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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용(자동차 5사 21세기 경영전략:4)

    ◎디젤엔진 기술 벤츠서도 인정/뛰어난 승차감·저소음 실현/제휴 3년여만에 처녀 수출/2천년 연산 65만대 체제로/중대현 W카 내년 7월 생산 지난 91년 2월25일 상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당시 쌍용그룹 회장이었던 김석원 그룹 고문과 손명원 쌍용자동차사장,베르너 메르세데스 벤츠 부회장이 기술제휴 계약에 서명했다.벤츠의 선진자동차 기술이 쌍용자동차에 본격 전수되는 계기가 마련되는 순간이었다.1년여의 타진끝에 이룬 합작은 1∼1.6t 트럭과 3∼6인승 밴,9∼15인승 미니버스등의 상용차와 디젤엔진의 공동생산이 주요 내용이었다. 기술제휴 3년8개월만인 93년 10월.쌍용자동차는 벤츠엔진을 63% 국산화해 해외에 수출했다.3천2백억원이 투입된 고유모델 무쏘도 개발했다.OM601과 OM602로 명명된 엔진은 벤츠 기술진이 각각 6백1개째와 6백2개째의 시제품에서 목표했던 연소율과 경제성을 달성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속삭이는 엔진」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디젤엔진의 문제점을 말끔이 해결했다.승차감을 가솔린 차량 수준으로 개선했으며 소음을 줄였고 배기가스기준도 완벽히 충족시켜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기술제휴라고 하지만 이렇게 단시일내에 뛰어난 품질의 엔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손사장은 『당시 엔진개발 성공은 무쏘 601과 602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무쏘는 벤츠 기술진과 공동개발한 OM601과 OM602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니라는게 실무자들의 얘기다.이들은 쌍용자동차로만 보면 후발주자이지만 지난 55년 하동환 자동차제작소에서 시작되는 자동차만들기 40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하동환 자동차제작소는 77년 동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꿨고 86년 쌍용그룹에 인수됐다. 93년 개발이후 2년여의 짧은 기간에 각종 랠리에서 거둔 성적이 무쏘의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한다.94년 파라오랠리에서 우승한데 이어 지난해와 올해에는 세계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2년 연속 종합8위에 입상했다.파리∼다카르 랠리에서의 입상으로 무쏘는 자동차의 본산인 독일을비롯,유럽시장에서 성능좋은 차임을 공인받게 되고 일본수출 길도 열었다. 지난해 7월 선보인 상용차 이스타나도 좋은 예다.벤츠의 MB100을 기본모델로 삼아 완전히 새로 개발한 차다.처음에는 벤츠측이 기술력을 믿지 못해 형태와 사양을 바꾸는 것을 반대했으나 이제는 자기상표를 달아 수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쌍용은 현재 중대형 승용차인 W카를 개발중이다.이미 시작차는 제작돼 충돌시험 등 각종 시험을 거치고 있다.손사장은 『지난 2월말에 시승을 해봤으며 벤츠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성능면에서 렉서스나 BMW 등 세계 명차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내년 7월 생산에 들어가 10월부터 시판한다.오는 7월에는 코란도 후속모델 KJ를 선보인다. 쌍용은 현재 벤츠와 앞으로 협력방향에 대해 논의중이다.그러나 협상에 임하는 자세는 5년전과 다르다.세계 명차를 만드는 벤츠도 이젠 쌍용의 기술력을 인정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자동차메이커로의 도약에 걸림돌이던 생산규모 문제도 해결될 전망이다.지난해 11월 착공한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의 자동차전용공단에 35만대 규모의 생산라인을 갖추는 등 2000년까지 65만대로 생산능력을 늘리기 때문이다.〈김병헌 기자〉
  • 현대차 2천년대 세계화 전략

    ◎터키 교두보로 유럽정복 노린다/12만대 생산규모 현지공장 97년에 완공/연수요 40만대… 중동·동구권 진출도 용이 터키 제1의 상업·관광 도시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80㎞ 남짓 떨어진 인구 10만의 소도시­이즈밋시. 요즘 이곳은 공장 터를 닦는 불도저 소리로 요란하다.현대자동차가 터키의 앗산사와 합작한 자동차공장,현대­앗산 자동차사의 건설현장이다. 이즈밋시 외곽 30만평의 광활한 목축지위에 건립될 현대­앗산 자동차 공장은 현대자동차의 해외 수출 전초기지이다.이곳은 또한 현대의 유럽 자동차시장 정복을 위한 교두보이며 자동차수출 20년 역사의 결실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기공된 이 공장의 건설기간은 2년으로 97년 9월 완공된다.현대자동차의 최초이자 최대의 현지 생산거점이 탄생하는 것이다.생산규모도 12만대나 돼 터키도 주요 자동차 생산국으로 부상한다. ○영국 현지공장도 추진 현대­앗산 자동차 합작공장 건설 계획은 현대그룹의 「2천년대 세계화 전략」의 일환이다. 세계 곳곳에 자동차 공장을 비롯한 현지 공장을 세워세계를 무대로 한 판매전략을 새로 짜겠다는 야심찬 구상이다.『국내 인건비가 올라가고 무역장벽이 갈수록 높아져 해외투자를 확대할 것이며 특히 시장잠재력이 큰 나라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의 생각이다. 현대­앗산 공장은 해외 진출의 시발점일 뿐이다.터키에 이어 유럽에서는 영국에 대규모 공장 건립을 추진중이다.그렇게 되면 터키와 영국을 하나의 축으로 묶어 전유럽을 커버하게 된다.영국에는 유명한 롤스로이스 자동차사가 있지만 현재 종이호랑이일 뿐이다.게다가 적극적인 개방책을 펴고 있어 영국 진출도 시간문제다. 현대가 터키를 유럽지역 최대의 생산 거점으로 지목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터키는 인구가 6천2백만명이나 되고 국토의 넓이도 한반도의 9배나 돼 잠재력이 무한하다.자동차를 4백만대나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자국 브랜드 자동차가 없는 터키의 연간 자동차 수요는 연간 30∼40만대로 상당한 규모이다. 특히 좋은 지정학적 조건이 매력적이다.국토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동과 유럽 양쪽에 걸쳐있어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여기에다 유럽연합의 관세동맹에 가입해 관세 조건이 다른 유럽 국가와 똑같다.인건비도 싼 편이다. ○국토넓이 한반도 9배 현대­앗산 공장에는 터키의 대재벌사인 키바 그룹과 현대가 50대 50으로 4억달러를 투자한다.현대는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타이어와 밧데리 등 30%의 일반 부품은 현지에서 조달한다.20 02년까지는 현지 조달율을 60%까지 끌어 올린다. 공장근로자는 거의 모두 터키 현지인을 고용할 계획.터키는 그만큼 고용창출 효과를 얻는다.완공 첫해인 내년에 9백명이 고용되고 3년안에 2천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얻는다.현대에서는 16명 정도의 기술지도 인력만 파견할 예정. 현대는 이 자동차회사를 오는 97년까지 완공해 첫해에 액센트와 그레이스를 연간 5만대 생산한다.97년 이후에는 수출 주력차종인 아반떼를 추가 생산,생산규모를 9만대로 늘리고 2천년에는 12만대로 대폭 확대한다. 생산 초기에는 터키에 우선 공급한다.터키에는 현재 포드,피아트,르노,오펠 등의 외국 회사가 진출해 연간 25만대를 공급하고 있다. ○77년 포니3백대 수출 현대­앗산사는 이 물량의 일부를 우선 충당하고 중동과 유럽지역에도 진출할 생각이다.중동지역에서는 올해 현대자동차가 수입 승용차로서는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할 만큼 터를 닦아 놓은 상태.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등 동구권 국가나 구 소련지역 국가로의 진출도 용이하다. 현대는 터키를 거점으로 해서 점차로 현지 제작 또는 조립 생산하는 국가를 늘려가겠다고 한다. 네덜란드에는 상용차 조립공장이 완공돼 가동중이며 헝가리에도 상용차 조립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이 공장들은 상용차 수출의 거점이다.네덜란드 남부 오르스베이크에 있는 상용차 현지 조립공장에서는 지난해 3.5t 트럭 3백대를 생산했고 올해 1천대를 생산·공급할 계획이다.6t 트럭을 생산할 능력도 가진 이 공장의 연간 생산대수는 2천대.1백% 현지투자로 만들어졌다. 동구지역의 거점은 헝가리.한해에 2.5t과 3.5t 트럭을 1천대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조립공장이 올 하반기까지 건설된다.이 공장에서는 올해 2백대를 생산하고 내년 5백대,98년 1천대로 늘려갈 방침이다.또 현지 딜러망을 통한 판매 경과를 보아가며 미니버스를 생산할 계획도 있다. 터키 공장을 비롯한 현지 생산 체제가 갖춰지면 유럽 수출이 본궤도에 들어선다.유럽 지역이 최대의 자동차 수출 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될 전망이다.유럽 진출 첫해인 77년 현대가 그리스에 수출한 포니 승용차는 3백대.95년 판매 예상 대수는 14만7천대.엄청난 양적 팽창을 기록했다.현대차가 거리를 누비고 있는 국가도 35개나 된다. ○알파·베타엔진 개발 90년대 이후 독일과 프랑스 진출의 성공으로 현대 자동차의 유럽 시장 수출 물량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현대­앗산 공장이 완공되는 97년이후 현대의 점유율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수출 대수는 20만대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현대측은 이만한 시장 확보가 결국 품질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알파·베타 엔진과 같은 첨단 엔진 개발의 성공이 그 예이다.그러나 터키 공장과 같은 현지 생산체제를 앞당겨 완비하는 것,이것이 수출시장 확대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자동차시장의 전망이 결코 장미빛만은 아니다.기술력을 앞세운 외국 자동차들의 끊임없는 도전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무역보복 조치도 기다리고 있다. 기술개발과 완벽한 현지 생산 체제야 말로 이런 장애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수단임에 틀림없다.
  • 시신 암매장 집중조사/「5·18」 현장수사

    ◎12개 마을 40명 소환 방침 【광주=최치봉·김태균 기자】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광주현장조사팀과 광주지검 공안부(이귀남 부장검사)는 29일 5·18당시 민간인이 학살된 주남마을과 송암동,광주교도소 주변 등 세곳의 목격자와 피해자들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계엄군의 발포상황,사체 암매장여부 등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특히 당시 간호보조원 김순희(35·여)씨를 불러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사건의 정확한 사망자수와 피습시간 및 부상자 추가사살경위 등에 대한 진술을 들었다. 김씨는 검찰에서 『80년 5월23일 하오3시쯤 집중사격을 당한 미니버스에 올라가보니 유일한 생존자인 홍금숙(당시 17세·춘태여상1년)씨와 부상당한 남학생 2명만이 살아있었고 남학생 2명은 계엄군이 차에 싣고 화순쪽으로 갔다』고 말했다. 검찰은 앞으로 화순 너릿재터널 등 계엄군에 의해 양민학살이 자행된 광주·전남지역 12개 마을의 목격자및 피해자 40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5·18때 주남마을서 사체 21구 수습 주장/40대 시민 【광주=최치봉 기자】 80년 5·18 당시 양민이 학살당한 주남마을에서 민간인 사체 21구를 수습했다는 주장이 나왔다.이는 주남마을에서 10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힌 지난 7월의 검찰 발표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이다. 당시 앰뷸런스로 시민군 부상자와 사망자를 수송했다는 박대성(42·광주시 북구 문흥동 한신아파트 101동 1301호)씨는 29일 『미니버스 총격사건 다음 날인 80년 5월24일 하오 군의 요청으로 주남마을 도로변과 야산에서 시신 21구를 수습해 도청으로 운반했다』고 말했다.또 『당시 안내하던 사병으로부터 암매장한 시신이 더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 서면조사 한계… 현지인 목격담 중시/검찰 광주현장조사 왜 하나

    ◎마지막 수사 각오… 생생한 체험담 청취/금남로·도청·주남마을서 발포과정 등 조사 검찰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전개된 광주를 빠르면 26일쯤 방문,그 현장을 직접 조사키로 한 것은 한마디로 「정확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다. 이는 여야 합의에 의해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5·18 진상규명에 대한 여론에 높은 데다 5·18 수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책임감 아래 보다 진실에 다가서려는 검찰의 의지로 풀이된다. 검찰은 지난번 5·18수사때 전두환 전대통령등 피고소·고발인 58명을 비롯 이 사건 관련자 2백69명을 조사,수사기록만도 13만여쪽에 이를 정도로 엄첨난 양의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한 비난과 함께 한편에서는 『검찰이 아무리 깊이 있는 수사를 했다고 한들 광주 현장을 보지도 않고 앉아서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됐었다. 최환 서울지검장은 24일 『지난번 수사때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서울에서만 이루어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데 미흡한 점이 많았다』면서 『마지막 진상규명 조사인 만큼 철저하고 생동감 있는 수사를 위해 광주지검과 협조,현장조사를 실시키로 했다』고 밝혔다. 최지검장은 또 『우선 지난 수사에서 규명하지 못했거나 언론에 의해 제기됐던 의문점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당시 거리·마을·건물 등 현장의 조사 없이 서면상 수사기록과 관련자들의 일방적인 진술만으로는 당시 상황판단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당시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피해진술과 시민들의 생생한 경험담 등을 청취할 계획이다. 검찰은 우선 현장 조사 대상지로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가장 공방전이 치열했던 광주 시내 금남로와 전남 도청,양민이 집단으로 학살된 주남마을 등을 꼽고 있다. 검찰은 광주 도청 등의 조사를 통해 당시 계엄군과 시민들의 구체적인 대치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도청과 금남로에서의 사격 거리·각도·피해자들이 주장하는 발사 위치 등에 대한 조사가 뒤따를 전망이다. 따라서 과연 계엄군측이 시민군의 대항에 자위권을 발동,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위협사격을 위해 집단 발포를 했는지 발포명령을 받았는지 여부를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또 80년 5월23일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10여명을 숨지게 한 주남마을 앞 광주∼화순간 국도를 직접 찾아가 계엄군의 사격 위치를 비롯,목격자들의 진술을 듣기로 했다. 이밖에 비록 시일이 많이 걸리더라도 검찰청 습격,교도소 습격시 발포상황,부대별 주둔지와 이동경로 등 가능한 한 광주사태와 연루된 모든 곳을 조사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 해외여행 태국 치앙마이/코끼리타고 「원시 정글탐사」 짜릿

    ◎메이핑강 뗏목에 몸 싣고 자연 풍관 즐겨/북부 고산지대… 미인 많은 곳으로 소문나/10월∼1월 관광적기… 하루 코스 2만6천원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는 방콕과 달리 소란스럽지 않고 상쾌하다.특히 10월부터 1월까지가 관광하기에 알맞은 날씨다.해발 4백20m의 고산지대라 공기가 맑다. 치앙마이는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새로운 도시」라는 뜻의 치앙마이는 13세기 말 멩라이 대왕이 도읍을 정해 태국 북부지방의 중심도시 역할을 해왔지만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현대식 건물 공사가 아직도 한창이다. 그러나 태국에서도 으뜸가는 미인이 많이 나기로 이름난 곳 답게 수줍음과 상냥한 태도가 이방인을 즐겁게 한다. 방콕의 로즈가든에서 민속쇼와 함께 코끼리쇼를 즐길수 있다면 치앙마이는 코끼리를 직접 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치앙마이의 여행사는 미니버스로 북쪽으로 1시간(60㎞)거리에 있는 치앙다오의 한 코끼리 훈련장으로 안내한다.이곳에서 태국인의 생활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코끼리를 능수능란하게 부리는 모습을 구경한 뒤 코끼리 등에 올려놓은 나무의자에 몸을 싣고 정글여행을 떠난다.사람의 보통 걸음 보다 느린 속도로 좁은 산길을 또는 개울물을 거슬러 깊은 산속을 돌아 다니다 보면 옛날 사냥길에 오른 태국 왕족이나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는 한니발 장군의 행렬을 연상케 한다.나무의자에 등이 결리는 불편을 빼면 코끼리 걸음에 따라 흔들리며 주는 자극이 짜릿하다. 1시간여의 코끼리여행이 끝나면 다시 산길을 20분 정도 걸어 「리수」족 부락을 찾아보게 된다.부족사람들의 생김새만 빼면 마을 입구에서 노니는 닭들과 초가지붕,우리없이 키우는 돼지와 개가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자는 모습이 한국의 어느 산골 마을과 다를게 없을 정도로 눈에 익다. 이어 미얀마에서 발원하여 방콕까지 흐른다는 메이핑강을 따라 뗏목여행도 즐길 수 있다.어른 종아리 굵기의 대나무 15개를 엮어 만든 길이 18m의 뗏목은 앞뒤에서 사공 2명이 삿대를 저어 약 5㎞(40분)를 흘러내려온다.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강 양쪽에 펼쳐지는 풍광을 한가롭게 즐길수 있는 여유를갖게 된다. 도착지점에서 기다린 여행사버스가 호텔까지 데려다주는 길에 화원과 나비농장에 들러 구경과 함께 수제품 구입을 권유한다. 치앙마이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직접 현지 여행사를 통해 자기 시간에 알맞는 코스를 선택,국적이 서로 다른 외국인 대여섯명을 벗삼아 하루를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하루코스 여행요금은 8백50바트(2만6천원).
  • 자동차사 해외공장/23개국에 34개

    ◎“관세장벽 넘자” 조립공장 설립 늘어/승용·지프·승합·트럭 전차종 생산/현대­93년 태국 첫 진출… 중남미에도 교두보 마련/기아­89년 국내 첫 대만공장… 독서 스포티지 생산/대우­7월 인도·8월 중국 상륙… 동유럽에도 발판 현대·기아·대우·쌍용자동차의 해외공장이 늘어나고 있다.지난 89년 기아가 대만에서 첫 생산을 시작한 뒤 아시아·아프리카·유럽·남미 등 세계 곳곳에 우리 자동차 공장이 잇따라 세워지고 있다.승용차·지프·승합차·트럭·버스 등 전 차종에 걸쳐 국산차의 해외생산이 이뤄지는 셈이다.현재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거나 건설중인 해외공장은 23개국에 34개나 된다. 세계화를 위한 현지공략 외에 완성차는 수입관세가 높아 무역장벽을 넘기 위한 전략으로 현지 조립공장의 필요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현지생산을 늘리고 있다.지난 93년 5월부터 태국에서 엑셀을 조립해 생산하고 있다.연 생산규모는 1만대다.지난 3월부터는 필리핀에서 엑셀을,7월부터는 인도네시아에서 엘란트라를생산하고 있다.인도네시아에서는 내년부터 엑센트도 생산할 계획이다.파키스탄에서는 내년 10월부터 엑센트를,말레이시아에서는 98년7월부터 포터를 생산한다. 또 보츠와나에서는 지난 93년 11월부터 엑셀과 엘란트라·쏘나타를 생산하고 있다.생산규모는 연 2만대로 큰 편이다.짐바브웨에서는 작년 9월부터,이집트에서는 올 1월부터 엑셀을 생산 중이다. 지난 달에는 네덜란드 현지공장도 가동에 들어갔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베트남에서 엑센트와 미니버스·트럭 등을 생산하며 초기에는 연 2만대 규모지만 점차 1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지난 달에는 베네수엘라에 승용차 조립공장을 건설하는 의향서를 체결,중남미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96년부터 엑셀을 생산하며 그 뒤에는 아반떼도 생산한다. 기아는 지난 89년 대만에서 프라이드를 생산,해외 현지조립공장 1호를 기록했다.필리핀에서도 그 해부터 농어촌에서 사용되는 트럭인 세레스를 생산했다.베네수엘라에서는 91년부터 프라이드를,이란과 파키스탄·베트남에서는 93년부터 프라이드와 세레스·베스타 등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유럽에 진출,독일에서 스포티지 생산에 들어갔다.내년부터는 나미비아에서 세레스를 생산하며 97년부터는 브라질에서 세피아·스포티지·베스타·세레스를 연간 3만대 이상 생산해 중남미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대우는 현지 조립공장 출발은 늦었지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상대적으로 동유럽 진출이 두드러진다.지난 7월 인도의 현지공장을 준공해 씨에로 생산에 들어간 게 대우의 해외공장 1호.지난 달에는 중국에서 버스공장 준공식을 갖고 생산에 들어갔다. 이달 하순부터는 인도네시아에서 씨에로와 에스페로를,필리핀에서는 10월부터 르망·씨에로·에스페로를 생산한다.11월에는 루마니아에서 씨에로를,올해 말부터는 이란에서 르망과 에스페로를 생산하는 등 해외공장이 잇따라 준공된다. 베트남에서는 내년 1월부터 씨에로·에스페로·프린스·슈퍼살롱을,우즈베키스탄에서는 씨에로와 티코를 생산한다.97년에는 체코와 폴란드에서 각각 트럭과 씨에로를 생산하며,러시아와 페루 등 중남미 진출도추진 중이다. 쌍용은 내년부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무쏘를 생산한다.유럽 및 중남미 지역에도 무쏘의 현지조립 생산을 적극 추진 중이다. 해외공장의 이점은 세금이 낮아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이다.예컨대 베네수엘라는 완성차에 대해 35%의 관세를 부과하지만 조립생산된 승용차에 대해서는 3%의 낮은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짐바브웨도 완성차의 수입에는 관세를 55∼75% 부과하지만 현지에서 조립 생산된 차에 대해서는 관세가 10%에 불과하다. 또 국내에서는 생산을 중단한 차의 모델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후진국에 진출하는 경우에는 인건비가 싸다는 것이 이점이다.또 독자모델을 해외에서 생산하는 경우 받는 로열티도 짭짤하다. 현재 국내 자동차 업체의 해외생산 규모는 약 30만대지만 오는 2000년에는 약 2백만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국내 자동차 업체와 자동차 산업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점을 반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 시위대가 장갑차 포위하자 장교 첫발표/「5·18」수사 의문점 규명

    ◎21일 전남도청앞 충돌전 장교위주 실탄분배­발포경위/전교사령관­31사단장 계통밟아 군병력 투입­군지휘권/광주시내 시위대처 급급… 병력운용 여유없어­무기피탈 방치/인명피해·뚜렷한 피탄흔적·파편 등 확인안돼­헬기 기총소사/8명의 사체서 자상 발견… 대검 사용 인정­대검등 사용/정지불응 미니버스에 총격… 10여명 사망­광주외곽 피해/「신원·사망경위 불명」 많아 확정 불가능­사망자수 검찰이 18일 「5·18」사건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의문점들이 밝혀졌다.검찰수사 결과 드러난 발포경위 및 헬기 기총소사 여부,대검과 화염방사기 사용여부,사망자 수,무기피탈 고의방치 여부,광주 파견부대 지휘권의 2원화 여부 등 7가지 의문점을 정리해 본다. ▷발포경위◁ ▲공수부대의 발포는 5월20일 하오11시쯤 광주역 앞에서 시위군중에 발포하면서 계속되었는데 21일 하오1시쯤 도청 앞에서의 집단발포의 형태는 시위대의 차량돌진을 저지하기 위한 자위목적의 우발적 사격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명령에 따라 이뤄졌다는 주장. ­광주에서의 최초발포는 5월19일 하오5시쯤 광주고부근에서 있었던 바,당시 사직공원을 수색하고 복귀하던 11공수여단 63대대 배속 장갑차가 이 학교 부근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가 장갑차를 포위공격하면서 불붙은 짚단을 던져 불을 붙이려 하자 장갑차에 타고 있던 한 장교가 장갑차 문을 열고 공포를 쏘고 다시 위협사격하는 과정에서 주위에 있던 고등학생 1명이 총격을 받아 부상당했음. 또 20일 하오11시쯤 3공수여단이 광주역일대에서 시위대와 공방을 벌이던 중 트럭·버스 등 시위대의 차량돌진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수세에 몰리자 3공수여단장은 경계용 실탄을 예하대대에 전달하고 대대장은 이를 장교 위주로 분배해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차량을 향해 발포했으며 광주역으로 실탄을 전달하러 가던 특공지원조가 시위대와 마주쳐 진로가 막히자 위협사격을 하는 한편 21일 다시 전남대 앞에서 장갑차·경찰가스차 등 시위대의 차량돌진공격에 대응해 발포,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이는 광주시민의 공분을 고조시킬 목적으로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발포였다고는 할 수 없음. 이와 함께 21일 전남도청 앞에서의 발포경위에 대해 그동안 국회 청문회 등에서는 시위대의 1차 장갑차공격후 도청에서 철수하던 31사단 병력으로부터 공수부대가 소량의 실탄을 인수하여 장교들에게 분배한 상태에서 다시 시위대가 차량공격을 해오자 장교들이 자위적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고 주장돼왔으나 이번 수사결과 11공수여단 61·62대대는 도청 앞 금남로에서 시위대로부터 차량공격을 받은 후 시위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20일 밤 12시쯤 대대장이 대대장 지프 등에 통합보관하고 있던 경계용 실탄을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위급시에만 사용하라는 지시와 함께 중대장이상 장교에게 15발들이 1탄창씩 분배하고 63대대는 21일 상오10시30분쯤 실탄을 분배함으로써 같은 날 하오1시쯤 시위대의 차량공격이 있기 전에 이미 장교 위주로 실탄이 분배돼 있었음이 확인됐음. 또 당일 하오1시쯤 시위대가 장갑차등으로 공수부대에 돌진,공격해오고 병사 1명이 장갑차에 깔려 사망하자 이에 대응해 첫 발포가 있었으며 다시시위대가 장갑차와 버스 등 차량돌진을 계속하자 공수부대 장교들이 집단적으로 발포했고 이와 비슷한 시점에 7공수여단 35대대도 철수하던 31사단 병력으로부터 실탄을 인계받아 이를 장교들에게 분배하는 한편 돌진하는 차량을 피해 인도와 인근 건물로 산개했던 공수부대원중 일부가 도청 및 주변건물 옥상에 올라가 경계를 하고 있다가 접근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사실이 확인됐음. 따라서 이같은 발포는 대대장이나 여단장이상의 상급지휘관이나 별도의 지휘계통에 있는 특정인의 구체적인 발포명령에 따라 행해진 것이거나 광주시민의 공분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것으로 인정할 수 없고 현장지휘관인 공수부대 대대장들이 차량돌진 등 위협적인 공격을 해오는 시위대에 대응해 경계용 실탄을 분배함으로써 이를 분배받은 공수부대 장교들이 대대장이나 지역대장의 통제 없이 장갑차 등의 돌진에 대응해 자위목적에서 발포한 것으로 판단됨. 그러나 그 이후 계속된 발포중에는 비록 시위대가 무장을 했다 하더라도 도로에 나와 단순히구호를 외치거나 총상자들을 구호 또는 호송하려 하거나 심지어는 시위현장 부근에서 구경하기 위해 나타난 경우 등 군에 대해 직접적 위협을 가하지 아니한 상태에까지 발포가 이뤄진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당시 실탄 및 사격통제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음이 확인됐음. ▷군 지휘권◁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상급지휘관인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전교사령관·31사단장의 정상적인 지휘계통하에 있지 아니하고 별도세력의 사전계획에 의해 지휘되고 있었다는 주장. ­7공수여단 2개 대대를 전남대 등 3개 대학에 배치한 것은 소요예방과 진압을 이유로 육본이 전국 92개 대학에 계엄군을 배치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취해진 것이므로 이때 이미 군병력의 시위진압투입은 전제돼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5월18일 하오 7공수여단 2개 대대가 광주시내 시위진압에 나선 것은 계엄확대선포후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시내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이 군의 투입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전교사령관→31사단장의 계통에서 군병력 투입을 결정한 사실이 인정됨. 11공수여단의 추가투입이 광주시내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학생들이 충돌하기 전인 18일 하오2시쯤 결정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광주 시위상황을 보고받은 육본에서 군병력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다만 공수여단중 적절한 파견부대의 결정을 위해 특전사령관의 의견을 들어 11공수여단을 증원하기로 결정한 것임. 또 초기에 7공수여단을 시위진압에 투입한 후 5월18일 야간에 공수부대를 광주시내에 거점배치하고 19일 11공수여단의 추가작전통제에 다라 책임지역을 구분해 시위진압에 투입했으며 20일 3공수여단의 추가투입에 따라 다시 책임지역을 구분,시위진압에 투입하고 21일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는 등 일련의 부대운용에 관한 지휘를 실제 31사단장과 전교사령관이 행한 사실이 인정됨. 21일 하오4시 31사단장의 2개 공수여단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전교사령관에게 전환된 후 광주 재진입작전은 전교사령관이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아 특전사령관 등의 자문과 조언을 참고해 그의 책임하에 수행한 것이 인정되며 군부대간의 오인사격은 전교사와 공수여단 및 전교사 예하 각 부대간에 상호 상황전파 및 통제의 미숙,단위부대 지휘관들의 상황판단미숙과 침착성 부족 등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이를 두고 지휘권 이원화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음. 물론 광주에 파견된 3개 공수여단이 전교사령관이나 31사단장의 작전통제하에 있었음에도 31사단 등과는 무전교신체계가 상이한 상태에서 특전사 일부장교가 전교사에서 전용 무선 발수신장치를 설치해 각 공수여단과 별도로 교신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특전사령관이 11공수여단과 3공수여단의 증원결정에 의견을 제시하고 수시로 광주를 방문하면서 공수여단 지휘관들을 격려하고 광주 재진입작전인 상무충정작전을 수행함에 있어 특공부대를 선정하는 데 관여한 사실 등이 인정되나 이를 가지고 당시 공수여단에 대한 지휘권이 이원화됐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임. ▷무기피탈 방치◁ ▲사전에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광주 재진입작전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시민으로 하여금 무기고를 습격,무장을 하도록 상황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근거로 광주시민이 광주 외곽지역에서 무기고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해 광주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 제지를 받지 않았고 이후 외곽도로가 봉쇄되었다는 주장. ­광주에서 시위대에 의한 무기탈취는 19일 하오3시15분쯤 시위대가 기독교방송국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31사단 경계병력으로부터 M16소총 1정을 탈취한 것이 처음으로 이 소총은 곧 회수됐으며 그후 20일 하오11시쯤 광주세무서 방화,점거시 지하실 무기고에서 칼빈 17정을 탈취했고 21일 하오1시쯤 광산 하남파출소에서 카빈 9정이 탈취됐으나 시위대가 본격적으로 무기탈취에 나선 것은 21일 하오1시쯤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발포가 있은 후로 시위대는 광주 인근지역으로 진출,화순·나주 등 지방의 지·파출소와 화순광업소·한국화약 등 방위산업체 등에서 대량의 무기와 실탄을 탈취했음. 당시 조기진압의지와는 달리 시위가 급격히 확산됨으로써 경찰과 군병력이 광주시내 시위에 대처하는 데만도 급급한 상태였고 지방경찰 병력도 대부분 광주시내로 차출돼 인근지방으로까지 진출해 무기를 탈취하는 시위대를 사전에 막기는 어려웠던 상황이었으며 특히 21일에는 전남대에서 3공수여단이,전남도청 앞에는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이 시위대와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은 전남도청 등을 포기하고 시외곽으로 철수하는 형편이었으므로 군이나 경찰이 병력운용에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무기고 습격을 방치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움. ▷헬기 기총소사◁ ▲광주에서 무장헬기의 공중사격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야기됐다는 주장. ­군관계 자료상으로는 21일 2군사령부가 전교사에 수송용 헬기인 UH­1H 10대,무장헬기 AH­1J(코브라) 4대를 지원하고 사태기간중 헬기가 모두 48시간동안 무력시위를 했다는 기록외에 실제공중사격 실시여부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음. 조비오신부가 헬기사격의 피해자라고 지목한 홍란은 검찰조사에서 부근 건물옥상에 있던 계엄군의 소총사격에 의해 다쳤다고 진술했으며 정낙평은 21일 하오2시쯤 광주경찰서 상공에서 기종미상의 헬기가 기관총 사격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부근 진주다방의 종업원이 옥상에서 헬기가 쏜 기관총을 맞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진주다방 종업원인 심동선씨(30)에 대한 검시조서에 의하면 사인이 M16소총에 의한 관통총상이고 당시 빌딩옥상에 있던 공수부대원의 사격에 의한 피격이라는 취지의 증언이 있음. 아놀드 피터슨목사는 헬기가 선회하고 상공에서 총소리가 들려 헬기에서 기총사격을 한 것으로 믿고 있으나 헬기사격 자체를 목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피터슨목사가 사격장면을 촬영한 것을 검찰에 제출한 사진상의 헬기 하단 불빛은 기관총사격시 발생되는 섬광이 아니라 헬기에 부착된 충돌방지등 불빛임이 확인됐음. 이와 함께 광주시내 적십자병원·기독병원·전남대병원의 당시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들의 진술을 검토해도 그 당시 각 병원에 헬기총격에 의한 피해자가 들어왔거나 입원·치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고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 1백65명에 대한 광주지검 사체 검시기록에서도 특별히 헬기기총사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음. 또한 AH­1J헬기의 장착무기인 토미사일,2.75인치 로켓,20㎜ 발칸포(1분당7백50발 발사),500MD헬기의 장착무기인 2.75인치 로켓,7.62㎜ 6열 기관총(1분당2천∼4천발 발사)에 의한 표적사격의 경우 나타나는 대규모 인명피해와 뚜렷한 피탄흔적·파편 등이 확인되지 않았음. ▷대검등 사용◁ ▲계엄군이 시위진압과정에서 대검과 화염방사기를 사용했다는 주장 ­당시 광주일원에 투입된 계엄군은 착검상태에서 트럭을 타고 위력시위를 하다가 시위대로부터 투석공격 등을 받으면 착검상태로 하차해 시위대를 추적,체포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그 과정에서 대검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음. 실제로 사망자 손옥례·권근립씨등 8명의 사체에서 자상이 발견됐고 부상자 하헌남·최승기씨 등이 자상을 입은 점 등을 종합할 때 당시 시위진압현장에서 지휘관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수부대원에 의해 대검이 사용된 사실이 인정됨. 군관계자들은 화염방사기가 토치카 또는 장갑차 공격용이므로 인체에 화염방사기를 직접 사용할 경우 전신 중화상으로 대부분 사망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당시 광주에서 화염방사기가 사용되지 않았고 다만 소용진압용 작용제(CS분말)나 소요군중 식별용 유색수를 살포하는 데 화염방사기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계엄군이 화염방사기로 화염을 방사했거나 화염방사기에 의한 화상사망사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를 발견치 못했음. 5월21일 광주시청 앞에서 시위대의 장갑차를 몰고가다 화염방사기 공격으로 화상을 입은 것으로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에 기록된 최강식씨(87년 사망)의 보상금지급 관련서류를 조사한 결과 최씨는 당시 광주시 중흥동의 한 건축현장에서 계엄군에 체포돼 전남대·광주교도소·상무대로 이동하면서 전신을 구타당하고 화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음. 또 같은 날 전남대 앞 시위에서 계엄군의 화염방사로 안면화상을 입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 최병옥씨(당시 21)의 경우 당시 계엄군에 쫓겨 전남대부근 가정집의 화장실에 숨어 있던 중 화장실 환기창문으로 불꽃이 들어와 얼굴에 화상을 입었으나 그것이 화염방사기에 의한 화염인지는 목격하지 못했다고 검찰조사에서 진술하는 등 다른 피해사례나 목격담에 대한 조사에서도 화염방사기 사용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음. ▷광주외곽 피해◁ ▲5월21일 공수부대가 전남대와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하여 5월27일 재진입작전을 할 때까지 시외곽 봉쇄 및 도로차단 등과 관련해 여러 건의 민간인 피해사례가 있었다는 주장. ­이같은 주장 가운데 3공수여단 5개 대대는 5월21일 광주교도소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시위대 수십명을 천막등으로 덮은 트럭에 실어 호송하면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과다한 인원을 탑승시킨 상태에서 최류탄을 터뜨려 화상환자를 발생시켰고 교도소 도착당시 트럭에는 질식 등으로 인해 5∼6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음. 3공수여단은 또 같은 달 22일 하오10시쯤 광주교도소부근을 통과하던 김성수씨일가를 시위대로 오인,총격을 가해 가족 3명에 총상을 입히고 그중 김씨의 처 김춘아씨가 후유증으로 사망케 하는 등 24일까지 광주교도소를 방호하는 과정에서 무장시위대와 수차례 교전을 했고 이같은 교전및 부상자치료,철수과정에서 사망한사체 12구를 교도소부근에 가매장한 사실이 확인됐음. 광주∼목포간 도로를 차단하기 위해 효천역부근에 배치됐던 20사단 61연대 병력은 5월22일 상오5시40분과 9시쯤 2차례에 걸쳐 시위대로 오인하고 민간인에 총격을 가해 왕태경 등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했음. 5월22일 하오5시쯤에는 20사단 62연대 2대대가 광주통합병원을 확보하기 위해 민가를 사이에 두고 무장시위대와 교전하는 과정에서 인근주민 이매실·함광수씨 등이 총상을 입고 사망 또는 부상했고 23일에는 해남에 주둔하고 있던 31사단 93연대 2대대와 시위대간의 2차례 교전과정에서 박영철씨 등 민간인 2명이 사망했음. 11공수여단 62대대가 매복하고 있던 주남마을 앞 광주∼화순간 국도에서는 23일 상오10시쯤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박현숙씨 등 10여명이 사망했고 남자 중상자 2명이 후송도중 다시 총격에 의해 사망했음. 24일 하오1시30분쯤에는 주남마을에서 송정리비행장으로 이동하던 11공수여단 병력과 시위대 10여명이 송암동부근에서 총격전을 벌이던 중 공수부대의 난사로 전재수 등 어린이 2명이 사망했고 또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의 오인사격을 받고 격분한 63대대 병력이 피격지점부근를 수색해 시위대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장시위대원 1명과 권근립씨 등 주민 4명이 총격을 받고 사망했음. ▷사망자수◁ 정부 관련 자료에 근거한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수는 군인 23명,경찰 4명,민간인 1백66명등 모두 1백93이고 이에 광주시위 관련 행방불명자로 인정돼 보상금이 지급된 사람이 47명임. 그러나 광주시위기간에 발생한 사체 가운데 신원및 사망경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목격자 진술 등에 의해 사망자가 확인된 경우에도 당시 사체가 발견돼 확인됐는지 여부와 신원불상 사체와의 동일성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이 현재로서는 곤란해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수를 확정짓는 것은 불가능함.
  • 5월20일/시위진압때 4명 총격 사망/검찰수사로 재구한「5·18」

    ◎휴교항의 전남대생 18일 공수단과 첫 충돌/21일 무장시민군 도청 접수… 최소 38명 희생/시민군 23일 “무기회수”… 군27일 도청점령 “끝” 상오10시 전남대앞에서 휴교조치에 항의,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과 7공수여단 33대대 병력간에 충돌.하오2시40분쯤 학생·시민들이 금남로로 진출,진압에 실패한 경찰이 군병력 출동을 요청해 7공수 33·35대대가 시위진압에 나섬.이 과정에서 첫사망자 발생.시위대 2천여명으로 불어 시내 중심가에서 산발적 시위.하오5시50분 11공수 61대대 진압에 투입됨. 대검을 착검한 공수부대원들의 강경진압에 분노한 시민·학생들 금남로 일대에서 화염병·투석 시위.상가대부분 철시한 상태에서 11공수 61·62·63대대 학생·시민들을 진압봉으로 무차별 구타,연행함.하오2시 광주지역 기관장회의서 과격진압항의및 연행자 전원석방요구.하오5시 11공수63대대 장교가 M16소총으로 시위대에 첫발포.하오11시 육본이 3공수 5개대대에 추가투입명령. 전남도교위 광주시내 중고교에 임시휴교조치.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17정을 시위대가 탈취.하오4시 금남로일대에 시위군중 2∼3만명 운집하고 택시·버스·트럭 등 차량이 시위에 합세.하오9시45분 진압상황 보도요청을 거부한 광주문화방송국 방화.하오10시30분 진압군에 실탄지급.M60등으로 공포사격.하오11시 전남도청을 제외한 광주전지역을 시위대가 장악.광주역일대 진압과정에서 4명이 총격사망. 20사단 61·62연대 추가투입.시위대들이 광산·영광·함평·화순·나주 등지로 진출,나주경찰서등에서 총기4천9백여정·실탄13만여발·수류탄2백70여발 탈취해 무장.정오 전남대·도청등지에서 수만명의 시위대들이 무장시위 벌임.하오1시30분 공수부대원들이 시위대를 향해 집단발포.하오1시35분 광주 외곽도로망 차단하고 진압군 자위권 발동.하오4시30분 전남도청·도경을 시민군이 접수.최소 38명이 총격사망. 광주외곽지역 총격전으로 수십명 사망.상오9시 지역유지와 학생들을 주축으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구성.하오3시 도청분수대 앞에서 시민궐기대회개최. 상오9시35분 수습위 시민군들 상대로 무기회수 시작.상오10시 11공수 62대대 병력이 매복한 주남마을 부엉산아래 광주∼화순간 국도에서 미니버스에 타고있던 여고생등 10여명 총격사망.하오3시 도청앞 광장에 5만시민이 운집해 민주수호시민궐기대회 개최. 상오9시55분 호남고속도로 광주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전교사 예하 기갑학교 병력이 부대복귀중이던 31사단 96연대 3대대 병력을 시위대로 오인,진압군끼리 총격전을 벌여 사병3명 사망.하오1시55분 효천역 부근에서 전교사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이 11공수63대대 병력을 시위대로 오인,총격전을 벌여 9명 사망. 강경학생·청년들이 수습위를 대신해 무력대항결의.무기반납도 백지화.상오4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광주재진입작전계획인 「상무충정작전」수립지시해 작성됨.하오5시30분 최규하 대통령 광주방문,담화문발표. 상오10시30분 소준렬 전교사령관 주재로 진압작전 지휘관회의 개최해 27일 새벽 작전개시키로 결정.하오6시 전남도청에서 최후항쟁 주장하는 강경파 2백여명이외에 시위대 해산함. 상오4시 3공수여단 11대대 1지역대 병력이 전남도청 후문으로 들어가 1시간21분만에 도청점령.7공수33대대 8·9지역대 병력도 상오5시6분 광주공원 점령.11공수61대대 4중대 병력은 상오4시46분 도청주변 주요건물 점령.20·31사단은 상오7시15분쯤 광주시내 진입완료하고 10분만에 모든 작전완료.계엄군의 광주재진입작전과정에서 시위대 16명,계엄군 3명 총격사망. ◎고소·고발인 향후 대응방향/「검찰 결성」 불복땐 어찌될까/항고·재항고 기각땐 헌법소원내야/헌법재판소서도 「결정번복」 힘들듯 1년2개월 가량을 끌어온 「5·18」 고소·고발사건이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으로 일단 마무리됐지만 고소·고발인들이 검찰의 결정에 불복하고 있어 앞으로 전개될 법률적 대응이 주목된다. 현행법상 고소·고발인들이 취할 수 있는 법률적 대응방안은 3단계로 구분된다. 우선 해당 검찰청인 서울지검을 통해 상급청인 서울고검에 항고하는 것.항고가 기각되면 대검에 재항고를 할 수 있으며 재항고마저 기각될 경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길이 열려 있다.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고검이나 대검이 1차 결정 당사자인 서울지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사전조율결과 도출된 결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고·재항고는 헌법소원을 내기 위한 요식절차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건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간다해도 고소·고발인들의 주장이 관철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인용」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인용결정이 곧바로 검찰의 기소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뿐더러 헌법소원을 통해 검찰의 결정을 뒤엎기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무리라는 것이다. 우선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사안이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언제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공소시효에 대한 판단자체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헌재가 검찰의 결정을 번복하려면 공소시효부분에 대한 판단을 먼저 내린 뒤 시효만료일 이전에 재기수사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고소·고발인들이 주장하는 내란죄의 공소시효(15년)는 오는 8월15일에 만료돼 27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배적인 견해인 점으로 미루어 시간상 공소시효와 본안에 대한 판단을 함께 내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이 헌재에서 다뤄질 경우 검찰이 유보한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여부에 대해서도 심판해야 하므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종래 통치행위는 검찰이나 법원의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으나 헌재의 헌법판단대상이라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헌재의 인적 구성이나 12·12사건 당시 보인 소극적 자세 등을 감안할 경우 헌재가 8월초쯤 헌법소원이 제기되면 공소시효부분에 대한 판단여부로 시간을 끌다가 결국 『소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결정을 내릴 공산이 크다. 따라서 고소·고발인들의 향후 법적대응은 실익보다는 검찰의 사법적 판단에 대한 「불복」차원에 그칠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장윤석 공안부장 일문일답/“어떤 비판 제기돼도 최선다한 결정”/고소인 주장 입증할 증거 발견못해/양민학살한 계엄군 처벌도 어려워 「5·18」고소·고발사건의 주임검사인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18일 하오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해 상당한 국민적 반발과 파장이 예상되는데.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이 해야할 고유의 일이지만 시를 감상하고 비평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어떤 비판이 제기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80년 8월 최규하 전대통령 하야과정과 발포경위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입증자료가 없다」고 발표한 것은 검찰수사력의 부족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 아닌가. ▲충분한 자료수집과 검토를 했지만 고소인들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최전대통령이 정권에서 물러날 시기를 전후해 강압과 불법행위는 정말 없었는가. ▲전두환 전대통령은 답변서를 통해 강압이 없었다고 진술했으며 최전대통령은 서면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를 설명할 자료가 전혀 없었다.또 세간에는 이 과정에서 김정렬 전총리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는데 김씨 역시 사망해 강압여부에 대해 확인할 수 없었다. ­80년 4월 권정달·허삼수·허화평씨 등이 모여 국보위 설치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정권찬탈등의 의도가 있었다는데. ▲조사결과 4월 당시 그런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80년 8월 최전대통령이 하야하고 간선제를 통해 전전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두사람간에 강압이 없었다는 말인가. ▲최전대통령이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아 알 수가 없었으며 전전대통령의 경우 「당시 최대통령이 스스로 결단했을 것」이라는 답변서만을 냈다. ­광주시민등 양민학살 부분의 책임자들에 대한 개별적 처벌은 가능하지 않은가. ▲공수부대가 광주 외곽지역에서 총격을 가해 주민 2명을 사망케 한 일이 있었으나 발포자와 구체적 경위에 대해 특정되지 않는등 행위자를 가리기 어려워 처벌이 어렵다. ­12·12사건 때는 군형법상 반란죄등 혐의를 인정했는데 5·18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12·12 사건의 경우 소장급 장성이 별넷인 장성을 제거하려 한 것이므로 군형법상 반란죄 인정이 가능했지만 이번 사건은 통치권 찬탈을위한 사전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으며 당시 전씨가 모든 과정에서 부단히 최전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려고 노력했으므로 전혀 다른 성격이다. ­계엄군에 의한 주민학살만이라도 처벌할 수 없는가. ▲공소시효 5년이 지난 것으로 알고 있다.군형법상 군지휘계통을 들어 책임자를 처벌하기도 어렵다.구체적 행위자등 기본적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집권을 위한 시나리오가 있었다는데 입수했나. ▲입수는 했지만 당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계획서였을 뿐 정권찬탈 음모는 보이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 민선단체장 취임 열흘 달라진 것들

    ◎도보·자전거로 출·퇴근… 시민과 더 가까이/점심은 청사 구내식당서 직원들과 함께/「열린 시장실」 마련… 주민 목소리 여과없이 청취/회의실 원탁으로 고쳐 실무자와 격의없는 대화/「정책 실명제」 시행·타지 거주 공직자 관내로 이주 지방 관청가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민선 단체장들이 주민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으로 도보나 자전거 등으로 출·퇴근하고 근무실을 정례적으로 민원실로 개방하기도 한다.또 관사를 주민을 위한 「사랑방」으로 활용하거나 또는 팔고 값싼 곳으로 옮겨 지역개발 재원에 보태기도 한다.행정 스타일도 변하고 있다.실무 국·과장의 전결이 크게 늘었고 회의실도 원탁으로 고쳐 실무자들의 목소리를 크게 들으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근무실 개방◁ 서울의 진영호 성북구청장은 10일 「이동 구청장실」을 운용하기 위해 24인승 미니버스를 개조,전화기와 구정 현황판 등 즉석 브리핑 자료를 갖추었다.권문용 강남구청장은 민원 전용 팩시밀리(510∼1111)를 구청장실에 설치했고 정흥진 종로구청장,설송웅 용산구청장 등도 구청장실을 개방하고 있다. 경남 백승두 진주시장은 시장실 옆에 「열린 시장실」을 따로 마련하고 직원 2명을 배치해 주민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주민들의 건의,고충,청원을 여과없이 전달하라는 것이 그의 엄명이다. 하일청 사천시장도 10평짜리 주민면담실을 마련해 운용하고 있고 공민배 창원시장은 매주 목요일을 「시민과의 대화의 날」로 지정,주민들과 만난다. 전북의 국승록 정읍시장은 취임과 함께 2층이던 시장실을 1층 민원실 옆으로 옮겨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고 임명환 완주군수는 매주 이틀 동안 스스로 민원실장을 맡는다. 신구범 제주도지사는 비서실 외에 주민들을 만나는 10평짜리 접견실을 따로 마련했고 신철주 북제주군수,전남 조형래 곡성군수,충북 청원군 변종석는 비서실을 없애고 군수실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출·퇴근◁ 문정수 부산시장은 북구 만덕2동 자택에서 시청사까지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갈아 타고 출·퇴근하며 「열린 행정」의 현장으로 활용한다.부산의 오규석 기장군수는 관사에서 청사까지 1시간거리를 주민들과 함께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며 대화를 나눈다. 경기도 심재덕 수원시장도 취임 첫 날부터 시내버스로 출·퇴근한다.광주 광역시의 김태홍 북구청장은 취임한 날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민원인들에게 부족한 주차공간을 넓게 내주기 위해 직원들의 승용차 이용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관사 활용◁ 이의근 경북지사는 관사로 써 온 대구 도심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경산에 값싼 아파트를 임대하도록 지시했다.최용규 인천 부평구청장도 62평짜리 관사 아파트를 처분하라고 지시했다. 충남 김낙성 당진군수는 관사를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사랑방으로 개조토록 했다.강원도 이승호 인제군수는 『관사를 공무원들의 복지 시설로 활용하겠다』는 공약에 따라 여직원 탈의실과 공무원의 휴게실로 개조,활용토록 했다. 경남의 김두관 남해군수는 고현면 자택을 계속 쓰겠다며 관사를 헐고 민원인을 위한 주차장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권위주의 탈피◁ 심대평 충남도지사는 길게는 1시간30분까지 계속되던 각종 회의를 30분으로 줄여 실무자들의 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또 도청과 시·군의 32개 실무 실·과를 선정,토요일마다 2개 팀으로 나눠 한개 팀을 평일처럼 전일 근무토록 하는 한편 다른 팀은 쉬도록 하는 새로운 근무방식을 도입,운용하고 있다.실적이 좋을 경우 내년부터 충남도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남 구례 이동승 군수는 회의실 탁자를 원탁으로 바꾸고 의자도 일반 참석자와 같은 크기로 바꿔 부하 직원들과의 벽을 허물고 있다. 홍선기 대전시장은 청사 출입 때 비서진의 마중과 환송을 없앴고 송석찬 유성구청장,오희중 대덕구청장은 조회나 각종 행사 때 단상을 없앰으로써 참석자들과의 위화감의 소지를 원천봉쇄했다. ▷위민 행정◁ 전남 권이담 목포시장은 공무원에게 책임감과 함께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시책을 입안한 직원의 명단을 공개하는 「정책 실명제」를 도입,운용하고 있다.전남 고흥의 유상철 군수는 주민과의 「만남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고흥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공직자들에게 모두 고흥으로 이사하라고 지시했다. 전북 김상두 장수군수와 강수원부안군수도 모든 직원들이 부안군으로 주민등록을 옮겨 주민과 함께 살며 대화의 기회를 넓히라고 지시했다. 경기도 이석용 안양시장은 공직자들의 근무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직원들에게 희망하는 근무부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토록 했다.이시장은 근무부서는 본인의 희망이 존중돼야 한다며 인사 자료로 활용키로 했다. ▷기타◁ 서울의 조순 시장을 비롯,부산의 문시장,유종근 전북지사 등 민선 단체장들은 시간나는 대로 점심식사를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하며 「열린 행정」의 분위기를 만드느라 안간힘이다.
  • 케냐/“야생동물 낙원” 관광대국 탈바꿈(아프리카 기행:1)

    ◎나이로비에서 케이프타운까지/국토 한가운데 적도… 평균기온 섭씨27도/나이로비 사가지 도로망 등 세련미 넘쳐/한국인경영 사파리파크호텔은 관광명소 국토의 한중간을 적도대가 가로지르고 지나는 열대의 나라.그러나 1천6백여m의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더운 여름철에도 섭씨 27도를 넘는 일이 없는 온화하고 시원한 날씨를 갖고 있는 나라 케냐.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수도 나이로비 시가지의 세련미 넘치는 도시미관,문명과 야성이 절묘하게 교차되고 있는 나라인 케냐.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반벙어리의 여행자라도 「잠보우」라는 인사말 한마디만 할 줄 알면 별 불편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케냐이다. ○김포서 15시간 걸려 「동물의 왕국」이나 「꽃의 나라」로 일컬어지고 아프리카의 진주로 불린다.이 나라로 가는 길은 우리 국적의 항공기가 인도의 봄베이노선을 개척했으므로 우리에게 훨씬 가까워졌다.김포공항에서 저녁에 뜨는 비행기를 타면 8시간 뒤에 인도의 서쪽 항구 봄베이에 도착한다.한밤중인 공항에서 다시 케냐국적의 항공기로 바꿔타고 7시간을 비행하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공항에 도착한다. 나에게는 케냐가 두번째의 방문이지만 이 공항에선 언제나 상오 11시쯤의 뜨거운 태양과 만나게 된다.구름 한점 없이 발가벗은 하늘에서 작열하고 있는 태양아래로 첫발을 내딛게 되면 오염된 환경에 일상적으로 중독되어 살았던 15시간 이전의 회색빛 서울이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빛살의 무늬가 손에 잡힐 듯한 태양아래 노출되어 버린 나는 찌들고 구겨진 스스로의 모습에 희미한 모멸감조차 느끼게 된다. 허우대가 껑충한 흑인 운전사가 다가와 이 나라의 국어인 스와힐리어로 「웰컴」이란 뜻인 「잠보우」를 외치며 내겐 무거웠던 트렁크를 한손으로 번쩍 들어 미니버스에 실어주었다.버스는 곧장 공항을 벗어나 나이로비 국립공원을 끼고 시가지로 향해 달렸다.7년전의 여행때 공항과 마주 바라보이는 그 공원의 철책까지 다가선 기린떼들이 우리들이 탄 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아 탄성을 질러댔던 기억이 있다.그처럼 케냐는 자연의 풍경과 그 풍경을 만드는 기후,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지구상에서 보기드문 낙원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가장 뒤늦은 19 63년에야 독립을 얻게 된 나라지만 독립후의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번영에 있어서는 단연 앞선 나라이기도 하다.홍차와 커피 수출은 아프리카의 으뜸이었지만 지금은 관광수입이 첫째로 꼽힌다. 드디어 차창 밖으로 시가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나이로비는 마사이(Maasai)족의 언어로 「물이 좋은 곳」이란 뜻이다.중심가의 도로는 12대의 마차가 나란하게 서서 달릴 수 있을 만큼 넓고 곳곳에 눈에 띄는 주차기록계는 이 도시의 현대화를 한마디로 대변하고 있었다.골목 시장과 난전,그리고 무역물자를 실어나르는 컨테이너 집하장을 보여주며 시가지를 관통하고 있던 버스는 키마치 스트리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인도인이 상권 장악 키마치에 세워진 기념탑은 19 50년대 마우마우 반란을 주도하였고 이나라의 종신 대통령이었던 조모 케냐타의 투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50년대 아프리카 최대의 유혈해방투쟁이었던 마우마우 반란은 케냐 최대 부족인 키쿠유족이 주동이 되어 케냐의 영국인과 유럽인들을 몰아내려 하였던 반란이었다. 1907년 몸바사로부터 수도가 옮겨진 나이로비의 도로망은 이곳을 중심으로 서양의 장기판 같은 모양을 이루며 뻗어나 있다.동쪽은 주로 금융가가 차지하고 서쪽은 아시아계인 인도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이로비 강변을 끼고 있다.나이로비 상권의 80%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이들 인도인들은 케냐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건너온 사람들의 후예이다.케냐의 몸바사와 우간다의 키수무를 연결하는 철도부설공사의 노무자로 일하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사람들로부터 태어났다.봄베이에서 나이로비로 나르는 항공기 객석에서 터번을 두른 인도인들을 숱하게 볼 수 있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웃음을 시종 잃지 않았던 운전사는 시가지를 가로질러 약 20분후에 카사라니지역에 있는 사파리파크호텔 앞에 내려주었다.호텔 로비 앞에는 그리스시대의 남자들이 어깨에 두르던 토가처럼 적갈색의 당카자락을 눈부시게 걸친 벨보이가 기다리고 섰다가 트렁크를 냉큼 받아들었다.첫인사는 역시 잠보우.창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사이족이 틀림없어 보였다. 케냐를 여행하는 유럽인들이나 일본인들은 언필칭 이곳 사파리파크호텔을 찾아내어 여장을 풀게 된다.저녁이면,「나미초마 야외식당」에서 「케냐 사파리 캐츠」무용단의 격동적인 전통민속춤을 관람하면서 멧돼지,얼룩말,기린,사슴,노루,악어,타조와 같은 일곱 종류의 통숯불구이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호텔이다.나이로비의 유일한 명소라 한다.한국의 강영국 박사가 운영하고 있는 이 호텔은 설립자인 전락원씨의 탁월한 건축예술감각이 곳곳에 배어 있는 장소로서도 유명하다. ○앤소니 퀸 조각 눈길 아프리카의 토산인 가시나무를 주제로 건축된 호텔로 들어서면 누구나 집으로 돌아온듯한 착각과 만나게 된다.7백명의 종업원이 매일 가꾸어 정갈하게 다듬어진 잔디와 숲은 저마다 조화를 이루며 독립된 공간을 만들었다.그 축약된 공간마다 2층에 10개의 객실로만 구성된 전통 아프리카식 지붕의 가옥들이 고즈넉하게 들어앉아 있다.야자나무숲과 꽃길과아프리카식 건물 사이를 오묘한 굴곡을 이루며 흐르게 되어 있는 수영장의 예술적 조형미는 나이로비에서 가장 소문난 수영장으로 손꼽힌다. 객실의 탁자와 의자 그리고 손에 잡히는 소도구에까지 미쳐 있는 단순미와 소박한 터치는 나무를 주제로 한 건축이 안겨주는 안도감까지 미리 염두에 둔 것이어서 15시간 이상의 진한 여독을 순식간에 풀어주는 마력과 같은 효험이 있었다.이렇게 아름답고 편안함을 선사하는 호텔이 아프리카라는 멀고먼 오지에서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자긍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이 호텔의 남쪽 정문에는 회화에서도 독특한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영화배우 앤터니 퀸이 제작하여 호텔에 기증하였다는 조각작품이 눈길을 끈다. 나이로비 교외에는 아직도 커피와 홍차나무를 기르고 있는 대단위 농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전형적인 농업국인 케냐가 그 수입의 원천이 관광산업으로 바뀐 것은 불과 몇년 전부터이다.그러한 대전환은 물론 남한 넓이의 거의 6배에 달하는 땅위에 펼쳐진 이 나라의 대자연에 어우러져 살고 있는 「동물의 왕국」이 제공한 선물이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미 「포기 바텀」의 북한대표/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미국무부의 청사가 있는 워싱턴DC의 「포기 바텀」지역은 곧잘 국무부의 별칭으로 사용된다. 국무부 청사를 지하철을 타고 가려면 포기 바텀역에서 내려 23가를 따라 남쪽으로 4블록만 가면 된다. 6일 아침 23가 쪽으로 난 국무부의 현관 유리문에는 『상오 8시 30분이후엔 남쪽 현관을 이용해주십시오』라는 작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이날 상오 9시30분부터 국무부소회의실에서 열리는 미·북한 연락사무소개설 전문가회담에 참석하는 북측대표단의 입장을 한시간여 앞두고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특파원들을 중심으로 한 보도진들이 현관 한쪽에 카메라를 즐비하게 설치해놓고 잔뜩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이윽고 상오 9시20분,국무부가 제공한 검은 색 미니버스가 현관앞에 멈추자 북측대표들은 박석균단장(북한외교부 미주국 부국장)을 선두로 하여 잰걸음으로 국무부 청사안쪽으로 들어갔다.한 기자가 목청을 높여 『한말씀 해주고 가시죠』라고 소리쳤으나 박단장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흘깃 쳐다보며 아무 대꾸도 없이 들어가버렸다.북한정권 수립후 근반세기만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대표단이 공식적으로 워싱턴을 방문했고 그것도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미국외교의 총본산인 국무부를 들어오면서 뭔가를 말할것이라는 기자들의 직업적인 기대와 추측은 순식간에 깨어졌다. 그들이 남북분단이후 40여년만에 처음으로 「교전국」인 미국에 도착했는데도 한마디 언급이 없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세계 유일 강대국인 미국 앞에서 주눅이 들어서일까.아니면 연락사무소개설을 위한 전문가회담에 조금이라도 나쁜 영향을 미치지않기위해 노심초사하고 있기 때문인가.함경도향우회가 8일로 잡아놓은 환영리셉션도 이들이 참석할 수 없음을 통보해와 취소되었다. 미국무부측이 북한대표들에게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이런저런 얘기들이 크게 보도되면 일을 그르치기가 쉽다는 간곡한 권유를 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국무부 소회의실 탁자엔 성조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꽂혀있었고 하오 4시쯤 공식회의가 끝난뒤에는 미측 대표들과 비공식 실무협의를 가지면서 백악관,링컨기념관,제퍼슨기념관 등을 돌아보며 유니언 역에서 저녁을 함께 한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대표들은 아마 이날따라 평양의 날씨보다 훨씬 「따스한」 워싱턴의 기후를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 김일성배지 단 북대표“회담은 해봐야…”/4주만에 재개 미북회담안팎

    ◎북 「핵봉」 카드로 활용/「경수로」에 집착할듯/대표들,말 자제… 모양새에 신경 5일 재개될 미·북한 3단계 고위급회담에 참석할 북한측 대표단이 3일 하오 제네바에 도착한데 이어 4일 미국측 대표단이 회담중단 4주일만에 제네바에 돌아왔다. 특히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 등 대표단일행은 김일성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일제히 김주석의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강부부장등 북한대표단은 미국대표단보다 하루빠른 3일 하오 6시20분(한국시간 4일 상오 1시20분) 루프트한자 항공편으로 제네바에 도착. 그러나 강부부장을 비롯한 북한측 고위대표들은 대기중이던 취재진을 피해 2층 귀빈실을 거쳐 미리 대기시켜 놓은 미니버스를 타고 제네바주재 북한대표부로 직행. 강부부장등이 떠난뒤 유엔주재 차석대사를 지낸 허종 외교부대사는 『강석주단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 일행이 오늘 제네바에 도착했으며 회담은 모레 재개될 것』이라고 도착성명을 대신한 뒤 회담의 전망,쟁점,회담기간 등에 대한 질문에는 『회담을 해봐야 알것』이라고만 말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 말을 자제하려는 인상이 역력. ○…로버트 갈루치 미국무부차관보등 미국측 대표단은 4일 상오(한국시간 4일 하오) 뉴욕발 스위스항공편으로 제네바에 도착. 미대표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비행기 바로앞까지 TV 카메라기자등이 접근,갈루치차관보등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할수 있도록 해 회담을 앞두고 모양새에도 세심한 신경을 쓰는 모습. 이에앞서 셰리 벨 미대표부 공보관은 『회담은 금요일 미대표부,토요일 북한대표부에서 각각 열린뒤 이틀 쉬고 화요일 미대표부,수요일 북한대표부에서 각각 열릴 것』이라고 밝힌뒤 『수요일에는 마지막 기자회견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해 회담이 속전속결 형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음을 시사. ○…4일 상오 9시(한국시간 4일 하오 1시) 제네바에 도착한 로버트 갈루치 미국무부차관보 등 미국측 대표단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에 대해서만 카메라촬영을 허용하겠다고 취재진에 통보하는 등 회담을 앞두고 모양새에도 세심한 신경을 쓰는 모습. 한편 미·북한대표단과는 별도로 김삼훈외무부핵대사 등 한국측 관계자들도 미국측과 북한핵문제에 대한 막후 의견조율을 위해 이날 제네바에 도착. ○…이번 회담은 김일성사후 김정일체제의 첫번째 외교시험무대라는 점에서 핵 및 대미정책을 김정일이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 북한핵문제 해결과 정치·안보·경제문제 등 쌍방이 다룰 기본의제에는 변함이 없으나 회담이 잠정중단된 지난 한달간 적잖은 상황변화가 있었으며 이것이 회담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가 주목되고 있다.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경수로 지원문제에 강한 집념을 보일 것으로 예측.지난달 8일 김일성 사망 당일 하루동안 가졌던 회담에서도 북한은 1기당 20억달러,건설에 5∼10년이 걸리는 경수로 건설이 완료돼야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을 중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어 이번 회담에서도 경수로문제가 최대 현안이 될 것이 확실. 북한은 또 이번 회담에서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에서 빼낸 폐연료봉의 재처리 문제를 보다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 ◎미­북 3단계회담 보는 정부입장/한반도 비핵화 등 핵해결에 치중/민족내부 문제와는 연계않기로 북한은 대화의 물꼬를 뜬 김일성의 사망에도 불구,기회있을 때마다 핵정책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이제껏처럼 미국과 대화를 통해 일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북회담에 앞서 북한은 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사설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이를 공개적으로 알리고있다.2일자 노동신문 사설은 『핵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일괄적으로 타결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뜻』이라고 밝히고 있다.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직원들도 간헐적으로 이를 공식 확인했다. 이처럼 겉으로 볼때 핵문제의 최종 해결을 시도하려는 미·북회담은 지난달 8일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그것은 미국이나 북한 모두 마찬가지다.미국 국무부의 갈루치차관보는 미리부터 『북한과의 관계를 보다 정상화하고 정치적 접촉을 강화해 나갈수 있다』고 말하는등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북한관계의 미묘함이다.김일성 사망후 남북한사이에 이렇다할 마찰은 없었지만 강도높은 설전이 오고가 정상회담이 추진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우리쪽으로 말하면 러시아에서 가져온 6·25관계 문서의 공개에 이어 강명도씨등 귀순자의 기자회견,고상문씨등 납북인사의 송환및 북한인권개선 요구등이 이어졌다.이에 대해 북한은 대남비난으로 일관,남북관계가 상당히 냉각되어 있는 상태다. 우리가 미·북회담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한미 두나라는 핵문제의 근본해결을 위해 한반도의 비핵화가 실천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남북대화가 반드시 재개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이번 미·북회담에서도 북한에 이러한 두나라의 의지를 분명히 전달할 예정이다. 이처럼 원하든,원하지않든 남북관계는 제네바 미·북회담의 진전및 방향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미국과의 회담에 빌미로 활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그러나 요구사항에 대한 양측의 주장이팽팽히 맞서는 상황이 되면 달라질수도 있다』고 내다봤다.지금까지 보인 북한당국의 논평,언론매체의 사설등을 종합하면 김정일체제도 대화노선을 계속 유지할 것 같지만 남북대화만은 쉽사리 열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북한의 인권,납북인사의 송환요구등이 민족 내부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이미 제네바에 머무르고 있는 김삼훈 핵담당대사등을 통해 핵문제와는 별개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민족적 현안이라는 점을 미국측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이 문제로 미·북회담이 지장을 받거나 북한이 이 문제를 회담에 역이용하는 일은 있을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이다.그러나 갈루치차관보가 『남북관계의 냉각이 미·북회담에 열기를 불어넣진 않고있다』고 말한데서도 드러나듯 간접적으로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부가 북한핵 문제에 있어,특히 5일의 미·북회담에 대해 예전과 달리 가급적 개입하는 인상을 주지않으려고 애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이미 한미 두나라 사이에 회담원칙이정해진 탓도 있지만 민족 내부의 문제와 핵문제를 분리하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대북 3단계회담 갖는 미국입장/핵동결 재강조… 과거규명도 요구/남북대화 전제 경수로지원 논의 5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미­북 3단계 고위회담의 성패는 북핵문제 해결여부와 직결된다.뿐만아니라 이번 회담은 북한 김정일체제의 전반적인 대외정책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로 주목된다. 3단계 회담에서 우선적으로 다룰 사항은 핵연료봉의 처리문제가 될것이라고 미측은 설명하고 있다.미국과 북한 양측은 이번 회담이 어디까지나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으로 중단되었던 지난 7월8일 회담을 속개하는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핵연료봉의 처리문제와 관련,당시 미측은 냉각저수조에 보관중인 폐연료봉을 장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기술지원을 하거나 아니면 폐연료봉을 제3국에 보관토록하자는 제의를 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북측은 제3국 보관은 받아들일수 없으며 현재 안전도에 위험이 있는만큼 일단 재처리를 하되 플루토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아래 두도록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핵연료봉의 처리문제는 경수로지원문제와 맞물려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북한은 현재의 흑연감속로방식을 플루토늄추출에 적합치않은 경수로방식으로 전환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면서도 경수로전환 지원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보장,8∼11년으로 예상되는 경수로건설기간 동안의 에너지공급및 손해보상등을 요구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폐연료봉처리와 경수로지원문제는 일단 북한이 저수조 보관 폐연료봉의 장기보관 기술지원을 받아들이고 경수로건설 지원문제를 논의하는 방향으로 실마리가 풀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미국은 대화의 전제로 핵동결을 거듭 강조하고 핵의 미래와 현재는 물론 「과거규명」도 3단계회담에서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이다.미측은 「과거규명」에는 특별사찰이 필수조건이라고 보고있으나 북한측은 미·북 국교수립,안전보장,경제지원등과 함께 이른바 일괄타결이 될때만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협상테이블에 올려질 메뉴들은 미측에서 보면 ▲경수로전환 지원약속 ▲미·북한관계개선을 향한 첫 조치로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설치 ▲대북한 통상관계규제 해제 ▲대북한 경협·투자유도 ▲대북한 「핵무기선제불사용」보장등을 들수있다. 이에 비해 북한은 ▲연료봉의 재장착중단 ▲현재 추진중인 50.1백 메가와트 흑연감속로방식 원자로 건설중단 ▲핵확산금지조약(NPT)복귀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조치 이행 ▲영변 핵폐기물저장소에 대한 특별사찰수용등이 고려될 수있을 것이다. 이번 미­북한 고위회담 진전과정에서 미측은 남북대화가 병행되지않으면 경수로지원문제,평화협정체결,비핵화선언이행등이 실질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은 1차로 1주일가량 열린뒤 같은 기간만큼 쉬고 다시 협상을 벌이는 정회­속개­정회의 형태로 진행될것으로 보인다.
  • 숨돌릴 틈도 없는 지방순시(청와대)

    대통령의 전북순시때 한 장관은 자동차를 놓쳤다.그 자동차로 가서 헬기를 타거나 대통령전용기를 타야하는데 어쩌다 자동차를 타지 못한 것이다.장관은 혼자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상경했다. 또 다른 한 장관은 다른 지역 순시때 보고회장 출입문을 나서는 대통령에게 잠깐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하고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업무보고동안은 꾹 참았으나 업무보고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지역으로 숨 쉴틈도 없이 이동하게 되는 것을 알고는 실례를 무릅쓰고 대통령의 출발을 늦춰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의 지방순시는 이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의 올해 지방순시는 여러가지 새로운 관례를 만들어 놓고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강원도와 제주도만 남겨놓은 상태다. 업무보고회장에 민간단체 간부들을 참석시키고,참석자들과 일문일답식 대화를 갖고 현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대표적인 새 관례들이다.업무보고를 듣고나서는 그 지역의 공장이나 연구소같은 곳을 방문해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반응을 얻고있는 것같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방순시 일정이 비용과 시간의 절약만을 강조하다 보니 지나치게 빠듯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대통령의 지방순시 일정은 수행하는 장관들이 하루종일 화장실조차 들를수 없다는데서 빡빡함이 어느정도인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지방순시는 지금까지 모두 당일치기로,그것도 가능하면 두개 지역을 하루에 다녀오는 방식이었다.이런 결과로 일행의 일정은 청와대출발,공항도착,전용기,공항도착,업무보고회장 도착,간담회및 업무보고청취,이동,이동… 늘 이런식이다.중간에 조금의 틈도 없다.일행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면 수행원이나 수행기자들은 항상 뛰어다녀야 할 지경이다. 시·도청사 도착에서 지역유지와의 간담회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지만 교통사정등으로 이 일정은 대부분 생략되고 만다. 대통령일정이 항상 빡빡하다보니 해당지역의 시·도지사가 대통령과 현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란게 고작 공항에서 청사를 들고 날때뿐이다.그것도 차안에서만이다. 경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대통령이 어떤 때는 하루에 4∼5차례이상 헬기를 타야하는 상황이다.조근해공군참모총장이 탔던 사고헬기는 대통령지방행사에 가끔씩 동원되는 헬기다.실제로 사고만 없었으면 그 헬기는 4일의 진해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참석에 동원되도록 돼있었다. 대통령의 지방순시때 고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일반수행원보다는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이다.일반수행원은 꼭 대통령곁에 붙어있지 않아도 되지만 장관이나 수석은 그렇지 않다.거기다 모든 차량배치나 시간배정이 대통령 한사람만을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상황은 고려대상이 될 수가 없다. 예컨대 어떤 장소로 이동할 때 대통령이 자동차에 탑승하는 시간이 곧 출발시간이다.장관이나 수석들에겐 별도의 차량이 제공되지 않는다.미니버스 한대에 장관이나 수석들이 함께 타고 움직이게 돼 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수행할 때만 비서실장용 승용차가 차량행렬에 들어간다.비서실장 차가 있을 때에 한해 장관들은 비서실장 옆자리를 얻어탈 수 있는 형편이다.
  • 반미 선전속 모든 계산 달러로만

    ◎“마지막 냉전의 현장” DMZ 르포/WP지/콘크리트 장벽·철조망도 관광상품화/북 안내책자 소개와 달리 긴장 감돌아 미워싱턴 포스트지는 6일자 일요판 여행면에 남북한의 비무장지대(DMZ)관광르포를 특집기사로 실었다.남쪽에서 판문점의 「자유의 집」으로 가는 관광코스와 북쪽에서 「판문각」으로 가는 코스를 각각 여행한 특별기고가의 기행문을 게재하는 형식으로 「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현장」을 소개했다.다음은 이중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 관광르포기사를 간추린 것이다. 미니버스는 울퉁불퉁한 도로를 털털거리며 들꽃이 만발한 언덕을 넘었다.가시철망을 따라가다 이윽고 콘크리트 벙커앞에서 멈췄다.승객들이 우르르 내렸다.『지구상에서 가장 신비한 관광지에 온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비무장지대는 다른 곳과는 다른 관광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호텔은 물론 택시운전사도 없고 다만 별난 기념품을 나눠주는 면세점만 있었다. 외화획득에 혈안이 되고있는 북한은 이 분쟁의 지역을 관광코스로 만들었다.관광객들은 가시철망이 쳐진 황량한 개괄지,지뢰지대와 무장한 초병들,불쑥 튀어오르는 사격표적판등 모두 이국적인 장면들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관광객들은 한국전쟁당시 2백만명이 피를 흘렸고 지금은 1백50만명의 병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이 지역을 자세히 관찰했다.관광안내책자의 소개와는 달리 한때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린 이 곳에 평온함이란 찾아볼수가 없었다. 옛 왕조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광광객들은 하룻밤을 묵으며 다도회를 가졌다.판문점은 새 「통일로」를 따라 10마일쯤 떨어져있었다.4차선 포장도로는 넓었지만 텅 비어있었다.이정표에는 서울이 43마일밖에 안된다고 표시되었지만 이 하이웨이는 판문점에서 끝난다. 판문점관광에서는 남북정전회담이 열리는 회의실까지 걸어가볼 수 있고 회의실 테이블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특별관광에는 대형 쌍안경이 설치되어있는 고지에 올라가는 코스가 들어있었다.산능선을 따라 콘크리트 건조물이 보인다. 관광안내원은 『이것이 미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괴뢰가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증스런 콘크리트장벽입니다』라고 설명했다.그는 이 장벽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1백55마일로 이어져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방외교관들은 이 장벽은 단지 북한의 은밀한 침입을 막기 위해 지난 70년대에 축조한 대전차장애물로서 불과 수마일밖에 안된다고 반박하고있다. 콘크리트장벽관광은 소위 판문점 패키지관광의 일부였다.판문점에서는 관광엽서는 돈을 주고 사야하지만 선전물은 무료로 나눠준다. 콘크리트장벽과 철조망을 본뒤 브리핑룸으로 들어가 북한군소령 이홍섭으로부터 「미국」의 침략을 그들의 「용맹한 군인」이 어떻게 막았는가를 설명들었다. 버스에 실려 기념품가게에 내렸는데 거기에는 「미깡패와 남조선괴뢰들의 잔학상」을 6개국어로 상세하게 기술한 책과 포스트,각종 핀등이 진열되어 있었다.그들의 과장된 반미선동의 와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건값등 모든 계산은 반드시 미화달러로 해야한다는 안내였다.
  • 고속도서 5중충돌/1명 죽고 15명 다쳐

    【광양】 8일 하오 7시30분쯤 전남 광양군 광양읍 사곡리 남해고속도로(회덕기점 2백67.6㎞)에서 동신교통소속 전남 5바1039호 시외버스(운전자 오홍식·40)와 전남 5라3416호 미니버스(운전자 박기완·58)등 버스와 승합차·승용차 5대가 연쇄충돌했다. 이 사고로 전남 1다5824호 코란도승용차 운전사 정현씨(46·전남 광양군 광양읍 절성리)가 숨지고 버스에 타고 있던 광양여고 3년 정유미양(18)등 고교생 12명 등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CIS 한인청년 등 58명 통일염원 러­남북한 장정/광복절기념

    ◎차량 20대 타고 8천㎞ 주파 【모스카바 연합】 8·15 광복적을 앞두고 독립국가연합(CIS)에 거주하는 한인청년 50여명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자동차 20여대를 동원,지난 1일 알마아타를 출발해 카자흐∼러시아∼남북한으로 이어지는 장장 8천㎞의 대장정에 올랐다. 알마아타 고려청년협회 회장 유가이 로베르트(32)씨를 단장으로 한 이들 일행은 카자흐,우즈베크 및 러시아에 살고 있는 54명의 한인과 러시아인 및 카자흐인 4명 등 모두 58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자동차는 승용차 18대,화물차 1대,미니버스 1대 등 모두 20대를 동원했다. 지난 1일 알마아타를 출발한 이들 일행은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리스크,크라스노야르스크를 지나 바이칼호를 우회,현재는 치타에 도착했으며 오는 14일경에는 하바로프스크에,18일경에는 북한과 인접한 국경도시 하산에 도착할 예정이다.
  • 비원방명록에 “문화유산 전하자”/김달현부총리 서울오던 날

    ◎“길은 다닐수록 넓어진다고 했죠”/최부총리/“최부총리 답방땐 더 가까워질것”/김부총리/판문점에 북기자 한명도 안보여 눈길/일행태운 승용차도 모두 최고급국산… 자동차 3사 치열한 홍보전 ▷판문점도착◁ ○…김달현부총리 일행 10명은 이날 우리측이 제공한 3대의 승용차와 1대의 미니버스편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상오10시5분쯤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 앞에 도착. ○현→현으로 정정 김부총리와 정운업 삼천리총회사총사장,리성대 북경주재 무역참사 등 장·차관급 3명은 영접나온 한갑수기획원차관과 『안녕하십니까』라고 반갑게 서로 인사를 교환. 이어 김부총리 등은 통일원 남북대화사무국 여직원 3명으로부터 차례로 화환을 건네받고 내외취재진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포즈를 취한 뒤 「평화의 집」 1층에 마련된 환담장으로 직행. 이날 「평화의 집」 주변에는 AP,로이터,타스,산케이(산경) 등 외신기자 10여명이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였으나 오히려 북측기자들은 수행취재원 외에는 한명도 눈에 띄지 않아 눈길.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북한이 김부총리의 서울방문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으려 하는것이 아니겠느냐』고 진단하기도. 김부총리는 10시30분 판문점을 출발하기에 앞서 정확한 한자이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이름 마지막자는 「솥귀 현」이 아니라 「검을 현」다』이라고 한자표기를 수정해주기도. ○…김달현부총리는 19일 상오 판문점을 통과한뒤 「평화의 집」에서 한갑수경제기획원차관과 가진 첫 면담에서 이번 방문이 경제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통일로 이어지리라는 희망을 표시. 김부총리는 이날 상오 10시5분쯤 안내를 받으며 「평화의 집」접견실에 들어와 한차관과 나란히 앉아 약 15분간 면담. 그는 남측지역 「평화의 집」과 북측지역 「통일각」의 이름을 확인한 뒤 『둘다 이름을 잘 지었다』면서 『우리가 경제협력을 잘해서 통일을 앞당기자』고 말했는데 이에 한차관이 『통일의 비료가 되려고 오신것 아니냐』고 하자 『통일의 비료를 뿌리고 수확도 하고…』라고 화답하며 웃음. ○통일이 궁극 목표 ○…환담을 마친 김부총리는 림태덕대외경제협력추진위 서기장과 함께 「평화의 집」1층 기자실에서 5분여동안 기자회 견문을 발표하고 내외신 기자들과 일문일답. 그는 또 『이번에 우리가 한번 오고 최각규부총리가(북에)한번 오시면 더욱 거리가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해 이미 최부총리의 초청이 사실상 확정돼있음을 시사. 김부총리는 경제관료답게 면담도중 통계와 숫자에 대한 관념이 몸에 뱄음을 드러냈는데 날씨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통계적으로 보면 비가 많이오면 농사가 잘된다』고 하는가 하면 「평화의 집」건축연도,판문점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경제기획원의 직원수,기획원차관 수 등등을 질문. ○…기자회견을 마친 김부총리는 「평화의 집」계단앞에서 한갑수기획원차관 등과 함께 기념촬영. 이날 판문점에서 숙소인 서울 힐튼호텔까지 북측일행들을 태우기 위해 준비한 승용차는 모두 3천㏄급 이상 국내자동차 3사의 최고급차종인 기아의 포텐샤,현대의 그랜저,대우의 브로엄 등으로 산업시찰이라는 명목에 걸맞게 우리기업들의 대북진출을 위한 경쟁적 양상을 반영하기도. ▷서울도착◁ ○…9일 상오 11시 49분 숙소인 서울 힐튼호텔 정문에 도착한 김달현부총리 일행은 로비에서 마중나온 최각규부총리의 영접을 받고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한뒤 21층 숙소로 직행. 최부총리는 한갑수기획원차관의 안내를 받으며 로비로 들어선 김달현부총리에게 먼저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했고 이에 김부총리는 『안녕하십니까』라고 화답. 이어 김부총리는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이렇게 마중까지 나와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라며 최부총리와 악수. ○…김달현부총리 일행은 이날 숙소인 힐튼호텔에 도착,우리측 초청자인 최각규부총리의 영접을 받고 최부총리와 함께 21층 객실로 올라가 20여분간 환담. ○“피곤하니 일정취소” ▷비원·롯데월드관광◁ ○…김달현부총리 일행은 이날 하오 2시 50분께 우리측이 준비한 고급승용차에 나눠타고 경찰오토바이 10여대의 호위를 받으며 힐튼호텔을 출발,비원을 둘러본뒤 잠실 롯데월드를 관람. 김부총리일행은 이날 당초 관람키로 했던 남대문시장과 롯데백화점 일정을 미루고 출발시간도 예정보다 50분이나 늦게 힐튼호텔을 출발. 이에대해 경제기획원관계자는 『김부총리가 피곤하니 일정을 일부 취소해달라』고 요구해왔기 때문이라고 전언. ○…하오 3시쯤 비원에 도착한 김부총리일행은 안내원 백소영씨(24·여)의 설명을 들으며 40여분간 인정전과 대조전,부용지등을 관람. 김부총리는 다소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웃옷을 벗어든채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도 백양의 설명을 경청. 이들은 이어 정문으로 돌아와 방명록에 「귀중한 민족문화 유산을 자손만대에길이 전하자.1992년7월1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무원 부총리 김달현」이라고 자필서명. ○…김부총리일행은 비원방문을 마친 뒤 하오 4시5분쯤 잠실 롯데월드에 도착,롯데월드 3층 민속관에 들러 선사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의 유적유물모형을 30여분간 관람. 이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 민속관으로 올라갔는데 이때 쇼핑나온 시민들이 김부총리일행을 알아보고 박수로 반갑게 맞이하자 손을 흔들어 답례. 일행은 하오 4시35분쯤 민속관을 나와 바로앞에 있는 북한상품특별판매점에 들어가 북한산 백로술과 개성인삼술의 값을 묻는등 북한상품에 큰 관심을 표명. ○“이해 넓히는 전기” ▷만찬◁ ○…최각규부총리는 이날 하오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만찬에서 만찬사를 통해 『남과 북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경제의 길을 걸어왔지만 김달현부총리의 이번 방문이 남북경제당국자간에 이해의 폭을 넓히고 나아가 남과 북이 경제분야에서 상호협력하여 발전해나갈 수 있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 김달현부총리는 『북남사이의 경제협력과 교류의 길을 열어가는데 예상치 않은 우여곡절이 있을수 있다』며 『그렇지만 초행길을 개척해나가는 마음으로,새벽이슬을 남먼저 헤쳐나가는 심정으로 이미 내디딘 발걸음을 주춤거리지 않고 힘차게 내달린다면 반드시 훌륭한 결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답사. ○…서울 하얏트호텔에서의 만찬은 하오7시부터 2층 아이리스룸에서의 양측 대표 6명씩 참석한 고위급회담에 이어 로터스룸에서 자리를 옮겨 약 10여분간 환담한뒤 아이리스룸에서 양측 관계자 모두 참석한 만찬의 순으로 진행. 만찬에 앞서 열린 고위급회담에서는 북측에서 김달현부총리,정운업 삼천리총회사총사장,리성대 중국주재무역참사,김동국 정무원책임지도원,림태덕 대외경제협력추진위서기장,황보혁 무역부부국장등 6명이,그리고 우리측에서는 최각규부총리를 비롯,김종휘외교안보수석,임동원통일원차관,김태연기획원대외경제조정실장,강희복기획원제1협력관등 6명이 각각 참석. 한편 이날 만찬에는 우리측에서 17명,북한측에서 10명등 모두 27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측에서 고명철 조선중앙통신사기자와 리영림 평양전신전화국 책임기사 등 2명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 ○…김부총리는 일본보다는 유럽이나 중동지역으로 해외출장을 자주 나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국과 합작사업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 이날 저녁 하얏트 호텔 아이리스룸에서 공식만찬에 앞서 칵테일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북측대표단의 황보혁 무역부 부국장은 『해외합작사업이 잘돼가느냐』고 우리측 관계자가 묻자 『프랑스,영국 등과 합작을 추진해 진행중』이라고 답변.
  • “오대양자금 일부 「세모」 유입”/검찰 확인

    ◎송씨도 사채모아 「개발실」에 전달/유병언씨 30일께 소환키로 【대전=박국평·최철호·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대전지검 특수부(이재형부장검사)는 27일 자진출두한 전 구원파 광주교회 미니버스 운전사 김동현씨(33)와 전 삼우트레이딩 영업부부장 박남주씨(45·기독교 그리스도예수회 한국교회목사)를 조사한 결과 수배된 송재화씨(45·여)가 광주지역에서 구원파신도들로부터 모은 사채를 세모측에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송씨를 알지도 못하고 구원파의 사채를 쓴 일이 없다』는 유병언사장(50)의 주장과는 달리 세모측이 구원파신도들의 사채를 사업자금으로 쓴 일이 있음이 분명해졌다. 검찰은 또 오대양의 교주로 알려진 박순자씨가 송씨에게 송금한 4억6천만원 가운데 일부가 세모측에 유입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모측과 유사장의 예금구좌추적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따라 검찰은 유사장 등을 오는 30일쯤 소환,조사하기로 했으며 유씨와 송씨 등을 상습사기혐의로 형사처벌할 방침이다. 이날 자진출두한 운전사 김씨는 검찰조사에서 『지난 83년초 광주에서 송씨와 함께 1만원짜리 지폐가 든 마대자루 2개를 버스에 싣고 서울 세모개발실로 운반하는 등 3∼4차례 돈을 날라준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또 한국교회목사 박씨는 지난 82년 송씨가 여러차례에 걸쳐 세모 개발실에 돈을 갖다주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검찰은 임의동행 시간이 만료됨에 따라 귀가시켰던 김기형씨(40)를 빠른 시일내에 다시 소환,김동현·박남주씨와 대질신문을 벌여 사기혐의가 드러나는 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 이라크,포로10명 첫 석방/국적에 인도

    ◎다국군도 오늘 3백명 풀어주기로 【바그다드·뉴욕 AP 로이터 연합】 이라크는 4일 여성 1명을 포함한 미군 6명,영국군 3명,이탈리아군 1명등 다국적군 포로 10명을 바그다드에서 국제적십자사측에 인도했다. 현장을 취재중인 기자들은 포로들이 커튼이 드리워진 흰색 미니버스에 태워져 바그다드 시내 알 라시드 호텔에 도착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한 육군준장이 이들을 대동했다고 밝혔다. 이들 포로들은 곧 3대의 차량에 나눠타 요르단으로 떠났다. 노란색 전쟁포로 유니폼을 입은 포로들은 건강하게 보였으며 남성 포로들의 머리는 모두 깎여있었고 이중 한 사람의 오른 팔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포로들은 3개 TV방송 취재진과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 갔으며 이라크 관리들은 다른 기자들이 포로들과 동행하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적십자사측에 인도된 10명의 포로들중에는 최초의 여성 실종자인 미 미시건주 출신의 멜리사 라트분 닐리양(20)과 미 해군 조종사 제프리 자운 중위가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압둘 아미르 알 안바리 유엔주재 이라크대사는 앞서 3일 우호적인 제스처로 10명의 다국적군 포로들이 석방될 것이라고 밝힌바 있는데 아라크는 다국적군 포로 13명을 억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국제적십자 위원회는 이날 석방된 10명의 다국적군포로의 명단은 ▲로버트 웨첼 ▲로렌스 랜도프 슬레이트 ▲멜리사 라트분 닐리 ▲데이비드 로케트 ▲제프리 노튼자운 ▲도럴 에드워드 그리피자운(이상 미국군) ▲멜컴 그레이엄 맥가운 ▲존 피터스 ▲이언로보트 프링(이상 영국군) ▲모리지오 코시오로네(이탈리아)등 10명이라고 밝혔다. 【리야드 로이터 연합 특약】 다국적군은 이라크가 4일 10명의 다국적군 포로를 석방한데 따라 약 3백여명의 이라크군의 포로를 5일 석방할 것이라고 미 군사령부가 4일 밝혔다. 한편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약 2주면 전쟁포로 석방문제가 왼전히 끝날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 쌍용서 벤츠상용차 만든다/공동생산 기술제휴계약에 서명

    ◎미니버스·트럭·밴등 93년에 첫선/96년까지 6천7백억 투자/승용차 진출도 모색… 경쟁 격화될듯 국산 벤츠자동차가 멀지 않아 등장한다. 종합자동차 생산업체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쌍용자동차는 26일 독일의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인 메르세데스 벤츠사와 소형 상용차의 공동개발 및 생산을 위한 기술제휴계약을 정식 체결했다. 이에따라 쌍용자동차는 소형트럭(1∼1.6t),밴(2∼5인승),미니버스(9∼14인승) 등 3개 차종과 이들 차종에 사용될 디젤엔진 및 트랜스액슬(구동장치) 등 주요 부품을 오는 93년 7월부터 생산하게 된다. ○한해 1만여대 수출 쌍용측은 국내에서 생산된 소형 상용차를 벤츠사의 판매망을 통해 연간 1만5천대,1억5천만달러 상당을 수출할 예정이다. 쌍용자동차는 이를 위해 오는 96년까지 모두 6천6백91억원을 투자,기존 경기도 송탄공장내의 9만6천평 부지에 94년까지 연산 5만대의 소형 상용차 생산공장을 신설하고 오는 2000년까지 생산능력을 1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또 경남 창원의 쌍용그룹 보유부지 4만1천평에는 연산 14만대 규모의 엔진 및 구동장치 생산공장을 건설할 방침이다. 쌍용자동차가 벤츠사와 손을 잡자 국내 자동차업계는 대단히 긴장하고 있다. 쌍용측이 소형 상용차에 이어 승용차의 국내 생산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석원 쌍용그룹회장은 26일 벤츠사와의 기술제휴 계약체결 직후 『벤츠사의 기술아래 승용차생산을 적극 추진하겠다』면서 이를 위해 벤츠사측이 쌍용자동차사에 자본을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쌍용그룹은 이미 지난해부터 경북 달성군 구지면에 승용차 생산용 부지(69만평) 조성에 착수,내년부터 공장건설에 들어갈 계획이다. 따라서 국내 업계에서는 90년대 중반쯤에서 국산 벤츠승용차가 탄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쌍용측은 그동안 스웨덴 볼보사 등과의 제휴를 모색하는 등 승용차생산의 야심을 키워왔으나 계약조건이 맞지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벤츠사의 극동진출을 위한 해외시장 전략과 맞아 떨어져 기술제휴선을 잡게 된 것이다. ○설계기술 제공 처음 쌍용자동차와 벤츠사의 제휴에 따라 현대·대우·기아·아시아 등 기존 상용차 업계의 대일의존도를 탈피,제품다양화를 기하고 92년 EC(유럽공동체) 통합에 대비한 유럽지역 진출기반을 다지게 됐다. 또 이제까지 해외메이커에 대해 조립공장만을 허용했던 벤츠사가 설계기술의 제공과 공동개발은 이번 쌍용자동차가 처음이라는 점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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