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대중문화예술인 심상욱 감독
요즘 연예계는 소위 ‘고참’들의 복귀가 화제다. 80년대를 주름잡았던 개그맨 최양락, 이봉원의 성공적인 컴백이 그 예다. 특히 ‘황제의 귀환’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최양락의 재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서 활동해 왔기 때문에 방송계 공백이 길지는 않다고는 하지만 단숨에 모 예능프로의 MC까지 꿰찰 정도로 최신 예능 트렌드에도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이다.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예능계(?)는 아니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저력을 되찾아가고 있는 대중문화인이 있어 화제다. 국내 헤비메탈의 1세대 뮤지션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인 심상욱씨가 그 주인공. 심상욱 감독은 시나위, 백두산 등과 함께 동시대에 활동하며 국내에 헤비메탈 문화의 붐을 창조해낸 산파였다. 심 감독이 이끌었던 메탈밴드 ‘뮤즈에로스’의 1집 ‘한민족의 숨소리’, 2집 ‘어머니의 땅’은 아직도 헤비메탈 매니아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전설 같은 앨범들이다.
그가 뮤즈에로스라는 특정한 밴드의 멤버로만 활동한 것은 아니다. ‘Metal Project’라는 대중음악 무브먼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80년대 전반에 걸쳐 그룹 사운드의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현재 대중음악계의 중진들로 꼽히는 이승환, 손무현, 신윤철, 오태호, 이근상씨 등이 당시 심 감독과 함께 한국 헤비메탈의 중흥을 이끈 주인공들이다.
90년대 이후 댄스음악과 발라드에 밀려 락과 헤비메탈의 인기가 사그러질때에도 그는 끈질기게 버텼다. 김경호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 이현석 등 소위 메탈 2세대로 평가받는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90년대 후반까지 현역 뮤지션으로서 활동하며 헤비메탈의 전사임을 잊어본 적은 없었다.
그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애니메이션 감독, 뮤직비디오 감독, 영화 감독 등 비주얼예술 분야에서도 고참이다. 응용미술을 전공한 그는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80년대 후반부터 이미 다수의 CF 제작에 참여한다. 신성우 4집과 5집, 김종서 5집 ‘추락천사’ 등 많은 히트 앨범들의 커버디자인도 그의 작품이다. 물론 그의 밴드 ‘뮤즈에로스’의 앨범 커버 제작도 그의 몫이었다. 97년의 화제작 영화 ‘퇴마록’에서는 미장센 및 메커니즘의 모든 프로덕션 디자인을 담당해서 그 해에 청룡영화제 기술상을 수상했다. 90년대 이후 발표된 수많은 영화, 애니메이션, CF 중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았던 작품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현재는 Finder Film이라는 영화사 대표로서 ‘전설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뮤지션으로서,영화감독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그가 요즘 다시금 조명받는 이유는 ‘뮤즈에로스’의 컴백 때문이다. 2008년 말에 서울 연희동의 작은 클럽에서 10년만에 뮤즈에로스의 공연을 마친 뒤 만감이 교차했다. 뮤즈에로스를 기억하는 올드 팬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제는 중고음반가게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뮤즈에로스의 LP판을 들고 사인을 요청하는 오랜 팬 하나하나가 뮤즈에로소의 귀환에 힘을 실어줬다. 클럽에서 시작한 재결성 공연도 홍대 상상마당이라는 더 큰 무대로 옮겨졌다. 올해는 더 많은 팬들을 위해 빡빡한 공연 스케쥴도 세우는 중이다. 이제는 각자의 분야에서 생업에 바쁜 멤버들도 많은 부분을 희생해 가며 그의 취지에 적극 공감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분야에서 장인정신으로 살아온 심상욱 감독의 행보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