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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5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일개 갖바치에 불과한 피장에게 ‘학문에 관해 묻거나 같이 자면서 시국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은 이긍익(李肯翊)이 편찬한 사서 ‘연려신기술(燃藜室記述)’에도 나오고 있는데,어쨌든 뛰어난 인물이면 상민이건 천민이건 첩의 자식인 서얼이건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발탁하여 등용하자는 조광조의 신분철폐사상으로 인해 그런 파격적인 일화가 싹틀 수 있었던 것이다. 조광조가 그 수수께끼의 피장에 관한 소문을 들은 것은 1년 전인 중종 13년 봄이었다.이 무렵 조광조는 부제학이었는데,과거제도를 시험으로 뽑지 않고 추천으로 하는 천거과(薦擧科)로 뽑자고 공식적으로 발의하고 있었던 것이다.조광조는 이 혁신적인 제도를 발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땅이 작아 본래 인물이 적은 데다 여기에 또 서얼과 사천(私賤)을 분별하여 그들을 쓰지 않습니다.중국에서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오직 고루 쓰지 못함을 걱정하고 있는데,어찌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시행조차 못하고 있나이까.” 결국 조광조는 현실의 벽이 너무 두꺼웠으므로 어쩔 수 없이 천거의 대상을 양반계층에만 국한시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조광조와 일개 갖바치와의 이러한 파격적인 우정은 조광조가 얼마나 신분보다는 인물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도성 안 수표교 근처에 남다른 인격을 지닌 피장 하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조광조는 하인을 데리지 않고 홑몸으로 그 피전을 방문하였다.작은 점방 안에는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가죽으로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그 갖바치가 문리까지 틔어 사물의 조리를 깨달아 모르는 것이 없다는 소문이어서 조광조는 일부러 변복을 하고 점방을 찾았던 것이었다. “어인 일로 오셨나이까.” 짐승의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갖바치가 조광조를 보고 물어 말하였다.이에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대가 가죽을 잘 다룬다고 하니 가죽 다루는 솜씨를 보러왔네.” 난데없는 조광조의 대답에 힐끗 조광조를 일별하고 나서 갖바치는 한참을 말없이 가죽을 다뤄 물건을 만들 뿐이었다.한참동안 묵묵히 일만 하던 갖바치가 오랜 후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하오면 가죽의 겉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습니까,아니면 가죽의 속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습니까.” 갖바치의 질문에 조광조는 뜨끔하였다.속마음을 들킨 때문이었다.피전 안에는 갖바치가 용도에 따라 쓰는 가죽들이 매달려 있었다.쇠가죽과 돼지가죽,거북이가죽과 뱀가죽. 그뿐인가. 염소가죽과 두꺼비가죽도 걸려 있었다.갖바치의 말은 단순한 것 같지만 깊은 뜻을 담고 있었다.이를테면 쇠가죽은 겉으로만 보면 소의 가죽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쇠가죽의 속을 보면 그것은 소의 가죽이 아니라 소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뱀가죽은 겉으로 보면 뱀의 가죽에 지나지 않지만 뱀가죽의 속을 보면 그것은 뱀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가죽의 겉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는가, 아니면 가죽의 속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는가.’라는 갖바치의 질문은 조광조가 이곳에 다만 자신을 미천한 갖바치로서 가죽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온 것이냐,아니면 겉은 갖바치이지만 속마음,즉 자신의 진면(眞面)을 보러온 것이냐고 묻는 일종의 준엄한 선문이었던 것이었다.이에 조광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대를 찾아온 것은 피리를 보기 위함이오.” 피리(皮裏).이는 가죽의 내부,즉 심중을 가리키는 말로 내가 찾아온 것은 가죽 다루는 솜씨가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라는 선답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갖바치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오면 나으리께오서는 양추(陽秋)를 보러 오셨소이다 그려.”˝
  • 儒林(5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58)-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일개 갖바치에 불과한 피장에게 ‘학문에 관해 묻거나 같이 자면서 시국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은 이긍익(李肯翊)이 편찬한 사서 ‘연려신기술(燃藜室記述)’에도 나오고 있는데,어쨌든 뛰어난 인물이면 상민이건 천민이건 첩의 자식인 서얼이건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발탁하여 등용하자는 조광조의 신분철폐사상으로 인해 그런 파격적인 일화가 싹틀 수 있었던 것이다. 조광조가 그 수수께끼의 피장에 관한 소문을 들은 것은 1년 전인 중종 13년 봄이었다.이 무렵 조광조는 부제학이었는데,과거제도를 시험으로 뽑지 않고 추천으로 하는 천거과(薦擧科)로 뽑자고 공식적으로 발의하고 있었던 것이다.조광조는 이 혁신적인 제도를 발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땅이 작아 본래 인물이 적은 데다 여기에 또 서얼과 사천(私賤)을 분별하여 그들을 쓰지 않습니다.중국에서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오직 고루 쓰지 못함을 걱정하고 있는데,어찌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시행조차 못하고 있나이까.” 결국 조광조는 현실의 벽이 너무 두꺼웠으므로 어쩔 수 없이 천거의 대상을 양반계층에만 국한시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조광조와 일개 갖바치와의 이러한 파격적인 우정은 조광조가 얼마나 신분보다는 인물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도성 안 수표교 근처에 남다른 인격을 지닌 피장 하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조광조는 하인을 데리지 않고 홑몸으로 그 피전을 방문하였다.작은 점방 안에는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가죽으로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그 갖바치가 문리까지 틔어 사물의 조리를 깨달아 모르는 것이 없다는 소문이어서 조광조는 일부러 변복을 하고 점방을 찾았던 것이었다. “어인 일로 오셨나이까.” 짐승의 가죽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갖바치가 조광조를 보고 물어 말하였다.이에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대가 가죽을 잘 다룬다고 하니 가죽 다루는 솜씨를 보러왔네.” 난데없는 조광조의 대답에 힐끗 조광조를 일별하고 나서 갖바치는 한참을 말없이 가죽을 다뤄 물건을 만들 뿐이었다.한참동안 묵묵히 일만 하던 갖바치가 오랜 후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하오면 가죽의 겉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습니까,아니면 가죽의 속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습니까.” 갖바치의 질문에 조광조는 뜨끔하였다.속마음을 들킨 때문이었다.피전 안에는 갖바치가 용도에 따라 쓰는 가죽들이 매달려 있었다.쇠가죽과 돼지가죽,거북이가죽과 뱀가죽. 그뿐인가. 염소가죽과 두꺼비가죽도 걸려 있었다.갖바치의 말은 단순한 것 같지만 깊은 뜻을 담고 있었다.이를테면 쇠가죽은 겉으로만 보면 소의 가죽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쇠가죽의 속을 보면 그것은 소의 가죽이 아니라 소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뱀가죽은 겉으로 보면 뱀의 가죽에 지나지 않지만 뱀가죽의 속을 보면 그것은 뱀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가죽의 겉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는가, 아니면 가죽의 속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 오셨는가.’라는 갖바치의 질문은 조광조가 이곳에 다만 자신을 미천한 갖바치로서 가죽을 다루는 솜씨를 보러온 것이냐,아니면 겉은 갖바치이지만 속마음,즉 자신의 진면(眞面)을 보러온 것이냐고 묻는 일종의 준엄한 선문이었던 것이었다.이에 조광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대를 찾아온 것은 피리를 보기 위함이오.” 피리(皮裏).이는 가죽의 내부,즉 심중을 가리키는 말로 내가 찾아온 것은 가죽 다루는 솜씨가 아니라 그대의 마음이라는 선답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갖바치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오면 나으리께오서는 양추(陽秋)를 보러 오셨소이다 그려.”
  • [책꽂이]

    ●봄바람(박상률 지음,사계절 펴냄) 시·희곡·소설 등 다방면의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의 성장소설.60년대말 남도의 농어촌을 배경으로 13살 소년의 꿈·호기심·모험·짝사랑 등 통과의례를 통해 세상과 자아에 눈떠가는 과정을 아련히 보듬고 있다.8000원. ●어머니(이선관 지음,선 펴냄) “이제 나도 서정시를 쓰고 싶다.”고 할 만큼 현실에 참여해온 시인의 작품 가운데 99편을 모았다.한평생 마산을 지키며 써온 군더더기 없는 환경·생태시 등은 시대를 앞선 혜안을 보여준다.9000원. ●그 사랑이 나를 부르네(김상옥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자신의 절절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하얀 기억 속의 너’로 화제가 된 작가가 낸 실화소설.3대째 무병에 걸린 미스코리아 출신 여인의 사랑과 출생 비밀을 다룬다.8500원. ●바람의 나라(김진 지음,제이북 펴냄) 12년 동안 21권의 만화로 출간돼 인기를 누리며 게임·뮤지컬로 소개된 작품이 소설로 나왔다.고대사를 배경으로 신화·인간의 세계를 팬터지 기법으로 처리.모두 2권,각권 9000원. ●쾌걸 조로(존스턴 매컬리 지음,김정미 옮김,황금가지 펴냄)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 여러 버전으로 나온 조로의 모험담.아동용이나 해적판이 아닌 첫 완역본.19세기 스페인 지배하의 미국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권선징악과 로맨스가 줄거리.9500원. ●테이블(프랑시스 퐁주 지음,허정아 옮김,책세상 펴냄)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시인의 유작.‘사물의 시인’으로 불릴 만큼 감정을 아끼고 가장 객관적 언어로 사물을 형상화한 시인의 작품세계가 잘 묻어난다.테이블의 눈길로 테이블을 일기처럼 그린다.4900원. ●제발 조용히 좀 해요(레이먼드 카버 지음,손성경 옮김,문학동네 펴냄) 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 붐을 주도한 작가의 첫 작품집.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을 통해 섬뜩하면서도 단순한 정체성을 그리면서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을 담았다.1만 1000원.˝
  • “경주 ‘나정’은 신라 신궁터”

    사적 제245호 경주 나정(蘿井)유적에서 신라시대의 제사시설로 보이는 팔각건물터가 발견된 데 이어 이번에는 내부에서 원형건물터가 확인됐다. 신라 제2대 남해왕 때 시조인 박혁거세의 묘를 세우고,제22대 지증왕 때 시조가 탄강(誕降)한 나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지어 제향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완전히 일치한다. 나정 유적을 발굴조사중인 중앙문화재연구원(원장 윤세영)은 “팔각건물터는 신성시되던 원형유구를 국가적 차원에서 확장하고 정비한 흔적”이라면서 “나정은 혁거세가 태어난 신궁터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24일 밝혔다. 나정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박혁거세의 탄강신화가 깃든 곳으로 알려져 지난 1975년 사적 제245호로 지정됐다.이병도 박사 등은 나(奈)와 나(蘿)는 신라의 라(羅)처럼 ‘나라’를,나을의 을(乙)은 우물(井)의 옛말인 ‘얼’을 나타낸다고 풀었다.나라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나을은 곧 나정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이견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02년 나정의 성격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 발굴조사 결과 한 변 8m,지름 20m짜리 신라시대 팔각건물터를 확인하여 신궁터일 가능성을 높였다. 이어 지난해 6월 이후 추가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팔각건물터의 내부에서 지름 14m,너비 2m 안팎의 원형건물터를 다시 찾아내 나정이 곧 신궁으로 기정사실화됐다. 한편 팔각건물터와 원형건물터의 복판에서는 각각 우물터가 발견됐다.팔각건물을 새로 지으면서,원형건물의 우물은 흙으로 메우고 우물을 상징하는 구덩이를 중앙에 다시 만들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NGO 플러스] 물 관련 정책 7대 개혁과제 선정

    환경운동연합(www.kfem.or.kr)은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물 관리 체제의 일원화’ 등 물 관련 정책 7대 개혁과제를 선정,발표하고 정부에 지속가능한 물 이용과 관리방안 마련을 촉구했다.환경운동연합은 “우리나라의 물 정책은 7개 이상의 부처가 24개 이상의 법률에 근거해 집행하고 있어 물 관리의 중복과 낭비가 심하다.”면서 “중앙집권적 행정을 시민이 참여하는 지역중심으로 물 정책 방향이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물의 날’ 특별기고] 이제는 물 사랑으로/곽결호 환경부장관

    고향마을을 흐르던 실개천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넉넉히 담고 있다.가난한 동심(童心)에게는 뗄 수 없는 생활의 일부이기도 했다.환경과 자연과 인간의 삶이 동격이었던 그 시절,이른 봄이면 개천가에 휘늘어진 갯버들 가지에서 솜처럼 피어난 버들강아지를 따기도 했고,여름철에는 냇가의 돌을 뒤져 뒷걸음치는 가재를 잡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환경체험학습의 프로그램처럼 여겨질 이 풍경은 놀다 지친 어린아이의 한가로운 일상이 아니라 빈곤했던 시절의 절박한 생활상이었다.먹을 것이 흔치 않던 때,통통한 버들강아지는 한입 가득 넣어 껌 삼아 씹던 좋은 군것질거리였고,가재는 별스러운 도시락 반찬이 되었으니 말이다. 문 밖을 나서면 깨끗한 자연환경이 아이를 감싸안았다.그 시절엔 지천의 물이 모두 우리 집 수도였다.즉석에서 길어 올린 우물물로 갈증을 달래고 밥을 지었으며,날이 가물어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면 계곡 물을 길어서 식수로 사용했다.그래도 건강에는 아무 탈이 없었다.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물의 위생을 걱정해야만 했다.한여름에 장마가 져서 말랐던 우물에 빗물이 가득 차면,정부에서 나누어 준 ‘클로르칼크’라는 소독약으로 우물을 소독해 써야 했으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물은 수질과 수량의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충족될 때 최고의 가치를 발한다.둘 다 나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의 경우이고,물은 넉넉한데 수질이 나쁜 것도,또 깨끗한 물은 있으되 양이 넉넉하지 못한 것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부는 좋은 수질의 물을 넉넉하게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고 있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될수록 물을 오염시키는 물질은 그만큼 많이 배출되고 있다.게다가 강수량이 한 여름 장마철에 집중되고 하천의 경사가 급해 물 관리에 어려움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공급할 수 있는 수량이 매우 제한적이다. 물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물이 우리 모두의 공동 재산이라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확산되어야 한다.내가 마음껏 쓰고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양이 그만큼 줄어들 뿐 아니라 아름다운 물길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제12회 ‘세계 물의 날’이다.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잘 보전하자는 뜻에서 유엔이 정한 기념일이다.올해는 기상이변 등으로 빈번해지는 재해로부터 대처방법을 찾고자 ‘물과 재해’라는 주제를 정했다.요 근래 몇 년 동안 미국이나 인도,뉴질랜드,독일 등 지구촌 곳곳에서 홍수나 태풍과 같은 물 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우리도 지난 2년간 ‘루사’와 ‘매미’를 통해 물의 무서운 힘을 실감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는 수질과 수량,모두 안심할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그렇다고 해법의 고리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그동안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며 산업의 기본요소인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에 공급 위주의 정책을 펼쳐왔지만,이제는 물을 아끼고 재이용하는 등의 ‘물 수요관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매듭을 풀어 나가야 한다. 다행히 물은 본질적으로 같은 양이면서 순환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굽이굽이 돌아 언젠가는 제자리로 오는 것이 물이다.이제는 물 사랑의 마음자세로 현명하게 물을 관리할 때다.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한정된 물도 무한하게 쓸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곽결호 환경부장관˝
  • 세계의 환경도시를 가다/이노우에 도시히코등 엮음 / 유영초 옮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는 1950년대 전 세계인을 경악케 한 수은중독병인 미나마타병의 발생지다.미나마타의 수질오염이 알려지자 어업뿐만 아니라 이 고장 특산물과 농작물의 판매도 큰 타격을 입었다.주민들간의 불신과 반목 또한 심각한 문제였다.미나마타병 환자들에 대한 행정당국의 미온적인 대처,미나마타병 환자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갈등….하지만 94년 요시이 마사즈미 시장이 취임하면서 사정은 조금씩 달라졌다.그는 시장으로선 처음으로 당국의 미나마타 대책을 사과하고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미나마타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제3차 미나마타시 종합계획’에 따라 전통상품 기능보유자를 인증하고 그 상품을 특산품으로 홍보하는 ‘환경 마이스터 제도’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환경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오염 악명’ 극복한 환경도시 소개 ‘세계의 환경도시를 가다’(이노우에 도시히코 등 엮음,유영초 옮김,사계절 펴냄)는 이처럼 공해와 자연파괴의 ‘마이너스 역사’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에코 타운으로 거듭난 환경도시들을 소상히 소개한다. 악명 높은 공해도시에서 세계적인 환경도시로 변모한 곳으로 남북전쟁 격전지였던 미국 테네시주의 채터누가시를 빼놓을 수 없다.‘테네시 계곡 개발공사’로 유명한 테네시 강가에 위치한 채터누가시는 일찍이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인해 미국 남부의 산업중심지가 됐다.수많은 굴뚝은 매연을 내뿜었고,거리는 스모그로 뒤덮여 밖을 걸어 다니면 금방 셔츠가 더러워질 정도였다.1969년 채터누가시는 미국 환경보호국에 의해 ‘미국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거리’로 선정되는 오명을 안았다. ●“7대손을 생각하고 결정하라” 이에 채터누가시는 대기오염억제국을 설치하고 각 공장에 배출가스를 억제하는 필터장치를 두도록 의무화했다.길이가 1.2㎞로 세계에서 가장 긴 보행자 전용다리인 ‘월넛 스트리트교’가 풀뿌리 시민단체들의 도움으로 다시 개통됐고,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시내에 차를 들여놓지 않는 ‘파크 앤 라이드’ 방식도 채택됐다.채터누가시는 1996년 마침내 유엔으로부터 ‘환경과 경제발전을 양립시킨 도시’로 상을 받는 등 환경도시의 모델이 됐다.‘7대손을 생각하고 결정하라’.채터누가 원주민인 체로키 인디언들이 남긴 이 지혜의 말은 이 지역 사람들에겐 금과옥조다. ●‘바람의 길’ 터 숨쉬는 도시로 ‘바람의 길’을 만들어 도시의 숨통을 틔운 슈투트가르트시도 주목할 만한 환경도시다.1930년대 슈투트가르트는 독일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곳이었다.아이로니컬한 것은 이 도시가 오염물질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문제는 바람이었다.슈투트가르트는 3면이 구릉으로 둘러싸인 분지인데다 바람마저 없어 오염된 공기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했다.때문에 시에선 바람을 도시 안으로 끌어들이는 ‘바람 계획’이 필요했다.시는 바람의 흐름을 막는 지형과 건물을 제한하고,키 큰 나무를 촘촘히 심어 ‘바람 길’과 ‘공기 댐’을 조성했다.슈투트가르트는 대기오염 문제를 이처럼 과학적으로 풀어갔다.‘바람 길’은 시간당 1억3000㎥의 신선한 공기를 도심으로 흘려 보내고,바람을 생산하는 숲은 시민들에게 멋진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바람 길을 내어 도시가 숨쉬게 하는 이 ‘외과수술적’ 방식은 환경도시로 알려진 프라이부르크를 비롯해 뮌헨,카셀 등의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책은 이밖에 폐광촌에 생명의 씨앗을 뿌린 영국의 생태테마공원 CAT,국토의 40%를 차지하는 원시림을 보존하고 생태관광을 통해 중미 최고의 부자나라가 된 코스타리카 등의 환경대책 등도 살펴본다. ●무조건적 개발보단 환경우선 정책을 세계는 ‘환경전쟁’중이다.‘미나마타 문제’를 겪은 일본에선 ‘시’보다 작은 ‘구’단위 자치단체까지 환경도시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개발과 재개발,난개발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혹자는 “도시가 미쳤다.”고 말한다.낙후된 지방을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행정수도’ 건설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들기 위해선 국가를 대표할 만한 ‘환경수도’가 정착돼야 한다.독일이나 일본에서 실시하고 있는 ‘환경수도 콘테스트’ 같은 환경운동은 그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9800원. 김종면기자 jmkim@˝
  • 儒林(48)-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가 쓴 답안의 서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가 전하께서 내신 문제 가운데서 ‘공자께서 내가 등용이 된다면 단 몇 개월이라도 가하지만 적어도 3년이면 정치를 통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다.’하는 데서부터 ‘쉽게 논할 수는 없다.’는 곳까지를 삼가 엎드려 읽어보았습니다. 무릇 한 사람에서 천만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으며,한 가지 일에서 천만가지 일에 이르기까지 그 일이 실로 복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마음(心)’이라는 것과 ‘도(道)’라는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가 아닌 것이 없는 법입니다.그러므로 천만의 사람과 천만의 일들이 비록 서로 다르고 복잡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관통하는)도와 마음이 하나인 것은 하늘의 근본 이치란 원래 하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천하를 함께한다는 가르침으로써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이끌고 천하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감화시키면 천하의 마음도 내 마음의 올바름에 감화되어 감히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으며,이를 나의 도리로 인도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이 가르침의 크고 넓음에 감화되어 선한 데로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므로 나의 도리와 마음이 성실한가,못 한가에 따라 나라가 잘 다스려질지 아닐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도는 천지의 도이며,공자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그러므로 천지의 도와 만물의 마음은 모두 공자의 도를 따라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으며,천지의 마음과 음양(陰陽)의 감응(感應)도 역시 이 공자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조화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공자의 사상이야말로 ‘천지의 도’임을 역설함으로써 답안을 시작한 조광조의 긴 문장을 모두 전재할 수는 없으나 조광조의 정치관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만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법도를 정하고 기강을 세우려면 대신을 공경하고 그에게 정치를 위임해야만 합니다.그래서 반드시 대신을 임명하고 그에게 정치실무를 위임해야만 정치의 근본이 서는 것입니다.비유하자면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행한다 하나 사계절의 운영이 없다면 만물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떠맡는다 하더라도 대신들의 보좌가 없다면 어떠한 교화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아니 교화가 이루어지지 못할 뿐이 아닙니다.하늘이 스스로 행하고 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맡는 것은 하늘이 되고 임금이 되는 도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대신을 그 자리에 임명하셨으면서도 그들에게 단지 문구나 따지는 사소한 일만 맡기고 소인배들의 말만 믿고 대신들을 믿지 않으신다면 위로는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도리를 구할 수 없으며,아래로는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그러면 군신의 도리는 사라질 것입니다.그러므로 옛날에 성군들과 현명한 재상들은 반드시 정성스러운 뜻을 다하여 서로를 믿고 또 서로가 해야 할 바를 다했기 때문에 군신이 함께 노력하여 광명정대한 큰 공업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엎드려 비옵건대 전하께오서도 진실로 대신들을 공경하시고 그들에게 정치 실무를 위임하시어 기강과 법도를 세우시고 정하시어 훗날 나라를 다스리는 커다란 근본이 되어 큰 법도가 행하여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자신의 정치사상인 치지주의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것은 군왕 스스로 정치적 모럴에 충실한 도덕성 재확립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림으로서의 주장이었다. “제대로 배운 것이 없어 거칠고 무식한 제가 어찌 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공자께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도를 밝히는 것(明道)’에 지나지 않으며 ‘학문하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라도 늘 삼가는 것(謹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이 ‘명도’와 ‘근독’ 두 가지를 가지고 전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광조는 마침내 군왕이 갖춰야 할 군자로서의 두 가지 덕목인 ‘명도’와 ‘근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기 시작한다.˝
  • 儒林(48)-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48)-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가 쓴 답안의 서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가 전하께서 내신 문제 가운데서 ‘공자께서 내가 등용이 된다면 단 몇 개월이라도 가하지만 적어도 3년이면 정치를 통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다.’하는 데서부터 ‘쉽게 논할 수는 없다.’는 곳까지를 삼가 엎드려 읽어보았습니다. 무릇 한 사람에서 천만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으며,한 가지 일에서 천만가지 일에 이르기까지 그 일이 실로 복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마음(心)’이라는 것과 ‘도(道)’라는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가 아닌 것이 없는 법입니다.그러므로 천만의 사람과 천만의 일들이 비록 서로 다르고 복잡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관통하는)도와 마음이 하나인 것은 하늘의 근본 이치란 원래 하나이기 때문인 것입니다.천하를 함께한다는 가르침으로써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이끌고 천하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감화시키면 천하의 마음도 내 마음의 올바름에 감화되어 감히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으며,이를 나의 도리로 인도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이 가르침의 크고 넓음에 감화되어 선한 데로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므로 나의 도리와 마음이 성실한가,못 한가에 따라 나라가 잘 다스려질지 아닐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도는 천지의 도이며,공자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그러므로 천지의 도와 만물의 마음은 모두 공자의 도를 따라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으며,천지의 마음과 음양(陰陽)의 감응(感應)도 역시 이 공자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조화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공자의 사상이야말로 ‘천지의 도’임을 역설함으로써 답안을 시작한 조광조의 긴 문장을 모두 전재할 수는 없으나 조광조의 정치관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만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법도를 정하고 기강을 세우려면 대신을 공경하고 그에게 정치를 위임해야만 합니다.그래서 반드시 대신을 임명하고 그에게 정치실무를 위임해야만 정치의 근본이 서는 것입니다.비유하자면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행한다 하나 사계절의 운영이 없다면 만물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떠맡는다 하더라도 대신들의 보좌가 없다면 어떠한 교화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아니 교화가 이루어지지 못할 뿐이 아닙니다.하늘이 스스로 행하고 임금이 스스로 정치를 다 맡는 것은 하늘이 되고 임금이 되는 도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대신을 그 자리에 임명하셨으면서도 그들에게 단지 문구나 따지는 사소한 일만 맡기고 소인배들의 말만 믿고 대신들을 믿지 않으신다면 위로는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도리를 구할 수 없으며,아래로는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그러면 군신의 도리는 사라질 것입니다.그러므로 옛날에 성군들과 현명한 재상들은 반드시 정성스러운 뜻을 다하여 서로를 믿고 또 서로가 해야 할 바를 다했기 때문에 군신이 함께 노력하여 광명정대한 큰 공업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엎드려 비옵건대 전하께오서도 진실로 대신들을 공경하시고 그들에게 정치 실무를 위임하시어 기강과 법도를 세우시고 정하시어 훗날 나라를 다스리는 커다란 근본이 되어 큰 법도가 행하여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자신의 정치사상인 치지주의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것은 군왕 스스로 정치적 모럴에 충실한 도덕성 재확립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림으로서의 주장이었다. “제대로 배운 것이 없어 거칠고 무식한 제가 어찌 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공자께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도를 밝히는 것(明道)’에 지나지 않으며 ‘학문하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라도 늘 삼가는 것(謹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이 ‘명도’와 ‘근독’ 두 가지를 가지고 전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광조는 마침내 군왕이 갖춰야 할 군자로서의 두 가지 덕목인 ‘명도’와 ‘근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기 시작한다.
  • [사설] 엉터리 수돗물 검사 사실인가

    울산시가 시민들이 먹는 수돗물의 수질검사 수치를 조작하거나 시료를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엉터리 검사 보고를 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그렇잖아도 국민 100명중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은 1명뿐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는데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큰일이다.이제 그 1명마저도 수돗물에 등을 돌린다면 우리나라의 상수도 업무는 간판을 내려야 할 판 아닌가. 보도를 보면 정수장 검사가 가장 엉망으로 밝혀졌다.기준치를 넘긴 오염 수치를 기준치 이하로 축소 조작하거나 다른 정수장 물을 시료로 사용한 결과를 환경부에 보고했다고 한다.원수로 쓰는 지하수의 발암물질 검출까지 은폐했다니 정수인들 제대로 했을까 의심스럽다.직접 먹는 수돗물 수질 검사는 더 한심하다.대학교수에게 검사를 의뢰해 놓고 상당수 항목을 직접 검사하거나 수치를 조작해 모든 항목이 기준치 이하라고 홍보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상급자들이 수치조작을 지시했으며 수질 검사 담당 연구사들은 불이익이 두려워 이를 따랐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국민 건강에 직결된 막중하고도 엄숙한 업무를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로 그르치고 있는 일선 공무원들의 행태에 어안이 벙벙해 질 따름이다. 울산시와 환경부 등 관련 당국은 철저한 조사로 의혹을 가려야 한다.사실이라면 사법처리를 포함,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연구사들이 전국적인 관행임을 주장하고 있는 대목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차제에 제3의 은폐 조작은 없는지 전국적인 실태 점검을 통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수돗물 불신은 투명하지 못한 수질 행정 때문이라는 점을 당국은 다시 한번 명심해 주기 바란다.˝
  • [씨줄날줄] 한 지휘자의 이중성/김인철 논설위원

    “(충남 연기군의 한)시골극장에 들어섰는데 최신식 건물에다 우아한 객석의자까지 무대시설과 더불어 완벽한 시설에 또 한번 우리나라의 양적 문화발전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서울팝스)의 음악총감독 겸 상임지휘자인 하성호씨가 몇해 전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그는 이 글에서 “딴 세상에 온 것 같다.”는 한 촌로(村老)의 한마디는 지휘자로서 자부심과,관객에 대한 존경과 감동을 느끼게 했다고 격찬했다. 하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 서울팝스를 창단한 이후 1900회가 넘는 연주회를 여는 등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선도해온 인기 지휘자.그런 하씨가 말문이 막히고 억장이 무너지게 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다.“한국 사람들은 박수를 안 친다.한국은 반만년 역사 동안 한번도 승리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5일 로스앤젤레스) “한국은 5000년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미국은 200년 짧은 역사 동안 훨씬 많은 것을 이룩해냈다.”(6일 샌디에이고).음악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린다는 취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팝스의 미국 순회공연 중 나온 말들이다.참으로 하씨 자신의 발등을 찍는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 모멸감을 준 실언이 아닐 수 없다.하씨의 변명이 더욱 가관이다.통역 없이 짧은 영어로 청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는 마음이 앞선 탓에 적절치 못한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는 것.버클리음대와 템플음대,필라델피아 콤즈음대 등에서 공부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10여년간 미국생활을 한 그의 영어 탓은 더욱 어처구니없다. 이번 공연에 문화관광부는 2억원을 지원하며 후원명칭을 사용토록 했다.한국관광공사도 1억원,몇몇 기업체가 모두 8억원을 지원했다.정부 주최 공연이나 다름없다.그런 행사에서 “미국이 최고다.음악은 미국에서 온 거다.미국이 한국에 음악 및 다른 것들을 전파해줘서 고맙다.”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천시하는 인사말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도 정부 차원의 엄정한 조치가 없다면 이게 나라꼴인가.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약소민족을 억압하던 식민지 경영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그 대신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에 대해 갖는 비굴한 의존성과 닮고 섬기려는 사대주의는 식민지시대보다도 훨씬 더 자발적이다.” 박완서씨가 일찍이 ‘내 안의 언어사대주의’를 책망하며 내뱉은 일갈이 가슴을 친다. 김인철 논설위원˝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상상의 골프장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서는 지난해 전국 골프장의 이용객 수를 발표했다.대중 골프장을 포함한 전국 골프장을 이용한 연인원은 1511만 5577명으로 국내 골프 100년 사상 신기원을 열었다.이 수치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지난해 관중수 272만여명의 6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다.골프가 대중스포츠로 자리매김한 사실은 기쁘기 한량없지만,골프장의 수요에 견줘 공급이 턱없이 달린다는 사실은 큰 슬픔이었다. 골프장 이용객은 지난 1992년 처음으로 500만명을 돌파한 뒤,99년에 1000만명이라는 숫자를 기록했다.2003년에는 1500만명으로 기록을 경신했다.500만명이 증가하는 기간이 7년에서 4년으로 절반가량 단축됐다는 계산이다. 최근 정부가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특소세 등을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어서 골프인구 증가세는 가속이 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 골퍼의 숫자가 대략 100만명이라고 한다.지난해 골프장 이용 연인원이 1500만명이라면,골퍼 1인당 1년에 15라운드를 한 셈이다.이는 대단히 보잘것 없는 수치다.골퍼들이 라운드할 골프장이 부족했고,부족하다 보니 문턱이 높았다는 결론이다. 한국에는 미착공했거나 건설 중인 골프장은 회원제가 172곳이고 대중골프장은 90곳이며,운영중인 골프장은 회원제가 126곳이고 대중골프장이 55곳이다.현재 2000여개의 골프장이 내장객을 맞는 일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우리나라는 골프장 기근국가다. 골프인구 증가에 발맞추어 골프장을 증설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회원권 가격은 높아지고 부킹은 더 어려워지고 그린피 또한 만만치 않게 비싸질 것이다. 외국의 달력에서 본 골프장 그림이 생각난다.하늘에 떠있는 골프장이라고 할까.도심의 마천루 옥상에 잔디가 깔려 있다.그곳에 페어웨이와 그린이 있다.한 블록 떨어진 곳의 첨탑 같은 건물의 옥상에는 오로지 그린만 있다.마천루의 옥상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골프장인 것이다.공이 건물의 옥상에서 벗어나면 오비다.오비가 난 공을 찾고자 한다면 건물 아래까지 내려갔다와야 한다.다음 홀로 이동을 할 때도 헬리콥터를 이용하든지,행글라이더를 타고 날아가든지,영화속의 스파이더맨처럼 건물의 벽을 옮겨 다닐 수 없다면,63빌딩보다 더 높은 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옆 건물의 옥상으로 걸어 올라가야 할 것이다.물론 기상천외한 발상이 만든 가상의 골프장일 것이다.부킹은 어렵고 그린피는 비싸고 라운드에 불러주는 친구도 줄고….나는 머릿속에나마 상상의 골프장을 지어본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오픈코리아-소통하는 사회 만들자](3부)개방압력 파도 슬기롭게 극복을(하)-DDA협상 쟁점

    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는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농업·서비스·비농산물 분야에 대한 다자간 무역협상의 의제다.23개의 협상분야 가운데 논란이 되는 농업분야는 UR협정에 비해 강도높은 시장개방을 골자로 하고 있다.협상이 연내 일괄타결되면 내년 1월1일부터 발효된다. 우리 입장에서 협상의 쟁점은 수입농산물에 대한 관세율 인하와 정부보조(추곡수매 등)의 금지,의무도입 수입물량의 확대다.상대국 입장에서 보면 수출농산물이 한국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농산물(1448개)의 수입관세를 낮추고,한국이 농업보호를 위한 제도를 폐지하며,해마다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농산물의 양을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정부는 일본 등 우리나라와 농업현실이 비슷한 국가들과 연대해 국내농업의 취약성에 대해 이해를 구해가며 협상에 임한다는 전략이다.수출규모는 세계 12위지만,농산물 분야는 개도국 수준(곡물자급률 33%)이어서 보호가 필요하다는 데 근거한다.그러나 한계는 있다.협상대상 농산물 중에서 100%의 고율관세를 물리고 있는 수입농산물 비율이 미국은 2%,EU(유럽연합)는 3%,캐나다는 8%에 불과하나 우리나라는 10%에 이른다.무작정 버티기만도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 나일강 유역 10개국 아·전·인·수

    지구상에서 가장 긴 나일강의 물 배분을 둘러싸고 유역 국가들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이집트를 비롯해 탄자니아·케냐·에티오피아·부룬디·콩고·에리트레아·르완다·수단·우간다 등 10개국은 8일(현지시간) 우간다에서 나일강의 미래를 주제로 회담을 연다.쟁점은 어느 국가에 얼마만큼의 물을 할당토록 하느냐다.부룬디에서 발원하는 백(白)나일과 에티오피아에서 비롯된 청(靑)나일로 이뤄진 나일강은 10개국 1억 6000만명의 젖줄이다.나일강 외 물을 끌어다 쓸 곳이 없는 이집트를 비롯해 수단·에티오피아 등이 오랫동안 치열한 다툼을 벌여왔다. 분쟁이 계속되자 이 문제를 협상으로 풀자며 지난 99년 관련 10개국이 협의체 ‘나일강 유역 구상(NBI)’을 구성했지만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탄자니아·케냐·에티오피아 등은 NBI 주최로 열리는 이번 회담을 벼르고 있다.탄자니아는 나일강 발원지 중 하나인 빅토리아 호수에서 물을 끌어다 쓰겠다며 반발하고 있다.케냐는 이집트가 영국과 체결한 협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협정에 서명한 당사국도 아닌 데다 영국이 과거 식민통치국일 때 체결한 조약을 인정할 수도 없다.’는 게 이들 국가의 입장이다.에티오피아 역시 관개 사업을 계획하고 있어서 마찰이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나일강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고 있는 이집트는 강 수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전쟁도발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초강경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BBC방송 인터넷판이 7일 보도했다.이 때문에 이번 협상에서 나일강 물의 할당량 재배정이 아닌,낭비되는 물의 활용 방안 문제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나일강의 물을 거의 과점해 이용하는 나라는 이집트와 수단이다. 이집트는 1929년 동아프리카 일대 국가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식민지 국가들을 대표해 영국과 나일강 물의 이용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여기에서 이집트는 나일강 수위에 영향을 주는 개발사업에 대한 거부권 등 배타적 권리를 영국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이후 이집트는 58년 아스완댐을 지으면서 수단과 갈등을 빚자 이 권리를 이용,‘이집트는 수단까지 흐르는 830억㎥의 물 중 550억㎥를,수단은 180억㎥를 사용한다.’는 양국간 협정을 맺었다. 인접국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협정에 발끈한 에티오피아가 청나일강 유역에 댐 건설을 추진했고 또다시 분쟁이 빚어졌다.이집트는 물 공급 감소를 우려,에티오피아가 댐 건설용으로 도입하려는 해외차관 승인을 방해하는 등 사업을 저지해 왔다. 황장석기자 surono@˝
  • 총선 D-40 ‘후보자 역량 평가기준 정립’ 세미나

    4·15 총선이 6일로 40일 앞으로 다가왔다.부정부패·금권·지역주의 정치를 몰아내야 할 시간이 그만큼 남았다는 의미와 함께,유권자들이 어떤 후보를,어떤 잣대로 평가,선택해야 할지 꼼꼼히 살펴볼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서울신문이 반부패국민연대와 함께 벌이는 ‘국회의원,내손으로 점수매겨 내손으로 뽑는다!’ 투표참여 공동캠페인은 후보자의 정보를 정확히 공개함은 물론,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정보에 가중치를 두며 기존의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기준을 제공하고자 한다.이러한 흐름은 학계에서도 ‘후보 평가 모형 개발 노력’ 등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와 관련,정책분석평가사협회는 5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서울신문 후원으로 ‘17대 총선 후보자 정책역량 평가기준 정립 세미나’를 가졌다.세미나에서는 참석자들 사이에 후보의 자격과,자질,정책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 가능한지,또 가능하다면 그 잣대는 무엇일지 팽팽한 입장이 맞섰다. “단순 계량화의 우려가 크다.후보자들에 대한 기계적이건 종합적이건 평가는 쉽지 않다.” “부정부패 청산,정치개혁,도덕성 등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후보를 뽑을 수 있도록 종합적 평가가 필요하다.” 정치권 토론 참석자들과 학계·시민단체·언론계간의 입장은 ‘후보 평가의 당위성’은 물론 ‘우리 정치의 정책경쟁 도입 가능성’ 등에서 의견이 크게 갈렸다. ●정당의 정책차별화 부족…후보평가는 필요 발제자로 나선 경성대 송근원 교수는 “후보 평가모형을 제대로 만드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만 시민단체,학자들의 후보 평가는 다소 위험성이 있다.”고 전제한 뒤 “후보 평가모형은 후보들의 정책 입장을 확인하여 국민들에게 이를 알리는데 그쳐야지,평가자들의 잣대에 맞춰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후보 평가 이론으로 ▲‘미래약속이론’으로 정책,공약 평가 ▲‘보상처벌 이론’으로 과거의 잘잘못 평가 ▲후보 개인의 자질과 능력,도덕성 등 ‘후보자 특성이론’ ▲당선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표방지이론’으로 크게 나눠서 제시했다. 또 후보 개인과 함께 소속 정당의 평가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발제한 가톨릭대 이종원 교수는 “후보자의 정책 지향 및 능력은 정당활동과 연관지어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은 외국과 다르게 백화점식 정당이며 정책이 비슷비슷한 점이 유권자들의 정책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면서 “국가·민족·지역적으로 쟁점이 되는 현안들에 대해서는 정보제공적 입장에서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외국에서 후보평가지표 모형은 찾기 어려운,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치 상황이라고 보여진다.”며 정당간 정책 차별화가 부족한 현실을 강조했다. ●정당간 정책경쟁 유도해야 정당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반대 논리로 토론을 이끌었다. 박강수 민주당 총선후보선정위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정량적 판단이 아니라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궁극적인 평가는 유권자들의 몫인 만큼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쪽으로 그쳐야지 시민단체들이 가르치듯이 대결적으로 가는 것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또 자민련 박경정 정책위 수석전문위원 역시 “학술토론에서 나온 평가기준과 유권자들의 투표행태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면서 “국민들은 정책이나 이념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시민단체 및 언론 관계자들의 입장은 대조적이었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국민들의 요구를 따라갈 수 있는 자질과 부정부패 청산 등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를 가려낼 수 있어야한다.”면서도 “단순한 정보공개 등 정책 계량화는 오히려 변별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서울YMCA 심상용 시민사업팀장도 “인적 청산,정치개혁을 위해 후보를 제대로 평가하자는 것은 50여년의 비민주적 정치구조를 깨겠다는 당연한 목소리”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하승수 협동사무처장은 “정책보다는 인물의 도덕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장기적으로 정책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학계와 언론은 물론 각계 시민단체의 노력을 당부했다. ●도덕성에 높은 가중치 두고 평가를 현역 언론인들의 목소리는 더욱 현실적이다.정인학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부정부패가 극심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도덕성에 대해 높은 가중치를 두고 분명하게 평가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용석 KBS방송 앵커 역시 “외국 사례를 보면,개인의 인물 됨됨이가 아니라 차별화된 당의 정책을 보고 투표한다.”면서 정당별로 차별화된 정책 경쟁을 유도하는 흐름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발언대] 자원위기 해외자원 개발로 대비/강천구 대한광업진흥공사 홍보실장

    원자재난 심화로 산업현장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니켈·구리·알루미늄 등 비철금속의 시중 유통물량이 바닥을 드러내 업계마다 물량확보에 비상이 걸렸다.작년 하반기부터 세계경제 회복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국제 원자재 수요가 늘어나고,특히 과열을 우려할 정도로 고도성장하는 중국의 원자재 ‘폭식’현상이 갈수록 심해진다.이에 따라 일부 원자재 수출국은 주요원자재 수출을 규제하거나 중단하는 등 각국이 원자재 확보전쟁에 돌입하는 양상마저 보인다. 여기서 국제 원자재 대란의 시발점인 중국의 사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중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생산된 철강의 25%를 소비했다.한창 진행중인 서부 및 동북지역 대개발 등 대규모 개발사업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건설 수요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이런 수요를 감당하고자 중국은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억 4600만t이 넘는 철광석을 수입했다.이는 전년보다 30.9% 늘어난 양이며,전세계 철광석 물동량의 25%이상을 차지하는 규모다.또 각종 제조업 생산품의 기초소재로 쓰는 구리(전기동)·니켈 등 비철금속도 중국의 수요급증으로 국제가격이 요동친다.한 예로 구리는 1998년부터 5년간 평균가격이 t당 1635달러 선을 유지했는데 지난해 10월 급등하기 시작해 최근 런던 금속시장에서 2727달러까지 치솟았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가공 단계별 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원자재·중간재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6.3% 상승했다.이같은 오름폭은 2000년 7월 이후 최고치다.지난해 4·4분기에 t당 45.4달러이던 유연탄은 56달러,구리는 2201→2423달러,아연 997→1017달러,알루미늄 1555→1606달러로 오른 상태다. 우리 정부는 급기야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품목의 정부비축물량 방출량을 당초 계획보다 80%이상 늘려 공급키로 했지만 중·장기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따라서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해외자원 개발을 통한 산업원료광물의 장기·안정적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우리나라는 해외자원개발을 위해 2003년 말 현재 30개국에서 20가지 광물에 관한 99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대한광업진흥공사도 산업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6대 전략광물의 개발목표 달성전략을 수립,착실히 추진하고 있다.목표달성을 위해 2010년까지 12억 8000만달러를 투자한다.이 목표가 달성되면 필수 전략광물의 안정공급기반은 구축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언제라도 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이번처럼 국제 원자재 가격급등에서 보듯이 자원 생산국이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리고,또 팔지 않거나 물량을 줄이면 우리 경제가 받는 영향은 엄청나다.자원 위기는 항시 발생하는 것이므로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강천구 대한광업진흥공사 홍보실장˝
  • [자문위원칼럼]긍정 보도와 희망 부메랑/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최근 고려대학교에서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란 주제로 언론인과 언론학자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언론학회가 후원하고 ‘한국사회와 언론’이란 연구팀이 주관한 이 모임에서 중앙일보 이장규 대기자는 “국내신문이 스스로 ‘발전의 노력을 소홀히’ 한 부분이 있지만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또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언론학 박사학위 소지자를 특채해 지면개선에 나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자들이 지적하는 보편적인 저널리즘의 문제 중 하나는 신문과 방송이 독자나 시청자로 하여금 사회이슈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즉,국민들이 언론기관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미디어 내용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며,주변 환경 감시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그들의 헌신적 노력에 대해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언론의 부정적이며 냉소적인 보도경향이 부메랑이 되어 기존의 사회기구는 물론 언론의 객관적인 보도에까지 필요 없는 불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다. 사실 국내신문의 보도경향을 분석해 보면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예를 들면 뉴욕타임스의 교육기사 중 부정적 내용의 기사는 25%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신문의 기사는 과반수 이상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우리나라 기자들은 기사내용이 부정적이지 않으면 뉴스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보도경향은 서울신문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최근에 보도된 기사를 살펴보면 부정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21일자 “눈물의 이태백 ‘눈높이도’ 없다”,23일자 “서울은 외국펀드 기업 사냥터”,25일자 “참여정부 1년 평점 37.9 국민과 코드 달랐다”,27일자 “지역구 15석 증원 ‘야합’” 등 부정적인 기사들이 1면 머리를 이루고 있다. 발생한 사건 자체나 국민의 평가가 부정적인 사안이라면 이를 부정적으로 보도하지 않을 방법은 별로 없으리라고 본다.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기사의 보다 큰 문제는 새로운 사건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전통적이며 진부한 과거의 뉴스프레임으로 보도하게 되며,새로운 관점이나 방향,해결책 제시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그러한 경향은 경제문제 보도에서 더욱 심화되는 듯이 보인다.한국의 실업형태를 살펴보면 미국이나 일본,다른 OECD국가와 비슷하게 미숙련 분야의 일자리는 남아돌지만 전체적인 실업률이 늘어나는 선진국형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보도는 평생직장과 완전고용을 추구하던 개발도상국가 시절의 보도형태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 한국경제의 보다 큰 문제는 최근 도널드 존스턴 OECD 사무총장이 지적했듯이,제조업분야의 노동생산성에 비해 같은 단가에서 서비스 분야의 생산성이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OECD 23개국가 중 최하위에 있다는 점이다.언론은 이러한 사실에 초점을 맞춰 경제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미국의 USA Today처럼 독자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기사를 보다 많이 다루었으면 좋겠다.또한 국민 삶의 질과 관련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로 한국 언론을 리드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그런 관점에서 서울신문 제호아래 주요기사의 제목을 뽑아내는 1면 편집이 재미있으며,“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와 같은 기획기사 역시 돋보인다. 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문제의 이 사발은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견되는 당시 일본 외교사절인 ‘왜국국왕사(倭國國王使)’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전해졌다.조선시대 일본 외교사절은 승려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이들은 조선과의 국교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으로 잠시 국교가 단절되었던 때까지 조선을 방문하여 우수한 조선의 문물을 배웠거나 직접 가지고 돌아갔다. 대표적인 것은 베틀을 이용한 직물의 생산,불경과 대장경,도자기와 그 제작기술 등이었는데,조선 도자기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일본이 매우 탐내는 첨단 문명이었다. ●조선 도자기기술은 세계최고 수준 1423년 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이후 일본 승려들의 조선 방문은 더욱 활발해져서 조선의 민간 풍물과 사찰 문화를 집중적으로 수입해갔다. 조선에서 배워간 문물을 이용하여 일본의 저급한 문화를 일깨웠는데,가마쿠라막부와 무로마치막부 시대의 혼돈과 무절제,사치와 방종의 폐해가 일본의 존립을 위협할 때 그 대안으로서 조선의 문물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송나라로부터 수입한 문화인 서원차(書院茶) 병폐를 치유시키기 위해 응용한 것이 조선 서민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초가집 살림살이와,깊은 산중에서 은거하는 청빈한 수행자의 토굴 생활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절제와 무소유 철학을 가미하여 일본 특유의 초암차를 만들었다.이 초암차는 뒷날 ‘다도(茶道)’라는 일본 특유의 차문화가 탄생하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서원차에서 다도까지의 진보 과정은 일본이 혼돈과 야만에서 정화와 문명으로 변화하는 혁명적 승화였다.이 혁명을 완성한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인간의 내면세계를 혁명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그릇이었다.그 찻그릇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도차완이 통도사 봉발을 조형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그릇은 조형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모두 중국의 청자와 백자를 조형의 모체로 삼아서 나름의 독창성을 이루어 냈다. 중국의 그릇 또한 인도 불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발전했다.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른바 주발(周鉢: 위가 약간 벌어지고 뚜껑이 있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식기),바리(놋쇠로 만든 여자 밥그릇.오목주발과 같지만 입이 좀 더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음),완(梡,碗) 종류들이다. 모두 산스크리트 patra를 음역한 발(鉢: 승려의 식기)의 형태를 모체로 삼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한국적 특성 가장 잘 나타낸 분청사기 흙을 재료로 한 사발(砂鉢),구리를 이용한 동발(銅鉢),쇠를 이용한 철발(鐵鉢),진흙을 이용한 와발(瓦鉢),은을 이용한 은발(銀鉢)등이 크기와 형태에서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그렇게 발전한 대표적인 성과물이 송나라대의 찻사발들인데,천목(天目)이라 부르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릇이다.천목찻사발의 형태는 고려 청자 찻사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필연적으로 중국 도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자문화로 일컬어지는 분청(粉靑) 사기는 한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청자에서 백자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체험하고 터득해 낸 조선 사기장들의 지혜와 미감(美感)이 응집되어 창출된 한국형 사발이다.이같은 우리나라의 도자사(陶磁史)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 저 일본인들이 이도(井戶)라 부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를 통해서였다.따라서 그 이전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에서 이것의 존재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400년 넘게 일본에서 자란 그릇이어서 이 그릇의 참된 주인은 일본 차인들이라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른다.그렇다보니 이 그릇의 본래 용도에 관한 연구와 논의도 일본에서만 이루어져 왔다.그러던 중 이도차완에 관한 한국 사기장들의 관심이 표명된 1960년대부터 조금씩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 국한되어서였다. 그 뒤로 중국,일본의 차문화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한국에서도 차 마시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헤아리게 되면서 다른 찻사발들과 함께 이도차완의 감상과 미학적 탐구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왔다. 어느새 한국의 현재 찻사발 종류 중에서 이도차완 형태를 본뜬 것들이 찻그릇 문화를 주도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히 이도차완으로 이름이 붙여져 찻사발로 이용되고 있는 이 그릇의 본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생겨났다.무릇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 그 쓰임새를 알아야만 그릇에 대한 정확한 가치매김을 할 수 있다.이도차완은 본래 찻사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기된 당연한 의문이다.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맨 먼저 이 그릇의 용도를 얘기한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이다.동양미술사학자인 그는 일제시대를 통하여 조선서민들의 생활용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대표적인 사람이며, ‘민예(民藝)’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만큼 조선문화에 대한 전문가였다. ●日선 “雜器” “祭器” 두가지 견해 그는 이도차완을 16세기 조선서민들의 밥그릇,생활 잡기였다는 잡기설(雜器說)을 내놓았다.이 그릇의 투박한 생김새,자유분방한 색깔과 재료의 특성 등을 그 증거로 제시하면서였다. 두 번째 의견은 동경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내기도 한 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祭器說)이다.이도차완 중에서 규격이 큰 그릇들의 특징인 높은 굽을 증거로 내놓았다. 이 그릇의 가장 큰 특징이 높은 굽임은 확실하고,이 높은 굽으로하여 청자나 백자 혹은 분청사기와도 현저하게 다른 그릇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도차완의 가장 큰 특징 또한 굽의 형태와 굽 언저리의 신비스러운 문양이어서 높은 굽은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일제시대의 산물이며,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4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그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제기설에 동조하는 견해와 잡기설을 지지하는 견해로 나눠져 있다.두 가지 견해를 모두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 국보가 된 한국의 그릇은 이도차완뿐이며,청자,백자,분청사기는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이도차완 중에는 신비와 전설의 대상이 되었을 만큼 놀라운 정치적 흥정물로,천문학적 가격으로,죽기 전에 꼭 한 번 구경하기를 소망하는 그릇이 여러 점이다.이같은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는 더 관심거리로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어쨌든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이 그릇이 지닌 미학적 요소들을 놀라운 미감과 관찰력으로 읽어내어 이 그릇에 관한 평가를 한층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 祭器는 백자가 유일 16세기 조선의 도자사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쓴 그릇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16세기 조선의 도자기 생산 제도는 철저한 관요(官窯)체제여서 모든 생활그릇의 공급을 국가가 전담했다.민간인이 마음대로 그릇을 생산 판매할 수 없었다.일정 직급의 관료와 양반 사대부,소수의 중인 계층들에게만 관요에서 생산된 그릇이 주어졌다. 따라서 농민 등 서민층은 질그릇 외의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기설이 이 그릇의 높은 굽에 착안하고 있는 점은 조선의 민속과 제도에 얼마큼 지식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조선시대의 제기는 백자가 원칙이었다.놋그릇,목기를 제외한 사기그릇 제기는 백자가 유일하다.이도차완 종류는 백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도차완 형태의 그릇을 제상에 진설할 수 있는 상차림이란 없다. 두 가지 견해 모두 이 그릇의 용도를 전혀 엉뚱하게 추정하는 잘못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견해일 따름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문제는 한국인들이 앞의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도차완의 원래 용도는 통도사 봉발대의 봉발을 근원으로 하여 생활화하려 했던 승려들의 발우였던 것으로 보인다.마하승기율,사분율 등 주요 경전에서 규정하고 있는 흙발우의 조건과 통도사의 봉발,그리고 이도차완의 모든 것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도차완 미학의 신비로움은 미륵신앙에 담겨 있는 종교적 염원과 긴 역사가 승화된 것이라고 볼 때 조선 사기장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도예가들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문제의 이 사발은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견되는 당시 일본 외교사절인 ‘왜국국왕사(倭國國王使)’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전해졌다.조선시대 일본 외교사절은 승려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이들은 조선과의 국교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으로 잠시 국교가 단절되었던 때까지 조선을 방문하여 우수한 조선의 문물을 배웠거나 직접 가지고 돌아갔다. 대표적인 것은 베틀을 이용한 직물의 생산,불경과 대장경,도자기와 그 제작기술 등이었는데,조선 도자기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일본이 매우 탐내는 첨단 문명이었다. ●조선 도자기기술은 세계최고 수준 1423년 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이후 일본 승려들의 조선 방문은 더욱 활발해져서 조선의 민간 풍물과 사찰 문화를 집중적으로 수입해갔다. 조선에서 배워간 문물을 이용하여 일본의 저급한 문화를 일깨웠는데,가마쿠라막부와 무로마치막부 시대의 혼돈과 무절제,사치와 방종의 폐해가 일본의 존립을 위협할 때 그 대안으로서 조선의 문물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송나라로부터 수입한 문화인 서원차(書院茶) 병폐를 치유시키기 위해 응용한 것이 조선 서민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초가집 살림살이와,깊은 산중에서 은거하는 청빈한 수행자의 토굴 생활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절제와 무소유 철학을 가미하여 일본 특유의 초암차를 만들었다.이 초암차는 뒷날 ‘다도(茶道)’라는 일본 특유의 차문화가 탄생하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서원차에서 다도까지의 진보 과정은 일본이 혼돈과 야만에서 정화와 문명으로 변화하는 혁명적 승화였다.이 혁명을 완성한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인간의 내면세계를 혁명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그릇이었다.그 찻그릇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도차완이 통도사 봉발을 조형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그릇은 조형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모두 중국의 청자와 백자를 조형의 모체로 삼아서 나름의 독창성을 이루어 냈다. 중국의 그릇 또한 인도 불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발전했다.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른바 주발(周鉢: 위가 약간 벌어지고 뚜껑이 있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식기),바리(놋쇠로 만든 여자 밥그릇.오목주발과 같지만 입이 좀 더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음),완(梡,碗) 종류들이다. 모두 산스크리트 patra를 음역한 발(鉢: 승려의 식기)의 형태를 모체로 삼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한국적 특성 가장 잘 나타낸 분청사기 흙을 재료로 한 사발(砂鉢),구리를 이용한 동발(銅鉢),쇠를 이용한 철발(鐵鉢),진흙을 이용한 와발(瓦鉢),은을 이용한 은발(銀鉢)등이 크기와 형태에서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그렇게 발전한 대표적인 성과물이 송나라대의 찻사발들인데,천목(天目)이라 부르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릇이다.천목찻사발의 형태는 고려 청자 찻사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필연적으로 중국 도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자문화로 일컬어지는 분청(粉靑) 사기는 한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청자에서 백자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체험하고 터득해 낸 조선 사기장들의 지혜와 미감(美感)이 응집되어 창출된 한국형 사발이다.이같은 우리나라의 도자사(陶磁史)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 저 일본인들이 이도(井戶)라 부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를 통해서였다.따라서 그 이전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에서 이것의 존재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400년 넘게 일본에서 자란 그릇이어서 이 그릇의 참된 주인은 일본 차인들이라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른다.그렇다보니 이 그릇의 본래 용도에 관한 연구와 논의도 일본에서만 이루어져 왔다.그러던 중 이도차완에 관한 한국 사기장들의 관심이 표명된 1960년대부터 조금씩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 국한되어서였다. 그 뒤로 중국,일본의 차문화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한국에서도 차 마시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헤아리게 되면서 다른 찻사발들과 함께 이도차완의 감상과 미학적 탐구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왔다. 어느새 한국의 현재 찻사발 종류 중에서 이도차완 형태를 본뜬 것들이 찻그릇 문화를 주도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히 이도차완으로 이름이 붙여져 찻사발로 이용되고 있는 이 그릇의 본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생겨났다.무릇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 그 쓰임새를 알아야만 그릇에 대한 정확한 가치매김을 할 수 있다.이도차완은 본래 찻사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기된 당연한 의문이다.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맨 먼저 이 그릇의 용도를 얘기한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이다.동양미술사학자인 그는 일제시대를 통하여 조선서민들의 생활용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대표적인 사람이며, ‘민예(民藝)’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만큼 조선문화에 대한 전문가였다. ●日선 “雜器” “祭器” 두가지 견해 그는 이도차완을 16세기 조선서민들의 밥그릇,생활 잡기였다는 잡기설(雜器說)을 내놓았다.이 그릇의 투박한 생김새,자유분방한 색깔과 재료의 특성 등을 그 증거로 제시하면서였다. 두 번째 의견은 동경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내기도 한 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祭器說)이다.이도차완 중에서 규격이 큰 그릇들의 특징인 높은 굽을 증거로 내놓았다. 이 그릇의 가장 큰 특징이 높은 굽임은 확실하고,이 높은 굽으로하여 청자나 백자 혹은 분청사기와도 현저하게 다른 그릇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도차완의 가장 큰 특징 또한 굽의 형태와 굽 언저리의 신비스러운 문양이어서 높은 굽은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일제시대의 산물이며,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4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그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제기설에 동조하는 견해와 잡기설을 지지하는 견해로 나눠져 있다.두 가지 견해를 모두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 국보가 된 한국의 그릇은 이도차완뿐이며,청자,백자,분청사기는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이도차완 중에는 신비와 전설의 대상이 되었을 만큼 놀라운 정치적 흥정물로,천문학적 가격으로,죽기 전에 꼭 한 번 구경하기를 소망하는 그릇이 여러 점이다.이같은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는 더 관심거리로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어쨌든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이 그릇이 지닌 미학적 요소들을 놀라운 미감과 관찰력으로 읽어내어 이 그릇에 관한 평가를 한층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 祭器는 백자가 유일 16세기 조선의 도자사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쓴 그릇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16세기 조선의 도자기 생산 제도는 철저한 관요(官窯)체제여서 모든 생활그릇의 공급을 국가가 전담했다.민간인이 마음대로 그릇을 생산 판매할 수 없었다.일정 직급의 관료와 양반 사대부,소수의 중인 계층들에게만 관요에서 생산된 그릇이 주어졌다. 따라서 농민 등 서민층은 질그릇 외의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기설이 이 그릇의 높은 굽에 착안하고 있는 점은 조선의 민속과 제도에 얼마큼 지식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조선시대의 제기는 백자가 원칙이었다.놋그릇,목기를 제외한 사기그릇 제기는 백자가 유일하다.이도차완 종류는 백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도차완 형태의 그릇을 제상에 진설할 수 있는 상차림이란 없다. 두 가지 견해 모두 이 그릇의 용도를 전혀 엉뚱하게 추정하는 잘못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견해일 따름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문제는 한국인들이 앞의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도차완의 원래 용도는 통도사 봉발대의 봉발을 근원으로 하여 생활화하려 했던 승려들의 발우였던 것으로 보인다.마하승기율,사분율 등 주요 경전에서 규정하고 있는 흙발우의 조건과 통도사의 봉발,그리고 이도차완의 모든 것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도차완 미학의 신비로움은 미륵신앙에 담겨 있는 종교적 염원과 긴 역사가 승화된 것이라고 볼 때 조선 사기장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도예가들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최홍운칼럼] 뒤늦은 ‘생명윤리 선언’

    한달에 1개씩밖에 나오지 않는 난자를 242개나 채취했다면 한명당 연속 15개월 이상 채취한 셈이다.여성을 실험의 도구로 동원했으며 결국 엄청난 여성 비하가 된다. 서울대 황우석·문신용 교수팀이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胚芽)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이후 지난 열흘 동안 국내·외는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특히 국내는 짜증나는 정치권 내분에다 자고나면 또 불거지는 불법 정치자금 소식만 전해지던 터여서 이들 연구진의 업적은 청량제와도 같았다.미국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황 교수가 ‘세계 생명공학계 정상(頂上)에 태극기를 꽂고 온 기분’이라는 일성을 인천국제공항에서 터뜨리자 국민들의 기쁨은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언론은 이에 그치지 않고 특급호텔에서의 논문 발표뒤에는 50달러짜리 장급 모텔에서 지낸 연구진의 검소한 생활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이번 연구를 주도한 황 교수는 이제 세계적 생명공학자로 우뚝 섰다.연봉 6000만원에 35평형 전세 아파트에서 살며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근처 대중 목욕탕과 국선도 수련장에서 1시간 정도 명상한 뒤 곧바로 출근해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들떠있는 가운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연구진은 귀국기자회견에서 “당분간 인간 난자를 가지고 복제 연구하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이 기술은 앞으로 국제적인 여론을 들어보고 또 우리나라 국민과 정부의 판단도 기다리겠다.”고 덧붙였다.그렇다면 난자를 이용한 실험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그러면 이번 연구를 위해 16명의 여성으로부터 242개의 난자를 채취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지금까지 줄기세포 배양은 동물의 난자에 사람의 체세포 핵을 이식해 왔으나 이번에는 사람의 세포와 난자를 이용한 성공이어서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데 말이다.사람의 난자이기 때문에 윤리문제까지 해결했다고 한 설명은 터무니없는 얘기란 말인가. 생명윤리학계와 종교계는 즉각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며 맹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배아 자체가 이미 생명인데 이를 복제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복제나 다름없다.”면서 이번 성공은 새로운 획기적인 개발이 아니라고 폄하하고 있다.아울러 그동안 동물의 난자를 이용한 실험도 반수반인의 탄생을 우려하는 큰 문제가 있었는데 하물며 사람의 난자를 이용한 배아복제는 엄청난 재앙마저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한달에 1개씩밖에 나오지 않는 난자를 242개나 채취했다면 한명당 연속 15개월 이상 채취한 셈이다.여성을 실험의 도구로 동원했으며 결국 엄청난 여성 비하가 된다.연구진도 이 점을 인식하고 앞으로 난자 사용을 중단한다고 했을 것이다. 우리만 ‘세계 생명공학계 정상’이라는 환상에 젖어있는 사이 외국 언론과 학계는 이번 연구의 문제점을 세밀하게 지적하고 있었다.‘기절할 만한 성과’(피츠버그대 제럴드 셔턴 교수)라는 말까지 인용하며 대서특필한 LA타임스를 비롯해 워싱턴 포스트,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도 성과를 극찬하면서도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는 언론의 기본자세를 잊지 않았다.유럽 언론들도 미국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보도했지만 비판적이었다.한결같이 이번 연구 결과가 인간복제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한발 더 나아가 인간복제를 꿈꾸는 라엘리안과 같은 집단들을 열광시키며 지침을 제공해준 셈이라고까지 주장했다.우리 언론은 ‘엠바고’논쟁에 휘말려 국민들에게 한쪽 방향의 정보만 제공하는 잘못을 저질렀다.사실은 그대로 전하되 정확한 분석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본의 실천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생명공학의 발달은 미래 활로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이는 생명윤리의 실천 등 기본을 저버리지 않는 범위안에서 나아가야 한다. 최홍운 논설위원실장 hwc77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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