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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기청정기 제대로 사자

    ■ 공기청정기 구입요령 공기청정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대기오염으로 비염·천식·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다,올봄에는 사상 최악의 황사 발생도 예보되고 있기 때문이다. 송운철 하이마트 공기청정기 바이어는 “최근 들어 웰빙 열풍과 올봄 최악의 황사 경고로 공기청정기의 판매량이 연초의 하루평균 150여대에서 최근 들어 200여대로 급증했다.”며 “매출액도 전년동기보다 3배 이상 폭증했다.”고 말했다. 공기청정기는 정화 방식에 따라 ▲필터식 ▲전기집진식 ▲워터필터식으로 나뉜다.필터식은 필터를 이용해 실내 공기의 오염물질을 걸러낸다. 1단계는 큰 먼지를 걸러주는 프리필터,2단계는 미세 먼지를 제거해주는 헤파필터,3단계는 냄새를 없애주는 활성탄필터로 구성돼 있다.최재희 한국소비자보호원 미디어팀 차장은 “프리필터는 3∼4개월,헤파·활성탄필터는 1년에 1회 정도 교체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필터식은 필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하는 탓에 추가비용이 든다.”고 설명한다.필터 가격은 1만 5000원에서부터 1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전기집진식은 방전 원리를 이용한 집진판으로 오염물질을 제거해 준다.미세 먼지까지 집진되므로 먼지가 많은 곳에 더욱 효과적.제때 청소를 해주기만 하면,필터를 교체하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물이 필터 역할을 하는 워터필터식은 오염물질을 물속에 침전시켜 제거한다.필터로 쓰는 물에 세균이 번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지만,추가 비용은 없다.음이온식은 공기가 맑은 산속 등에 많은 음이온이 공기중의 오염물질과 결합해 오염물질을 없앤다.하지만 이때 오존이 발생하는데,지나친 오존은 건강을 해칠 수 있다.오존발생 안전 테스트를 거쳤는지,오존 조절레버가 있는지 등을 꼭 확인해야 한다. 신세계 이마트는 청풍·동양매직·한일·일렉트로룩스를 8만 5000∼55만원에 선보였다.롯데마트는 삼성 은나노(12평형) 42만원,청풍(20평형) 63만원(+오성 복합식 가습기),도시바(10평형)를 42만원에 내놓았다.공기청정기를 구매할 때는 개인·가정마다 필요에 따른 기능을 잘 확인해야 한다.담배연기가 심한 곳이라면 냄새제거 기능이 있는지 확인하고,알레르기 질환이 있을 때는 집 먼지나 진드기 등 미세 먼지를 걸러줄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특히 에어컨 등의 공기청정 기능을 부가한 제품은 일반 공기청정기 제품보다 공기청정 기능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김광기 테크노마트 정진가전 실장은 “공기청정기의 제품에 표시된 면적은 최대 사용가능 면적이므로 구입할 때는 집안 면적의 1.5∼2배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며 “제품 보증기간과 사후관리 범위,교환·환불에 대해서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규환기자 khkim@ ■ 황사 무섭다고? 이제품 써봐 ‘황사예방 용품’들이 주가를 높이고 있다.올봄 황사가 사상 최악일 것이라는 기상예보로 백화점·할인점의 황사예방 용품의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최고 50%까지 증가했다. 민경환 신세계 이마트 바이어는 “일교차가 큰 봄철에는 지표면의 공기는 찬 대신,지상의 공기는 따뜻해 대기중에 있던 황사가 높이 떠오르지 못하고 내려 앉아 호흡기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 황사예방 용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매출액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27일∼3월5일 기관지나 목에 끼여 있는 미세한 먼지를 잘 제거해 주는 ‘돼지고기 기획전’ 행사를 실시한다.이 기간중 자연농법의 무항생제 돼지고기인 ‘루소포크’,‘제주 청정 흑돈’,‘보성 녹돈’ 등 다양한 기능성 돼지고기를 선보인다.가격은 100g 기준으로 1600∼1890원.서울 목동점은 오는 4월 초순까지 ‘황사용품 모음전’을 연다.3M 황사마스크(2700원),덴타 가글(2200원),산소캔(5ℓ·4000원) 등을 판매한다. 신세계 이마트는 3월1일까지 ‘황사상품 기획전’을 진행한다.유모차 시력보호 비닐커버(1만 5000∼2만원),어린이용 캐릭터 마스크(1500∼2000원),가그린(750㎖·4000원),어린이 전용 물티슈(1팩·2000원선),아토피성 피부에 좋은 아토피코 비누·샴푸·크림(9500∼1만 5200원) 등을 내놓았다.롯데마트는 3월 말까지 벙거지모자(1만 1800∼1만 3800원),캐주얼 모자(6800∼9800원),보디샤워제품(5000∼8000원) 등을 출시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3월3일까지 스카프(9800∼2만 7800원),선글라스(2만 9000∼4만 5000원),클렌징 화장품(4500∼9900원) 등을 선보인다.그랜드마트는 차량용 공기정화기(6만 8000원),성인용 3M 방진마스크(1400원)를 판매한다. 김규환기자 ˝
  • [우수기업&우수상품②]하이트맥주-젊음과 신선함 강조 ‘깨끗한 맥주’

    100% 암반천연수로 비열처리를 했으며 ‘Dry Mill공법’, ‘MF공법’ 등을 통해 맥주의 쓴맛을 제거했다. 이같은 맛의 차별화를 통해 1993년 출시 이후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젊고 신선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상표를 교체했다. 병과 캔 정면의 주 상표 색상을 은색으로 바꾸고 알루미늄 포일 재질의 상표를 부착했다.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활용해 자연친화적인 컨셉트를 유지했다. 상표의 제품 슬로건도 ‘대자연이 있다 맥주가 있다’에서 ‘깨끗한 물 깨끗한 맥주’로 바꿨다. 여배우 고소영이 모델로 등장한 지난 2002년 1차 광고 캠페인 ‘180도 기분전환’ 시리즈를 통해 제품의 가치를 크게 높였다. 신세대 스타 김래원이 등장하는 2차 광고 캠페인에서는 ‘180도 기분전환’이란 의미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 함께 마시는 사람과의 관계까지도 새롭게 바꿔주는, 넓은 의미의 상쾌함을 소재로 했다.˝
  • ‘최고 장수식’은 전통한국식단

    쌀을 주식으로 하는 전통적인 한국식단이 ‘장수식’으로 알려진 지중해식 식사보다도 훨씬 뛰어난 ‘건강식’인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인의 식이와 건강’이라는 연구결과에 따르면 밥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식단은 총열량면에서나 채소류·생선류·육류 등 섭취 비중에서도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1일 평균 섭취 칼로리가 1976㎉,대표적인 지중해식인 그리스는 1815㎉,미국은 2146㎉로 3국 모두 적정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3대 영양소에선 현격한 차이가 났다.한국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지방의 분포가 66대16대19인 반면 그리스는 44대14대40,미국은 52대15대33의 비율을 보였다. 또 한국 식단은 육류섭취는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채소섭취는 많은 건강식인 것으로 조사됐다. 1인당 연간 육류소비는 미국이 122㎏으로 가장 많았고,그리스가 91㎏,한국이 42㎏으로 가장 적었다.채소섭취는 한국이 연간 223㎏으로 가장 많았고,그리스가 178㎏,미국이 125㎏이었다.한국인의 채소섭취가 많은 것은 김치를 자주 먹기 때문이다. 생선소비량도 한국이 연간 51㎏으로 가장 많았고,그리스가 25㎏,미국이 21㎏이었다.1인당 생선섭취량이 많은 일본 등에서는 유방암·전립선암 등의 발생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대표적인 건강식품인 콩섭취량도 한국이 1인당 34g으로,그리스식(8.5g),미국식(9.6g)을 압도했다. 한국식단은 적절한 칼로리를 함유하는 등 영양학적인 측면에서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젓갈류 등 염장식품이나 태운 음식 등은 줄여야 할 단점으로 지적됐다. 서울대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는 “한국식을 중심식단으로 하되 현미와 잡곡밥을 늘리고 과일과 물 등을 더 많이 먹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 [Doctor&Disease] 비만 전문의 닉 파이너 교수

    “비만은 좀 불편한 신체상태가 아니라 질환입니다.” 영국 왕립의과대학 심사관이자 세계적인 비만 전문가인 케임브리지대 아덴부르크병원의 닉 파이너(53) 교수는 “최근들어 비만이 외모 문제와 결부되면서 질환으로서의 본질이 왜곡되는 가치혼란과 편견이 심각하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그는 최근 대한비만학회 초청으로 방한했다.전문의들을 상대로 워크숍을 갖는 등 바쁜 일정에 쫓기는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그는 웰빙 붐에 힘입어 한층 높아진 ‘한국인의 비만 인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국 등 아시아권의 경우 복부비만도가 서구인보다 낮아도 문제는 더 심각할 수 있다.”며 “태아기나 유아기에 빈곤으로 인한 영양 결핍상태에 있다가 갑자기 고열량식에 노출되면 상대적으로 비만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만이 질환이라는 근거는. -15년 전쯤에는 의사들조차 비만의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했다.그러다 질환이라는 증거가 속속 제시되면서 비만을 ‘대사장애증후군’,즉 질환의 일종으로 정의하게 됐다.비만은 사람의 활동을 제한하고 수명을 단축시킨다.또 단순히 뚱뚱하다는 문제를 넘어 체내 지방세포는 건강을 위협하는 수십가지의 물질을 생성한다. ●지방세포 생성물이 건강 위협 지방세포에서 생성되는 물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대표적인 것이 렙틴이라는 호르몬이다.세포의 비만 정보를 대뇌에 전달하는 메신저 기능을 하는데,이 호르몬이 돌연변이의 영향을 받을 경우 무엇을 먹어도 비만해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또 염증 유발 단백질,혈전과 혈류장애도 지방세포의 악영향이다. 사실,비만은 자체로도 부담스러운 질환이지만 사회적 편견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일부 학교에서 비만 학생이 집단따돌림당하는 사례가 이런 의식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파이너 교수는 이를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영국에서 6세 어린이들에게 팔이 없는 아이,눈이 없는 아이,살찐 아이를 제시하며 누구와 친구를 하겠느냐고 물었는데,살찐 사람과는 아무도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이는 명백한 가치혼란이자 편견이다.” ●한국 국민의 28%가 비만 아시아권,특히 한국의 문제는 어떤가. -2006년까지 아시아권에서 1억 6000만명의 당뇨병 환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으며,주요 원인은 비만이다.한국도 예외는 아니다.한국 여자의 17%,남자의 11%가 비만이라는 자료를 봤다.국민의 28%가 비만이라면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비만 상태를 보이는 나라가 미국인데,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2020년 무렵에는 한국도 지금의 미국처럼 될 것이다. 사태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원인은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은 식습관 등 생활습관이다.미국의 비만전문가인 조지 브레이는 ‘비만은 총,유전적 소인은 총알이며,그걸 발사하는 것은 생활습관’이라고 지적했다.유전적 소인도 중요하지만 생활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비만은 발현되지 않는다.예컨대 기아상태에서는 비만의 소지를 가졌어도 비만해지지 않는다. 생활습관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지방과 탄수화물 과다섭취가 문제다.기름에 튀긴 감자에 버터나 크림을 발라 먹는 일이 일상화됐다.전통적으로 채소와 생선을 많이 먹어온 한국도 최근 상황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잠깐 거리를 둘러 봤는데,곳곳에 위험한 푸드코트(식당가)가 늘어서 있더라.(그는 서울 체류 중 코엑스 등 강남 일대를 주로 산책했다.)아시아권에서 팜유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말레이 평원의 고무나무가 모두 베어지고 그 자리에 야자수가 심어졌다.엄청난 양의 육류가 소비되고 있으며 곳곳의 자판기에서는 아무런 규제없이 건강음료라는 이름으로 설탕물이 팔리고 있다.헬스클럽에서 운동을 마친 뒤 설탕이 든 스포츠음료를 마셔 결국 500㎈쯤 열량을 늘려가는 일이 한국에서는 벌어지지 않는가? ●유전적 요인보단 식습관이 좌우 그러면서 그는 “영국에서는 지방 함유량 36%의 식품이 저지방식품으로 팔리고 있다.그들이 적용하는 지방 함유 기준이 40%이기 때문에 그런 어이없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이는 정부의 몫이다.”며 각국의 비만에 대한 무대책을 비판했다. 비만 문제는 그렇다 쳐도 서구인과 한국인에게 똑같은 비만 판정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문제가 있다.비만은 ‘체지방이 지나쳐 건강에 영향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하는데,이를 가늠하는 체질량지수(BMI)를 백인에게 적용할 경우 25 이상은 과체중,30을 넘으면 비만으로 본다.그러나 체형이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인의 경우에는 23 이상을 과체중,25 이상을 비만으로 판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간단하게는 허리 둘레가 남자 90㎝,여자 80㎝를 넘으면 비만으로 봐도 된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점검해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야 하며,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옳다.운동은 비만의 진행을 막는 방법이지 쉽게,효율적으로 살을 빼주지는 못한다. 또 지방흡입술도 비만을 미용적 관점에서만 보려는 왜곡된 인식의 결과로, 결코 적절한 치료법이 아니다.이런 점에서 리덕틸 같은 전문약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내 경험으로는 약물이 포함되지 않은 비만프로그램은 실효성이 없었다. ●정부 차원의 국민비만대책 필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할텐데. -당연하지만,한국 정부의 역할을 내가 말할 수는 없다.단,어린이를 위한 정책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겠다.학교에 콜라나 인스턴트 커피 자판기가 놓인 환경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또 서울처럼 차가 많아 어린이의 야외활동을 제약하는 도시는 도시계획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 ■ 닉 파이너 -전 영국 비만학회장 -전 영국 가이스 앤드 세인트 토머스의대 명예 수석교수 -현 케임브리지대학교 아덴부르크병원 비만의학 선임연구원 및 고문 전문의 겸 루턴대학교 방문교수 -영국 왕립의과대학 평의원˝
  • 경기회복 처방 '3각 딜레마’

    물가·금리·환율 등 경제의 구성요소들이 일관된 방향없이 제각각으로 움직이고 있다.이 때문에 경제정책 운용의 여지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이를테면 지금같이 물가가 불안할 때에는 정책금리(목표 콜금리)를 올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느린 경기회복세와 환율동향 등을 감안할 때 선뜻 택하기 힘든 상황이다. 물가-금리-환율이라는 ‘마의 3각축’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숙제인 동시에 경기회복 속도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물가 뛰는데 수단은 별로 없어 현재 가장 우려되는 경제의 변수는 물가다.1월 소비자 물가는 1년 전보다 3.4%,한달 전에 비해서는 0.6%포인트나 올랐다.특히 생활에 밀접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는 전년동기 대비 4.3%나 뛰었다.통상 2∼3개월 뒤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는 생산자물가의 상승폭은 더욱 가파르다.지난달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동기 대비 3.8%,전월 대비 1.4%로 각각 1998년 2월과 12월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이에 따라 콜금리 인상의 필요성이 나오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금리가 오르면 가뜩이나 위축돼 있는 내수와 설비투자에 큰 타격이 예상되는 데다 환율하락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도 우려되기 때문이다.환율 역시 딜레마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정부는 환율을 조금이라도 높게 유지해 수출호조세를 계속 이어가려 하지만 거꾸로 수입단가가 높아져 국내물가에 악영향을 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제유가와 원자재가격이 뛰고 있는 상황만을 감안하면 환율이 더 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처방도 제각각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의 처방도 각양각색이다.금융연구원 박종규 연구위원은 “향후 본격적인 경기회복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콜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줄이는 한편 이를 통해 물가안정을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정부가 무리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환율하락을 용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이 효과를 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내수경기 진작과 가계부실 위험의 완화를 위해 금리를 낮추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환율과 관련해서는 “환율을 정부개입 없이 시장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만일 이로 인해 원화절상(환율하락)이 심화된다면 우리경제를 혼자서 지탱하고 있는 수출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환율 부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상무는 “우리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타지 못하고 있는데다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하다.”며 금리의 현행유지를 주장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현 물가-금리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경제전문가들간의 논쟁은 계속될 것 같다.박승 한은 총재는 이와 관련,“하반기에 본격적인 경기회복세로 물가 상승압력이 높아지면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통화정책을 펴겠다.”고 밝혔었다.물가 오름세가 계속될 경우 콜금리 인상을 검토하겠지만 당장은 아니라는 입장이다.물가와 금리사이에서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환율문제 역시 재경부의 ‘환율상승 유도’와 한은의 ‘시장 자율존중’이라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책꽂이]

    ●신화가 된 이름 비틀스(한경식 지음,더불어책 펴냄) “우리는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라는 존 레넌의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비틀스.비틀스는 비틀스 자신들보다도 비틀스 전문가들이 더 잘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틀스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이 책은 국내 비틀마니아가 쓴 최초의 본격 비틀스 전기다.비틀스가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60년대 특히 1964년 미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디며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직전까지의 역사를 깊이 있게 다뤘다.1만 2800원. ●아름다운 변신! J의 뷰티스쿨(이자경 지음,김영사 펴냄) 만화로 배우는 여성의 자기연출법.화장을 처음 시작하는 소녀에서 커리어 우먼까지 미용에 관한 맞춤정보를 제공한다.저자는 세계 최고의 헤어 사관학교로 불리는 영국 런던의 비달 사순 헤어스쿨 등에서 공부한 토털 코디네이션 전문가.9900원. ●학교공부 바로 하기(조창섭 등 지음,황금가지 펴냄) 영어지문은 문장 하나하나를 해부하듯 해석해선 안되며,물 흐르듯 순서대로 읽어가며 직독직해해야 한다.국어능력을 키우기 위한 최선의 길동무는 사전이다.현직교사와 사범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새로운 것은 없지만 나름대로 원칙이 담긴 공부법을 들려준다.공교육의 붕괴로 학생들의 학력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1만 2000원. ●크리스토퍼 리브의 새로운 삶(크리스토퍼 리브 지음,안의정 옮김,인북스 펴냄) 70년대 인기영화 ‘슈퍼맨’시리즈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리브는 95년 낙마사고로 전신마비가 됐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휠체어에 탄 채 영화 ‘황혼 속에서’를 감독하고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활기찬 삶으로 희망의 사표가 되고 있다.98년 ‘절망을 이겨낸 슈퍼맨의 고백(Still Me)’에 이어 두번째로 펴낸 자전 에세이.8500원.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지음,이재원 옮김,이후 펴냄) 대량 복제된 이미지들이 어떻게 인간의 감수성을 파괴하는가를 밝혔다.저자는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미국의 작가이자 예술평론가.손택은 잔혹한 이미지들의 범람이 곧 타인의 고통에 대한 경각심과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이미지 과잉 사회는 오히려 타인의 고통을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크며,사람들은 잔혹한 장면에 무뎌지고 그것을 단순히 ‘스펙터클’한 상품으로 소비해 버린다는 것이다.1만 5000원. ●20세기 중국 회화의 거장 푸바오스(천촨시 엮음,안영길 옮김,시공사 펴냄) 창작과 이론 분야 모두에서 중국 근현대 화단을 이끈 푸바오스(傳抱石)의 삶을 조명.강서성 남창시에서 가난한 우산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푸바오스는 중국 고유의 회화 전통과 일본 유학에서 얻은 새로운 경향을 결합해 독특한 풍격을 창조했다.그는 또한 산수화를 학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사조화(師造化,대자연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에 관해 논한 ‘산수화의 사생에 관하여’등 묵직한 논문을 남겼다.1만 5000원.˝
  • 사슴고기는 어떤맛?

    “건강식품인 사슴고기를 한번 맛보실래요.” 요즘 들어 조류독감과 광우병 파동으로 육류 소비가 곤두박질치면서 닭·오리고기와 소고기를 대체하는 건강 육류제품으로 사슴고기가 등장했다. 그랜드백화점과 그랜드마트는 12일까지 식품매장에서 사슴고기를 20∼30% 할인 판매하는 ‘사슴고기 기획전’을 실시한다.송장석 그랜드백화점 축산과장은 “조류독감과 광우병 파동으로 육류 소비가 크게 줄어 들어 대체상품으로 몸에 좋고 가격이 저렴한 사슴고기를 내놓게 됐다.”며 “이번 사슴고기 기획행사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 지속적으로 판매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슴고기는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을 풍부하게 함유한 저지방·저칼로리·저콜레스테롤의 알칼리성 건강식품.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혈액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효능을 갖고 있다.특히 신체 허약을 보하여 주며,소화기 계통을 도와 영양 흡수와 산후 젖 분비를 촉진해 준다.최인욱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식물자원연구팀장은 “사슴의 고기와 뼈에는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는 녹용의 주성분으로 뇌세포의 구성성분인 강글리오사이드가 함유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사슴고기 요리법은 전골·샤부샤부·로스구이·불고기·곰탕 등 다양하다.전골의 경우 고기를 얇게 썰어 각종 양념에 버무려 놓는다.사슴뼈를 곤 물이나 사태를 삶은 물로 육수를 우려낸 뒤 각종 야채와 양념한 사슴고기 등을 넣고 끓이면 된다.불고기를 할 때는 약한 불로 은근히 익히고,소다나 술을 약간 넣으면 고기가 연해진다. 사슴고기 가격은 돼지고기보다는 비싸지만 소고기보다는 저렴하다.이번 행사기간 동안 사슴불고기(100g 기준) 1980원,사슴사골 2980원,사슴꽃등심이 2980원에 판매된다. 김규환기자˝
  • 물 만난 수산물

    조류독감이 확산되면서 수산물과 양계 시장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국내에서 조류독감이 처음 발생한 지난해 12월15일부터 명태·고등어 등 수산물은 날개돋친 듯 팔리며 가격이 치솟고 있다.반면 닭·계란의 판매량과 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은 손님이 크게 늘어 활기를 띠고 있다.고등어가 지난해 11월 1㎏당 경매가가 900원선에서 2월 들어 2000원까지 올랐다.생고등어와 자반고등어의 소매가도 2마리에 각각 1500원,4000원씩 팔려 20%정도 올랐다.1㎏당 5000원 안팎이던 갈치는 1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광어와 우럭도 20% 이상 가격이 올라 1㎏당 2만∼2만 5000원에 팔리고 있다. 수산물 하루 반입량도 늘고 있다.오징어는 5000상자씩,고등어는 4000상자씩 출하된다.지난해의 1.5배 수준이다.노량진수산시장 표희종(42) 영업팀장은 “조류독감 발생 후 비수기인데도 하루 매출액과 반입량이 20∼30%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노량진수산시장 내 K횟집 주인 이모(65·여)씨는 “조류독감에 광우병 파동까지 겹쳐 특수를 누리고있다.”면서 “주말에는 예약을 받지 못할 정도로 하루 70∼80명의 손님이 몰려 종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반면 양계시장은 소비량 급감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양계농가들은 사료값이 9% 이상 오르면서 판매가가 생산원가에도 못미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육계 도매가격은 조류독감 발생 이전 1㎏당 1500원에서 최근에는 500원으로 떨어졌다.생산원가가 1000원대로,팔수록 손해를 보는 셈이다.올 1월 계란 판매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0만개 이상 감소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CF로 회춘한 장수 먹거리

    연양갱,오예스,환타…. 어린 시절 봄소풍과 오버랩되는 추억의 먹거리들이 색다른 감각의 광고로 무장해 ‘제2의 전성기’를 노리고 있다. 1945년 탄생한 이래 단 한번도 TV광고를 해본 적이 없는 해태제과 연양갱은 최근 광고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연양갱은 지난 20년간 월 매출 10억원 이상을 달성한 ‘효자 장수상품’.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등산객의 간식으로 큰 인기를 누리면서 소비가 증가하자 해태제과측이 광고를 늘리고 마라톤대회 후원 등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농구장편-직장상사편-자동차사고편-연인편으로 이어지는 연양갱 광고는 ‘소리없이 입안에 착 붙는 부드러움’을 한껏 강조한다. 라인밖으로 아웃된 농구공을 두고 감독과 심판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심판이 감독의 입속으로 연양갱을 밀어넣는다.“이래가지고 무슨 심판을 본다고….”라며 ‘막말’까지 불사하던 감독의 불만이 눈녹듯 사라진다. 운 나쁘게 ‘깍두기’ 아저씨의 ‘각그랜저’를 들이받은 중년의 아저씨는 연양갱 때문에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난다. 상사로부터 “부모님 모셔오라.”는 치욕적인 질책을 듣던 부하직원은 주머니속의 연양갱을 상납하면서 ‘측근’으로 부상한다.약속시간에 늦은 남자친구가 내민 꽃다발까지 내팽개칠 정도로 열 받은 여자친구도 연양갱의 부드러움 앞에서는 ‘애교덩어리’로 녹아내린다.연양갱 덕에 원수에서 둘도 없는 사이로 친밀해진 중년 모델들의 몸을 던진 연기가 압권이다. “세상이 더 부드러워집니다.”는 카피처럼 제조사인 해태제과내 분위기도 한층 부드러워졌다는 후문이다.해태제과 관계자는 “광고 반응이 좋아 월 18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기뻐했다. 지난 81년 출시된 해태제과 오예스도 최근 ‘엽기발랄 노래방 동영상’ 광고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노래방에서 실연의 아픔으로 울먹이며 노래하던 여고생이 친구들이 내민 오예스를 먹어 보고는 생기를 되찾는다는 설정이다. 오예스덕에 ‘1만% 충전이 완료’된 실연녀와 친구들이 ‘동성로 시스터즈’에 버금가는 엽기댄스를 선보인다.오예스의 다소 낡은 이미지가 최근 인기를 몰고 있는 노래방동영상에 확 씻겨 나갔다는 평가다. 판매는 물론 광고에서도 늘 콜라에 밀리던 환타는 일본에서 제작한 ‘환타 오랑고’ 광고로 인기몰이 중이다. 여학생이 책상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환타캔을 마시기 위해 책상을 들어올리고,재채기를 크게 하니 콧구멍에서 환타캔이 튀어 나온다.‘엽기와 허무’의 절정이다.일본에서는 30여편의 시리즈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광고심의에 막혀 광고 마지막부분 수영복을 입고 춤추는 여자들의 노출 수위를 낮춘 끝에 일단 2편만 전파를 탔다.앞으로 10여편이 더 나올 예정이다. 삼양라면도 모처럼 일반인 모델이 맛깔스럽게 라면을 먹는 모습으로 반격에 나섰다.의사,대학생,아빠와 딸 등이 정말 실감나게 라면을 먹다 “맛있다.이거 무슨 라면이야?”라고 물으면 삼양라면이 크게 클로즈업되는 단순한 광고.하지만 광고를 보는 순간 자연스레 냄비를 찾아 물을 끓이게 만드는 흡인력을 지녔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열린세상] ‘물갈이 쇼’는 안 통한다

    경제나 정치에는 주기설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경제는 경기순환이라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주기를 측정할 수 있다.정치에는 경제에 해당하는 과학적인 주기는 없지만 나름대로 눈대중 주기는 있는 모양이어서 10년 주기의 항쟁설이 나돌곤 했다.경기순환이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면 항쟁과 같은 정치변동 역시 다른 의미에서 정치의 생산자인 정치권과 소비자인 국민 사이의 불균형을 조정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이 불균형의 조정이 일상적으로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인간 세상사가 그렇게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우리 정치사를 간략하게 훑어보면 60년의 4월 혁명,72년의 유신 쿠데타,79년과 80년의 정치적 격변,87년의 6월 항쟁 등 얼추 10년 주기설에 들어맞는다.87년 6월 항쟁의 관점에서 볼 때 지난 2000년 총선의 낙선운동이 이 주기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 하는 분석이 있을 수 있다.그러나 4년 전의 낙선운동은 순간적 파괴력이 높은 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길지는 못했던 것 같다.굵고 짧은 파괴력으로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는 했으되 정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뜻이다.이런 점에서 일부 평자들은 2004년을 항쟁의 전환점으로 보는 견해를 제시한다. 지난 2002년 대선은 옛날과 크게 달랐다.전통적인 관전법에 익숙한 눈에는 선거결과가 전혀 예측되지 않는 선거였다.그러나 국민참여,네티즌,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프리즘을 통해서 보면 대선 설계도가 잘 보였다.게다가 작년 말 이후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불법 대선자금 문제를 보노라면 정치적 변화의 파고가 권력의 핵심부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불법 대선자금이나 국회의원의 체포 동의안에 대한 거부를 보는 국민들 시선도 예사롭지 않다.자칫 잘못하면 한바탕 폭풍이라도 몰아칠 기세다. ‘물갈이’라는 말이 시대의 대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의 뿌리를 뒤흔들 만큼 뜨거운 용암이 되어 분출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최근 각 정당의 공천과정에서 정당의 ‘자체 물갈이’니 부패 인사들의 ‘자진 물갈이’가 속출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물갈이 될까? 자체 물갈이와 자진 물갈이를 통해 정치권이 자기 정화를 이룰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물갈이가 일정 한계를 넘어 진행되면 판갈이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그러나 물갈이가 국민의 눈을 속이면서 적당한 수준에서 이루어지면 ‘물갈이 쇼’로 전락한다.지금 정당이 하는 물갈이는 진정한 물갈이나 판갈이 버금가는 물갈이가 아니라 국민의 여론에 부합하려는 물갈이 쇼의 성격이 강하다.이렇게 되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만약 정당이 국민들의 물갈이 욕구를 단순한 쇼로 대응하려고 한다면 4월15일 투표장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거나 아니면 그 이상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물갈이가 정치적 대세가 되면서 정당들이 외부인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그 영입 인사의 면면이 낡은 레코드 판의 재생 같은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다.깨끗하고 참신하고 개혁적인 인사의 영입보다는 지명도나 명망성에 치중한 외부인사 영입으로 국민들의 물갈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더구나 일부 정당에서는 누가 보아도 부적절한 낡은 인물을 공천하는 모양인데 이것이 물갈이 공천이고 공천 혁명인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이고 유권자의 선거 혁명이 예상되는 시점이다.도도하게 흐르는 물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단언컨대 지금은 정치적 변화의 열망이 큰물이 되어 노도처럼 흐르는 국면이다.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국민의 눈을 속이면서 비바람을 적당히 피해 가려 하다가는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지금은 누구도 국민의 물갈이를 피해갈 수 없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 정치학
  • [녹색공간] 지탱가능한 소비를

    두어 해 전부터 새해 덕담으로 ‘부자 되세요.’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흔히 10억원 정도 있으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을 자유를,20억원 정도 있으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거라고들 한다.인터넷에는 10억원 만들기 동호회가 속속 생겨나고 서점엔 부자되는 기법을 일러주는 책들이 늘고 있다.돈과 행복이 정비례 관계에 있진 않을지라도 많이 가진 사람이 가진 것 없는 사람보다 행복할 수 있는 개연성이 크긴 할 거다. 하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가,우리 사회를 일부로 포함하고 있는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다면 돈으로 구할 수 있는 행복은 그만큼 제한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와 우리 아이가 마시고 먹는 공기와 물·먹을거리가,사용하는 물건들과 집·건물이 오염되어 있다면 어찌될까? 환경이 갈수록 상품이 되는 세상에서 풍족한 사람들은 오염된 환경을 잠시 비껴갈 수 있다.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질 못하여 오염된 환경의 반격 앞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여유있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닫혀 있는 생태계의 파괴와 오염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리라.너무나 당연하게도 깨끗한 환경이야말로 우리 삶의 토대인 것이다. 한때 환경문제는 잘못된 생산활동 탓이라 여겼다.공장과 농토,가축사육장에서 화학물질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오염물질을 함부로 쏟아내며 대량생산을 위해 대량의 자원을 마구 투입하기에 환경이 오염되고 파괴되며 고갈되는 거라 생각했다.이는 사실의 일부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생각해보자.연비가 높고 저황유를 쓰며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하고 있는 자동차를 생산한다 하더라도 운행차 대수가 늘고 운행거리가 길어지며 도로를 자꾸만 늘린다면 생산과정에서 거둔 오염저감효과는 상쇄되고 만다.그런 차가 보통차보다 비싸다고 외면당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이제 지탱가능한 생산만이 아니라 ‘지탱가능한 소비’ 또한 고민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추구하는 동안 경제활동규모가 생태계의 부양능력을 넘어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환경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경제활동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 시민이자 소비자인 우리는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만이 아니라 후대에게서 빌려쓰고 있는 환경의 훼손을 최소화하여 되돌려줄 의무가 있다.‘내가 하지 않아도 남들이 하겠지.’라는 무임승차식 사고나 ‘내가 하더라도 남들이 안 하면 그만인데.’라는 패배주의적 사고를 접자.나만이라도,아니 나부터라도 무임승차하지 말자고 생각하자. 무엇보다 적게 쓰고 적게 버리자.재사용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을 잘 가려 버리자.장바구니를 쓰고 공회전을 줄이는 등 작지만 중요한 실천부터 시작하자.의식주를 위한 대부분의 것이 상품화된 이 시대,상품들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피자.그리고 요구하자.생산자가 환경을 반드시 고려하도록.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자.친환경 상품을 아무도 사주지 않으면 친환경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기에.지탱가능한 소비로 지탱가능한 생산을 유도하자.자발적 환경의식에 기대어 환경문제를풀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환경친화적이고 지탱가능한 소비양식을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요구하는 데 목소리를 보태자.새해 덕담으로 건강하게 사는 환경지킴이가 되자고,돈부자가 아니라 환경부자가 되자고 서로 말하는 건 어떨까? 윤순진 서울시립대 교수
  • [술따라 맛따라]한산 소곡주

    설이 다가옵니다.명절이 가까워지면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지요.전통주를 빚는 이들입니다.비록 반짝경기지만,이맘때는 술도가 사람들이 가장 신명나게 일할 때입니다.하지만 올핸 신명과 함께 한숨소리도 배어나옵니다. “반품이 얼마나 나올지.밤에 잠이 안오네요.”충남 서천에서 전통주를 빚는 나장연(40·한산소곡주 사장)씨의 걱정이 말이 아닙니다.백화점,할인점 등에 보낸 술이 무사히 소비자의 손에 닿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통주만큼 토속적이고 문화적인 것이 있을까요.술엔 우리 고유의 맛과 멋,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이같은 우리술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양주와 맥주,와인이 차지한 널찍한 매장 한 구석에,초라하게 자리한 전통주의 모습은 바로 나 자신의 자화상인 듯해 보기 민망합니다. 서울신문 주말판 We가 이번 주부터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주가(酒家) 기행’을 떠납니다.주가 기행은 전통주에 얽힌 애환과 역사,술 빚는 이들의 치열한 장인 정신,정감 넘치는 술도가 작업장의 이야기를 담을 것입니다.또 가까운곳의 여행 명소도 함께 소개합니다.우리 조상들이 궁궐에서,주막에서,집에서 즐겼던 우리 술의 맛과 멋을 주가기행과 함께 느껴보십시오.첫회는 ‘한산소곡주’ 편입니다. 한산소곡주를 처음 마시면서 속기 쉬운 한 가지.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주도가 낮다고 판단해 폭음하기 쉽다는 것.오죽하면 ‘앉은뱅이술’이란 별명이 붙었을까.문헌상 가장 오래된 백제의 술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의자왕이 달콤한 소곡주에 취해 삼천궁녀와 놀다가 나랄 말아먹었구나.’란 추측이 들기도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무왕 37년(635년) 왕이 신하들과 어울려 백마강 기슭 고란사 부근 경치 좋은 곳에서 마셨던 술이 한산 소곡주다.소곡주 제조법은 조선시대의 산림경제,양주방,임원십육지,동국세시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현재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의 우희열(64) 여사와 아들 나장연씨가 소곡주를 빚고 있다.어머니는 제조 기능 보유자(충남 무형문화재 3호)겸 명주 명인,아들은 제조기능 이수자다. 두 모자(母子)를 한산모시관내 양지바른 곳에서 마주했다.모시관 길 건너편엔 소곡주 공장이 있지만,상당 부분의 공정이 대형화,자동화돼 예전의 술도가 정취를 찾아보기 어렵다.모시관 한쪽엔 관광객들이 단체로 오면 소곡주 빚기를 시연하기 위해 아궁이와 소주고리 등 전통적인 술 도구들을 갖춰놓았다. “술맛은 누룩이 첫째지유.누룩을 잘 띄워야 맛이 깊고 은근하니께유.” 나씨 집안으로 시집와 시어머니(김영신)의 가르침을 받아 소곡주를 빚은지 35년.시어머니가 친정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소곡주 제조 비방을 시집오면서 가져와 며느리,손자에게 명맥을 잇게 했다. “술 빚는 방법이야 비슷하지만 같을 수는 없지유.그래서 똑같은 술이라도 빚는 사람마다 맛이 달러유.아니 지가 빚는 술도 빚을 때마다 맛이 조금씩 차이가 나유.” 그래서 술은 ‘만든다’ 하지 않고 ‘빚는다’고 하나 보다.예술하는 이들이 저마다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며 그림이나 조각을 ‘창조’하듯,술도 미세하지만 빚는 이만의 맛이 담겨있는 것이다. 소곡주 맛은 달고 그윽하다.이는 술 빚을 때 들어가는 들국화가상당 부분 작용한다는 게 우씨의 설명.들국화 자체의 그윽한 향과 잡균에 대한 강한 살균력으로 잡미를 없애 곡주 그대로의 감칠맛을 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생하는 들국화를 채취해다가 말려서 썼는데,이젠 여의치 않아 고민입니다.” 나장연씨는 술 생산량이 늘면 결국 들국화도 재배해서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제조과정도 다른 약주와 조금 다르다.우선 술을 빚을 때 물을 절반 정도만 써 알코올 도수(18도)가 약주치고는 꽤 높은 편.또 다른 약주는 효모균이 알코올을 만들 때 전분에서 나온 당분을 모두 소모하지만,소곡주는 절반 정도만 소모,남은 당분이 술 맛을 달게 한다.대개의 약주는 사라진 단맛을 내기위해 올리고당이나 아스파탐 등 인공적으로 당을 가미한다. 나씨는 어머니로부터 소곡주 제조 기능을 전수받았지만 맛의 개선에 관심이 많다.젊은 세대의 미각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 “누룩 특유의 냄새가 문제지요.예전의 어르신들은 누룩에서 나는 묵직한 맛을 좋아했지만 젊은 세대들은 가볍고 깨끗한 맛을 좋아합니다.누룩이 아닌 효모균만을 넣어 빚은 일본의 청주 같은 술 말입니다.” 그는 전통적인 소곡주는 그대로 보존하되,이를 개선한 술도 빚을 수 있기를 바란다.이는 단순히 상업적 차원이 아니라,우리 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유럽이나 일본에서도 명주를 빚는 집안에선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 더 좋은 맛을 창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전통식품 관련법상 민속주로 지정돼 제조면허를 받은 것은 재료나 방법을 조금이라도 달리하면 술을 생산할 수 없어 제도적으로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한산소곡주는 현재 약주(18도)와 증류식 소주(43도) 두가지로 나온다.주도를 더 낮춘 13도짜리도 곧 나올 예정이다. “명절 때가 아닌,평소에 누구나 마시는,특히 젊은 세대들이 즐겨 찾는 소곡주를 빚고 싶습니다.” 모자의 꿈이 마치 술잔에 담긴 소곡주의 고운 빛깔만큼이나 담박했다. 서천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한산소곡주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에서 빠져 서천읍내를 지나 23번,29번 국도를 차례로 갈아타면 한산모시마을에닿는다.모시관 건너편에 한산 소곡주 공장이 있으며,모시관 옆 특산물 판매장에서 소곡주 시음 및 구입이 가능하다.소곡주공장(041-951-0290).신성리 갈대밭은 모시마을에서 금강 방향으로 차로 10분 정도 가면 나오며,금강하구둑은 모시관에서 29번 도로를 타고 15분쯤 남쪽으로 달리면 닿는다. 한산소곡주 따라 만들기 ●준비물 찹쌀,멥쌀,누룩(통밀을 쓴 것),들국화 말린 것,메주콩,엿기름,생강 각각 한줌씩.홍고추.들국화는 경동시장 등 한약재시장에서 살 수 있다. ●빚는 법 멥쌀 2.4㎏을 빻아 떡(백설기)을 찐다. 백설기를 누룩가루(1㎏)와 혼합해 독에 넣고 물 8ℓ를 부어 섞어서 밑술을 만든다. 3∼4일간 밑술을 발효시킨다. 찹쌀 8㎏으로 고두밥을 짓는다. 누룩가루 1㎏ 및 들국화 말린 것,메주콩,엿기름,생강을 각각 한줌 정도 고두밥, 밑술과 혼합한다. 덧술에 홍고추를 꼽아 서늘한 곳(섭씨 15도 정도)에서 100일간 발효,숙성시킨다. 용수를 박아 술을 떠낸다.용수를 구하기 어려우면 베보자기 등에 덧술을 담아 짜내도 된다. ●여행명소 겨울철엔한산 소곡주 공장이 있는 한산모시마을,마량포구,금강하구둑,신성리 갈대밭,희리산 자연휴양림이 가볼 만하다.모시마을에선 그 유명한 한산 세모시를 구경하고,구입도 할 수 있다. 충남 장항과 군산을 잇는 금강하구둑 주변은 철새들의 천국.청둥오리,고니,붉은부리 갈매기 등 겨울철새 수만 마리가 연출하는 군무를 하루에도 여러번 감상할 수 있다.다른 철새 도래지와 달리 먹이를 주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가까이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금강변에 펼쳐져 있는 폭 200m,길이 1㎞의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으로 유명해진 곳.저녁 무렵 금강의 금빛 물결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마량항은 해돋이와 동백숲이 유명한 곳.서해에선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종천면 산천리의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해송 휴양림으로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한다.숲속의 집과 야생화 관찰원,저수지 등이 주변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서천군 문화공보실(041)950-4224. ●맛집 서해안은 간재미가 제철이다.모양은 홍어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작다.값은 홍어보다 싸지만 맛은 홍어 못지 않아 날씨가 추워지면 간재미를 찾는 발길이 잦다.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먹을 수 있다. 서천에선 대부분의 횟집에서 간재미를 낸다.마서면 당선리의 ‘해강’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 식당.이곳에서 내는 간재미 요리는 회와 회무침 두가지.연한 뼈째 두툼하게 저민 회는 기름소금에 찍어 상추에 싸서 먹거나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고소하면서 연골과 함께 살점이 씹히는 맛이 일품.달콤한 소곡주 맛과 잘 어울린다.회무침은 매콤달콤한 양념맛 때문에 여성과 아이들이 좋아한다.간재미 회는 한 접시에 1만 8000원.둘이서 먹을 만하다.회무침은 2만 5000원.(041)956-8885.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2)배보다 배꼽이 더 큰 농가부채

    예고없이 터지는 자연재해,해마다 늘어나는 영농비용,수입산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락 등으로 농가마다 빚더미에 쌓여 아우성이다.신용불량자가 속출하고 막다른 길로 몰리면서 삶을 포기하는 농민들도 수두룩하다.아무리 노력해도 늘어만 가는 부채는 이제 농민에게 ‘시시포스’와 같은 ‘천형’(天刑)이 됐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부채 밭 1800평에서 멜론을 재배하는 충남 청양군 비봉면 신월리 이병익(52)씨는 빚이 1억원이 넘는다.5년 전부터 벼농사를 지었는데,자녀 교육비 등을 도저히 댈 수 없어 멜론 재배에 손을 댔다.그러나 태풍과 폭설 피해를 네번이나 겪어 하우스시설을 재설치하면서 몇 백만원이던 빚이 이렇게 늘었다. 이씨는 “멜론을 재배해도 원금과 이자는 물론 어머니 병원비 등을 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빚을 얻어 수명이 6∼7년인 이앙기·트랙터·콤바인을 대당 2000만∼5000만원 들여 산 뒤,허덕이면서 갚다보면 농기계가 낡아 다시 거금을 들여 구입해야 해 농민들은 ‘빚의 악순환’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우스 1200평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충북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유원균(43)씨도 빚이 8000만원에 이른다.1996년 처음 오이를 재배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1000만원이던 빚이 이렇게 불어났다. 전남 강진군 칠량면 당월리 김변중(39)씨는 빚이 1억원이다.지난해 1800평 시설하우스에서 1억 2000여만원 매출을 올렸으나 기름값 4000여만원 등 인건비와 농약대 등을 빼면 이자갚기도 빠듯하다. 벼농사만 짓는 농촌의 사정도 마찬가지다.지난 12일 찾은 옥천군 안내면 인포리는 전체 40가구 가운데 폐가가 10가구를 넘었다 농가주택 사이사이로 주인이 떠나 문짝이 떨어지고 지붕이 내려앉은 폐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마을회관에는 환갑이 넘은 노인 6∼7명이 모여앉아 얘기하고 있었다.주민 홍모(68·여)씨는 “빚을 진 이웃이 하나둘 떠나면서 이제는 초등학생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기준 농가의 가구당 부채는 1989만원으로 이 가운데 농기계 구입 등 농사를 지으면서 발생한 생산성 부채는 1500만원선에 이른다.하지만 시설하우스를 하는 농민과 미래의 농촌을 짊어질 대부분의 청장년은 가구당 보통 5000만원,많게는 1억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신용불량자와 자살 속출 2000평의 시설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 중인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1리 위성춘(43)씨는 자신을 포함해 부인과 아버지·어머니 등 가족 모두가 빚쟁이로 내몰렸다.자신이 진 것과 보증으로 떠안은 것 등 빚이 2억원이었으나 연체이자에다 외환위기 때 ‘살인금리’가 붙으면서 5억원대로 증가했다.위씨는 이미 신용불량자가 됐다.연말이면 연체이자를 갚느라 아내와 부모 명의로 추가 대출을 받다 헤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경북 군위군 H농협의 경우 지난해 말 1400여명의 조합원 중 30%인 420여명이 신용불량자다.한해 농사를 지어도 이자 등을 갚지 못하면서 전년보다 100여명 증가했다.이들 농가의 부채 규모는 가구당 5000만원에서 1억원 수준이다.군내 다른 농협의 농민 신용불량자도 100∼300여명에 이른다.막다른 길에 몰린 농민들은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청양군비봉면에 사는 조모(52)씨는 지난해 여름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했다. 쌀과 담배농사를 짓다가 빚이 해마다 늘어 1억원이 넘으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이 길을 택했다. 이모(55·옥천군 안남면)씨도 쌀·담배농사를 짓다가 빚이 1억원을 넘어 갚을 수 없게 되자 한달 전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면사무소 관계자는 “700여 농가가 있는 안남면에서 IMF사태 이후 빚 때문에 자살한 농민이 1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비상구가 없다 옥천군 유원균씨는 “농사를 지어도 생산비조차 안 나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농산물 가격은 변동이 심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토마토의 경우 10㎏에 2만∼3만원을 호가하다 어떤 때는 2000∼3000원으로 떨어지는 등 10배 가까이 차이날 정도로 변동폭이 심하다. 청양군 이병익씨는 “배운 게 농사밖에 없고 이 나이에 뭘 하겠느냐.당장 농사를 그만두면 앉아 굶어죽는 수밖에 없어 빚이 늘어도 농사를 포기하지 못한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장흥군 위원환씨의 대차대조표 지난 97년 고향에 정착해 1600평의 시설하우스에서 7년째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위원환(42·전남 장흥군 관산읍)씨는 벌기는커녕 되레 2억 2400만원의 빚이 있다. 그 해 여름,정부 보조·융자 각 40%,자부담 20%로 1억 4000만원을 들여 하우스 등 시설을 갖췄다.연리 6%에 3년 거치 7년 상환으로 융자금 5600만원이 그대로 빚이 됐다. ●기름값 인건비 상승… 방울토마토값 폭락 출발은 토마토 값이 좋아 산뜻했다.그 해 겨울 첫 수확에서 제반 비용을 떨고도 3000만원이 손에 들어왔다.5㎏짜리 7000상자(상자당 1만원)를 팔아 매출 7000만원에 난방비 1500만원,인건비 1000만원,포장상자 425만원,비료와 농약 600만원 등 4000만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98년은 최악의 해였다.경유값이 드럼(200ℓ)당 12만원으로 치솟은 반면 토마토는 상자당 5000원 이하로 곤두박질했다.여름 수확(매출 2000만원)을 빼고 11월부터 나오는 겨울 토마토는 이듬해 5월까지 나온다.매출액이 3000만원에 그쳤다.기름값(2300만원)을 주고 나니 사실상 빈 손이었다.인건비와 종자대,농약값,경영비 등 3000만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왔다. 99년 흙이 아닌 물 속에서 토마토를 기르는 수경재배로 돌아섰다.8000만원을 더 들여 양액 자동화 설비를 갖췄다.보조(40%)를 빼고 융자·자부담 등 다시 4800여만원의 빚을 졌다.값마저 낮아져 매출이 3000만원으로 떨어졌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체이자(18%)를 막기 위해 추가로 1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비교적 순조롭게 2000년 3000만원,2001년 2300만원,2002년 3000만원의 순익을 냈다. ●최저가격 보상제 실시 농민불안 없애야 다행히 올해 ‘토마토가 인체에 좋다.’는 언론홍보 덕에 토마토가 상자당 1만 5000∼2만원으로 높아져 위안이 되고 있다.올해 순익 5000만원을 내다본다.1년이면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만 해도 4000만원이다.쌀 농사도 없고 다른 사업을 한다거나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다.오로지 토마토에 매달린다.위씨는 “특용작물은 생산과잉이나 소비감소 등으로 폭락하기 일쑤다.돈이 된다면 우르르 심는 농민들의 태도도 문제지만 정부에서 최저가격 보장제를 제도화해 농민들의 불안을 없애는 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농경지 경매 작년 의성서만 664건 농민들에게 잇단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있다.돈가뭄으로 금융기관에서 논·밭을 담보로 얻어 쓴 빚을 갚지 못해 농경지가 경매처분돼 파산농이 속출하고 있어서다.담보로 집까지 날리게 될 농민은 가족과 함께 딱히 살 곳이 없어 한겨울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다.해마다 ‘뼈빠지게’ 농사를 지었지만 돌아오는 건 회한과 눈물 뿐이라며 허탈감에 빠져 있다. ●대출금 연체 논·밭·집까지 경매 5000여평의 농사를 짓는 이모(55·경북 군위군 효령면)씨는 5∼6년 전만 해도 부자는 아니었지만,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그러나 해마다 농산물 값은 하락한 반면 농자재·인건비 상승이 보태져 빚은 갈수록 쌓여만 갔다.결국 지난 연말 전 재산 2억원 정도를 법원경매에 넘기고 말았다. 의성군 단촌면 박모(43)씨는 IMF사태때 회사의 부도로 농촌에 돌아와 4년째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있다.그러나 2년 연이은 자연재해로 은행빚만 5000만원으로 늘어났다.대구지법 의성지원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의성·군위·청송지역에서 나온 전체 경매건수는 664건(농경지가 90% 이상)이나 됐다.2001년 438건,2002년 558건에 비해 해마다 큰 폭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지난해는 IMF사태로 부동산 경매가 절정을 이뤘던 1999년(752건) 수준에 육박했다. 충남 논산시와 부여군을 관할하는 대전지법 논산지원에도 연간 100여건의 경매물건이 접수되고 있다.이중 절반 정도가 농가 주택과 농경지라는 게 논산지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영농자금 상환기간 되는 1분기 더 심각 군위 H농협의 경우,올 들어서만도 30여건이 부채상환이 안 돼 경매처분됐다.의성군 D농협도 최근 농경지 등 20여건을 경매에 부쳤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올 1·4분기다.각종 영농자금 상환기한을 앞두고 있기 때문.농협 군위군지부 4개 농협은 3월말까지 38억 4000만원을 농가로부터 상환받을 계획이다. 특별취재팀
  • LG카드 오너책임 어디까지/“국민정서 고려를” “시장논리 맡겨야”

    ‘법이냐,정서냐.’LG카드 사태를 계기로 대주주(오너)의 경영책임 문제가 또다시 도마위에 올랐다.정부와 채권단이 ‘국민정서’를 내세워 LG그룹에 부실책임을 더 지라고 촉구하고 나선 데 대해 LG그룹은 “더 내놓을 것도 없으며,유한책임의 주식회사 체제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발하고 있다.특히 이번 LG카드 부실책임 문제는 선단식 경영의 재벌들의 경우와 달리 지배구조가 단순화돼 있는 지주회사 오너의 경영책임범위를 놓고 논란이 제기되는 것이어서 향후 유사사태의 처리방향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오너는 무한책임(?) 지금까지 대그룹 오너들은 계열사의 부실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재출연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피해왔다.1999년 7월 삼성자동차 부도 때는 이건희 삼성회장이 사회적 책임을 지고 비상장인 삼성생명주식 400만주를 사재출연했으며,2000년 현대건설 처리 때도 같은 이유로 고 정주영 명예회장,정몽헌 회장이 수천억원의 사재를 내놓거나,계열사 주식 등을 구입해 유동성 지원을 도왔다.지난해 SK글로벌 사태 역시 최태원회장이 연대보증으로 책임을 졌다. 그러나 이번 LG카드 사태는 대주주들이 제조업체를 살리기 위해 금융회사를 끌어들였다가 금융회사가 쓰러지면서 책임을 진 것과 다르다.금융회사 자체의 부실에 대해 대주주의 책임을 요구하는 이례적인 일이다.특히 LG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돼 공정거래법상 부당내부거래 금지 등의 조항에 묶여 다른 계열사로부터 자금지원 등을 받을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채권단 등 일각에서는 다른 그룹 오너들의 전례에 비춰 강도높은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으나,상법상 유한책임을 지도록 돼 있는 주식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물론 삼성 이회장의 사재출연처럼 그룹의 브랜드 이미지 등을 고려하면 법적 책임 이상을 스스로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논리도 제각각이다.재계 관계자는 “이미 LG카드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LG그룹과 대주주들로부터 최대한의 담보(1조 1500억원가량)를 확보하지 않았느냐.”면서 “그렇다고 대주주가금융회사를 이용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법적 책임외에 도덕적 책임을 무한대로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정부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회사가 쓰러질 경우 대주주를 비롯한 계열사가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이는 시장경제 논리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채권단이 무턱대고 LG에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채권단은 금융시장에서 지급결제기능의 역할을 하고 있고,특정 금융사에 신용공여를 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채권단은 “대주주가 응분의 책임을 지지 않는 상태에서 채권단에 모든 부담을 지우는 것은 대주주의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를 부추기는 꼴”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지주회사,독인가 약인가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주식 전부 또는 일부를 소유해 자회사 경영권을 지배하는 회사로,우리나라는 경영권만 확보하는 순수지주회사 대신 독자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는 사업지주회사를 허용하고 있다.LG그룹이 2002년 지주회사 체제로 본격 출범했고,SK그룹은 99년부터 사업지주회사 설립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LG그룹이 기업지배구조의 모범사례로 도입했던 지주회사제도가 이번 LG카드 사태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공정거래위원회는 LG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한 덕분에 다른 계열사로의 부실 확산을 막았다고 주장한다.LG그룹의 한 임원도 “재벌개혁 차원에서 지주회사 구조로 개편하라고 강요할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계열사들에 돈을 내놓으라고 하느냐.”면서 “앞으로 LG카드 경영에 관여를 못할 텐데 경영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가 유동성의 75%를 책임지라는 것은 ‘조폭적 행태’”라고 강한 불만을 토해냈다.이 임원은 또 “부실경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따지고 보면 ‘부실한’ LG카드에 돈을 빌려준 금융권에도 경영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측의 시각은 좀 다르다.한 관계자는 “지주회사 설립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대주주를 비롯한 다른 계열사가 지원해 주지 않을 경우 모든부담은 결국 채권단과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국 ‘누군가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도 책임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정부의 성급한 정책적 판단이 LG카드 사태를 더 키웠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LG카드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정부는 1조원 이상의 유동성 지원과 LG증권 매각을 조건으로 LG의 대주주와 계열사에 너무 쉽게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경영이 정상궤도로 진입하면 담보로 잡아놓았던 ㈜LG지분을 돌려주고,당초 요구했던 구본무 회장의 연대보증도 받지 않기로 해 이후 협상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이 때문에 LG카드 협상은 당사자가 빠진 채 돈을 빌려준 사람(채권단)과 감독관(정부)이 앉아서 담판하는 형국이 됐다는 것이다.물론 LG카드사태가 대주주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금융회사 자체의 부실이 요인이었던 만큼 대주주를 압박하는 데 한계가 있긴 했으나,정부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봤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아무리 대주주라도 상법상의 주식회사인데 유한책임을 물어야지 무한책임을 묻기는 어려웠다.”고 털어놓고 “사실 구본무 회장의 연대보증은 상징적 효과는 있을지언정,실질적 효과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주병철 안미현기자 bcjoo@ ■법인격 부인론 적용 부실경영 책임 무한 권영준 경희대 교수 국내 최대 카드사인 LG카드가 부도처리냐,채권단 공동관리냐,준(準) 공적자금 투입(산업은행의 인수)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시장에서 발동된 경고음을 무시하면서 정부와 카드사가 마구잡이로 달려온 끝에 자초한 당연한 결과다.카드산업의 위기와 관련된 재정경제부의 정책실패와 양치기 소년식 말 바꾸기,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의 감독실패,재벌기업들의 무모한 경영행태는 아무리 비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또 다른 위기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이참에 반드시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로 재벌기업들의 황제식 경영에 의한 실패가 결코 다른 부문에 전가되거나 국민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LG그룹 총수는 카드업에서만큼은 외형으로 삼성을 눌렀다고 호언했다고 한다.이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특히 총수 일가는 경영부실에 대해 가장 먼저 보고를 받은 뒤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노력을 보이기는커녕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남기고 빠져 나갔다고 한다.이런 측면에서도 이번 사태는 유한책임 대상이 아니고 무한책임의 대상이다.이는 선진국에서도 엄격히 적용하는 ‘법인격 부인이론’(piercing the corporate veil)의 원리다. 둘째,온 나라가 카드채와 신용불량자로 인해 불안해하고 이로 인해 소비가 발목 잡혀 경제적 고통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관료 한 사람 책임지지 않는 망국적 풍토는 하루빨리 바로잡혀야 한다.백보를 양보해서 회사채 시장의 붕괴와 금융대란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 성격이 강한 산업은행 자금의 투입이 불가피하더라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책임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정부와 LG그룹,채권단은 서로 발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결론이 어떻게 나든 국민들은 금융시장에서 정부와 재벌의 유착으로 인한 비슷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그 길은 오직 철저한 책임 규명과 시장규율의 정상화로 관치금융 및 재벌금융의 폐해를 막는 것뿐이다. ■상법상 유한책임 도덕적 책임 무리 나성린 한양대 교수 이번 LG카드 사태는 한마디로 정부정책과 LG그룹의 경영 실패가 가져온 합작품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2차례에 걸쳐 채권단에 압력을 넣어 LG카드가 시장논리에 의해 처리되는 것을 막았다.지난해 3월부터 불거진 LG카드 사태를 정부가 끌어온 것은 경제가 회복기미를 보일 경우 생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지만,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정부가 금융시장의 단기적인 충격을 우려해 퇴출이 불가피한 금융사의 생명을 더 이상 연장시켜 주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임시 미봉책에 불과한 이런 조치들이 지속되는 한 금융시장의 혼란만 초래될 뿐이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간과해서 안 되는 대목은 LG그룹과 대주주들의 책임 문제다.LG그룹과 대주주들은 이번 카드사태로 1조 1500억원의 유동성 확보를 약속하는 등 책임을 지는 모습을보여주기는 했지만,시장경제 논리상 맞지 않는다.주식회사는 상법상 유한책임을 지도록 돼 있기 때문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근거가 미약하다. 시장경제에서 부실에 대한 책임을 법적인 차원이 아닌 도덕적인 차원으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문제가 생기면 시장논리에 따라 청산이나 출자전환 등의 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지,이런저런 이유로 연명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가 LG카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채권단을 압박하는 행태도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 정부가 채권단을 동원해 LG카드 사태를 지연시키는 바람에 채권단의 부담만 늘어났고,채권단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주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대주주든,채권단이든,소액투자자든 자기 책임하에서 투자하고,부실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법적·경제적 책임을 지면 그만이다. 정부는 그런 풍토가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정부가 더 이상 단기적인 충격을 우려해서 시장을 왜곡시켜 금융시장을 혼란시키는 주범으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하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11월 설비투자 마이너스 8.1% ‘급강하’ 비웃는 경기 바닥론

    ‘경기의 봄(春)이 온 것 같았는데 봄이 아니었다.’ 29일 받아든 ‘11월 산업활동’ 성적표는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정부의 주장을 무색케 했다.소비는 5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고,설비투자 부진의 골은 더 깊어졌다.그나마 기세좋게 올라가던 생산증가율도 둔화됐다.머쓱해진 정부는 검찰의 정치자금 수사에서 원인을 찾고,재계와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섣부른 예단과 정치 불안을 근본적으로 탓한다.이같은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춥다. ●‘정치불안 탓…’ 11월에는 태풍 매미의 영향도 거의 걷혔고,대형 노사분규도 없었다.수출 증가율이 다소 둔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두자릿수의 호조세다.특별히 경기가 더 나빠질 악재가 없었다는 얘기다.통계청 김민경 경제통계국장은 “지난해 11월 지표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데 따른 통계적 반락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투자와 소비가 깊은 잠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그렇다 하더라도 의문점은 남는다.11월 설비투자는 마이너스 8.1%로 전월(-3.8%)보다 2배 이상 곤두박질쳤다.설비투자 압력(생산증가율-생산능력증가율)이 1.5로 투자필요성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가 이렇게 급강하한 것은 쉽게 설명이 안된다.재정경제부 관계자는 “11월부터 검찰의 정치자금 수사가 본격화돼 기업들의 투자 수요가 더 위축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검찰 수사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요인은 정치 불안”이라면서 “내년 4월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기업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시민단체는 “경기 바닥통과를 섣불리 선언한 정부가 애꿎은 검찰 탓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매마저 내리막 11월 산업활동의 또 한가지 특징은 소매에 이어 도매마저 크게 침체된 점이다.전년동월대비 도매 판매 감소율(-3.6%)이 소매 감소율(-2.9%)을 오히려 앞지른다.화학섬유·아크릴·농약·비료 등 산업용 중간재(-7.8%)와 농기구·중장비 등 기계장비(-3.1%)가 안팔렸기 때문이다.도·소매 담당 권은정 통계청 사무관은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안하다 보니 산업용 중간재와 기계장비 판매도 감소했다.”면서 “여기에 공장 출하량 감소(생산증가율 둔화)와 소매 부진까지 겹치면서 물고 물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바닥 횡보 12월에도 수출은 20% 이상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반면,내수(도소매판매)는 좀체 풀릴 기미가 없다.수출업종 가운데서도 반도체 등 대기업 위주의 일부 업종만 호황일 뿐,중소 수출기업은 소외돼 있다.반도체 등은 첨단 장치산업이어서 아무리 호황을 누려도 일자리 창출 효과는 떨어진다.양극화는 소비도 마찬가지다.백화점 매출은 반짝 플러스를 보인 8월(0.6%)을 제외하고는 2월부터 10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다.이에 반해 할인점 매출은 3월부터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11월에는 9.3%로 증가율이 껑충 올라섰다.이같은 양극화 심화로 침체국면이 길어지는 ‘L자형’ 경기형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재경부 김대유 경제정책국장은 “경기가 바닥을 친 뒤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소 횡보하고 있는 양상”이라면서 “내년에 고용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업을 집중 육성하고 재정을 조기 집행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안미현기자 hyun@
  • “요즘 부자들 지갑 안열어 걱정입니다”/VIP 마케팅 개척자 오뜨마케팅 채창병 사장

    유통업계엔 ‘20대80 법칙’이란 것이 있다.상위 20%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의미.그래서 나온 것이 이들 20%의 고객을 잡기 위한 ‘VIP 마케팅’이다. VIP마케팅은 요즘처럼 불경기에 특히 진가를 발휘한다.부자들의 씀씀이는 아무래도 경기를 덜 타기 때문에 유명 백화점들은 서너명의 VIP 고객 앞에서 패션쇼를 여는가 하면 수십명의 고객만을 위한 콘서트를 마련하기도 한다.요즘은 유통뿐만 아니라 금융,자동차,패션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VIP 마케팅이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90년 고급취향 무가지 ‘노블레스' 창간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VIP 마케팅의 원조’로 불리는 이가 있다.채창병(42) ㈜오뜨마케팅 사장.지난 90년 이후 ‘노블레스’‘오뜨’ 등 고급 취향의 부자들을 위한 잡지를 창간했고 은행·백화점 등의 VIP 마케팅 파트너로 활약해 왔다.그의 특별한 마케팅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더분한 인상과 소박한 차림새.채 사장의 외모는 의외로 평범했다.대한민국 부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필요할 것 같은 ‘세련된 부티’는 보이지 않고 남다른 꼼꼼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그는 지난 90년 광고대행사 한컴에서의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월간 ‘노블레스’를 창간하면서 VIP 마켓 개척에 나섰다.이후 국내 최초의 회원제 잡지인 월간 ‘HAUTE(오뜨)’ 창간,‘오뜨 멤버스 센터’ 창립,씨티은행·신세계백화점·삼성플라자·대우자동차·랑콤화장품·템플턴·굿모닝증권 마케팅 파트너로서 국내 ‘럭셔리 마켓’과 VIP 마케팅을 이끌어 왔다. 90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 부자들을 위한 체계적인 마케팅은 전무했다고 채 사장은 말한다. “당연히 부자들의 불만이 많았죠.그들은 돈을 지불한 만큼 대접을 받고 싶어 했어요.수십억원을 예치해 놓은 고객도 돈을 찾기 위해 은행 창구에서 일반 고객들에 섞여서 30분씩 기다려야 하는 시절이었거든요.” 그는 부자들을 위한 전문화된 마케팅을 틈새 시장으로 판단하고 먼저 그들과의 대화 창구 역할을 할 잡지 노블레스를 만들었다.이 잡지는 고급 취향의 부자들을 위한 최초의 무가지였다.백화점이나 금융기관의 고급 손님에게 잡지를무료로 넣어주고 광고 수입으로 회사를 운영했다.무가 매체가 전무했던 당시로서는 상당한 모험이었다. “처음 영업을 할 때는 고생이 많았지요.한 광고회사에 갔더니,그게 무슨 잡지냐며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던지더군요.지나친 고급 취향의 공짜 잡지란 인상을 받아 거부감이 심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고급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정보에 목말라하던 이들에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잡지는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아갔다. 채사장은 투자 지분 등의 문제로 노블레스를 창간 4년여 만에 매각하고 94년 회원제 잡지인 월간 ‘오뜨’를 창간한 데 이어 젊은 층을 위한 월간 ‘오뜨젠느’와 격월간 ‘오뜨웨딩’을 잇달아 창간했다. 그는 은행이나 백화점 등에 단순한 금융이나 쇼핑 서비스를 넘어 VIP 고객들이 겪는 각종 생활상의 애로점을 해결해주는 ‘라이프 뉴 센터’를 설치해 업계는 물론 고객들 입에 한동안 회자되기도 했다. “VIP 마케팅은 결국 고객의 라이프 캐어(life care),즉 세심한 집사의 역할이라고 봅니다.단순한 고가 상품 소개가 아닌고급스러운 문화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적·정신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불경기엔 부자들 아낌없는 소비 필요 요즘 부자들의 소비 취향에 대해 물어봤다.“처음 마케팅을 할 때보다는 소비 행태가 많이 세련돼졌어요.그때만 해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만 선호했어요.그런데 지금은 남들과 다른,자신만 아는 브랜드를 찾습니다.” 그는 심심하면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 ‘과소비’의 개념이 많이 왜곡돼 있다고 지적한다.소득 수준을 벗어난 과다한 소비가 과소비지,고소득층이 고급 취향에 맞춰 돈을 쓰는 것을 과소비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요즘같은 불경기엔 부자들의 아낌 없는 소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IMF 때도 부자들은 큰 영향 받지 않고 돈을 썼어요.그런데 요즘은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아요.정말 걱정입니다.” ●중국 부자 주머니 열 전략 마련중 채 사장은 몇 년 전부터 재벌가 며느리및 딸들의 자선모임인 ‘미래회’를 도와 매년 4월과 11월 자선 바자회와 자선 파티를 열고 있다.고급 브랜드 업체가 협찬한상품 판매액 전액이 불우이웃돕기에 쓰인다.매년 8000만∼1억원 정도의 성금이 전달된다고. 또 인터넷을 통해 매달 20여 품목의 제품을 경매에 부쳐 판매한 금액을 기부하는 자선경매도 실시하고 있다.부자들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행사들이다. 채 사장은 최근 들어 중국시장 공략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수시로 중국에 드나들며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중국 부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할 마케팅 연구에 몰두한 지 2년째.머지않아 중국 현지에 합자회사를 세워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채 사장이 중국에서도 부자마케팅의 원조로 불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 [시론] 부안사태 易地思之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방폐장) 건설을 둘러싼 부안군민의 반발과 저항을 지켜보며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방폐장 건설이 자신과 연결된 문제라고 느끼고 있는지,그냥 ‘부안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아니면 이런 문제 자체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건 아닌지…. 다같이 한 번 상상해 보자.내가 사는 지역에 방폐장이 들어선다고 한다.나는 물론 지역주민 누구도 그게 어떤 시설인지,이 곳이 그런 시설물이 들어서기에 적합한지,그 시설이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도 없고 그 누구에게도 그런 시설물을 받아들이겠느냐고 의견을 물어온 적이 없는데 말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나’라면 어떨까.생존을 위협할 만큼 위험하다고 느끼는 시설물의 입지를 반대하는 나는 지역이기주의자인가. 사실 모두가 다 아는 것처럼 방사성 폐기물은 원자력발전의 부산물이다.원자력발전을 통해 우리 사회가 사용하는 전력의 40%가량을 얻고 있다.전력은 사용자 입장에서 볼 때그 어떤 에너지보다 깨끗하고 편리하다.전원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언제든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얻을 수 있다. 한 번 생각해 보라.정전이 되었을 때의 무력감과 갑갑한 심정을 떠올려 보라.전등이나 전구,컴퓨터,냉장고,세탁기,TV,오디오,청소기,휴대전화,헤어드라이어,전기밥통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자제품들을 사용할 때는 물론 엘리베이터나 냉·난방설비나 기기를 작동시킬 때,그리고 수돗물을 사용할 때도 전기를 쓴다. 전력의 상당부분이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되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특히 전력소비가 많은 대도시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방사성 폐기물에 어느 정도 부채가 있다.오히려 원전지역 주민들이나 방폐장 예정지 시골주민들의 전력소비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이 개개인의 선호나 찬반과는 무관하게 도입된 것이기에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개인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단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원자력이나 방폐장 문제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부안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쓰는 전력이 어디에서 오는지,우리가 어떻게 전력을 쓰고 있는지,전력의 생산·소비가 어떤 사회·환경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함께 짚어보자는 것이다.원자력 발전을 통해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지불해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다.전력소비가 많지 않은 소수의 지역주민에게 다수의 이름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후세대에게 해결 못할 과제를 떠넘기고 있는 건 아닌지. 독일에는 태양의 도시라 불리는 대표적인 환경도시 프라이부르크가 있다.1970년대 이 곳에 핵발전소가 들어설 계획이었으나 이를 반대하는 강력한 시민운동으로 계획이 취소되었다. 이후 지역주민과 시의회,시정부가 협력해서 원자력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절약을 생활화하고 태양광발전을 비롯한 재생가능 에너지와 열병합발전을 확대해 오고 있다.프라이부르크 시민들만이 아니라 많은 독일 시민들이 원자력발전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면서 에너지절약에 동참하고 좀 더 높은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재생가능 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사용하려 한다. 핵발전이나 핵폐기물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문제임을 깨닫자.내가 사는 지역에 원전 관련설비가 들어서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구에게도 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원자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생활습관과 양식을 바꾸어야 한다.부안문제는 결코 부안군민만의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윤 순 진 서울시립대 교수 행정학
  • 오피니언 중계석/지속가능한 발전과 생태적 전환

    후손들에게 지구환경의 혜택을 똑같이 물려주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한다.앞으로 ‘우리 사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태적 전환을 해야 한다.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는 점점 고갈되는 데다 일회용이기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체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교수가 계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한국사회의 발전전략’으로 제안한 ‘지속가능한 발전과 생태적 전환’을 요약한다. 한국은 동북아중심국가나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새만금간척,핵폐기장과 대형댐 건설 등을 부르짖으며 개발지상주의,성장제일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그런 사업들은 재생불가능한 자원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특히 동북아 중심국가 도약은 중국의 산업화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만일 13억명의 중국인이 집집마다 한두대의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면 하루 7400만 배럴의 전 세계 석유 생산량으로도 수요를 채우지 못한다.중국의 발전이 벽에 부딪히면 한국의 발전도 성립할 수 없다.우리나라는 에너지 소비와 관련해 지속불가능한 쪽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한 사람이 2002년 한해에 사용한 에너지는 4475㎏이다.이는 일본 4029㎏,독일 4015㎏,프랑스 4384㎏,영국 3720㎏보다 많다.한국과 다른 나라의 에너지 소비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더 심각한 것은 세계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점점 늘어나 그 수급이 어려워 질 것이라는 점이다.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석유값은 2010년을 전후해 최고에 도달한다.원자력 발전의 경제성이 보장되는 기간도 40년 정도다.핵폐기장 건설 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차치하더라도,그 후에는 값비싼 우라늄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다.더욱이 화석연료의 사용은 지구의 기후변화와 재앙을 일으킨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지속불가능성,수급불안정성,사회적 비용과 갈등,기후변화 등에 비춰 볼 때,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첫번째 전제는 에너지 시스템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수급 시스템을 태양,바람,바이오매스(biomass),소수력,지열,조력 같은 고갈되지 않는 것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재생가능한 에너지의 개발과 확산만이 지속발전 가능성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현재 전 세계 풍력 시장은 해마다 40%,태양전지 시장은 30% 이상 증가하고 있다.선진국이 재생가능 에너지를 개발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교통이다.우리나라의 최종 에너지 소비 가운데 수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1%에 이른다.승용차와 화물 수송비는 기차에 비해 각각 3∼4배,10배 이상이다.앞으로는 대중교통 수단과 자전거 같은 생태 중심의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모자라는 물 수급의 생태적 전환도 필수적이다.물의 절대량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대형 댐을 건설하는 것은 환경 파괴를 비롯한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물 확보는 함수능력이 뛰어난 산림의 보호와 관리,논과 밭의 유기농 전환,지하수의 지속가능한 이용,빗물 이용 시설 확대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아울러 식량생산에서도 화학비료와 기계를 사용하는 현재의 관행농법에서 유기농법으로 바꿔야 한다.유기농법의 경험적 사례는 일시적으로 수확이 떨어지지만 해가 갈수록 증가해 관행농법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유기농은 초국적 곡물자본과 화학자본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생태적 전환은 생산비용을 높여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경제침체와 사회 혼란을 불러와 지속가능한 사회의 확립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그러나 스위스와 일본에서는 상품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장기계획 아래 생태효율적인 기술을 개발해 실천하고 있다.중요한 것은 혼란과 충격을 가능한 한 최소로 하면서 생태적인 전환을 이룩하고,지속가능한 사회를 확립하는 것이다.
  • [미리 가본 뉴타운](10)중랑구 중화동일대

    중화뉴타운으로 선정된 중랑구 중화동 312와 묵동 일대 15만 4000평은 큰 비가 내릴 때면 종종 물에 잠겨 주민들이 고통을 겪던 곳이다.2499동에 7480가구,2만 244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최근 3년 간 침수된 가옥이 53%에 이른다.게다가 1960년대말 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해 건물이 낡고,소방도로마저 확보되지 않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일반주거지역 98%,준주거지역 2%로 이뤄져 사실상 베드타운 역할밖에 못한다. 문병권 구청장은 “침수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는 불편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수해 예방형’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또 “상권마저 형성되지 않다보니 대부분 주민들이 노원·동대문구,구리시 등지로 가 시장을 보는 실정”이라며 “주거중심형에서 주거·소비·생활편익시설 등이 함께 있는 곳으로 바꾸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일부 고층건물을 제외하고 저층 재래식 가옥 2444동을 철거,고층의 아파트로 지을 예정이다.지역에 있는 중랑경찰서,제일프라자,동구햇살아파트·삼익아파트,공사중인 태능시장 등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거된다.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은 재개발 방식으로 유도하되,난개발을 막고 사업의 원만한 추진을 위해 도로·공원·학교 등은 시의 지원을 받아 조성할 방침이다.이화교 확장과 연결도로 개선으로 지역내 교통 소통을 쉽게 하고,중랑천둔치의 체육공원과 연계해 충분한 녹지도 확보하기로 했다.구체적인 계획수립은 용역 결과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구는 사업추진의 성패는 결국 주민설득에 있다고 보고 있다.노후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현재는 개발을 위한 더없는 기회라며 찬성하지만,막상 본격적인 사업추진 때면 이주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또 중앙배수로길 주변에 있는 상인들은 생계유지,상가 권리금 등의 문제로 반대가 예상된다.노점상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구는 하지만 종합적인 개발방안이 나오면 주민동의가 이뤄질 것으로 판단,서둘러 용역을 발주할 방침이다.아울러 3∼5일 주민설명회를 열어 기본방침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등 발빠르게 움직일 계획이다. 성백진 구의회 의장은 “자칫 지정만 되고 사업추진이 안되면 상습침수 등 주민불편이 재차 발생하고,재산권 행사도 못하는 등 불편이 커질 것”이라며 “조만간 의회차원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종합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조덕현 기자 h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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