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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 국방부 「한국전포로 감시」 비록 입수 공개

    ◎“중공군 포로 송환 막아라”/대만공작팀 극비리 침투/반공교육후 “말 안들으면 처형” 위협/포로들 난동 잦아… 인 사령관 납치도 한국전쟁은 1953년7월27일 휴전협정조인으로 막을 내렸다.그러나 실제로 전쟁은 송환을 거부한 2만3천명 포로의 처리문제를 놓고 이른바 「총성없는 전쟁」으로 6개월간 처절하게 계속됐다.판문점일대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유엔군진영과 북부군(북한인민군·중공의용군)진영의 치열한 설득전과 이들의 심판을 맡은 인도의 철저한 중간입장고수는 2차대전후 네루중립주의 첫실험의 성공이라는 현대사적 의미를 부여받기도 했다.서울신문은 한국전쟁발발 44주년을 맞아 당시 송환거부포로 설득작전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인 「주한인도관리군활동사」(History of the Custodian Force of Indiain Korea:1953∼54)를 최근 인도현지에서 입수,발췌소개한다. ▷인도군첫해외파병◁ 휴전협상이 한창 진행중이던 53년5월8일 미국이 인도측에 송환거부포로 관리를 위한 인도군 파병가능성을 타진해왔다.이미 인도는 이들을 지휘감독할 5개 중립국송환위(NNRC)의 의장국을 맡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네루총리는 파병을 수락했다.8월5일 R K 네루외무차관,관리군사령관 토라트소장,사르다르 싱 인도적십자사무총장등 3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를 파견,도쿄의 유엔군사령부와 개성의 북부군사령부를 거쳐 구체적인 임무와 병력규모등을 협의했다. 인도군의 총규모는 6개 보병대대와 각종 부속대로 6천명.9월28일 제5진의 인천항 도착으로 이동을 모두 끝냈다.그러나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인도군의 한반도상륙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유엔군측은 인천에서 판문점까지 헬기로 이동할 것을 제의했다.동아시아의 모든 미군헬기를 동원,5명씩 수송했는데 모두 1천3백회의 출격을 기록한 사상최대의 헬기작전에서 다행히 사고는 단 한건도 없었다. ○통정리에 텐트촌 ▷새 포로수용소◁ 통정리일대에 유엔군이 건설한 막사는 5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캠프 7∼10개씩을 1개구역으로 하는 7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중공군 3개,북한군 2개,송환희망자격리수용소 1개,병원용 1개소씩으로 할당됐다.캠프는 17개의 막사와 식당·목욕탕·화장실텐트등 모두 20개의 텐트로 구성됐다.냉난방은 물론 전깃불과 온수공급이 완벽했다. 미군측은 이곳에 3만명의 식수및 생활용수공급을 위해 50만갤런상당의 물탱크를 설치했고 임진강으로부터 모두 31㎞의 대형송수관을 매설했다.전기공급을 위해 발전소 12개를 건설했으며 전체 생필품공급을 위한 대형보급창고도 세웠다.또한 설득장및 설득자대기소,송환표명포로수용을 위한 막사등 설득관련막사 10여동이 별도로 건설되었다.이들 전체지역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포로수에의 의문◁ 포로의 숫자는 포로교환협정에 따른 것으로 인도군의 입장에서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그러나 양측의 휴전협상이 처음 시작된 51년7월26일당시까지 유엔군측은 12만1천명의 북한군과 중공군포로를 억류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4만1천명이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북부군측은 6만5천명의 유엔군 생포를 주장했으며 그 가운데 5만명이 자발적으로 북한인민군과 중공의용군에 합류했다고 밝혔다.이같은 주장은 유엔군측이나 공산군측모두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에 손상을 입는 것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가 없었다. 휴전협정조인후 33일간 양측은 포로교환을 실시,유엔군측은 7만5천8백명을,북부군측은 1만2천7백60명을 상대방측에 넘겨주었다.그리고 9월25일까지 인도군이 넘겨받은 포로는 유엔군으로부터 북한군 7천9백명과 중공군 1만4천7백4명,북부군으로부터 한국군 3백35명(여군5명 포함),미군 23명,영국군 1명등 모두 2만2천9백63명이었다. 유엔군으로부터 인도받은 숫자는 남한정부의 6·18 반공포로석방으로 1만7천여명이 도망간 상태여서 어느정도 타당성 있는 숫자로 받아들여졌다.그러나 북부군으로부터 인도받은 숫자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자발적으로 귀순해왔다는 5만명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1만5천명중 유엔군측으로 송환되지 않은 수가 2천3백여명에 달하는데도 아무 설명이나 명단제시조차 없이 3백여명만 인계했던 것이다. ○총격사건 두차례 ▷포로들의 저항◁ 양측 사령부로부터 포로의 인계는 9월10일 시작돼 25일에 모두 끝났다.그들은 막사마다 리더를 선출,자치적으로 움직였으며 자체 취사를 했다.일과는 상오6시 기상하여 하오9시30분 취침에 들 때까지 대부분 운동과 오락으로 진행됐다. 첫날 중공군포로 가운데 7명이 대열을 이탈하여 송환을 요청해온 것을 비롯하여 밤에 철조망을 뚫고 번의를 요청해오는 포로들이 많았다.이같은 자발적 이탈자들의 증가로 포로측과 인도군측은 점점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본격적인 설득작전은 포로 인계인수가 끝난 뒤 26일부터 시작될 계획이었다.그러나 문제는 마지막날인 25일 발생했다. 날이 밝자 각 캠프의 포로들은 인도군에게 「납치」해간 원추를 즉각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하며 대규모시위를 벌였다.그들은 반인플래카드를 내걸고 돌을 집어던지며 강력히 저항했다.이 와중에서 토라트사령관이 포로들에게 억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먼저 억류된 그류왈소령의 구출협상을 벌이기 위해 캠프를 찾은 토라트사령관과 브두와르중령·싱소령등 12명이 순식간에 5백명에게 포위된 것이다. 부사령관 싱준장은 즉시 무장병력을 출동시켜 캠프전체를 에워싸고 사령관일행의 즉각석방을 요구했다.그리고 유엔군사령부에 협조를 요청하는등 순식간에 긴장이 감돌았다.그 사이 페인탈여단장은 특공대를 동원,극비의 구출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고 대화의 진전이 없는 가운데 마침내 토라트사령관의 기지로 포로대표를 설득,상황은 끝나게 되었다.그러나 그후에도 10월1일과 2일 두차례 총격사건이 발생,수십명의 사상자발생등 긴장상태지속으로 첫설득회는 10월15일에 가서야 가능했다.반면에 북부군측에 억류돼 있던 포로들은 규율이 잡혀 있었으며 공산주의에 몰입해 있는 듯했다. ▷대만의 선전전◁ 탈출해온 원추는 대만정부가 단 한명의 중공군포로도 대륙으로 송환시킬 수 없다는 장개석총통의 신념에 따라 조직적으로 포로설득에 개입했음을 폭로했다. 휴전협상이 진행중인 동안 중공군포로들이 수용돼 있던 제주도수용소로 대만정부는 포로들의 교육을 위한 두개의 공작팀을 침투시켰다.각각 12명과 6명으로 조직된 공작팀은 대만의 외교부·정보부·국민당등 각처에서 엄선된 심리전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포로막사로침투해 반공강연을 했고 누구든지 대륙으로 돌아간다면 공산당이 그를 죽여 사지를 절단한 뒤 반공에 대한 본보기로 삼을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그들은 어떻게 공산당의 설득을 피할 것인가를 가르쳤다.한사람의 이탈도 막기 위해 8∼9명으로 소그룹을 조직,송환의사를 나타내는 포로들을 목졸라 처치해버리는 방법까지 가르쳤다. 송환위대표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는 오직 『대만으로 가고 싶다』는 말만 할 것을 강조했고 포로개개인들에게 「TAIWAN」이라는 영문글자도 가르쳤다. ○88명 제3국 선택 ▷설득완료◁ 12월23일까지 90일간 주어진 설득기간중 실제설득이 이뤄진 날은 10일에 불과했다.설득받은 포로는 전체의 15%에 불과한 3천4백69명이었으며 설득후 송환을 요청한 자는 모두 1백37명,그나마 공산군측 억류포로중에는 한명도 없었다.여기에 설득을 기다리지 않고 막사탈출등으로 송환을 희망한 2백38명(공산군측 포로 8명 포함)을 더해 최종적인 송환희망자는 모두 3백75명.결국 설득작전은 양측사령부와 송환위·인도군등이 엄청난 인원과 물량을투입한 작전치고는 별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90일간의 설득기간이 끝난 후에도 양측은 포로들의 추가설득을 위해 설득기간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그러나 송환위측은 협정에 규정된대로 이 포로들은 30일간의 정리기간을 가진 뒤 54년1월22일자로 포로의 신분이 아닌 자유인의 신분으로 되돌아감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마침내 1월20일 상오8시부터 인도군은 포로들의 인계를 시작했다.다음날 새벽3시까지 모두 19시간 2만1천8백39명이 유엔군측으로,3백47명이 북부군측으로 인계됐다.이 가운데 북한군 74명,중공군 12명,남한군 2명등 88명은 제3국을 택했다.
  • 모택동,김일성의 남침 “원칙적 지지”(비사 중국의 한국전개입:1)

    ◎북경자료 분석 통한 진겸 교수(미 뉴욕주립대)의 추적/“아시아 공산화 기회” 판단/한국군 38선 돌파에 파병 결심/“10월15일 15개 사단 투입” 스탈린에 통보/낙동강전투 때 인천상륙 예상하기도 1950년 6·25 동란 발발 당시 북경정부는 중국의 국가안보와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유엔군의 반격이 개시되기 전부터 한국전 개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미 뉴욕주립대의 진겸 교수가 주장했다. 중국계인 진 교수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 대외관계 역사학회 제17차 연례회의에서 발표한 「한국동란중 중국의 목표변화」라는 연구논문에서 최근 공개된 중국 자료를 통해 베일에 싸였던 모택동의 개입결정과정을 소개했다. 이 논문의 요지를 5회에 걸쳐 소개한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해디 트루먼 미 대통령은 남한 구출 결의를 즉각 천명하는 한편 대만해협에서 중국군를 견제하기 위해 미 제7함대를 이 수역으로 급파했다. 이러한 미국의 조치는 모택동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충격과 더불어 몇 가지 심각한 도전을안겼다. 첫째,아시아 태평양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인 미국의 강경대응은 「동아시아가 제국주의 국제전선의 취약지대」라고 믿어온 북경 공산정권의 전반적인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둘째,7함대의 대만해협 이동은 중공당 군부가 1949년 가을 이래 준비해온 대만 해방계획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셋째,북한군과 미국 주도 유엔군의 군사대결은 중국의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한국전은 중공당 최고의 과제인 아시아 공산화와 관련,중국 혁명의 영향확대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 모택동과 중공당 지도부가 한국전에 대해 가졌던 인식은 미군 축출에 실패하면 중국에 위험하고 성공하면 아시아 공산혁명을 진전시킬 수 있다는 복합적인 것이었다. 최근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김일성은 정확한 남침일자 등 세부계획을 중국에 알려주지 않았지만 중공당 지도부는 북한의 남침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원칙적으로 이를 지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중공당 지도부는 북한의 남침 전부터 남북한간에 군사대결이 불가피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한국전 발발 5일 후인 1950년 6월30일 중국정부 총리이며 중공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주은래는 김일성과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전쟁자료 수집을 위해 대부분이 군사정보요원으로 구성된 일단의 중국 외교관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7월7일과 10일 주은래는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한국전 관련 군사대비 문제에 초점을 맞춘 2개 회의를 주재했다. 이 두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즉 인민해방군의 정예부대인 제4야전군 산하 13군단을 동북국경방위군으로 즉각 개편,필요할 경우 한국전 개입에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7월13일 중앙군사위는 동북국경방위군 창설 명령를 공식하달하고 인민해방군에서 가장 유능한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인 15군단장 등화를 13군단장에 임명했다. 또 동북군구 사령관이며 정치위원인 고강으로 하여금 모든 준비업무를 지원토록 했다. 이리하여 8월초까지 25만명 이상의 중국군 병력이 한·만 국경에 포진했다.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을 때 중국군 간부들은주은래에게 북한군 후방에 대한 미군의 기습공격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미군 상륙이 가능한 지점으로 군산과 인천을 지적했다. 유엔군 증강과 더불어 중공당 지도부는 한국내 군사상황의 악화를 우려,한국전 개입 준비를 서두르면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9월15일)하기 1개월 전인 8월에 이미 북한군 지원을 위한 9월초 파병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8월말까지 훈련과 그밖의 다른 개입준비를 마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고강은 준비기간을 9월말까지 연장해주도록 건의했다. 중국은 또 파병 전에 소련의 협조와 김일성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했다. 두 개가 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9월17일 중앙군사위는 파병에 대비,한국의 지형을 조사하기 위한 일단의 군 장교들을 북한에 파견했다. 9월20일 주은래는 중국의 한국전 개입 기본원칙을 수립,모택동의 승인을 받았다. 중국정부는 또 한국전 개입시의 중·소 협조 가능성을 소련과 협의했다. 중국과 소련은 쉽게 일반적인 이해에 도달했다. 중국 지상군이 한국전에 투입되면 소련은 공군을 보내 중국군에 공중우산을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군 파병에 관한 최종결정은 10월1일과 2일 사이에 이뤄졌다. 이에 앞서 9월30일 한국군 제3사단이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진격했고 다음날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김일성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10월1일 김일성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 예지량과의 긴급회담에서 중국군 개입을 요청했다. 김일성은 또 부총리 박헌영을 모택동에게 보내 이같은 요청을 거듭했다. 10월2일 모택동은 중앙군사위 이름으로 13군단에 대해 임전태세를 완료하고 명령에 따라 언제든지 전쟁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같은날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내 소위 「중국의용군」 파병결정을 통보했다. 당시 모택동의 계산은 중국의 병력과 소련의 무기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중국군 12개 사단을 10월15일까지 북한에 투입,38선 이북에서 방어태세를 취하며 소련 무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스탈린에게 말했다. 또 1951년 봄엔 중국군 24개 사단을 추가 파병하면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해 미군을 섬멸하겠다는 것이었다. 10월3∼5일간 중공당은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모택동의 파병결정에 대한 지도부내 이견을 해소하고 팽덕회를 중국 인민의용군 총참모장으로 선임했다.
  • “미 전투기,이라크탱크 하루 200대 파괴”(걸프전쟁현장)

    ◎“중동서 소 입김 세진다” 미지,중재안 반대/“미·나토서 걸프전 이용 세력확장 도모” 소장성,맹비난/이라크,유류난 심각… 자전거 한대 1천불 ○바그다드도심 또 맹폭 ○…다국적군의 폭격기가 18일 하오8시(한국시간 19일 상오2시)부터 19일 새벽까지 바그다드시 중심부에 맹폭을 가했다. 바그다드시 중심가의 라시드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40여명의 외국언론인 대부분은 이날 밤 공습으로 지하방공호로 대피했으며 폭격이 심해 방공호속에도 연기가 스며들었다고 말했다. 외국언론인들은 이날 밤 폭격이 지난 13일 아미리야지역의 방공호폭격 이후 최대규모였다고 전했다. ○…미군 고위장교들은 미공군 비행기들이 새로운 야간전투기술을 구사,1일 2백대씩의 이라크 신형전차들을 파괴하고 있다고 최근 말한 것으로 뉴욕타임스지가 18일 리야드발로 보도했다. 한 미군 고위장성은 미 전폭기들이 고도로 향상된 야간시계 감지기와 레이저광선 유도탄을 함께 이용한 새로운 기술을 구사,이라크의 T­62 및 T­72 전차들을 박살내고 있다고 밝히고 미 전폭기들의 이라크전차 파괴율이 종래보다 4배가량 좋아진 것으로 말하고 있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미군장교들은 이처럼 미군이 이라크군 보유 최고급탱크들을 정확히 찾아내 파괴함으로써 이라크측의 마지막 보루라할 탱크전력을 상당히 와해시키고 있는 셈이라고 말하고 미공군의 이같은 전과는 지상전여부 시기를 결정하는데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라크 당국이 휘발유 판매를 금지시킴에 따라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엄청난 수의 자전거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이에따라 자전거 가격은 최근 3배 이상 급등하는 현상을 보여 개인상점에서 이라크 국산 자전거는 8백달러,외국제 자전거는 1천4백40달러 이상에 거래되기도. ○후세인 초상화 불태워 ○…이라크 시위대들이 바그다드 남동쪽 1백50㎞ 떨어진 디와디예에서 반사담 구호를 외치며 집권바트당 간부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손발을 잘라냈다고 데일리 익스프레스지가 1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현재 이라크를 빠져나온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이를 보도했으나 이같은 일이 언제 발생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신문은 『시위군중들이 사담의 초상화들을 불태우고 지방당 간부들을 총으로 쏘는 등 격렬한 총격전을 벌였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고 보도하고 이 사건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됐다고 덧붙였다. ○개전후 8만여명 사상 ○…사둔 하마디 이라크부총리는 개전 후 26일동안 2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6만여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주장. 이란관영 IRNA통신은 19일 하마디부총리가 알리 모하마드 베사라티 이란외무차관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 하마디부총리는 또 이라크가 입은 피해는 2천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주장했다고 베사라티차관이 전언.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대이라크 전쟁 결정은 그가 무력사용으로 세계문제를 해결하려는 옛날 방식에 여전히 치중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라고 소련의 한 고위군인사가 19일 비난했다. 한편 소련국방부 기관지 크라스나 야즈베즈다지도 서방측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측이 전반적인 동·서 군축과정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중동지역에다 자신들의 무력을 구축하기 위해 걸프분쟁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과거 바르샤바 동맹군의 총사령관직을 역임한 바 있는 빅토르 쿨리코프 원수는 이날 라보차야 트리뷴지와의 회견에서 『이번 전쟁은 시작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확신한다』면서 『평화적인 형태의 압력이 지속되고 대화 또한 추구됐어야만 했으며 이것은 우리 외교관들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주장했던 것들이다. 이런 연후의 승리라면 새롭고도 바람직스런 무언가가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독,“중동서 소역할 지지” ○…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무장관은 19일 소련의 걸프전쟁 종전안은 소련이 종전후 걸프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소련이 그같이 강력한 역할을 맡는데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이스라엘,소제안 반대 ○…소련이 제시한 종전평화안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19일 이같은 평화안이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 남겨놓고 이라크의 전쟁수행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없는 두가지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소련의 걸프전 중재활동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는 19일 미국은 이같은 외교적 진전상황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고르바초프가 사담 후세인이 그대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확보해 주는 외교적 과정을 진전시키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다』고 지적하고 『고르바초프의 중재안에 대해 사전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미국은 이같은 양상에 구속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소련이 중동지역을 재편하는데 있어 유엔의 중재자이자 옹호자의 역할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미국은 암시적으로 주먹을 쓰는 악역 가운데 하나로 묘사되고 있다면서 소련의 이같은 시도는 사담 후세인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고 군사적인 위험인물인 그를 제거하려는 다국적군에 압력을 조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걸프전 19일 상황/다국적군,지상전 앞두고 전진배치/미 헬기,격추된전투기 조종사 구출 ▷상오0시38분◁ 미군대변인,다국적군 헬기들이 이라크측 진영 40㎞ 지점까지 들어가 F­16전투기 조종사 1명을 구출했다고 발표. ▷상오2시40분◁ 프랑스 르 몽드지,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라크의 쿠웨이트철수를 설득할 수 있는 시한은 24시간에서 36시간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도. ▷상오9시56분◁ 지상전을 앞두고 다국적군 병력이 이동배치되고 있다고 현지특파원이 전언. ▷상오10시47분◁ 미 군사전략가들,부시 대통령이 소련의 종전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지상전 준비작업 계속. ▷하오12시45분◁ 존 메이저 영국 총리,소련의 종전안 검토. ▷하오2시◁ 미 CNN 방송,미국의 지상전 개시 결정은 소련의 외교활동이 마무리될때까지 미뤄질 것이라고 보도. ▷하오5시20분◁ 소련의 외교정책보좌관인 니콜라이 시슐린,소련 정부는 이라크가 소련의 종전안에 3일 이내에 응답할 것을 기대한다고 발언.
  • 주미 이라크대사 오에 망명 요청설/“사막의 대회전”앞둔 중동 표정

    ◎“이란 대피 이라크조종사 포로 대우”/소선 미에 중동이익 양보불가 천명/이란,“이라크 불리하면 걸프전 참가” 밀약설 ○…이라크는 이란으로부터 이동식 스커드미사일 발사대 1백여대를 구입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란이 이같은 이라크의 요청을 수락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한 미 정보관리가 30일 밝혔다. 이 정보관리는 이란의 이동식 스커드미사일 발사대는 이란이 지난 80년대중 북한으로부터 구입한 것들이라고 말하고 이란이 이 발사대들을 이라크에 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이라크에 남아 있는 이동식 스커드미사일 발사대는 이제 15대에 불과하다고 말해왔다.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지난주에 서방세계에 보도된 이라크 공군참모총장과 방공사령관의 처형은 사담 후세인에 대한 쿠데타 기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고 3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보 소식통들을 인용,두 고위 장성의 처형은 쿠데타 기도와 관련돼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이라크 전투기의 이란행과도 연관돼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소련의 인테르팍스 통신은 후세인이 다국적군의 최초공습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지난주 두명의 장성을 처형했다고 보도한 바 있는데 이들의 처형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란은 걸프전의 상황변화에 따라 이라크를 도와 참전하기로 밀약되어 있다고 일본의 산케이(산경)신문이 국제 군사소식통을 인용,3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에 참가하거나 이라크가 다국적군에 의해 점령돼 회교국가로서의 존립기반이 파괴될 경우,이란과 이라크 두나라는 8년 전쟁의 구원을 씻고 같은 회교도로 이교도에 대항해서 싸운다는 밀약아래 「구르지아인 구출작전」이라는 암호명까지 정해 놓았다고 밝혔다. 소식통은 이같은 밀약이 현재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라크 공군기의 이란영내 착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종사 개인의 판단만으로 80대 이상의 항공기가 연이어 이란에 들어온다고 보기에는 어딘지 부자연스럽다면서 양국간에 사전협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모하메드 알 마샤트 주미 이라크대사가 오스트리아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고 런던에 본부를 둔 사우디신문 아시하크 알 아우사트지가 30일 보도했다. 소식통을 밝히지 않는 이 기사는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알 마샤트 주미대사의 망명에 대한 확인이나 부인을 거부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라크외교관 1명이 빈에서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음을 확인했다. 이 신문은 외무장관이 『이라크의 공격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이 외교관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카말 카라지 주미 이란대사는 30일 최근 이란으로 넘어온 이라크기의 조종사들을 전쟁포로로 취급할 것이라고 미 NBC­TV와의 회견에서 밝혔다. 그는 정확히 숫자는 밝히지 않았으나 이란에 넘어온 이라크 조종사들을 제네바협정에 따라 전쟁포로로 대우할 것이며 전쟁이 끝날때까지 조종사 및 비행기를 억류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 카라지대사는 또 이란이 이라크에 스커드미사일 이동발사대를 팔려고 한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근거없는 것』이라고 일축. ○…소련은 결코 중동지역을 미국에 양보한 것은 아니라고 소련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가 30일 경고했다. 프라우다지의 정치평론가 토머스 콜레슈니첸코가 쓴 이 기사는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아있는」 미국에 소련이 중동지역을 양보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하고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할 것을 요구한 유엔 결의안을 소련이 지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군이 중동지역에 얼마나 오랫동안 주둔할 것인지를 포함,이라크와 중동지역의 장래에 소련이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미 정부는 걸프전에 드는 총 경비가 과거 미국이 참전했던 어느 전쟁보다도 값비싼 각종 첨단무기 때문에 사상최대에 이를 것이라며 어림잡아 연말까지 5백억달러(36조원)로 추산. 반면 군사전문가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매달 1백50억달러가 소요돼 연말까지 1천8백억달러(1백26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
  • 대공습 1주일… 전과는 “아리송”/베일에 싸인 이라크군 전력

    ◎연합군기 15대 잃어 제공권 장악 의문/미선 명중도등 출격성과엔 언급안해 이라크 군사시설에 대한 미국의 대대적인 공습이 시작된지 1주일이 지나자 그동안 공식 발표된 전과와 실제간에 차이가 많은 것으로 미 언론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군사 관계자들의 발표 내용과 상치되는 종군 기자들의 보도,전쟁 지지 여론을 고양시키려는 정부 대변인들의 욕구,적을 이롭게 할 사안은 공표하기가 어려운 사정 등이 이러한 의문을 낳게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군 관계자들은 이라크 공군기의 저항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며 연합군의 공중 통제 능력에 자신감을 표시해 왔다. 그럼에도 연합군 비행기는 계속 격추되고 있다. 22일 현재 연합군이 상실한 비행기는 9대의 미군기를 포함하여 모두 15대에 달한 것으로 발표됐다. 실제 상실 대수는 이보다 많으나 이라크가 모르게 조종사 구출작전을 벌이기 위해 추가 발표를 늦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들은 그동안 미국과 연합국 비행기들이 이라크군에 대해 수천회의 공습을 감행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내 목표물의 타격 여부와 공격시의 상황 등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군관계자들은 수천만 파운드의 폭발물로 공격한 이라크내 군사 목표물은 물론이고 민간시설의 피해 상황에 관해서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 폭격에 이용되고 있는 12가지의 각종 전투기 중에는 대형 폭탄을 적재한 고공 비행 B­52 중폭격기 수십대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펜타곤은 B­52 조종사와의 인터뷰를 허용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정확한 폭격으로 소문난 이 비행기의 작전 장면을 수록한 비디오 테이프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펜타곤은 이라크내 정유소 및 공장 등 경제 목표물을 얼마나 공격했는지에 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펜타곤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군 사령부에서 흘러 나온 정보로는 지상전 개시 전에 해야할 일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 이라크의 정예 공화국 수비대를 비롯한 지상군이 연합국 폭격으로 입은 전투력 피해,파괴된 스커드 미사일의 숫자,남은 이라크 항공기 숫자,사담 후세인과 쿠웨이트 주둔 이라크군간의 통신능력,공중폭격의 우선 순위 등에 관한 지난 수일간의 미군 발표내용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어서 그 실상이 계속 불확실한 채로 남아있다. 군 관계자들은 지난 21일까지 이라크 폭격 임무의 「성공률」이 80%에 달했다고 강조했으나 어떤 목표물이 파괴됐는지에 관해서는 언급을 거부했다. 「성공률」이란 조종사가 목표물을 얼마나 정확히 포착,폭격했는지를 말해 주는 것으로서 귀환 조종사의 판단과 보고를 토대로 작성된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목표물이 성공적으로 파괴됐느냐는 군사적 평가를 토대로 성공률이 작성된다면 그 수치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총 출격횟수같은 숫자도 작전 규모나 적에 대한 타격도를 실제보다 좀 과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일부 군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펜다곤이 발표한 지난 21일까지의 총 8천1백회 출격 가운데는 연료 재보급·수송·사우디아라비아 대공방위 등 전투 지원을 위한 수천회의 출격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미 합참 정보참모 존 맥코넬중장은 『내가 받은 보고서에 수록된사망자를 모두 집계할 경우 이라크 공군은 벌써 없어졌어야 한다』면서 『보고서 내용을 선별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말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군기들이 첫날 출격에서 이라크에 입힌 피해는 당초 기대했던 수준의 50% 정도였다. 그래서 폭격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펜단곤의 피터윌리엄스 대변인은 지난 21일 『제1단계 작전의 주요 목표인 고정식 및 이동식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 파괴와 이라크 제공권 확보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종전의 발표와 상치되는 것이다. 최근 부시 행정부의 군사 및 정보관계자들은 의원들을 상대로 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이라크 항공기 및 스커드 발사대 파괴 숫자와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가 받은 피해를 낮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부시 행정부가 의회에 제시한 전쟁 청사진은 국내 지지 확보와 연합국 결속을 위해 사담으로부터 조기 항복을 끌어 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딕 체니 국방장관은 연합군이 『며칠만에 사담 후세인의 군사력을 때려부술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초기의 공습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몇주일 또는 몇개월을 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이라크,“대 사우디 모든협정 폐기”/걸프전 22일 상황/D+5

    ◎영 의회 압도적 표차로 참전 지지 ▷상오3시30분◁ 이라크는 바트당이 집권한 지난68년 7월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맺은 모든 협정을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상오4시50분◁ 이라크는 지난밤 대사우디아라비아 공격용으로 사용된 모든 미사일발사대는 안전하다고 밝혔다. ▷상오5시40분◁ 미 국방부는 이라크가 스커드미사일 1기를 발사했으나 다란근처 해역에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상오7시◁ 이라크는 다국적군이 21일 바그다드를 3차례 공습했다고 주장했으며 미 국방부는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1기가 바레인 북서쪽의 걸프만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상오9시10분◁ 영국 의회 5백63대 34의 표차로 영국의 걸프전쟁 가담 지지. ▷12시00분◁ 이라크 상공에서 피격된 미 해군기의 한 조종사가 2대의 미 A­10기 도움으로 구출. ▷12시30분◁ 이라크가 스커드 미사일 2기를 리야드로 발사했으나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이를 요격했다고 미군측이 발표. ▷하오2시30분◁ 이라크가 앞서 7명의 다국적군 조종사 포로들을 TV로 방영한데 이어 조종사포로 2명의 모습을 더 방영했다고 바그다드 라디오 방송이 보도. ▷하오4시50분◁ 이라크가 스커드 미사일 6기를 사우디를 향해 발사했다고 한 미군 대변인이 발표. ▷하오5시20분◁ 이라크가 점령지 쿠웨이트내의 일부 유전 시설들을 파괴하고 있다는 증거가 포착됐다고 한 미군 소식통이 밝혔다.
  • 걸프전 데뷔 새 미사일·항공기 각광

    ◎“100% 명중” 첨단무기… 미 방산업체 “호황”/예상넘는 전과에 주문·상담 쇄도/미 의회의 「개발제동」도 약화 전망/거의 컴퓨터 활용,기존 고가장비 밀려날지도 이번 걸프전쟁에서 비교적 생소한 미국의 일부 신무기들이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자 이들 신무기를 개발한 방위산업체들은 득의만면한 표정이며 미 의회도 방위산업체들의 신무기 개발계획에 과거와 같은 제동을 걸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라고 윌스트리트 저널지가 21일 보도했다. 저널지에 따르면 지난 16일 시작된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 초기단계에서 그 성능이 의문시된채 괜히 엄청난 경비만 들이는게 아니냐는 눈총마저 받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F­117A 스텔스전폭기,페이브웨이Ⅲ 레이저유도탄 등이 예상밖의 전과를 올렸고 역시 성능을 알 수 없었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공격을 제어하자 이들 낯설었던 신형무기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고 이들 무기를 제조한 각 방위업체들은 주문이 쇄도하여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는 것. 특히 이번 전쟁에서 첫선을 보여 탁월한 효과를 입증하고 있는 미사일 요격용 패트리어트 미사일 생산업체인 레이데온사는 21일 미 정부로부터 패트리어트 미사일 생산을 가속화할 것을 요청 받았다고 밝혔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시속 3천2백㎞,사정거리 80㎞로 레이저빔의 유도를 받아 상대방의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추적,요격하는 미사일로 걸프전쟁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돼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고 있다. 레이데온사는 정부의 요청에 부응,생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하루 3부제의 작업체제에 들어가는 한편 3백기에 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주문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맥도널 더글러스항공사,F­117A 스텔스전폭기는 록히드항공사,페이브웨이Ⅲ 레이저 유도탄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패트리어트 미사일방위시스템은 레이데온사가 주요 계약사로 돼있는데 패트리어트 방위시스템이 이라크에서 발사한 스커드 미사일들을 차단,공중에서 폭발시켜버리자 영국,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각국에서 주문상담이 쇄도하여 비교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레이데온사는 일약 세계적인 무기생산업체로의 발판을 굳혀가고 있다고 저널지가 보도했다. 저널지는 이번 걸프전쟁 초기단계에서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좋은 성능을 발휘한 이들 무기 대부분이 의회에서 성능이 의심스러우며 지나치게 많은 경비가 든다는 비판을 받아 일부는 생산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었고 패트리어트 미사일방위시스템 같은 것은 아직도 의회가 그 성능을 반신반의,문제를 삼고 있는 무기체제인데 이번 걸프전쟁에서의 위력발휘로 미국 무기체제 전반에 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는 게 국방관계자들의 진단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샘 넌 상원군사위원장(민주·조지아주)은 『미 방위산업체들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우수한 무기를 개발하는 덕분에 많은 무고한 생명을 구출해 냈다』고 찬양하여 앞으로 방위산업체들의 첨단기술에 의한 신무기 개발계획을 장려할 방침임을 시사했고 역시 하원에서 영향력을갖고 있는 리 해밀턴 의원(민주·인디애나주)도 의회가 방위산업체들의 첨단기술을 이용한 무기제조 계획에 앞으론 좀더 『협조적인 입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저널지는 전했다. 저널지는 또 국방관계자들은 정부나 방위산업체들 모두 앞으론 어떻게 하면 적은 경비를 들이고 최대의 성능을 발휘할 무기를 만드느냐에 전력을 투구할 것이고 지나치게 경비가 많이 드는 무기는 정비할지도 모르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단위당 1백60만달러가 소요되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B­52 전폭기로 만족한 전과를 올리는데 단위당 8억5천만달러나 소요되는 B­2 전폭기가 왜 필요하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번 전쟁이 끝나면 미군의 무기 재편성문제도 활발히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저널지는 이날 사설을 실어 걸프전쟁에서 유효적절한 성능을 발휘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패트리어트 미사일방어시스템이 한때 군비축소라는 미명아래 의회에 의해 개발중지될뻔 했고 탄도탄 요격미사일(ABM),전략방위구성(SDI)이 무산됐던사실을 지적,군비축소라는게 때로는 무고한 인명을 살상케 하는데 오히려 도움을 줄수 있다는 사실을 부시 행정부는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 치열한 공방… 걸프전 이모저모

    ◎이라크,지상전용 신예무기 대량 은닉/첨단장비 최대의 적은 사막 악천후/추락 미 조종사 8시간만에 극적 구출 ○“신념과 기술의 전쟁” ○…이라크는 22일 자국의 게릴라들이 다국적 연합군에 대한 자살공격을 감행,걸프전쟁의 양상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지난 21일 저녁 이후 다국적군의 비행기와 미사일 18기를 파괴,지금까지 1백60대 이상의 비행기를 격추했다고 주장. 이라크 국영 바그다드 라디오 방송은 또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공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채 다국적군이 지난 21일 저녁부터 22일 새벽까지 바그다드와 다른 도시들의 민간인 지역에 대해 20회 이상의 공습을 감행했다고 비난하면서 공습 이후 많은 다국적 공군 조종사들을 체포했으며 다른 조종사들의 시체 2구도 발견했다고 말했다. 키프로스에서 청취된 이 방송은 이번 전쟁은 신념과 기술 사이의 전쟁이라고 규정짓고 『컴퓨터와 전자장비가 그들의 무기인 반면 아랍과 이슬람 국가들의 역사적인 운동이 우리의 무기』라고 지적하면서 『양측의 투쟁이 점차 고조되고 있으나 승리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걸프전쟁 개전 6일째를 맞은 22일 소련·중국·파키스탄 등이 이번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외교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련 정부의 한 대변인은 이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걸프전쟁의 종식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외무장관·국방장관·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 등을 포함한 걸프 위기대책반이 이날 하오 고르바초프대통령 주재하에 회동,이번 전쟁의 종식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봉 중국총리는 중국과 소련이 걸프전쟁의 종식을 위해 협력할 것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고 북경의 한 외교소식통이 이날 밝혔다. ○사막서 합동훈련중 ○…사우디의 미군은 앞으로 있을 이라크와의 지상전에 대비,많은 수의 탱크 공격용 아라치헬기와 M1A1 탱크를 동원,사막지역에서 합동공격 훈련을 벌이고 있다고. 21일 시속 1백60㎞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블랙호클헬기를 타고 둘러본 사우디 사막에서는 M1A1 탱크들이 수개열로 배치돼 있는 가운데 아파치헬기들이 가상의 이라크 목표물에 대해 강력한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 목격됐다. 아직 이라크군과의 지상전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미군은 수일마다 새로운 주력부대들을 북쪽의 새 전진기지로 이동시키는 등 계속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미군 전투부대에서는 전투를 고대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악천후에도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미 레이더기가 걸프지역에 막 배치됐다고 보스톤 헤럴드지가 21일 보도. 이 신문은 짙게 깔린 구름으로 일시적인 방해를 받아 온 「사막의 폭풍」 작전이 미 공군이 E­8로 명명한 신형 J­STATS(합동 공격목표감시 레이더시스템)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짙은 구름이 장애물 ○…첨단장비가 모두 동원된 걸프전쟁에서 미군 조종사들을 괴롭히는 최대의 적은 이라크의 소련 제 미그기나 미사일이 아니라 가장 원시적인 무기인 악천후이다. 현재 이라크의 군사목표를 족집게처럼 찾아내고 날아오는 스커드미사일을 정확히 요격하는 미군이지만 짙게 드리운 구름 때문에 때때로 목표를 상실한채 공격을 단념하고 귀환하는 조종사들이 적지 않으며 특히 공격의 성과를 확인하는 정밀 사진촬영 작업이 큰 지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군 항공기들이 대부분 전천후 작전이 가능한 신예기들 임에는 틀림없으나 동시에 목표를 정확히 조준할 레이저 빔은 구름층을 뚫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미 해병대 무장헵리콥터 조종사들은 이라크가 지상전에 대비해 최신의 대공무기들을 사용하지 않고 따로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해병대의 코브라 무장헬기의 한 조종사는 20일 『이라크군들이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지적하고 『그들은 단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 오는지를 보기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조종사는 이라크군의 대공포화가 상공을 가득메웠던 공습 첫날 이후 이라크의 반응은 한결 누그러졌다고 말했으나 『지상전투가 시작되면 이라크군은 모든 것을 지하 벙커에서 끄집어 낼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라크의 최신예 무기들이 곧 활동을 개시할 것임을 암시했다. ○동료 1명 생사불명 ○…미 공군은 이라크군의 대공포화에 맞아 이라크 사막지대에 추락한 미 해군소속 조종사 1명을 이라크군에게 잡히기 직전 극적으로 구출했다고 21일(현지시간) 미 군사소식통들이 밝혔다. 그러나 이 소식통은 추락한 A­6 폭격기에 동승했던 부조종사 1명의 생사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소속통에 따르면 동료 구출을 위해 이라크영내 깊숙이 들어갔던 미 공군소속의 A­10 전투기 2대는 공중에서 4차례의 재급유를 받아가며 수색 8시간만에 이라크 사막에서 포로 일보직전의 해군 조종사를 발견,뒤따라오던 미 공군 헬리콥터에 연락을 취해 이 조종사를 구출했다는 것. 미 공군 354 전술비행단 소속의 A­10 지상지원폭격기 조종사인 랜디 고프대위와 폴 존슨대위를 자신들이 동료를 발견한 순간 이라크 트럭이 피격 조종사들을 사로잡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고 전언. ○소 군사고문단 잔류 ○…작년 가을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던 소련의 군사 고문이 아직도다수 이라크에 남아있으며 이들이 스커드 미사일에 의한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공격과 첩보면에서 협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 산케이(산경)신문이 22일 도쿄의 국제 군사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군사 소식통에 의하면 작년 10월말 이라크에 있는 소련 전문가는 1백50여명으로 소련 당국은 이들을 희망에 따라 모두 귀국 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모스크바 방송 등을 통해 전해졌으나 후에 기술자들이 귀국했다는 징후는 전혀 없으며 지난 9일 겨우 82명만이 귀국한 것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라크 체류자는 80명에도 훨씬 못미치는 것이 정상인데도 아직까지도 최소한 2백90명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외교관 추방” ○…세계각국은 21일 걸프전쟁에 따른 이라크의 테러 위험에 대비,이라크 외교관을 추방하거나 테러활동에 가담할 우려가 있는 인물의 체포에 나서기 시작했다. 필리핀 정부는 21일 무와파크 알 아니 마닐라 주재 이라크 총영사가 마닐라에 있는 한 미국도서관 건물에서 발생한 폭탄공격 미수사건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72시간 이내에필리핀을 떠나도록 명령했으며 프랑스도 파리주재 이라크 대사관 직원 12명과 가족들에 대해 추방령을 내렸다. 또 로마의 외교소식통들은 이탈리아 정부가 22일 이라크 외교관 수명에 대해 추방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전했으며 그리스 방송은 그리스 정부가 안보상의 이유로 이라크와 리비아,팔레스타인 등 아랍권 인물 17명을 추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스트리아도 21일 대이라크 단체 소속의 이란인 11명을 테러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 한국의 페만파병 “가부 공방전”/미 하원 동아태청문회 요지

    ◎“다국적군 참여 한반도 유사시 도움” 솔라즈/“북한의 위협 직면… 작전참여 부적절” 솔로몬/행정부선 “한국ㆍ일본 등 군비분담 당연” 주장도 미 하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위원장 스티븐 솔라즈의원ㆍ민주)는 19일 리처드 솔로몬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 등 행정부관계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페르시아만 위기에 대한 아시아의 반응」에 관한 청문회를 열었다. 이날 솔라즈위원장과 도널드 루켄스 의원은 한국의 페르시아만 파병을 강력히 촉구했으나 솔로몬차관보는 『한국은 아직도 북한의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파병이 최선의 지원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솔로몬차관보는 또 한국과 일본에 더 많은 지원능력이 있다고 말해 페르시아만사태 경비분담 압력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다음은 이날 청문회의 한국관련 언급 내용(요지)이다. ▷솔로몬차관보 증언◁ 동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베트남과 북한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제재를 따르고 있다. 유엔 회원국이 아닌 한국조차 그렇게 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안보와 한국의 이해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페르시아만사태 발발 후 미국과 아랍 다국적군에게 최초로 수송 서비스를 제의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페르시아만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재정원조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7일 서울을 방문했던 니콜라이 브래디 재무장관은 노태우대통령과의 회담을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정부는 지금 책임분담 방안을 마련중이다. 우리는 한국의 대응이 사태 진행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동아태지역은 수입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오일 쇼크에 취약하다고 에너지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원유 소비량의 1백%를 수입하고 있는 NIES(신흥공업국),즉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은 향후 2년에 걸쳐 경제성장 둔화,물가앙등,대외수지 약화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에선 이미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다. 배럴당 30달러의 유가는 한국의 물가 상승률을 두자리 숫자로 밀어올릴지 모른다. NIESㆍ일본ㆍ태국은 유가상승문제를 1ㆍ2년 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만사태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는 국가에 제공할 원조를 더 끌어낼 수 있다. ▲스티븐 솔라즈 의원 질문=브래디장관이 서울에서 4억5천만달러를 요청했고 한국정부는 1억5천만달러를 내기로 결정했다는 신문보도는 사실인가. ▲솔로몬 답변=아직 협의가 진행중이다. 어림잡은 수치일 뿐 정확한 것은 아니다. ▲솔라즈=한국의 지원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가. ▲솔로몬=협의중이다. ▲솔라즈=이라크와 쿠웨이트에는 한국인이 얼마나 있었는가. ▲솔로몬=1천3백명이 있다가 대부분이 귀국해 4백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솔라즈=한국은 40년전 북한의 침략을 받았을 때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노력으로 구출됐다. 한국에 대해 상징적이나마 페르시아만 파병을 요구한 적이 있는가. 또 한국 스스로 파병을 고려하지는 않고 있는가. ▲솔로몬=한국인들은 그런 역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북한의 위협에 직면해 있어 경계태세를 늦출 형편이 못된다. ▲솔라즈=당시 터키는 자국이 안보 위협을 받고 있었음에도 한국에 파병했다. 한국이 여단ㆍ대대 혹은 소수의 병력을 파견하더라도 북한 침략 저지력에 큰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이 침략저지의 집단책임을 나눠 갖는 것은 결국 한국 자신의 안보에 기여할 것이다. 한국은 재침당했을 때 제일 먼저 외부의 도움을 요청할 국가이다. 오늘의 세계에서 침략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개념을 강조하는 한국의 페르시아만 파병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 정치적으로 아주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한국은 1억5천만달러를 내는 것 보다 파병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솔로몬=한국은 지원문제에서 절대 미온적이 아니다. 다만 고려해야 할 복잡한 일들이 많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12%를 감축했고 노 대통령은 강력한 군사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북한과 미묘한 대화를 시작했다. 한국이 기여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은 온당치 않다고 믿는다. ▲솔라즈=60년대에 한국은 월남에 파병했었다. 지금 사우디에 왜 파병 못하느냐. ▲솔로몬=북한의 위협이 그때보다 더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 ▲도널드 루켄스 의원 질문=솔라즈위원장의 한국군 파견 주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현재 소련은 북한의 대남 위협을 전혀 지원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위협은 오히려 감소됐다고 본다. 지금은 한국 정부와 국민이 40년 전 한국의 자유를 수호해준 외국들에 대해 감사를 표시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인들이 흘린 피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가까운 친구들이 미국이 그들을 필요로 할때 그곳에 없다면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솔로몬=한국이 지금 이상으로 더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검토해 보겠다. 행정부는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이 파병하는 것을 최선의 협력이라고 보지 않는다.
  • 강의중 건물무너져 35명 떼죽음/비 지진참사 현장 이모저모

    ◎주비미군,의약품 공수… 긴급 구조 ○…마닐라와 필리핀 북부를 강타한 지진의 진앙인 카바나투안시의 필리핀 크리스천대학건물 붕괴현장에는 녹색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파편더미에 깔린채 신음하고 있었으며 곳곳에 구두와 볼펜ㆍ노트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비참한 모습. 느닷없는 지진으로 이 대학6층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통에 오후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교사들과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미처 대피하지 못해 파편더미에 묻혀 버렸으며 캠퍼스 건물은 흡사 눌러진 샌드위치처럼 찌그러든 모습. ○…이곳에는 당시 대학생들과 부속중ㆍ고교의 교사ㆍ학생들은 포함,모두 5백명가량이 있다가 일부만이 용케 대피했으며 파편 더미에 깔린 학생들중에서는 17일 상오 현재 1백여명이 구조되고 35명만이 사망자로 확인돼 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 ○…이날 마침 14번째의 생일을 맞이한 세난도 멤핑군은 3명의 친한 친구들을 레스토랑 식사에 초대했었는데 같은반 학생 54명이 모두 파편더미에 깔려 결국은 그 혼자만이 유일한 생존자로 남는 비극을 겪게 됐다. ○시민들,거리서 방황 ○…한편 미국방부는 공군수색 및 구조대를 지진 현장에 급파했다고 발표했으며 클라크 미공군기지의 한 대변인은 의약품을 실은 미군 헬리콥터 4대가 바기오로 출동했다고 밝혔다. OCD관계자들은 마닐라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던 7명의 환자들이 정전으로 산소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절명했으며 다른 환자들은 주사병을 매단채 거리로 뛰쳐 나갔다고 밝혔다. 또 건물과 다리가 무너지고 교회와 도로가 갈라졌으며 마닐라 시내의 사무실과 아파트 등이 파손되고 곳곳에 화재가 발생,공포에 질린 수천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서 깔리거나 부서진 건물의 파편에 다친 사람들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경찰과 병원관계자들은 말했다. ○쿠데타보다 무섭다 ○…지진발생 순간 대통령궁에서 상원의원들과 회의중이던 아키노대통령은 건물이 흔들리자 재빨리 탁자 밑으로 들어가 30초가량 대피. 그후 기자회견장에 나온 아키노는 『지난해 12월의 군부 쿠데타때 내가 책상 밑으로 숨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탁자밑으로 들어갔다』고 시인,천재지변이 쿠데타보다 더 무서운 것임을 입증. ○세계곳곳 잇단 지진/남미ㆍ대만서도 발생 ○…필리핀에 강진이 발생한 같은 날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일본 등 지구촌 4곳에서 지진이 발생한데 이어 17일 새벽에는 대만에도 지진이 일어났다. 칠레 중부지방을 강타한 지진으로 전화가 끊기고 수천명의 산티아고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등 혼란이 일어났으나 인명 및 재산피해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지진이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직후 이웃인 페루에서도 2번의 지진이 발생. 리히터 지진계로 각각 4.5와 4.4를 기록한 페루의 지진은 리마 북쪽 4백㎞에 위치한 침보테와 3백30㎞남쪽 나스카에서 가장 강력하게 느껴졌다. ○손으로 딸 구조나서 ○구조작업이 펼쳐지면서 진앙지인 카바나투안에선 생과 사를 가르는 희비가 속출. 지진으로 무너진 한 카톨릭계 학교에서 구조작업으로 5명의 여학생이 구출되자 구조대원들은 일제히 환호성. 여학생들은 18시간동안 매몰됐던 탓에 눈이 부신듯 얼굴을 찡그렸으나 곧 미소를 짓는 등 생환의 기쁨을 만끽. 반면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딸의 목소리를 들은 한 아버지가 정과 손만으로 구조작업에 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올해 17세인 딸 마일렌이 건물더미 속에서 『꺼내줘요 아빠. 더 이상 참기 어려워요』라며 부르짖는 소리를 16일밤 처음 들은 그녀의 아버지 크레센시오 자보르씨는 정과 맨손으로 딸의 구조작업을 펴기 시작. ○우리교민 피해 전무 ○…외무부는 17일 상오 마닐라지진사태와 관련,『현지공관이 외무부에 보고해온 바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현지공관이나 공관원 및 가족들이 피해를 본 것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 전쟁의 발발과 전개(새 실록 6ㆍ25 김학준:중)

    ◎“북한 남침은 소의 적화음모”… 미,1주만에 파병/중국,유엔군 38선 넘자 16개사단 급파/소선 항공ㆍ기갑사단 만주에 전진배치/7월에 대전서 새 한ㆍ미협정… 군지휘권 유엔군에 넘겨(서울신문 6.25 40주 특집) 한국전쟁은 전쟁의 국면의 전개양상에 따라 5개의 기간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제1기는 50년 6월25일부터 50년 9월 중순까지의 시기로,남침을 개시한 북한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대구와 부산 일대를 제외한 남한 전역을 석권했던 시기이다. 제2기는 50년 9월 중순부터 50년 10월 하순까지의 시기로,국제연합군의 인천 상륙작전의 극적인 성공을 계기로 국련군이 반격을 계속해 한ㆍ만 국경으로까지 접근함으로써 북한정권이 붕괴 직전까지 이르렀던 시기이다. 제3기는 50년 10월 하순으로부터 51년 4월 초순까지로,중공군이 개입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국련군이 다시 후퇴하던 시기이다. 제4기는 51년 4월 초순부터 51년 6월 중순까지로,국련군이 「대량보복」을 통해 전투의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여 군사적 균형을 이룬시기이다. 제5기는 51년 6월 중순부터 53년 7월27일까지의 시기로,전쟁과 함께 휴전회담이 진행된 화전양상의 시기이다. 이번의 제2회에서는 제1기부터 제3기까지를 다룬다. ○3일만에 서울점령 ▷제1기◁ 50년 1∼2월 이후 38도선 주변에서 소규모의 군사력 충돌을 계속 일으켜오던 북한은 6월25일 새벽 드디어 전면남침을 개시했다. 북한의 공격은 빨라 6월27일 서울의 외곽인 창동과 미아리에 방어선을 설정한 한국군을 붕괴시켰다. 이에 따라 이 날짜로 육군본부는 수원으로 후퇴했고 정부는 대전으로 천도했다. 6월28일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했다. 그런데 북한군은 서울 점령 3일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데,이 3일은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남한을 살려 준 귀중한 시간이었다. 북한군이 남침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한 여세로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남한으로서는 최악의 상태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북한군의 기습에 대한 놀라움 속에서도 트루먼 미국대통령은 즉각적인 응전을 결심했다. 북한의 남침을 소련의 세계적화 시도의 일환으로 보았으며,직접적으로는 미일 군사안보체제에의 대항조치로 인식하여 한반도가 공산화하는 경우 그것이 일본의 국내정치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곧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해 긴급회의의 소집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6월25일 일요일 하오 3시에 열린 안보리에서 미국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 「무력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하고 그 「무력공격」은 「평화파괴행위」라고 비난한 다음 북한군이 즉각적으로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군사력을 38도선 이북으로 철퇴시킬 것을 요청했다. 미국의 제안은 9대0으로 가결됐다. 때마침 소련 대표는 장기결석중이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안보리의 결의는 북한의 군사행동을 정지시킴에 있어 아무런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하여 6월27일 안보리는 『군사공격을 격퇴하고 그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제공할 것』을 결의했다. 이와 더불어 트루먼은 도쿄의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해ㆍ공군의 지원을 개시하라고 명령하고,미 제7함대로 하여금 중공군이 대만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동시에 대만의 장개석정부가 중국 본토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조처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6월30일 트루먼은 맥아더 총사령관에게 ①해ㆍ공군뿐만 아니라 지상군을 투입할 권한과 ②군사상 필요한 경우에는 38도선 이북의 군사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튿날 주일 미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가 부산에 상륙함으로써 미 지상군의 개입이 시작됐다. 바로 이날 안보리는 국제연합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국제연합 회원국들의 무력원조를 미국의 단일지휘 아래 둔다는 내용의 공동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노르웨이 출신의 국제연합 사무총장 트리그브리는 국제연합기를 미국에 전달했으며 트루먼은 즉시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를 국련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미국의 단호하고 신속한 결정은 대한민국을 크게 고무시켰다. 비록 남침에 쫓겨 피난길에 들어선 형편이지만 국련군의 반격으로 오히려 통일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6월29일 맥아더가한강전선을 시찰하고 곧바로 수원에 내려왔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협력을 약속했다. 실제로 7월14일 대전에서 맺은 협정을 통해 이대통령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에게 위임했다. 이어 7월19일 이대통령은 『국련군의 작전목표가 전전원상의 회복,즉 38도선에서의 진격정지에 그쳐서는 안되며 북진통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트루먼에게 전달했다. 한미간의 이러한 협력속에서도 전세는 계속 불리해 후퇴에 후퇴를 거듭 했다. 그리하여 맥아더는 한때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손을 떼고 한국정부를 괌이나 하와이로 후퇴시킨다는 계획마저 세웠다. 이대통령은 분노속에 강경하게 거절했다. 마침 9월5일부터 13일까지 경주와 영천일대의 사활을 건 전투에서 국련군은 북한군 제15사단을 궤멸시켰다. 국련군의 반격이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이 비로소 형성된 것이다. ○소대사가 대화 제의 ▷제2기◁ 국련군 반격의 결정적 계기는 확실히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었다. 9월12일 극비리에 부산을 출발한 2백61척의 대수송선단은 9월15일 인천항에서의 작전개시와 동시에 곧바로 인천시 남부에 상륙했다. 북한군은 2개 사단병력으로 서울방위사령부를 편성했으나 한국군의 해병대가 9월27일에,이어 국련군이 9월28일에 서울을 완전히 수복했다. 이에 따라 9월29일 이대통령은 맥아더와 함께 공로로 서울에 도착하여 서울을 대한민국정부의 관할아래 넘기는 수도 탈환식에 참석했다. 국련군의 성공적인 반격이 확고해지면서 서방진영 및 중립국가들의 일각에서는 전전원상의 회복이라는 조건아래 즉 북한군을 38도선 이북으로 철퇴시키는 조건아래 국제연합군의 진격을 멈추게 하고 이 테두리 안에서 한국전쟁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제기됐다. 8월1일 안보리의 의장이 되는 것을 계기로 삼아 안보리에 복귀한 소련대사 말리크도 남북한 대표를 국제연합에 동시 초청하여 한반도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의했다. ○북한에 “항복”요구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확고하여 북한정권의 완전한 붕괴,즉 대한민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만이 국련군의 목표임을 선언했다. 대한민국 정부도 『38도선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선언하면서 국련군의 북진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강조했다. 이때 서방 7개국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공동결의안을 제출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무력을 써서라도 국련군의 주도 아래 한반도를 통일시킨다는 태도를 밝혔다. 그러나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해도 좋다는 최종적인 결정은 내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10월1일 우선 한국군은 드디어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했다. 이튿날 맥아더는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어서도 좋다는 미국정부의 최종결정을 한국정부에 알리면서 북한정권의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국련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진격해도 좋다는 서방의 공동결의안이 아직 국련을 통과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국련군의 38도선 북상을 막으려는 공산진영 외교적 노력이 시도됐다. ○주은래 “방관 않겠다” 우선 중국 총리겸 외무장관 주은래는 10월2일 깊은 밤에 주중 인도대사 파니카르를 외무부로 불러 『만일 국련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는 경우 중국은 조선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그러나 한국군만이 38도선을 넘는 경우 중국은 그러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니카르대사는 주의 발언을 본국정부에 즉시 알렸으며,인도정부는 그대로 미국정부에 알렸다. 트루먼은 주의 발언이 국련군 북상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련을 협박하려는 「대담한 시도」로 판단하여 그것을 무시했다. 이에 따라 국련은 10월7일 국련군의 38도선 북상을 허용하는 서방쪽의 공동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여기에 근거해 국련군은 7∼8일 드디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기 시작했다. 이제 중국이 주사위를 던질 차례가 되었다. 10월10일 주은래는 『조선전쟁은 처음부터 중국의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다』고 규정하고 이 전쟁에서 『중국인민은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주의 이 선언은 중국의 모든 유력지들에 보도되었는데 그것은 중국의 참전에 대비하여 중국인민들을 동원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되었다. 이처럼 중국의 참전 가능성이 커지자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트루먼은 10월5일 태평양의 웨이크도로 맥아더를 불렀다. 회담에서 맥아더는 중국의 참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 이 무렵 국련군의 북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북한군이 곳곳에서 무너지자 김일성은 10월12일 스탈린에게 소련의 지원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 그러나 소련은 미국과의 직접적 대결을 피하려는 자세만 보일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김일성은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던 10월16일 새벽 2시 소련제 고급승용차 볼가를 타고 평양을 빠져 나가 10월26일 만주와의 접경지대인 평양북도 강계군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이날 이대통령은 원산시에 그 모습을 나타내 열광적인 원산시민들을 격려했다. 이어 10월30일 평양을 방문하고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공산당을 몰아내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고 호소했다. ○스탈린,중국에 찬사 ▷제3기◁ 이 무렵 중국의 군사적 개입이 극비리에 시작되고 있었다. 국련군의 38도선 북상을 허용한 서방결의안이 10월7일 국련총회를 통과하자 모택동 중국공산당 주석은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팽덕회을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마침 북한으로부터 파병을 요청하는 밀사들이 와 있었으며 그리하여 팽은 10월13일 북한으로 들어가 김일성을 만난 뒤 전투에 참가하여 전황을 살핀다음 그 결과를 모에게 보고했다. 그때로부터 엿새뒤 중국군은 마침내 은밀하게 압록강을 건넜다. 중국이 참전을 최종 결정하던 어느 시점에 스탈린은 『김일성동지는 장래 중국 국경 안에 망명정부를 세울 것』이라고 모에게 알리면서 이처럼 위급한 상태에 빠진 북한정권을 구출하려던 중국이 적어도 6개 사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중국은 일단 행동을 개시한 뒤 16개 사단을 출동시켰다. 중국쪽 설명에 따르면 중국의 이러한 결정을 보고 『처음에는 우리들을 민족주의자가 아닌가 의심했던 스탈린은 눈물을 흘리며 우리들이 가장 좋은 동지임을 인정했다』 중국군의 개입을 전혀 모르는 채 한국군은 10월25일 마침내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했고 미 제24사단은 북한의 임시수도 신의주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은눈앞에 닥쳐온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날에 있었던 한국군과 중국군의 첫 교전은 상황을 완전히 바꾸었다. 맥아더는 11월5일 중국군의 참전을 국련에 보고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중국군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한국전쟁은 국련군 총사령관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 국련과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정치수뇌급에서 해결책이 제시돼야 할 전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중국 외무부도 11월11일 중국군의 참전을 공개적으로 처음 시인했다. 이와 더불어 중국군은 대대적인 공격을 취하면서 계속 남쪽으로 쳐내려 왔다. 이때로부터 약 2개월 동안 미군은 미군의 역사상 가장 장기의 후퇴를 경험하게 되었다. ○영서 종전모색 제의 그 결과 중국군은 12월26일 38도선을 넘고 12월말까지 38도선 이북의 북한 전역을 점령하고 51년 1월4일에는 서울을 점령했다. 이에 따라 국련군은 평양철수(12월4일 완료)와 흥남철수(12월24일 완료) 및 서울철수(1ㆍ4후퇴)를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만주에 소련의 1개 항공사단이 배치되어 북한군과 중국군의 배후를 지원했고,전투상황의 악화에 대비하여 5개 기갑사단을 북한에 파견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군이 개입하면서 서방세계의 일각에서는 휴전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미 중국을 승인한 영국은 국련 대표권을 대만에 줄 것이 아니라 중국에 준뒤 중국과 종전을 모색하자고 제의했으며,애틀리 총리는 12월4일 워싱턴에서 트루먼과 회담한 뒤 『두나라는 협상을 통해 종전을 추구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여기에 발맞춰 아시아ㆍ아랍권 13개국도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국련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미국 안의 반공분위기는 매우 높아 하원과 상원은 각각 51년 1월19일과 1월23일 국련이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련의 휴전 분위기에 실망하던 한국 정부는 다시한번 무력통일에 대한 기대를 걸게 됐다. 북한은 북한대로 다시 한번 적화통일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출된 김일성은 12월4일 강계군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회의를 열고 「미제의 완전한 축출」을 다짐했다. 이와 동시에 무정을 비롯한 주요한 도전자들을 숙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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