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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中 초기 피말린 권력투쟁… ‘對美전쟁’을 돌파구로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中 초기 피말린 권력투쟁… ‘對美전쟁’을 돌파구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은 절대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마오쩌둥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동이 틀 때까지 줄담배를 피웠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듯 중국과 한국 지도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갈수록 중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타이완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미군과 정면충돌을 피하고 싶었다. 그는 이번 전쟁의 승패가 가져올 정치적 여파를 꼼꼼히 계산했다. 미군이 참패를 맛볼 것이라고 확신했다. 국공내전을 치르느라 쇠약해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미국의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를 속속들이 파헤친 ‘콜디스트 윈터’에서 묘사한 중국 참전결정의 전야(前夜)이다. 중국 주력부대의 압록강 도하 시간은 1950년 10월19일 오후 5시30분이었으니 18일 밤 상황인지도 모른다. 진위를 떠나 핼버스탬은 마오쩌둥의 번민을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 중국군 개입은 한반도 내전을 순식간에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시킬 수 있는 도화선이었다. ●마오 결정은 중국을 위한 선택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마오쩌둥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 숱한 해석과 이론이 난무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한국전쟁 참전의 대의명분은 ‘미국에 대항해서 북한을 돕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제7함대를 파견해 타이완해협을 봉쇄하고,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6월27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성명에 정면대항하는 이른바 ‘미·중 전쟁’의 선전포고였다. 중국을 목표로 한반도, 타이완, 베트남 등 3개 루트를 통해 침투하려는 미국의 ‘삼로향심우회(三路向心迂回)’ 전략에 맞서려는 의도였다. 마오쩌둥은 미국이 이들 3개 지역을 차지하고 나서 궁극적으로는 중국본토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참전 배경과 결정과정은 그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설득에 따라 공산진영을 지키려는 마오쩌둥의 고독하고 영명한 결정이라는 정도밖에. 그러나 최근 공개된 러시아와 중국 측 비밀자료를 보면 마오쩌둥은 신생 중화인민공화국과 자신의 운명을 건 주사위를 한국전쟁을 향해 내던졌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은 마오쩌둥의 독단적 선택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중국은 이 같은 사실을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았다. 전쟁의 명분과 결과만 얘기했다.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의 실마리는 ‘조선인 사단’의 귀환 동의에서 찾을 수 있다. 개전 초 김일성이 파죽지세로 낙동강 전선까지 공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해방군에서 귀환한 3만 5000명 규모의 조선인 장병의 공이 컸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국 동북 3성 거주 조선족으로 구성된 2개 사단(2만명)을 통째로 북한에 넘겼다. 이들은 인민군 5, 6사단으로 편성됐다. 1950년에는 나머지 부대원 1만 5000명을 또 귀환시켰다. 이들은 국공내전에서 실전을 쌓은 백전노장들, 인민군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마오쩌둥, 스탈린과 한국전쟁’을 쓴 화동 사범대 선즈화 교수는 “북한에 대한 마오쩌둥의 동정과 지지를 보여준 조치”라고 분석했다. ●조선인 해방군 3만여명 北에 넘겨 본격적인 참전준비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7월부터 치밀하게 이뤄졌음이 중국 측 자료에 의해 새롭게 드러났다. 참전이 최종 결정된 10월19일까지 넉 달 가까이 피 말리는 내부투쟁이 중국 지도부 사이에서 벌어졌다. 7월7일 ‘미국의 조선 무장침략 후의 정세분석과 중국의 국방 증강대책’이라는 국방군사 회의가 열렸다. 13일에는 한국에 투입될 30만명 규모의 동북변방군 창설이 결정됐다. 가상 적국은 미국이었다. 8월4일 당 중앙 정치국회의에서 마오쩌둥은 “미국은 한반도와 타이완, 베트남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미국과 교전할 작정이다.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전투규모가 크든 작든 혹은 원자폭탄을 사용하든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라고 결사항전의 비장한 선언을 했다. 동북변방군은 출동할 때 ‘의용군’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조선인민군 복장을 착용하며, 인민군의 깃발을 내걸고, 주요 간부의 이름도 조선인 이름으로 바꿨다. 해방군 정예부대인 제4야전군이 주축이 된 의용군은 ‘준비된 군대’였다. 참전 초기 연합군을 무서운 속도로 밀어내며 연전연승한 것은 연합군의 실책도, 운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매복, 위장 등 한반도 북부 산악지형에 맞는 전술을 훈련을 통해 몸에 익혔기 때문이었다. 30만 의용군이 오로지 인해전술로 북진 중이던 13만 연합군을 물리쳤다는 건 냉전시대 교육의 산물이다. 9월 참전 구상이 세워졌지만 시기는 계속 연기됐다. 마오쩌둥도 저우언라이 총리와 린뱌오 등 지도부의 거센 반대를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중국의 문서보관소인 당안관(?案館)자료와 내부적으로 발간된 ‘건국 이후 마오쩌둥의 문고(文矯)’ 등에 따르면 중국 지도부는 혼란을 겪었다. 린뱌오는 “중국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을지도 모르고, 승리 가능성이 작다.”라는 이유로 출병을 반대했다.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일본 도요가쿠엔대학 지안롱 교수는 저서 ‘모택동의 한국전쟁’에서 10월4일과 5일 정치국 회의 참가자 중 찬성과 반대의 세력분포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찬성자는 마오쩌둥 혼자뿐이었고, 불명확한 사람은 저우언라이 총리와 펑더화이 사령관 두 명이었으며, 나머지 7명은 반대했다는 것이다. ●中 독자출병 소식에 스탈린 눈물 그러나 마오쩌둥은 10월5일 정치국 회의에서 “어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어떤 곤란이 있더라도, 미군이 평양을 점령하기 전에 출병해야 한다.”라고 밀어붙였다. 펑더화이를 의용군 총사령관에 추천한다고 발표해 버렸다. 세 번이나 번복된 참전이 최종 결정됐다. 이후 냉전체제가 해체돼 한국전쟁의 주역인 스탈린과 마오쩌둥, 그리고 김일성 사이에 오간 극비문서들이 공개되기 전까지 중공군 참전과정의 진실은 서고 속에 묻혀 있었다. 김일성에게 베이징의 개입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크렘린은 계속 베이징 지도자에게 미루고 있었다. 중국의 참전소식은 나흘 뒤인 10월8일에야 평양에 전해졌다. 초대 평양 대리대사를 지낸 차이청원은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그것 잘됐다, 잘됐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마오 주석과 당 중앙에 나와 조선 당, 인민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해 달라.”라고 기뻐했다고 적고 있다. ’ 앞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으로 패주하면서 중국 망명정부 수립을 준비 중이던 김일성은 10월1일 ‘경애하는 마오쩌둥 동지’ 앞으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위험상태를 극복할 수 없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직접 출동해 지원해 달라.”라고 애걸복걸하는 편지를 보낸 상태였다. 중공군의 참전결정이 차일피일 늦어진 것은 소련군의 공군지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였다. 보병은 중국, 공군은 소련이 맡는다는 것이 애초 양측의 합의사항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 총리를 모스크바에 보내 공군지원을 요청했으나 ‘준비 불충분’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중국 측 연구자들은 이를 ‘스탈린의 배신’이며 추후 중·소 갈등의 뿌리가 되었다고 본다. 또 소련공군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중국의 독자출병소식을 들은 스탈린은 눈물을 흘렸다고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몇 년 뒤 마오쩌둥은 “스탈린은 나를 (자국이익만 생각하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로 의심했지만 항미원조전쟁이 시작된 1950년 겨울부터 이 의심은 사라졌다.”라고 회고했다.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에 러시아어 통역장교로 자원입대한 장남 마오안잉(28)을 미 공군기의 폭격으로 잃었다. 마오안잉의 묘는 평남 회령군 ‘지원군 열사능원’에 있다. 36만명에 이르는 중국군 전사자들과 함께 묻혀 있다. 마오쩌둥은 만류하는 측근들에게 “내 아들이 가지 않는다면 인민 누구도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전쟁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중국과 북한 양국의 우의는 혁명열사들의 선혈로 맺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中, 3년간 500만명 병력 투입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의용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중국 측 자료에 따르면 79개 보병사단과 12개 공군사단, 16개 포병사단, 10개 공병사단, 10개 전차연대 등 모두 합치면 200만~300만명에 이른다. 최고조에 이른 1953년 4월부터 7월까지는 일시에 130만명의 병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3년 동안 연인원 500만명이 동원됐다는 서방 측 자료도 있다. 중공군 희생자는 공식적으로 36만 6000명이지만 비전투 사상자를 더하면 사실상 60만~90만명으로 추정된다. 미군 전사자 3만 3000명과는 비교 불가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한국전쟁 참전은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이 됐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인 북한 편들기를 비판하지만, 중국 지도부의 생각은 60년 전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일본-타이완-한국전선에 대항하고 완충지대를 갖기 위해서는 설령 사고뭉치라고 하더라도 북한을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김일성의 우상은 스탈린에서 마오쩌둥으로 바뀌었다. 결정적인 순간 소련이 아니라 중국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전쟁 전 소련 위주의 북한정책이 전쟁 후 중국위주로 전환됐다. 지안롱은 “정전협정 뒤 중국과 북한 수뇌는 언제라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특수한 관계가 계속됐다.”라고 설명했다.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던 마오쩌둥에게 한국전쟁은 터닝 포인트였다. 한국전쟁에 개입함으로써 소련과의 동맹을 공고히 했고, 북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이 함부로 못하는 위협적 존재가 됐다. 인도차이나반도 문제 등에 대한 국제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1971년 타이완을 내쫓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하는 발판이 됐다. 비록 ‘비기는 전쟁’으로 끝났지만 마오쩌둥의 도전과 모험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오쩌둥은 1953년 스탈린 사후 자신이 사망한 1976년까지 중국과 공산진영에서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했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 기자 joo@seoul.co.kr
  • [한국전쟁 明著] 백선엽 ‘군과 나’

    유월이 오면 얼굴에 생기가 도는 아흔 살의 노병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 군부대, 학교, 단체 등을 누비며 열변을 토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4성 장군이자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제1사단장이었던 백선엽 예비역 장군이다. 백 장군이 펴낸 한국전쟁 회고록 ‘군과 나’(시대정신)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군과 나’는 매년 유월이면 팔려나가는 책이다. 10년 주기로 언론에 회자되는 책이다. 이 책의 출발점은 한국전쟁 발발 40주년을 앞둔 1989년이었다. 한 일간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을 묶어 단행본으로 펴냈다. 10년이 흐른 1999년 재출간했지만,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책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개정판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한 해 앞둔 지난해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에 대해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학생들에게 알릴 만한 책을 찾던 행정가의 권유에 의해서다. 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한국전쟁의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백 장군은 1950년 6월 25일 그날부터 휴전까지 ‘3년 1개월 2일 17시간’을 꼬박 전선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의 서술은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누구의 기록보다 살아 숨 쉰다. 장군은 “나라가 북한의 침공으로 부산 앞바다까지 밀려 떨어질지도 모르는 존망의 위기와 압록강까지 국군이 진격하여 통일의 꿈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순간까지 전투의 최전선을 온몸으로 체험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36.9%가 한국전쟁 발발연도를 모른다고 답했다. 이 중 20대가 56.6%로 가장 많았다. 30대 28.7%, 40대도 23%에 달했다. 2008년 시민단체가 서울시내 초·중·고교 학생 1955명에게 물어보니 초등학생 778명 중 35%가 ‘한국전쟁을 일으킨 건 남한’이라고 답했다. 답답한 일이다.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발발 6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백 장군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의미는 각별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가는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장군이 노구를 이끌고 젊은이들에게 강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장군은 “아직도 많은 국민이 한국전쟁과 군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고 끝날 때까지 비교적 한국전쟁 전체를 조감할 수 있었던 나의 경험이 당시 국가의 인적·물적 자원과 에너지를 총동원했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토록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술회했다. 젊은 군인과 청소년들에게 ‘군과 나’는 한국전쟁 교과서가 될 만 하다. 전쟁에 참가한 126만 9000여명의 국군 중 현재 살아 있는 노병은 24만여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80살이 넘은 고령이다. “나의 회고는 승리의 기록이라기보다 전쟁의 기록”이라는 백 장군의 지적에 동의하는 까닭이다. ‘군과 나’는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전쟁에 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인정받는다. 한국전쟁에 관한 기록과 연구. 책은 숱하다. 그러나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이해관계를 가진 다른 나라에서 더 활발하게 이뤄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군과 나’는 한국전쟁의 의미에 대해 우리 스스로 기록한 가치 있는 기록서라 할 수 있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장군은 “미국의 참전에 관한 기록은 많지만, 대한민국의 처지에서 이 전쟁을 쓴 기록은 별로 없었다. 백선엽 장군의 책은 그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준다.”라고 말했다. 백 장군은 전후 세대에게 육성으로 말한다. “나라의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 세대들이 한반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생생한 기록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봄으로써 잘못 알고 있던 6·25전쟁을 바로 알게 되고 동시에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소망한다.”라고. ‘군과 나’는 생생한 기록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한국전쟁을 후세에 전달하고 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러 문서보관소 ‘한국전쟁사 寶庫’ 자료공개로 ‘북침설’ 사장시켜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러 문서보관소 ‘한국전쟁사 寶庫’ 자료공개로 ‘북침설’ 사장시켜

    1994년 6월2일. 당시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검은 서류상자 하나를 건넸다. 흔히 ‘옐친 문서’라고 불리는 이 서류는 1949년 1월부터 1953년 8월까지 옛 소련과 중국, 북한 간에 오고 간 극비자료였다. 모두 230여건, A4용지 800쪽 분량의 자료 속에는 김일성의 선제타격작전계획과 스탈린의 3단계 작전지침 그리고 마오쩌둥의 전쟁개입 과정 등이 소상하게 담겨 있었다. 이 자료가 공개되면서 김일성과 좌익진영에서 주장해 오던 ‘북침설’은 소설이 됐다.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는 옐친 문서 공개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전까지는 미국, 일본 등 서방 측 자료에 일방적으로 의지한 탓에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전쟁발발자인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이 주고받은 극비문서에 대한 분석 없이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에 대한 연구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와 조선이 첫 수교를 맺은 1884년부터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강탈당한 1905년까지 두 나라는 긴밀한 우호 관계를 맺었다. 고종의 아관파천(1896년)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는 우리 근세사에서 10년 넘게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같은 역할을 누렸다. 제국주의 열강 앞에 촛불처럼 흔들렸던 한반도의 정세와 이권약탈사가 러시아 비밀문서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한국전쟁 발발과 휴전 이전까지, 휴전 이후 1980년까지 남북한과 러시아 두 나라 사이에 일어난 모든 공개, 비공개 외교문서가 포함돼 있다. 러시아라는 거울을 통해 조선후기와 대한제국, 남북 분단 시기의 내밀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러시아에는 20여개의 국립 문서보관소가 있다. 러시아 외무성 산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 문서보관소와 혁명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문서를 보존하고 있는 러시아연방 대외정책 문서보관소가 한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와 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에는 부지기수의 한반도관련 문서가 소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스크바 크렘린 러시아연방 대통령 문서보관소는 한국전쟁관련 문서의 보물창고이다. 전쟁준비 단계에서 휴전협정이 이뤄진 1949년부터 1953년까지의 극비문서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가에 꽂혀 있다. 일반적으로 문서보관소의 출입증을 받으려면 소속 학교나 연구소에서 작성한 출입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연구할 제목을 비롯해 인적사항을 적은 신청서를 내고 나서 출입허가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연락이 오면 가서 문서목록 속에서 필요한 문서를 찾은 뒤 신청하게 된다. 외무성 연방문서보관소는 허가절차가 까다롭다. 3개월 만에 허가가 나오기도 해서 연구자들로부터 원성이 높다. 특히 한국전쟁 사료가 있는 연방대통령 문서보관소는 일반 연구자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특별허가를 받은 문서보관소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야 자료접촉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서보관소의 여러 부서에서 문서를 각각 접수하고 있고, 또 문서의 성격에 따라 담당자와 정리자가 달라 문서의 날짜가 다르거나 잘못된 사례도 허다하다. 옛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문서 보관소는 여전히 금역이다.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 센터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러시아연방 외무성 대한정책 자료1,2’(도서출판 선인)도 이 같은 발품의 산물이다. 러시아 내 한국사료 발굴의 권위자인 박 교수는 지난 16년 동안 문서보관소를 찾아다니면서 관계 문서를 찾아 번역하고 자료집으로 정리했다. 박 교수는 “한·러 관계사의 1차 사료인 러시아 대한정책 자료가 한국전쟁 등 한·러 관계사 연구에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新 차이나 리포트] G2 중국, 세계를 호령하다 ⑥ 美 패권 넘보는 군사력

    [新 차이나 리포트] G2 중국, 세계를 호령하다 ⑥ 美 패권 넘보는 군사력

    중국이 군사력의 첨단화,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2위의 군사비 지출 국가로 올라선 중국은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인민해방군의 현대화, 무기체계의 첨단화에 쏟아붓고 있다. 타이완에 대한 패트리엇(PAC)-3 미사일 판매 문제로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던 1월 초 중국은 자국 군사력과 관련된 의미 있는 실험을 통해 미국을 상대로 사실상 ‘무력시위’에 나섰다. 중국은 1월11일 미사일 요격실험에 성공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렸다. 지상발사형 중간비행단계(GMD) 미사일 요격 실험으로, 가상의 적으로부터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미사일을 이용해 대기권 밖에서 폭파했다. 그만큼 정교한 레이더 시스템을 갖췄다는 얘기다. 중국 외교부는 “실험은 방어적인 것이었으며,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추진 중인 미사일방어(MD) 체계를 중국도 갖추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할 준비가 돼 있으니 타이완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셈이다. ●국방비지출 20년간 연평균 16% 증가 미사일 요격실험 성공 소식을 전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월17일 중국은 세 번째 베이더우(北斗) 항법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중국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인 베이더우(영문명 COMPASS) 시스템 구축 계획은 2012년까지 10여개의 위성을 쏘아올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위치정보를 수집하고, 2020년까지는 5개의 정지위성과 30개의 궤도위성을 배치해 전 세계의 위치정보를 확보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 2일 네 번째 위성을 쏘아올렸다. 서방 측은 군사적 활용에 주목하고 있다. 군 최고위급 인사가 언급한 대로 ‘우주무기’ 개발 및 배치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사일 요격 실험에도 베이더우 위성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올 국방예산은 5321억 1500만위안(약 93조원)에 이른다. 지난 20년간 연평균 16%대였던 국방예산 증가율이 올해 처음으로 한 자릿수인 7.5% 증가에 그쳤지만 군사전문가들은 숨겨진 예산이나 실제 집행과정에서의 예산추가 등을 감안하면 올해도 실제로는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군사비를 많이 지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돈은 다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정부업무보고에서 “국방과학 연구와 무기장비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09년 연감에 따르면 중국은 2004년부터 5년간 전 세계 무기시장에서 거래되는 무기의 11%를 사들여 1위에 올랐다. 중국이 2000년 이후 러시아로부터 사들이는 무기체계 및 군사기술 비용은 연평균 2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경보기 등 공개… 항모 건조 착수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인민해방군의 현대화 작업은 특히 2000년대 들어 방향을 크게 틀었다. 1980년대 후반 100만명의 병력을 감축하고, 지역 군을 축소하는 등 비대한 구조를 슬림화하는 데 중점을 뒀던 것과는 달리 최근 들어서는 장비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순항미사일 등 다양한 신형무기체계를 생산, 배치하는 한편 외국무기 및 군사기술의 도입을 확대하고, 정보전 능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1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진행된 건국60주년기념 열병식은 그동안의 성과를 만천하에 과시하는 자리였다. 핵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조기경보기 등이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중국은 최첨단 전투기인 젠(殲)-11, 미 대륙까지 날려보낼 수 있는 ICBM 둥펑(東風)-41 등을 갖추고 있고, 항공모함 건조에도 착수했다. 핵추진 잠수함 대부분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략 핵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의 최고 책임자 징즈위안(靖志遠) 사령원은 지난해 초 “신형 핵무기와 장비의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 과학기술 강군 전략을 완성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바로 직전 공개한 국방백서에서는 “신형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다.”고 밝힌 중국이다. 군사대국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국, 일본 등 서방은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며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어떤 경우에도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주권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국방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對北제재조치 이후] 한·미, 안보리 대북 일반결의로 ‘가닥’

    [對北제재조치 이후] 한·미, 안보리 대북 일반결의로 ‘가닥’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정부의 천안함 사태에 대한 국제적 대응수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추가제재 결의안보다는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고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일반 결의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안보리 조치를 협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천영우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1일(현지시간) 천안함 사태 안보리 조치와 관련, “안보리의 추가적 제재에 대해 아직 논의하고 있는 것이 없으며, 안보리 조치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상징적·도덕적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보리 조치방식에 대해 “현 단계에서 새로운 제재를 취한다고 할 때 기존 제재 결의 아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안보리 밖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면서 “안보리 조치가 꼭 새로운 제재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고 밝혀 추가 대북제재 결의안보다는 일반 결의안 쪽에 무게를 뒀다. 또 천 차관은 “안보리 조치의 방식이 전부가 아니며, 방식과 실질적 내용을 합쳐 종합적이 부가가치를 갖고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과 직결돼 있다. 북한이 이미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인 유엔 1874호를 적용받고 있는 데다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외교적 부담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실익이 적은 추가 결의안을 추진하기보다 유엔 1874호와 1718호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하는 일반 결의안이나 의장성명을 통해 유엔 조치의 실효성을 담보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응에 대한 기대 수준을 조정하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앞서 유명환 외교부장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보리 조치의 수준에 대해 “구속력은 있지만 투표를 해야 하는 ‘결의안’과 구속력은 없지만 이사국 간 합의로 처리하는 ‘의장성명’ 등 대응 수위를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해서 전략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중국 변수를 감안할 때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는 정치적·상징적 차원의 대응을 이끌어내고, 실질적인 대북제재는 한국과 미국, 일본이 양자·독자적 금융제재 등을 통해 북한의 돈줄을 조여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kmkim@seoul.co.kr
  • 이원복① “그림 베끼며 만화 시작…허영만보다 선배”

    이원복① “그림 베끼며 만화 시작…허영만보다 선배”

    지난 13일 서울디지털포럼이 열린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워커힐 호텔. ‘상상력과 기술, 신(新) 르네상스를 맞다’라는 주제로 제임스 캐머런 감독, 월트디즈니 인터내셔널 앤디 버드 회장, 스정룽 썬텍파워 창업자 등이 모였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과 함께 160㎝가 될까 말까 한 작은 키의 한국인이 좌중 앞에 섰다. ‘먼나라 이웃나라’로 유명한 덕성여대 이원복(64) 교수다.  그는 연설의 첫 머리에서 “저같은 만화가가 이런 큰 자리에 서도 될지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이 자리뿐 아니라 그는 최근의 모 방송 명사초청 강연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을 만화가라고 소개했다. 언제 어디서든 만화가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한국만화가협회의 홈페이지 작가 검색란에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인명사전에도 이 교수의 인적 내용은 실려 있지 않다.  그는 만화가 입문 코스인 ‘도제식 시스템’이 아니라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보통 만화가에게서 불거지는 ‘표절’ 논란보다 내용상의 오류, 이념의 문제 등에서 논란을 겪었다. 대형 서점에서도 그의 작품은 만화 코너에 있지 않고 인문교양·역사 코너에 꽂혀 있다. 이처럼 그는 보통 만화가와 다른 점이 많다. 하지만 그는 만화가라고 소개한다.  그는 만화가가 맞을까. 촤근 이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경기중·고,서울대,독일유학…초엘리트 코스  1946년 대전에서 태어나 1955년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경기중·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에 입학하는 소위 말하는 ‘KS라인’을 밟았다. 하지만 그는 대단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경기고 61회 졸업생인데 480명 중에 360명이 서울대를 갔어요. 웬만큼 하면 서울대를 가던 시절이었죠. 그 당시엔 정원 미달학과도 있었으니까. 우리 때만 해도 입시 공부는 고3 2학기때부터 하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학원도 없었고 쉬는 시간에 공부하면 애들이 뒤통수를 때리면서 ‘자식, 무슨 공부냐.’ 하면서 비웃고 그랬는데. 지금이라면 나같은 사람은 서울대의 ‘S’자 근처도 못 갔겠죠.”  그는 학창시절 공부보다 만화에 빠져 있었다. 만화방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 낙서를 좋아했다. 낙서는 조금씩 발전해 구색을 갖추게 됐고, 신문반으로 활동하던 중학교때 그의 만화들이 학교 신문에 실리게 됐다.  이 교수는 만화가로 48년을 살았다. 데뷔 기간을 따져보니 1962년 고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만화 ‘아이반호’가 데뷔작이다. 그보다 한살 적은 허영만 화백이 1974년도에 첫 작품을 냈으니 무척 이른 데뷔다. 그 과정이 흥미롭다.  ●종이 대고 베끼며 ‘만화 알바’ 시작  “고 1때 친구 아버지가 신문사 주간이었어요. 거기 견학을 갔다가 내 그림 실력을 보시고는 일거리를 주셨지. 뭐 고등학생의 인건비가 싸니까. ‘알바’ 한거지. 작품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미국에서 흘러나온 만화에 대고 그렸어요. 그러니까 고등학생을 시키지.”  미국 원작 위에 비치는 종이를 대고 그대로 따라 그리는 번역만화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일본 등 많은 작품을 다뤘는데 이것이 이 교수의 만화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문하생 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많은 작품을 그리다보니 자연스레 실력이 쌓였고, 1년이 조금 지나선 눈으로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릴 정도의 실력이 됐다.  흔히 이 교수의 작품 세계를 ‘먼나라 이웃나라’에만 국한시켜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1980년대초까지 그는 ‘야망의 그라운드’ ‘미니 바람 꽃구름’ ‘불타는 그라운드’ 등 다양한 작품을 극화체·명랑만화체 등으로 선보였다. 대본소 계열 만화는 그리지 않았지만 소년중앙과 새소년 등 잡지에서 활동했다.  지금엔 ‘먼나라 이웃나라’로 대표되는 그만의 그림체가 있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에선 일본 냄새가 풍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시 수많은 한국 작가가 그랬듯이 그림을 베껴 그리던 탓이다. 한 사람이 여러 그림체를 선보인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표절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교수도 일본 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인정했다.  “일본 만화 보고 그리고 베끼다 보니 그 영향을 받아서 그림체가 자꾸 기울더라고요.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독일로 유학을 갔던 거고, 1981년 ‘먼나라 이웃나라’를 연재하면서부터 나만의 것을 완성시켰지. 그림체를 바꾼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가난 벗어나고자 독일 유학  그는 서울대 건축학과를 다니다가 1975년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이 가난을 벗어나려는 방법이었다. 가난한 사람이 유학길에 오른다는 것을 이해하긴 쉽지 않다.  “집이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내가 7남매(5남 2녀)중 막내인데, 네살때 한국전쟁이 터져 제대로 못 먹고 자라서 형제중에 나만 키가 작아요. 열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스무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자기 살기 바빴지. 독일 갈때 달랑 가방 두개만 가져갔어요.”  대학을 다니면서 한 신문에 3개씩 연재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그렸지만,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른 형제들도 생활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어느 날 가장 어린 3형제가 모여 다짐을 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돈이나 ‘빽’ 같은 돌파구가 필요한데 우린 둘다 없으니 가방끈으로 승부를 보자. 유학을 떠나자고 결심을 했죠. 그때 약속한 게 먼저 간 사람이 동생의 ‘편도 비행기값’ 대주기 였어요. 내 바로 위에 형이 독일로 먼저 가서 일한 돈을 모아 내 비행기 표를 사줬죠.”  이 교수는 자신의 그림체에 회의를 느낀던 때여서 이를 벗어나고자 전혀 다른 세계인 유럽쪽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만화 관련 학과가 없었고 그림을 다루는 뮌스터대학 디자인학부에 둥지를 틀었다.  이 교수는 독일에서 만화 시장의 가능성을 보았다. “독일 서점에 가니 만화가 한 가운데 배치돼 있는 거예요. 잘 팔리니 제일 보기 좋은 자리에 놓은 거지. 또 만화는 그림도 잘 그려야 하고 스토리텔링 능력도 있어야 하니 유럽에선 이미 만화가들이 인정받고 있던 시기였고. 그래서 만화시장이 블루오션이란 걸 알았죠.”   그는 유학 생활에 대해 “곳곳을 여행하며 럭셔리 하게 지냈다.”고 회상했고, 이런 유학생활이 훗날 훌륭한 작품 소재가 됐다.   “남들이 50만원 정도로 한달을 생활했다면 난 100만원을 벌어 썼어요. 한국에다 만화 그려서 원고료 받고 독일에서는 아르바이트해서 돈 벌었지. 럭셔리하게 살았어요. 되게 신나게 살았지. 차몰고 이곳 저곳 여행 다니고. 그게 지금 살아있는 지식이 됐고 바탕이 됐어요.” ☞<2부에서 계속> 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사진·영상 인터넷서울신문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 원자바오 오늘 방한… 北제재 분수령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김상연기자│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 등을 위해 28일 방한한다. 천안함 사태에 대해 한국과 중국 정부가 뚜렷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3국 정상이 직접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대북제재의 향배를 포함, 한반도 정세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원 총리는 28일 청와대에서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가진 뒤 29, 30일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참여한 가운데 양자 및 3자 회담을 잇따라 열어 천안함 사태와 3국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원 총리 방한과 관련, 일본 NHK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자는 데 이해를 같이하고 있다.”면서 “원 총리 방한을 통해 긴밀한 협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언론사 정치·사회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중국에도 천안함 조사결과가 담긴 자료를 보냈으며, 책임 있는 강국으로서 조만간 적절한 입장을 보내올 것”이라면서 “중국이 매우 신중하게 자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중국도 천안함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함께 노력해 극복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해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에 중국이 동참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AP통신은 미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 “미 정부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중국도 동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중국 정부는 기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천안함 사건을 유관 당사국이 냉정하고 절제된 태도로 처리해 한반도의 긴장 악화를 방지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장즈쥔(張志軍)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26일 원 총리의 아시아 4개국 순방 설명회에서 “현재 상황에서 이 지역(한반도)에 동란(動亂)이 발생할 경우 각 당사국 특히 한반도의 남북 양측에 큰 손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고위 당국자가 ‘동란’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장 부부장은 “각국은 평화와 안정이란 대국적인 견지에서 냉정하고 적절하게 문제를 처리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 악화를 막아야 한다.”며 이 같은 입장을 전했다. 한편 정부는 한·중·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이르면 다음주 중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기 위한 공식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일본과의 적극적인 공조를 통해 법적 구속력을 갖는 대북 결의안(resolution)을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stinger@seoul.co.kr
  • [對北제재조치 이후] 요지부동 中 속셈은

    [對北제재조치 이후] 요지부동 中 속셈은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천안함 사태를 야기한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의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미·일 압박에도 “냉정·자제” 중국은 25일 베이징에서 폐막한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도 대북 제재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청에 즉답을 피했다.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양국이 동아시아와 한반도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 동참 요청에 중국은 꿈쩍않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과 마자오쉬(馬朝旭) 대변인도 이틀간에 걸쳐 냉정과 절제를 강조하면서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우리 측이 천안함 사태의 유엔 안보리 회부를 공식선언한 만큼 중국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결의안 거부권을 갖고 있다. 성과를 거두려면 중국을 설득하는 게 급선무다. 중국의 움직임과 관련,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25일 “중국은 한국이 제시한 조사결과를 평가하면서 이번 사태에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 대국적 책임, 국가 이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견을 내놓을 것이라는 얘기다. ●‘결의안 거부권’ 中 설득 총력 또 다른 소식통은 “중국이 이미 한국 측에 안보리에 상정하지 말아달라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보리 상정은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의미하고, 중국 입장에서는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대통령 담화를 계기로 이미 안보리 상정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 측이 현재 안보리 상정과 관련해 내부적인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를 한국에 급파한 것이나 마 대변인이 전날 ‘옳고 그름’ ‘공정하고 객관적인 대응’ 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읽힌다. 안보리 상정이 현실화됐을 때 중국은 대북제재의 수준을 낮추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유엔 제재와 추가적인 제재로 고립이 심해져 군사적으로 도발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다른 소식통은 “중국 측은 안보리 제재를 피할 수 없다면 가장 낮은 수준의 제재를 유도하고, 가급적이면 문안의 수위도 낮추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tinger@seoul.co.kr
  • 尹재정 “블랙 다이아 소비시장 阿로 가자”

    윤증현 장관은 아프리카에 대해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소비시장이 주목받고 있다면서, 이를 포함해 미개척분야로 경제협력을 확대해가야 한다고 24일 밝혔다. 윤 장관은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에서 “지속적인 성장기반 확충을 위해 관심이 덜했던 미개척분야로 경제협력의 범위를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보다 창의적인 자세로 아프리카나 해외조림 등 새 지역, 새 분야로 진출해 우리 경제의 외연을 계속 확대해 나가자.”고 말했다. 특히 윤 장관은 다음달 11일 남아공 월드컵이 시작되는 사실을 들며 “아프리카는 풍부한 자원과 경제협력의 잠재력을 갖고 있어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인도 등 신흥국도 진출을 확대해왔다.”면서 “흑인 중산층을 겨냥해 ‘블랙 다이아몬드’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소비시장으로서의 가능성도 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는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2000년대에 들어 5%대의 경제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석유, 천연가스 매장량이 각각 세계매장량의 10%, 8%에 이르는 등 다양한 광물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윤 장관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아직 최빈국 상태에 머물러 있는데 대한민국의 발전 경험을 적극 활용해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함으로써 아프리카가 자립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출입은행의 ‘해외경제연구소’를 아프리카 연구 중심기관으로 선정해 해외연구 기능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아프리카 공적개발원조(ODA)를 내년까지 2억달러로 늘리고,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도 가서명 국가인 탄자니아, 가봉, 가나 이외 2011년에는 케냐 등과 확대할 계획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천안함 ‘北소행’ 이후] “조사결과 과학적·객관적” 힐러리, 中협력 촉구할 듯

    [천안함 ‘北소행’ 이후] “조사결과 과학적·객관적” 힐러리, 中협력 촉구할 듯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일본 도쿄와 중국 상하이를 거쳐 23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24~25일 이틀간 열리는 중국과의 전략경제대화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중국 상하이 도착 전 일본에서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힐러리 장관은 방중 목적을 분명히 했다. 제2차 미·중 전략경제대화에 참석, 양국 간의 경제 및 안보 현안들을 논의하는 동시에 천안함 사태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에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힐러리 장관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천안함 공격 행위에 일상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면서 “지역적 차원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대응을 반드시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도발행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제적인 대북 대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21일 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중국 상하이에서 1박2일간의 일정을 보낸 힐러리 장관은 자신의 주도로 모금활동을 벌여 세워진 미국관을 둘러봤다. 상하이에 머무는 동안 북한을 일절 입에 올리지 않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무역불균형과 위안화 평가절상 문제 등 경제적 현안들이 천안함 사태에 묻힐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천안함 조사결과의 여파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인 셈이다. 힐러리 장관의 최대 임무는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힐러리 장관을 수행 중인 미 고위 당국자는 상하이에서 미국 기자들과 만나 “힐러리 장관이 왜 천안함 사건이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이며,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협조를 얻으려 하는지에 대해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미국은 중국이 현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미국, 일본이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대응을 만드는 데 동참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힐러리 장관은 조사결과가 중국이 주장하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내세워 천안함 사태는 명백히 북한의 소행임을 설명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kmkim@seoul.co.kr
  • 행안부 온정주의 배격… 전공노 “전례없어”

    공무원들이 정당 가입을 이유로 대규모의 중징계를 받는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정당법과 지방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정당가입을 금지하고 있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23일 “공무원들이 특정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하거나 당비를 내는 일은 정치적 중립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한 위반행위”라고 밝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이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정당 가입만으로 처벌된 적은 없다고 사례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2004년 노동부 공무원 1명, 2005년 서울 성북구 공무원 3명 등이 정치활동과 관련해 처벌받은 것은 대의원활동 등 정치활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영국·미국·일본 등에서는 공무원의 정당가입이 허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엄중문책을 위해 시·도에 설치된 인사위원회에서 일괄 징계하도록 했다. 징계대상인 89명은 전국 14개 시·도 60개 기관에 분포돼있다. 각 기관이 온정주의나 봐주기식 징계를 하는 경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행안부가 민주회복 시국대회 참석, 전공노 활동 등을 한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를 해당 기관에 요구했으나 일부 기관들이 징계를 소홀히 해 행안부가 해당 기관에 기관경고를 내리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됐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천안함 ‘北소행’ 이후] “조사결과 냉정히 수용하고 안보 다잡는 계기로”

    [천안함 ‘北소행’ 이후] “조사결과 냉정히 수용하고 안보 다잡는 계기로”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각계의 국가 원로와 지도층 인사들은 지난 20일 국방부가 천안함 사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과 관련, “조사 결과를 냉정히 받아들이고 국가 안보의식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원로들은 이어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 제재를 논의하되,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원로들은 이와 함께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의혹이 있다면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면서 “이번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를 중단하고 화합을 지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만섭 제14대 국회의장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우리 모두 마음을 가다듬어 새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 세 가지가 꼭 필요하다. 첫째 제2, 제3의 천안함 사건에 대비하고 나아가 제2의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보태세를 물 샐 틈 없이 강화해야 한다. 둘째 외교 능력을 발휘하여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강국과 공조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북한을 제재하고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중국도 근본적으로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원하므로 협력가능한 대상이다. 셋째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의 경제 규모를 지금보다 더 키워야 한다. ●김수한 제15대 국회의장 무엇보다 국론이 통일돼야 한다. 이런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관계를 따지면 안 된다. 국가의 명운을 정쟁으로 삼고 서로 다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념과 여야 입장차를 모두 다 뛰어넘어야 한다. 국가 존폐 차원에서 생각하고 대응해야 한다. 논쟁을 만드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교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국제사회에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공감을 얻은 뒤 북한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임채정 제17대 국회의장 정부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기 전에 의문점으로 남은 부분을 명확히 설명해서 국민들을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방태세, 안보문제와 관련해 국민들의 불안을 씻을 만한 조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 땅에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를 안정시킬 정책 마련과 정부의 실천의지가 중요하다. 정부는 일차적으로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국방이 없다는 뜻과 같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우발적 사고나 충돌이 아니라 계획된 일이었다는 것인데, 국방부가 아무 대응도 예방도 못한 거 아닌가. 향후 대응으로는 우선 북한이 조사단(검열단)을 파견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에도 사고 원인을 조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국민들도 정확한 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 한반도는 평화 유지도 중요하지만 평화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곳이다. 천안함 사건과 같은 긴장과 충돌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곳이 한반도다. 이번 사건이 전쟁과 같이 큰 사태로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천안함 사건을 6·2 지방선거에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있는데 대단히 잘못된 행동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란 것에 대해 의견을 같이해야 한다. 또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국민들을 분열시켜서는 안 된다. 보수든 진보든 ‘북풍’ 운운하며 여론을 선동하지 말고 화합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국내 싸움으로 번지면 사건의 책임이 있는 북한은 꿈쩍도 하지 않고 우리만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정부가 침착하고 신중하게 대응을 잘 하고 있다. 민간과 외국 전문가까지 불러서 사건을 조사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 제재를 강구하고 있다. 국민들은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을 통해 체제 내부의 기강을 다스리고 긴장을 조성하려고 한 것이지 전쟁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을 정치싸움에 이용하려는 세력에 휩쓸리지도 대립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조순 전 서울시장·경제부총리 북한의 어뢰에 의한 공격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나왔기 때문에 현재 정부가 북한에 대해 확실한 응징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나라에는 긴 장래가 있다. ‘전술적’인 차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되고 긴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방향을 정립해 주면 좋겠다. 정부뿐 아니라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떠난 천안함 희생 장병에게 할말은 없지만, 길게 봐야 한다. 안보를 튼튼히 하는 동시에 단기적 제재에 매달리지 말고 장기적으로 냉정하게 신축적으로 남북관계에 접근해야 한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정부도 안이했고, 국민들도 안보의식이 부족했다. 정부와 국민이 모두 각성하고 안보를 강화하고 의식을 한 단계 높여야 하는 게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신뢰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이 체제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급변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통일을 적극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통일비용이 든다고 해도 같은 민족으로서 각오해야 할 일이다. 북한이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며 조사결과에 반발하고 있는데, 예전에도 북한은 ‘불바다 발언’ 등을 했다. 비슷한 반응은 늘 있어 왔다. 여기에 동요하지 말고, 안보강화라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만 남북이 대결사태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국을 설득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그동안 조사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됐는데 20일 조사결과 발표에서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국민들은 아직도 의혹을 갖고 혼란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진상규명이 더욱 철저히 돼야 한다. 정부가 너무 서둘러서 발표하기보다 더 여러 가지 의혹을 해소할 수 있었으면 제일 좋은데 그게 안 됐으니까 사회가 혼란을 겪는 것이다. 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더이상 의혹을 남기지 않도록 충분히 해명해야 할 것이고, 안 되면 국회 차원에서 나서서 정리를 해야 한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천안함의 비극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국가적인 재난이고 위기의 문제이다. 국가 안보의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선거도 국가공동체의 안위가 튼튼하고 보장됐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국가안보 자체를 공동선의 범주로 보지 않고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유대의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가 안보가 튼튼해졌을 때 그 안에서 여야가 겨루고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기도 하는 것이지 그런 기본적인 전제 없이 무조건 전방위적인 다툼을 벌이는 것은 곤란하다. 그동안 우리가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 무뎌진 북한의 호전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근간인 안보의식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때로는 북한과 대화하고 북한 주민들을 도와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호전성에 대해 상기하고 새로운 안보의식을 지녀야 한다. 오달란 허백윤기자 dallan@seoul.co.kr
  • [독자의 소리] 칸영화제 본받아 경쟁력 키우자/최민수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칸 국제 영화제가 글로벌 페스티벌로 자리잡아 정말 부럽다. 축제 기간동안 지역경제는 최고의 활황을 누리고 있고, 국가 경쟁력 제고 및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도 기여한다. 부산 국제 영화제도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칸 영화제에 비춰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모터쇼 역시 마찬가지이다.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의 모터쇼가 제4대 세계모터쇼로 자리잡은 가운데 중국의 베이징 모터쇼 또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과 부산에서 격년으로 열리고 있는 모터쇼는 외형만 국제대회일 뿐이지 국내 행사의 하나로 전락하고 있다. 바야흐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철저히 준비해서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수상했다는 소식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매우 뿌듯하고 자랑스럽지만, 이를 계기로 좀더 글로벌한 마인드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지원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최민수
  • 하토야마·힐러리 “北제재 공조”

    │워싱턴 김균미·도쿄 이종락특파원│북한의 천안함 공격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 일본 등 3국이 대북제재 논의를 착수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1일 일본을 시작으로 1주일간 중국과 한국을 차례로 돌며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포토]천안함 ‘北소행’ 결정적 증거 힐러리 장관은 도쿄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 오카다 가쓰야 외상과 연쇄 회담을 갖고 천안함 후속대책을 논의한 뒤 밤늦게 상하이에 도착했다. 하토야마 총리와 힐러리 장관은 천안함 사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가져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한국 정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한·미·일 3국간 긴밀한 제휴가 중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힐러리 장관은 “도발적인 행위에는 대가가 있다.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북한에 대해 새로운 제재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어 “일본뿐 아니라 중국, 한국과 협의를 거쳐 대응 방침을 결정하겠다.”며 중국에도 협력을 요구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한편 미 하원은 20일(현지시간) 천안함 사태 조사결과를 지지하고 북한을 규탄하는 내용의 초당적 결의안을 발의했다. 미 하원은 25~26일 본회의에서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후속 대북 제재 조치에 대한 긴밀한 협의를 계속했다. jrlee@seoul.co.kr
  • “인상 깊은 한국 주제로 무늬옷 만들 것”

    “인상 깊은 한국 주제로 무늬옷 만들 것”

    “재미있는 무늬로 세상에 사랑과 평화를 퍼뜨리고 싶어요. 제가 만든 40달러짜리 청바지가 세계 곳곳의 패션몰에서 판매되는 게 꿈입니다.” 20일 시작돼 23일까지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리는 2010 프레타포르테 부산 컬렉션. 개막은 발랄한 프린트와 디자인으로 미국, 일본, 한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겔랑 마르셀(34)이 장식했다. 남다른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걸 그룹 2NE1이 이미 ‘겔랑 진스’ 옷을 입었고, 마르셀이 개막식 패션쇼에서 선보인 옷 가운데는 요즘 이효리가 무대에서 입는 의상도 있었다. 화려한 프린트의 수영복에 비닐 재킷, 형형색색의 레깅스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톱 운동화, 리본과 털방울로 장식한 원피스 등 현재의 유행을 따르지 않는 그의 옷은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스타일리스트 패트리샤 필즈가 반했을 정도다. 필즈는 자신의 집 가구를 몽땅 비우고 패션쇼를 열 수 있도록 마르셀을 도왔다. 오는 6월 개봉 예정인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2’에도 주인공 세라 제시카 파커가 1980년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면에 마르셀의 프린트가 제공됐다. 마르셀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패션학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했다. 지금은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미국, 일본, 홍콩, 한국에서 그의 옷을 살 수 있으며, 최근 온라인 쇼핑몰(gerlanjeans.bigcartel.com)도 열었다. 그가 뉴욕에 정착한 것은 검정 또는 회색만 입는 뉴욕 사람들에게 화려한 색깔과 무늬를 부활시켜 주고 싶어서였다. 다분히 1980년대 스타일인 그의 옷이 요즘 주목받는 것에 대해 “경제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은 9·11과 금융 위기 이후 알록달록한 색과 프린트로 기쁨과 희망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고 마르셀은 설명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선명한 무지개 색깔을 내세웠던 이탈리아 브랜드 베네통의 팬이었다. 특히 12살 때는 좋아하는 브랜드를 입고 학교에 나오는 클럽을 만들어 ‘일주일에 3번 이상 특정 브랜드 옷 입기’ 등의 규칙을 정했다고 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여학생을 클럽에 가입시켜 주지 않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강제 해산당했다며 깔깔 웃는다. 하지만 마르셀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디자이너는 최초의 흑인 게이 디자이너였던 패트릭 켈리(1954~1990). 뉴욕 출신으로 파리에서 폭풍과 같은 인기를 얻었지만 에이즈로 사망했다. 한글을 패션 디자인에 접목시킨 한국 디자이너 이상봉의 작품도 인상 깊었다는 그는 언젠가는 한국을 주제로 한 무늬의 옷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옷 잘 입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무엇을 입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입는가가 중요하다. 당신이 그 옷을 입고 기분 좋게 느낀다면 보는 사람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합리적인 가격대와 창조적인 스타일로 사랑받는 마르셀은 뉴욕의 지하철과 길거리 사람들, 음악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부산에서는 아시아 최대의 백화점인 신세계 센텀시티와 바다, 목욕탕에 꼭 가보고 싶다.”며 한껏 들뜬 표정을 지었다. 부산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세계 첫 지상파 3D 스포츠중계 직접 보니

    세계 첫 지상파 3D 스포츠중계 직접 보니

    19일 저녁 서울 여의도광장. 검은 일회용 3차원(3D) 안경을 쓴 3000여명의 시민들의 시선은 특설무대에 설치된 가로 10m, 세로 6m(620인치) 초대형 화면에 쏠렸다. ‘2010 대구 국제육상경기대회’가 시작되자 운동장에 서있는 아나운서와 캐스터는 물론 트랙 위의 선수들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KBS는 이날 세계 첫 지상파 3D 시범방송을 시작했다. 미국·일본 등이 케이블이나 위성 채널을 통해 스포츠 경기를 3D로 내보낸 적 있지만 지상파 채널의 3D 스포츠 중계는 세계 처음이다. KBS는 이를 위해 미국 3D 카메라 전문제작업체인 3얼리티(3ality) 제품 등 총 12대의 최첨단 카메라를 동원했고, 소리도 5.1채널 입체음향으로 내보냈다. 3D 생중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마치 경기가 열리는 대구 스타디움에 와있는 것처럼 현장감이 뛰어나다는 점. 여자 1500m 등 장거리는 선수들이 아슬아슬하게 추월하는 장면이 생동감을 더했고, ‘인간 탄환’ 우사인 볼트가 우승한 남자 100m 등 단거리는 트랙을 따라 움직이는 선수들의 빠른 속도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가족과 함께 왔다는 김유숙(63)씨는 “선수들이 바로 내 앞에서 뛰는 것 같고,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아 신기했다.”면서 “경기장이 더 웅장해 보이고 생동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3D TV 생중계는 영화 ‘아바타’ 수준의 입체감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특히 클로즈업 보다 전체적인 풀 샷이 많아 선수들의 미세한 표정까지 읽을 수는 없었다. 한 시민은 “깊이감은 있지만, 돌출감이 좀 떨어지는 등 방송기술이 아직 미흡해보인다.”라며 아쉬워했다. 이날 방송은 3D 시범채널인 지상파 66번(가상채널 3-3)을 통해서도 생중계 됐다. 현재 국내 3D TV 보급대수가 1000여대에 불과해 수혜대상이 제한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는 것이 사실. 정화섭 KBS 기술관리국장은 “흑백에서 컬러, 컬러에서 풀 고화질(HD) TV 시대로 변천한 게 불과 몇십년”이라며 “3D 방송도 급격히 보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천안함 사고, ‘北도발’ 결론…美-日‘지지’ 中‘신중’

    천안함 사고, ‘北도발’ 결론…美-日‘지지’ 中‘신중’

    KBS, MBC, SBS 등 공중파 3사를 비롯한 각 방송사가 20일 오전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침몰사고 조사결과 발표 이후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반응을 일제히 보도했다.KBS 1TV ‘뉴스 12’는 이날 오후 어뢰를 탑재한 북한의 연어급 잠수함이 수중으로 서해 외곽을 우회 침투해 천안함을 타격했다는 민군합동조사단의 사고원인 발표내용과 함께 북한의 도발을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엇갈린 시각을 전했다.이날 ‘뉴스 12’ 방송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북한의 도발적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한국의 조사 결과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미국 측은 북한의 공격을 국제법 및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해 우리나라와 뜻을 같이 했다.일본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한 공식입장 발표에 앞서 북한의 소행을 규탄하고 북한 제재를 위한 국제공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췄다.반면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의식한 듯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우선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해 대조를 이뤘다. 현재 정부는 천안함 사건의 유엔 안보리 회부 시 중국의 노력이 필수적인 만큼 후속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한편 천안함 침몰사고 피의 당사국으로 지목된 북한은 우리 민군합동사단의 발표가 날조된 것이라며 전면 부인하는가 하면, 반박성명을 통해 북한 국방위 검열단 파견 및 대북 제재 시 전면전쟁 선포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사진 = KBS 1TV ‘뉴스 12’ 방송화면 캡처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천안함조사 오늘 발표] 柳외교 “中때문에 머리 아프다”

    [천안함조사 오늘 발표] 柳외교 “中때문에 머리 아프다”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 한반도에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6·25전쟁 60주년을 코앞에 둔 지금 한반도의 시계는 다시 6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북한이 도발하고 남한이 응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한·미·일 대(對) 북·중·러’의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한·미·일·중·러 대 북’의 구도로 전환시키려 하고 있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외교통상부는 지난 18일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조사결과를 미리 설명했으나, 장 대사는 선뜻 한국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의 입장은 종래와 유사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중국의 종래 입장이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중요하다.”는 신중론이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도 기자들에게 “중국에 외교적인 노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면서 “중국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중국이 조사결과를 듣고서도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우리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게 됐다. 정부 소식통은 “중국과 러시아는 일단 ‘반대’로 몸값을 올리는 스타일이어서 단시간 내에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포토] 천안함, 그날의 아픈 기억…이 어뢰가 정부는 일단 미국을 통한 압박에 기대를 걸고 있다. 24~25일 방중하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관심이다. 미 국무부는 이미 클린턴이 베이징에서 천안함 관련 논의를 한다고 밝혀 중국 정부의 입장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클린턴이 서울을 들르는 26일쯤 중국 정부의 기류가 감지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일 중국 외교부의 정례 브리핑에서 1차적인 입장이 드러날 수도 있다. 정부는 중국을 설득하는 것과는 별개로 미국·일본 외에 지지세력의 외연을 최대한 넓힌다는 전략도 가동하고 있다. 외교부가 이번 주부터 한국에 주재하는 거의 모든 나라 대사들을 순차적으로 불러 조사결과를 미리 설명한 것은 이런 여론 조성작업의 신호탄이다. 정부 소식통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추진 외에도 각 나라와 양자적인 협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그날의 정신···해외선 긍정평가·국내에선 인색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그날의 정신···해외선 긍정평가·국내에선 인색

    5·18민주화운동의 평가는 오히려 나라 밖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 인권운동가들은 해마다 광주를 찾아 ‘5월 정신’을 공유하고 연대를 강화한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지역 사건’으로 폄하하려는 시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진상규명 과정에서 나타난 사실 왜곡 때문이다. ‘북한 개입설’ 등이 대표적이다. 관련 단체의 과격한 행동도 외면을 부추겼다. 해외에서의 긍정적인 위상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해외선 세계 민주주의 희망 인식 10여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5·18민주화운동 세계화 사업은 5·18을 아시아 인권과 민주주의의 중심 무대로 옮겨 놓았다. 대표적 프로그램은 광주인권상 제정이다. 첫해 수상자는 사나나 구스마오 현 동티모르 국회의장. 아웅산 수치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무르니 말리크 파키스탄 인권변호사 등 10여명이 이 상을 받았다. 17~23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는 ‘2010 광주아시아포럼’이 열린다. 아시아민주희생자가족연대, 광주국제평화캠프, 광주아시아인권학교 등이 참여한다. 포럼에서는 이주노동자 인권, 인권조례, 한반도 평화, 아시아의 언론자유와 환경문제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국제 인턴 파견, 미국·일본 등 해외동포 단체와 정기적으로 교류하면서 활발한 국제협력 프로그램도 펼쳐진다. 최근 5·18기념재단 직원으로 채용된 수바쉬 아디카리(29·네팔)씨는 “5·18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민주화운동의 ‘롤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네팔은 2006년 민중운동 당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지금껏 진상규명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5·18의 위상 정립 과정과 절차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 국제협력팀 정린(29·여)씨는 “세월이 지났어도 5·18의 정신과 가치는 세계인들 사이에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며 “이같이 소중한 자산을 확산·계승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국내 “들어본 적 없다” 26% 달해 그러나 국내의 상황은 좀 다르다. 일부 보수 논객들의 인테넷 사이트에는 아직도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저지른 국가 전복 사태’라는 황당한 글들이 보인다. 네티즌들은 이런 사이트에서 5·18과 ‘전라도’를 폄하하기 일쑤다. 기념식도 광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형식적으로 치러질 뿐이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은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기념재단이 2008년 실시한 ‘5·18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 아직도 응답자의 9%가 ‘폭동’ 으로, 6.6%가 ‘사태’로 답했다. 5·18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란 답도 26%에 달했다. 민주주의 발전 영향 여부에 대해선 11.6%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5·18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엄존하는 것은 5월단체의 ‘밥그릇 싸움’과 5·18에 대한 ‘독점적 권리행사’ 행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공법단체 등록을 둘러싸고 빚어진 각 단체 간 ‘헤게모니 싸움’과 운영비 마련을 위한 수익사업 추진 등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 시민은 “5·18은 전 시민이 참여한 민주화운동이지, 단체 회원들만의 전리품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글로벌 시대] 기로에 선 북 ·중 관계/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글로벌 시대] 기로에 선 북 ·중 관계/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글로벌화하고 투명해진 국제관계 추세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방중이 계속 비밀리에 추진되는 것은 북·중 양국관계가 떳떳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다. 김 위원장의 해외방문이 사실상 중국 한 나라에만 국한되는 점도 외톨이 신세인 북한의 현실을 말해 주고 있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는 북한을, 천안함 사태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원해 주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대(對)한반도정책 때문이다. 첫째, 중국은 ‘지속적 경제 발전을 위한 안정적 대외 환경 구축’에 외교목표의 최우선을 두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상황악화는 중국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둘째, 주한 미군이 주둔해 있는 한국과의 완충 지대로서 북한이 존속하기를 희망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통일한국의 출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셋째,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다. 한국과는 경제 동반자, 북한과는 사회주의 형제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북한 간 균형자적 역할을 추구한다. 넷째, 북한의 연착륙을 위해 중국식 개혁·개방을 권유한다. 김 위원장의 방중 기회에 중국 정부는 경제발전도시인 상하이, 다롄, 선전 등을 방문토록 하여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다섯째,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6자회담을 지지한다. 북한의 핵보유는 일본의 핵무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중국 정부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중·미 관계개선 이래 가장 중요한 외교 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이같은 한반도 현상유지정책 때문에 중국은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하고 무모한 무력도발을 자행하더라도 감싸고 돌 수밖에 없다. 유엔 안보리 제소, 대북 경제 제재도 불사한다는 미국·일본의 강경한 태도와는 달리, 중국은 북한을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못마땅하기는 하나 지나치게 압박할 경우 북한경제가 더욱 악화되어 대규모 탈북자가 발생할 것이며, 한반도 위기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원은 중국의 중장기 외교전략과도 연계되어 있다. 중국외교의 근간의 하나는 ‘도광양회(韜光養晦)’라고 할 수 있다. ‘칼집에 칼날의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는 손자병법이다. 비록 중국의 경제와 군사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나 상당기간 미국을 능가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미국이 안보전략상 표면적으로는 협력을 이야기하면서 은밀히 신(新)황화론에 입각하여 중국 포위전략을 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장래 가상의 적으로서 미국을 염두에 두는 한 한국과의 긴밀한 경제협력관계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 파트너인 북한과의 전통적 혈맹관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한반도의 안정과 국제질서를 훼손하는 북한의 불법적 행위를 무한정 인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992년 한·중수교 당시만 해도 중국의 위정자 가운데 북한과의 순망치한 관계를 중시하는 세력이 월등히 강하였고, 오늘날에도 ‘라오펑요우(오랜 친구)’인 북한을 감싸는 층이 적지 않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공산당 권력층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북·중 관계도 혈맹관계에서 보통의 선린관계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북한의 모험주의에 대한 일반 중국인의 혐오감도 늘어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중국의 국제위상이 높아지고 책임감이 커지면서 가속화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대(對)중 정책은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 (1) 한반도의 현상유지와 등거리 남북한 관계에 기초한 중국의 기존 대북 유화책을 계속 수용할 것인지, (2)압력을 통해서라도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촉진하도록 중국을 설득할 것인지, (3) 궁극적으로 자유 대한민국체제로의 한반도통일을 중국이 지지하도록 적극 환경을 조성해 나갈 것인지 등에 관해 우리의 입장을 정하는 대장정의 길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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