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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욱 기념상’ 만든다

    ‘이종욱 기념상’ 만든다

    고(故) 이종욱 박사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기일(22일)을 전후해 세계보건기구(WHO)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와 서울에서 동시에 열린다. 이 박사는 한국인 최초로 WHO 사무총장에 올라 조류 인플루엔자(AI) 예방과 에이즈 퇴치를 위해 노력하다 2006년 5월22일 타계했다. 추모행사는 오는 18일 마거릿 찬 WHO사무총장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박종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FIH) 총재, 미망인인 레이코 가부라키 여사 등이 WHO 본부에서 이 박사 초상화 제막식을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추모행사에서 찬 WHO 사무총장과 김 장관은 ‘이종욱 공공보건 기념상’을 제정하는 합의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이 상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10만달러의 상금을 출연해 에이즈나 전염성 질환의 예방 및 치료·관리·연구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 정부기관, 비정부기구에 시상한다. 내년 5월 WHO 총회에서 첫 수상자를 배출한다. 서울에서는 26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서울 청계천 광교갤러리에서 2주기 추모 사진전이 열린다. 아울러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26일부터 오는 7월까지 중·고생과 청년을 대상으로 이 박사의 자서전인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의 독후감 공모전을 갖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Local] 구미, 경차 주차료 감면 확대

    경북 구미시는 15일 경차 이용활성화를 위해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는 모든 경차(1000㏄ 미만)에 대해 주차요금 감면 확대 등 각종 혜택을 늘렸다고 밝혔다. 시에 따르면 종전까지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는 모든 경차에 대해 주차료 50% 감면 혜택을 주던 것을 1일 1회 2시간 무료,2시간 이후 50% 할인, 공용주차장의 경차 주차공간 10% 이상 확보 등으로 혜택을 늘렸다. 특히 보훈단체(대한민국전몰유족회,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회원이 이용하는 경차에는 주차요금을 면제하고 있다. 구미시 관계자는 “경차 관련 조례 개정을 통해 주차요금 등의 우대 내용을 확정한 것은 도내에서 구미가 처음”이라며 “고유가 시대를 맞아 경차 이용 활성화를 적극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소설가 박경리 타계] 작품 세계

    박경리는 인간으로서는 차마 감내하기 어려운 곤고한 삶을 살아왔지만, 문학적으로는 누구도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거대한 산맥을 이뤘다. 굳이 여러 작품을 들지 않더라도 대하소설 ‘토지’, 이 한 작품만으로도 그는 한국 소설사에서 누구도 건널 수 없는 대하(大河)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불행한 출생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슬픔, 그리고 폐암 선고…. 그가 사석에서 “나는 슬프고 고통스러워 문학에 몰입했고, 훌륭한 작가가 되기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고백한 것만 봐도 그 아픔이 얼마나 폐부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박경리 문학작품에서 짙게 배어나는 인간 존엄에 대한 치열한 작가 의식, 도저한 생명사상에 대한 탐구도 그의 고단한 삶에서 기인한다.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등단한 박경리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불신시대’,1958년 ‘벽지’‘암흑시대’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한국 문단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초기 작품들은 주로 단편소설이고, 체험적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딸이 화자(話者)로 자주 등장한다. 그는 이처럼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당대(當代)를 읽어낸다. 대표적인 작품이 ‘불신시대’와 ‘암흑시대’다.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극도로 반발했던 박경리는 자연스레 여성이 처한 불행한 현실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부모의 삶에 깃든 억압-피억압의 관계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 문제를 고민하게 만들었고, 그의 고민은 초기 단편 ‘전도’와 장편 ‘김약국의 딸들’‘파시’ 등을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됐다. 작가는 1959년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독한 여인의 심적 방황을 그린 ‘표류도’를 발표하면서 장편 소설로 선회했다. 이후 ‘내마음은 호수’‘푸른 은하’ 등을 발표하는 한편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내놓았다. 이전의 전쟁 미망인을 즐겨 등장시키던 체험적 작풍(作風)에서 벗어나 한층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했다는 ‘김약국의 딸들’은 공간 배경도 전쟁터가 아닌 통영으로 바뀌었고 제재와 기법면에서 다양한 변모를 드러낸다. 박경리 문학의 명제는 자유에 대한 집착,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 인간소외에 대한 저항, 인간의 존엄과 사랑에 대한 절대적 믿음 등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제도와 관습에 대한 치열한 저항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김약국의 딸들’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 후반 들어 박경리 문학은 일대 전기를 맞는다. 장편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 그 자신 “빙벽에 걸린 자일, 주술에 걸린 죄인이 된 기분으로 25년간 글감옥 속에서 ‘토지’를 완간했다.”고 할 만큼 ‘토지’의 집필은 피를 말리는 지난(至難)한 작업이었다. 한국 문학사에 획을 그은 작품인 만큼 ‘토지’에 대한 논의 또한 풍성하다. 역사소설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 속에 ‘토지’는 가족사 소설·민족사 소설 등 다양한 장르로 규정되는 등 한국문학 담론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켰다.‘토지’는 이처럼 거대한 서사 구도 아래 다종다양한 계층의 이야기가 중층적으로 형상화돼 있다. ‘토지’는 인간의 존엄과 소외문제와 함께 생명사상의 흐름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토지’의 주인공 서희는 바로 이 존엄성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의 인물로 등장한다. 작가에게 있어 인간 존엄성의 상실은 한(恨)의 정한과 통한다. 그 한을 풀어가는 과정은 곧 박경리 문학 등장인물들의 삶의 여정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토지’로 대표되는 박경리의 작품 세계는 민족적 삶의 총체상을 보여준다.”며 “박경리 문학의 밑바닥에는 인간적 품위와 낭만적 사랑의 정신,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한 줄기로 흐른다.”고 말한다. 하층민부터 상층민까지 한 사회의 모든 삶을 아우르는 ‘총체소설’의 양상이말로 박경리 문학의 업적이요 특징이라는 것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김동렬 선생 별세

    애국지사 김동렬 선생이 3일 별세했다.87세. 김 선생은 1942년 독립운동으로 수감 중 탈옥한 정태옥에게 여비와 의복을 제공했다. 김 선생은 정태옥을 도운 혐의로 일제 경찰에 체포돼 1942년 11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까지 7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시민운동인 ‘지리산 평화제’를 창설했고 개천예술제 대회장과 진주문화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6년 진주시민상을 수상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5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서소주 여사와 3남 4녀가 있다. 빈소는 진주경상대학병원 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10시, 장지는 대전 국립묘지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055)750-4652.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씨줄날줄] 차별적 언어/구본영 논설위원

    수년 전 가을 미국에서 연수할 때다. 다니던 주립 대학에서 뜻밖의 휴일을 맞았다.‘콜럼버스 데이’라 쉰다고 했다. 교수에게 물어 보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날을 기념해 동부의 주에서 공휴일로 삼고 있다고 했다. 본래 ‘디스커버리 데이’에서 이름이 바뀐 배경도 들었다. 유럽인의 이주 전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었기에 ‘발견’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란 얘기였다. 콜럼버스 일행이 북미 대륙에서 발견했다는 ‘인디언’이란 말도 더 이상 쓰지 않게 됐다. 그 대체어가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원주민 미국인)’이다. 이런 변화는 1970∼1980년대 미국 대학가에서부터 풍미했던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으로 올바름·PC)’운동에 힘입은 결과다. 이는 성이나 인종, 신체, 연령 등에 따른 약자를 차별하는 언어를 조심하자는 취지다. 흑인을 비하하는 ‘블랙’이나 ‘니그로’ 대신 ‘아프리칸 아메리칸(African American)’이란 말이 나온 배경이다. 국립국어원이 그제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언어 표현 5087개를 선별해 냈다. 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대중매체에 쓰이는 언어 가운데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단어들을 골라낸 것이다. 여기엔 ‘쭉쭉빵빵’,‘섹시 가슴’ 등 선정적인 표현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부엌데기’,‘미망인’ 등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를 삼가야 한다는 권고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망인(未亡人)은 ‘아직 (남편을)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어처구니 없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얼마간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목도 포함돼 있는 인상이다. 예컨대 ‘앳돼 보이는’,‘야들야들’ 등을 고정관념적 속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치부한 점이 그렇다. 미국의 PC언어 사용 운동도 이젠 정착이 됐지만, 그 과정서 어색하거나 위선적인 표현도 양산했다. 키 작은(short) 이를 ‘vertically challenged(위로 오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으로 표현한 게 대표적이다.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각종 차별적 언어는 당연히 자제해야 한다. 다만, 우리말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하는 어휘까지 덤으로 추방하는 일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부고] 이영창 전 의원 별세

    [부고] 이영창 전 의원 별세

    이영창 전 국회의원이 13일 밤 11시3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76세. 고인은 14대 의원을 지냈으며 서울·부산 경찰국장, 치안본부장, 주택공사 이사장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장원춘 여사와 딸 은주, 연실(사위 오홍석 금융감독원 홍콩주재 사무관), 은정(사위 김창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장)씨 등 3녀가 있다. 빈소 삼성서울병원 17호실 발인 16일 오전 6시 장지 경북 청도군 매전면 선영.(02)3410-6917.
  • [부고] 나길조 전 의원 별세

    [부고] 나길조 전 의원 별세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나길조 변호사가 11일 새벽 별세했다.85세. 192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47년 제1회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고인은 50년 부산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해 광주고검장, 대법원 판사, 헌법위원 등 법조계 요직을 거쳤다.81년부터 84년까지는 민정당 소속 제11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법조인 시절 공을 인정받아 청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부형 여사와 아들 윤찬·윤성·윤중씨, 딸 윤희씨 등 3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이대목동병원 3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4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도 덕양구 혜인사 미타원이다.(02)2650-5122.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박종길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박종길 선생 별세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애국지사 박종길 선생이 9일 새벽 서울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84세. 1924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44년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인 토교대(土橋隊)에서 활동했다. 광복을 맞아 귀국, 육사 5기생으로 입대한 뒤 6·25전쟁에 참가해 용문산 전투, 하천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다.54년 중령으로 예편한 뒤 3·4·5대 민의원을 역임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63년 대통령표창을,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정기원(82) 여사와 아들 재민·장락·승민씨, 딸 연화·경란씨 등 3남2녀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이다.(02)3410-6901.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문인갑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문인갑 선생 별세

    항일 학생조직인 조선독립당에 가입,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 문인갑 선생이 17일 오후 8시40분 별세했다.85세. 선생은 1923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동래중학교에 다니던 1941년 항일 학생조직인 조선독립당에 가입했다.1940년 동래중학생 김일규, 양중모 등이 이 학교 독서회를 확대 개편해 조직한 조선독립당은 강령을 정하고 항일투쟁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세우며 본격적인 활동을 벌였다. 조선독립당은 1944년 7월 순국당 조직이 일경에 탄로나면서 그 해 8월 조선독립당의 조직도 발각돼 문 선생 등도 일경에 체포됐다. 이후 미결수 신분으로 부산형무소에서 1년여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5년 광복과 함께 출옥했다. 정부는 1982년 대통령표창을,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오남식(81) 여사와 1남4녀. 발인 20일 오전 8시, 장지 대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 부산의료원 영안실 9호.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고] ‘실미도 사건’ 첫 폭로 강근호 前 의원 별세

    [부고] ‘실미도 사건’ 첫 폭로 강근호 前 의원 별세

    강근호 옛 신민당 국회의원이 30일 오전 9시 55분 자택에서 별세했다.74세. 고인은 전북 옥구 출신으로 군산고와 중앙대를 나와 민선 2∼3대 군산시장을 역임했으며 제 8대 국회의원(신민당)과 신민당 대변인을 지냈다. 특히 1971년 초선 의원 때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8·23 난동 사건’이라고 불리던 실미도 사건의 실체를 처음으로 폭로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는 29년 만인 2001년 8월 그의 명예를 회복하고 ‘민주화 투쟁 유공자’로 인정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옥분 여사와 아들 만우(㈜KGLSL 대표)·만응(재미·자영업)·만훈(㈜PRO 대표)씨, 딸 현주·인숙씨 등 3남 2녀. 빈소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2월1일, 장지 경기 파주 조리읍 천주교 삼각지 성당하늘묘원. (02)2072-2091∼2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우리말 여행] 차별하는 말 미망인

    남편이 죽은 여성을 흔히 미망인이라고 한다. 대접하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쓴다. 그러나 사전이 전하는 뜻은 그렇지 않다.‘아직(未) 따라 죽지(亡) 못한 사람(人)’이다. 남편을 따르지 못하고 있는 죄인이라는 의미다. 기원전인 ‘춘추좌씨전’부터 보인다. 부인이 죽은 남성에게는 이런 의미로 붙이는 말이 없다.
  • 소피아 로렌과의 짧은 만남, 파바로티와의 긴 이별

    소피아 로렌과의 짧은 만남, 파바로티와의 긴 이별

    2007년은 세기의 테너 파바로티가 71세를 일기로 타계함으로써 우리와 이제 긴 이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소피아 로렌이 72세의 미모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피렐리 달력(www.pirellical.com)에 기네스북이 인정하는 최고령 미인 모델로 등장하여 우리 눈을 즐겁게 하였다. 이 뉴스를 들으며 떠오른 추억과 상념이다. 얘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폴란드 바르샤바 행 비행기 탑승객 대합실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 같은 비행기로 날면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슈퍼스타 소피아 로렌이다. 그녀는 당시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인데도 놀랍게도 늘씬한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소피아 로렌이시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내가 말을 건네자, 그녀는 엷은 미소로 답례를 하였다. “나는 현재 폴란드에 주재하면서 현지법인 사장을 하는 한국의 비즈니스맨입니다.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당신의 영화를 보았어요. 그리고 언젠가 한번은 직접 당신을 만날 날이 있으면 하고 살아 왔어요.” 옆에 집사람이 같이 있어 그 이상 오버할 수는 없었다. 내가 열렬 팬임을 강조하자 그녀는 “저도 폴란드에 행사가 있어 갑니다만 무슨 영화를 봤습니까?”하고 되물어 왔었다. 내가 하녀(La donna del Fiume), 엘시드(El Cid), 해바라기(Girasoli), 흑란(The Black Orchid), 두 여인(La Ciociara) 등을 읊어대자 그제야 그녀의 표정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1959년의 <흑란>으로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여우상을, 1961년의 <두 여인>으로 아카데미상과 칸느영화제 여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90여 편의 영화에 주연을 맡았다. 그녀는 미혼모, 위안부, 생활력이 강한 가정부인, 러시아 백작부인, 아랍계 여인, 레지스탕스 스파이, 로마황제의 공주, 스페인 귀부인, 미국인 미망인, 술집 여인, 그리스 해변의 해녀, 성폭력피해자 등등 다양한 역을 해내었다. 나의 청춘 소피아 로렌, 그녀의 맘보로 포 강은 푸르다 돌이켜 보면 소피아 로렌에 흠뻑 빠진 것은 내 나이 15세의 사춘기에 마주친 그녀의 출세작 <하녀>(河女, Woman of the River)의 스틸 한 장이었다. 하녀는 <강의 여인>으로 풀어서 말할 수 있는데 그 당시 그녀는 1미터 74센티의 키에 38-24-38의 몸매에 21세의 싱싱한 나이로 일약 세계적 관능 미인으로 뜨게 되었다. 이 영화를 접하고서 그녀는 나의 연상의 연인화되었다. 나는 바로 줄리안 듀비비에 감독의 명작 <나의 청춘 마리안느>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몸부림치며 환상의 여인 마리안느에 빠져드는 사춘기 청년 뱅상(Vincent Loringer)이 된 것이다. 맘보 리듬을 타고 폭발한 야성적인 에로티시즘 영화에서 소피아 로렌은 그의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였다. 이 영화의 무대인 강은 바로 이탈리아의 포 강이다. 처음에는 포 강 하구의 델타 지역에 있는 뱀장어 통조림 공장의 여직공인 자유분방한 젊은 여성으로, 그리고 후반부에는 바람둥이 어부로서 밀수꾼인 남주인공에 버림받고 사탕수수밭의 일군으로 벗어부친 미혼모로서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마을 댄스파티에서 ‘맘보 바캉’이라는 주제가의 선율 속에 치맛자락을 바람결에 들어 올리며 늘씬한 다리를 뽐내는 육감적인 신은 뭇 사나이들을 뇌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실 그녀는 이 주제가 맘보 바캉을 직접 부른 음반을 내기도 하였다. ‘라라라 라라라라 맘보 맘보, 맘보 바캉.’ 그리하여 이 경쾌한 노래로 우리에게 긍정적인 삶을 일깨워줬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포 강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강으로서 전장 652km로 낙동강 길이보다 30%가량 길고 그 유역 면적은 71,000km²로서 북부 이탈리아의 생활과 문화를 지배하는 중요한 강이다. 코티안 알프스의 몬비소에서 발원하여 베니스 근처의 아드리아 해로 유입되는 강이다. 5개의 하구 델타 유역에는 수백 개의 지류와 운하가 거미줄 같이 얽혀 있다. 이 강은 예사로운 강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포 강 유역을 무대로 로케한 이탈리아 대표적 명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 말 지주계급과 농부들의 갈등 속에서 시들어 가는 근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린 라투아다 감독의 <포 강의 물방앗간> (The Mill on the Po), 쫓기는 범인이 숨어든 농장에서 쌀 농사꾼인 풍만한 여인(실바나 망가노 분)과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데산티스 감독의 <쓴 쌀>(苦米:Bitter Rice), 명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단편영화 <포 강의 사람들>(Gente Del Po)이 그 것이다. 파바로티의 노래와 함께 포 강은 오늘도 흐른다. 그런데 이 강은 최근에 반갑지 않은 문제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강물의 수질 분석 결과 하루에 2만7천명의 젊은이가 투약할 정도의 코카인 마약 성분이 계속 추출되었으며 그 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체의 대소변을 통하여 흘러나왔을 것이니 이탈리아 젊은이의 타락상을 보는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금년(2007년) 5월에 강줄기의 여기저기에서 바닥이 들어나도록 물이 부족해 졌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200년만의 겨울 난동을 겪었고 알프스에 눈이 제대로 오지 않은 결과이다. 인간이 저지른 탄산가스 분출에 따른 업보이다. 이 강의 광활한 유역에는 산업과 문화면에서 유명한 도시들이 포진해 있다. 토리노, 밀라노, 베로나, 모데나 등이 그것이다. 특히 모데나는 바로 20세기 말 최고의 테너였던 파바로티의 고향이며 2007년 9월 6일 그가 숨을 거둔 자택이 있는 곳이다. 그는 1935년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의 가족은 가난했다. 아버지 페르난도는 빵을 굽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담배 공장에서 일했는데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출세 후 파바로티는 2005년 9월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 총보는 거의 읽을 수 없으나 피아노 파트의 반주용 악보라면 읽을 수 있다고 고백하였다. 학위 위조사건으로 떠들썩한 한국과 달리 그는 이렇다 할 정규대학교육을 받지 않고도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는 보험 외판사원도 했다. 1961년 고향의 극장에서 라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오페라에 뒤 늦게 데뷔했다. 그런데 출세 후에 더욱 빛을 발한 것은 혼자서 돈을 세면서 호의호식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자선공연을 통하여 뜨거운 인류애를 보여줌으로써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에 보답해야 하는지를 보여 줬다는 점이다. 그는 고향 모데나에서 각각 보스니아와 이라크 고아와 아프간 난민, 그리고 코소보 난민 등을 위하여 해마다 자선공연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적어도 1천 3백만 달러의 모금을 해서 유엔에 협조하였다. 아프간을 돕는다고 몰려가서 돕기는커녕 탈레반 테러범에게 인질이 되어 외신에 의하면 수백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로 추정되는 거액의 몸값을 인질범에게 넘겨주고도 귀중한 인명 피해를 보면서 국제사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눈총만 키우고 돌아온 우리네 현실에 비해 파바로티에게 배울 점이 많다. 뒤에서 순교운운하면서 이를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데는 더욱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값진 순교를 하려면 뒤에서 남을 시키지 말고 본인들이 가서 몸소 순교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2001년 서울에서 파바로티의 공연을 보면서 소피아 로렌이 생각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바람둥이에게 버림받은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나폴리 빈민가에서 자라나 고등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어려운 여건을 딛고 일어서서 15살 때부터 영화계에 몸을 던져 드디어 슈퍼스타가 되고 오늘날에는 여러 사회활동을 하는 소피아 로렌과는 인생역정에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할 것이다. 포 강의 젖 줄기가 있었기에 이탈리아가 낳은 예술문화계의 남녀 톱스타 즉 소피아 로렌과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있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 더 있다. 포강의 상류에 있는 토리노는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피아트본사가 있고 2006년 동계올림픽이 치러진 곳이다. 소피아 로렌은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기를 봉송하는 영광스런 역을 해내었다. 이 개막식에서 파바로티는 생애 마지막 공연이 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러 오랜 기립 박수를 받았다. 결국 이 두 슈퍼스타의 출세는 포 강에서 시작되고 포 강가에서 완성된 느낌이다. 포 강의 쿠르즈 십 ‘리버 클라우드’ 호를 타면 9일 동안 이들 도시의 상당 부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삶과 꿈, 마이 웨이 지금도 나는 비디오로 떠서 소장한 그녀의 영화 <하녀>에서 그녀의 맘보 바캉을 때때로 감상하며 젊은 날의 아린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고 있노라면 소피아 로렌 그녀가 남긴 다음과 같은 어록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그저 어떤 것을 원한다고 하지요. 그러면서도 그걸 이뤄낼 힘인 절제로 단련하는 데는 게을리 하지요. 사람들이 약한 겁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정말 지독히 원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Many people think they want things, but they don’t really have the strength, the discipline. They are weak. I believe that you get what you want if you want it badly enough.)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10년동안 ‘사형집행 0건’ 한국 ‘실질적 폐지국’ 됐다

    10년동안 ‘사형집행 0건’ 한국 ‘실질적 폐지국’ 됐다

    “사형제가 사실상 폐지된 것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서 아무도 사형당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마지막으로 집행된 지 꼭 10년째인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사형폐지국가 기념식’이 열렸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195개국 가운데 134번째로 사형제를 폐지했거나 집행을 하지 않는 ‘사실상 사형폐지국가’가 됐다. 행사에는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최기산 주교,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유인태 의원,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이상혁 변호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장 고은태 교수 등 종교. 인권.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사형수의 대모’ 조성애 수녀, 인혁당 사건 사형수 하재완 선생 미망인 이영교 여사,‘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살인 피해자 유족 고정원씨 등 100여명이 참석해 사형제 완전 폐지를 촉구했다. 이상혁 변호사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년간 사형집행 없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됐다.”며 “이제 국회가 실정법에 있는 법조문을 정리하는 일만 남았으며 우리가 이 일을 매듭짓는 데 함께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행사를 준비한 대통합민주신당 유인태 의원은 “2005년 175명 의원의 서명을 받아 사형폐지특별법을 발의했지만 아직도 법사위에서 계류 중이다.17대에서 안 되면 18대 국회에서라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고정원씨는 “유영철을 용서하고 사랑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그것은 결국 신께서 하실 일이다. 인간은 누구를 용서할 권리가 없다. 하느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던 대로 따를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영교씨는 “지난 33년간 사형수의 아내로, 자식들은 사형수의 자녀로 살아왔다.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무죄가 됐다는 것 외에 기쁠 일이 없었다. 죽었던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고개를 떨궜다. 한편 사형제 폐지특별법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고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폐지 혹은 존치에 대해 원점에서 검토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형제 존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임일영 장형우기자 argus@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박준황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박준황선생 별세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박준황(朴準篁) 선생이 별세했다.84세. 1923년 평남 용강에서 태어난 박 선생은 일제의 민족수탈이 시작되자 1942년 9월 평양에서 최동길 등 동지들과 비밀결사인 ‘정난회’(征難會)를 조직했다. 박 선생은 1944년 6월 일제 경찰에 체포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유가족으로는 미망인 김경희(74)여사와 2남 1녀가 있다. 발인은 8일 오전 10시,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 서울 아산병원 (02)3010-223.
  • 명화 경제 토크/이명옥·정갑영 지음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튤립 투기는 요즘 투기다 거품이다 말이 많은 한국 미술 시장의 열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당시 네덜란드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상인들은 도시 외곽에 멋진 교외 주택을 지으면서 정원가꾸기가 유행하게 된다. 신의 꽃으로 찬미받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는 한 뿌리에 4840㎡에 달하는 땅과 교환할 정도였으나,1937년 한바탕 도깨비 놀음으로 튤립 투기 광란은 막을 내린다. 시장이 통제 불가능 상태에 빠지면서 불안심리가 급속히 확산됐기 때문이다. ‘명화 경제 토크(이명옥·정갑영 지음, 시공아트 펴냄)’는 보스하르트의 튤립 정물화 ‘꽃병’에서 이와 같은 미술사를 읽어내며 그림과 경제와 상관관계를 대담 형식으로 풀어간다. 이씨는 종로구 사비나미술관의 관장이며, 정씨는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미술과 경제는 얼핏 보면 별 관계가 없어보이지만, 예부터 미술품은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이 된 데서 알 수 있듯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요즘 한국에서도 유행인 아트 펀드의 원조는 1904년 프랑스의 아마추어 미술품 수집가들이 결성한 ‘곰의 가죽’에서 유래한다.13명으로 구성된 ‘곰의 가죽’은 매년 1월 250프랑을 갹출해 모은 종자돈 2750프랑으로 미술품을 사서 10년 후에 되팔기로 한다. 당시로는 혁명적으로 피카소, 마티스, 루오 등 현대미술에 집중 투자했던 ‘곰의 가죽’은 10년뒤 파리 시립 경매장에서 연 미술 경매를 통해 투자금의 4배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한다. 이들은 이익금의 20%를 해당 작가와 1차 세계대전으로 고생하던 예술가와 미망인을 지원하는 데 썼다. 33점의 명화 속에서 읽어내는 경제 원리는 사뭇 흥미롭다. 그렇다면 하루가 멀다하고 그림값이 치솟고 있는 한국 미술시장의 전망도 책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세상에서 단 1점밖에 없는 미술품은 수요가 조금만 증가해도 가격변동이 큰 수요탄력성이 큰 품목이다. 때문에 시장을 믿고 뛰어 든 개미 수집가들에게 조금이라도 투자 불안심리가 확산되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 미술시장의 현실이다.1만4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어떻게 지내십니까] 남장 여성정치인 김옥선 前의원

    [어떻게 지내십니까] 남장 여성정치인 김옥선 前의원

    7,9,12대 국회에 등원했던 김옥선(73) 전 의원.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남장(男裝) 여성 정치인으로만 유명했던 게 아니다. 그녀는 서슬 푸른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가 금배지를 박탈당했던 이른바 ‘김옥선 파동’의 주인공이었다. 남존여비 풍조가 뿌리 깊은 우리 정치판에서 남자들보다 더 과감한 의정활동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녀를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40세에 정치생명 박탈된 10년을 식물인간처럼 살아” 9대 국회 때인 1975년 10월8일. 김 전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딕테이터(독재자) 박’으로, 유신정권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맹공했다. 당시 여당인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의 야유 속에 정회가 선포돼 발언도 마치지 못했고, 일부 발언은 속기록에서도 삭제됐다. 이상이 ‘김옥선 파동’의 시발로, 그녀는 그로부터 닷새 후에 의원직을 내놔야 했다. 의원직 사퇴 32돌을 며칠 앞두고 만난 그녀는 무척 정정해 보였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단정하게 빗어올린 신사풍의 헤어스타일은 여전했다. 그러나 웅변조의 어투에도 불구하고, 여성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는 감지됐다. 특히 “40세에 정치생명을 박탈당해 인생 황금기 10년을 식물인간처럼 살았다.”며 명예회복의 당위성을 설파할 때가 그랬다. 그녀는 유신체제를 비난한 자신의 속기록 복원을 명예회복을 위한 최선의 자구책으로 보는 듯했다. 그러나 “속기록 복원은 사초를 바로잡는 일인데, 후배들이 너무 무성의한 것 같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지난 2005년 국회운영위에 속기록 복원 청원이 제출돼 소위에서 여야가 사실상 합의하고도 위원장 교체 등 이런저런 이유로 전체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등 흐지부지됐기 때문이다. 속기록 복원 등을 통한 명예회복은 물론 손해배상 소송(고법에선 기각됐지만, 대법원 계류중) 등 법정투쟁을 계속할 계획이다. 특히 올 하반기에 회견을 통해 여론을 환기한다는 복안이다. ●“어머니가 죽은 오빠 그리워해 남장 하게 돼” 얼마 전 종영된 TV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남장 여자 주인공을 등장시켜 시선을 끌었다. 서구에선 ‘드래그 킹’(남장 여자)이나 ‘드래그 퀸’(여장 남자)이란 속어에서 보듯 복장을 바꿔 입는 사람이 드물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선 파격적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 전 의원은 퍽 선구적이다.1950년대부터 이미 남장으로 살아왔다는 점에서다. 그녀는 이에 얽힌 비화 두 가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선 “어머니가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1남3녀 중 막내인 자신이 남장을 하게 됐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뛰어들어 환경에 적응하는 방편이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물들인 군복이나 작업복이 편해서 입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복장은 제쳐두더라도 그녀는 어떤 면에서 남성 의원들보다 더 치열한 정치활동을 펼쳤다.‘김옥선 파동’이 그녀의 의원직 사퇴로 결말이 난 뒤 당시 안국동 신민당사에는 예리한 1회용 면도날을 동봉한 항의 서신이 날아왔다고 한다. 남성 의원들에게 중요한 ‘뭔가’를 자르라는 힐난성 주문이었다. 굳이 이런 일화를 들추지 않더라도 그녀는 남성 지도자에 의해 ‘간택’되는, 정치판의 화초이기를 거부한 여성 정치인이었다. 그녀는 “(정치판에) 속좁은 남성들이 너무 많다.”면서도 “여성이기에 남성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후배 여성 정치인들에게 충고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여권 신장을 주장하면서 지역구 공천이나 비례대표에 여성 프리미엄을 달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였다.“진정한 성 평등은 남성들과 똑같이 경쟁해서 쟁취해야 한다.”고도 했다. 악연을 맺었던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는 의외로 우호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지난번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거물 정치인 한 사람이 “독재자의 딸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고 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박 전 대표의 성장과정(유신 전)이 박정희 시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박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YS·DJ 현실정치 훈수 그만뒀으면” 그녀는 2002년 대선에 입후보했다가 포기한 것을 끝으로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공사다망하다. 올 3월엔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 회장 자리를 놓고 거물 정객인 이철승(素石) 전 신민당 대표와 경합했으나, 반탁 학생운동 대선배였던 소석에게 회장 자리를 내줬다. 내친김에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3김씨에 대한 인물평을 요청하자, 그녀는 “그 사람들은 너무 후배들을 안 키웠다.”고 받아넘기며 말을 아꼈다. 그래도 “그들 나름대로 카리스마 같은 게 있었지 않았느냐.”고 되묻자,“그것도 지역주의에 기반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그만큼 국민을 우려먹었으면 됐지, 이제 현실정치에 대한 훈수를 그만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올해 대선에선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는 물음엔 “나중에 후보자의 인물을 검토해 보고 후원할 것”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했다. 인터뷰 도중 김 전 의원은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느냐?”고 조크를 던졌다. 그러고는 “연애할 나이에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을 하느라고 경황도 없었다.”고 자답했다. 그러면서 “물론 결혼해서도 사회사업이 가능하다.”면서 “다만, 모자원 아이들 옷가지를 사도 똑같은 것을 샀는데, 아무래도 친자식이 있었다면 좋은 것은 (친자식을 위해) 골라놓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부연 설명했다. 김 전 의원은 요즘 1955년 자신이 설립한 송죽학원을 종합대학교로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즉 중국의 샨시(陝西) 중의학원 및 사범대학과 컨소시엄 형태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보건·복지와 한의학에다 예술 분야까지 망라하는 교육의 전당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김 전 의원은 “하느님이 생명을 연장해 주시는 만큼 나이와 관계없이 이 나라와 사회, 국민을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운 필생의 소망을 토로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그녀는 누구인가 ‘알파걸’(α-girl)은 미국 하버드대 아동심리학자 댄 킨들런 교수가 만든 신조어다. 똑같은 조건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여러 면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이석(異石) 김옥선 전 의원은 ‘원조 알파걸’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그녀는 19세란 어린 나이에 사회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최초로 에벤에셀 모자원을 설립한 것이다. 한국전이 남긴 상흔인 전쟁 미망인과 고아들의 자생력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21세 때인 1955년엔 고향인 장항에서 정의여중을,1959년엔 정의여고를 각각 설립해 교육사업에도 발을 디뎠다. 특히 서해의 낙도인 충남 보령시 원산도에 원의중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들의 이사장이나 초대 교장을 맡으면서 교장실이나 이사장실을 따로 만들지 않은 사실은 지금도 회자된다.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지역구 국회의원 배지도 세 번이나 달았다.26세에 정계에 투신한 뒤 7대 국회에서 건국 이래 처음으로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해 1년만에 당락 번복 승소 판결을 받아내 배지를 달았다.9대 국회에선 당선 1년반 만에 이른바 ‘김옥선 파동’으로 물러난 뒤 10년 동안 공민권이 박탈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1984년 정치해금과 함께 12대 총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1992년 대선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 전 의원은 사회사업가·교육자·정치인에다 기독교계 지도자 등 1인4역의 인생을 살아왔다. 부침이 많은 삶이었지만, 신앙과 낙천적인 생활관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보는 듯했다. 그녀는 “IMF 위기를 맞았을 때부터 자가용을 버리고 택시 등 대중교통 수단만 이용한다.”고 귀띔했다. 영업용 택시 기사들이 하루 일당도 못 번다는 얘기를 듣고 그 길로 승용차를 처분했다는 것이다.“이후 택시 이용 총횟수가 8000번은 넘는다.”고 통계까지 제시하며 웃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논란 판결 2제] 출퇴근사고 공무원은 산재 대상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도 신분 차이에 따라 재해 인정이 다르다. 그동안 법원은 공무원과 군인, 사립학교 교원의 경우 출퇴근을 공무를 위한 준비행위로,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줬지만 직장인 등 일반인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일 “근로자가 자신의 승용차로 출·퇴근하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대법원측은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근로자에 대한 통근재해 인정 규정이 없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공업사 기능직 사원으로 일하다 2005년 출근길 교통사고로 숨진 김모씨의 미망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등 부지급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업무상 재해가 되려면 출·퇴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어야 한다.’는 다수 의견을 채택했다. 참여법관 12명 가운데 7명은 “사업주가 교통수단을 제공하지 않는 한 출퇴근 방법과 경로의 선택이 근로자에게 유보돼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영란 대법관 등 5명은 “합리적 방법에 의한 반복적 출·퇴근이라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지난해 6월 서울 행정법원은 “일반 근로자가 출근 중 당한 교통사고는 업무상 재해”라고 판결하는 등 그동안 하급심 판결은 엇갈려 왔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의 고민이 엿보인다.”는 반응이다. 배현태 대법 공보심의관은 “대법 판례가 업무상 재해 불인정으로 나와 있지만 이번 판결이 전원합의체까지 넘겨졌다.”며 “이는 판례변경이 필요하거나 합의가 순탄치 않았을 경우”라고 해석했다. 대법원측은 “이번 판결이 앞으로 하급심의 법해석과 국회 입법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인혁당 유족 이영교씨 “배상금으로 추모사업 벌일 것”

    “고교생이던 큰 아들은 ‘빨갱이’라는 놀림에 세 차례나 전학다녔고, 두 아들은 장성한 뒤에도 신원조회에 걸려 취업조차 못했습니다. 전 화병에 시달렸어요.” 32년간 긴 악몽을 꾸었던 것일까.21일 법원이 1975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배상을 판결한 뒤 고(故) 하재완씨의 미망인 이영교(70)씨는 “돈을 얼마나 받든 남편의 목숨과는 바꿀 수 없다.”면서 “(국가의 항소 없이) 이번 판결로 종료되길 원하며 배상금으로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주축이 된 사단법인을 만들어 추모사업 등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판결 직후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날 배상판결은 올해 초 재심에서의 무죄판결에 이어 유족들에게 정신적·물질적 피해회복을 의미한다. 이씨는 “앞서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간 국정원(전 중앙정보부)조차 남편이 고문을 당했고, 인혁당사건은 조작됐다고 인정해 명예회복은 됐다.”면서 “괴로웠던 지난날을 더이상 돌이켜 보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그저 사법부가 이제야 제 구실을 다했다는 게 좋고, 앞으로 이런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간첩가족’으로 낙인찍힌 30여년의 삶은 이씨의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켰다. 참기름 행상 등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덕분에 고혈압과 불면증, 관절염까지 잔병치레를 이어왔다. 최근에는 무릎관절치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당시 15살,3살이던 두 아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함이 앞선다. 이제 47살,35살 장년으로 장성했지만, 두 아들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채 취업조차 할 수 없었다. 이씨는 “큰아들이 판결 뒤 ‘죽이지나 말지 돈은 무슨 돈이냐.’고 하더라.”며 잠시 울먹였다. 이씨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사업회 운영계획은 이미 유족들 사이에 합의가 됐으며, 국민들이 통일을 위해 힘쓰다 누명을 쓰고 죽은 남편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여생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성북보훈회관 개관

    성북 보훈회관 개관식이 21일 오후 3시에 열렸다. 20일 성북구에 따르면 성북 보훈회관은 하월곡동 2의 12 일대 대지 992㎡에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1215㎡ 규모로 지어졌다.2005년 11월 착공했으며, 공사비는 모두 40억원이 투입됐다. 상이군경회(674명), 전몰군경유족회(374명), 전몰군경미망인회(342명), 무공수훈자회(792명),6·25참전유공자회(340명) 등 5개 단체 회원 2524명이 활용하게 된다.지하층에는 체력단련실, 목욕탕, 탈의실,1층에는 근린생활시설,2층은 사무실, 회의실,3층은 강당으로 구성돼 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전도연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에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전도연이 미국 버라이어티지가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에 뽑혔다. 지난달 30일 ‘버라이어티’지는 2007년 영화, 방송, 출판,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을 선정, 공개했다. 전도연은 50명 중 단 4명이 선정된 배우 부문에 앤젤리나 졸리, 헬렌 미렌, 마리옹 코티아르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버라이어티지는 전도연에 대해 “5월 칸에서 알랭 들롱이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미망인 역할을 맡은 전도연에게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시상했다. 이는 황금종려상 이외의 상 중 모든 사람들이 가장 인정하는 수상 결과였다.”고 언급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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