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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쿠바소년 ‘엘리안’

    구사일생으로 쿠바에서 미국으로 탈출한 6살짜리 한 난민소년에게 미국은물론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미국정부의 쿠바송환 방침에 따라 무장한이민국 특수요원들이 그동안 이 소년을 보호하고 있던 친척집을 급습하여 소년에게 자동소총을 겨누며 구인하는 모습은 살벌하고 섬뜩하다. 양육권이 있는 아버지에게 돌려주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고 하지만 ‘법대로’의 나라 미국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엘리안 곤살레스라는 이름의 이 소년에게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닥친 것은 지난해 11월.어머니와 함께 쿠바를 탈출하기 위해 탔던 난민선이난파하는 바람에 어머니를 잃고 3일만에 혼자 가까스로 구조되면서 세계의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나이 어린 엘리안을 자유의 나라 미국에 살게 해야한다는 마이애미의 친척들은 그의 망명을 신청했고 쿠바는 아버지가 살고있는 쿠바로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며 연일 시위를 계속했다.고민끝에 미국 행정부는 불법입국자는 송환한다는 원칙과 엘리안의 양육권은 쿠바에 있는 아버지에게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엘리안을 강제구인한 것이다.미국 행정부의 엘리안 송환방침에는 최근들어 지난 59년 카스트로의 공산혁명 이후 40여년간단절됐던 쿠바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정치적 배려도 깔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법행위에 대한 미국의 대응,특히 불법입국이나 체류에 대한 조치는 무자비할 정도로 강경하다.시위가 매일이다시피 벌어지고 있는 미국이지만 허용된 범위를 벗어난 행위에는 백주 대로에서 몽둥이질하기는 예사이고 기마경찰이 말발굽으로 마구 짓밟기도 한다.지난해 시애틀에서 열렸던 세계무역기구(WTO)각료회의와 얼마전 워싱턴의 IMF·IBRD연례회의의 경우에서도 볼 수있었던 광경이다.미국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른 나라로 가려는 통과여객은 반드시 미국 비자를 받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공항에서만 머문다고비자 없이 들어갔다가는 다음 비행기를 탈때까지 권총을 찬 경호원이 지키는유치장같은 곳에 갇히는 신세를 면할 수 없다.불법 입국을 막기위한 조치라는 이유로 어떠한 항변도 통하지 않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하더라도 이번 엘리안의 경우는 미국의 조치가 심했던 것 같다.‘법대로’의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법도 인도적이거나 도덕적인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모든 것을 자신들의 잣대로만 재려는 미국의 우월감도 문제다.쿠바계 미국인들의 항의가 극렬하고 세계인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이유이다..미국 법원의 최종판결이 주목된다. 장정행 논설위원
  • 엘리안 소년 강제구인‘시민권 침해’비화

    지난 22일(현지시간)새벽 쿠바 난민 엘리안 곤살레스군(6)을 친척들로부터무력으로 데리고 온 미 이민국의 행동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공권력 동원이라는 지적이 대두되는 등 사건 후유증이 커지고 있다. 엘리안군을 ‘탈취’당한 마이애미 친척들과 이민국의 작전을 비난하는 의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당일 이민국 대원들은 적절한 영장이 없이 불법침입한 것이며 이는 명백한 시민권 침해라는 지적이다. 최근 미 연방대법원의 판례에는 연방수사요원이 구체적으로 기재된 영장 없이 개인주택의 문을 물리적으로 부수고 들어갈 수 없으며,특히 소년은 물론어떤 개인의 신병도 확보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민주당 하원 원내총무인 톰 드레이 의원은 “미국정부가 내가 아는 한 사상 처음으로 법원의 허가없이 개인집을 급습했으며 법원에 계류중인 사건의 당사자인 소년을 억류했다”고 공박했다.엘리안을 보호해왔던 마이애미 친척들은 사건을 총지휘한제닛 리노 법무장관과 도리스 마이스너 이민국 국장,소년을 데리고 나온 여대원 베티 밀스 등을 시민권침해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다. 당국은 일단 소년을 확보해 미국내 머물고 있는 아버지 후안 미겔 곤살레스에게 인도,친권을 존중하고 법적용에 의지를 보인 데에는 성공했지만 소송불똥이 이민국까지 확대될 경우 사건의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재 엘리안군은 애틀랜타 제11항소법원이 정치망명신청 판결을 내릴 때까지 미국에 체류해야 하는데,법원은 일단 오는 5월11일 공판기일을 잡고있다. 이날 공판에서 망명이 받아들여질 경우 소년의 친권은 아버지가 아닌 친척들에게 주어지지만 이민국 직원들은 망명신청이 기각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망명이 거부될 경우 생부는 소년을 데리고 쿠바로 귀국할 수 있지만,친척들이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 확실시 되고 이때에 법원이 추가로 미국체류를 명령할 경우 출국은 금지된다.대법원 판결은 수개월 이상 소요되고 이 때문에소년이 더 오래 미국에 머물수도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엘리안 사진 진위 논란.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군(6)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 함께 찍은사진이 가짜사진이라는 주장이 대두됐다. 미 이민국은 지난 22일 전격작전으로 엘리안군을 마이애미 친척들로부터 확보,워싱턴 근교 앤드루 공군기지내에서 아버지와 상봉토록했으며 이때 찍은사진이라며 소년이 아버지,계모,이복동생 등과 함께 어울려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안군을 5개월동안 보호해온 사촌누나 마리스레이시스 곤잘레스양(21)은 23일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사진은 엘리안의 최근 머리모양과 다른 위조된 사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엘리안은 사건 3일전 이발을 했으며 그들이 보여준 사진에서 머리모양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도리스 마이스너 이민국 국장은 이같은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또 엘리안 아버지의 변호사 그레고리 크레이그씨도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함께 편안하고 행복해 하는 엘리안을 내가 봤으며 사진이 조작됐다는 비난은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 [대한포럼] 미국, 무역적자 타국에 전가말라

    미국이 올해 우리나라에 통상압력을 높일 것으로 전해져 자칫 서두르는 나머지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미국 정부나 업계가 거론하는‘한국 시장의 폐쇄성’도 현실감이 없어 보이고 한국민의 미국 인식만 나빠질까 걱정스럽다. 한국 정부는 내달부터 자동차,제약,철강과 반도체 등에서 미국의 시장개방압력과 싸울 예정이다.우리나라가 지난 2년간 수백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내면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사실상 졸업하자 미국이 자국 제품을 더 사라고 몰아붙이는 모양이다.미국도 사정이 딱하긴 하다.미국 경상수지 적자가지난해 4·4분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97년이후 매년 1,000억달러 이상 급증해 이른바 신경제가 거덜날 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높아진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폐쇄적인 시장을 집중 거론한 것을 비롯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관계자들도 한국에게 세제개선등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미국이 슈퍼 301조까지 발동해 무역보복을 할 지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점쳐진다.안타까운이유는 미국이 한국 소비자와 시장분석없이 종전과 같은 구태의연한 개방압력에 집착하는 것같아서다. 한국 소비자들의 흥미로운 의식 단면은 최근 정신문화연구원의 조사에서 엿볼 수 있다.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현재 나이가 30대인 서울대 386세대 중 절대다수인 87.5%는 ‘품질이 좋고 값이 싸다면 국산과 외제를 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그러면서도 65%가 ‘기간산업은 국가가보호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들 서울대 386세대뿐아니라 전국 30대들도 이른바 개인적으로는 외제를 수용하면서도 사회의식은 외세에 보수적인 ‘개방적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40대 이후 세대들은 사실 맹목적인 국산품 애용을 교육받거나 아니면 ‘양담배 피우면 처벌받는다’는 강압적인 문화에 길들어져왔다.따라서 더 보수적으로 ‘그래도 국산품을 써야지’하는 잠재의식이 강하며 기간산업의 국가소유에도 더 찬성한다. 그래도 한국 소비자들의 의식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젊은 소비자들은 미국이 ‘싸고 질좋은 제품’을 팔면 사줄 가능성이 더 높다.정보통신분야에서독보적인 미국의 컴퓨터 장비는 한국기업들이 ‘알아서’잘 사주고 있다.지난해 BMW가 국내 외제차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을 비롯해 벤츠 등 독일차가호조를 보인 것은 경쟁력과 소비자선택에 따른 것이지 독일 정부의 압력 때문은 아니다.한국의 관세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세금에 관한 한 한국 정부가 고칠 것은 거의 없다.외국인이 한국 기업과 건물을 대량 사도 덤덤하게봐줄 정도로 외국자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상당히 사라졌다. 다만 미국 정부나 기업들은 고려할 것이 있다.한국에는 미국의 부정적인 면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 386세대가 주력 소비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 외환위기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있는 사람도 있다.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기성 세대들은 한국의 경상수지흑자가 줄어들면외환위기가 재발될까 우려한다. 과거 미국은 통상압력에서 총대를 메고 앞장섰지만 ‘재주만 넘고’ 실제이익은 중국과 유럽이 챙겨왔다.외국인이 한국기업들을 인수한 뒤에도 소비자들을 고려해 국내 기업의 간판을 그대로 달게 하는 세심함을 미국은 무역정책에서 본받았으면 싶다. 한국이 이제 막 외환위기를 벗어난 시점에서 억지로 미국제품을 사라고 하면 미국정부와 미국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높이게 될 것이다. 미국은자국내 경기 활황으로 늘어난 경상수지 적자를 외국으로 넘기려 하지 말고국내 경기를 안정시키는 데 더 힘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李商一 논설위원]bruce@
  • 대한항공 괌참사 피해14명에 美정부3,000만달러 배상 합의

    지난 97년 8월 괌 공항 착륙 중 추락한 대한항공 801편의 희생자들과 미국정부간의 배상금 협상이 급진전되고 있다. 괌 사고 부상자와 사망자 유족 14명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미국 법률회사 ‘스턴스 앤드 워커’의 대표 제럴드 스턴스 변호사는 17일 “피해자들이 미국 정부와 3,000만달러(약 340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소송을 포기한다는 권리포기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같은 잠정 합의는 미국 정부가 60일 안에 승인을 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스턴스 변호사는 “몇주 안에 미 법무부가 승인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승인이 나는 대로 배상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법무법인 대륙을 통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부상자와 사망자유족 14명은 50만∼500만달러씩(5억5,000만∼55억원) 받게 될 전망이다. 이는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내지 않은 유족들이 대한항공으로부터 받은 배상액2억5,000만원의 2∼20배에 이르는 액수다. 그러나 괌 사고 관련 사망 및 부상자 254명 가운데 이미 대한항공으로부터위자료를 받은 100여명의 유족과 부상자들은 법률적으로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미 연방 정부는 희생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한 뒤 곧바로 대한항공을상대로 구상권 청구소송을 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락기자 jrlee@
  • 특별 인터뷰…신임 주한일본대사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 주한 일본대사는 대한매일과의 특별인터뷰에서“한·미·일 3국의 공조와 협력에 이견은 전혀 없다”고 말해 3국의 대북(對北)정책을 지극히 낙관적으로 내다봤다.그는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전 일왕의 한국방문에 대해서는 “최근 한국을 친밀하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있다”면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방한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한국에 오신지 한달(2월14일 부임)이 지났습니다.한국의 인상은 어떠십니까. 모두들 친절합니다.젊은이들이 예의바른 점도 인상 깊습니다.나같은 나이먹은 사람에겐(웃음) 상당히 기분좋은 일입니다.공부삼아 박물관을 수차례 가보았는데 많은 일본 젊은이를 만났습니다.박물관에서 한국역사를 배우는 그들을 보고 양국의 장래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지금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 어느때보다 좋습니다.1998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일본방문,이듬해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한국방문을 통해 한일 공동선언의 부속문서인 ‘행동계획’,‘경제 어젠다21’이 나왔습니다.이 두가지를 착실히 실현하면 두나라 관계는 더욱 탄탄해질 것입니다. ●북한 김정일(金正日) 총비서가 평양의 중국대사관을 방문하고 이탈리아와수교하는 등 대외정책에 큰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어떻게 평가하십니까. 1년3개월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사를 지냈습니다만 경험으로 보면 북한의 지금 움직임은 바른 방향입니다.그러나 낙관적인 전망은 빠릅니다.조금씩 국제사회와 관계를 두텁게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개방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김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북한이 받아들일 것으로 보십니까. 지금으로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일본과 미국정부가 즉각 지지를 표명했지만 그렇다고 북한으로부터 곧 답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치 않습니다.그러나한국정부가 외교적인 배려로써 발표전 북측에 내용을 전달했다는 점은 상당히 중요합니다.북한이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다룰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태도를 지켜볼 필요는 있습니다. ●4월 북한 일본 수교협상이 7년반만에 재개됩니다.어떻게 전망하십니까.협상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북한입장에서 보면 식민지배시절의 사죄와 돈문제가 있을 것이고 일본으로 본다면 핵·미사일 개발,괴선박 문제 등 안전보장의 논의요구가 있을 것입니다. 북한과의 협상은 일본 단독으로 하는게 아닙니다.사전에 한국,미국과 협의하고 조정하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일본이 납치의혹 해결과 안전보장문제와 연결되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쫓다가 수교라는 한마리의 토끼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도우려됩니다. 일본으로선 납치의혹이라는 인도적 문제와 안전보장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미·일 3국의 협력과 공조가 어느때보다 잘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만 실제로 이견은 없는지요. 제가 KEDO대사였을 당시에는 대북정책에서 3국의 의견이 맞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그러나 김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과 지난해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포괄적 접근방식이 나온 이후 공동작업이 가능해졌고 3국간에는 이제 이견은 없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의 성공을 위해 양국이 노력해야 부분은 무엇인지요 역사에 없었던 한일 공동개최는 양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합니다.실패는 허용할 수 없으며 양국이 협력해 스포츠 제전을 반드시 성공시켜야합니다.300만 이상의 축구팬들이 올 것입니다.이들의 원활한 왕래를 위해 입국절차 간소화라든지 비행기 증편이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대형 이벤트이므로 이번 기회에 한국과 일본을 세계에 내다파는국제적 캠페인을 벌여야 합니다.자연히 두나라에는 관광객이 늘 것입니다.이캠페인은 양국이 함께 하는게 중요합니다. 2002년이라는 해는 ‘국민교류의 해’이기도 합니다.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고 교류를 촉진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회기간을 전후해 양국민이 비자없이 오갈 수 있게 됩니까. 이미 양국 당국간에 얘기를 시작했으므로 성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주한 일본대사로서 재임기간중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요. 한국과 일본의 지방간 교류입니다.양국 교류는 국가대 국가,서울과 도쿄간교류가 전부였습니다.한국과 일본의 대다수 지방도시들은 자매결연을 맺고있습니다만 실제로 이뤄진게 없습니다.지방간 교류를 더욱 내실있게 다져 매력있는 관계로 만들어야 합니다.서로의 지방문화를 서로가 나누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일본어를 많이 공부하고 있듯 일본 고교생들이 한국어를 많이 공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일본 공립고교에서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많이 채택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이 늘어나면한국인 강사의 숫자가 늘어나고 한국어를 아는 일본인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오는 주말 한국에 오는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문부상과 이 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할 것입니다. ●이달말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외상의 한국방문에는 어떤 얘기가 오갑니까. 4월 북일 회담을 앞두고 일본의 입장을 한국측에 설명하기 위한 차원입니다 ●한국말이나 한국 공부는 어떻습니까. 한국말은 외교관인 저로서 5번째 외국어(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입니다만 일본어와 문법구조가 비슷해 쉬운 면도 있으나 역시 발음이 어렵습니다.화·목요일에 한국인 선생님이 집으로 오셔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교통체증에 걸리면 차속에서 예습·복습을 합니다. ●월드컵대회전 일왕 방한은 성사될 가능성은 있습니까 지난해 연말 일본 총리부가 조사한데 따르면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는 일본인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넘었습니다.이건 대단히 중요하며 앞으로 경제,문화,청소년 교류를 늘리는 등 방한을 위한 환경만들기가 중요합니다. 주요경력▲38. 11 도쿄출생 ▲62년 도쿄대 법대졸,외무성 입성▲79년 외무성 경제과장▲87년 총리 비서관▲89년 주 프랑스 대사관 공사▲92년 외무성 중남미국장▲95년 주 멕시코 대사▲98년 북일 수교협상 일본정부 대표 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사 ▲2000.2.14 주한대사 부임
  • 당신도 美 ‘인터넷스파이’에 노출?

    인터넷과 e비지니스의 확산으로 현대생활의 필수품이 된 컴퓨터.그러나 마이크로 소프트웨어(MS)사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다면 당신 컴퓨터의 모든 자료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 어딘가로 전송되고 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전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MS사의 소프트웨어에 컴퓨터 내의 모든 정보 내용을 미국 국가안보국(NSA)으로 자동 전송하는 비밀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프랑스 국방부 산하 전략문제대표단(DAS)의 한 고위관리에의해 공표됐다.이 관리는 “MS소프트웨어 개발팀에 NSA 비밀요원이 파견돼 MS체계를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 내의 정보 내용이 자동적으로 NSA로 전송되는비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고 폭로했다. 그는 따라서 MS사 제품을 사용하는 기관들의 보안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세계 모든 민간인들의 전화,팩스,e메일,텔렉스 등 모든 통신 내용을 일일이 감시해온 ‘에셸론’ 시스템의 실체가 폭로된데 이어 MS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불법 감시까지 드러나자 세계는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유럽과 아시아의 민간단체들이 미국정부는 물론 자국의 정보기구에 항의하는 등 파문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캐나다,호주 등의 국가와 함께 운용돼온 스파이체계 에셸론에서 제외된 프랑스는 거센 항의와 함께 국제법정에 제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 쿠바, 美추방 외교관 송환 거부

    [아바나 AP 연합] 쿠바는 19일 미국이 워싱턴 소재 쿠바 외교관 1명의 추방명령을 내린데 대해 해당 외교관의 본국소환을 거부하겠다며 정면대결 태세를 밝혔다. 쿠바는 이날 쿠바 동부에서 열린 엘리안군 송환요구 군중집회에서 페르디난도 레미레스 워싱턴 소재 쿠바 이익대표부 대표가 낭독한 편지를 통해 미국이 이민국 마이애미 지부 고위관리의 간첩사건을 엘리안군 송환을 막는데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편지는 또 “워싱턴에 쿠바 이익대표부가 설치된 22년간 어떠한 종류의간첩행위를 한 일이 없으며 미국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의 제임스 폴리 대변인은 미 정부가 미국 주재 쿠바 이익대표부직무대행을 국무부로 불러 외교관 신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쿠바 이익 대표부 소속 외교관 1명에 대해 7일 안에 철수하도록 요구했다고 19일 밝혔다.
  • [외언내언] 불복종운동

    새해 초인 지난 6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아침 출근시간.운전자들이주요 고속도로에서 시속 20㎞ 미만으로 천천히 운전하는 바람에 교통체증이빚어졌다. 쿠바 난민 소년을 본국의 친아버지에게 돌려보내기로 결정한 미국정부에 항의,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참가자들이 실력행사를 한 것이다.미국에서 나타난 불복종운동의 종류는 이밖에 이라크 공격 반대,토성 탐사 로케트 발사 반대,유전자변형농산물 개발 반대 등으로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문제 있는 정치인을 낙천,낙선시키려는 시민운동단체들이 ‘선거법 위반도 불사하겠다’고 주장,불복종운동이 일고 있다. 불복종운동은 ‘평화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행동’을 뜻한다.체포를 당하는것이나 감옥행도 불사한다.물리적 힘에 호소하지 않고 비(非)폭력적인 점이특징이다.법과 정책의 부분적인 철폐와 개선을 겨냥하는 점에서 질서의 완전전복을 꾀하는 혁명과 다르다. 불복종운동은 타당한 이유가 있고 다수가 공감,참여할 때 힘이 실린다. 영국의 인도인 착취 등에 대항한 마하트마 간디와 1800년대 중반 미국의 멕시코 전쟁에 반대,6년간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불복종운동은 유명하다.마틴 루터 킹은 지난 1960년대 흑인을 차별하는 법의 철폐를 위해 불복종운동을 벌였다. 실정법이 왜 도전받는가.법은 흔히 ‘사회세력과 이해집단간 힘과 타협의산물’로 불린다.법을 만드는 국회가 각종 이익집단간의 로비 대상이 되며‘정치적인’ 의원들이 법을 제정하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법 내용이 타당성과 실효성을 갖지 못하면?‘악법도 법’이니 따라야 할 것인가,아니면 거부할 것인가.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이다.가톨릭 교회는 실정법이 상위인 ‘하나님의 법’에 어긋날 경우 불복종을 허용한다.풀러라는 학자는 “복종할 수 없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법은 무효”라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달라진 정치 현실과 시민 대다수의 저항은 법의 개정을 불러온다는 사실이다. 이번 불복종운동의 열기는 지난 87년 6·10항쟁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특히 20·30대의 젊은 층이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자격도 없으면서 사회를 지배하겠다’는 무모한 정치인과 썩은 정치에 환멸감을 느껴 증폭된 정치 무관심과 개인주의에 변화가 감지된다. 정치판 개선을 통해 시민들이 무력감을 털고 국민의 힘을 다시 느끼길 기대해본다.‘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빌 게이츠, MS 경영 손뗀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마이크로소프트(MS)사라는 신화를 창조했던 빌 게이츠 회장이 13일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연구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그와 25년 지기 친구이자 MS사를 함께 이끌어왔던 스티브 발머를 사장으로임명, 경영권을 넘겼다. 최근의 상황등을 고려하면 독점법 공방에서 연방정부의 공세에 밀려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그러나 관련업계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위기탈출 및 재도약을 위한 다목적 포석의 일시적 동면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MS사는 반독점법 위반 소송 결과 법원으로부터 독점적 지위에 있다고판결을 받아 제재조치만을 기다리고 있다.지난 12일에는 미국정부가 MS사를3개로 분할한다는 방침까지 알려졌다. 그가 연구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은 우선 MS사가 독점적 지위를 갖는 것에 대한 미 컴퓨터 업계의 반발을 피해가려는 의도로 보인다.계속 전면에 있음으로써 예봉을 피하기 어렵고 앞으로 항소등 끈질긴 저항기간에 대비,장기전을 준비한다는 관측이다. 발머가 사장직을 인수하면서“정부가 MS를 분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무책임하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도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이다.경영일선에서 물러나도 회사주식 15%보유에 따른 800억달러라는 자신의 재산에는 변화가 없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MS-DOS란 컴퓨터 운용체계의 공고한 위치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했다.실제로 윈도우체계 없이도 컴퓨터를 움직이는 리눅스와 같은 다른 업체의 계속된기술다양화 추세와 사업경영상의 견제,AOL의 인터넷 분야 독주채비 등에 대비,기술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hay@ *새 사장 발머 누구인가 MS사의 새 최고경영자가 된 스티브 발머(43)는 빌 게이츠의 오랜 친구.포드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던 스위스 이민자의 2세로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으며하버드 대학 재학시절 빌 게이츠를 만나 친구가 됐다.기숙사 위아래층에서나란히 지냈다.게이츠의 결혼 때는 신랑 들러리를 서기도 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 1학년때 중퇴했던 게이츠와는 달리 대학과정을 마치고 응용수학 및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았다.대학졸업후 포록터 앤드 갬블사에서 생산담당 차장으로 일했으나 그만두고 스탠퍼드대 경영학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지난 80년 게이츠의 초청으로 MS에 입사했으며 판매 및 지원담당 부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 [대한광장] 진실의 시간

    지난 역사를 농경사회,산업사회로 크게 대별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지식 정보화사회라고 규정하는 것이 대세인 듯 하다.또한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말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우선 신문의 면수만 봐도 그렇다.두툼한 책자에 버금가는 정보가 쉼없이 실리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매일매일 전달되고 있다.인테넷 공간에는 간단한 손동작 하나만으로도 한없는 정보가 국가간은 물론 대륙을 넘어 넘나들고 있다.뿐이랴 이제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필요한 정보를 즉각즉각 주고 받으며 살고 있다. 이러한 사이버 시대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지녀왔던 공간개념을 전면적으로수정할 것을 요구한다.혼자만의 공간,혼자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은 사라졌다.어느 누구도 골방에 갇혀 있을 시간이 없다.부르면 즉각 답해야 한다.머뭇거릴 시간도 없다.보이지 않던 공간을 활용하는 순간 보이던 공간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도 보이지 않는 공간은 남아 있다.바로 우리의 현대사다.한국전쟁 당시 대전형무소의 정치범 1,800명을 포함 대전 대구 형무소 재소자들이 집단 처형된 사실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6.25관련 비밀문서에서 확인되었다고 한다.이들 비밀문서는 제주 4·3사태를 추적해온 한 재미동포가 미국정부에 요청하여 지난해 12월 16일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목숨이 왔다갔다한 사실들이 미국이라는 국가의한 창고에서 수십년간씩이나 냉동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허탈에 이르게 한다.얼마전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서 보듯 터무니없이 희생당하고 그러고도 모자라 희생당한 사실을 쉬쉬하면서 40∼50년을 지내와야 했던 통한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통한의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의 규명이다.또한 규명된 진실에 걸맞는 명예의 회복일 것이다.이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정보의 허망함에 한기를 느낀다. 정보의 총량은 엄청나게 많아졌고 그것의 소통방법은 그야말로 최첨단이건만 그러한 정보의 대부분이 갇혀있는 정보의 한 줄에 비해 결코 값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가 진정 어디인지 아득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문제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의 확인을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그것이 무엇이든 한번에 알 수 있다면 그것을 숙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건만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다.죽은줄 알고 묻으려 했던 아이가 숨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리는 비 속에서 통곡하던 소설‘밤길’의 끝부분을 연상시킨다. 미국의 국내 규정에 따라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이루었던 진실이 마른 시냇물 흐르듯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형국이다.그러면서도 우리는 마치 필요한정보는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 점에서 우리 역사에서 진실의 시간은 늘 미래이다. 현재를 살고 있지만 이 현재가 언젠가 밝혀질 진실에 의해 얼마든지 뒤집힐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현재가 없다는 말에다름 아니다.우리는 현재로부터 영원히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또한 소외되어 있는 시간 동안의 억울함과 분노,치욕은 희생당한 사람들의 몫일 따름이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진정한 정보는 진실이 담겨 있는 역사다.니체는 한책에서 ‘사람들이 이미 사랑할 수 없는 곳 그곳을 통과해야 하노라’라는말을 한 적이 있다.나는 이 대단한 정보지식의 사회가 미루어진 진실 혹은유보된 진실의 세계를 관통하여 진정한 의미의 참정보 사회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형철 숭의여대교수·문학평론가
  • [신년 대담] 한반도 주변정세 변화 전망과 南北韓관계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안겨주었던 20세기의 한반도.21세기엔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어떻게 상생(相生)의 관계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까.통일부총리를 지낸 한완상(韓完相) 상지대 총장과 김달중(金達中) 세종연구소장의 대담을 통해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 가능성과 통일 방향 등을 점검해본다. ●김소장 지난해 북한은 신중하지만 대외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미사일 시험발사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파국으로 치닫던 북·미갈등이 대화국면으로 선회한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북한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위원회 위원장의 중국방문 등 북·중간정상외교의 복원과 12월 초 일본 초당파의원들의 방북과 관계정상화 협상의 진전도 두드러진 변화지요.북·러 관계도 정상화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이같은 변화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안정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봅니다. ●한총장 장기적으로 북·미,북·일관계 정상화는 교차승인과 동북아에서의‘다자간 안보·경제협력체제’ 구성으로 발전될 수있을 것입니다.미·일과 북한의 국교수립은 남북한과 주변국가의 교차승인을 완성하고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교차승인은 동북아국가간의 안보협력 과정의 시작입니다.남북한과 미·중·러·일 등 6개국간의 다자간 안보 및 경제협력체가 형성되면 한반도의 냉전체제는 사라지지 않을까요. 동서독의 통일은 유럽안보협력체제 속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교류협력을 강화해나간 결과입니다.동북아 협력기구가 생긴다면 같은 결과를 기대할수 있을 것입니다. ●김소장 2000년 11월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북한으로 하여금 더욱 신중한 대미 접근을 취하게 하고 있습니다.공화당은 보수 표를 의식,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주창하겠지만 근본적인 정책변화는 생각하기 어렵지요.북한은 무엇을 결정하고 타결짓기보다는 미국의 권력변동과 정책변화에 주시하면서 신중한 탐색전을 벌일 것으로 보입니다.체제유지란 측면에서 북·미간의 극적인 돌파구나 비약적인 관계발전은 기대하기 어렵지요.북한은 미국과의 ‘빅딜’을 통한 본격적인 개혁 개방이나 관계발전을 해나가기엔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물론 대화와 타협과정에서 실리를 얻어내려는 시도는 계속하겠지만요. ●한총장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는 대북정책의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북한은 대미관계와 관련,일단 관망태세인 듯합니다.그러나 대미 관계개선 노력은 북한의 변화노력을 상징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요.북한은 헌법을 고치고 자본주의 제도를 도입했고 자본주의 경영학습을 위해 110명이나 되는 간부들을 해외로 유학을 보냈습니다.전방위적으로 대외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지요.이런 변화속에 두드러진 것은 정치·군사면에 ‘선군정치(先軍政治)를 강조하면서 실리추구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는 위기상황을 무력이나 무력시위로 극복해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체제존립을 위협하는 강경책을 쓴다면 북한은 사력을 다해 ‘총의 위력’에 의지할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전쟁 위협은 어느때보다도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위기를 의식할수록 냉전적인 현상유지세력이강해지지 않겠습니까.북한이 강경하게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봉쇄정책은 과거 역사가 실효성이 없었음을 증명했습니다.‘선의의 무관심정책’(benign reglect)은 남북이 서로 너무 많은 사안들로 얽혀 있어 무관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은 회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소장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미·일관계 개선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한반도의 대표자는 북조선”이란 논리는 여전히 북을 지탱하고 남측정부를 상대하지 않는 근거입니다.이런 논리 아래 북한주민들을 격리시키고대민접촉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경협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냉전구조는 북한의 체제존립의 기반이며 이 점에서 본격적인 남북 당국자간의 대화는 어려움이 있다고 봅니다. ●한총장 “상대방은 절대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란 냉전세력의 ‘불변신화’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가로막는 근본 이유중 하나입니다.그래서 이같은 ‘불변신화’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안목이 필요하지요.정부는 포용정책에 대한 평양당국의 의구심을 해소시키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군부 등 북한실세들은 냉전체제를 재생산해야 위기관리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그들은 모두 한반도 냉전유지란 현상유지를 의도하고 있습니다.남측이나 미국에서나 냉전적 현상유지 세력들은 존재하고 이들은 서로 ‘적대적 공생관계’속에서 의존하며 냉전을 확대재생산하려 하고 있습니다. ●김소장 2000년에도 북한은 체제유지 보장 속에서 실리획득 노력을 전개할것입니다.이를 위해 강성대국과 군사주의를 동시에 추구하겠지만 서해사건에서 보았듯 군사적 모험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북한은 올 상반기엔 민간교류 확대에 중점을 두고 하반기엔 국제적인 신뢰획득을 위해 당국간 대화제의에 응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북한은 일단 ‘생존불안’에선 벗어났다고 보여집니다.외부세계와의 교류도 이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성급한 효과를 기대해선 안될 것이다.정부의 일관성있는 정책추진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한총장 북한은 체제가 위협받지 않는 차원에서 전방위적인 대외관계 개선에 나서겠지만당국과는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정책을 펼 것입니다.일정한 시점이 돼서야 대화에 나서지 않나 싶어요.국제적인 고립을 탈피하면서경제적인 실리추구를 연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김소장 북한은 국민 통제와 체제유지를 위해 기존의 냉전구조를 이용하고있습니다.한편 미국은 동북아지역의 정치·군사적 우위유지를 위해 현상유지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 할 수 있지요.반면 한국은 햇볕정책 등으로 한반도냉전구조의 해체를 주도하는 등 적극적인 현상타파 노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전제에서 포괄적 접근과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는 쉽지만은 않을 것이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당분간 현안문제를 둘러싼 탐색전이계속될 것입니다.그러나 탈냉전은 세계사적 추세며 한국의 포용정책은 지속적으로 진전되리라 봅니다. ●한총장 포괄적 접근은 우리정부의 인정 아래 미국정부가 북한에 대해 이라크식의 무력공격을 하는 대신,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자는 ‘한반도식 해결방식’이라 할 수 있지요.북한이 대량살상무기의 개발·보급을 중지하는 대신북의 안전과 체제,주권인정을 포괄적으로 해주고 그에 따른 경제적인 협력을 해주겠다는 것입니다.이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이 적지않은 것같습니다.상호 불신의 해소가 정책 진전에 필요하지만 2000년에는 북한의 대미정책의 관망태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소장 포용정책은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막고 위기의 안정적 관리에 기여했습니다.IMF 상황에서 경제위기 극복과 한국에 대한 국제적인 투자분위기와 신뢰를 높이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남북간 경협 활성화와 교류확대에도 기여했습니다.그러면서 우리는 미·일과의 대북 공조체제의 기틀도 닦았지요.그러나 초기에 개념에 대한 혼동과 논란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했고 추진과정에서 정부 부처간 혼선이 있었던 점은 아쉽습니다. ●한총장 포용·햇볕정책은 남북한의 변화를 합리적으로 인식한 기초 위에세워진 유일한 대안이라 봅니다.국내적으로 일관성을 평가받았고 4강국 등국제적인 호응도 받고 있는게 사실입니다.‘국민의 정부’ 이후 방북인사는9,000명으로 지난 9년간 2,400명을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이산가족의 제3국상봉도 200명을 넘어섰고 700여건의 생사확인도 이뤄졌습니다.임가공 교역의급증 등 경협의 활성화도 성과중 하나로 봅니다. 그러나 당국간 대화에 정경분리를 적용하지 않고 상호주의를 내세운 점 등은 아쉽습니다. ●김소장 북한은 ‘점 분산형’ 발전방식,즉 제한된 지역·분야에서의 고립된 개방을 추구하고 있습니다.인민과 외부세계를 차단하고 개방지역을 여기저기 분산시켜 하나씩 개혁 개방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극히 제한된 개방이란 점에서 중국식의 점진적 전면개방과는 다르지요.그러나 앞으로 당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형 개발독재로 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총장 현재 남북한은 힘의 비대칭성이 더욱 커가고 있습니다.국민총생산량은 25배,무역총량은 150배나 차이가 납니다.이같은 차이는 평화적인 남북관계나,통일을 위해서나 모두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북한 경제개발과 관련,북한의 인프라 구축에 우리 대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으면 합니다.대기업의 인프라 참여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방안이 될 것입니다.북의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사양길에 접어든 우리의 중소기업을 살리는 방안도 모색돼야 합니다.북한 주민에게 많은 취업기회를 주고 남측 산업발전도 기할 수 있는 함께 사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후 유럽의 마셜프랜과 같은 가칭 ‘한반도 경제부흥 프로젝트’를 남북 당국자들이 합의하고 국제적인 컨소시엄을 구성,북한경제개발에참여하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구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이는 한반도의 안정과 남측의 사양산업을 살리는 방안도 될 것입니다.평화는 전쟁없는 상태가아니라 진정한 상호공존을 향한 협력입니다.통신 핫 라인,인적 핫 라인도 없는 현 상황은 남북관계가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인가를 보여줍니다.상호 과잉반응과 돌발적인 사고와 관련,오판과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물밑 대화채널과 방지체제의 마련이 시급합니다. ●김소장 북·중 두 나라는 2000년에도 복원된 정상외교를 바탕으로 관계발전에 나설 것입니다.그러나 북·일관계는 그리빨리 진전될 것 같지 않습니다.일본의 일반적인 대북인식,대일 배상청구권 문제 등 넘어설 산이 많기 때문입니다.북·일수교는 미·일관계,일본의 기존 동북아 전략의 상당한 수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일본도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북한도 지나치게 빠른 돈과 기술의 유입은 체제붕괴를 유발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는점에서 급격한 관계발전은 피할 것 같습니다.다만 인도적 지원과 경제적 교류의 폭은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초 러시아와 북한은 동맹조약을 일반적인 우호관계로 전환할 것으로예상됩니다.동맹조약의 자동개입규정은 폐기되는 것이지요.이는 남북한이 주변국가와 맺은 쌍무적 군사동맹 관계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장기적으로 한·미동맹,미·일동맹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동북아 구조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총장 김대중 정부가 일관성있게 포용정책을 추진해 나간다면 북한의 호응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다음 정권에서도 현 대북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게 될 것입니다. ◎김달중세종연구소장▲연세대 정외과 졸업▲미국 터프트대학 국제정치학 박사▲전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장▲전 연세대 행정대학원장▲전 통일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한완상 상지대 총장▲서울대 사회학과 졸업▲미국 에모리대학 사회학박사▲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전 한국방송통신대학 총장▲전 부총리겸 통일원 장관정리 이석우 기자 swlee@
  • 글라이스틴·위컴 회고록 ‘알려지지 않은 역사’

    미국은 한국에게 무엇일까.박정희 전대통령의 서거와 12·12 군사쿠데타,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중앙M&B가 발간한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국대사의 회고록 ‘알려지지않은 역사’(황정일 옮김)와 이번주 출간될 존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의‘12·12와 미국의 딜레마’(김영희 옮김)는 당시의 비사(秘事)를 통해 한미양국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두 사람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던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한국에서 재임했던 인물.‘알려지지…’는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카터행정부와 이에 반발한 박정희 대통령간의 갈등을 비롯해 미국의 대북 3자회담 요구,한국장성들의 전두환 제거 역쿠데타 기도 등의 사실을 공개한다.아울러미 행정부가 ‘북한카드’를 활용,김대중을 구명하려 했던 과정 등도 소상히밝힌다.올해 초 해제된 미 국무부의 당시 전문(電文)도 싣고 있다. ‘12·12와…’는 군부관련 동향을 자세히 소개한다.위컴은 12·12전 자신이 입수한 신군부의 수상한 움직임을 한국 군부가믿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특히 신군부가 역 쿠데타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에 신경을 곤두세웠던일,전두환이 미국의 지지를 얻은양 언론플레이를 벌인 일 등을 상술한다.두회고록은 그동안 알려졌던 것보다 전두환의 정권장악과 광주학살에 대해 미국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술회한다.외교관인 글라이스틴과 군인인 위컴이 같은 사안을 놓고 쓴 것이라,한반도정책 수립의 양대축인 미국무성과 국방성의 접근방식도 알 수 있다.각권 9,000원. 정기홍기자 hong@
  • 시애틀회담 이모저모

    [시애틀 외신종합] 30일 미 시애틀에서 개막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담장 안팎은 미국과 유럽 등 이해당사국의 설전장은 물론 중국의 기공수련단체인 파룬궁(法輪功)과 각종 비정부기구(NGO)의 선전장으로서 뜨거운 열기에휩싸였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아무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무슨 일이 있어도 국익을 지켜내겠다”고 선언.프랑스의 유럽문제 담당장관도 미국이 의제를 농업과 서비스 분야로만 제한하면 이번 협상을 실패로 간주하겠다고 경고.이에 대해 미 백악관은 농업보조금문제가 최우선 과제임을 재확인. 마이크 무어 WTO 사무총장은 국제노조연합회의에 참석,“자유무역은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근본원인인 가난을 퇴치하는 방법”이라고 주장. 21세기 다자간 무역협상의 명칭 제정을 둘러싼 각국의 접전도 점입가경. 96년 3월 당시 유럽연합(EU) 무역장관이던 리언 브리튼경(卿)은 ‘밀레니엄라운드’를 가장 먼저 제안. 이에 맞서 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름을 따 ‘클린턴 라운드’를 제시.서로를 비방하는 양측의 팽팽한 접전속에 클레어 쇼트 영국 국제개발장관은 ‘개발 라운드’,WTO 회의 조직위는‘시애틀 라운드’를 내놓은 상태.일부에서는 올해의 띠를 따 ‘토끼해 라운드’로 하자고 주장. 파룬궁 수련자들은 시애틀에서 파룬궁 합법화를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수련자들은 “이번 각료회담 기간중 중국 대표단과 협상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정부단체인 옥스팜 인터내셔널은 미국과 유럽시장에 대한 빈국(貧國)의시장접근이 확대되지 않으면 각료회담은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옥스팜은 선진국의 무역장벽에 따른 개도국의 피해는 한해 7,000억달러로 추산된다고 강조. 한편 WTO의 새 협상에 반대하는 시위대 수백여명은 29일 낮 시애틀 대로변의 한 맥도널드 식당 앞에서 격렬히 시위.시위를 주도한 프랑스 농민연맹 대표 조제 보베는 미국에 의해 벌칙관세가 부과돼있는 프랑스산 치즈를 내던지며 무역자유화 반대를 외쳤으며 시위대는 맥도널드 식당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외벽에 스프레이로 욕을 쓰는 등 거친 행동.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미국정부가 시애틀 방문을 부적절한 것으로 규정한 만큼 미국을 방문할 수는 없다”며 굴욕을 감수하면서비자를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
  • “埃보잉機 추락전 발언 美 보도내용은 틀린것”

    [워싱턴 카이로 외신종합] 이집트항공 소속 보잉 767기의 추락원인을 둘러싼 일부 보도가 미국과 이집트간 외교쟁점으로 확대될 기미를 보이자 미국측이 입장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 국립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제임스 홀 위원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이집트 항공기의 조종실음성녹음장치(CVR)에서 해독해 낸 것으로 보도된 교대조종사의 사고직전 발언 내용은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교대 조종사의 발언에 관한 ‘자살비행’추측이 “유가족들에게 고통을 야기하고 미국과 이집트 국민들간의 오랜 우의에 해를 끼치고 있다”며 언론보도에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앞서 월 스트리트 저널은 19일 미 연방수사국(FBI) 관계자의 말을 인용,이집트항공 교대 조종사가 자살비행을 했다며 미 법무부 관리들이 핵심근거로제시한 ‘중요한 아랍어 구절’은 꾸며낸 것이라고 보도했다.대서양에 추락하기 직전 교대 조종사 가밀 알 바토우티가 한 말이라며 법무부 관리들이 지난주 초 언론에 공개한 문제의 발언은 “나는 이제 결정했다.나의 믿음을 신의 손에 맡긴다”였다. 한편 이집트와 미국정부는 이집트항공 기의 사고원인을 둘러싼 합동보고서를 22일 발표할 계획이라고 이집트의 한 친정부 신문이 20일 보도했다.
  • 고엽제 피해자 하소연 잇달아

    지난 68∼69년 비무장지대(DMZ)에서 고엽제를 살포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전국에서 고엽제 피해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상당수의 피해자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에다 2세까지 후유증으로 보이는 기형과 질환을 앓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강원도 양구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했던 대구시 서구 비산2동 강모씨(54)는“지난 68년 7월쯤 소대장으로부터 같은 중대 3개 소대와 함께 ‘살초작업을벌일 것’을 명령받고 이틀간 노란색 액체를 철모에 받아 비무장지대에 뿌렸다”고 말했다. 그는 “70년 제대후 5년 뒤부터 지금까지 여름마다 등에 심한 물집이 생긴다”며 “올해 28살인 큰딸을 비롯해 딸 3명 모두가 사춘기를 전후해 이같은증상을 보이기 시작,나환자 전문 피부병원까지 찾았으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70년부터 3년간 강원도 철원지역 철책선에서 사병으로 근무했던 대구시달서구 월성2동 이모씨(51)는 “제대후 피부병으로 시달린데다 왼손과 다리가 마비됐으며 딸은 머리에 악성 종양이 생겨 고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북 군산시 구암동 오모씨(51)는 “69년부터 19개월동안 비무장지대에서복무하면서 7차례 맨손으로 살초제를 뿌렸다”며 “제대후 2급 시각장애인이 됐으며 아들은 골수 위험성 증후군까지 앓고 있다”고 후유증을 호소했다. 이모씨(56·예비역 소령·경기도 용인시)는 “지난 68∼71년 경기도 파주등지에서 화학장교로 근무할 당시 살초작업에 참여한 뒤 69년 낳은 딸이 기형이었다”며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전역 인사들이 여러명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68년 연천 근무때 맨손으로 약품을 손으로 뿌렸다는 박모씨(53·전남 고흥군 도양읍)는 제대후 저혈압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68년 21사단에서 하사로 근무할때 철모로 약품을 뿌렸다는 강모씨(52·경남 김해시 구산동)도 제대후 확장성 심근병과 고혈압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내 고엽제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18일 창구를 개설한 ‘월남전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 대구지부’ 등에는 최근 중년 50대의 남자들로부터 고엽제 피해보상문제에 대한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종합 * “주한미군 건의로 고엽제 사용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국방부는 18일 한국에서의 고엽제 사용은 한국정부가 요청한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건의에 의해 미국정부가 한국에 제안,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의 해명은 지난 16일 한국정부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발표와는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다.다음은 크레이그 퀴글리 미 국방부 대변인(해군소장)과의 일문일답. ●한국언론에서는 미국정부가 에이전트 오렌지의 사용을 명령하거나 요구,또는 압력을 가해 사용했다고 주장하는데 미국의 입장은. 이틀전 내가 이자리에서 밝혔던 내용에 정정 혹은 명확히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에이전트 오렌지의 고엽제 사용은 주한미군이 제안해 이뤄졌다는 것이다.낙엽제거의 목적으로 한국정부에 제시된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낙엽제거를 위해 불을 지르거나 초지를 갈거나 혹은 쟁기질,그리고 고엽제 사용 등여러가지가 고려됐고,몇가지가 실제 적용됐다. 고엽제 사용은 한국정부에 의한것이 아니고 우리쪽,주한미군에 의해 적어도 초목제거 임무의 일부로 제안됐다. ●그렇다면 미국은 정부 입장에서 명령하거나 요청하지는 않고 다만 제안만했다는 것인가. 우리가 이것(고엽제 사용)을 제안(initiated)했다.우리는 ‘자,여기 당신이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써보시죠’라고 말한 것이다. 요구할 위치에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제안했던 것이고 한국 군당국과 정부내에서 검토돼 승인됐다.그리고 단기간,2년이라고 믿어지는 기간동안 사용됐다. ●사용이 중지된 이유는 한국정부의 자금 때문이었나. 그렇다.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다른 두가지 약품이 섞여 사용됐다는 기록이있지만 얼마만큼 사용됐는지는 찾을 수 없다.
  • [사설] 고엽제 살포 진상밝혀야

    베트남 전쟁때 사용돼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 고엽제가 주한(駐韓)미군측에의해 우리나라 휴전선에도 살포된 사실은 충격적이다.더욱이 고엽제 살포가우리나라와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 이뤄졌으나 30여년동안 이런 사실이 은폐되어온 배경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지난 68년 미국 화생방사령부에 보낸 비밀문서인 ‘고엽제 살포작전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은 1·21사태 이후 ‘식물통제계획’을 세워 한·미 합동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이남 2,200만평에 고엽제를 집중 살포한 것으로 드러났다.사용된것은 베트남전에서 쓰였던 ‘에이전트 오렌지’등 3가지로 2만1,000갤런인것으로 나타났다.고엽제 살포작전 계획은 미군이 세웠고 살포작업은 한국군장병들이 했다는 것이다.당시 작전에 동원됐던 7만명의 장병들은 단순히 제초제를 뿌리는 정도로 알고 아무런 사전교육이나 방독면 등 보호장비 없이고엽제를 살포해 이들은 지금까지 이유도 모른 채 후유증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미국이 베트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고엽제를사용한 적이 없다고 강조해온데다 현재 베트남전 피해자 1만7,200명이 제조회사를 대상으로 5조원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중인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고엽제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국·호주·뉴질랜드의 베트남전 고엽제피해자 20만명이 이미 84년 다우케미컬 등 미국제조회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2억4,000만달러의 배상을 받았음에도 국내 피해자들은 과거 관계당국의 소극적인 태도로 이제야법적절차가 진행중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암을 유발시키는 다이옥신이 포함된 고엽제 사용은 이를 금지한 제네바의정서를 위배한 만큼 제조회사 뿐만아니라 미국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미국정부는 지금까지 ‘군복무중 발생한 우발적 사고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할 수 없다’는 연방대법원의 이른바 ‘페레스원칙’에 따라 정부차원의 배상을 거부해왔으나 휴전선일대 고엽제 살포작전은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 정부에 건의해 딘 러스크 국무장관의 승인을 받은 만큼 ‘우발적 사고’로만 보기 힘들다하겠다. 이같은 사실과 관련,조성태(趙成台) 국방장관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사실 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해 국방부가 구체적인 확인작업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조처이다.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를 철저히 파악하고 이들의 치료와 보상대책을 세워야 한다.또 베트남 참전 고엽제 피해자들의 보상과도 연계해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기고] 양민학살 규명과 역사 재정립

    지난 9월말 AP통신에서 미군이 50년 7월 25일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비전투원인 민간인 300∼400여명을 무차별 사격하여 학살하였다고 보도하여 전세계에 알려졌고,이제 한·미 양국에 의하여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노근리 주민들의 처절한 투쟁이 세계의 양심을 움직여 겨우 결실을 맺고 있다고 하겠다.정부도 마지못해 이에 응하는 꼴이 되기는 하였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 이전에 이미 거창양민학살사건,제주4·3사건,여·순양민학살사건,함평양민학살사건,보도연맹사건 등에 대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터이지만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전쟁기에 도처에서 자행된 미군이나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의 사실이 하나둘씩 증언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경남 사천,충북 단양,경남 의령,경북 의성,낙동강 왜관교와 덕숭교 폭파사건 등이 그것이고 앞으로 더욱 밝혀질 것이다. 전쟁과 냉전의 와중에서 죄없는 민간인이 공권력에 희생되는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엄청나게 자행되었다. 가까운 동아시아 지역만 하더라도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면서 15만여명의 민간인이 총알받이로 희생되었다.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원폭 투하로 수십만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이에 대하여 패전국인일본정부는 원호법으로 배상조치를 취하였다. 대만에서는 47년 대만을 점령한 국민당군에 의하여 2만여명의 양민이 ‘빨갱이’로 몰려 희생당하는 이른바 ‘2·28사건’이 발생하였다.50년대에는백색테러가 자행되어,5,000여명이 총살당하였다.그러나 92년 대만정부는 ‘2·28사건’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진상규명과 배상조치를 취하여 명예를 회복시켰으며,백색테러에 대해서도 최근 배상과 명예회복 조치를취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수많은 양민학살사건에 대해 아직까지 진상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오히려 그 진상을 규명하려고 하면 불온시하여 탄압을 해왔던 것이 실상이다.범죄자의 자기방어행위인가. 제주4·3사건은 비전시기에 무려 3만여명이상의 양민이 학살된,동아시아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이다.그리고 그것은 미군정기에(47년 3·1절사건) 시작하여 한국전쟁 때까지 지속된,장시간에 걸친 사건으로 이는 미군이 한국의경찰력과 군사력을 완전히 장악한 가운데 자행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반세기가 지났으나 아직도 명예회복이나 보상조치는커녕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한국에서는 어찌하여 지금까지 이러한 사실을 은폐 또는 왜곡시켜 왔는가.국민을 보호할 책무를 갖고 있는 정부가 어찌하여 반국민적인 입장에서 과거사를 취급하여 왔는가.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는 학계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는가.한국의 언론은 미국의 AP통신의보도에 접하고서야 겨우 이를 문제로 삼는 것인가.우리의 인권관과 역사의식은 과연 어떠한 수준인가.이 나라가 야만의 땅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국제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집단학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제노사이드협약,48년 9월)과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49년 8월) 등을 통하여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민간인 집단학살과 비전투원인 민간인에대한 살상행위를 금지하고 있다.이를 반인륜적인 행위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죄를 지을 수도 있다.그러나 그것은 그 죄를 대상화하여 철저히 반성할 때 사죄받을 수 있다.과거의 잘못을 밝히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노근리 학살에 가담했던 미국인 병사는 고백과 사죄를 통해 ‘자기해방’을 실천하고 있다.미국정부도 노근리사건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전향적으로 진상규명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적 정의의 실현인가,아니면 정치적인 쇼인가.아직 단정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어쨌든 우리로서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는 지경이다.우리정부도 역사 재정립 차원에서 하루빨리 전문가들로 양민학살진상규명위원회를구성,진상규명과 역사바로잡기에 나서기를 바란다. 강창일 배재대교수,제주4·3연구소장
  • 대한항공 창사이래 최대위기

    지난 97년 8월의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사고의 주 원인이 조종사 과실이라는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최종 조사결과는 항공사고 대부분이 조종사과실이라는 사실을 입증시켜 줬지만 뒷맛은 개운찮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조종사 과실이냐,기체 결함 또는 관제 실수냐를 놓고 2년여간 진행된 조사결과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사고기 조종사 3명이 착륙절차를 무시한채 활주로에 접근했고,고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다만 미연방항공국(FAA)이 괌 아가냐공항의 최저안전고도경보장치(MASW)를고장상태로 방치한 것도 사고를 일으킨 기여과실로 지적돼 미 항공당국도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번 NTSB의 최종보고서는 그동안 논란이 돼 왔던 미 공항당국의 관제 실수에 대해 “접근관제사가 관제절차를 철저히 이행했더라면 사고를 방지했거나 피해 정도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미국 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들은 “NTSB의 조사결과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사고의 주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만 몰고간 데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그동안 미국언론까지 문제를 삼았던 괌 공항의 관제시설이나 능력 등을 간과한 것은 미정부의 입장이 개입된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대한항공측은 이번 조사결과 발표로 인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趙重勳)회장을 비롯,사주 일가 3명이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계좌추적까지 받고 있는 상태에서 이번 조사결과 조종사 실수 등 인적요인에 의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따라서 유족들의 보상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항공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도가다시 한번 추락하게 된다는 점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과 운항편명 및 좌석 등을 공유하는 공동운항(CODE SHARE) 계약을맺은 상당수 항공사들이 이미 이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외항사들이 대한항공과의 계약을 계속 꺼릴 수밖에 없어 영업력이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이밖에국세청이 부과한 5,416억원의 추징금을 어떤 방식으로 납부하느냐에 따라 대한항공의 그룹 전체 계열사의 주식 소유 비율도 상당 부분 달라질 수 있다는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박성태기자 sungt@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2일 열린 미국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상임위원회는 97년 괌에서의 대한항공 사고와 관련, 미 정부기관인 연방항공국(FAA)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NTSB의 대한항공 사고원인 최종보고서는 물론 전반적인 조종사의 과실이 사고원인임을 지적하고 있지만 항공기 운항의 전반을 책임지고 감독하는 FAA가 비대해지고 관료화돼 제대로 움직이지 않은 점도 사고와 무관치 않음을 지적했다. 보고서가 지적한 FAA의 과실이란 미비한 시설의 괌 공항운영에 대해 적절히관리감독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협약에 따라 보상재판에 증거로는 채택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앞으로 미국정부와 대한항공의 보상배율을 결정 하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전망이다. 특히 조종사가 과실을 교정해주는 장치와 주변 근무자들의 행동이 관료주의 병폐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은 안전을 자랑하는 미국내에서 최근 공식적으로 새롭게 지적된 점이다. 보고서가 지적한 사고당시 FAA의 과실 부분은 이렇다.우선 97년 8월 6일 사고 당시 관제탑에는 단 한명의 관제사만 근무하면서 레이더에 나타난 접근항공기의 위치·고도를 마지막까지 주시하고 있지 않았다. 또 접근관제사가 공항탑 관제사에 항공기 관제권을 넘겨주면서 사고기의 위치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관할에 들어온 64초동안 공항과의 거리가 얼마이고 높이가 얼마라는 정보를 제대로만 주지시켰어도 조종사가 활주로 전방 6.2㎞에 위치한 니미츠 언덕에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착륙각도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활공각유도장치(Glide-Slope)와 안전고도 이하로 내려가면 경보음을 내는 MSAW 등 기기가 수개월 전부터 작동하지 않은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시계에 보이던 활주로가 갑자기 몰아친 폭우 속에 가릴 경우 이들 장치의도움은 결정적이었음에도 필요할 때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조종사 과실만이 부각되던 이전 분위기와는 차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 아닐수 없다. hay@ * 소송 계류 182명 배상액수 늘어날듯 이번 미국교통안전위원회(NTSB)의 대한항공 괌사고 최종 조사결과 조종사의 과실이 주요 사고원인으로 드러남에 따라 사고 유가족들의 보상에 관심이모아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사고발생 후 사망자 1인당 합의보상금 2억5,000만원 및 장례비,조의금을 합해 2,500만원 등 2억7,500만원을 지급하고 유자녀에 대해 중학교∼대학교까지의 학자금을 지급하는 것을 제시,총 탑승자 254명 중 90여명이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측의 보상내용에 합의하지 않은 나머지 유가족 중 170여명은 미국법원에,12명은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중이다.이번 조사결과 항공관제를 담당하는 미연방항공국(FAA)과 관제시설을 관리하는 미 SERCO사의 과실도 일부 지적됐다.때문에 미국 및 한국 법원이 이들의 기여과실 정도에 따라 보상금액의 규모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한항공측은 이번 조사결과에 상관없이 당초 제시한 보상금액은 유족들이소송을 취하하고 지급을 원할 경우 지급하게 된다. [박성태기자]
  • [인터뷰] 제프리 존스 주한 美상공회의소 회장

    북·미 베를린회담 타결과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일부 해제조치 이후 남북경협사업이 활기를 띠는 가운데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대북경협사업에 본격 합류,관심을 모으고 있다. 19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대북사업위원회 첫 모임을 가진 AMCHAM의제프리 존스회장은 “대북투자를 통해 단기적으로 큰 이익을 볼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장기 투자라고 생각하고 북한측의 개발계획에 맞게 북한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이후 북한의 대미수출은 1만1,000달러에 불과하며 미국의 북한투자도 거의 없었다”며 “처음 시도되는 역사적인 사업인만큼 북한의 개발계획과 지역별 타당성,가능성을 조사한 뒤 사업성을 보고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다음달 중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존스회장은 조사단의 방북과 관련,“아직까지 북한 당국과 합의한 내용은없지만 미국정부를 통해 UN 북한대표단에 알렸고 비공식적인 라인을 통해서도 접촉을 시도하고 있어 이달 안으로 북한측의 긍적적인답변이 올것으로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에 갈 경우 일주일 가량 머물면서 나진·선봉 특구 등 여러지역을 방문하고 싶다”며 “현대 등 대북사업을 벌이는 한국기업과의 협력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기업들이 이미 북한에 진출해 있지만 아직 많은 위험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북한의 투자정책이나 송금수단,자산소유 방식,분쟁발생시 공평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 등도 조사단의 중요한 임무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존스회장은 “대북경협이 원만히 이뤄지기 위해 양국 정부와 긴밀한 협조아래 기업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계획”이라며 “북한이 남북경협을순수 경협이라기보다 ‘지원’측면으로 보는 것처럼 미국의 대북투자를 받아들이면서 조건을 제시할 경우 미국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함혜리기자 lotus@
  • [문명자 회고록] 비화 3공의 실세들 (6)반대자들의 변신

    5·16 직후 워싱턴에 있던 한국학생·지식인·예비역 장성 가운데 5·16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백악관앞에서 연일 ‘5·16 반대시위’를 벌였다.이는 미국정부가 5·16을 인정하지 않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5·16후 ‘한국인 정치망명 1호’를 기록한 내 남편 최동현(崔潼鉉)이었다. 5·16 반대시위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로는 당시 주미대사였던 장리욱(張利郁·작고)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 신병현(申秉鉉)전 부총리,최경록(崔慶祿)·강문봉(姜文奉·작고)·김웅수(金雄洙)장군과 국회의원 양일동(梁一東·작고)씨 등이었다.강영훈(姜英勳)전 국무총리는 5·16직후 시골에 있어시위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워싱턴으로 온 뒤부터는 이 모임에 항상 참여했다. 5·16 당시 강씨는 육사 교장이었는데 쿠데타세력이 요구한 육사 생도들의5·16지지 시가행진을 거부했다.강씨와 처남 매부간인 김웅수 장군(전6군단장),장면(張勉) 정권에서 육참총장을 지낸 최경록씨도 5·16을 반대했다.당시 2군사령관이던 최씨는 자기밑에부사령관으로 있던 박정희(朴正熙)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하극상 사태를 당한 셈이었다.최씨는 조선일보 등에 “군은 절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글을 발표하는 등 5·16을 반대했다.이 세사람은 5·16이 기정사실화된 후 미국측 배려로 미 국방부 장학생으로 미국에 왔다. 백악관앞 시위에는 워싱턴 조지타운대학에 재학중이던 한국유학생도 많이참여했다.당시 열심이던 학생으로는 오세응(吳世應·전 국회부의장)씨와 한광년이 기억에 남는다.그때 오씨는 워싱턴지역 한국학생회 회장이자 ‘한국인 택시운전사 1호’였다.한광년은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70년대 들어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넘어가고 말았다. 5·16 직후 박정희는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주미 대사관 공관원들을 모두해임시켜버리고 그 자리를 온통 자신의 수족들로 채웠다.그가 특히 신경을썼던 주미대사 자리에는 당시 하버드대학 청강생으로 있던 정일권(丁一權)을 ‘미국통’이라고 해서 앉혔다. 정일권이 주미대사로 앉게 되자 백악관앞 5·16 반대시위 참여자 중 여러사람이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남편 최동현부터 정일권의 하버드시절 그의 영어가정교사를 했던 사람이었다.영어선생과 학생이 데모대장과 진압대장으로만난 셈이었다.또 강문봉 장군은 정일권과 같은 함경도출신으로 현역때부터형님,동생 해온 사이였다.그런 그가 백악관앞에서 반(反) 5·16 시위를 하니 정일권이 닦달할만도 하였다.그때마다 그는 “골프치러 가려고 운동화 신고 나서는데 최경록이가 와 같이 가자고 해서 할 수 없이 따라갔어요”하는 식의 변명으로 모면하곤 했다. 한편 백악관 앞에서 5·16 반대시위를 벌인 사람들의 그후 행적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생각되는 바가 많다.박정희는 이들을 한 사람씩 회유해 한국으로불러들였다.민주당정권때 주미대사관 경제담당 참사관으로 있던 신병현씨는5·16이 나자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백악관앞 시위에는 그의 부인까지도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이후 미국에서 세계은행 이사로 있던 신씨는 그의 후배 김정렴(金正濂)이 박정희의 비서실장이 된 후 회유공작에 넘어가 귀국,청와대 경제특별보좌관을 거쳐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최경록장군도 “선배님,그러실 것 없이 한국에 와서 손잡고 일합시다”하는 박정희의 간청에 결국 귀국해 주영대사,교통부장관 등을 지냈다. ‘백악관앞 시위동지’들 중 가장 부끄럽게 처신한 사람은 강영훈이라 하겠다.강영훈도 초기에는 깨끗하고 꿋꿋하게 살았다.그의 부인은 미장원에서 일했는데 독한 파마액때문에 손가락이 모두 헐 지경이었다.그런 생활고 때문이었던지 70년대 들어 강씨는 결국 중앙정보부의 돈으로 ‘한국문제연구소’라는 것을 설립,미국 언론계·학계에 친박정희세력을 심는 역할을 담당했다. 백악관 앞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5·16을 반대한다고 떠들던 사람들의 행적도 기억해둘 만하다.장면 정권하에서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이석기(李錫基·작고)씨와 나중에 야당 당수를 지낸 이철승(李哲承)씨가 그들이다. 이석기는 주미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워싱턴에 왔다가 5·16소식을 듣고는장리욱 대사 방에 달려와서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사님,미군을 동원시켜야 합니다”하면서 열을 올렸다.그런데 5·16이 기정사실화되고 미 CIA부장 매쿤의 초청으로 당시 김종필(金鍾泌·현 국무총리) 중앙정보부장이처음 미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주미 대사관 중앙정보부 공사 김동환의 집에서 김종필 부장 환영파티가 열려 다른 특파원들과 함께 갔더니 뜻밖에도 이석기와 이철승씨의 모습이 보였다.나는 이석기에게 대뜸 물었다.“이의원,와이셔츠 걷어붙이고 미군 동원시키라던 분이 웬일이세요? 번지수를 잘못 알고 오신 것 아닙니까?” 이석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했다.“김 부장하고 나는 한 고향 출신이라 옛날부터잘 아는 사이입니다.게다가 김 부장의 춘부장도 제가 잘 알고,김 부장의 형님도 내가 은행에 취직시킨 처지라 먼길 오셨는데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뒷날 김종필이 정계에 진출할때 이석기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여를 주고 자신은 서울로 옮겨갔다.그 점에선 이철승도 마찬가지다.그토록 열렬히 5·16을 반대한다던 그가 왜 그자리에 왔었겠는가.정리 정운현기자 jwh59@kdaily.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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