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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경영자 과정’ 인맥의 산실로

    대학과 연구원 등의 ‘최고경영자 과정(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이 재계 ‘인맥의 산실’로 절정의 위세를 떨치고 있다. 사교와 학습을 충족시킬 수 있는 데다 교육과정 이수 후에도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 재계의 새 얼굴일수록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동문뿐 아니라 강사진도 상당수 현직 최고경영자(CEO)이거나 출신이어서 ‘인맥 다지기’의 지름길로 통하고 있다.●미망인 ‘CEO 3인방’ 알고 보니 동기 갑작스럽게 남편의 유업을 이어받아 재계에 얼굴을 내밀었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양귀애 대한전선 고문,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 이들 미망인 ‘CEO 3인방’도 인적 네트워크 확보를 위한 첫 행보로 최고경영자 과정을 선택했다. 이 가운데 가장 열심히 재계 인사와 스킨십 확대에 나선 이는 현 회장이다. 현 회장은 지난해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4T 최고경영자’ 과정 1기를 다녔다. 이에 앞서 세계경영연구원(IGM) 최고경영자 과정(IGMP)을 거쳤으며, 지난해 3월에는 심화 과정인 IGM 최고경영자 고급과정을 끝냈다. 또 IGM이 주관하는 ‘CEO 협상스쿨’에도 참가했다. 현 회장은 IGMP 수업을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다는 후문이다. 현 회장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동기 중 한 명이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이다.2004년 남편과 사별한 뒤,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지난해 현 회장과 함께 최고경영자 과정 1기를 다녔었다. 양귀애 고문과 현 회장은 세계경영연구원 IGMP 2기 동기생이다. 양 고문과 현 회장은 이를 계기로 사석에서도 자주 만나며 우의를 다지고 있다.●AMP는 ‘또 다른 학맥’ 최고경영자 과정은 CEO들의 ‘학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세계경영연구원 IGMP는 현재 320여명의 각계 인사가 거쳐갔으며,80여명이 5기 수업 중에 있다. 지난해에는 IGMP 총동문회가 결성되면서 ‘학맥 인연’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동문회장을 맡고 있으며, 국내 AMP 가운데 가장 활발한 동문 행사를 펼치고 있다. 윤종웅 하이트맥주 대표와 이상윤 농심 사장, 서영길 TU미디어 사장, 김영옥 하림그룹 부회장 등이 졸업생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과 성낙양 야후코리아 사장, 임병석 C&그룹(옛 세븐마운틴그룹) 회장 등은 5기 수업을 받고 있다. 세계경영연구원 관계자는 “수강생의 75%가 CEO”라면서 “과정 이수 이후엔 총동문회 차원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어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와튼스쿨 CEO 과정’도 경쟁률이 4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강영중 대교 회장과 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 등이 거쳐갔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도 김신배 SK텔레콤 사장과 이채욱 GE코리아 사장 등의 거물급 CEO들이 참여하면서 AMP 학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밖에 연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주요 대학마다 최고경영자 과정을 열고 있어 국내 CEO 가운데 발을 담그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인디아 리포트] (6) 인도최대그룹 타타를 배워라

    [인디아 리포트] (6) 인도최대그룹 타타를 배워라

    |뉴델리·방갈로르 전경하특파원|지난 2000년 5월, 타타스틸 임원 40명이 인도의 한 휴양지에 모였다. 앞으로 5년간 타타스틸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난상토론했다.40명이 한 이야기는 가감없이 기록돼 당시 5만 8000명에 달하는 타타스틸 직원들에게 공개됐다. 직원들은 임원 40명이 쏟아낸 목표 중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랐다.1위는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이었다. 인도 최대 그룹 타타. 잠셋지 타타(1839∼1904)가 1887년에 타타선즈로 시작한 그룹이다. 계열사로는 내년이면 창립 100주년이 되는 타타스틸, 지난 2004년 대우상용차를 인수한 타타모터스, 뭄바이의 타지마할 등 인도내 56개 호텔을 갖고 있는 인도호텔 등 93개가 있다. 이들은 43개 국가에서 영업중이다. 총자산가치 450억달러(45조원)에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3% 안팎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재벌과는 달리 타타그룹은 인도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잡동사니 기부는 NO 타타 그룹이 인도 사회에 내는 기부는 굵직하다. 그룹 홍보를 맡고 있는 타타서비스의 산제이 싱 부사장은 “창업자가 잡동사니(patchwork)식 기부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돈이나 생필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성장할 기초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봉사활동의 기본 개념이다. 인도 북동부 자르칸트주에 있는 잠셋푸르는 ‘타타 나가르(마을)’로도 불린다. 타타스틸이 자리잡은 이곳은 창업자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이다. 인구 70만명의 도시에 두개의 골프코스, 공항과 수영장, 병상 750개인 병원 등이 있다. 그동안 타타스틸 내 도시과에서 운영을 담당하다 지금은 2004년 타타스틸 자회사로 출범한 ‘잠셋푸르유틸리티&서비스사(JUSCO)’가 도시의 운영을 맡고 있다.24시간 운영되는 콜센터에 정전없는 전기공급, 마실 수 있는 수돗물 등 인도에서는 분명 ‘꿈의 도시’이다. 인도 IT의 트라이앵글 중 한곳인 방갈로르.‘가든 시티’라 불릴 정도의 푸르름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인도의 간판 싱크탱크인 인도과학대학원(IISc·Indian Institute of Science)이 있다. 타타가 인도의 미래는 과학과 공학연구가 결정짓는다며 설립을 주도, 그가 죽은 뒤인 1909년에 설립됐다. 타타 유산의 3분의1이 이곳에 쓰였다.IISc에 타타의 흔적을 남기자는 측근들 조언에 “IISc는 내가 인도에 준 것”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매년 3월3일이면 IISc에서 2000명의 연구자들이 모여 그를 기리는 행사를 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부도 있다. 불가촉 천민으로서는 처음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코체릴 라만 나르야난(1920∼2005) 전 대통령. 그는 ‘타타 장학생’의 한 명이다. 동시대 인도인들보다 서양문물의 우수성을 접했던 타타는 학비문제로 고민하던 유학생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지금도 매년 자선단체인 라탄타타트러스트는 100여명의 유학생 모집 공고를 낸다. ●외유내강의 회사강령 밖으로는 많은 자선활동을 펴지만 내부 윤리강령은 매우 엄격하다.2000년 성문화됐고 타타 직원이 되면 반드시 서명하도록 돼 있다. 한 부는 회사가, 한 부는 본인이 보관한다.24개 항목으로 나눠진 윤리강령의 첫번째 주제는 국가이익이다.‘타타 회사의 모든 행동은 활동중인 국가의 경제적 발전에 도움이 돼야 한다.’가 첫 문장이다. 싱 부사장은 “타타 기업이 어떤 나라에 진출하면 그 기업은 인도의 타타가 아니라 그 나라의 타타”라고 설명했다.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 해당 국가의 사회·문화·경제적 행동양식을 따르도록 규정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뇌물 제공·습득 금지, 정치참여 금지 외에도 친척이 있는 회사가 타타 계열사들과 거래관계를 맺게 되면 신고하고 회사의 결정을 기다릴 것 등 직원의 이해와 회사의 이해가 상충하는 부분에 대해 세밀하게 적고 있다. 각 사별로 윤리담당 임원이 있어 매달 보고서를 그룹기업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엄격한 윤리강령 대신 직원 복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타타는 직원이 순직했을 경우 가족들의 100% 고용승계를 보장한다. 순직이 아닌 경우에도 유가족 고용이 장려된다. 대상은 배우자 또는 자녀다. 고용을 승계받을 사람이 교육을 받아 기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집중교육도 실시된다. 자녀들에 대한 장학금 중에서는 딸만을 위한 장학금도 있다. 역차별이라는 지적에 싱 부사장은 “여성이 수천년 동안 받아온 차별을 없애려면 그것으로도 모자란다.”고 응수했다. 타타그룹은 성희롱으로 적발되면 직책에 상관없이 해고될 만큼 양성평등이 이뤄져 있다. lark3@seoul.co.kr ■ 타타그룹 조직 어떻게 타타그룹의 지주회사는 타타선즈다. 타타인더스트리도 모(母)회사 성격을 갖지만 새로운 사업에 벤처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즉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자금 회수에는 오랜 기간이 걸리는, 첨단산업에 기반한 특정 산업의 자금 담당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다. 물론 타타선즈에서 분리됐다. 타타선즈의 주식 66%는 자선단체인 라탄타타트러스트와 도랍타타트러스트가 갖고 있다. 도랍 타타는 잠셋지 타타의 큰아들, 라탄은 둘째 아들이다. 이래서 인도인들은 타타가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인도에 좋은 일이라고 믿는다. 정치권도 타타에는 손을 벌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타의 윤리강령에도 정치인에게 돈이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타타서비스는 타타선즈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그룹 전체의 법률 서비스, 홍보, 계열사 사이의 의사소통 등을 담당한다. 타타 계열사에 대한 감시, 지난 성과에 대한 검토, 앞으로의 정책에 대한 설계, 앞으로 나아갈 방향 제시 등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지난 2004년 그룹기업센터(GCC·Group Corporate Center)가 만들어졌다. 타타선즈와 타타인더스트리에서 직접 임명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며 타타선즈에 보고할 의무를 갖는다.GCC의 집행조직으로는 그룹집행실이 있다. ■ 인도 주요그룹 특징 살펴보니 인도에도 우리의 ‘왕자의 난’에 버금가는 일이 있었다. 재계 2위였던 릴라이언스 그룹이 창업주인 디라즈랄 암바니(1932∼2002년) 사망 이후 지난 2004년 형제간에 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다. 미망인의 중재로 형인 무케시 암바니(48)가 석유·가스·석유화학 부문을, 동생인 아닐 암바니(46)가 전력·통신·금융 등의 계열사를 갖고 있다. 현재 무케시 암바니의 릴라이언스가 재계 2위, 동생이 재계 3위이다. 재계 1위는 타타이다. 인도 그룹들은 특히 가족경영(family business)을 중시한다. 카스트를 더욱 세분화, 직업별로 나눠지는 ‘자티’가 같다면 가족으로 여긴다. 자신이 속한 자티의 번영이 기업경영의 목표다. 이익이 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문어발식’ 사업확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위 500대 기업의 90%가 가족경영 기업이라는 발표도 있다. 대표적인 가족경영 그룹으로는 비를라·고엔카·루이아 등이 있다. 비를라는 타이어 원료인 카본블랙을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업체를 포함해 고무·식용유·섬유 등의 업종에 진출해 있다. 최근 들어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고 재벌 총수가 30대의 쿠마르 만가람 비를라(38)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엔카 그룹은 무차입경영으로 유명하며 루이아 그룹은 철광석 수출, 운송업 등에 관여하고 있다. 그룹은 아니지만 세계적 철강왕 락시미 미탈의 미탈스틸도 인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기업이다. 미탈 회장은 인도에서 최고의 부자다. 최근에는 자동차 제조업체인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전경하특파원 lark3@seoul.co.kr
  • 이종욱 WHO총장 국립묘지 안장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안장식이 29일 오전 11시 대전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역에서 엄수됐다. 안장식에는 미망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와 아들 충호씨 등 유가족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캐네스 버나드 WHO 조문단 대표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안장식은 조사, 종교의식, 헌화와 분향, 안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미망인 레이코 여사는 아들 손을 부여잡고 안장식 내내 오열하며 먼저 간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캐네스 버나드 조문단 대표는 조사에서 “고인은 말보다 행동과 실천을 중시했다.”고 기렸다. 정부는 세계보건에 업적을 쌓아 국위를 선양한 공로를 높이 평가, 국민훈장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키가 작아서 고민인데-Q여사에게 물어보세요(46)

    저는 19세의 소년인데 키가 안 커서 고민입니다. 나이는 19세지만 사람들은 겨우 1 m53cm 정도의 제 키를 보고 15세 쯤으로 밖에는 보지 않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키가 작으면 유전이라지만 저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키가 클 수 있는 방법이라도 좋으니 꼭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약이라도 좋습니다. <고민생 올림> [의견] 비관할 것 까지는 없어요 서울大 의대(醫大) 성낙응(成樂應)교수는 본인을 진찰해 보기 전에는 확실한 원인을 캐 낼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키가 자라지 않는 원인은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 제일 흔한 예는 이유기(離乳期)의 영양섭취 불충분이라고 합니다. 생후 3년~6년 사이가 이른바 이유기인데 이 때 「칼슘」이나 동물성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원래 타고난 대로의 키로 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1m80cm로 클 수 있는 사람이 이때의 영양결핍으로 1m65cm 밖에는 크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19세이니 이제 새삼스레 약물이나 물리치료를 해보았자 신통한 효과는 못볼 것이랍니다. 19세 이후라도 25세쯤까지는 조금씩 키가 자라는 것이 보통이므로 크게 낙심할 것까지는 없읍니다. 의학적인 의견은 그렇다치고 내 소견 같아서는 키가 지금대로 있다손 치더라도 비관할 이유는 없읍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있지 않아요? 온 세계의 미녀란 미녀는 모두 매혹시켰고 드디어는 미국대통령의 미망인 「재키」를 아내로 맞은 희랍의 선박왕 「오나시스」를 보세요. 그는 키가 무척 작답니다. <Q> [선데이서울 69년 10/5 제2권 40호 통권 제 54호]
  • 이종욱 총장 유해 28일 서울에

    |제네바 심재억특파원|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장례 미사가 24일 낮 12시30분(한국시간 오후 7시30분) 스위스 제네바 중앙역 근처 노트르담 성당에서 엄수됐다. 고인의 유해는 28일 서울로 운구돼 따로 영결식을 가진 뒤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될 계획이다. 동생인 이종오(국무총리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명지대 교수는 시신을 화장하고 에어프랑스 편으로 유해를 옮겨 28일 오전 7시 서울에 도착한다고 밝혔다. 유해 봉환이 늦어지는 것은 스위스 행정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유족들은 설명했다. WHO가 주관한 고인의 장례식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대신해 마크 말록 브라운 사무차장이 참석했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들의 수장들과 각국 보건장관과 외교사절이 대거 자리를 함께했으며 일반인과 취재진의 추모도 잇따랐다. 아들 충호(28)씨는 조사를 통해 “(고인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100%의 노력을 다했다.”면서 부친의 생전 모습을 소개했다. 이어 한국 조문 사절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조화가 놓인 제단에 올라 조사를 낭독했다. 이철 북한 대표부 대사도 조사에서 “(고인이) 조선 민족의 도덕과 신의를 겸비한 분, 말 없이 진심으로 많은 걸 공헌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 대사는 고인이 사무총장직에 도전할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적극 도와줄 것을 지시한 바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례식 장면은 유족의 요청에 따라 대표 사진기자가 촬영해 WHO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고인의 갑작스러운 사망 경위와 관련, 취임 이후 3년간 계속된 과로가 누적된 결과라는 추정이다. 미망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는 고인의 뜻에 따라 헌금하려는 사람들은 페루 리마에 있는 자선단체 ‘소시오스 엔 살루드’로 보내주거나 자매단체인 ‘파트너스 인 헬스’를 통해 전달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WHO는 전했다. jeshim@seoul.co.kr
  • 이종욱 총장 장례식 24일 가톨릭식으로

    |제네바 심재억특파원·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세계는 비범한 지도력으로 끊임없이 노력한 지도자를 잃었다.” 22일 세상을 떠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 대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 중국과 일본 등 각국 정부와 지도자들의 애도가 줄을 잇고 있다. 이 총장의 장례식은 24일 낮 12시30분(한국시간 오후 7시30분) 제네바 중앙역 근처 노트르담 성당에서 WHO장(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유족들은 화장 뒤 유해를 서울로 봉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부시 “비범한 지도력, 끊임없이 노력한 인물” 부시 대통령은 성명에서 서거 소식을 듣고 부인 로라 여사와 함께 슬픔에 잠겼다면서 “이 박사는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 박사는 세계 최고의 보건 책임자로서 폐결핵, 에이즈에서 소아마비 근절에 이르기까지 수백만명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지칠줄 모르게 노력해 왔다.”며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미 국무부의 숀 매코맥 대변인은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이 슬픔에 잠겼다.”면서 “미국은 수년간 조류 인플루엔자 대처와 에이즈 퇴치를 위해 이 박사와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고 밝혔다. 이 총장의 뇌수술 다음날인 21일 병원을 직접 찾아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던 이철 주제네바 북한 대표부 대사는 이날 WHO 총회 회의장 한쪽에 마련된 조문록에 애도의 글을 남겼다. 류첸차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해 “이 총장의 서거로 불행하게도 WHO는 뛰어난 지도자를 잃고 중국도 진실한 벗을 잃게 돼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24일 가톨릭장으로 이 총장 장례식은 미망인 레이코 여사와 누나 이종원씨, 동생 이종오 교수, 외아들 충호씨 등이 참석한 유족회의의 뜻을 WHO가 받아들여 가톨릭 의식으로 치러진다. 고(故) 이 총장은 전날 아침 의식불명 상태에서 가톨릭 신자인 부인의 뜻에 따라 영세를 받았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총회 참석차 제네바를 방문 중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WHO 조문록에 가장 먼저 서명했다. 유 장관은 현지에서 우리 정부의 조문 사절 역할을 맡는다.WHO는 차기 총장이 선출될 때까지 안데르스 노르트스트롬 총무담당 사무차장이 총장 직을 대행하기로 했다. 외교통상부는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23일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02-3497-7708)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이날 고 이 총장을 국립묘지 안장대상자로 결정했다. 정부는 고 이 총장에게 국민훈장 중 최고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jeshim@seoul.co.kr
  • 용인 ‘백남준 미술관’ 첫삽

    2008년 상반기 개관 예정인 백남준미술관 기공식이 9일 오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미술관 건립부지에서 열렸다. 백남준 타계 100일을 맞아 열린 기공식엔 미망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 등 유족과 손학규 경기도 지사, 유홍준 문화재청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미술관 건립 주체인 경기문화재단 송태호 대표 등이 참석했다. 1만여평의 부지에 연면적 1700여평 규모로 세워지는 미술관엔 상설 및 기획전시실, 자료실, 창작공간 등이 들어서게 된다. 기공식에 앞서 안은미 무용단이 축하 퍼포먼스 공연을 펼쳤으며 백남준 일대기를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다. 경기문화재단은 지난 2001년 ‘백남준’이란 명칭이 들어간 세계 유일의 미술관을 세운다는 양해각서를 백남준과 체결한 뒤 289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미술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재단은 미술관 착공을 기념해 11일부터 한 달간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특별전 ‘백남준 스튜디오의 기억-메모라빌리아’를 연다. 뉴욕 브룸 스트리트 스튜디오의 한쪽 벽면을 통째로 구입해 소장하고 있는 재단 측은 이번 전시를 위해 이를 그대로 재현, 백남준에 대한 기억과 작업 과정을 되새긴다. 백남준이 1960년대부터 작업하던 뉴욕 브룸 스트리트의 스튜디오는 백남준 예술의 요람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각종 TV와 전선, 작업도구들이 얼기설기 배치된 선반에 쏟아질 듯 놓여있고 백남준이 벽에 휘갈겨 놓은 전화번호, 작업도면, 낙서, 친구사진, 포스터 등이 널려있다. 조각가 임승오씨가 3주동안 매달려 벽면을 재현했다. 한편 백남준의 조카이며 법적 대리인인 켄 백 하쿠타는 이날 오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인의 유분 일부를 봉은사에 계속 안치하고 백남준의 친구인 조각가 하영진이 1994년 주조한 고인의 데드 마스크도 봉은사에 둘 것”이라고 밝혔다. 하쿠타는 자신의 유분을 세계 여러나라에 분산하기를 바란 백남준의 뜻에 따라 유분 일부를 49재에 맞춰 지난 3월 한국에 들여와 봉은사에 안치해 왔다. 백남준 미술관 건립을 둘러싸고 경기문화재단과 갈등을 빚어온 하쿠타는 기공식과 관련,“백남준 미술관 기공은 경사스러운 일”이라며 “기공식에 불참한 것은 초청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빨간마후라 숭고한 정신 영원하리”

    지난 5일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에어쇼를 펼치다가 산화한 고 김도현(33·공사 44기) 소령의 영결식이 8일 부대장으로 엄수됐다. 이날 강원도 횡성군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유족과 500여명의 동료 조종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영결식에서 비행단장 강충순 준장은 조사를 통해 “빨간마후라의 정열을 가슴에 품고 조국의 창공에서 산화한 살신보국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 기억속에 영원히 함께 살아 숨쉴 것” 이라며 “고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공군이 조국영공의 수호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공사 44기 동기생 대표인 고준기(33) 대위는 추모사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빨간마후라가 되겠다며 동기생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던 당신이 그렇게 날고 싶어 하던 하늘에서 애기(愛機)와 함께 산화했다.” 며 “이제 너를 보내지만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오열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고 김 소령의 영정 옆에는 큰아들 건우(4)가 어린이 집에서 그린 아빠, 엄마 얼굴그림과 카네이션꽃이 놓여 있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전투복을 입은 영정사진 앞에는 영원한 전투기조종사를 상징하는 빨간마후라가 놓여 있었다. 영결식에서는 고 김 소령의 미망인과 건우(4), 태현(3) 두 아들이 김 소령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필승’거수경례와 함께 헌화 및 분향했으며 유해는 오후 3시 국립 대전현충원 장교묘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고 김 소령에게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했다. 고 김 소령은 1996년 공사 44기로 임관해 F-5E 전투기를 조종했으며 2005년 2월부터 블랙이글스팀에 합류, 그동안 모두 55회의 에어쇼에 참가했다.횡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애플컴퓨터, 애플사 이겼다

    애플이 애플을 이겼다. 미국의 애플 컴퓨터가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가 지난 1968년 설립한 애플사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런던 법원의 판결이 8일 내려졌다. 이번 판결로 애플 컴퓨터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에서 무지개나 흰색, 회색 사과 로고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존 레넌의 미망인 오노 요코, 조지 해리슨의 상속인이 소유한 애플사는 녹색 사과를 상징화한 로고로 유명했다. 이 회사는 1981년과 91년의 두차례 합의를 위반하고 애플 컴퓨터가 아이포드 플레이어와 아이튠즈 다운로드 서비스를 통해 음악산업에 진출했다고 주장했다. 애플 컴퓨터는 올해 초 법원에서 아이튠즈는 원래 두 회사가 합의한 데이터 전송 서비스이며, 음악 애호가들은 애플 컴퓨터와 애플사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다고 반박했다. 현재 애플 컴퓨터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통해 10억개가 넘는 곡을 판매하고 있으며,MP3 플레이어인 아이포드를 1400만개 정도 팔았다. 아이튠즈 서비스를 이용해 하루 300만곡 정도가 ‘내려받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을 내린 런던 법원의 에드워드 만 판사도 아이포드 애용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사는 비틀스가 녹음한 곡 중 어떤 곡에 대해서도 온라인 뮤직 서비스 판매 라이선스권을 주지 않았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꽃병이 깨졌다… 그의 영혼 보호하소서”

    지난 1월 타계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26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구겐하임 미술관 메인홀에서 펼쳐졌다. 이날 퍼포먼스에서는 백남준 선생의 지인들이 고인을 회고하며 그의 작품을 설명한 뒤 작고한 가수 존 레넌의 부인인 오노 요코가 ‘약속. 조각. 뼈’란 제목으로 특별 퍼포먼스를 벌였다. 요코는 커다란 꽃병사진을 배경으로 450여조각의 꽃병조각을 놓고 “꽃병이 깨졌다.”,“동서남북의 신이시여 백남준의 영혼을 보호하소서.”를 외친 뒤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통해 고인을 기렸다. 2시간여 계속된 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요코의 특별퍼포먼스에 사용된 깨진 꽃병조각을 하나씩 가져갔다.앞서 이날 퍼포먼스를 마련한 존 헨허트 구겐하임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항상 도전적인 모습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 새로운 시대를 연 선각자로 백남준 선생을 회고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망인인 시게코 구보타 여사와 장조카인 켄 백 하쿠타, 불프 헤르첸고라트 독일 브레멘 미술관장, 토머스 크렌스 구겐하임 파운데이션 디렉터, 백남준과 초기작품을 같이했던 일본 예술가 슈아 아베, 요나스 매카스 등이 참석했다.또 뉴욕 예술계 관계자와 시민들도 다수 참석, 총 참석자가 500명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뉴욕 연합뉴스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1]

    미남(美男), 미성(美聲)의 가수 손인호씨는 ‘얼굴 없는 가수’였다.‘비 내리는 호남선’ ‘울어라 기타줄’ ‘해운대 엘레지’ ‘하룻밤 풋사랑’ ‘한 많은 대동강’ 같은 우리의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숱한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10여년 간 정상에 서 있는 동안에도 방송 무대에 전혀 서지 않았다. 심지어 일반 무대에서조차 거의 볼 수 없었다. 당시 일반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의 본 직업은 영화 녹음기사였다. 그는 가수로서 150여곡의 노래들을 발표했지만 영화 녹음기사로는 무려 2000여편 이상을 작업했다.‘돌아오지 않는 해병’ 그리고 ‘로맨스 빠빠’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이 모두 그가 녹음작업을 한 영화들. 이로 인해 대종상 녹음상을 무려 일곱 차례나 수상했을 만큼 영화녹음작업에 있어 독보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 손인호씨가 가수로서 받은 상은 단 한차례도 없다. 보릿고개 시절, 라디오와 영화가 국민들에게 최고의 오락수단이었던 때, 그 두 무대를 동시에 장악한 인물로 ‘소리의 마술사’라고까지 불리던 손인호씨는 속칭 ‘38 따라지’다. 본명 손효찬(孫孝燦).1927년 평북 창성에서 출생해 창성보통학교 6학년 때, 수풍댐 건설로 인해 마을 일대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가족 모두 만주 창춘(長春)으로 이주해 생활했다. 광복 후 신의주로 옮긴 손인호씨는 평양에서 열렸던 이북 도민 전체 노래자랑대회인 ‘관서콩쿠르대회’에 참가,‘집 없는 천사’를 불러 1등을 차지한다. 이때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가수가 되려면 이남으로 가야 소질을 살릴 수 있다.’는 권유를 받고 이남 행을 결심, 광복 이듬해인 46년 12월 여섯 살 터울의 형과 단둘이 서울로 내려온다.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들 몸에 뿌려진 것은 DDT, 즉 살충제였다. 나이가 어려 곧바로 수용소에서 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그는 당시 서울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사람은 1주일 동안 굶어도 물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회고할 정도다. 그는 당시 작곡가 김해송씨가 이끌던 KPK악단에서 실시한 가수모집에 응모, 참가자 300명 중 1등을 차지해 악단생활을 시작했고 이어 윤부길씨가 이끌던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자 그는 군예대에 들어가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제대 후 공보처 녹음실에 입사한 그는 ‘대한뉘우∼스(뉴스)’ 녹음을 담당하며 아울러 영화 녹음기사로도 활동을 시작한다. 그 무렵 많은 음악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작곡가 박시춘씨. 이 인연으로 그는 노래 두 곡을 받아 취입하게 되는데 그 노래가 바로 ‘나는 울었네’와 ‘숨쉬는 거리’다. 휴전 이듬해인 54년도의 일이다. 그의 노래 중 56년에 발표한 ‘비 나리는 호남선’과 관련,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자유당 시절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한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호남선 열차 내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발생했기에 충격에 빠진 국민들은 마치 추도곡처럼 ‘비 나리는 호남선’을 애창했다. 때를 같이 해 온갖 유언비어가 꼬리를 물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신익희 선생의 미망인이 직접 이 노래를 작사해 만든 노래라는 것.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진 이 소문으로 인해 노래를 부른 주인공 손인호씨를 비롯해 작사가 손로원, 작곡가 박춘석씨도 줄줄이 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아야 하는 수모를 겪는다. “담당 수사관이 대뜸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어떤 감정으로 불렀느냐.’고 묻더군. 그래서 ‘가수는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지, 감정 없이 노래 부르면 그건 가수가 아니죠.’라고 대답했지. 그러자 수사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거야.” 손인호씨의 회고다. 사실 이 곡은 바빠서 일년 이상 차일피일 취입을 미뤄왔던 곡으로 취입 도중 반주가 틀렸음에도 별로 히트되지 않을 곡이라고 판단,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긴 곡이었다. 노래 역시 단 한번 만에 OK사인이 났다.(계속) sachilo@empal.com
  • [부고] 권영우 세명대 명예총장

    11·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을 지낸 권영우 세명대 명예총장이 숙환으로 22일 오전 별세했다.66세.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형순 여사와 아들 동현(세명대 사무처부처장)씨와 딸 성희·재희·상희·저희씨 등 1남4녀.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0호실. 발인은 26일 오전 7시.(02)3010-2230.
  • [부고] 스위스월드컵 참가 축구원로 한창화씨

    한국 축구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올랐던 1954년 스위스대회에서 뛴 축구 원로 한창화(韓昌華)씨가 18일 밤 노환으로 별세했다.84세. 한씨는 192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조선방직, 특무대 등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스위스월드컵에서는 터키와 조별 리그 2차전(0-7패)에 출전했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로는 1966년 방콕아시안게임 대표팀 사령탑을 지냈고, 1970년대에는 실업팀 자동차보험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윤혜미자씨와 사이에 아들 정수, 딸 혜정씨 등 1남1녀가 있으며,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이다. 발인은 20일 오후 2시.(02)590-2561.
  • [깔깔깔]

    ●대학생활 초·중·고급 ▲법학과 초급 : 정의사회의 구현을 위해 살아야지. 중급 : 사시만 합격하면…. 고급 : 왜? 내가 법대에 왔지?▲정치학과 초급 : 난 절대 저런 정치 하지 않겠다. 중급 : 처음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고급 : 정치인도 사람이야.▲경제학과 초급 : 공인회계사에 도전한다. 중급 : 취직은 되겠지. 고급 : 피라미드와 다단계를 혼동한다.●보험 보험사 직원 : 죄송합니다만 부인께서는 보험청구권이 없습니다. 남편께서 생명보험이 아니라 화재보험에 가입하셨거든요. 미망인 : 그러니까 청구하는 거예요. 남편을 화장했거든요.
  • [부고] 김효영 前 국회의원

    김효영(84) 전 국회의원이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9·10·12·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인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대·이화여대 교수, 충북·경남도지사, 국민당 부총재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주자 여사와 형진(미국 거주), 혜령, 혜경, 혜원(미국 거주)씨 등 1남 3녀가 있다. 발인은 29일 오전 7시. 빈소는 서울아산병원.(02)3010-2291.
  • “유골 발굴등 정부차원 요청해야”

    ‘일본의 전후 책임을 확실히 하는 모임’ 우스키 게이코(臼杵敬子·55·여) 대표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너무 소극적”이라면서 “일본 정부에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원 대책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인 징용자도 당시 일본에 의해 끌려간 것이기 때문에 똑같이 보상을 해줘야 한다. 특히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보다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한·일협정 이후로 일본의 법적인 책임은 끝났다고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적이 없다. 전후 처리에서도 잘못된 것이 많기 때문에 한·일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다. ▶인도적 차원의 보상이란. -사망통지만 받고 유골조차 못찾은 유족들이 많다. 일본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이들이 남태평양의 섬에 가서 유골이 아니라 흙이라도 가져올 수 있도록 현지 유골 발굴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친다든지, 피해자 노인들을 위한 무료 치료시설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이다. 자기 나라의 군인·군속들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는데 한국 정부는 왜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지 모르겠다. ▶일본 정부는 징용 피해자에 어떤 지원을 해주고 있나. -일본의 군인·군속 피해자의 미망인들에게는 벌써 몇십년째 연간 180만엔에서 200만엔의 보상금이 지급되고 있다. 일본은 여기에 연간 1조엔 이상의 국가 예산을 들이고 있다. 이번이 제대로 보상을 요구할 마지막 기회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사망하고 몇명 남지 않았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30년응어리’ 말잃은 미망인들

    ‘30년응어리’ 말잃은 미망인들

    “무죄를 주장하던 우리 남편도 이 자리에 앉아서 올바른 판결을 바랐겠지요.”국가보안법, 긴급조치 등에 남편을 빼앗긴 지 30여년 만에 70대가 된 아내는 이미 사망한 남편 대신 피고인석에 앉았다. 재판부가 “할말 있으면 해보라.”며 권했지만 남편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다는 감격에 겨운 듯 미망인들은 말을 잃었다. 재판이 끝난 뒤 고 하재완씨의 부인 이영교(72)씨는 “이렇게 기회를 준 것만도 고마운데 무엇을 더 바라겠나 싶어 말을 못했다.”고 말했다. 고 송상길씨를 대신해 피고인석에 앉은 김진생(78)씨도 “면회도 못한 채 법정에서 남편을 보내야 했다. 오랜 세월을 기다린 만큼 올바른 판결이 내려지길 바란다.”며 기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 문용선) 심리로 20일 처음 열린 인민혁명당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검찰은 “30여년 전 검찰과 법원이 아닌 비상군법회의가 다룬 사건이지만 검찰은 공익의 대표로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인권과 정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인들은 “실체가 없어 검찰도 기소를 못한 인혁당을 재건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며 당시 공소사실은 모두 근거없고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측은 민청학련을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를 벗기 위해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 민청학련 관련자들과 수사담당자 등을 증인으로 신청할 방침이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는 사건 수사과정에서 고문·협박 등 불법이 있었는지와 사건에 적용된 긴급조치·반공법 등의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또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김형태 변호사는 “사법부도 대표적인 오판으로 시인한 사건인 만큼 형사재판과 더불어 5월쯤 ‘사법살인’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 소송액은 고 최종길 교수사건보다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심리는 검찰과 변호인측의 모두진술만을 듣고 40여분 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피고인들이 모두 사망한 점을 감안해 다음부터 증인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조사해야 할 자료가 방대해 검찰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미 재심이 청구·결정된 지 오래돼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심리는 4월2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불꽃 예술혼 영원하기를…”

    세계적 아티스트 백남준이 떠나는 길은 고인의 예술인생 만큼이나 특별했다. 18일 오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고 백남준 49재 행사가 미술인과 일반 추모객 100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오후 5시50분부터 1시간40분간 진행된 행사의 막은 여성 무속인 이비나씨가 올렸다. 이씨는 작두 타기, 천 찢기에 이어 유족들에게 종이꽃을 나누어주었고, 뒤이어 백남준의 장조카 켄 백 하쿠다가 고인이 1961년 선보였던 퍼포먼스 ‘바이올린과 끈’(1961)을 되살려 추모객 사이로 바이올린을 끌고 다녔다. 또 1962년의 퍼포먼스 ‘바이올린을 위한 하나’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존 헨허트, 백남준 스튜디오 큐레이터 존 호프먼 등이 재연해 바이올린을 때려부쉈고 일반 추모객 100여명도 똑같은 방법으로 바이올린을 부쉈다. 이어서 추모객 1000여명은 줄을 지어 촛불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 뒤 백남준의 대표적 비디오 작품인 ‘다다익선’을 본뜬 탑에 촛불을 세워 백남준의 가는 길을 밝혔다. 추모객들의 촛불행진이 끝난 후 백남준의 이름을 세계무대에 각인시켰던 피아노를 뒤엎는 퍼포먼스를 켄 백 하쿠다와 헨허트, 호프먼 등이 선보였다. 이날 행사엔 백남준의 미망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지팡이를 짚고 참석했으며, 백남준의 유치원 동창인 수필가 이경희씨, 최경한 백남준 미술관 추진위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박명자 갤러리 현대 사장, 김홍희 쌈지스페이스 대표 등 국내 미술계 인사들과 유족들도 참석했다. 백남준 49재를 맞아 봉은사뿐만 아니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대전 은행동, 전주 고사동 등에서도 고인이 생전에 즐겨했던 넥타이 자르기 퍼포먼스 등이 진행됐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세상을 바꾼 궁전/클라우스 라이홀트 지음

    위대한 군주부터 잔혹한 독재자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 권력자들의 안식처인 궁전. 당대 최고의 건축과 예술, 문화가 응축된 이 아름다운 창조물은 찬란한 영광의 역사와 쓸쓸한 몰락의 잔영을 동시에 안고 있다. 비록 궁전의 주인은 사라지고 없어도 당당한 모습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화려한 건물만은 변함없이 세계인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고 있다.‘세상을 바꾼 궁전’(클라우스 라이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예담 펴냄)은 황홀한 아름다움의 세계, 세상을 움직인 치열한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사랑의 보금자리인 윈저 성, 나폴레옹이 이별을 고한 퐁텐블로 궁, 연금술에 몰두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프라하 성,‘보석의 시대’를 연 로마노프왕조의 시조 미하일 표도로비치의 테렘 궁전, 연인을 위해 영국 국교회를 세운 헨리 8세의 햄프턴 코트,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의 유일한 안식처 상수시, 오스트리아의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의 왕국 쇤브룬 궁,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기초가 된 겨울 궁전, 미국의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허스트 캐슬, 우주를 상징하는 푸이의 쯔진청(紫禁城)…. 책은 동서양의 유명 궁전과 성 54곳을 250여컷의 생생한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풍성한 볼거리뿐 아니라 궁전이라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긴박하게 펼쳐진 왕족들의 숨겨진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려준다. 책을 펼치고 궁전으로 들어서면 이내 사랑하고 질투하고 고뇌하고 음모를 꾸미는 인간군상을 만나게 된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35㎞ 떨어진 윈저 성. 빅토리아 여왕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들이 이 고풍스러운 성에서 시작됐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라는 결실을 거둔 두 사람의 결혼은 19세기 최고의 러브 스토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앨버트는 장티푸스에 걸려 마흔 두 살의 나이에 죽고, 빅토리아의 열정적인 사랑은 깊은 애도로 이어진다. 빅토리아는 앨버트가 죽은 윈저 성 북동쪽 구역은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제국의 어머니’ 빅토리아는 남은 생애 동안 미망인의 검은 옷을 입고 지냈다. 영국 여왕의 공식 거처인 윈저 성은 사람이 거주한 성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책은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60㎞ 떨어져 있는 퐁텐블로 궁은 수세기에 걸쳐 프랑스 군주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 궁전은 프랑스 혁명의 불길로 폐허가 되다시피했다.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눈에 띄어 비로소 다시 태어나게 됐다. 이 때문에 나폴레옹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벽난로, 문, 의자 등 퐁텐블로 궁전 곳곳에 나폴레옹의 상징인 금빛 N자가 있는 월계관 장식이 새겨졌다. 나폴레옹 시절 풀어놓은 잉어가 지금도 퐁텐블로 연못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퐁텐블로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다.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퐁텐블로의 ‘명예의 정원’에서 나폴레옹은 자신의 군대에 감동적인 이별을 고했다. 그 후로 이 정원은 ‘이별의 정원’으로 불린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은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 대제의 딸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가 지은 왕실 거주지다. 겨울 궁전의 건축과 함께 러시아 왕조의 황금기가 열렸다. 겨울 궁전에서 산 최초의 러시아 차르는 옐리자베타의 왕위 계승자였던 예카테리나 대제. 예카테리나는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엄청나게 모았다. 높은 안목으로 수집한 그 그림들이 바로 오늘날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기초가 됐다. 늪지 위에 세워진 이 겨울 궁전을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벨리는 이렇게 묘사했다.“불타오르는 겨울 궁전의 탑들은 루비처럼 물들었다.” 궁전은 온갖 추문의 온상이었다. 메디치가의 대공 코시모 2세는 이탈리아의 피티 궁전을 난쟁이와 술주정뱅이들의 소굴로 만들었다. 밤마다 온 도시가 그들이 벌이는 술잔치로 떠들썩했다. 최후의 도덕적 보루인 바티칸 궁도 스캔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스페인의 보르지아 왕조 출신인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비도덕적인 처신 때문에 역대 교황 중 가장 타락한 인물로 꼽힌다. 알렉산데르 6세가 죽자 그의 뒤를 이은 교황들은 바티칸 궁의 보르지아 탑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은 한때 바티칸 궁의 주인이었던 교황 알렉산데르 6세를 “인간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악마의 화신”으로 규정했다. ‘성배의 성’으로 알려진 독일 퓌센 근교의 노이슈반슈타인 성. 이 성은 왕의 몽상적인 성격 때문에 하마터면 사라질 뻔했다. 바이에른의 ‘공상왕(fairy­tale king)´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이 죽은 후에 자기가 살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허물어버리길 원했다. 자신의 개인 공간이 “천한 사람들의 호기심으로 세속화되고 망가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명령은 실행되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궁전들은 1950년 완전히 파괴된 베를린 궁을 제외하면 모두 직접 찾아가 볼 수 있는 곳들이다. 책과 함께 빼어난 건축미를 감상하며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보는 것도 유익할 듯하다.3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칠순 미망인 매일유업 ‘입성’ 왜?

    지난 1월 타계한 매일유업 창업주 김복용 명예회장의 부인이자 김정완(49) 사장의 모친 김인순(71) 부회장이 회사로 돌아왔다.이로써 김 부회장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양귀애 대한전선 고문 등에 이어 미망인 경영자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칠순의 김 부회장이 매일유업에 뒤늦게 입성한 것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낳고 있다. 지난 1989년 매일유업이 투자한 치즈 제조·판매회사인 ㈜상하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경영에는 낯설지 않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2004년부터 자연산 치즈를 생산, 일본에 수출하면서 경영감각을 충분히 익혔다.”며 “창업주 김 명예회장과도 현장을 많이 다녔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의 경영능력과 창업주 부인임을 강조했다. 창업주의 부인으로서 회사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대모(代母)로서 기업 방향을 짚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사장의 자유분방한 경영 스타일에 대해 김 부회장의 보수적인 ‘경영 훈수’가 조화를 이룰 것이란 전망이다. 오너 경영권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진암(김복용 회장의 호)장학재단’의 이사장도 겸하고 있는 김 부회장이 이사로 선임된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회사의 지분구조, 즉 경영권 내지 후계구도와 연관짓기도 한다. 14.18%(190만주)를 보유한 최대 주주인 김 사장이 그동안 회사의 주요 경영을 챙겨왔기 때문에 후계구도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론 막대한 지분이지만 경영권 방어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김 사장의 동생이자 식자재 공급회사인 복원 대표 김정석(47) 사장이 4.75%, 무역회사인 중경물산 대표 김정민(44) 사장은 5.90%, 매일유업 자회사인 평택물류 대표 김진희(46) 사장은 1.34%, 이모부 정상길씨가 4.98%를 보유하고 있다.이들의 전체 지분은 16.97%에 이르러 김 사장이 경영권에 위협을 느낄 만하다. 그래서 김 사장에 이어 5.37%의 지분으로 2대 주주인 김 부회장이 큰아들 김 사장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회사로 들어왔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나돈다. 김 사장과 김 부회장의 지분을 합하면 20.45%로 경영권을 지켜낼 수 있다. 또 지난 1월 타계한 김복용 명예회장의 주식 5.47%(73만 3480)의 처리와 맞물려 있다는 것. 상속을 3개월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시한이 다가왔다. 창업주 김 명예회장의 주식이 김 부회장에게 상속되면 김 사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칠순의 김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것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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