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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市, 5년간 200억씩 분할상환

    市, 5년간 200억씩 분할상환

    반세기 만에 완전히 강원 춘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옛 미군부대 터 캠프페이지의 소유권 문제가 이달 중 마무리된다. 춘천시는 6일 이달 중 국방부와 캠프페이지 297필지 43만 5000여㎡의 5년 균등 분할 상환에 대한 계약이 체결된다고 밝혔다. 캠프페이지 전체 부지는 67만 3000여㎡ 규모이지만 그동안 시가 대금을 주고 매입한 면적과 도유지·시유지 등을 제외한 면적이다. 이에 앞서 매매가 산정을 위해 토지감정평가 등을 거쳐 해당 토지 가격을 1000억여원으로 산정했다. 이 같은 대금을 계약이 체결되는 이달을 비롯해 2016년까지 5년 동안 한 해 200억여원씩 납부하기로 했다. 토지는 해마다 납부 금액만큼의 토지 소유권을 넘겨받아 등기할 수 있도록 했지만, 국방부의 동의를 얻어 계약 체결 시점부터 전체 부지에 대한 사용권을 시가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시는 조만간 계약 체결이 이뤄지면 캠프페이지 격납고를 활용한 배드민턴과 탁구, 스포츠클라이밍 ‘시설 등을 담을 체육관(조감도) 공사도 곧 시작한다. 캠프페이지 전체 부지의 활용에 대한 논의는 올해도 계속된다. 이광준 시장은 “이달 중 계약이 체결되면 주한미군기지 등으로 활용됐던 도심 속 토지가 반세기 만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대선주자 인터뷰] (4) 새누리당 정몽준·김영명 부부

    [대선주자 인터뷰] (4) 새누리당 정몽준·김영명 부부

    ‘다 가진 분들이 왜 대통령까지 하려 하시나.’ 일부러 부인에게 물은 것인데, “많은 분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반응에 우선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정몽준 의원의 부인 김영명씨는 요즘 남편의 언행을 탐문하는 일에 열심이라고 한다. 기자들에게 남편이 고쳐야 할 점 등을 캐묻는 식이다. 본격적인 ‘정치 내조’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늘 그렇듯, 정몽준 의원과의 인터뷰는 진행이 쉽지 않았다. 학문적이고, 근원적인 답변을 할 때가 많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이뤄졌다. →(부인에게) 예전과는 달리 요즘 부쩍 정치에 신경을 쓴다던데. -(김영명) 관심 있는 게 참 많은데 정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이 대선에 출마했으니 열심히 해야지. 그러니까 여성지 표지모델까지 나오지 않았겠나(웃음). →2002년에는 안 그랬나. -(정몽준) 그때는 월드컵을 이용한 출마는 하지 않겠다고 여러번 얘기했었다. 그런데 월드컵이 끝나고 9월 하순쯤 여론조사에서 1등이 나왔다. 현역 4선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이 출마하라고 하는데 내가 준비가 안 됐다고 해서 안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출마했다. 나도 준비가 없었지만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됐다. →이번에는 준비가 됐나. -(김) 항상 이런 일은 준비를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때보다는 좀 많이 생각했으니까. →말리지 않았나. -(김) 말릴 수도 없었고, 말릴 수 있는 단계도 지났다(웃음). 말릴 수 있었으면 초선 때부터 말렸어야지, 정치 입문 안 하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나. -(정) 지난 총선 때 공천에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지면서 한때 불출마도 생각했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그건 정공법이 아니라고 말려서 자제했었다. 요즘에는 메모지를 10장씩 써서 준다(웃음). →남편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 다방면에 축적된 경험이 많다. 7선 의원으로 24년 동안 정치를 했다. 큰 기업을 경영했고, 축구로 국제 무대도 누볐다. 무엇보다 정직하다.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 이런 장점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다 가진 사람들이 왜 대통령까지 하려 하나. -(김) 많은 분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그건 정몽준이라는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동작을 지역구에 처음 왔을 때에는 부자 국회의원이 왔다고만 생각했다. 만나고 대화하면서 주민들이 정몽준을 새로 알게 됐다. 대단히 서민적이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근면을 배웠고, 어머니로부터 검소함을 배웠다. 그게 몸에 밴 사람이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매스컴에서 접한 정몽준과는 달랐다. 지역구에서 지어준 별명이 ‘정을 몽땅 준 남자’다(웃음). →차기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뭔가. -(정) ‘통합 능력’이라 생각한다. 국민이 지역적으로, 세대별로 갈라져 있는데 정치가 갈라진 국민을 더 갈라놓는 것 같다. 정치가 순기능을 하지 못하고 완전히 역기능을 한다. 경제 발전도 통일 준비에도 국민 화합 없으면 의미가 없다. 집안 가족들이 매일 싸우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 국민소득 4만 달러 넘는 나라에서도 경제나 복지가 선거 때마다 이슈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과제라 생각한다. →통합에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정) 희생이다. 권력, 부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일하지 말고 사회통합을 위해 일하면 된다. →먼저 세(勢)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정) 2002년에 여론조사 1등할 때에 세력이 있었던 건 아니고 지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그렇지 않나. 물론 세 없이 그런 현상이 지속되진 않는다. 다만 계파가 없기 때문에 정치적인 빚이 없다. 지역주민들에게만 책임감과 빚이 있을 뿐이다. 이번에 측근이 다 낙선했다고도 하는데, 측근은 없어도 동지는 많이 있다. →어느 대선 예비주자의 부인이 남편의 ‘대통령병’을 걱정했다. 어떤가. -(김) 남편은 대통령병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목적에 모든 것들이 종속됐다는 얘기인데, 그렇지 않다. -(정)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할까 생각해 본다. 하기 싫다는 사람이 하면 제일 잘할 수도 있을 거다. 사실 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나라에 부담 주고 해를 끼칠 가능성도 많다. →이른바 권력의지가 약한 것 아닌가. 승부사적 기질도 있어야 하지 않나. -(정) 권력의지와 승부사 기질이 역대 정치인들을 단련시켰을 텐데 그게 우리 정치현실에서 무슨 기능을 했는지 의문이다. 리더십의 새로운 기준도 찾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어떤 기준인가. -‘성찰’이랄 수 있다. 정치인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상대편 얘기를 귀담아듣고 소통할 수 있다. 한두 사람 얘기로 결론 내고 끝내면 답답하다. 정치는 시작부터 정답이 없는 사회과학의 영역이다.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정치인의 카리스마는 다른 의미로는 독선일 수 있다. →정 의원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김) 말을 못한다고 평판이 나있을 것이다. 대중연설에 약하다. 소그룹에서는 잘하는데. -(정)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은 이렇다. 지금까지 경제학, 경영학, 국제정치 등을 공부하면서 어떤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일들이 결국 다 문제가 됐다. 1997년 금융위기(IMF 사태) 때도 그랬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건 실무적 능력이 아니다. 책임감으로 출마했다. 정치·경제·외교의 흐름으로 볼 때 이때 나서지 않으면 나라도, 나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건 좋은 투자다. 나의 경험과 능력을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출마했다. →‘체휼’(體恤)하는 대통령이 요구된다. 서민들의 어려움을 알까 하는 의문이 있다. -(김) 솔직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누군가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나. 다만 우리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건 아니다. 6·25전쟁 때 나서 1960년대 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부유하지도 않았고 큰 부자도 없이 다 어렵게 살았을 때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에 가기 전 명륜동 살 때 미군부대 분유 같은 거 얻어먹고 그랬다. 그것도 특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우리 경제가 다 어려웠다. 지금의 재벌 2, 3세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정) 그건 우리가 계속, 일생동안 생각해야 할 숙제다. 대통령이 되려고 뭘 하는 것보다 앞서 있는 일이다. 다만 ‘서민이 아니라 서민의 어려움을 모른다.’는 주장은 모순이 있다. 신분·계층·지위에 모든 것을 고착시킨 얘기 아닌가. 예컨대 탈모환자에게 필요한 게 발모제인데 그걸 꼭 탈모환자만 개발해야 한다고 하면 사회가 얼마나 답답한가. 모든 사람이 다 발모제를 개발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 노력할 텐가. -(김) 동작을구 선거를 하면서 악수를 해 보니 손가락 없는 분들이 그렇게 많았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남의 고통을 어떻게 100% 이해할 수 있겠나 생각하면서 노력할 뿐이다. 진정성이 중요할 것이다. 이번에 남편과 민생탐방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어떤 분들이 어떤 처지에 계신지를 더 알고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로 다녔다. 더 듣는 마음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그분들에게 도움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정) 이번 대선에 출마하면서 “위대한 국민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겠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는데 실감하게 됐다. 지하철역에서 출퇴근 인사를 하면서 거대한 인파를 통해 힘을 얻었다. 파도처럼 오가는 얼굴 하나하나와 대화하는 느낌으로 교감을 한 것 같다. 열심히 일하러 가는 표정에서 우리나라를 지탱해 주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힘을 느꼈다. →정치인으로서 어느 시점에 와있다고 생각하나. -(정) 번데기 없이 나비가 되지 못하듯, 처음부터 훌륭한 정치인이 태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미국에서도 정치꾼(politician)을 거쳐 정치인(statesman)이 된다고 한다. 국민께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셨으면 한다. ‘서울 재선’의 마음으로 하고 있다. 이지운·허백윤기자 jj@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음악 인생 60주년’ 대중가요 작곡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희갑

    [김문이 만난 사람] ‘음악 인생 60주년’ 대중가요 작곡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희갑

    ‘사랑아 내 사랑아’ ‘진정 난 몰랐네’ 등으로 존재를 처음 알렸다. 추억의 노랫말을 잠시 음미해본다. ‘그토록 사랑하던 그 사람/잃어버리고/타오르는 내 마음만/흐느껴 우네/예전에는 몰랐었네/진정 난 몰랐네’에 이어 세월이 지나 ‘그 겨울의 찻집’으로 옮겼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이른 아침의 그 찻집/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외로움을 마셔요/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이번에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변신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 있는가/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어디 이뿐이랴. ‘사랑의 미로’와 ‘향수’ 등 수많은 히트곡마다 한국의 대표적 정서를 담아냈다. 하여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대중가요 3000여곡, 영화음악 300여편, 뮤지컬 3곡 등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획을 ‘쫘악’ 긋는다. 그래서 대중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불후의 명품 작곡가라고 한다. 김희갑(76)씨.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8군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음악 인생 60년을 맞는다. 또 1967년 ‘사랑아 내 사랑아’로 작곡 앨범을 처음 낸 지 45년이다. 그는 올해 새로운 대중음악의 한 장르를 준비하고 있다. 어떤 것일까. 지난 21일 오전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김씨를 만났다. 확 트인 창가를 배경으로 부인 양인자씨가 커피 한 잔을 권한다. 양씨에게 ‘그 겨울의 찻집’의 가사는 아무리 들어도 감미롭다고 했더니 남편 김씨가 “요즘에는 그런 찻집이 없어요.”라고 대신 대답을 한다. 김씨는 여전히 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미8군 부대에서 연주할 때 빡빡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돼 60년 동안 거의 벗어본 적이 없다. 김씨는 칠순인데도 얼굴 피부색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둘은 잉꼬부부로 소문나 있기도 하지만 작사·작곡계의 명콤비로 알려져 있다. 둘은 1985년에 만나 2년 뒤에 결혼했다. 마침 부부의 날이었다. 양씨는 “안 그래도 다음 달 결혼 25주년을 맞아 기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며 웃는다. 김씨는 “알 만한 사람 부부 여섯쌍이 함께 간다.”며 즐거운 듯 활짝 웃는다. 김씨 부부는 원래 경기도 분당에 살았다. 그래서 언제 이사 왔는지부터 먼저 물었다. “한 4년 됐나요. 원래는 여기보다 더 조용한 곳인 강원도 문막 정도로 가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집사람 친구들이 멀리 이사 가면 아예 인연을 끊겠다고 협박(?)을 하더군요. 그 바람에 여기에 머물렀습니다(웃음). 사실 내년이면 다시 판교 쪽으로 이사를 갈 겁니다. 그곳에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거든요.” 양씨가 주방에서 떡과 차 한 잔을 꺼내오며 권한다. 김씨는 “고맙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한다. 늘 반말이 아닌 존대어를 쓰는 모양이다. 김씨에게 올해가 작곡가로 데뷔한 지 45년째라고 했더니 “(가요사 등) 일부 기록에는 1967년으로 나와 있는데 레코드사에 알아봤더니 1965년이라고 하더군요. 그거나 이거나 그렇게 세월이 흘렀네요.” 기타 연주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의 음악적 환경은 어떠했을까. 평양에서 태어난 김씨는 의사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한의사,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독자였고 저는 맏아들로 태어나 할아버지한테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약을 자주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아마 12살까지 매일 먹었지요(웃음).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음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6살 때 평양에서 40여리 떨어진 평남 강동에서 아버지가 병원장을 맡았습니다. 사택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시간 날 때마다 대학 때 음악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을 불러 음악 연주를 자주 했습니다. 나중에는 악단을 조직해 시골 여러 곳에 다니면서 공연을 하곤 했지요. 8·15 광복 이후에는 의사라는 신분을 감추고 국가 지정 음악당, 그러니까 남한으로 치면 예술의전당 같은 곳을 맡아 운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코디언 같은 것을 잘 연주했습니다.” 김씨는 원래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때 레프트윙 포지션으로 학급 대표로 출전했을 만큼 축구 실력이 남달랐다. 내친김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고 싶었다. 그 무렵 음악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보고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발발했고 1·4후퇴 때 김씨 집안 식구들은 임진강을 거쳐 대구까지 월남하게 된다. 먹고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대구에 있던 미 25야전병원에 취직하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갖고 있던 의사면허는 인정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아버지는 미군부대 장교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아들 김씨는 친구와 함께 하우스보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오후 2시 30분쯤이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마다 같이 일을 하는 친구가 주머니에서 작은 하모니카를 꺼내 연주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아버지한테 음악을 배우겠다고 했지요. 흔쾌히 허락을 하신 아버지한테 악보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 처음 만진 악기가 만돌린이었습니다. 중고품이었는데 선이 끊어지면 미군들이 사용하는 전화선을 연결해 사용하곤 했지요. 6개월 정도 하니 웬만한 연주가 가능해지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한테 김영순(김트리오 부친)씨가 놀러 왔는데 트럼펫과 기타 연주를 기가 막히게 했습니다.” 이후 김씨는 ‘바로 기타야, 기타!’라고 생각하며 기타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대로 가사를 적고 노래를 배웠다. 말 그대로 밥숟가락만 놓으면 새벽 4시까지 기타를 배웠다. 또한 작곡가 박시춘 선생과의 만남 등을 통해 장차 훌륭한 음악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한 지 2년 세월이 지나서야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때마침 고등학교에 악단이 하나 생겼는데 김씨는 곧바로 악단장을 맡았다. 웬만한 편곡은 그의 손을 거칠 정도로 음악 실력을 인정받았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미 공군 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했다. 사실상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구에서 ‘음악 연주자 베스트 7’에 뽑혀 서울로 올라와 ‘록쇼’ 악단에 합류했다. “그때 오산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전국 곳곳을 다녔습니다. 그러던 1년 뒤에는 제가 직접 악단장을 맡게 됐지요. 악단 명칭도 록쇼에서 ‘A1쇼’로 바꿔 활동 무대를 넓히게 됩니다. 운 좋게도 미8군 클럽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연주자로 소문이 나기도 했지요. 이후 7년 동안 A1쇼 악단을 이끌었습니다.” 그가 미군부대와의 인연을 접은 것은 1962년이었다. 다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은 열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해군 군악단 단장을 지냈고 작곡가로도 유명한 이교숙 선생을 찾아가 작곡과 편곡 등을 강도 높게 배웠다. 그렇게 2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작곡가 박춘석씨를 만나게 됐다. 박씨의 곡을 녹음할 때 기타 연주를 해주고 박씨에게 편곡을 더 배우게 됐다. 아울러 작곡가 김영광씨의 부탁으로 편곡을 해주면서 이 방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섬세한 작곡 솜씨가 일품이라는 소문까지 자자했다. “하루는 오아시스레코드 손진석 사장이 찾아와 작곡 앨범을 내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건성으로 대답했는데 거의 매일같이 집요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특히 대중가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작곡의 명분론으로 설득하더군요. 그래서 ‘사랑아 내 사랑아’(태원), ‘불타는 연가’(남진), ‘진정 난 몰랐네’(김상희), ‘모래 위를 맨발로’(이시스터즈) 등 12곡을 4명이 3곡씩 나눠 부른 이른바 ‘김희갑 작곡 제1집’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후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하면서도 ‘김희갑 악단’을 계속 이끌어오다 드라마 주제가를 작곡하면서 크게 히트를 친다. 1983년 KBS 주말드라마 ‘청춘행진곡’에서 노주현과 정윤희의 ‘러브송’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최진희를 발탁, ‘그대는 나의 인생’을 작곡했던 것이다. 이 노래는 가수 최진희를 탄생시키고 우리나라 최초의 뮤직비디오 음악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어 ‘사랑의 미로’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등이 담긴 제2집 작곡 앨범이 나오면서 악단을 해체하고 작곡과 연주 등 솔로로 활동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가 지금까지 작곡한 노래만 무려 3000곡이 넘는다. 이 가운데 부인 양씨와 함께 작사·작곡을 한 것은 400여곡에 이른다. 예를 들어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서울 서울 서울’ 등 조용필의 히트곡을 포함해 ‘타타타’ ‘우리도 접시를 깨트리자’ ‘립스틱 짙게 바르고’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대는 나의 인생’ ‘하얀 목련’ 등이 대표적인 부부 합작 국민 애창곡이다. 얼마 전에는 TV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젊은 가수들에 의해 불려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요즘 대중가요계의 흐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음악적으로 재능이 대단한 가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룹 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쉽습니다. 재즈, 댄스,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듣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앞으로는 ‘대중음악을 감상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씨는 요즘 모종의 작업을 하고 있다. 발성의 기본기를 확실히 갖춘 남자 3명, 여자 1명으로 이뤄진 중창단을 만들어 대중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일이다. 40대 중후반 한 팀, 20~30대 젊은 성악가 한 팀 등 두 팀을 만들어 실내악 분위기의 대중음악을 올가을쯤 선보일 예정이다. 필생의 역작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꿈과 희망, 식지 않은 열정으로 그 일에 집중하고 있다. km@seoul.co.kr ●김희갑은 고교 졸업 후 ‘록쇼’ 멤버 활동… 대중가요 3000여곡 작곡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의사인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대구에서 대성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악단장을 맡아 발군의 음악 실력을 발휘했다. 아울러 미8군 부대에서 프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있는 ‘록쇼’ 악단 멤버로 활동했다. 이후 ‘A1쇼’ 악단장으로 7년 동안 활동했다. 1962년 미군부대 위주의 활동 무대를 접고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5년 뒤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김희갑 작곡 제1집’ 앨범을 냈다. 1983년 KBS 주말드라마 ‘청춘행진곡’ 주제가를 작곡해 크게 히트쳤다. 1985년 이후에는 김희갑 악단을 해체하고 솔로 활동에 전념했다. 지금까지 3000여곡을 작곡했으며 1987년에 양인자씨와 결혼한 뒤 함께 400여곡을 작사·작곡했으며 300여편의 영화음악과 뮤지컬 ‘명성황후’ 작곡 등으로도 유명하다. 취미는 골프와 분재.
  • ‘용산구민 한마음 체육대회’ 개최

    용산구는 28일 보광동 오산고등학교에서 ‘용산구민 한마음 체육대회’를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각계각층 구민이 참여하는 이 축제에는 역시 용산구에 있는 미군부대의 대원도 참여한다. 미군들은 이날 11시부터 번외경기로 진행되는 한·미 친선 줄다리기에 참여한다. 체육대회에서는 10인11각 달리기, 협동 줄넘기, 계주, 제기차기 등 총 7개 경기가 진행된다. 동별 토너먼트로 진행되며 종합우승한 동에는 우승기, 상금, 트로피 등이 주어진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신세계百 ‘경기북부 라이프스타일센터’ 개장

    신세계百 ‘경기북부 라이프스타일센터’ 개장

    ‘빅3’ 백화점의 수도권 쟁탈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신세계백화점이 10호점인 의정부점을 20일 문 연다. 국내 백화점 업계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규 점포를 개설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포화상태에 이르러 출점이 여의치 않은 서울을 벗어나 풍부한 상권을 갖췄으나 대형쇼핑몰이 거의 없는 평촌, 의정부, 판교 등 신소비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2002년 의정부시 민자역사 사업자로 선정된 후 3000여억원을 들여 10년 만에 완공한 의정부점은 신세계백화점의 첫 역사(驛舍)백화점으로 의미가 각별하다. 또 의정부시 43만명을 비롯해 인근 남양주·양주·포천·동두천·파주·구리 등 7개시와 연천·포천군 등 2개군의 300만명이 거주하는 경기 북부 지역에 들어선 유일한 백화점으로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일 의정부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박건현 대표는 “경쟁점이 없는 경기 북부의 단독 백화점인데다 의정부역과 바로 연결돼 경쟁력이 있다.”며 “향후 의정부시 개발과 관련해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베드타운인 의정부에 쇼핑은 물론 문화, 여가생활 등을 마땅히 즐길 곳이 없었다.”며 “의정부점은 단순히 물건 판매 위주의 백화점이 아니라 고객에게 다양한 오락, 문화생활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라이프스타일센터’”라고 덧붙였다. 그는 개점 5년 만에 증축에 들어간 경기점을 예로 들며 앞으로 4~5년이 지나면 증축 필요성이 충분한 상권이라고 강조했다. 의정부점은 지상 10층, 전체 면적 14만 6000㎡ 규모다. 페라가모, 보테가베네타 등 해외명품, 34개 화장품 브랜드, 유니클로·갭 등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까지 총 600여개 브랜드가 입점했다. 350여석의 문화홀과 8개관 1400석을 갖춘 CGV 영화관, 키즈카페, 옥상가든, 2000㎡에 북카페 기능까지 갖춘 서점도 들어서 쇼핑, 오락, 문화생활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의정부점은 지하철 1호선과 연결된 3층이 백화점의 ‘얼굴’인 1층 구실을 한다. 당초 이마트를 입점시키려다 인근 재래시장의 반발에 부딪혀 상생 차원에서 계획을 포기한 신세계는 특히 이 층에 신경을 썼다. 1만 2262㎡로 백화점 단일 매장으로 가장 넓은 데다 해외명품관, 코스메틱존, 패션잡화 매장과 더불어 식품관을 한데 모아 맛과 멋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국내외 7개 회사가 참여해 각 층의 MD(상품 구성)에 맞게 매장을 다르게 설계해 공간의 지루함을 덜었다. 4~7층에 위치한 지상주차장은 각 층별 매장과 직접 연결돼 쇼핑의 편의성도 더했다. 출퇴근 등 서울에서 오가는 인구가 많은 점을 감안해 주말에는 오후 9시까지 영업한다. 첫 해 매출 목표는 3000억원. 3년 내 5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하루 평균 5만~6만명이 오가는 역세권의 이점을 충분히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다 2013년 인근에 13만 가구가 입주를 앞두고 있으며, 반환된 미군부대 부지가 상업시설로 개발돼 상권이 확대되면 목표 달성은 무리 없다는 분석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평택 영외 미군부지 일부 반환

    국방부는 3일 경기도 평택 일대 미군 사용 부지 7만 5756㎡(약 2만 2916평)가 60년 만에 우리 정부로 반환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반환된 토지는 평택 미군부대 캠프 험프리 인근에 위치한 체육시설(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신대리 산23-1)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1952년부터 주한미군에 공여돼 왔다. 국방부는 해당 부지에 대해 지난 2010년 12월 처음으로 미국 측에 반환을 요청해 지난달 21일 사용부지 일부 반환을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번 반환 부지의 80%인 약 6만㎡는 평택시의 소유로 마무리 작업을 마친 후 평택시에 반환할 예정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존의 미군부대 부지 반환 사례가 미군의 재배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번에는 SOFA 2조 3항에 따라 우리 정부의 꾸준한 요청으로 성사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SOFA 2조 3항에는 ‘미국이 사용하는 시설과 구역은 본 협정의 목적을 위해 더 필요가 없게 되는 때에는 언제든지 합동위원회를 통해 합의되는 조건에 따라 대한민국에 반환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3월부터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미군 부대 부지 80곳이 반환 예정이며 현재 49곳이 반환된 상태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오바마 DMZ 방문 → 정상회담 → 외대 특강…

    오바마 DMZ 방문 → 정상회담 → 외대 특강…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일요일인 25일 오전 오산미군기지 방문을 시작으로 2박 3일간의 바쁜 일정을 보낸다. 제3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방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도착 후 첫 일정으로 최전방 비무장지대(DMZ) 내 미군부대를 방문해 병사들과 식사를 함께한다. 이어 서울로 돌아와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함께 만찬에 참석한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지난해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계획 등 최근 한반도 정세와 북핵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눈에 띄는 일정은 방한 둘째날인 26일에 잡혀 있다. 오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국외국어대를 방문,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다. 즉석에서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도 잡혀 있다. 특강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 무대에서 한국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공고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는 한편 자신이 제안한 핵안보정상회의와 핵확산방지 어젠다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강을 마친 뒤에는 터키,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순으로 각 정상과 개별 회담을 갖는다. 마지막 날에는 핵안보정상회의의 공식 일정에 모두 참석할 예정이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25일 저녁에 도착해 28일 오전까지 3박 4일간 체류한다. 반면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26일 저녁 늦게 입국해 다음 날 오후 곧바로 출국할 예정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6일 오후 입국, 28일 밤 출국할 예정이다. 한편 4강 정상들은 이번 회의에서 각각 다른 호텔에서 묵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랜드 하얏트, 후진타오 주석은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 노다 총리는 롯데호텔,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묵는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살인의 일상화… ‘전장 트라우마’ 위험수위

    “‘압력밥솥’ 같은 전장의 상황이 군인들을 미치게 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민간인 16명을 무차별 살상하면서 미 장병의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피아 식별조차 어려운 전장에서 수년을 보내면서 스트레스가 한계점을 넘었고 결국 이성을 잃어 용납 못할 범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분노한 아프간 청년들은 당장 반미시위에 나섰고 무장세력인 탈레반도 보복을 다짐하면서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용의자 11년째 복무 38세 베테랑 하사” 미 정부 관계자와 의회 측은 12일(현지시간) 피의자의 이름을 제외한 구체적 신원을 밝혔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38세 남성으로 11년째 군 복무 중이며 이라크에 3차례 파견된 베테랑 하사다. 아프간에는 지난해 12월 처음 파병됐으며 지난달 1일부터 마을 안정화 사업에 투입됐다. 용의자는 또 이라크 복무 당시 자동차 사고로 가벼운 외상성 뇌손상을 입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사고 이후 전장 등 위험지역 배치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근무 적합 판정을 받아 다시 아프간에 파견됐다. 두 아이를 둔 아버지인 그는 잦은 파병 탓에 결혼생활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심리 전문가들은 ‘전장 트라우마’(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아프간 참사의 주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건이 발생한 칸다하르 인근에 파병됐다가 최근 귀국한 미 육군 소속 정신과 군의관은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칸다하르는) 탈레반 거점인 탓에 일상적으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면서 “(극한의 스트레스를 겪어) 주둔 미군들에게 이 지역은 ‘압력밥솥’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이 군의관에 따르면 최근 들어 동맹세력으로 가장한 무장단체가 미군을 공격하는 사례가 늘었고, 지난달 미군부대에서 코란을 소각하는 사건이 발생해 반미감정이 증폭되면서 ‘아군’과 ‘적군’에 대한 경계선이 흐릿해졌다고 한다. 미 육군 최고위 정신과 군의관을 지낸 엘스페스 리치는 “새벽에 의도적으로 부대를 빠져나가 무장하지 않은 여성과 어린이를 살해하고, 시신을 태운 뒤 부대로 복귀한 것은 정신 질환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美국방 “범행 군인 사형선고 가능성” 한편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이날 용의자가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면서도 “(난사 사건에 대한) 재판권을 넘기고 공개재판하자.”는 아프간 측 요구는 거부했다. 또 아프간 동부 도시 잘랄라바드에서는 13일 400여명의 학생이 모여 반미시위를 벌였고, 탈레반도 웹사이트에 “보복할 것”이라고 위협한 지 하루 만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두 마을 중 하나인 칸다하르주 발란디를 방문한 정부 대표단에 총격을 가해 3명을 사상케 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지방시대] 시민들의 바람과 어젠다/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지방시대] 시민들의 바람과 어젠다/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시민의 선택, 인천 어젠다 2012’ 최근 인천발전연구원이 양대 선거를 맞이하여 정책으로 내건 사업이다. 연구원이 어젠다를 시민들에게 제시하게 된 계기는 인천의 많은 현안들이 법령이나 제도, 그리고 재원 문제 때문에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어젠다 발굴을 위해 지난해 1년 동안 각종 언론에서 인천의 과제로 지적된 현안들을 체크하고 연구자들이 분야별로 87개의 과제를 추출했다. 이를 토대로 원내회의와 시민단체, 오피니언 리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최종적으로 36개의 어젠다를 선정하였다. 이번 어젠다 선정에서 인천시나 기초자치단체 등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제외하였다. 어젠다를 대상으로 시민 여론조사, 인터넷 투표, 전문가 현장조사 등을 병행 실시했다. 그 결과 인천시민이 선택한 첫 번째 어젠다는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징수 폐지’였다. 1위로 선택한 시민들의 참뜻은 ‘경인철도의 지하화’와 ‘경인고속도로 지하화를 통한 부평공단의 재생’을 원하는 시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경인고속도로는 1969년 개통 이래 법적 징수기한을 12년이나 초과하고 있다. 징수액도 건설비의 두배인 5600억원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상습정체로 주차장화되고 있으며, 지난 42년간 경인고속도로에 재투자한 것은 거의 없다. 부평지역의 공단을 재생하기 위하여 고속도로를 지하화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이유다. 10대 어젠다 가운데는 해주와 인천국제공항 간 평화도로, 인천국제공항과 충청 간 해상도로 건설도 선정되었다. 만약 해주와 충청, 그리고 새만금을 연결하는 서해안 대동맥이 건설될 경우 동북아 허브를 지향하는 인천이 상하이나 하네다의 허브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과 충청권을 잇는 해상도로가 건설되면 새만금과 충청권의 물동량이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을 통해 전 세계로 나가는 플렛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항한 일본 하네다 제3국제터미널을 보면, 인천국제공항이 일등 공항이라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다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만약 그 예산을 50㎞의 해상(해저)도로 건설에 투입해 물류의 대동맥을 건설하고, 관광시설로 활용한다면 국가 차원에서 몇배의 경제적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서해 대동맥의 재구축을 통해 중국의 내륙지역과 동아시아에 맞서는 국가전략을 추진해야 할 때다. 또한 남북관계 개선에 대비해 해주산단·교동산단·강화산단 등을 개발하고, 이를 인천과 연계하는 것도 매우 시급한 과제로 선정되었다. 시민들은 환경문제와 복지, 의료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현안과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보였다. 강화·옹진군 수도권 규제 제외, 부평미군부대 이전지 공원 조성, 인천아시안게임 국가적 행사 추진 등이 그것이다. 어젠다에는 신경인 축과 서해안 축의 구축을 통해 강하고 튼튼한 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인천시민들이 바람이 담겨 있다. 향후 시민들이 선택한 어젠다가 19대 국회와 18대 대통령에 의해 심도 있게 논의되고, 그 결과가 국가정책과 전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MB정부 4년… 환경정책 공과 진단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4년이 됐다. 환경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4년간의 환경정책을 진단해 봤다. ●잘한 점 현 정부 들어 국민의 환경보건 문제에 대한 대처 기반을 마련한 점은 높이 평가된다. 2008년 ‘환경보건법’을 제정하고, 환경성질환 조사와 감시체계 인프라도 구축했다. 환경성질환에 특화된 병원 12곳을 환경보건센터로 지정하는 한편 2009년부터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환경성질환 예방·관리센터도 설립했다. 또 2011년부터 ‘석면피해구제법’ 시행으로 석면 피해자와 유족에게 요양급여와 특별유족 조의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지구촌 과제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온실가스 중기 감축목표를 제시했고, 온실가스 종합정보센터를 설립해 체계적인 관리 기반을 마련한 점도 높이 평가된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의 30%를 감축하기 위해 공공기관·온실가스 다량 배출 사업장을 대상으로 목표관리제를 도입했다. 다만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2015년부터 도입하기로 돼 있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처럼 올해부터 자동차 배출규제 기준을 설정한 점과 국민들의 친환경 녹색생활을 독려하기 위해 ‘그린카드’를 도입한 점도 눈에 띄는 정책이다. ●부족한 점 4대강 사업에 대한 사전 평가 부실 논란과 수질 관리를 위해 도입한 유역총량제 정책 등은 삐걱대고 있다. 각종 규제업무를 지방에 이양하고 수질이 좋아지길 기대하는 것은 국고낭비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합동 단속 때면 여전히 폐수 등을 하천에 무단 방류하는 적발 건수가 줄지 않고 있다. 수도권 시민의 젖줄인 팔당호를 1급수로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아직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비점오염원 관리와 수생태계 건강성 회복도 새로운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오존·초미세먼지·수은 등 환경성질환 유발 물질에 대한 관리체계도 미흡하다. 또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환경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환경 R&D 예산을 확대하고, 생태 서비스 및 생물자원 활용 수준을 높이는 것도 정책과제로 꼽힌다. 국가 R&D 예산 14조 9000억원 가운데 환경 R&D는 2355억원으로 고작 1.6%에 불과하다. 구제역에 따른 가축무덤 침출수 유출 문제와 미군부대 토양오염 등은 초기 대응이 미흡해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가축무덤의 침출수 문제는 해빙기를 맞아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미군부대 한국근로자 “총파업 불사”

    주한 미군 육군부대 한국인 근로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미군의 일방적 감원 통보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는 등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9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주한 미군 한국인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1500여명은 오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집회를 개최한다. 미군 측에 인력 감원 철회를 촉구하고 해고 대상이 된 490여명의 한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대책을 촉구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미8군사령부에 대한 성명서 발표, 삭발식 등을 한 뒤 국방부~용산 미군기지~녹사평역까지 가두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노조는 미군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내놓지 않을 경우 전국 조합원 1만 1000여명이 참여하는 총파업 투쟁도 불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최근 미군이 국방예산 삭감을 이유로 AREA1(의정부·동두천·파주), AREA2(용산·부평), AREA3(평택) 등 지역 주한 미군 시설관리사령부(IMCOM-K) 소속 한국인 490여명을 다음 달 28일까지 감원하겠다고 통보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군은 한국인 근로자의 신규 채용도 당분간 금지했다. 노조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주한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의 임금 71%를 분담하는 상황에서 미군이 국방예산 삭감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미군 측에 ‘합리적인 감원 근거를 제시하면 인력 조정 시기와 규모 등을 충분히 협의할 의지가 있다’고 알렸음에도 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에 따르면 미군은 서울 및 수도권 미군부대에서 감원 통보를 받은 한국인 근로자들 가운데 일부는 퇴직시키고 나머지는 AREA4(왜관·대구·진해) 기지 등으로 재배치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조는 “적지 않은 인원이 ‘재배치 후 해고’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한 미군 관계자는 “한국인 근로자의 인력 감축은 불가피하지만 해결책 마련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주한 미 육군부대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는 1만 4000여명에 이르며 미군의 240여개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소감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소감

    어렸을 때 나는 미군부대가 있는 곳에서 살았다. 동네가 하필 동과 서로 나뉘어 동석박에 사는 사람들은 미군부대와 관련된 일을 생업으로 삼았고 유난히 돌이 많은 서석박 사람들은 죽으나 사나 돌산을 개척하며 농사일로 생계를 꾸렸다. 동석박에 사는 나는 개척정신과는 상관없이 ‘기브 미’(Give Me)를 외치며 초콜릿의 단맛에 절어 살았다. 그러다가 양공주가 되겠다는 꿈까지 꾸게 되었다. 샌디라는 롤모델까지 있어 그 집을 드나들며 내 꿈은 더 구체화되었다. 그림 같은 샌디의 집에 제목도 낯선 두꺼운 책들이 제법 쌓여 있었으니 그럴 만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샌디가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가버리고 한동안 나는 착실하게 동화책이나 읽으며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미군이 철수하고 동네 언니들이 새로 주둔한 군인들과 바람난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자 마을의 인물들이 시시해졌다. 그래서 샌디가 떠난 저 하늘과 왕자가 살고 있다는 저 산 너머 아득한 곳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럴 즈음 이북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깡통을 들고 동네에 나타났다. 간혹 마주치는 그의 꼬질꼬질한 얼굴이 이상하게 해맑았다. 나는 그가 사라지는 한길 끝, 그 어느 곳까지 동경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세상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소설같이, 미국으로 간 샌디가 미군한테 맞아 불구가 되어 마을로 되돌아왔다. 이북이는 읍내 다리 밑에서 만났고 게다가 백마탄 왕자가 살 거라고 생각한 산 너머에는…… 초가집 몇 채가 전부였다. 모든 게 어긋난 그 시점에 아버지의 애인이 집으로 찾아왔다. 하필 기생을 사귀었는지. 엄마보다 그녀가 더 애절해 보였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샌디를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만났다. 늙고 병들어 운신조차 제대로 못하는 그녀는 작은 좌판을 꾸리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엄마와 그녀가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내 인생 최초의 롤모델인 그녀에게 전화번호도 묻지 못하고 되돌아서고 말았다. 얼마 뒤 다시 그곳을 찾아 갔을 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내가 타지에 살면서 행간에 묻어둔 나의 고단 했던 삶, 세상에 나온 뒤 그 삶이 고달파서 나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았다. 서른아홉 살까지 어렸을 때 가졌던 그 맹랑한 꿈이 내 생애 가장 안온한 꿈이 되고 말았다. 살면서 그날 어리석게 놓치고 만 수많은 샌디를 만나고 발칙했던 유년의 나를 만났다. 마흔 넘어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며 그들에게 삶을 지탱해줄 무언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같이 기대고 싶었다. 그게 이번엔 이반이었다. 잘라 보면 고통의 단면들은 모두 같은 빛깔이다. 나는 그들이, 더불어 내가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이반을 찾아 나설 것이다.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염려스러우시겠지만 아직은 열정이 넘쳐 쓰고 싶은 게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유일한 스승이신 박영숙 교수님,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약력 1965년 충북 진천 출생. 부산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총선불출마 선언… 3선 정장선 민주당 의원이 한국정치에 던진 한마디

    총선불출마 선언… 3선 정장선 민주당 의원이 한국정치에 던진 한마디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정장선 민주당 사무총장을 바라보는 정가의 시선은 대체로 일치한다. 더 큰 정치적 꿈을 위한 포석이 아니라 그의 말 그대로 ‘짐을 내려놓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그는 여의도에서 순수한 인물로 꼽힌다. 정 의원은 지난 14일 아침 국회 목욕탕에서 만난 의원들을 보면서 내년에도 험난한 선거를 치러야 하고, 국민의 불신 속에서 힘든 의정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들이 갑자기 측은해졌다고 말했다. ‘안풍’(안철수 바람)에 담긴 국민의 불신만큼이나 지금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정 의원처럼 불신받는 자신들의 모습에 지치고 상처받는 배지들이 적지 않다. 정 의원의 탈 여의도가 2011년 말 우리 정치의 단면을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고 했는데. -꽉 찬 일정표에서 벗어나니 편하다. 후련하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데 앞으로 계획은. -자신을 내려놓고 되돌아봐야겠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은 해왔는데 서민들 생활 속에 들어가서 같이 보고 느끼면서 스며들고 싶다. 두 번째 인생은 정치를 계속할 것인지, 다른 길로 갈 것인지를 정리하려고 한다. 국회의원보다 훨씬 더 애국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봤다. 정치만이 애국이고 국가를 위하는 길은 아니더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 →큰 정치를 위해서라는 사람이 많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중도사퇴해도 보선에 안 나간다. 얄팍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가장 큰 불출마 배경은 뭔가. -정치 부재의 불신 상황에 대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아무것도 없었듯이 책임도 안 지고 다음 단계로 가서는 안 된다. 3선이나 했다. 큰 책임이 있다. 다른 것은 없다. 지도부도 아니고, 초선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 요구에 밀려 더 이상 출마하는 것은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관성적으로 출마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가족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인데. -어머니(81)께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더라. 충격도 받으신 것 같더라. 설명하는 데 한나절 걸렸다. 아내나 두 아들은 곧바로 응원해주었다. →12년 국회의원 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지역 문제로는 어려웠던 평택항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것이다. 미군부대 평택 이전 문제도 해결했고, 삼성전자 평택 이전도 9부 능선을 넘었다. 국회에서는 지식경제위원장을 하면서 중소기업인들의 어려움을 푸는 데 최선을 다했다. →수면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평일은 거의 못 잔다. 차 안에서 토막잠도 전화가 하도 와 거의 못 잔다(14일 평택 동행 때 1시간 30분 자동차를 함께 이용했는데, 그때 10분 정도의 토막잠을 잤다). 기자와 당대표, 민원전화가 밀려와 거절할 수 없다. 이발할 시간도 내기 어렵다. 이제 수많은 행사에서 벗어나 잠 좀 잘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정신없이 뛰었다. →의원 임기가 끝난 뒤엔 어떻게 지낼 것인가. -비용이 최소로 드는 사무실을 평택에 마련해 조용히 활동할 것이다. 직접 운전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다. 몽골이나 신흥국에 잠깐씩 가 공부해보고 싶다. →일반 시민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는. -의원 때도 특별대우가 거추장스러웠다. 혼자 움직일 때는 일반인과 똑같이 했다. →내년 총선 때 민주당 후보를 돕는가. -정치 활동은 최소화하려고 한다. →택시 운전면허는 왜 취득했나. -정치하며 그런 경험 한 번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였는데, 너도나도 해서 실제로 택시운전은 안 했다. →안철수 바람에 대해서는. -이제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밝힐 때가 됐다고 본다. 정치를 할 건지, 왜 하려는지 밝혀야 한다.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은. -아내와의 여행이다. 편안하게 해보고 싶다. →보좌진에게는 날벼락일 텐데. -그 사람들이 말렸는데 불출마를 선언했다. 11년 된 보좌관, 12년 된 여비서 등에게 참 미안하다. →10년 뒤 모습은 어떻게 그리나. -외교관 출신으로 국회의원도 지낸 정의용 선배처럼 어디서든 계속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싶다. →정치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왜 자신이 정치를 하려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마음이 정해지면 모든 것을 헌신해서 할 자세가 되어야 한다. 얼치기라면 안 된다. →한국정치에 희망은 있는가. -지도자들이 맞아 죽을 각오로 타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강경세력이 반발해도 타협해야 한국 정치에 희망이 생긴다. →정말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솔직히 앞으로 일정에 대해서는 나도 알 수 없다. 누가 알겠는가. 답을 찾아보겠다. →다시 묻겠다. 불출마의 숨겨진 동기는 있나. -자꾸 꿍꿍이속이 있는 것처럼 보면 섭섭하다. 정말로 단순하다. 쇼하는 게 아니다. 불출마 결심이 어디 쉽겠나. 출마하면 되기 쉬운 구도인데. 정치인은 누구나 나이가 많아도 출마하려고 한다. 그러나 재충전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다. 돌아본 뒤 정치를 계속할지, 다른 세계를 찾아갈지 모색할 것이다.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정치의 짐을 내려놓고 싶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북·DMZ 6·25전사자 유해 한·미 공동 발굴·감식 합의

    한·미 양국은 앞으로 비무장지대(DMZ)와 북한 지역에서도 공동으로 6·25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감식하기로 합의했다. 국방부는 28일 워싱턴 소재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사무국에서 김일생 인사복지실장과 피터 베르가 미 국방부 정책차관실 참모장이 양국 국방부장관을 대신해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협력에 관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양국 간 유해 발굴 사업에 대한 첫 번째 각서 체결로, 2008년 한국 측 유해발굴감식단과 미측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가 실무부대 차원에서 체결한 양해각서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게 된다. 한·미 양국은 MOA를 통해 6·25전쟁 당시 전사한 한국군과 미군·유엔군·주한미군부대 한국군지원단(KATUSA)의 유해를 발굴하는 데 협력하며,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남북이 DMZ와 북한지역에서 전사자 유해를 공동발굴할 때 미측도 협력하기로 명시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주일미군 공무중 사건 日에 재판권

    주일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군속(미국 민간인)이 공무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일본이 재판권을 갖는 방안이 추진된다. 23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정부는 일본 주둔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속이 공무 중 일으킨 사건·사고와 관련해 미국에서 재판이 어려울 때 예외적으로 일본에서 재판을 실시할 수 있도록 미·일 지위협정 운용을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미군과 군속이 공무와 관련해 음주 후 교통사고를 일으켰을 때에도 일본 측이 기소할 수 있도록 양측이 대략적인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 지위협정은 미군과 군속의 범죄 제1차 재판권에 대해 공무 중에는 미국 측, 공무 외에는 일본 측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미군이 공무증명서를 발행하는 등 공무로 인정했을 때는 일본 검찰당국이 불기소처분해 왔다. 실제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범죄를 저지른 미군 군속 52명이 공무 중이라는 점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지난 1월 오키나와현 오키나와시에서 귀가하던 미 군속의 차량에 행인이 치여 사망했지만, 나하지검은 미·일 지위협정에 따라 ‘공무 중’을 이유로 가해자를 불기소처분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이후 주일미군에서 근무하는 군속의 공무 중 범죄에 대한 재판권을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해 왔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춘천 미군부대 땅 내년부터 주민품에

     강원 춘천 미군부대 캠프페이지 터에 대한 고엽제·방사능 관련 의혹이 해소되면서 개발계획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춘천시는 20일 캠프페이지 공동조사단이 그동안 제기됐던 고엽제·방사능 오염물질 의혹을 해소함에 따라 부지 내 토양오염 복원사업과 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시민토론회 등이 연내에 완료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부지매입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특히 전체 부지 67만여㎡ 가운데 오염된 4만 8000여㎡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환경오염정화사업은 현재 95%가량의 공정률 보이고 있어 연내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또 캠프페이지 개발계획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한 시민토론회도 본격 진행된다.  시는 오는 25일 오후 3시 후평동 하이테크벤처타운에서 캠프페이지 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2차 시민토론회를 개최한다. 시민단체 등은 지난 6월 열린 1차 토론회 때 환경오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돼 중단을 요구했으나 이번 공동조사결과 의혹이 해소됨에 따라 앞으로 열리는 시민토론회는 원만히 진행될 전망이다.  캠프페이지 개발 비용은 부지매입비 1750억원, 조성공사비 900억원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현재 시는 27%(18만㎡)의 부지를 매입했으며 나머지 부지에 대해서는 국방부와 분할상환 계약을 통해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심규호 춘천시 건설국장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개발계획 수립을 연내에 마무리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토지매입 절차에 착수하는 등 캠프페이지 개발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내년 입영 카투사 2100명 모집

    병무청은 내년에 주한미군부대 한국군지원단(카투사)에 입영할 자원병력을 15일부터 21일까지 모집한다고 14일 밝혔다. 모집 인원은 매달 175명씩 모두 2100명이다. 희망자는 병무청 홈페이지(www.mma.go.kr)를 통해 지원할 수 있으며 입영 희망월을 선택해야 한다. 카투사는 중졸 이상 학력을 가진 1983~1993년생으로 신체 등위 1~3급 중 현역입영대상자가 지원할 수 있다. 지원자는 또 2009년 9월 15일 이후 취득한 어학 성적을 증명해야 한다. 토익은 780점 이상, 텝스 690점, 토플 IBT 83점, PBT 561점, G-TELP(Level 2) 73점, FLEX 690점 이상이어야 지원할 수 있다. 병무청은 오는 11월 10일 지원자와 가족,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관한 가운데 컴퓨터 무작위 추첨을 통해 합격자를 공개 선발할 예정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의로운 죽음’ 조민수 수경 추모비 동두천 미군기지에 건립

    지난 7월 수해 당시 물에 빠진 시민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조민수 수경의 추모비가 미군부대 안에 건립됐다. 주한미군 제1지역사령부는 경기 동두천시 미군기지인 캠프 모빌 안에 조 수경 추모비를 건립했다고 9일 밝혔다. 이는 조 수경이 근무 당시 미군부대 경비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추모비는 가로 60㎝, 세로 70㎝, 높이 30㎝ 크기로 제작됐다. 비문에는 ‘조 수경은 국가적인 영웅으로서 친절하고 사명감이 투철한 정의로운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내용이 한글과 영문을 함께 표기됐다. 경기지방경찰청 기동11중대 소속으로 캠프 모빌 외곽 경비를 담당했던 조 수경은 전역을 한 달 남겨둔 지난 7월 27일 오후 9시 40분 기록적인 폭우로 범람 위기를 맞은 동두천 신천변에서 철조망에 매달린 채 구조를 요청하는 시민을 구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었다. 그러나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조 수경은 국립대전현충원 경찰관 묘역에 안장됐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만화 ‘라이파이’를 아시나요.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머리에 ‘ㄹ’자가 새겨진 반달 모양의 두건을 썼다. 날씬한 몸매에 멋진 옷을 입었다. 태백산맥의 깊은 산속 동굴에 비밀기지를 두고 윤박사가 설계한 멋진 비행선 제비호를 타고 아름다운 제비양과 세계 각국을 돌아 다닌다. 그러면서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악당들과 용감하게 싸우고, 광선총과 긴 밧줄로 모험을 벌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특히 ‘한국산 전사’였기에 대리만족의 통쾌함까지 느껴져 그 열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피너3세와 라이파이’ ‘녹의 여왕 라이파이’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등 1959년부터 1962년까지 4부작 총 32권이나 발간됐으니 말이다. 이 만화는 한국 최초의 SF 만화라는 데 큰 의의를 담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의 향수를 일으키는 대작으로 꼽힌다. 얼마 전에는 한 TV프로그램 ‘진품명품’에 잠시 소개돼 그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72) 화백. 지난달 20~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의 만화·애니메이션 축제 ‘제15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의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돼 다시 한번 추억의 팬들과 반갑게 만났다. 수상 소식을 듣고 김 화백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왔다.”면서 “그동안 벌였던 사업은 모두 접었으며 우리 한민족사를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하여 경기 용인에 위치한 작업실로 찾아갔다. ‘아파트 몇동 몇호’라는 말을 듣고 작업실 앞에 서자 한옥의 대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아파트를 이렇게!’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파트 한층을 개조해 마치 한옥같이 꾸며놓았던 것. 역시 상상력이 풍부한 만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의 아파트에서도 속세를 잊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 점이 특이해 자꾸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다. 작업실 겸 자택이었다. 안에는 ‘민족사학’과 관련된 많은 책들과 그림들이 진열돼 있었다. 인사를 하면서 김 화백의 명함을 슬쩍 봤더니 ‘만몽 김산호 주신대학교 총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만몽(卍夢)은 만가지 꿈을 꾼다는 뜻의 아호. 그렇다면 ‘주신대학교’는 은 무엇일까. 그는 이미 ‘대주신제국사’를 펴낸 바 있다. ‘주신’은 ‘고조선’에서 ‘조선’(朝鮮)의 이두음으로 풀이한다. 그는 ‘대주신제국사’에서 “바른 역사를 아는 것은 자긍심을 높이고,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이다. 우리 역사는 그간 너무 많이 왜곡돼 왔다.”면서 “이제 올바른 역사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고, 조국과 민족,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느껴보자.”고 말하고 있다. 주신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쉽게 설명을 덧붙인다. “예전부터 ‘한민족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려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포 사회에서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일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지요.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대학원 대학교 설립인가를 받아냈습니다. 현재 여러 학자와 임원들이 참여 준비를 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로스엔젤레스(LA) 에서 정식 출범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어디에 있든 같은 민족이다. 러시아, 일본, 미국 등에 있는 모든 한민족을 껴안아야 한다. 이제 그 역사를 가르칠 때가 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그다. 이런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국내외에서 ‘한민족사 대학교’를 설립하는 것 자체가 최초의 일이라는 점에서 일단 주목을 끈다. 내년 봄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이제 남은 것은 한민족사관을 가르칠 교과서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교과서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여러 차례 살폈으나 대부분 국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데다 민족사학도 제각각으로 통일이 안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김 화백이 앞장서서 ‘민족사 편찬위원회’를 만들고 현재 교과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범한민족사’(PAN KOREAN)란 제목으로 분량이 1500페이지에 달한다. 김 화백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에는 도서관이 4만 6000여 곳에 달하지만 한국에 관한 역사책이 없습니다. 적어도 미국의 각 주마다 한 권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고가 완성되면 영문판을 먼저 발간할 예정입니다.” 또 그는 “30년 이상 우리 한민족에 관심을 두고 작품활동과 그 중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역량을 이번 교과서 만드는 데 쏟아붓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사를 가르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사의 내용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란 글에서 ‘한’이 진정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을 아느냐고 반문한다. ‘한’은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 하느님’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한’은 곧 ‘천손족’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범위를 신시(神市), 단군조선에 뿌리를 둔 모든 종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즉, 부여, 고구려, 예맥, 옥저, 동예, 말갈, 여진, 만주족은 물론 훈족, 몽골, 거란족 등 우랄·알타이어계 모든 종족을 포함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북만주와 몽골지역을 다녀보면 이런 역사가 보인다.”면서 “우리는 신의 자손들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만큼 강력한 자긍심을 가진 나라는 없다. 중국을 올려다볼 것이 아니라 내려다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에서의 사업을 접고 한국에 다시 나올 때의 주목적은 우리 역사가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1978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중국 역사의 모든 비밀을 간직한 자금성에 걸려 있던 간판들을 보게 됐습니다. 왼쪽에는 한문표기로, 오른쪽에는 만주 글로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수년이 지나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정복자 만주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주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중국으로 흡수하려는 것이지요. 동북공정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민족사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런 까닭을 다시 물었더니 “우리 한민족사가 잊혀지고 있다. 누군가가 제자리에 갖다놔야 한다. 알고도 못하면 죄악이 아니냐.”고 단호하게 말했다. ●군사독재시절 창작의 자유 찾아 미국행 화제를 바꿨다. ‘라이파이’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으며 미국에는 왜 갔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6·25전쟁 때 부산 피란시절 대신동 인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만화에 빠졌다. 당시 일본만화 ‘밀림의 왕자’도 즐겨 보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다닐 적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극장에서 그림을 그려 학비를 벌었다. 이후 만화잡지 ‘만화세계’에 투고했고 게재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1957년 독립군 이야기를 그린 ‘황혼에 빛난 별’로 정식 데뷔를 했다. 이듬해에는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로 그렸다. 무엇이든 소재가 되면 작품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라이파이를 상상해냈다. 미국에는 슈퍼맨, 일본에는 아톰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들과 비견되는 것이 왜 없을까 하는 점에서 출발했다. 또한 1950년대의 우울하고 처참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수호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라이파이는 전쟁의 실의에 빠진 독자들에게 희망과 꿈의 상징처럼 다가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책이 나오는 날이면 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당시 정확한 판매부수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성경책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1966년 김 화백은 일본에서 출판제의를 받게 되면서 해외진출을 생각했고 기왕이면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미국행을 택했다. 때마침 군사독재 정권의 서슬퍼런 ‘검열’ 또한 국내에서의 작품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터였다. 이후 ‘산호’라는 필명을 김산호로 바꿨다. 만화작가 전문 출판사인 찰튼 코믹스의 전속작가로도 활동한 그는 미국에서 700여편의 작품을 그렸으며 특히 초기 서부활극을 그린 ‘샤이언 키드’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유령이야기’ ‘용녀’ 등 한국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 해외에 내놓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아지자 1988년부터 만주를 비롯한 고대사의 무대들을 직접 답사하며 한민족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우리 민족의 중심에서 세계를 보는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민족사에 대해 만화와 회화를 넘나들었다. 그의 화실에 이런 소재의 그림이 많은 까닭이다. 2003년 ‘라이파이 동호회’와 팬카페가 생겨나면서 ‘라이파이’도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산호 화백은…]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1957년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했다. 이후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작품으로 내놓았으며 1959년부터 1962년까지 한국 최초의 장편 SF만화 ‘라이파이’ 전 4부작 32권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핀 꽃’ ‘모비딕’ ‘유리천사’ ‘검은 박쥐’ ‘해뜨는 나라’ ‘청동마왕’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만화계에 동양풍의 만화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뉴욕 ‘찰스 코믹스’ 만화출판사에서 전속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미국에서는 ‘샤이안 키드’ 등 700여편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1974년 산호그룹 CEO에 취임해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1993년 한민족 역사 다큐만화인 ‘대주신제국사’ 1~3권을 발간한 뒤 2년후 완결편(4~5권)을 펴냈다. 이후 회화극본 ‘두만강’(1996), ‘한국 105대 천왕존영집’(2002), ‘백제, 일본, 그리고 왜’(2003), ‘단군조선’(2005), ‘부여사’(2007) 등 수십 권을 발간했다. 현재 주신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으며 이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범한민족사’(PAN KOREAN)를 집필하고 있다.
  • 공동조사단 “캠프머서 고엽제 검출 안 돼”

    경기 부천의 옛 미군부대인 캠프 머서의 지하수와 토양 시료에서 고엽제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민·관·군 합동조사에서 밝혀졌다. 캠프 머서 화학물질 매립 의혹을 조사해 온 민·관·군 공동조사단은 4일 국방부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히고 “다이옥신도 극미량만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공동조사단은 ‘캠프 머서에 화학물질이 매립됐다.’는 퇴역 미군의 증언에 따라 지난 6월부터 부대 내 14개 지점에서 20개의 토양시료와 지하수를 채취해 분석해 왔다. 공동조사단장을 맡은 이상훈 가톨릭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물질 21개 항목에 대해 서울대가 검사한 결과 국방·군사시설에 적용되는 토양오염 우려 기준을 초과한 시료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공인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서 시행한 다이옥신 분석 결과, 모든 시료에서 극미량이 검출됐을 뿐”이라면서 “검출된 양도 0.304~0.986pg-TEQ/g 농도로 미국 환경보호청의 주거지역 기준인 1000pg-TEQ/g의 1000분의1에서 1300분의1 수준이며, 전국 토양 다이옥신 평균 농도의 2분의1~7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수치는 소양강에 각설탕 2분의1개 정도를 녹였을 때 검출되는 양”이라면서 “더구나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 종류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공동조사단은 다만 토양조사 항목 중 PCB(변압기 등에 함유된 잔류성 유기오염물질)가 기준치(12㎎/㎏) 이내인 0.31㎎/㎏이 검출됐지만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오는 10일 PCB가 검출된 지역 등 4곳을 굴착 조사할 계획이다. 또 이번 환경 조사 결과에 대해선 8일 주민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용어클릭] ●pg-TEQ/g 다이옥신의 환경기준 단위. 피코그램(pg)은 1조분의1g, TEQ는 독성등가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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