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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 ‘중부권 공략’ 본격화

    정동영(얼굴)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19일 대전·충남 공략에 나섰다.그동안 민생현장 방문은 남대문시장 등 수도권에서 반나절 일정으로 진행됐으나 이날은 고속철 시승,충남대·한국과학기술원·한남대 정책토론회 참석 등 오후까지 이어지는 하루 일정으로 진행됐다. 서울역에서 과학기술의 총아인 고속철을 타고 50분 만에 대전역에 도착한 정 의장은 “하드웨어는 세계적 수준이니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면 좋겠다.”면서 “영·호남이 동시 개통돼서 기분이 좋다.”고 시승 소감을 밝혔다. 충남대 학생회관에서 점심을 겸해 마련된 ‘깜짝 토론회’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지난 50년 동안은 중앙으로 돈이 집중되던 시대였다.이것을 180도 바꾸겠다는 게 우리당의 철학”이라면서 “지방분권특별법,신행정수도건설법 등이 우리당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와 입법됐다.”고 말했다. 이날 민생 현장방문이 선거운동의 장으로 본격화된 것은 당 국정자문위원회가 마련한 대전·충남 정책토론회에서였다.정 의장은 축사에서 “큰 기삿거리가 있다.”며 자민련소속의 심대평 충남지사와 한나라당 소속인 염홍철 대전시장과의 만남을 소개,장내를 술렁이게했다. 정 의장과 함께 지역을 방문한 김혁규 상임중앙위원이 심대평 충남지사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박영선 대변인은 이와 관련,“서로 협력해보기로 했다.입당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자민련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정 의장이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실에서 20분간 직접 만났다.“지역분할과 부패정치를 바꾸기 위해,역사의 물줄기를 넘기 위해,서로 모색해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정 의장은 “신행정수도 공약때문에 정권을 못잡았다고 생각하는 측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신행정수도 이전이 언제 이뤄질 지 모른다.”며 “지방사람들도 서울사람처럼 대접받으려면 우리당이 승리해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대전 박현갑기자 eagleduo@
  • 낙엽천국/늦가을 경남 함양 上林나들이

    낙엽만큼 상반된 느낌을 주는 게 있을까.낙엽을 밟으며 사랑을 키우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흩날리는 낙엽을 맞으며 실연의 아픔을 삭이는 사람도 있다.이파리를 떨군 나뭇가지는 앙상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 아래 수북하게 쌓인 낙엽더미는 푸근함을 준다.그래서 감성이 풍부한 사람치고,젊었을 적 지는 낙엽을 보고 시인 흉내 한번 안내본 사람 없을 것이리라.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인공 활엽수림 2만여평 지는 가을을 만나러 경남 함양 상림(上林)에 갔다.누군가 상림을 ‘낙엽의 천국’이라고 했었지.그래,기왕 낙엽을 밟으려면 천년이 넘는 연륜이 쌓인 활엽수림에 가보자.놀랍게도 상림은 1100여년전 조성된 인공활엽수림이다.통일신라 말 진성여왕 때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천령군(함양의 옛이름) 태수 부임후 조성했다고 한다.마을을 가로지르던 위천(渭川) 범람을 막기 위한 호안림(護岸林)이다.당시 심은 나무들이야 모두 늙어 죽었지만 그들은 대를 이어 씨앗을 뿌렸고,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귀중한 활엽수림으로 남았다.상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국내 유일의 활엽수림이다.당시엔 상림과 하림을 합쳐 6만여평이었으나,지금은 길이 1.4㎞,폭 200m,2만7000여평만 남아 있다. 크고 작은 활엽수들이 가득 들어찬 상림.여름이면 하늘을 덮어 한 줌 햇살도 허용치 않을 만큼 무성했던 이파리들이 지금은 반쯤 졌다.숲 가운데 난 큰 길은 물론,사이사이 오솔길은 온통 낙엽 천지.길이 아닌 숲속으로 들어가니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더미가 부스럭거리며 낯선 손님을 경계한다. 상림엔 수십년에서 수백년 수령의 110여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란다.졸참나무,느티나무,팥배나무,사람주나무,감나무 등이 주요 수종.나무의 종류가 다양하고 나무 굵기도 제각각이어서 통일신라 때 조성됐던 숲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낙엽색깔도 조금씩 다르다.참나무 계통은 떨어질 때부터 갈색이지만,느티나무나 감나무 이파리는 떨어진 뒤에도 완전히 마르기 전까지는 붉거나 노란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낙엽더미 속 아이들 천진함에 웃음 절로 상림 이곳저곳엔 사진작가들이 삼각대를 받쳐놓고 가을이 내려앉는그림을 잡고 있다.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찍으며 이들은,화려함을 뒤로하고 거름으로 썩고자하는 자연의 겸허함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 인근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왔다.어른들에겐 사색의 대상인 낙엽도 아이들에겐 그저 놀이의 수단일 뿐.두 손 가득 낙엽을 집어 뿌려대는 아이들 표정에 천진함이 넘친다.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까르르 까르르’ 내는 웃음소리에 심각한 척 고독을 ‘씹던’ 어른들도 슬며시 미소를 머금는다. 상림엔 숲을 가로지르는 실개울과 군데군데 세워진 함화루,초선정,화수정 등 정자들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숲 한편엔 최치원 신도비와 척화비 등 함양에서 선정을 베푼 위정관들을 기리는 비석들을 모아놓았다.또 최치원을 비롯해 연암 박지원,김종직 등 함양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던 대학자 11명의 흉상을 세워놓은 인물공원이 조성돼 있다. ●지리산 북부 한신계곡 수려함 일품 들판 한 가운데 조성된 상림의 평탄함이 아쉽다면 지리산 북부 한신계곡으로 발길을 돌려보자.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의 험준하면서도수려한 계곡미가 일품. 맑고 고운 물줄기가 10㎞ 정도 이어지는 이곳은 원래 한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지만 늦가을 풍치도 그만이다.특히 백무동부터 첫나들이 폭포까지 계곡과 절벽을 사이에 두고 평탄한 오솔길이 2㎞ 정도 이어지는데,어지러이 나뒹구는 낙엽과 아직 색깔을 잃지 않은 단풍 물결이 만추의 서정을 빚어낸다.이 오솔길은 어린 아이들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닦여져 있다.1960년대 초 한 벌채업체가 목재 운반을 위해 조성한 도로였다고 한다.숲속 길을 한참 걸어가면 등산로와 계곡이 만나게 되는데,그 지점에 첫나들이 폭포가 있다.20여개의 물줄기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바람폭포로도 불린다.폭포수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제 다리 아래로 쏟아지는데,다리 위에서보다는 아래서 위로 보는 풍광이 더욱 장관이다.한신계곡의 등반 기점인 백무동까지는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용추 자연휴양림선 숙박도 가능 안의면에 위치한 용추계곡도 가벼운 산행을 즐기며 가을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곳.계곡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분 정도 올라가자 용추사가 나오고,그 아래 15m 높이의 용추폭포가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낸다. 폭포를 지나 소로에 접어드니 바람에 쓸린 낙엽이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에 쏟아져 내린다.용추계곡 끝에는 함양군에서 조성한 용추 자연휴양림(055-963-9611)이 있어 산책과 산림욕을 즐기기에 좋다.예약하면 휴양림내 산막에서 묵을 수도 있다.숙박료는 2.7평형(4인용) 3만원,4.5평형(6인용) 4만원. 글·사진 함양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양IC 표지판이 보이면 빠져나와 우회전해 5분쯤 가면 함양읍이다.가던 길로 직진해 읍내를 지나가면 위천이 나온다.위천을 건너기전 우회전해 천변 도로를 5분쯤 달리면 상림과 만난다.한신계곡은 함양읍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용추계곡은 북쪽으로 각각 이정표를 따라가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까지 고속버스가 5회 출발한다.함양읍에서 택시를 타면 상림까지 기본요금에 갈 수 있다. ●숙박 상림 주변 및 함양읍내에 별궁장여관(055-963-9241∼3),상림장여관(055-963-1170) 등 여관이 많다.함양읍 죽림리 가재골관광농원(055-963-9952),인산동천관광농원(055-963-8793) 등을 찾으면 전원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정여창 고택 함양 지곡면엔 조선 전기의 유학자 정여창의 후손인 하동 정씨들의 집성촌이 있다.정여창 고택은 하동 정씨의 종갓집.3000여평의 대지에 총 17동의 건물을 지었으나 지금은 12동만 남아 있다.경북지역의 폐쇄적 공간구조와 달리 안채와 사랑채 등이 개방식 구조로 분할되어 집이 밝고 화사하다.솟을대문을 통해 마당에 들어서면 ㄱ자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다.정원 한편의 굽은 소나무와 배롱나무 등이 선비의 은은한 멋을 풍긴다. 건축 당시의 모습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어 남도 고건축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는 양반가옥이다.문의 함양군청 문화관광과(055-960-5555). 식후경 예나 지금이나 귀한 손님상에 빠지지 않는 요리중 하나가 소갈비찜이다.함양 안의는 갈비찜,그중에서도 안의고추갈비찜(사진)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체인점이들어서 있지만 어디 본고장의 맛을 따라가랴.상림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거창 방면으로 가다보면 안의면사무소 소재지가 나온다.갈비찜 간판을 단 식당이 꽤 많다.토박이인 듯한 할아버지가 맛있다고 가리키는대로 들어간 곳이 ‘옛날할머니 갈비식당’. 메뉴는 안의고추갈비찜과 갈비탕 딱 두가지.갈비찜은 1접시에 2만5000(2인)∼3만5000원(3인),갈비탕은 5000원이다.혼자 왔으니 1만5000원짜리로 만들어달라며 떼를 쓰다시피해 갈비찜을 시켰다. 붉은 빛이 도는 고기와 몇가지 야채,갖가지 고명이 어우러진 갈비찜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인근 거창이나 산청에서 기른 한우고기에 매콤한 청양고추와 풋고추,붉은 고추로 맛을 내 매콤달콤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난다.육질이 참 부드럽고 쫄깃하다.찬 물에 핏물제거 5시간,갈비 삶는데 8시간,양념에 재어 다시 조리는데 1시간 반 등 총 15시간의 공이 든다는 주인의 자랑 때문인지,맛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055)962-0163.
  • ‘호남의 소금강’ 순창 강천산

    ●빨갛게… 노랗게… 오색향연 절정 남녘에 단풍이 절정이다.빨갛게,노랗게 물든 산엔 능선마다 인산인해.새파란 하늘을 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르는 이들의 뺨에도 발그스름하게 단풍이 피었다. 지난 주말엔 엄청난 단풍행렬 때문에,산엔 발도 못디디고 차를 돌린 사람이 꽤 있다고 하니,이번 주 단풍나들이 계획을 잡았다면 일찌감치 서둘러 집을 나서야겠다. 또 사람에 치이기 십상인 유명 산보다 숨어 있는 단풍 명소를 찾아보면 어떨까.전북 순창의 강천산을 다녀왔다.깊은 계곡과 맑은 물,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곳.인근 내장산의 명성에 가려 그 진면목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은 단풍 명산이다. 강천산(剛泉山·583.7m).이름 그대로 단단한 바위와 물이 많은 산이다.1981년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높지 않지만 주계곡인 강천계곡 양편으로 선녀계곡,원등골,분통골 등 10여개의 청정계곡을 품고 있고 병풍바위,용바위,비룡폭포 등 구석구석 비경을 갖췄다. 산행은 주차장부터 시작된다.계곡과 봉우리가워낙 많아 등산코스가 다양한데,대략 5개 코스가 있다.이중 짧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강천산의 비경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병풍바위∼강천사∼구름다리∼신선봉 코스(5㎞)를 택했다.좀 더 긴 산행을 원하면 신선봉에서 하산하지 말고 선녀봉과 산성을 거쳐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11㎞)를 잡으면 된다. ●구석구석 비경 품은 그림같은 바위산 매표소를 지나 강천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비포장이지만 차량이 드나들 정도로 넓고 평탄하다.길가와 계곡은 온통 단풍 일색.불타는 듯 계곡을 물들인 애기단풍 아래로 투명한 계류가 노래하듯 정겨운 소리를 내며 흐른다. 매표소에서 10분쯤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있고,절벽 아래로 물줄기가 하얗게 부서지며 떨어진다.도저히 폭포가 있을 수 없는 곳인데….공원 관리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인공폭포란다.계곡물을 호스를 통해 모터로 끌어올려 암벽 꼭대기에서 물을 뿌려대는 것이라고. 폭포 아래는 자그마한 단풍나무 공원.마침 아침 햇살을 받아 일곱 색깔 무지개를 그리며 떨어지는 물줄기와 어우러진 단풍이 비단처럼 곱다. 계곡을 따라 30여분쯤 더 올라가니 강천사가 나온다.강천산이란 이름을 있게한 천년 고찰.풍수지리설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한때 12개의 암자와 500여명의 수도승을 거느린 거찰이었으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완전소실되었다가 1961년 이후 대웅전과 관음전,선방,보광전,객사 등의 건물이 복원됐다.전란 와중에도 불타지 않은 강천사 석탑만이 고찰의 흔적을 말해준다. 강천산은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고 해 원래 이름이 용천산(龍泉山)이었고,절 이름도 용천사였다고 한다.이후 조선 선조 때 학자 송익필이 절에 머물면서 ‘宿 剛泉寺’란 제목의 시를 지으면서 강천사로 불렸고,산 이름도 강천산이 되었다고 한다. ●길이 75m·높이 50m 구름다리 아찔 강천사를 지나 계곡 오른쪽으로 난 가파른 길을 10분 정도 오르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현수교(구름다리)가 나온다.길이 75m,높이 50m의 용접 철교다.다리 밑을 내려다보니 마치 번지점프대에 선 듯 아찔하다.멀리 계곡을 따라 길게 펼쳐진 단풍숲이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 현수교를 건너 전망대가 있는 신선봉꼭대기까지는 불과 500m 정도.하지만 온통 바위투성이라 발을 내디디기가 힘들다.노약자라면 30분 정도는 고생을 각오해아 할 것 같다. 신선봉(425m) 정상의 전망대에 오르니 지금까지 올라온 계곡과 맞은편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산자락 아래,반쯤 물든 단풍숲 가운데 강천사가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다. ●강천 제2호수·금성산성도 볼 만 현수교 입구에서 아래 계곡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좀 더 시간을 내 강천제2호수와 금성산성까지 가보기로 했다.현수교 아래에서 계곡을 따라 20분쯤 가니 댐이 앞을 가로막는다.강천제2호수다.강천산 입구에 있는 강천호의 담수 조절을 위해 계곡 상류에 협곡을 막아 조성한 저수지.물이 가득 차면 저수지를 둘러싼 단풍숲이 수면에 비친 풍광이 황홀할 정도라고 한다.그러나 막상 댐에 올라서니 물이 거의 바닥을 적시는 정도다.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댐 한쪽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30분쯤 가니 금성산성이 나온다.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이 산성은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전해지며,이후 파괴와 개축이 반복됐다.특히 갑오농민전쟁 당시 농민군과 관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이때 동헌,민가 등이 모두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순창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수도권에선 호남고속도로 정읍IC∼29번 국도∼21번 국도∼793번 지방도∼강천산 주차장,호남·영남권에선 88고속도로 순창IC~24번 국도∼793번 지방도∼강천산 주차장 코스를 따라가면 된다.주차장 이용료는 2500원(산 입장료 1000원 별도).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순창행 고속버스가 하루 6회 출발하며,광주·전주·남원에서 각각 20∼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순창읍내에선 정읍행 군내버스(20분 소요)를 타거나,택시(8000원 정도)를 이용하면 된다.강천산군립공원 관리사무소(063-650-1533). ●숙박 강천산 인근에 강천각여관(063-652-9920),구룡파크장(063-652-6767) 등 여관이 10여 군데 있다.일행이 많으면 콘도형 객실을 갖춘 강천산 휴양농원(063-652-2552)이 편리하다.요금은 5만∼6만원.주말에 방이 없으면 순창읍내 여관을 이용하면 된다. ●순창고추장 마을 검붉은 색깔에 알싸한 감칠맛이 나는 순창고추장.고려 말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순창을 찾았다가 한 농가에서 낸 고추장 맛을 못잊어 조선 개국후 진상토록 해 유명해졌다고 한다. 강천산을 나와 793번 도로를 타고 10분 정도 순창읍 방향으로 가다보면 ‘순창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이 나온다.마을 입구엔 관광객들을 위한 널찍한 주차장이 있고,주차장 한편에 널린 메줏가루 냄새가 코를 찌른다.바둑판처럼 정리된 포장도로,지붕에 기와만 얹은 몰개성의 건물들,저마다 원조를 내세우는 간판들.서정적 전통 마을을 그렸던 기대와 달리 지나치게 상업화된 모습이 실망스럽다.고추장 마을에선 전통고추장 전시판매장(063-653-4333)을 비롯,50여개의 집에서 고추장 및 고추장을 이용해 만든 장아찌류 등을 판매한다. 식후경 강천산 주차장 아래 식당과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데,그중 충장로식당(063-652-5388)의 백반이 비교적싸면서 먹을 만하다. 취나물을 비롯한 각종 산나물 무침과 야채 겉절이,꽁치구이 등 생선구이와 조림,도토리묵 무침,각종 김치류,청국장 등 밥과 함께 나오는 반찬 가짓수만 무려 25가지.음식값은 6000원. 가짓수가 많지만 허투루 만들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산나물은 강천산 인근에서 봄에 난 것을 말린 묵나물을 쓰고 도토리묵도 마찬가지.야채 몇가지를 썰어 함께 무친 도토리묵은 새콤하면서 싱싱해 특히 젓가락이 자주 간다. 순창고추장 맛을 보고 싶으면 대접을 달라고 해 나물무침과 야채 겉절이 몇가지를 밥에 얹어 고추장으로 비벼먹으면 된다.나물과 김치,야채 겉절이 종류가 워낙 다양해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고기류를 먹고 싶으면 좀 멀지만 담양쪽으로 가보자.강천산 주차장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담양 대나무골테마공원 주변에 떡갈비 전문 음식점이 많다.
  • 가족·연인과 단풍드라이브 3선/ 가을잎 고운 추파 사랑도 빼앗길라

    만산홍엽.보일 듯 말 듯,산 중턱을 점점이 수놓던 단풍이 계곡까지 내려왔다.들판의 은행나무,공원의 느티나무도 어느덧 노랗게,빨갛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가족 또는 연인과 어디 호젓하게 단풍의 운치를 맛보며 드라이브를 즐길 만한 곳이 없을까. 가을이면 길 양편 산자락이 온통 붉은 물이 든다는 구룡령,소문나지 않은 단풍골인 금당계곡,조림한 곳이지만 단풍의 운치만은 빠지지 않는다는 에버랜드 단풍 드라이브코스를 소개한다. ●구룡령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중에 가장 풍경이 아름답다는 구룡령.이맘때 구룡령을 넘으려면 절대 서행해야 한다.길 양편의 불타는 듯한 단풍에 눈길을 빼앗겨 자칫 사고나기 십상이기 때문.워낙 한적해 기어가듯 천천히 가도 뒤에서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차도 없다. 구룡령에 닿는 길은 크게 두 가지.먼저 영동고속도로 속사IC에서 빠져 31번 국도를 타고 운두령을 넘으면 바로 구룡령이 시작되는 홍천군 내면 창촌리에 닿는다. 또 하나 새로난 아름다운 길이 있다.홍천을 지나 철정검문소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451번 지방도로.이 길을 타고 상남면까지 간 후 면 시가지 초입에서 상남초등학교 쪽으로 우회전하면 446번 지방도로다.지난 봄 완전히 포장된 이 길을 따라 가면 절경인 미산계곡을 지나 내면에 닿는다.구룡령의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고개 너머 양양까지 계속 이어진다.고개를 내려오면서부터는 미천골이 이어진다.불바라기 약수와 선림원터가 있는 이곳은 활엽수가 많아 가을이면 계곡 전체가 불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문의 홍천군청 관광계(033-430-2544). ●금당계곡 오대산이나 설악산처럼 소문나지 않았지만 절벽을 휘감아 흐르는 물줄기와 어우러진 단풍이 절경인 계곡이다. 계곡 초입엔 활엽수가 다양해 단풍 색깔도 파스텔톤을 띠고 있다.계곡은 봉평면 갈림길에서 시작해 용평면·대화면을 거쳐 15㎞ 정도 이어지다가 평창강으로 빠진다.계곡 초입길은 포장이 돼 있지만,이내 비포장길로 바뀐다.하지만 길이 비교적 넓고 평탄해 승용차로도 무리가 없다. 비포장길에 들어서면서 풍광은 더 수려해진다.병풍을 두른 듯 암벽이 버티고 있는 계곡 곳곳엔 단풍이울긋불긋 수를 놓고 있다.벼랑이 높고 깊은 하류로 갈수록 단풍 빛깔은 더 곱고 진하다. 금당계곡으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빠져 봉평 쪽으로 가야 한다.장평읍내를 지나 대화와 봉평 갈림길에서 우회전해 봉평 쪽으로 가다 보면 막다른 삼거리에서 금당계곡 표지판이 서 있다.삼거리에서 직진해 고개를 넘으면 바로 금당계곡이 시작된다.문의 평창군 문화관광과(033-330-2399). ●에버랜드 단풍 드라이브코스 에버랜드 외곽도로는 대부분 산등성이를 따라 만들어져 있어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좋다.특히 길따라 촘촘히 심어진 가로수에 단풍이 드는 요즘이 가장 운치가 좋다. 대략 4개의 코스에서 단풍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먼저 영동고속도로 마성 톨게이트에서 에버랜드 정문까지 이어지는 5㎞ 코스.도로 좌우변에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벚나무들이 2m 간격으로 심어져 있어 노랑과 빨강이 어우러진 단풍이 군데군데 심어놓은 노송과 어우러져 완연한 가을 분위기를 낸다. 다음은 에버랜드 서문에서 호암미술관에 이르는 구간으로,거리는 짧지만호수와 단풍이 어우러진 풍광이 수려하다.빼곡히 들어선 은행나무·단풍나무의 화려한 색깔이 호수에 비쳐 색다른 아름다움을 전한다.이밖에 계곡과 산자락을 끼고 있어 마치 산길을 걷는 느낌을 주는 에버랜드 숙박시설인 ‘홈브리지 힐사이드 호스텔’ 진입로,온로드 자동차 경기장인 스피드웨이 트랙 옆으로 난 스피드웨이 순환도로에서도 단풍의 제맛을 느껴볼 수 있다.문의 에버랜드(031-320-5000). 임창용기자 sdragon@
  • [열린세상] ‘문화 차이’를 인정하자

    앞집 사는 미국여성과 제법 친하게 지낸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아파트 앞집이라는 게 그렇듯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언제나 전화 확인 후 방문한다.만나기 전 약속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이다.그러다 보니 둘 다 뻔히 집에 있는 상황에서 전화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보고싶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낯 간지럽게도!).문화 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문화 차이가 실제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아무리 노력해도 커뮤니케이션이 힘들어질 때가 적지 않다.예컨대 정(情),한(恨),체면,신바람 같은 것의 의미는 말로 온전히 설명되지도 않고 이해시킬 수 있는 성질도 아니다.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접근 차원도 달라서 서구 문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 자체를 중시하지만 우리 문화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편이다.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즉 ‘권력 거리’가 큰 문화권은 종종 ‘무엇을 말하는가.’(내용) 보다 ‘어떻게 말하는가.’(관계)를 훨씬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말속에 숨은 뜻을 거의내포하지 않는 이른바 ‘저맥락(low context)’ 커뮤니케이션이 서구 개인주의 문화의 특징이라면 우리나라 기성 세대에 익숙한 집단주의 문화는 이면에 다른 무엇,혹은 숨겨진 뜻을 포함하는 ‘고맥락(high context)’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구사하는 특징이 있다.공식 상황과 비공식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또한 빈번하며,이때 보다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곳은 저녁 술자리와 같은 주로 비공식 상황이다. 이즈음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갈등을 보자면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이 무색하리만큼 집단간 격심한 문화 차이를 드러내는 데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그 가운데 특히 심각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세대간 격차에 대한 부분이다.서구 전통사회가 산업사회로,다시 정보사회로 변모되기까지 2백년 정도 걸린 길을 우리가 50년도 채 안 돼 단숨에 달려온 대가로 겪는 불가피한 현상이다.일찌감치 1950년대부터 정보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한 미국의 경우 현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정보사회 세대에 속한다면,우리나라에는 조부모식 전통사회 세대,부모식 산업사회 세대,자녀식 정보사회 세대가 각기 따로 존재한다.문화 차이가 극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정보사회를 대표하는 인터넷 미디어의 바람몰이가 우리나라 정치사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으면서 사회 곳곳에서 정보사회 세대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앞으로 그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물줄기가 낮은 곳으로 흐르듯 당연하다.산업사회 세대,전통사회 세대라고 해서 모를 리 없는 이치다.따라서 최근에 표출되고 있는 갈등의 핵심은 이미 형성된 물줄기를 되돌리려는 자와 막는 자 사이의 불화가 아니다.우리 사회가 처한,삼대(三代) 문화가 나란히 공존하는 불가피한 현실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배려가 부족한 데 대한 불만이자 섭섭함에 관한 문제이다.결국 문화 차이를 둘러싼 커뮤니케이션 문제인 것이다. 흔히 생각하듯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전부가 아니다.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정의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이해’하고,나아가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선 양자간 공통기반(common ground)이 형성되어야 하며 문화적 동질감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문화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가짐이다.크고 작은 문화 차이는 언제 어디서든 존재하기 마련이다.내 문화가 소중한 만큼 상대방의 문화도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그런데 도대체 우리 같은 단일민족 사이에 문화 차이란 게 생겨야 얼마나 생길 수 있기에 갈등 운운할 정도까지 이른 것인지.누구랄 것 없이 태어나면서 정(情)과 신바람을 가슴에 품는 ‘우리들’은 어디로 실종됐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오 미 영 경원대 교수 신문방송학
  • 진주 ‘유등축제’ 나들이/ 燈 따라 강물따라 소망도 띄우고

    진주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 있다.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게 진주 사람들의 심성이라고.그러다 보니 요즘 같은 ‘홍보의 시대’엔 손해보기 십상이라고.그래선지 이미 반세기 전 종합예술제로 명성을 얻었던 개천예술제나,국내 유일의 등축제인 진주 남강유등축제는 그 역사나 내용 등이 눈에 띄게 돋보이지만 최근 시작된 다른 평범한 지방축제보다도 전국에 알려지지 못했다. 진주 사람들은 또 비빔밥이나 소싸움 등도 진주가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하지만 이미 다른 자치단체에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원조 특허’를 선점해버리자 헛기침만 하며 내심 불편한 심기를 보일 뿐이다. 그래서 외지 관광객이 막상 진주 구석구석을 돌다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주의 참모습에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지금 진주는 유등축제가 한창이다.진주성 촉석루 앞 남강엔 각양각색의 등 수천개가 진주의 가을밤을 ‘진귀’하게 꾸미고 있다. 등축제가 발달된 중국이나 태국 등을 여행하면서 ‘우리는 왜 제대로 된 등축제 하나 없을까.’하며 아쉬움을 느꼈다면 지금 진주를 찾아보자. 남강에 등을 띄우는 유등(流燈)놀이는 임진왜란 당시 3800여명의 병력으로 2만여명의 왜군을 물리친 진주대첩에 뿌리를 두고 있다.당시 성 밖의 의병 등 지원군과의 군사 신호로 풍등(風燈)을 하늘에 올리고,강물 위에는 등을 띄웠다고 한다. 풍등과 유등 행사는 이후 전쟁에서 순절한 병사들과 사민들의 얼을 기리기 위해 이어져 왔는데,오늘의 유등축제로 자리잡게 됐다. 이번 축제에 선보인 등은 한국·중국·일본·타이완·태국 등 8개국의 등 전문가들이 제작한 147개의 대형 등을 비롯,고등학생들이 경연대회에 출품한 창작등,시민들과 관광객들이 각자 소망을 적은 소망등 등 1만개가 넘는다.행사기간(15일까지) 중 매일 밤 촉석루 맞은편 남강 둔치에선 소망등을 강물에 띄우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호국충절의 성지.진주대첩 이듬해 왜군의 2차 공격 때 중과부적으로 3500여명의 군사와 6만여명의 백성이 순절한 곳이다.이때 논개는 주연 중 적장을 껴안고 강물에 투신해 충절을 다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촉석루 마루에 앉으니 벼랑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 남강 물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승리에 도취된 왜장이 주연을 즐길 만한 절경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촉석루 아래 벼랑 앞 너럭바위는 의기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곳.임란 전에 위암(危巖)으로 불리던 이 바위는 논개가 순국한 후 의암(義巖)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진주성은 성벽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한 바퀴 도는 거리는 6㎞ 정도.특히 촉석루에서 시작해 성내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서장대까지는 왼쪽으로 남강을 끼고 있어 전망이 아주 좋다.서장대에 이르니 남강 둔치에 수십마리의 소가 매어져 있는 것이 내려다 보인다.소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진주국제대 국제관광개발센터 소장인 이우상 교수는 진주 소싸움이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기념 잔치에서 비롯된 것이 고려 말부터 진주를 중심으로 자생해 이어진 고유의 민속놀이라는 것. 이같은 내용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수록돼 있다.1900년대 이후에 나온 진주 소싸움 사진과 우표 등은 이같은 역사의 일단을 보여준다. 체중이 1t에 이르는 황소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싸움을 벌이는 광경은 사뭇 격정적이다. “뿔감아돌리기를 시도하는 영롱이” “밀어치기로 응수하는 초롱이”.장내 아나운서는 코믹한 멘트와 제스처로 흥을 돋우고,둔치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저마다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싸움은 한 마리가 지쳐 등을 돌리고 도망갈 때까지 계속되는데,보통 한 게임당 10분 정도 걸린다. 진주 시내에서 20분 정도 서쪽으로 가면 남강의 발원지인 진양호가 자리잡고 있다.진양호는 1969년 남강댐을 막아 생긴 인공호수.지리산에서 발원한 덕천강,덕유산에서 시작된 경호강이 합류하는 호수다. 호수 조망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댐 인근 진양호공원 내에 있는 3층 규모의 휴게전망대.전망대에 서니 뒤쪽만 빼고 나머지 3면이 호수다.멀리 지리산,와룡산,지굴산,금오산도 한 눈에 들어온다. 호수 주변으로 난 진양호 일주도로는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그만이다.약 40㎞에 이르는 이곳은 마라톤코스로도 활용된다.호수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진주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 진주IC에서 빠져 3번 국도를 타고 진주시내쪽으로 가면 진주교를 건너자마자 진주성이 나온다.진주시내에서 남강을 따라 강변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10분만 가면 남강댐,진양호에 닿는다.서울에서 4시간 소요. 열차는 서울역에서 1일 5회,고속버스는 고속터미널에서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항공편은 김포공항에서 진주 사천공항까지 1일 7회 있다.문의 진주고속버스터미널(055-758-3111),진주역(055-752-7788). ●숙박 호텔은 남강변 옥봉동의 동방관광호텔(055-743-0131),진양호공원 내의 아시아레이크사이드호텔(055-746-3734)이 있다.레이크사이드호텔은 모든 객실이 호수를 조망할 수 있다.진양호 인근의 펜션 호수 속의 동화풍경(055-759-6465)도 묵을 만하다.진주시내엔 30여개의 여관이 있다. ●진주 실크 진주는 한국 실크 생산의 70%를 점유하는 실크주산지.이곳 사람들은 지리산에서 흘러드는 청정 남강물을 이용한 실크 가공 기술의 발달로 진주 실크가 유명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진주엔 각종 견직물 생산 및 디자인,염색가공 등 실크 관련 업체들이 많다.시청 인근의 한국견직연구원(055-761-0212)에 가면 직조에서부터 염색,디자인,제품 생산 등 전 공정을 볼 있으며,다양한 실크체험도 가능하다. 또 진주성 정문 앞의 실크 공동매장 ‘실키안’(055-747-9841)에 가면 넥타이와 스카프,한복감 등 실크소재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실키안은 진주 실크 제조업체들이 개발한 공동 브랜드명이기도 하다.문의 진주시 관광진흥담당(055-749-2055),관광안내소(055-749-2855). 식후경 진주의 전통음식으로는 비빔밥과 헛제삿밥(사진)이 유명하다.비빔밥의 유래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진주성 싸움 때 급박한 상황에서 군사들에게 밥그릇에 몇가지 나물을 얹어 비벼 먹을 수 있도록 나누어준 것이 지금의 비빔밥으로 전해 내려왔다는 것이다. 진주비빔밥은 ‘칠보화반’(七寶花飯),‘꽃밥’으로 불릴 만큼 맛 못지 않게 시각적 아름다움을 중시한다.동황색의 둥근 놋그릇과 흰 빛의 밥테,그리고 다섯가지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가지 색상의 꽃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여기에 마늘과 깨소금,참기름으로 양념한 육회를 얹어 밥을 비벼먹는다. 중앙시장 인근의 천황식당(741-2646)이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5000원. 진주 헛제삿밥은 쌀이 귀했던 시절,유생들이 헛제사를 지낸 뒤 제수음식을 먹은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각종 나물과 탕국,전,산적 등을 놋그릇에 깔끔하게 담아낸다. 평안동의 아담한 한옥집인 ‘진주 헛제삿밥’(055-743-3633)이 유명하다.메뉴는 헛제삿밥 정식과 비빔밥 두가지.정식은 3인상 3만원,2인상 2만 5000원.비빔밥은 5000원.
  • [길섶에서] 하늘공원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서울 상암동 난지도 ‘하늘공원’에 올랐다.나무로 된 층층 계단을 오르면서 쓰레기 더미 위에 조성된 인공 공원에 뭐 볼 만할 게 있겠느냐며 솔직히 심드렁해 했다.하지만 해발 98m의 하늘공원은 이름 값을 했다.정상에 이르니 광활한 지평선이 펼쳐졌고 하늘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5만 6000여평의 평원을 메운 억새와 띠 같은 들풀과 구절초·코스모스 등 야생화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전혀 상상치 못한,도심속의 이색 풍경이었다. 저 멀리 잠실에서 김포까지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의 물줄기를 굽어보는 재미도 유별났다.때마침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 저녁 노을은 화룡점정의 극치였다.큼직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디지털카메라,캠코더 등에 젊은 날의 추억을 담는 연인들의 모습도 정겨웠다.쓰레기 산 위에 피어난 하늘공원엔 분명 한 조각 인간의 선의(善意)가 살아 있었다. 김인철논설위원
  • 소설로 살아난 ‘열사 전태일’/김정환 소설 ‘남자, 여자, 그리고 영화’

    2002년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할 당시 ‘읽는 영화’라는 평을 받으며 눈길을 끌었던 시인 김정환의 ‘남자,여자,그리고 영화’(웅진북스 펴냄)가 출간됐다. 이 소설은 ‘전태일에 대한 명상’이란 부제가 말하듯 청계천 피복노조를 이끌다 분신한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작가는 그의 생애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운동권 대학생의 이야기와 교차시키며 입체적으로 그린다. 소설의 한 축은 학생운동으로 수배,잠행중인 서울대 법대 68학번 주인공 ‘화자’와 애인인 음대생 여자의 이야기. 고(故)조영래 변호사를 모델로 한 듯한 ‘화자’의 긴박한 도바리(수배를 피한 잠행)생활을 중심으로 암울했던 70년대의 학생운동권 풍속도를 정밀하게 재현한다.그 속에서 전태일의 삶이 학생운동권에 드리운 그림자 등 그를 통해 잊어서는 안될 역사의 물줄기를 오롯이 복원시킨다. 작품의 다른 축은 전태일의 삶이다.세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개인적 고난을 딛고 열악한 사회현실에 눈떠가는 노동운동가의 내면세계를 점진적으로생생하게 그려낸다. 두 축이 교차하는 작품은 ‘읽는 영화’라는 평에 걸맞게 파격적 묘사가 많이 등장한다.음악을 들려주는 듯한 표현 속에 시나리오 지문 같은 배경을 깔면서 전태일과 ‘화자’ 등 주인공의 움직임을 영화보듯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지은이는 “전태일의 삶과 글은 남한 노동운동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전체의 지도력 부재를 웅변하고 죽음으로 역전시켰다.”며 “이 작품은 전태일에게 선구자만이 아니라 현대적 인간의 전형성을 주기 위한 문학적 욕망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작품에 질박한 그림을 보탠 임옥상 화가는 “김정환 소설을 그리는 것이기도 했지만 나는 ‘전태일’을 그렸다”며 “전태일 정신의 부활을 흙에서 발견했다.”는 감동을 들려준다. 이종수기자
  • 빗줄기속 報恩 땀방울/“작년 루사때 전국서 온정의 손길” 강릉 주문진 40명 이웃마을 돕기

    “지난해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에 피해를 본 분들을 도와드리는 게 당연하죠.” 지난해 태풍 루사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뒤 복구공사를 통해 올해 수해를 피한 마을 주민들이 이웃 동네의 수재민 돕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태풍 ‘매미’가 할퀸 뒤 5일 만에 또다시 비가 내린 18일 오전.강릉시 주문진읍 장덕2리 주민 40여명은 빗줄기 속에서도 왕산면 대기2리 백합농장에 모여 지난 13일 농장 옆 대기천이 범람하면서 비닐하우스를 덮친 토사를 삽으로 연방 걷어내고 있었다. ●작년 루사 피해 딛고 옆 동네 수재민 돕기 나서 트럭과 승합차에 나눠 타고 1시간30분 거리인 농장에 도착한 이들은 빗줄기가 굵어지자 작업을 서둘렀다.무릎까지 차오른 흙더미를 헤쳐 가며 후텁지근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을 하는 주민들은 연방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장덕2리는 지난해 태풍 ‘루사’의 피해로 마을 전체가 초토화됐다. 일주일 가까이 길과 전력,상하수도가 끊기고 외부와 고립됐다.전체 104가구 가운데 80가구가침수되고,22가구가 물길에 떠내려가는 등 멀쩡한 집이 없었다.30만평의 농경지도 3분의2 이상 물에 잠기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루사’ 피해 이후 주민들은 “또 당할 수 없다.”며 스스로 팔을 걷고 나서 취약지역을 보강했다. 마을 하천인 신리천의 폭을 60m로 두배 가까이 넓히고,기존의 물길을 복구해 범람 가능성도 최소화했다.이 때문에 올해는 농경지 2000여평만 유실됐다. ●거센 빗줄기에 힘든 줄 모르고 복구 도와 장덕 2리 주민들은 지난 15일 주민 회의를 통해 일손이 급한 다른 마을을 돕기로 의견을 모았다.삽,곡괭이 등 작업도구와 자체 성금으로 마련한 10㎏짜리 쌀 63부대를 이날 트럭과 승합차 9대에 나눠 실었다. 삽으로 토사를 퍼내던 부녀회장 김경자(53)씨는 “지난해 서울,경기 등 전국 각지의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마을이 루사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면서 “마을 주변뿐 아니라 더 많은 피해를 입은 남부 지역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46채의 비닐하우스 가운데 20여채가 매몰·침수돼 3000여만원의 피해를 입은 농장 주인 최명룡(42)씨는 장덕2리 주민들이 퍼낸 흙을 트랙터에 싣고 대기천 주변에 쌓아 올렸다. 최씨는 “장덕2리 주민들이 아니었다면 땅에 묻힌 백합을 건지는 것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땜질식 복구도 문제 이날 오후 비가 이어지면서 대기천의 물줄기도 빨라졌다.오전에 내려진 호우주의보가 호우경보로 확대 발령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장덕2리 청년회 회장 함대호(51)씨는 “물난리에 시달리다 보니 이젠 빗줄기만 봐도 덜컥 겁부터 난다.”면서 “하늘이 어쩌면 이렇게 야속하냐.”고 한숨을 쉬었다.다행히 대기천의 수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은 이번 피해가 천재라기보다 인재에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지난해보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았는데도,피해 규모가 예상 밖에 큰 것은 정부의 ‘땜질식 복구공사’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장덕2리 주민 정호륭(60)씨는 “지난해 해당 관청에서 현장에 와 보지도 않고 하천 복구 공사를 하려고 해 시청까지 가서 항의했다.”면서 “지난해 복구 공사를 제대로 했다면 올해 고통이 덜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릉 이두걸기자 douzirl@
  • 쪽빛 하늘아래 아득한 옛 향기 나는 안동으로 간다

    농암 종택 긍구당의 새벽 태풍이 한바탕 난리를 피운 탓인가.청명한 하늘을 이고 성큼 다가선 가을이 오히려 야속하다.가을은 옛 것이 그리워지는 계절.가을 하늘의 쪽빛만큼이나 깊은 연륜이 느껴지는 곳,경북 안동을 찾았다. 초가을 새벽.문풍지 틈새로 새어드는 바람의 한기에 잠을 깬다.콧 속에 스며드는 새벽 바람이 상쾌하다.문을 열어젖히자 마자 쏟아져 들어오는 나무와 풀 내음.누마루 건너 마주보이는 절벽 밑으로 낙동강 상류 물줄기가 세차게 흐른다. 경북 안동시 농암 종택 긍구당의 새벽은 이렇게 시작된다.도산면 가송리 남청량산 자락의 일명 올미재에 자리잡은 이곳은 국문으로 쓰여진 강호 문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농암(籠岩) 이현보(李賢輔)의 종택.농암 종택은 본래 인근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마을과 함께 수몰됐다가 최근 안동시에 의해 가송리에 복원됐다. 사당,안채,사랑채,문간채의 ‘튼ㅁ자’ 구조의 본채와 긍구당,명노당 등 별당으로 구성돼 있었다.다행스럽게도 수몰 당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긍구당(肯構堂)과 사당은다른 곳에 급하게 옮겨졌다가 종택이 복원되면서 제자리를 찾았다.긍구당은 농암이 태어난 건물로 농암 종택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안채엔 농암 선생의 종손인 이성원(51)씨 부부가 산다.문학 박사인 이씨는 강호문학연구소란 이름를 내걸고 조선시대의 강호 문학을 연구하는 한편,부인을 도와 전통 민박도 한다. 안채 마루에 차려진 아침밥상이 정갈하다.밥상 앞에서 이씨는 안동댐 건설로 인한 수몰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농암의 농암가와 어부가,도산의 도산십이곡의 무대가 바로 이 일대였지요.낙동강 상류 물줄기가 산자락을 한번 돌 때마다 하회마을과 같은 전통마을이 하나씩 있었어요.모두 아홉개 곡(曲)이 있었는데 댐 건설로 여섯개 곡이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퇴계 체취 그윽한 도산서원 종택에서 안동과 봉화로 이어지는 35번 국도까지는 험한 비포장길.길 오른쪽으로 절벽과 어우러진 강변 풍광이 절경이다.특히 청량산 남쪽 암벽 아래 자리잡은 고산정(孤山亭) 일대의 경치가 뛰어나다.고산정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금난수가 지은 정자로,퇴계를비롯한 수많은 선비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정자 건너편 구릉지엔 마침 메밀꽃까지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운치를 더한다. 35번 국도를 타고 안동 시내쪽으로 10분만 가면 도산서원이 있다.이곳은 ‘해동 주자’로 일컬어지는 퇴계가 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퇴계 사후 제자들과 유림에서 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사액서원(賜額書院·왕이 편액을 내린 서원)인 도산서원을 세웠다. 퇴계가 유생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유생들이 숙식을 하던 농운정사,선생 사후 서원을 세우면서 지은 전교당(典敎堂),책을 찍어내던 장판각 등 20여채의 건물이 있다.이중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선생 생전에 지은 가장 오래된 건물.고색창연한 기둥과 툇마루,댓돌 등엔 퇴계의 체취가 그대로 배어있는 듯 하다. 서원 설립 당시 전교당에 걸린 ‘陶山書院’(도산서원) 편액에 담긴 이야기가 재미 있다.이 편액은 당대의 명필 한석봉이 선조의 명을 받아 썼다.한데 도산서원 편액이라는 것을 알면 한석봉이 놀라 붓이 떨릴까봐,선조는 미리 얘기하지 않고 ‘院’‘書’‘山’‘陶’를 거꾸로 불러 한자씩 쓰게 했다.마지막 ‘陶’자를 쓰면서 도산서원 편액임을 깨달은 석봉은 정말 붓이 떨려 도자만 삐뚤게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자가 임한 곳? 퇴계태실 서원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하나 넘어가면 퇴계 종택이다.1920년대 선생의 13대손인 이하정이 옛 종택의 규모대로 지었다.정면 6칸,측면 5칸 ‘ㅁ’자 형태인데 총 34칸으로 이루어져 있다.종택엔 종손 이동은옹,차종손 이근필씨가 산다. 이근필(70)씨는 방문객들이 오면 대청마루에 마주 앉아 평소 퇴계 선생이 강조하시던 말씀을 들려준다.그중 특히 요즘 사람들이 새길 만한 말씀은 평소 붓글씨로 써 놓았다가 봉투에 넣어 일일이 선물한다.봉투를 건네는 그의 표정엔 날로 부박해져만 가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 종택을 나와 3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5분 정도 가니 퇴계선생이 태어난 퇴계태실이 나온다.단종 2년(1454) 조부 이계양이 세운 집이다.‘ㅁ’자형 본채의 중앙 돌출된 방에서 선생이 태어났다고 한다.퇴계 선생의 어머니 박씨 부인은 ‘공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시는 태몽'을 꾼 뒤 퇴계를 낳았다고 한다.그래서 대문 이름도 ‘성림문’(聖臨門)이라고 지었다고 한다.태실 앞의 좁지만 말끔하게 비질된 마당에 서니 어릴적 선생이 아장아장 걸으며 놀던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 듯하다. 안동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빠져 34번국도를 타고 안동 시내로 진입해야 한다.시내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로 갈아타고 30분쯤 북쪽으로 달리면 오른쪽으로 도산서원,퇴계 종택,왼쪽으로 퇴계 태실이 나온다.퇴계 태실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5분 정도 더 가면 오른쪽으로 농암종택 진입로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안동터미널(054-8298)까지 30분 간격으로,기차는 청량리역에서 안동역(054-856-7788)까지 하루 8회 출발한다. ●숙박 안동에선 잠자리도 전통 체험의 한 코스.지은 지 수백년된 고택에서 하룻밤 묵으며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최근복원한 도산면 가송리의 농암 종택(054-843-1202),임동면 수곡리의 수애당(054-822-6661),임동면 박곡리의 지례예술촌(054-822-2590)이 전통 민박을 운영하는 대표적 고택들이다.농암종택은 낙동강 상류를,지례예술촌과 수애당은 임하호를 끼고 있어 모두 주변 풍광이 뛰어나다. 숙박료는 방 크기에 따라 3만∼8만원.아침식사 5000원. ●2003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오는 26일부터 10월 5일 사이에 안동을 방문하면 탈춤의 진수를 맛보고 다양한 이벤트 행사도 즐길 수 있다. 낙동강변 축제장 및 하회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에선 하회별신굿탈놀이와 봉산탈춤,강령탈춤 등 한국의 대표적 탈춤과 함께 이탈리아,독일,몽골,태국,일본 등 10개 외국 단체가 참여해 신명나는 탈춤판을 벌일 예정. 축제 관람을 위해 10월 3∼5일 서울(청량리역)에서 매일 오전 8시 10분 안동행 축제 관광열차가 출발한다.요금은 3만7300원.강변 축제장과 시내,하회마을을 연결하는 셔틀버스도 운영된다. 문의 안동시 문화체육관광과(054-851-6393),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추진위원회(054-851-6398). 식후경 헛제삿밥과 간고등어는 안동의 대표적 전통 음식.헛제삿밥은 제사후 제사음식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던 풍습에서 나왔다.평상시 제사는 올리지 않지만 제사 음식과 같은 재료를 마련하여 비빔밥을 만들어먹는다고 해 헛제삿밥이라고 한다. 숙주나물,무나물 등 대여섯가지 나물을 대접에 깔고 밥을 넣어 비벼먹는다.어물이나 육류,산적에 탕국이 곁들여진다.안동댐 인근 월영교 맞은 편의 ‘까치구멍집’(054-821-1056),‘민속음식의 집’(054-821-2944)이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메뉴는 헛제삿밥(5000원)과 양반상(1만원) 두가지.양반상엔 헛제삿밥에 탕평채,쇠고기 산적,조기구이,안동식혜 등이 추가된다.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유명해진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동해에서 잡힌 고등어를 염장해 지고 오는 24시간 동안 적당히 숙성됐기 때문이라는 설,생고등어를 지고오다가 안동 인근에 이르면 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염장해 먹으면 최고의 맛이 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민속음식의 집과 나란히 붙어 있는 ‘양반밥상집’(054-855-9900)이 간고등어 전문집으로 유명하다.구이정식과 조림정식은 각각 6000원,구이와 조림이 함께 나오는 구이조림정식은 1만원이다.
  • “이번엔 의문사 진상 꼭 밝혀지길”장준하선생 두 아들 규명위와 현장 답사

    “제2기 의문사위원회는 아버지의 죽음을 제대로 밝혀주기를 바랍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화운동가인 고 장준하(1918∼75) 선생의 맏아들 호권(鎬權·56)씨는 3일 28년 전 아버지(당시 57세)가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 골짜기를 힘겹게 올랐다. 부친이 의문사한 뒤 조국의 암울한 상황에 낙담,지난 26년 동안 싱가포르에 터를 잡고 생활하면서 단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는 곳이다.10여년 전 지인 몇 사람과 추모등반대회를 하며 주변을 둘러보긴 했지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공식 조사에 동참한 이날 활동은 사건 이후 항상 바라던 일이었다. 백운계곡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험한 산줄기와 세찬 물줄기,거센 바위덩이를 지나 40여분쯤 오르자 파란 끈이 묶인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호권씨가 “세월이 흐르면 장소를 못찾을 수 있다.”며 사건 한달 뒤인 75년 9월17일 추모비를 설립할 때 묶어 놓은 것이었다.일행은 “여기다,여기.”를 외치면서 고 장준하 선생이 지난 75년 8월17일 시체가 발견된 장소를 가리켰다. 호권씨는“당시 함께 산을 올랐던 산악회원 말로는 아버지가 나무를 붙잡다 미끄러져 추락사했다는데 어떻게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시체가 그렇게 깨끗할 수가 있느냐.”고 되물었다.차남 호성(鎬成·53)씨는 “74년 3선개헌 반대를 외치던 아버지는 추락사한 게 아니라 당시 아버지를 국정 위해분자로 규정했던 세력들이 죽인 것”이라며 추모비를 어루만졌다. 아버지의 추모비 앞에 바칠 흰 국화 꽃다발을 쥐고 가던 호성씨는 “이번만은 꼭…”이라며 말끝을 흐렸다.지난해 1기 의문사위 활동에 대한 아쉬움이 큰 탓이었다.호성씨는 “사법기능이 없는 상태에서 조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제1기 의문사위는 지난해 9월 재야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을 한 점은 인정되지만 사망과 관련한 구체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제2기 의문사위는 이 사건을 포함,‘진상규명 불능’ 결정이 내려진 30건의 의문사를 재조사하고 있다.의문사위 조사1과 고상만 조사관은 “사건 당시 정황을 잘 알고 있는호권씨가 의문사위와 함께 처음 이곳을 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유가족의 진술을 토대로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신독재에 항거하던 장준하 선생은 당시 약사봉을 오르다 14.7m 아래 절벽으로 추락,실족사한 것으로 당시 경찰이 발표했다.하지만 추락 시체에 두부함몰상 말고는 아무런 외상이 없었으며,당시 정보기관이 행적을 집요하게 추적했다는 점 때문에 유신시절 대표적 의문사로 꼽혀왔다.호권씨는 오는 12월쯤 영구 귀국해 사상계를 복간할 계획이다. 포천 구혜영기자 koohy@
  • 책꽂이

    ●철학자 플라톤(미하엘 보르트 지음,한석환 옮김,이학사 펴냄) “나는 유럽의 철학적 전통을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라고 말하고 싶다.”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한 이 유명한 말은 서양철학사에서 플라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웅변해준다.서양정신사란 거대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만나는 서양철학의 원류가 바로 플라톤이다.육체와 영혼,이데아론,선험적인 앎과 상기,앎의 개념 등 플라톤의 주요 사상을 다룬다.1만원. ●IT혁명의 구조(존 피어스·마이클 놀 지음,변윤식 옮김,사이언스북스 펴냄) 첨단 네트워크 사회를 이끈 정보통신 과학의 원리와 역사를 조명.저자들은 미국 정보통신 과학과 산업의 메카였던 벨 시스템 벨 연구소의 핵심 연구원 출신.특히 피어스는 20세기 후반 ‘반도체혁명(고체혁명)’의 출발점이 된 트랜지스터 개발에 참여,‘트랜지스터’란 이름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1만8000원. ●아인슈타인의 유쾌한 편지함(앨리스 캘러프라이스 지음,박은희 옮김,세종서적 펴냄) 아인슈타인은 1919년 상대성이론이 검증된 이후 세계적인 스타가 됐고 그때부터 많은 어린이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과학자도 기도를 하느냐는 제법 철학적인 질문,천재라서 정신병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공연한 걱정 등 하나같이 아인슈타인의 삶과 사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실린 것들이다.이 책엔 그런 동심의 결정체가 담겼다.9300원. ●신군주론(프란체스코 귀치아르디니 지음,해누리 펴냄) 난세를 살아가기 위한 국가통치론과 지혜의 처세술을 기록.이탈리아 피렌체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저자는 마키아벨리와 절친한 친구로 그와 더불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다.마키아벨리가 강력한 군주를 중심으로 한 통일국가의 건설을 지향했다면,귀치아르디니는 이상적인 귀족정치를 바탕으로 통일을 꿈꿨다.8700원. ●위험한 시장(도미니크 바튼 등 지음,강남규 옮김,아라크네 펴냄) 기존 통념과 학설은 금융위기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생존전략을 짜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금융위기는 본래 그 나라의 특수한 경제,문화,정치구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위기는 예측 가능하고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략적 선택을 통해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2만4000원. ●꼴 따먹기(이춘희 글,김품창 그림,언어세상 펴냄) ‘꼴’이 뭔지 아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뒷동산으로 소먹이 풀(꼴)을 베러간 아이들이 장난기가 발동해 꼴따먹기를 하는 추억의 장면을 아로새겨냈다.꼴따먹기란,땅에 그어놓은 금에 낫을 던져 맞히는 사람이 꼴을 차지하는 전래놀이.닥종이 인형처럼 생긴 시골아이들의 정겨운 모습에서 아이들은 어렴풋이나마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의 향수를 느낄 것 같다.4세 이상.8500원.
  • 탈북자들의 험난한 ‘자유여정’/ 김정현 소설 ‘길 없는 사람들1·2’

    ‘아버지’로 수백만 독자의 심금을 울린 작가 김정현(46)이 이번엔 탈북자들의 한과 역사적 의미에 눈을 돌렸다.신작 장편 ‘길 없는 사람들 1,2’(문이당 펴냄)는 지난 99년 발표한 ‘전야’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3부로 마무리 짓는 작품이다. 26년째 비전향 장기수로 수감중인 김영식의 여동생 영애가 오빠를 특별 면회한 뒤 그의 비인간적 대우를 목도하고 국제사면위원회를 통해 구명 운동을 벌인다.그러나 오히려 북한은 이것이 간첩남파 문제로 비화될 것을 우려하여 중국에 있던 김영식의 딸 지숙을 송환하고,그 과정에 지숙이 중국 식당에서 만난 권장혁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중국,홍콩,미얀마,남북한 등지를 떠돌며 자유를 찾아가는 두 사람의 험난한 여정을 그리는데,전직 경찰관 경력의 작가가 이 과정을 긴박감있게 묘사해 소설은 한층 더 흡입력을 갖는다.탈북자들의 탈출과 도망,추격 장면 등이 작가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체에 실려 생생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탈북자들의 사연을 취재하느라 2만5000㎞를 누볐고 지난해부터는 아예 중국에 눌러 앉아 작품을 완성했다.그는 “취재도중 만난 탈북자는 눈앞조차 내다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나 다름 없었다.”면서 “작품의 제목은 생각마저 단절당한 그들의 심정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작가는 이어 “그들에게 생각의 길을 이어준다면 역사는 스스로 물줄기를 바꾸리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이종수기자
  • 영월 / 단종의 恨·동강의 활기 절묘한 어우러짐

    38번 국도를 타고 제천을 지나 영월로 접어들다 보면 왠지 숙연함을 느끼게 된다.공교롭게도 산비탈에서 도로쪽을 향해 자란 낙락장송들이 550여년 전 열다섯의 나이에 왕위에서 쫓겨나 영월로 유배왔던 비운의 단종을 향해 허리를 굽힌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영월은 깎아지른 동강,선돌 등의 비경을 품고 있어 문화유적지 답사와 피서를 겸해 나들이하기에 알맞은 여행지.동강 굽이굽이 래프팅을 즐기는 피서객의 발랄함이 넘쳐나는 영월을 찾았다. ●패전장수의 전설 간직한 ‘자라바위' 영월읍에 접어들면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비경중 하나가 길 오른쪽 서강 한 쪽에 두 갈래로 우뚝 솟아 있는 선돌(立石)이다.소나기재 정상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50여m쯤 서강쪽으로 걸어가 전망대에 서면 푸른 물줄기와 층암절벽이 어우러진 한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하다.선돌과 절벽 사이로 보이는 강물이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선돌 아래엔 현재의 38국도가 개통되기 전 사람과 우마차가 다녔던 옛길이 남아 있고,그 앞의 소(沼)엔 가슴아픈 사연을 지닌 ‘자라바위’가 솟아 있다.전설에 따르면 선돌 아래의 남애(南涯)마을 출신의 한 장수가 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이곳에서 몸을 던져 자라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장릉옆 소나무도 ‘비운의 왕' 애도하는 듯 선돌을 뒤로하고 영월읍을 향해 10여분쯤 달리니 오른쪽으로 청령포 가는 길이 나온다.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돼 유배중 거처했던 청령포는 입장권(1000원)을 끊어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다.삼면이 강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뒤로는 험한 산자락과 절벽으로 막혀 있기 때문.‘어린 왕의 고독과 두려움이 얼마나 지독했을까?’하는 생각에 새삼 가슴속이 시려온다.선착장 앞 주차장 왼쪽 편엔 단종에게 전할 사약을 가지고 왔던 왕방연이 지었다는 시를 새긴 시비가 서 있어 애잔함을 더한다. 영월읍 영흥리엔 단종의 능인 장릉이 있다.유배 끝에 결국 사약을 받고 승하하자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모신 곳이다.이곳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에 절을 하듯 묘하게 틀어져 있어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영월읍 일원엔이밖에도 단종이 홍수 때문에 거처를 옮겨 사약을 받을 때까지 살았던 관풍헌,단종 승하후 시종과 시녀가 뛰어내려 죽었다는 낙화암,단종의 영정을 모신 영모전,사육신과 생육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창절서원,엄흥도 기념관 등이 있다. 비운의 흔적을 찾아 이곳저곳 발길을 옮기다 보니 한여름 땡볕에 등줄기가 축축하다.이럴 때는 스릴 있고 시원한 래프팅이 최고.굽이쳐 흐르는 동강의 물줄기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동강 래프팅은 출발 지점에 따라 3가지 코스가 있다.가장 참가자가 많은 구간은 문산나루∼어라연주차장(9㎞) 코스로 3시간 소요.요금은 성인 2만 5000원,초등생 이하 2만원.이밖에 진탄리(12㎞·3만 5000원) 및 정선읍 운치리에서 시작하는 코스(30㎞·7만원)도 있다. ●동강 비경에 한여름 땡볕도 잊고 코스가 완만한 동강 래프팅은 스릴감보다는 강 양편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기암절벽 등 비경을 감상하는 기쁨이 크다.문산나루에서 ‘섭새’라고 불리는 어라연 주차장까지 옥선암,두꺼비바위,상·중·하선암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늘어서 있다.또 ‘햇살에 비친 물고기 비늘이 비단처럼 아름답다.’는 어라연(魚羅淵),한때 댐 예정지로 거론됐던 만지(滿池)가 이어진다.만지는 과거 아리랑의 발상지인 정선 아우라지로부터 목재를 운반하던 사공이 뗏목을 대놓고 쉬던 자리.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만지’란 이름이 붙었다. 래프팅을 즐기는 동안 물에 빠트리기,배 뒤집기,물싸움 등 각종 게임을 즐기면서 옷이 흠뻑 젖기 때문에 반바지와 티셔츠,속옷 등을 여벌로 준비하는 게 좋다.동강 인근에 대자연레저본부(www.iloveleisure.co.kr),태백산맥(02-3477-3114) 등 60여개의 래프팅 대행업체가 있다.대자연레저본부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왕복 교통편 및 식사를 포함하는 패키지 상품(4만 2000원,아이 3만 8000원)도 운영한다. 영월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아이들 손잡고 곤충박물관에도 ●가는 길 서울 방면에선 경부·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신갈·호법 분기점)∼중앙고속도로(서제천IC) 코스가 가장 빠르다.서제천IC에서 빠져 38번 국도를 타고 40분쯤달리면 영월로 접어들게 된다.부산방면에선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광주 방면에선 88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코스를 이용하면 된다.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읍내 버스터미널(033-374-2451)까지 직행버스가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요금은 9500원. ●숙박 영월읍 일원에 여관과 민박집이 많다.방절리의 청령포모텔(033-374-4114),문산리 동강사랑(033-375-2865),황새여울민박(033-375-0069) 등이 비교적 깔끔하다.요금은 평수에 따라 3만∼10만원. ●이색박물관 영월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는 책박물관,곤충박물관,조선민화박물관 등 이색박물관도 아이들 손을 잡고 가볼 만하다.서면 광전리 평창강변에 자리한 책박물관(033-372-1713)엔 1922년 김영보의 ‘황야에서’ 등 대표적 단행본 100여권과 격몽요결을 비롯한 1960년대까지의 어린이 교과서·동화·만화 등 100여점,개화기 조선의 풍물 사진,잡지 등 총 6000여점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하동면 와석리의 조선민화박물관(033-375-6100)은 1300여점의 소장 민화중 까치와 호랑이등 130여점의 민화 및 고가구 5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관람객이 직접 민화 그리기에 참여하는 ‘민화 사랑 체험코너’도 운영하며,박물관내 50평 규모의 통나무집에서 단체 또는 가족 숙박도 가능하다.북면 문곡리의 곤충박물관(033-374-5888)에선 나비,나방류,갑충류,매미류,잠자리류,동강 유역 곤충류 등을 구경할 수 있다.입장료는 세 박물관 모두 어린이 1000원,어른 2000원. 식후경/ 구수하고 은은한 보리된장 별미 영월읍내 장릉 인근의 보리밥 전문식당인 ‘장릉 보리밥집’(033-374-3986)은 음식이 싸면서도 맛있기로 유명하다.30년 된 이곳의 식사메뉴는 보리밥 정식(5000원) 한 가지.따끈한 보리밥에 산나물과 묵나물 15가지,된장찌개가 상차림의 전부다.나물과 된장을 넣고 비벼먹든지,아니면 밥 따로 찬 따로 먹든지 먹는 방법은 손님 맘이다.이집 음식 맛의 포인트는 보리된장에 있다.1년전 쑨 메주로 담근 된장은 구수하면서도 은은한 된장 맛을 자랑한다.맛에 반해 나갈 때 된장을 사가는 사람도 제법 많다고 한다. 술 생각이 나면 역시 직접 담근동동주를 시켜 먹으면 된다.안주로는 도토리묵 무침,생두부,메밀·감자 부침개가 있다.묵과 두부 모두 직접 만든 것.생두부는 양념간장을 얹어서 먹는다.1접시에 3000원인데,먹고 나올 땐 탁월한 맛과 풍성한 양에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다.
  • 시원하고 색다르게 휴가 이곳 어때요/ 관광공사 선정 피서지 3곳

    기나긴 장마 탓인지 뒤늦게 피서객들의 발이 분주하다.우리 땅 어디를 보아도 가는 곳마다 산이요,물이라서 발길 닿는 곳에 발 담그고 몸 적시면 피서지다.그래도 남보다 좀더 시원하게,색다르게 휴가를 즐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8월에 가볼만한 곳을 소개한다. ●역사의 숨결 가득 거제도 해금강,외도 등의 절경과 충무공 유적지,포로수용소 유적관 등 빼어난 자연환경과 함께 역사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거제시청 인근의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관은 한국전쟁 발발후 인민군 및 중공군 전쟁포로 17만여명을 수용했던 시설을 재현한 것.곳곳에 흩어져 있던 잔존 건물과 막사,당시 포로들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꾸며놓았다.58번 지방도로 옆엔 옥포대첩 기념공원이 있다.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을 올린 옥포항이 바로 이곳이다.기념탑,기념관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옥포항 방파제다.여유가 있다면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겨도 좋다. 외도해상농원과 해금강,학동 몽돌해수욕장,거제 자연휴양림은 더위를 피하고 비경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무인도로 이루어진 해금강엔 유람선을 타고 돌아볼 수 있을 뿐 상륙은 안된다.남부면 다대리 도장포 선착장(055-632-8787)에서 배를 타면 된다. 해금강에서 10분쯤 북동쪽으로 달리면 외도해상농원이다.얼마전 작고한 이창호씨가 가꾼 필생의 역작으로,동백나무와 선인장,야자수,유카리,종려나무 등 1000여종의 열대,아열대 식물이 심어져 있다.몽돌해변엔 갖가지 색깔의 동그란 자갈이 쌓여 있어서 해변을 걸을 때 색다른 맛이 난다. 대전·통영간 또는 남해고속도로 진주IC·사천IC를 이용해 통영 방향 77번·14번 국도를 타면 거제대교에 닿는다.문의 거제시청 문화관광과(055-639-3196),시외버스터미널(055-632-1920). ●오대천과 백석폭포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빠져 59번 국도를 타고 정선 방면 이정표를 따라 달리다보면 고산준봉 아래로 시원하게 흐르는 오대천을 만날 수 있다.구불구불 이어진 오대천 물줄기는 59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다가 북평면 나전리에서 조양강과 만나게 된다. 하류로 내려가면서 가리왕산과 그 일대 장전계곡,단임골,숙암계곡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특히 간간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장관을 이루는데,북평면 숙암리의 백석폭포가 압권이다.백석봉(1170m)의 한 줄기 끝에서 오대천을 향해 떨어지는 이 폭포의 높이는 자그마치 116m.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실타래가 봉우리에 걸려있는 듯하다. 숙암계곡을 지나다보면 계곡 너머 그림처럼 지은 민박집들과 농원,잔디밭 등이 눈길을 끈다.북평면 나전2리에 있는 이곳은 작다는 뜻의 ‘졸’과 평지라는 뜻의 ‘드루’가 합해져 ‘졸드루’휴양지로 불린다.아이들이 물장구치고 견지낚시하거나 그물로 물고기를 잡느라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뒤섞여 한 여름 진풍경을 자아낸다.정선군 문화관광과(033-560-2361),정선시외버스터미널(033-563-9265). ●반딧불이 춤추는 경북 봉화 ‘달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던 시인 윤동주의 표현은 지금도 경북 봉화에 가면 유효하다.소백산,문수산,청옥산이 걸쳐 있고,낙동강 길게 흐르는 봉화.그래도 봉화를 대표하는 산은 청량산이다. 요즘 날씨 좋은 날 밤 봉화의 들,특히 청량산 가까이 가면 너울너울 춤을 추는 반딧불이가 어릴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청량산은 해발 850m로 그리 높지 않지만,층층이 깎인 연화봉,향로봉 등 12봉,크고 작은 암자터를 27개나 품고 있는 명산이다. 매표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세차게 떨어지는 청량폭포와,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 청량사를 만나게 된다.청량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청량산을 둘러보고 난 뒤엔 사미정계곡으로 발길을 옮겨보자.35번 도로에서 운곡천을 따라 500m 쯤 올라가면 나온다.소나무숲이 우거지고 민물고기가 풍부한 이곳은 밤이면 수달이 자주 출몰해 수달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중앙고속도로 풍기IC∼순흥 방면 931번 도로∼오록∼봉화 또는 영주IC∼36번도로∼봉화 코스를 이용하면 된다.봉화군 관광개발과(054-679-6394),봉화역(054-672-7788),봉화버스터미널(054-673-4400).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 창간99주년 특집2 - 지방분권시대 / 김병준 지방분권위원장·최병대 교수 좌담

    이제는 분권이다.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자치’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지역간 사회경제적 격차,중앙의 권한집중 등 각종 문제점은 여전하다.이의 원인으로는 재정과 권한의 부여 없는 자치제의 한계 탓이라는 지적이 크다.따라서 중앙이 쥐고 있는 재정과 권한의 지방이양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나아가 이참에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위해 관련 틀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게 일고 있다.대한매일은 이에 따라 지방분권의 추진이유와 내용,행정수도 이전 논의,외국의 경험 등을 다각도로 조명한다.먼저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과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를 초청,이목희 정치부장의 사회로 좌담회를 갖고 지방분권의 의미와 추진전략 등을 알아본다. 김병준 지방분권위원장 ▲경북 고령(49) ▲영남대 ▲미국 델라웨어대 박사 ▲국민대 교수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 간사 최병대 한양대교수 ▲경북 경산(50) ▲한양대 ▲미국 에크론대 박사 ▲서울시 정책기획관 ▲한국도시행정학회 이사 ●사회정부가 얼마전 발표한 ‘지방분권 로드맵’에 대해 추진 주체가 없고 시기도 장기간 잡혀 있어 과연 추진 의지가 있느냐는 반응이 있다. ●김 위원장 추진 의지가 있는 정도가 아니다.나도 감당할 수 없는 정도다.97년 당시 국고보조금을 통폐합하면서 550억원을 잘라냈다.지금 국고보조 규모가 11조원이 넘는데 이번에 아마 조단위로 잘라내게 될 것이다.대한매일이 6조원으로 보도하지 않았나.6조원이면 혁명이다.지난 2일부터 작업에 들어가 이미 확정된 것만 3500억원이다.기본 목표는 국고보조만 올해 말까지 통폐합 완료이다. ●사회 역대 정권과 이번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추진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최 교수 지방분권 작업은 91년 총무처에서 출발했다.내가 총무처 지방이양 합동심의회를 만들어 98년까지 하면서 2000여건을 이양,규모만 보면 실적이 있었다.그러나 대부분 지방에서 요구하는 기능이 아니라 중앙부처 공무원이 선별해 주다 보니까 영양가 있는 걸 줄 수가 없었다.단편적이고 산발적으로,이름은 좋지만 결과는 미흡했다. ●김 위원장 과연될까 회의적인 사람들을 이해한다.국회의원을 비롯해 지방분권보다 중앙집권의 득을 보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권력이라는 게 잡기 전과 잡고 나서가 다르다.강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갖는 게 국정운영에 편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엔 다르다.우선 대통령을 비롯해 주변의 국정운영자들이 진짜 분권론자들이다.국민의 정부 때는 대통령이 분권론자이지만 다른 한편 정치적인 목표와 연계돼 있었다.지금은 원천적으로 대통령 자신이 분권론자이다.분권이 되지 않고서는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고 믿고 있다.옛날에 잘 안된 이유는 중앙공무원에게 무조건 이양하라 했기 때문이다.지금 참여정부의 방법은 반대다.중앙정부가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을 찾아내 주는 것이다. ●최 교수 성공 요건은 두 가지다.첫째 대통령이 국민들과 약속했으니 법제화시켜야 한다.용두사미로 안 끝나려면 시종일관 그 마인드로 계속해야 한다.둘째 국민들과 호흡이 맞아야 한다.일방적이 아닌 상호이해와 협력이 돼야 한다.가다가 어느 순간 대충 됐다고 한발 빼면 그때부터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김 위원장 로드맵을 내놓은 것도 국민과의 약속이고,이대로 따라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원칙적 입장이지만 부처간 타협을 거쳐야 하고 시민사회와 학계의 협력도 구해야 한다.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의 지원 약속을 받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참여정부의 기본 분권전략은 ‘선(先)분권-후(後)보완’인데 적지않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지역사회에 대한 시민통제가 약한 상황에서 상당 기간 단체장한테 권한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이러다 보면 국민들로부터 ‘지방분권하다 나라 망하겠다.’는 소리가 나올 텐데 그게 제일 겁나는 거다.그래도 무조건 선분권해야 한다. ●최 교수 기왕지사 약속이니까 최소한 매년 두 차례 이 공정표를 따라 항상 투명하게 오픈시켜 달라.지금 계획은 어디까지 왔고 안된 부분은 뭐고 걸림돌은 없는지…. ●사회 다음 정권에서 후퇴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김 위원장 돌이킬 수 없는 물줄기를 만들어야겠다.아,이것은 역사적 물결이구나 몸에 와 닿도록 해야한다.시간은 5년밖에 없는데 일단 가는 데까지 가서 국민들이 지방분권을 괜찮게 여기는 분위기만 생기면 다음 정권은 그르칠 수 없을 것이다.대통령은 가능하면 내년 말로 잡힌 신행정수도 입지 선정도 앞당기라는 입장이다. ●사회 행정수도 이전은 정말 하는 건지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한다. ●김 위원장 안 할 수가 없다.수도권 인구가 얼마인가.지금 세계는 한국과 중국의 경쟁이 아니다.지역과 지역 간의 경쟁이다.수도권이 상하이와 싱가포르,도쿄와 경쟁한다.집값이 자꾸 올라가면 어느 순간 완전히 폭락하는 때가 오는데 그러면 국가 멸망이다. ●최 교수 신행정수도 정책이 성공하려면 다음에 인계받는 사람이 계속 해줘야 한다.5년까지 가다 중단되면 국가적 분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서울 인구는 92년을 정점으로 안 느는데 수도권이 불어나고 있다.또 강남 집값을 수도이전의 이유로 드는데 지금 강남 집값 앙등은 세금제도 등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그 속성을 들여다보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평택 소재 대학교수가 거기선 전세를 살고 집은 서울에 두는데 왜 그러겠나. ●김 위원장 권력에 돈이 간다는 핸더슨의 가설이 있다.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은 행정과 정치권력이다.일단 떼놓으면 여러가지 완화요소가 작용할 것이다. ●사회 서울은 뉴욕처럼,행정수도는 워싱턴처럼 한다는데 미국과 비교할 수 있나.서구식 ‘캐피털’ 개념과는 달라서 남다른 교육열이나 한양에 살아야 한다는 유교적 정서가 뿌리깊어 권력자들이 사는 곳에 다시 명문고,명문대가 생기는 것 아닌가. ●김 위원장 그러기엔 서울의 흡인요소도 여전히 강하다.지방분권화와 시장자율 정책을 같이 밀고 나가면 대기업이 대통령과 장관이 있는 곳에 꼭 가야 할 이유가 없다. ●최 교수 수도가 대전 인근으로 가면 자칫 수도권이 더 확장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속전철이 생기면 1시간 교통권에 든다.대전에 가 있는 11개 외청을 조사해 보니 가족 전체가 이동한 경우는 30%에 불과했다.따라서 정부 기능이 한데 몰려 시너지 효과가 없는 것은 다른 지방으로 갖다 놓는 것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김 위원장 정부투자기관의 지방분산 계획이 있다.예를 들어 국토연구원의 경우 “우리한테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지자체가 있으면 옥션(입찰) 방식에 부치는 거다.지자체들이 서로 자기들한테 오면 땅도 주고 집도 지어주고 종업원들 교육도 지원해 주겠다고 경쟁하는 것이다.정부 부처는 상호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이지만 투자기관은 흩어질 수 있다. ●사회 지방분권을 위한 지방대 인재 육성 방안은. ●김 위원장 과거에는 산업체를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공단을 짓고 세제혜택을 주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 이 개발 방식은 통용되지 않는다.지역 인재가 그 지역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지방대를 하나의 지역성장 거점으로 잡아 중점 투자해야 한다. 정리 김상연 박정경기자 carlos@
  • 책 / 알리, 아메리카를 쏘다

    마이크 마커시 지음 / 차익종 옮김 당대 펴냄 미국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심했던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난 흑인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열세 살 되던 해,동네 깡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일랜드계 경찰에게 권투를 배운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18세의 나이로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땄다.그러나 금의환향해 들른 고향의 백인전용 식당에서 흑인이란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하자 그는 분노와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딴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버렸다.이후 프로로 전향해 22세에 소니 리스턴을 누르고 세계헤비급 챔피언이 된 뒤 1980년 38세로 은퇴하기까지,헤비급 사상 최초로 세 차례나 챔피언 벨트를 거머쥔 이 ‘가장 위대한 헤비급 챔피언’은 미국 역사에 누구보다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알리,아메리카를 쏘다’(원제 Redemption Song,마이크 마커시 지음,차익종 옮김,당대 펴냄)는 알리를 단순한 프로 권투 영웅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무하마드 알리와 1960년대 정신’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책은 ‘저항의 시대’로기록되는 60년대 미국의 정세 속에서 알리가 갖는 상징성과 의미를 살핀다.역사의 물줄기를 좇다보면,역사가 한 개인과 만나 폭포처럼 분출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사람들은 그런 역사적 개인들을 천재 혹은 시대의 창조자라고 부른다.그런 점에서 볼 때 알리는 당당한 시대의 창조자다.경기장 안팎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이 책은 현란한 말솜씨의 떠버리 챔피언으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의 신념이 무엇인지,왜 할 말이 많았는지,무슨 말을 했는지,그리고 왜 무하마드 알리로 이름을 바꿨는지 그 의구심을 풀어준다. 알리를 제대로 알려면 1960년대 미국 사회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봐야 한다.1960년대는 무엇보다 흑인 시민권운동이 급격하게 분출한 시대였다.이전까지 윌리엄 두보이스 등 소수의 진보적인 흑인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이어져오던 흑인운동은 마틴 루터 킹의 등장과 함께 대중적인 시민권운동으로 발전했다.경찰과 군대,KKK 등은 투옥·살인·린치 등 온갖 물리력을 동원했지만 투쟁의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점차 여론의 호응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흑인 시민권운동이 대중화되면서 노선 갈등이 일어났다.마틴 루터 킹의 대척점에는 이슬람 흑인운동가 말콤 엑스가 있었다.흑인 무슬림 단체인 ‘이슬람네이션(Nation of Islam)’의 대변인 격이었던 말콤 엑스는 기존의 흑백차별 철폐운동은 백인의 동정을 구걸하는 중산층운동이라고 공격,마틴 루터 킹이 주도하는 비폭력 무저항 방식의 투쟁을 비판했다. ●자신의 의사와 달리 흑인 대표자의 길로 알리에게 저항의 아우라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부터다.그의 개종은 흑인됨을 자부하는 몸짓이었다.저자는 알리의 공개적인 개종은 “시대를 비웃는 예상 밖의 충격이었으며,두려움과 희망 양편에서 사람들의 시야를 열어준 사건”이라고 평한다.알리와 ‘이슬람네이션’의 관계가 공식화되면서 미국은 알리에게서 링이라는 무대를 앗아갔고,알리는 점점 정치적인 발언을 하게 됐다.베트남전 반대,인종차별 철폐,범아프리카주의 등 목소리를 높였다.그러나 알리는 자신이 정치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꺼렸다.알리는 일찍이 “구호를 들지 않겠다.”고 공언했고,말콤 엑스의 입장이 점차 공격적이고 정치적이 되자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이 책은 알리를 정치지도자나 운동가 혹은 이데올로기로 묘사하지 않는다.실제로 알리는 지도자 노릇이나 행동주의,이데올로기 따위를 혐오했다.정치참여에 반대했고 자신에게 ‘인종의 대표’라는 굴레를 씌우려는 흑백평론가들의 시각도 거부했다.그러나 그는 시대상황과 인물이 연금술처럼 뒤섞이듯,정치의 세계에 깊숙이 끌려들어갔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흑인의 대표자가 돼 갔다.그러나 오늘날 알리의 정치적 색채는 사뭇 퇴색됐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미국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흑인 스포츠 스타의 상품화 문제에 대해서도 일갈한다.무하마드 알리와 마이클 조던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미디어를 스스로 ‘이용’한 알리는 자신만의 메시지를 던지면서 길을 헤쳐나갔지만,조던는 처음부터 스포츠자본과 손을 잡은 ‘걸어다니는 상표’요 ‘아메리카의 세일즈맨’이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알리 역시 미국의 기업 엘리트나 미디어 상업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1977년 알리는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판화 모델로 나섰다.이로써 그는 마릴린 몬로,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앤디 워홀이 그린 아메리카 ‘초상’의 반열에 들었다.워홀의 초상화작업은 알리를 상업적 기호로 이용하고,갈등의 상징에서 화합의 존재로 변화시킨 시발점이었다.아무런 가치상의 차별성도 없이 교환가능한 존재가 된 것이다.저자는 미디어산업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송하고 기업과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알리를 이용했다고 지적한다.알리의 신화는 해체되고 ‘상품’으로 통용되고 있다.알리는 또 하나의 ‘아메리칸 아담’,곧 ‘순결과 비극의 인물상’을 창조한 셈이다.저자가 이 대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패권주의,특히 문화자본의 탐욕성이다.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은 되지 않겠다” 마이클 오리아드 같은 스포츠 저술가는 알리를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스펙터클의 시대에서는 더이상 나올 수 없는 영웅”이라고 말한다.그러나 개인적인 도덕성과 지구적 연대의식의 모범을 보인 알리의 삶은 단순히 60년대의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미국의 전방위 아메리카니즘에 대한 저항의 당위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알리의 외침은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을 남긴다.1만 5000원. 글 김종면기자 jmkim@ 그래픽 유재일기자 jae0903@
  • 기고 / 신언서판 그리고 안티 미스코리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별나게 외모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때로는 우리의 지나친 관심에 우리 스스로 의아해 하기도 한다.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결코 이상한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는 데 유별나게 그리고 지나치게 큰 비중을 외형 용모 곧 바깥 생김새의 시비에 두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분히 경험적 동물이어서 자신의 경험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랴. 소위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잣대가 그 전통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잣대를 오랫동안 사람을 판별하거나 인재를 등용하는 기준과 척도로 삼았다.신언서판이란 사람을 평가하는 데 우선순위가 용모이고 그 다음이 언변이며 그 다음이 글씨고 그리고 마지막이 판단력이라는 것이다.사람은 모름지기 외형적으로 인물에서 위세를 갖추고 그러고 나서 말솜씨와 문장력이 수준 이상이면 좋을 것이고 그런 다음에야 사리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좋은 능력을 갖게 되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었다. 급기야는 외모에 너무 매달려 얼굴 뜯어고치기가 한창 유행이다.서울 시내 400여 개에 달하는 성형외과가 성업중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수술로 외모개선이 가능하다면 그래서 여러모로 자신감까지 갖게 된다면 그것도 능력 아니냐고 성형수술을 지지하는 사람도 꽤 많다.현실적으로 취직이나 임용이며 시험에서 용모중시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열기는 식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나로서는 신언서판의 철학은 참 유감이다.사람의 값어치를 산정할 때 즉 그 사람됨을 저울질할 때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 가장 덜 상관적인 자질(deserts)에,여기서는 생김새(身)에,가장 크게 의존하겠다는 것이 신언서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인간평가의 바른 자세는 되레 그 반대여야 하는 것 아닌가.나는 신언서판이 아니라 차라리 판서언신(判書言身)이 사람을 판별하는 잣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과거 우리 선배들도 신언서판해서는 안 된다는 역설(力說)을 신언서판에 빗대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경계하려 했다고 이해하고 싶다. 흑인 인권운동가 킹목사는 “나의 아이들이 그들의 피부의 색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격의 내용에 의해서 평가되는 그 날이 올 것을 꿈꾸고 있다.”고 열변하였다.피부는 부모 탓이고 인격은 제 탓이지 않은가. ‘반(反)신언서판’을 외치는 안티미스코리아(Anti Miss Korea)다섯번째 대회가 지난 5월10일 성대하게 열렸다.미스코리아 선발에 반대하는 운동이다.단순히 선발에만 반대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나아가서 우리의 인간 정신세계에 대한 사랑과 정성과 자부를 과소평가한 채로,미스코리아 진이며 선이며 미 따위가 대한민국 전체의 아름다움을 대변한다고 믿으려 하는 착각과 오만에 대한 항의의 표시일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으로부터 그냥 주어진 자질이 과도하게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데 대한 또는 인간의 피와 땀과 눈물을 너무 우습게 보는 데 대한 강한 분노이자 거부일 것이다. 사회 전체를 바꾸는 혁명도 처음에는 어느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있는 작은 생각에 불과했다는 말이 있다.아직은 작은 안티 미스코리아이지만 내일은,세계인의 동의를 얻어서,안티 미스유니버스로 커 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인류사의 혁명운동이다.한참 잘못 간 인간문명의 도도한 흐름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대역사가 이 작은 운동에서 시작되는 것이다.우리는 한때 월드컵신화의 열기를 가지고 세계무대 앞에 서서 우리의 무한한 잠재력을 선보인 적이 있다.그때는 “대~한민국” 우리들만의 축제였지만 이제는 “지~구촌” 세계인의 축제를 만들어 가는 일이리라.안티미스코리아 만세! 반신언서판 만세! 황필홍 단국대 철학과 교수 명예논설위원
  • “우미관 다리가 최고의 놀이터였지”‘청계천 토박이’ 이순형 서울대 명예교수

    “내가 만일 화가라 ‘황혼의 청계천을 뒤로하고 귀가하는 지게꾼’을 묘사한다면 밀레의 ‘만종’(晩鍾)에 뒤질 것인가?”(1954.7.18) 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청계천을 서울시민의 품으로 되돌려 주려는 복원공사를 하루 앞둔 30일,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동문회관 ‘함춘원’(含春苑)에서 이순형(李純炯·68) 전 서울대의대 학장을 만났다.그는 인터뷰 도중 어언 반세기가 지나 샛노랗게 바랜 경기고 시절 학교신문 한 쪽을 감회 어린 눈으로 읽어나갔다.2학년 때 문예반원으로 수필란에 실은 ‘청계천송’(淸溪川頌)이란 제목의 글이다. ●‘서울의 하수구' 원흉은 빗나간 시민정신 소년 순형은 이 글을 통해 당시만 해도 아낙네들의 빨래터로,인근 빈곤층 가정에서 흘려보낸 구정물 등으로 더러워져 ‘서울의 하수구’로 불렸던 청계천의 원흉(?)은 빗나간 시민정신에 있다고 보고 목청껏 비난했다.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선물을 예로 들며 청계천의 소중함을 일깨운 뒤,아침 일찍 청계천에 나가 보면 나라의 혼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에 (세련됐지만 친밀감을 찾아볼 수 없는) 명동거리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이 박사는 60년대부터 불모지였던 국내 기생충학에 몸을 던져 후학을 길러낸 뒤 지난해 은퇴해 명예교수로 있다.청계천을 화두로 꺼내자 금방 옛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얘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놨다.낡은 볼펜을 꺼내 청계천 주변 지도까지 그려가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표정이었다. “한 차례 큰 비가 지나간 뒤엔 장대 끝에 줄을 매단 볼품없는 낚싯대로 가물치를 건져 올리기도 했지요.그럴 때면 웃통을 벗어젖힌 아이들이 너나없이 환호성을 질러대고….” ‘서울 토박이회’ 부회장 직함도 갖고 있는 그는 할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청계천 근처에 살아온 토박이.본적이 청계천변에 자리한 장교동 56번지다.지금은 없어진 종로구 수하동의 청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박사는 “어릴 적 청계천 수표교 쪽에는 부드러운 모래밭이 멋지게 깔려 나이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 정한 뒤 둔치에서 뛰어내리는 놀이를 즐겼다.”고 회고했다.아치형으로 만들어 모양 자체만으로도 인기를 얻은,현재 삼일빌딩앞 우미관 다리는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던 당시엔 손꼽히는 놀이터였다.주민들이 철봉,역기 등 운동기구를 하나 둘씩 들여놓아 요즘 드라마로 더욱 유명한 김두한도 힘자랑을 했단다.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청계천 하면 탁류를 떠올릴 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잠시 피란 떠났다가 1·4후퇴 무렵 서울로 돌아와 다시 바라본 청계천은 글자 그대로 푸르디 푸른 맑은 물이 출렁이고 있어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 중에는 너나없이 가정형편이 나빠지는 바람에 집집마다 청계천변으로 나와 떡이나 부침개를 만들어 팔아 연명한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이 박사 자신도 열다섯살이던 9·28수복 때에는 담배,껌을 팔아 돈을 벌었다.아직도 국산 ‘공작’이나 미제 ‘러키 스트라이크’ 등 담배 이름을 잊지 못했다. ●‘나이애가라' 막걸리집의 어원은 전쟁이 끝난 50년대 중반,가난을 벗어날 생각에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청계천 주변에는 판잣집이 늘어 갔다.판자로 얽은 막걸리집을 ‘나이애가라’라고 불렀다.화장실이 없어 취객들이 청계천 둑 위에서 소변을 봤는데 아이들의 눈에는 그 물줄기가 거세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5월 단오,8월 한가위 때면 장사교 위에서 동네마다 대표를 뽑아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곤 했지요.” 중·고교생들이 정동 등 시내 학교로 통학하는 길이었던 청계천 10리 뚝방길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분홍빛 사연을 실어나르는 길이기도 했다.자동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까 말까 할 정도로 비좁은 길에 학생들이 넘쳐나 남녀끼리 자연스레 어깨가 마주쳤다며 이 박사는 씩 웃었다. 흔히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고향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한 나라의 수도(首都)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타지인들에게 내준 탓이라고 했다.팔도 사람이 모인 서울을 그는 ‘공설운동장’으로 비유한다.한강도 서울의 하천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커서 대부분 사대문 안에서 둥지를 틀었던 서울 사람에게는 ‘고향’ 하면 떠오르는 게 청계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청계천 복원은 고향 찾아주는 일 “청계천 복원은 서울토박이는 물론 고향을 잃고 살아가기 쉬운 미래 서울시민들에게 고향을 찾아주는 일로 반기지 않을 수 없지요.” 최근 서울토박이회 회원들과 청계천 복원의 성공을 염원하는 홍보 캠페인을 벌이던 중 광교 조흥은행 옆으로 난 뒷골목에서 50여년 전의 여염집 담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향의 흔적을 찾았다는 감격으로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중산층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청계천 쪽에 살면서 상대적으로 외면당해온 북촌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때로는 청계천 주변을 떠나기 싫어했던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는 이 박사.조상 대대로 무교동·수하동·삼각동 등 청계천 주변을 내내 떠나지 못하다가 60년 모두 의학도였던 4형제의 학비 마련 등을 위해 당시 신도시로 개발된 불광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청계천과 약간은 멀어져야만 했다. “개발에 떠밀려 청계천이 복개될 때는 안타깝기 그지 없었는데….”라며 말끝을 맺지 못하는 이 박사.2년 후에 다시 드러날 청계천의 새 모습을 꿈꾸며 옛 추억에 잠긴 듯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글 송한수기자 oneko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
  •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 미래 조망/ SBS 다큐 ‘청계천’ 2부작

    글자 그대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던 청계천(淸溪川)은 지난 62년 복개 공사로 시야에서 사라졌다.이후 40년간 청계천변은 동대문 패션타운을 비롯한 의류상가와 전자·공구 상가 등 거대한 상권으로 변모했다. 새달 1일부터 시작되는 복원 공사를 앞두고 SBS가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 ‘청계천’ 2부작을 28·29일 밤 10시50분 연속방영한다. 1부 ‘누가 청계천을 보았는가’에서는 화려한 지상 세계에 떠밀려 신음하고 있는 지하의 청계천을 비춘다.이를 위해 제작진은 지난 3개월간 4차례에 걸쳐 청계천 지하구간 5.8㎞를 샅샅이 훑었다.1411년 조선 태종 때 건설된 광교가 지금도 오염된 지하 하수도에 방치돼 있는 장면을 비롯해 두통을 유발할 정도로 악취가 진동하는 지하의 실체는 자못 충격적이다. 2부 ‘복원의 조건’은 청계천의 푸른 물줄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해외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개 부분을 일부 들어내고 이곳에 인공적으로 끌어온 물을 흘리겠다고 발표했다.그러나 이런 방법은 청계천의 근본적인 복원이 아닐 뿐더러 수량과 수질을 유지하는데 막대한 예산과 관리비용이 드는 단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작진은 대안으로 독일의 사례를 취재했다.통일 이후 본에서 베를린으로 수도를 옮긴 독일정부는 포츠타머프라츠 일대를 재개발했다.빗물을 이용해 1.7㎞의 인공하천과 호수를 조성하고,여기에 흐르는 물을 중수도로 공급함으로써 수도요금과 전기비용을 50% 이상 절감한 것.뿐만 아니라 하천은 도시를 쾌적한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오염된 하천을 살리고자 70년간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끝에 시민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변모시킨 일본 교토의 사례를 통해 청계천의 복원 방안을 신중히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이순녀기자 c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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