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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약 의혹’ 남태현, “마음 찢어져요”…SNS 글 돌연 삭제

    ‘마약 의혹’ 남태현, “마음 찢어져요”…SNS 글 돌연 삭제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남태현 씨가 심경 글을 올렸다가 돌연 삭제했다. 남태현은 지난 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마음이 찢어져요, 그대 다신 볼 수 없겠죠, 이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네요, 어디로 가는 건가요, 거긴 행복하겠죠, 그대 이제 아름다운 미소만 지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매일 취해야만 하고 억지로 두 귀를 막죠, 어느샌가 내 맘은 울고 있고 잊어보려 눈을 감으면 어제가 기억이 안 나요, 그대 나와 같았나요”라고 덧붙였다. 또 “시간이 지나서 우리 다시 만나면 그 시절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 줄래, 살기 바빴고 늘 보고 싶더라, 더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이젠 니 옆에 있을게”라고 남겼다. 그러면서 “어딜 가나 넌 웃고 있는데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아픔 어쩌면 난 알고 있었지, 막연하게 ‘잘 지내겠지’라 생각했어, 좋아 보이니까, 너무 늦은 걸 알지만 정말 미안해”라며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잊지 않을게 영원히”라고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했다. 남태현이 게재한 글은 그가 속한 밴드 사우스클럽이 지난 2020년 발표한 노래 ‘투 마이 프렌즈(To My Friends)’의 가사 일부다. 마약 투약 혐의 의혹이 불거진 후 처음으로 전한 심경 글로 시선을 끌었으나 곧 삭제됐다. 앞서 지난달 20일 남태현의 여자친구 서민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태현 필로폰 함. 그리고 제 방인가 회사 캐비닛에 쓴 주사기 있어요. 그리고 저 때림”, “남태현이랑 나 뽕쟁이” 등의 글을 남겨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서민재와 남태현은 연인 사이의 다툼이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마약 의혹’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경찰은 남태현과 서민재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 미국 틱톡커 “난징 대학살 증거 사진 30장 발견” 진위 검증 필요

    미국 틱톡커 “난징 대학살 증거 사진 30장 발견” 진위 검증 필요

    미국 미네소타주의 전당포 주인 겸 틱톡 인플루언서가 1937년 중국 난징(南京) 대학살의 새로운 증거라며 사진 30장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는데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당연히 중국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도 반색해 보도했다. 일본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발뺌을 했던 만큼 중국 매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데 조금 더 차분하고 신중하게 검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해 12월 13일부터 6주 동안 중국 난징에 주둔하던 일본군 병사 5만명이 20만에 가까운 중국군 포로와 양민들을 학살했다. 일본 병사들이 중국 여성 1만명 가까이를 성폭행하고 강간한 뒤 시신을 불태워버렸다며 중국 측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벌어진 가장 끔찍한 살륙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와 잡지 롤링스톤 등이 지난 1일(현지시간) 전한 데 따르면 폰 맨(전당포 주인)이란 틱톡 계정을 쓰며 10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에반 카일이 이렇게 주장했다. 개인 박물관 등이 구미를 당길 만한 희귀 아이템을 찾아내 이를 소개해 자랑하곤 했던 그는 이번에는 인터넷 등에서 검색할 때 보지 못했던 난징 대학살 사진을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사진을 찾아낸 것은 미 해군 병사 출신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앨범 속에서였다. 앞의 20쪽까지는 문제의 병사가 1938년 무렵 동남아시아의 대리 전쟁에 복무했던 연합군 소속으로 중국에 파견됐을 때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21쪽부터 전혀 다른 사진 30장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카일은 틱톡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내가 앨범을 손에 넣어 열어보고 해당 페이지 이후를 넘기면서 비명을 질렀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동영상에는 이제 190만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고 4만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그는 “어쨌든 이 사긴들을 촬영한 사내는 난징대학살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진 30장을 찍었는데 역사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며 내가 종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어떤 것보다 더 나빴다”고 덧붙였다. 이 흑백 사진들에는 시신이 무더기로 쌓인 장면, 참수된 모습, 고문 현장 등이 담겨 있다. 너무 잔인해서 카일은 계정이 금지될 위험을 감수하고 이 사진들을 틱톡에 올릴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해서 몇 장의 사진만 트위터에 올려놓았다. 다만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동영상을 공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카일은 “그가 어떻게 사진을 찍었고 가져왔으며 누구도 이 사진들을 갖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단순한 팩트는 박물관은 이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군사법정과 유네스코에 따르면 난징 대학살 희생자 20만명에는 중국군 병사와 민간인들만 계산한 것이며, 1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강간 희생자 수가 제외된 것이다. 당시 극히 소수의 외국인 민간인과 독일 나치 당원들이 난징의 안전한 구역에 머물러 있어서 학살 현장을 목격했고 중국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나중에 이들이 국제사회에 만행을 고발했다. 기자 아이리스 장이 1997년 펴낸 책 ‘난징 강간, 2차 세계대전의 잊힌 홀로코스트’가 서구 사회에 일본의 전쟁 범죄를 고발했다. 하지만 일본군이 대학살을 끝낸 뒤 철저히 증거를 인멸해 객관적인 증거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 앨범의 사진들은 진본일까? 소셜미디어 역사 전문가에 따르면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한다. 트위터에 ‘가짜 역사 사냥꾼’ 계정을 운영하는 조 헤드윅 티뷔세(Jo Hedwig Teeuwisse)는 앨범 앞쪽 사진들은 수병이 촬영한 진본이며 전쟁 사진도 틀림없지만, 뒤쪽 끔찍한 사진들은 난징 대학살 사진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그 사진들은 여러 전쟁에서 촬영된 것들 가운데 오래 된 것들을 묶어 앨범 주인에게 기념품마냥 팔린 것들로 보이며 앨범 주인은 이를 메멘토(기억)를 되살리는 도구로 간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티뷔세는 롤링스톤에 “만약 앨범 주인이 정말 찍어 독보적인 것이라면, 사진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면서 “난 사진 몇 장의 연원을 추적해 몇년 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란 점을 확인했다. 심지어 사진회사 아카이브에도 있는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진 중에는 1905년에 촬영된 것까지 있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티뷔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소셜미디어에 소개할 때는 더욱 주의깊게 살필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녀는 “정말 특별한 뭔가를 갖게 됐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많은 연구를 해봐야 한다. 세상에 알리기 전에 다른 전문가나 박물관에 체크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사진들은 공식 박물관이나 역사재단의 검증을 받지 않았는데 카일은 수집가로서 2년 동안 경험해온 것에 비춰 진본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진본임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으며 난징에 있는 박물관과도 여러 차례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이미 알려진 다른 시대의 사진들이 섞여 들었을 수 있다는 질문에 카일은 수병들이 기념품 사진을 자신의 앨범에 끼워넣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설사 사진들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잘 몰랐던 난징 대학살에 대해 알려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미소니언 같은 박물관이 이 사진들을 받아줄지 연락을 취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의 말이다. “난 가능한 많은 견해들이 나올 수 있는 장소에 사진들을 가져가려 할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역사이고 역사는 그자체로 반복되곤 한다. 난 과거로 돌아가려는 수많은 멍청한 짓거리들이 있었고 오늘도 진행되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 이동윤 “양악수술 후 사경 헤맸다”

    이동윤 “양악수술 후 사경 헤맸다”

    개그맨 이동윤이 근황을 전했다. 1일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는 ‘개콘 폐지 후 3년, 중고차 딜러 된 개그맨 근황. 오토갤러리로 찾아갔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이동윤은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며 중고차 딜러로 활동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 2010년 이동윤은 양악수술을 해 180도 달라진 비주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동윤은 “부정교합이 너무 심해서 정말 아팠다. 하품을 하면 턱이 빠지더라. 2차 성징이 올 때 턱이 나왔다. 양악수술을 하고 사경을 헤맸다. 그때 개그맨 송중근씨가 지금의 아내 분과 병문안을 왔는데 (턱 쪽을) 다 묶어놔서 말도 못했다”라고 떠올렸다. 또 “회복된 후에 사무실에 갔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봤다. 목소리 듣고 놀라더라”라고 덧붙였다. 이동윤은 끝으로 “개그맨 친구들과 웃으면서 회의한 그때가 그립다. 언젠가 기회가 있지 않겠나”라며 미소지었다. 한편 이동윤은 지난 2005년 KBS 20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으며 ‘개그콘서트’의 ‘뮤지컬’, ‘피곤한 가족’, ‘알포인트’ 등 다수의 코너에서 활약했다.
  • 고르바초프 서거가 다시 불러낸 24년 전 피자헛 광고

    고르바초프 서거가 다시 불러낸 24년 전 피자헛 광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지난 30일(이하 현지시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자 그가 몸소 등장한 1998년 피자헛 광고가 새삼스럽게 입길에 오르고 있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한 시대의 종언이랄까, 아니면 24년 전으로의 퇴행을 동시에 한 편의 광고가 압축하는 듯해서다. 한 남자와 한 어린이가 손을 잡고 걸어간다.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고, 바닥에는 눈이 쌓여 있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인데 텅 비어 있다. 몹시 추워 보인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기엔 참 좋은 날이다. 극적인 음악이 흐르며 클로즈업하니 검정색 오버코트를 입은 남자가 걱정이 가득해 보인다. 그는 미소 짓는 손녀와 함께 광장 옆에 있는 피자헛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고르비임을 맨먼저 알아챈 중년 남성(영국 탤런트 리처드 마너)이 외친다. “야! 고르비다!” 그 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언쟁이 벌어진다. 개혁개방의 선도자냐, 아니다, 소련 몰락의 장본인이다 등등. “불안정”, “자유”, “혼돈”, “희망” 등의 단어가 고르비가 러시아에 가져온 것들로 차례로 튀어 나온다. 그런데 할머니가 이 논쟁을 끝내는 한마디를 한다. “그 덕분에 많은 것들을 갖게 됐다. 피자헛처럼!” 모두가 “고르바초프를 찬양하라”고 외치며 즐거워한다. 고르비는 당시 광고를 찍어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1999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도 광고 아이디어를 듣고 마뜩치 않아 했다. 알다시피 그는 소문난 애처가였다. 하지만 고르비는 돈이 필요했다. 싱크탱크 고르바초프 재단의 설립 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평판은 그렇잖아도 좁은 러시아 내 자신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협상 과정에 고르바초프를 변호했던 미국인 캐티 비스트리안은 BBC 인터뷰를 통해 “불이 들어왔다가 나가곤 했다”고 털어놓은 뒤 “불확실함은 러시아인들이 협상하는 방식이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옳은지 아닌지 정말로 잘 몰라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고르바초는 여러 조건을 달아 합의했다. 자신이 피자 먹는 장면을 넣지 말고 손녀가 먹는 것으로 하자고 했고, 대본을 미리 보게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또 대역이 이미 다른 모자를 쓴 채 촬영을 마쳤는데도 자신의 모자를 쓰고 연기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모자를 써 보인 뒤 ‘나와 잘 어울리느냐?’고 물었고, 비스트리안이 ‘그래, 사랑스러워 보인다’고 답하자 ‘정확해, 난 이 모자를 쓸 거야!’라고 말했다. 1997년 촬영한 이 광고는 이듬해 공개됐는데 소련 붕괴 이후 복잡하게 돌아가던 러시아 사회상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 광고로 교재를 삼은 러시아 전문가 유발 베버 박사는 “1990년대 모스크바의 맥락을 이 광고는 1분으로 요약해준다”고 말했다. 피자헛이 모스크바에 첫 점포를 연 것은 1990년이었다. 서방과 러시아의 경제적 유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광고에서 드러난 것처럼 고르바초츠가 이끈 개혁은 대중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의 지도력은 소련 경제를 개방하고 전체주의 국가에 일정 정도의 민주주의를 가져왔지만 소비에트연맹의 느린 와해를 막아내지 못했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경제적, 사회적 곤경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돌렸다. 텍사스 공대의 부시 정부 스쿨에서 일하는 웨버 박사는 광고 속 대화가 당시 러시아 현실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년 사내가 나오는데 확실히 지난 10년 이상은 그에게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불안정성에 대해 얘기하는데 넓은 의미에서 고르바초프가 안정성의 부재를 상징하는 것은 맞아 보인다”고 말했다. 작가 톰 더비셔는 BBC 월드서비스의 뉴스 아워 인터뷰를 통해 “동시에 젊은 친구도 나오는데 하나의 경제 시스템이 다른 것으로 바뀔 때 어떤 기회든지 포착할 만큼 젊고 눈치빠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고르비를 이용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논쟁을 제공하기 위해 피자가 사람들을 한 데 묶게 놔두자. 적어도 사람들은 그가 피자를 가져다준 것에 동의했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광고는 여러 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지켜봤다. 소련 지도자였던 사람이 미국 피자를 판매한다는 아이러니 덕분에 몇 년 뒤에도 소셜미디어에 다시 등장하는 등 일종의 컬트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에서는 방영되지 못했고 매체들은 조롱 일색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서구에서 냉전을 종식시킨 지도자로 존중받지만, 러시아에서는 소련 붕괴를 불러와 경제적, 사회적 곤경을 초래한 인물로 미움받고 있다. 이 광고를 보는 시각도 그의 업적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러시아의 피자헛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이 브랜드는 철수했다.
  • 애니·파키스탄·오케스트라…국악, 틀을 깨다

    애니·파키스탄·오케스트라…국악, 틀을 깨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9월에 접어들면서 전통과 현대의 다채로운 조화를 꾀하는 이색 국악 공연이 잇달아 열린다. 전통 음악의 발전적 확장을 이끌려는 국악계의 고민이 엿보인다. ● 서울청소년국악단 첫 어린이 음악회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은 오는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첫 번째 어린이 음악회 ‘쿵이의 궁금한 음악회’를 연다. 스토리와 애니메이션 영상을 접목해 더욱 쉽게 국악기의 원리를 알려 준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이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 아기 고릴라 ‘쿵이’가 자연의 소리를 만나고 아이들이 무심코 두드렸던 소리와 장단이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도 선보인다. 연출은 2004년 제3회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필름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김용찬 감독이 맡았다. ● 국립국악원, 파키스탄 전통음악 접목 국립국악원은 국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는 기획공연 ‘공감시대’를 오는 14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연다. 이 가운데 20일에는 파키스탄 전통음악인 ‘카왈리’에 우리 전통음악인 경·서도소리를 더해 국경을 넘나드는 한국 그룹 ‘딸’(TAAL)이 공연한다. 22일에는 장구 연주자 김지혜와 바이올리니스트 시타 최로 이뤄진 듀오 그룹 ‘사위’(SaaWee)의 무대와 해금과 비올라가 만난 ‘줄앙상블’, 가야금과 하프가 함께하는 ‘1247’ 그룹 등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 서울국악관현악단, 서양 악기와의 만남 이 밖에 2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전통 국악관현악 편성에 서양식 오케스트라, 전자기타 등이 더해진 ‘믹스드 오케스트라-충돌과 조화’ 공연이 관객들을 찾는다. 김성국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이 지휘를 맡아 국악 연주자 55명과 서양 오케스트라 연주자 35명이 참여하는 이번 공연에서는 홍정의 작곡가가 백제 가요에서 모티브를 따온 ‘수제천 환상곡’과 첼리스트 주연선이 협연하는 최지혜 작곡가의 첼로 협주곡 ‘미소’ 등을 선보인다.
  • “꿈의 서울 가자”… 앙카라 춤꾼들 ‘K칼군무’

    “꿈의 서울 가자”… 앙카라 춤꾼들 ‘K칼군무’

    “우리가 곧 한국에 간다는 것이 꿈만 같고 기대됩니다. 더 준비해서 한국에서도 1등을 하겠습니다.”(케이팝 커버댄스 페스티벌 인 튀르키예 우승팀 ‘일루전’) 지난 28일(현지시간) 튀르키예(터키) 앙카라에 위치한 사드레틴 알판 공연장. ‘케이팝 커버댄스 페스티벌 인 튀르키예’를 즐기러 온 인파로 공연장이 북적였다. 리허설을 위해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의 표정에는 설렘과 긴장감이 묻어났다. 2011년부터 시작된 케이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은 세계 각국의 케이팝 팬들이 한국 가수의 춤을 따라 하면서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축제다. 12회를 거듭하면서 한류 콘텐츠를 전 세계에 알리고 한류를 확산하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신(新)한류 열풍의 중심지로 떠오른 튀르키예는 2020년부터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그동안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됐으며, 오프라인으로만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행사는 서울신문과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이 공동 주최했다. 앞서 예선을 통해 뽑힌 15개 팀이 본선에 진출해 이날 실력을 겨뤘다. 본행사 시작과 함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잠실야구장, 한강공원, 남산타워 등 서울의 명소를 소개하는 영상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사회는 현지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케이팝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다브트 균두즈가 맡았다. 그는 “아빠는 튀르키예 사람이고 엄마가 한국 사람으로 한국에서 태어났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15개 팀 모두 수준급 실력을 뽐냈다. 팀마다 케이팝의 특징인 칼군무를 선보이며 초대형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깃발, 부채 등 특이한 소품을 활용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1위는 여성 4명으로 구성된 일루전(ILLUSION)이 차지했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인 에스파의 데뷔곡 ‘블랙맘바’(Black Mamba)와 ‘걸스’(Girls)를 소화했다. 절도 넘치는 동작으로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도 섬세한 표정 연기를 빼놓지 않았다. 1위 수상자로 이름이 불리자 일루전 멤버들은 믿기지 않는 듯 감격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많이 연습했지만 다른 팀들도 워낙 잘해 1등을 할지 정말 몰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들은 흰색 의상을 맞춰 입어 눈길을 끌었다. 멤버인 에지그 에제비트(23)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직접 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무대에서 하얗게 빛나고 싶어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스파의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우리가 공연할 때 다른 분들도 기분이 좋아지라고 에스파의 노래를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일루전을 포함한 세계 12여개국의 본선 우승팀은 오는 10월 한국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일루전 멤버들은 “매력적인 도시인 서울을 구경하고 싶다”, “한국에서 밥을 먹어 보고 싶다”, “케이팝 아이돌을 직접 보고 싶다”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일루전은 여러 케이팝 음악을 커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소개하는 ‘초즌’(CHOS7N)의 팀원 4명으로 구성됐다. 초즌에 소속된 다른 팀원들은 ‘더 크래프트’(THE CRAFT)라는 팀을 꾸려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1위 수상 소감을 발표할 때 일루전과 더 크래프트 멤버들은 모두 무대에 나와 서로 포옹을 하며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 2위는 트와이스의 ‘모어 앤 모어’(MORE & MORE)를 커버한 ‘미소’(Miso)에게 돌아갔다. 깜찍한 안무와 표정 연기를 그대로 연출했다. 미소의 멤버인 에리친 데미리지(21)는 “앞으로도 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유창한 한국어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앙카라에서 이미 유명한 그룹인 ‘플랙’(FL4C)은 3위에 올랐다. 이들은 앙카라의 유명 거리에서 케이팝 공연을 해 팬층이 두터우며, SNS에서도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의 ‘케이팝 아카데미’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한 유지영(37)·유민경(30)·이준표(27) 안무가가 심사를 맡았다. 전체적인 팀워크와 케이팝 음악에 대한 이해도, 표정 연기 등 표현력이 심사 기준이 됐다고 한다. 장외 응원전도 치열했다. 행사 시작 전부터 관중석이 가득 차 일부 관람객은 서서 공연을 즐겨야 했다. 관람객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각 팀이 공연을 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기도 했다. 페스티벌을 보러 온 스칠 바란(20)은 “3위를 한 플랙의 공연을 평소에 보면서 한국과 한류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더 배우고 싶어서 왔다”며 “열다섯 팀의 무대를 보고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케이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의 결승전은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린다. 결승전에 참가하는 전 세계 ‘춤꾼’들을 위해 서울 명소 관광 등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박기홍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원장은 “페스티벌 참가자들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케이팝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며 “내년 튀르키예공화국 창건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기획돼 있으니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밝혔다.
  • 냉전 끝내고 개혁·개방의 문 열었던 20세기 정치 거인

    냉전 끝내고 개혁·개방의 문 열었던 20세기 정치 거인

    동서 냉전 종식의 주인공이자 소련(소비에트연방) 붕괴를 이끈 최후의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타계했다. 91세. 러시아 타스통신 등은 이날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러시아 중앙임상병원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그는 1999년 먼저 떠난 부인 라이사 여사가 안장된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묘지에 영면한다. 그는 냉전 체제의 종언과 동구 공산권 몰락, 베를린장벽 붕괴 등으로 상징되는 20세기 격변의 중심에 있던 ‘정치 거인’이다. 1982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을 필두로 유리 안드로포프 등 최고지도자의 연이은 급서(急逝)로 54세에 불과했던 1985년 최연소 공산당 서기장에 올랐다. 그가 거대한 소련 제국의 권좌에 앉아 있던 6년여간 세계 정치 지형은 그가 주창했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으로 격동했다. 그는 ‘철의 장막’으로 불리던 소련의 역대 지도자들과는 통치 스타일부터 확연히 달랐다. 은둔보다는 서방 지도자들처럼 라이사 여사와 함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TV 연설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집권 첫해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상호 적대적 체제 경쟁을 중단하는 ‘데탕트’(긴장 완화)의 초석을 놓았다. 고르바초프는 1987년 12월 미국 백악관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중거리핵전력조약(INF) 등 군축 협정을 체결하면서 냉전 종식의 여정을 본격화했다.그가 소련 최고지도자로 관여한 역사적 사건마다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1988년 5월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부터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 붕괴, 같은 해 12월 미소 냉전 종식 공식 선언, 1990년 9월 한국과의 공식 수교, 같은 해 10월 독일 통일 등 격변의 막전막후 인물이었다. 1990년 3월 소련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이듬해 8월 보수파 쿠데타 이후 권력 기반을 잃었다. 같은 해 12월 소련 붕괴와 함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보리스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연방의 출범을 목도했다.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서방에서는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냉전 해체와 동구권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고국인 러시아에서는 경제 개혁에 실패하고 초강대국 소련을 고의로 몰락시킨 ‘배신자’라는 혹평이 적지 않다.이날 크렘린 성명을 통해 “세계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정치인이었다”고 애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과거 소련 해체를 가리켜 “20세기의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비난했고,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에도 소련 해체 문제를 거론했다. 당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끌던 재단 명의의 성명을 통해 “적대 행위 중단”을 촉구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한편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고르바초프는 비범한 통찰력을 가진 용기 있는 지도자”라고 애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냉전의 평화적 종식에 헌신한 평화 옹호자를 잃었다”고 추모했고,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그의 용기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 붕괴를 불러온) 옛 동독의 평화 혁명도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립과 갈등의 냉전 시대를 종식시키고 화해와 평화를 끌어낸 지도자이자 1990년 역사적인 한소 수교를 통해 한국과 러시아 간 우호·협력 관계의 확고한 틀을 마련한 선구자였다”고 애도했다.
  • 12년 전 오빠 응원 ‘송중기 여동생’…서울대 박사 됐다

    12년 전 오빠 응원 ‘송중기 여동생’…서울대 박사 됐다

    12년 전 벤치에서 오빠인 배우 송중기를 응원하던 앳된 소녀가 서울대 박사가 됐다. 31일 배우 송중기의 형 송승기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송중기 동생’ 송슬기씨가 서울대 박사가 된 근황을 전했다. 송승기씨는 “이리 꼬맹이였던 우리 막내가. 이야 우리 집에도 박사님이. 대견하다”며 어린 시절 삼남매 사진과 송슬기 씨의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식 사진을 함께 공유했다. 사진에서 송중기는 검은색 티셔츠에 흰색 모자를 쓴 편안한 차림으로 여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다. 학사모를 쓰고 꽃다발과 학위 수여증을 들고 있는 송슬기씨는 12년 전인 지난 2010년 KBS2 예능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 밴쿠버 동계 올림픽 특집에 오빠 송중기를 응원하러 모습을 비추며 유명세를 탔다.송중기는 당시 본격적인 게임에 앞서 “캐나다 밴쿠버까지 왔는데, 근처에 사는 친동생이 응원차 왔다”며 동생 슬기씨를 소개했고 이에 관중석에 앉아 있던 슬기씨가 일어나 “오빠 파이팅!”을 외쳤다. 송중기는 홀로 유학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여동생을 보며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슬기씨는 “엄마 보고 싶고, 아빠,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다. 송중기는 “혼자 생활하면서 외로울 텐데, 오늘 동생 위해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동생을 위한 각오를 다졌다. 비록 게임에서는 졌지만 송중기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많은 응원을 받았다. 한편 송중기는 성균관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연예계 대표적 ‘엄친아’로 통한다. 송중기는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송혜교와 2017년 10월 결혼했지만 1년 8개월 만인 2019년 7월 이혼했다. 송중기는 tvN 새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 JTBC 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로 시청자들과 만난다.
  • 애니메이션, 파키스탄, 일렉 기타...9월 이색 국악 공연 봇물

    애니메이션, 파키스탄, 일렉 기타...9월 이색 국악 공연 봇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9월에 접어들면서 전통과 현대의 다채로운 조화를 꾀하는 이색 국악 공연이 잇달아 열린다. 전통 음악의 발전적 확장을 이끌려는 국악계의 고민이 엿보인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은 오는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첫 번째 어린이 음악회 ‘쿵이의 궁금한 음악회’를 연다. 지금까지의 어린이 대상 국악 공연이 단순히 국악기 소개에만 그친 것과 달리 스토리와 애니메이션 영상을 접목해 더욱 쉽게 국악기의 원리를 알려 준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이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 아기 고릴라 ‘쿵이’가 자연의 소리를 만나고 아이들이 무심코 두드렸던 소리와 장단이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도 선보인다. 연출은 2004년 제3회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필름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김용찬 감독이 맡았다.국립국악원은 국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는 기획공연 ‘공감시대’를 오는 14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연다. 이 가운데 20일에는 파키스탄 전통음악인 ‘카왈리’에 우리 전통음악인 경·서도소리를 더해 국경을 넘나드는 한국 그룹 ‘딸’(TAAL)이 공연한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신비주의 음악에 민요를 접목해 무소유와 무경계의 음악, 국경 없는 소리를 추구한다. 22일에는 장구 연주자 김지혜와 바이올리니스트 시타 최로 이뤄진 듀오 그룹 ‘사위’(SaaWee)의 무대와 해금과 비올라가 만난 ‘줄앙상블’, 가야금과 하프가 함께하는 ‘1247’ 그룹 등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이 밖에 2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전통 국악관현악 편성에 서양식 오케스트라, 전자기타 등이 더해진 ‘믹스드 오케스트라-충돌과 조화’ 공연이 관객들을 찾는다. 김성국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이 지휘를 맡아 국악 연주자 55명과 서양 오케스트라 연주자 35명이 참여하는 이번 공연에서는 홍정의 작곡가가 백제 가요에서 모티브를 따온 ‘수제천 환상곡’과 첼리스트 주연선이 협연하는 최지혜 작곡가의 첼로 협주곡 ‘미소’ 등을 선보인다. 이 밖에 태평소 능게가락을 주제로 한 김성국 작곡가의 일렉트릭기타 협주곡 ‘능게’도 선보이는데, 기타리스트 황린이 함께한다.
  • 송중기, 서울대 학위수여식 포착…어깨에 손 올린 여성 누구?

    송중기, 서울대 학위수여식 포착…어깨에 손 올린 여성 누구?

    배우 송중기가 여동생의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포착됐다. 31일 송중기의 형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꼬맹이였던 우리 막내가. 우리 집에도 박사님이. 대견하다”며 사진을 게재했다. 게재된 사진에는 송중기 삼남매가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송중기는 검정 티셔츠에 흰 모자를 쓴 편안한 차림으로 꽃다발을 들고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다정한 삼남매의 모습이 훈훈함을 자아낸다. 송중기의 여동생은 의대 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중기 또한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출신의 수재다. 한편 송중기는 JTBC 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출연한다. 그에 앞서 tvN 새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 특별출연한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BBC 로젠버그 “따뜻하고 너그러웠던 고르바초프”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BBC 로젠버그 “따뜻하고 너그러웠던 고르바초프”

    냉전 해체에 한몫을 한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 겸 최초의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30일(이하 현지시간) 모스크바 중앙임상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 그의 업적과 공과를 둘러싼 수많은 기사, 각국 지도자들의 추모와 회고가 쏟아질 것이다. 그 중에서 눈길을 붙든 것이 스티브 로젠버그 영국 BBC 러시아 전문기자의 인터뷰 회고담이다. 고인의 인간적 풍모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로젠버그는 20년 동안 다섯 차례나 고인을 인터뷰했다. 로젠버그가 가장 먼저 언급한 인터뷰는 2013년 3월 고인이 모스크바에 세운 싱크탱크에서 가졌던 인터뷰다. 마지막 회고록을 출간한 시점이었다. 고인은 1999년 백혈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라이사에게 이 책을 헌정했다. 두 사람은 46년 결혼을 유지했는데 고르바초프가 그녀를 몹시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회고록의 한 대목은 고르바초프의 일기장을 옮긴 것이었다. 아내와 사별한 지 일년쯤 된 날이었다. “내 인생은 주된 의미를 잃어 버렸다. 나는 그렇게까지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눈은 책에 실린 라이사의 사진을 지적하며 밝아졌다. 그가 가장 아끼던 사진은 1953년 결혼식 전날에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촬영된 사진이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갈 때 그랜드 피아노에 눈길이 쏠렸다. 고르바초프가 버튼을 누르자 자동으로 건반이 눌러져 음악이 흘러나왔다. 고르바초프는 “쇼팽이야”라고 말한 뒤 거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거장인 척 연주하는 흉내를 내보였다. 그런 뒤 로젠버그에게 직접 피아노를 연주해 보라고 권했다. 로젠버그는 ‘모스크바의 밤’이란 유명한 노래를 연주했다. 고르바초프가 노래를 불러 로젠버그는 적잖이 놀랐다. 로젠버그는 그에게 다른 노래를 신청하라고 권했다. 그는 옛소련 병사들이 즐겨 불렀던 ‘어둠은 밤이다’를 신청했다. 가사는 “어두운 밤에 나는 너, 내 사랑이, 깨어 있다는 것을 안다. 아기 침대 옆에 앉아 있으면 몰래 눈물을 닦아낸다. 내가 당신의 깊고 온화한 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입술을 어떻게 너에게 내밀고 싶어 하는지” 이어졌다. 고르바초프는 “라이사가 내 노래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그가 나라를 통치했던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책임하게 소련을 붕괴시켰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고르바초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슬퍼하는 한 남자로만 비쳤다. 라이사는 어디에나 있었다. 남편의 책, 사무실 벽에 걸린 초상화로, 또 음악 속에 살아 있었다고 로젠버그는 돌아봤다.두 사람이 처음 인터뷰했던 것은 소련 붕괴 4년 뒤인 1996년 5월 고르바초프가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나와 보리스 옐친에게 도전한 시점이었다. 로젠버그는 미국 CBS 뉴스의 보조 프로듀서였는데 러시아 남부의 대선 유세 현장을 따라 다녔다. 로젠버그는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도록 영감을 준 고르바초프를 만난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1980년대 중반 페레스트로이카(재건)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표방하며 등장한 그는 세계가 본 적이 없는 소비에트 지도자였다. 젊고 편한 느낌이었다. 그는 서방과 나은 관계를 구축하고 침체된 소비에트 경제를 되살리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퇴임할 무렵, 소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1996년 대선 유세의 어느 날 저녁 고르바초프는 CBS 제작진을 호텔 레스토랑에 초대했는데 갑자기 밴드가 영국 록그룹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제, 내 모든 문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그들이 여기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젠버그는 매우 적절한 노래라고 느꼈다. 고르바초프의 대선 득표는 0.51%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권력을 잃었고, 되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단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유머 감각이었다. 카메라맨 빅터 쿠퍼는 유쾌한 텍사스인으로 러시아어 표현 하나를 익혀 곤란할 때 써먹곤 했는데 “사모에 글라브노 에토 코오리차!” 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닭고기입니다!”란 뜻인데 쿠퍼는 교통 단속에 걸렸을 때 이렇게 외쳐 곤경을 벗어나곤 했다. 쿠퍼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동영상을 고르바초프가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더니 주저하지 않고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르바초프는 “내가 뭐라고 말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고, 로젠버그는 쿠퍼가 가금류를 러시아어로 어떻게 일컫는지 매우 궁금해 한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고르바초프는 정말로 “빅터, 잘 아다시피, 가장 중요한 것은 닭고기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로젠버그는 한때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중 한 명이었던 인물이 이런 장난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제 살을 꼬집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만난 고르바초프는 아주 달라져 있었다. 전에 못 보던 슬픔이 느껴졌다. 자신의 업적이 퇴행되고 있음을 느끼며 러시아가 다시 권위주의로 복귀하고 동서 대결을 예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는 집권 초기를 회상했다. “내가 소비에트 공산당 사무총장이 됐을 때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의 마을과 도시를 여행했다. 모두가 얘기한 한 가지가 있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든, 식량부족이 어떻든,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는 충분한 음식을 먹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키울 것입니다. 우리는 버텨낼 것입니다. 전쟁이 없을 것이란 점만 보장해주세요’” 이 대목에서 고르바초프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놀랐다. 그것이 사람들이 해온 방식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지난 전쟁에서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보여준 것이다.” 그는 완벽하지 않았다. 완벽한 지도자란 없다. 하지만 고인은 3차 세계대전을 피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 두 가지 점에서 로젠버그는 고르바초프를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 ‘난임 고백’ 송재희♥지소연, 부모된다

    ‘난임 고백’ 송재희♥지소연, 부모된다

    배우 송재희·지소연 부부가 임신 소식을 전했다. 송재희는 30일 인스타그램에 “아내가 임신테스트기를 내민 그 순간. 내 인생이 새로운 희망의 세상 속으로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애써 정신을 차려보니 여전히 영원히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랑스런 나의 아내 소연이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고 글을 올렸다. 이어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두운 터널 속 한줄기 빛이 우주를 밝히는 듯 했고,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터널을 묵묵히 걸어온 아내가 위대해 보였다”며 “아픔이 일상이 된 평범했던 어느 날이 특별한 그 날이 되었고, 우리는 아빠와 엄마가 되었다. 그 순간을 잊지 않게 영상으로 기록해준 지혜로운 뽁뽁이 엄마 나의 소연이 감사해요 사랑해요”라며 영상을 올렸다.영상 속 지소연은 집 거실에 앉아있던 송재희에게 임신테스트기를 건냈고, 결과를 확인한 송재희는 미소를 지으며 지소연을 안아주고 있다. 한편 지소연과 송재희는 2017년 결혼했다. 지난해 12월 방송된 채널A 예능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해 난임을 고백한 바 있다.
  • ‘9살 연상♥’ 손연재, 신혼여행서 ‘초미니’만 고수

    ‘9살 연상♥’ 손연재, 신혼여행서 ‘초미니’만 고수

    최근 9살 연상 금융맨과 결혼식을 올린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손연재가 프랑스 파리 신혼여행을 하고 있는 근황을 공개했다. 손연재는 30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신혼여행을 즐기는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서 손연재는 신혼여행지인 파리에서 남편과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오랜 기간 운동으로 다져진 손연재는 니트에 초미니를 입고 있다.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하고 탄력 있는 각선미를 자랑해 눈길을 끌었다. 얼굴에는 새 신부의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앞서 손연재는 지난 28일 또다른 게시물에 “Merci Paris”(고마워 파리)라는 문구와 함께 파리 곳곳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게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센강과 에펠탑 등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면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손연재의 모습이 담겼다. 한편 손연재는 지난 21일 서울 모처에서 9세 연상 비연예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올해 초부터 연인 사이가 됐으며 남편은 금융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포착] 악마의 미소?…202명 살해한 발리 폭탄테러범 웃으며 인터뷰 논란

    [포착] 악마의 미소?…202명 살해한 발리 폭탄테러범 웃으며 인터뷰 논란

    무려 202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의 주범인 우마르 파텍(52)이 웃으며 홍보영상에 등장해 논란이 일고있다. 최근 파텍이 현재 수감 중인 인도네시아 포롱 교도소는 교도소장과 파텍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파텍은 교도소장과 함께 안을 거닐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다. 특히 그는 잇몸을 드러내고 웃으며 과거 자신이 벌인 범죄에 대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다. 파텍은 "내 실수는 발리 폭탄 테러에 연루된 것"이라면서 "나는 그들(테러범들)에게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이미 그들은 95%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에게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아무 이유도 없었다"면서 "앞으로 석방되면 인도네시아 내 급진주의를 근절하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교도소장 역시 파텍의 가석방을 지지하며 "다른 수감자들이 그의 말을 모범답안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며 거들었다.이같은 영상이 공개되자 발리 폭탄테러로 가장 큰 자국민 피해를 입은 호주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호주 ABC뉴스 등 현지언론은 영상 공개 소식을 '끔찍한 인터뷰'라고 전하며 파텍이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며 변명했다고 비판했다. 보도에 따르면 파텍은 2000년 크리스마스이브 폭탄 테러와 2002년 10월 12일 인도네시아 휴양지 발리의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 테러의 주범이다. 당시 발리 폭탄 테러로 202명이 숨지고 209명이 다쳤으며 사망자 중에서는 호주인이 88명으로 가장 많았다.또한 파텍은 발리 폭탄테러의 배후에 있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 단체인 제마 이슬라미야의 고위 간부였다. 그는 필리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테러리스트 단체와 수년간 일했으며 발리 폭탄테러에서는 폭탄 제조를 맡았다. 이후 그는 2011년 1월 체포돼 인도네시아로 송환됐으며 사형이 아닌 징역 20년형을 받고 수감됐다. 파텍이 수사관들에게 협조하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이유였다. 이렇게 기억 속으로 사라진 그는 여러차례 감형을 받고 수감 기간이 전체 형량의 3분의 2를 넘어서자 가석방 대상이 됐다. 이에 호주 정부가 나서 인도네시아 정부에 가석방 반대 입장을 밝혔으나 현재까지 가석방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 SBS 퇴사한 김수민 결혼식 근황

    SBS 퇴사한 김수민 결혼식 근황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수민(25)이 결혼식을 앞두고 소감을 밝혔다. 김수민은 2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청첩장 끝날 것 같지 않던 예신의 삶이 끝나감을 실감해요! 점점 막바지에 달하는 예식 준비, 혹시 인사 못 드린 분이 있을까봐 자다가도 번쩍 눈이 뜨이고.. 보고싶은 얼굴들이 다 와줄까 싶은 마음에 설레서 잠 못들고.. 놓친 건 없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마음이 이삿짐 싸듯 지나온 길을 자꾸 하나하나 돌아보게 해서 여러 감정들이 지나가요”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김수민의 웨딩 화보가 담겨있다. 순백의 드레스부터 러블리한 핑크 드레스, 고운 한복 차림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발산한다. 특히 김수민은 신랑 옆에서 환한 미소로 행복한 마음을 드러내 시선을 모은다. 김수민은 “내가 이러한 인생의 이웃들과 이런 기억들을 만들며 살았구나 하는..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하루하루 기도하는 마음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무탈함에 안도하고 가족에게 감사하고 반복이네요!”라며 “유일한 걱정, 나의 코감기가 제발 낫길 바라며…ㅎㅎ 모두 건강 잘 챙기시고 곧 예식날 뵈어요, 다들 보고싶어요!”라고 덧붙였다. 1997년생인 김수민은 지난 2018년 SBS 공채 24기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당시 김수민은 역대 최연소 아나운서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6월 퇴사한 김수민은 올해 2월 5세 연상의 연인과 혼인신고를 했으며, 오는 9월 결혼식을 올린다.
  • [서울포토] 블랙핑크, ‘MTV 어워즈’ 빛낸 화려한 퍼포먼스

    [서울포토] 블랙핑크, ‘MTV 어워즈’ 빛낸 화려한 퍼포먼스

    걸그룹 블랙핑크가 K팝 걸그룹 최초로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에서 무대를 펼쳤다. 블랙핑크는 28일 (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푸르덴셜센터에서 열린 VMA 시상식 무대에 올라 정규 2집의 선공개 곡 ‘핑크 베놈’(Pink Venom)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분홍색 연무가 무대에 깔리고 검은색으로 의상을 맞춰 입은 블랙핑크가 등장하자 현지 팬들은 야광봉을 흔들며 환호했다. 블랙핑크는 무대를 마친 후 환한 미소와 함께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퇴장했다. 블랙핑크는 본 행사 전 열린 사전 시상에서 ‘베스트 메타버스 퍼포먼스’(Best Metaverse Performance) 부문을 수상했다. VMA는 ‘그래미 어워즈’, ‘빌보드 뮤직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꼽히는 행사다. 블랙핑크는 TLC, 스파이스걸스, 피프스 하모니에 이어 역대 4번째로 VMA에서 무대를 선보인 걸그룹이 됐다. AP·AFP·EPA·로이터 연합뉴스>
  • ‘돌싱글즈3’ 한정민, 조예영과 재혼두고 온도차 “사계절 만나보고파”

    ‘돌싱글즈3’ 한정민, 조예영과 재혼두고 온도차 “사계절 만나보고파”

    ‘돌싱글즈3’ 유현철이 동거 셋째 날 변혜진에게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정민은 조예영과 재혼을 두고 다른 생각을 드러내는 온도 차를 보였다. 지난 28일 방송된 MBN·ENA ‘돌싱글즈3’는 어느덧 동거 3일 차를 맞은 한정민 조예영, 유현철 변혜진 커플의 보다 현실적인 일상이 그려졌다. 먼저 유현철 변혜진 커플은 동거 둘째 날 밤 루프탑에서 오붓한 술자리를 가졌다. 꽁냥꽁냥한 분위기 속 유현철은 “오늘 내 일상에 들어온 기분이 어땠어?”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변혜진의 답변을 듣기 전 비가 쏟아져 흐름이 끊겼다. 비를 피해 1층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다시 대화를 이어갔고, 변혜진은 “(유현철의 일상을) 실제로 보니까 집중이 될까 싶었다, 정신이 없더라”며 반신반의했다. 이에 유현철은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며 “그 상대가 혜진이었으면 좋겠다”고 솔직 고백해 변혜진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변혜진이 디렉터로 작업에 참여한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전날과는 반대로 유현철이 변혜진의 일상에 들어가게 된 가운데, 유현철은 변혜진이 돌싱 빌리지에서부터 설명한 전시에 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변혜진을 서운케 했다. 그러나 막상 전시회장에 들어서자, 유현철은 전시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며 누구보다 몰입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변혜진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자연스럽게 손깍지를 꼈다. 전시가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두 사람은 손을 놓지 않았다. 유현철은 “손을 주면 다 준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유현철은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며 변혜진의 옆자리에 밀착해 앉았다. 이어 일에 몰두하는 변혜진을 위해 직접 달걀프라이를 만들어 먹여주는 ‘스위트’한 매력을 뽐냈다. 또한 두 사람은 한낮의 맥주 타임을 가지며 나른한 시간을 즐겼다. 이때 유현철은 “혹시 남녀관계에서 성적인 매력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변혜진은 “그걸 너무 중요하게 보는 사람은 피한다“고 답했다. 이전 결혼 생활에서 생긴 트라우마를 조심스레 드러낸 것. 유현철도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변혜진의 의견에 공감했다. 깊은 대화를 통해 한층 더 가까워진 두 사람은 한 침대에 밀착해 누워 잠을 청했다. 이를 지켜본 이혜영 유세윤 이지혜 정겨운 등 4MC는 ”이전까지 겉돌던 대화가 처음으로 잘 맞는 느낌“이라며, 두 사람의 최종 선택을 긍정적으로 예감했다. 한정민 조예영은 동거 셋째 날에도 신혼부부 분위기를 풍겼다. 한정민이 이른 새벽 출근하자 조예영은 다정하게 배웅했고, 이후 집 청소는 물론 한정민의 속옷과 양말까지 손빨래했다. 같은 시간 한정민은 직장 선배들과 커피 타임을 가졌다. 그러던 중 한정민은 최종 선택이 불발된 ‘돌싱글즈3’ 멤버 간의 ‘썸’을 언급하는 폭탄 발언을 던져 4MC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잠시 후, 직장 선배들은 장거리 연애를 걱정하는 한정민에게 ”빨리 결혼하라“는 종용성 덕담을 건넸다. 이때 한정민은 ”아직도 결혼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며 ”사계절을 다 만나보고 싶다“고 재혼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조예영은 한정민의 퇴근 전, 수육을 삶으며 손님맞이 준비에 나섰다. 저녁에 ‘동거 하우스’를 방문할 한정민의 매형을 위해 직접 수육 요리에 나선 것. 떨리는 약속 시간이 다가왔지만, 한정민의 귀가가 늦어지면서 조예영은 홀로 매형을 맞이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한정민을 오매불망 기다렸고, 창문 밖으로 한정민이 등장하자, ‘여명의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재회 장면을 연출해 폭소를 유발했다. 이후 이들은 조예영이 만든 수육과 한정민의 부모님이 건넨 반찬으로 푸짐한 식사를 즐겼다. 조예영은 매형 앞에서도 ”(한정민이)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앞으로 이런 사람을 다시 못 만날 것 같다“고 고백해 매형을 감동케 했다. 식사 도중 이야기가 점점 깊어지자, 조예영은 한정민에게 ”나를 믿고 (일산으로) 올라올 생각은 안 해봤느냐“는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이에 당황한 한정민은 ”이 직업으로 평생 밥벌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지금까지는 옮길 생각을 못 해봤다“고 답했다. 잠시 후 조예영은 ”어머님과 아버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고 매형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한정민의 부모님을 위한 꽃다발과 선물을 전해 매형과 한정민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정민은 이 자리에서도 ”조금 더 경제적인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결혼하고 싶다“고 해 조예영과 재혼에 관한 온도 차를 보였다. ”결혼하게 되면 꼭 쌍둥이를 낳아라“는 매형의 훈훈한 응원과 함께 저녁 자리가 종료됐고, 최종 선택에서 ‘재혼 의사’를 묻는 도장이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조예영의 질문에 한정민은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자“는 알쏭달쏭한 답을 하며 셋째 날 밤을 마무리했다. ‘돌싱글즈3: 두 번째 신혼여행’ 11회는 오는 9월4일 오후 10시 MBN과 ENA 채널에서 방송된다.
  • ‘9살 연상♥’ 손연재, 신혼여행서 행복한 미소 “고마워 파리”

    ‘9살 연상♥’ 손연재, 신혼여행서 행복한 미소 “고마워 파리”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손연재가 프랑스 파리에서 행복한 신혼여행을 보낸 근황을 전했다. 손연재는 2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Merci Paris”(고마워 파리)라는 문구와 함께 파리 곳곳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게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센강과 에펠탑 등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손연재의 모습이 담겼다. 영상에는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클래식카가 파리 거리를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손연재는 이날 앞서 올린 게시물에서도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하는 사진 등을 올렸다. 이 게시물에는 배경음악으로 ‘소 디스 이즈 러브’(So This Is Love)를 선곡하는가 하면 ‘허니문’을 의미하는 꿀과 달 이모티콘을 사용해 신혼여행의 달콤함을 강조했다. 한편 손연재는 지난 21일 서울 모처에서 9세 연상 비연예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올해 초부터 연인 사이가 됐으며 남편은 금융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베트남, 닉슨 방중에 춘계 대공세… 남북 베트남군 7만명 전사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북베트남, 닉슨 방중에 춘계 대공세… 남북 베트남군 7만명 전사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닉슨과 中·蘇 정상회담 갖기로 해 북베트남, 베이징·모스크바 압박 신형 탱크·대공미사일 등 받아내 북군, 부활절 휴가 중 대대적 공세 사이공 근처 전략 요충 안록 포위 월남, 美 북폭 도움받아 북군 격퇴 파리 평화회담서 미국 입장 강화 美 모스크바 정상회담 군축 타결 1971년 가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기분이 좋았다. 연말이면 베트남 주둔 미군은 14만명으로 줄어들 예정이었다. 닉슨은 이듬해 상반기로 예정된 베이징과 모스크바 방문에 큰 기대를 걸었다. 10월 20일 헨리 키신저는 닉슨의 중국 방문을 협의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떠났다. 키신저는 저우언라이 등 많은 사람을 만났고 여러 곳을 방문했다. 마지막 날 공동선언을 기초할 때 중국 측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천명하자고 했으나, 키신저는 “대만해협 양측은 모두 하나의 중국을 주장함을 확인한다”는 문구를 제안해서 이 문제를 피해 갔다. 하지만 키신저의 노력은 같은 날 유엔총회를 통과한 중국 대표권 결의로 빛을 잃었다.●‘중공의 중국 대표권’ 유엔 표결 통과 유엔에선 공산권과 제3세계 국가들이 대만(중화민국)이 아닌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표권을 갖는다고 주장해서 이에 반대하는 미국과 대립해 왔는데, 1971년 들어서 총회는 이 문제를 표결로 다루게 됐다. 윌리엄 P 로저스 국무장관과 조지 H W 부시 유엔주재 대사는 중국이 안보이사국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대만이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반면에 키신저는 그렇게 하면 중국을 자극한다고 생각했다. 10월 25일 유엔 총회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표권을 갖는다는 결의를 찬성 76표, 반대 35표, 기권 17표로 통과시켰다. 유엔에서 두 개의 중국을 원했던 미국은 패배했고, 제3세계 대표들은 회의장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춤을 추었다. 닉슨은 미국의 원조를 받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을 지지한 데 대해 화를 내면서도 키신저가 베이징에서 양보를 했다는 인상을 줄까 봐 우려했다. 한편 인도와 파키스탄이 동파키스탄 문제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해서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파키스탄 정부가 군대를 동원해서 동파키스탄 독립운동을 진압하자 인도군은 동파키스탄을 침공했고 2주 뒤 전체를 장악한 다음 인도는 휴전을 선언했다. 중국 방문을 앞두고 파키스탄을 지지해 온 닉슨과 키신저는 사태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동파키스탄은 독립국가 방글라데시로 태어나게 됐으니 미국 외교는 쓴맛을 보았다. 1972년 2월 17일 닉슨은 로저스 국무장관, 키신저 등과 함께 역사적인 중국 방문에 나섰다. 상하이를 거쳐 2월 21일에 베이징에 도착한 닉슨은 저우언라이 총리의 영접을 받았고 오후에는 마오쩌둥과 회담을 가졌다. 닉슨 부부 등 일행은 만리장성과 자금성을 방문했고 항저우를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저우언라이와 함께 상하이를 방문해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상하이 선언문은 양국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도 대만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언론은 세계 평화를 향한 노력이라면서 크게 다루었고, 닉슨은 의기양양하게 미국으로 돌아왔다. 키신저는 닉슨의 중국 방문이 소련으로 하여금 군축(軍縮)회담에 나서게 할 것이며 베트남 평화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미군 정보당국은 1971년 연말부터 소련과 중국의 많은 물자가 북베트남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새로운 무기와 장비가 반입되는 것을 살피던 미군 정찰기 3대가 격추되자 닉슨은 5일 동안 공중 폭격을 명령했다. 베트남 주둔 미군 사령부는 북베트남이 1968년처럼 구정(舊正) 전후로 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월이 지나가고 3월이 와도 북베트남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월맹, 1972년 지나기 전 남쪽 장악 계획 평화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키신저는 하노이에 남베트남 지역에서 북베트남군 철수를 더이상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겠다고 비밀리에 제안했다. 북베트남은 키신저에게 비밀회합을 제안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키신저를 만난 북베트남 대표 레둑토는 더이상 큰 공세는 없을 것이며 이는 평화협상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베트남 수뇌부는 1972년이 지나기 전에 남베트남을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북베트남 정부가 닉슨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베이징과 모스코바에 강력하게 항의하자 소련과 중국은 신형 탱크와 대공미사일 등 막대한 무기를 북베트남에 제공했다. 1972년 3월 베트남 주둔 미군은 7만명 수준이었는데, 남베트남군을 지원하는 군사고문단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활절이 다가오자 베트남 주재 엘스워스 벙커 대사와 미군 사령관 크레이턴 에이브럼스 장군은 휴가를 떠났다. 3월 30일 북베트남군은 3개 전선에서 신형 탱크와 중포(重砲)를 동원해서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북베트남군은 순식간에 꽝찌를 함락하고 후에를 위협했다. 캄보디아를 통해 진입한 북베트남군은 사이공과 가까운 전략요충지 안록을 포위했다. 북베트남군은 또한 중부 도시 꼰뚬을 함락시킨 후 남베트남을 두 동강 내려고 했다. ●닉슨, 북베트남쪽 성역 없는 폭격 승인 닉슨은 여기서 밀리면 베트남전쟁을 명예롭게 끝내겠다는 자신의 약속이 실패할 것이며, 그러면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없음을 잘 알았다. 닉슨은 항공 전력을 최대한 투입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베트남 미군 기지에선 전폭기가 부족해서 주한 미 공군 소속 팬텀기들도 작전에 참가했다. 닉슨은 북베트남 영내에 대한 공습을 승인해서 미군 전폭기들은 베트남전쟁 시작 후 처음으로 성역 없는 폭격에 나섰다. 초기에 패퇴했던 남베트남군은 미군의 공중 폭격에 힘입어 반격에 나섰다. 후에를 방어하는 데 성공한 남베트남 해병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꽝찌를 탈환했다. 남베트남군 레인저 부대는 북베트남군의 포위망을 뚫고 안록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꼰뚬에서 포위된 남베트남군은 군사고문관 존 폴 밴의 지휘하에 B52 폭격을 유도해서 북베트남군을 완전히 섬멸했다. 존 폴 밴은 헬기 사고로 사망했는데, 닐 시핸 기자는 그의 일대기 ‘밝고 빛나는 거짓말’(1988년)을 통해서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고발했다. 꼰뚬을 포위하고 동쪽으로 향하던 북베트남군이 전략 요충지 안케패스를 지키던 한국군과 조우(遭遇)해서 우리 국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닉슨은 이 기회에 북베트남을 굴복시켜서 평화협상에 나오도록 할 계산이었다. 닉슨은 5월 9일을 기해 ‘라인배커 작전’이란 명칭을 붙인 대공습을 명령했다. ‘라인배커’는 미식 축구에서 방어 선수를 지칭하는데, 대학 시절 미식 축구 선수를 지낸 닉슨이 직접 지은 작전명이라고 한다. 이 공습에서 미 해군기들은 하이퐁 앞바다에 기뢰 1만 1000개를 투하해 항만 기능을 마비시켰고 B52 폭격기 편대는 하노이와 그 주변을 고공에서 폭격했다. 그해 10월 23일에 끝난 대공습 작전으로 인해 북베트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미군은 항공기 134대를 상실했다. 3월 30일에 시작된 춘계 대공세에 북베트남은 14개 사단 20만 병력과 탱크와 장갑차 300대를 동원했으나 5만명 이상이 전사했고 5만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탱크와 장갑차는 대부분 파괴되는 등 사실상 궤멸됐다. 미군은 전투기와 헬기 조종사 등 300여명이 사망했고, 남베트남군은 2만명이 전사했다.●제인 폰다 방공포대서 미국 비난 물의 춘계 대공세와 미군의 대공습은 유명한 사진을 남겼다. 6월 8일 사이공을 향하는 북베트남 부대를 차단하기 위해 투하한 네이팜탄으로 화상을 입은 소녀가 벌거벗은 채 달려오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서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다. 7월에는 하노이를 방문한 영화배우 제인 폰다가 미군기를 노리는 방공포대에서 미국을 비난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미국 법무부는 폰다를 반역죄로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북베트남군이 패퇴함에 따라 파리 평화회담에서 미국의 입장이 강화됐고,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화(化) 전략이 성공했음을 내세울 수 있었다. 북폭이 한창이던 5월 말 닉슨은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미소 정상회담을 갖고 군축협상을 타결하며 1970년대 해빙(detente) 외교를 열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고 50년이 지나서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게 될 줄을 키신저는 상상이나 했을까. 중앙대 명예교수
  • 혁명·예술 보듬은 ‘몽마르트르’ 사람의 아름다움에 더 빛난다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혁명·예술 보듬은 ‘몽마르트르’ 사람의 아름다움에 더 빛난다 [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거리를 아틀리에로 만든 화가들모델·뮤즈·감상자가 된 관광객들골목 구석은 버스킹 ‘천연의 무대’ 비극적 역사 ‘파리코뮌’의 공간서외로울 틈 없는 예술·낭만의 도시로 세잔 격찬하며 후원자 찾아준 모네경쟁사회 속 우리도 격려에 목말라숨은 잠재력도 일깨우는 ‘힐링 공간’사람 자체가 풍경이 되는 순간이 있다. 장소가 자아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그곳에 사람의 몸짓과 표정이 있기에 비로소 그 풍경이 짙은 의미를 피워 올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에펠탑만으로도 멋진 풍경이 되지만, 에펠탑 사진을 찍으며 ‘드디어 파리에 왔다’는 표정으로 뿌듯해하는 사람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순간이 더 멋지다. 베로나에 자리한 ‘줄리엣의 집’에는 로미오가 줄리엣이 사랑의 대화를 나눴다고 알려진 발코니가 있는데, 이곳은 사실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풍경’이다. 줄리엣의 발코니를 인공적인 조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막상 그곳에서 행복해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소가 저절로 스며 나온다.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은 풍경이 있다면 바로 ‘풍경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그렇게 장소의 아름다움을 넘어 사람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는 곳, 그곳이 내가 사랑하는 몽마르트르의 이미지다. 파리에 가면 여행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에펠탑 뷰’가 아름다운 숙소를 찾는다. 하지만 나는 ‘몽마르트르 뷰’가 아름다운 숙소를 찾는다. 몽마르트르가 보인다는 것은 왠지 파리의 멋지고 화려한 모습뿐 아니라 그늘지고 어두운 부분까지 다 볼 수 있는 더 깊고 드넓은 시야를 지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몽마르트르는 무려 2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파리코뮌’(1871)의 아픈 역사가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기에. 그 참혹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공포에 떨었던 사람들에겐 ‘파리가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까지 품게 한 뼈아픈 역사적 트라우마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비극적인 파리코뮌의 역사를 간직한 몽마르트르가 이제 예술가의 거리, 관광객이 매일 넘쳐나는 축제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사람들은 저 유명한 ‘사랑해 벽’에서 수십 장의 셀카를 찍으며 무려 300여개의 언어로 채색된 ‘사랑해’라는 문장의 달콤한 향기에 취한다. 몽마르트르의 그 극단적인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내 마음을 울린다. 나는 도시의 화려함만을 탐색하기보다는 도시에 스민 아픈 역사까지도 품어 안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모든 아름다움 다 모인 몽마르트르 정작 나의 친구들은 ‘몽마르트르에 가자’고만 하면 눈살을 찌푸린다. “여울아, 나 거기서 소매치기 만났잖아. 다신 안 가.” “너는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 꼭 가고 싶니? 몽마르트르는 너무 복작거려서 정신이 없더라.” “제발 여름엔 몽마르트르 가지 말자. 파리에서 제일 더운 곳일걸. 쪄 죽을 것 같아.” 과연 몽마르트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다. 차분함이나 조용함과는 거리가 먼 곳, 항상 넘쳐나는 관광객을 현혹하는 무리한 호객 행위가 판을 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몽마르트르에서 경찰을 발견하면 유난히 반갑다. 경찰이 지켜 줄 때만은 소매치기들이 우리 관광객들을 함부로 노리지 못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몽마르트르를 사랑한다. 몽마르트르에는 내가 파리를 향해 꿈꾸는 모든 아름다움이 다 모여 있기에. 거리 자체를 거대한 아틀리에처럼 만들어 어디서나 굴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열정적인 모습, 모든 사람이 그저 관광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막 태어나는 그림들의 모델이자 뮤즈이자 감상자가 될 수 있는 분위기, 골목 구석구석이 천연의 무대가 돼 어디서든 아름다운 길거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최고의 버스킹 장소가 바로 몽마르트르다. ●다채로운 빛깔의 파리 속 무료 전망대 무엇보다도 몽마르트르는 해 질 무렵 파리의 가장 다채로운 빛깔을 원 없이 내려다볼 수 있는 무료 전망대의 역할을 한다. 몽파르나스타워나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가려면 꽤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고 기다랗게 줄을 서야 하지만, 몽마르트르는 가도 가도 평지인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기에 누구나 이곳에서 찬란한 일몰과 일출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몽마르트르에서는 외로울 틈이 없다. 몇 발자국 옮기기만 하면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파리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 ‘벨 에포크’ 시대의 저 유명한 물랑루즈 포스터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작품을 엽서나 냉장고 자석으로 만들어 파는 상점들,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길거리를 바라보기만 해도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한 온갖 사람과 공연들, 관광객들에게 ‘호객’을 하기도 하지만 관광객들을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미소로 맞이해 주는 주인들. 마치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글을 쓰는 그 모든 예술가가 몽마르트르에 한꺼번에 모여 있는 것 같다. 1900년 이후 파리는 벨 에포크 시대의 풍요로운 문화적 발전과 예술가들의 교류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이사도라 덩컨, 마르크 샤갈, 장 콕토 같은 수많은 예술가가 파리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이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된 것도 이 시기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 언덕에 즐비하던 싸구려 목조 공동주택 ‘바토 라부아르’(세탁선)로 모여들어 예술과 사랑, 우정과 혁명을 이야기했다. 파블로 피카소, 막스 자코브, 모리스 드 블라맹크, 케이스 판 동언, 모딜리아니 등 많은 예술가가 가난에 굴하지 않고 예술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며 파리를 더욱 아름다운 빛의 도시로 만들었다. 세계적인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은 이렇게 말했다. 삶은 뿌리이고 예술은 꽃이라고. 삶에 뿌리내린 예술의 아름다움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이상이었다.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힘은 단지 예술적 재능이 아니다. 파리를 파리답게 만들어 주는 것, 파리를 늘 사랑과 낭만과 예술의 도시로 완성해 주는 화룡점정의 에너지는 바로 파리지엔이었다. 언제나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들, 예술가들을 그 자체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린 마음이야말로 파리를 파리답게 만드는 찬란한 주역이었다. ●예술가의 재능 발견할 준비가 된 도시 몽마르트르에서 내려다본 파리가 아름다운 또 하나의 이유, 그것은 예술가들이 ‘마침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흐, 마네, 모네, 고갱, 휘슬러, 무하 같은 화가들뿐 아니라 드뷔시, 생상스 등의 음악가들, 프루스트, 졸라, 발자크 또한 파리에서 활동할 때 최고의 영감을 얻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진정한 ‘지음의 벗들’을 만났다. 지금은 명실상부 위대한 아티스트로 인정받지만 한때는 심각한 굶주림과 언론의 혹평으로 고생했던 수많은 아티스트가 결국 파리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았다. 파리는 바로 언제든지 예술가의 재능을 발견할 준비가 된 도시, 객지에서 고생하던 수많은 예술가 지망생이 결국 자신의 가치를 최고로 인정해 주는 관객들과 후원자들을 발견하는 도시다. 마침내 예술가의 재능이 꽃피는 도시, 비로소 예술가의 간절한 꿈이 이뤄지는 도시, 오직 아름다움과 예술과 문학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 사람들의 도시가 바로 파리다. 세잔의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던 당시 분위기에 맞서 모네는 수많은 사람에게 세잔의 재능을 격찬했다.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평생 더 나은 지원을 받지 못했다니, 얼마나 애석한 일인지! 그야말로 참된 예술가인데, 너무 자신감이 없어요. 격려가 필요하다오.”(메리 매콜리프, ‘벨 에포크, 우리들의 파리’ 중에서) 한때 자신도 굶주림과 외로움으로 고생하던 모네가 세잔을 칭찬하며 그의 후원자를 찾아 주는 모습은 내게 커다란 감동을 줬다. 우리에게도 그런 진심 어린 격려가 필요하기에. 질투하고 경쟁하는 세상의 분위기에 휩쓸려 가지 않고, 서로의 배고픔과 외로움을 걱정해 주던 파리의 아티스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모네의 수련과 세잔의 사과와 고흐의 해바라기를 사랑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눈부신 잠재력을 일깨우는 장소, 몽마르트르에 다시 한번 가고 싶다. 북적임과 혼잡스러움 속에서도 파리의 아름다움을 가장 완벽하게 압축하고 있는 거리, 몽마르트르야말로 나의 힐링 스페이스이기에. 이렇게 복잡한 상념에 잠겨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서 파리 시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저것 봐! 무지개야!” “쌍무지개다!” 영어와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뒤섞인 탄성은 저마다 그 찬란한 무지개를 앞다퉈 환영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이 아름다운 파리를 향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사다리를 내려 준 것 같았다. 그 어떤 인간의 건축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오직 자연만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하게 내려 줄 수 있는 위대한 선물이었다. 문학평론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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