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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손’ 로드먼

    ‘빈손’ 로드먼

    지난 3일 방북했던 미국 프로농구(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52)이 7일 중국 베이징을 통해 귀국했다. 로드먼은 그러나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를 데리고 나오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갔다.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45분쯤 북한 고려항공을 타고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로드먼은 취재진에게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만나 “평화와 스포츠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우리 농구팀과 북한의 농구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로드먼은 그러나 케네스 배 석방 문제에 대해서는 “그의 문제를 묻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뒤 “그런 건 오바마(대통령)나 힐러리 클린턴(전 국무장관)에게 가서 물어보라”며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로드먼이 이번 방북 기간에 김 제1위원장에게 케네스 배 석방을 요청했으나 김 제1위원장이 최근 북·미관계 등을 고려해 거부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도쿄신문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 김 제1위원장이 65주년 건국기념일(9월 9일)에 맞춰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한다고 전했다. 신문은 그러나 케네스 배가 사면 대상에 포함됐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1) 남산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1) 남산

    남산 하면 벼슬길 진출을 위해 ‘열공’하던 딸깍발이 선비와 그들이 살던 낭만적인 남촌 풍경이 떠오른다. 조선 신궁과 통감부, 헌병사령부, 일본인 거주지 같은 좋지 않은 상념도 꽈리를 튼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는 애국가 구절이나 한때 ‘남산’으로 불리던 옛 중앙정보부의 추억도 있다. 케이블카와 도서관, 어린이회관, 서울타워도 빠지지 않는다. 한강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기에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가 겹쳐 떠오르는 것이리라. 남산은 사대문 안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산이기에 익숙하고 친근하다. 풍수지리학상 342m 높이의 백악(북악)이 조선 한양의 주산(主山)이었다면 265m의 남산은 안산(案山)이었다. 쉽게 풀면 나라(임금) 앞에 놓인 밥상이나 책상 같은 개념의 산이다. 팔도에서 올리는 봉수대의 마지막 종착점이어서 남산 5개 봉수대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가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평화의 산이기도 했다. 남산 위에 오르면 도성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기에 오르지 못하도록 금했다. 덕분에 산림이 우거지고 울창해 서울의 허파가 되었다. 서울의 팽창에 따라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자연지리적인 요건을 갖췄다. 우리가 남산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 아는 것도 있다. 일례로 남산 소나무이다. 산림청에 등록된 4440개의 우리나라 산 이름 중 남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31개에 이른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마을 앞산을 남산 또는 앞산이라고 불렀다. 남(南)자를 ‘남녘 남’ 자가 아닌 ‘앞 남’으로 썼다. 남산은 앞산을 한자로 쓴 것이다. 목멱(木覓)의 유래도 흥미롭다. 남산의 다른 이름은 ‘마뫼’였다. 마뫼의 ‘마’는 ‘앞’, 뫼는 산의 우리말이다. 독립지사이자 역사학자였던 안재홍에 따르면 목멱은 이두식 표기다. 목(木)은 ‘마’를, 멱(覓)은 ‘뫼’를 적었다는 얘기다. 남산=앞산=마뫼=목멱이 같은 뜻 다른 이름이다. 방방곡곡 동네 앞산의 소나무가 모두 ‘남산 위의 저 소나무’인 셈이다. 샌님이 살던 남촌에 언제부터 왜색의 기운이 드리웠을까. 남산과 일본의 악연은 뿌리 깊다. 조선 초부터 임진왜란(1592~1598) 이전까지 일본 사신이 머물던 동평관이 남산 기슭 인현동 2가에 있었다. 남산은 7년 전쟁기간 동안 왜군 진지였다. 마스다 나가모리 등 왜장이 살았다고 해서 왜장터(왜성대)라고 불렸다. 그들의 진지는 지금의 정동에까지 이르렀다. 일제는 그로부터 292년이 지난 1884년 갑신정변을 틈타 남산 기슭 녹천정 자리를 영사관자리로 제공받아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곳에 일본공사관, 통감부, 총독부가 속속 들어섰다. 지금의 예장동, 주자동, 충무로1가인 진고개(본정)일대는 일본인 거주지였다. 진고개를 거점으로 남대문, 회현동, 명동(명치정), 을지로(황금정)쪽으로 주택가와 상가가 확장됐다. 화려한 남촌 일본인 상가는 북촌 조선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오늘날 일본인 관광객이 유독 명동을 즐겨 찾는 까닭도 그들이 누렸던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회귀본능이 아닐까. 해방 직후 본정(本町)을 일본인이 두려워하는 이순신 장군의 호를 딴 충무로(忠武路)로 바꾼 것은 이를 차단하려는 속뜻이 작용한 것 같다. 남산과 남촌은 조선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일본인촌으로 변했다. 종로 우미관을 주름잡던 김두한 패가 청계천을 경계로 진고개 일본 건달과 세력을 다투던 시절이다. 19가구 89명(1885년)에 불과하던 일본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1986가구 7677명(1905년)으로 늘었다. 강제병 탄이후 8794가구에 3만 4468명(1910년)으로 무서운 팽창세를 보였다. 일제의 남산 잠식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 1898년 예장동에 대성궁(경성신사)이라는 작은 신사를 세우더니, 1904년에는 2만여 평을 임대해 필동에 헌병대사령부를 구축했다. 1908년에는 30만 평을 영구 무상임대, 한양공원을 조성하고 조선 신궁을 세웠다. 그들이 잠식한 땅이 현재 남산공원(87만 6000평)의 3분의 1을 넘는다. 일제가 열도를 창조했다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와 명치 천황을 모신 조선 신궁은 한반도 전역에 있는 일본 신사의 총본부였다. 신궁은 사대문 안 어디에서나 보이는 남산 꼭대기에 있었으며 시내에서 전차가 신궁 밑을 지나갈 때는 승객 전원이 일어서서 묵념을 올려야 했다. 1918년 남산중턱 13만평의 수목을 베어내고 조성에 들어가 1925년 완공됐다. 지금의 남산식물원 자리이다. 일본의 성지 조성을 위해 남산은 깔아뭉개졌다. 남산 중턱 힐튼호텔에서부터 384개의 계단을 만들어 올라가도록 꾸몄다. 남대문에서 조선 신궁에 이르는 참배로를 조성하려고 남대문에서 남산을 잇는 성곽을 부수고 자동찻길을 냈다. 지금의 소월로이다. 남산생태계를 파괴한 주범이다. 조선신궁과 황국신민서사탑은 광복 직후 서울시민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 파괴할 정도로 원성이 높았다. 남산의 동쪽 기슭 장충단은 명성황후시해사건(1895) 당시 일본자객에 맞서 순직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곳이다. 장충단(奬忠壇)이란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다. 일제는 창경궁, 덕수궁과 함께 이곳을 공원으로 희화화하고서 장충단 동편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터에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세웠다. 일본 1000엔권 지폐에 얼굴이 등장하기도 한 이토의 업적을 영구히 기념한다는 구실로 내선일체를 꾀했다. 당시 여행안내책자에서 경성 제일명소로 칭송했다. 총독부를 지을 때 헐어낸 경복궁 선원전을 부속건물로,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을 정문으로, 광화문 양옆 궁성벽 석재를 가져다가 담으로 쌓았다. 박문사 건물은 해방 후에도 동국대 기숙사로 쓰였고 흥화문은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이다가 1988년에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중구 필동 남산한옥마을은 악명 높은 헌병통치의 본산인 조선헌병대사령부 터였다. 조선 초 박팽년의 사저였던 한국의집은 조선총독부의 2인자 정무총감의 관저로 쓰였다. 이들은 남산 중턱 왜성대에 총독관저를 세우고 그 아래 조선헌병대사령부를 뒀다. 서울유스호스텔은 일본공사관과 통감관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통감부와 총독관저가 각각 자리했었다. 남산은 경복궁 안에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어 옮겨가기 전까지 일본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남산꼭대기 N타워 옆 팔각정은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평범한 정자에 불과하지만, 내력은 간단치 않다. 이 자리는 조선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부터 천하의 명당이었다. 태조가 남산의 산신을 모시려고 지은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자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무속사당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민속신앙 터인 국사당이 일본 토착신앙의 대표인 신궁에 쫓겨 인왕산으로 강제로 옮겨진 것이다. 일제는 ‘일본 최고 신과 살아있는 신인 천황을 모시는 신궁에 식민지 나라의 굿 집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1925년 오백년 내내 있던 자리에서 내쳐버렸다. 한국의 무속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신도(神道) 역시 원시종교에 가깝지만, 정부나 국민이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정치생명을 건 야스쿠니 신사참배 행렬에서 엿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국사당을 원상회복시키자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 얘기를 꺼냈다간 종교전쟁이 일어날 판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보고 싶어하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명동을 거쳐 남산타워에 오른 일본인 관광객들이 국사당 축출 사연을 듣는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광복 후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도 남산을 그냥 두지 않았다.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승만은 국사당 터에 국사당을 되돌리기는커녕 자신의 호를 딴 우남정을 만들었고, 당시 세계최대 규모의 동상을 세웠다. 조선 신궁 터를 국회의사당 신축부지로 결정해 1959년 기공식까지 가졌지만 2년 뒤 5·16 쿠데타로 백지화됐다. 3500가구 2만 5000명이 정착한 서울 최초의 판자촌인 해방촌이 남산의 북쪽 기슭 12만 6000평을 차지하도록 사실상 허가해 남산의 피폐를 가속화했다. 이런저런 압력과 로비를 통해 숭의학원, 리라학교, 동국대학교가 남산에 틈입했다.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가장 집중적으로 훼손된 곳은 장충단공원이었다. 장충체육관, 신라호텔, 자유센터, 타워호텔(반얀트리),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옛 재향군인회(동국대), 옛 중앙공무원교육원(동국대) 등이 줄줄이 들어선 것이다. 장충단공원은 21만평이 넘던 서울시내 최대 근린공원에서 9만평의 평범한 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1984년 남산공원으로 흡수합병당하는 신세가 됐다. 1994년 외인아파트 2동이 폭파 철거되는 등 남산제모습찾기운동이 시작됐고 2009년 남산르네상스를 내세운 오세훈 전 시장이 찢어진 남산녹지축 연결을 시도했지만 마무리짓지 못했다. 남산에는 지금도 동상 10기, 기념비 14개를 비롯한 각종 시설물 28개, 체육시설 269개가 촘촘하다. 그러나 남산은 이들에게 마른 품을 기꺼이 내주고 있다. 아! 남산이여…. joo@seoul.co.kr
  • “의류수거함, 수거합니다”

    성동구는 4일 주택가 골목길에 마구잡이로 들어선 재활용 의류수거함을 모두 정비해 다시 설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의류수거함은 아깝게 버려지는 멀쩡한 옷들을 다시 쓰자는 취지이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쓰레기만 있다거나 아무렇게나 설치돼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을 줄곧 받았다. 또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임의로 설치하기 일쑤여서 옷을 팔아 챙기는 이득을 둘러싸고 이권 다툼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구는 의류수거함 정비사업을 통해 기존 수거함을 모두 없애고 통일된 디자인의 수거함으로 재정비한 뒤 위치를 바꿔서 달리 설치하기로 했다. 관리도 이제 성동구의류재활용협의회에 맡긴다. 협의회는 수거함을 설치했던 개인과 단체들이 속한 곳으로, 구가 마련한 수거함 관리지침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또 수거함에서 나오는 옷을 팔아 나오는 수익금 가운데 일부는 저소득 가정과 장애인 등을 위한 복지사업에 쓰도록 했다. 고재득 구청장은 “버려지는 의류의 재활용이 한층 더 쉬워질 뿐 아니라 도시미관이나 환경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수거함이나 그 주변에 이상은 없는지 주민들의 적극적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염치없는 정당 현수막 눈치보는 자치구 단속

    염치없는 정당 현수막 눈치보는 자치구 단속

    3일 서울 종로구 원남동 창경궁로 교차로. 새누리당 종로구 당원협의회와 민주당 종로구 지역위원회가 각각 내건 현수막이 주변 상가의 간판뿐 아니라 보행자 신호등까지 가리고 있었다. ‘주민 숙원사업인 원남동~종로4가 일방통행 구간을 양방으로 통행하는 문제를 해결했다’는 내용으로, 두 정당이 서로 자신이 해결했다고 홍보하고 있다.정당 현수막들이 도심 거리 곳곳에 무질서하게 걸려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단속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들이 정당 현수막에 예외 기준을 적용해 단속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3일 “불법 현수막을 단속하는 이유가 미관을 훼손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당이 내건 현수막은 미관을 해치지 않고, 민간이 설치한 것은 미관을 상하게 하느냐”고 꼬집었다. 현행 현수막 설치 관련법에 따르면 각 지자체가 마련한 지정 게시대에 설치한 것을 제외한 모든 현수막은 불법으로 구청 등 관할 지자체가 단속해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 대부분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8조 4호(적용 배제)의 ‘적법한 정치 활동을 위한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를 적용해 정당 현수막을 단속하지 않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정당 현수막은 예외 규정에 따라 설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정당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정당법 37조 2항에서 보장한 ‘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인쇄물·시설물·광고 등을 이용해 홍보하는 행동’으로 보고 단속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전행정부는 “일반적인 정당 홍보용 현수막도 지정 게시대 밖에 설치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단속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김연중 지역활성화과 서기관은 “정당법 37조 2항은 선언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으로, 실제 적용은 개별법인 옥외광고물관리법 8조 4호에 따라야 한다”면서 “여기서 규정한 적법한 정치 활동을 위한 현수막은 합법적인 행사나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야 한다”고 정의했다. 이어 “안행부는 법제처의 법령 해석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전달받아 지자체에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정당의 업적을 자랑하거나 홍보하는 현수막들은 모두 불법이라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도 이를 알고 있지만 정당의 항의 탓에 철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청 관계자는 “무분별하게 걸린 정당 현수막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철거하면 해당 정당이 ‘정당의 재산을 훼손했다’고 항의해 곤욕을 치르곤 했다”면서 “게시 기간이 길어져 훼손된 현수막과 교통, 보행을 방해해 민원이 들어올 때는 정당 현수막도 철거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지자체장이 각 정당에 소속된 만큼 관련 공무원들이 눈치를 보는 것도 단속을 느슨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보인다. 반면 부산진구와 대전 유성구, 경남 진주시 등은 지난달부터 무질서한 정당 현수막을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봉인 풀린 한국사 문서들 인터넷으로 본다

    봉인 풀린 한국사 문서들 인터넷으로 본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가 한국 현대사와 관련한 세계 각국의 최신 비밀해제 문서들을 모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워싱턴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는 22일(현지시간) 자체 연구진이 개발한 ‘한국 현대사 포털’(Modern Korean History Portal)을 개관했다고 밝혔다. 이 포털의 인터넷 주소는 http://digitalarchive.wilsoncenter.org/theme/modern-korean-history-portal 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으로 개발된 이 포털은 40여개에 이르는 세계 각국의 기록보관소 등에서 수집한 최신 비밀해제 문건을 원문 또는 번역문 형태로 수록하고, 이를 일반에 무료로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이 포털은 한반도 전문가인 제임스 퍼슨 연구원의 주도로 우드로윌슨센터 공공정책프로그램 소속 정보기술(IT), 대외협력팀이 3년간에 걸쳐 개발됐으며 이날 공개됐다. 날짜, 주제, 위치, 언어, 작성자 등을 기준으로 분류 검색이 가능하고, 검색 결과에 따라 연관된 문서도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에 필요한 관련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센터 측은 설명했다. 게재된 자료들은 주로 한국과 러시아, 중국, 미국, 루마니아, 독일, 알바니아, 몽골, 폴란드 등 수십여개 국에서 수집된 중요 문건, 연표, 논문, 주요 인사 프로필 등이다. 특히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관계, 북한과 공산권과의 관계에 관한 비화들이 담겨 있는 문서가 다수 포함돼 있다. 퍼슨 연구원은 “이 포털은 학자, 학생, 정책입안자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연구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면서 “지금은 외교·안보 중심이지만 앞으로 스포츠 등 여러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제교류재단 관계자는 “한국 근·현대사 자료를 총망라해 게시한 미국 최초의 포털”이라고 했다. 우드로윌슨센터는 이번 포털 개설을 계기로 앞으로 한·미 양국의 일선 학교에서 이용할 수 있는 교육 자료를 개발하고 한국사공공정책연구소 설립 등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새 담장 새 일터

    새 담장 새 일터

    서울 은평구 응암3동 주민센터가 추진 중인 ‘우리동네 담장 가꾸기 사업’이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담장 가꾸기 사업은 각종 부착물과 낙서로 미관을 해치는 담장을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색상으로 도색하는 작업이다. 2011년 하반기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다. 공공·일자리 사업 참여자가 참여해 일자리 창출 효과도 거두고 있다. 응암3동은 올해 총 260여곳을 개선 대상으로 정하고 3월 초부터 도색작업을 시작해 상반기 중 159곳의 작업을 완료했다. 하반기에도 100곳에 대해 담장 가꾸기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동 관계자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작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 마을 경관을 스스로 가꿔 간다는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 동부이촌동 전봇대없는 깔끔한 길로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길이 전봇대 없는 길로 변신한다. 용산구는 29일 오후 3시 신용산초등학교에서 주민 500여명과 함께 이촌동길 지중화 사업 착공식을 열고 2014년까지 두산위브 아파트~금강아산병원 간 3.3㎞ 구간의 전봇대를 없애고 전선을 땅속에 묻는 지중화 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먼저 올 연말까지 5개월에 걸쳐 금강아산병원~동부이촌종합상가 1.57㎞ 구간에 대한 공사를 실시한다. 이를 통해 전봇대 48대가 거리에서 사라진다. 내년에는 동부이촌종합상가부터 두산위브아파트 앞 1.73㎞ 구간에 대한 전선 지중화 공사가 이뤄진다. 성장현 구청장은 착공식에서 “전선, 통신 등 가공선로가 난립했던 이촌동길이 지중화 사업으로 쾌적하고 아름다운 거리로 다시 태어난다”고 밝혔다. 실제로 4차로인 동부이촌동길 양쪽에 3~4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가운데 전봇대와 전선이 뒤엉켜 있다. 전선·통신선이 난립해 전선 지중화 작업은 주민들의 대표적인 숙원 사업으로 손꼽혀 왔다. 예산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2010년부터 구가 한국전력공사 간부와 실무자들을 상대로 사업 필요성에 대해 설득한 결과 지난해 12월 31일에서야 사업을 확정했다. 어렵사리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주민 기대감도 높다. 엄기연(56·이촌동)씨는 “좁은 길에 지저분하게 늘어섰던 전선 등이 묻히면서 도시 미관뿐 아니라 안전 문제도 함께 좋아질 것으로 보여 기대된다”며 “어지럽게 붙어 있던 전단지와 광고판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는 지중화 사업에서 도로 굴착·복구 방법을 개별 굴착에서 병행 굴착 방법으로 개선, 공사비를 대폭 절감해 눈길을 끈다. 또 사전 협의를 통해 렉스 아파트 재건축 공사 부지 앞 200m 구간의 통신관로 노선을 단지 내로 들여오면서 2억 4000만원을 줄였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과제 (상)남·북한 입장

    [정전협정 60년]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과제 (상)남·북한 입장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문제를 둘러싼 남북 간 줄다리기는 협정 체결후 1년도 안 된 1954년부터 시작됐다. 북한은 현재 한국을 제외한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들과 평화체제 전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남북한 간 평화협정 체결에 무게를 뒀었다. 김일성 주석은 1962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11차 회의에서 미군철수와 남북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했으며, 같은 해 10월 제3기 제1차 회의에서도 평화협정 체결을 재차 강조했다. 요지는 주한미군이 철수한 뒤 남북한 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각각 병력을 10만명 이하로 축소하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기조는 197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 이에 대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상호 무력침범 금지 ▲상호 내정간섭 금지 ▲휴전협정 존속을 골자로 하는 남북 상호불가침 협정체결 등을 역제의했다. 정전 상태를 유지하는 대신 양측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억제해 전투 상태의 일시적 정지를 초월한 준(準)평화 상태를 만들자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에 있어 남북한 당사자 원칙을 고수할 것과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정전체제를 유지할 것, 대북 군사 억지력을 위해 주한미군은 주둔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측 주장이었다. 그러자 북한은 우리 측 제안을 거절하면서 입장을 바꿔 같은 해 3월 미국 의회에 서한을 보내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북·미 간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더 이상 전쟁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가 불가피하고, 대북억지력이 사라진다면 남한의 공산화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한국이 정전협정에 직접 서명하지 않았으며,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위 ‘실질적 권한 행사자’인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었다. 1984년 1월에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에서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남북 사이에는 불가침 선언을 채택하자는 소위 3자 회담 형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이 없자 북한은 1987년부터 주한미군 즉각 철수에서 단계적 철수로 주장을 완화한 데 이어, 1990년대 들어와선 적대적 군사행위가 없다면 미군 주둔을 용인하겠다는 뉘앙스의 발언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예 2002년 10월에는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정전협정마저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불가침 조약의 체결은 더욱 절실하다”며 목표를 불가침 조약 체결로 바꿔 잡았다. 불가침 조약은 기존에 제안했던 북·미 평화협정에 비하면 일보 후퇴한 제안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라크 전쟁(2003년 3월 20일~4월 14일)을 앞두고 전운이 고조되자 ‘제2의 이라크’가 될 것을 우려한 북한이 미국과 우선 불가침조약부터 체결하려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평화협정 논의는 2005년 9월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북핵 문제와 맞물려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됐고, 북한의 핵 포기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9·19공동성명은 북한의 비핵화 이행과 동시에 별도 포럼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 및 평화체제 보장을 동시에 논의하는 포괄적 해결 방안을 담았다. 그러나 이후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9·19공동성명 이행을 사실상 거부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때문에 자신들의 핵을 개발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 등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한 일련의 조치들이 마무리된 뒤에야 핵폐기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핵폐기와 관련된 실질적 조치들이 마련되고, 이 과정에서 상호 신뢰가 구축돼야 진정한 의미의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다고 맞섰다. 양측의 현격한 입장 차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18대 대선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전 상태를 지속시키는 배후에 유엔군사령부가 있다고 주장하며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주장하고, 어떤 형태의 전쟁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곁들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한 안보 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해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히틀러와의 뮌헨 회담 후 ‘우리 시대의 평화가 도래했다’고 천명했지만, 그가 가져온 합의문은 1년도 안 돼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전쟁이 발발했다”면서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평화협정에 사인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려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당당히 맞서야 하며, 북핵 폐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을 분명히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창간 특별기획] 미·중 신대국 시대 한반도 미래를 묻다

    [창간 특별기획] 미·중 신대국 시대 한반도 미래를 묻다

    지구촌의 양대 패권 경쟁국(G2)으로 등장한 미국과 중국은 남북한 관계 등 한반도에 새로운 정치·경제 전략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질서 속에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 진영은 의미가 없게 된 셈이다. 미·중 신대국 시대의 향후 전망과 양국 사이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와 역할에 대해 미국과 중국 전문가를 통해 들어본다. ■ 북한부터 에너지 안보까지 광범위한 미·중 협력 냉전 시절 미·소와는 달라 앨런 롬버그 美 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 앨런 롬버그 미국 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은 15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향후 미국과 중국은 큰 틀에서 협력적 관계를 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팀슨센터는 미국의 안보 문제 전문 민간 연구기관이다. →최근 중국이 신형대국 관계를 주창한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나. -중국 자신이 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기존 강대국인 미국과의 사이에 빚어지는 긴장과 대결적 구도를 피하려는 것이다. 세계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성장세에 있는 중국이 미국과 갈등을 빚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 세계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미국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협력이 가능한 이슈에 대해서는 힘을 모으고 이해관계가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차이점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서로에게 중요하다. 북한 문제와 같은 지정학적 이슈와 함께 기후변화, 에너지안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있어 두 나라가 협력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아주 어려운 시대가 됐다. →현재의 미·중관계를 냉전시기 미·소관계와 비교한다면.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분명 중국이 남중국해 등 아시아 지역에서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걱정한다. 그렇지만 과거 미·소관계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소련은 전형적인 팽창주의적 제국이었다. 소련은 동유럽 등으로 세력을 넓혔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그것을 매우 걱정했다. 그래서 미국의 대(對)소련 정책은 기본적으로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봉쇄하는 것이었다. 반면 미·중관계는 그보다는 협력적 관계라 볼 수 있다. →지난 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미했을 때 미·일 간 새로운 밀월관계를 열어가면서 중국을 소외시키리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초 캘리포니아에서 파격적 정상회담을 갖는 등 예상보다 우호적 관계가 연출되고 있다. -세계 평화와 안정, 발전을 위해 미국과 중국은 협력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 일본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중·일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이 격화되는 것을 미국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제외하고는 동북아의 모든 나라와 협력하길 원한다. 북한의 경우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태도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협력이 어렵다. →미·중관계의 걸림돌은. -구체적 이슈로는 사이버 해킹과 경제 이슈 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지난달 캘리포니아 정상회담에서 북한 등 많은 이슈에 대해 좋은 협력 모델을 보여줬다. 두 나라는 정치제도와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협력을 최대화하고 분쟁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북한에 대한 미·중 간 협력은 잘되고 있는 건가. -현 시점에서는 잘되고 있다고 본다. 최근 중국은 북한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제재에 있어 중국은 미국, 유엔 등과 기꺼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 전반적으로 중국은 북한발 안보적 위험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행동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미·중의 대북 시각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고 미국이 더욱 가혹한 제재를 가하려 할 경우 미·중이 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인가. -중국은 북한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부담까지는 안으려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이 최근 방중한 박근혜 대통령을 환대한 이유는. -한·중 관계는 서로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북핵에 분명히 반대하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이런 공동보조를 통해 평양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박 대통령 환대를 보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초조해할까. -초조해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목할 것이다.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방중하는 등 북한은 지금 베이징에 연달아 유화공세를 펴고 있다. 이 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한국이 중국 신뢰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면 중·미 교량 역할 가능 롼쭝쩌 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 “한국이 신형 대국관계 속에서 중국과 미국 두 나라에 모두 영향력을 가지려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롼쭝쩌(阮宗澤) 부소장은 “한국은 미국과도 친하고 중국과도 친하기 때문에 중·미 간 신형 대국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롼 부소장은 중국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박사를 지낸 국내파로 중·미관계, 중국과 한반도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신형 대국관계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 2012년 2월 15일 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공식화한 개념이다. 국제사회는 ‘중국 굴기’에 대해 우려의 눈길로 보고 있다. 중국은 이를 감안해 신형대국관계란 개념을 통해 세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천명한 것이다. →신형 대국관계의 핵심은. -호혜(互惠), 협력, 갈등 통제다.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반드시 져야 하는 제로섬 사고방식을 버리고 서로 협력 면을 넓히면서 갈등을 관리하자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중국이 제안한 신형대국관계 개념을 인정했다. →신형 대국관계의 협력이 한반도 문제에도 적용되나. -한반도 문제는 중·미 두 나라의 협력 영역이다. 한반도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미국에도 해롭다. 중·미가 협력해 이 지역의 갈등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 개념은 한·미가 말하는 것과 다른가.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는 한·미가 말하는 것보다 범위가 넓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려는 것은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기보다 핵개발 포기에 상응하는 안전 보장을 해줘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할 때 북핵 폐기는 물론 핵우산 포기까지 모든 문제를 포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핵 위협이란 북핵을 말하는 것인데. -한국은 북핵 개발도 싫고 자신들의 핵우산 포기도 싫어한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과 군사협력을 강화한다. 동맹을 강화할수록 북한의 위협은 커진다. 한국의 방어는 북한에서 볼 때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다. 그래서 북한은 핵개발을 강화한다. 이 같은 악순환을 깨뜨려야 한다. →신형 대국관계 속에서 중국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은. -한국은 미국과도 친하고 중국과도 친하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가져야 한다.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중·미 사이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항상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한국과 소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중국이 한국을 친구로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곤란하다. 우리는 한국이 노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 할 대상으로 중국을 바라보기 바란다. →양국이 어떻게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나. -중국은 오랜 기간 북한과 관계를 맺어 왔고, 한·미 간 동맹도 그만큼 오래됐다. 중·한 간 특정 사안을 두고 의견 차가 있을 수 있다. 그때마다 ‘역시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단정짓는 것은 신뢰 관계 구축에 도움이 안 된다. 양국이 이성적인 대화를 자주 하고 감정적인 부분은 배제하면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중국이 신형대국관계 속에서 한국에 기대를 거는 까닭은. -중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선 평화로운 주변 환경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고 이를 위해 한국의 협조가 절실하다. →중·북 간 정상회담설이 나오는데. -시기상조다. 최고위급 대화를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현안이다. 북한이 핵사찰을 허용해야 한다. 한·미가 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요구하는 최소한의 비핵화를 북한이 바로 이행해야 한다. →중국에서 김정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데. -중·북은 중조우호조약을 체결한 국가로 동맹이자 형제 관계다. 우리는 김정은이 경제개혁과 민생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힘써 주기 바랄 뿐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충남 삽교역 폐침목 재활용? 폐기처분?

    “재활용할 수 있는데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미관상 좋지 않고 환경이 오염되니 처리하라.” 철도 폐침목 적치를 놓고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충남 예산군 삽교읍 주민들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16일 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장항선 옛 삽교역 부지에 콘크리트 침목 2000여개와 나무 침목 20여개 등 모두 700t 안팎의 폐침목 더미가 쌓여 있다. 이는 2009년 장항선 개량사업으로 철로가 이전되면서 폐철로 밑에 깔려 있던 것을 철거해 쌓아 놓은 침목들이다. 당초 폐침목은 산책로 계단이나 조경공사 테두리용으로 많이 재활용돼 공단 측이 개당 2만원 이상을 받고 자치단체나 조경업자 등에게 팔던 인기 품목이었다. 그 이전에는 동남아 국가 등에 수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폐기물관리법 개정으로 나무 폐침목이 환경오염 유발원으로 지목되면서 판로가 막혔다. 썩지 말라고 칠한 방부제 기름에 발암물질이 함유돼 있다는 이유였다. 현재로서는 선박을 만들 때 받침용 정도로 쓰이지만 활용이 많지 않은 상태다. 이곳 폐침목도 판매 중 법적 규제와 판로난 때문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 관계자는 “요즘은 나무 침목 대신 튼튼하고 관리가 편한 콘크리트 침목으로 바꾸고 있다. 삽교역 부지에 쌓여 있는 콘크리트 침목은 상태가 온전하지 않아 철로로 재활용하기는 어렵다”면서 “그냥 버리면 아까운 데다 폐기물 처리비가 적지 않게 들어 옹벽 공사업자들이 구입해가지 않을까 해서 쌓아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주택가 가까운 역 부지 맨땅에 아무렇게나 쌓아둬 미관상 좋지 않고, 콘크리트 침목은 철근이 드러날 정도로 깨지고 부서져 안전사고 위험과 토양오염 등이 우려된다”고 즉각 처리를 요구했다. 민원이 계속되자 공단은 폐기물업체에 맡겨 폐침목을 처리하기로 하고 이날 예산군에 폐기물처리를 신고했다. 예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영화관·마트·도서관서 한번 쓰고 휙… 내가 쓴 우산 비닐아 어디로 갔니?

    [주말 인사이드] 영화관·마트·도서관서 한번 쓰고 휙… 내가 쓴 우산 비닐아 어디로 갔니?

    “음…, 글쎄요. 지금까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어떻게 처리되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주부 김모(55·여)씨는 비가 오는 날 중소형 유통매장에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매장 입구에 설치된 우산 비닐 포장기를 마주한다. 하지만 쓰고 난 우산 비닐 포장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씨는 “언제부턴가 비 올 때마다 우산 비닐 포장을 자연스럽게 쓰다 보니 낭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면서 “한 번 쓰고 휴지통에 버려진 비닐 포장은 수거해서 재활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제는 음식점이나 영화관, 미술관, 백화점, 도서관 등 웬만한 공공 장소에는 비가 내릴 때 우산을 넣을 수 있는 비닐 포장기가 설치돼 있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들은 바닥 물기를 제거하느라 비상이 걸린다. 바닥에 물기가 많으면 미끄러져 손님들이 낙상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열 판매되는 제품들도 손님들이 갖고 온 우산의 물기가 떨어지면 낭패를 볼 수도 있어 직원들은 긴장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비 오는 날이면 대형 건물이나 공공장소 입구에 우산 비닐 포장기 비치는 필수가 됐다. 설치된 비닐함에 우산을 꽂아 당기기만 하면 될 만큼 포장기 성능과 사용 방법도 편리하다. 문제는 사용한 비닐 포장이 훌륭한 자원으로 재활용될 수 있는데 그냥 버려진다는 점이다. 이용하는 사람들도 한 장소에서 쓴 비닐을 가지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새로운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또 다른 비닐 포장을 소비한다. 일회용품처럼 쓰이고 있지만 재활용률은 저조한 실정이다. 서울 대형마트 관계자는 “사용한 우산 비닐은 수거함에 모아서 일반 쓰레기처럼 버린다”면서 “버린 비닐 포장을 펴서 정리하려면 인건비가 더 들어가고 미관상 좋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현재 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리는 우산 비닐 포장의 재활용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통계조차 없다. 환경부의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보면 식당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비닐식탁보, 물건을 담을 때 주로 쓰는 검은 비닐은 ‘일회용품’ 규제 목록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우산에 씌우는 비닐은 따로 규정이 없다. 규제 대상 일회용품 품목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산자가 의무적으로 수거해서 재활용해야 하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 적용 대상 품목도 아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라면, 과자봉지와 같은 포장재나 일회용 봉투를 제조하는 업체 가운데 연간 매출이 10억원 이상이고 연간 출고량이 4t 이상 되는 곳이 재활용 의무 생산자”라면서 “우산 비닐을 제조하는 업체들 대부분이 영세하기 때문에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우산 비닐을 규제 대상에 넣으려면 법규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우산 비닐은 재활용 의무 대상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처리도 제각각이다. 비닐과 같은 플라스틱 필름류를 만드는 업체 중 재활용 시설을 갖추지 못한 업체는 ‘폐기물 부담금’을 내야 한다. 폐기물 부담금을 낸 제품은 재활용이 되지 않고 소각 또는 매립 처리된다. 그런데 우산 비닐 생산업체 대부분은 연간 매출액이 적어 폐기물 부담금마저 일부 감면받는다. 업체 차원의 재활용 처리 부담이 적다 보니, 우산 비닐은 일반 폐기물처럼 매립지에 그대로 버려지는 형편이다. 비닐을 포함한 플라스틱 제품은 환경부와 제조업체가 ‘자발적 협약’을 맺는다. 협약을 맺은 업체는 부과된 재활용 의무량을 채울 경우 폐기물 부담금을 면제받는다. 하지만 우산 비닐 생산자 가운데 이 협약에 응한 업체는 한 곳도 없다. 우산 비닐은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으로 만든다. 전문가들은 “지하 상하수도용 파이프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는 HDPE는 고농축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자연상태에서 자외선을 받거나 산소, 미생물 등과 결합해도 분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우산 비닐이 그대로 자연에 버려진다면 토양오염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산 비닐 처리량도 정확히 집계가 되지 않고 있다. 김두형 환경부 폐자원관리과 사무관은 “폐기물 중에서 ‘플라스틱류’라는 항목은 있는데 비닐류만을 따로 나눠서 폐기물 처리 현황을 집계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과 비닐은 똑같이 석유로 만들기 때문에 따로 항목을 나눠 집계한다고 해서 특별히 의미가 있거나 실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산 비닐의 사용량은 급증하고 있다. 대형마트나 음식점, 관공서 등은 비오는 날 우산보관함을 설치하는 것보다 비용 부담이 적어 우산 비닐 포장기를 선호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현재 총 9개의 우산 보관함이 설치돼 있다. 보관함 1개당 우산 30개를 보관할 수 있다. 보관함 1개의 구입 비용은 약 37만원. 반면 우산 비닐 포장기 가격은 그보다 저렴한 24만원 정도다. 비닐값은 1장에 20원꼴이다. 포장기를 한 번 구입한 다음에는 한동안 비닐만 새로 구입하면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특별 전시전을 열 때 기존 우산 보관함과 물품 보관함만으로는 많은 관람객의 우산을 보관할 수 없어 우산 비닐도 함께 사용한다”면서 “비닐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별도 구입 시 예산상의 큰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국내 한 백화점은 점포 확장과 함께 우산 비닐 구입량도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 관계자는 “2009년에는 155만장이었는데 지난해 460만장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고 귀띔했다. 기술적으로 모든 비닐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비닐의 경우 발열량이 좋기 때문에 에너지원으로도 각광을 받는다. 가연성 폐기물 에너지화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비닐은 화력발전소, 시멘트 회사, 제지 회사 등에서 고형연료 제품(SRF)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형연료 제품은 생활 폐기물, 폐고무, 폐타이어, 폐합성수지류 등을 선별, 성형해 고체 상태로 만든 것을 말한다. 폐비닐로 만든 연료는 발열량이 kg당 6500~8000kcal로 무연탄을 태울 때 나오는 열량(4000~5000kcal/kg)보다 높다. 양경연 환경부 폐자원에너지과 서기관은 “고형연료 제품이 화석연료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약 10년 전부터 산업용 연료로 쓰이고 있다”면서 “어차피 매립, 소각해야 하는 폐기물을 열원으로 재활용하면 그만큼 화석연료 사용량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처리량 못지않게 생산량과 사용량도 가늠할 수가 없다. 일각에서는 우산 비닐이 연간 1억여장이 소비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용규제 대상이 아니다 보니 공식적인 통계로 생산량이 잡히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도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조원택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이사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회사 약 1만 2000곳 중 필름류를 만드는 회사는 4000개 정도에 달한다”며 “이 가운데 우산 비닐을 만드는 업체 수를 추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생산량도 파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현재로서는 우산 비닐이 소비만 될 뿐 사후 재활용이나 분리배출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기획팀장은 “우산 비닐 등이 플라스틱류로 제대로 분리 배출된다면 훌륭한 재생 제품이나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자원 재활용 차원에서 규정을 바꿔서라도 자원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로선 우산 비닐처럼 아까운 자원이 버려져 땅에 묻히거나 불로 태워도 법 테두리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에 제재할 방법이 없다”면서 “폐기물 부담금 부과 대상 업체도 부담금만 낼 뿐 실질적으로 재활용 처리 책임은 없으니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포토 갤러리] 얽히고설킨 전선

    [포토 갤러리] 얽히고설킨 전선

    서울 마포구 대흥동 일대 전신주에 전선이 셀 수 없을 정도로 걸려 있다. 전신주에는 전력 공급용 전선과 유선방송, 인터넷 통신용 전선들이 빽빽하게 연결돼 있다. 비바람이 강한 장마철에는 전신주가 자칫 쓰러지기라도 하면 전선과 함께 도로 위의 흉기가 될 수 있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난해 서울시에 접수된 전선 사고와 무단 설치 민원은 6000건을 웃돈다. 전선 중에는 서비스가 끝났는데도 철거하지 않은 폐전선도 적지 않다. 전신주 공중선 점용료와 허가제를 놓고 한국전력과 갈등을 빚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많다. 지자체들은 사고 예방과 도시 미관을 위해 전선 지중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종로, 보행장애물 철거

    서울 종로구는 도시 비우기 사업의 하나로 보행 지장물 정비 사업을 추진한다고 8일 밝혔다. 종로1가부터 6가 양쪽 보도에 설치된 노점 및 적치물 방지용 펜스 83개가 대상이다. 이번 사업은 2010년 ‘걷기 편한 종로 거리 조성 사업’으로 종로대로 노점들이 이면도로로 옮겨 간 후 기능을 잃은 펜스가 보행에 큰 불편을 주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구는 이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펜스를 철거하고 있으며 보도 판석 재설치 등 모든 공사를 이달 안에 끝낼 계획이다. 구는 올해 초부터 쾌적한 도시 환경을 조성하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시 시설물 비우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각종 안내 표지판, 전신주 등의 각종 지주와 보도블록, 펜스, 교통 표지판, 신호등, 가판대, 입간판 등 보도에 설치된 모든 시설물 가운데 불필요하거나 경관을 해치고 기능이 겹치는 것을 정비 대상으로 한다. 김영종 구청장은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위험 요인이 됐던 펜스를 제거함에 따라 복잡했던 종로대로가 보행자 중심의 행복 거리로 거듭나는 등 시민들이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정부, 美에 ‘주미 대사관 도청’ 사실 확인 재요청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한국을 비롯한 38개국의 주미대사관을 도청했다는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와 관련, 우리 정부가 3일 미국 정부에 사실관계 확인을 다시 요청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이번 보도가 사실일 경우 한·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확인 결과에 따라 정부는 적절한 조치를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청 의혹’ 사실관계 확인 요청은 이날 외교부와 주한 미대사관 접촉을 통해 전달됐다. 정부가 미국에 도청 의혹과 관련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은 두 번째다. 정부는 지난 1일 보도 직후 주미대사관을 통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혜진 외교부 부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에 있고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적절히 취해 나갈 것”이라면서 ‘외교채널’을 통해 미국 정부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민선 5기 3년! 구정의 품격] 김영종 종로구청장

    [민선 5기 3년! 구정의 품격] 김영종 종로구청장

    2011년 12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등 4개 기관이 공동으로 진행한 ‘사회의 질’ 조사에서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위를 차지한 곳이 있다. 건강 도시, 전통 도시를 표방하는 종로구다. 3년째 종로구를 이끄는 김영종 구청장은 2010년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공약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정도로 발로 뛰는 행정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그가 내세운 건강 도시 정책으로 종로구는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연구원 평가에서 수도권 10대 건강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 구청장은 취임 3주년 인터뷰에서 “건강 도시, 전통 도시 종로구를 만드는 데 주력했고 앞으로도 더욱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도시 비우기 사업 등을 통해 더 살기 좋은 종로를 만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건강 도시 만들기 정책에 대해 그는 “취임 후 무단 투기의 온상이었던 방치된 땅들을 도시 텃밭으로 만들어 곳곳의 쓰레기 1062t을 치우고 39곳에 7223㎡(2185평)의 도시 텃밭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물청소 차량 10대, 물푸미 4대, 보도 물청소 장비 4대 등을 이용해 모든 간선도로를 비롯해 골목길까지 매일 물청소 작업을 벌인다. 김 구청장은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세종로, 인사동, 북촌, 대학로, 청계천 관광특구는 ‘상시 특별 물청소 지역’으로 설정해 하루 두 차례 물청소를 한다. 자연스럽게 종로 지역 공기와 환경이 나아졌다”고 전했다. 김 구청장은 성과 중 하나로 ‘세종마을 푸르메센터’ 개관을 꼽았다. 그는 “장애 진단부터 재활, 자립을 돕는 일을 모두 한곳에서 할 수 있는 신개념 장애인 복지관을 지난해 7월 개관했다”며 “맹학교와 농학교가 위치한 지역으로 구에서 부지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김 구청장의 스마트폰 사진첩에는 종로 지역의 모습만 담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길을 걷다가 주민들이 불편함을 느낄 만하다고 생각되면 지체 없이 사진을 찍어 직원들에게 개선하라고 이야기한다”면서 “3년쯤 지나니 이제 직원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역의 문제점 등을 찾아내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전봇대에 중구난방으로 둘러쳐진 철사 줄이 아이들 안전을 위협해 정리하고 다니기도 했다. 주민 삶의 질 높이기에 애쓰다 보니 대외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김 구청장은 인왕산 아래 수성동계곡 복원 등 전통 도시 구축 사업에서도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김 구청장은 후반기 중점 사업으로 도시 비우기를 꼽았다. 그는 “거리에 무분별하게 난립한 신호등, 단속카메라, 가로등, 교통안전표지판 등의 지주 시설물이 도시 미관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면서 “폐쇄회로(CC)TV도 자치구, 경찰, 교통방송 등 3개 기관이 운영해 복잡했는데 종로구에서 나서 통합 작업을 벌인 결과 큰 호응을 얻게 됐다”며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성형효과 내는 치아교정, 정확한 상담과 진단 중요

    성형효과 내는 치아교정, 정확한 상담과 진단 중요

    대학을 다니고 있는 이진아(가명·21)는 우연히 대학 동기 중에 예쁘다고 소문난 동기의 과거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많은 남학우의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던 것. 성형했을 거라는 의혹이 들었지만, 동기와 같은 학교를 나온 이들은 치아교정만 했다며 성형의혹을 일축했다. 치료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이 씨는 자신도 평소 튀어나온 앞니를 반듯하게 바꿔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치과를 찾았다. 최근 위와 같이 일반인들 외에도 교정을 받은 많은 연예인이 눈에 띄게 달라진 외모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에 미용을 목적으로 치과를 찾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치료는 보통 윗니와 아랫니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부정교합이나 고르지 못한 치아 배열을 반듯하게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요즘은 여기에 조금 더 나아가 돌출입이나 주걱턱 등의 증상을 완화하는 안면윤곽 효과도 기대하는 방법들도 시행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미관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양악수술에 버금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법으로 환자들의 기대치가 높다. 기술의 발전으로 치료 기간도 짧아진데다 겉으로 심하게 드러나는 장치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투명한 장치 등 효과적인 방식들이 나와 있어 편리함까지 갖췄다. 치료방법에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금속과 치아 색과 유사하게 제작되는 세라믹, 호선을 묶는 과정을 생략한 클리피씨, 치아의 안쪽에 장치를 설치하는 설측 방식 등이 있다. 이들 시술법은 심미 증진을 위한 꼭 필요한 치료로 인식되면서 환자들이 지속해서 느는 추세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도 개인의 치아 상태에 따라 적합한 방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치료 경험이 많은 전문의를 통해 정확한 상담과 진단을 받고 세심하게 진료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공공디자인, 길 위의 미술관서 배워요

    “길이 아니라 갤러리 같아요.” “어둡고 칙칙한 지하보도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어요.” 서울 중랑구 상봉동 지하보도인 ‘토끼굴’을 찾은 아이들이 이렇게 입을 모았다. 원래 이 굴은 어둡고 무서운 곳이었다. 중랑구는 이 굴을 2009년 공공디자인 개선 대상으로 지정해 나비 모빌을 달고 화사하게 꾸몄다. 덕분에 이 길은 출퇴근과 등하교에 요긴하게 쓰인다. 사람을 불러모아 공간의 이미지를 바꾸는 공공디자인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중랑구는 17일 초중고교생을 상대로 공공디자인에 대한 견학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견학 프로그램은 담장 벽화, 지하보도, 망우시계, 소통의 문 같은 공공디자인 설치 현장과 불법 간판을 재정비한 망우로 디자인서울 거리, 간판을 정비 중인 망우동 맛솜씨길 같은 곳을 찾는 것이다. 현장 견학을 통해 공공디자인이 어떻게 도시의 미관을 바꾸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교육의 장이다. 지역 초중고교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北, 북·미 고위급회담 제안]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건 北, 진정한 대화의지 없기 때문”

    북핵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 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4일(현지시간) 최근 남북당국회담 무산에 대해 북한이 진정한 대화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데이비스 대표는 이날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워싱턴포럼’에서 “북한 측의 수석대표가 누가 될 것이냐를 놓고 벌어진 결과를 보고 실망했다”며 “이는 북한이 외교나 대화에 나서겠다는 근본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데이비스 대표는 포럼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의 도전에 대해 원칙적인 접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며 “무엇보다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남북관계와 (북한 내) 인권문제의 지속적인 개선이 없다면 북·미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은 있을 수 없다”며 “이웃국가들에 대한 북한의 도발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게 불변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지난해 ‘2·29 합의’ 파기 이후에도 뉴욕채널을 유지하는 등 북한과 계속 얘기하고 있고, 북한과의 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이달 말로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 이전 북·미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 계획된 건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새 정부의 그랜드 디자인/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새 정부의 그랜드 디자인/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넉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진용도 갖추어지고, 바야흐로 새롭게 출범한 정부다운 면모를 다듬어 가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현안과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외정책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국내정치도 물론 쉽지 않지만 북한을 포함한 주변정세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국제사회의 제재, 일본의 우경화, 중국의 부상, 한·미관계의 재조정 등 새 정부 출범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대북관계와 주변 4강 관계는 한반도 대외정책의 핵심이다. 올 초부터 심각하게 전개된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의 제재, 그리고 개성공단 폐쇄에 이르는 일련의 긴장국면은 새 정부의 가장 큰 시련이 되고 있다.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한·미 간의 안보협력과 정책공조 역시 지난번 대통령의 방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제였다. 이달 말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점차 중요해지는 한·중관계에 대한 비중 있는 논의가 기대된다. 한편 주변 국가들과의 감정적 대립을 불사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깊어만 간다. 그런데 이런 여러 현안들을 죽 펼쳐 놓으면 무언가 큰 그림이 떠올라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 퍼즐조각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지만 이것들을 다 맞추었을 때 전체가 하나로 뭉쳐지는 그림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새 정부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퍼즐조각을 찾기도 힘겨운데 큰 그림도 함께 그리라니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퍼즐이 맞추어지는 과정을 관람해야 하는 국민들 입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종착점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그랜드 디자인’이 약하다는 데 있다. 국내정치 차원에서는 다양한 공약들이 정책화되면서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의 그림들이 빠르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대외정책의 차원에서는 다양한 이슈들을 한데 모으는 국가전략, 큰 그림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말하자면 한반도 현안과 주변 4강에 관련된 이슈들이 결국에는 우리의 어떤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 담론이 없다는 것이다. 원칙을 중시하는 철학이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중요한 정책 가이드라인이지만, 어디까지나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무경험이 풍부한 외교안보라인이 많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한데 묶는 통합 프레임워크가 여전히 선명하지 않다. 백범 김구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국가가 ‘아름다운 나라’로서 ‘문화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언급했다. 우리는 스스로 풍족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과 남의 침략을 막아낼 정도의 군사력만 가지면 족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다만 ‘문화력’만큼은 한없이 가지고 싶어 했는데, 이를 통해 우리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정신을 배양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문화가 필수적 요소라고 보았다. 백범은 우리나라가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으로서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평화의 기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범이 신생 대한민국의 정부를 맡을 기회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의 ‘문화국가’는 분명 미래의 나라 모습을 그려낸 큰 그림이었다. 매번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마다 국가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하나로 묶어 미래의 청사진으로 그려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국가전략은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토대로서 의미가 있지만,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궁극적인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복잡다단한 현안들을 헤쳐 나가면서 장차 우리가 도달하려는 목표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세계무대의 ‘주연 배우’로서 우뚝 서는 문화국가를 제창했던 백범, 국가적 ‘그랜드 디자인’을 그려야 하는 지금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선각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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