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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한국이 왕따 당하고 있다는 우려/김경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국이 왕따 당하고 있다는 우려/김경홍 논설위원

    최근 정치인과 학자, 재미교포 등이 어울린 자리에서 이런 화제가 올랐다. 주한 미국대사가 공석이 된 지 석달이 다 됐는데 미국은 왜 후임자를 내정하지 않는가. 한 정치인은 “미국이 한국에 대해 심기가 불편하니까 대사 임명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라며 정부의 외교정책을 공격했다. 한·미동맹이 불안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는 상황이어서 그의 분석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미국에 거주하는 한 학자는 다른 분석을 내놨다. 미국이 대사를 임명하는 데는 절차가 있다는 것이다. 원칙과 프로세스의 문제이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잣대와 다르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렇지만 그도 미국이 한국에 대해 썩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는 동감했다. 한·미관계가 껄끄럽다는 일치된 지적들이 목에 가시로 남는다. 오는 6월11일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주요 의제는 북핵문제와 한·미동맹의 점검이 될 것이다. 북핵은 평화적 해결에 대한 공동노력을 약속받아야 할 문제다. 한·미동맹도 오해를 줄이고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외교통상부의 김숙 북미국장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얘기를 꺼냈다. 김 국장은 한 방송인터뷰에서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얘기를 나눌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금 한·미 정상회담에서 동북아균형자론을 꺼낼 때인가. 동북아균형자론은 발설 단계부터 웃음거리가 됐다. 균형자의 역할이란 싸움을 말릴 수도 있고, 붙일 수도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의 중재에 귀를 귀울이지 않고, 중국과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재자가 아니라 홀로 중간자가 되고 만 것이 현실이다. 외교는 힘이고 실리다. 구호나 주장만으로는 얻을 게 없다. 오죽하면 일본 외무성의 야치 쇼타로 사무차관이 “미국이 한국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고 있어 일본도 한국과의 정보공유 협력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겠는가. 분명히 야치 차관의 발언은 오만하고 비아냥거리는 투가 섞여있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한국이 이 발언으로 들끓으리라는 것도 염두에 두었음직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좀더 속내깊게 대처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정보협력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가. 당하고 있다면 어떻게 실리를 되찾을 것인가를 먼저 심사숙고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야치 차관의 발언을 전한 한나라당의 사과를 요구하고, 야치 차관의 문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심지어는 다음달 열릴 한·일 정상회담과 연계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내외에 온통 얼굴을 붉힌 꼴이다. 야치 차관의 발언은 외교관례상 무례임은 틀림없지만, 못할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의도야 어떻든 ‘쓴소리’로 받아들일 성숙한 외교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야치 차관의 발언은 독도나 교과서왜곡 문제와는 본질이 다르다. 정부의 정치적 대응에 속시원해 할 사람보다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최근 중국이 한국의 대북유화정책이 계속되는 한 북한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미국측에 전달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또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미국측이 의외로 냉랭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한 재미 인사는 워싱턴의 분위기가 과거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을 ‘디스 맨‘이라고 불렀을 때와 비슷하다고도 한다. 한국정부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적어도 왕따를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웃음 뒤에 칼날을 숨기고, 동쪽을 보면서 서쪽을 챙기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생산·저장·이용 3大기술 ‘관건’ 연료전지가 발전소 대체할 날도

    미래 ‘과학 한국’을 이끌 ‘원투 펀치’로 생명공학기술(BT)과 수소에너지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과학 및 경제의 ‘대들보’ 역할은 정보기술(IT)과 석유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의 진전으로 BT 수요가 IT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석유자원 고갈 및 환경오염 등에 직면한 인류는 차세대 청정에너지인 수소에 눈을 돌리고 있다.BT 산업 및 수소 경제를 앞당기기 위한 우리나라의 노력과 현주소를 살펴본다. ‘수소 경제’의 원리는 간단하다. 물(H2O)을 구성하고 있는 수소와 산소를 분해한 뒤 발열량이 석유와 석탄에 비해 2∼4배 가량 높은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이어 연소된 수소는 다시 산소와 결합, 물로 변하게 된다. 이처럼 수소 경제는 기존 ‘석유 경제’와 달리 환경오염이 없는 청정에너지를 무한정 이용할 수 있는 체계인 셈이다. ●수소 생산, 방식은 달라도 목표는 하나 수소 경제로 전환하려면 수소를 만들고 저장하고 이용할 수 있는 ‘3대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선진국은 이미 1990년대에 기술개발에 뛰어들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 관심을 갖기 시작, 선진국에 10년가량 뒤처진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와 연구기관, 민간기업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등 기술격차를 차츰 줄여나가고 있다. 먼저 지난 2003년 출범한 ‘수소에너지 제조·저장·이용기술 개발사업단’은 천연가스를 고온의 수증기와 반응시키는 열분해 방식으로 시간당 20㎥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수소자동차 4∼6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으로, 올해 안에 개발이 마무리된다. 이 때문에 대전 대덕연구단지에는 하루 10∼15대의 수소자동차에 연료를 충전할 수 있는 ‘수소충전소’도 설치됐다. 김종원 사업단장은 “내년부터는 태양이나 바람을 이용,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초고온가스로’(VTGR)를 이용한 수소 생산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다.VTGR는 원자로에서 섭씨 900∼1000도의 초고온 상태를 만들어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을 수 있다. 박창규 소장은 “100㎿나 300㎿급 VTGR를 제작, 연간 1만∼3만t의 수소를 생산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면서 “수소 3만t은 수소자동차 15만대에 연료를 공급하고, 연간 1000만t의 탄산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2016년쯤 VTGR를 이용한 수소 생산체제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소 경제의 핵심은 연료전지 수소개발사업단은 350기압의 고압 상태에서 수소를 저장하는 장치를 개발, 현재 성능 검증 절차를 밟고 있다. 김 단장은 “내년부터는 나노소재를 이용한 700기압의 저장장치 개발에 나설 계획”이라면서 “이는 일반 자동차의 주행거리와 맞먹는 연료를 저장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의 수소 저장 기술로는 350기압 이상으로 압축하거나, 섭씨 영하 253도의 극저온으로 ‘액체수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흔 교수팀은 수소를 얼음 속에 가둘 수 있는 원리를 세계 최초로 발견, 저장장치 제작비용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수소를 실제 이용하기 위해 자동차 제조업체와 정유사, 엔지니어링회사, 벤처기업 등이 핵심기술 개발에 속속 뛰어들어 있으며 그 중심부에는 연료전지가 자리잡고 있다. 연료전지는 연료의 산화에 의해 생기는 화학에너지를 직접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일종의 발전기다. 태양력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효율이 낮아 전기에너지로 전환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연료전지에 저장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고효율·고성능의 연료전지가 보편화될 경우 발전소가 없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가능성 때문에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오는 2030년 수소 연료전지 시장이 연간 1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맥락에서 삼성전자는 5∼10년 후를 대비해 연료전지 분야를 중점육성한다는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연료전지 개발과 실용화는 ‘수소연료전지사업단’이 주도하고 있다. 사업단은 오는 2012년까지 가정·건물·전력용 연료전지 시스템과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를 보급해 상품화한다는 구상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바이오산업 ‘황금알 거위’ 세계 바이오시장은 지난 2000년 기준 540억달러로 적지 않은 규모지만 반도체시장(1950억달러)에 비해서는 4분의1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에른스트 영에 따르면 바이오시장은 오는 2008년 반도체시장의 2.5배로 확대되는 등 여전히 ‘쑥쑥 자라는 아이’이다. 특히 세계 바이오기업 가운데 3분의1은 미국에 집중돼 있고, 현재 이들 기업이 세계 시장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아보인다. 그러나 국내 생명공학분야 과학자들이 ‘IT(정보기술) 혁명’에 이어 ‘BT(생명공학) 신화’를 엮어내기 위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줄기세포=바이오기술’은 고정관념 최근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이 인간 체세포 배아복제기술을 이용한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 당뇨병과 고혈압 등 난치병 환자를 위한 세포 치료의 길을 열었다. 이는 다른 국가에 비해 2년가량 앞선 기술로 평가받는다. 황 교수팀은 또 복제소와 광우병 내성소와 같은 복제동물 생산, 무균 돼지를 이용한 장기이식 연구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공학분야에서 이같은 바이오 치료 부문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생명공학=줄기세포’라는 고정관념도 생길 수 있지만,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이 가운데 ▲바이오 치료를 비롯,▲바이오 신약 ▲U(유비쿼터스)-헬스 ▲유전자변형생물체(GMO) ▲바이오 진단·분석기기 ▲바이오 환경·에너지 ▲바이오 공정 등 7개 분야가 유망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들 7개 사업의 세계 시장 규모가 오는 2010년 34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3년 미국이 주도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을 완전해독한 이후 세계 각국은 유전자 기능연구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유전자의 기능을 알면 단백질과 호르몬같은 생체물질을 활용해 신약 개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바이오기술을 적용한 항암제 ‘인터페론’의 경우 1g당 5000달러(한화 500만원)이며 이중 60%가 부가가치이다. 반면 256KD램 반도체는 1g당 360달러로 부가가치는 3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후 진행되고 있는 배추와 토마토, 고추, 미생물 등의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 및 기능분석에 적극 나서고 있다. ●BT분야 정부지원 절실 또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을 기반으로 의료 서비스를 손쉽게 받는 U-헬스도 주목받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우리나라의 초고속통신망 등 IT 기반기술을 활용할 경우 다른 국가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생명공학기술을 응용할 경우 미생물로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석유로도 만들 수 있는 등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 실제 생명공학 선진국에서는 이같은 기술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BT분야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려면 정부의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BT는 IT에 비해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크고 투자 회수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BT분야에 지원하는 예산은 모두 7086억원이다. 미국의 대표적 제약회사인 암젠사가 지출하는 연간 연구개발비가 1조원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투자가 뒷받침돼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②-구인회 3代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②-구인회 3代 경영

    지난달 19일 러시아 모스크바 출장길에 오른 구본무(60) LG 회장을 수행한 사람은 차장급 직원 한명뿐이었다. 계열사 사장들과 같이 가는 출장이 아니면 수행은 늘 직원 한명이 담당한다. 공항으로 임원들이 배웅이나 마중을 나오는 것도 금지한다. 구 회장은 지난 12일 LG 계열사 사장단 20여명과 함께 국내사업장 ‘혁신투어’를 나서면서 자신의 차량인 ‘벤츠S600’을 놔 두고 대형 관광버스 2대를 빌렸다. 사업장간 이동중에도 사장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지난 2003년에도 구 회장은 버스로 2박3일간 전국의 사업장을 누볐다. 이처럼 ‘격식’을 따지기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구 회장을 두고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평이 따라다닌다. 사람좋아 보이는 눈웃음 등 구 회장의 외모도 이같은 이미지 구축에 한몫했다. ●몸에 밴 검소한 생활 구 회장의 소탈한 모습은 아버지 구자경(80) 명예회장이나 할아버지인 고 구인회 창업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구인회 회장은 창업초기인 40년대 후반 부산 서대신동 시절 활동하기 편하다며 미군 파카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외출할 때를 제외하곤 공장내에서 늘 입고다녀 소매가 닳고 기름때가 반지르르 묻은 옷이었다. 구 회장은 또 비싼 담배와 싼 담배를 같이 갖고 다니면서 손님에게는 좋은 담배를 권하고 자신은 값싼 담배를 피웠다.“돈이란 벌 때 아껴야 하는 법”이라는 지론이다. 사돈이자 동업자인 고 허준구 회장도 당시 판매와 구매일을 맡으면서 수금하러 거래처를 다닐 때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찰떡궁합’인 셈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사업장이나 계열사 사무실을 즐겨 찾았는데 어떤 때는 사전통보없이 불쑥 고객서비스센터 등 현장을 방문해 생생한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럭키증권(현 우리투자증권) 객장을 방문했을 때는 고객들이 좁은 객장에서 불편을 겪고 있는데 반해 임원실이 한 부서보다 큰 것을 보고 “무슨 임원방이 내 방보다 커요?”라며 질책을 했다고 한다. 이같은 소탈한 이미지 때문인지 LG의 회장들은 삼성이나 현대에 비해 강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시사저널’이 지난해 발표한 가장 영향력있는 기업인 순위에서도 구본무 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은 물론 현대차 정몽구 회장보다 순위가 낮았다. 재계에서 LG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대차그룹보다 낮지 않은데도 그룹총수의 영향력은 현대차가 높게 나온 것이다. LG관계자는 구 회장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구 회장은 1995년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는 허씨와의 동거기간이었고 2년전까지만 해도 삼촌뻘 되는 집안어른들이 계열사 사장을 맡고 있었다. 또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직격탄을 맞았고 99년에는 반도체 빅딜로 주력사업을 빼앗기는 고초를 겪었다. 사실 구 회장의 총수로서의 경영능력은 올해부터 검증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LG의 상징, 인화(人和) 구인회 창업회장은 포목상, 청과·어물전, 운수업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 47년 럭키크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인생을 걸었다.6형제의 장남(4명의 여자형제도 있었으나 일찍 사망함)이자 6남4녀의 아버지가 하는 사업을 돕기 위해 초기 가족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영도 대부분 가족이나 사돈(허씨)들이 도맡아 했다.47년 락희화학 설립당시 생산담당이었던 김준환씨를 제외하면 구 회장, 부사장 고 구정회(둘째 동생)씨, 영업담당 허준구(첫째 동생 철회씨 사위)씨 등으로 사실상 ‘가족기업’이었다. 이후에도 아래로 다섯 동생과 여섯 아들, 조카, 허씨들이 대거 경영에 참여했는데 LG의 ‘인화정신’은 이같은 독특한 가족사와 무관치 않다. 친인척들을 잘 다독여 가며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를 경영이념으로 발전시킨 것이 인화다. 창업회장부터 내려온 인화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과 함께 했던 방송사업. 구인회 회장은 60년대 초반 사돈인 고 이병철 삼성회장으로부터 방송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50대 50 합작으로 64년 ‘라디오서울’과 ‘동양TV’를 설립했다. 하지만 방송사 경영이 시원치 않은 와중에 두 그룹에서 파견된 임직원간 알력이 심해졌고 결국 TV는 LG가 라디오는 삼성이 맡아서 하기로 잠정 합의를 봤다. 이후에도 TV와 라디오 사업의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구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 회장을 만나 TV사업까지 삼성에 넘기기로 결정한다.LG내부에서는 불만이 많았지만 구 회장은 사돈간의 ‘불화’가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80년대에는 택배사업 진출을 계획했다가 사돈과의 정리를 생각해 포기했다. 당시 기획조정실에서는 21세기 물류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택배사업을 유망한 신규 사업으로 선정, 일본의 택배사업을 벤치마킹하고 계획을 수립했지만 사돈인 한진그룹에서 택배(한진택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구자경 회장이 사업중단을 지시했다.LG와 한진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의 2녀 명진(41)씨가 한진그룹 고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하면서 사돈으로 맺어졌다. ●창업주의 사람들 구인회 창업회장은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배우다 열네살때인 1921년에야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한다.24년에는 서울로 상경,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녔지만 19세때인 26년 처가에서 보내주던 학비가 끊기고 본인의 뜻도 있어 낙향, 사업의 꿈을 키운다. 구 회장은 사업을 키워가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했고 동생들은 좋은 학교를 졸업한 뒤 형의 사업을 성심성의껏 도왔다. 한때 구씨, 허씨 일가가 너무 많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구씨, 허씨들 가운데는 경영능력을 갖춘 이들이 적지 않았다. 창업회장의 동생들은 초창기 외국원서를 번역해 기계 작동법을 알아내고 수출, 기술도입 등 형이 할 수 없는 해외업무를 도맡아 했다. 첫째 동생 고 구철회씨는 형과 함께 첫 사업인 포목상 ‘구인회상점’을 세웠고 둘째 고 구정회씨는 동경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남도청 토목과에 잠시 근무하다 형의 사업을 도왔다. 구태회(82) LS전선 명예회장은 일본 후쿠오카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마쳤다. 그는 경영보다는 정치권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4대 민의원과 6,7,8,9,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구평회(79) E1 명예회장은 진주고보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마치고 51년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진주고보와 고려대 상대,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일은행에서 잠시 일하다 63년 금성사 상무로 입사했다. ‘골프멤버’였던 사돈인 이보형 제일은행장·홍재선 전경련 회장·경방 김용완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 등도 구인회 회장과 교우가 깊었다. ●제2의 창업주 구자경 명예회장 구자경 LG명예회장은 삼촌인 구평회 명예회장과 진주고보에 같이 입학한 뒤 진주사범을 마치고 고향인 지수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50년까지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는데 제자들 중에는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 사장,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부인인 한인옥씨 등이 있다. 구 명예회장은 한씨에 대해 “얼굴도 예쁜데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신 전 부의장은 모 TV프로그램에 출연해 구 명예회장에게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구 명예회장은 50년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지만 공장에서 현장 근로자들과 같이 먹고 자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구인회 회장은 생전에 왜 장남을 그토록 고생시키느냐는 질문에 “대장장이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데도 담금질을 되풀이해 무쇠를 단련한다. 내 아들이 귀하니까 저렇게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덕분에 그는 현장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69년 12월31일 구인회 회장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직후인 1970년 1월6일 열린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은 본인의 경영 퇴진과 구자경 당시 금성사 부사장의 회장 추대를 제안했고 이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통과됐다. 구 회장 취임 이후 1년간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준 사람은 삼촌인 고 구정회 사장이었다. 조카를 ‘보필’하는 삼촌은 LG가의 저력을 잘 말해준다. 구자경 신임회장은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인화단결과 상호협조를 통해 그룹의 부드러운 기업풍토를 조성하는데 힘쓰고 급속한 확대보다는 내실있는 안정적인 성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락희화학, 금성사 등 11개 계열사를 갖고 시작한 구자경 회장은 95년 2월 이임할 때까지 LG를 한차원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취임 첫 해인 70년 520억원에 불과하던 그룹매출은 94년 30조원을 넘어섰고 수출은 3100만달러에서 147억달러로 474배나 늘어났다. ●늘 꿈이었던 농사일에 매진 구 명예회장은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겨주면서 “앞으로 여의도 본사에는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할 것이다. 모든 경영은 신임 회장에게 맡긴다.”고 약속했다. 구태회·평회·두회씨 등 창업주 형제들과 허준구·허신구 회장도 고문으로 물러났다. 충남 천안의 ‘천안연암대학’으로 내려간 구 명예회장은 버섯재배 등에 심혈을 기울이며 10년전 약속을 지키고 있다. 주중에는 천안에 머물다 주말에는 서울 성북동 집으로 올라오는데 매주 월요일에만 트윈타워로 출근한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 집무실인 30층 대신 32층으로 직행, 본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복지재단·문화재단 업무만 보고 오후에는 천안으로 내려간다.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구 회장 얼굴을 보지 않고 그냥 가는 경우가 많다. 분재, 장미재배를 거쳐 버섯재배로 이어진 구 명예회장의 왕성한 취미활동은 요즘 된장, 생면, 만두 등 유기농 먹을거리로 확대되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선친이 두산, 경방그룹 회장과 함께 1956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발족한 ‘단오회’와 진주중 15회 동창회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있으며 능성구씨 대종회장을 맡고 있다. 단오회에는 김각중 경방 회장,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 선친을 치료했던 이동렬 박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진주중 동창인 고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도 생전에 절친한 사이였다. 고 정주영 회장도 전경련 회장단 활동 등을 통해 남다른 친분을 쌓았다. ●20년 경영수업 받은 ‘구병장’ 구본무 회장은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재벌 총수 가운데 현역 출신은 쉽게 보기 어렵다. 보병으로 만기 제대후에는 미국 애슐랜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때인 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사업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부서로 사업전반을 이해할 수 있음) 과장으로 입사했다. 당시 심사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구 회장의 ‘핵심참모’인 강유식(57) ㈜LG 부회장이다. 강 부회장은 청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72년 럭키에 입사했다.97년 회장실(구조조정본부)로 소속을 옮겼고 99년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으면서 그룹 구조조정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진두지휘했다. 구 회장은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럭키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고 83∼84년에는 도쿄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입사 10년만인 85년에야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95년 회장 취임사에서 ‘초우량 LG’를 약속했던 구 회장은 인터넷, 홈쇼핑, 이동통신, 통신 등에 잇따라 진출하며 사세를 넓혀갔고 필립스와 합작으로 LCD사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빅딜’과 ‘LG카드 사태’로 반도체, 금융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1등LG를 이끄는 사람들 지금까지 LG그룹을 상징해 온 ‘인화’는 구본무 회장 대에 이르러 사실상 ‘일등주의’로 바뀌었다.LG는 그동안 ‘인화정신’이 결코 ‘온정주의’가 아니라고 항변해 왔지만 삼성그룹에 비해 LG그룹의 분위기가 다소 느슨해 보인 것은 사실이다. 요즘 LG가 거의 매일 쏟아내는 ‘강한 승부욕’,‘독종정신’,‘다이내믹’ 등은 LG가 온건하고 점잖은 반면 보수적이고 느린 조직에서 ‘환골탈태’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구 회장이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를 김쌍수(60)부회장에게 맡긴 것도 생활가전사업을 1등으로 만든 그의 ‘뚝심’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부진을 면치 못하던 휴대전화 사업을 ‘비전문가’인 박문화(55) 사장에게 맡겨 새로운 도약을 주문했다. 오디오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박 사장은 LG의 ‘광스토리지’ 사업을 7년 연속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LG에서 독립한 다른 친척이나 형제와 달리 주력사인 LG필립스LCD 부회장을 맡고 있는 둘째동생 구본준(54) 부회장 역시 1등에 대한 집념이 남다르다. 경복고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온 구 부회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미국 AT&T를 거쳐 86년 금성반도체에 입사했다. 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빼앗기다시피 넘겨주는 것을 눈으로 지켜본 뒤 99년부터 LG필립스LCD 대표를 맡아 세계적인 LCD업체로 키워왔다. ●숨어있던 승부사기질 발휘되나 소탈하고 인자해 보이는 구 회장의 이면에는 무서울 정도의 집념과 승부욕이 도사리고 있다는 평이다. 구 회장의 집념은 그가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무려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조류학’에 조예가 깊은 것에서 잘 나타난다. 중학교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 집에 데려와 치료해 준 인연으로 새에 관심을 갖게 된 구 회장은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낼 정도로 새에 관해서는 전문가다. 여의도 LG트윈빌딩에 둥지를 튼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구 회장의 각별한 보살핌덕에 무사히 새끼를 낳은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동생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도 최근 ‘사진으로 보는 한국야구 100년’을 발간할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닌데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은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 거의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가 있는데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구 회장은 연습장에서 충분히 연습하지 않고 무작정 골프장에 나타나는 초보자를 무척 싫어한다고 한다. 더 싫어하는 부류는 ‘트리플보기(이븐파보다 3타를 더 치는 것)’를 하고도 ‘히죽히죽’ 웃는 사람이다. 다시는 트리플보기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계열사 사장들을 평가할 때도 이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구 회장은 특별히 운동에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끈질기게 연습에 매달려 한때 핸디캡 5∼6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고 한다. 환갑을 맞은 지금도 핸디 8∼9 정도를 친다. 구 회장은 지난 3월 구 명예회장 시절 선포한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에 ‘1등LG’를 더한 ‘LG Way’를 새로운 기업문화로 천명했다.10여년에 걸친 계열분리를 마무리지은 구 회장은 ▲고객이 신뢰하는 LG▲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LG▲인재들이 선망하는 LG▲경쟁사들이 두려워하면서도 배우고 싶어하는 LG를 목표로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의 집념과 승부사기질이 앞으로 어떻게 발휘될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해 동국제강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할 정도로 장세주 회장과는 친분이 깊은 편이다. 장 회장의 숙부인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딸 인영(37)씨가 구 회장의 당숙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와 결혼해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만화가 허영만씨와도 교류가 있는데 허씨는 인기작 ‘식객’에서 구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맛있는 삼계탕을 사주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단출한 네식구 구 회장은 72년 김태동 전 보사부 장관의 딸인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닌 ‘재원’으로 서구적인 외모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시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은 “보수적인 며느리를 원했는데 맞고보니 맏며느리는 개방적이고 아래 며느리들이 보수적이었다. 뒤바뀐 감도 없지 않지만 그만하면 잘 맞는 편”이라며 만족하는 분위기다. 구 회장 부부는 금슬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내외’가 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이 주말에 곤지암에서 골프를 치다 부인이 일행들과 골프를 치는 것을 보고 나무랐다는 일화도 있다.LG 소유인 곤지암은 주말에 주로 계열사 임원들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애용하는데 ‘회장 부인’이 나오면 임원들이 불편해 한다는 이유다. 김씨가 다른 그룹 회장 부인과 달리 미술관을 맡지 않은 것이나 여의도 트윈타워에 한번도 나오지 않은 것도 LG가의 엄격한 ‘단속’ 때문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양자로 들인 구광모(27)씨와 연경(27)·연수(9) 두딸을 두고 있다. 광모씨는 병역특례인 산업기능요원으로 국내의 한 IT솔루션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올해 병역을 마치면 미국 뉴욕주의 로체스터 인스티튜트공대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양자로 입적된 뒤 ㈜LG와 LG상사 지분을 대폭 늘려 ‘경영승계’가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하지만 LG측은 “광모씨의 양자입적은 ‘제사 지낼 장손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4세 경영’과는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연경(27)씨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26)씨와 함께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붓감’이다. ukelvin@seoul.co.kr ■3공화국서 “소총 만들어보라” 권유 구인회 “유망해도 무기는 싫다” 거절 LG화학은 한때 자회사를 통해 ‘비데’사업을 하다 그룹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타일, 욕조 등 욕실 인테리어사업에 비데를 함께 취급하면 고객들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시작했지만 구본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첨단기술로 해외시장을 노리는 제품도 아닌데 돈이 된다고 해서 ‘품위’에 맞지 않는 제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LG에서 계열분리된 지 1년이 지난 지난해 말에도 LG카드의 부실이 해결되지 않자 채권단은 또 한번 LG그룹의 지원을 요청했다.LG측은 “이미 1조원이 넘게 지원을 한데다 그룹에서 분리된 회사를 무슨 근거로 지원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구 회장의 ‘결단’으로 출자전환을 결정했다. 구 회장은 LG카드 기업어음(CP)을 갖고 있던 친척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해가며 출자를 부탁했다고 한다. 삼성과 공동으로 시작했던 방송사업을 넘겨준 것이나 택배사업 진출을 계획했다 직전에 포기한 것도 ‘사돈간의 불화’로 세인들의 지탄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LG가 이처럼 ‘세간의 평판’을 신경쓰는 것은 엄격한 유교가문의 장손인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구인회 회장은 도박이나 술 등 사행산업은 물론 이른바 ‘먹고 마시는’일과 연관된 소비성 사업, 부동산 투자도 금지할 정도로 엄격했다. 나중에야 필요에 의해 인터컨티넨탈호텔을 설립했지만 한때는 호텔사업도 LG의 ‘금지리스트’에 올라 있을 정도였다.3공화국 당시 정부로부터 “소총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도 “우리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은 고마우나 아무리 유망한 사업이라도 무기는 만들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을 정도다. 하지만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같은 ‘체면 경영(정도경영)’은 자칫 수익성 좋은 사업 기회를 놓칠 수 있고 공격적인 확장에도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LG관계자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일등할 생각은 없다.”면서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갖추면 무리한 방법을 쓰지 않아도 고객들이 인정해준다는 것이 구 회장의 지론”이라고 말했다. ukelvin@seoul.co.kr ■구씨 3대의 반도체 인연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합병돼 설립된 하이닉스반도체의 ‘새 주인’이 누가될 것인지를 놓고 재계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매각대금이 3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 대형 매물의 유력한 새 주인으로 전 주인인 LG가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LG는 하이닉스 인수설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검토할 일도 없다.”며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40년 가까운 구씨 3대의 반도체 인연이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LG는 구인회 창업회장 생전인 69년 미국 NSC의 기술제공으로 반도체 회사인 금성전자를 설립했다. 초대 사장은 구자두 현 LG벤처투자 회장이었다. 금성전자는 1차 오일쇼크 등으로 73년 금성사에 흡수합병되면서 주춤했지만 74년 삼성 이건희 회장(당시 동양방송 이사)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 등에 ‘자극’받아 75년 반도체팀을 만들고 미국 AMI와 합작 공장을 설립하는 등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79년에는 대한전선의 대한반도체를 인수, 금성반도체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초대 회장은 구자경 현 명예회장, 사장은 이헌조 현 LG그룹 고문이었다. 금성반도체는 이후 85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1메가롬(ROM)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고 금성일렉트론으로 이름을 바꾼 뒤 90년 1메가 D램,91년 4메가 D램을 잇따라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LG는 98년 정부의 ‘빅딜정책’의 ‘희생양’이 되면서 반도체사업을 현대그룹에 양보하게 된다.99년 1월6일 청와대를 방문한 구본무 회장은 전자사업이 주력인 LG에 반도체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지만 이미 현대측과 ‘얘기’가 끝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귀에 구 회장의 ‘절규’가 들릴 리 만무했다. 이날 밤 이헌조, 변규칠, 성재갑 등 LG의 원로들이 마련한 위로자리에서 구 회장은 모처럼 통음을 했다. 일부에서는 구 회장이 ‘통곡’을 했다고 하지만 ‘통한의 눈물’을 보인 정도였다는 것이 당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서울 한남동 구 회장의 집앞에 진을 친 기자들은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구 회장을 붙들고 ‘소감’을 물었고 구 회장은 “다 버렸습니다.”는 말로 3대를 내려오며 30년간 이어진 반도체와의 인연을 정리했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열린세상] 중국의 패권주의/강승호 인천발전연구원 한중교류센터장

    최근 ‘차이나 딥 임팩트’론이 번져가고 있다. 넓은 영토와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중국은 동북아 허브를 지향하는 한국의 자리를 빼앗아 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중국의 적극적인 해외진출로 한국이 딥 임팩트(deep impact)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즉 중국기업에 의한 무차별적인 한국기업 M&A가 이루어지고, 해외진출한 한국기업의 빈 자리를 중국기업이 차지하면서 국내시장마저 점령당하는 심각한 경제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중국은 1980년대 외국기업을 유치하여 90년대 대외교역에서 수출 경쟁력을 높였다. 두번째 단계를 거쳐,2000년 이후 3단계에 들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아시아 각국에서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가공 후 구미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구조를 창출하였다. 생산과 수출 두 영역에서 아시아 허브 역할을 굳히고 있다. 두 영역에서는 이미 한국이 동북아 허브를 지향할 틈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딥 임팩트론은 중국을 경제상의 패권주의로 보는 시각으로도 연결된다. 작년 하반기 고구려사 왜곡 사실이 여론화된 이후 중국을 패권주의(중화패권주의)로 보는 경향이 증대하였고, 최근에는 중국기업의 해외진출을 산업 패권주의라 규정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중국으로의 일방적인 한·중간 자본흐름도 변화하고 있다. 중국기업이 하이디스 LCD·쌍용자동차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기업이 중국에 매각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다른 구미자본이 한국기업을 인수하는 경우에 비해 심하며, 언론조차도 균형을 잃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중국은 상대적으로 고용 흡수력이 높고 국내 파급효과가 크다는 이유로 조립 최종재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 부품중간재 수입관세를 저세율로 하는 정책을 운용해 왔다. 그결과 기업들은 저임금에 기초하여 부품을 수입, 단순조립하는 데만 신경 쓰고 원천기술 개발과 확보에는 뒷전이었다. 그러나 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한·중, 한·중·일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논의되면서 기술개발에 뒤진 중국기업들이 관세인하 후 강화될 외국의 최종재생산 기업의 공세를 회피할 대응방안으로 부품·중간재 기술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응용기술이 뒤지는 중국기업들이 국제경쟁을 하기 위해서 그나마 중간정도의 기술을 보유한 구조조정 대상의 한국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기업에 의한 우리기업 인수는 우리 산업의 구조조정을 돕는 측면도 강하다. 양국이 서로 윈-윈하는 성격이 더욱 강하다. 투자·무역 두 영역에서 한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이 높아지고 있다. 투자를 매개로 한 한·중 관계는 이미 기술·무역을 중심으로 이미 50년간 지속되어온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넘어서서 의존이라기보다 통합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의 관계로 치닫고 있다. 통합도가 커지면서 발생할 기회를 적극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회를 잘 활용하려면 모방이나 복사가 아닌 독창적이고 자체적인 시각과 전략을 가져야 한다. 과거 모방의 시대에 우리는 독자적인 시각을 갖지 못한 채 미·일을 통해 세계(글로벌)를 보아왔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자체적인 발전 전략은 가지고 있는지 자문할 때이다. 미·일 등 선진국 기술도 한국을 경유하지 않고 우회(bypass)하여 중국으로 이전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온갖 전시회가 열리는 중국에서 세계시장의 신조류를 접하며, 기업가들도 해외 바이어를 중국에서 만나고 있다. 중국과의 통합도가 높아지면서 또 다른 대국인 중국을 통해 기회를 엿보다 보면 발생할 수 있는 ‘시각의 중국화 경향’은 글로벌 시대를 보는 우리의 자체적인 시각을 잃게 만들고,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체질에 저해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염려하기 전에 우리 내부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승호 인천발전연구원 한중교류센터장
  • 힐 ‘동북아균형자론’ 비판

    6자회담 미국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우범지대론’을 피력하며 북핵문제 및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한·미간의 미묘한 갈등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힐 차관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관련,“과거에, 아마도 지금은 아니겠지만”이라고 전제한 뒤 “내가 한국인이라면 우리는 과거 우범지대(high-crime neighborhood)였던 곳에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에서는 몇 백년 동안 수많은 침입과 전투, 심지어 파멸을 가져오는 전쟁과 곤경이 있었다.”라고 우범지대론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내가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면 스스로에게 ‘멀리 있는 강대국과 특별한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힐 차관보는 6자회담 참가국들 사이 이견에 대해 “우리는 잘 협력하고 있으며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신문은 기사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미국·일본은 강경조치를 선호하는 반면 한국·중국은 이에 반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한·중 입장을 지지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화려한 성장… 짙은 그림자

    화려한 성장… 짙은 그림자

    ‘화려한 성장 뒤의 짙은 그림자’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이 땀흘려 거둔 경영 성과를 빗댄 말이다. 재무구조, 수익성, 성장성은 1960∼70년대 개발시대의 고도성장을 넘볼 정도로 알찬 결실을 거두었으나, 대기업-중소기업, 수출-내수기업의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곳간에 돈(66조원)만 잔뜩 쌓아놓고 앞날을 예측못해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현실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한국은행이 16일 발표한 ‘2004년 기업경영분석 결과(연간 매출액 25억원 이상 5437개 업체 대상)’에 따르면 제조업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7.8%로 전년(4.7%)보다 3.1%포인트 올랐다.65년(7.9%)이후 40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수출호조 등으로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개선(6.9%→7.6%)된 데다 영업외수지가 금리하락 및 차입금 감소 등으로 매출액 대비 -2.2%에서 0.2%로 개선된 덕분이다. 경영을 잘해 제조업의 현금보유 비중도 지난해 9.7%(60조원)에서 9.9%(66조원)로 10% 올랐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LG전자, 포스코,SK㈜ 등 5대 기업의 현금보유는 12조 6000억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04.2%로 전년말(123.4%)에 비해 19.2%포인트 떨어졌고, 전 산업 부채비율은 114.0%로 미국·일본보다 낮았다. ●제조업, 양극화 골 더 깊어졌다 대기업(제조업)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6.0%에서 10.2%로 4.2%포인트 높아졌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2.3%에서 3.3%로 0.8%포인트 상승하는데 그쳤다. 대기업이 1000원어치 팔아 102원을 남겼다면 중소기업은 33원에 그쳤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5대 기업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17.0%로 전년(10.9%)보다 크게 뛰었다. 반면 중소기업 중에서도 연간 매출 500억원 미만인 기업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이 1.9%에서 2.0%로 미미한 상승에 그쳤다. 특히 수출비중이 50%를 넘는 기업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4.9%에서 9.3%로 오른 반면,20% 미만인 기업은 4.6%에서 4.7%로 올라 수출비중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몸만 살찌우고 뛰지 않아 걱정 문제는 기업들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계·설비를 비롯한 유형자산의 전년대비 증가율이 2003년 1.7%에서 4.8%로 높아졌다. 하지만 투자가 활발하지 못해 기업들의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유형자산의 비중은 2002년 43.2%,2003년 41.6%,2004년 40.6%로 3년째 연속 하락했다. 한은 기업통계팀 이상현 차장은 “기업의 재무구조 등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데 비해 내수기업 및 중소기업의 성과가 미진하고 기업의 투자가 미미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최공필 박사는 “기업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경제전반에 선순환구조가 흔들릴 우려가 크기 때문에 투자활성화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끝나지 않은 ‘특허전쟁’

    지난해 국내 전자업계는 외국기업들의 ‘특허소송’을 이용한 ‘견제’에 시달려야 했다. 삼성SDI 대 후지쓰,LG전자 대 마쓰시타전기의 PDP특허분쟁은 타결됐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도 캐나다의 모사이드가 제기한 반도체 특허소송을 원만하게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거의 매일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전자업계에서 소송은 일상적인 일이어서 남아있는 특허소송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삼성, 특허도 일상적인 경영으로 최근 특허업무를 우발적인 업무가 아니라 경영의 한 축으로 격상시킨 삼성전자는 특허분야 전문인력을 대폭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특허변리사, 특허업무 경력자, 해외 특허변호사, 기술가치 평가전문가 등 수십명을 특허 경력직으로 채용할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에 앞서 윤종용 부회장이 특허중시 경영방침을 밝히면서 250여명 수준인 특허전담 인력을 2010년까지 450명으로 늘리는 한편 변리사, 미국 특허변호사 등 자체 인력의 교육, 양성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특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기술중심 경영’으로 전환하기 어렵다는 분석에 따른 조치다. ●기업들 특허분쟁 잇따라 삼성전자는 지난해 특허사용료로 1조 3000억원을 지불하면서까지 가급적 특허분쟁을 피하려 했지만 적지 않은 소송에 걸려 있다. 2002년 마쓰시타전기가 미국 뉴저지 연방법원에 제기한 3억달러 규모의 D램 특허소송은 아직 진행중이고 지난해에는 미국 위스콘신대학 동문연구재단(WARF)이 반도체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국내에서도 자사 직원이 제기한 휴대전화 문자입력 방식인 ‘천지인’ 특허 침해 소송은 합의로 끝냈지만 2002년 11월 발명가 조모씨가 제기한 900억원대의 소송은 아직 타결짓지 못했다. LG필립스LCD와 타이완 CPT의 특허분쟁도 한치 양보없는 ‘자존심 대결’로 비화되고 있다. LPL은 지난 2002년 8월 CPT와 모회사인 타퉁(Tatung)이 LCD 공정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제소했다.2004년 5월에는 델라웨어 연방법원과 영국 특허법원에도 소송을 냈다. CPT측은 2004년 6월 오히려 LPL이 미국의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반소(Counter-claim)를 제기한데 이어 지난 1월에는 LPL이 자사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내는 등 맞불작전을 펴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도 램버스사와 램버스D램 특허소송이 진행중이고 도시바와도 플래시메모리 특허분쟁을 벌였다. ●사후분쟁보다는 사전예방 이처럼 특허소송이 봇물을 이루자 전자업계는 분쟁의 소지를 아예 없애버리는 예방책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소니와 미국, 일본, 한국 등 전 세계에 등록된 상대방 회사의 특허 대부분을 별도의 협상 과정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포괄적 특허제휴’를 맺어 무려 2만건이 넘는 특허에 대한 분쟁을 미리 방지했다.LG전자도 지난 1월 마쓰시타와 PDP특허분쟁을 마무리지으면서 DVD와 PC부문까지 특허공유를 확대키로 합의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2) 서강대학교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2) 서강대학교

    서강대 법학과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여느 명문 법대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40명 정원의 법학과가 매년 10명 안팎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합격자 수만 놓고 보면 국내 대학 중 10위권의 성적이지만, 정원대비 합격비율을 따져보면 4위권의 성적을 자랑한다.‘소수정예’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다. 정원은 단 40명. 설립 17년째로 전통을 말하기도 어렵다. 웬만한 대학들이 법과대학으로 승격시켜 규모를 늘리고 있는 마당에 예전의 법학과 그대로다.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다. 그래도 명색이 장안의 명문대인데 서강대 법학과의 단면은 어찌보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서강대 법학과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여느 명문 법대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40명 정원의 법학과가 매년 10명 안팎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합격자 수만 놓고 보면 국내 대학 중 10위권의 성적이지만, 정원대비 합격비율을 따져보면 4위권의 성적을 자랑한다.‘소수정예’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다. ●“가족적 분위기로 교육효과 배가” 이 대학 법학과는 지난 1988년 설립됐다. 설립 당시 학생 40명으로 출발해 17년이 지났지만 정원엔 변함이 없다. 규모는 매우 단출해도 덕분에 교육효과가 높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이다. 일례로 서강대 법학과 교수진들은 학생 한명 한명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한다. 대규모 강의가 아니라 소규모 강의로 진행되다 보니 가능한 일이다. 교수진과 학생 간의 친분이 돈독해 수업 시간 외에도 개별지도가 언제든 가능하다. 동문들은 “교수진들의 배려로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지도’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며 질적인 측면에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수업 강도 역시 만만치 않다. 학교측은 “한 학기에 과목당 10번 이상 시험을 치르고 있다.”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외에 수시로 시험을 봐서 학생들의 공부정도를 평가하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높은 사시 합격률은 성의있는 강의와 학생들의 학구열이 만들어 낸 ‘합작품’인 셈이다. ●내년부터 100명으로 정원확대 하지만 로스쿨 유치를 코앞에 두고 내실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는 게 학교측의 판단이다. 때문에 우선 내년부터 현재 40명인 정원을 1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또 학생 수가 늘어나는 만큼 교수진도 충원한다는 방침이다. 학교측에 따르면, 올해 전반기에 5명의 학자출신 교수진을 충원하고, 후반기에도 실무 전문가를 7명 정도 뽑기로 했다. 로스쿨을 위한 전용공간의 확보도 놓칠 수 없는 부분. 최근 공사를 시작한 6500여평의 복합관 중 3000평 정도를 로스쿨 전용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오는 2006년 말쯤 완공될 복합관에는 대형강의실과 세미나실, 모의법정, 로스쿨전용도서관 등 첨단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동문들까지 힘모아 지원 서강대 법학과측은 지난해 연말에야 비로소 로스쿨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일부 법대들이 이미 10년 전부터 추진한 것에 비하면 한참 늦었다. 하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 학교측이 고민을 다소 덜게 됐다. 서강법조동문회가 지원군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법학과 출신, 서강법조인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의 서강동문들로 구성된 로스쿨추진후원회가 올해 초 발족돼 후원행사 등을 통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후원회 공동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원규 법학과 동문회장은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로스쿨 유치에 도움을 주기 위해 모이게 됐다.”면서 “금전적인 부분과 더불어 서강대가 다른 대학과 다른 특색있는 로스쿨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고민을 함께 나눌 것”이라고 소개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로스쿨, 경영대학원과 통합 검토” 홍성방 법학과장 서강대 법학과는 로스쿨을 유치하게 되면 경영대학원과 통합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홍성방 법학과장은 15일 “서강대가 경쟁력을 자랑하는 경영대학원과 로스쿨을 통합,JD(법학)와 MBA(경영학) 학위를 동시에 취득할 수 있도록 통합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기존의 핵심분야를 적극 활용해 기업법무분야를 특화시키겠다는 얘기다. 그뿐만 아니라 법률시장 개방에 발맞춰 국제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미국·일본 등의 예수회 대학들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홍 학과장은 “서강대가 예수회 대학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예수회 대학과 관계가 긴밀하다.”면서 “이들 대학과 연계체제를 갖춰 교환학생제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교육만으로 국제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1년 정도 현지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서강대 법학과측은 특히 예수회 대학 중에서도 일본의 상지대학과 미국의 조지타운대에 관심을 두고 있다. 홍 학과장은 “로스쿨을 유치하더라도 상지대학이나 조지타운대처럼 작은 규모의 로스쿨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측에서 정원을 결정할 수 있다면 100명 정도의 입학정원이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한다.”면서 “법학과가 그래왔듯이 로스쿨도 숫자경쟁이 아닌 교육의 질로 최고를 추구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스쿨 역시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소수정예로 운영하겠다는 것이 서강대 법학과측의 바람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서강대 출신 80여명 가운데 13명이 연수원생 ‘젊은 법과’ 법조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서강대 출신은 80여명 정도.8명의 검사와 12명의 판사가 재직 중이고, 변호사는 5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제 막 법조계에 진출한 ‘신참’들이다. 서강대 출신 사시 합격자 87명 가운데 13명이 아직 사법연수생의 신분이다. 법학과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이들 서강대 동문들은 “서강법조의 탄탄한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까지는 미약하지만 잠재력을 기반으로 서강법조의 명성을 쌓아가겠다는 각오다. 서강대가 배출한 법조인 1호는 안승규(65학번) 변호사다. 안 변호사는 사시 19기로 수원지검, 부산지검, 서울고검, 부산고검, 청주지검 등을 거쳐 인천지검 부장검사를 끝으로 18년간의 검찰생활을 마쳤다. 현재 인천에서 활동중인 안 변호사는 서강대에 법학과가 개설되기 훨씬 전 독학으로 사시에 합격한 케이스. 그는 “법조계에 입문했을 때 주위에 동문이 없어 외롭게 검찰생활을 했지만, 최근 후배들이 대거 법조계에 진출하는 걸 보면 든든하다.”고 자랑했다. 법학과 출신으로는 장현우(사시 41회) 변호사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88학번인 장 변호사는 법과 1회 졸업생. 그는 모교 법학과에 대해 “역사는 짧지만, 학구적인 면모로는 최고”라고 치켜 세웠다. 장 변호사는 또 “동문 법조인들의 경력이 짧다보니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전문성은 아직 갖추지 못했지만, 서강 출신들은 학풍의 영향으로 법조인의 공익적 역할에 많은 고민을 한다.”고 소개했다. 역시 법학과 1회 졸업생인 이원규(사시 42회) 변호사는 서강대 법학과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강점으로 꼽았다. 이 변호사는 “규모가 작다 보니 교수진과 학생들간의 관계가 가족 못지않게 가깝고, 학생들도 개인 가족사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면서 “면학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97학번으로 막내뻘인 최모(사시 42회) 검사도 돈독함을 첫손에 꼽았다. 신참 검사로 실명을 밝히기를 조심스러워한 그는 “교수진과 학생간의 단합된 힘은 서강대 법학과의 원동력”이라며 “동문들도 1년에 분기별로 만나 학교와 법학과의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등 졸업한 뒤에도 조직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돈독함을 자랑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동문들은 특히 “합격자 수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합격률은 최고 수준”이라며 실력에 대해서도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씨줄날줄] 주권국가/이목희 논설위원

    ‘주권국가’ 개념은 근대 유럽에서 태동한 것이다.1648년 30년에 걸친 신·구교도 전쟁을 마무리짓는 웨스트팔리아강화조약이 체결됐다.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영향력이 유명무실해면서 유럽은 독립주권을 가진 민족국가들로 재편됐다. 유럽에서 출발한 주권국가 개념을 청-조선-일본 등 다른 지역 역사에 획일적으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현재도 주권국가의 잣대가 모호하긴 하지만 유엔 가입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유엔이 창립되던 1945년 회원국 숫자는 51개국에 불과했다. 지금은 191개국으로 늘었다.2차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이 그만큼 많았던 셈이다. 하지만 10억 이상의 인민을 포괄하는 중국 공산당 정권은 1971년에야 유엔에서 대표권이 인정됐다. 이후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 중이며, 타이완의 유엔 복귀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중국과 달리 동서독은 1973년, 남북한은 1991년 유엔에 동시가입했다. 앞서 서독은 “동독을 나라로 승인한 국가와 외교관계를 단절한다.”는 ‘할슈타인원칙’을 폐기했다. 남한도 1990년대부터는 북한의 정치적·국제법적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은 주권국가”라고 다시 강조했다. 북한은 인구가 2000만명을 넘는다. 강력한 통치체제를 확립하고 있고, 유엔 회원국이다. 그런데도 ‘주권국가’라는 언급이 새삼스럽게 들리니 북한 지도부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남측의 유연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미국·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북한 지도부의 외교 무능 내지 개방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유럽은 이미 주권국가의 틀을 뛰어넘고 있다. 유럽공동체를 만들어 경제 국경을 없애고, 정치 통합까지 추구하고 있다. 동북아도 경제·안보 공동체가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미국·일본으로부터 주권국가로 인정받게 한 뒤, 그를 또 뛰어넘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지도부는 북한의 국제법상 후진성을 감안해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언사는 북한 지도부를 더욱 껍질 속으로 움츠리게 할 뿐이다. 북한을 진정한 주권국가로 여긴다면 북·미 수교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풀린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정년퇴직 반대’ 전세계 확산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정년퇴직에 대한 반대여론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 HSBC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액티브에 의뢰해 미국, 일본, 중국, 인도, 프랑스, 브라질 등 10개국의 1만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0%의 응답자가 ‘연령에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출산율은 낮아지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면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퇴직 연령을 높이는 것’이라는 의견이 45%로 가장 많았다. 세금을 올리자는 응답은 26%, 연금수령액을 낮추자는 의견은 15%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71%는 은퇴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노후에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14%에 머물렀다.‘이상적인 노후생활’을 묻는 질문에는 60% 이상이 일과 여가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존 본드 HSBC 회장은 “고령화 사회에 따른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각국 정부와 기업, 금융기관들은 이런 새로운 추세를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노후생활을 바라보는 관점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다. 인도에서는 생존을 위해 노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중국에서는 노년층은 노후를 휴식기간으로 여기지만 청년층은 더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일본인들은 건강과 가정생활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미국인들의 64%는 은퇴를 ‘새로운 기회’로 인식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사설] ‘폭력 공화국’ 오명 벗을 때 됐다

    최근 한 인기 개그맨이 방송국 후배들에게 건방지다고 ‘원산폭격’을 시키면서 각목 등으로 때려 경찰에 입건됐다. 후배 한 사람은 전치 6주의 상처까지 입었다고 한다. 방송국 옥상과 분장실에서 여러 차례 폭행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우발적인 다툼으로 보기도 어렵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도 문제지만 폭력을 조직 사회의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크게 우려된다. 우리 사회는 폭력에 대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주변의 폭력에 대해 무감각한 일면도 있다. 조직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 등도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운동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로부터 폭행당했다는 고발도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주위에 폭력이 없는 곳이 없다. 국회에서도 폭력사태가 빚어지고 시위현장에서도 폭력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어느 집단이나 이름 뒤에 ‘폭력’이라는 수식어만 붙이면 이미 익숙한 용어가 돼 버리고 만다. 최근 정부가 학교, 조직, 사이버, 정보지 폭력을 4대 폭력으로 규정하고 총력전에 돌입한 것도 폭력이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내고 있다. 경찰의 통계에서도 살인, 강도, 절도 등 주요 범죄는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보다 적은데, 폭력은 일본의 10.4배, 독일의 3배, 미국의 1.7배나 된다고 한다. 급한 민족성이나, 그릇된 음주문화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여전하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 폭력을 미화하는 어떤 시도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 사법 당국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국민 모두가 폭력의 감시자가 돼 ‘폭력 공화국’의 오명을 씻어야 한다.
  • [씨줄날줄] 인공하늘/육철수 논설위원

    지금이 제아무리 첨단 과학시대라 해도 자연현상을 인위적으로 거역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아주 옛날에는 고약한 날씨 탓에 애꿎게 희생된 왕들도 꽤 많았던 모양이다. 고대 이집트의 농경사회에서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부족장이나 왕을 죽여 하늘의 노여움을 풀었다고 한다. 하늘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자가 자연현상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조선시대의 왕들도 가뭄·홍수 때 자신의 부덕을 탓하며 근신하거나 기우제 등을 지냈는데, 연산군만은 “자연재해는 자연재해일 뿐 통치행위와는 무관하다.”며 신하들의 근신요청을 용감하게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날씨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생활 대부분을 지배한다. 경제적으로는 ‘날씨경영’이란 말도 생겨났을 정도다. 우리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의 50% 이상이 날씨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영향받고, 미국·일본에서는 GDP의 70∼80%가 날씨의 영향권에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세계적 대행사에서도 날씨는 가장 신경쓰이는 요소였음에 틀림없는 것 같다. 엊그제 모스크바에서 열린 2차 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에서 붉은광장 군사퍼레이드 직전 러시아 공군이 장대비를 뿌린 구름을 걷어내고 화창한 하늘로 바꿔놓은 것은 압권이었다. 하기야 내로라하는 세계 60여개국의 정상들과 5000여명의 국제 귀빈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어느 하늘이라고 감히(?) 비를 내려서야 되겠는가마는…. 러시아 공군은 이날 새벽부터 비행기 11대를 투입해 모스크바 외곽 50㎞ 지점에서부터 150㎞까지 10개 구간으로 나눠 3000∼8000m 상공의 ‘구름제거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기술 또한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46년 미국 시카고에서 첫선을 보인 인공강우(人工降雨)는 이미 보편화됐지만 구름을 소산(消散)시켜 쾌청한 하늘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구름소산도 인공강우처럼 요오드화은(AgI)이나 드라이아이스를 구름에 뿌리는 점은 같지만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구름의 온도와 양, 높이와 깊이, 얼음덩어리의 수, 여기에다 바람의 속도 등을 정밀하게 측정해서 드라이아이스 등으로 구름의 세력을 약화시킨 뒤, 자연 바람에 의해 구름이 흩어지도록 하는 원리라고 한다. 모스크바의 푸른 ‘인공하늘’은 자연현상에 도전한 과학기술의 작은 승리이자 각국 정상들에겐 최고의 예우였을 것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소비심리 다시 꺾이나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심리가 주춤거리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4개월만에 하락세로 돌아서 경기회복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전망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평균소득 400만원 이상의 소비자기대지수가 106.9로 전월보다 4.1포인트 떨어져 하락폭이 가장 컸다.40대 이상 연령층은 기준치인 100 아래로 떨어졌다. 전체 소비자기대지수는 101.3으로 2개월 연속 100을 넘었지만 3월(102.2)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었다. 소비자기대지수는 지난해 12월부터 상승, 지난 3월 30개월만에 처음으로 100을 넘었다. 소비자기대지수가 100을 넘으면 6개월 후의 경기나 생활형편 등이 현재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는 소비자가 나빠질 것으로 보는 소비자보다 많다는 뜻이다.6개월전과 비교해 현재의 경기, 생활형편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를 나타내는 소비자평가지수는 90.2를 기록,4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고소득층의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은 자산가치가 하락한 원인이 컸다.6개월전과 비교해 현재의 자산가치를 묻는 질문에 토지 및 임야, 금융저축, 주식 및 채권의 가치가 전월보다 떨어졌다고 답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발표한 4월 경제동향에서 민간소비 침체가 완화되고 있고 고용여건도 부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가 둔화되고 있고 유가는 오름세를 지속하는 등 대외여건 불안으로 경기가 빠른 시일 안에 회복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X게임 최강 가리자

    X게임 최강 가리자

    중력을 무시한 듯 하늘로 솟구쳐 올라 몸을 비트는 어그레시브 인라인스케이터들과 스케이트 보더들, 행여 고꾸라지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이면서도 묘기에 숨 죽이는 관중들…. 액션스포츠 마니아들에게 꿈의 무대로 자리잡은 X게임(익스트림 스포츠)대회가 국내에서도 열린다.‘아시안 X게임2005’(총상금 14만달러)가 국내 최초로 오는 26일부터 나흘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일대에서 치러지는 것. 한국과 미국·일본 등 14개국에서 예선을 통과한 300여명의 선수들이 5개종목 11개 부문에서 경쟁을 펼칠 X게임의 세계로 빠져보자. ●어그레시브 인라인스케이트 90년대 중반부터 보급돼 현재 450만여명이 즐길 정도로 전국민의 스포츠로 자리잡은 인라인스케이트의 일종. 평지에 장애물과 기물을 설치한 뒤 자유로운 연기를 펼치는 ‘파크’(경기시간 60초)와 파이프를 자른 U자형 원통 모양의 거대한 기물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재주를 겨루는 ‘버트’(50초) 두 부문으로 나뉜다. 고난이도의 기술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킬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스케이트보딩 X게임 종목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1959∼)와 두터운 마니아층을 자랑한다. 이번 대회에선 파크(60초)와 버트(45초)부문이 나뉘어 치러진다. 기술의 난이도와 독창성은 물론 경기장을 넓고 높게 사용할수록 후한 평가를 받는다. 짧은 시간에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현란한 묘기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게 포인트. ●BMX 프리스타일 80년대 초 BMX(Bicycle Motorcross) 레이싱에서 시작됐고, 버려진 스케이트파크를 발견한 일부 선수들이 공중묘기를 비롯한 스턴트를 선보이면서 ‘프리스타일’ 쪽으로 급속히 퍼졌다. 전용 자전거로 묘기를 펼치며 파크(75초)와 버트(60초) 및 플랫랜드(90초) 부문이 별도로 있다. ●웨이크보딩 1985년 탄생한 뒤 20년도 안돼 전세계 레포츠 마니아들을 사로잡은 신종 수상 레저스포츠로 국내 동호인만 5만여명에 이를 정도로 확장일로에 있다. 서핑과 스케이트보드에 수상스키가 접목된 것으로 모터보트에 보드를 연결한 뒤, 보트가 만들어낸 인위적 파도를 점프대 삼아 360도 회전과 점프 등 묘기를 뽐내 우열을 가린다. ●스포츠 클라이밍 국내 인공암벽 200여개, 동호인구만 5만여명에 달할 정도로 폭넓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포츠클라이밍은 남녀 볼더링 부문으로 나뉘어 열린다.‘물에 쓸려 둥글게 닳은 바위’를 의미하는 볼더가 곳곳에 박혀 있는 5m 이내의 인공 암벽을 오르는 것으로 암벽내에 홀드(볼더링 사이에 이동 숫자)를 많이 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고, 동일 점수 때에는 빠른 시간안에 이동한 선수가 좋은 점수를 받는다. 아시아 최정상급 클라이머인 손상원(23)과 김자인(17·여)이 우승을 노린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민지홍감독 ‘숲속의 이야기’ 뉴욕 로체스터영화제 수상

    |뉴욕 연합|한국의 신예 민지홍(30) 감독이 만든 영화 ‘숲속의 이야기’가 지난 5∼7일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열린 제47회 로체스터 국제단편영화제에 입선작으로 뽑혀 ‘슈스트링 트로피’를 받았다. 단편영화 진흥을 위한 민간단체 ‘무비스 온 어 슈스트링(저예산 영화라는 뜻)’이 주최하는 로체스터 단편영화제는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 단편영화 축제로 영화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올해에는 미국·일본·스페인 등 21개국에서 98개 작품이 출품돼 경합을 벌인 끝에 민 감독의 ‘숲속의 이야기’ 등 28편이 입선작으로 선정됐다. 입선작 중에는 에미상을 수상한 크리스 맨시니, 빌 매클로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단편만화 영화감독 돈 허치셀트 등의 작품도 포함됐다. 민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 편집한 ‘숲속의 이야기’는 숲속의 낡은 집안에 잠든 채 앉아 있는 한 여인과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민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심사위원단과 관중으로부터 동양적인 신비로움을 가진 흥미롭고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 제조업 부채비율 ‘사상 최저’

    경기침체 장기화로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지난해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부채비율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 미국·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개선된 가운데 대기업의 수익성은 좋아진 반면 중소기업은 악화돼 양극화가 심화됐다. 8일 산업은행이 국내 123개 제조업종 3175개 업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2004년 기업재무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107.5%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의 141.2%, 일본의 145.5%를 훨씬 밑도는 수치다. 부채비율이 낮아진 것은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과 수익성 향상 영향도 있지만 그만큼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제조업의 전년대비 매출액 증가율은 16.9%로 2000년 18.4%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순이익 규모도 사상 최대인 43조원으로 전년대비 57.8% 증가했다. 그러나 설비투자와 관련있는 유형자산 및 기계장치 증가율은 각각 5.6%,5.4%로 매출액 증가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전년대비 12.1%포인트 하락한 95.4%였으나 중소기업은 전년(137.9%)과 비슷한 132.8%였다. 부채비율이 낮아지면서 제조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사상 최대인 76조원으로 추정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매출액 중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매출액영업이익률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대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9.5%로 전년의 8.3%보다 1.2%포인트 높아진 반면 중소기업은 4.3%로 0.7%포인트 하락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사설] 북한, 핵실험은 절대 안된다

    아무리 치열한 대치상태에서도 지켜야 할 선을 넘으면 외교적 해결은 물건너간다. 북한이 지금 지켜야 할 선은 핵실험 자제라고 본다. 미국 언론들은 북한이 함북 길주에서 지하 핵실험 준비를 진행시키는 징후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미국내 강경파가 대북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한 것일 수 있지만, 핵실험의 위험성이 너무 크기에 북한에 거듭 자제를 요청할 수 밖에 없다. 미 CIA에서 요직을 지낸 아서 브라운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서울과 도쿄의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한국내 외국계 기업들은 철수나 사업축소를 저울질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북아경제가 얼어붙는 것을 넘어 미국의 대북 봉쇄나 무력개입이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일본뿐 아니라 남한과 타이완에서도 핵무장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동북아의 앞날은 그야말로 풍전등화 처지가 된다. 이런 불안을 야기한 북한은 어떤 나라로부터도 동정을 받을 수 없으며, 김정일 체제 유지가 어려운 쪽으로 급격히 빠져들 개연성이 있다. 북한은 핵 관련 추가조치를 삼가라는 우리 외교당국자들을 비난했다. 이제까지 한국과 중국 정부는 미국의 강경제재를 말리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그럴 명분이 없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대남공격을 삼가야 한다. 북한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위협용으로 핵실험 준비 모습을 일부러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그 역시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미국내 네오콘들이 이라크전과 같은 군사개입 명분을 만드는데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한·중 정상회담, 오늘 한·러 정상회동 등 6자회담 불씨를 살려 북핵을 해결해 보자는 정상급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북한이 극단적 행동을 자제해야 한국·중국·러시아가 미국·일본이 강경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핵 실험설을 덮으려 하지 말고, 미국과 정보공조를 통해 철저한 사전·사후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 日 핵융합실험로 유치 포기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유치의 포기를 전제로, 관계국과 조정에 들어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복수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4일 보도했다. 유럽연합(EU)과 유치경쟁을 하면서 유치국가의 건설비용 부담이 예상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일본측은 공사수주와 직원확보 등 상응하는 이익을 챙긴 뒤 유치계획을 포기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 소식통은 “일본과 EU의 합의가 이달 중 정리되는 쪽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일본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ITER의 건설지는 프랑스 마르세유 인근의 카다라시가 유력해졌다고 전했다. ITER는 태양에서 발생하는 핵융합 반응을 지상 시설에서 가능케 해 여기서 나오는 에너지를 추출하는 실험시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과 EU, 중국, 러시아 등 6개국이 50억달러를 투입해 올해 10년에 걸쳐 건설할 예정이며 일본과 EU가 실험로 유치를 둘러싼 경쟁을 벌여왔다. 한국과 미국은 일본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를,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하는 EU는 프랑스 카다라시를 각각 지원했다. 팽팽한 접전을 벌여왔던 일본측이 유치 포기로 선회한 것은 비용문제가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지난해 6월 차관급 협의에서 롯카쇼무라 유치를 목표로 실험료 건설비용의 유치국 분담비율을 48%에서 58%로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EU측도 같은 제안으로 응수, 결과적으로 유치국의 비용부담만 커지고 말았다. 이에 일본은 지난해 9월에는 비유치국가의 경우 10%의 부담으로 20%의 공사수주가 가능한 방안을 제안,EU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양측은 조만간 각료급회담을 열어 합의작업을 진행한 뒤 6개국 각료급회의를 개최, 실험로 건설지를 확정지을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미국 등 지지국들과의 조정에 나설 방침이다. taein@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수사권 독립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수사권 독립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독립 문제를 놓고 한치의 양보없이 맞서고 있다. 정권교체기마다 제기됐던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는 여지없이 경찰의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도 이상의 권력은 내놓아야 한다.”고 언급한데 이어 자신이 직접 토론회에 참석해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때문에 벼르고 벼르던 경찰은 공세의 강도를 높이며 이번에야말로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따지고 보면 건국 이래 경찰은 수사에 있어서 검찰의 지시를 받는 부하에 불과했다. 형사소송법에도 검찰의 지휘권이 명시돼 있어 경찰서장이 검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지휘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경찰도 자체적인 수사 역량이 많이 강화됐다고 자부하고 있다.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고도 스스로 사건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기존의 권한을 내놓을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경찰의 역량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권중 일부는 경찰에 넘기기로 합의된 상태다. 검찰과 경찰이 다투는 35개 안건 가운데 민생관련 범죄에 대한 경찰의 사실상 수사종결권 부여 등 19개 항목에는 합의를 했다. 그러나 현재 검·경이 다투는 것은 형사소송법 195조와 196조에 관한 것이다. 형소법 195조는 수사 주체를 검사로,196조는 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조항을 폐지 또는 개정하면 경찰은 더 이상 검찰의 명령과 지휘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대등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 조항이야말로 수사권 조정 분쟁의 핵심이다. 다음은 경찰 자질론이다. 검찰은 우수한 법학도들이 사법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검사로 구성돼 있지만 경찰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지금은 경찰대학에서 우수 인력을 배출한지 20년에 이르고 경찰학과가 수십개 대학에 설립되어 있으며 일반 경찰직도 경쟁률이 매우 높다는 점을 들며 반박한다. 인권보호 문제가 있다. 검찰이 수사 지휘권, 기소 독점, 교정 및 보호관찰까지 많은 권한을 장악, 권력을 독점화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하고 권력형 부패를 유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음에는 사건을 실질적으로 초동 수사부터 다루는 주체가 경찰이라는 점과 경찰에서 조사받은 뒤 검찰에서 다시 조사받는 이중수사에 관한 지적도 있다. ●경찰의 주장 자치경찰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이 부여되어 있다. 검사를 수사 주체자로 하고 경찰은 수사보조자로 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찰이 전체 범죄 약 150여만건의 96.7%를 처리하고 있음에도 보조자에 불과하다. 둘째, 범인 검거와 증거수집에 대한 책임을 경찰이 부담하고 수사 지휘를 하면서도 검사가 수사 주재자로서 권한을 가져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다. 셋째, 소수의 검사로 연간 150여만건에 이르는 범죄 수사를 지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넷째, 경미한 사건도 검사의 검토와 판단을 거쳐야 해 사건처리가 지연되고, 사법경찰이 작성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어 이중조사를 받아야 해 국민의 부담이 가중되고 시간적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 다섯째, 행정자치부의 외청인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도록 하는 것은 정부조직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경찰의 인권침해나 법률소양 부족 및 법 적용의 형평성과 일관성 상실을 우려하여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영장실질심사 제도 도입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고, 고시 특채, 경찰대생 등 고급 인력이 대거 충원됐다.(경찰청 김학배 수사기획심의관=요약) ●경찰 수사권 독립 반대 수사권이 과도하게 행사될 때 인권은 심각하게 위협당할 수 있다. 인권침해의 위험이 있는 곳에는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러 단계를 거쳐 중첩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다. 경찰은 수사 외에도 정보·보안·작전·경비·교통·방범 등 광범위한 치안 공권력을 행사하는 최대 권력기관이다. 그런데 전체 15만 경찰중 10%에 불과한 1만 6000명의 사법경찰만이 수사에 국한하여 검사 지휘를 받는다. 결코 검사가 전체 경찰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다. 법률 전문가인 검사의 수사 지휘는 국민들의 편익 증진에 기여한다. 검사가 연간 76만건의 수사권 조정 대상 사건중 5만건만 지휘함으로써 경찰은 93%의 사건을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수사권이 이원화될 경우 동일한 범죄에 대해 수사권이 항상 경합되고 충돌하게 된다. 무분별한 수사 경쟁으로 국민들이 불필요한 수사를 당할 수 있다. 또한 수사권 충돌을 조정할 장치가 없어 중요 사건마다 수사 주체 문제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경찰 체제에서 경찰권이 견제되지 않는 초권력으로 등장할 경우 야기될 폐해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남용될 수밖에 없다.(대검 김회재 수사정책기획단장=요약) ●어느 방향이 옳은가 검찰이나 경찰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양보와 타협이 없이는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두 기관 모두 간과하고 있는 것은 똑같은 권력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수사권을 독점한 검찰도 정권의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경찰 또한 수사권을 갖게 될 때 상위 권력과 상급자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보장은 없다. 인권침해의 가능성은 어느 기관이나 갖고 있다. 국민들은 검찰과 경찰 모두 불신하고 있다. 국민들은 수사권을 누가 갖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얼마나 올바르게 행사하느냐에 더 큰 관심이 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갖고 가서 부당하게 사용한다면 그대로 두는 것만 못할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권한이 지나치게 검찰에 치우쳐 있는데 따른 문제점은 간과할 수 없다. 요컨대 수사권을 누가 갖고 있던간에 오남용을 막기 위한 철저한 감시 통제 체제가 제도적으로 갖춰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열린세상] 균형자의 딜레마 탈출법/ 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 언론인

    북미간 핵 줄다리기가 한반도에 팽팽한 긴장감을 던져주고 있다. 불필요한 안보 불안심리 확산으로 지목될까 저어되긴 하지만 1950∼60대 ‘유비무환 세대’의 걱정과 궁금증이 한껏 고조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 측이 언론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 임박’‘북한 봉쇄책 검토’등 으스스한 시나리오들을 흘리면서 걱정이 증폭되고 있다. 미측의 강공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 우선 염려되지만 북한측 역시 지도부의 속내를 헤아리기 힘든 데다 대단히 당찬 자세를 보이고 있어 불안감을 더해 준다.6자회담에 대해 “우리도 핵보유국이니 대등하게 핵군축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미국과 맞대결로 나서는 북녘 동족의 높은 기백에 박수를 보내야 할지, 핵무기만은 예외라며 미측과 보조를 맞춰야 할지 ‘균형자’의 입장은 우선 난처할 수 있다. 핵이라는 미묘한 성격 때문에 북의 혈맹 중국도 어정쩡한 입장이다. 그래서 한반도 주변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해 보인다. 무엇보다 6자회담을 외면한 채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북한 지도부의 대시가, 그간의 수차례 ‘북핵사태’ 때처럼 벼랑끝 외교로 커다란 실리를 챙기겠다는 것인지, 이번에는 기어이 핵무기 보유국 반열에 들어 그에 부합하는 대접을 받겠다는 것인지 점치기 힘들어 우리를 불안케 한다. 실제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어느 강도로 대응하고 나설지, 미국의 조치에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견제력이 어느 정도일지 헤아릴 수 없어 염려는 배가된다. 우리는 지난 91년 핵무기의 제조-보유-저장-배치-사용을 포기하고 핵연료 재처리 및 농축시설 보유까지를 포기한다는 비핵선언을 한 바 있다. 그간 다소 ‘불편한 관계’로 변한 한·미 양국간 안보협력 체제 아래 핵우산 보호가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같은 혼선 속에 북한이 파키스탄처럼 슬그머니 핵보유국이 되어버리고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 보호에 손 내밀기도 난처한 처지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유비무환 세대의 악몽일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며 북핵문제와는 별개로 개성공단 등 경협 사업을 조용히 추진하고 있다. 그나마 남북한 신뢰를 쌓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신뢰 구축에 다소 차질이 생기는 한이 있더라도 핵에 관해서만은 우리의 강력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북핵은 미국이 아니라 우선 남쪽 동포들의 심각한 불안 요인이라는 점을 강력히 따져야 한다. 이것이 답답함에서 비롯된 국민 불안의 한 해소책이 될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필두로 한반도 주변국의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로 북핵문제를 푸는 방안이 아직 모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불편한 한·일 관계도 재고될 때가 되었다. 충분치는 않지만 고이즈미 일 총리의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에서의 공개 반성, 사과 천명과 이해찬 총리의 ‘실천 중요’ 쐐기발언으로 양국간 마찰은 일단 쉼표를 찍을 때가 됐다. 독도의 ‘실효적 점유’에 하등의 변함이 없고 교과서 왜곡 문제는 계속해서 추궁, 시정해 나갈 성격의 문제라는 논리에서다. ‘대외관계에 있어 할 말은 한다.’는 정책을 마다할 국민은 없다. 다만 그 원칙의 일관성이 지켜져 미국·일본뿐 아니라 북한에도 핵문제 같은 반드시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강대국 아닌 ‘강소국’ 입장에서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자임하려면 상대국을 가리지 않는 일관성 원칙에 철저해야 한다. 또한 대안이 확고해지기 전에 기존 우방과의 협력의 틀을 서둘러 깨 위기나 불안을 자초하는 일은 없도록 대비하는 가운데 북에도 할 말은 따끔하게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은 아울러 균형자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황병선 청주대 초빙교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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