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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억의 여자’ 정웅인, 조여정 집착 남편으로 소름 연기 “갓웅인”

    ‘99억의 여자’ 정웅인, 조여정 집착 남편으로 소름 연기 “갓웅인”

    역시는 역시였다. 배우 정웅인이 ‘99억의 여자’ 첫 방송부터 압도적인 열연으로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4일 첫 방송된 KBS 새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 1, 2회에서 정웅인은 정서연(조여정)에게 집착하며 그녀의 비밀을 캐는 남편 홍인표 역으로 분했다. 이날 방송에서 홍인표는 회사 납품건이 걸린 윤희주(오나라) 부부와 동반 여행에 대해 정서연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이번 기회 놓치면 회사 문 닫아야 돼요. 제발 긴장합시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라고 말하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또한 서연의 말은 듣지 않고 애지중지 모형만 만지다가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모습은 평범하지 않은 부부관계를 보여주며 스토리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홍인표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을 끝내고 돌아온 정서연이 윤희주와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고 거짓말을 하자 폭행을 가하기 시작한 것. 정서연을 욕실로 끌고 간 후, 욕조에 내동댕이친 홍인표는 차가운 물줄기를 쏘아댄 것도 모자라 다 젖은 정서연을 베란다에 가둬 버리며 충격을 안겼다. 특히 화가 누그러진 홍인표가 정서연에게 사과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기도. 결국 동반 여행을 가게 된 홍인표는 납품건 확답을 받기 위해 윤희주와 이재훈(이지훈)의 비위를 맞추며 잘 보이려 노력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윤희주의 술주정을 참지 못한 정서연이 싸움을 일으키게 되고, 이로 인해 납품건 협상이 물거품이 된 홍인표는 다시 한번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긴장감을 최고치로 끌어 올렸다. 정웅인은 정중한 존댓말 속에서 나오는 억압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정서연을 얼어붙게 만드는 남편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재훈과 윤희주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홍인표의 이중적인 모습을 심도있게 그려내며 캐릭터의 정체성을 확립시켰다. 이에 첫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역시 갓웅인”, “처음부터 이렇게 무서워도 되는 건가요?”, “정웅인 연기 때문에 시간 순삭”, “진짜 소롬 돋았다”, “명품 배우, 명품 연기 믿고 본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듯 시청자들을 단숨에 빠져들게 만든 정웅인의 열연이 시선을 집중시킨 가운데, 각 인물들과의 관계속에서 홍인표가 이끌어갈 서사에 기대감이 높아진다 한편 우연히 현찰 99억을 움켜쥔 여자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 KBS ‘99억의 여자’는 매주 수, 목요일 밤 10시에 방송 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역사는 마을을 돌아 흘렀다 - 안동 하회(河回)마을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역사는 마을을 돌아 흘렀다 - 안동 하회(河回)마을

    #안동하회마을 #엘리자베스2세 #조지부시대통령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맘 푸르러라” <자야곡 中, 이육사, 1941> 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는 안동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 자손이었다. 시인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 이황(李滉) 선생의 14대 손으로 일찌감치 나라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40년 짧은 생을 사는 동안 17번이나 투옥되었고, 그의 호 역시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으로 대구형무소에서 받은 수인번호 ‘264(二六四)’에서 따온 것이다.안동은 일제 강점기 수많은 독립유공자들이 나온 고장이다.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하여 동산 유인식 선생, 초대 국민대표회의 의장 일송 김동삼 선생 등이 바로 안동 출신이다. 1910년 한일합방의 울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정순국자만 10명에 이르며 현재까지 350여 명이 넘는 독립유공자가 나온 곳 또한 안동이다. 실제로 일제는 성리학의 본원이자 독립운동의 모태 지역인 안동의 혈맥(血脈)을 끊을 요량으로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 가운데를 지나도록 철도를 깔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성지이자 선비들의 고장, 안동 하회마을로 가보자.#서애류성룡 #징비록 #석주이상룡 #이육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13년부터 2년마다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를 선정 발표하고 있다. 이 중에서 4회 연속으로 ‘한국관광 100선’에 안동 하회마을이 뽑혔는데 전주 한옥마을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800여 년 세월을 안고 있는 전통마을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을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특히 1999년 72회째 생일을 하회에서 맞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표현처럼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인식되어온 안동 하회마을은 부시 전 대통령 부자(父子)도 2005년과 2009년에 각각 찾을 정도로 외국 주한 사절들에게는 필수 관람 코스가 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도 160 여 채의 기와집과 210채가 넘는 초가, 다양한 전통 서원과 누각이 있는 곳으로 낙동강 지류 700리 가운데 물줄기가 마을을 휘감아 지나는 ‘물돌이(하회,河回) 마을’이기도 하다.화회마을의 역사는 고려에서 시작된다. 김해 허씨, 광주 안씨, 풍산 류씨 등이 입향하여 마을의 원류를 이루었다. 이후 하회마을이 본격적인 이름이 나기 시작한 것은 1592년 임진왜란 전후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영향이 크다. 1601년 ‘징비록’을 집필한 곳이 하회마을이었고 이후 1613년 병산서원의 중창으로 인해 선비마을이라는 동리의 정체성이 확고히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조선 선비촌의 마을 분위기를 고스란히 지금까지 간직해오고 있다.현재 하회마을에는 국보 제 121호로 지정된 화회탈 및 병산탈, 국보 제 132호인 징비록을 비롯하여 서애 유성룡 종가 문적, 유물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양진당’, ‘충효당’과 같은 조선 후기 전통 가옥들도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외에도 사적 제 260호인 병산서원을 비롯하여 옥연정사, 하동고택, 하회 별신굿탈놀이 등도 중요민속문화재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어 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은 고스란히 조선 선비들의 고즈넉한 삶의 시간도 넉넉히 되돌아 볼 수 있다. <안동 하회마을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유네스코 세계 지정유산. 우리나라 대표 전통마을로 영국 여왕을 비롯하여 수많은 외교 사절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어린 자녀들도 좋아할 만한 곳. 3. 가는 방법은? -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종가길 2-1 - 시내버스 246번(병산서원, 도청 경유. 45분 소요) 4. 하회마을 방문의 특징은? - 고즈넉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부용대와 만송정의 풍광은 이름날 만하다. 5. 방문시 유의점은? - 마을 입구부터 거리가 꽤 된다. 몸이 불편한 분이 있다면 마을 입구에서 안내를 받으면 된다. 6. 꼭 가 볼 장소는? - 부용대, 만송정, 충효당, 양진당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안동 중앙시장에 먹거리가 많다. 안동찜닭 골목 ‘중앙통닭’. 찜닭 맛은 대개 비슷하다. 된장찌개 ‘성전식당’, 우동 ‘신선식당’, ‘맘모스제과’, ‘현대찜닭’, 헛제사밥 ‘까치구멍집’, 선지국밥 ‘옥야식당’, ‘문화갈비’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hahoe.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부용대, 만송정, 양진당, 충효당, 병산서원, 도산서원, 봉정사, 이육사문학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안동 하회마을은 영주의 무섬마을, 예천 회룡포마을과 같은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로 안동 선비문화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안동지역에는 화회마을 외에도 도산서원이나 봉정사 등 주변에 가 볼만한 곳도 많아서 넉넉히 시간을 두고 여행하는 것이 좋을 듯.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이젠 놓아줄까 봐, 시린 바람이 찾아왔거든…같이 올라볼까 봐, 지친 마음도 내려놓거든

    이젠 놓아줄까 봐, 시린 바람이 찾아왔거든…같이 올라볼까 봐, 지친 마음도 내려놓거든

    언덕 마을 꼭대기에서 본 노을의 잔상을 뒤로하고 기차를 탑니다. 아른거리던 따뜻한 빛이 시린 손끝으로 전해져 대전을 선연(鮮姸)한 도시로 기억합니다. 대전은 하루 여행만으로도 마음을 유연하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전은 물과 산, 그 사이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자연과 도심 풍경 모두 품고 있는 여행지이기에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한밭’이라는 옛 이름처럼 드넓은 땅에 중간중간 솟아오른 산들이 대전을 더욱더 아늑하게 만듭니다. 대청호(大淸湖), 이름처럼 크고 맑은 호수는 금강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입니다. 대전시와 충북도에 드넓게 걸쳐 구불구불 이어져 있습니다. 부드러운 물길을 따라 즐기는 드라이브는 마음을 탁 트이게 합니다. 삼국시대에 지어진 계족산성에 올라 둥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초겨울을 실감합니다. 가을의 끝자락, 자연휴양림에선 숲과 조금 더 가까워집니다. 도심 속 옹송그리듯 자리한 언덕 동네를 올라 일몰을 바라보며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하루 천천히 걸었던 대전에서 차가운 겨울을 보낼 유연한 힘을 얻습니다.부드러운 호수가 머무는 도시, 크고 넓은 밭을 이르는 한밭이라 불리는 대전(大田)은 경부와 호남 철도, 도로가 만나는 우리나라 교통의 중심지다. 약 40년 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충청도와 전라도를 흐르는 금강은 대청호라는 드넓은 호수에 머무른다. 대청호는 충주호와 청풍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드넓은 호수다. 이 호반을 중심으로 오백리길이 이어져 있다. 대청오백리길은 대전과 충북을 거쳐 21구간으로 조성된 길이다. 대전에는 1~5, 21구간 등 총 6구간의 길을 걸을 수 있다. 호수 주변으로 산과 숲이 펼쳐져 있어 드라이브나 산책길로 유명하다. 걷기 좋은 길은 고운 모래사장과 은빛 물결이 일렁이는 억새, 싱그러운 숲 등 수려한 자연이 곁에 있다.●대청호 청아함 따라 흐르는 ‘계절의 연가’ 대청댐 바로 아래 금강을 따라 마련된 데크를 걸으면 백로가 먹이를 찾는 유유자적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드라마 ‘슬픈연가’를 촬영했던 S자 갈대밭도 만날 수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대청호오백리길 위엔 옛 풍경을 간직한 작은 마을도 여전히 자리한다. 4구간 호반낭만길 위 주산동 전망대에선 반짝이는 물빛이 청아하다. 물 위로 동동 떠다니는 오리 떼에 마음을 뺏긴다. 차를 세워 두고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잠시 빠져 보자. 추동습지 부근은 근사한 뷰포인트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데크 곁으로 곱게 물든 단풍과 억색, 갈대밭이 감성적인 운치를 자아낸다. 이정표에도 ‘전망 좋은 곳’이라 쓰여 있다. 21구간 대청로하스길에는 대청공원과 대청댐물문화관 그리고 메타세쿼이아 숲이 있어 사색하며 혹은 이야기 나누며 머물기 좋다. 특히 숨어 있는 왕버들 군락지가 볼만한데 저녁 무렵 물안개와 노을이 내려앉으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낸다. ● ‘피톤치드 맛집’ 최대 메타세쿼이아 숲길 ‘가을의 산책은 늘 마지막 같아서/ 한 발자국에도 후드득’ 성동혁 시인의 구절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붉게 물든 메타세쿼이아 잎들이 가득한 숨겨진 단풍 명소 장태산자연휴양림이다. 1970년 초 국내 최초의 독림가(篤林家) 고 임창봉 선생이 가꾸기 시작한 휴양림은 그 정성을 거대한 나무들이 정직하게 보여 준다. 입구에 들어서자 숲의 냄새가 진하다. 숲의 냄새를 만들어 내는 ‘테르펜’이란 성분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 주고 건강을 회복하게 해 정상적인 생체리듬을 찾게 해 준다. 이곳은 ‘피톤치드 맛집’임이 분명하다. 장태산자연휴양림의 하이라이트는 키다리 메타세쿼이아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하늘길이라 부르는 ‘스카이웨이’를 걸으면 나무의 허리쯤에서 눈높이를 같이하게 되는데, 나무와 더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스카이웨이를 걷다 보면 스카이타워가 등장한다. 잔잔한 바람에도 흔들림이 느껴지는 달팽이관 같은 스카이타워를 올라가면 숲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높이 27m에 이르는 스카이타워에 서면 숲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14.5㎞ 산성 황톳길, 땅의 기운 오롯이 계족산(鷄足山)은 닭의 다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429m에 이르는 나지막한 산을 즐기는 방법은 14.5㎞로 이어져 있는 황톳길을 자분자분 걷는 것. 황토가 말랑해지는 봄, 가을엔 맨발로 자연의 속살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2006년 충청권에서 소주를 만들고 있는 맥키스컴퍼니에서 매년 2000여t의 황토를 깔고 관리하고 있다. 조웅래 회장이 우연히 황톳길을 걸어 보고 편안한 숙면과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한 후 모두가 함께 즐기자는 의미에서 만든 길이다. 겨울 무렵엔 황톳길이 아니어도, 계족산성에 오를 만하다. 단풍이 떨어진 사이사이로 스미는 따사로운 볕 아래 가뿐한 산행을 즐기기 좋다. 해발 420m에 있는 계족산성(사적 제355호)은 삼국시대 때 신라의 침입을 방어하는 관문 역할을 했던 중심 산성이다. 정동삼림욕장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오르면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황톳길을 따라 나지막한 산길을 걷다 보면 산성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대전은 산성의 도시다. 서구 월평동 구릉에 위치한 월평산성, 성치산 정상부를 빙 두른 성치산성 등 크고 작은 30여개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대전은 교통의 요지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전장의 요충지였다. 이들 중 가장 가볼 만한 곳은 계족산성이다. 그 규모는 물론 복원을 마쳐 산성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좋다.산행의 끝은 계족산성에서 가장 높은 산등성이에 있는 서문터다. 서문은 필요할 때 문을 내려 통행할 수 있는 현문(懸門)으로 만들어졌다. 서문터 바깥벽은 2.5m 높이로 덧대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쌓았다. 동벽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벽은 외벽은 돌로 쌓고, 성 안쪽은 흙을 정교하게 다져서 쌓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지었다. 서문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연꽃무늬 수막새기와, 돗자리 무늬가 새겨진 평기와 조각 등이 출토돼 삼국시대에 쌓은 성임을 알 수 있었다. 산성 성벽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만들어 유연하게 굽어 있다. 계족산 산봉우리에 머리띠를 두르듯 돌로 차곡차곡 쌓은 산성의 둘레는 1037m에 이른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졌는데, 1992년부터 복원해 문터와 건물터, 봉수대, 우물터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산성의 중간 지점에서 볼 수 있는 집수지가 독특하다. 국내에서 확인된 집수지 중에서 가장 크다고 전해진다. 산성 안의 군사들이 마실 물과 화재 때 불을 끌 물로 사용하고, 홍수 때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속도를 줄여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계족산성에서는 9개 건물터가 확인됐다. 고려 시대 청자 조각과 토기 조각들이 나온 것으로 보아 그 시대에도 성의 역할을 굳건히 했음을 알 수 있다. 갈대와 들꽃, 구불구불한 대청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숨겨진 뷰포인트도 빼놓을 수 없다.●127m 언덕마을, 로맨틱한 대전의 밤과낮 한눈에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에서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한 대동하늘공원은 동구 대동에 자리한 마을 꼭대기에 있다. 대동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인 마을로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다정하고도 따스하다. 2007년 공공미술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조금씩 변신을 거쳐 온 마을은 느리게 산책하기 좋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담은 알록달록한 벽화에서 걸을 때마다 위로를 받는다.약 127m 높이에 위치한 대동하늘공원에 오르면 대전 도심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쌍둥이처럼 서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한국철도공사 건물이 가장 눈에 띈다. 맑은 날엔 보문산과 도솔산, 계룡산도 볼 수 있다. 이곳은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 또르르 떨어지는 해를 배경으로 사진찍기 좋다. 밤이면 은은하게 빛나는 풍차와 주변 조명 덕분에 더욱 로맨틱해진다. 동네 벽화를 따라 걷다 보면 소소한 가게들이 자리한다. ‘머물다 가게’는 대전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소품을 위주로 꾸며 놓은 곳으로 여행기념품을 살 수 있다.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등장해 더욱 반가운 복합문화공간 ‘대동단결’도 핫플레이스. 오래된 동네의 빈티지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글 사진 박산하 여행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42) →대전과 충북 대청호 물길을 따라 21구간으로 조성된 대청호오백리길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www.dc500.org)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이 겨울 수변에 펼쳐진 억새와 갈대를 만날 수 있는 4구간 호반낭만길을 추천한다. 대동하늘공원이 있는 대동벽화마을은 주민들이 생활하는 터전이다. 일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다녀야 한다. 마을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거나 지도를 구하고 싶다면 ‘머물다 가게’(070-8098-6634)에 들러 보자. 운영 시간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미리 연락할 것. 아기자기한 여행기념품을 득템하기도 좋다. →보통 두루치기 식재료로 돼지고기를 많이 쓰지만 대전에서는 두부를 자박하게 끓여낸 두루치기가 유명하다. 부드러운 두부를 큼지막하게 썰어 육수에 넣고 고춧가루와 간장, 마늘, 참기름 등 매운 양념을 더한다. 오징어를 넣기도 하는데 두부가 식감이 보들보들하고 고소하면서도 매콤해 중독성이 강하다. 자작하게 졸인 국물에 면 사리를 비벼 먹으면 매콤함이 한결 순해진다. 광천식당(226-4751)과 진로집(226-0914) 등이 맛집으로 꼽힌다. 대전은 칼국수의 도시로 봄이면 칼국수 축제를 연다. 한국전쟁 이후 호남선과 경부선 철도가 만나는 곳이라 구호물자가 모였는데, 그중 밀가루가 많았다. 대전에는 칼국수집이 많이 있는데 그중 신도칼국수(253-6799)는 사골 육수에 보드라운 면발을 맛볼 수 있다.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7회] 근무지로 차별·불이익 준 ‘사법부 블랙리스트’…양승태 강행 정황 첫 공개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7회] 근무지로 차별·불이익 준 ‘사법부 블랙리스트’…양승태 강행 정황 첫 공개

    법관들의 인사자료가 처음 공개된 법정은 시작부터 긴장됐다. 재판을 공개로 해야하는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공방을 벌였고 재판이 한참 이어지던 도중에도 재판장은 법관들의 이름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의 46회 재판에 법관 인사를 맡았던 전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인사 담당 실무부서에서 심의관을 지낸 판사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인사2심의관으로, 2016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는 인사1심의관으로 일한 노재호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하는 등 법관 인사의 실무를 담당했다. 노 판사의 증인 출석을 앞두고 변호인들은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해야 한다고 재판부에 주장했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법관 인사제도의 구조는 물론 개별 법관들의 신상정보와 평정 등이 공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판사들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평정 내용이 법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심리내용이 모두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 법관들과 법관이 수행하는 재판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나아가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불신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변호인은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재판의 심리 과정은 공개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고, 헌법에서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선량한 풍속을 해칠 염려가 있을 때만 공개를 안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법관 인사는 이와 관련이 없다”면서 “대법관들의 합의의 근거가 된 검토보고서도 법정에서 다 공개되는데 법관 인사자료만 비공개 할 필요가 있는가“ 지적했다. 검찰은 또 “법원의 전직 수장이 인사권을 남용해서 법관을 상대로 불법적인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서 “많은 국민들과 검찰 입장에서도 전직 사법부 수장의 인사권 남용에 대해 다른 사건과 평등하게 소송 지휘가 이뤄져야 한다는 희망이 있다. 법관 인사자료만 비공개로 하면 헌법이 규정한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이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나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를 받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재판에서도 내부 인사정보가 재판에서 공개됐다는 지적이다. ●검찰 ‘공개재판’ vs 변호인 ‘비공개재판’ 공방…재판부 ”신상정보 드러나지 않도록 제한적 공개“ 굳은 표정으로 양쪽의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법원조직법이 정하는 비공개 재판을 해야 하는 사유, 국가의 안전보장과 질서를 해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서 노 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공개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신상정보가 공개돼 오해와 논란이 초래되고 사생활의 밀이 침해될 우려가 있으니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증인에게만 제시를 해서 심리를 해도 검찰이 이야기하는 평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판이 시작된 지 50분이 다 되어서야 노 판사는 법정에 들어섰다.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예상대로 일반적인 법관 인사 방식은 물론 ‘블랙리스트’로 지목된 ‘물의야기 법관’들이 왜 문제 법관으로 낙인찍혔는지, 특정 법관이 법원장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등이 자세히 드러났다. 매년 2월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일선 법원장들이 ‘인사관리 상황보고’를 통해 일부 법관들의 근무평정 가운데 특이사항이나 문제가 되는 상황이 있으면 정리해서 보고하고 나면 여기서 취합된 내용을 바탕으로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정기인사에 반영했다. 노 판사는 “저희가 이해하기로는 각급 법원장이 대법원장께 ‘인사관리 상황보고’를 드리면서 간단히 말씀도 나누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장들의 보고 외에도 인사총괄심의관실에는 판사들의 근무평정이 모두 모였다. 심의관들은 이 가운데 특이사항이나 문제상황들을 따로 정리했다. 세평이나 풍문도 모아서 따로 확일할 필요가 있는지 챙겼다고 한다. 법관들의 신상 및 인사정보가 모두 담긴 법관인사전자관리시스템에 ‘메모’란을 두고 여기에 각종 ‘특이사항’을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판사들이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됐다. 물의야기 법관들은 인사에서 별도의 관리가 이뤄졌다. 법관들의 인사는 서울권·경인권·지방권 등 권역별로 2~3년 단위로 순환하는 전국단위 전보인사가 원칙이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처음 보임될 대상 법관들의 경우 지방에서 오래 근무한 판사들을 선호 법원에 우선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이전 근무경력 등을 바탕으로 평정 점수를 매겨 A그룹부터 E그룹까지 순위를 매겼는데 물의야기 법관은 G그룹에 속했다. A그룹은 가장 우선적으로 희망하는 법원에 배치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법관 인사는 매우 구체적인 원칙과 기준이 명확해 기존의 패턴과는 다른 인사가 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그 예외는 물의야기 법관들에게 자주 적용됐다. ●대법원 비판글 올린 뒤 A그룹 → G그룹 강등… ”1지망 배치 배제“ 대표적인 예가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였다. 수원지법에서 근무하던 송 부장판사는 2015년 2월 정기인사에서 희망하지도 않은 데다 ‘격오지’인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전보됐다. 송 부장판사는 당시 A그룹이었다가 G그룹으로 형평 순위가 강등됐다. 이날 공개된 2015년 당시 이흥주 법원행정처 인사1심의관이 작성한 ‘2015년 정기인사 후기’ 문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혔다. ‘송승용 판사의 통영 배치는 인사실에서는 반대했지만 인사권자의 뜻이 강하여 이를 막지는 못했다.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글 게시에 대한 문책성으로 받아들인다는 소문이 있다.’ 정기인사를 앞둔 그해 1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에서 송 부장판사에 대하 인사조치 1안으로 ‘형평 순위 강등하여 지방권 법원 전보’, 2안으로 ‘초임부장 배치 원칙에 따라 지방권 법원 전보’ 방안이 제시됐는데, 1안에 승인을 뜻하는 ‘V’ 표시와 함께 양 전 대법원장의 결재가 있었다. 송 부장판사의 순위가 낮아진 결정적인 이유는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부적절한 글을 썼다는 것이었다. 송 부장판사는 양창수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임명제청 절차가 진행되던 2014년 8월 2003년 코트넷에 ‘2003년 그해 여름에 대한 단상-대법관 임명제청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2003년 대법관 임명제청 관련한 사법파동에 대해 ‘법원 내부의 자발적인 역량들이 모여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거쳐 사법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으로 평가될 것’이라면서 ‘다음 번 대법관 제청 때는 최고 엘리트 법관이 아닌 인권이나 노동,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법조인에게 문호를 개방했으면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앞서 2011년 7월에는 ‘근무평정제도 개정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평정을 통한 법관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2012년 7월에는 ‘대법관 임명 제청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당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저축은행 관련 비리 의혹이 제기된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제청 철회를 촉구하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당시 인사2심의관이던 노 판사에게 검찰이 송 부장판사의 형평 순위가 강등되고 통영지원으로 전보된 경위를 아느냐고 묻자 노 판사는 “인사실에서 (통영 배치를) 반대한 건 알았고 결재라인 어디에서 결정됐는지는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인사실에서는 왜 반대했느냐는 질문에는 “송 부장판사에 대해 물의야기로 검토된 (대법원 정책결정에 반대하는 글을 올렸다는)사안이 판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통영지원에 배치할 정도에 해당하는 것인가 실무자로서는 다른 생각을 가진 게 아니었나 싶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형평 순위 A그룹이었던 송 부장판사가 헌법재판소나 부산지법 동부지원 등 희망근무지에 우선순위로 배치될 수 있었음에도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 등의 지시에 따라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배치하는 인사안을 작성했고, 당시 강형주 법원행정처 차장이 포항보다 더욱 격오지로 배치하라고 지시해 결국 통영지원에 배치된 것이라고 지목했다. ●전 인사심의관 ”판사 배치는 대법원장이 최종 결정…원칙 어긋난 인사 보고해야“ 노 판사는 이날 여러 차례 “판사 배치는 대법원장의 정책 결정 사안”임을 확인했고 “기존의 인사 원칙이나 관례와 다르게 배치할 때는 인사권자에게 보고하고 결심을 받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사권자가 양 전 대법원장만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정확히는 대법원장이지만, 법원행정처장, 차장, 대법원장 모두 인사권자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일 가능성이 높은 인사권자가 실무부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정 법관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강행한 정황이 법정에서 처음 드러난 셈이다. 이후 정기인사에서도 송 부장판사를 비롯해 코트넷에 대법원에 비판적인 의견을 드러낸 전 우리법연구회 간사 출신 유모 판사와 노동 사건에서 노동자 편향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평가된 마모 판사 등이 A그룹에서 G그룹으로 옮겨졌다. 노 판사도 인사2심의관을 지내며 당시 김연학 인사총괄심의관 등의 지시 등을 토대로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된 G그룹에 대해 각각의 인사조치 방안들을 정리했는데 문건에서 각각의 판사들이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된 대략의 사유와 인사조치 방안은 다음과 같다. # 문유석 판사(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2016년 정기인사 ·물의야기 내용: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부적절한 내용 언론에 게재 ·인사조치 방안: 1안-1순위 희망 임지인 서울행정법원 배제 / 2안-2순위 희망 임지인 서울동부지법까지 배제. ‘본인이 서울행정법원을 강하게 원하고 있으므로 행정법원을 배제하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으로 느낄 수 있음’ # 김모 판사 (현 지법 부장판사) -2016년 정기인사 ·물의야기 내용: 조울증 ·인사조치 방안: 인사조치 보류. ‘인사대상이 아닌데도 문책성 인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이전에 인천지법에서 수원지법 성남지원으로 전보한 것도 인사패턴에 반한다는 지적이 있어 1년 만에 또 전보하면 무리한 사법행정이라는 평가가 있음’ -2015년 정기인사 (※노 판사 작성 아님) ·물의야기 내용: 2014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판결 비판 등 코트넷에 3년간 지속적으로 (대법원 비판) 글 게시 ·인사조치 방안: 서울권 배치 배제. (경인권에서 근무하던 김 부장판사가 서울권에 배치될 차례였지만 인천지법 배치) # 성모 판사 (현 지법 부장판사) -2016년 정기인사 ·물의야기 내용: 코트넷에 대법원 비판, 사건의 심리 및 심증형성 과정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히 기재 ·인사조치 방안; 지원장에서 배제하고 부산권 내 타 법원으로 전보 # 송승용 판사 (현 수원지법 부장판사) -2017년 정기인사 ·물의야기 내용: 코트넷에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관련 설문조사 제안.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여과없이 표현, 좀더 신중한 언행 필요’ ·인사조치 방안: 1안-선호법원인 안양지원 배제 (실제 수원지법 배치) 노 판사는 이처럼 매년 작성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보고서 속의 물의야기자로 분류된 사유는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자체 판단한 것이 아니라 일선 법원장들의 평가라고 강조했다. 인사심의관실에서는 취합과 확인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울증’이라는 사유가 적힌 한 법관에 대해 “법원장 평가와 인사관리시스템 메모에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면서도 실제로 그 법관이 조울증 진단을 받았는지, 약물 치료를 했는지 등을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코트넷에 대법원에 비판적인 글이나 정치적 성향을 올린 글을 쓴 법관들을 물의야기자로 분류한 데 대해서도 법원장의 평가가 기초된 것이라고 하면서 “정치적 이슈가 있는 사안에서 판사가 대외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게 법관의 윤리에 반한다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선호하는 법원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았던 법관들이 G그룹에 분류되면서 1순위에서 원천 배제되는 것이 인사 불이익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문 부장판사나 송 부장판사처럼 A그룹임에도 불구하고 1순위가 아닌 2순위로 전보를 보내는 것 자체가 불이익이라는 얘기다. 노 판사는 “1지망을 원천 배제해 1지망을 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없어졌다는 관점에서는 불이익이라고 느껴질 수 있겠다”면서도 “각 법원의 배치상황 등을 고려해 해당 법관들이 1지망에 갈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높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반대신문을 통해 ‘2006년 물의야기 법관 현황’ 문건(행정처 윤리감사관실 작성)과 2011년 작성된 ‘현행 인사원칙 및 인사 관행 정리’ 문건을 공개하며 양 전 대법원장 이전에도 물의야기 법관을 따로 분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등에 양 전 대법원장이 결재를 한 것은 맞지만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반대신문은 오는 27일 재판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시위대 최후 보루’ 홍콩 이공대 뚫려… 법원은 “복면금지법 위헌”

    ‘시위대 최후 보루’ 홍콩 이공대 뚫려… 법원은 “복면금지법 위헌”

    새벽에 물대포·음향대포 쏘며 교정 진입 시위대 활·화염병 저항… 400명 이상 체포 홍콩의 대법, 마스크 시위대 체포에 제동 中은 홍콩 인접 광저우서 테러 진압훈련 시진핑, 순방 뒤 귀국… 강경 진압 가능성홍콩 시위대와 경찰이 일촉즉발의 대치를 벌이는 가운데 18일 홍콩 경찰이 시위대의 ‘마지막 보루’인 홍콩 이공대로 진입했다. 400명이 넘는 대학생이 체포됐다. 반면 홍콩 고등법원은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 ‘복면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홍콩 정부로서는 시위 참가자의 복면 착용을 단속할 법적 근거를 잃어버렸다. 이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새벽 5시 30분부터 이공대 교정에 들어가 시위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는 이공대 밖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경찰이 교정을 전면 봉쇄해 교정 안으로 되돌아갔다. 이들은 경찰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고 화살을 쏘며 저항했다. 수십개의 가스통을 터뜨리며 건물에 불을 질러 교정 곳곳에서 폭발음이 퍼졌다. 지난 8일 홍콩과기대 2학년 차우츠록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추락사하자 이에 분노한 대학생들이 홍콩의 거의 모든 대학을 점거했다. 경찰 진압이 본격화되면서 대부분 학교에서 시위가 마무리됐지만 이공대는 600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 경찰은 물대포차를 동원해 파란색 물줄기를 쏘고 ‘음향 대포’로 불리는 장거리음향장치도 선보였다. 최대 500m 거리에서 150㏈ 안팎의 음파를 쏴 고막이 찢어질 듯한 아픔과 구토, 어지러움 등을 느끼게 한다. 경찰은 이날 이공대 시위대를 포함해 홍콩 전역에서 400여명을 체포했다. 시위대 측은 “교내에 먹을 것이 떨어졌고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다”며 ‘인도주의적 위기’를 호소했다고 SCMP는 전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홍콩 고등법원은 야당 의원 25명이 “복면금지법이 홍콩의 ‘기본법’에 위배된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 줬다고 명보가 이날 보도했다. 홍콩 정부가 지난달 5일부터 시행 중인 복면금지법은 공공 집회에서 마스크나 가면 착용을 금지한다. 야당 의원들은 “복면금지법 시행의 근거가 된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는 입법회(우리의 국회)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기본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의 계엄령에 해당하는 긴급법은 비상 상황 시 행정장관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도록 규정한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긴급법에 근거해 복면금지법을 발동했지만 법원의 위헌 판단으로 더이상 시위대의 복면 착용을 막을 수 없게 됐다. 한편 중국 당국은 지난 16일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을 기지 밖으로 보내 청소 활동을 하게 한 데 이어 다음날에는 홍콩과 인접한 광저우에서 대규모 테러 진압훈련을 실시했다. 이날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광저우 공안국은 전날 10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테러 대비 훈련을 벌였다. 광저우 공안국이 공개한 사진에는 테러범 진압과 폭발물 처리 등의 상황이 담겨 있다. 홍콩 시위대를 향한 경고성 행사로 풀이된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해외 순방을 마치고 17일 베이징으로 돌아옴에 따라 홍콩에 대한 대응 수위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매체들은 시 주석이 브라질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홍콩 폭력을 끝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홍콩 사태 무력 개입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유민봉, 총선 불출마 선언…“한국당, 국민 절박함 담아낼 그릇 못돼”

    유민봉, 총선 불출마 선언…“한국당, 국민 절박함 담아낼 그릇 못돼”

    기자회견 열고 “한국당에 빈 틈새라도 내겠다”“보수대통합 해야…중도개혁층 위한 쇄신 필요”당내 중진 의원들 불출마 선언 우회적으로 촉구“황교안, 다양한 의견 아우르는 리더십 보여달라”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냈던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대표)이 6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유민봉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6월 페이스북에서 밝힌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밝힌다”면서 “빈 자리는 국민들이 채워주실 것으로 확신하니, 우리 당에 빈 틈새라도 내겠다”고 말했다. 유민봉 의원은 “지금 우리 당은 국민들의 답답함과 절박함을 담아낼 그릇의 크기가 못 되고 유연성과 확장성도 부족하다”면서 “당 지도부는 지지층에 안주하지 말고, 중도개혁층의 마음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쇄신과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생각의 틀과 인맥을 깨고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당을 이끌고, 선거 연대를 포함한 보수대통합 행보도 본격화해야 한다”면서 “더 많은 국민과 청년, 여성이 당과 함께할 수 있도록 가진 것은 먼저 내려놓고 가시밭길은 앞장서 나가자”고 덧붙였다. 유민봉 의원은 “지금 우리 당에 필요한 것은 내가 당선돼 당에 한 석을 더하는 것보다는 희생으로 국민 마음을 얻는 것이고, 저보다 정치 경험이 풍부하고 정치력이 큰 선배 여러분이 나서준다면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더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당내 중진 의원들의 용퇴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그는 또 “오늘 결심과 앞으로 당의 노력으로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부족하거나,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 강행 처리와 같은 불행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저는 언제라도 의원직까지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유민봉 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 후 불출마 의사를 밝혔던 의원들과 사전에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그분들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발언과 의사 표시를 바꾼 적이 없다”면서 “쇄신의 큰 물줄기가 트인다면 그분들이 분명히 동참하고 당 혁신에 앞장설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그는 “당 지도부가 어느 정도 큰 물줄기를 틀 수 있도록 옆에서 살짝 밀어주더라도 (불출마에) 동참하는 의원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유민봉 의원처럼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불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의원은 김무성·윤상직·정종섭 의원 등이다. 윤상직 의원은 당시 보도자료를 내고 “보수의 몰락에 대해 책임을 지고자 한다”며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민봉 의원은 지난주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불출마 입장을 전달했다고 소개하면서 “지도부도 저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민봉 의원은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우리 당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답답하고 실망하셨을 것”이라며 “황교안 대표가 다양한 의견을 모두 아우르는 리더십을 보여주시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동영상] 팬티만 걸친 채, 웅덩이에서 자맥질, 단비가 마냥 기쁜 호주인들

    [동영상] 팬티만 걸친 채, 웅덩이에서 자맥질, 단비가 마냥 기쁜 호주인들

    깜짝 놀라시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호주 남동부 뉴사우스 웨일스주에 하도 오랜만에 비가 내려서 그래요. 영국 BBC가 4일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에는 괴성부터 질러대며 팬티만 걸친 채 빗속으로 달려가는 한 남성이 담겨 있어요. 물 웅덩이에 철퍼덕 넘어진 뒤 한 뼘도 안되는 깊이에서 자맥질을 하는 다른 농민도 있네요. 얼마나 가물이 극심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지난 주말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며 나름 굵은 빗줄기가 퍼붓자 모두들 뛸 듯이 기뻐했답니다. 물론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한 댐에 형편 없는 저수량이 담겨 가물을 해갈하려면 더 많은 비가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어린 소녀는 이 정도 비라도 내리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트램폴린에서 뛰며 비가 내리는 걸 마냥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도 천진하기 이를 데 없고요. 사실 지난 주말 북한산을 가봐도 대지가 바짝 말라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초가을 연이은 장마가 쏟아지더니 근래 통 비가 내리지 않아 북한산 계곡의 물줄기도 졸아 있었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동신문은 3일 “올해에도 겨울철에 눈이 적게 내린데다가 봄철과 여름철에 가물현상이 나타났다”면서 “그러나 당이 제시한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할 드높은 열의밑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각지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좋은 농사작황이 마련됐다”고 소개했습니다. 신문은 이어 “올해 도들에서 벌어진 가물과의 투쟁을 놓고 다시금 찾게 되는 교훈이 있다”면서 “농사는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 짓는다는 관점에서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완강하게 내민다면 그 어떤 조건에서도 알곡생산을 늘일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일상 품었던 읍성, 일상 지켜준 도성

    일상 품었던 읍성, 일상 지켜준 도성

    경기 광주시 청량산 일대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본성과 외성까지 포함한 성곽의 총길이가 1만 2335m, 면적 220만 9270㎡에 달하는 국내 최대 산성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남한산성은 안쪽은 낮고 얕으나 바깥쪽은 높고 험해서, 청나라 군사들이 처음 왔을 때 병기라고는 날도 대보지 못했고, 병자호란 때도 결코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병자호란 피란수도, 남한산성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군사 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이듬해인 1624년 이괄의 반란으로 한양을 뺏기고 공주로 피란하게 된다. 혹독하게 고생한 그해 임금의 입보와 조정의 파천이 가능한 남한산성을 수축하게 된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옮겨 45일간 수성으로 침략을 버틴다. 화력과 기동력에서 열세였던 조선군 1만 3000여명으로 수십만의 최정예 청군을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산성의 견고함 때문이었다. 결과는 일방적인 패전과 치욕적인 항복이지만 산성이 함락된 것이 아니라 원군과 물자의 결핍으로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 용골대가 통역 정명수에게 말했다. -단단해 보인다. 산골나라에는 저런 성이 맞겠어. -조선은 성안이 허술합니다. -허나 성벽은 날카롭구나. 깨뜨리기가 쉽지는 않겠어. -바싹 조이면 깨뜨리지 않아도 안이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 보느냐. 듣기에 좋다. (김훈의 ‘남한산성’에서)산성의 위치는 절묘하다. 서울의 동쪽 흥인지문을 나와 살곶이다리로 중랑천을 건너 광진나루에 다다른다. 배로 한강을 건너 평야지대를 지나면 남한산성에 입성할 수 있다. 빨리 걸으면 대략 8시간, 한나절 거리다. 병자년 12월 9일 압록강을 넘은 청나라의 기병들은 빛의 속도로 남하해 12월 14일 개성에 도착했고, 바로 그 시간 인조는 궁궐을 떠나 당일 남한산성에 입보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은 평균 고도 450m의 고지에 떠 있는 천혜의 요새다.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해 약 10㎞의 본성을 쌓았다. 청량산 일대에는 신라시대 쌓았던 주장성이 폐허로 남아 있었다. 인조 대의 남한산성은 대략 기존 주장성의 흔적을 따라 돌로 견고하게 쌓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대규모의 산성을 2년이라는 단기간에 완성하기 위해 택한 나름 현명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때 완성한 본성은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성 밖에 있는 벌봉이나 남한봉은 안의 봉우리들보다 40여m 높아 성안을 들여다보는 고지였다. 중장거리포로 무장한 청군은 이곳에 화포를 설치해 산성 안을 무차별 공격할 수 있었다. 이 결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후대에 벌봉을 감싸는 봉암성을 쌓고, 남한봉과 연결하는 외성인 한봉성을 쌓게 된다. 또한 성 밖의 능선을 확보하기 위해 남문 근처에 3개 옹성을 덧붙여 쌓았다. 완벽한 방어용 산성으로 보완됐지만 이후에는 재래식 외침도, 재래식 수성도 없었다.●산성수축론에서 산성거주론까지 한국과 같은 산악 국가는 곳곳에 산성을 쌓고 이를 거점으로 방어망을 형성하는 것이 전통적인 군사전략이었다. 고구려는 산성의 나라라 할 정도로 수많은 견고한 산성을 경영했다. 인구 2만명의 안시성이 당나라의 수십만 대군을 물리치지 않았던가. 특히 수도 방어를 위해 국내성 인근에 환도산성을, 평양성 뒤에 대성산성을 쌓았다. 평상시에는 평지 도성에서 일상을 영위하지만, 유사시에는 배후 산성에 입보해 침략으로부터 지켜 냈다. ‘평성과 산성’이라는 2성제는 백제와 신라는 물론 후속 왕조인 고려도 채택한 전통적인 도성 방어체계였다. 조선 왕조는 군사용이 아닌 한양성만 쌓았을 뿐 도성 방어용 산성을 만들지 않았다. 대국인 명나라나 야만국인 일본이 수도를 함락할 정도로 전면 침략할 리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발발 20일 만에 수도가 함락되고 조정은 국경인 의주로 파천했다. 전시 재상인 유성룡은 무기력한 조선의 방어체계를 개탄하며, 유사시에 대비해 튼튼한 산성을 마련하자는 산성수축론을 주장하게 된다. 남한산성은 산성수축론이 실현된 본격적인 예다. 산성은 수축과 관리에 막대한 자원이 소요된다. 또한 산성 수호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성 밖의 백성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산성무용론을 펼친 실학자 유형원은 평소 생활 터전인 읍성의 방어 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읍성보강론을 주창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을 가져 여러 지방의 읍성을 마치 산성과 같이 방어용으로 개축하게 된다. 읍성보강론은 결국 1797년 수원화성 건설로 결실을 맺었다.그러나 아무리 튼튼해도 읍성은 지리적 한계로 인해 방어력이 떨어진다.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던 강항은 산성에 인구를 유입하고 거주 기능을 높이자는 산성거주론을 주장했다. 군사적인 산성 안에 본격적인 생활기능을 담을 수 있다면 거주와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높은 곳의 산성은 지리적 접근이 어렵고 내부 토지도 좁아 인구 유입에 한계가 많다. 산성 거주를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1683년 남한산성에 광주유수부를 설치하게 된다. 유수부란 수도권의 광주, 강화, 개성, 수원에 둔 군사·행정을 통합한 특별 통치 단위였다. 광주유수부에는 6000명이 넘는 군인과 수백명의 지방 관료와 그 가족들이 이주했다. 또한 세금 감면과 경작지 제공 등 혜택을 줘 1000호, 4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산성도시가 됐다. 남한산성의 진정한 가치는 이 높은 분지에 도시가 이뤄졌고, 유수부가 폐지된 1917년까지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 번성이 유지됐다는 사실에 있다.●상황 따라 기능 달라지는 이중적 도시 구조 이 산성도시는 평시에 일반적인 읍성과 같이 기능하지만, 유사시엔 임시 도성이 되는 이중적 성격을 가졌다. 도시의 뼈대 역시 이중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남문·북문을 이루는 간선도로의 중앙에 동문으로 통하는 중심도로가 접속한, 丁자형 가로를 이룬다. 그 교차점에 종각이 있고, 그 뒤에 행궁을 뒀다. 동서 관통로인 종로에 남대문로가 접속한 한양의 도로체계와 유사하다. 또한 행궁과 경복궁의 위치도 비슷하다. 지형에 따라 방위만 바뀌었을 뿐 한양 도시체계를 축소 반복한 임시 도성의 모습이다. 일반적인 읍성의 중심은 객사다. 행궁 남쪽에 객사인 인화관을, 그 뒤로 관청들을 뒀다. 동문로에는 큰 물줄기가 흐르는데, 물줄기 양쪽에 나란히 두 개의 도로가 놓였다. 한 길은 행궁으로 통하고, 다른 한 길은 객사로 통한다. 다시 말해 하나는 도성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읍성의 길이다. 두 길 사이의 공간에는 장터와 군사훈련장, 공공 정원인 지수당 연못을 둬 공공 지역으로 설정했다. 지수당 연못은 원래 3개로 경관용인 동시에 저수지 역할까지 했는데, 현재는 2개만 남아 있다. 연무관 앞의 훈련장과 장터는 세계유산센터와 주차장, 일반 음식점들이 어지럽게 들어서 흔적이 없어졌다.행궁의 규모는 비록 작지만 왕궁의 격식을 따라 외전과 내전을 중첩시켰다. 눈에 띄는 것은 행궁 뒤 북쪽 산 옆에 자리한 좌전이라는 건물군이다. 도성의 종묘에서 역대 임금들의 위패를 가져와 모시는 임시 종묘인 셈이다. 행궁의 남쪽 지역에는 우실이라는 사직단을 뒀다고 한다. 제왕이 있는 도성이 되려면 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단을 설치해야 한다는 이른바 ‘좌묘우사’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공공 지역과 시설 주위로 자리한 1000여호의 민가에서는 수천명의 주민이 농사뿐 아니라 수공업과 상업 등에 종사하며 다양한 도시적 일상을 살았다. 한창때는 효종갱이라는 아침 죽을 한양까지 배달할 정도로 여러 특산물의 산지였다. 남한산성 400년의 역사에서 병자호란 45일은 비일상적인 특수한 기억일 뿐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산성도시로 번성했고, 천주교의 순교지이자 구한말 의병운동, 일제 독립운동과 애국계몽의 근거지였다. 해방 후 남한산성은 수도권의 중요한 관광지로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국제적인 명소가 됐지만 성곽만 부각될 뿐이어서 늘 아쉽다. 특별하고 의미 있는 도시 구조가 재건된다면 명실상부한 산성도시가 될 것이다. 성곽은 이미 날카롭다. 내부의 산성도시가 건강하게 살아난다면 남한산성은 영원히 마르지도, 깨지지도 않을 것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북핵 문제 갈 길 멀어…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북핵 문제 갈 길 멀어…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북한 문제는 지금 28년째다. 그간 거둔 성과도 크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먼 만큼 평화의 큰 물줄기를 만들어 간다는 비전을 갖고 임하겠다.” ●“방위비 등 한미동맹정신하에 해결 기대” 이수혁 신임 주미 한국대사는 25일(현지시간) 취임 일성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비핵화 협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져갈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이 대사는 이날 워싱턴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취임식 후 특파원들에게 “(북핵 협상을) 전망하기 어렵고 전문가들의 전망이 맞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난감하다”며 “북핵 문제가 무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지 않고 ‘이 문제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소 소신과 철학을 바탕으로 해 사태가 전쟁 국면으로 치닫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게(관리가) 외교가 할 일이다. 단시간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은 핵 외교의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면서 “각오를 더 단단히 하겠지만 위기감을 느낄 사안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사는 이날 취임사에서 “앞으로도 방위비 분담 등 이슈가 있지만 동맹정신하에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최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관련 사안도 대사관 차원에서 필요한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美, 한국 방위비 분담 책임 거듭 촉구 한편 미 국무부는 이날 ‘막대한 비용’을 거론하며 한국의 ‘공평한 방위비 분담 책임’을 거듭 촉구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지난 23~24일 열린 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2차 회의가 입장 차만 확인하고 마무리되자 대폭의 증액 요구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잇달아 동맹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촉구하는 압박성 발언을 내놨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서울광장] 황허의 물길과 검찰개혁/박홍환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황허의 물길과 검찰개혁/박홍환 편집국 부국장

    중국 대륙을 지(?)자 형태로 서에서 동으로 관통하는 황허(黃河)는 장장 5464㎞의 물길을 만들어 낸 뒤 보하이(渤海)만으로 흘러든다. 창장(長江)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서부 칭하이(靑海)성 칭짱(靑藏)고원의 바옌커러산에서 발원한 한 방울로 여정을 시작하는 황허는 9개 성과 자치구에 길고 뚜렷한 물길을 만들며 한반도 면적의 3.4배인 75만㎢의 중국 대륙 북쪽 땅을 적신다. 산시(陝西)성을 비롯한 황허의 중상류 유역은 중국에서도 대표적인 황토 지대다. 황허의 물빛이 누렇다 못해 시뻘건 이유다. 매년 16억톤의 토사가 쉼없이 하류로 밀려든다. 그중 4억톤은 유역 곳곳에 쌓여 비옥한 평야지대를 만들었고, 여기서 세계 4대 문명의 하나가 꽃을 피웠다. 엄청난 규모의 토사가 퇴적되는 자연환경 탓에 황허 하류는 이따금 물길이 바뀌곤 했다. 주나라 때인 기원전 6세기부터 19세기 청나라 때까지 2400여년 동안 모두 26차례 물길이 바뀌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황허의 동쪽에 있었던 마을이 물길이 바뀌는 바람에 몇십년 뒤에 가보면 강 서쪽으로 옮겨져 있는 풍경이 펼쳐지곤 했던 것이다. ‘삼십년 하동(河東), 삼십년 하서(河西)’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황허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풍요롭게 번성하고, 반대쪽은 번번이 수해를 입곤했지만 황허는 물길을 바꾸어 강 양쪽 마을의 처지를 뒤바꾸곤 했다. 이처럼 ‘삼십년 하동, 삼십년 하서’는 세태 변화와 인생 무상을 표현하는 말로 유용하게 쓰인다. 어떻게 보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나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은 말인 셈이다. 권력이나 부귀가 영원할 듯하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고, 지금은 초라하지만 그로 인해 나중에 복을 받을 수도 있으니 낙담할 필요도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일러 준다. 영원할 것 같던 검찰 권력의 운명을 가르는 물길이 지금 바뀌고 있다. 개도(改道)의 원천은 민심이다.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를 가득 메운 촛불이 들불로 번졌고, 그 인파가 쏟아낸 검찰개혁의 함성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기득권 수호에만 몰두하며 혁신의 기회를 외면했던 검찰 조직이 이런 외력에 의한 개혁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군사정권 시절을 포함해 수십년간 무소불위의 수사권력을 휘둘러 온 검찰로서는 갑작스럽게 이런 날이 온 것에 어지간히 당혹스러울게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검찰개혁을 원하는 민심의 도도한 물줄기는 지난 수십년 동안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에 차곡차곡 퇴적물을 쌓아 놓고 있었다. 검찰 구성원들이 “우리가 남이가”, “식구가 뭐여”를 외치며 주구장창 ‘제 편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숱한 민원인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검찰청사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특수부는 특수부대로, 공안부는 공안부대로,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제멋대로 행사해도 견제 장치가 없으니 거칠게 없었다. 조직 외부에 알려지지만 않으면 그 어떤 비리를 저질러도 ‘의원면직’으로 유야무야했다. ‘스폰서 검사’, ‘벤츠 여검사’, ‘성도착 검사’, ‘해결사 검사’ 등 추문이 줄을 이었지만 반짝 긴장했을 뿐 자정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 특수부 취재 때의 일이다. 이미 수감돼 있던 전직 고위공직자가 검찰청사로 불려와 특수부 검사에게 별도의 뇌물사건 조사를 받은 뒤 구치소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벌어졌다. 그 전후로도 특수부 수사와 관련해 자살자가 속출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며 윽박질렀을 게 뻔했지만 그때마다 검찰은 “강압수사는 없었다”는 한 줄짜리 유감 논평만 냈을 뿐 구체적인 경위 조사를 하지도, 그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도 않았다. 그 당시 수사 당사자 중 한 명은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지난 정권의 핵심 실세로 국정농단을 일삼았다. BBK 수사는 또 어땠나. 2007년 말 17대 대선을 앞두고 검찰은 “다스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려 MB 당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자임했고, 수사 책임자들은 그 공을 인정받아 MB 정권 내내 중용됐다. 10년 만에 수사 결과는 완전히 뒤집혔다. 하지만 그 ‘계산된 오류’를 책임질 사람들은 이미 검찰에 남아 있지 않았다. 교정되지 않는 잘못이 이어지면서 검찰에 대한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쌓여 간 것이다. 바뀐 물길로 인해 검찰은 앞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혁의 도도한 흐름에 순응하는 길 외에 검찰이 저항할 명분은 남아 있지 않다. stinger@seoul.co.kr
  • ‘뽕따러가세’ 송가인, “잠시만 안녕” 대장정 마무리 [종합]

    ‘뽕따러가세’ 송가인, “잠시만 안녕” 대장정 마무리 [종합]

    TV CHOSUN ‘뽕 따러 가세’ 송가인-붐이 강원도 특집 2탄 대한민국의 척추 ‘태백산맥’편을 끝으로 장장 5개월 동안 펼쳐진 시즌1 대장정을 마무리 한다. 오는 10일(목) 방송되는 TV CHOSUN ‘송가인이 간다-뽕 따러 가세’(이하 ‘뽕 따러 가세’) 13회에서는 무더웠던 지난 6월부터 도시와 시골, 바다와 내륙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노래와 흥으로 ‘뽕힐링’을 전한 송가인과 붐이 8번째 뽕밭, 강원도 태백산맥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정이 90분 특별 편성으로 공개된다. 장엄한 자연풍경 속에 흠뻑 빠진 채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뽕남매의 모습이 뭉클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송가인과 붐은 마지막 여정을 출발할 장소로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아우라지 역을 택했던 상황.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 어우러지는 강’이라는 의미가 있는 아우라지 역에서 두 사람은 지난 5개월간 광주광역시를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진도군, 인천광역시, 강원도까지 누비며 차곡차곡 쌓아온 추억을 되짚었다. 이어 붐이 “가인이와 내가 ‘뽕 따러 가세’로 만나서 하나로 어우러졌지”라고 각별한 소감을 전하자, 송가인 역시 “하나로 어우러졌는데 오늘이 마지막이여”라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글썽였던 터. 그렇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두 사람은 결국 부둥켜안고 서로의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으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은 붐이 “이별이 아닌 잠깐 헤어지는 것”이라고 송가인을 다독였고, 이에 송가인이 “정말 잠깐만 헤어져요”라는 화답과 함께 주현미의 ‘잠깐만’을 이별송으로 열창했다. 특유의 유쾌한 헤어짐을 나눈 뽕남매는 이내 밝은 모습을 되찾은 채 ‘뽕남매’를 절실히 원하는 사연자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험한 태백산맥 곳곳을 누비는 열정을 발휘, 현장을 달궜다. 그런가하면 수상한 ‘뽕 로맨스’를 이어가던 송가인과 붐은 이날 역시 코스모스를 따라 이어진 아우라지 역 기찻길을 나란히 걸으며 무르익은 가을 로맨틱한 기차역 로맨스를 선보였다. 서로의 손끝이 닿자 수줍은 듯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이 묘한 기류를 더욱 부추긴 가운데, 붐이 마치 백허그를 하듯 송가인 뒤에서 살포시 이어폰을 끼워주며 설렘을 더한 것. 뽕남매가 영화 ‘건축학개론’의 이제훈과 수지를 뛰어넘는 케미폭발 ‘첫 사랑 커플’의 면모를 펼쳐내면서, 또 한 편의 레전드 ‘뽕따 극장’의 탄생을 예고했다. 제작진은 “‘뽕 따러 가세’는 송가인과 붐, 그리고 제작진이 ‘미스트롯’으로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감사 프로젝트로 출발했다”며 “고된 일정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달린 붐과 송가인의 노력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봐 준 시청자들이 있어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건강관리에 힘써 더 좋은 노래 들려주길 바란다”고 각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글로벌 힐링 로드 리얼리티 ‘뽕 따러 가세’는 송가인과 특급 도우미 붐이 전국 방방곡곡 대한민국은 물론 해외 오지까지 찾아가 자신의 노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던 프로그램. 5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시즌1을 종료한 후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광명동굴 휴게공간·인공폭포 준공

    광명동굴 휴게공간·인공폭포 준공

    경기 광명시가 광명동굴 관람객 휴게공간과 인공폭포 조성사업을 마치고 28일 준공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준공식에는 박승원 광명시장과 조미수 광명시의회 의장, 김영준 경기도의원, 시민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시는 지난 5월 공사를 시작해 바닥분수를 비롯해 40m 길이의 도섭지와 높이 13m, 폭 17m짜리 인공폭포, 폭포앞 쉼터를 조성했다. 다양하게 변하는 바닥분수와 도섭지는 아이들의 새로운 놀이터가 되고 시원한 물줄기의 폭포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인공폭포는 폭포 앞 쉼터와 빛의 광장 양쪽으로 떨어지게 설치돼 빛의 광장 전경을 한층 더 아름답게 꾸밀 뿐만 아니라 주변 관광객을 더욱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폭포 앞 쉼터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해 관광객들이 편히 앉아 쉴 수 있도록 꾸몄으며, 행사가 있을 때는 체험부스를 설치하고 소규모 야외공연을 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어 광명동굴의 새로운 명소가 될 전망이다. 박승원 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광명동굴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은데 외부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부족해 관광객들이 자연과 함께 쉴 수 있도록 광명동굴 외부에 다양한 휴식공간을 많이 조성했다”며 “앞으로도 광명동굴 주변 개발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강화군 아프리카돼지열병 나흘만에 5건… 파주? 강화? 원발점 미스테리

    강화군 아프리카돼지열병 나흘만에 5건… 파주? 강화? 원발점 미스테리

    나흘 연속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이 인천 강화군에서만 발생하면서, 당초 국내 ASF 첫 확진이 나온 경기 파주시가 시작점이 아니라 강화군일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27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6일 들어온 ASF 의심 신고 5건을 확인한 결과 강화군에서 접수된 2건의 신고가 양성(확진)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날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도 “강화군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어떤 경로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강화군에서 집중적으로 있는 상황”이라면서 “강화군에 대한 추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강화군과 김포시를 잇는 도로 등을 집중적으로 소독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지자체와 함께 추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나흘간 인천 강화군에서만 5건의 확진 판정이 나오면서 이제까지 ‘매개지’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은 강화군이, 국내 ASF의 시작점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먼저 질병의 경우 인근 지역으로 먼저 확산이 된 후 먼 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옮겨가는데, 현재 확진이 나온 돼지농장 9곳 중 5곳이 강화군에 있다. 방역 현장에서 근무하는 한 수의사는 “개체별로 잠복기와 증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파주와 연천 발생 농가의 돼지들과 강화군 발생 농가 돼지의 감염시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역학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특히 확진 판정이 나온 파주와 연천, 김포 등 다른 지역의 경우 방역조치 이후 ASF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강화의 경우 방역조치를 취하고 있음에도 지역 안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돼지 농가가 늘고 있다. 때문에 바이러스 방역 실패로 파주에서 강화도까지 확산됐다기보다 북한과 한강 하구를 사이에 둔 강화 일대에 ASF가 지난 17일 이전부터 유포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김현섭 한국양돈수의사회 회장은 “신고 순서가 곧 발생 순서는 아니다”라면서 “특히 방역조치 이후 감염 농가가 늘었다는 것은 이전에 상황이 진행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조만간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면 명확해 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강화에 확진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ASF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화도 돼지 농가에 확진이 집중되고 있지만, ASF 유입 경로로 강하게 의심을 받는 임진강 물줄기와 멀기 때문에 발원지가 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하지만 지난 5월 환경부가 작성한 ‘한강하구·강화도 북한 멧돼지 유입 가능성 점검 결과 보고’에 따르면 과거 북한에서 살아있는 소와 멧돼지, 사람 사체가 유입된 것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유입 가능성을 희박하나 없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현일 한국양돈수의사회 ASF비상대책센터장도 “중국에서 떠내려온 돼지가 대만에서 발견된 사례도 있다”면서 “돼지가 강줄기와 바다를 타고 넘어올 가능성도 배제하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전국 전체 돼지농장, 출입 차량, 사료농장, 도축장 등을 대상으로 28일 정오까지 발령된 전국 돼지 일시이동제한 조치를 추가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세종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배가본드’ 이승기, 명품 근육질 몸매 공개 ‘남성美 폭발’

    ‘배가본드’ 이승기, 명품 근육질 몸매 공개 ‘남성美 폭발’

    ‘배가본드’ 이승기가 낡은 티셔츠 속 숨겨온 명품 근육질 몸매를 공개하며 남성미를 폭발시켰다. SBS 금토드라마 ‘배가본드(VAGABOND)’는 민항 여객기 추락 사고에 연루된 한 남자가 은폐된 진실 속에서 찾아낸 거대한 국가 비리를 파헤쳐가는 첩보 액션 멜로다. 화려한 영상미와 고강도 액션씬, 탄탄한 스토리까지 갖춘 ‘블록버스터’다운 행보를 보이며 시청률 뿐 아니라 화제성까지 완벽하게 거머쥐었다. 무엇보다 2화에서 차달건(이승기)은 모로코 공항에서 마주친 제롬(유태오)을 눈 앞에서 놓쳐버리고 극심한 분노에 휩싸였던 상황. 여객기 추락 사고가 테러리스트의 소행임을 확신하게 된 차달건이 본격적으로 사고 배후를 쫓아 맹렬한 추격을 시작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이승기가 구릿빛 근육질 몸매를 과감히 드러낸 ‘분노의 샤워씬’이 포착됐다. 극중 차달건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상의를 탈의한 채 떨어지는 샤워기 물줄기를 그대로 맞고 있는 상황. 차달건은 떡 벌어진 태평양 같은 어깨와 탄탄한 가슴 근육, 여기에 식스팩을 넘어선 에잇팩 복근으로 범접 불가한 포스를 내뿜으며 시선을 강탈한다.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뛰고 구르느라 늘 흙 묻은 단벌 티셔츠 차림이었던 차달건이 드러낸 색다른 반전 매력이 팬들을 심쿵하게 만들면서 앞으로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 역시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다. 이승기의 ‘분노의 샤워씬’ 장면은 경기도 파주시 원방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특유의 쾌청한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 이승기는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 상의 탈의 장면이 내심 부끄러운 듯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현장에 등장했던 터. 긴장감을 드러내던 이승기는 감독의 슛 소리와 함께 탄탄한 몸매를 드러냈고 제작진은 이승기의 감정을 북돋기 위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선 이승기는 이내 감정에 빠져들어 분노와 좌절, 슬픔이 느껴지는 차달건의 심리 상황에 순식간에 몰입했고, 세심하고 정확한 감정 표현으로 물줄기 속 차달건을 오롯히 표현해냈다. 그런가하면 이승기는 ‘배가본드’에 캐스팅된 직후부터 스턴트맨 출신 민간인이 해내는 맨몸 액션 설정을 소화하기 위해, 매일같이 체력 훈련과 액션 수업을 받으며 좀 더 날렵하고 민첩한 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승기의 노력이 빛을 발한 열연에 스태프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제작사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측은 “차달건이 되기 위한 이승기의 노력과 열정이 매 촬영 때마다 제작진을 감탄케했다”며 “차달건 역으로 새로운 배우 필모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승기의 행보를 계속 지켜봐달라”고 전했다. 한편, SBS ‘배가본드’ 3회는 오는 27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안양시, 자연자원 보고 비산·학운·동안 3개 습지 복원 마무리

    안양시, 자연자원 보고 비산·학운·동안 3개 습지 복원 마무리

    경기도 안양시는 사업비 3억 원을 들여 습지 3곳에 대한 복원공사를 마쳤다고 26일 밝혔다. 안양천변 비산대교 인근과 학의천 일대 두 곳 등 비산·학운·동안습지를 힐링과 사색의 공간으로 꾸몄다. 자연자원의 보고인 이들 3개소 인공습지에는 가느다란 물줄기를 중심으로 돌벤치, 앉음벽, 징검다리를 설치했다. 초화류인 금계국, 수크렁, 개나리, 부채붓꽃, 아이리스, 코스모스로 주변을 아름답게 꾸몄다. 습지를 소개하는 안내판도 새롭게 설치했다. 생태하천의 맑은 물줄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수생식물을 관찰하는 공간으로 복원했다. 당초 이 곳 습지는 2004년도에 조성됐으나 그동안 장마와 태풍 등으로 제 모습을 잃어 시가 새롭게 복원하게 됐다. 시는 절기마다 어울리는 초화류를 식재하고 시설물 보강 및 개선을 꾸준히 이어가 시민 모두가 즐기는 습지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단종의 유배지, 마차리 폐광촌, 복합예술공간, 벽화거리까지…뉴트로 영월로

    단종의 유배지, 마차리 폐광촌, 복합예술공간, 벽화거리까지…뉴트로 영월로

    강원도 영월이 변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고도와 오지 산골마을의 낡은 이미지가 싫어서였을까요. 레트로 감성에 젖을 만한 곳도 있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전위적인 풍경의 예술공간도 새로 조성됐습니다. 이런 새 요소들이 기왕에 갖고 있던 장릉, 청령포 등 영월의 옛 풍경과 어우러지며 매우 독특한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롭거나, 혹은 새롭게 변화한 영월의 아이콘들을 찾아가 봤습니다.●다양한 미술작품·박물관·공방이 어우러진 와이파크 먼저 ‘젊은달 영월 와이파크’부터. 흔히 와이파크라 불린다. ‘젊은달’은 영어의 영(young)과 한자 달 월(月)을 합친 조어다. 지역명 영월을 이렇게 비틀었다. 단어의 조합이 절묘하다. 와이파크는 복합예술공간이다. 다양한 미술 작품과 박물관, 공방 등이 함께 깃들어 있다.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이들이 합쳐지며 하나의 거대한 대지미술공간을 이루고 있다. 와이파크가 조성된 곳은 주천(酒泉)면이다. 한글로 풀어 쓰면 ‘술샘’이다. 지난 2014년 세워진 술샘박물관의 내부를 뜯어내 ‘붉은 파빌리온’, ‘목성’ 등의 미술관, 대지미술공간 등과 연결하면서 와이파크가 됐다. 와이파크는 들어서는 길부터 예술이다. 최옥영 작가의 설치미술 ‘붉은대나무’가 객을 맞고 있다. 붉은 금속파이프를 연결한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붉은 대나무밭에 들어선 느낌을 준다. 안내판은 “주변의 짙은 초록과 대비되는 붉은색을 사용해 젊은달 와이파크의 넘치는 에너지와 우주를 표현했다”고 적고 있다. 접객 공간을 지나면 곧 소나무 장작더미로 만든 통로다. 최 작가의 설치미술 ‘목성’(木星)의 입구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소나무 장작이 겹겹이 쌓인 거대한 돔이 나온다. 장작더미 사이사이에선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꼭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듯하다. 최 작가는 “강원도에 지천으로 널린 소나무를 엮어서 만든 작품”이라며 “어머니가 가진 원초적인 자궁의 힘, 사랑, 우주의 힘을 이 공간에 쏟아냈다”고 밝혔다. 곧이어 눈을 의심할 만큼 농염한 색의 공간이 펼쳐진다. 그레이스 박 작가의 ‘시간의 거울-사임당이 걷던 길’이다. 수많은 조화와 넝쿨, 와이어, 거울 등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작품명은 ‘사임당이 걷던 길’이지만 관객이 갖는 느낌은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온 앨리스가 된 듯하다. 세 개의 방을 지나면 붉고 거대한 철재 구조물이 관람객을 막아선다. 이 역시 최 작가의 공간대지미술 작품인 ‘붉은 파빌리온’이다. 천장에는 거미를 닮은 거대한 그물망이 매달려 있다. ‘스파이더 웹 플레이 스페이스’다. 날씨가 맑으면 그물망 안에서 놀 수도 있다. 그물망 아래엔 탁명열 작가의 ‘푸른 사슴’이 세워져 있다. 파랑과 빨강의 대비가 강렬하다. 이어 ‘실과 소금의 이야기展’, ‘바람의 길’, ‘맥주 뮤지엄’, 술샘박물관 등이 줄줄이 펼쳐진다.●단종의 한이 서린 곳… 유배지 청령포·안식에 든 장릉 영월은 조선의 6대 왕 단종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읍내 청령포와 장릉은 꼭 들러야 할 명소다.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다. 뒤로는 육육봉 등 험준한 산이, 앞으로는 동강 물줄기가 가로막고 있다. 최근 청령포에 전기가 공급됐다. 종전에는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 등 문화재 훼손 우려 때문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영월군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는 대로 최소한의 야간 조명을 할 계획이다. 장릉은 단종이 영원한 안식에 든 곳이다. 2009년 다른 조선 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장릉 뒤의 보덕사는 단종의 명복을 비는 원당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금몽암도 나온다. 단종이 한양에 있을 때 꿈에서 본 곳이라 해서 금몽암이다. 절집이 아닌 조선시대 여염집 같은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다.영월은 사진 관련 박물관이 많고 행사도 잦은 곳이다. 대표적인 행사가 동강국제사진제로,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국제공모전 등의 행사가 동강사진박물관 등에서 29일까지 펼쳐진다. 보도사진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보도사진가전’도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열린다. ‘꿈의 세상, 하늘과 바다’를 주제로 장남원, 김연수, 김진수, 박수현 등 전·현직 보도사진가 4인의 작품을 전시한다. 하늘과 땅, 강과 바다 등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담은 사진들이다. 단언컨대 이 전시만 봐도 영월 여행경비의 절반은 뽑는다.●대표 아이콘 별마로 천문대박물관·서부시장·탄광마을… 별마로 천문대는 영월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다. 별(star)과 마루(정상), 로(고요할 로)의 합성어로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이다. 천문대는 별을 보는 곳이지만, 천문대가 깃든 봉래산(해발 800m)은 풍경을 내려다보는 곳이다. 작은 시골마을 영월과 그 너머를 감싸고 있는 장쾌한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영월 여정에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꼭 방문하기를 권한다. 영월 서부시장 앞으로는 요리골목이 이어진다. 벽화거리로 유명했던 곳인데, 업그레이드가 안 돼 다소 쇠락한 모습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서부시장 종합상가 건물에 새로 그려진 벽화다. 영월이 주무대였던 영화 ‘라디오스타’(2006)의 두 주인공 최곤(박중훈 분)과 박민수(안성기 분)를 두 건물 전면에 그렸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불러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최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박민수)라는 두 배우의 명대사가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안겨 준다. 영월은 한때 강원도의 대표적인 탄광마을이었다. 마차리도 그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에 광산이 개발되면서 ‘검은 진주’를 캐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 이름은 갈 마(磨)에 갈 차(磋)를 쓴다. 절차탁마(切磋琢磨)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에서처럼 ‘갈고, 쪼개고, 파는’ 탄광이 들어선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댔던 마을은 석탄산업이 하향길에 접어들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검은 고요만 흐르던 폐광촌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지난 2013년이다. 영월군이 도시재생사업 ‘마차리 폐광촌 프로젝트’를 통해 낡은 풍경들을 걷어내기 시작했고, 프랑스의 한 유명 패션브랜드에서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친 이가 귀향해 힘을 보태면서 이제는 작지만 제법 문화의 태가 나는 마을로 변모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강원도탄광문화촌이 조성돼 있다. 1960년대 탄광 마을의 생활상들을 엿볼 수 있다. 글 사진 영월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영월의 면적은 서울의 두배 정도다. 차량 정체는 없지만 명소를 찾아 이동하는 데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된다. 방문 코스를 잘 짜야 효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 와이파크(644-9411)는 오전 10시~오후 6시 운영된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입장료는 1만 5000원이다. 별마로 천문대(372-8445)를 오르는 산길은 외길이다. 곳곳에 차량 교행 장소를 마련해 두긴 했지만 폭이 좁아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영월 읍내 청록다방은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지로 뜬 곳이다. 그저 다방 커피를 파는 곳이지만 쉬어가는 기분은 꽤 색다르다. →맛집:덕포리 성호식당은 다슬기 해장국으로 유명한 곳. 다슬기를 잔뜩 넣고 쓱쓱 비벼먹는 비빔밥도 좋다. 읍내 서부시장엔 올챙이국수, 메밀전병, 닭발과 닭강정 등을 맛볼 수 있는 집들이 많다.
  • 세 옛 절의 향기는 여전… 정릉시대 구가하던 문예촌은 흔적만

    세 옛 절의 향기는 여전… 정릉시대 구가하던 문예촌은 흔적만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1차 정릉천 따라’ 편이 추석 다음날인 지난 14일 성북구 정릉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추석 연휴 주말을 북한산의 맑은 계곡물이 쏟아지는 정릉천에서 보냈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북한산보국문역에 집결, 경국사에 들어가 고찰의 향기를 즐겼다. 주말이라 문을 열지 않는 명원민속관(한규설 가옥)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정릉천변은 1950~1970년대 쟁쟁한 문인·예술가들이 ‘정릉시대’를 구가하며 살던 ‘문예촌’이었다. 화가 이중섭·박고석·한묵·박세원·김병기, 소설가 박경리·박화성·박연희·박계주·최정희·계용묵, 시인 고은·조영암·신경림, 조각가 최만린, 작곡가 금수현·김대현, 극작가 차범석, 시사만화가 김성환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명절증후군에 시달린 주부 참가자들에게 피로를 씻어 주는 해설을 들려주기 위해 애썼다.정릉 박경리 가옥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는 ‘박경리 가옥’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고, 담벼락에 그려진 해바라기 그림과 책 표지가 길손을 안내한다. 그러나 ‘보국문로 29가길 11’이라는 도로명주소판이 붙은 집엔 서글프게도 ‘박경리’ 문패가 아니라 ‘서울 정릉 발도르프학교’라는 낯선 대안학교 간판이 걸려 있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지만 서울시가 예산 부족으로 매입하지 못한 까닭이다. 참가자들은 안타까움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문 앞을 자꾸 서성거렸다. 정비석의 ‘자유부인’ 속 댄스장이자 고급 요정이었고, 한때 신혼여행지였던 옛 청수장을 개조해 사용하는 북한산탐방안내소에 들어가 과거의 영화를 떠올렸다. 북한산 정릉골은 1971년 북악터널이 개통된 뒤 2007년 내부순환도로 국민대입구 램프가 추가 개통되기 전까지도 백악산~보현봉 자락이 장벽처럼 막아서서 개발의 손길을 거부하는 청정의 숲이었다. 청수장으로 대표되는 정릉유원지는 추억과 안식의 공간이었다. 정릉천을 따라 청수장으로 가노라면 경국사가 나타난다. ‘경국사적기’에 따르면 1325년(고려 충숙왕 12년)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 청봉 아래에 있다고 해서 청암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정릉의 옛 지명이 ‘살을 에듯 추운’ 사을한리이고, 정릉천이 청수라고 불리고, 청수장이 정릉유원지의 랜드마크가 된 배경에는 모두 청봉이라는 자연 지명의 힘이 작용했다. 청암사는 1546년(명종 1년) 문정왕후가 사찰을 중창하면서 ‘부처님의 가호로 국가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경국사라고 개명했다. 1669년(현종 10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을 복원하면서 흥천사, 봉국사와 함께 능을 수호하는 원찰로 지정돼 부흥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정릉이라는 능이 사라졌다가 260년 만에 부활한 것처럼 능을 지키는 3개 원찰의 이름이 모두 바뀌는 변고를 겪었다. 봉국사는 본래 약사여래를 모시는 약사사였지만 현종 때 ‘나라를 받든다’는 봉국사로 개명해 명맥을 이었다. 또 1409년 정릉이 정동을 떠나 정릉동으로 이장됐을 때 신흥암이라는 암자를 신흥사로 개창, 원찰로 삼았는데 1865년 흥선대원군이 흥천사라는 휘호를 내리면서 이름을 바꿨다.조계종 본산 흥천사는 신덕왕후가 처음 묻혔던 지금의 중구 정동 영국대사관 자리에 있던 170여칸 규모의 대가람이었다. 태조가 죽은 지 9년 만에 능이 지금의 정릉동으로 이장되고, 1510년 유생들이 이단을 없애 버린다며 불을 질러 폐사의 비운을 맞았다. 흥천사 종은 덕수궁에 남아 있다. 태종 이방원은 종묘에 신주를 모실 때 친어머니 신의왕후 한씨만 모시고, 계모 신덕왕후는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이방원의 앙갚음에 정릉동 정릉은 황폐화했다. 172년이 흐른 1581년(선조 14년) 신덕왕후의 후손인 강순일이 군역을 면제받고자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조정에서 정릉의 위치를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겨우 찾았다. 1669년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종묘에 배향되고, 능의 위상을 되찾았다. 정릉을 개수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 소낙비가 내려 정릉골을 흠뻑 적셨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비를 신덕왕후의 원한을 씻어 준 ‘세원우’라고 반가워했다. 조선의 사실상 첫 왕후인 신덕왕후를 모신 정릉 흥천사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비인 순종 비 순정효황후 윤씨가 한국전쟁 때 거주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흥천사는 조선 첫 왕비와 마지막 왕비가 동시에 깃든 기구한 운명의 장소다. 정릉의 터줏대감은 서양화가 박고석이었다. 1955년 정릉에 자리잡은 박고석을 따라 부산 피난 시절 삼총사를 이뤘던 이중섭, 한묵이 가세했고, 청수장 물줄기를 따라 김병기, 김대현, 최정희, 박경리, 금수현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가 집을 지으면서 형성됐다. 이중섭이 죽자 유골은 삼등분됐는데 일부는 일본의 부인(이남덕)에게 보내고, 또 일부는 시인 구상에 의해 망우리 묘지로 갔다. 나머지는 박고석이 보관하다가 정릉에 뿌려졌다. 북한산행의 기점 청수장은 1910년대에 세워져 일본인 별장으로 이용되다가 1945년 해방 뒤 민간인이 인수해 사용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엔 특수부대 훈련 숙소로 사용됐다. 그 후 고급 요정 ‘청수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정비석 소설 ‘자유부인’의 댄스홀로 등장한다. 1974년 이후 제법 기품 있는 음식점, 여관으로 운영되다가 1983년 4월 2일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여기에 편입됐다. 개축 공사를 거쳐 2001년부터 북한산탐방안내소로 바뀌었다. 유럽풍 카페를 연상케 하던 청수장 본관만 남겨 두고 등산로와 맞닿아 있던 담과 부속 건물은 허물어 아담한 정원으로 꾸몄다.1950년대 후반 돈암동 셋방에 살던 박경리(1926~2008)는 1965년부터 2002년까지 정릉동 골짜기 집에 머물렀다. 이 집에서 1969년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대장정을 담은 장편 대하소설 ‘토지’ 집필을 시작했다. 1980년 사위 김지하의 옥바라지를 위해 강원 원주로 이사할 때까지 삶의 터전이었다. 이웃사촌 박고석이 삽화를 그린 ‘노을진 들녘’은 1961년 10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총 250여회를 이어 나갔다.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출간한 뒤 대표작 토지 1부 집필에 들어갔다. 정릉은 그의 대표작들이 잉태되고, 외동딸 김영주의 연애와 결혼이 이뤄진 행복한 장소였지만 고통도 담긴 곳이다. 피신해 있던 사위가 체포된 정릉 집은 차라리 유배지였다.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선생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사위는 서대문 형무소에 있었고/우리 식구는 기피 인물로/유배지 같은 정릉에서 살았다/천지간에 의지할 곳이 없이 살았다/수수께끼는/우리가 좌익과 우익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그리고 인간이 얼마만큼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뼈가 으스러지게/눈앞에서 보아야 했던 세월/태평양 전쟁 육이오를 겪었지만/그런 세상은 처음이었다/악은 강렬했고 천하무적이었다/아 참, 그 얘기는/저승에나 가서 풀어놔야지/그 끔찍한 사실들을/측천무후인들 믿을 것인가”라고 절규했다. 정릉시대의 쓰라린 편린이다. 선생의 무덤에는 비석이 없다. ‘이 나라에 이런 사람들이’(기파랑, 2017년 간)에 실린 김형국의 ‘박경리, 포한이 원력이던 소설문학’에 따르면 “이전에 무덤 앞 상석에 당신 필체로 ‘박경리’라고 성명 석 자만 달랑 새겼다던데 나중에 다시 가족이 당신 이름도 빼고 그냥 민짜 상석을 놓아 달라 했단다. 고사로 치면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는 백비(白碑)를 말함이었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고 썼다. 실제 통영 박경리기념관 선생의 묘소에는 상석 하나만 달랑 놓여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2차 서울의 문학3(윤극영의 반달) ■일시 및 집결장소 : 9월 21일(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 2번 출구 구내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흥미진진 견문기] 고려 때부터 시작된 동네 역사… 곳곳서 느껴지는 예술혼 숨결

    [흥미진진 견문기] 고려 때부터 시작된 동네 역사… 곳곳서 느껴지는 예술혼 숨결

    추석 연휴인 토요일, 시원한 물줄기와 푸른 북한산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정릉천 문학과 예술의 여정을 시작했다. 정릉에 사는 사람들은 정릉동이라는 명칭 대신 ‘정릉 산다’, ‘정릉 살아요’라는 말로 자부심과 상징적 의미를 드러낸다는 해설을 들으며 고려시대부터 역사를 함께해 온 경국사로 향했다. 정릉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정릉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삼각산경국사’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장마가 살짝 가셔서 그랬을까, 안개가 자욱이 앉은 경국사의 모습은 시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고즈넉했다. 은은한 목탁 소리와 함께 일행은 목각탱화를 간직한 대웅전과 목각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성전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정릉천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초가을 날씨가 무색하게 살짝 더위가 느껴질 때쯤 정릉은 역사적 공간만이 아닌 음악, 미술, 문학에 이르기까지 예술혼이 깃든 장소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박경리, 최만린, 이중섭, 김대현 등 문화예술인들이 정릉에 자리잡고 주변의 다른 이웃 문화예술인들과 교류를 했다 하니 그들이 산책하면서 얻었을 영감에 정릉천이 새삼스레 멋있게 느껴졌다. 소설가 박경리의 집터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대안학교로 쓰이고 있지만, ‘토지’를 집필한 이곳에서 하나밖에 없는 사위인 시인 김지하가 옥살이했을 때 지었던 시 한 편을 듣고 나니 작가의 한이 느껴졌다. 정릉천의 막바지를 따라가니 이번에는 정릉 촬영장과 영화배우 김지미의 옛집이 근처에 있음을 알게 됐다. 한국영화에 한 획을 그었던,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그녀의 이야기에 다시 열기를 되찾고 마지막 코스인 옛 청수장 자리로 향했다. 1950~1960년대 신혼여행지였다는 청수장이 지금은 북한산국립공원탐방안내소로 바뀌어 있었다. 가수 조동진이 청수장에서 고은 시인을 만나 ‘작은 배’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정릉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화예술적으로 버릴 곳이 하나도 없는 곳이라고 느끼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김미선 책마루연구회 연구원
  • 느릿느릿 돌담 걸음걸음 햇발

    느릿느릿 돌담 걸음걸음 햇발

    오는 12~29일 가을 여행주간이 진행된다. 2014년 첫 시행 이후 해마다 연휴와 단풍철이 맞물린 10월 초에 진행됐던 것과 달리, 올해는 가을 여행 성수기를 살짝 비킨 시기에 열린다. 국외 여행에 쏠린 국민들의 관심을 국내 관광으로 돌리고, 특정 시기에 집중된 국내 관광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한 정부의 선택이다. 올가을 여행주간의 추천 여행 테마는 ‘마을’이다. 삶의 터전인 마을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과 만나고, 마을마다 다른 역사의 향기를 음미해 보자는 권유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20개 마을 가운데 전남 담양의 삼지내 마을을 다녀왔다. 세 개의 다른 물줄기가 수백년을 이어온 돌담길 사이로 흐르는 아름다운 마을이다.삼지내 마을에 들면 시간이 더디 흐른다. 느낌이 그렇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살아가는 ‘슬로 시티’라 그럴까. 잰걸음으로 걷는 이도 없고, 서두르라 재촉하는 이도 없다. 눈으로 부지런 떨 일도 없다. 오래된 돌담에 기대 앉아 하늘을 보면 옛 시인의 말처럼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 쏟아지는 듯하다.삼지내 마을은 국제슬로시티에서 인정한 ‘슬로 시티’다. 2007년 전남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 등과 함께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삼지내 마을을 대표하는 볼거리는 돌담(등록문화재 265호)이다. 수백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바람에 허물어질 때마다 수없이 고쳐 쌓으며 돌담을 지켜왔다. 그렇게 쌓고 지켜온 돌담이 3.6㎞에 이른다.담장은 대부분 돌과 흙으로 지어올린 토석담이다. 돌담 아래로는 냇물이 흐른다. 운암천과 월봉천, 유천 등 세 냇물이 마을을 휘감아 돈다고 해서 마을 이름도 삼지내다. 세 냇물은 마을 아래에서 하나로 합쳐진 뒤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돌담과 냇물이 어우러진 마을 안길은 직선이 거의 없다. 담도 굽고, 길도 굽고, 물도 굽어 완만한 S자형을 이룬다. 당연히 발걸음도 느려져야 한다. 그래야 마을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삼지내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의 후손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고재선 가옥 등 고씨 성을 가진 옛집들이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옛집의 대문은 대부문 골목이 꺾여 들어간 곳에 있다. 나쁜 기운은 막고, 좋은 기운은 가둬두겠다는 바람이 담긴 건축 형태다. 곡선으로 굽이치는 돌담길을 따라가다 만나는 고택은 기품 있고 그윽하다. 다만 예산 탓인지, 그중 몇몇은 정비가 덜 돼 쇠락한 느낌이 드는 게 다소 아쉽다. 구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로 사용됐던 고정주 고택은 남도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ㄷ자 모양의 집이다. 문간채, 사랑채, 안채, 곳간 등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반가로, 솟을대문의 위용이 당당하다. 중문에서 안채로 들 때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게 ㄱ자로 설계했다는 고재선 고택, ㅁ자형의 고재환 고택 등도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집들이다. 논바닥 한가운데 우뚝 선 남극루는 제비처럼 날렵하다. 옛 창평 관아의 문루를 옮겨 지은 2층짜리 누각이다. 촌로들이 한여름 더위를 피해 정담을 나누고, 편히 지내라는 뜻을 담아 지었다. 정자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잡히고, 해거름 풍경이 유독 서정적이다. 삼지내 마을 사람들은 전통음식과 옛 생활방식을 여태 잇고 있다. 대나무로 만든 죽염 장류와 너른 창평 들녘에서 자란 쌀로 만든 창평쌀엿, 창평한과 등이 유명하다. 모두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들어 그야말로 ‘고급진’ 단맛이 일품이다. 창평현청 맞은편의 ‘달팽이 가게’에서 맛볼 수 있다.삼지내 마을 인근의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은 이 계절에 반드시 찾아야 할 명소다. 연분홍 배롱나무꽃이 그야말로 절정이다. 담양의 아이콘 대나무숲이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못 가더라도 명옥헌은 꼭 가야 한다. 명옥헌은 인조반정의 주역 오희도(1583~1623)의 넷째 아들 오이정(1619∼1655)이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정자다. 건물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고 가꿨다. 현재 남은 배롱나무는 모두 40여 그루다. 배롱나무꽃은 7~9월 사이 한 가지에서 피고 지기를 세 번 거듭한다. 꽃은 지고 난 뒤에도 진한 흔적을 남긴다. 동백처럼 꽃이 송이째 뚝뚝 떨어져 주변을 붉게 물들인다. 영남을 대표하는 정자의 메카가 경남 함양이라면, 담양은 호남 정자 문화의 보고라 불린다. 그중 소쇄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조선 중종 때 양산보가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세상을 뜨자 자연에 숨어 살겠다며 꾸민 곳이다. 초록빛 대숲이 둘러친 계곡 안쪽에 광풍각이 있고, 그 뒤로 제월당이 내려다보고 있다. 소쇄원과 이웃한 식영정도 아름드리 노송과 배롱나무, 연못 위 정자 부용당 등이 어우러져 그림과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대덕면의 모현관은 조선시대 문신 유희춘의 미암일기(보물 제206호) 등 고문서를 보관하기 위해 1959년 지어진 건물이다. 연지 가운데 선 석조건물의 형태가 독특하다. 현판에 적힌 당호는 의재 허백련이 쓴 것이다. 담양읍 쪽엔 대숲으로 유명한 죽녹원, 메타세쿼이아 숲길 등의 볼거리가 있다.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도 필수 방문 코스다. 200여년 전 관방천을 따라 조성된 숲이다. 팽나무, 푸조나무 등의 노거수들이 2㎞가량 운치 있게 이어진다. 글 사진 담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1) →가는 길: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고속도로 나들목을 달리해야 편하다. 삼지내 마을, 명옥헌, 소쇄원 등은 호남고속도로 창평나들목을, 관방제림이나 메타세쿼이아 숲길 등을 먼저 보려면 88고속도로 담양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낫다. 패러글라이딩 체험도 재밌다. 삼지내 마을 건너 유천마을에 활공장이 있다. 월봉 등의 산과 삼지내 마을을 굽어보며 비행할 수 있다. 일몰 즈음에 비행하길 권한다. 10여분 비행에 10만원 정도 받는다. 슬로시티 방문자센터 383-3807. →맛집:약초밥상(383-6312)은 주인장이 직접 채취한 푸성귀들로 만든 장아찌를 맛볼 수 있다. 밥값은 1만원. 저렴한 대신 밥 먹은 이가 설거지를 해야 한다. 혼자서도 먹을 수 있다. ‘돌담’은 한옥 카페다. 고택의 너른 정원에서 쉬어 가는 맛이 각별하다. 삼지내 마을 초입 전통시장 주변에 돼지고기 국밥집이 몰려 있다. 창평시장국밥(383-4424)이 그중 유명하다. 관방제림 아래에 국수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옛 담양장이 활기를 띠던 시절, 장터를 찾은 이들에게 싼값에 국수를 말아 주던 집들이다. 국수, 약계란 등을 맛볼 수 있다. →잘 곳:삼지내 마을 곳곳에 ‘한옥에서’, ‘매화나무집’ 등의 한옥 민박이 있다.
  • 젖지 않는 폭우… 걷다 보니 젖어든 사색

    젖지 않는 폭우… 걷다 보니 젖어든 사색

    미술관 1층 오른쪽 전시장에 들어서면 성인 2명이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좁고 어두운 또 하나의 입구가 맞이한다. 한 발씩 걸음을 옮길수록 멀리서 장대비 퍼붓는 소리가 눅눅한 습기를 머금고 다가온다. 이내 눈앞에 어둠 속 굵고 힘찬 빗줄기가 펼쳐진다. 100㎡(약 30평) 크기의 공간에는 마주 보는 벽면 위에서 어둠을 밝히는 불빛과 그 공간을 뒤덮는 빗줄기, 그리고 공간의 분위기에 압도된 관객만이 존재한다. 맹렬히 퍼붓는 물줄기의 기세에 머뭇거리기도 잠시. 조심스레 빗속으로 몸을 옮겨 본다. 분명 눈앞에 굵은 빗방울이 연방 쏟아지고, 물 튀기는 소리도 귓가를 때리지만 몸은 젖지 않는다. 어둠 속 비 오는 공간을 우산 없이 걷노라면 잠시 세상과 단절된 느낌과 함께 소설 속, 혹은 영화 속 주인공인 된 기분을 만끽할 수도 있다. 부산 남서쪽 끝자락, 영남권 곳곳을 돌고 돈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는 지점에 만들어진 섬 을숙도. 지난해 6월 이곳에 문을 연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설치 전시 ‘레인룸’(Rain Room) 현장이다. 지난달 15일 ‘레인 룸’이 포함된 전시 ‘아웃 오브 컨트롤’(Out of Control·통제불능)이 개막한 이후 미술관은 밀려드는 관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개막 이후 전회차 매진 행진 중이다.독일 출신 플로리안 오트크라스와 한네스 코흐가 결성한 작가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은 2012년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설치 작품 ‘레인룸’을 처음 공개했다. 작품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관객에게 선사하며 세계 주요 미술관의 러브콜을 받아 왔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 상하이 유즈뮤지엄, 아랍에미리트 샤자예술재단 등 ‘레인룸’이 설치된 곳은 ‘젖지 않는 폭우’를 경험하기 위한 관객들로 가득 찼다. 지난달 중순 한국 첫 전시를 위해 부산을 찾은 오트크라스는 전시 설명에 앞서 까다로운 설치 전시회를 완벽히 준비한 부산현대미술관 측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레인룸은 우리에게도 특별한 작품으로, 작품 자체의 복잡도가 굉장히 높다”면서 “전시 기관 역시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작가가 언급한 ‘용기’는 매우 복잡하고 예민한 ‘레인룸’의 작동 방식을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이자 도전이다. 작품은 한 시간에 2000~3000ℓ의 물을 쏟아낸다. 이런 폭우 한가운데에 서도 젖지 않는 비결의 시작은 벽면에 설치된 3D카메라다. 각 벽면에 4대씩 설치한 카메라는 사람 움직임을 감지해 통제실로 정보를 전송하고, 통제실 컴퓨터는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천장에 있는 1582개 물구멍(노즐)을 열고 닫는다. 관람할 때 동작 감지 정보 전달과 물방울이 떨어지는 시간을 감안해 사색하듯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마음 놓고 발걸음을 재촉했다간 내리는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게 된다. 또 관객이 촘촘하게 몰려다니면 컴퓨터의 인식 착오로 비를 맞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미술관 측은 ‘레인룸’ 체험을 10분에 12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오트크라스는 “레인룸을 걷는 사람은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멈추는 비를 보고 스스로 ‘주변 환경을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사실 그 공간 안에서 관객의 움직임은 비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라고 작품의 의도를 꺼냈다. “아주 천천히 걷지 않으면 몽땅 젖는다. 마치 에어컨처럼 편리하고 인위적인 환경에 의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간이 스스로 소유하고 싶어 하는 ‘통제’ 욕구를 표현한 것이 레인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관객에게 작품의 메시지를 강요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가 바라는 ‘레인룸’은 관객이 선입견 없이 경험하고, 그 속에서 저마다 다양한 사유를 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이며, 온라인 예매를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다. 부산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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