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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새해를 피로 물들인 테러 경각심 높일 때

    새해 첫날 파키스탄의 라키 마르와트시에서 폭탄테러로 100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테러는 친정부 민병대의 활동에 앙심을 품은 탈레반이 보복을 위해 저지른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지난 성탄절 노스웨스트 253편 여객기 폭파테러 기도 사건에 이어 30일 아프가니스탄 미 중앙정보국(CIA)지부를 겨냥한 폭탄테러 사건으로 뒤숭숭한 새해를 맞고 있다. 미 정부는 대대적인 보복공격 감행을 시사했다. 종교를 앞세운 무차별한 테러, 이에 맞서는 전쟁의 악순환은 인류에 심각한 위해다.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전 지구는 테러와 전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2997명의 사망자를 낸 2001년 9·11테러를 비롯해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 2005년 런던 지하철역 테러, 2008년 인도 뭄바이 호텔 테러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국을 위시해 전 세계가 ‘테러와의 전쟁’을 감행했지만 테러가 근절되기는커녕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테러 대처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알카에다의 변화와 이에 따른 뉴테러리즘의 등장 가능성이다. 알카에다는 이제 9·11 테러처럼 직접 기획하고 명령하지 않고 대신 인터넷 기반을 이용해 테러 정보와 기술을 전파하며 자생적·개별적 테러리스트들을 키워낸다. 특정 근거지 없이 전 지구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테러에 가담할 경우 전 세계는 극도의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 파견을 앞둔 한국도 뉴테러리즘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본다. 이미 아프간에서 인질사태를 겪었고, 파병 결정 이후 탈레반으로부터 협박까지 받은 상태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때다. 정부는 테러방지체계 등 국가 대(對)테러 정보역량을 극대화하고 국제 테러정보 협력을 강화하는 등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들의 협조와 주의는 필수다.
  • 새해벽두 곳곳 피로 얼룩

    새해벽두 곳곳 피로 얼룩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지구촌은 2010년 새해 벽두부터 곳곳에서 발생한 테러로 붉게 얼룩졌다. 미국을 겨냥한 테러가 본토는 물론 증파결정이 내려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어져 미국은 새해부터 테러정국을 예고하고 있다. ●새해 첫날 파키스탄 배구경기장서 참사  새해 첫날인 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북서변경주 라키 마르와트시의 한 운동장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배구경기를 보러 왔던 사람 등 95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다쳤다고 현지언론과 외신들이 3일 보도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테러범은 폭탄이 장착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배구경기가 진행 중이던 경기장으로 몰고 가 자폭했다. 폭발 충격으로 운동장 주위에 있던 가옥 20여채가 붕괴됐으며, 매몰된 가옥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아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번 테러가 친정부 민병대 활동에 앙심을 품은 탈레반의 보복인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 30일 아프간 동부 코스트주에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기지인 채프먼 전초기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CIA 요원 7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  미 정보당국 관리는 이번 폭탄테러와 관련,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탈레반에 대해 대대적인 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CIA테러범은 방문 잦았던 정보원  미 ABC방송은 2일 테러 용의자가 파키스탄 출신의 CIA 고정 정보원으로 해당 기지를 이미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아프간 출신인 기지 보안 책임자가 용의자를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 직접 만나 기지로 데려왔기 때문에 몸수색 없이 기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보안 책임자는 당시 테러로 숨졌다.  앞서 AP통신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 탈레반 고위급 책임자인 카리 후세인은 이번 테러는 자신들이 변절한 CIA 정보원을 이용해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덴마크 마호메트 풍자만화가 살해기도  덴마크에서는 1일 소말리아 남성(28)이 지난 2005년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 풍자 만평을 그린 쿠르트 베스터가르트(75)의 집에 도끼와 흉기를 소지하고 침입하려다 경찰의 총격을 받고 체포됐다. 보안당국은 용의자가 소말리아 테러조직 및 동아프리카의 알카에다 지도자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예멘 주재 美·英대사관 업무 잠정중단  한편 영국은 알카에다 세력에 대한 소탕 의지를 천명한 예멘 정부 지원 방안을 오는 28일 런던에서 열리는 아프간 전략 국제회의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또 미국과 함께 예멘의 대테러 경찰 조직에 자금지원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가운데 소말리아의 강경 이슬람 반군단체 알샤바브가 예멘 알카에다를 지원하기 위해 전투요원들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고 외신들이 2일 전했다. 예멘 주재 미국 대사관은 알카에다의 테러 위협으로 인해 3일 대사관 업무를 중단했다.  그런가 하면 소말리아 해적이 1일 아라비아 해 아덴만에서 선원 24명과 25명을 각각 태운 인도네시아와 영국 선적의 화물선 두 척을 납치, 새해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다. kmkim@seoul.co.kr
  • NSS 같은 각국의 비밀 정보기관은

    NSS 같은 각국의 비밀 정보기관은

    최근 드라마 ‘아이리스’를 통해 정보기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드라마에서는 극의 진행과 효과를 위해 도심 한가운데서 총격전까지 벌였지만 대부분의 정보기관은 아무도 모르게 일을 처리하는 게 사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인사나 정책과 관련된 사항 외에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매우 낮다. ‘국가정보원법’에 따르면 국정원은 예산까지도 비공개로 처리된다. 활동뿐만 아니다. 정보기관들은 존재 자체는 확인할 수 있지만, 내부 조직과 임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만하다. 우리나라 주변에는 어떤 정보기관이 있는지 널리 알려진 미국의 중앙정보부(CIA)나 국가안전국(NSA) 등을 제외하고 알아보자. ◆ 한국 국가정보원(NIS) 국정원의 역사는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정보기관은 중앙정보부(KCIA)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창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초대 부장은 김종필 전 총리로, 당시 중앙정보부는 일명 ‘중정’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1979년에 김재규 부장이 10.26사건을 일으킨 후 해체되어 1981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ANSP, 이하 안기부)로 재탄생한다. 당시 안기부는 서울 남산에 있었는데, “남산에서 나왔습니다.”라는 말은 곧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안기부 역시 1997년 15대 대선 당시, 특정후보에 대한 불법도청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쇄신을 위해 1999년 현재의 국정원으로 개편됐다. 국정원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을 거치면서 국내의 정치정보를 수집하는 기능이 많이 약해지면서 진정한 ‘국가정보기관’ 평가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이하 내조실) 내조실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2년 창설됐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하고 나서 국방력을 미국에 기댔던 탓에 내조실의 기능 역시 군사정보가 아닌 경제와 산업정보 수집으로 특화됐다. 이 정보들은 민간기업들에도 유용했기 때문에, 얼마안가 정부와 기업이 서로 협력해 방대한 정보망을 구축하게 된다. 해외로 나간 주재원들이 정보원의 역할을 겸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조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산업정보를 수집하게 됐다. 최근 내조실은 내각정보위성센터의 창설과 함께 인원과 예산규모가 급증하는 등 확대 개편된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 국가안전부(MSS, 이하 국안부)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중국의 국안부도 능력을 인정받는 정보기관 중 하나다. 특히 97년과 99년에는 미국의 국립실험실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을 포섭해 소형 핵탄두와 관련된 기술까지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을 정도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사건이지만 미국은 아직도 중국의 첩보활동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KGB의 후예, 러시아의 연방보안국(FSB) ‘러시아’하면 KGB(국가보안위원회)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KGB는 구소련 시절의 정보기관으로 지금은 해체되고 없어졌다. 다만 KGB 출신들이 지금까지 실세를 잡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러시아의 푸틴 총리로, 그는 15년간 KGB에 몸 담았었다. 러시아의 정보기관은 구소련의 해체와 이어진 경제난 덕분에 조직의 분리와 개편, 통합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능력도 많이 약해져 각종 테러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연방보안국은 러시아의 부활과 함께 과거 KGB의 기능을 상당부분 계승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부시정부 실종된 이메일에 무슨 내용이?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사라진 백악관 이메일 복구에 나선다. 이번에 복구되는 이메일에는 이라크 전쟁을 비롯해 중앙정보국(CIA)과 연루된 내용 등이 포함돼 있어 부시 정권의 의도적인 은폐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백악관은 부시 행정부 시절의 이메일이 보존돼 있지 않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기간 중 94일치의 이메일을 복구하기로 결정하고 이와 함께 전자 기록물들을 보존하는 시스템에 대한 정보도 공개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올해 초 이미 61일치의 이메일을 복구한 데 이어 33일치의 이메일도 추가 복구하기로 한 것이다.백악관의 이번 결정은 부시 행정부가 연방법을 위반하며 이메일을 고의로 삭제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2007년 조지 워싱턴대 국가안보문서보관소(NSA)와 ‘정부의 책임과 윤리를 촉구하는 시민모임(CREW)’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끝에 이뤄졌다. 이번에 복구되는 이메일 중에는 이라크 전쟁 시작을 앞두고 사라진 것도 있어 백악관은 물론 소송을 제기한 두 단체 모두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 또 당시 중앙정보국 비밀요원의 신분을 언론에 고의로 누설한 사건에 백악관 참모가 연루됐다는 ‘리크 게이트’ 관련 이메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전 행정부의 고의 은닉설이 확산되자 당시 백악관 부대변인을 지낸 스콧 스탠젤은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고 있다.”며 반박했다.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근거없는 유언비어 왜 퍼질까

    소문(루머·rumour)은 불온하다. 소문은 인터넷을 통해, 혹은 입에서 입으로, 혹은 버젓이 활자화돼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움직인다. 소문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事實)로 공인받지 못했음에도 사실에 가까운 무게감을 갖기 일쑤다. 소문은 흔히 유언비어(流言蜚語)라고 한다. 사실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을 때, 진실이 누군가에 의해 가려져있을 때,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닌, 띄엄띄엄 사실관계가 나올 때 유언비어는 사회에서 급속도로 유포된다. 또한 현실 속에서 진실(眞實)은 가볍다. 누가 사실에 ‘진실’이라는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다만 소문의 외피에 둘러싸인 진실은 설령 묵직함을 갖고 있더라도 일부 그릇된 소문에 의해 그 무게감조차 잃어버리곤 한다. ‘루머’(캐스 선스타인 지음·프리뷰 펴냄)는 소문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유포되는 거짓 소문의 배후와 그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실제로 거짓 소문의 변별만이 진실의 소중함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규제정보국 책임자로 있는 저자는 ‘사회적 폭포효과(Social cascades)’와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라는 창을 통해 루머의 번식과 전파의 과정을 탐색한다. 사회적 폭포 효과는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이 식견이 전혀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 집단 극단화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 전보다 더욱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하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넛지’의 공동저자인 캐스 선스타인은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이들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검열과도 같은 구시대적인 방식이 아니라도 엄정한 사법의 잣대를 통해 명예훼손죄 등을 적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모닝 브리핑] 美, 12·12때 北군사도발 가능성 50%로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은 지난 1979년 발생한 12·12 사태 직후 2~3개월내에 북한의 대규모 군사도발 가능성을 50% 정도로 판단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미 중앙정보국(CIA)은 12·12 사태 발생 8일 뒤인 12월20일 작성한 ‘남한내 불안정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라는 비밀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05년 6월 비밀이 해제됐다. CIA 보고서는 “김일성 주석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나타난 남한 군부파벌간 다툼과 광범위한 사회 무질서 상태를 자신이 권좌에 있을 때 한반도를 재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면서 “북한이 군사적 개입을 결정한다면 대규모 공격이 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CIA는 그러나 주한미군 때문에 “북한이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은 최대 50대50”이라며 주한미군의 억지력을 강조했다.kmkim@seoul.co.kr
  • 앨리샤 키스 콘서트를 안방에서!

    앨리샤 키스 콘서트를 안방에서!

    미국에 가지 않고 세계적인 R&B 가수 앨리샤 키스의 라이브 공연을 한국에서 보는 방법은. ‘2일 오전 10시 유튜브에 접속한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는 라이브 스트리밍 공연의 두 번째 시리즈로, 현지시간 12월1일 미국 뉴욕 노키아시어터에서 열리는 앨리샤 키스의 에이즈 퇴치를 위한 콘서트를 선택했다. 이 공연은 유튜브내 앨리샤 키스의 공식 채널(http://www.youtube.com/user/aliciakeyssme)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비영리재단인 ‘킵 어 차일드 얼라이브’(Keep a Child Alive)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앨리샤 키스는 세계 에이즈의 날을 기념해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  앨리샤 키스의 공연 채널에는 트위터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 수 있으며, ‘기부(Donate Now)’ 버튼을 눌러 킵 어 차일드 얼라이브 재단에 기부할 수도 있다. 공연을 놓친 사용자는 앨리샤 키스의 공식 채널에서 공연 하이라이트를 모은 동영상 클립을 볼 수 있다.  유튜브는 지난 10월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로즈보울에서 진행된 아일랜드 출신의 4인조 록그룹 ‘유투(U2)’의 공연을 한국, 일본, 캐나다 등 16개국에 동시중계하며 첫번째 라이브 스트리밍 공연 서비스를 선사했다.  한편 최근 싱글 음반 ‘트라이 슬리핑 위드 어 브로큰 하트(Try Sleeping With A Broken Heart)’를 낸 앨리샤 키스는 오는 15일 새 앨범 ‘디 엘리먼트 오브 프리덤(The Element Of Freedom)’의 전세계 동시 발매를 앞두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모닝 브리핑] 美 정보 총책임자 방한… 아프간파병 등 논의

    데니스 블레어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최근 동북아 순방의 일환으로 방한, 정부 안보관계부처 고위인사들을 만나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파병과 북핵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블레어 국장은 중앙정보국(CIA)을 포함한 16개 정보 기관을 총괄하는 미 정보 당국의 총책임자이다. 정부 관계자는 27일 “블레어 국장이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방한했다.”면서 “이번 방한은 아시아 순방 등 정기적인 차원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블레어 국장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태영 국방부 장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등을 각각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美 올해의 단어 : 훈계하다 ‘Admonish’

    2009년 미국을 대표하는 단어로 ‘admonish(훈계하다, 주의를 주다)’가 선정됐다. 미국의 유명 사전출판사인 메리엄웹스터는 올해 자사 온라인 영어사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를 살펴본 결과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19일(현지시간) 밝혔다. 이 단어는 ‘염려하는 의미에서 경고나 반대의 뜻을 표현한다.’는 의미의 동사다. ‘admonish’는 조 윌슨 공화당 하원의원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이야.’라고 외친 것에 대한 반응을 묘사할 때 쓰이면서 1위에 올랐고, 당시 미 하원은 윌슨 의원에게 주의를 주는(admonish) 공식 결의를 채택했다. 지난해에 이어 후보에 오른 ‘불량한(rogue)’은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와 관련된 것으로 올해 ‘불량해지기(Gone Rogue)’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다시 이목을 끌었다. 또 팝의 황제마이클 잭슨의 사망과 관련해 ‘수척한(emaciated)’이 사후 그의 몸 상태를 묘사하는 데 쓰이면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경찰·소방·국가정보원 공무원 응시연령 여전히 제한

    경찰·소방·국가정보원 공무원 응시연령 여전히 제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정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올해부터 일반직 공무원시험에서 응시연령 제한을 두는 제도가 폐지됐다. 군무원시험도 내년부터는 응시연령 제한을 대폭 완화한다. 하지만 경찰청과 소방방재청, 국가정보원 등은 여전히 공채 시 나이 제한을 두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 공무원이 일정 체력을 요구하는 특수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검정으로 거르는 게 아니라 시험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일반직과 군무원은 폐지, 완화 공무원 공채에서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은 4~5년 전부터 제기됐다. 그러다가 인권위가 2006년 중앙인사위원회(현 행정안전부 인사실) 등에 권고를 요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5급 국가공무원 시험에서 응시연령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이 불붙었다. 행안부는 올해부터 일반직 공채에서 모두 나이 제한을 폐지하는 등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교정직렬과 철도공안직렬은 업무 특성상 일부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결국 이들 직렬도 폐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로 인해 올해 공무원 채용에서는 만 55세 남성이 합격하기도 하는 등 공조직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보수적인 조직인 군무원도 내년부터 현행 35세인 응시연령 제한을 40세로 확대한다. ●“일정수준 체력 요구할 수밖에” 하지만 경찰청과 소방방재청, 국정원은 응시연령에 제한을 두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경찰 순경 공채와 소방공무원 소방사 채용은 각각 만 30세(군복무기간 연장 제외) 이하만 응시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국정원도 신입직원을 선발할 때 5·6급은 20세 이상 34세 이하, 7·8급은 20세 이상 31세 이하, 9급 이하는 20세 이상 29세 이하로 각각 제한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체력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은 그러나 특별채용제도와 외국 사례를 고려하면 이 같은 나이 제한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경찰청은 매년 경찰행정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특채를 실시하고 합격자는 순경으로 임명하고 있다. 하지만 특채 나이 제한은 만 40세 이하로, 공채와 10세나 차이가 난다. 수험생들은 또 국정원과 유사한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18세 이상은 모두 정규직 채용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 국정원에 철폐 권고 인권위는 19일 전모(36·남)씨 등 4명이 “국정원이 경쟁시험의 응시자격에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은 차별”이라고 제기한 진정과 관련해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정했다. 국정원이 올해 4월 5~8급은 만 26세 이하, 9급 이하는 만 24세 이하로 제한하던 기존 규정을 완화했지만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신입직원은 고강도의 육체훈련 등 특수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데다 엄격한 상하관계에 따른 지휘체계가 필요해 연령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는 하지만 “체력과 전문성 등 적격성을 갖췄는지가 중요하지 ‘연령’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반박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부고]6월항쟁 계엄반대 릴리 前미국대사 별세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제임스 릴리 전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시블리메모리얼병원에서 별세했다. 81세. 가족 측은 릴리 전 대사가 전립선 암 합병증을 앓아왔다고 밝혔다.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중앙정보국(CI A) 요원으로 활동했던 릴리 전 대사는 한국과 중국의 민주화 격동기인 1986~91년 한국과 중국주재 대사를 각각 역임한 아시아통이다. 릴리 전 대사가 주한미국 대사를 지내던 1986~89년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기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등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던 시기였다. 릴리 전 대사가 지난 2004년 발간한 자서전 ‘차이나 핸즈(China Ha nds)’에 따르면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한국의 계엄령을 반대하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직접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전달해 계엄령 선포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가까스로 막았다고 회고하는 대목이 있다. 미 정부 내 중국통인 그는 주중대사(1989~91)에 부임하자마자 발생한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당시 중국의 인권탄압을 강하게 비난하며 사태 해결을 위해 물밑 조율작업을 벌였다. 릴리 전 대사는 석유관련 사업을 하던 부친이 중국에서 머물던 1928년 칭다오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미 예일대를 졸업한 뒤 조지워싱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고인은 1951년 CIA에 투신했다. 이후 1978년까지 27년간 도쿄와 베이징, 타이완, 홍콩,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등지를 무대로 활동했다. 릴리 전 대사는 이후 국무부로 자리를 옮겨 외교관 활동을 시작했으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뒤 주한·주중대사를 잇달아 역임했다. 릴리 전 대사는 지난해 여름 캐서린 스티븐스 현 주한미국대사의 미 상원 외교위 인준 청문회에 참석, 스티븐스 대사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고 한국 관련 싱크탱크 행사들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kmkim@seoul.co.kr
  • [주말 데이트] 한국 클래식 르네상스 꿈꾸는 작곡가 류재준

    [주말 데이트] 한국 클래식 르네상스 꿈꾸는 작곡가 류재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자 주저하지 않고 “쉬고 싶어요. 딱 1년만”이라고 말한다. 작곡가 류재준(39)의 본업은 곡을 만드는 것이지만, 그는 음악춘추에 12년째 시평을 쓰는 칼럼니스트이자 지난 5월 첫선을 보인 서울국제음악제의 음악감독이기도 하다. 한 달에 두어번은 비행기에 몸은 실을 정도로 미국, 영국, 스페인, 싱가포르 등 활동 무대가 폭넓다. 하루에 눈 붙일 시간이 많아야 4시간이라니 휴식을 갈망하는 심정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의 사고회로 자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지난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류재준은 이날도 한 차례 회의를 끝내고 인터뷰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충혈된 눈에서 피로감이 엿보이는데도 서울국제음악제를 초청한 스페인의 CIEC(Centro Internacional de Excelencia de Cuerda)에 대해 묻자 금세 생기가 돈다. ●클래식 음악제 최초로 해외음악제 초청받아 “스페인 라 리오하에서 태어난 작곡가 가르시아 파헤르를 기념하는 재단이 여는 축제로,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어요. 관현악·실내악·독주 등 연주회와 세계적인 연주가들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리고, 와이너리(와인 양조장)에서 공연하는 음악회도 있죠. 공연을 위한 장소가 아닌데도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지….” 설명을 하는 내내 행복한 표정이 역력하다. 내년 1월10~29일에 개최되는 CIEC에 초청받은 것은 갓 태어난 서울국제음악제로서는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국내 클래식 음악제가 해외 음악제에 진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CIEC에는 그가 “기가 막힌 연주라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될 것”이라고 소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제자르 플레, 비올리스트 아브리 레비탄, 첼리스트 아리엘 투신스키 등이 참가한다. 그가 “우리 클래식 수준을 확실하게 보여줄 연주자들”이라고 자신하는 백주영(바이올린), 송영훈(첼로), 박종화(피아노)가 참여해 작곡가 최우정, 강석희, 류재준의 곡을 선사한다. 그는 이 성과의 의미를 ‘최초’, ‘해외 수출’ 따위의 수식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다. “음악제가 친분이 있는 음악가들을 불러 흔한 레퍼토리를 들려주는 ‘그들만의 리그’인 경우가 많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대중화하는 취지도 바람직하지만 음악제는 관객에게 어떤 이슈와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국제음악제가 그런 점에서 차별점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가 선택한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5월22~30일)의 주제는 ‘음악을 통한 화합’이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한창일 때 아이디어를 얻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출신의 두 바이올리니스트가 협연하는 무대를 만들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9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그의 교향곡 1번인 ‘레퀴엠(진혼곡)’을 연주했다. 그를 후계자로 지목한 ‘폴란드의 음악대통령’ 크슈스토프 펜데레츠키를 초청해 ‘샤콘느’, ‘라르고’ 등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기도 했다. 단순히 음악제 참여에만 그치지 않는다. CIEC 아카데미 코스에서 한국 학생들이 배울 기회를 마련하고, CIEC 음악학교와 대전예고의 자매결연도 추진했다. 음악교육이 집중된 서울 이외의 곳에서 꿈을 키우는 아이들에게 수준 높은 음악을 접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음악감독·작곡가·칼럼니스트로 바쁜 나날 이 정도 되니 그가 기획자인지 작곡가인지 헷갈릴 법도 하다. 물론 그는 작곡가로서도 바쁘다. 2010년 6월 첼리스트 아르토 노라스가 연주할 첼로 협주곡을 쓰고 있고, 2011년 2월 세계 최고의 관현악단인 암스테르담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로부터 의뢰받은 교향곡 2번을 구상 중이다. 빡빡한 일정에서 짬이라도 나면 그는 책을 붙든다. 최근 읽은 ‘코코 샤넬’을 강력추천작으로 꼽았다. “코코 샤넬이 살았던 시기는 두 번째 르네상스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예요. 영화감독 장 콕토, 무용가 니진스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파노라마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르네상스형 인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그가 ‘코코 샤넬’에서 읽은 것은 한 패션 디자이너의 삶이 아닌, 그가 꿈꾸는 한국 클래식의 르네상스가 아니었을까.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伊법원, 美 CIA요원 23명에 실형

    이탈리아 밀라노 지방법원이 4일(현지시간) 2003년 이집트 성직자 납치 사건에 연루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23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미국 밖 테러용의자까지 불법 이송한 CIA의 대(對)테러작전에 대해 첫 사법적 제동을 건 것이다.CIA는 2003년 2월 이집트 성직자 오사마 무스타파 하산 나스르를 밀라노에서 납치, 이탈리아와 독일 등의 미군 기지를 거쳐 이집트로 이송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CIA 요원들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기소된 26명 중 23명에게 유죄를 판결했다. 로버트 레이디 CIA 밀라노 지부장에게는 징역 8년형, 다른 22명에 대해서는 5년형이 각각 선고됐다. 법원은 또 CIA에 나스르와 그의 아내에게 각각 100만유로(약 17억 5000만원)와 50만유로를 지급하도록 판결했다.이날 판결은 피고인 CIA 요원들이 출석하지 않은 가운데 이뤄졌다. 미 정부가 이들의 송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탈리아 정부도 검찰에 협조하지 않아 재판은 난항을 겪었다.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판결에 실망했다.”면서 유감을 표했다. CIA는 일체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반면 인권단체들은 “테러용의자를 납치해 고문이 가능한 제3국으로 송환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의 불법적 관행이 사라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 판결을 환영했다.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의회의 보고서를 인용, CIA가 불법 이송한 유럽지역의 테러용의자가 지난 6년 동안 100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 일부는 CIA의 비밀교도소에 투옥된 것으로 추정된다.안석기자 ccto@seoul.co.kr
  • 3共~유신시대 풍운아 이후락씨 별세

    박정희 시대의 실세 중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서 뇌종양과 노환이 겹쳐 별세했다. 85세. 그는 지난 5월 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 전 부장은 1924년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공립농고를 졸업했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1기로 졸업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 정보국 차장과 주미대사관 무관을 거쳤다. 미 중앙정보국(CIA) 연락책도 맡았다. 이 전 부장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의 5·16 군사쿠데타였다. 5·16 주체세력은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당시 CIA와 가까웠던 이 전 부장을 영입했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공보실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1963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 전 부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기용됐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 출범과 함께 권력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3선(選) 개헌의 후폭풍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전 부장을 주일대사로 보냈으나 1년 뒤 핵심자리인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했다. 이 전 부장은 1971년의 대통령선거를 사실상 총지휘했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71년의 대선에서 패배한 뒤 이씨에게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 부장에게 졌소.”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관권 및 금권 선거를 총지휘한 그를 비꼰 것이다. 이 전 부장은 ‘대한민국 제1세대 대북 밀사’로도 유명하다. 1972년 5월2일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을 몸에 감추고 3명의 수행원과 함께 채 판문점을 넘었다. 그는 3박4일간의 방북기간 중 김일성 주석(당시 직함은 노동당 총비서)을 두 차례 만나 북측으로부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기본 원칙’을 받아 왔다. 북측의 김영주(김일성 주석 동생)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박성철 제2부총리가 그해 5월29일부터 서울을 답방, 박 전 대통령 및 이 전 부장과 수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는 공작정치의 대명사라는 말도 듣는다. DJ 납치 사건의 주범으로도 꼽힌다. 1973년 7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DJ 납치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잃었다. 특히 1973년 12월1일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사석에서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라고 발언한 게 파문을 일으켜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경질됐다. 권좌를 떠난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 전 부장은 “조계종 회의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그해 12월 말 극비의 정보 문서들을 챙겨 영국령 바하마로 출국했다. 사실상 망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망명한 이 전 부장이 자신의 치부를 폭로할 것을 우려해 귀국을 종용했다는 설이 정설로 돼 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친필 편지를 받고 1974년 2월 귀국했다. 1970년 말 국회의원을 잠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신군부 세력으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리면서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치활동을 규제받았다. 1985년 정치활동 규제에서는 풀렸으나 외부행사에 나오지 않으며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 왔다. 이 전 부장은 입원하기 전까지 경기 하남시에 있는 별장에서 칩거하며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유족은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 등 3남1녀. 빈소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발인은 2일 오전 8시30분. (02)440-8922.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정부예산 대해부] 과학기술 선진국에선

    세계에서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R&D 지원체제는 어떻게 돼 있을까. 미국 R&D 투자의 핵심은 연방정부의 투자다. 미 정부는 개별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것보다 공동으로 할 때 파급효과가 큰 분야를 선별해 ‘공동 R&D 프로그램’을 도출한다. 이렇게 수행되는 공동 R&D 프로그램은 사업 추진 전 관련된 정부기관들이 세부 실행계획을 협의한 후 조정되기 때문에 동일한 사업이 중복될 염려가 없다. 또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은 타영역으로 파급효과가 큰 기초연구에 대해 비중 있는 투자를 한다는 점이 강점이다. 기초과학 분야가 약하고 즉각 사업화가 가능한 응용과학이 발달한 우리와 차별된다. 또한 미국은 의회와 행정부 모두가 예산 조정 및 편성과정 내에서 연구개발사업의 단계별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어 사업이 중복되는 경우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일본은 각 실무부처보다 한 단계 높은 위치의 ‘총합과학기술회의’에서 국가의 전반적인 R&D 예산을 심의한다. 총합과학기술회의의 특징은 전략성과 적시성에 있다. 총합과학기술회의는 국가적·사회적 과제에 적시적절하게 대응키 위해 신규 시책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한다. 우선순위는 사안의 중요성, 실시방법의 최적성, 자원투입 규모의 타당성 등을 고려해 판정된다. 판정 결과는 4단계로 구분되며 중요도가 높은 순서대로 자원이 배분된다. 그 가운데 1단계인 S(Special) 단계는 내용적으로 특히 중요해 특단의 속도로 사업 추진이 필요한 분야가 선정된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카스트로 여동생 “난 CIA 스파이였다”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전·현직 국가평의회의장의 여동생인 후아니타 카스트로(76)가 1964년 미국 망명 전 미 중앙정보국(CIA)에 내통한 사실을 밝혔다고 AP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후아니타는 멕시코 출신 언론인 마리아 안토니에타 콜린스와 공동 집필한 회고록 ‘나의 오빠 피델과 라울, 비밀이야기’의 출간을 앞두고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1961년 또 다른 여동생 엔마를 만나러 간다며 멕시코를 방문해 멕시코시티의 한 호텔에서 CIA 요원과 접선한 뒤 ‘도나’라는 암호명을 받았다. 그 뒤로 3년간 CIA와 협력하며 반체제 인사들의 활동을 도왔다. 후아니타는 CIA와 단파라디오를 통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AP는 전했다. 하지만 그는 협력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회고록의 공동 저자인 콜린스는 후아니타가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동포들을 도왔다고 전했다. 원래 후아니타는 1959년 오빠 피델이 이끈 쿠바혁명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피델의 독재정치에 환멸을 느낀 뒤 은밀히 반체제 인사들을 돕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집은 반체제 인사들의 은신처로 활용됐다. 피델은 그에게 “벌레들(반체제 인사들을 지칭)과 내통하지 마라.”고 경고할 정도로 이미 둘 사이는 멀어진 상태였다. 이후 후아니타는 1963년 어머니 리나 크루스가 사망한 뒤 쿠바를 떠나 마이애미에 정착했다. 회고록에 담긴 두 오빠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그는 피델을 이기적인 냉혈한으로 묘사했지만 라울은 고귀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 라울의 딸인 조카 마리엘라가 동성애자 인권 보호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예방 활동을 하는 것에도 찬사를 보냈다. 그는 회고록에서 “피델을 배반하고 적과 내통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배반한 것은 내가 아닌 바로 오빠 피델”이라고 잘라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佛 정치영화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佛 정치영화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불법체류 문제를 다룬 영화 ‘낙원은 서쪽이다’(2008년)가 끝나자, 코스타 가브라스(76) 감독이 입장했다. 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관객 한명은 앞으로 달려나가 꽃다발을 안겼다. 울고 웃으며 영화를 봤다는 대학생, 젊은 시절 감독의 영화를 본 뒤 정치학을 전공하게 됐다는 중년 관객 등…. 질문에는 하나같이 존경어린 헌사가 섞여 있었다. Q&A 시간이 끝나자 이번에는 우르르 감독을 에워쌌다.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느라, 상영관 앞은 한동안 북새통을 이뤘다. “마스터클래스, 관객과의 대화 때 무척 감동을 받았어요. 사실 한국 오기 전엔 대강 짐작만 했는데,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 줄은 와서야 알게 됐네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첫마디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정치 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는 그리스 군사정권을 비판한 ‘Z’(1969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범죄를 폭로한 ‘의문의 실종’(1982년), 유대인 학살 문제를 소재로 한 ‘뮤직박스’(1990년) 등 유럽사회의 첨예한 쟁점을 다룬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해 왔다. 풍자와 유머로 오락성 역시 겸비한 그의 영화들은 늘 대중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왔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세번째 영화 ‘Z’는 한국에선 20년 동안 상영 금지되다 1989년에야 극장에 걸리기도 했다. 이번 부산영화제는 그의 작품 중 ‘Z’와 ‘낙원은 서쪽이다’ 2편을 선보였다. 처음 찾은 한국에서 팬들의 사랑은 물론 부산영화제 자체도 깊은 인상을 안겨준 듯했다. “제가 프랑스 국적이어선지,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세계 최고의 영화제는 칸영화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 와보니 칸영화제와 가장 가까운 영화제가 부산영화제란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부산이 더 나은 점도 있어요. 칸이 언론과 영화관계자 위주인 반면 부산은 모든 관객에게 열린 영화제란 점이죠. 열정적인 젊은 관객들의 모습에 정말 놀랐습니다.” 그리스 출신인 가브라스 감독은 19세에 프랑스로 이주했다. 러시아 이주민인 아버지가 좌파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그리스에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자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이후 소르본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파리 영화고등연구소(IDHEC)에서 영화를 배웠다. “어릴 땐 흔히 배우를 꿈꾸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보 같은 생각이란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대학시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발견하곤, 그리스에선 검열에 걸려 볼 수 없었던 좋은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하고 싶은 얘기를 이미지를 통해 전달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영화학교에 들어갔죠. 행운이었어요.” 현재 그는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초기작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감독은 이젠 휴머니즘과 희망을 얘기한다. 작품세계의 변화에 대해 그는 “나도 변하고 그 사이 세상도 변했다.”는 말로 설명했다. “40년 전 세상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이분화돼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는 사회를 반영하는 매체죠. 세상과 사람이 바뀌었을 때, 당연히 영화도 변하게 됩니다.” 시대의 요구로 무거운 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사실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저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을 뿐”이라면서. 그럼에도 단 한 가지, 전달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낙관주의’라고 이야기한다. “세계는 빈곤, 환경, 대기업 독과점 등 3가지 문제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소통을 통해 해결점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것이라 봅니다.” 물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라는 영화 철학이다. “관객들에게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정치 담화도 아니고 대학 강의도 아니기 때문이죠.” 이는 정치문제를 다루면서도 항상 상업영화 틀 안에서 작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방가르드’ 정신을 놓치지도 않는다. 그는 “아방가르드 영화에는 자본 등 여러 난관이 따른다.”면서 “그래도 그런 영화를 만들 때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젊은 세대들이 다시 아방가르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찬욱 감독은 그의 2005년작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를 리메이크하기로 결정했다. 박 감독의 ‘박쥐’와 확장판 ‘박쥐’(10여분 증가)를 모두 인상적으로 봤다는 가브라스 감독은 “그렇게 재능 많은 감독이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산에서 박 감독을 만났을 때도 “나는 어떤 의견도 주고 싶지 않다. 당신을 믿기 때문이다.”며 “내가 할 일은 완성작을 보러가는 것뿐”이라 말했다고 전했다. 혹시 고국 그리스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그리스가 민주화된 이후 지금은 거의 유럽화됐어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더욱 좋아졌죠.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꼭 한번 그리스로 돌아가서 영화를 찍고 싶어요.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아마 그의 팬들도, 세계의 영화계도 그렇게 바라고 있을 것이다. 부산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 제공
  • 미국의 400대 부호들 “아예 나라 하나를 사버릴까”

    얼마 전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의 400대 부호들 재산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포브스’는 막연한 수치만으로 이들의 재산 규모를 재빨리 알아채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이들이 돈으로 살 수 있는 나라들을 한번 꼽아보았다.불손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프랑스의 성채나 카리브해의 섬들,개인 제트기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모두 1조 2700억달러의 부를 거머쥔 이들 각자가 다음 나라들을 아예 돈으로 사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매년 내는 국가별 통계집 ‘팩트 북’에 따르면 부동의 1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500억달러(약 58조 7250억원) 재산으로 140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앞질렀다.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볼리비아와 우루과이 등이며 마이크로소프트의 1년 순익 전망치는 탄자니아와 미얀마 등의 GDP를 약간 밑돈다. 지난 1년동안 100억달러를 잃어 400대 부호 가운데 가장 많은 손실을 기록한 워런 버핏은 여전히 400억달러 자산으로 북한을 사들일 수 있는 재력을 자랑한다.하지만 ‘오마하의 현인’은 여전히 투자가 본분이라고 여길 것이다. 실제로 400대 부호 가운데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작은 단위이긴 하지만 일종의 국가를 공식적으로 경영하고 있다.그가 금용정보 서비스와 블룸버그 통신으로 벌어들인 175억달러의 재산은 남아프리카의 잠비아 공화국 경제규모와 맞먹는다.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의 업무용 빌딩 475개를 비롯해 115개의 아파트 단지,41개의 소매점,리조트 등을 소유해 사실상 오렌지 카운티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 개발업자 도널드 브렌은 120억달러의 자산으로 이론상으로는 아이티 경제를 인수할 수 있다. 카지노 재벌 셀던 아델슨의 90억달러 자산은 미얀마 GDP와 똑같다.세계최대의 인터넷 경매 사이트 eBay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댜르 55억 자산으로 소말리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스타워즈’와 ‘인디애나 존스’를 만든 할리우드 감독이며 세게 최대의 특수효과 회사인 ILM 회장인 조지 루카스는 30억달러 자산으로 아프리카 기니의 GDP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헤지펀드 창업자 데이비드 쇼의 25억달러 재산은 중남미 벨리즈의 시장가치와 맞먹고 투자자 존 폴슨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2007년 서브프라임 위기로 재산이 축나긴 했지만 그래도 68억달러 재산으로 몬테네그로의 GDP와 똑같다. 지난해 가을 AIG의 붕괴로 인해 엘리 브로드의 재산도 13억달러나 축났지만 은행에 넣어둔 돈만으로도 바베이도스의 경제 54억달러와 맞먹는다. 재산이 10억달러 미만인 400대 부호들도 여전히 지구촌의 상당수 경제 단위들을 먹여 살릴 수는 있다.콜로라도의 수자원을 소유한 개리 매그네스는 9억 9000만달러의 자산으로 남태평양 바나투 GDP를 약간 앞지른다. 400대 부호의 맨 끄트머리 세 사람도 재산을 합치면 29억달러가 돼 벨리즈의 전체 경제규모를 앞지른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낙관적인 성격, 다이어트에 효과 없다”

    “낙관적인 성격, 다이어트에 효과 없다”

    낙관적인 마인드가 도리어 살을 빼는데 해를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심리학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과 ‘비만’은 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 이라며 “약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건강이나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더 효과적으로 살을 뺀다.”고 주장했다. 일본 도시샤 대학의 심리학자들은 비만인 남성과 여성 101명을 상대로 영양섭취와 운동 효과, 다이어트에 임하는 마음자세 등을 묻는 상담을 실시했다. 이후 식이, 운동요법을 거쳐 다이어트를 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약간의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건강과 외모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더 효과적으로 살을 빼는데 성공한 반면, 외모나 몸무게에 스스로 만족하고 그저 되는대로 태평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만환자들은 고집스럽고 낙천적인 사고방식이 강한 자유아동 자아상태(FC: Free Child ego state)의 사람들로, 이 그룹은 건강을 크게 개의치 않고 유혹에 잘 넘어가며,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이 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자유아동 자아상태(FC)는 미국의 정신과의사 에릭 번(Eric bern)이 사람의 인격을 3가지 상태로 나눈 것 중 하나로, 자유아동(FC), 성인(A), 부모(P)로 분류한다. 이 연구결과는 ‘생물정신사회 의학’(BioPsycholSocial Medicine)에 실렸다. 사진=inthenews.co.uk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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