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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위터·이메일은 절친의 적”

    미국 듀크대 연구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1985년부터 2004년 사이 미국인들이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는 3분의1가량 줄었다. 25%는 아예 고민을 의논할 상대가 한 명도 없다고 답했다. 원인은 이메일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이른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의 영향이었다. 시사주간 타임은 22일(현지시간) ‘이메일은 어떻게 대인관계를 망치는가’라는 기사를 게재하고 이메일과 SNS가 인간관계 설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각종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미시간대 연구팀은 재학생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요즘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동조하는 경향이 과거에 비해 뚜렷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이 대면 접촉이 아닌 디지털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는 일이 잦아진 탓으로 분석했다. 타임은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대신 이메일이나 SNS를 통해 얘기를 주고받는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도를 저하시킨다.”면서 “친구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컴퓨터를 끄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케빈 록맨 조지메이슨대 교수와 그레고리 노스크래프트 일리노이대 교수의 공동연구에서도 이메일과 SNS가 상대방에 대한 주의력을 낮춰 결국 신뢰성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록맨 교수 등은 200명의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핵무기 감축과 가격 선택에 대한 과제를 준 뒤 그룹별로 이메일, 비디오 콘퍼런스, 대면회의를 활용해 해결토록 했다. 연구 결과 대면회의를 진행한 그룹이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냈고, 팀원 간의 신뢰성도 높았다. 노스크래프트 교수는 “새로운 기술적 시도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생기는 공감대를 약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 “첨단기술은 능률적이지만 감동적이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주역이다. 전쟁을 도발한 공산진영의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과 맞선 자유진영의 대표주자였다.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또 한 사람은 5성 장군 계급장을 달고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끝까지 함께 가지 못했다. 정책결정자 트루먼은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맥아더의 최후는 참담했다. 연합군이 중국군에 쫓겨 38선 이남으로 후퇴한 1951년 4월11일 트루먼으로부터 연합군 사령관직 등 모든 직위에 대한 해임통보를 받았다. 상원청문회장에 선 ‘전설적 장군’은 문민통제에 대한 불복종과 오판은 물론 거짓말까지 줄줄이 드러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 의회는 전쟁영웅에 대한 예우를 참작, 청문회 공식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도쿄에 머문 맥아더 전세 파악못해 루스벨트라는 걸출한 대통령의 그늘에서 인기 없는 상원의원과 부통령직을 지낸 트루먼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그는 후세 역사가들로부터 스탈린과 함께 냉전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았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이뤄진 트루먼 대통령의 확신에 찬 해군 및 공군 출동명령과 엿새 만의 지상군 참전결정이 없었다면 낙동강전선 사수와 인천상륙작전의 역공, 서울수복과 압록강 국경까지의 북진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트루먼은 재임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치적 앙숙인 맥아더를 사장시킨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매도당했다. 한국 땅에서 미국의 젊은이 3만 3000여명을 전사시키고도 전쟁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통령이었다. 맥아더 해임 당시 트루먼은 패배자였지만, 후일 승리자로 기록됐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군사자문기구인 합동참모본부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군사적 결정’이란 점이 작용했다.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은 트루먼의 참전결정과 함께 한국전쟁의 양대 분수령이었다. 보급라인이 길어진 인민군의 허리를 끊고, 9월28일 서울을 수복해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전쟁역사상 육군의 공급선을 차단하면 열에 아홉은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큰소리쳤다. 사실이었다. 맥아더 일대기에는 “그의 인생에서 군인으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날은 1950년 9월15일 하루였다.”고 적혀 있다. 성공확률 5000분의1의 거대한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확률은 맥아더 자신의 언급이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편찬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맥아더는 “이 작전이 도박이라면 후에 1달러로 변해 나오게 되는 5센트를 항아리에 던져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맥아더가 남한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한반도를 민주국가로 통일시키겠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유일한 미국 장군이었다. 이승만 정부로부터 ‘수호자’로 숭배를 받았다. 한국의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천명한 1950년 10월의 유엔결의가 맥아더의 호승심(好勝心)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싱턴의 행정부 및 군 수뇌부는 중국과 옛 소련의 의도를 확신하지 못했고, 군사적 충돌을 우려했다. 한국전쟁이 세계 제3차대전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제한된 목표를 위하여, 제한된 수단으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맥아더의 거침없는 북진이 못마땅했지만, 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쟁의 신’으로 격상된 맥아더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맥아더는 중국정부의 개입 경고를 무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도 엄포라며 한 귀로 흘렸다. 오히려 원폭투하 발언과 압록강 교량 폭격으로 가뜩이나 민감해진 중국 지도부를 자극했다. 오만에 빠진 맥아더의 결정적 오판이었다. ●1951년 전시중 해임통보 받아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제10장 맥아더의 해임’ 편을 보면 미국 대통령과 내각,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군사정책에 관련된 정책수립 및 자문기구를 맡는 합참과 맥아더의 관계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은 “합참요원은 예외 없이 맥아더 장군보다 후임이었다. 합참의장 브래들리 원수는 육사 12년 선배인 맥아더 준장 아래서 소령으로 근무했다. 콜린스 육참총장과 셔먼 해군참모총장은 맥아더가 육사교장이었을 때 초급장교였다. 반덴버그 공군참모총장은 사관생도에 불과했다.”고 기술했다. 또 “군사조직이 이러한 인적관계로 구성됨에 따라 그 영향이 의사전달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맥아더 장군이 보낸 서신에서는 합참에 대한 암시적인 훈계 또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가 발견됐다. 역으로 합참은 맥아더 장군에게 결정적인 방법으로 명령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들이 기안한 지침서는 선임자에게 실례나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공손한 말로 표현됐다.”고 적었다. 맥아더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1보를 보고받은 트루먼과 맥아더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도쿄의 극동사령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맥아더는 무관심하면서도 초연했다. 함께 있던 덜레스 국무부 고문이 걱정하자 맥아더는 “단순한 정찰병력이며 등 뒤에 한 손을 묶은 채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신경 쓰지 않았다. 26일에도 천하태평이었다. 오히려 덜레스가 “무초 미 대사가 서울을 탈출했다.”는 급보를 전하자 그때야 알아보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적어도 1945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맥아더에게 한국은 관심 밖의 나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주둔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거듭되는 보고를 무시했으며, “남한문제는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지시가 전부였다. 맥아더의 보좌관 바워즈의 회고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을 꺼렸으며, 한국문제는 국무부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 맥아더는 한국전쟁을 지휘하는 동안 한국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다. 전용기를 타고 전황을 살펴보러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도쿄로 돌아가곤 했다. 인천상륙작전 때나 북진공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압록강까지 거침없이 북진하면서 “중공군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장담과 달리 중국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뒤로 밀리자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대표들은 맥아더가 한국의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사령관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맥아더가 파면된 이후 자리를 이어받은 리지웨이 장군은 종전 후 40년이 흐르고 나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싸워야 했는지 도쿄의 사령부가 알지 못했다는 점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으며 그런 상황을 만든 총사령관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트루먼의 대처는 단호하고 빨랐다. 미국은 결코 ‘한반도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판단을 비웃듯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했다. 1950년 6월30일 새벽 5시 지상군의 투입을 승인했다. 유엔 안보리도 한국에서의 무력사용을 의결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콜디스트 윈터’에서 “1950년 6월25일자로 트루먼과 맥아더의 삶이 함께 엮였다. 대통령은 장군을 통제하지 못해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장군은 대통령직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라고 분석했다. 또 “트루먼은 우연히 대통령이 되었지만, 맥아더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이었다.”고 썼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미국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아서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었다. 웨스트포인트 4년 동안 역대 최고 학점을 기록했고 미군 역사상 모든 최연소기록을 갈아치웠다. 1918년 처음 별을 단 이래 최연소 사단장, 웨스트포인트 교장, 육군 참모장, 소장, 대장, 원수에 올랐다. 1944년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는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였다. 트루먼은 결단력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었다. 함정을 파거나, 말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저격당한 지 90년이 지난 뒤에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은 링컨을 거울로 여겼다. 트루먼은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는 그가 극동지역의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는 거야. 자기가 일개 육군장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관은 바로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잘못이지.”라고 맥아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인생은 쇼, 세상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맥아더가 보기에 트루먼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쟁자였다. 워싱턴에 있는 반대세력의 수장이었다.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군 경력은 주 방위군 대위 계급장이 전부인 ‘미주리 촌놈’에 불과했다. 자신을 파면한 트루먼을 탄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그가 도쿄를 떠날 때 25만명의 일본인이 성조기를 흔들며 울었고, 뉴욕에 도착해 행진을 벌였을 때 700만명의 인파가 열광하면서 장군의 귀향을 슬퍼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한국전쟁의 순교자로 여겼다. 맥아더 해임은 ‘남북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헌정위기를 불러왔다.’고 기술될 정도로 혼란상을 가져왔다. 상원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던’ 장군의 진면목은 매일 3000만명이 지켜보는 TV중계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일흔 살 대원수의 진실은 미리 준비한 연설과 달리 사흘 내내 계속된 청문회에서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그는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했던 10월17일 웨이크섬 회담에서 맥아더 장군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두 번씩이나 본국소환에 불응하는 기록을 세운 전무후무한 장군이기도 했다. ●군사작전 실행후 추후 보고 합참은 맥아더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4월8일 전원회의에서 참모들은 ‘예외 없이 맥아더 해임’에 찬성했다.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에서 공식적으로 열거한 맥아더 해임의 주요 이유는 타이완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의 불화였다. 맥아더는 중립을 추구하는 트루먼 정부의 타이완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 중국의 개입에 대한 오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뒤 38선 돌파와 압록강까지 북진, 압록강 교량 폭격 같은 중요한 군사작전을 실행 후 추후 보고형식으로 승인받았다. 이 밖에 대외정책에 대해 공개 언급하지 말라는 대통령 훈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했다. 맥아더가 3월24일 중국본토로의 확전을 언급하자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군통수권자로서의 나의 명령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더는 그의 불복종을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해임을 결심했다고 미국 합참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클레오파트라=흑인” 안젤리나 졸리 캐스팅 논란

    “클레오파트라=흑인” 안젤리나 졸리 캐스팅 논란

    ‘미(美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최고 여배우인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는다는 소식은, 언뜻 들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난 해 나온 “클레오파트라가 아프리카계 혈통일 수 있다.”는 BBC의 다큐멘터리가 이 영화 캐스팅에 인종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의 힐케 투어 박사는 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 혈통인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법의학적 분석 결과 아프리카계 혈통의 어머니를 둔 것이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역대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영화에서는 모두 백인 여성이 주연을 맡아왔다. 1934년 클로데트 콜베르, 1945년 비비안 리, 1963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은 그들이다.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대표 그림인 귀도 카나치의 1658년 작품 ‘클레오 파트라의 죽음’에서도 그녀는 흰 피부의 백인으로 표현돼 있다. 졸리의 캐스팅 소식이 들리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자주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연기를 잘하고 예쁜 흑인 배우도 많은데, 굳이 졸리같은 백인이 또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아야 되는 이유가 뭐냐.”면서 “바네사 윌리암스나 할리 베리 등의 배우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에 영화의 원작자인 스테이시 스치프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졸리는 오스카 상을 노려도 가능할 만큼 클레오파트라 역에 제격”이라고 말했고, 출판사 측도 “클레오파트라의 강한 카리스마와 우아함을 동시에 가진 배우를 캐스팅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한편 영국 언론인 데일리 메일은 “안젤리나 졸리가 클레오파트라의 상대역인 마크 앤토니 배역에 브래드 피트를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해 논란 속에서도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목받는 사진전 2제

    주목받는 사진전 2제

    美대공황 노동자 삶 포착 -19일~9월4일 ‘워커 에번스전’ 北이 숨겼던 현실 비틀기 -새달 7일까지 백승우 사진전 올 상반기 최고 화제였던 스티브 매커리의 ‘진실의 순간’전에 이어 특색있는 사진전이 곳곳에서 열린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워커 에번스’전이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02-418-1315)에서 19일~9월4일 열린다. 워커 에번스(1903~1975)는 작가적 관점이 이입된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유명하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한 시리즈가 대표작이다. 가난하고 척박한 미국 남부를 담은 사진들은 실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위해 설립한 부서인 농업안정국(FSA)에 에번스가 고용돼 찍은 것들이다. 에번스는 1년6개월 동안 FSA에서 일하며 미국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농촌의 피폐함을 사진으로 도시 사람들에게 알렸다. 당시 사진은 발명된 지 100년이 채 안 되는 신(新)매체였다. 사진을 직접 인화하는 것을 꺼렸던 에번스는 1973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즉석에서 인화와 현상이 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2000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지하철 몰카’쯤으로 불릴 만한 ‘지하철’ 시리즈도 그의 대표작. 대형 카메라를 주로 썼던 에번스는 1938~1941년 소형 콘택스 카메라를 옷 속에 숨긴 채 뉴욕 지하철을 탄 사람들을 몰래 찍었다. 당시 사진 찍힌 사람들이 항의할까봐 발표하지 못했던 작품들은 이후 후대 사진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사진작가 강운구씨는 “인간을 인간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찍은 에번스는 정지된 사람들의 순간을 잘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에번스가 당시에 현상했던 원본 흑백사진들이 전시된다. 일부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큰 규모로 인화됐다. 백승우(37)는 또 다른 의미로 한국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개척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의 현실을 담은 그의 개인전이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서소문 일우스페이스(02-753-6502)에서 열린다. 북한 사진을 찍고 싶었던 그는 2001년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평양에서 패션쇼를 연다는 소식에 같이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어렵게 평양에서 4주 동안 사진을 찍었지만 북한 당국은 매일 저녁 그의 필름을 압수해 원치 않는 이미지는 잘라내고 돌려줬다. 백승우는 검열받은 필름 속에서 북한 당국이 숨기고 싶어했던 모습을 찾아낸 뒤 확대해 ‘블로우 업’ 시리즈로 발표했다. 영문 상표나 여승무원, 달리는 여성, 길 위의 행인 등이 그의 손을 통해 빛을 본 작품들. ‘유토피아’ 시리즈는 북한이 선전에 활용하기 위해 첨단 건물과 시설들을 촬영한 사진을 구해 상상을 덧붙여 마음대로 가공한 것이다. 건물을 극적으로 높이거나 웅장하게 변형시키고, 배경에는 다채로운 색을 입혔다. 지상낙원이라 선전하는 북한의 이미지를 과장시켜 비꼬는 사진들이다. 기존의 사진이 진실을 말했다면, 그는 다큐멘터리의 틀만 빌려 대상(북한)을 조작했다. 백승우는 “폭력적 시각을 고발하고 싶었어요. 아프리카에 미국인들이 와서 사진을 같이 찍어주는 대가로 1달러씩 주자 불과 여섯달 만에 그곳의 산업이 사라져 버렸대요. 그건 아프리카에 대한 폭력이었죠. 나와 다른 것을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폭력을 사진으로 고발하고자 했습니다.”라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영화 007시리즈의 제작자 마이클 G 윌슨이 ‘블로우 업’ 시리즈 120점을 모두 구매할 정도로 백승우 사진 애호가다. 이 밖에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02-2020-2060)은 8월22일까지 전국의 경관과 문화재, 풍속 등을 기록한 ‘격물치지’전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580-1300)은 22일~8월29일 역대 퓰리처상 보도사진 부문 수상작들을 볼 수 있는 전시회를 각각 연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시론] 전통문화가 돈이 되게 하려면/구문모 한라대 미디어콘텐츠학 교수

    [시론] 전통문화가 돈이 되게 하려면/구문모 한라대 미디어콘텐츠학 교수

    제주도는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삼다도라 한다. 나에게는 하르방과 바람이 금방 떠오른다. 하지만, 돌하르방의 독특한 모습 외에 나의 기억을 자극하는 어떤 무언가는 없는 듯싶다. 돌하르방 하면, 그저 단순히 웃는 조각상과 까만 모조품. 그게 전부일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항상 든다. 얼마 전 국내 유수의 학회 모임에서 한 젊은 사장님과 만났다. 그는 태권도를 소재로 기획한 공연 ‘점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해외 관객들이 왜 재미있어 하는지 소개하였다. 태권도 하면 우리의 국기로만 생각했던 내게 그 성공담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분은 더 나아가 “가장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하면 세계인이 즐길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지금도 최고의 품질을 위해 다양한 R&D조직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연간 20억원의 돈이 개발비로 나간다.”면서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돌하르방이나 태권도는 한국사람이면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문화다. 그러나 그 둘은 아주 뚜렷하게 대비된다. 돌하르방은 늘 익숙해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전형적인 전통 문화상품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점프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무예가 코믹이란 장르와 만나 스토리와 뮤지컬로 새로 태어난 혁신상품이다. 비록 우리의 색깔은 옅어졌지만, 대신 외국인도 좋아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최근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변신’한 콘텐츠 R&D의 모범사례가 아닐까 한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산업은 국방 다음으로 제2의 수출품목이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우리는 미국 영화나 음악, 드라마, 캐릭터 등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디즈니 캐릭터들은 태어난 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많은 이들에게 계속 기쁨을 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미국인들의 연구개발 활동은 눈여겨 볼 만하다. 할리우드나 유럽의 영화사들은 영화 제작비 중 1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쓴다고 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발하고 신인가수를 선발·육성하는 데 지출되는 비용이 총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조업 R&D 비중보다 높다고 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의 문화산업 업체들은 혁신에 필요한 최소한의 연구개발비는 고사하고 인건비조차 제대로 주지 못해 허덕이고 있으며, 공짜 티켓에도 관객이 없는 공연이 허다하다. 국내 유명 애니메이션 업체의 한 분은 사내에 R&D 부서가 있지만, 이공계 석박사 인력이 없어 R&D 비용으로도 인정 받지 못한다고 한다. 콘텐츠산업도 제조업처럼 기술 R&D 조직이 돼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점프’라는 공연에 무슨 첨단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참 답답한 현실이다. 요사이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R&D 전략기획단을 꾸리고 산업기술개발과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는 정부 보도가 자주 들린다. 이제는 우리도 모방이 아닌, 모름지기 세계시장을 선도할 기술을 만들어 내는 일에 기대를 걸 만하다. 하지만, 전략기획단의 구성을 보면 서비스나 콘텐츠 혁신을 대변하는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향상 없이는 더 이상 제조업의 경쟁력도 유지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실행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이는 민간업계도 마찬가지다. 콘텐츠 혁신에 관한 업계의 공통된 이해나 연구도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21세기 국부의 보고라 일컬었던 문화콘텐츠로부터 내가 얻기를 원하는 것은 시대에 맞는 특별한 이야기와 퍼모먼스, 가슴을 적셔줄 감동과 사람 등등이다. 서가에 남겨진 어느 유럽 나라의 시골 문화상품을 보고, 여행 당시에 연극으로 보여주고 거리 체험으로 느끼게 했던 이들의 모습이 기억으로 되살려지면서 다시 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듯, 우리의 돌하르방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추억거리가 담긴 생동력 지닌 창조상품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 “이념 아닌 광기의 전쟁 영화로 알리고 싶었다”

    “이념 아닌 광기의 전쟁 영화로 알리고 싶었다”

    │샌프란시스코 이경원특파원│“이 영화의 목적은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내 정치적 견해를 밝히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전쟁에 자원한 어린 아이들이 그 광기 속에서 희생됐던 비극을 다루고 싶었다.” 영화 ‘포화 속으로’의 이재한 감독의 말이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다. 유난히 전쟁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우려도 높다. 이들 영화가 ‘반공’(反共) 문제와 같이 정치적, 이념적으로 민감하게 해석될 소지가 있는 까닭이다. 뚜껑을 연 전쟁 영화 ‘포화 속으로’는 과연 이런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한 10대 학도병 이야기 16일 개봉하는 ‘포화 속으로’가 첫선을 보인 곳은 다름 아닌 미국. 지난 27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스탠퍼드 대학 커벌리 오디토리엄에서다. 명문 스탠퍼드 대학 아태연구소(APARC)의 초청으로 영화 상영이 성사됐다. 연구소가 개최한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기념 행사’의 일부다. 71명의 어린 10대 학도병들의 실화를 담아낸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전쟁의 참상을 공유해 보자는 취지다. 상영회는 400석의 관람석이 만석을 이루는 등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실감케 했다. 영화가 끝난 뒤 이재한 감독과 주연 배우 권상우를 비롯해 미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스콧 폰다스, 한국전쟁 참전 용사 존 스티븐스, 김경현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양치휘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디렉터 등이 패널로 나선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감독은 토론회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는 60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남한과 일본, 혹은 중국이 싸운 전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면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 한국 영화가 이념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북한군을 그리는데 이번 영화는 어떻게 접근했냐.”는 질문에 대해 이 감독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라고 운을 뗀 뒤 “관객들이 영화가 끝날 때쯤 전쟁이 곧 광기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군인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인다. 그게 내가 그리고 싶은 전쟁의 메시지다.”라고 설명했다. 배우 권상우는 “젊은 세대들은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면서 “내가 영화를 촬영하면서 느낀 전쟁의 공포를 깨달았으면 좋겠다.”며 이 감독의 말을 거들었다. 그는 이어 “군인이 아니라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이 나라를 지키고 단결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슬퍼보였다.”며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권상우, 제임스 딘 연상케 해” 이어 패널 참가자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폰다스 평론가는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고 흥미진진한 영화다. 기술적으로도 뛰어나 제작비가 50배 넘는 할리우드 영화만큼 훌륭했다.”면서 “특히 권상우의 반항적인 연기는 마치 제임스 딘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고 밝혔다. 한국전 참전 용사인 스티븐스는 “내가 속했던 부대는 공격 위주의 부대라 방어 임무를 맡은 학도병들과 달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긴 어렵다.”면서도 “학도병이 북한군을 막는 사실감이 뛰어났다. 완성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양치휘 디렉터는 “한국 사회에서는 불과 60년 사이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당시 전쟁의 주체였던 10대가 지금은 전쟁에 무관심한 세대가 되어버린 셈”이라면서 “영화는 한국 사회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투영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관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회사원 키스틴 프로섹(24·여)은 “강렬하고 아름다운 영상이 많아 인상적이다.”면서 “미국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 대학 전자공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매튜 포터(31)는 “드마라틱하고 리얼리티가 살아 있어 무척 재미있게 봤다.”면서도 “다만 할리우드 블록 버스터와의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인다. 한국 영화는 예술성이 무척 뛰어난데 이 작품도 한국 영화 특유의 예술성을 살렸으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커밍스, “한국 전쟁, 美에 엄청난 영향” 영화 상영 다음 날에는 한국 전쟁의 세계적 권위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의 강연회가 이어졌다. 전날 영화를 통해 한국전쟁에 실감나게 접근했다면, 이번엔 학술적으로 한국 전쟁을 분석하는 자리였다. 커밍스 교수는 강연회에서 “한국은 미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국가였지만 한국전쟁은 미국의 대외 정책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영향의 사례로 ▲미국 국방비의 증액(한국 전쟁 뒤 4배) ▲미국의 해외 기지 설립 가속화 등을 들었다. 특히 커밍스 교수는 “한국은 미군이 실제적으로 진주, 특정 정부를 무너뜨리려 한 첫 번째 국가”라면서 “결국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미국의 대외 정책은 쿠바나 베트남, 이라크 등에서 패착을 거듭하는 단초가 됐다.”고 설명했다. leekw@seoul.co.kr
  • “지구는 내가 접수”… 55세 동갑 세 천재의 IT대전

    “지구는 내가 접수”… 55세 동갑 세 천재의 IT대전

    20세기 말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산업은 정보기술(IT)이다. 앞으로 이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10년 5월26일은 당분간 잊히지 않는 날이 될 것 같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영원한 2인자 애플이 절대 강자 마이크로소프트(MS)를 누르고 IT분야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 애플과 MS의 성공스토리에는 1955년생, 55살의 동갑내기 천재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이 25년간 이어온 전쟁에 이제 두 사람의 친구인 구글의 에릭 슈미트가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세 사람이 전세계를 무대로 벌이는 IT삼국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게이츠, 잡스, 슈미트는 IT산업이 낳은 최고의 스타들이다. 이들의 한마디에 소비자들은 열광하고, 이들이 움직이면 IT를 넘어 사람들의 생활이 바뀐다. 적어도 지난 20년간 그랬다. 전세계 언론은 행사장마다 이들이 어떤 제품을 들고 나타나느냐에 관심이 집중됐다. 2006년 서울디지털포럼에 나타난 MS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발머는 의자를 밀치고 일어선 후 헤드셋을 끼고 회견을 시작했다. 단상을 오가며 열정적으로 손짓하며 청중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발머의 모습도 이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일부다. 동갑내기 세 사람의 인생역정은 컴퓨터를 기반으로 출발했다는 점 이외에는 판이하게 다르다. 게이츠는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학교에 설치한 공유 터미널 시설을 통해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것도 이때 얻은 자신감 덕분이었다. 개인용컴퓨터(PC) 시장의 선두주자 IBM과 손잡은 MS는 92년 윈도3.1을 출시하면서 ‘PC=윈도’의 공식을 만들어냈다. 윈도NT, 윈도95, 윈도98, 윈도ME, 윈도XP는 MS가 세운 제국 확장의 역사였다. ●미국인의 사랑받는 애플 애플이 사랑 받는 것은 이들이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담’과 ‘성공스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입양아 출신인 잡스는 집안 사정으로 교양학부 대학 리드칼리지를 한 학기 만에 그만뒀다. 대신 18개월 동안 학교에 머물면서 디자인에 빠져들었다. 애플이 사용자환경(UI)을 중시하게 된 것도 그의 이런 성장배경과 직결된다. 1976년 창고에서 창업한 잡스는 세계 최초의 PC ‘애플1’을 만들어 백만장자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IBM이 PC산업에 뛰어들자 곧바로 내리막길을 걸었고, 급기야 1985년 회사에서 쫓겨나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12년. 그는 1997년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10억달러 적자에 허덕이던 기업을 1년만에 4억달러의 흑자기업으로 만들었다. 당시 생긴 추종자들은 그를 ‘신’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에는 아이팟, 아이튠즈,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전타석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슈미트는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창업자가 아닌, 밑바닥부터 최고경영인(CEO)까지 오른 인물이다. 개발자로서의 그는 전설적이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는 운영체제 구분 없이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자바(JAVA) 개발을 주도했다. 2001년 슈미트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혁신적인 사고와 통찰력에 감탄해 구글에 합류했다. IT업계에서 쌓은 그의 풍부한 경험은 구글에 그대로 반영됐고, 덕분에 구글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 검색엔진을 거쳐 애플과 MS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IT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 천재의 판이한 경영 철학 최고의 기업을 일궜지만, 이들의 경영스타일은 극명하게 갈린다. 게이츠는 ‘직원 배려 리더십과 비즈니스 감각’, 잡스는 ‘통찰력과 카리스마’, 슈미트는 ‘신중함과 조정능력’으로 대표된다. 게이츠는 사업가적 기질이 탁월하다. 본인이 만든 프로그램의 복사본이 나돌자 프로그래머들에게 ‘도둑질’이라는 말을 날려 초기 소프트웨어 시장을 상품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바로 그다. 직원 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상대를 배려한다. 신입사원들도 자유롭게 그에게 메일을 보낼 수 있었고, 회사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조차도 비교적 자유롭게 받아들였다. 그가 2008년 6월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MS는 정점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게이츠는 퇴직 연설에서 “다른 사람들이 부각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그의 바람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일각에서 그가 MS의 퇴보를 예측했기에 미련 없이 물러났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실제로 윈도비스타와 윈도7의 부진한 실적은 애플에 1위 자리를 내주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예언한 TV의 미래 ‘스마트TV’는 MS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기도 전에 구글과 애플의 전장이 됐다. 잡스는 PC의 창조자이면서도 IBM이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자 과감히 이를 포기했다. PC 운영체제에 있어서도 윈도가 대세인 세상에서 매킨토시를 고집했다. 한마디로 표준과는 늘 동떨어진 길을 걸었다. 직원들에게도 이를 요구한다. 대신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UI(User Interface,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집중했다. 소비자들에게 강요하는 대신 소비자들이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통적인 조직관계도 무너뜨렸다. CEO이면서 실무자와 직접 소통하고,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직관을 더 중시한다. 자신감도 넘친다. 아이패드 출시 당시 잡스는 “앞으로 몇 년 후면 아마존의 전자책 ‘킨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슈미트는 절대 튀지 않는다. 대신 조용하고 침착하게 관리하고, 기발한 천재 창업자들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돕는다. 2001년 슈미트가 구글에 합류한 첫 달 구글은 처음으로 분기흑자를 기록했고,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분기 실적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술분야에서만 줄곧 일해온 그는 속마음을 숨기는 데 익숙하다. 화법 역시 직설적이지 않고, 중의적인 표현으로 다른 사람이 해석하도록 맡긴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IT시장에서 가장 안정감 있는 투자를 원한다면 슈미트가 있는 혁신적인 구글에 투자하라.”고 조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美, 남아공 월드컵 테러 가능성 경고

    2주 앞으로 다가온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6월11일~7월12일)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미국인들이 산 표가 16만장 이상으로 추산되면서 미 국무부가 고민에 빠졌다. 남아공 정부가 예측한 관광객 30만명 가운데 미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미국인을 겨냥한 테러를 막기 위해서다. 미 국무부는 25일(현지시간) “남아공에서 테러공격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졌다.”며 ‘여행위험경보’를 발령, 실질적인 조치에 나섰다. 반면 국제축구연맹(FIFA)은 거듭 “테러 위협은 없다.”며 축구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dpa통신에 따르면 국무부는 여행위험경보 배경과 관련, “월드컵이 대규모 국제행사라는 특성상 테러리스트들의 목표가 될 수 있는 인사들이 많이 참석한다.”면서 극단주의자들이 조만간 남아공에서 테러를 감행할 위험이 높아졌다는 점을 들었다. 다만 테러위협과 관련한 특정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며 월드컵 기간에 특정 세력이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신빙성 있는 위협을 파악한 것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무부는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에도 미국인 여행자들의 안전을 우려, 여행위험경보를 내린 적이 있다. 축구팬들이 안전문제와 관련, 확신을 갖기엔 테러 조직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최근 이라크에서는 월드컵 기간 동안 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알카에다 간부가 검거됐다. 이라크 보안당국은 지난 17일 알카에다 간부가 덴마크와 네덜란드 대표팀, 두 나라 축구팬들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려 한 사실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알카에다 간부가 “이슬람을 모독한 보복으로 덴마크와 네덜란드 대표팀을 공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덴마크의 한 신문은 2005년 폭탄 터번을 머리에 두른 테러리스트로 무함마드를 묘사한 만평을 실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네덜란드에선 자유당 당수 거트 빌더스 의원이 2008년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테러리즘과 연관시킨 영화를 제작, 역시 파문을 일으켰다. 알카에다의 이라크 내 연계조직인 ‘이라크 이슬람국가’가 25일 자신들은 남아공 월드컵을 겨냥한 테러를 계획한 적이 없다고 홈페이지에서 밝혔지만 테러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라크 이슬람국가’는 웹사이트 성명에서 “당국이 알카에다 간부라고 거론한 사람은 자신들의 조직 소속이 아니며 당국의 주장은 상상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보 당국자는 국가대표팀과 축구팬에 대한 테러위협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FIFA 측은 테러 위협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은 26일 월드컵 개최 도시 가운데 한 곳인 케이프타운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라크에서 적발된 테러 모의와 관련, “단순한 허세”라면서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전세계인이 지켜 볼 월드컵을 이용,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저지른 짓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FIFA 안전담당 관계자는 AFP통신에서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국 경찰을 비롯해 국제경찰인 인터폴 등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월드컵을 노린 어떤 테러 조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월드컵 참가국들은 최대 8명까지 테러 관련 전문가들을 남아공에 파견해 협력할 방침이다. 남아공 측도 월드컵을 위해 예비경찰인력 4만 4000명을 훈련시켰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美의회 인디언에 과거사 공식사죄

    미국 의회가 아메리카 원주민, 이른바 인디언에게 저질렀던 폭력행위와 강제이주 등 과거 잘못을 공식 사과하는 행사를 가졌다고 AP통신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공화당 소속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캔자스)은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의회묘지 예배당에서 체로키, 포니 등 5개 인디언 부족 대표들이 참석한 행사에서 과거 잘못된 정책과 폭력행위를 사과하는 결의안을 낭독했다. 사과 결의안은 연방 상·하원에서 지난해 말 통과됐고, 곧바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바 있다. 결의안을 낭독한 브라운백 의원은 2004년부터 사과 결의안을 적극 추진해 왔다. 결의안은 과거 미국 정부가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포괄적으로 사과하고, 대다수 원주민들이 보호구역에서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유감을 밝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당초 조지아와 테네시주 등 남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체로키 부족을 1838년 1600㎞나 떨어진 오클라호마주 보호구역에 강제로 이주시키는 등 원주민 부족들을 보호구역에 격리시킨 바 있다. 의회 차원의 결의안과는 별도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으로는 15년 만에 원주민 부족장 회의에 참석하는 등 인디언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시해 왔다. 564개 부족 대표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원주민의 역사는 폭력과 질병, 빈곤으로 점철돼 있다. (연방정부는 인디언과 맺은) 협정을 무시했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원주민들도 다른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대선 후보 당시 원주민들에게 백악관에 원주민 정책을 담당할 고문직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실제 취임 후 그는 백악관 국내정책자문회의 산하에 원주민 분야 선임정책자문관직을 신설해 체로키족 출신의 킴벌리 티히를 임명했다. 원주민 인구는 현재 약 450만명으로 미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수준이다. 이들은 평균실업률이 80%에 이르고 4명 중 1명이 빈곤층일 정도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7870억달러의 경기부양책 자금 중 30억달러를 원주민 부족에 배정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9·11테러 현장옆 이슬람사원 건립?

    9·11테러 현장옆 이슬람사원 건립?

    9·11 테러사건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바로 옆에 이슬람사원인 모스크를 건립하려는 ‘야심찬’ 계획이 미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AFP통신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부는 ‘테러 희생자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라며 분노감을 드러내는 반면 다른 쪽에선 ‘미국 헌법을 읽어 보라.’며 반대론자들을 비판한다. 이슬람 사원 건립 예정지는 2001년 당시 9·11 테러사건이 발생했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부지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방치된 옷가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뉴욕시 이맘(이슬람 성직자)이자 모스크 건립계획 책임자인 파이살 압둘 라우프는 이곳에 모스크를 건립하면 미국인들이 무슬림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라우프는 총 1억 500만~1억 4000만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조성해 스포츠시설과 극장, 탁아소 등을 갖춘 이슬람 센터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무슬림이 공동체의 일원이지 격리된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모스크를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라운드 제로 옆에 세워지는 이슬람사원은 미국에서는 이제까지 전례가 없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비무슬림 등 모두를 위한 공동체 센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비판자들 사이에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독일문화원을 설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격한 반응도 나온다. 거기다 모스크를 건립하려는 장소가 ‘그라운드 제로’ 바로 옆이라는 점은 일부에게 ‘승리의 함성’으로 비쳐지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 1일 파키스탄 태생 미국인 파이살 샤자드의 뉴욕 타임스스퀘어 폭탄테러 미수사건으로 인해 ‘이슬람 무장단체와 연계된 미국인은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하는 등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모스크 건립 추진 구역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 한 뉴욕시민은 “이 넓은 뉴욕시에서 왜 하필이면 그곳에 모스크를 세우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한 방글라데시 이민자는 “우리가 모스크에 가는 것은 기도를 하기 위해서다. 전세계에 무슬림이 10억명 이상인데 그들 모두가 테러리스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泰정부 “여성·노인·어린이 떠나라” 최후통첩

    泰정부 “여성·노인·어린이 떠나라” 최후통첩

    태국 정부와 반정부 시위대(UDD, 일명 레드셔츠)간 충돌이 사실상 내전으로 접어들었다. 총리가 무력강경진압 방침을 천명한 가운데 시위대의 야영지역이 ‘실탄 발사구역(live-fire zone)’으로 지정됐다. 방콕 시내는 총성과 폭발음, 화염으로 가득찬 전쟁터로 변했고 무력진압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태국 정부는 16일(현지시간) 오후 방콕 시내 라차프라송 거리를 점거하고 있는 시위대에 “월요일(17일) 오후 3시까지 여성과 어린이, 노인은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내고 17~18일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본격적인 무력진압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는 TV연설에서 “무력 진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태국 정부는 15일 라차프라송 거리 주변의 라차프라롭 지역을 ‘실탄 발사구역’으로 지정,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또 추가로 5개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로써 비상사태가 내려진 주는 모두 20개로 늘었다. 방콕 시내 학교의 개학은 1주일 연기됐다. 시위대도 격렬하게 저항 중이다. UDD 지도자인 나타웃 사이쿠아는 “아피싯 정권이 이미 내전을 시작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부가 폭력을 멈추고 진압대를 철수시킨다면 언제든지 협상에 나서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특히 그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이번 폭력사태를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며 유엔의 중재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태국 정부는 시위대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봉쇄를 풀 계획이 없으며, 어느 나라도 내부 문제에 유엔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AP통신은 병원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 동안 30명이 숨지고 시위대와 군경, 기자 등 232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군경과 시위대 양측 모두 소총과 수류탄, M79 유탄발사기 등을 사용하고 있어 앞으로도 사상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BBC는 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태국 군경이 물이 가득찬 대형풍선을 이용해 시위대를 방콕 외곽으로 밀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방콕 시내는 시위대가 군경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트럭과 타이어 등에 불을 지르면서 검은 연기로 가득 찼고, 시위대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비행하는 헬리콥터 굉음으로 주민들의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태국 정부는 5000여명의 시위대가 라차프라송 거리 일대에 모여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무력진압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영국, 일본에 이어 스위스 정부가 15일 방콕 주재 대사관을 잠정 폐쇄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들에게 태국 여행 자제령을 내렸고,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이 방콕에서 피신하도록 지시했다. 태국언론인협회(TJA)는 16일 시위 취재과정에서 내외신 기자들이 잇따라 부상하자 각국 취재진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5일 성명을 내고 “추가적인 인명손실과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아피싯 총리가 “이번 사태는 어디까지나 태국 내부의 문제로, 외국과 국제기구의 개입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반 총장에게 보내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일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마이클 잭슨’ 생존說, 국내상륙…믿고 싶은 루머?

    ‘마이클 잭슨’ 생존說, 국내상륙…믿고 싶은 루머?

    미국 온라인상에서 지난해 6월 사망한 팝가수 고(故) 마이클 잭슨의 생존설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네티즌들이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다.현재 미국 현지에서는 스페이스북, 유튜브 등 일부 온라인 사이트를 중심으로 故마이클 잭슨(Michael Joseph Jackson)이 여전히 살아있으며 화상 장애를 가진 33세 청년으로 변장해 방송에도 출연했다는 내용의 루머가 떠돌고 있다.이 같은 소식을 접한 고인의 국내 팬과 네티즌들은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루머이겠지만 그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립다. 천국에서 행복하길 바란다”며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나타냈다.반면 또 다른 네티즌들은 “전혀 신빙성이 없는 얘기다”, “미국인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것 같다”, “어이가 없다.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뜻을 내비췄다.한편 故마이클 잭슨은 1958년 생으로 지난 1971년 1집 앨범 ‘갓 투 비 데얼’(Got to BeThere)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뛰어난 노래, 춤 솜씨로 세계적인 팝스타로 군림하다 약물 과다복용에 의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장기영 기자 reporterja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다문화가정 출신 2년뒤 국회도 진출해야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는 다문화 가정 출신의 광역의원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비례대표로 공천한 서울시의원, 경기도 의원, 대전시의원 후보 등 3명이 당선권에 들어 있다. 필리핀 출신 자스민, 일본인 출신 이연화, 태국 출신 낫티타씨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이 선거 이벤트 차원의 공천을 넘어서 국내 체류 외국인 110만명을 대표해 실질적인 의정 활동을 해내길 기대한다. 우리도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입법 기능을 갖춰야 할 때다. 우리는 그동안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왔다. 이런 민족적 자긍심은 안팎의 시련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좁은 틀에 가두는 측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글로벌시대에 폐쇄주의나 국수주의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포용력은 물론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들 가운데 한국인으로 정착한 다문화 가정 출신들에게는 이런 노력들이 더욱 절실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하던 1992년 김창준씨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는 한국 교민 사회의 미국 주류 사회 편입에 불을 댕겼고, 이후 미국에서 정치적 위상을 떨친 한국계 미국인들이 줄을 이었다. 외국계 한국인 중에서도 ‘제2의 김창준 의원’이 탄생할 만한 시대적 환경이 조성됐다. 외국계 의원은 2년 전 18대 총선 때 실험대에 올랐으나 무위로 끝났다. 창조한국당이 필리핀 출신 헤르난데스 주디스 알레그레씨를 비례대표 후보로 냈지만 당선권 밖인 7번에 배정했을 뿐이다. 다문화 가정이 엄연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시스템은 미흡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은 그들이 입법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인도적 차원일 뿐 아니라 국익을 향상시키고 국격을 높이는 길이다. 2년 뒤 19대 총선에서는 국회의원도 나와야 한다.
  •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北군부에 영도력 과시…‘포스트 김정일’ 힘싣기?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北군부에 영도력 과시…‘포스트 김정일’ 힘싣기?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황이 점차 짙어져 가고 있다. 만일 북한의 소행이 맞다면, 북한은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북한은 과거 후계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군부에 후계자의 영도력을 보여주고자 할 때, 국제사회의 시선이 남한 사회로 집중됐던 시점에 대남 테러 공작을 벌였다. 남북관계 전문가들과 함께 과거 북한의 대남 도발 상황을 정리하고, 천안함 사건을 저질렀을 경우 그 배경을 분석해 봤다. 먼저 1976년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경우 북한 스스로 김 위원장의 기획하에 이뤄진 사건임을 시인했다. 북한 평양방송은 1992년 4월26일 김 위원장의 군사적 자질과 지도력을 선전하는 프로그램에서 “김정일 동지께서 비범한 군사적 지략으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에 맞는 묘수를 써 적들을 수세와 궁지로 몰아넣곤 한다.”며 그 예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들었다. ☞[사진] ‘편히 쉬소서’ 천안함 희생장병 영결식 이에 대해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9일 “북한이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벌인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면서 “미국인들부터 왜 자국민이 남한에 가서 북한 군에 의해 희생돼야 하느냐 하는 여론을 조성,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하려는 것과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이 당은 물론 군 또한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나름의 지도력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1983년 10월 버마 아웅산 폭파사건에 대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의 소행이 맞다면 남측 최고지도자인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편 폭파사건도 북한의 도발이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전 반쪽 올림픽과는 달리 미국과 소련 등 냉전 갈등 국가들이 모두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남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받자 북한은 한국의 위상을 깎고자 KAL기 폭파사고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북한은 서해상에서의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999년, 2002년에 발생한 1·2차 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이 대표적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1차 연평해전은 북측이 김대중 정부 초기 햇볕정책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기 위해서였고, 2차 연평해전은 1차 연평해전의 복수,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 및 4강 진출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한국이 주목받는 데 불만 등의 목적이 있었다.”면서 “이번 ‘대청해전’은 북측이 한때 대남유화정책을 펼쳤지만 이명박 정부의 무반응에 불만, 도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안함 침몰사건 또한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정은 업적 쌓기의 일환으로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것.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대표는 29일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최근 북한 고위 장교와의 통화 내용을 언급하며 “북한 군과 주민들 사이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이 신무기를 개발해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이야기가 돈다.”면서 “특히 김 위원장이 천안함 공격의 성공을 기뻐하며 정은의 공로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도 “북한이 내부적으로 주민들에게 김정은을 천안함 사건 주도 인물로 알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후계구축 과정에서의 선전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美 금융개혁법안 첫 출발 ‘삐걱’

    │워싱턴 김균미특파원│건강보험개혁에 이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금융개혁법안이 공화당의 저지로 상원에 상정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미 대통령과 민주당이 추진한 금융개혁법안의 일부 수정과 함께 처리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반면 공화당은 민주당으로부터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완화와 확대된 소비자보호국의 권한 축소 등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관철시킬 수 있는 여지를 확보했다. 미 상원이 26일(현지시간) 금융개혁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인지를 놓고 표결한 결과 찬성 57표, 반대 41표로 집계됐다. 민주당으로서는 금융개혁법안의 논의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60표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표결에 불참한 2명을 제외한 공화당 의원 39명 전원과 민주당 해리 리드 원내대표와 벤 넬슨(네브래스카)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가 막판에 반대로 입장을 바꾼 이유와 관련, 이르면 27일 늦어도 이번 주안에 재표결을 시도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파생상품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막대한 이익을 취한 골드만삭스 상원 청문회가 27일로 예정돼 있기 때문에 금융가에 대해 들끓고 있는 여론을 등에 업기 위해 시기를 조절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표결 직후 성명에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힌 뒤 “미국인들은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법안 내용이 완화되거나 저지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당이 아닌 국가를 먼저 생각할 것을 의원들에게 촉구했다. 한편 미치 맥도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우리 모두 월가의 느슨해진 나사를 죄는 금융개혁법안의 통과를 원하지만 건강보험개혁법과 같이 떠밀려 서둘러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은 이번 성과를 민주당의 독주 폐해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화당은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완화와 함께 강력한 권한이 부여된 소비자보호국의 역할을 축소하기 위해 민주당과 추가 협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민주당은 27일 사기 혐의로 피소된 골드만삭스에 대한 상원 청문회를 통해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가져온 대형 금융기관들의 수익만 좇는 도를 넘어선 위험한 투자행위가 드러나면 자신들의 금융개혁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상원 상설조사 소위원회 칼 레빈 위원장은 이날 골드만삭스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관련 파생상품을 판매하면서 가격하락에 투자해 37억달러를 벌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 언론들과 정치 분석가들은 민주당이 드라이브를 건 월가의 개혁방향과 필요성을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일부 수정을 통해 결국 금융개혁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관건은 민주·공화 양당이 어느 선에서 타협하느냐이다. kmkim@seoul.co.kr
  • 이중과세 불만 미국인 “차라리 시민권 포기”

    해외 거주 미국인에 대한 이중과세 등 미국 정부의 조세정책에 불만을 품고 시민권을 포기하는 미국인들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에만 502명의 해외 거주 미국인들이 시민권 또는 영주권을 포기했다. 전체 해외 거주 미국인이 520만명인 점에 비춰 극히 일부에 해당하지만 포기자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해 시민권을 포기한 미국인은 743명으로, 이는 2008년 235명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시민권 포기 절차를 진행 중인 미국인이 끊이지 않고 있어 앞으로 시민권 포기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해외 거주 미국인들이 모국의 시민권을 포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주된 이유는 소득세를 거주국가에 내면서 미 정부에도 내야 하는 이중과세 구조다. 스위스에 살고 있는 한 미국인 여성은 지난 10년간 고민한 끝에 시민권을 포기했다면서 “미 정부의 서비스를 거의 받지도 못하면서 세금을 내야 할 아이들의 미래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중과세에 대해 “매우 불공평한 제도”라고 덧붙였다. 테러 방지 차원에서 강화된 금융 서비스 규제도 해외 거주자들의 시민권 포기를 부추기고 있다. 국외 테러단체로부터의 자금 유입을 차단하고, 세금 포탈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금융 서비스 규제에 따라 해외 거주 미국인들의 본국 금융 업무가 어렵게 된 것이다. 미국의 일부 은행들은 해외 거주 고객이 본국 거주지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계좌를 폐쇄하고 있어 해외 거주자들의 불편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앤디 선드버그 재외 미국인 협회장은 “은행이 우리들을 ‘유해한 시민들’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BBC방송 국가별 선호도 여론조사

    BBC방송 국가별 선호도 여론조사

    세계 각국의 국민들 가운데 32%가 ‘한국이 세계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반면 ‘세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30%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국 BBC방송은 전 세계 2만 9977명을 대상으로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에 걸쳐 공동실시한 국가별 여론조사를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국에 대한 응답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유럽에서 부정적인 응답이 상당히 높게 나온 것이다. 독일(긍정 28%, 부정 53%), 스페인(긍정 22%, 부정 46%), 이탈리아(긍정 23%, 부정 46%), 프랑스(긍정 30%, 부정 45%) 등이다. 특히 스페인, 이탈리아에선 ‘나쁜 영향’ 답변이 ‘좋은 영향’ 답변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왔다. 반면 한반도 주변 4대 강대국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미국인들은 ‘좋은 영향’ 46%, ‘나쁜 영향’ 28%로 답했으며, 중국의 경우 57%와 20%, 일본은 36%와 9%, 러시아 28%와 23%였다. 세계에 가장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뽑힌 나라는 59%를 기록한 독일이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53%로 뒤를 이었다. 특히 독일은 캐나다와 함께 세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응답도 14%로 가장 적게 받았다. 이는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독일과 캐나다가 세계에서 가장 ‘미움을 덜 받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200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좋은 영향’(46%)이 ‘나쁜 영향’(34%)보다 높게 나왔다. BBC방송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에 따른 긍정적 이미지 상승 때문으로 분석했다. 2005년 조사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38%에 그쳤던 미국은 2007년에는 28%로 10% 포인트나 폭락했지만 지난해(35%)를 거치면서 신뢰를 적잖이 회복 중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좋은 영향’이 41%를 받아 ‘나쁜 영향’(38%)보다 약간 높았다. 세계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 나라로는 이란이 꼽혔다. 응답자들 중 56%는 세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국가로 이란을 꼽았다.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대답은 15%에 그쳤다.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이 각각 ‘나쁜 영향’ 면에서 51%, 50%, 48%로 뒤를 이었다. 북한에 대해 가장 부정적으로 응답한 나라는 일본으로 ‘나쁜 영향’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90%나 된 반면 ‘좋은 영향’이라고 답한 비율은 1%에 그쳤다. 한국에서도 북한에 대해 ‘나쁜 영향’ 응답이 90%나 됐지만 ‘좋은 영향’ 답변은 5%를 차지했다. 독일도 부정적 답변이 86%에 달했다. 북한과 ‘혈맹’ 관계인 중국에서도 ‘좋은 영향’ 응답은 24%, ‘나쁜 영향’ 응답은 40%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았다. 이번 조사는 국가 이름을 제시한 뒤 그 국가가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묻고 ▲주로 긍정적 ▲주로 부정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중립 ▲모름·해당없음 등으로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질문 자체는 단순해 보이지만 특정 국가에 대한 긍정적 평가 정도는 상대국 국민들의 자발적 동의에 호소하는 ‘소프트 파워’의 수준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LG 美대학농구 3DTV 마케팅

    LG 美대학농구 3DTV 마케팅

    LG전자가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대학농구 결승전을 3차원(3D) 입체영상으로 생중계하면서 5000만달러 이상의 광고 효과를 올렸다. LG전자는 5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루카스오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대학스포츠협회(NCAA) 농구 결승전에서 3D TV를 내세운 스포츠 마케팅을 펼쳤다고 6일 밝혔다. NCAA 농구는 미국 전역에서 자기 지역 대학팀을 응원하면서 ‘3월의 광란’으로 불릴 정도로 열광하는 토너먼트 농구경기이다. 미국에서는 슈퍼볼에 이어 두번째로 시청률이 높은 초대형 이벤트로 미국 인구의 3분의 1인 약 9000만명이 경기를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이날 결승전을 CBS 방송과 협력해 3D로 미 주요 도시 75개 아이맥스 영화관을 통해 생중계했다. 또한 경기장 안의 LG전자 홍보 부스를 설치, 경기장을 찾은 농구팬들에게 3D TV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경기장 인근 팬서비스 구역에서도 3D TV를 설치했다. LG전자는 이번 후원에 따라 5000만달러 이상의 광고 효과를 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3일 TV 하이라이트]

    [3일 TV 하이라이트]

    ●OBS 스페셜(OBS 오후 8시50분) 세계적으로 급감추세에 내몰린 두꺼비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1년 이상 밀착취재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토종두꺼비의 4계절 생태와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아울러 두꺼비의 이동경로 및 활동반경 등 두꺼비생태에 관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소개한다. ●과학카페(KBS1 오후 7시10분)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며 수많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폭 넓게 사고하는 방법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 인물,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의 위대함과 통합지성으로 과학발전을 이뤄내고 있는 현장과 그 속의 인물들을 소개함으로써 미래 과학은 학문 간의 벽을 뛰어넘는 열린 사고에 그 해답이 있음을 제시한다.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MBC 오후 9시45분) 이형섭의 죽음과 관련해 보배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장용을 비롯한 인물들은 걱정에 쌓인다. 우현이 보배를 좋아하기 때문에 쉽게 처리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인데, 우현의 아버지 황달수는 상관없다며 보배를 처리하라고 말한다. 한편 비비안이 보배의 얼굴을 합성시켜 일을 꾸몄다는 사실을 안 강타는 크게 화를 낸다. ●감성다큐 미지수(KBS2 오후 10시15분) ‘노비’라는 생소한 소재로 방영 첫 회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 방송 4회만에 시청률 30%를 넘은 드라마 ‘추노’. 3월 25일, 그 마지막회가 명대사와 명장면으로 시청자들의 호평 속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곽정환 감독의 사극에 대한 열정, 그가 드라마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들어본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20분) 지난 한달 동안 세상을 뒤흔들었던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사건’을 되짚어보면서 피의자 김길태를 집중분석하고, 아직도 풀리지 않는 사건의 미스터리를 추적해 본다. 또한, 연쇄성폭력 범죄와 그 진화 과정을 집중 분석함으로써 제2, 제3의 김길태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거상 김만덕(KBS1 오후 9시40분) 비밀리에 구질막에 던져진 만덕은 그곳의 비참한 현실에 놀란다. 병에 감염된 만덕은 생사를 오가게 되고 왜 묘향이 자신을 이 비참한 곳에 몰아넣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생명의 줄을 놓지 않는다. 한편 행방을 알 수 없는 만덕을 찾기 위해 애쓰던 동아는 옥에서 풀려나온 강유지에게 도움을 청한다. ●세계의 다큐멘터리(EBS 오후 4시) 3억 인구의 미국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은 46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의료비 때문에 파산 위기에 처한 사람도 수백만 명이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수익이 나빠지고,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미국인들의 건강보험은 더 큰 위기를 맞이했다. 미국 건강보험 제도의 문제점을 알아본다.
  • LG전자, 美 휴대폰 고객만족도 3회 연속 1위

    LG전자, 美 휴대폰 고객만족도 3회 연속 1위

    LG전자는 미국 최고 권위의 시장조사기관 제이디 파워社는 ‘2010 상반기 일반휴대폰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3회 연속 1위를 차지했다고 2일 밝혔다.제이디 파워社는 ◆쉬운 사용성(Ease of Operation: 30%) ◆디자인(Physical Design: 30%) ◆기능(Handset Features: 20%) ◆배터리성능(Battery Function: 20%) 등 총 4개 항목의 고객만족도를 종합 평가해 발표했다.LG전자는 유일하게 이 항목평가 모두에서 5점 만점을 받으며 완벽한 1위를 차지했다. 총점은 729점으로 2위 산요(712점)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특히 LG전자는 지난해 상, 하반기에 이어 3회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미국 소비자들이 선택한 최고의 브랜드임을 입증했다. 지난 2003, 2005년에 이은 통산 5번째 1위다.제이디 파워社는 2년 이상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13,590명의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 2008년까지는 연 1회, 지난해부터는 연 2회(4월/10월) 조사결과를 발표해오고 있다.LG전자 MC사업본부 북미사업부장 황경주 상무는, “휴대폰 고객만족도는 현재 사용하는 브랜드 충성도의 지표이며 향후 재구매로 직접 연결되는 중요한 척도”라며, “LG전자는 끊임 없는 고객연구를 통한 제품개발 및 마케팅을 통해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대폰 브랜드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LG전자 서울신문NTN 차정석 기자 cj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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