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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준 시간여행] 원두막이 있던 풍경

    [이호준 시간여행] 원두막이 있던 풍경

    사탕 굴리듯 입안에서 살짝 굴린 뒤 소리 내어 발음하면 그 말이 지닌 본질을 실감나게 전해 주는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달콤하지만 아릿한 맛을 품고 있고, ‘숲’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면 왠지 쾌적한 느낌이 든다. ‘원두막’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그리움 덩어리다. 시골에서 자란 50대 이상의 남성들을 순식간에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묘약이기도 하다. 요즘이야 계절을 가리는 것이 무색해졌지만, 더워질수록 수박이나 참외를 많이 먹게 된다. 엊그제는 수박을 앞에 두고 괜스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젠 사라지고 없는 원두막이라는 단어가 느닷없이 입안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수박·참외는 지천으로 흔해졌는데 원두막은 보기 어려워졌다. 주로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노지(露地) 재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텃밭 농사 수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원두막을 지을 일도 없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원두막은 농촌 풍경의 랜드마크 같은 역할을 했다. 원두막은 작물의 ‘서리’를 막기 위해 밭 가장자리에 만들어 놓은 망루를 말한다. 서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떼를 지어 남의 과일·곡식·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원두막은 참외·오이·수박·호박 따위를 뜻하는 원두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굵은 기둥 네 개를 세우고 서까래를 얹은 뒤 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덮었다. 지붕 밑으로는 통나무로 틀을 짜고 판자 같은 것을 깔아 누대를 만들었다. 원두막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동네 악동들 때문이었다. 서리야말로 농촌 아이들에게 가장 스릴 있는 놀이였다. 수박과 참외가 익어 갈 무렵이면 아이들은 둘러앉아 서리를 모의하고는 했다. 그 자리에는 꼭 대장 역할을 하는 아이가 있어서 작전 계획을 짜고 역할 분담을 했다. 발 빠른 아이들은 밭에 들어가 참외나 수박을 따오는 돌격조를 맡고 어리거나 굼뜬 아이들은 망보는 역할을 맡았다. 밭 주인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도 서리가 실패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악동들의 침입을 눈치채고 소리를 지르고 쫓아가 보지만 다람쥐처럼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아이들을 무슨 재주로 잡을까. 눈 뜨고 당하는 게 당연했다. 원두막이 서리 때문에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각박함을 상징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밭 주인은 동네 아이들이 참외 몇 개 따가는 것쯤은 모른 척 눈감아 주고는 했다. 자신 역시 어릴 적에 남의 밭을 들락거리지 않았던가. 아이들 역시 재미 삼아 서리를 할 뿐 참외나 수박 농사를 망칠 만큼 따가는 일은 없었다. ‘수박에 말뚝 박는다’는 말도 있었지만, 주인이 마을에서 공인된 악질일 때나 당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친척이고 이웃인 시골 동네에서 그런 짓은 용납되지 않았다. 원두막이 꼭 감시초소 역할만 하는 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들에서 일을 하다 모여 앉아 막걸리 한잔을 나누기도 했고, 소나기가 쏟아지면 잠시 피하는 곳이기도 했다. 길손들이 땀을 들이며 쉬어 가는 곳도 원두막이었다. 그런 원두막이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서리라는 단어도 시나브로 지워졌다. 하긴 요즘의 각박한 세태로 보면 서리도 도둑질이다. 괜히 오이 하나라도 욕심을 부리면 경찰서 신세를 지기 십상이다. 무엇보다도 농촌에는 어둠을 헤치며 참외나 수박 밭으로 기어들 만한 아이들이 없다. 그러니 누구로부터 무엇을 지키려고 원두막을 지을까. 나이 지긋한 이들이 추억 창고나 뒤적거리며 그리워할 뿐.
  • [핵잼 사이언스] 기후변화에도 오히려 개체수 증가하는 오징어의 비밀

    [핵잼 사이언스] 기후변화에도 오히려 개체수 증가하는 오징어의 비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 시대 이전 280ppm 정도였던 것이 이제는 400ppm도 넘어섰다. 이로 인해 지구 평균 기온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해양 생태계의 경우 단순히 기후 변화만이 아니라 물속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에 따른 해양 산성화 문제로 더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에 인간에 의한 남획과 미세 플라스틱이나 중금속 같은 해양 오염 문제, 수온 상승으로 인한 산소 농도 감소 등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는 이슈는 하나둘이 아니다. 이미 많은 물고기와 해양 생물의 개체 수가 감소하거나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생물도 있다. 해파리의 경우 물고기 남획으로 인해 천적이 감소하고 수온이 상승하면서 개체 수가 증가했다. 동시에 몇몇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어종 대신 오징어 같은 두족류가 갑자기 증가했는데, 이는 천적의 남획으로 인해 생존율이 증가한 것은 물론 두족류가 다른 생물종보다 환경 변화에 훨씬 잘 적응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호주 제임스 쿡 대학 연구팀은 호주 앞바다에 서식하는 오징어 두 종(two-toned pygmy squid, bigfin reef squid)을 대상으로 이들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테스트했다. 연구팀은 오징어를 물이 계속해서 흐르는 특수 수조에 넣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21세기 말 예측되는 수준까지 높였다. 그러나 오징어들은 호흡이나 움직임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징어가 다른 해양 생물보다 상대적으로 환경 변화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징어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오징어 어업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에서 오징어의 개체 수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오징어 역시 남획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나라 근해에서는 중국 어선의 조업 등으로 인해 살 오징어 어획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아무리 환경 변화에 강한 종이라도 인간의 남획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적절한 규제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 “재판거래 의혹은 비약…물의야기 법관은 관행“ 양승태의 해명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 “재판거래 의혹은 비약…물의야기 법관은 관행“ 양승태의 해명

    피고인으로 법정에 들어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꼿꼿하다. 빳빳한 흰색 와이셔츠의 깃이 그의 목을 가려 더욱 고개가 꼿꼿해 보인다. 혼자 구속 피고인 대기실에서 나와 미리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옆에 앉는다. 아주 가끔씩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세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주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괴는 모습을 보인다. 세 사람 중 가운데 앉은 박 전 대법관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앞에 놓여진 서류들을 살펴본다. 고 전 대법관은 특유의 엷은 미소 띤 얼굴이다. 미세하게나마 다른 자세와 표정들이 다른 세 사람은 한 자리에 모여 재판을 받고 있지만 사건에 관여한 정도나 역할, 입장이 모두 다르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세 사람의 5회 공판에서는 지난 재판에 이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의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일부가 공개됐다. 지난 재판에서는 검찰이 피의자신문조서 가운데 혐의와 관련된 핵심 부분들을 설명하며 증거조사를 했고, 이날 재판은 변호인들이 검찰의 증거조사에 대한 의견을 반박하거나 피의자신문조서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인 변은석 변호사가 먼저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검찰 증거는 외교부에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공관에서 회의를 갖고 있다는 점과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을 연결시켜 묻고 있는데 피고인(양 전 대법원장)의 답변은 ‘이건 지나친 비약’이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해외 공관에 법관들을 파견시키기 위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재상고심을 이른바 ‘거래‘라고 지적했다.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는 ‘BH(청와대) 협조요청사항. 재외공관 법관 파견에 적극 협조, 외교부의 긍정적·전향적 태도 유도’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2010년 중단된 해외공관 법관 파견은 2013년 주 유엔 대표부와 네덜란드 대사관 등에서 재개됐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해외공관 파견하는 걸 어떻게 재판으로 연결시키겠느냐. 법관의 자질이나 인격을 모욕하는 것이다. 안 보냈으면 안 보냈지 어떻게 재판을 가지고…(그런 거래를 하느냐)”라며 혐의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양승태 “법관 해외공관 파견 안 보내면 안 보냈지 어떻게 재판을” 앞서 지난 4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도 임 전 차장은 검찰 쪽 서류증거 의견을 반박하며 관련 혐의에 대해 “저와 외교부 관계자 모두 강제동원 사건과 법관 재외공관 파견 문제를 대가관계로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두 가지를 연계해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외교부 인사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주장은) 남녀 간에 썸만 타고 있는데 확대해석해서 불륜관계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발끈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4회 공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양 전 대법원장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전 차장이 청와대와 외교부 관계자들과 접촉한 것은 그가 ‘유능한 사람’이어서, 알아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관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 조치에 대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거듭 부인하는 입장을 반복했다. 2015년 9월 지금은 헌법재판관이 된 김기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대법원 판례와 달리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자 징계가 검토됐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짧게 축약을 하니 전체 뜻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내 취지는 당시 이런 사안에 관한 여러 하급심 판결이 엇갈려 혼선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쪽으로 통일하는 대법원 선고가 되고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급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 취지에 반하는 선고를 한다면 혼선은 여전히 계속되어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고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기능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대법원의 일방적 기능은 법적 안정성을 위한 통일 등 기능적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지 간섭한 것은 전혀 아니다. ”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박했다. “물의야기 법관 인사 방침은 제가 취임하기 전부터 내려오던 관행이었다. 처음에는 저는 물의야기 법관이라고 해서 인사심의관이 인사안을 만들어온 것을 보고 ‘인사는 일방적으로 행정처에서 다 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것은 나보고 다 하라는 것인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공판에서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해 강조한 양 전 대법원장의 답변은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방안에 대해) 설명을 듣고 결재는 내가 한 게 맞다”면서도 “결재를 했다고 해서 (내용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물의야기 법관은 취임 전부터 내려오던 관행” 변호인은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에 대한 양 전 대법원장의 설명을 덧붙였다. “인사안에 대해서는 제가 거의 다 행정처에서 올린 의견대로 결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은 이런 문서가 있으니까 전부 대법원장이 결정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런 내용은 행정처에서 제가 이렇게 만들어오라고 지시하거나 행정처가 만들어온 안에 제가 고치라고 지시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인사안에 대해 대법원장이 실질적으로 강행하거나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다. 제가 관여한 게 거의 없다”, “어떤 사람을 이 자리에 배치하느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대법원장이 하나 하나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처에서 만들어 오는 것이지 어떤 사람을 특정해서 한 적이 없다.”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사건의 재상고심과 관련, 일본 전범기업의 소송 대리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호 변호사에 대해서도 다른 언급이 공개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한 변호사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서도 한 변호사가 이 사건의 소송대리를 맡은 것은 몰랐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2016년 말쯤에는 사건 대리를 한다는 걸 알았겠지만 그 전에는 언제 알았는지 기억할 수 없다. 처음에는 몰랐다고 진술한 것은 사건 접수 후 상당 기간 동안은 몰랐고 적어도 2016년 말쯤 전원합의체 들어갔을 때는 알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바꿨다. 다만 한 변호사와 사건과 관련된 협의를 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부인했다. “그러면 한 변호사는 전원합의체로 회부하는 데 대법원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닌지 저는 되묻고 싶다. 전원합의체 회부는 대법원장 권한이 전혀 아니다” 변호인은 이게 양 전 대법원장의 일관된 주장이라며 만약 전원합의체 회부가 대법원장의 권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대법원의 사건 처리 방향을 모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어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이 차례로 검찰 측 증거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오전 재판이 더딘 속도를 이어갔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의견서를 토대로 검찰에 석명을 요구했다. 변호인은 검찰의 기준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 넘겨진 범행의 수가 129개라며 이게 맞는지 검찰에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변호인들 “휴정기엔 재판 하지 말아달라…재판부도 쉬셔야” 박 전 대법관은 증인신문 일정에 대한 재판부의 검토를 요청했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휴정기에도 재판을 할지 검찰과 변호인들에 의견을 물었다. 법원은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 2주간 휴정기를 갖는다. 이 기간 동안 재판은 진행하지 않지만 일부 시급한 사건이나 중요한 경우 재판이 열리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은 휴정기에도 재판을 이어갔다. 검찰은 “저희가 알고 있는 전례로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하계 휴정기에도 공판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공판이 많이 늦어졌다는 생각을 저희는 누누이 말씀드렸고 휴정기에 만약 재판을 진행하기 어렵다면 그 전에라도 보충해서 재판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며 재판을 쉬지 않고 열어 달라고 호소했다. 오는 8월 10일이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간이 끝나는 만큼 검찰은 재판이 늦어지는 데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 변호인들은 휴정기에 재판을 하지 말아달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속된 피고인이 있는 경우에 구속기간을 어느 정도 존중해서 재판을 하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감안이 되는 게 맞지만, 구속 기간 안에 기일 진행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사건이 끝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시 일반 원칙으로 돌아가 휴정기 지침에 따른 기일 지정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 “여름에 하계 휴정기를 갖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의 오래된 관습법에 해당한다. 재판부도 쉬셔야 되고 증인도 쉬어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재판하는 게 고군분투, 악전고투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다가 좀 기간을 주시면 저희가 정리할 시간도 가질 수 있다”(박 전 대법관 변호인), “증인신문에 들어간 뒤에는 3~4주 일정을 소화한 뒤 한 주 쉴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재판부도 좀 쉬시고 정리하실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전 대법관 변호인) 매주 두 차례씩 온종일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부에 대한 걱정도 새삼스레 잇따랐다. 그러나 정작 이날 재판은 오후 9시 23분이 돼서야 끝이 났다. 임 전 차장의 이동식 저장장치(USB)에서 확보된 각종 파일들과 검찰이 증거로 낸 출력물이 같은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박 전 대법관 변호인 측 요구에 따라서다. 오후 2시 20분부터 시작된 검증기일이 7시간 이어져 1142건의 파일을 일일이 열어 임 전 차장의 USB 속 파일과 검찰의 출력물과 내용과 형식이 같은지 확인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빠르게 성장하는 아프리카… ‘물심양면’ 공 들이는 中, 견제하는 美

    빠르게 성장하는 아프리카… ‘물심양면’ 공 들이는 中, 견제하는 美

    2018년 12월 14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워싱턴DC에서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중국의 아프리카 정책에 대해 “뇌물, 불투명한 합의,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의 바람과 요구에 사로잡히도록 부채도 전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볼턴 보좌관은 “중국의 투자사업은 부패로 가득 차 있고 미국의 개발 프로그램처럼 환경이나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며 “이러한 약탈 행위는 ‘일대일로’를 포함한 중국의 광범위한 전략구상의 하나”라고 비판했다. 미중 무역분쟁의 와중에 왜 머나먼 아프리카를 놓고 중국과 미국은 대립하고 있는 것일까. 이 대립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아프리카 대륙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아프리카 대륙의 면적은 3020만㎢로 미국, 중국, 인도, 일본,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및 동유럽을 다 합한 것만큼 크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지도를 만드는 메르카토르 도법 특성상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그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에 미국, 러시아 및 유럽 대부분은 실제보다 크게 보이고, 적도에 걸쳐져 있는 아프리카 대륙은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다. 객관적이라 믿는 지도조차 아프리카 대륙은 왜곡과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림 1> 참조내전과 분쟁으로 희망이 없다는 아프리카 대륙이지만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2001~2010년 앙골라 11%, 나이지리아 8.9%, 심지어 빈곤과 기근의 대명사처럼 간주되던 에티오피아도 8.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8년에 에티오피아는 8.2%의 성장률로 가나(8.3%)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하는 국가로 기록됐다. 아프리카 전체적으로 보면 코트디부아르, 지부티, 세네갈, 탄자니아 등의 나라가 7% 내외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과 아프리카 이러한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중국은 2000년대부터 투자를 대폭 강화했다. 2005년 이후 중국이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투자한 금액은 2970억 달러이다. 금액 자체가 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6년 한 해에만 교통 부문 200억 달러, 에너지 분야 120억 달러를 비롯해 부동산, 각종 기반시설, 광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 <그림 2> 참조실제로 2014년 앙골라 서부 로비투에서 동부 루아오를 연결하는 1344㎞의 철도를 개통하고 2016년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와 지부티를 연결하는 735㎞의 노선을 완공했다. 2017년에는 케냐 몸바사와 수도 나이로비를 연결하는 480㎞의 철도를 개통해 아프리카의 대규모 교통망은 중국 주도로 건설되고 있다. 200만명에 가까운 중국인들이 아프리카에 진출, 1만 개 이상의 기업을 설립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필수적인 원료인 코발트 역시 아프리카 한복판 콩고민주공화국까지 진출한 중국인의 네트워크를 통해 현지에서 수집돼 중국으로 넘어가 정제과정을 거쳐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배터리 생산국가에 공급되고 있다.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는 단순히 금액과 범위가 넓을 뿐만 아니라 집행 방식에서도 다른 국가와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국가나 국제기구가 각종 계약에 의한 예산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은 예산 이외에 자국의 엔지니어와 노동력을 직접 투입해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물을 만들어 낸다. 계약에 의존하는 다른 국가의 원조 및 지원 방식에 비해 직접적인 인력까지 투입하는 중국의 방식은 빠르며 확실하게 사업을 마무리해 아프리카 많은 국가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왜 중국은 아프리카에 이런 투자를 하는 것일까. ●오래된 인연 아프리카와 중국은 오래전부터 인도양을 사이에 두고 교류해 왔다. 14세기 이븐 바투타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출신 학자들의 중국 방문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유명한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는 인도양을 건너 소말리아를 거쳐 남쪽 모잠비크 해협까지 항해를 했다. 아프리카와 중국 모두 양국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1949년 중국 정부 수립 이후 중국은 초기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강화했다. 알제리, 이집트, 기니, 소말리아, 모로코 등의 국가와 양자무역협정을 체결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반제국주의 동맹이라는 명분으로 강한 결속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중국은 1970년대 대만을 밀어내고 유엔상임이사국 지위를 확보할 때 아프리카 국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와 병행해 중국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및 보건의료 등에 있어 대규모 지원을 했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과 잠비아의 가피리음포시를 연결하는 1860㎞의 철도를 건설했으며 1960년 이후 1만 5000명에 이르는 의사를 아프리카에 파견하는 보건외교를 전개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중국은 미국보다 더 많은 지원을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물적 지원과 더불어 중국 고위관료들의 아프리카 방문을 통한 인적네트워크 구축 역시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된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79차례의 아프리카 방문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탄자니아를 대상으로 한 고위관료들의 방문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하더라도 탄자니아, 잠비아, 나미비아, 세네갈 등의 국가에는 중국 고위관계자들이 3차례 이상 방문했다. 이러한 물심양면의 노력으로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에서 중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부정적 이미지를 압도한다고 한다. ●교역과 교류의 확대 아프리카와 중국 간 무역 역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1980년 1억 달러를 기록했던 무역 규모는 2000년 100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18년에는 2401억 달러를 기록해 2017년 대비 19.7% 증가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무역 규모의 확대는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과 같이 중국의 일방적인 흑자가 아닌 비교적 균형 잡힌 수준이다. 2018년 기준으로 중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수출은 1049억 달러이고 아프리카의 중국에 대한 수출은 992억 달러이다. 중국의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56억 달러에 불과하다. 중국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국가의 유학생 역시 급증하고 있다. 2003년 200명 이하에 불과하던 아프리카 학생들의 중국유학은 2015년 5만명 이상으로 급속하게 확장했고 프랑스(9만 2000명)에 비해 2위 규모로 성장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유학생 증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편의를 제공한다. 게다가 중국은 유학생들의 국내 체류를 불허해, 해당 아프리카 국가는 두뇌유출 방지 효과도 얻는다. ●빚의 덫에 걸린 아프리카 유럽과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진출에 대해 부정적이다. 볼턴 보좌관의 이야기대로 뇌물, 모호한 합의서, 부채를 이용한 목줄 죄기 등이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을 바라보는 서구의 전형적인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해 많은 서방국가와 싱크탱크들은 중국을 에너지와 자원에 굶주린 존재로 묘사한다. 또 부패하고 타락한 정부를 이용해 일대일로 사업 등을 통해 대규모 부채를 짊어지도록 한 다음 이를 무기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정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아프리카 전체 국가의 대외부채는 417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20%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분석된다. 지부티의 경우 전체 대외부채 가운데 77%가 대중국 부채이며 콩고민주공화국, 잠비아 등은 중국에 대한 높은 부채비율로 국가부도 위험이 높은 곳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림 3> 참조 중국은 이들 국가에 대해 상환을 독촉하기보다는 적절한 시점에서 부채를 탕감해 주는 방식으로 영향력의 저변을 넓혀 가고 있다.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가 2007~2012년 최대 3차례에 걸쳐 부채를 탕감받았다. 중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상당한 시혜적 혜택을 베풀면서 이들과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길 원하는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아프리카가 바라보는 중국 아프리카 주요 국가의 지도자 및 관료들은 중국의 지원과 투자의 문제점 및 한계에 대해 비교적 잘 인식하고 있다. 최근 완화되기는 했으나 상당 기간 지속됐던 무역불균형과 높은 부채 부담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더불어 중국제 상품의 대량 유입으로 인한 산업 및 상업생태계의 붕괴, 중국의 원조로 건설된 각종 시설물의 조기 노후화 등의 문제점이다. 하지만 많은 아프리카 정부 관료들은 중국에 대해 식민지배의 기억이 없으며, 별다른 조건 없이 아프리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재원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자원에 굶주린 중국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중국의 광업투자 비중은 전체 투자 규모의 3분의1 규모로 서방 국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의 접근과 투자에 대해 긍정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별다른 조건 없는 대출과 더불어 자국 통화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론의 제공이다. 달러를 비롯한 국제결제통화가 항상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둘째, 중국이 제공하는 서비스 및 각종 상품의 신속한 전달이다. 절차와 규정을 중시하는 서방 및 국제기구와 차별되는 이러한 요소는 짧은 시간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고자 하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중요하다. 셋째,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서방과 차별화된 대안적 개발모델로서 아프리카인들에게 인식되고 있다.●한국에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 확대 의미는 북한과 체제 대결을 하던 박정희 정부 시절 아프리카 국가들에 구애했다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으로 소홀해졌던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관심이 최근 한국 정부에서 부활했다. 2018년 5월에는 제53차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연차총회를 부산에서 개최했고 12월 이낙연 총리가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3개국을 순방했다. 이와 더불어 ‘한·아프리카재단법’을 제정하고 한·아프리카재단을 외교부 산하에 설립하면서 아프리카와의 교류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관심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시각에서 아프리카와 중국의 접근을 위협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 및 지원 확대는 강제적인 것이 아닌 유리한 조건의 제시와 더불어 상호지원이라는 기억을 공유하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서방과 우리를 동일시하기보다는 객관적 관점에서 아프리카, 그리고 중국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프리카는 더는 어둡고 비참하기만 한 대륙이 아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오늘의 눈] 함께 돕고 슬퍼한 교민·헝가리인… 작은 영웅들 기억할게요/김지예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함께 돕고 슬퍼한 교민·헝가리인… 작은 영웅들 기억할게요/김지예 사회부 기자

    동유럽 내륙국가 헝가리는 ‘먼 나라’였다. 서울과 부다페스트는 직선거리로만 8164㎞ 떨어져 있고 직항편이 없어 2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야 겨우 도착한다. 동유럽 공산권 붕괴 직후인 1989년 수교해 올해 30주년이 됐지만 양국 사이에는 특별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었다. 그저 50여개의 유럽국 중 하나 정도였다.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우리 국민 33명과 헝가리 승무원 2명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침몰했을 때 눈앞이 더 캄캄했던 건 심리적·물리적 거리 탓이 컸다. 한시라도 빨리 실종자를 구조해야 하는데, 과연 그 먼 나라에서 순조롭게 진행될까 하는 걱정이었다. ‘다뉴브강의 비극’은 지난 11일 허블레아니호가 인양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아직 실종자 3명을 찾지 못해 비상 상황이 끝나지 않았지만 수습의 한고비를 넘겼다. 현장 관계자들은 “내 일처럼 도운 평범한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우선 교민 사회가 움직였다. 헝가리의 우리 교민은 1400여명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봉사활동을 자원하고 필요한 물품을 기꺼이 내놓았다. 헝가리로 급파된 구조대원들을 위해 작업복 28벌 등 의류를 지원하고 간식과 한국 음식을 제공하며 마음을 보탰다. 2주 동안 대원들을 도운 선교사 박은영(49·여)씨는 “사고가 나던 날 구급차 소리를 들었고 소식을 알게 된 뒤 잔심부름이라도 거들자는 생각에 딸과 함께 나갔다”고 했다. 그는 “대원들은 몸도 지쳤지만 실종자를 찾아야 한다는 정신적 부담이 컸다”며 “그들에게 물이라도 챙겨 주고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게 우리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합동 작전을 펼친 양국 수색대원들의 언어 장벽은 유학생, 교민 2세 등으로 구성된 통역 봉사단 덕에 뛰어넘었다. 20여명의 통역 봉사단원들은 사고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현지 소통도 도왔다. 부다페스트에 사는 한인 치과의사는 실종자 가족 심리 치료 등 의료 통역을 지원했다. 헝가리 시민들은 이번 사고를 자기 일처럼 슬퍼하며 애도의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사고 현장 인근 머르기트 다리에는 추모의 꽃과 촛불이 매일 쌓였다. 수색 현장을 내려다보던 한 헝가리 할머니는 말이 통하지 않는 취재진의 팔을 잡아끌며 손짓으로 사고 모습을 표현하곤 자기 가슴을 쓸어내려 보였다. 햇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는 한국 기자들에게 생수병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추모 열기는 지난 3일 머르기트 다리 위에서 외국인 수백명이 눈물의 아리랑을 부르며 절정을 이뤘다. 이 행사를 주도한 토마시 치스마지아는 “사고 당사자들의 얼굴도, 역사도 모르지만 헝가리에서 사고를 당한 것에 가슴 아파 한다는 것을 꼭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양 이후 사고 현장은 차차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남은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돕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헝가리 정부도 끝까지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헝가리 유람선 참사에 손을 더한 모든 이들이 영웅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 jiye@seoul.co.kr
  • 서울시의회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후보자 인사청문 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선임

    「서울특별시의회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후보자 인사청문 특별위원회」(이하 “특별위원회”)는 13일 제1차 위원회 회의를 개최하고, 위원장에 정지권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동2), 부위원장에 추승우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초3)과 강동길 의원(더불어민주당, 성북3)을 각각 선임했다. 이번 특별위원회는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후보자 선정을 위해 운영위원장의 구성 결의안 발의 및 위원 선임의 과정을 거쳐 구성됐다. 특별위원회는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통해 경영능력 및 정책 수행능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수행하여 서울의 대표 공기업인 서울시설공단의 운영 효율화 및 시민 편의 개선을 위한 적합한 인재인지에 대해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할 예정이다. 인사청문회는 경영능력과 자질을 갖춘 우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가 체결한 협약 및 동 협약에 근거한 합의서에 따른 것으로 서울시 산하 기관장 채용에 있어 서울시의회가 시민을 대신하여 경영능력을 검증하고, 인사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서울시설공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방공단으로 지하도상가, 공영주차장, 자동차전용도로 등 24개의 서울시 주요 시설물의 안전과 운영·관리를 대행하는 서울시 대표 공기업”임을 강조하고, “서울시의회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서울시설공단의 수장으로서의 경영능력과 정책수행능력을 철저히 검증함으로써 서울시민의 안전과 공공서비스의 질이 담보될 수 있도록 하고, 앞으로 실시될 인사청문회에도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외로운 사나이가 찾아간 삼각지… 눈물의 비표 새긴 애창곡 되다

    외로운 사나이가 찾아간 삼각지… 눈물의 비표 새긴 애창곡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7회 서울의 대중음악1(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편이 지난 8일 용산구 한강대로와 원효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삼각지역 안 기타를 치는 배호(1942~1971) 좌상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의 5번째 노래비 ‘돌아가는 삼각지’를 둘러보고 배호길을 따라 왜고개 성지~아모레 퍼시픽 사옥~용산전자상가를 걸었다. 임진왜란 때 당사국 조선을 제쳐 두고 명나라 심유정과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화의를 맺은 심원정 터~유서 깊은 용산신학교와 예수성심성당~범죄심리학의 개척자 장병림 가옥~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원삼탕, 창성옥, 경의선숲길공원까지 2시간 30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배호의 노래를 포함해 6건의 서울미래유산이 즐비했다. 1978년 타계할 때까지 원효로에 거주한 박목월 시인을 기리는 목월공원과 청노루힐 옛 자택 구경은 덤이었다. 이준섭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들려줬다.대중가요 가사에 투영된 서울은 서울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노랫말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 특정 시각에 대한 경향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대중가요에 나타난 서울의 길’에서 “대중의 경험과 욕망을 통해서 걸러진 서울을 보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서울을 소재로 한 노래를 통해 서울에 대한 당대인의 꿈과 희망 혹은 불안과 좌절을 엿볼 수 있다. 서울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가진 야누스적 도시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대중가요의 소재로 활용되는 이유는 근대성이 가장 잘 체현된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는 ‘서울 노래를 통해 본 서울의 풍경’에서 대중가요는 “당대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대중가요의 가사를 통해 당대인의 시각과 정서를 헤아릴 수 있다.서울을 노래한 대중가요는 몇 곡이나 될까.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의 ‘대중가요에 녹여낸 서울 100년’ 자료에 따르면 가수 710명이 1141곡의 서울 노래를 불렀다. 이 중 제목에 ‘서울’이 포함된 노래만 544곡이었다. ‘명동’이 85곡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한강 70곡, 서울역 55곡, 남산 40곡 등의 순이었다. 가수별로는 각각 14곡을 부른 나훈아와 이미자가 1위를 차지했다. 작사자로는 31곡을 지은 반야월이 돋보였다. 박춘석이 가장 많은 22곡을 작곡했다. 1930년대 대중가요의 3대 키워드는 ‘서울’, ‘한강’, ‘종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지명을 노래 제목에 처음 사용한 최초의 노래는 1929년 발표된 랑소희의 ‘서울마치’였으나, 1932년에 발표된 이애리수의 ‘자라메라’ 노랫말에 ‘종로네거리’가 등장하는 등 내용상 최초의 서울 노래로 평가받는다. 궁궐과 관청 그리고 지배계층과 상권이 몰려 있는 종로는 한양천도 이래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들어 위상이 쇠락했다. 1950년대에 나온 현인의 ‘서울야곡’이나 나애심의 ‘미사의 종’이 그렇듯 해방 이전까지 새로운 시가지로 개발된 명동과 충무로 일대 남촌이 대중문화의 주 무대로 주목받았다. 대중가요 가사의 중심지가 1920년대 종로에서 1930~40년대 명동·충무로로 옮겨 갔다가 1950년대 해방과 한국전쟁 시기에 광화문, 종로, 남대문, 서울역 일대로 확장된 것을 알 수 있다.1960년대 대중가요에서 주목할 것은 노랫말이 서울 사대문을 벗어나 사대문 바깥으로 뻗어나갔다는 점이다. 서울의 양적 팽창이다. 1967~68년에 발표된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이 대표작이다. 이른바 ‘미8군 무대’ 출신 가수들이 가요계에 진출하면서 과장되고 서구화된 서울의 모습이 판치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명동과 무교동에 머물던 대중문화의 중심지가 종로로 중심 이동했으나 1979년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시작으로 윤수일의 ‘아파트’,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 등으로 흐르면서 1980년대 대중가요의 주 무대는 강남으로 강을 건넜다. 서울 노래는 1973년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1982년 이용의 ‘서울’, 1988년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등이 맥을 이었다.1968년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진 뒤 건설된 입체교차로가 시민들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새 서울’ 건설의 상징물이었다. 전차의 궤도와 전깃줄이 사라지면서 고가도로와 육교가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중 삼각지 입체교차로가 군계일학이었다. 장르는 트로트지만 세련된 재즈 스타일을 선보인 배호의 창법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지하 8층까지 내려가는 공포의 저음’과 ‘바닥까지 끌고 가서 밀어올리는 절절함’이 불후의 곡을 탄생시켰다. 이 노래는 1963년에 만들어졌지만 1967년 입체교차로가 들어선 뒤 창작한 노래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작곡가 배상태는 노량진에서 전차를 타고 충무로로 가던 중 삼각지에서 한 사내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취입할 가수를 찾지 못해 애를 먹은 일화도 남겼다. 당대의 인기가수 남일해는 연습만 했고, 금호동은 퇴짜를 놓았다. 유망 신인가수 남진도 여의치 않자 무명가수 김호성이 녹음까지 했지만 음반을 내지 못했다. 배상태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배호의 허름한 전셋집을 찾았다. 건강이 악화돼 거동조차 힘들던 배호는 녹음을 사양하다가 쓸쓸한 분위기가 자기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면서 가래를 뱉어 가면서 병상에서 녹음을 강행했다. 5년 묵은 곡이 배호를 만나서 빛을 본 셈이다. 서울에는 모두 9개의 노래비가 있다. 서울 노래비 1호는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이며 1995년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세워졌다. 2호는 반야월 작사, 이해연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 서 있다. 3호는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인데 1997년 마포구 도화동 마포근린공원에 세워졌다. 4호는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이며,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 숲에 있다. 5호는 2001년 용산구 삼각지에 세워진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다. 6호는 2008년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 벽면에 있다. 7호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다. 2008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등진 작곡가 이영훈 1주기를 맞아 정동길과 정동교회가 바라보이는 덕수궁 돌담길 앞에 세워졌다. 8호는 1965년 발표된 오기택의 ‘영등포의 밤’을 기려 2010년 영등포 타임스퀘어광장에 세워졌다. 9호는 의료사고로 숨진 신해철을 기리고자 2015년 북서울꿈의 숲에 벤치 형태로 건립됐다. 넥스트3집 수록곡 ‘세계의 문(유년의 끝)’이 새겨졌다.배호는 1981년 MBC특집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됐고,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KBS 가요무대 여론조사에서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가수 10인’에 올랐다. 전국 방방곡곡에 배호의 노래비 7개 있다. 서울 삼각지(돌아가는 삼각지)를 비롯해 경기 양주(두메산골), 경북 경주(마지막 잎새), 강원 강릉(파도), 인천 중구(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 충남 보령(두메산골), 전북 정읍(잘 있거라 내장산아) 등이다. 전국에 배호사랑연합회가 활동 중이고, 올해도 제23회 배호가요제가 열려 언제 어디서나 배호의 노래가 애창되고 있다. 혹자는 그 이유를 ‘가난과 병마에 시달린 눈물의 비표(秘標)’가 노래에 새겨진 때문이라고 푼다. 삼각지를 품은 용산은 13세기 몽골군 침입 때 병참기지, 16세기 임진왜란 때 일본군 주둔지를 거쳐 19세기 임오군란 때 청군 주둔지였다. 20세기 들어 전승국 일본인 마을, 철도기지와 군사기지에 이어 해방 이후 미군기지였다. 한반도를 유린한 외세의 각축장이자 침략 통로였고, 150년간 외국 지배세력이 머문 특수한 곳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단절과 망각의 도시다. 이처럼 용산에는 식민지 근대에 대한 불편함이 온존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에세이집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에서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라고 지적하면서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용산이 가진 과도한 산문성의 이면을 설명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8회 서울의 문학2(박완서의 나목) ■일시 및 집결장소: 6월 15일(토) 오전 10시 4호선 회현역 7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전남 진보시민사회단체, 전광훈 목사 전라도 비하 망언 강력규탄

    전남 진보시민사회단체, 전광훈 목사 전라도 비하 망언 강력규탄

    전남지역 진보시민사회단체가 전광훈 목사의 전라도 비하 망언을 강력규탄하고 나섰다. 전남지역 진보시민사회단체는 12일 전남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광훈 목사가 지난달 5일 실촌수양관 집회에서 “전라도 빨갱이”, “전라북도와 경상도 김천하고를 묶어서 한 도를 만들어야 해”라고 한 발언은 전라도를 비하하고 지역갈등과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전 목사의 ‘전라도 빨갱이’ 발언은 전라도의 명예를 실추하고 깊은 상실감을 준 막말이다”고 규탄하며 “전라도민에 사죄와 법적 처벌”을 요구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호남은 역사의 고비 때마다 분연히 일어서 이 나라를 지켜왔다”며 “호남민이 이 땅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왔음은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에 더욱 힘을 모아야할 이때, 좌파·우파·빨갱이 운운하며 시대착오적인 망언을 일삼는 전광훈의 거짓선동이야 말로 반기독교적 행위다”고 지적했다. 전남지역 진보시민사회단체는 “전광훈 일탈에 교회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정광훈의 발언은 목회자로서의 정당한 발언인지 또다른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어 “전라도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망언을 일삼는 전광훈은 즉각 회개하고 전라도민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기독교계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전광훈을 즉각 퇴출할 것을 요구했다. 수사기관에게도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할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정부와 국회에 대해서도 “지역갈등을 부추기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광훈 목사는 “여신도가 나를 위해 속옷을 내리면 내 신자고 그렇지 않으면 내 교인이 아니다”,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교회에 와서는 안된다”는 등 성희롱적 발언과 “마음만 연합하면 문재인을 바로 끌고 나올 수 있다”는 발언 등으로 사회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글로벌 In&Out] 스탈린, 일본, 그리고 한국의 해방/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스탈린, 일본, 그리고 한국의 해방/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1945년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분기점이 된 해이다.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 후 실시한 만주 공세작전으로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으며 한국은 해방되었다. 미국 등 연합국과의 약속을 지켜 만주 공세작전을 실시하였으며 한국 땅에서 청진 상륙작전을 비롯한 일본군과의 전투를 몇 차례 벌인 소련은 한반도 해방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만주 공세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스탈린이 전후 아시아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봤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남기지 않은 인물의 생각을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간접적인 자료를 통해서라도 일본과 전쟁 준비 중이었던 스탈린이 일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해방 직후의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엿볼 수는 있다. 이번에는 이 부분을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자료와 사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제일 먼저 언급해야 하는 사실은 스탈린이 자라난 시대적 배경이다. 1904년 2월 9일 새벽, 선전포고도 없이 일본군이 여순항에 정박하고 있었던 러시아 함대를 습격하고 태평양함대를 봉쇄시킴으로써 러일전쟁이 발발되었다. 러시아는 태평양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유럽의 발트해에서 제2태평양함대를 보냈으나 그 함대는 1905년 5월 말 쓰시마 해전에서 전멸당했으며 ‘쓰시마’라는 단어는 이후 러시아어에서 완전한 실패, 또는 국치(國恥)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전쟁의 결과로 러시아는 사할린 남부를 일본에 넘겨줬으며 당시 26세였던 주가슈빌리(스탈린)를 비롯한 러시아 젊은이들은 일본에 대한 복수심을 품게 되었다. 소련의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도 일본을 가상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스탈린은 일본 관련 자료를 많이 읽었다. 최근 러시아공산당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러시아 사회정치사 문서보관소가 스탈린 도서실의 서적들을 스캔하고 온라인에 올렸다. 그 책 중에 아일랜드 출신인 오콘로이가 1936년에 쓴 ‘일본이라는 위협’(The Menace of Japan)이라는 책의 러시아어 번역본이 있다. 일본을 비난하는 이 책에는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멸시,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 등을 묘사한 단락 옆에 적색 연필로 적힌 ‘못된 인간들’, ‘나쁜 놈들’ 등 스탈린의 친필 표기가 있다. 이런 메모를 통해 스탈린이 일본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1941년 4월, 독일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소련의 지도부는 양면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일본과 중립조약을 맺었으나 최근에 많은 연구자가 이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소련의 대일참전 직전인 1945년 6월 말~7월 초, 중화민국 행정원장인 쑹쯔원(宋子文)이 중소 관계와 전후 안보 문제 등을 논의하러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스탈린과 만났다. 소련 측 자료에 의하면 쑹쯔원이 몽골 독립 문제를 언급하자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한다고 해도 완전히 패망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일본은 강력한 민족이다. (중략) 일본은 무릎 꿇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독일과 똑같은 짓을 할 것이다”. 이 회담에서 쑹쯔원은 한국문제를 언급했고 신탁통치에 대한 스탈린의 의견을 물었다. 스탈린은 ‘외국 군대를 사용한 신탁통치를 반대하나 그래도 신탁통치가 실시된다면 그 목적이 한국의 독립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쑹쯔원은 이 시점에서 한국이 독립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스탈린은 이 문제는 후견을 통해서 해결될 것이라고 했고 중국이 나중에 한국을 병합시킬 생각이 아닌가 쑹쯔원에게 물었다. 쑹쯔원은 당황하면서 한국인과 중국인은 차이가 많고 역사도 달라서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답했다.
  • [달콤한 사이언스]100년 뒤에도 아름드리 숲 볼 수 있을까

    [달콤한 사이언스]100년 뒤에도 아름드리 숲 볼 수 있을까

    “식물 멸종은 전체 생태계 붕괴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많은 학자들이 지구온난화와 무분별한 벌목 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동물의 멸종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우려들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유럽 연구자들이 분석한 결과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멸종한 식물이 조류, 포유류, 양서류를 합친 것보다 두 배나 많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내놨다. 영국 왕립식물원 비교식물·균류생물학연구실, 생물다양성정보학·공간분석연구실, 스웨덴 스톡홀름대 생태·환경·식물과학과 공동연구팀은 지난 250년 동안 600여 종의 종자식물이 사라졌다는 연구결과를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콜로지앤에볼루션’ 11일자에 발표했다. 이 같은 식물의 멸종 속도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보다 최대 500배 가량 빠르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연구팀은 종자식물과 관련한 국제적, 지역적, 나라별 멸종위기리스트와 각종 연구논문, 표본, 관찰기록물 등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멸종된 식물 종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특히 1753년부터 2018년 사이에 571종의 식물종이 멸종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에 조류, 양서류, 포유류는 모두 217종이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식물의 생존 상태가 더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매년 약 2종의 식물이 멸종하는 것으로 전례없는 멸종 속도이며 인간의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연구팀은 ‘식물 멸종’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숨쉬는데 필요한 산소와 음식 대부분이 식물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식물에 직접 의존하는 곤충의 생존에 직접 영향을 미쳐 결국은 지구 전체 생태계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유엔 환경계획 산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를 위한 정부간 과학정책기구’(IPBES)가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약 100만 종의 동식물이 멸종위기에 처해있으며 매일 135종의 식물, 동물, 곤충들이 멸종하고 있다. 에일리스 험프리스 영국 왕립식물원 박사는 “자연 생태계에 존재하는 많은 종들은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식물에 생존을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현재 종다양성 유지를 위한 노력은 대부분 동물에 집중돼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연구와 같이 식물종의 손실정도, 장소, 원인 등을 분석하는 것은 생태학자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백제 무왕의 신수도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두고 맛동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유명한 신라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 30대왕 무왕(재위 600~641)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은 무왕의 남다른 출생부터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한편의 드라마를 전한다. 그의 모친은 과부로 궁의 남쪽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해 무왕을 낳았고, 무왕은 어려서부터 마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서 서(맛)동이라 했다. 신라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경주로 가서 위와 같은 서동요를 유포시켜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백제로 돌아와 공주의 지참금과 그동안 모았던 큰 재력으로 민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다른 면모를 소개한다. 그는 법왕의 아들로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했다. 즉위 이후 십수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쟁을 벌였고, 중국 수와 당나라에 적극적인 조공 외교를 펼쳐 고구려를 치도록 공작했다. 국토 곳곳에 전쟁용 성곽을 쌓았고, 사비성의 궁궐을 수리했으며, 국가 사찰인 왕흥사를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설 사업을 일으켰다. 이름에 걸맞게 부국강병을 꾀해 쇠락하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웅적인 왕이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역사서들은 같은 인물의 모순된 양면을 그리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은 사랑을 위해 적국의 수도까지 잠행하는 희대의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무왕은 조국을 위해서 처가 나라인 신라를 끈질기게 공격하는 냉철한 제왕이다. 어찌 장인인 진평왕을 공격할 수 있는가 등의 이유를 들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허구적 설화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정원을 만들고 절경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삼국사기의 말년 기사들은 철혈군주 무왕이 로맨티스트 서동으로 다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상충되는 두 역사서가 모두 사실이길 바란다면, 이 정도로 절충해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서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익산은 부여, 공주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역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익산에는 왕궁리, 왕평뜰, 고도리, 궁성로 등 지명이 전하고, 무왕이 창건했다는 제석사와 미륵사 터, 왕궁 터, 그리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쌍릉이 남아 있다. 남겨진 유적의 거대한 흔적들만 보아도 무왕의 호방한 뜻과 걸출한 기상이 보인다. 이를 토대로 익산이 일시적인 백제의 수도였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입증할 기록도 남아 있다. 일본 교토의 사찰인 쇼오렌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에 “백제의 무광왕(무왕)은 지모밀지(왕궁)로 천도하여 새로이 사찰을 경영했다”라고 적혀 있다.기록은 계속된다. “639년 큰 벼락이 치고 비가 내려 제석정사가 화를 입어 불당과 7층목탑, 회랑과 승방이 모두 불탔다.” 무왕이 새로이 경영했다는 사찰은 왕궁리 궁평마을에 위치한 제석정사(제석사)이다. 1993년부터 발굴 조사해서 ‘제석사’라는 명문이 쓰인 기와를 발견했고, 여러 건물 터도 찾아냈다. 가람 전체를 관통하는 남북 중심축 위에 정문-목탑-금당-강당 터들이 위치하고 그 외곽을 회랑과 승방들이 감싸는 모습이다. 모두 ‘관세음응험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적이다. 제석사는 불타기 이전인 600~630년 사이에 창건됐고, 무왕의 익산 천도도 그 시절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사찰이면 수백 승려들이 거주하고, 수천의 신도들이 출입하게 된다.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민가들이 들어선다. 목탑지의 아래층 기단은 2m가 넘는 높이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솟은 목탑은 당시 초고층 건물로, 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천도를 위해서는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도시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왕실이 운영하는 제석사는 익산 천도를 위한 중요한 선행 시설이었다.●제석사지·왕궁리유적… 455m 길이 운하형 연못 수도 익산의 중심은 왕궁이었다. 현재 ‘왕궁리유적’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1989년부터 발굴 조사 결과 확실한 백제의 왕궁 터임을 확인했다. 일대는 넓은 평야지대지만, 남북으로 길게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에 터를 잡았다. 남북 490m, 동서 245m의 완벽한 직사각형 궁성을 쌓고 그 안에 여러 전각을 지었다. 조선시대 경복궁 면적의 4분의 1 정도로 일시적인 행궁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무왕 이후에 익산은 결국 수도의 지위를 잃어 왕궁은 폐지되고 사찰로 바뀌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구조물은 ‘왕궁리5층석탑’이 유일한데, 사찰로 바뀐 백제 말 작품이라는 설과 고려 초라는 설이 팽팽하다. 왕궁 건물 터 위에 사찰 건물들을 세웠고, 그 시기 사찰에 필수적인 회랑이 없는 등 특별한 기능의 사찰이었다. 무왕이 사후에 익산쌍릉에 모셔짐에 따라 그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이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뒤편의 볼록 솟은 언덕에 정원을 조성하고, 가운데 정상부에는 큰 정자를 세워 경치를 감상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는 말굽형 환수구를 파서 운하 형태의 기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폭은 3~7m, 전체 길이는 455m에 달한다. 정원에 물을 공급하는 집수시설인 동시에 자체로서 훌륭한 조경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판 곡수로는 더욱 창의적이다. 환수구에 연결된 지류로 조성된 물길이며, 전체 길이 685m에 달한다. 마치 커다란 물결과 같은 모양으로 조성한 곡수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조경시설이다. 기이한 동식물을 키우고 독창적 정원을 만들어 경치를 즐겼다는 무왕의 풍류와 창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단한 정원유적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륵사의 창건 설화는 특별하다. 무왕 부부가 왕궁 인근의 사자사로 행차할 때 연못에서 미륵3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탁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늪을 메운 후 3곳에 각각 불당과 탑을 만들었다. 신라 진평왕이 공인을 보내 공사를 도왔다니 당연히 왕비는 선화공주일 것이고, 당탑을 3곳에 세웠다니 통상적인 사찰 3개가 연립된 초대형 규모였다.●20년간 보수한 미륵사지석탑 주인은 사택왕후 오랜 기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4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절터는 동아시아 최대로 추정한다. 3개의 당-탑, 다시 말해 3개의 사찰이 나란히 놓여 동-중-서의 3원을 형성했고, 각원은 회랑으로 분리됐다. 중원에는 목탑을 세웠고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을 세웠다. 중원의 목탑을 비롯해 목조 건물은 물론 동원의 석탑도 조선 후기에 이미 사라졌다. 다행히 서원의 석탑은 반파된 부분이나마 기적적으로 남았다. 6층 일부까지 남았음에도 현존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커서 국보 중의 국보인 미륵사지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둥과 보 등 수천개의 부재들을 정교하게 깎아 조립한, 마치 목탑과도 같은 석탑으로 백제계 석탑의 원형이다. 일제기인 1915년, 붕괴 직전의 석탑에 185톤의 시멘트 덩이를 발라 흉측하나마 응급 보존공사를 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99년, 응급용 시멘트마저 수명을 다해 완전 해체 보수 정비를 결정하게 된다. 정교한 조사와 연구 끝에 드디어 2019년 5월 재조립 공사를 마쳤으니 꼬박 20년이 걸려 문화재 보수 정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 석탑의 원형이 7층인지 9층인지 아직 결론을 못 냈다. 1993년 확정된 결론 없이 동원에 높이 27.7m의 9층 석탑을 세웠다. 세부적인 모습도 어색하고, 전체 석재를 기계로 가공하여 정교한 백제건축의 미를 잃어버렸다. 20세기 최악의 문화재 복원이라는 오명까지 쓴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이번 보수정비에는 엄격한 원칙들을 세웠다. 추론 복원을 하지 않고, 직전 모습인 6층 일부까지만 복원 보수한다.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최대한 존중한 결과다. 총 1627개의 부재 가운데 원래의 것을 최대한 보강 활용하여 재사용률을 81%까지 높였다.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사리봉안기가 출현했다. 여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지적의 따님으로…가람을 세우시고…”라 새겨져 있다.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다시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왕비가 여럿이라는 설, 선화와 사택의 역할 분담설 등. 익산 쌍릉 중 대왕릉의 재발굴조사 결과 그 주인공이 무왕일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현재 소왕릉 발굴 중인데, 제발 이 주인이 선화공주이기를 고대한다. 1500년 전, 무왕의 도시와 건축을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료와 다소 황당한 설화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일말의 진실은 품고 있다. 미완성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이 아직은 부분적인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한국 항공산업 국제적 인정… RFID 수하물 추적시스템 도입 성과”

    “한국 항공산업 국제적 인정… RFID 수하물 추적시스템 도입 성과”

    항공업계 ‘유엔총회’로 일컬어지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제75차 서울 연차총회가 지난 1~3일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지난 4월 작고한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민국을 ‘항공산업 변방’으로 보는 이들을 9년간 설득해 유치한 그 행사였다. 대한항공 주관으로 사상 최초로 국내에서 개최된 서울총회는 290개 회원 항공사, 항공기 및 부품 제조사, 정부 및 유관기관, 언론계 인사 등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업계 주요 이슈인 안전·환경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아버지 대신 이번 총회 의장을 맡은데 이어 IATA 최고의 정책 심의 및 의결 기구인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돼 글로벌 항공업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조 회장 부자(父子)와 함께 서울총회의 크고 작은 실무를 담당하며 IATA 첫 한국 개최의 성공을 이끈 정지영 대한항공 국제업무 담당 전무를 지난 4일 서울 중구 대한항공 빌딩 회의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조 전 회장이 생전 애착을 많이 가졌던 행사로 안다.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별세하시기 한 달 전쯤 조 전 회장이 이메일을 보냈다. 당시 조 전 회장의 병세가 악화돼 치료를 받고 있던 사실을 몰랐던 상태였다. 조 전 회장은 IATA 얘기를 하면서 ‘조원태 사장하고 잘 협의해서 잘 준비해야 한다’고 적어 보내셨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워낙 항공업에 오래 몸담았고 국가적인 행사라 그 몸 상태에서도 마음이 쓰이셨던 듯하다. 지난해 12월에는 치료 때문에 IATA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니 두 가지를 IATA측에 물어봐달라고 하시더라. ‘대리참석이 가능한지’와 안 된다면 ‘본인이 미국에서 화상회의를 해도 되는지’ 여부였다. 그전엔 IATA 회의에 거의 빠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IATA 여건상 둘 다 이뤄지지 않았다. 그랬더니 31명 IATA집행위원 개인 이메일로 IATA 연차총회와 그 외에 실무 관련 건의사항을 빼곡히 적어 보냈다. 그만큼 조 전 회장 생전에 애착을 가진 행사였다. 행사 중간중간 그 모습이 떠올라 울컥할 때가 있었다.” -서울총회 유치할 때도 조 전 회장 공이 컸다고 들었다. “IATA 유치는 1년 전에 결정된다. 지난해 6월 시드니에서 유치 선정 발표가 났는데 그전인 2017년도 무렵 미국과 북한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때 한국까지 여파가 미쳐 힘들었다. 한 IATA 임원이 ‘글로벌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국제정세 때문에 한국도 위험한 것 아니냐고 한다’고 말을 전했다. 유치를 원하는 다른 나라에서 마치 한국에 전쟁이라도 날 것 마냥 깎아내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 전 회장이 ‘우리는 몇 달 뒤 더 큰 행사인 평창 동계올림픽도 여는 나라다. 또 우리는 진심으로 IATA 유치를 원하고 잘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또 그가 20년간 장기 IATA 집행위원으로 쌓아놓은 모든 인맥을 활용해 표를 달라고 설득했다. 이건 단지 대한항공만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연차총회를 계기로 한국의 항공사를, 항공산업의 수준을, 우리나라 공항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던 것으로 안다.” -IATA 총괄을 맡은 ‘숨은 키맨’으로 알려졌는데 어떤 역할을 해왔나. “2013년부터 올해까지 IATA 실무 총괄을 담당했다고 보면 된다. 그전인 2009~2011년에도 조 전 회장을 도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활동을 하는 동시에 IATA 유치에 공을 들였다. IATA는 회원사의 여객 및 화물의 서비스와 관련해 환경, 파이낸스, 산업, 법률, 안전보안 등 여러 주제를 다룬다. 항공사별로 주제별 전문가들이 10~20명씩 모여 수많은 안건들을 논의하고 이를 정책으로 만들도록 하는데 그 안건마다의 기본적인 사전조사와 데이터 수집, 현재 정책 등을 정리하고 중간에서 회원사의 의견을 조율하는 실무적인 역할을 다 맡는다고 보면 된다.” -IATA에서 항공 산업의 성장을 위해 채택한 결의안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바코드에 비해 정확도가 높은 무선주파수인식(RFID) 기반 수하물 추적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결의안을 마련한 것이다. 지금은 짐(승객 수하물)을 바코드로 읽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오류가 생겨 짐을 찾을 때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RFID 시스템을 도입하면, 짐이 실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환승 공항에서도 정확하게 처리가 돼 수하물과 관련된 승객 불편이 줄어들게 된다. 그만큼 승객이 피부로 느끼는 편안함이 커질 것이다.” -IATA성공 개최로 한국이 얻는 효과는. “서울총회는 대한항공뿐 아니라 대한민국 항공산업 수준을 국제적으로, 객관적으로 증명해낸 행사다. 이번에 참석한 보잉, 에어버스 등 100여명의 전 세계 항공사 CEO들이 특히 인천공항을 보고 정말 놀라더라. 이미 전 세계 여행객들이 세계 최고의 환승 공항 1위로 ‘인천국제공항’을 꼽지만 CEO들 눈으로 환승이 편하고 쾌적한 것은 처음 보지 않나. 대한민국 공항 수준을 본 것이다. 김포공항도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항공기가 가장 많이 이착륙하고 가장 많은 승객이 이용하는 노선이 다름 아닌 김포~제주 노선이다. 한국에 이런 노선이 있다는 것에도 놀라더라. 그만큼 100명이나 되는 CEO 중에 놀랍게도 처음 한국에 온 사람이 많았다. 항공사 CEO는 아무래도 공항이나 도시를 보는 기준이 일반인과 다른데 이번 연차총회를 통해 한국의 항공운송 부문에 대한 이미지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게 된 것 같다. 향후 관광산업이나 대내외적 국가 이미지 상승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운도 따랐다. 전날 비가 와서 행사장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있는 북한산까지 잘 보이고 공기도 맑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라 아침에 호텔에서 나와 인근을 조깅하는 이들도 많았다. 거기에 행사 장소인 코엑스나 주변 봉은사, 선정릉 등을 보고 전통과 현대적인 부분이 잘 믹스가 돼 있는 도시라고 평가하더라.” -조 회장에게도 좋은 경험이 됐을 것 같다. “갑작스레 의장을 맡게 돼 아마 본인도 적잖이 힘들었을 텐데 큰 행사를 통해 테스트를 잘 치른 기분이 아니겠나. IATA 총회 기간에는 총회 진행과는 별도로 개별 항공사끼리 미팅이 정말 많이 열리는데 행사 3일간 조 회장은 항공사, 항공기 제작사, 항공 시스템 회사 등과 25회 이상 개별면담을 했다. 행사 사이사이 이 개별 면담을 통역 없이 혼자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각 회사 협력 강화 방안이나 수주, 실적 등을 상의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경험이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석자들은 이번 서울총회를 어떻게 평가하던가. “알렉산드르 드 주니악 IATA 사무총장을 조금 전에 배웅하고 왔는데 그가 ‘판타스틱하다’고 표현했다. 기록을 깼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참석자 수만 해도 IATA 집계로 보면 회원사 1100여명. 언론인 400명 등 기존 연차총회 참가자 수 중 가장 많다. 규모도, 내실도 최고라고 축하를 많이 받았다. 조 전 회장 별세 후 한국에서 제대로 열릴 수 있겠나 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국가적인 큰 행사가 잘 마무리 돼 개인적으로도 기쁘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는 식물을 입는다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는 식물을 입는다

    올여름도 예년보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질 거란 예보가 들린다. 오염된 자연을 돌이킬 수 없듯 높아진 지구의 기온도 예전처럼 돌아가기 힘들어 보인다. 보통 때였으면 유월 초순에 반팔을 꺼냈을 텐데 이미 나는 반팔을 입은 지 오래다.올여름이 걱정인 건 이 더운 날씨에 식물 조사를 가야 한다는 것. 산에서는 곤충에 물리거나 풀독이 오를 수 있어 긴팔에 긴바지를 입어야 한다. 내가 식물을 그리는 일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작업실 에어컨 아래에 앉아 일하지 않느냐 말하지만 식물을 보러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더 길기에 날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식물을 공부하게 된 후 내 옷장엔 등산복이 많아졌고, 평소에도 디자인보다는 원단을 따져 옷을 고르는 일이 늘었다. 다행히 패션계에도 실용적이고 친환경적인 디자인이 몇 년째 주를 이루고 있다. 화려하고 몸에 꼭 맞는 옷보다는 편안하고 품이 넉넉한,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디자인한 어글리 슈즈와 같이 도심 밖 들이나 정원에서 입고 신어야 할 것 같은 옷과 신발, 그리고 환경을 생각한 소재와 유통 과정이 패션계를 선도한다. 우리가 더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기 위해 로컬푸드를 찾고, 우리의 식생활로 고통받는 생물이 없어지기를 바라며 채식을 하듯 패션계도 변하고 있다. 영국 브랜드인 스텔라 매카트니의 컬렉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배경은 정원이었다. 모델들은 수국, 양귀비, 라일락 등 영국의 정원 식물 그림이 크게 프린트된 옷을 입고 정원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기존 패션계에서 식물이 디자인 패턴이나 부수적인 장치로 활용된 것과 달리 식물세밀화가 전면에 등장했고, 후에도 이 브랜드에서 식물 이미지가 등장하는 컬렉션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 장면들이 인상 깊었던 건 식물을 하는 게 내 일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사회, 문화적 흐름에 가장 민감하고 유행이 빠른 패션 산업과 그 반대 선상에 있을 법한 식물이 의외의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이 모든 게 새로울 게 없지만 이건 8년 전의 컬렉션이고,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패션계에도 식물 외 자연물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매카트니가 특별한 건 단순히 자연물을 이미지로 활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식물과 동물, 자연을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모피와 가죽을 일절 사용하지 않으며, 환경친화적인 패션을 위한 운동도 한다. 최근엔 비건 울을 개발하는 연구를 시작했고, 식물성 원료를 활용한 대체재를 찾고 있다. 식물에서 지속 가능한 패션의 미래를 찾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입는 옷의 원료도 결국은 식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리넨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봄, 여름에 입는 시원한 소재인 리넨은 중앙아시아 원산의 아마라는 식물 줄기 속 섬유를 추출해 만든다. 인류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 온 소재고, 면보다 조직이 강하고 빨리 건조돼 옷뿐만 아니라 가정용 직물로도 이용돼 왔다. 무엇보다 설긴 조직감과 열을 흡수하는 성질 때문에 착용하는 이에게 냉각 효과를 주어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많이 찾게 되는 소재다. 아마로 만드는 리넨 외에도 쐐기풀과의 식물인 모시풀로 만드는 모시, 대마초의 원료인 대마로 만드는 삼베 등의 마직물은 면보다 재배할 때 물도 적게 들고, 병해충에 강해서 농약이 덜 필요하며 땅을 황폐하게 만들지도 않아 친환경적인 소재다. 대신 만드는 데에 손이 많이 가고, 과정이 꽤 복잡하다 보니 가격이 높아 합성섬유에 가려지곤 한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지고, 친환경적인 소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인기를 기대한다.각종 화학섬유의 출현으로 우리나라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또 다른 식물이 바로 목화다. 고려 말기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목화는 우리 국민의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해 준 바람막이가 돼주었다. 경남 산청과 함양은 문익점 선생이 목화를 직접 재배했던 곳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목화 재배지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목화 농사를 짓는 사람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현재는 목화 재배 가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값싼 면이 끊임없이 수입되고, 사람들은 새 소재를 찾다 보니 국산 목화가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류가 이용하는 식물이 바뀌는 건 원예식물의 당연한 운명이지만 목화의 명맥이 끊기는 걸 지켜보는 건 어쩔 수 없이 안타깝다. 하지만 최근 패션계의 변화, 친환경 소재와 디자인을 찾으려는 움직임에서 보듯, 언젠가 사람들이 우리 재래종 목화와 삼베로 만든 옷을 찾을 날이 오지 않을까. 어쩌면 패션의 미래는 우리나라의 재래 식물 혹은 아직 기능성이 연구되지 않은 자생식물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이도헌의 돼지농장 주인으로 살기]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책, 환경 축산 시스템의 선진화 계기로

    [이도헌의 돼지농장 주인으로 살기]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책, 환경 축산 시스템의 선진화 계기로

    음식물 쓰레기를 가공해 사료로 급이한 돼지를 잔반돼지라고 부른다. 잔반돼지 사육 농가는 음식 폐기물 처리 업자로서는 돼지에게 잔반을 먹이며 폐기물 처리 수입을, 양돈 농가로서는 돼지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이중의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잔반돼지 사육 농가는 음식 폐기물 처리업으로는 환경부의 소관이고, 양돈 농가로서는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에 해당한다. 잔반돼지는 국내 전체 돼지 사육 마릿수의 1% 수준이지만 우리나라 음식 폐기물의 11%를 처리하고 있다. 잔반돼지 농장이 음식 폐기물을 처리하는 주요 거점인 셈이다. 음식 폐기물을 처리하는 바람직한 방식은 음식 폐기물을 바이오 에너지화하고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반면 돼지 잔반으로 음식 폐기물을 처리하면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고, 구제역 등 가축 질병으로 잔반돼지가 집단 폐사하면 음식 폐기물을 사료로 재활용할 수 없다. 잔반돼지로 음식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식은 친환경적이지도 않고 음식 폐기물을 안정적으로 처리하지 하지도 못하는 불안정한 방식인 셈이다. 그래서 유럽 등 주요 국가 잔반돼지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잔반돼지는 도축 단계에서부터 일반돼지와 함께 유통된다. 하지만 잔반돼지는 도축 단계에서부터 일반 양돈 농가의 돼지와 구분해 유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질병 노출 위험이 큰 잔반돼지가 일반돼지와 같이 유통되면 가축 전염병이 확산될 위험이 크다. 또 잔반돼지가 일반돼지고기와 섞여 유통되면서 축산물 유통 구조를 왜곡시키고 소비자에게 혼선을 주는 원인이 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대처와 별개로 도축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가축을 유통하고, 선진적인 방역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재난을 겪고 있는 중국은 잔반돼지가 전염병 확산의 주요 원인임을 확인하고 잔반돼지를 법으로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요즘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잔반돼지 금지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환경부는 음식 폐기물 처리를 위해 잔반돼지를 전면 금지할 의사가 없고, 이에 양돈 생산자 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반면 잔반돼지 농가들은 잔반돼지를 금지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이미 북한에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유입되고, 질병의 주요 유입원인 중국산 육가공품이 버젓이 유통된다. 질병 유입의 가능성이 코앞까지 성큼 다가와 있지만, 정작 잔반돼지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잔반돼지 금지 여부를 놓고 축산 농가들 간의 갈등이 생길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잔반돼지 농가나 일반 양돈 농가나 공히 그간의 부실했던 환경과 축산물 유통 정책의 피해자다. 잔반돼지 농가는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 정책의 결과이고, 잔반돼지로 인한 질병 확산 우려는 체계적 방역과 유통 시스템이 없는 축산 유통과 방역 시스템으로 생긴 문제이기 때문이다. 잔반돼지 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의 환경 관련 기관은 시대에 뒤떨어진 환경정책을 믿고 음식 폐기물을 처리해 온 잔반돼지 농장에 적절히 보상해야 한다. 축산물 유통을 책임진 관련 기관은 이들 잔반돼지 농가가 일반 양돈 농가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축산물 유통 방역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전력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 과거의 후진국형 시스템을 개선할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어쩌면 먹이 사슬의 제일 아래에 있는 잔반돼지 농가와 일반 양돈 농가의 갈등을 방치하는 것은 정부가 취할 방식이 아니다. 국가적 재난이 될 수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범정부적 대응이 우리나라 환경과 축산 관련 산업이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 계기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 [2030 세대] 입체적이고도 빛나는 도시를 만들려면/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입체적이고도 빛나는 도시를 만들려면/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00년대 초중반 광역버스를 타고 인천에서 부천을 거쳐 서울로 통학했다. 당시 부천에는 지하철이 건설 중이었다. 나는 늘 이렇게 집에서 가까운 현장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군대를 막 다녀온 후였고, 아마도 졸업하기 전에 이 공사는 완료될 것으로 생각했다. 5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는 건설회사에 취직해 현장배치를 받았다. 마치 운명처럼 부천의 지하철 현장에 발령 났다. 놀랐던 사실은, 5년이 지났는데 해당 지하철 공사는 절반도 시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알고 보니 도시철도 사업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6대4로 공사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지자체의 예산 제약으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해당 노선은 1992년에 입주한 1기 신도시를 가로지르는 구간이었는데, 사실 이 노선은 1990년대 초부터 계획됐다고 한다. 한데 외환위기로 인해 해당 계획 자체가 틀어졌고, 2013년에 이르러 겨우 개통이 된 것이다. 이처럼 대규모 예산의 인프라는 계획부터 개통까지 여러 가지 리스크로 인해 수십년의 기간이 걸리기도 한다. 얼마 전 국토부가 3기 신도시를 발표했고, 서울 서북부의 경기도 1, 2기 신도시 주민들은 연일 시위를 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주 요지는 기존 1, 2기 신도시 교통 인프라도 충분치 않은데, 3기 신도시를 발표하는 바람에 기존 신도시의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서둘러 1, 2기 신도시 교통대책을 내놓았지만, 연간 20조원 안팎의 SOC 예산으로 그 많은 교통 인프라가 한 지역에서 제 시기에 지어진다고 낙관하는 주민들은 별로 없다. 10년 넘게 짓고 있는 한강의 월드컵 대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건설기술이 발달하면서 도시를 수평적이 아닌 수직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됐다. 낮은 용적률 규제를 완화한다면 서울 도심에 주택공급을 늘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재건축은 정부 예산이 들어가기는커녕 건설에 따른 부가세, 취득세 등 세수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내용연수가 40년 정도인 건축물 관점에서 보자면, 도시의 주거안전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지난주 출장차 구 소련의 어느 도시를 다녀왔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구 소련 시절 지은 낡은 건물만 즐비한 풍경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여전히 시장경제가 자리잡지 못해 토지의 사적 소유도 어려운 일부 CIS 국가에서는 투자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섣불리 신규 건물을 짓고자 하는 투자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부 예산을 들이지도 않고 도심의 노후한 건물을 재건축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나라는 상당히 매력적인 국가라 볼 수 있다. 부디 새로운 수평적 신도시를 짓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규제 완화를 통해 도심지 노후화한 구조물의 재건축을 도모하는 방향도 검토돼야 한다. 그것이 현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했던 입체적인 ‘빛나는 도시’로 가는 길일 것이다.
  • 맹독 파란선문어, 부산 기장 앞바다에 출현…복어 수준 독성

    맹독 파란선문어, 부산 기장 앞바다에 출현…복어 수준 독성

    국립수산과학원은 최근 부산 기장군 일광면 연안에서 아열대성 맹독 문어인 ‘파란선문어’가 발견돼 어업인과 관광객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고 30일 밝혔다. 파란선문어는 주로 아열대해역에 서식하는 10㎝ 내외의 작은 크기로 귀여운 모양이지만, 침샘 등에 독성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맨손으로 만지다 물리면 위험할 수 있다. 파란선문어의 독성 물질은 복어독으로 알려진 ‘테트로도톡신’이라는 강력한 독이다. 이번에 발견된 맹독성 파란선문어는 지역의 한 중학생이 지난 25일 기장군 일광 바닷가에서 채집해 수산과학원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수산과학원은 이번에 발견된 문어는 파란고리문어속에 속하는 ‘파란선문어’이며, 그 동안 제주도에서 출현했던 것과 동일한 종인 것으로 확인했다. 파란고리문어류는 제주도를 비롯해 하경남 거제시 및 울산시 등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2015년 6월에는 제주도 협제해수욕장 인근 갯바위에서 관광객이 이 문어에 손가락이 물려 응급치료를 받기도 했다. 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아열대성 생물의 출현이 증가하고 있다”며 “화려한 색상을 가진 문어류, 물고기류, 해파리류 등은 독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가급적 맨손으로 만지지 말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기고] 주소, 국민안전·4차산업 핵심 인프라/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

    [기고] 주소, 국민안전·4차산업 핵심 인프라/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지진 소식이 들려온다. 지진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상황을 알리고 대피 장소를 정확히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운동장과 공원, 주차장 등 전국 1만여곳에 지진 옥외대피소가 지정돼 있다. 그런데 공원이나 주차장 같은 공터에는 별도의 주소가 없다. 주변 건물의 주소를 빌려 쓰다 보니 대피소까지 최단거리 경로를 안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행정안전부는 지진 옥외대피소에 대한 정확한 위치와 최단거리 경로 안내를 위해 도로명주소를 기반으로 한 사물 주소 부여를 추진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주소 부여 대상을 다양화하는 추세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건물이 아닌 주차장, 공원, 운동장 등에 주소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도 건물이 아닌 시설물에 주소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2015년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는 주소의 개념을 ‘위치를 표시하거나 식별하는 방법 중 하나’로 확대해 새롭게 정의했다. 행안부는 지난해부터 주소 부여가 필요한 시설물과 장소에 대한 전면조사를 실시해 지난 4월 주소 부여가 필요한 34종의 시설물과 장소를 제시했다. 여기엔 국민안전과 직결된 시설과 경제활동 장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드론·드로이드 운영에 필요한 배달점이 포함돼 있다. 먼저 국민안전과 관련된 시설물에 사물 주소를 부여하기로 하고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전국 육교승강기 867대에 주소를 부여해 소방과 경찰, 포털사이트에 제공했다. 육교승강기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위치를 정확히 안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지진 옥외대피소와 둔치 주차장에 주소를 부여하고 있다. 앞으로 해일대피소와 인명 구조함, 졸음쉼터 등에도 주소를 부여해 나갈 예정이다. 주소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사람과 기계 간 위치 정보를 매개하는 중요 수단이다. 1980년대 미국 드라마 ‘전격Z작전’의 주인공 마이클은 꿈의 자동차 ‘키트’에게 음성으로 이동 위치를 명령한다. 자율주행 자동차와 드로이드, 드론 등에 목적지를 정확히 알려주려면 체계화된 주소가 필수적이다. 주소는 이제 국민안전을 책임지고 경제활동에 도움을 주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사회적 인프라가 됐다. 주소가 인공지능·음성인식 기술과 융합해 안전하고 풍요로운 내일을 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임시수도’ 초정행궁 복원·축제… 세종대왕, 청주서 부활하다

    ‘임시수도’ 초정행궁 복원·축제… 세종대왕, 청주서 부활하다

    27일 충북 청주시 내수읍 초정리의 한 공사장. 현장을 둘러싼 펜스 틈바구니로 안쪽을 들여다보니 풍경이 요즘 공사 현장과 크게 다르다. 높고 웅장한 콘크리트 건축물 대신 사극에 나올법한 전통 가옥과 초가집 수십채가 여기저기서 지어지고 있다. 근로자들은 건물 내부에서 도배하거나 마루를 설치하는 등 마감공사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공사 현장 뒤쪽 언덕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완공을 앞두고 있는 전통 가옥과 초가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울 북악산에 올라가 경복궁을 내려다보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현장 관계자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통 한옥을 지어 분양하는 줄 알고 매매가격을 물어보기도 한다”며 “공사가 마무리되면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곳은 청주시가 155억원을 투입해 진행하고 있는 세종대왕 초정행궁 공사 현장이다. 초정행궁은 세종대왕이 눈병치료를 위해 1444년 3월과 9월 두 차례 초정을 방문해 총 123일간 머물렀던 곳이다. 세종대왕은 청주에 후추 맛 같은 ‘초수’라는 물이 있는데 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초정을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초정행궁은 3만 8000㎡ 부지에 건축면적 2055㎡ 규모로 건립된다. 현재 공정률은 80%다. 행궁을 구성하는 건축물은 총 35개다. 앞쪽에 광장과 안내센터, 어가를 전시하는 사복청, 무기를 전시하는 사장청이 배치된다. 그 뒤로 야외 족욕체험이 가능한 원탕행각을 비롯해 욕조를 갖춘 탕실과 임금이 잠을 자던 침전, 평소 머물던 편전, 왕자 방, 수라간, 집현전 등이 자리잡는다.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는 전통 한옥과 산책로, 연못도 꾸며진다. 시는 행궁이 1448년 마을 주민의 방화로 불에 타 손실됐고, 행궁 규모 등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조선시대 다른 행궁 등을 참고했다. 행궁 위치는 초정리라는 설과 인근의 북이면 주왕리(住王里)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 않아 초정약수 주변의 적당한 부지를 선택했다. 손성호 청주시 초정행궁 담당은 “내년 6월쯤 정식 개장할 예정”이라며 “숙박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초정행궁에는 임금이 머물렀던 장소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세종대왕은 임시수도 구실을 했던 이곳에서 한글창제 마지막 작업을 진행했다. 행궁에 있는 동안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지역민 여론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등 민본정치를 실천하기도 했다.이를 입증하듯 세종실록에는 초정리의 옛 이름인 ‘초수리(椒水里)’가 많이 등장한다. “거가(車駕)가 초수리에 이르렀다.” 거가는 임금의 수레 또는 임금 행차를 말한다. “초수리 곁에 사는 백성들에게 술과 음식을 베풀다.”, “초수리 근방 농민에게 술과 고기를 하사하다.”, “초수리 감고 박배양 등에게 면포를 하사하다.” 감고는 조선시대 관아에서 금, 은, 곡식 등의 출납과 관리를 보살피거나 지방의 세금과 공물의 징수를 맡아보던 관직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공간이 행궁인 셈이다. 시가 행궁을 복원하는 이유다. 청주에선 축제를 통해서도 세종대왕을 만나볼 수 있다. 시는 해마다 5월 초정에서 ‘세종대왕과 초정약수 축제’를 열고 있다. 13회를 맞은 올해 행사는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3일간 내수읍 초정문화공원 일원에서 펼쳐진다. 축제의 백미는 역사적 고증을 통해 마련되는 어가행렬이다. 세종대왕이 초정을 방문하는 당시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다. 시는 소박하게 행렬을 준비한다. 실제 세종이 백성들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행렬 규모를 최소화한 것으로 알려져서다. 어가행렬은 축제 개막일을 전후해 2번 진행된다. 시는 축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지난 25일 청주 도심인 성안길에서 사전 어가행렬을 선보였다. 행사 둘째 날인 다음달 1일에는 초정리 주변 2㎞에서 펼쳐진다. 행렬 앞뒤로는 농악대 길놀이팀이 배치돼 신명나는 농악을 선사한다. 지역 대학생 등이 호위 무사, 신하, 궁녀, 장군 등으로 분장해 출연한다. 어가행렬의 주인공 격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전국 공모를 통해 선발했다. 남녀가 짝을 이뤄 8팀이 응모해 청주대 영화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뽑혔다. 축제 기간 세종대왕과 세계 3대 광천수인 초정약수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체험프로그램만 33개에 달한다.아름다운 한글쓰기, 백일장, 사생대회는 방문객들에게 한글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족욕, 약수와 한방, 약수 음식 체험코너는 건강까지 챙겨준다. 초정행궁을 미리 만날 수 있는 초정행궁홍보관과 초정약수가 가득 채워진 물놀이장도 꾸려진다. 조선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저잣거리 형태 공간이 만들어져 시간여행도 떠나볼 수 있다. 저잣거리에선 대장간 체험, 신나는 전래놀이, 가마 체험, 한복 입어보기, 민속악기 체험 부스가 운영된다. 첫날에는 다른 지역축제와 달리 경로잔치가 열린다. 세종대왕이 초정에 머물 당시 노인들을 위해 잔치를 해줬다는 기록이 있어서다. 마지막 날에는 인기를 끄는 최태성 강사의 역사이야기 콘서트가 진행된다. 주제는 ‘초정에 오신 세종이야기’다. 축제의 한 축인 초정약수는 600여년 전 발견됐다. 세조도 이곳에서 약수로 피부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충북보건환경연구원이 2009년 연구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정약수는 pH가 평균 4.8인 약산성의 물이다. 60여종의 다양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다. 미네랄 성분의 균형이 양호해 맛있고 건강한 물로 평가된다. 다른 약수들에 비해 규소 함유율이 높고 철 성분을 함유하지 않아 음용하기에 거부감이 없다. 맛은 단맛이 전혀 없는 사이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 마시면 탄산천이 위의 점막을 자극해 연동작용을 왕성하게 한다. 이 때문에 식욕과 소화작용이 좋아진다. 구토기를 고치며 기타 혈관경화증, 간장병, 당뇨병, 혈액순환장애, 심장질환에도 좋은 것으로 전해진다. 목욕을 하면 각종 피부질환과 욕창이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정약수의 위대함은 옛 문헌에도 나온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초수는 청주 동쪽 39리에 있으며 그 맛이 후추와 같고 이 물에 목욕하면 몸의 병이 낫는다”고 적혀 있다. 한국 최초 백과사전인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우리나라에 많은 초수가 있지만 경기도 광주와 청주 초수가 가장 유명하다’고 소개한다. 시는 축제 기간 관람객 편의를 위해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시내버스 임시노선을 운행한다. 청주체육관 버스정류장, 청주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 청주문화원에서 출발하는 3가지 코스다. 지난해 열린 12회 축제에는 7만 2300여명이 다녀갔다. 부스 운영으로 1억 7446만원 상당의 농축산물을 판매했다. 한범덕 청주시장은 “조선 르네상스를 실천한 세종대왕을 본받고, 초정약수의 브랜드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축제를 열고 있다”며 “초정행궁 조성과 연계된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청주권 대표 문화자원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In&Out] 끝나지 않는 사육곰의 비극/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

    [In&Out] 끝나지 않는 사육곰의 비극/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

    우리나라 지리산과 수도산 일대에는 60여 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살고 있다. 흙을 밟고 숲을 누비며 살아가는 이 곰들은 귀한 대접을 받는 멸종위기종 복원 개체들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곰들도 있다. 바로 525마리의 웅담 채취용 사육곰이다. 이들 또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하지만 사육곰은 흙도, 숲도 누릴 수 없다. 좁은 철창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 사육곰의 비극은 1981년부터 시작됐다. 국가에서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곰 사육을 장려했고 곰 수입이 금지된 1985년까지 총 493마리의 곰이 재수출용으로 수입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곰 사육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과 멸종위기종인 곰 보호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곰 수입을 금지했다. 1993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 가입으로 수출마저 금지된다. 수출길이 막힌 농가의 손실 보전을 위해 1999년 24년 이상 곰의 웅담 채취를 합법화한다. 이 기준은 2005년 10년 이상으로 완화됐다.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멸종위기종인 곰들은 좁은 철창에서 웅담 채취용으로 시한부 삶을 살다가 결국엔 도축당하게 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웅담 채취를 위해 곰을 사육하는 게 합법인 나라는 중국과 우리나라뿐이다. 사육곰 산업 종식의 일환으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곰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이제 더이상 철창 안에서 태어나는 곰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500여 마리의 사육곰들이 남아 있다. 사육 환경은 나날이 열악해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사육장에선 곰 탈출 사고까지 일어나지만 시설 개선은 꿈도 꿀 수 없다. 사료와 물도 제대로 주지 않는 농가가 적지 않다. 다치거나 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을 수 없다. 머리를 빙빙 돌리거나, 제자리를 도는 등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 행동을 보이는 곰들도 많다. 정부는 개인 재산이라는 이유로,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고통 속에 방치하고 있다. 정부가 책임을 미루는 이 순간에도 사육곰들의 고통은 하루씩 연장되고 있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우리와 달리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는 사육곰을 위한 ‘생추어리’를 운영하고 있다. 생추어리는 밀렵이나 불법으로 사육되는 곰들을 구출해 치료와 재활을 돕는 보호시설이다. 우리나라와 함께 웅담 채취가 합법인 중국도 사육곰 생추어리가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국가가 부지를 제공해 곰을 위한 생추어리를 만들어 사육곰들이 남은 삶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도록 돕고 있다. 정부가 말하는 사육곰 산업 종식이 철창 속 생명이 모두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동물복지 인식이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사육곰의 인도적 관리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에는 수백억원을 쏟아부으면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고통받는 사육곰을 위한 보호시설 하나 없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

    어릴 적 우리 집 뒤엔 관악산이 있었고 주말이면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 너무 어릴 때의 기억이라 그저 아버지와 관악산에 자주 갔었다는 것과 아버지와 손을 잡고 내려오던 산에선 향기로운 꽃향이 났었다는 것, 그 산에는 동그란 잎이 여러 개 달린 가지의 나무가 많았다는 기억만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때 이사 가기 전까지 종종 우리 가족은 산에 올랐고, 부모님은 내가 기억하는 그 나무를 아카시아라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먹는 꿀이 바로 이 아카시아로부터 나는 것이라는 것까지도. 그때 왜 그렇게 산에 아카시아가 많은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저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것이겠지. 생물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은 의미 없다 생각했다. 아카시아 이름에 관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해 수목학 수업을 들으며 1900년대 초에 도입돼 1970년대까지 전쟁이 끝나 황폐해진 산을 복구하기 위해 자라는 속도가 빠른 아카시아를 도심의 산에 심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그 나무의 이름이 내가 부르던 아카시아가 아닌 아까시나무라는 것은 꽤나 충격이었다.아까시나무. 관악산을 뒤덮고 있던 향기로운 그 꽃향의 나무는 아까시나무였고 아카시아는 전혀 다른 식물이었다. 둘 다 콩과이긴 하지만 우리 산에 많은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흰 꽃을 피우는 식물이고, 아카시아는 호주와 아프리카 원산의 노란 방울 모양의 꽃이 핀다. 요즘 플라워 디자인용 절화로 많이 이용하는 미모사나무가 바로 아카시아속 식물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이름부터 잘못 불린 아까시나무는 1891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 지내왔다. 해방 이후 산에 나무가 없어 흙만 보여 붉은 산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의 산에 1970년대까지 생장 속도가 빠른 이들을 식재해 왔으나 1980년대 이후에 일제의 잔재라거나, 다른 식물의 생육을 방해한다거나, 뿌리가 관을 뚫고 들어간다는 등의 잘못된 이론으로 한동안 우리 숲에 유해한 나무로 인식돼 왔다. 오해를 풀자면, 이들은 일제 식민지 정신을 새기기 위해 심어진 식물도, 일본 원산의 식물도 아니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세계적으로 이미 관상용이나 사방 조림용으로 많이 식재되던 종이다.그리고 햇빛을 좋아해 이미 숲을 이룬 곳은 들어가지 못하고, 콩과 식물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가 땅에 질소를 공급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다른 나무의 생육을 방해한다는 건 틀린 이야기이고, 뿌리가 땅속으로 얕게 퍼져나가는 형태라 묘지의 관 깊이까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관을 뚫는다는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뿌리가 왕성하게 자라 토양을 잡아주면서 산사태를 막아준다. 게다가 이들은 꿀을 만들어 주는 대표적인 밀원식물이다. 우리나라 꿀의 80%가 아까시나무 꿀인데, 그동안의 오해로 아까시나무 개체수가 줄면서 우리나라 양봉업계에 위기가 불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산림청은 2016년부터 아까시나무 조림 사업을 다시 시작했고, 이들 기능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도 애쓰고 있다. 불과 수십년 만에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실현시킨 우리나라 곳곳의 아까시나무, 그 외의 또 다른 식물들, 산림 인재와 기술 등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나무를 심고 있다. 몽골, 중국, 카자흐스탄 등 세계의 산림 관계자들이 우리나라에 와 사막과 도시를 숲으로 만들 기술을 배우고자 하고, 우리는 북한과 협력해 북한 산림을 푸르게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격년 주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산림 관계자들이 모여 산림 과제와 해결 방안을 도모하는 회의인 아태산림주간이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건 그래서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주 이 회의에서 진행할 세밀화 강의를 위해 들렀던 산림청에서 직원 중 한 분이 몽골 사막 조림 사업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식물, 동물과 같이 살아 있는 생물을 다루는 일이란 국경을 넘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우리와 이어진 어느 땅이 푸르러진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이 있을까. 먼 훗날 사막에서 숲으로 변할 몽골에서, 미래의 어느 아이가 이 숲의 나무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 궁금해한다면 좋겠다. 그러면 누군가 아이에게 먼 옛날 어느 먼 곳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 나무를 심어 주었다고 이야기하겠지. 지금 우리가 보는 저 산의 아까시나무도 수십년 전 누군가 심은 수고와 희망의 씨앗이었음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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