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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리 작년 美영주권 취득

    박세리(아스트라)가 지난해 초 미국 영주권을 받은 것으로알려졌다. 13일 박세리 가족들에 따르면 박세리는 지난 99년 초 미국이민국에 영주권 신청을 내 1년만인 지난해 초 미국 프로스포츠에 진출한 한국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영주권을 받았다. 영주권을 받은 이유는 비자와 세금 문제 때문으로 미국내프로스포츠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선수들은 취업비자를 지니고 있어 매년 갱신해야 하는 불편이 뒷따랐고영주권자에 비해 세금과 기타 경비도 더 많이 부담해 왔다. 비영주권자의 경우 상금과 기타 소득의 30%를 세금으로 내야 하나 영주권자는 20∼25%만 내도 되고 숙박 교통 등 투어경비에 대해서도 50%가량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스웨덴 출신의 애니카 소렌스탐 역시 영주권을받은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영주권은 시민권과 달리 한국국적을 유지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피닉스(미 애리조나주) 정가연기자 what@sportsseoul.com
  • 새로나온 외국소설들

    국내소설들의 동한기라고 부를 만한 이때 볼 만한 외국소설들이 여럿번역소개되고 있다.본격소설과 역사소설로 나눠 이들을 좀 더 자세히살펴본다. [본격소설] 우리와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은 소설 읽기의 거대한 원천 중의 하나이다.좋은 외국소설은 더 나아가 삶의 울긋불긋한 다양함에다 튼튼한 줄을 매단 뒤 보편성의 드높은 허공으로 독자들을 활짝 솟구쳐 올려주는 일급 그네와 같다. ‘축복받은 집’(동아일보사)은 줌파 라히리라는 인도계 미국 여성작가의 소설집으로 2000년도 퓰리처상 수상작.1967년생 작가의 처녀작인 이 소설집의 아홉 단편들은 상당수가 1·2세대 인도계 미국이민자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이야기의 폭은 좁지만 뉴스위크와 뉴욕타임스서평처럼 절제된 언어,정교한 플롯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국내작가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 틀림없다. 이 소설집과는 달리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의 ‘마법의 숙제’(문학동네)는 말많은 화자가 앞에 나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나 매력적인상상과 재치를 펼치는 적절한 장치로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대중적인기가 높은 작가의 이 베스트셀러 소설은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아이가 되는 동화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아이 시절에 아이답게 사는 것의 중요함과 함께 아이와 어른이 서로에게 품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차없이 적시해 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미지의 섬’(큰나무)은 수상직전에 쓴 짤막한 작품으로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꿈을 너무 쉽게 단념해 버리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우화로읽힌다. [역사소설] 진행과 결말의 해답이 이미 알려진 과거에 무단편승하는역사소설,그것도 외국의 역사소설에서 문학성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존 상식을 비틀어 다소 허황하더라도 새로운 상상력의 틈새를 벌리려는 역사소설의 최근 추세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의미 이전에 괜찮은 역사소설 읽기의 ‘문학성’도 적지 않다. 프랑스 작가 제랄드 메사디에의 ‘신이 된 남자’(책세상·7권)는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1988년 작으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예수의동정녀 탄생과 십자가형 죽음에 대한이견을 내세우고 있는데 예수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신성 대신 인간으로서 사실적면모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같은 프랑스의 쥘리에트 벤조니가 쓴 ‘왕비의 침실’(영림카디널·3권)은 프랑스 루이13세의 아들로 알려진 태양왕 루이14세의 탄생의비밀을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미국 작가 잭 단의 ‘대성당의 기억’(영림카디널·2권)은 이탈리아르네상스의 정화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숨겨진 이야기라는 부제가붙어 있다.그러나 이설(異說)보다는 이 거인의 사랑과 도전을 보다상세하게 그린다. ‘이단자 아케나톤’(홍익출판사)은 프랑스 작가 알랭 다른의 99년작으로 기원전 14세기의 이집트 파라오에 관한 소설이다. 소년왕 투탕카멘의 아버지라는 이 왕은 노예해방 등 개혁을 시도하다실패, 비극적 종말을 맞은 뒤 이집트 역사에서도 이단자로 찍힌 인물이다. 한편 ‘티베트의 고독’(아라크네·2권)은 티베트족 출신의 작가 알라이가 썼는데 지난 세기 티베트의 중국 복속 시기를 다소 환상적인인물과 사건 설정으로 이야기해준다.‘멀리 가는 길’(이끌리오)은중국 명나라 시절 과거길에 나선 형제의 이야기인데 미국 작가 말콤보세가 썼다.청소년 성장소설로 94년도 미도서관협회의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 뽑힌 수작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쿠바소년 엘리안 “돌아왔어요”

    [워싱턴·마이애미·아바나(쿠바)외신종합]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군(6)이 7개월간의 미국체류를 끝내고 28일 쿠바로 귀국했다. 엘리안군은 이날 미국 연방대법원이 그의 귀국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친척들의 상고를 기각한 지 40여분만인 오후 4시 43분(현지시각) 워싱턴 근교의 버지니아주 댈러스 국제공항에서 아버지 후안 곤살레스씨의 손을 잡은 채 전세 비행기에 올랐다. 엘리안군은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밀항선을 탔으나 플로리다주 앞바다에서 좌초돼 어머니를 잃고 타이어 튜브에 매달린 채 이틀동안 표류하다 추수감사절인 지난해 11월25일 극적으로 구조됐다. ◆귀국=곤살레스 부자의 귀국 길에는 엘리안군의 새 엄마와 이복동생,엘리안군의 무료함을 달래 주기 위해 쿠바에서 데려온 그의 친구들이 동행.전세기는 3시간만에 환영군중들이 엘리안군을 ‘소년 영웅’으로 부르며 열광하는가운데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다. 엘리안군이 부친의 팔에 안겨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자 마중나온 800여명의쿠바 어린이들은 “엘리안,엘리안”을 외치며 열렬히 환영.군악대가 쿠바 국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도착한 엘리안군 일행은 자동차에 분승,친구,친척들과의 재회를 위해 모처로 출발.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은 이날 미국을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인듯 공항환영행사에 불참. ◆양국 해빙 계기=엘리안군이 쿠바로 돌아가는 날 빌 클린턴대통령이 쿠바에 대한 식량 및 의약품 수출을 허용하는 법안에 서명할 뜻을 피력한 것과 관련,일각에서는 미·쿠바관계의 해빙을 진단하는 분위기.엘리안 문제가 문제가 불거진 직후 쿠바에서는 연일 수십만명의 쿠바인들이 모여 엘리안 송환을 요구했다.엘리안군의 귀환은 예상되던 외교적 갈등을 가라앉히면서 양국 관계 개선의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소식통들은 분석. ◆체류비용=미법무부는 엘리안군의 보호권을 둘러싸고 지난 7개월 동안 벌어진 법정소송에서 총 182만달러(약 20억원)의 비용을 사용했다고 밝혔다.법무부는 이날 대법원이 소년의 쿠바 귀국을 허용키로 한 직후 공개한 회계자료에서 지난 11일 현재까지 이 사건에 소요된 비용은 182만6,000달러였다고공개. 가장 큰 단일부문 비용은 이민귀화국(INS)관계자,법무부 보안관 및 변호사등이 워싱턴과 마이애미 및 쿠바를 오가며 쓴 여행경비로 총 78만 6,000 달러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INS 및 법무부 보안관들의 초과근무 수당으로 지급된 61만 8,000달러였다.4월 22일 엘리안을 친아버지에게 데려다 주기 위해마이애미의 친척집을 급습했던 이른바 ‘재결합 작전’에는 22만9,686 달러가 소요됐다. ◆쿠바정부 자제=쿠바 정부는 엘리안군의 송환 소식이 알려진 직후 전국민에게 냉정과 침착을 잃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해줄 것을 당부.쿠바 정부는 이날 국영 TV방송을 통해 내보낸 짤막한 성명을 통해 미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내용을 전한 뒤 “모든 쿠바인들이 최대한의 냉정과 위엄,침착성을 유지해달라”고 당부. ◆송환판결=앞서 미 대법원은 28일 엘리안의 쿠바 귀국을 봉쇄해 달라는 엘리안의 친지들의 상고를 기각.마이애미 거주 친척들은 엘리안의 귀국을 허용한 항소 법원의 판결이 부당하다며 지난 26일 대법원에 상고,대법원 심리가열릴 때까지 엘리안의 미국 체류를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엘리안사건 일지. 1999.11.22 엘리안,어머니와 쿠바서 출발. 11.25 바다에서 구조. 11.27 아버지,엘리안 쿠바 귀환 요구. 12.10 미국 친척들,엘리안에 대한 난민지위 요구. 2000.1.5 미국이민귀화국(INS), 1월14일까지 쿠바 귀환 결정. 1.19 미국 친척들,INS결정에 불복 소송 제기. 3.21 미국 법원,소송 기각. 4.6 아버지 곤살레스,미국 도착. 4.22 INS,엘리안 강제 구인.부자상봉. 6.23 미국 항소법원,쿠바귀환 판결 재확인. 6.26 친척들,대법원에 상고. 6.28 대법원,상고 기각,엘리안 쿠바로 귀환.
  • [외언내언] “유 댐 칭크”

    물론 그런 의도는 없었겠지만,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발표한 진화론은그의 학문적 업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인류의 오만과 편견을 확산시키는 불행한 결과를 불러들였다.누구나 알듯 진화론은 19세기 중엽 찰스 다윈이 생물계는 적자생존(適者生存)·약육강식(弱肉强食) 등의 방법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한 학설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발표될 당시 구미(歐美) 여러 나라들은 바야흐로 산업혁명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자본주의경제를 무르익혀서,터질 듯 팽창해진 국력을밖으로 뻗쳐나가던 때였다.영국 등 힘센 나라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자유방임적 경제주의와 식민지 강점(强占)의 경쟁적 제국주의가 서로 손을잡고 세기를 풍미했던 때 등장한 진화론은 이들 나라의 확장정책에 더 없이좋은 명분과 당위성을 제공했던 것이다.‘인간도 생물이니 약육강식은 당연하고 말고…’였다. 이와 함께 아리안,슬라브,앵글로색슨족(族)들은 저마다 환경에 잘 적응해서강한 자로 잘 살아가는 적자(適者)로서의 우위를 주장하며 흑인이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론을 고착시켜 나갔던 것이다. 지난달 27일 아침 뉴욕 북서부 빙엄턴 뉴욕주립대 기숙사 앞에서 일어난 집단폭행사건은 이처럼 뿌리깊은 아시아계 인종차별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이날 레슬링부 백인학생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존 리(19) 등 한인학생 4명에게 라이터 등을 집어던지며 “유 댐 칭크(You damn Chink·빌어먹을 중국놈)”라고 욕설을 퍼부었다.백인학생들은 항의하는 한인학생들에게 뭇매를가해 존 리군은 두개골이 깨지고 뇌출혈을 일으켰으며 다른 학생들도 타박상을 입은 것으로 보도됐다.칭크라는 말은 중국인을 경멸하는 것이지만 아시아계의 미국이민이 늘면서 일반적으로 아시아인을 심하게 욕하는 말로도 널리쓰인다는 것이다.이 사건이 최근 뒤늦게 알려지자 이 학교 아시아계 학생들은 계속 시위를 벌였고 주민들도 동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인종차별국가의 오명을 씻어 없애야 한다.공존의식으로 용해돼야 한다.찰스 다윈도 생물계가 약육강식만이 아닌,상부상조에 의해 더불어 번창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후세학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여러 인종,여러 민족의 이민으로 우뚝선 나라다.얼마전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상원 청문회에서 미국 이민자들을 늘려야 고임금 인플레를 막고 경제가 산다고 주장했다.플로리다주의 경제가 언제나 활기를 잃지 않는 것도 쿠바난민들의 유입 때문인 것으로 이미 오래전경제학자 레스터 더로에 의해 분석됐다.왜곡된 다윈주의는 미국에서 사라져야 한다.더욱이 미국 백인 대부분은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할 기독교인들 아닌가. 禹弘濟 논설주간hjw@
  • 쿠바, 美추방 외교관 송환 거부

    [아바나 AP 연합] 쿠바는 19일 미국이 워싱턴 소재 쿠바 외교관 1명의 추방명령을 내린데 대해 해당 외교관의 본국소환을 거부하겠다며 정면대결 태세를 밝혔다. 쿠바는 이날 쿠바 동부에서 열린 엘리안군 송환요구 군중집회에서 페르디난도 레미레스 워싱턴 소재 쿠바 이익대표부 대표가 낭독한 편지를 통해 미국이 이민국 마이애미 지부 고위관리의 간첩사건을 엘리안군 송환을 막는데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편지는 또 “워싱턴에 쿠바 이익대표부가 설치된 22년간 어떠한 종류의간첩행위를 한 일이 없으며 미국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의 제임스 폴리 대변인은 미 정부가 미국 주재 쿠바 이익대표부직무대행을 국무부로 불러 외교관 신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쿠바 이익 대표부 소속 외교관 1명에 대해 7일 안에 철수하도록 요구했다고 19일 밝혔다.
  • “노동력 부족 인플레 압력 美 이민정책 재검토 필요”

    [워싱턴 AFP 연합]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인플레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미국내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26일 밝혔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재임용에 따른 인사청문회에서 노동시장의 긴장 요소가 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그는 가용노동자를늘리는 방법 중 하나는 특정지역 또는 전국적으로 외국인노동자를 많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현재의 이민정책은 재검토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이민자들이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미국 이민을 희망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한 것이라면서 경험에 따르면 미국이민 희망자는 구직자이거나 성공의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청문회 전부터 노동력 부족은 임금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인플레를 불러오는 한 요인이 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던 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청문회에서도 미국이 최장의 호황을 이어나가려면인플레 방지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JP 연일 ‘합당분위기 띄우기’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가 연이틀 자민련에 국민회의와의 합당을 ‘유도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나섰다. 김총리는 1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전문 케이블TV인 Q채널 ‘김기평의 토크와 토크’에 출연,“당(자민련)에서 조금 섭섭하더라도 국가적 견지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현 시점에서 자민련이 섭섭해할 결정은 합당을 의미한다.지난달 28일 의총에서 합당 반대발언이 찬성보다 15대 2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김총리는 30일 기독언론인과의 조찬모임에서는 “당에 연말까지 합당과 관련한 당론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이처럼 김총리가 이틀에 걸쳐합당과 관련한 속마음을 공개적으로 전달함에 따라 합당에 반대하는 자민련의원들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김총리는 토크쇼에서 박정희(朴正熙)대통령 당시 월남전 파병과정도 소개했다.정계를 떠나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김총리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미 상원 도트 외교위원장으로부터 “한국이 참전하면 미국으로서는 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듣고 박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건의했다고 소개했다.우리는 월남파병의 대가로 합법적 미국이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도운기자 dawn@
  • 청화대 수석비서관 내정자 프로필

    ◎문희상 정무/80년 동교동 합류… 연청 중앙회장 역임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로 통한다.원만한 성품에 친화력이 높고,정국상황에 대한 분석력이 탁월하다.80년 서울의 봄때 동교동에 합류한뒤 당 외곽조직인 연청 중앙회장을 3차례 역임,김당선자의 신임이 두텁다.95년 민주당 분당때 이기택 전 민주당총재의 비서실장으로서 잔류를 심각히 검토,박지원 공보수석내정자 등과 함께 ‘돌아올 수 없는 동교동계 3인방’으로 꼽히며 소신과 의리를 평가받기도 했다.“여야 협상결과를 뒤집는 과거의 정무수석은 되지 않겠다.소리내지 않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에 충실하겠다”는 포부다.부인 김양수씨(52)와 1남2녀. ◎임동원 외교안보/육군소장출신… 통일·외교·안보 요직 섭렵 육군소장출신으로 호주대사,외교안보연구원장,통일원차관 등 요직을 섭렵한 통일·외교·안보분야의 3박자 전문가. 95년부터 아태평화재단에 몸담으면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3단계 통일론을 구체화하는 데 일조했다.90년 1차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 산파역을 맡았던 대화론자.회담대표단의 일원이었던 자민련 이동복 의원과는 노태우 대통령의 훈령건으로 맞섰던 비화도 있다. 군인체취 보다는 외교관스타일의 부드러운 매너와 포용력있는 성품을 갖췄다는 평.부인 양창균 여사(59)와 3남. ◎조규향 사회복지/교육부차관 지낸 정통 교육행정관료 행시 4회 출신으로 30여년 동안 줄곧 교육계에 몸을 담은 정통 교육행정관료이다. 차분한 성격의 전형적인 선비형. 친화력과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교부 교직국장으로 재직할 때 행정직의 학교장 진출을 막는 등 교직 사회의 안정에 기여하기도. 문교부에서 교육부로 명칭이 바뀐 뒤 2년9개월 동안차관을 지냈다.78년과 80년 두차례에 걸쳐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취미는 바둑과 테니스. 부인 이선희씨(53)와 3녀. ◎박지원 공보/4년간 제1야당의 ‘입’… 최장수 대변인 김대중 당선자의 의중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달하는 ‘측근중의 측근’으로 꼽힌다.순발력과 성실성,현실정치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이다.민주당과국민회의를 거치면서 내리 4년동안 제1야당의 ‘입’을 맡아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갖고 있다.미국이민 생활중 사업으로 자수성가,뉴욕한인회장과 미주한인총연합회장 등을 지내는 등 활동력도 왕성하다.그는 10일 “차기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열정을 가감 첨삭없이 전달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부인 이선자씨(55)와 사이에 2녀.
  • 미,시민권 취득자격 심사강화/이민국 “FBI 전과 조회후 부여”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이민귀화국(INS)은 6일부터 시민권 신청자들에 대한 전과조회를 강화,연방수사국(FBI)의 조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시민권 부여를 유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같은 조치는 FBI의 신원조회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INS가 시민권을 부여했다는 비난에 이어 취해진 것인데 INS는 지금까지 시민권 신청자들에 대한 심사기준을 낮춰 전과자들에게도 시민권을 남발했다는 공화당의 비난을 받아왔으며 INS도 이를 일부 시인했다. INS의 이번 조치로 일부 시민권 신청자들의 시민권 취득기간이 지금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연방법에 따르면 신규 시민은 『도덕적 품성』을 갖춰야 하며 『범죄 기록』이 없어야 하는데 INS 관리들과 의원들의 추산에 따르면 수백명에서 많게는 10만명까지 범법자들이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중견작가 송상옥씨 신작 「들소사냥」 펴내

    ◎정치지도자 암살음모 국내무대 대입/「아메리칸 드림」 꿈꾸던 평범한 상점주인/강도에 아내·딸 잃고 암살제의 받지만… 『외국에는 드골이나 더 나아가 클린턴까지 정치지도자의 암살음모를 둘러싼 소설이 얼마든지 나와 있지요.하지만 무대를 국내로 옮기고보면 쓰기가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닙니다』 중견작가 송상옥씨(58)가 국내 야당 대통령후보 암살기도를 다룬 신작장편 「들소사냥」을 세계사에서 펴냈다.들소는 거침없이 돌진하는 야당지도자의 별칭.따라서 들소사냥이란 그의 제거 작전명인 셈이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김용국이라는 재미교포로 나중에 야당지도자 암살임무를 떠맡는다.하지만 그는 가상 정치소설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전문킬러가 아니다.꿈의 나라 미국에 이민와 마켓을 열고 착실히 살아보려 했지만 미국강도의 총에 아내와 다섯살난 딸을 잃고는 복수심에 범인을 쏴죽여 그만 전과자가 돼버린,이민사의 억울한 희생자에 가깝다.그런 이가 다음해 대선에서 야당지도자의 당선을 우려한 한 재계의 실력자에게 거액의 암살커미션을 제의받고는 귀국,정보수집과 계획수립에 나선다.10개월에 걸친 준비과정동안 김용국의 의식변화를 보여주며 어두운 이민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작품. 『이 소설은 가상 정치 시나리오가 아닙니다.특정인물을 크게 염두에 두지도 않았으며 권력자라는 소재만 빌려 소설적 상황을 창작한 것이지요』 따라서 치밀한 얼개나 날렵한 추리보다는 진득한 인물묘사가 앞선다.김용국이 마지막 순간 암살을 포기하고 우연히 만난 옛 고향여자에게 돌아가는 대목은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의 소중함을 암시하고 있다. 13년간 미국이민을 체험한 송씨는 『내년 봄쯤 LA폭동소재의 작품을 펴내는 등 앞으로도 이민생활의 고달픔을 전하는 글쓰기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 GATT로 부터 WTO에/이케다 미치코(해외신간 안내)

    서울신문은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사계의 전문가 및 석학들이 펴낸 해외신간 소개를 월 2회씩 싣기로 했습니다. 매월 첫번째와 세번째 월요일자에 국제정치·첨단과학기술·교육·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간되는 화제의 신간들을 서평을 곁들여 소개합니다.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사무국 경제분석관 경력을 갖고 있는 저자 이케다 미치코(지전미지자)는 GATT로부터 WTO(세계무역기구)로 국제통상체제가 발전돼 가는 과정을 비교적 쉽게 펼쳐 보인다.그리고 일본이 이들 체제와 어떻게 관련을 맺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국제통상체제 발전과 일의 연관 분석 GATT는 전후 국제통상체제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GATT의 다국간 교섭에 의해 주요국들의 무역자유화가 진행돼 국제무역을 증대시켜 왔다.그중에서도 일본은 GATT를 중심으로 하는 전후통상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일본의 고도성장은 자유로운 국제무역체제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 일본이 자유로운 국제무역체제의 수혜자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면에는 일본이 GATT 가맹후에도 「무차별을 원칙으로 하는 GATT」로부터 장기간 차별대우를 받아 온 점도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WTO체제가 출범한 현재의 상황이 GATT가 출범했던 50년전의 상황과 비슷하게 혼돈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그러나 보복과 살육을 되풀이해 온 인류 역사와는 정반대로 WTO체제하에서 다자간 협의에 의해 이해의 저변을 넓혀감으로써 21세기에도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치쿠마(축마)서방 출판,6백80엔. ◎혁명과 전쟁/스티븐 월트/「정치적 변혁」 국제관계 이론 적용 규명 정치적 변혁 가운데 혁명과 전쟁은 가장 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그러나 양자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규명작업은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혁명은 일반적으로 그 혁명의 원인 혹은 그 국내적 영향에 관해서만 초점이 맞추어졌을 뿐 국제적인 측면에서는 간과돼 왔기 때문이다. 시카고대학 정치학교수인 스티븐 월트(Stephen Walt)는 혁명과 전쟁의연계를 시도하고 있다.즉 혁명이 국가들간의 안보경쟁을 일으키는 이유와,따라서 전쟁의 위협을 극도로 높이는 이유에 대한 규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이를 위해 프랑스,러시아,이란,아메리카,멕시코,터키,중국혁명 등 근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적 혁명들에 대해 이론적이고 경험적인 문헌연구와 몇가지 중요한 국제관계이론의 적용 등을 통하여 혁명의 국제적 파장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저자는 혁명국과 주변국간에 대립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혁명에 관한 정확한 정보와 인식의 결여에서 파생되는 과잉반응 때문으로 결론짓고 있다. 50년말 중국군의 한국전 개입도 중국공산당이 미군의 압록강 진주를 49년의 중국혁명에 대한 붕괴전략의 일환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며 미국이 이같은 중국공산당의 두려움을 파악하고 중국 공격의사가 없었음을 확신시켰더라면 중국군의 개입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원제는 「Revolution and War」,코넬대출판부(Cornell University Press) 발간,35달러. ◎반이민 논거/로이 벡/이민이 미국에 끼칠수 있는 손해·대가 미국으로의 이민규제가 왜 더욱 강화돼야 하는가를 논리적으로 주장한 책이 출간돼 세계각국의 미국이민 희망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문제의 책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발간되는 계간지 「사회계약」의 편집자 로이 벡이 「반이민 논거」(The Case Against Immigration)라는 표제룰 붙여 출판한 것으로 이민이 미국중산층의 위기를 자아내고 있다고까지 주장하는 등 반이민 분위기를 한껏 부추기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민은 실질 임금을 하락시켜 미국내 지역공동체와 가족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이민을 억제하면 노동력의 가치가 높아져 임금도 상승,노동자들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논지를 펴고있다.베크는 또한 이민은 첨단기술을 포함,경제의 모든 부문에 해를 가져다줄 뿐이라면서 이민이 미국사회에 끼칠 수 있는 상상가능한 모든 손해와 대가를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해 조지 메이슨 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이민이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갭을 더 벌어지게 했다는 베커의 논리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그는 그러나 마치 이민만이 노동자들의 수입을 감소시킨 유일한 요인인냥 내세우는 베커식 논리는 직업여성의 증가,기술진보,외국상품의 수입,과거 보호받던 부문에 대한 대외개방 등 노동자들의 임금을 하락시킨 많은 요인들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튼 앤 컴퍼니사 출판,24달러.
  • 미 기자 「한국전 실종포로 추적」 책 내

    ◎“79년 배추농장서 미군포로 10명 폭격”/89년 허종 주미 북대표 “살아있다” 발언 녹음/80년초 평양전쟁박물관에 미군사체 전시 『한국전 실종 미군포로는 아직 살아 있다』 다음달 10일부터 북한에서 첫 실시될 한국전 미군유해발굴을 위한 미·북 공동조사위원회 가동을 앞두고 북한내 참전미군의 생존설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각종 목격담및 관련 국가들의 문서들을 종합해 이같은 결론을 내린 책이 최근 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로 전쟁 현장의 특파원으로 활약해온 미언론인 로렌스 졸리던이 집필한 「마지막 생존자」(Last Seen Alive,잉크슬링거 출판사,3백60쪽)는 「한국전 실종포로의 추적」이라는 부제에 그동안 실종미군에 관한 모든 자료및 목격담등을 집대성한 것으로 8천1백명 실종자중 소수의 생존은 확실하며 미정부가 아직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이 책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 소개한다. ▲루마니아인 목격담=1979년 가을건축설계사로 평양에 수개월째 체류하고 있던 세르반 오프리카(85년 미국이민,현재 코넥티컷 거주)가 일요일날 3시간쯤 떨어진 곳에 소풍을 갔다가 인근 배추농장에서 일하는 50여명의 근로자를 보았는데 그 가운데 10여명은 서양사람이었으며 그들은 미군포로라는 말을 들었다. ▲미군사체 전시=오프리카가 80년초 부인과 함께 평양교외의 전쟁박물관을 구경갔는데 각종 미군장비들과 함께 미군 신체의 일부들도 진열해놓아 깜짝 놀랐다.북한인들에게 미군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여러개의 손발과 팔다리 머리들을 알코올에 넣어 전시하고 있었다. ▲벽동 정치범수용소=56년8월 DMZ순찰중 북한군들에게 납치당한 월터 엔봄(시애틀 거주)은 압록강가의 이 수용소에 15∼20명의 미군과 영국군이 있었으며 그들은 포로송환 당시 보내지지 않았다면서 모두 본국에 돌아갈 경우 군당국에 의해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윌든 이스트 상병의 편지=미2사단 38연대 소속으로 50년9월 실종 이후 42년만인 92년7월 아칸사스 스파드라의 고향집으로 49년 입대당시의 사진이 붙은 카드를 보내왔으며 한달후에는 상원 전쟁포로 및 실종자 소위의 공동의장인 존 케리 의원앞으로 편지를 보내왔다.그후에는 소식이 없었으며 FBI와 군당국은 그가 북한내 노동캠프에서 비밀리에 인편으로 외부로 보낸 것으로 결론지었다. ▲소련병원의 암환자=78년말 시베리아 마가단의 수스만 부락에 있는 소련정치범수용소 병원의사 바레리즈 파블렌코는 필립 만드라라는 48세의 미해병대 출신 환자를 진찰했다.그는 후두암 말기로 한달쯤 있다가 죽었는데 자신이 한국전에서 포로로 잡힌후 소련수용소로 오게된 과정들을 얘기했다. ▲북한대사의 시인=한국전 참전후 실종된 형의 소식을 수십년째 추적해오고 있던 밥 듀마(코넥티컷 거주)는 89년 뉴욕에 북한대표부가 개설되자 몇주동안의 시도끝에 허종 대사를 만날수 있었다.그는 『북한에 생존 미군이 있다』고 확인해주었으며 듀마는 녹음테이프까지 갖고 있다. ▲러시아가 보내온 510리스트=92년 미국과 공동조사를 벌였던 러시아는 소련이 50∼51년 사이에 심문했던 5백10명의 미군포로 명단을 미국측에 전달했다.그러나 러시아측은 그들의 생사여부와 명단의 출처등을 밝히지 않고 있다.〈워싱턴=나윤도 특파원〉
  • 「합법이민 축소」 부결 확실시/미 이민법 개정 어떻게 되나

    ◎“가족초청금지는 「상봉」막는 악법” 여론/「불법이민 단속법안」만 분리 처리될듯 미국에서 지난 20년대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합법이민 규모를 줄이는 이민개정법안이 앞으로 10여일 후면 최종법제화 여부를 가린다. 미의회의 이민축소 움직임은 지난해 6월 「연 80만명에 달하는 합법이민 수를 3분의1 가량 축소한다」는 법안상정 뉴스와 함께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특히 재미교포 사회의 비상한 관심사항이었던 이 법안은 상정 당시의 공화당 개혁열기,보수회귀 강풍 등에 편승해 순식간에 법안통과 절차를 끝내버릴 기세였다.그러나 실제 하원안은 지난해 11월에야 법사위 통과와 함께 올 3월 중순의 본회의 상정이 결정되었다.상원안은 지난주에 법사위에 회부,본회의 상정 여부를 다루고 있는데 본격심의는 늦었으나 2주일 내에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중요한 점은 심의 속도가 아니라 「합법이민 축소」안이 법제화에 실패할 조짐이 뜻밖에 강하게 나타나 교포들의 「기대」가 고조되고 있는 것.상·하원 안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모두 이민의 대종인 가족·친척초청과 관련,직계 핵가족으로 범위를 좁혀 이제까지의 「가족연줄을 통한 연쇄이민」을 차단하고 있어 이민자로부터 「가족상봉」을 막는 악법이라고 비난받았다.즉 시민권·영주권자의 배우자및 21세 미만 미혼자녀는 지금보다 더 쉽게 미국으로 올 수 있지만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의 형제,성년의 기혼자녀들은 미국이민행이 어렵게 됐다.정착자의 부모도 자식들의 과반수가 미국에 합법이민으로 들어와 있어야 자식과 함께 미국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전인구의 15%가 외국태생의 이민1세로 채워진 1920년의 이민제한 한풍에 버금가는 기세로 살벌하게 진행되던 지난해의 합법이민 축소바람이 막판에 기운을 잃은 것은 「이민」에 대한 미국의 어쩔 수 없는 애정이라 할 수 있다.80년 이후의 총이민 규모가 1천만명을 넘어서면서 미국 바깥에서 태어난 미국인이 2천3백만명으로 전인구비가 1940년 이후 최고치인 8.5%에 달하자 70년 만에 합법이민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법안이 연 35만명에 달하는 불법이민자를 강력단속하자는 법안과 함께 나란히 의회에 상정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이 법안 발의자들인 앨런 심슨 상원의원(공),라마 스미스 하원의원(공)은 4∼5개월 후부터 단독법안으론 합법이민축소안의 통과가 어렵다는 감을 잡고 통과가 1백% 확실한 불법이민단속안에 이를 끼워넣어 단일안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상원 법사위 회부 직전에 다름아닌 같은 공화당의원들로부터 합법,불법안을 분리해서 표결에 부쳐야 된다는 수정안이 제기됐고 법사위 전체 분위기가 그쪽으로 기우는 양상이다.분리표결 수정안이 법사위나 본회의에서 채택되면 합법이민 축소안은 부결될게 확실시된다.그러면 합법이민 수는 55만명으로 주는 대신 80만명 안팎을 유지할 것이며 평균 5년 넘게 미국행을 기다려온 2백만명의 연쇄이민 대기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 위장결혼(외언내언)

    고대의 결혼풍습에 약탈혼이라는 게 있다.신부가 모자라던 시절 신랑이 친구와 작당하여 이웃마을 처녀를 납치해오는 방법이다.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양가댁 과수를 홑이불에 싸서 둘러메고 달아나던 보쌈풍습이 있었다.개가가 여의치 않던 시절,「과부 업어가기」는 수절의 인습을 허무는 인간다움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요즘엔 어떤 목적을 위해 가짜로 결혼식을 올리는 위장결혼이라는 게 생겨났다.합법적 입국이나 취업을 위해 엉뚱하게 악용된 위장결혼은 60∼70년대 미국이민이나 일본취업용으로 성행했었다.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는 교포와 서류상 부부가 돼 출국한 뒤 현지에서 이혼절차를 밟는다.돈벌이를 위해 일본인과 위장결혼,일본에 입국했다가 이혼을 안해주고 매달 돈만 울거내는 사기꾼에게 시달리는 여성도 많았다. 농촌 총각이 신부기근으로 장가를 못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었을 때 중국 교포처녀와 우리 농촌 총각의 짝짓기가 성행했었다.외국산 신부를 수입하기보다는 같은 동포 사이의 짝짓기가 훨씬 자연스러운 결합이 아닌가.몇년전까지만 해도 현지 교민회와 농협등 국내단체의 주선으로 「맞선여행」이 성황을 이루었고 그렇게 맺어진 부부가 우리 농촌을 지키며 잘 살고들 있다. 그이후 교포처녀의 사기결혼이 속출하기 시작했다.93년 무렵부터 결혼해 국적을 취득한 뒤 패물등을 챙겨 잠적하거나 3∼4개월만에 일자리를 찾아 가출하는 신부가 늘었다.심지어는 유부녀가 처녀를 가장,시집오는 경우까지 생겼다.가엾은 농촌 총각을 울리던 사기극이었다. 이제는 중국 교포여성에게 위장결혼을 알선,거액을 챙기는 회사까지 등장했다.이들은 내국인 독신자를 모집해 중국으로 데리고 가 결혼식을 올리고 귀국해 초청장을 보내주는 수법을 썼다.그 대가로 1인당 5백만∼7백만원을 받았다니 교포여성의 출혈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전에는 위장결혼을 미국·일본에 수출했는데 이젠 중국에서 수입하는 꼴이 돼버렸다.이것도 세태의 변화인가.
  • 미 최우량기업 DMS사 이종문 회장(세계속의 한국인:3)

    ◎“빌 게이츠에 버금”/미 컴퓨터업계의 실력자/그래픽 관련제품 시장점유율 1위/93∼94년 연속 「올해의 기업인」 선정/「동양예술박물관」 건립에 120억원 쾌척 “화제”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파크 안에 있는 「동양예술박물관」에 자랑스럽게 새겨진 한국인의 이름 이종문. 미국의 유일한 아시아예술 전용 박물관인 이곳 중앙 현관 머리에 이종문 아시아예술문화센터라는 이름이 새로 새겨졌다.샌프란시스코 사람들에게는 「드 영」박물관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박물관에서 지난 10월19일 있었던 명명식은 자랑스런 한 한국교민의 오랜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그 꿈의 실현은 부와 명예의 단순한 「아메리칸 드림」의 차원을 넘어 한민족의 문화사랑과 민족정신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편의 「인간 드라마」이다. 그의 이름을 딴 예술센터가 만들어진 것은 그가 이 박물관에 1천5백만달러(약 1백20억원)라는 거액을 기부한 데 따른 것이다.미국인들도 놀라게한 이종문(67).그는 실리콘밸리의 최우량기업으로 꼽히는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시스템」사(DMS)의 창업자이자 회장이었다. ○한인 문화사랑 정신 과시 1천5백만달러란 금액은 문화예술 관련 기부금으로는 가히 천문학적인 돈이다.게다가 그돈은 순전히 그의 개인재산 가운데서 나온 것이다.말이 쉽지 사재를 1천5백만달러씩이나 선뜻 내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특히 현금으로 단돈 1백달러를 손에 쥐기가 쉽지 않은 미국사회에서 볼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 박물관의 한국과 큐레이터 백금자씨는 『이회장의 기부금은 앞으로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한국미술전공자들이 얼마든지 학위논문을 쓸 수 있고,결국 미국내 각 박물관에서 한국관에 관심을 갖는 엄청난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의 기부금 쾌척은 한인교포사회 뿐 아니라 미국사회에도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킨 하나의 사건이었다. 미국의 컴퓨터업계에서 그는 컴퓨터계의 제왕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못지 않은 저명인사다. 그는 93,94년 연속 북캘리포니아의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됐을 만큼 실리콘밸리를 주도하는 하이테크 기업인이다.이 상은 미국 경영자협회를 비롯,CBS방송,하이테크산업을 전문으로 다루는 경제잡지 「잉크(Inc.)」,나스닥(NASDAQ)주식시장등 5개 기관에서 공동으로 평가해 주어지는 것인만큼 상당한 권위가 있다.이회장이 82년 창업해 이끌어온 DMS는 93,94년 「잉크」지에 의해 미국의 비상장기업 500개사 가운데 최고속으로 성장하는 기업 17,18위로 각각 평가되기도 했다. DMS는 컴퓨터의 그래픽기능을 향상시켜주는 그래픽액셀러레이터 관련 제품을 주로 생산,이 분야에서 선두였던 캐나다의 ATI사를 제치고 93년 하반기부터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특히 DMS의 멀티미디어 관련 소프트웨어는 호환성이 60%정도인 일반제품에 비해 무려 98%를 웃돌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95가 공식 스펙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고속성장 17위기업 평가 한국종합기술금융 실리콘밸리지사장 박태완씨(44)는 『DMS는 지난 4월 주식을 공개하기 전까지만해도 벤처캐피틀회사들이 가장 탐냈던 기업이지만 외부의 투자를 거부할만큼 자기자본력이 막강하다』고 전하고 있다. DMS의 영업담당 책임자인 김용태씨는 『91년10월 이후 은행빚이 단 1센트도 없는 부채율 제로의 회사』라고 자랑한다.더욱 놀라운 것은 94년말 현재 종업원 1백85명의 1인당 매출 1백10만달러에 이익율이 9.5∼10%나 된다는 사실이다.부실채권율은 0.5%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하이테크산업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이처럼 탄탄한 첨단기업이 한국인 이회장의 손으로 실리콘밸리에 뿌리내린 것은 한국교민의 자랑이 아닐수 없다. 그는 60년대말까지만해도 국내에서 알아주던 기업인이었다.제약회사 종근당의 창업주인 이종근씨의 친동생.69년까지 종근당의 전무로 일하며 오늘날의 종근당이 있게한 기반을 닦은 인물이 바로 이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종근당 이종근씨의 동생 제약회사에 관여하기 전에는 한국도서관학의 기초를 잡기도했다.국내에선 처음으로 도서관법안과 정기간행물 색인을 만들었는가 하면 십진분류법을 소개하기도 했다.국내에서 남부러울 게 없던 그는 70년 홀연 미국이민길에 올랐다. 『종근당에서 형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 3공화국에서 정부에 들어와 일하라고 귀찮게해 건너왔지.난 군인들이 정권잡는 것을 강도짓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건 정말 싫었어』라고 그는 이민 배경을 설명한다. 미국에 온 그는 5년쯤은 골프용품을 비롯한 각종 운동기구를 일본으로 내다 파는 일로 먹고 살았다.76년 갓 보급되기 시작하는 컴퓨터의 부속용품으로 무역품목을 바꾸어 다시 5년여를 수출업으로 지냈다.그러다가 애플과 IBM의 운용시스템이 다른 것에 착안,호환기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동차는 크라이슬러 제품이든,포드 것이든 운전하는 사람이 다 움직일 수 있는데 왜 컴퓨터는 안되느냐는 의문으로 제품마다 다른 오퍼레이팅 시스템에 다리를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지』.알아보니 그것은 30만달러의 연구비로 6개월이면 가능한 작업이었다.82년 그는 자본금 10만달러로 마침내 전자산업에 직접 뛰어들어 DMS의 전신 「다이아몬드 컴퓨터시스템」을 설립했다. 큰 어려움없이 하드웨어를 만들어냈다.그러나 소프트웨어건 하드웨어건 애플사가 걸어놓은 특허의 종류가 무려 40가지에 달해 그 거미줄같은 특허망을 빠져나가는데 무려 6년을소비했다.라이프사이클이 엄청나게 짧은 컴퓨터업계에서 6년이란 세월을 허비했으니 대실패는 당연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타사제품들의 호환성이 60%에 그치는 데 착안,이를 높이면 승산이 있다고 보고 6년세월을 더 매달렸던 것. 그 사이 여기저기서 불러모았던 기술자들은 모두 떠나갔다.85년초 단 한명 남았던 기술자 허형회씨(44·현 DMS기술담당이사)마저 떠나려할 판이었다.『그 친구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내가 무릎을 꿇고 빌었어.네가 가면 난 죽는다고 말이야』 결국 그는 호환성이 무려 98.2%에 이르는 컴퓨터보드 「트랙스타」를 개발했다.세계최초의 IBM­애플 호환기판이었다.85년말 녹스빌에서 열린 컴덱스에 내놓자 「텐디(TANDY)」사와 납품계약을 하게됐고,87년에는 IBM과 공급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러한 성공 뒤에는 6년여동안 3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을만큼 처절한 실패와 고립무원의 절박한 아픔이 있었다.그러한 고난의 날들을 극복한 값진 경험이 결국은 90년대에 DMS를 고속성장기업으로 달리게한 촉매가 됐다. 지난 4월 그는 회사를 상장했다.앞으로 4년동안 회사를 계속 성장시키면 3천6백만달러를 손에 쥐게하겠다는 계약으로 미국인 전문경영인을 사장으로 앉히고 자신은 경영일선에 물러났다. 주당 17달러에 상장된 DMS의 주가는 요즘 평균 27∼2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잡급직까지 나눠받은 주식으로 DMS는 실리콘밸리의 어느 회사보다도 사원들의 업무만족도가 높은 회사로 소문나 있다. ○세차례 자살기도 아픔도 『종업원들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방법은 주식공개 밖에 없었어.주변에선 어떻게 일으킨 회사인데 경영권을 포기하느냐고 말렸지만 죽을 고비에서 회사가 살아난 것은 천운으로 돌릴 수밖에 없어.하늘이 도와준 회사가 어떻게 내 것이야.난 한번도 「마이 컴패니(나의 회사)」라는 말을 쓴 적이 없지.그저 나를 거쳐서 어디론가 흘러가는게 기업이지』라고 그는 말한다. ○벤처캐피틀 회사도 설립 그는 DMS의 종업원 가운데 단 한명도 혈연을 끌어들인 적이 없음을 자부하고 있다.혈연을 끌어들이면 잡음이 들리게 되고,결국 직원들이 부담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자신의 기업이라는 식으로 소유개념을 갖는 것은 『돈 가진자들의 더러운 욕심』이라고 잘라 말한다. 고희를 바라보는 그는 DMS에서는 손을 뗀 상태이지만 다시 새로운 벤처캐피틀사업을 도모하고 있는 중이다.『전자사업은 아주 익사이팅해.스포츠게임과 같지.그 사업체들 가운데서 유망한 것들을 골라내 투자하는 일을 할 거야』 그는 돈을 쓰기 위해서 더 벌어야한다고 했다. 『한국인은 세계 어디에서 살든 수천년이 지나도 제 음식과 제 말을 버리지 않는 유일한 민족이야.이민생활을 하면서 우리 민족성과 우리 문화의 정신을 후세들에게 전하는데 내 돈을 다 쓸거야』.그의 이름과 기업정신은 이종문아시아예술문화센터로 이름이 바뀐 이 박물관의 소중한 예술품들과 함께 영원히 빛날 것이다. □이종문 회장 신상메모 ▲1928년 8월1일 서울출생 ▲중앙대 법대졸 ▲미8군 극동사령부보좌관(53년) ▲국비유학생으로 도미(58년) 조지 피바디대학에서 도서관학,데이터경영학 전공 ▲고려대 경영대학원 연구과정 수료(59년) ▲국립중앙도서관사서관(60∼62년) ▲연세대,성균관대 강사(63년) ▲종근당제약 전무이사(67∼69년) ▲한국사이클연맹회장(68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중소기업연구과정수료(76년) ▲다이아몬드컴퓨터시스템사 설립(82년) ▲산호제이한인회 이사장(92년) ▲실리콘밸리한인상공회의소 이사장 및 샌프란시스코동양예술박물관 커미셔너(현재) ▲국민훈장 목련장(93년) ▲벤처캐피틀회사 AMVEX설립(95년)
  • LA 코리아타운(세계속 한인촌 탐방:1)

    ◎67년 10여명서 출발… 40만명의 「나성구」로.1만5천업소 성업… 한때 한·흑 갈등도 극복 90여년의 길지 않은 한국 이민사지만 이제 한국인은 지구촌 구석구석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세계 곳곳의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한인촌을 몇회에 나누어 소개한다. 「함흥냉면」「숯불구이」「흑염소탕」「만물상」「방아간」「기미 주근깨 없앱니다」….서울거리의 간판이 아니다.로스앤젤레스(LA)코리아타운에서 만날 수 있는 낯익은 한글 간판들이다. 코리아타운에 들어서면 이때문에 누구나 마치 서울 동대문부근 어느 한 곳에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이 곳에서는 보신탕만 빼고 뭐든지 서울에서와 똑같이 먹고 사며 지낼 수 있다.1년 365일 영어한마디 사용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도 있다. 흔히 일컫는 LA는 행정구역상으로 하나의 카운티안에 인구 360만명의 LA시를 비롯,고작 152명의 주민뿐인 버넌시티에 이르기까지 모두 88개의 시티(City)로 구성돼 있다.인근 오렌지카운티를 포함할때 대략 40만명의 한국인이 넓은 의미의 LA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그러나 불법체류자를 합하면 50만명이 넘는 것으로 LA총영사관측은 추정하고 있다. ○곳곳에 한글 간판 미국 이민국 연감에 따르면 93∼94회계연도에 미국에 들어온 비이민 한국인방문객의 수가 39만9천명.이 가운데 27.9%인 12만4천9백44명이 LA를 통해 미국에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결국 한해 평균 60만명이상의 한국인이 LA지역에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니 「서울시 나성구」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미주지역 한인사회에서 필수책자인 「한인업소 주소록」을 토대로 한 자료는 LA지역이 얼마나 한국화돼 있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하와이와 알래스카를 포함한 미 서부지역의 한국인업소 1만8천4백72개가운데 무려 82.7%인 1만5천1백60개 업소가 LA인근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이민가정과 유학생,상사주재원 할 것없이 LA지역에 생활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인들의 「정신적인 서울」이 바로 「코리아타운」이다.한인주민만 10여만명,업소가 2천5백개나 몰려 있는 곳이다. LA국제공항에서 북동쪽으로 20여㎞거리에 위치한 「코리아타운」은 서울로 치면 종로거리처럼 LA의 각급 행정기관과 비즈니스센터가 몰려 있는 다운타운에 바짝 붙어 있다.세계영화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는 코리아타운에서 승용차로 10분남짓 거리다.미국 서부 최대의 도시라는 LA에서도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67년 LA에 정착,교민1세의 원조로서 「김방아 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김명한옹(91)은 『내가 지금의 코리아타운에서 남쪽으로 10블록 떨어진 제퍼슨가에 처음 방앗간을 차렸을 때만해도 한국사람은 10명정도 밖에 살지 않았었다』고 기억하고 있다.그럴진대 이민사가 길지 않은 한인들이 어떻게 이 노른자위 땅에 「작은 한국」을 세우게 됐을까. 60년대말부터 LA다운타운 인근지역은 사실상 슬럼화돼가고 있었다.남부지역에서 올라온 흑인들과 국경을 넘어온 히스패닉(라틴계 중남미인)들이 LA남부지역부터 자리잡기 시작,서서히 다운타운쪽으로 인구이동을 했다고 한다.결국 기존의 백인들이 하나둘 중심가를 떠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 갓 이민길에 오른 한인들은 고국에서 가져온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었다.외환관리법이 엄하던 시절이라 많이 가져올 수도 없었다.그러다보니 생활기반을 잡기에는 백인들이 나가버려 땅값이 곤두박질치고 있던 다운타운 인근지역이 안성맞춤이었다.70년무렵부터 이민자와 유학생들이 찾아들기 시작,당시 1스퀘어피트(약 0.1㎡)당 4달러씩 하던 지금의 올림픽대로를 중심으로 하나둘 한인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동쪽으로 「버몬트」,서쪽으로 「웨스턴애브뉴」,남쪽으로 「올림픽대로」,북쪽으로 「8가(가)」에 이르는 반경 5㎞정도의 구획을 대략적인 경계로 코리아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72년12월.9명의 한인상인들이 「코리아타운번영회」(현 코리아타운교민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이 지역의 상가에 한글간판달기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다.그러나 당시만해도 한인상점의 수가 20개도 채 되지 않아 한인들을 상대로 한 한글간판달기작업은 금세 끝나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미국인들이 주인인 업소들을 찾아다니면서 한글로 간판을 달아야 한국사람들이 당신네 가게가 뭘 파는지 알고 돈을 쓸 것아니냐고 설득,두달동안 61개 업소에 한글간판을 달아주었다』고 초대 번영회장 김진형씨(63·코리아타운한인회 명예회장)는 회고한다. ○영어학원도 등장 「문방구」「이발소」「식품점」같은 한글간판들이 거리에 나붙자 자연스럽게 한인타운이 이뤄지기 시작한 셈이다.교포라면 너도나도 코리아타운에 상점을 빌렸다.웃돈을 얹어주면서 세를 얻어내는 한인들에 밀려 백인들의 상가는 순식간에 빠져나갔다.교민수가 3만명을 넘어서면서 한국종합의료원이 들어섰고,영어학원까지 생겨 74년9월10일에는 첫 코리안퍼레이드행사까지 펼치게 됐다. 70년대 초에 이어 다시 붐을 이룬 79∼81년 무렵의 이민인구를 흡수하면서 한인상가가 급격히 팽창,81년8월 캘리포니아주정부가 「코리아타운」경계구역을 지정하고 그 명칭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82년2월에는 이 지역을 지나는 산타모니카 프리웨이 상에 「코리아타운」 안내표지판이 부착됐다.행정구역상의 명칭은 아니지만 미국 땅위에서 공식적으로는 유일한 한국인 밀집지역으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그러나 「코리아타운」은 90년대들어 불어닥친 캘리포니아지역의 불경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최근 수년간 최악의 분위기에 빠져있는 모습이다.특히 92년 4.29 흑인폭동으로 2천여개의 한인업소가 피해를 당한데다 지난해 노스리지 지진으로 외래관광객마저 격감,만나는 한인들마다 『장사가 안된다』고 울상이다. 잇따라 폭동과 지진이후 한인들마저 「코리아타운」에서 주거지를 옮겨 남쪽의 오렌지카운티나 학군과 주거환경이 좋은 LA동부의 외곽지역으로 이동,새로운 한인촌을 형성하기 시작함으로써 「코리아타운」의 경제력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80년대 최대 호황 대로변의 상가 뒤안에 밀집된 낡은 싸구려 임대아파트들은 구매력이 약한 노인층과 흑인 빈민층,히스패닉들의 거처로 변해 어느덧 LA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가운데 하나로 소문나있을 정도다.최근에는 한국에서 건너온 조직폭력배들이 기존의 갱들과 세력다툼을 벌이느라 총질을 해대기 일쑤이고 돈많은 조기유학생들이 흥청망청거리는 유흥행각을 펼쳐 한인사회의 골칫거리가 된지 오래다. 주류잡화상인 리커스토어상인들의 모임인 가주한미식품상협회 윤희륜회장(53·LA한인회이사)은 『코리아타운이 너무 넓어져 관리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상징적인 건물양식을 만들어 코리아타운의 역사는 지키되 한인들도 보다 폭넓게 각지로 분산,발전해나갈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LA코리아타운은 4반세기의 역사를 쌓는 시점에서 변신의 새 단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김진형 코리아타운한인회 명예회장/한인동포사회 정신적 고향/“22년째 코리안 페스티벌에 보람” 『코리아타운은 미국이민사회의 정신적인 고향입니다』 코리아타운 형성을 처음 제안했던 코리아타운한인회 김진형 명예회장(63)은 「코리아타운」의 산 증인이다.관광공사 일본지사에 근무를 마치고 71년 유학생비자로 LA에 발을 디뎠다가 그대로 눌러앉게 됐다는 김회장은 이듬해 한인상인 8명을 발기인으로 규합,「코리아타운 번영회」란 단체를 만들고 현재의 코리아타운 조성작업을 벌인 산파역. 탁월한 서예솜씨를 지닌 김회장은 한글간판달기 운동으로 코리아타운 형성작업에 착수하면서 직접 간판글씨를 써주는등 초기 LA한인타운 건립에 주도적인 몫을 맡았었다. 『LA를 비롯한 남가주 경기는 코리아타운에서 맨먼저 느낄수 있지요.한인봉제업체들을 거친 의류가 백인을 비롯한 미국인들에게 팔리고 그렇게 해서 들어온 달러는 바로 코리아타운에서 쓰여지니까요』 지난 10월까지 22회째 이어져 내려온 LA코리안페스티벌의 창시자이기도한 김회장은 『코리아타운이 제 모습을 갖추면서 미국 주류사회에서 한인들의 위상도 높아진 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LA시정부의 경찰청이 관할하는 인허가심사커미셔너를 맡고 있기도한 김회장은 코리아타운이 최근 침체돼 있는게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한다.그는 『범죄퇴치와 난립해 있는 한인단체들의 단합,그리고 차이나타운이나 리틀도쿄처럼 재개발을 거쳐 보다 현대적인 상가건물을 새로 지어야한다』고 코리아타운의 방향을 제시했다. 『고국의 동포들이 코리아타운을 이민자들의 거리라고만 여기지 말고 이웃동네처럼 성원과 관심을 보내주셔야 이곳 LA이민사회가 함께 성장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 해외동포 어디에 얼마나(서울신문 50돌 특집)

    ◎그들의 위상은 어떠한가/6대주 142국에 520만명 근면·성실로 기반 확고히/2년새 5.7% 증가… 중국에 최고 194만 거주/미 180만·일 69만·중앙아시아 46만명 생활/최근 취업·유학·투자이민 급증/망국·가난의 한 딛고 현지 빠른 적응/정·관·재·교육계서 활약 숱한 인재 배출/한민족 동질성 유지가 최대의 과제로 구한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주로부터 시작된 한국이민사가 90여년에 이르면서 해외교민수가 5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그리 길지않은 역사이지만 한민족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어느 나라에 얼마나 살고 있으며 그들의 현재 위상은 어떤가를 알아본다. ▷교민현황◁ 94년12월31일을 기준으로 외무부가 파악하고 있는 우리의 해외교포는 모두 5백22만8천36명이다. 지역별로는 아시아에 2백72만,미주에 1백96만,유럽에 52만,중동에 9천2백,아프리카에 3천2백명이 분포하고 있다. 국가별로 볼 때는 중국에 1백93만명으로 가장 많다.이어 미국에 1백53만,일본에 71만,러시아를포함한 독립국가연합에 46만명이 거주중이다. 전세계 1백92개국 가운데 우리동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무려 1백42개국이나 된다.중국이나 미국·일본등처럼 역사적인 이유로 우리 민족이 옮겨간 경우도 있다.그러나 우리동포의 분포가 이처럼 넓어진 것은 최근 늘어난 선교이민과 태권도교관의 파견 때문이라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2년마다 해외교포의 현황을 파악하는 외무부가 92년12월31일자로 파악한 해외교포는 4백94만3천5백90명이다.해외교포는 지난 2년동안 5.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해외교포가 증가한 것은 교포의 2세·3세·4세가 태어났고,해외경제활동의 증가로 우리 기업등의 파견원이 많이 진출하기 때문이다. 해외교포 가운데 95%인 4백70만명은 거주국의 국적을 갖고 있거나 거주국에서의 영주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나머지 5%는 상거래나 취업·유학등으로 체류중이다. ▷중국 교민◁ 중국에 한국인이 건너간 것은 매우 오래 전의 일이다.이미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부터 전쟁포로나 인질·공녀등의 형태로 한국인의 이주가 시작됐다.그러나 중국에 2백만의 교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하면서부터다.외무부에 따르면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국민의 중국이주가 급격히 증가,1907년에 7만1천명,1910년에 10만9천명,1916년에 20만명,1921년에 30만7천명이 조국을 떠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해방이후 80만명 귀국 1945년 이전까지 약 2백16만명의 한국인이 만주지역에 거주했으며,해방과 더불어 80만명이 귀국하고 나머지가 잔류했다. 현재 우리교민은 중국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2번째 규모다.전체의 약 97%인 1백87만명이 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등 동북 3성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특히 길림성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는 82만명이 밀집해 살고 있다. 중국 교민들은 해방후부터 냉전시대까지 남한과는 별다른 접촉을 가질 수가 없었다.따라서 정부도 이들에 대해 특별한 정책을 세울 수 없었다. 지난 88년부터 우리정부가 사회주의권 교민의 자유로운 모국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중국동포와의 교류가 본격화됐다. ○동북 3성에 집단촌 그러나중국교민들의 모국 방문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교민들이 경제수준이 월등한 모국에서 돈벌이를 하고자 대거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밀입국,불법취업,취업사기,절도·강도등의 사건이 잇따랐다. 정부는 이에 따라 중국교민들에 대한 사증발급 심사를 강화하고,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현지에서 성장하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중국내에서 교민들은 한인이나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과 경제·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또 중국 교민들은 스스로를 한국인 혹은 북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선족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미국 교민◁ 한미우호통상조약에 따라 1903년 한국인 1백21명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나면서 미국 이민사가 시작됐다. 이후 1961년 해외이주법이 제정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62만6천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이 기간 동안의 총 해외이주자 79만2천명 가운데 미국이민 비율이 79%를 차지하고 있다. 재미교민의 상당수는 한국내의 중산층,식자층 출신이며 자녀의 교육문제,경제적 이해관계,혹은 한국사회에서의 불만 때문에 미국에 건너간 사람들이다. ○구한말 하와이로 나가 이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이민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물론 언어장벽과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아직 미국사회의 주류에 진출하는데는 한계를 보이지만,최근들어 의사·변호사등 전문직 진출자가 늘어나고 있다.캘리포니아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김창준씨가 대표적인 한국교민의 성공사례이다. 교민 1.5세와 2세 이후세대는 현지에서 교육,성장해 비교적 빠르게 현지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 또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교민 사회에 북한과의 교류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고,과거 음성적으로 활동해오던 친북인사의 활동도 표면화하고 있다고 외무부 당국자는 밝혔다. ▷일본 교민◁ 일본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다른 지역의 교민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태평양전쟁 발발후 일제가 전쟁수행을 위해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강제적으로 징용해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강제 징용자의 숫자는 19 45년 당시 2백10만명에 달했으나,해방후인 46년 이후 65만명이 잔류하고 있다. 재일교민들은 오사카를 필두로 나고야·고베등지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으며,주로 상업 제조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본교민들은 본국에서의 좌·우익 대립을 그대로 답습,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그러나 최근에는 남북간의 국력차이가 워낙 커져서,민단과 조총련이 특별히 경쟁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교민1세들은 우리국적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으로,일본에 귀화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교민 2세이후부터는 모국과의 연대의식이 희박해지고 있으며,이에 따라 일본에 귀화하는 사람이 늘고있다.지난 50년 이래 일본에 귀화한 한국인은 모두 20만명 정도다.특히 교민 2,3세들은 일본인과의 결혼을 선호해 91년 결혼한 사람 가운데 82.5%가 일본인 배우자를 맞이했다. ▷독립국가연합지역 교민◁ 현재 옛 소련 지역내에는 러시아에 11만명,우즈베키스탄에 22만명,카자흐스탄에 10만명,우크라이나에 9만명등 모두 46만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이들은 대부분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우리 교민의 2,3세들이다. 각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뒤 이들은 자연적으로 그곳의 문화에 동화되었다.따라서 우리말과 문화적 전통을 많이 잃은 상태고,러시아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교민들 말고는 우리말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도 적다. 그러나 이들은 국제고려인단체연합회등 31개의 교민단체를 조직,모범적으로 혈연의식을 이어가고 있다.또 이를 바탕으로 각종 문화단체 활동,출판물 발간활동과 함께 대학교수,영농지도자를 다수 배출했다.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각 공화국은 우리교민의 근면성,높은 교육수준과 사회기여도를 평가하고 있다. ○사회기여도 평가 받아 이 지역에 대해서 정부는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우리업체와 현지 교민들간의 고용과 취업지원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내각 안에 「민족문제 및 지역정책부」가 설치돼 소수민족과의 화합 및 육성지원 정책을 마련한다고 표방하고있으나 체첸 공화국 사태에서 보듯이 러시아의 범위를 이탈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정부는 이러한 점을 감안,교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민족의식과 민족적 일체감을 고양하기 위해 한글교육,전통문화 재생,학술·체육 교류를 중심으로 지원책을 마련해가고 있다. 사할린에 거주하는 4만명의 교민들 가운데 1세들을 본국으로 귀환하는 문제는 한·러·일간의 현안으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주추이◁ 우리나라의 최근 해외이주자 추이를 보면,80년 3만3천3백명에서 83년에 2만3천3백명으로 하강세를 보이다,86년 3만7천80명으로 다시 늘었다.이후 다시 감소해 93년에는 1만4천4백명으로 매우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그러나 사업과 취업이주는 지난 10여년동안 꾸준히 증가했다.이는 그동안의 연고초청 이주,즉 막연한 동기의 해외이주보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주형태가 늘어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민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역이민도 늘어나고 있다.80년 역이주자수는 1천49명으로 그해 이민자의 2.8%였다.86년에는 역이민자의 비율이 7%를 차지했다가 89년 25%로 급증했으며,91년 40%,92년 50%를 기록한 뒤 93년에는 60.65%를 차지,이민자의 반이상이 되돌아오는 현상을 보였다. 역이주자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우리국민의 소득수준이 향상돼 국내에서도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무부는 설명하고 있다.같은 이유로 해외이주자수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외무부는 밝혔다. 최근 국내외에서 해외교민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의 하나로 해외동포에 대한 이중국적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교민에게 이중국적을 부여, 국내 왕래를 자유롭게 하고 각종 할동 및 재산권 행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교민의 권익을 크게 신장할 수 있는 방안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을 수반한다. 우선 교민들이 국적을 가진 두나라로부터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동시에 부여받게 되고, 범죄가 발생할 경우 자국민 불인도 원칙을 고수,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또 납세·병역 등 의무를 다하는 국민들과 비교할 때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의 형평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국민들과 위화감이 조성될 우려가 크다.
  • 미서 아계 X세대 잡지 「요크」 돌풍

    ◎창간 1년만에 4만5천부 팔려나가/한­중­일인 2백명 편집·취재 자원봉사 아시아계 신세대들을 위한 잡지 「요크」가 미국사회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9월 창간호를 낸 계간지로 지난 6월 여름호까지 통권 3호를 펴낸 「요크」는 불과 1년이 채 안돼 미국전역에서 4만5천부를 판매하는 호조를 보이며 기존 잡지계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한국계 필립 정과 토머스 김,중국계 틴옌과 토미 톰,일본계 래리 타쓰마 등이 요크 창간을 주도했던 젊은이들.20대 후반인 이들은 은행에서 5만달러를 융자받아 창간호 1만7천부를 찍어냈다. 틴옌씨는 『1백부만 나가면 다행이라고 여겼던 창간호가 재판까지 2만5천부나 팔리는 예상 밖의 반응을 얻었고 지난 3월 발행한 95년 봄호는 3만5천부,그리고 여름호는 4만5천부가 매진됐다』며 『내년부터는 월간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했다. 「요크(yolk)」란 달걀의 노른자위를 뜻하는 말.껍질 색깔이 어떠하건 알맹이는 모두 똑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크」는 20대의 아시아계 이민세대들이자발적으로 모여 취재와 편집,광고,판매 등을 분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상업잡지들과 비교된다.발기인격인 8명의 편집간부를 비롯,창간호를 낸 이후 삼삼오오 모여든 아시아계 젊은이들까지 2백여명이 직간접으로 잡지 제작에 관여하지만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다.18∼34살에 해당하는 미국내 7백60만 아시아계 신세대들을 대상으로 내용을 꾸민다.주로 성공한 아시아계 연예인이나 스포츠맨들 중심이지만 한국의 보신탕이나 미국사회의 행려병자들에 관한 진지한 주제도 다룬다. 창간호에는 한국계 코미디언 마거릿 조,최근의 여름호에는 일본계 TV스타 딘 케인을 싣는 등 의식적으로 성공한 아시아계 스타들을 표지에 실어 같은 피부의 동양계 미국인 X세대들의 관심을 북돋우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주류사회가 갖고 있는 아시안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그래서 뉴스위크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같은 미국의 언론들은 「요크」의 젊은이들을 「차세대 미국이민사회의 주역들」이라고 소개했다. 캘리포니아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며 「요크」의 홍보매니저로 뛰고 있는 한국계 이민2세 리타 윤양(19)은 『어느 학부모께서는 미국잡지만 보던 아이들이 나는 왜 코가 크지 않고 머리색이 까맣냐고 투덜대더니 요크를 보고 나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꾸려 한다며 고맙다는 전화도 했었다』고 자랑한다. 이미 홍콩과 대만에도 배포되고 있는 「요크」는 내년에 일본어판에 이어 한국어판도 낼 계획이다.
  • 역이민 재이민(임춘웅 칼럼)

    어쩌다 도심호텔에 들를 일이 있어 가보면 으레 몇사람의 재미교포들을 만나게 된다.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뉴욕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모처럼 형제,친지들을 만나보러 설레는 기분으로 고국에 들른 사람,하는 사업이 한국과 관련돼 있어서 잠시 체류하는 사람,한국에서 해볼 일이 없을까해서 일시 귀국중인 사람,다시 돌아오고 싶은데 마땅한 자리가 있을까해서 나와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해볼 일이 없을까해서 온 사람들은 얼마후 연락해보면 대부분이 미국으로 되돌아가고 없다.자기의 기대와는 달리 이 좁은 땅덩어리에 그들을 위해 그럴싸한 자리가 남아있을리 없는 것이다.이렇게 미리 알아보는 신중파도 적지 않지만 최근에는 이것저것 따질것 없이 아예 보따리를 싸들고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뉴욕 타임스지가 22일자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것을 보면 한국경제가 고속성장을 계속하면서 한국인들의 미국이민숫자는 지난 5년간 58%나 줄어든 반면 재미 한국교포들의 역이민 숫자는 지난 10년간 7∼8배나 늘어났다는 것이다.이 신문은90년 2만5천5백여명에 달했던 한국인 이민자가 94년에는 1만8백여명으로 절반이상 감소했으나 80년 8백여명에 불과했던 역이민자수는 80년대말 이후 매년 5천∼6천5백여명에 이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미 국무부영사국 자료를 인용한 보도이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실제의 역이민숫자는 이보다도 더 많을 것이다.영주권을 살려두고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 상당수인 것이다.지난 5월 워싱턴 포스트지도 한 경제연구소 자료를 토대로 이와 거의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보도한 일이 있다. 우리는 이런 기사를 대할 때마다 어깨가 우쭐해지고,조금은 유쾌한 기분에 젖게 된다.다시는 안올 것처럼 당당히 이민을 떠났던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바라보는 별로 나쁘지 않은 기분도 없지 않을 것이나 보다 큰 이유는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리라. 그러나 믿을만한 통계는 없지만 재이민 숫자도 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재이민이란 역이민을 온 사람들이 이민갔던 나라로 다시 가는 것이다.미국에서 못 살겠어서 돌아왔으나다시 온 고국은 옛날에 살던 내나라가 아니라 불현듯 낯선 땅이 돼있던 것이다. 할일이 마땅치 않아서만이 아니라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사회구조에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민가기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일들에도 보다 합리적인 미국에서 잠시나마 살아본 이후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한국사회의 이중성 때문이다.경제적으로는 잘 돼가고 있고,최첨단 소재라는 반도체생산 세계 1위,조선수주 세계최고를 기록하는 한편에선 무너지고 폭발하고 좌절한다.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엄존하고 있는 부조리들이라고 한다. 되돌아온 사람들이 참으로 잘 돌아왔다고 만족해하는 조국이 돼야한다.
  • 미 이민 코리언 「U턴」 급증/NYT지 보도

    ◎한국,경기활황­미 불경기 엇갈려/5년간 비자신청도 절반 줄어 미국에 이민을 온 한국인 가운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2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뉴욕타임스는 「건강한 한국경제가 이민자를 고국으로 끌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몇년 사이에 뚜렷해진 한국이민자의 역이민현상을 분석하면서 그 첫번째 이유로 한국의 괄목할 경제와 미국의 불경기를 지적했다.다음은 뉴욕타임스의 보도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지난 20년동안 한국인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그들의 기업가적 활력은 뉴욕과 다른 도시에서 한국인집단을 형성하게 했다.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도약하는 경제로 인해 한국인은 미국으로 이주할 이유가 거의 없게 됐다.그리고 미국에서 가족을 부양하고 사업을 한 수많은 한국이주민도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다.그중 일부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밀려가는 것이지만 나머지는 한국에서의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해 미국에서의 성공을 활용하려는 사람이다. 지난 5년동안 한국에서 미국이민비자를 받은 사람은 그전보다 반이하로 급격히 줄어들었다.90년에는 2만5천5백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만8백명이었다.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의 흐름은 88년 서울올림픽이후에 크게 증가했다.지난 4년동안 해마다 5천∼6천명이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이는 80년의 8백명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한국인의 미국이민이 최고조에 달한 87년에는 미국이민비자를 받은 3만명 가운데 10명중 1명꼴로 되돌아갔으나 지난해에는 2명중 1명이 되돌아갔다. 한국으로의 역이민자는 문화·사회·경제적 희망의 좌절과 불만족 때문에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다.영어와 미국문화에 완전히 숙달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민족분규·폭력·범죄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또 군사정부가 87년에 붕괴된 서울에서 민주화회복에 기여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지난 5년동안의 한국의 경제적 활력과 미국의 최근 경기후퇴현상이다.한국은 세계무역게임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한국은 지난해 세계 12번째 수출국이었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특히 전문적 배경을 버리고 미국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은 그들이 한국에서 가졌던 사회적 신분을 결코 가질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미국에서 상당한 성공을 한 한국인도 미국회사에서는 더이상 높은 자리로 승진할 수 없다고 느낀다. 헌터 칼리지의 필립 카시니츠 교수는 『한국인이 돌아가는 이유는 바로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이라면서 『한국의 경제가 지금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 모두를 끌만큼 강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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