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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컴퓨터 세터’ 과외, 고속 토스 이끌다

    ‘컴퓨터 세터’ 과외, 고속 토스 이끌다

    “모든 면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행복했어요.” 프로배구 여자부 IBK기업은행 세터 김하경(26)은 2021~2022시즌 V리그 여자부에서 가장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 선수다. 만년 백업 세터였던 김하경은 시즌 초 조송화(29)의 공백으로 갑작스레 주전으로 투입됐다. 처음에는 부담이 앞섰다. 시즌을 풀타임으로 뛰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력은 당연히 불안했다. ‘컴퓨터 세터’ 출신 김호철(67) 감독의 등장은 김하경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김하경은 작전타임 때마다 ‘불호령’의 집중 타깃이 됐다. 김 감독은 매번 거친 표현으로 김하경을 다그쳤다. 김하경은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감독님은 경기를 운영하는 법 등 세터의 모든 면을 강조한다”며 “감독님의 질책에도 기가 죽거나 무섭지는 않다. 오히려 정신이 바짝 들 때가 있어서 좋다”고 웃었다. 김 감독의 ‘특별과외’는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 냈다. 발동작부터 근육 사용법까지 처음으로 돌아갔다. 안정적인 토스로 경기력이 살아난 기업은행은 후반기에 강팀으로 변신했다. 팬들은 김하경의 성장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김하경은 “토스 속도가 빨라진 게 제일 발전한 부분인 것 같다”며 “상대팀 블로커가 따라붙기 전에 공격하는 모습이 나오는 등 공격수들과의 호흡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프로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했던 김하경은 배구 포기를 고민했다. 방황 끝에 2017년 실업팀에 입단했다. 실업 무대는 전화위복이 됐다. 김하경은 “대구시청에서 주전으로 뛰다 보니 배구에 다시 재미를 느꼈다”며 “다시 프로에 가면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했다”고 회상했다. 김하경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김 감독은 최근 김하경에게 “비시즌에 제대로 해 보자”라며 본격적인 ‘지옥 훈련’을 예고했다. 기술적 부분을 보완한 김하경은 이제 경기 운영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다음 시즌엔 ‘운영을 잘하는 세터’가 되는 게 목표다. 기술과 달리 자신이 직접 깨달아야 하는 부분인 탓에 어려움도 각오하고 있다. 김하경은 “감독님과의 훈련이 얼마나 힘들지 걱정도 되지만 기대가 더 크다”며 “컴퓨터 세터의 가르침대로 따라가면서 안 되는 게 있으면 스스로 보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BTS도 반했다… ‘空의 조각’ 속 꽃핀 삶의 본질

    BTS도 반했다… ‘空의 조각’ 속 꽃핀 삶의 본질

    ‘범인에게는 침을, 바보에게는 존경을, 천재에게는 감사를.’ 한국 근현대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는 1971년 자신의 아틀리에 벽에 이런 낙서를 남겼다.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알려졌지만 바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우직하게 한길을 걸었던 작가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고독하게 예술혼을 불태웠다. 지난 24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막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는 한평생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 존재하는 본질을 끈질기게 추구했던 권진규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노실’(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방)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전시장은 작가 아틀리에의 우물과 가마를 형상화해 만들어졌고 1950~1970년대까지 그가 만든 조각, 회화, 드로잉 등 240여점이 전시됐다. ‘노실의 천사’란 그가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하려고 했던 이상, 즉 순수한 정신적 실체를 뜻한다. 오는 5월 22일까지 계속되는 전시는 권진규 개인전 중 역대 최대 규모로 1947년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에 입문한 성북회화연구소 시절부터 1973년 5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만든 주요 작품을 총망라한다. 동물상, 여성 두상과 흉상, 자소상, 부처와 예수상, 승려상 등의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전시하며 주요 제작 기법인 테라코타와 건칠 작품 제작 과정도 소개한다. 전시작은 유족의 기증품 외에 기관과 개인 소장품으로 이뤄졌다. 여기엔 미술 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소장한 ‘말’(위·1965년 제작 추정)도 포함됐다. 전시는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해 ‘입산’, ‘수행’, ‘피안’ 등 세 시기로 구성됐다. 교과서에도 실린 ‘지원의 얼굴’을 비롯해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스카프를 맨 여성’, 건칠 기법으로 제작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이중섭의 ‘황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흰소’ 등 대표작들이 전시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고려대 박물관을 찾아 한참을 응시했던 것으로 알려진 ‘가사를 걸친 자소상’(아래)에서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작가의 평화로운 미소가 긴 여운을 남긴다. 권진규는 리얼리즘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성을 추구한 작가였다. 여성의 모습도 수동적으로 그리지 않았고 작품 곳곳에 자신만의 유머도 심어 놓았다. 그는 아틀리에 옆 조그만 방에서 자신이 추종했던 프랑스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의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수행하듯 작품을 만들었다. 작가의 치열한 탐구 정신이 담긴 메모와 기록들도 함께 전시됐다. 세속을 떠나 고독한 미술의 세계로 들어섰던 작가는 한국 화단의 몰이해로 인해 좌절하고, 불교에 침잠하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인생은 공(空)’이라고 적힌 마지막 메모에서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깊은 고뇌가 전해진다. 전시를 기념해 작가가 마지막까지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성북구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가 매주 토요일 특별 개방된다. 다음달 특별 공연과 학술대회도 열린다.
  • [영상] 샘 해밍턴 아들 윌리엄, 폭풍 성장한 근황 공개

    [영상] 샘 해밍턴 아들 윌리엄, 폭풍 성장한 근황 공개

    방송인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6)군이 ‘폭풍 성장’한 근황이 공개됐다. 지난 26일 윌리엄 인스타그램에는 “독학으로 집에서 공부 중. 이제 아날로그와 디지털시계까지 조금씩 볼 수 있어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에는 윌리엄이 시간 읽기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느새 훌쩍 커서 이제 아기 때 모습을 벗고 의젓한 어린이가 된 윌리엄은 연필을 귀에 꽂고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함께 올라온 영상에서는 윌리엄이 느리지만 또박또박 시간을 읽는 모습도 담겨 미소를 자아냈다. 샘 해밍턴 가족은 지난 1월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차했으며 현재는 유튜브를 통해 아이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 ‘류현진 ♥’ 배지현, 눈웃음 닮은 딸과 함께 한 근황 [EN스타]

    ‘류현진 ♥’ 배지현, 눈웃음 닮은 딸과 함께 한 근황 [EN스타]

    방송인 배지현이 딸과 함께 남편 류지현을 응원했다. 26일 배지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스프링캠프 첫 야구장 방문. 아빠, 야구, 아자아자, 짝짝까지 응원 가능. 다같이 잘 해보자 올 시즌”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배지현이 22개월이 된 딸과 함께 류현진이 선발 등판한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이 담겼다. 배지현은 뒤를 돌아보며 자신과 딸을 바라보는 류현진의 모습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22개월 된 딸의 환한 눈웃음 또한 보는 이들을 미소짓게 했다. 한편, 류현진과 배지현은 지난 2018년 결혼해 지난 2020년 5월 딸을 얻었다.
  • 유부남 축구선수 불륜 루머에…조현우 아내 “짝사랑 이상무”

    유부남 축구선수 불륜 루머에…조현우 아내 “짝사랑 이상무”

    예능 프로그램 ‘애로부부’에서 불륜남으로 등장한 국가대표 출신 축구선수 A씨의 사연과 관련해 조현우의 아내가 남편과는 관계가 없다며 해당 루머를 일축했다. 조현우의 아내는 지난 22일 인스타그램에 “짝사랑 이상무”라는 글과 함께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린 책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조현우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어 “여전한 누나바라기. DM(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 안 주셔도 된다. 이 분은 명품 안 좋아하고 신상 핸드폰만 좋아한다”며 조현우가 ‘애로부부’ 사연 속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찐사랑꾼 조현우로부터’, ‘애로부부가 뭐고’, ‘사랑인 걸’이라는 해시태그를 덧붙였다. 조현우의 아내는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킨 ‘애로부부’ 속 내용이 조현우와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9일 방송된 채널A ‘애로부부’에서는 연봉 수십억 원에 달하는 국가대표 출신 K리그 축구선수 A씨가 무명 시절부터 곁을 지키며 내조해 온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했다는 사연이 소개됐다. 사연 속 축구선수는 재활 치료를 하다 인연을 맺은 트레이너와 불륜 관계로 발전했고, 생활비를 끊는 등 경제적으로 압박하며 아내에게 이혼을 종용했다. 아내는 자신과 처자식을 외면한 남편의 이미지를 위해 자기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대외적으로는 가정적이고 딸 사랑이 지극한 이미지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불륜을 일삼았다는 내용은 시청자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후 일부 축구 선수들이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 비장함 대신 환한 미소로… 조국 독립의 ‘영원한 쾌락’을 선택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 서울을 걷는 시간]

    비장함 대신 환한 미소로… 조국 독립의 ‘영원한 쾌락’을 선택했다[김별아의 도시 기행문 서울을 걷는 시간]

    한 사내가 있었다. 잔인한 20세기가 시작되던 해 유달리 덥던 여름에 세상에 났다. 아버지는 소실을 둘씩이나 거느린 한량이었다. 어머니는 사랑을 잃고 의기소침한 여인이었다. 배다른 형제까지 6남 1녀, 아무도 병약한 둘째 아들을 귀애하지 않았다. 바람과 함께 컸다. 먼지덩이처럼 구르며 자랐다. 귀 얇은 아버지가 교활한 일본인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은 몰락했다.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았다. 열다섯 살에 몰씬한 단내를 좇아 일본과자점에 취직했다. 화과자와 찹쌀모찌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뻤지만 가난한 점원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열일곱 살의 생일은 말라리아와 함께 왔다. 열병 끝에 관절염이 생겼다. 이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뼈마디부터 저리고 아팠다. 짧은 생애가 삐걱거렸다.(졸저 ‘백범’ 중에서)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후대의 일이다. 민족 혹은 국가, 어떤 공동체가 역사의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과거보다 현재의 의미 때문이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선양 사업은 잘난 자손의 가업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자손이 없거나 한미하면 같은 일을 하고도 역사의 어둠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고향의 지자체에서 자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그조차 복불복이다.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다. 우당 이회영 같은 명문거족 출신은 아니더라도 백범처럼 부모의 총애를 담뿍 받았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윤봉길처럼 고향의 뿌리와 월진회를 조직해 함께 활동한 동지들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복형제까지 더해 7남매 중의 둘째 아들, 용산에서도 일본 오사카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떠돌이, 안팎 어디서나 누구라도 그에게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을 게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으니 빚도 없었다. 그 고독한 바람의 사내 이봉창이 여기 있었다. ‘이봉창 집터: 독립운동가 이봉창(1901~1932)이 살던 집터이다. 이봉창은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명중시키지 못하였고, 그해 10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하였다.’ 효창공원역 1번 출구 귀퉁이 화단에 더부살이했던 부정확한 표석은 철거됐고, 새로운 표석이 2018년 사용 승인된 용산KCC스위첸아파트 102동 3·4호 라인 현관 맞은편 화단에 자리잡았다. 이봉창 의사는 경성부 용산방 원정2정목(현 원효로2가)에서 태어나 경성부 금정(현 효창동) 118번지에서 열한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살았다.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번지수가 불명확해진 탓인지 일부 인터넷 지도에는 집터와 생가터의 표기가 혼동돼 있다. ‘이봉창 집터’ 표석이 있는 102동 앞에서 후문으로 빠져나와 경사진 언덕길을 내려오면 ‘이봉창 역사울림관’이 있다. 거리로는 멀지 않은데 아파트 벽으로 막혀 있으니 아쉽다. 효창공원역 1번 출구에서 접근하면 역사울림관을 먼저 보고 표석을 찾는 동선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역사울림관이 12시부터 13시까지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걸 모르고 갔다가 1시간을 꼬박 밖에서 기다리게 됐다. 기념관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기에 그냥 돌아갈까 망설였다.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적은 패널과 사진, 기념품 몇 점을 전시한 재미없는 공간이 내가 기억하는 기념관의 전부였다. 그래도 2021년 10월에 개관했다니 뭐라도 다를까 궁금하고, 작은 뜰 앞 툇마루에 놓인 푹신한 방석이 마음에 들어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햇살은 따스하고 사위는 고즈넉하다. 거리를 향해 놓인 벤치에는 두 사람의 실루엣으로 조각이 앉아 있는데, 버튼을 누르니 녹음이 흘러나온다.“군은 무엇인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 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묻는 사람은 백범이고 답하는 사람은 이봉창이다. 쾌락을 말하는 이봉창의 말에는 허무가 묻어 있다. 허랑하고도 방탕하게, 분진으로 가득한 누항을 떠돈 자의 지독한 피로다. 이봉창의 모습은 전형적인 운동가의 그것이 아니었다. 조직은커녕 소개인이나 소개장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청사를 찾아와 일본인들이 부르는 ‘가정부’(假政府)라는 이름으로 임시정부를 찾았다. 일본말과 조선말을 섞어 쓰는가 하면 엔카를 멋들어지게 불러서 ‘일본영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오리 바람에 게다짝을 끌고 청사에 들어오려다 중국인 문지기에게 쫓겨나기까지 했다. 모두가 오해했다. 많은 이가 의심했다. 하지만 백정선이라는 가명을 쓰던 한 사람, 백범만은 그의 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비장한 태도와 결기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마지막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의지는 굳건했다. 그는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단순하고, 선명하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자유로운 이봉창만의 방식이 있었다. 백범의 매서운 눈빛을 어린아이처럼 맞받으며 반달눈으로 빙긋이 웃던 이봉창은 그렇게 한인애국단 1호 단원이 됐다.‘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 백범의 원칙은 명확했다. 미주와 하와이, 멕시코와 쿠바에 사는 동포들이 보내준 피 같은 돈을 일체의 망설임 없이 이봉창에게 건넸다. 돈은 정직하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은 모험이다. 그러나 그만큼 의미 있는 모험이었다. 이봉창은 난생처음 진정한 믿음을 얻었다. “엊그제 선생께서 속주머니를 뒤집어 천여 원의 거액을 제게 주셨지요. 그 돈을 받고 돌아가서는 온밤을 잠들지 못하였습니다. 눈물이 절로 흐르더이다. 누더기 단벌 장삼에 굶기를 밥 먹듯 하는 형편을 뻔히 아는데, 대관절 저를 어떻게 믿고 이같이 큰돈을 털컥 맡기십니까? 프랑스 조계에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하는 선생께서는 제가 이 돈을 가지고 달아나 마음대로 써버려도 찾으러 오지 못하실 테지요. 과연 영웅의 도량이로소이다! 제 평생에 누가 저를 이토록 믿어 주었겠습니까? 이토록 두터운 신임을 받은 것은 선생께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기다리길 잘했다. 두 칸짜리 한옥 크기의 이봉창 역사울림관은 평면적이고 지루하다는 기존 기념관에 대한 편견을 깬 작지만 새로운 공간이었다. 바닥에 그려진 발 모양에 맞춰 의사의 흉상을 마주 보고 서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겠다’는 선서문이 들린다. 한인애국단 단원이 돼 사진을 찍는 증강현실(AR) 체험과 1932년 1월 8일 일왕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지는 현장에 함께하는 가상현실(VR) 체험(VR은 기술적 측면에서 조금 더 개선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을 할 수 있다. 이봉창 의거와 사형 집행, 해방 후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기까지의 신문 기사들을 여닫이창을 화면 삼아 띄워 볼 수도 있다. 직접 가보지 못한다면 인터넷을 통한 3D 체험도 가능하다(https://my.matterport.com/show/?m=T9Wk7zuBySz). 오롯이 이봉창 의사를 기리는 공간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제는 그 사내도 영원한 쾌락 속에서 편히 쉬리라. 바람 끝이 많이 따뜻해졌다. 바야흐로 봄인가 보다. 소설가
  • 추성훈, 두 달 만에 13kg 감량한 근황 “죽기 살기로 빼기”

    추성훈, 두 달 만에 13kg 감량한 근황 “죽기 살기로 빼기”

    일본 모델 야노시호가 가족 근황을 공개했다. 지난 22일 야노시호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2개월 만에 13㎏ 감량하고 챔피언십에 나가기로 마음먹은 아빠. 오늘 싱가포르로 떠났다. 죽기 살기로 살 빼기. 얼마 남지 않았다. 응원 부탁드린다”는 글과 함께 사진 여러 장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 추성훈은 급격하게 살을 빼 수척해진 모습이다. 그의 옆에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내 야노 시호와 딸 사랑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한편,추성훈은 오는 26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원챔피언십(ONE Championship) 종합격투기 라이트급에 출전한다.
  • [열린세상] 보챈다고 쌀이 밥이 되나요/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열린세상] 보챈다고 쌀이 밥이 되나요/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모내기철이 다가온다. 뭣 모르고 첫 손모내기를 했던 그해가 떠오른다. 4월 어느 우박이 떨어지던 날 몇 명의 일꾼들이 줄을 맞춰서서 나란히 모를 심었다. 가뜩이나 질퍽한 논바닥에 비가 내려 발이 빠지고 온몸이 다 젖어도 피부와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때부터였다. 쌀이 한 톨 한 톨 소중해진 게. 밥을 맛있게 잘 지어 보자 마음먹은 게. 밥을 잘 짓는 일만큼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게 없다. 밥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다양하다. 일단 쌀은 ‘품종과 산지, 재배 방법, 건조와 저장, 도정, 농약, 수확과 탈곡’ 순으로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쌀 봉지에 새겨진 ‘품질 표시 사항’을 기준으로 품종, 산지, 생산 연도, 도정일, 등급과 단백질 함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등급은 깨지거나 금이 가지 않은 온전한 쌀 낱알, 즉 ‘완전미’가 많이 포함돼 있을수록 높은 등급으로 표기돼 구입 시 참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쌀을 관리하는 정미소나 종합미곡처리장(RPC)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단백질 함유량이 높을수록 밥맛이 부드러워 높은 성적으로 평가되지만, ‘성적’이 아닌 품종의 특성, 즉 ‘감상’으로 여기는 것이 좋다. 그런고로 결국 생산 환경적 요인을 제외하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요소는 품종과 도정 일자 정도로 추려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구잡이로 섞인 혼합미가 아닌 싱글오리진(Single Origin), 즉 단일품종의 쌀을 도정 일자 기준으로 2주 내에 모두 다 먹을 수 있는 만큼 사서 밥을 잘 짓는 것이다. 그다음 이제 밥을 지을 차례다. 주 재료를 잘 골랐으니 이제 밥맛은 우리 손에 달렸다. 쌀 불림, 쌀 씻기, 밥솥의 종류, 밥 짓는 물, 취반(炊飯), 뜸들이고 섞기, 담기 등에 영향을 받는다. 일본에서 스시를 배우고 온 어느 셰프는 초밥용 밥 ‘샤리’를 위해 하루 반나절씩 1년 넘도록 쌀 씻는 법을 배우고 익혔다고 했다. 그는 첫 물은 가장 깨끗한 물로 빨리 헹구어 버리며 이때 물은 경수, 연수, 알칼리수 등을 골라 쓰는데, ‘탄산수’로 헹구고 지은 밥맛이 가장 좋았다고 일렀다. 잘 헹궜으니 말간 물이 나올 때까지 쌀알이 부서지도록 살살 씻어야 밥맛이 무너지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너 번 대충 씻으라고 학습된 우리에겐 쌀을 씻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질지라도 묘수는 없다. 어떤 감으로 씻어야 할지 아리송하다면 손으로 머리카락을 린스하듯 씻거나 쌀 씻는 도구를 사용할 것. 맑게 씻은 쌀을 채반에 받쳐 물기를 제거한 뒤 30분 정도 불린다. 불리는 과정은 수분 흡수율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요리 용도에 맞게 물에 불리는 시간을 줄이거나 늘리고 수분을 제거한 뒤 저온 숙성시키기도 한다. 이제 밥솥을 골라 불린 쌀과 적정량의 물을 계량해 넣고 밥을 지을 차례다. 가마솥부터 냄비까지 다양한 밥솥은 열전도율과 압력에 따른 차이가 있다. 용도와 취향껏 골라 쓰면 된다. 이제 마지막 뜸을 들일 차례. 뜸은 밥알에 잔열이 고루 전달돼 남은 수분을 줄이고 윤기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데, 이를 밥하기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쌀을 잘 골라 씻고 불리고 그저 익힌다 해도 뜸을 들이지 않으면 맛있는 밥을 먹기 어렵다는 말이다. 순차대로 기다리면 따끈따끈 쌀알이 살아 있는 맛있는 밥 한 공기를 누릴 수 있을 텐데, 급하게 서둘러 봤자 설익은 밥을 먹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쌀을 기르고 나르고 고르고 다루고 먹기까지 무엇이든 모든 것엔 순서가 있고 그 과정에는 이유가 있다. 쌀 한 톨 한 톨이 소중한 줄 알아야 보다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보챈다고 쌀이 밥이 되진 않는다.
  • [STOP PUTIN] 젤렌스키 “우리가 나치라니, 푸틴이야말로 ‘정보 거품’ 갇혀”

    [STOP PUTIN] 젤렌스키 “우리가 나치라니, 푸틴이야말로 ‘정보 거품’ 갇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주 모스크바 아레나에서 전쟁 지지 집회를 개최했을 때 그의 연설 모습 뒤로 “나치 없는 세상을 위해. 러시아를 위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어른거렸다. 침공 4주 가까이 흘렀지만 푸틴 대통령의 침공 명분은 이런 주장에 기초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약물 중독자와 네오 나치 무리”에 장악돼 “쪼그만 나치들”과 “노골적인 네오 나치”란 것이었다. 크렘린은 완력으로라도 우크라이나를 “탈(脫) 나치화”하는 것이 침공 목표라고 떠벌여왔다. 이런 주장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야후! 뉴스의 블로거 욘델이 20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의 민주 정부는 세계 무대에서 유대인 지도자가 가장 적은 정부이며 오히려 러시아야말로 현실을 왜곡해 이웃나라를 침공한 것을 끝까지 정당화하는 전체주의 정부의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파리드 자카리아 CNN 앵커와의 20일 인터뷰 도중 나치와 싸웠던 가족사를 털어놓으며 되레 크렘린이 나치와 비슷한 군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소 짓거나 웃을 일이 아주 없다. 내가 그런 얘기를 듣자면 허튼 소리인가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잠시 멈추더니 더 암울한 얘기, ‘정말 푸틴이 그렇게 믿고 있으면 어떡하지’라고 덧붙였다. “내 생각에 지금 푸틴은 ‘정보 거품’에 처해 있는 것같다. 일종의 ‘정보 벙커’라고 본다. 그렇게도 막강하니까 그는 진짜 우크라이나인들이 네오 나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겐 우스운 얘기이기도 하지만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2차 세계대전 때 가족사를 꺼냈다. 할아버지와 그의 네 형제 모두 나치와 싸우려고 전선으로 향했다. 우크라이나 영토 전역이 나치의 발 아래 있었다. 그는 “그들은 파시즘과 싸우고 싶어했다. 형제 모두가 숨을 거뒀다. 우리 할아버지만 살아 남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끔찍한 화재에 희생됐다. 나치는 그들이 살아왔고 우리 할아버지가 태어난 마을 전체를 불살랐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을 나치라고 부르는 러시아인들이 자신의 가족사를 보고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러시아 연방의 일부 정치인이 네오 나치즘과 파시즘을 나와 결부시키고 있다. 내 전기는 공개돼 있다. 모두가 내 전기를 잘 알고 있다. 오픈 소스를 통해 우리 가족에 관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의 친척에 관해서도 그런가?” 그는 또 러시아 군이 옛소련 시절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봉쇄하는 것과 같은 나치 전술을 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몇년에 걸친 봉쇄 여파로 15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더욱이 푸틴이 그 도시 태생이며 그의 조상들 역시 봉쇄로 고통 받았다. 러시아 군이 전략 요충 마리우폴을 계속 포위해 식량난과 식수난 같은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민간인들이 피신한 곳마저 포격하고 있다. 생존자들에게 남은 희망이 급격히 바닥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인들이 이 순간 네오 나치처럼 굴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나치가 한 일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키이우를 막았다. 그들은 다른 도시들에 식품과 식수 공급을 가로막았다. 러시아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마리우폴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레닌그라드가 봉쇄됐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 음식과 물이 충분히 없었다. 이게 정확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 누가 나치냐?”
  • 박진영, 일본서 돌발 상황…“비행기 승객 중 확진자 나와 격리”

    박진영, 일본서 돌발 상황…“비행기 승객 중 확진자 나와 격리”

    가수 겸 JYP 대표 프로듀서 박진영이 일본에서 근황을 전했다. 박진영은 지난 2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세 번의 유전자 증폭(PCR) 검사, 7일간의 격리 끝에 드디어 여러분들을 만난다”라며 “너무나 돌발 변수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만날 수 있게 되서 정말 기쁘다”라고 전했다. 그는 “나고야, 후쿠오카에서 저를 기다리신 분들께 죄송하다”라며 “비행기 승객 중에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격리가 길어졌다,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모셔서 꼭 만나겠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 마지막 프로젝트가 니지프로젝트 였는데, 코로나 사태가 조금 진정되면서 하게된 첫번째 프로젝트가 또 니지 프로젝트다”라며 “이번에 또 어떤 꿈나무들을 만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히로시마에서 만나자”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박진영은 자신의 셀카 사진을 개제하며 밝은 미소로 근황을 전했다. 또한 그는 ‘#니지프로젝트2’라고 덧붙이며 일본에서 프로젝트에 들어갔음을 알리기도 했다. ‘니지 프로젝트’는 2019년 JYP가 일본 소니뮤직의 업무 협약식을 기점으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젝트로 2020년 걸그룹 니쥬(NiziU)를 배출해낸 바 있다. 시즌2는 보이그룹 탄생을 목표로 하며, 올 3월과 4월 일본에서 오디션을 진행한다.
  • ‘금의환향’ 우상혁 “다음은 세계선수권, 그 다음은 파리올림픽 金”

    ‘금의환향’ 우상혁 “다음은 세계선수권, 그 다음은 파리올림픽 金”

    한국 최초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남자 높이뛰기 ‘세계 챔피언’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이 금의환향했다. 우상혁은 22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들어섰다. 지난해 12월 김도균 한국육상대표팀 수직도약 코치 등과 조용히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으로 나간 지 3개월 만이다. 우상혁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슴에는 금빛 메달이 걸려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했던 인천국제공항에는 함성이 들리고,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우상혁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스타크 아레나에서 열린 2022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4를 넘어 우승했다. 지난달 6일에는 체코에서 2m36을 뛰며 지난해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자신이 작성한 한국기록(2m35)을 넘어섰다.우상혁은 귀국 인터뷰에서 “최초 기록을 또 쓰고 싶다. 2m38, 2m40을 넘고 2024년 파리올림픽 금메달에도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스마일맨인 그가 우승 확정 뒤 눈물을 훔친 이유에 대해 “육상은 비인기 종목이다. 나도 도쿄올림픽에서 4위를 하면서 주목받긴 했지만, 당시에 메달은 따지 못했다. 이번 시즌 세계랭킹 1위로 세계실내육상선수권에 출전했지만, 우승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정말 1위를 하고 나니, 어깨를 눌렀던 짐이 내려간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우상혁은 2m31에서 1, 2차 시기 실패했고, 3차 시기에서 간신히 넘은 뒤 팔짱을 끼고, 바를 바라보는 세레머니를 했다. 그는 “‘봤나, 내가 지금 세계랭킹 1위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음 높이에서 승부해보자’라는 마음을 자신감 있게 표현했다. ‘찰칵 세리머니’는 준비한 건 아니고, 눈앞에 중계 카메라가 있어서 즉흥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항상 ‘최초’라는 타이틀을 원했고, 이제 그것을 거머쥔 우상혁은 “앞으로 또 다른 ‘최초 기록’을 쓰고 싶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지금 내 목표는 2m38(우상혁의 SNS 아이디는 2m38의 의지를 담은 W00_238)이다. 2m38을 넘으면 2m40을 목표로 정할 것이다”면서 “이번 대회에서 장대높이뛰기 실내 세계신기록을 세운 아먼드 듀플랜티스는 6m19에 50번 넘게 도전했다고 한다. 6m19를 넘은 뒤, 6m20도 넘었다. 나도 2m37에 도전할 기회를 계속 얻고 있다. 이런 기회가 쌓이면 언젠가는 2m37을 넘고, 2m38, 2m40까지 넘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실내육상선수권에서 우승했으니 이제 7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목표로 준비하겠다. 그리고 늘 말한 것처럼 파리올림픽 우승에 도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마감 후] ‘검찰총장 대통령‘은 또 나와선 안 된다/한재희 사회부 기자

    [마감 후] ‘검찰총장 대통령‘은 또 나와선 안 된다/한재희 사회부 기자

    서초동을 드나드는 법조기자로서 이번 대선의 관전평은 한마디로 ‘이게 실화구나’였다. 30년 가까이 검사 생활만 했던 사람이 홀연 정치판에 뛰어든 지 9개월 만에 대권을 품다니. 수많은 정치 신인들이 겁없이 대망을 꿈꾸다 힘없이 고꾸라졌던 것을 상기하면 아직도 놀랍다. 현직 검사들의 관전평도 들어 봤는데 이건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친소 관계에 따라 각자 감회가 남달랐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한마디는 있다. “검찰 조직엔 참 불행한 일.” 한 수도권 검찰 간부 입에서 대뜸 나온 말이다.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검사 윤석열’이 ‘대통령 윤석열’이 되는 과정에서 검찰 구성원들에게 상처가 됐던 장면이 참 많았단 의미다. 그 첫 장면은 2013년 10월 21일 서울고검 국정감사장을 꼽고 싶다. 국회의원들의 알맹이 없는 호통에 피로감을 느끼던 저녁 시간 갑자기 윤 당선인이 ‘폭탄 발언’을 터트렸다.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그는 “이렇게 된 마당에 사실대로 다 말씀드리겠다”며 수사와 관련해 검찰 상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느냐”며 이튿날 신문 1면에 나갈 ‘수사 초기부터 외압’ 제하 기사를 부랴부랴 작성하던 회사 선배의 모습이 기억난다. 검찰의 치부가 전국에 생중계된 순간이었다. 다음 떠오른 장면은 윤 당선인이 2014년 1월자 인사로 대구고검에 발령 나 은둔하던 시절이다. 검사가 정부에 밉보이면 갑자기 비수사 부서로 좌천될 수 있단 걸 다시금 상기시켜 준 사례였다. 마침 대구에 출장 갈 일이 있어 윤 당선인에게 대뜸 연락했는데 잘 알고 지내던 기자가 아니었음에도 흔쾌히 만나 애써 “잘 지낸다”고 했던 ‘근황 토크’가 기억난다. 다만 씁쓸한 미소까지 완벽히 감추진 못했다. 2020년 1월에도 중요한 장면이 나왔다. 알고 지내던 한 종합일간지 기자가 자기네 신문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당선인을 처음으로 넣는다는 얘길 했다.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윤 당선인이 10.8%로 전체 2위에 올랐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가 결정타가 돼 여권과의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결국 윤 당선인은 임기를 4개월 남기고 퇴진한 뒤 대선 행보를 걸었다. 최근 대검찰청 정문 앞에는 김오수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60여개의 화환이 늘어서 있다. 김 총장을 향해 “윤 당선인의 길을 가라”는 격려도 쏟아진다. 외압을 버티고 버텨 대선후보로 거듭나란 얘기다. 윤 당선인과 죽마고우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김 총장의 퇴진을 압박하자 나온 반응이다. 권 의원은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에 재임 중이던 지난해 1월 기존 2년이던 검찰총장 임기를 4년으로 늘리자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심지어 그는 개정안 제안 이유로 ‘검찰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 방지’를 들었다. 왜 1년 만에 입장이 바뀌었는지 우리는 짐작이 가능하다. 선출된 권력인 국회의원이 따가운 질책으로 비선출 권력을 견제할 순 있지만 이것이 그저 정치공세라면 곤란하다. 윤 당선인 같은 대통령이 또 나오면 안 된다. 그건 검찰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단 걸 의미한다. ‘검찰주의자’인 윤 당선인이 이러한 검찰을 꿈꾸며 싸워 왔던 것인지 ‘윤핵관’이 아닌 본인 입으로 듣고 싶다.
  • 아직 사직 체질? NC 손아섭, 친정팀 롯데 상대 첫 안타

    아직 사직 체질? NC 손아섭, 친정팀 롯데 상대 첫 안타

    아직은 사직구장이 편한 모양이다. 새 유니폼을 입고 옛 직장을 찾은 손아섭(34·NC 다이노스)이 아껴 뒀던 시범경기 첫 안타를 친정팀을 상대로 터뜨렸다. 손아섭은 2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NC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범경기에 3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15년간 정들었던 친정팀을 떠나 새로 NC 유니폼을 입은 손아섭은 늘 익숙했던 1루가 아닌 3루 더그아웃에 머물렀다. 이동욱(48) NC 감독은 “그동안 1루 더그아웃에 있다가 3루로 위치가 바뀌어 어색해할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7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손아섭은 1회 초 첫 타석부터 안타를 터뜨리며 ‘사직 체질’임을 보여 줬다. 손아섭이 타석에 들어서자 포수 지시완(28)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넸고, 맞대결을 기다리던 절친한 후배 최준용(21)도 마운드에서 미소를 보냈다. 손아섭은 잇몸 미소로 화답했지만 승부에 양보는 없었다. 손아섭은 최준용의 시속 147㎞ 직구를 받아쳐 내야를 꿰뚫는 중전안타를 때려냈다. 손아섭의 시범경기 첫 안타. NC 더그아웃은 끝내기 역전 안타처럼 크게 환호했다. 안타를 때리고 맞은 손아섭과 최준용 모두 웃었다. NC가 3-5로 졌다. 3타수 1안타를 기록한 손아섭은 “옛 동료를 만났을 때 찡한 마음이 들었다. 게임을 시작하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뛰었다”며 웃었다. 이어 “확실히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그런지 타석에서 공이 잘 보이고 집중도 잘된다”고 말했다.
  • NC 선수로 찾은 손아섭, 사직구장에서 시범경기 첫 안타

    NC 선수로 찾은 손아섭, 사직구장에서 시범경기 첫 안타

    아직은 사직구장이 편한 모양이다. 새 유니폼을 입고 옛 직장을 찾은 손아섭(34·NC 다이노스)이 아껴 뒀던 시범경기 첫 안타를 친정팀을 상대로 터뜨렸다. 손아섭을 지켜보는 옛 동료도, 손아섭도 잇몸 미소가 가득한 친정 나들이였다. 손아섭은 2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NC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범경기에 3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15년간 정들었던 친정팀을 떠나 새로 NC 유니폼을 입은 손아섭은 늘 익숙했던 1루가 아닌 3루 더그아웃에 머무는 낯선 모습을 보였다. 경기 전에는 옛 동료와 함께 반갑게 인사도 나눴다. 이동욱(48) NC 감독은 “그동안 1루 더그아웃에 있다가 3루로 위치가 바뀌어 어색해할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7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손아섭은 첫 타석부터 안타를 터뜨리며 ‘사직 체질’임을 보여 줬다. 이날 손아섭이 타석에 들어서자 포수 지시완(28)이 벌떡 일어나 손아섭에게 인사를 건넸고, 손아섭은 잇몸 미소로 화답했다. 손아섭의 절친한 후배로 맞대결을 기다리던 최준용(21)도 마운드에서 손아섭을 향해 미소를 보냈다.사이는 더없이 좋았지만 승부에 양보는 없었다. 1회 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손아섭에게 최준용은 시속 147㎞의 직구를 선보였다. 두 번째도 시속 147㎞의 정면 승부. 그러나 손아섭에게 자비란 없었다. 손아섭은 최준용 옆을 지나 내야를 꿰뚫는 중전안타를 때려냈다. 손아섭의 시범경기 첫 안타였다. NC 더그아웃은 끝내기 역전승이라도 나온 듯 크게 환호했다. 안타를 때린 손아섭이나 안타를 맞은 최준용 모두 웃었다. 최준용은 멋쩍은 듯 곧바로 견제구를 날리며 손아섭의 발을 묶었다. NC가 3-5로 졌지만 손아섭이 3타수 1안타로 활약한 점은 고무적이었다. 손아섭은 “옛 동료를 만났을 때 찡한 마음이 들었다. 게임을 시작하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뛰었다”며 웃었다. 이어 “확실히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그런지 타석에서 공이 잘 보이고 집중도 잘된다”면서 “시범경기 첫 안타가 나왔는데 남은 경기에서 타격 페이스를 빨리 끌어올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학교 갑니다’… 울산 정착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 첫 등교

    ‘학교 갑니다’… 울산 정착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 첫 등교

    울산 동구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인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21일 첫 등교를 했다. 유치원생 16명, 초등학생 28명, 중학생 19명, 고등학생 22명 등 특별기여자 자녀 85명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차례대로 등교했다. 초등학생 28명은 오전 8시 30분쯤 거주지인 현대중공업 옛 사택(아파트) 앞에 모여 배정받은 서부초등학교로 출발했다. 애초 예정됐던 오전 9시 30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등교했다. 두툼한 외투에 마스크를 착용한 학생들은 시교육청과 학교 관계자들 인솔에 따라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서부초로 향했다. 가방을 멘 학생들의 손에는 한국인 재학생들에게 나눠줄 과자 등을 담은 선물 꾸러미를 하나씩 들었다. 꾸러미에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라는 문구와 함께 자신들의 이름을 적었다. 학생들은 밝은 표정으로 친구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학부모 3∼4명은 학생들을 따라와 등교 모습을 지켜봤다. 학교에 도착한 후에는 1∼2학년, 3∼4학년, 5∼6학년으로 나뉜 3개의 특별 학급으로 각자 들어갔다. 학생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교실 여기저기를 둘러보거나 미소를 짓는 등 대체로 밝은 표정이었다. 노옥희 교육감과 서부초 교장 등은 각 학급을 돌며 환영식을 열고 학생들에게 꽃을 건넸다. 학생들은 6∼12개월간 특별 학급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 등을 배운 후 언어 구사 정도, 문화 이해도 등에 따라 단계별로 한국 학생들이 있는 일반 학급에서 수업받을 예정이다. 수업은 교실에 있는 모니터를 활용해 한국어와 아프가니스탄 언어를 병기하는 방식 등으로 진행된다. 시교육청은 여건 개선 교사 4명, 전문 상담 교사 1명, 한국어 강사 6명, 교육활동 지원사 3명 등을 지원한다. 향후 학생들이 일반 학급으로 가면 협력 강사를 학급당 1명씩 배정한다. 중·고등학생 41명은 이보다 앞선 오전 8시께 학교별로 현대중공업에서 지원한 승용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이들은 남목중 등 7개 중학교에 19명, 남목고 등 7개 고등학교에 22명이 배정됐다. 시교육청은 초등학생과 마찬가지로 특별 학급을 편성해 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별도의 보충 학습과 학교생활 적응도 지원한다. 여건 개선 교사 14명과 한국어 강사 14명, 특수교육 자원봉사자 1명 등을 배치하고, 다문화 이해 교육 강화와 관계 형성 등의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녹수초와 상진초 병설유치원에 배치된 유치원생 16명은 마지막으로 오전 9시쯤 버스를 타고 등원했다. 시교육청은 유치원·초·중·고 학생들에게 관련 법령에 따라 무상급식비 지원을 비롯해 재학생과 같은 학생 복지를 제공할 예정이다.
  • 김치 품은 아프간 할랄 한 상… “우릴 구해 준 한국서 잘살 겁니다”[나를 살리는 밥심]

    김치 품은 아프간 할랄 한 상… “우릴 구해 준 한국서 잘살 겁니다”[나를 살리는 밥심]

    일상에 균열이 생겨도, 예기치 못한 일로 무너져 내려도 먹어야 삽니다. 시간이 지나 눈물 속에 먹던 음식이 ‘솔푸드’로 기억되기를, 살기 위해 억지로 먹은 밥이 일상을 되찾는 먼 훗날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밥심으로 삽니다. 서울신문 사건팀이 밥심의 현장을 찾아 응원합니다. 이번에는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피해 한국으로 온 무함마드 나위드(31)씨와 자마니 타예브(31)씨의 가족 밥상에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문화를 지키면서도 한편으론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며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온 가족이 바닥에 둘러앉아 식사 지난 12일 경기 남양주에 있는 낡은 5층짜리 아파트. 이곳은 한국에 자리잡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나위드씨와 그의 아내, 두 아들과 두 딸이 사는 보금자리다. 서툰 한국어로 ‘나위드 집’이라 적힌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자 아프가니스탄 대중가요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올해 5살인 딸은 한국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 ‘반짝반짝 작은별’을 한국어로 불렀고 각각 9살·7살인 두 아들은 여느 한국 아이처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수다를 떨었다.주말 오후 1시부터 비대면으로 한국어 강의를 듣는 부부는 조금 일찍 점심을 준비했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음식을 차린 후 가족이 주변에 빙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식문화는 좌식 문화다. 바닥에 카펫과 쿠션을 깔고 그 위에 앉아 음식을 먹는다. 돗자리 가운데에는 아프가니스탄식 볶음밥인 ‘커블리 팔라우’(Kabuli Palaw)가 놓였다. 한국 쌀과는 다른 긴 쌀(안남미)과 소고기 또는 양고기, 채 썬 당근과 건포도 등을 함께 조리해 먹는 요리다. 그 옆에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구운 ‘블러니’(Bolani), 시금치 무침과 비슷한 반찬인 ‘사브지’(Sabzi),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한국의 밥처럼 주식으로 먹는 빵이 차려졌다. 집에서 직접 만든 아프가니스탄식 플레인 요거트 ‘머스트’(Mast)와 우유 푸딩과 비슷한 디저트인 ‘프리니’(Feereny)까지 풀코스 요리였다. 나위드씨의 식사 자리에는 김치도 올라왔다. 나위드씨는 “한국 음식 중 야채 위주로 만든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위드씨 가족은 다행히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아랍 식재료와 ‘할랄 푸드’(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를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재료를 사서 대부분의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이튿날인 13일 인천 서구에 사는 타예브씨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도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사브지와 프리니 대신 미트볼을 넣고 끓인 국인 ‘슈르바’(Shurwa)와 야채를 넣고 끓인 국인 ‘숄라’(Shola)가 눈에 띄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주식인 빵을 머스트나 슈르바에 찍어 먹는다. 커블리 팔라우와 고기 등을 싸서 함께 먹기도 한다. 네 아이를 둔 타예브씨 가족의 식사자리는 전쟁터였다. 부부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7살 큰딸과 한 살 아래인 둘째 딸이 접시에 남긴 음식을 마저 먹었고 이제 겨우 2살인 셋째 딸이 온 입과 옷에 머스트를 묻히자 닦아 주기 바빴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막내아들이 배고파 울자 타예브씨 부인은 식사를 멈추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이사 앞두고 한국어 서툴러 걱정” 나위드씨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 한국직업훈련원에서 자동차를, 타예브씨는 영어를 가르쳤다.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한 자들을 잡아들인 탓에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아내와 아이들만 데리고 한국으로 왔다. 타예브씨는 “한국으로 온 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우리집을 수색했다”면서 “어머니 등 남은 가족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나위드씨와 타예브씨 가족은 한국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나위드씨는 한국의 선진적인 정보기술(IT) 시스템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GPS(위성항법장치)가 잘돼 있어 지도를 보기 편하고 스마트폰이나 대중교통,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 등 시스템이 너무 잘돼 있다”고 극찬했다. 한국 음식에도 점차 적응해 가고 있다. 타예브씨는 “한국 음식은 건강한 방식으로 조리돼서 너무 좋다”고 했다. 타예브씨는 지난달 설날을 맞이해 직장에서 동료와 함께 떡을 나눠 먹기도 했다.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2010~2014년 매년 한국을 방문했던 나위드씨, 2016년 한국에 3주간 연수를 왔던 타예브씨와 달리 가족은 한국이란 나라가 처음이다. 나위드씨의 부인과 생후 10개월인 막내딸은 이달 초 코로나19에 걸렸으나 잘 이겨 냈다. 나위드씨의 두 아들과 타예브씨의 첫 딸은 3월부터 한국 초등학교에 다니는 중이다. 아직 익숙지 않은 한국어는 이들 가족에게 큰 장벽이다. 나위드씨는 “가족이 6명인데 이 인원으로는 택시를 탈 수 없다. 한국 운전면허를 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서 “곧 새집을 구해 이사도 해야 하는데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타예브씨는 “현재 한국어 강좌를 따로 듣고 있지 않다”면서 “직장 일이 바빠 여수에서 받은 한국어 책을 한 페이지도 펼쳐 보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북적북적했던 대가족은 그리워” 지난해 8월 탈레반을 피해 급히 한국으로 입국할 당시 타예브씨 부인은 임신 중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아이를 낳은 여성은 20일간 산후조리를 한다. 그사이 여성의 어머니가 와서 산후조리를 돕는다. 타예브씨는 “아내가 몸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만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듯이 아프가니스탄은 ‘야크니’(Yahni)를 먹는다. 돌봐 줄 가족도 마음 편히 회복할 여유도 없지만 야크니만은 고국에서처럼 만들어 먹으며 출산 후 몸을 돌보고 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남겨 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도 싸워야 한다. 나위드씨와 타예브씨 모두 고국에 부모님과 다른 형제가 남아 있다. 부모·형제들과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아프가니스탄인에게 부부와 어린 자녀로만 구성된 핵가족 문화는 외로움을 자아냈다. 나위드씨는 “아프가니스탄은 가족이 많아서 북적였던 점이 좋았다”면서 “지금은 한국에서 같은 동네에 사는 다른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6가구와 함께 주말마다 만나며 가족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온 지 8개월째 된 이들은 한국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타예브씨는 “옷 두 벌만 들고 아프가니스탄을 급히 떠나 왔다. 우리의 집, 재산 등 모든 걸 잃었다”면서 “아프가니스탄의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 가족을 구해 줘서 한국 정부에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나위드씨는 “미국 정부와 일했던 사람들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미국 땅으로 갔다”면서 “미국으로 간 동료와도 종종 연락하는데 미국보다 한국의 지원이 훨씬 좋아서 자랑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한국에 잘 정착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타예브씨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햇빛이 드는 집으로 이사하고 아이들을 훌륭히 교육시키고 가족들을 잘 돌보고 싶다”며 한국에서의 목표를 전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위드씨는 언젠가 한국에 음식점을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족들과 직원이 25명이나 되는 큰 음식점을 운영했었다”면서 “나중에 한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음식점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 ‘한국 생활 7개월차’ 아프간 기여자…팔라우와 김치의 절묘한 조화로 푸짐한 한끼

    ‘한국 생활 7개월차’ 아프간 기여자…팔라우와 김치의 절묘한 조화로 푸짐한 한끼

    일상에 균열이 생겨도, 예기치 못한 일로 무너져 내려도 먹어야 삽니다. 시간이 지나 눈물 속에 먹던 음식이 ‘솔푸드’로 기억되기를, 살기 위해 억지로 먹은 밥이 일상을 되찾는 먼 훗날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밥심으로 삽니다. 서울신문 사건팀이 밥심의 현장을 찾아 응원합니다. 이번에는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피해 한국으로 온 무함마드 나위드(31)씨와 자마니 타예브(31)씨의 가족의 밥상에 함께 했습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문화를 지키면서도 한편으론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며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가족이 빙 둘러앉아 식사…인근 할랄 푸드 가게서 구입 지난 12일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낡은 5층짜리 아파트. 이곳은 한국에 자리 잡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나위드씨와 그의 아내, 두 아들과 두 딸이 사는 보금자리다. 서툰 한국어로 ‘나위드 집’이라 적힌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자 아프가니스탄 대중가요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올해 5살인 딸은 한국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 ‘반짝반짝 작은별’을 한국어로 불렀고 각각 9살·7살인 두 아들은 여느 한국 아이처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수다를 떨었다. 주말 오후 1시부터 비대면으로 한국어 강의를 듣는 부부는 조금 일찍 점심을 준비했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음식을 차린 후 가족이 주변에 빙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식문화는 좌식 문화다. 바닥에 카페트와 쿠션 깔고 그 위에 앉아 음식을 먹는다. 돗자리 가운데에는 아프가니스탄식 볶음밥인 ‘커블리 팔라우(Kabuli Palaw)’가 놓였다. 한국 쌀과는 다른 긴 쌀(안남미)과 소고기 또는 양고기, 채 썬 당근과 건포도 등을 함께 조리해 먹는 요리다. 그 옆에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구운 ‘블러니(Bolani)’, 시금치 무침과 비슷한 반찬인 ‘사브지(Sabzi)’,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한국의 밥처럼 주식으로 먹는 빵이 차려졌다. 집에서 직접 만든 아프가니스탄식 플레인 요거트 ‘머스트(Mast)’와 우유 푸딩과 비슷한 디저트인 ‘프리니(Feereny)’까지 풀코스 요리였다. 나위드씨의 식사 자리에는 김치도 올라왔다. 나위드씨는 “한국 음식 중 야채 위주로 만든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위드씨 가족은 다행히 집에서 차로 15분거리에 아랍 식재료와 ‘할랄 푸드(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를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재료를 사서 대부분의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이튿날인 13일 인천 서구에 사는 타예브씨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도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사브지와 프리니 대신 미트볼을 넣고 끓인 국인 ‘슈르바(Shurwa)’와 야채를 넣고 끓인 국인 ‘숄라(Shola)’가 눈에 띄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주식인 빵을 머스트나 슈르바에 찍어 먹는다. 커블리 팔라우와 고기 등을 싸서 함께 먹기도 한다. 네 아이를 둔 타예브씨 가족의 식사자리는 전쟁터였다. 부부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7살 큰 딸과 한 살 아래인 둘째 딸이 접시에 남긴 음식을 마저 먹었고 이제 겨우 2살인 셋째 딸이 온 입과 옷에 머스트를 묻히자 닦아주기 바빴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막내아들이 배고파 울자 타예브씨 부인은 식사를 멈추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한국 선진 시스템에 놀라…한국어 익숙하지 않아” 나위드씨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 한국직업훈련원에서 자동차를, 타예브씨는 영어를 가르쳤다.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한 자들을 잡아들인 탓에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아내와 아이들만 데리고 한국으로 왔다. 타예브씨는 “한국으로 온 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우리집을 수색했다”면서 “어머니 등 남은 가족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나위드씨와 타예브씨 가족은 한국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나위드씨는 한국의 선진적인 정보기술(IT) 시스템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GPS(위성항법장치)가 잘 돼 있어 지도를 보기 편하고 스마트폰이나 대중교통,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 등 시스템이 너무 잘 돼있다”고 극찬했다. 한국 음식에도 점차 적응해가고 있다. 타예브씨는 “한국 음식은 건강한 방식으로 조리돼서 너무 좋다”고 했다. 타예브씨는 지난달 설날을 맞이해 직장에서 동료와 함께 떡을 나눠먹기도 했다.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2010~2014년 매년 한국을 방문했던 나위드씨, 2016년 한국에 3주간 연수를 왔던 타예브씨와 달리 가족은 한국이란 나라가 처음이다. 나위드씨의 부인과 생후 10개월인 막내딸은 이달 초 코로나19에 걸렸으나 잘 이겨냈다. 나위드씨의 두 아들과 타예브씨의 첫 딸은 3월부터 한국 초등학교에 다니는 중이다. 아직 익숙지 않은 한국어는 이들 가족에게 큰 장벽이다. 나위드씨는 “가족이 6명인데 이 인원으로는 택시를 탈 수 없다. 한국 운전면허를 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서 “곧 새집을 구해 이사도 해야 하는데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타예브씨는 “현재 한국어 강좌를 따로 듣고 있지 않다”면서 “직장 일이 바빠 여수에서 받은 한국어 책을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못 했다”고 우려했다. “북적했던 대가족은 그리워…아프간 음식점 열고 싶다” 지난해 8월 탈레반을 피해 급히 한국으로 입국할 당시 타예브씨 부인은 임신 중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아이를 낳은 여성은 20일간 산후조리를 한다. 그 사이 여성의 어머니가 와서 산후조리를 돕는다. 타예브씨는 “아내가 몸을 회복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만큼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듯이 아프가니스탄은 ‘야크니(Yahni)’를 먹는다. 돌봐줄 가족도 마음 편히 회복할 여유도 없지만 야크니만은 고국에서처럼 만들어 먹으며 출산 후 몸을 돌보고 있다.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도 싸워야 한다. 나위드씨와 타예브씨 모두 고국에 부모님과 다른 형제가 남아 있다. 부모·형제들과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아프가니스탄인에게 부부와 어린 자녀로만 구성된 핵가족 문화는 외로움을 자아냈다. 나위드씨는 “아프가니스탄은 가족이 많아서 북적였던 점이 좋았다”면서 “지금은 한국에서 같은 동네에 사는 다른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6가구와 함께 주말마다 만나며 가족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온 지 8개월째 된 이들은 한국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타예브씨는 “옷 두벌만 들고 아프가니스탄을 급히 떠나왔다. 우리의 집, 재산 등 모든걸 잃었다”면서 “아프가니스탄의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 가족 구해줘서 한국 정부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나위드씨는 “미국 정부와 일했던 사람들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미국 땅으로 갔다”면서 “미국으로 간 동료와도 종종 연락하는데 미국보다 한국의 지원이 훨씬 좋아서 자랑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한국에 잘 정착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타예브씨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햇빛이 드는 집으로 이사하고 아이들을 훌륭히 교육시키고 가족들을 잘 돌보고 싶다”며 한국에서의 목표를 전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위드씨는 언젠가 한국에 음식점을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족들과 직원이 25명이나 되는 큰 음식점을 운영했었다”면서 “나중에 한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음식점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우크라 이르핀에서 처참하게 스러진 페레베이니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우크라 이르핀에서 처참하게 스러진 페레베이니스

    우크라이나의 스타트업 기업 ‘SE 랭킹’에 근무하는 크세니아 키르보니나는 동료였던 타티아나 페레베이니스(43)의 사진을 보여주자 금세 알아봤다. 지난달 조지아의 회사 휴양시설에서 워크숍을 개최했을 때 페레베이니스가 입었던 밝은 분홍색 파카 때문이었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정부군 병사가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소도시 이르핀 거리에서 피투성이가 돼 쓰러진 일가족을 살피는 모습을 담은 5단 크기의 사진을 다음날 실었다. 이르핀 외곽으로 대피하던 일가족은 러시아군의 박격포탄 파편에 맞아 애꿎게 희생됐다. 바로 페레베이니스와 아들 미키타(18), 딸 알리사(9)였다. 세 사람은 즉사했고, 이들의 피신을 돕던 봉사자 아나톨리 베레즈니는 다쳤다. 베레즈니는 얼마 뒤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으로 그는 목숨을 건졌다고 인사이더 닷컴이 18일 전했다. 세계 주요 언론사들은 사망자의 시신이나 죽음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을 게재하는 행위를 지양해 왔다. 하지만 NYT는 이런 편집 방침이 러시아군의 잔악무도한 공격 행위를 은폐하는 문제점을 낳는다는 일부의 지적을 받아들여 이 사진을 1면에 크게 보도했다. 트위터 직원 브라이언 라이스는 “그녀는 푸틴의 박격포탄에 희생된 길거리 시신으로 알려지는 것보다 응당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을 갖고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디지털 마케팅 장비들을 만든 회사에 속한 “동료 테크 일꾼”을 잃어버렸다고 아쉬워했다. 페레베이니스는 온라인 검색 결과를 순위로 매기기 위해 창업한 지 9년 밖에 안된 스타트업 기업 SE 랭킹의 수석 회계사로 지난 6년 동안 이 회사의 키이우 사무실에서 일해왔다. 모험심도 있고 유머 감각으로 동료들을 즐겁게 했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자랑하곤 했던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미국 뉴욕의 우크라이나 태생 벤처캐피털 투자자인 알렉스 이스콜드는 생전에 그녀를 몰랐지만 그녀의 죽음은 “너무 끔찍하며 무감각하며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돕는 모금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페레베이니스와 함께 일해 본 이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움에 몸서리를 쳤다. 샌프란시스코의 금융회사 챔버 파트너스의 공동창업자 스콧 어윈은 링케딘에 올린 글을 통해 “타니아는 정기적으로 함께 일하고 지난 4일에도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새 친구이자 동료였다”면서 “가슴 찢어질 뿐만아니라 사악하고 불공정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어윈의 회사는 재작년에 SE 랭킹에 투자했다. 페레베이니스는 생전에 몇몇 매체 보도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테크기업 직원이라고 소개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SE 랭킹은 동유럽을 주요 시장으로 여기며 100명가량의 직원들이 키이우와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일하고 있다. SE 랭킹 홈페이지에는 팔로알토 주소도 있고, 영국 런던 주소도 기재돼 있다고 인사이더 닷컴은 전했다. 이 회사의 홍보팀장인 키르보니나는 미국인 투자자와 파트너들이 있다면서도 신원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2016년에 입사한 페레베이니스는 승진을 거듭해 회사의 재정상태를 감독하는 위치에 올랐고, 사실상 최고재정책임자(CFO)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녀가 남편 세르히이와 키이우로 이사한 것은 러시아 반군들이 도네츠크에서 봉기한 2014년이었다. 2018년에 이들 가족은 이르핀의 아파트를 사들였다. 고인은 밝고 늘 미소 지으며 늘 기분좋게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또 늘 동료들을 도우려 했고 재정상태까지 살피곤 했다. 최근에도 페레베이니스는 키르보니나의 신용카드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을 도와줬다.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큰누나 같은 존재였다.” 해서 아들 미키타가 대학 입학을 시도하자 사무실의 모두가 도왔다. 전쟁이 터지고 회사 직원들이 폴란드와 아랍에미리트(UAE)로 피신했다. UAE에 머무르고 있는 키르보니나는 페레베이니스 가족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 때문에 이르핀을 떠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들이 징집 연령이었던 이유도 있었다. 다른 동료 아나스타샤 아베티시안은 직원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긴급 자금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건물 지하에 숨어 있떤 페레베이니스가 “낙관적이었으며 회사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특수 구조작전을 펼쳐야 할지 모른다고 단체 채팅방에서 농담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SE 랭킹은 직원들의 위치를 파악해 탈출 계획을 수립했는데 그 과정에 지난 6일 페레베이니스와 자녀들이 탈출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키르보니나는 텔레그램을 통해 페레베이니스 가족이 이용하려는 인도주의 대피 통로가 러시아군의 포격 대상임을 알아냈다. “가슴 졸였다. 난 그들이 당하지 않길 기도하고 있었다.” 회사의 담당자가 그녀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결국 가족들이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들이 온라인에 올라왔다. “그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았다. 러시아 병사들을 향해 말한마디도 나쁘게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녀는 단지 버스를 향해 뛰고 있었다.”
  • K리그 ‘승격 전도사’ 이제 우승만 남았다… 손가락 하나의 야망 [스포츠 라운지]

    K리그 ‘승격 전도사’ 이제 우승만 남았다… 손가락 하나의 야망 [스포츠 라운지]

    프로축구 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 남기일(48) 감독의 별명은 ‘승격 전도사’다. 남 감독은 2010년 천안시청에서 선수 겸 코치를 마지막으로 36세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듬해 창단한 광주FC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1년 동안 미국에 다녀왔고, 또 1년 뒤에는 감독 사퇴로 감독대행이 됐다. 유럽에선 일찌감치 지도자 코스를 밟고 33세에 포르투갈 명문 클럽인 FC포르투를 맡은 안드레 비야스 보아스(45), 37세에 포르투갈 SL벤피카의 사령탑에 올랐던 조제 모리뉴(59) 감독 등이 있지만, 한국에선 30대는커녕 40대 감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였다.●재정 열악한 시민구단서 성과 나이가 어리다는 우려 속에 팀을 맡은 남 감독은 바로 다음해인 2014시즌 광주FC를 2부(K리그 챌린지)에서 1부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했다. 구단은 ‘대행’ 꼬리표를 떼줬다. 축구인 남기일은 정확히 나이 40에 프로팀 정식 감독이 됐다. 2018년에는 선수 시절 뛰었던 성남FC 감독으로 부임했다. 성남FC도 1년 전 2부리그로 강등된 상태였다. 남 감독은 부임 첫해 성남FC를 K리그1로 승격시켰다. 재정 상황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시민구단을 맡아 두 차례나 1부리그로 끌어올리면서 ‘승격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자 이번엔 K리그2로 떨어진 제주가 남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제주의 전신인 부천 SK의 레전드였던 그는 친정 팀의 부름에 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제주를 맡은 첫 시즌 팀을 K리그1로 승격시켰다. 남 감독은 그렇게 세 차례나 2부리그에 있던 팀을 1부로 끌어올렸다. 한국축구 지도자 중 가장 많은 승격 경험이다. 2022시즌을 앞두고 전지훈련이 한창이던 지난 1월 서귀포에서 만난 남 감독에게 승격의 비결을 물었다. “좋은 선수들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이 변했고 나도 변했다” 남 감독이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지배해 좋은 성적을 냈다는 분석에 이견을 내는 축구계 인사는 거의 없다. 남 감독이 성남 일화 시절 당시 팀을 이끌었던 김학범 감독의 지휘 스타일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파워 트레이닝을 강조하는 김 감독의 별명인 ‘학범슨’은 그의 이름과 선수단을 강하게 장악하는 지휘 방식으로 유명한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슨’자를 합친 것이다. 남 감독은 “광주FC를 맡았을 때가 39세였고, 광주나 성남FC도 시민구단이라 (재정 사정이) 어려운 팀이었다”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의 팀을 빨리 장악하고, 선수들의 의지를 모으고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스스로 강한 이미지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강등된 시민구단 소속 선수 입장에선 지도자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감독이 좋아 보일 리 없다. ‘시(市)가 축구단에 돈 쓰기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면 선수들은 팀 성적보다 돋보이는 개인 플레이에만 신경 쓰면서 ‘빅클럽’으로 옮기고 싶어 한다. 강등팀 부진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남 감독은 “처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부터 ‘원팀’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면서 “다만 원팀을 만들기 위해 어떤 리더십으로 어떻게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지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로 변했다”면서 “훈련은 강하게 해야 효율적이지만 쉴 때는 선수들과 골프도 함께 치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즐겁게 지낸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제주 선수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올라갈 팀은 올라간다” 남 감독은 신중하고 현실적이다. K리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올 시즌 우승 후보로 ‘현대가(家)’ 전북과 울산을 올려놓고, 그 틈을 파고들 다크호스로 제주를 꼽는다. 제주를 승격시키고 지난해 4위까지 끌어올린 남 감독 입장에선 고무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어차피 우승은 전북 아니면 울산 아닌가”라고 냉정하게 답했다. 의외였다. 시즌을 앞두고 선수단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설정한 목표보다 높은 수준의 선언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박해 봤다. 하지만 남 감독은 개의치 않고 전북과 울산이 우승 후보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오랜 기간 쌓아 올린 것을 무시할 수 없다. 한 시즌을 보내다 보면 많은 변수가 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을 겪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쌓여 있는 역량은 언제나 드러나게 돼 있고, 그래서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주는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팀이다. 이전에 있었던 시민구단들보다 훨씬 환경도 좋다. 하지만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건 끝이 아닌 시작이다. 좋은 선수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선 경험이 필요하다. 훈련과 경기를 통해 성장해야 좋은 팀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팬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드리는 축구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승격은 한두 시즌 만에 가능하지만 단기간에 우승 전력을 갖추는 건 어렵다는 생각이 확고해 보였다. ●우승이 목표라고 말은 안 했지만… 제주는 올 시즌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개막전에서 0-3으로 완패했다. 이어진 강원FC와의 홈 경기에서도 득점 없이 비겼다. 하지만 수원 삼성과의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시즌 첫 승을 신고했고, 4라운드 수원FC와 무승부 뒤 지난 12일 드디어 우승 후보 전북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2-0 완승을 거둔 제주는 4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 가며 3위(승점 8·2승2무1패)로 올라섰다. 경기 뒤 남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해 줘서 그간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냈다”면서 “홈에서 이기지 못해 아쉬운 모습만 보였다. 오늘은 팬들에게 행복을 준 경기”라고 말했다. 이날 남 감독은 K리그 301번째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300경기 넘게 지휘한 현역 사령탑은 남 감독이 유일하다. 남 감독은 “목표가 우상향하는 팀”이라고 밝혔다. 아직 “우승이 목표”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사진을 찍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팔짱을 낀 왼손 검지를 펴든다. 그는 “이건 제주가 K리그2에 있을 때 부임한 뒤 1부리그인 K리그1으로 올라가기 위해 원팀을 만들자는 뜻으로 만든 포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목표가 1등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K리그의 공인된 ‘승격 전도사’ 남 감독은 이제 ‘우승 청부사’로 목표를 우상향할까.
  • 2021 KLPGA 최종전 우승 유해란 “올해엔 메이저 우승 하고 싶어요”

    2021 KLPGA 최종전 우승 유해란 “올해엔 메이저 우승 하고 싶어요”

    유해란(21·KTB금융그룹)은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최종전 우승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을 마친 뒤 지난 겨울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유해란은 “어느 때 보다 컨디션이 좋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17일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아디다스골프의 신제품 골프화 ‘투어360 22’ 팝업스토어에서 유해란을 만났다. 유해란은 “최근 미국에서 돌아와 그동안 국내에서 처리하지 못했던 일들을 소화하느라 바빴다”면서 “그래도 틈틈히 연습도 하고 라운딩도 나가면서 감각을 끌어 올리고 있다”고 했다. 유해란은 지난해 12월 14일 강원도 춘천 라비에벨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LPGA 투어 시즌 최종전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총상금 10억원)에서 최종합계 11언더파 205타를 쳐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대회 첫 날 부터 선두에 올라 3라운드 마지막 날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다. 유해란은 “평소 시즌이 끝나면 체중이 늘어나는 등 체형 변화가 좀 있었는데, 이번에는 신경써 노력한 덕분에 체형 변화가 적었다”면서 “제가 그동안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컨디션이 좋아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해란은 오는 4월 7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시즌 개막전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 출전한다. 유해란은 “미국에서 훈련이 잘 된 것 같다”면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성적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2019년 KLPGA에 데뷔한 유해란은 2019, 2020년 각 1승, 지난해 2승까지 통산 4승을 거뒀다. 하지만 아직 메이저 대회(크리스 F&C KLPGA 챔피언십, DB그룹 한국여자오픈, 한화 클래식, KB금융 스타챔피언십,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우승 기록이 없다. 유해란은 “어느 대회든 우승은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이번 시즌엔 기회가 된다면 꼭 메이저 우승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유해란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무관중으로 치러지고 있는 KLPGA 투어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유해란은 “2019년 처음 데뷔했을때 경험이 갤러리와 함께 대회를 치른 경험의 전부”라면서 “앞으로 관중과 함께 경기할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관중들과 함께 좀 더 시합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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