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더 폴
한 남자가 오래 전에 본 불가리아 영화 ‘요호호’에 반해 리메이크를 결심했다.자신의 꿈이 세상으로부터 별 관심을 못 얻자,그는 뮤직비디오와 광고 연출로 벌어들인 재산을 쏟아붓는다.20여개 국가를 돌며 영화를 촬영하는 데 꼬박 6년이 걸렸고,개봉을 위해 다시 2년의 세월이 흘렀다.타셈 싱의 ‘더 폴’이 관객과 만나기 전에 걸어온 눈물겨운 과정은 그렇다.
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소녀는 같은 병원에 입원한 남자와 우연히 만난다.전직 스턴트맨인 그는 무슨 속셈인지 소녀를 붙들고 다섯 남자의 영웅담을 들려준다.‘더 폴’은 모험과 환상이 어느 순간 현실과 조우하면서 벌어지는 영화다.영화의 압도적인 비주얼을 두고 혹자는 공허한 이미지와 허술한 이야기의 결합이라는 푸념을 늘어놓는데,고작 영화 두 편을 연출한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이니 억울해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더 폴’의 대담한 영상을 제대로 읽으려면 세심한 감상이 요구된다.‘더 폴’은 사치스러운 영상물이기 이전에 영화의 눈,입과 귀,손발에 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영화의 대부분 장면은 컴퓨터그래픽(CG)의 도움 없이 자연과 인간의 위대한 창조물을 펼쳐 보인다.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피사체를 전부 현실에서 건져냈다는 사실은 관객을 영화의 시작점으로 데려간다.19세기 사람이 스크린으로 본 첫 번째 경이로운 이미지는 역으로 들어서는 기차였다.‘더 폴’은 카메라,즉 영화의 눈이 맡은 역할을 곰곰 생각한 결과물이다.
이야기하는 남자와 듣는 소녀는 영화의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의 메타포다.나름의 욕심을 채우려는 연출자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관객이 연상되는 두 사람은 이야기하기와 영화 만들기의 원초적 형태를 재현하면서 영화의 눈과 귀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더 폴’은 연기하는 자-영화의 손발에 대해 이야기한다.영웅들이 모두 떨어져 죽는 끝에서,영화는 수많은 배우와 스턴트맨의 낙하 연기를 파노라마로 보여준다(떨어지는 연기를 하다 반신불수가 된 로이의 사연도 들어 있다).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왜 배우들은 낙하를 시도하며,왜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왜 관객은 극장에 들어서며,왜 카메라는 세상을 담는 것일까.그 대답이 바로 ‘더 폴’의 주제다.1920년대가 배경인 ‘더 폴’은,그러니까 영화의 새벽과 아침에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원제 ‘The Fall’,12월4일 개봉).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