소통’이며 ‘맺어짐’이다.”라고 회고했다. 김금화는 그의 굿이 유명해지자 영화 ‘서울만신’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지미에게 춤과 굿을 가르치거나 직접 단막극에 출연하기도 했다. 해외공연에서도 항상 인간문화재나 국립무용단에 비해 뒷전이었던 김금화는 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호 배연신굿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로 지정돼 서해안 풍어제의 맥을 잇고 있다. 로마대학에서 교황의 진혼굿을 했고, 백두산 천지에서 대동굿을 벌였으며, 베를린에서 윤이상을 위한 진혼굿, 사도세자 진혼굿 등을 펼쳤다. 이제 여든이 다 되어가는 가녀린 몸이지만 화려한 옷자락을 펄럭이며 춤을 추는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범접하지 못할 기가 느껴진다. 김금화가 강화도에 사재를 털어 지은 조촐한 굿당에 ‘금화당’이란 현판을 써서 걸어준 도올 김용옥이 쓴 시가 책 앞머리에 실렸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신변보호 요청 묵살은 생명권 침해”

    # A(44·여)씨는 지난해 헤어진 옛 애인 B씨한테서 2개월 동안 집요한 스토킹과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A씨는 올 1월 경찰서를 찾아가 범죄 신고를 했지만 경찰이 좀 더 참아 보라고 해 신고를 철회했다. 신고한 지 이틀 뒤 B씨는 A씨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뛰어든 뒤 차에서 내린 A씨의 목을 졸랐다.A씨는 사고를 조사하는 경찰관에게 B씨를 신고했던 사실과 상해진단서를 제출하고 ‘접근금지’가 가능한지 물었다. 그러나 경찰은 통상적인 교통사고로 처리했고, 다음날 A씨는 B씨에게 살해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가 살해된 것은 경찰이 신변보호 요청을 묵살한 데 따른 생명권 침해라며 유족의 피해 배상을 위해 대한변호사협회에 법률구조를 요청했다고 16일 밝혔다. 또 해당 지방경찰청장에게 수사와 제도를 개선하고 경찰서장은 주의, 경찰관 2명은 징계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해당 경찰관은 “피해자가 직접적으로 ‘신변보호’란 용어를 쓰지 않았고 스스로 범죄신고를 철회했다.”고 주장했다. 교통사고를 조사한 경찰관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이 달랐고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형사사건으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을 자체 조사했던 해당 경찰서장은 관련자 진술이 다르다는 이유로 추가 조사 및 징계없이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인권위는 “A씨는 목이 졸리는 등 살해 위협을 증명하기 위해 상해진단서까지 제시했으며 ‘접근금지’에 대해서도 문의했다.”면서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미수나 상해, 폭행 등 범죄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수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또 “생명·신체에 해를 입었고 향후 피해를 볼 염려가 농후한 사람에겐 신변안전 조치를 취해야 하며 가해자의 범죄혐의가 인정되면 수사를 시작해야 하는데도 미온적으로 처리한 것은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법무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기본계획’과 관련해 정부가 좀 더 실질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금화 16일까지 만수대탁굿

    만신 김금화(76)씨가 12일 강화도 풍어굿 전수관인 ‘금화당’에서 만수대탁굿을 열어 또다시 신(神)과의 교감에 나섰다. 이번 굿은 김씨가 무당의 길에 들어선 지 6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16일까지 열린다. 김씨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철물이굿, 백두산 천지 대동굿, 윤이상 선생을 위한 진혼굿, 사도세자 진혼굿 등 국내외에서 나라 굿을 도맡아온 큰무당이다.
  • 신용카드 분실때 보상 60% 불과

    신용카드를 분실한 후 타인이 부정사용했을 때 이를 보상받을 확률이 6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들은 약관에 회원이 적시한 의무를 소홀히한 경우 사고에 따른 보상이 제한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으나 소비자들이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요망된다. 금융감독원이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중 신용카드사에서 발생한 각종 부정사용에 대한 보상률은 74.5%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상률은 도난·분실 및 카드정보, 명의도용, 미수령 등 각종 신용카드 사고에서 비롯된 부정금액에서 실제 보상된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카드사는 고객이 약관에 명시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입증되면 사고금액을 모두 보상하지는 않는다. 카드 사고보상률은 2004년 86.5%,2005년 76.9%,2006년 76.8%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특히 도난·분실에 따른 부정사용 보상률은 올 1분기에 59.7%로 집계돼 2004년 이후 처음으로 60%선 이하로 떨어졌다.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평화분야 3대쟁점] (하) 군사적 신뢰·군축 로드맵

    [2007 남북정상선언 평화분야 3대쟁점] (하) 군사적 신뢰·군축 로드맵

    북한의 비핵화 2단계 로드맵이 본격화하고 남북 정상이 한국전쟁 종결을 위한 3∼4자 정상회담을 제안함에 따라 조만간 평화체제 전환의 극적 돌파구가 마련되리란 전망이 제기된다. 하지만 군과 안보 전문가들은 조심스럽다. 평화체제란 정전상태를 항구적 평화상태로 바꾸는 과정인 만큼 정치·외교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군사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 자체가 남북을 포함한 전쟁 당사국들이 새로운 ‘군사협정’을 맺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평화협정 맺어도 ‘행동´ 따라야 문제는 평화협정을 맺더라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실속 없는 구두선(口頭禪)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어디까지나 평화체제 구축의 ‘수단’이자 ‘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평화체제 구축에 수반되는 군비통제 정책을 조율할 범정부적 ‘컨트롤 타워’ 구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외교·안보 소식통은 “군비통제 문제는 남북관계를 넘어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중대 사안”이라면서 “국방부 등 개별부처 소관으로 남겨둬선 통일된 정책수립이 어렵다는 건의가 여러 경로로 청와대에 전달됐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과 유럽 각국이 군비통제기구를 대통령 직속이나 총리실 산하에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국방·외교·통일부에 팀(과) 단위로 3원화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연구원(KIDA)은 올해 상반기 청와대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군비통제실을 설치하고, 총리실 산하에 군축 검증기구를 두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국 대비 전력증강도 논란 소지 주목되는 사실은 긴장완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접근법이 ‘선 신뢰구축·후 군비감축’인 반면 북한은 ‘선 군비감축·후 신뢰구축’이란 점이다. 일정한 신뢰가 조성된 뒤에야 본격적인 군비감축이 가능하다는 게 상식이지만, 북한 주장도 불가피한 구석이 있다. 군사력이 객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선 군사적 투명성보다 모호성을 유지하는 게 상대의 공격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유럽의 군비통제 모델인 ‘선 신뢰구축’ 기조를 한반도에 적용하기는 무리”라면서 “사안에 따라 ‘신뢰구축과 군축의 동시진행’ 등 신축적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이 군비통제의 기본틀에 합의하더라도 실질적 긴장완화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신뢰구축의 핵심인 전방부대 후방배치의 경우 이질적인 사회 시스템이 걸림돌이다. 사실상의 ‘병영국가’인 북한은 언제든 전방 사단을 후방으로 옮길 수 있는 반면, 우리는 주민 동의와 보상이라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군사력 감축은 더욱 간단찮다. 복잡한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할 뿐더러 주변국의 위협에 대비한 우리 군의 전력증강 사업을 북한이 용인할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북·미수교 땐 주한미군 문제 쉽게 풀릴 가능성 유엔사령부 문제도 민감한 사안이다. 평화협정 체결로 법적 해체수순을 밟게 되는 유엔사의 미래에 대해선 이해당사자마다 입장이 엇갈린다. 신속기동군 전환을 노리는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부담을 덜기 위해 유엔사 역할강화론을 제기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평화협정 체결을 전후해 한반도 평화보장기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엔사를 북·미 적대관계의 상징으로 간주해 해체를 요구해온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주한미군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평화협정 체결 뒤에도 ‘지역 안정자’ 역할을 위해 한반도에 주둔해야 한다는 게 한·미 양국의 입장이지만 기회마다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해온 북한의 태도는 완강하다. 다만 ‘통일 뒤에도 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 등으로 미뤄 북·미수교가 이뤄진다면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릴 가능성도 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사내가 성폭행 미수에 그쳐야만 했던 ‘사연’

    젊은 사내가 성폭행을 시도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면,그 이유는? 중국 대륙에 한 20대 남성이 10대 소녀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는데,그 ‘기막힌’ 이유 탓에 화제가 되고 있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동남부 푸젠(福建)성 후리(湖里)구 안더우서(安兜社)에 살고 있는 20대 사내 린(林)모.그는 지난 4월 10대 소녀를 성폭행하려 했다가 끝내 미수에 그쳤는데,그 이유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문상보(厦門商報)가 최근 보도했다. 하문상보에 따르면 ‘종자’가 성폭행 미수에 그친 사연은 이렇다.지난 4월6일 오전 8시쯤이었다.아리잠직한 모습의 샤오위(小雨)양은 후리구 안더우서에 있는 한 PC방에서 밤새도록 게임을 하다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유티아오(油條·밀가루 반죽을 튀긴 것인데,설탕으로 버무리지 않은 커다란 꽈배기와 비슷함)와 콩국물로 얼요기를 했다.이어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눕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다.오후 2시쯤 됐을까.그녀는 갑작스레 커다란 돌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하면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차붓소처럼 생긴 어떤 젊은 남자가 자신의 배 위에서 씩씩거리며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지 않은가.그녀의 몸은 이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이에 “살려주세요!”라고 크게 소리치자마자 린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살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라고 욱대긴 종자는 얼른 옆에 있던 목침을 들고 그녀의 얼굴을 내리찍을 기세였다.놀란 샤오위양이 몸을 움추리며 온몸을 비틀어 반항을 했다.하지만 그녀는 억센 린을 당해낼 수가 없어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성폭행 위험 속에 빠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샤오위양이 사력을 다해 틀어막고 있던 종자의 손가락을 깨물며 반항하는 몸짓을 보이자마자 린은 “아야.”하며 소리치면서 후다닥 일어나 도망쳤다.그녀가 생각하기에는 그리 아프게 깨물지도 않았는 것 같은데….마치 울고 싶어 하는 어린이에게 뺨을 때린 꼴이었다. 린은 그러나 몇발짝 도망가지 못하고 샤오위양의 고함소리를 듣고 달려온동네 주민들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종자를 잡은 동네 주민들은 고대 그를 공안(경찰)당국에 넘겼다. 공안당국 조사결과 성폭행 미수범 린은 여자친구에게 차인 뒤 하릴없이 동네를 왔다갔다 헤매고 있었다.이때 우연히 대문 틈으로 샤오위양이 속옷만 입은채 잠이 든 것으로 보고 갑자기 사심이 발동해 일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종자가 여자에게 차인 결정적인 이유가 ‘성기능 장애’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린이 그날 결국 성폭행 미수에 그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 연유한 것이 아닌지….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열린세상] 10·4선언과 한반도 평화/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10·4선언과 한반도 평화/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7년 정상회담의 시작은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간 것으로 시작됐다. 비공식적으로 남북 밀사들이 넘나들었을 38선.1989년 평양축전을 마친 뒤 가냘픈 여대생 하나가 힘들게 걸어 내려온 그 선. 노무현 대통령은 전 세계의 기대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끌어모은 채 한걸음으로 성큼 넘어갔다.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비행기를 이용하여 방북했던 것보다 통일에 그만큼 더 가까워진 것 같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기간에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10월3일 6자회담의 합의문이 그것이다. 단순하고 통상적인 합의문이 아니다. 북핵문제와 북한체제의 인정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핵시설의 불능화를 완료하기로 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해 나가고 일본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시키기로 했다. 게다가 나머지 5개국이 북한에 중유 100만t 상당의 경제적인 지원도 약속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모든 문제의 선결조건이다. 지난 9월 APEC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핵이 폐기되면 자신의 임기 안에 북한과 종전협정을 체결하고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것은 북한이 10년이 넘게 핵을 통하여 얻고자 추구했던 것이다. 먼 길을 돌아 양측이 확보하고 싶은 것을 달성하게 된 셈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정점은 본항과 별항으로 구성된 10개항의 합의문 작성이다.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이 돌파구를 마련하고 얼개를 짠 것이라면 2007년의 10·4 남북공동선언은 자세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한 것이다. 처음 2007년 정상회담이 발표됐던 8월에 예상했듯이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정착과 지속적인 경제협력에 큰 성과가 확인된다.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키고 서로 적대시하지 않으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켜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했다. 이에 기초하여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연내에 비핵화 프로세스가 종결되면 한반도 어느 곳에서든 남북한과 미국 및 관련국이 평화협정까지 체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제 정치논리에 의하여 휘둘려왔던 남북의 경협문제도 안정궤도에 오르길 기대해 본다. 샌드위치 신세를 돌파할 한국의 경제를 위해서나 낙후한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해서나 다가올 통일한국에 이롭고 경사로운 일이 될 것이다. 하루빨리 백두산 직항로를 개설하고 경의선도 복구하자.2008년 북경 올림픽에는 기차타고 단일팀을 응원하러 가고 유럽으로 뻗어가자. 앞으로 1년 동안은 남북의 관계 장관, 총리, 정상의 회동은 물론 북·미의 정상도 만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자주 만나다 보면 건배사에서 무슨 말을 했네, 방명록에는 어떤 용어를 썼네, 김정일 위원장이 행보가 어떻네,2000년과 다른 것은 뭐네 하는 입방정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정상회담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요, 이미 남북 간에 왕래가 잦아지면서 국민들에게는 익숙해진 것이다. 오히려 걱정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뒤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부시 대통령의 인기도 바닥이며 임기가 1년여밖에 안 남았다.2008년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부시의 북·미수교 정책은 돌이킬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남북정상회담 기간동안 딴전을 피우고 부시와 면담을 비공식적으로 추진하다 망신만 산 한나라당이 변화하는 한반도 문제에 어떻게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07 남북정상선언] MB “평화노력 인정…핵 미흡”

    [2007 남북정상선언] MB “평화노력 인정…핵 미흡”

    ■ 한나라 반응 한나라당은 이번 정상회담을 대체적으로 긍정 평가했다. 일부 사안은 수용 의사를 밝혀 공동선언문이 앞으로도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반영했다.‘퍼주기’‘이벤트성’ 같은 거친 말로 격앙된 논평을 내놨던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대북문제에 경직된 입장을 취할 경우, 예상되는 역풍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아쉽다.’,‘우려스럽다.’며 미흡한 대목은 짚고 넘어갔다. ●이명박 “핵폐기 등 국민적 관심사 제외 아쉽다.” 4일 마산·부산을 방문한 이명박 대선후보는 “두 정상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그러나 국제사회와 국민의 관심사인 핵폐기 문제와 인도주의적 문제인 이산가족·국군포로·납북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아 매우 아쉽다.”고 언급했다. 강재섭 대표 주재로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의 톤도 비슷했다. 강 대표는 “남북 정상이 노력한 점을 인정한다.”고 총평했다. 다만 “대다수 국민이 염원했던 북핵 폐기, 분단고통 해소, 군사적 신뢰구축 등 핵심문제는 지엽적으로 다뤄져 아쉬움이 많다.”면서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로 해석될 수 있는 ‘법률 정비’ 부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평소 강경한 대북관을 유지해온 정형근 최고위원(당 남북정상회담 TF팀장)도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할 때)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은 것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앞으로 기업인 왕래·이산가족 상봉, 나아가 남북한간 전면적 자유통행으로 발전하길 충심으로 기대한다.”며 긍정평가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어 “그러나 북핵폐기 없는 조기 종전선언은 매우 부적절하며, 종전선언 주체가 ‘3자’라면 관련 당사자인 대한민국은 제외된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선언문 조항별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2항의 ‘법적 제도적 장치 정비’는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약속이 아닌지 굉장히 우려된다.”면서 “또 3항의 ‘서해공동어로수역’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우리의 해상영토를 포기한 것이 아닌지 묻는다.”고 지적했다. ●11월 회담 이어지면 대선에 영향? 한나라당은 이런 유연한 입장을 내놓기까지 내부에선 우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선언문 후속조치로 새달부터 총리·장관회담 등이 열릴 경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눈치다. 박형준 대변인은 “서해 공동어로 수역 같은 경우는 NLL을 무력화하지 않는 한 살려나갈 것”이라면서 “남북 경협도 이 후보의 구상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수용은 가능하지만, 다만 실무적 협상방안이나 남북협력기금 사용 등에 대해 국회 논의와 동의가 필요하다.”고 계승할 의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박 대변인은 집권할 경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로는 “더 기다리기엔 고령자가 너무 많은 이산가족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면서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는 반드시 다음 정상회담 때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연·부산 김지훈기자 anne02@seoul.co.kr ■ 민주신당 반응 ●정동영 “평화경제시대 개막 알리는 이정표 될 것” 정동영 후보는 “이번 ‘10·4합의’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의 설계도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면서 “이 설계도는 평화와 경제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한반도 평화경제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후보 역시 “과거 통일부장관 시절 ‘9·19합의’를 이끌어내고, 개성공단을 만들었던 당사자로서 오늘 ‘10·4 합의’를 접하면서 가슴 벅찬 환희를 느낀다.”는 개인적 소회를 잊지 않았다. ●손학규 “민족 공동 번영에 초석될 것”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선 경선 후보는 “이번 선언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민족 공동 번영에 든든한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국민 속에 충분히 전달되고 후속조치의 실천이 평화와 번영 그리고 국민대통합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 선언에 지난 5월 북측에 제안한 주요 내용과 그 취지들이 모두 들어 있어 개인적으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해찬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유익한 합의” 이해찬 후보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직접 논평을 발표했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각 문항을 조목조목 따지며 의미를 부여한 그는 “8개 합의문 중 종전 선언을 한반도에서 3자,4자 정상이 만나서 추진하도록 하자는 내용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남북이 주도해서 구축하자는 점에서 획기적 합의라고 판단한다.”면서 “서해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특별지대를 설정한 것도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매우 유익한 합의”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이번 합의가 자신의 활동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친북 좌파라는 이념적 갈등으로 규정하는 후보로는 남북 공동의 평화적 노력을 실현할 수 없다고 본다.”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세 후보, 대선영향은 글쎄… 각 후보측은 정상회담 성과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대선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범여권 진영이 집권해야 한다는 정당성에 힘은 실어 주지만 표로 연결된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손 후보측 우상호 대변인은 “경선에서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다만 본선에서는 평화 무드가 조성된 만큼 범여권 진영에 도움은 되겠지만 큰 영향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후보측 정기남 공보실장은 “평화개혁세력이 국민들로부터 다시 기대를 받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바로 대선승리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대선판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해석했다. 이 후보측 김형주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은 오르겠지만 그게 통합신당 지지와 연결될지는 미지수”라고 “어느 정도 효과를 가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민주당 “대체로 환영하나 인권문제 진전없어 유감” 민주당은 환영하면서도 아쉬운 대목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종필 대변인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 간 신뢰회복과 평화체제 정착에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회담 결과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지만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등 국민이 바라는 인권문제에 진전이 없는 점은 유감”이라고 논평했다. 유 대변인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 회담의 합의가 이행되도록 노력하기로 한 점은 다행”이라면서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 궁극적으로 북한핵이 완전 폐기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이번 결과가 민주당 지지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냉전 의식에 묶여서 현재 상황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손해를 볼 것”이라고 전했다. ●권영길 “실질적 통일논의 없어 아쉽다.” 민노당 권영길 대선 후보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담고 있고 6·15선언 이후 조성된 화해와 협력의 길을 더욱 넓힌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무엇보다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관계 해소와 공동번영을 위한 논의와 합의가 있었던 것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회담 결과를 반겼다. 그러면서도 권 후보는 “실질적인 통일논의가 있기를 기대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김형탁 대변인은 “국방부 장관 회담 등이 이어져 이런 분위기가 정상회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되는 만큼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권 후보 입장에서는 특별하게 불리할 것은 없다.”면서 “그동안 평화와 통일을 강조해온 권 후보가 정상회담으로 인해 혜택을 볼지 여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이 부분에 대한 권 후보의 주장이 부각될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국현 “경제와 평화의 선순환 구조로 갈 단초” 범여권 제3후보로 꼽히는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경제와 평화의 선순환 구조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차분하면서도 실리의 관점을 견지하는 접근이었다.”고 호평했다. 이어 그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조성에 합의한 것은 그간 본인이 꾸준히 주장해 온 ‘환동해 및 환황해 경제협력벨트’ 구축의 전제가 되는 내용으로 대단히 반가운 내용”이라면서 “본인이 주장해 온 한반도 공동 번영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북·미수교’가 반드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대선 표심과 연관성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캠프 관계자는 “그동안 대북정책 비판의 단골 메뉴였던 ‘퍼주기’‘끌려다니기’ 등의 비판을 불식할 수 있었고 참여정부를 비롯한 민주세력의 소위 무능론도 불식할 계기가 됐다.”면서 “얼마나 구체적 임팩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범여권 진영 비한나라 진영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Seoul Law] 예비합격자 5년간 3차례 응시

    [Seoul Law] 예비합격자 5년간 3차례 응시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로스쿨은 지난 2004년 68개교로 출발, 현재 74개교로 늘었다. 국립 23개, 공립 2개, 사립 49개교로 정원은 5825명이다. 대학별 정원은 도쿄대·와세다대·주오대 등 3개교가 300명, 게이오대가 260명, 교토대와 메이지대가 200명이다.100∼150명인 대학은 14개교,30∼80명이 54개교다. 시험체제는 2010년까지 구·신사법시험 체제로 이원화된다. 기존의 법대 출신들은 구사법시험을, 로스쿨 과정 수료자는 신사법시험을 치른다. 하지만 2011년부터 로스쿨 수료자 이외에 법조인 지원자는 예비시험에 합격해야 신사법시험의 응시자격을 얻는다. 구사법시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신사법시험은 로스쿨 출신과 예비시험 합격자들만이 5년간 3차례에 걸쳐 치를 수 있다. 판사나 검사가 되려면 별도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68개교서 74개교로 늘어… 2011년부터 舊 사법시험 폐지 운영은 법학 이수자와 미이수자로 나뉜다. 선발과정도 다르다. 법학 이수자는 2년 과정을, 미이수자는 3년 과정을 밟아야 한다. 지난해 입학한 5784명 중 법학 미이수자는 28.3%나 됐다. 법학 이수자들도 실력을 다지기 위해 미이수자 과정으로 지원하는 경향이 강하다.33.3%는 사회인 출신이었다.‘로스쿨 붐’임에는 틀림없다. 로스쿨의 입학전형은 ▲적성검사 ▲법학 이수자만을 대상으로 법률과목시험 ▲논문 및 자기평가서, 면접 등으로 이뤄졌다. 어학성적의 제출 여부는 로스쿨마다 다르다. 와세다대학의 경우,1차로 적성시험과 신청서, 학부성적, 능력증명자료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어학능력이나 추천장 등의 제출은 자율이다.2차에서는 면접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검증한다. 최종적으로 1차와 2차를 종합해 합격자를 확정한다. 법학 이수자와 미수자의 구분없이 300명을 뽑고 있다. ●교육과정 대학 자율… 판·검사 지원자는 별도 시험 통과해야 교육과정의 운영은 기본적인 지침만 문부과학성령으로 규정하되 나머지는 대학에 맡기고 있다. 로스쿨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법률기본, 실무기초, 기조 법학 및 인접, 첨단 등 4개 과목군에서 93단위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도쿄대학은 1단위의 경우 매주 1시간,15주를 기준으로 한다. 법학 이수자는 1년을 재학한 것으로 인정,1년차의 필수과목 30단위를 면제해 준다. 또 해당 연차에 단위수의 3분의 2를 넘기지 못하면 진급하지 못하는 데다 이수한 과목 역시 무효다.2년 연속 진급하지 못하면 학생 신분도 잃는다. 국립대의 연간 등록금은 입학금과 수업료를 합쳐 108만엔(약 870만원) 정도이다. 사립대는 국립대의 1.5배 수준인 150만∼170만엔선이다. 다만 주오대는 200만엔, 니혼대는 300만엔이다. 대학별 평균 교원수는 전임교원 23.5명·실무교원은 7.8명, 교원 1인당 학생수는 전임교원 3.7명, 실무교원 11.2명이다. 문부성 측은 “대학의 법학부는 법조인 양성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소양 및 지식으로서의 법학 교육도 필요하기 때문에 폐지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hkpark@seoul.co.kr
  • 분양시장 침체·미수금 눈덩이… 중소 건설사 줄 도산

    분양시장 침체·미수금 눈덩이… 중소 건설사 줄 도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PF란 금융기관이 아파트나 상가 등 특정 프로젝트 자체의 사업성을 보고 장기로 대출하는 금융기법이다. 그러나 최근 PF를 통해 주택시장에 뛰어들었던 중견 건설사들이 미분양 사태로 부도를 맞는가 하면, 건설사가 만기가 된 자산유동화증권(ABS)의 원금상환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PF발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를 우려하고 있다. ●PF관련 여신 70조원 육박 우려가 확산되자 금융감독위원회는 12일 오후 5시 긴급 기자설명회를 갖고 관련 규모를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PF관련 금융 규모는 모두 69조 9000억원. 이중 순수한 PF대출은 은행들이 31조 2000억원, 저축은행 12조 5000억원, 보험사 4조 2000억원 등 모두 47조 9000억원이다. 나머지 22조원은 PF를 유동화한 증권과 기업어음 등이다. 즉 ABS 규모는 6조 8000억원,ABCP는 15조 2000억원 등이다. ●금감위 “부동산부문 연체율 낮아 큰 문제없다” 금감위 홍영만 대변인은 “은행의 부동산 PF대출의 연체율은 0.19%에 불과하고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고정이하여신비율도 0.84%에 불과하다.”면서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은 연체율이 13.03%이고 고정이하여신비율이 7.11%로 높지만, 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아 금융시장 불안 변수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PF를 기반으로 유동화한 3개월만기 기업어음(ABCP)은 79.1%가 은행 등이 매입약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건설사가 부실해져도 투자자들의 원금 회수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클 것으로 추정되는 저축은행에 대해선 지난해 총여신 중 PF대출 비중을 30% 이하로 제한하고 연체 기준도 강화하는 등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왔다고 강조했다. 저축은행에는 대손충당금을 더 쌓도록 미리 조치를 취했다. 또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ABCP를 기초로 한 증권 파생상품이 만들어지지 않아 부실 파악이 쉬워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2차 파생상품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금융시장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만큼 큰 규모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일각선 “안심하기엔 이르다” 지적 금감위의 이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분양시장이 침체돼 미분양·미입주 물량이 쌓이면 미수금이 발생하고, 시공사가 넘어가면 건설사가 이 미수금을 모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11일 한국증권은 중견 건설업체인 대주건설이 ABS 원리금 상환을 거부하자 보도자료를 내고 공세를 폈다. 하루 만인 12일 대주건설이 두 손 들고 원리금을 전액 상환하기로 했지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쇼크가 장기화돼 국내 경기가 침체되고, 부동산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이 줄부도를 내면, 국내 금융도 요동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우려했다. 문소영 전경하기자 symun@seoul.co.kr
  • ‘다산학 고향’ 강진서 온 세번째 초대장

    ‘다산학 고향’ 강진서 온 세번째 초대장

    전남 강진은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천주교도로 지목되어 장장 18년동안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강진군은 1999년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 다산유물전시관을 짓고 강진시절 다산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학예직원이 한 사람도 없는 다산유물전시관의 전시내용은 ‘강진이 없으면 다산도 없었다.’고 할 만큼 다산이 경지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진시절을 제대로 보여주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강진군은 다산유물전시관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과 손을 잡았다. 예술의전당은 예술의전당대로 ‘강진청자문화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서예박물관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다산전시관의 전시를 공동주최함으로써 성격이 뚜렷한 전시관을 하나 더 갖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여기에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든든하게 뒷받침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시작된 두 기관의 협력은 2005년 첫번째 결실을 맺었다. 이 해 ‘다산과 제자의 만남’을 주제로 다산유물전시관에서 열린‘제1회 다산유물특별전’에는 영인본 일색이던 다산의 친필 편지와 저술 등 진본이 처음으로 대거 선을 보였다. 정약용 서거 170주년, 김정희 서거 150주년을 맞은 지난해 ‘다산과 추사의 만남’을 주제로 열린 제2회 특별전에서는 차로 연결된 두 사람의 인연을 조명했다. 제3회 특별전은 역시 최고 수준 고려청자의 제작지 강진을 알리는 ‘강진청자문화제’가 시작되는 8일 함께 개막되어 새달 7일까지 열린다. 올해 특별전의 주제는 ‘다산 학예의 뿌리를 찾아서’. 다산 학예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인물과 다산학을 이은 제자인 ‘강진 18학사’의 유물 등 34건,47점이 출품된다. 대표유물은 다산 외가의 비장품인 ‘현친유묵(賢親遺墨)’.‘어진이를 높이고 친한 이는 가까이 대한다.’는 뜻으로 다산이 제목을 붙이고 발문을 지었다. 상권에는 퇴계 이황과 고산 윤선도, 미수 허목, 공재 윤두서, 원교 이광사 등의 글씨, 하권에는 윤복, 윤강중, 윤석각 등 7대에 걸친 외가쪽 인물의 편지를 싣고 해설했다. ’승암예문(僧菴禮問)’은 다산이 불후의 공력을 들여 ‘주역’과 ‘예기’를 큰 아들 학연에게 전수한 강의노트이다. 다산은 1805년 학연이 강진으로 찾아왔을 때 밤을 새워 두 책을 강론했고, 아들이 의문을 표시하면 대답한 것을 52항목으로 정리했다. 또 퇴계 이황이 안동부사 윤복에게 써 준 시 ‘안동부백 문시에게 줌(寄贈安東尹府伯文侍)’과 여기에 신석우, 윤정기, 허전 등 14명의 후대 문인들이 차운하여 쓴 시집 ‘귤동진장시첩(橘洞珍藏詩帖)’도 나온다. 이소연 서울서예박물관 큐레이터는 “예술의전당과 강진군의 협력을 계기로 강진 주민들이 다산학의 고향으로 자기 고장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관련 유물을 본격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물론 박물관 설립계획도 세우고 있다.”면서 “예술의전당 쪽에서도 다산을 공부하면서, 다산을 다루는 의미있는 대형 전시회를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 나가고 있다는 것도 적지 않은 소득”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누가 울어~ 교장(校長)과 여학생(女學生)과 교사(敎師)와

    누가 울어~ 교장(校長)과 여학생(女學生)과 교사(敎師)와

    학교에서 파면당한 여선생이 파면에 불복 소송, 급기야는 대법원에까지 올라가게 되어 화제가 되더니 똑같은 학교에서 파면당한 또 한분의 여교사도 소송을 제기 - 패소와 승소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파면조치뒤엔 교장선생과 제자의 「스캔들」이 있다는게 이 여선생님들의 주장. 파면불복 승소한 두선생 “교장이 스캔들 숨기려고” 68년 11월 26일. 서울D여고 교장 이운하(李雲夏)씨(67·가명)는 국어담당여교사 강(姜)모씨(45)를 「파면」 했다. 강교사는 이에 불복, 69년 초 서울지법에 「면직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과 「면직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어 승소했다. 이교장은 『파면됐으면 순순히 물러나야 할게 아니냐』는 생각으로 즉시 불복항소했지만 역시 패소, 대법원에 까지 밀고 올라갔다. 70년 대법원은 이를 다시 고법에 환송, 지금껏 계류중에 있고 강교사는 학교에 계속 나오고 있으나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강교사가 파면당한 이유는 68년 2월에서 3월 사이 여러차례 벌어진 학생들의 「데모」사건에 개입,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것. 또 화학교사인 13년 장기근속자 손(孫)모여교사(40)가 68년 6월 초순께 파면당했다. 이유는 출근도 하지않고 도장을 사환에게 맡겨 출근부에 찍게 했으며, K대학 부도사건에 관련,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는 것. 그러나 손교사는 한 시간도 빠뜨린 일이 없고, 징계위원회도 소집한 일 없이 즉흥적으로 파면처분한 것이라 주장, 69년 5월 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70년 2월 1심에서 패소한 손씨는 2월 14일 고법에 항소, 70년 12월 18일 승소판결을 받았다. 『저나 강선생 뿐만이 아니고 많은 선생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파면당했읍니다. 현재 C국민학교에 간 서(徐)모교사, S여고에 간 박(朴)모교사, 서무실 근무의 백(白)모·정(鄭)모선생, 고등학교 한(韓)모교감이 모두 그만 두었어요』 손교사는 이렇게 많은 인원의 교사들이 전원 타의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은 바로 모종의 「스캔들」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문제의 「스캔들」사건은 지난해 연말 12월 24일께 표면화 되기 시작했다. D여고 이운하 교장의 양조카이며 동계여중의 교장인 이천승(李天昇)씨(가명·48)와 제자간에 얽힌 소문. 『70년12월24일 상오에 전화가 왔었어요. 이천승씨 부인인데 돈을 줄테니 만나자는 거예요. 그래서 동생들이 멋모르고 나갔는데, 종로(鍾路)서의 이(李)모형사가 「좀 갑시다」해서 끌려 갔대요. 3일동안이나 경찰서 보호실에 있었어요. 죄목은 「공갈협박죄」라는데 이상한건 잡아넣었으면 법원에 넘길 일이지 3일만에 되돌려 보낸건 뭐죠?』 학생때 몸버렸다는 제자 교장부인은 공갈로 고소 이 「스캔들」사건의 당사자인 양(梁)모여인(27·미혼)언니가 전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양모여인 언니의 주장과는 달리 경찰조서에서 나타난 사실은 사뭇 의외다. 즉 70년12월24일 종로서 형사과는 이교장부인의 고발로 양여인과 그 오빠를「공갈및공갈미수」혐의로 입건하고 검찰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조서에 따르면 양여인과 그 오빠는 지난 8년간 모두 1백만원의 돈을 이교장으로부터 받아 썼으며 다시 이교장과의 관계를 청산한다는 조건으로 2백만원을 요구했다. 이교장쪽과 상의한 결과 이 금액은 1백만원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이교장쪽이 미처 1백만원의 돈을 만들지 못하고 50만원만 준비, 그러자 양여인쪽은 1백만원을 채워줄 것을 요구하고 50만원마저 받지않아 공갈미수의 혐의를 받게된 것. 한편 검찰에 청구한 구속영장은 ①사건원인발생기간이 너무 오래 경과되었고(62년부터) ②양여인이 처녀의 몸이란 이유로 기각, 이 사건은 불구속입건된채 현재 종로서에서 수사를 계속중. 양여인은 이천승 교장과의 간통사실에 대해서 「사실증명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 「사실증명서」는 잇따른 교사파면 사건과 이교장의 추문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동교출신 동창생들이 모여 양여인과 직접 면담, 본인의 자필로 된 고백서를 받아둔 것이라함. 날짜는 미상, 양여인의 지장이 찍혀있다) 『저는 학생시절에 방송실에서 선생님한테 처녀성을 뺏겼읍니다. 야간수업이 끝날 무렵 교실에서도 또 교장실에서도 또 강당에서도 그리고 D동 목욕탕에서도 그랬고 중국집 M마루에 가서도 여러번 그랬읍니다. 학생시절에 제가 뭘 압니까? 저는 제몸이 이렇게 됐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달라고 그랬읍니다. 이천승이라는 분이 나를 괴롭힌 그 죄를 어떻게 씻을 수가 있겠읍니까』 “당했다” “당하지 않았다” 는 자백서 두가지 당시 양여인은 고교 3년생으로 방송반에 있었다. 62년 전방위문을 가면서 양여인과 당시 교감이던 이씨의 관계는 막을 열었던 것으로 돼있다. 학교를 졸업한 양여인은 생활수단으로 이교장으로 부터 돈을 얻어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치사하지만 돈받은 액수를 생각나는대로 기입하겠읍니다. 4월4일(연도는 명시하지 않음) 8만원, 자기집 방에서 부인으로부터 5만원, 2만원은 5월께에 주고, 나머지 3만원은 결혼청첩장을 보고 확인을 한 다음에 준다고하여 청첩장(주(註)=가짜로 찍은 것으로 추측됨)에는 언니의 지장을 받고 3만원을 주었읍니다』 이 사건의 가장 걸작은 이천승교장쪽에 추행당하지 않았다는 양여인의 자백서와 녹음 「테이프」가 있다는 것이다. 『부인이 나한테 전화로 자기집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씨가 나를 강간하지 않았다고 쓰라고 해서 서면으로 썼읍니다. 그것을 교장선생님한테 갖다 드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양여인이 두사람의 관계를 부인하는 녹음이 교장실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 녹음할 당시 이씨쪽으로부터 20만원을 받았다는 양여인쪽의 주장이다. 한편 문제의 녹음 「테이프」에 관해 본인인 이교장의 해명을 요구했으나 연3일간에 걸친 면담요구에 이교장은 무슨 까닭인지 계속 회피했으며 녹음 「테이프」의 제시도 거절했다. 이씨를 대신해 기자와 만난 동교서무실장은 녹음 「테이프」의 유무(有無)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으며 제시요구에 『이교장과 직접 만나보라』며 회피. 작년 12월 24일, 양여인과 그의 오빠가 갑작스럽게 종로서에 구속된 것은 바로 이러한 8년에 걸친 거래관계가 깔려 있었던 것. 양여인쪽의 「금전요구」와 때로는 『악착같이 교장선생님과 살아 보겠다』는 끈덕진 압력에 못이겨 이씨의 부인이 「공갈협박」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치사한 「사제지간」의 소문은 양여인이 학교를 찾아 갈 때마다 더욱 번져갔다. 서모교사는 양여인의 고백을 들었고 박모선생 역시 같은 「케이스」. 서무실 근무자들은 울며불며 포악하는 양여인을 달래다가 소문의 내막을 알게 됐던 것. 이러한 소문은 자꾸 퍼지는 법. 교장쪽의 입장도 짐작할만하다. 한편 양여인쪽은 혼인을 빙자한 간음죄로 곧 이씨를 사직당국에 고발할 예정. 교장선생쪽은 「공갈협박」혐의로 이에 맞설것이 예상되어 어떻게 시시비비가 가려 질지는 모르지만 만일 파면당한 여선생의 주장처럼 교장선생의 비행을 감추기 위해 무고한 교사들을 파면했다면 결코 감추어 두거나 덮어두어야 할 일은 아니다. <식(植)> [선데이서울 71년 1월17일호 제4권 2호 통권 제 119호]
  • “나쁜 X” 도둑질하려다가 물건이 없으면…

    “아무리 훔칠 게 없다고 해도 그렇지.기분이 나빠 다시 찾아가 성폭행까지하다니!” 중국 대륙에 한 20대 중반의 사내가 남의 집에 물건을 후무리려고 들어갔다가 돈이 되는 훔칠 만한 물건이 없자,화가난 나머지 다시 찾아가 여주인을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나 경악케 하고 있다.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에 따르면 사건의 장본인은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출신의 리하이핑(李海平·24).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리는 그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뜬벌이 생활을 하는 막돼 먹은 위인이다. 중국 동북부 지방이 겨울내내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뜬벌이 생활이 어려웠던 종자는 따뜻한 남부 지방에는 혹시 일거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 있는돈 없는 모두 긁어모아 기차를 타고 몇날 며칠동안 수천 ㎞를 달려 ‘동양의 하와이’ 하이난(海南)성 하이커우(海口)로 왔다. 일단 하이커우에 도착했으나 리에게는 제대로 된 기술이 없는지라 일자리가 나지 않았다.해서 호구지책으로 택한 것이 ‘양경장수의 길’이었다.지난 3월2일 새벽 3시쯤,조그마한 여관을 겨냥해 문을 따고 한 여성의 침실로 들어갔다. 후무릴 물건을 찾아 방안의 곳곳을 샅샅이 톺아보았으나 돈이 될 만한 물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라면이 몇개 든 박스를 제외하고는….훔칠 물건이 나 현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화가 꼭뒤까지 치민 리는 할 수 없이 라면 몇 봉지만 들고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너무 화가 나 분을 삭이지 못한 종자는 방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돈을 털기로 마음을 먹고 여관 인근 지역에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 4시간이 지난 아침 7시쯤 됐을까.이 방의 주인 리(李·여)모씨가 되돌아오는 것을 봤다.몰래 뒤따라간 리는 그녀의 방을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준비한 전깃줄로 그녀의 두손을 묶고 돈을 내놓으라고 욱대겼다. 아무리 윽박질러도 그녀는 아무 것도 없다고 손사래만 쳤다.이에 더욱 화가 난 리는 성폭행을 자행했다.이어 방안 곳곳과 그녀의 지갑과 호주머니 등을 뒤져 모두 69위안(약 8280원)을 강탈했다. 리의 사악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종자는 그녀에게 “공안(경찰)에 신고하면 죽어버린다.”고 협박한 뒤 사건 현장을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현장을 떠나려던 순간,아무래도 저승길로 보내는 것이 안심이 될 것같아 앞날이 창창한 그녀의 목을 졸랐다. 리는 그녀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곳을 황망히 떠났다.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다행히 깨어나 공안당국에 신고,종자를 체포했다. 하이커우시 중급인민법원은 리하이핑에게 강간죄와 강도죄,고의살인(미수)죄 등을 적용해 징역 18년,정치권리 박탈 2년,벌금 1000위안(12만원)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씨줄날줄] 무샤라프와 부토/육철수 논설위원

    중국의 수 양제(煬帝)는 권력을 위해 아버지 문제(文帝)를 시해한 천하의 역자(逆子)로 유명하다. 문제의 둘째 아들인 그는 태자로 책봉되지 않자 형을 반역으로 모함해서 기어이 태자 자리를 차지했다. 문제가 병들어 드러누웠을 때는 그가 총애하는 선화부인을 겁탈하려다 미수에 그쳐 태자 직위를 내놓아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양제는 심복을 시켜 병상의 아버지를 두 다리를 찢어 살해하고 마침내 황위에 올랐다. 권력에 눈이 멀면 부모형제라도 잔인하게 제거하는 일이 동서고금에 어디 양제뿐이랴. 권력이란 이렇게 골육과도 나눌 수 없다지만,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곳 또한 권력을 생산하는 정치바닥의 생리다. 권력욕이 강한 사람들에겐 정치생명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적과의 동침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 씨의 3당 합당과,1998년 김대중·김종필 공동정권은 생생한 사례다. 최근 미국 CNN방송이 애증이 오락가락하는 친구관계를 표현한 말이라며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frenemy) 현상을 소개했는데, 권력의 떡고물이라도 얻을까 해서 이합집산이 횡행하는 정치판에도 참 잘 어울린다. 파키스탄에서는 지금 권력 나눠먹기가 화제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다음달 선거를 앞두고 정적인 부토 전 총리와 손을 잡을 모양이다. 무샤라프는 겸직인 육군 참모총장직을 내놓고, 망명 중인 부토와 그 측근들을 불러들여 요직을 분배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미 총리를 두번 지낸 부토에 대해서는 3선 금지를 규정한 헌법까지 뜯어고쳐 총리가 되는 길을 열어 놓겠단다. 그야말로 집권자 입맛대로다. 국민이야 반발을 하든 말든 권력을 그저 극소수 위정자들의 사유물로 여기는 파키스탄 정치인들의 배짱이 놀랍다. 군부정권이 권력 연장을 위해 무슨 야합인들 못하랴만, 그런 정치지도자를 둔 국민만 애처롭다. 재집권하고 나면 마음이 싹 달라지는 게 권력의 또다른 속성이다. 권력분점이란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이를 모를 리 없는 부토가 무샤라프의 야욕에 들러리만 서는 건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뉴요크 한복판서 백만장자(百萬長者)의 꿈을

    뉴요크 한복판서 백만장자(百萬長者)의 꿈을

    <뉴요크=김경식(金景植)특파원> 말이 쉬워 1천2백만「달러」지 돈 많은 나라 미국에서도 이 정도의 매상이면 백만장자축에 낀다. 이런 미국에서 10년전 단돈 50「달러」를 가지고 건너온 한 한국청년이 이 기적을 이루어 놓았다. 바로 가발 수출업체인 다나무역의 안인모(安仁模)사장(37). 흑발 전문의 가발업자로 이미 미국선 널리 알려져 「뉴요크」시 한복판 「웨스트」32번가. 밀림처럼 들어선 「빌딩」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앉은 다나무역 「뉴요크」사무소는 흑발(黑髮) 전문의 가발수출업자로 이미 미국안에선 널리 이름나 있다. 「웨스트」32번가 하면 미국 가발시장의 핵심. 미국안에서 소비되는 가발의 50%가 한국산이니 32번가 한복판에 안사장의 사무실이 들어앉았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서 흔히 자수성가라고 일컫는 재력(財力)에의 욕망을 미국선 「밀리어네어」(백만장자)의 꿈으로 부른다. 재력이 그 사회서 차지하는 비중이 유독 큰 미국인지라 백만장자가 되려는 꿈은 청년이면 누구나 한두번쯤 품어보는 꿈. 숱한 세계의 젊은이들이 백만장자의 꿈을 안고 「뉴요크」를 찾아오지만 정작 이 자수성가의 꿈을 이룩한 사람은 미국 전인구의 0.5%도 채 못된다. 더우기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에겐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고작해야 백인의 그늘에서 먹고 살만한 처지가 되면 다행이다. 이런 하늘의 별따기를 안사장은 투지와 「아이디어」로 이루어 놓았다. 안사장이 「뉴요크」에 꿈을 둔 것은 10년전인 1960년. 그해 외국어대학을 졸업한 안사장은 거친 사회에의 첫발을 소위 취직시험이란 관문을 거쳐 내디뎠다. 안사장이 처음 이력서를 내민 직장은 자동차판매를 주로하는 어느 외국인상사. 취직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같은 대학의 2,3년 선배를 포함, 모두 1백명에 가까왔다. 그중에서 시험을 거쳐 최종합격된 사람은 단 두명뿐. 물론 안사장도 그 두사람중의 하나였다. 50대1의 험난한 관문을 뚫고 취직은 되었으나 그다음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초라했다. 일을 했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월급밀리기 석달째. 안사장은 회의에 잠겼다. 도미후 먹고 살기도 바빠 아예 공부할 생각은 포기 『이런 취직을 왜 해야하나?』 험한 경쟁을 뚫고 입사했을 때의 꿈은 월급 3개월 체불로 말끔히 사라졌다. 생각끝에 사표를 내기로 했다. 『미국에 가 다시 더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고 사표를 써 집어내던진 것이 취직 6개월째. 그러나 마음먹은 미국가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는 무역회사가 있어 이회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도미후 무보수로 이 회사의 일을 거들어 준다는 조건으로 도미수속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받게 된 것. 60년 겨울. 「트렁크」 한개와 1백「달러」를 가지고 김포공항을 떠났다. 주위에서 얼마 돈을 더 보태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1백「달러」이상을 갖고나가는 것은 불법이며 또 귀한 외화를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거절했다. 오직 믿는 구석이 있다면 「뉴요크」 「자마이카」 병원에 석달 먼저 와 「인턴」으로 지내고 있는 아내뿐. 「뉴요크」에 도착, 아내와 만났을땐 호주머니속엔 겨우 50「달러」가 남아 있었다. 공부를 계속할 생각으로 여러 대학에 「스칼라십」을 얻기 위해 편지를 내어보왔다. 그러나 주급 70「달러」인 아내의 월급으론 대학공부는 커녕 먹고 살기도 바빴다. 그래 어느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3백여 사원중 황색인종은 안씨 단 하나뿐. 제법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주위의 질시로 이 직장도 끝. 다음 들어간 것이 어느 한국수출업계의 한 회사. 그러나 결국 「샐러리맨」으로선 아무런 승부도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자립의 길을 찾았다. 안사장은 밤이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한국에서 원료를 많이 구할 수 있고 또 인건비가 싼 한국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런 안사장 머리에 가발이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세계 가발시장은 「유럽」제품이 지배하고 있었고, 일본제품이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할 무렵. 안사장은 우선 일본제품을 사들여 미국시장에 팔아 보았다. 제법 잘 팔려나갔다. 63년 안사장은 「체이스·맨해턴」은행으로 부터 3천「달러」를 융자받아 기술자와 약품을 들고 서울로 돌아와 공장을 차렸다. 첫 제품은 아무래도 「유럽」제품보다는 못했다. 흑인여성에게 알맞은 검은 가발에 착상 그러나 장사는 판로가 제일 큰 문제. 안사장은 이미 「유럽」제품에 정들어 있는 백인여성들 대신 흑인여성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성이라면 흑백을 불문하고 아름다와지려는 욕망은 마찬가지. 이런 점에 착안한 안사장은 검은 「세일즈맨」을 써 한국산 검은 가발을 검은 여성들에게 팔았다. 이 판매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첫 해에 벌써 물건이 달려 못 팔 지경. 자신을 얻은 안사장은 서울공장을 신갈로 옮겨 확장했다. 해마다 매상은 3배에서 10배까지 뛰어올랐다. 그간 안사장이 가발 수출한 실적을 살펴보자. 66년엔 6만7천「달러」, 67년엔 67만「달러」, 68년엔 1백만「달러」, 69년엔 4백80만「달러」, 올해는 11월말 현재 1천55만「달러」를 수출했다. 이렇게 보면 한해 수출액의 증가율은 2배에서 10배. 다나무역의 성장율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성장율 뒤에는 『질좋은 상품, 새로운 「디자인」, 그리고 신용만 지키면 가발시장은 튼튼하다』는 안사장의 철학이 숨어 있다. 안사장은 또 『돈을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란 신조를 갖고 있다. 외대(外大)재학시절부터 불우아동을 돕는 「등대회」「멤버」이던 안사장은 해마다 시립아동병원의 어린이들에게 구호의 손을 뻗친다. 내년부터는 모교인 외대에 장학기금도 마련할 생각. 1천2백명의 여공을 갖고있는 신갈공장에선 매달 한번씩 YWCA와 공동주최로 교양강좌를 연다. 단순히 봉급받고 일하는 직장이 아니라 다나의 가족을 만드는 것이 노사협조를 위한 지름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 그래서 여공들의 기숙사는 마치「호텔」과도 같다. 지난 11월30일 제7회 수출의 날에 철탑산업훈장을 탄 안씨의 구호는 『「달러」를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①간접비의 절약 ②과감한 수출행정의 간소화 ③국내업자끼리의 과당경쟁 지양등이 우선 이루어져야겠다고. 이제 안사장의 꿈은 포화상태인 미국시장을 떠나 「유럽」시장을 꼭 제패하고야 말겠다는 것이 안사장의 포부. 2남1녀를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별세… 사회장으로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별세… 사회장으로

    대구·경북(TK) 대부(代父)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이 24일 별세했다.87세. 이수그룹은 이날 “김 명예회장이 삼성의료원에서 폐암 치료를 받던 중 오전 10시50분쯤 별세했다.”고 밝혔다. 김 명예회장의 일생은 화려했다. 경제인, 은행가, 공직자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소설집을 내는 등 삶의 폭도 넓혔다. 최근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 겸 원로자문단 자문위원으로 왕성하게 활약해 재계 원로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1920년 대구에서 출생한 김 명예회장은 대구고보(현재 경북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광복 직후부터 대구에서 섬유사업을 벌였다. 그러다 지방은행의 필요성을 느끼고 1967년 대구지역 상공인들과 함께 국내 첫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을 설립, 초대 행장을 맡았다. 이후 제일은행장과 외환은행장, 산업은행 총재,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전국은행연합회 회장도 지냈다. 김 명예회장은 5공 때인 1982년 11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올랐다. 그는 당시 가장 큰 경제 현안이었던 20%대의 물가상승률을 한 자릿수로 잡아 경제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도 들었다 . 공직에서 물러난 뒤 기업으로 돌아와 1987년 삼성전자 회장,1988년 ㈜대우 회장을 지냈다.1995년에는 이수화학 회장에 취임했다.1999년 물러날 때까지 이수그룹을 화학, 건설, 정보기술(IT)부품, 바이오·의료분야의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김 명예회장은 특히 전경련에 애착을 보였다. 지난 2월 전경련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임시총회 의장을 맡은 그는 회장단 이견으로 합의추대에 실패하자 “전경련이 이렇게 된 것은 대기업이 안 나오는 데 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은 ‘비둘기 역설’(2001년),‘청자 깨어지는 소리’(2002년) 등 소설집과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2006년)라는 경제관련 서적을 냈다. 지난 6월에는 미수연(米壽宴)과 전집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김상철 디엔피코퍼레이션 회장과 김상우 페타시스아메리카 회장,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김은희, 김명민씨 등 3남 2녀와 사위 박인종 흥아상사 사장 등이 있다. 김 명예회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는 사돈 관계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장의위원장은 경북고 후배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맡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 발인은 28일 오전 6시30분. 장지는 충북 음성 대지공원이다. 연락처는 장례식장 (02)3010-2000, 장지 (043)878-3854.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돈 주고 몸도 준 자매의 살인 계획

    돈 주고 몸도 준 자매의 살인 계획

    가정 주부인 미모의 자매가 살인을 기도했다.『우릴 못살게 구는 저 빚장이 여자를 죽여 달라』고 자객을 샀다. 그러나 자객의 칼질이 빗나가 실패로 돌아가자 처음 약속했던 10만원 사례(?)에 웃전으로 몸까지 주어가며 두번째는 엽총으로 쏴죽이려 했으니…. 화장품 장사를 하던 어느「어글리·시스터즈」의 청부살인(미수) 사건의 끔찍한 행각기-. 지난 10월20일 밤8시30분쯤 대구시 봉덕동 734의 15 아담한 한식집 마루를 막 내려 서려던 이집 안주인 장윤자(張潤子·27)여인은 괴한으로 돌변한 방문객의「재크·나이프」에 가슴을 맞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괴한은 심장으로 짐작된 곳에 또 한번, 그리고 배를 또 한번 이렇게 연거푸 세번을 찌르고 대문밖에서 망보던 또 한명의 자객과 함께 후닥닥 도망쳤다. 눈깜작할 사이였다. 곧 이웃 사람들이 놀라 뛰어왔으나 남은 것이라고는 선혈이 낭자한 현장뿐…. 이로부터 2시간쯤 지났을까. 시내 동구 상동에 있는 신명자(申明子)여인집 안방에서는 저주받을 남녀 일당의 축배(?)가 벌어졌다. 장여인에게 1백10만원을 빚진 신명희(申明姬·27·대구시 대명동), 신명자(24) 자매와 살인을 청부맡았던 주국명(朱國明·23·하수인), 정훈재(鄭勳在·22·망보기)등 4명이었다. 10만원의 사례에서 일부 잔금은 이튿날 거사결과가 확인되고 나서 주고 받기로 하고 이들은 헤어졌다. 그런데 악인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장여인은 죽지 않았다. 한달 치료가량의 상처만 입은 것이다. 『!』-. 자매는 당황했다. 주·정 하수인을 곧 호출했다. 장담과는 달리 낭패가 된 결과에 주·정은 동성로일대의 D다방 S다방으로 사흘동안이나 신자매에게 불려다니면서 호된 꾸중을 들었다. 이미 공모자가 된 그들 처지로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던 10월24일 밤8시쯤 N다방에서 신명희의 똑같은 성화를 또한번 당하고 있던 주는 문득『큰누부요, 이번엔 틀림 없을테니 총만 얻어주이소』하고 엉뚱한 제의를 했다. 뜻밖의 살인실패에 당황…이번엔 엽총 훔쳐줬으나 주의 속셈은 구하기 힘든 총을 핑계삼아 적당한 시기에 손을 뗄 심산이었다. 그러나 한동안 궁리에 잠겨만 있던 신은 주의 속셈과는 달리 새로운 조건을 선뜻 받아주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시숙이 가지고 있는 엽총이 떠올랐던 것이다. 두자매가 장여인을 죽이기로 모의한 것은 하수인의 첫 범행이 있기 4일전인 10월16일의 일. D백화점에서 화장품상 2년만에 다털어먹고 빚만 1백10만원을 걸머지고 갚을 수 없게 되자 하수인을 사서 돈준 사람을 없애기로 합의한 것-. 이때 공동투자를 한 언니와 동생이 진 빚은 본전만해도 6백만원. 이 돈을 도저히 갚을 수 없게 된 언니 신명희는 그중 장여인의 돈을 떼어먹기 위한 수단으로 장여인의 남편 남모씨(31)에게『사랑한다』는 편지를 여러번 부치기도 하고 다방으로 불러내어 은근히 동침하기를 비쳐 유혹하곤 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 오히려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장여인의 빚독촉은 질투까지 곁들여 더욱 빗발치게 만든 결과만 냈다. 줄 돈은 없는데 유독 재촉이 불같은 장여인이 겁나 자매는 집에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여인숙으로만 피해다닐만큼 궁지에 빠졌다. 그러다가 짜낸 것이 장여인만 없으면 친척들에게 진 빚 5백만원도 무난히 떼어먹고 배짱을 내밀 수 있다는 그녀들 나름의 살인하청 계산서-. 망설이는 하수인 못믿어 몸으로 마음잡아 두려고 하수인으로는 장사를 할 때 자연 얼굴을 익혔던 교동시장의 불량배 주와 정이 지목됐다. 그날(10월16일 하오2시)로 동생 신명자는 주등 2명을 대구역전 N다과「홀」에 불러 일금 10만원에 해치우기로 살인협상이 이뤄졌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주등은 일찍 소년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뜨내기 건달들. 감쪽같을 완전범죄의 기회만을 노렸다. 드디어 며칠 안가 장여인의 남편 남씨가 서울에 일보러간「찬스」가 왔다. D「데이」인 10월20일, 사건이 나기 바로 1시간전 두여인은 장여인집 근처 봉덕동 O약국 골목 어두운 길에서 선금3만원과 함께「재크·나이프」와 과도를 하수인에게 쥐어주었다. 그러나 일은 상처만내고 실패했다.악착같은 두자매는 그래도 집념을 못버렸다. N다방에서 주에게 약속한 엽총을 4일만인 10월28일 시내 서변동에 있는 그녀의 시숙집 어린애를 꾀어 빌어냈다. 그런데 엽총을 받아쥔 주의 표정은 어쩐지 굳어만 있었다. 『첫번째 일이 안되자 정(공범)이 장여인에게 귀뜀한 것같다』는 주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그의 말이 진짠지 가짠지를 가려내기 앞서 우선 주의 마음이라도 붙잡아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밤으로 그녀는 주를 수성유원지 뒷산까지 유인해 자기를「큰누나」로 불렀던 연하의 공범자에게 몸을 주면서 또하나의 살인까지 명령했다. 즉『정이 배신할 것같으니 일이 끝나는대로 그마저 없애면 돈을 더주겠다』고. 몸으로 하수인의 마음을 다짐하는 수차의 간통까지 해가며 끈질기게 기도해온 이 살인 음모가 약 50일만에 들통난 것은 문제의 엽총 때문이었다. 엽총 잡히던 하수인걸려 처음엔 입을 다물었으나 (장여인의 피해를 경찰은 엉뚱한 강도살인 미수로보고 수사를 폈기때문에 이 음모는 묻힐 수밖에 없었던 것-) 받았던 선금이 떨어져 용돈이 아쉬웠던 주·정은 지난 12월초 맡아둔 엽총을 시내 북성로1가 모총포사에 잡히고 1만1천원을 빈 것이 덜미를 잡히는 계기가 됐다. 주인은 엽총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두 젊은이를 경찰에 고발했다. 바로 주·정은 절도혐의로 구속됐으나 며칠동안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의 누님(모여관종업원)이 면회를 왔다. 이 자리에서 정은 신자매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는가를 물었다. 뒷일은 보아줄 것으로 믿었던 정은 배신의 분노를 느끼자 모든 전말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때까지 시내 태평로 일대의 여인숙을 전전해 숨어다니던 미모의 악녀 자매의 손목에 마침내 쇠고랑은 채워졌다. 『남편을 도와 살림을 꾸리려던 것이 이 꼴이 됐다』고 두여인은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있는대로 털어먹고 호사를 했는지 몰라도 6백만원의 빚을 진 가정치고는 두집 모두 해놓은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수사관들의 뒷이야기. 가정주부인 두자매가 꾸민 이 엄청난 음모를 뒤늦게나마 눈치챘던 남편들은 그들이 붙잡히기 얼마전 먼저 이혼을 해버렸다. [선데이서울 70년 12월 27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7호]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3) 명과 후금의 정세 Ⅰ

    조선이 모문룡의 작폐에 시달리고 있던 정묘호란 무렵 대륙의 정세는 어떠했는가? 1621년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요동 전체를 장악했다. 후금은 요동 벌의 중심인 심양(瀋陽)으로 천도하여 산해관까지 넘볼 기세였다. 명은 분명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명의 내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당쟁은 격화되었고 환관들은 날뛰고 있었다. ●격화되는 黨爭 1620년 7월 명의 만력제(神宗)가 죽었다. 제위에 오른 지 48년만이었다. 장남 주상락(朱常洛:1582∼1620)이 즉위하여 연호를 태창(泰昌)으로 고쳤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만력제의 암우(暗愚)와 태정(怠政)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태창제(光宗)에게 기대를 걸었다. 태창제는 즉위 직후 내탕(內帑)에서 100만냥의 은을 풀어 누르하치를 방어하고 있는 요동의 장사들에게 지급하고, 악명 높았던 광세사(鑛稅使) 등의 파견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조야는 감동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태창제는 즉위한 지 한달 만에 급사하고 말았다. 다시 태창제의 아들 주유교(朱由校)가 즉위하니 그가 곧 천계제(天啓帝) 희종(熹宗)이다. 만력 중반부터 천계 연간까지 명 조정의 당쟁은 격렬했다. 비운의 황제였던 태창제의 존재와 급사는 당쟁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만력제는 정비(正妃)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고 후궁들에게서 얻은 5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주상락은 왕(王)씨 성을 지닌 궁녀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만력제는 왕씨와 주상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만력제는 정귀비(鄭貴妃)와의 사이에서 난 삼남 주상순(朱常洵)을 총애했다. 그는 주상순을 황태자로 세우려고 했다. 신료들은 ‘장유(長幼)의 순서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당시 명 예부가,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는 조선의 요청을 계속 거부한 것도 이 문제와 연관이 있었다.‘차남’ 광해군을 승인할 경우, 만력제가 ‘삼남’ 주상순을 책립(冊立)하는 것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상락의 황태자 책립은 19년 동안이나 미루어졌고, 그는 1601년에야 비로소 황태자가 되었다. 황태자가 된 이후에도 그는 파란의 한 가운데 있었다.1615년 장차(張差)라는 괴한이 주상락의 거처에 몽둥이를 들고 난입하여 그를 위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일이 벌어졌다. 황태자를 해치려 했던 엄청난 사건임에도 재상 방종철(方從哲) 등은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규명하려 들지 않았다. 사건의 배후에 정귀비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동림당(東林黨) 계열의 신료들은 방종철 등을 탄핵했다. 이 사건을 ‘정격안(檄案)’이라고 한다.‘안(案)’이란 사건을 가리킨다. 태창제의 급사 원인을 둘러싼 당론(黨論)도 치열했다. 태창제는 병석에 누운 뒤, 이가작(李可灼)이란 관인이 바친 붉은 환약(紅丸)을 복용했다. 홍환 복용 후 황제가 급사하자 다시 치열한 논란이 빚어졌다. 동림당 관인들은 시약(侍藥) 업무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방종철을 공격했고, 방종철을 옹호하는 관인들은 황제의 죽음이 홍환과는 관계가 없다고 맞섰다.1625년(천계 5)까지 이어진 치열한 논란을 ‘홍환안(紅丸案)’이라 부른다. 태창제 사후, 그가 총애하던 후궁 선시(選侍) 이(李)씨는 황자 주유교를 자신의 거처인 건청궁에 감추었다. 주유교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빌미로 환관 위충현(魏忠賢)과 연결하여 조정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동림당 계열은 그 같은 기도에 반발하여 주유교를 이씨에게서 떼어내고, 이씨를 별궁으로 옮기게 했다. 이 과정에서 또한 격렬한 정쟁이 빚어졌는데 그것이 ‘이궁안(移宮案)’이다. ●東林黨과 奄黨 ‘정격안’,‘홍환안’,‘이궁안’을 아울러 삼안(三案)이라고 한다.‘삼안’을 놓고 명 조정의 관료들은 수많은 장주(章奏)를 올려 논쟁했고 그 과정에서 당쟁은 격화되었다. 천계 연간(1621∼1627) 명 조정에는 절당(浙黨), 초당(楚黨), 선당(宣黨), 제당(齊黨), 곤당(昆黨) 등 여러 당파가 있었지만 당쟁의 중심은 동림당과 엄당이었다. 동림당은 만력 초기 재상이었던 장거정(張居正)의 전횡에 반대, 도전했던 청의파(淸議派) 관료인 고헌성(顧憲成), 추원표(鄒元標), 조남성(趙南星)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장거정이 죽은 뒤에도 내각과 환관들의 비정을 비판했다. 동림당은 강소성(江蘇省) 무석(無錫)에 있는 동림서원(東林書院)을 거점으로 삼았다. 주자학 강학(講學)을 통해 자파 세력을 결집하는 한편, 조정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그들이 황태자 책립, 인사, 요동 방어 등 다양한 문제를 놓고 내각이나 환관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당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엄당은 환관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타무라 다이스케(三田村泰助)는 환관을 가리켜 ‘만들어진 제3의 성(性)’이라고 표현했다. 환관 가운데는 종이를 발명한 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나 명 초기 아프리카까지 이르는 대원정(大遠征)을 주도했던 정화(鄭和)처럼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환관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환관이 맡은 일은 천한 것이었지만 때로 천자나 후궁과의 연결을 통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궁극에는 국가의 명운마저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자들도 나타났다. 명대에 특히 환관의 폐해가 심했다. 왕진(王振), 유근(劉瑾), 위충현 등이 대표적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삼안’처럼 궁정의 문제가 정쟁의 현안이 될 경우, 환관들이 그 과정에 개입하고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높았다. 천계 연간 위충현이 엄당을 이끌며 조야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유명하다. ●끔찍한 魏忠賢의 시대 위충현(?∼1627)은 하북성(河北省) 숙녕현(肅寧縣)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 무뢰배였던 그는 도박에 모든 것을 탕진한 뒤, 스스로 환관이 되었다. 본래 이진충(李進忠)이었던 이름도 위충현으로 바꾸었다. 천계제가 즉위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날로 높아졌다.1621년 사례감(司禮監)의 병필태감(秉筆太監)이 되었다. 환관들의 수장 격이었다. 그는 황제 직속의 비밀 경찰인 동창(東廠)의 책임자도 겸했다. 1624년, 동림당원 양련(楊漣)은 위충현을 탄핵했다. 그에게 스물 네 가지의 잘못이 있다고 했다. 위충현은 동창의 책임을 사임하는 등 일단 몸을 낮춰 위기를 벗어났다. 이윽고 천계제의 신임이 회복되자 보복이 시작되었다. 위충현은 1625년 동림당의 핵심 인물인 양련, 좌광두(左光斗), 원화중(袁化中), 위대중(魏大中), 주조서(周朝瑞), 고대장(顧大章) 등 6인을 ‘수뢰’ 혐의로 탄핵했고, 곧 이들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다. 위충현의 심복 허현순(許顯純)은 이들에게 상상을 초월한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고문을 못 이겨 고대장은 자살했다. 차라리 그가 행복했다. 나머지 5명의 시신은 전부 문드러졌다. 위충현은 1626년에도 옥사를 일으켰다. 고반룡(高攀龍), 주순창(周順昌), 황존소(黃尊素) 등 7명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고반룡은 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나머지 6명은 예의 혹형을 받았다. 환관들이 금의위(錦衣衛)에서 행한 고문은 잔혹했다. 끌려온 자들에게 5가지의 도구를 이용하여 혹형을 가한 후 가죽을 벗기기도 했다고 한다. 주순창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위충현을 비판하다가 이를 모두 뽑혔다. 동림당을 탄압하면서 위충현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 배경에는 천계제의 방임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림서원을 비롯한 동림당의 근거지는 파괴되었고, 각 지역에는 위충현을 모시는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졌다. 모문룡도 가도에 위충현을 기리는 생사당을 세웠다. 위충현의 전횡에 절망한 관료들은 사직했고, 변방의 지휘관들 상당수는 누르하치에게 귀순했다. 누르하치의 철기(鐵騎)는 달려오고 있는데 명은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한명기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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